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누락(12)

 

그 신학이 실제로 말하는 것이 바르트 자신이 듣고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내용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이해된 <하나님>에 대한 그의 비판은 혹독할 정도로 철저했다. 그에 따르면 <그런 하나님에 대해서는 이제 철저하게 의심하는 자, 회의하는 자, 야유하는 자, 최종적으로 무신론자가 될 만한 시기가 무르익었다. 우리가 바벨탑을 쌓아 올려 도달하고자 했던 그런 어떤 신은 하나님이 아니라고 고백할 때가 되었다. 그런 신은 우상이다. 그런 어떤 하나님은 죽었다.>”(120-121, 문장부호 수정인용)

 

그 신학이 실제로 말하는 것이 바르트 자신이 듣고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내용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이해된 <하나님>에 대한 그의 비판은 혹독할 정도로 철저했다. 그에 따르면 <그런 하나님에 대해서는 이제 철저하게 의심하는 자, 회의하는 자, 야유하는 자, 최종적으로 무신론자가 될 만한 시기가 무르익었다. 우리가 바벨탑을 쌓아 올린 그런 어떤 신은 하나님이 아니라고 공개적이고 기쁘게 고백할 때가 되었다. 그런 신은 우상이다. 그런 어떤 하나님은 죽었다.>”

 

독일어 원문: [...] Es ist hohe Zeit, uns offen und fröhlich zu gestehen dieser Gott, dem wir den Turm von Babel gebaut haben, ist kein Gott. Er ist ein Götz. Er ist tot.«

 

빠진 곳offen und fröhlich을 보완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바르트는 근대 신학<근대 신학만이 아닌> 것은 포이어바흐가 특별히 루터를 <편애>하며 인용하기를 즐기기 때문이다어떤 형태를 취하든지 관계없이 포이어바흐의 비판을 견뎌내기 어렵다는 점을 두려워했다. 포이어바흐는 <현대 신학의 몸에 가시>와 같은 존재다. 그러나 이제 바르트의 사상에서 독특한 점은 그가 포이어바흐의 비판을그리고 이미 그런 이유에서 근대 신학은 자신이 가장 옳은 신학이라는 경쟁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결정적으로 바로 근대 신학 자체를 향한 것으로 여겼다는 사실이다.”(119, 문장부호 수정인용)

 

바르트는 근대 신학<근대 신학만이 아닌> 것은 포이어바흐가 특별히 루터를 <편애>하며 인용하기를 즐기기 때문이다어떤 형태를 취하든지 관계없이 포이어바흐의 비판을 견뎌내기 어렵다는 점을 두려워했다. 포이어바흐는 <근대 신학의 몸에 가시>와 같은 존재다. 그러나 이제 바르트의 사상에서 독특한 점은 그가 포이어바흐의 비판을그리고 이미 그런 이유에서 근대 신학은 자신이 가장 옳은 신학이라는 경쟁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결정적으로 바로 근대 신학 자체를 향한 것으로 여겼다는 사실이다.”

 

독일어 원문: Denn er befürchtete, daß die neuere Theologie und wohl »nicht nur die neuere«, da sich Feuerbach »mit Vorliebe« auf Luther berief in all ihren Spielarten dem Eniwand Feuerbachs schwerlich standhalten könne: er ein »Pfahl im Fleisch der neueren Theologie«. [...]

 

die neuere Theologie = 근대 신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에버하르트 부쉬, 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역주 오류

 

그러나 1914년 자신의 자유주의 스승들이 <전쟁(1차 세계대전)을 대단히 진지하게 하나님의 계시>라고 공언하는 것을 듣게 되었을 때, 바르트는 계시 개념의 그런 사용은 의문시되기 시작했다. 이미 1914년에 그랬던 것처럼, 이후 1933년에 독일 그리스도인 연맹이 <독일의 시간>(Deutsche Stunde, 1933년 바이에른의 라디오 방송역자 주)을 어떤 새로운 하나님의 계시로 이해했던 것과 관련해서도 바르트는 정치적 입장의 정당성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종교적 진술의 신학적 정당성을 물었다. 즉 전쟁 혹은 <독일의 시간>이라는 표현은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든 이미 가지고 있는 생각에 무엇을 더 추가할 수 있는가? 그런 표현은 인간이 자신의 생각을 허가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는가? <계시>라고 부르는 것 안에는 이전에 이미 계시 없이 형성된 인간적 사상과 관심만이 반영되어 나타나지 않는가?”(118, 문장부호 수정인용)

 

그러나 1914년 자신의 자유주의 스승들이 <전쟁(1차 세계대전)을 대단히 진지하게 하나님의 계시>라고 공언하는 것을 듣게 되었을 때, 바르트는 계시 개념의 그런 사용은 의문시되기 시작했다. 이미 1914년에 그랬던 것처럼, 이후 1933년에 독일 그리스도인 연맹이 <독일의 시간>(deutsche Stunde, 1933년 히틀러 집권과 더불어 나치즘과 독일 민족적 고유성이 현실 정치의 원리로 작동하던 시기)을 어떤 새로운 하나님의 계시로 이해했던 것과 관련해서도 바르트는 정치적 입장의 정당성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종교적 진술의 신학적 정당성을 물었다. 즉 전쟁 혹은 <독일의 시간>이라는 표현은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든 이미 가지고 있는 생각에 무엇을 더 추가할 수 있는가? 그런 표현은 인간이 자신의 생각을 허가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는가? <계시>라고 부르는 것 안에는 이전에 이미 계시 없이 형성된 인간적 사상과 관심만이 반영되어 나타나지 않는가?”

