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 슈넬레, 신약정경개론, 김문경·문병구·임진수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4(초판 2).

 

이에르젤(B. van Iersel)마가복음을 전체적으로 읽어서 이해하려고 하고, 동시에 복음서가 한 명의 화자 형태를 지닌다는 것을 잊지 않을 경우에만 이해할 수 있는 통일성을 지니는 책으로 전해졌다는 것을 방법론적 출발점으로 택했다.(410)

 

이어셀(B. van Iersel)마가복음을 전체적으로 읽어서 이해하려고 하고, 동시에 복음서가 이야기 형태를 지닌다는 것을 잊지 않을 경우에만 이해할 수 있는 통일성을 지니는 책으로 전해졌다는 것을 방법론적 출발점으로 택했다.

 

독일어 원문: B. van Iersel wählt als methodischen Ausgangspunkt, „dass Markus als Buch berliefert ist und eine derartige Einheit bildet, dass man das Buch nur verstehen kann, wenn man es als ganzes liest und zu verstehen sucht und dabei nicht vergißt, dass es die Form einer Erzählung hat.“

 

번역을 바로잡았다.

 

dass es[=das Buch] die Form einer Erzählung hat

 

= 마가복음이 이야기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화자’ = Erzähle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도 슈넬레, 신약정경개론, 김문경·문병구·임진수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4(초판 2).

 

“[...] 필자의 생각에 마가는 그가 본 그대로 우리에게 예수의 이야기를 묘사한다. 이 사실을 입증할 수 있으며 이런 근거로 그를 내러티브 저자라고 명명하고 싶다.”(410)

 

“[...] 필자의 생각에 마가는 그가 본 그대로 우리에게 예수의 이야기를 묘사한다. 이 사실을 입증할 수 있으며 이런 근거로 그를 내러티브 저자라고 명명하고 싶다. 단연코 그는 단순한 수집가가 아니다.

 

독일어 원문: „[...] Meines Erachtens kann der Nachweis erbracht werden, dass Markus uns die Geschichte Jesu darstellt, wie er sie sah, und aus diesem Grund möchte ich ihn einen erzählenden Autor nennen. Mit Sicherheit ist er nicht nur Sammler“.

 

빠진 문장을 보완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도 슈넬레, 신약정경개론, 김문경·문병구·임진수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4(초판 2).

 

386-387, 각주 224

 

J. Marcus, “The Jewish War and the Sitz im Leben of Mark, JBL 111 (1992): 441462. 마르쿠스는 마가복음 10:46 이하, 11:1-10, 12:35-36에 나오는 다윗 모티브를 유대-로마 전쟁 때 다윗-메시아적 슬로건(Parole)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한다. 그는 자신의 주석에서 성전에 관해 물론 확정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으나 이 복음서가 멸망의 그늘 아래서 기록되었다.”라고 말한다.(J. Marcus, 위의 글, 39.)

 

J. Marcus, “The Jewish War and the Sitz im Leben of Mark, JBL 111 (1992): 441462. 마커스 마가복음 10:46-48, 11:1-10, 12:35-37에 나오는 다윗 모티브를 유대-로마 전쟁 때 다윗-메시아적 슬로건(Parole)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한다. 그는 자신의 주석에서 성전에 관해 물론 확정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으나 이 복음서가 멸망의 그늘 아래서 기록되었다.”라고 말한다.(J. Marcus, Mark I, 39.)

 

독일어 원문: J. Marcus, The Jewish War and the Sitz im Leben of Mark, JBL 111 (1992), 441462, interpretiert die davidischen Motive in Mk 10,46 ff; 11,110; 12,35 ff als Einspruch gegen davidisch-messianische Parolen im jüdisch-römischen Krieg; in seinem Kommentar bemerkt er zum Tempel, „that the Gospel was written in the shadow of its destruction (J. Marcus, Mark I, 39), ohne sich damit allerdings festzulegen.

 

따옴표 위치와 인명, 성경 구절, 출전을 바로잡았다.

 

 

마커스의 한국어 번역을 참고할 것:

 

조엘 마커스, 마가복음 1, 류호영·장성민 옮김, CLC, 2016.

조엘 마커스, 마가복음 2, 장성민 옮김, CLC, 20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도 슈넬레, 신약정경개론, 김문경·문병구·임진수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4(초판 2).

 

401, 각주 269

 

M. Frenchkowski, Offenbarung und Epiphanie I. II, WUNT 2, 79/80, Tübingen 1995, 1997. 

 

M. Frenschkowski, Offenbarung und Epiphanie I. II, WUNT 2, 79/80, Tübingen 1995, 1997.

 

독일어 원문: M. Frenchkowski, Offenbarung und Epiphanie I. II, WUNT 2, 79/80, Tübingen 1995, 1997,

 

저자의 인명 표기 오류를 바로잡았다.


• 938쪽, <인명 찾아보기>를 볼 것.



참고 사이트:

 

https://de.wikipedia.org/wiki/Marco_Frenschkowski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도 슈넬레, 신약정경개론, 김문경·문병구·임진수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4(초판 2).

 

마가는 이러한 정황을 결코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기적이 요구하는 절대성을 예수의 위격과 관련하여 되돌아보게 한다.(401-402)

 

마가는 이러한 정황을 결코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단지 기적이 요구하는 절대성을 예수의 위격과 관련하여 거부한다.

 

독일어 원문: Markus betrachtet diesen Tatbestand keineswegs negativ, er weist lediglich einen Absolutheitsanspruch der Wunder in Bezug auf die Person Jesu zurück.

 

번역을 바로잡았다.

 

lediglich = 다만

 

zurückweisen = 거부하다

 

 

841쪽의 번역을 볼 것:

 

그러나 여기서는 원칙적인 요한의 기적 비판이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예수가 요한복음 2:4에서처럼 기적을 실행하기 위해 표적에 대한 단순한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참조. 8:11-12, 12:39-42, 16:1-2, 4, 11:16, 29-32의 표적 요구 거부)

 

독일어 원문: Dort artikuliert sich aber keine prinzipielle johanneische Wunderkritik, sondern Jesus weist zunächst nur wie in Joh 2,4 die bloße Forderung nach dem Wunder zurück, um es dann zu vollbringen (vgl. zur Ablehnung der Zeichenforderung Mk 8, 1112; Mt 12, 3942; 16, 12. 4; Lk 11, 16. 29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