 

독일어 원문: [...] Und er[=Barth] begann schon 1914 so, wie er es dann auch 1933 angesichts des Verständnisses der »deutschen Stunde« als einer neuen Gottesoffenbarung bei den Deutschen Christen tat, nicht nach der Richtigkeit der politischen Stellungnahme zu fragen, sondern nach der theologischen Richtigkeit jener religiösen Aussage: Was fügt die Bezeichnung des Krieges oder der deutschen Stunde eigentlich der Meinung, die die Menschen ohnehin schon von diesen Vorgängen haben, hinzu - außer dem, daß sie ihre Meinung sanktioniert? [...]

 

독일의 시간’(deutsche Stunde)의 역주를 바로잡았다.

 

독일 신학자 파울 알트하우스(Paul Althaus)교회의 독일의 시간(Die deutsche Stunde der Kirche, 1933)을 참고할 것:

 

“Unsere evangelischen Kirchen haben die deutsche Wende von 1933 als ein Geschenk und Wunder Gottes begrüßt.”

 

아울러, H. G. 푈만의교의학(이신건 옮김, 신앙과지성사, 2012) 77-79쪽 글, ‘-계시와 독일적 그리스도인들의 신학을 볼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그리스도교 신학의 진술들은 계시에 근거해 있기 때문에 인간적인 환상일 수 없다는 확언으로 포이어바흐의 자극적인 도전에 대응해야 하는가? 하지만 그런 대응은 바르트에게는 즉각 불가능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포이어바흐의 불붙는 공격적 주장이 가장 먼저 행했던 것이 바로 계시라는 신학적 공통자산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바르트는 자유주의 노선을 택했던 초기 시절에 <계시에 대한 권태감>(Offenbarungsmüdigkeit)(/1, 78)까지 말하면서 계시 개념의 사용에 적극 동참했었고, 심지어 괴테나 베토벤 같은 인물들까지도 하나님의 계시라고 말했다.”(117-118쪽, 문장부호 수정인용)

 

그리스도교 신학의 진술들은 계시에 근거해 있기 때문에 인간적인 환상일 수 없다는 확언으로 포이어바흐의 자극적인 도전에 대응해야 하는가? 하지만 그런 대응은 바르트에게는 즉각 불가능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포이어바흐의 불붙는 공격적 주장이 가장 먼저 행했던 것이 바로 그 신학의 공통자산이 계시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바르트는 자유주의 노선을 택했던 초기 시절에 <계시에 대한 권태감>(Offenbarungsmüdigkeit)(/1, 78)까지 말하면서 계시 개념의 사용에 적극 동참했었고, 심지어 괴테나 베토벤 같은 인물들까지도 하나님의 계시라고 말했다.”

 

독일어 원문: [...] Das ging für Barth darum so ohne weiteres nicht, weil der Offenbarungsbegriff Gemeingut genau der Theologie war, an der sich Feuerbachs These zunäch[s]t entzündete. [...]

 

an der[=der Theologie] sich Feuerbachs These zunäch[s]t entzündete.

 

= 포이어바흐의 불붙는 공격적 주장이 가장 먼저 행했던 것은 그 신학

 

포이어바흐가 공격했던 것은 신학이지 계시가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누락(11)

 

마우트너(F. Mauthner)의 주장, 곧 신학에 대한 그와 같은 해석을 불러일으킨 근대의 <무신성><실제로는 지난 모든 세기의 그리스도교를 통해 유럽의 정신적 지층 속에 계속 은폐되어 있다가이제 강력하게 활기를 띠게 된 바로 그 사상의 발현일 뿐(KD /1, 681)이라는 주장이 옳다면, 일은 어떻게 되겠는가?”(117, 문장부호 수정인용)

 

마우트너(F. Mauthner)의 주장, 곧 신학에 대한 그와 같은 해석을 불러일으킨 근대의 <무신성><실제로는 지난 모든 세기의 명의상의 그리스도교를 통해 유럽의 정신적 지층 속에 계속 은폐된 채강력하게 활기를 띠었던 바로 그 사상의 발현일 뿐(KD /1, 681)이라는 주장이 옳다면, 일은 어떻게 되겠는가?”

 

독일어 원문: Was, wenn F. Mauthners These recht hat, daß die neuzeitliche »Gottlosigkeit« mit jener Deutung der Theologie »doch nur das Aufbrechen desseben Denkens war, das in einer verborgeneren Schicht des europäischen Geistes schon durch alle die vorangegangenen angeblich christlichen Jahrhunderte ... kräftig genug gelebt hatte« (/1, 681)?

 

시제의 차이에 주의할 것:

 

과거 = daß die neuzeitliche »Gottlosigkeit« [...] war

 

과거완료 = das [...] gelebt hatte [...] 이제 강력하게 활기를 띠게 된 그 사상

 

과거완료 시제에 속한 사상의 서술을 이제라고 하는 것은 부적절.

 

빠진 단어 angeblich명의상의, 표면상의, 자칭하는를 보완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