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벨커 외,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멜란히톤의 동생 슈바르츠에르트는 브레텐시와 그 지역에서 종교개혁의 도입과 관철에 뛰어난 역할을 감당했다.” 이러한 자발성에 근거해 아담 바르톨로매우스(Adam Bartholomäus)1541년 브레텐 교인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모두 배분하는 성찬식을 거행했다.(122)

 

멜란히톤의 동생 슈바르츠에르트는 브레텐시와 그 지역에서 종교개혁의 도입과 관철에 뛰어난 역할을 감당했다.” 멜란히톤 동생의 주도로 아담 바르톨로메우스(Adam Bartholomäus) 목사 1541년 브레텐 교인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모두 배분하는 성찬식을 거행했다.

 

독일어 원문: [...], „daß der Melanchthon-Bruder Schwartzerd bei der Ein- und Durchführung der Reformation in der Stadt und im Bezirk Bretten eine hervorragende Rolle spielte.‟ Auf dessen Initiative hin hatte der Pfarrer Adam Bartholomäus im Jahr 1541 der Brettener Gemeinde das Abendmahl unter den Gestalten von Brot und Wein gereicht.

 

Auf dessen Initiative hin

 

= [=멜란히톤 동생]의 주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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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벨커 외,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한편 멜란히톤은 1518년 이후 비텐베르크에 있는 작센 선제후령 대학에서 루터 편에 서서 활동하면서도 고향 브레텐에 진심어린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멜란히톤 생가 추모관의 벽면 프레스코에서 발견된 것이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는데, 1524년 멜란히톤의 브레텐 여행이 바로 그것이다.(119)

 

한편 멜란히톤은 1518년 이후 비텐베르크에 있는 작센 선제후령 대학에서 루터 편에 서서 활동하면서도 고향 브레텐에 진심어린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멜란히톤 생가 추모관의 뒤쪽 벽면 프레스코에서 발견된 그림이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는데, 1524년 멜란히톤의 브레텐 여행이 바로 그것이다.

 

독일어 원문: [...] Dies belegt eine Begebenheit, die in der Gedächtnishalle im Melanchthonshaus ihren Niederschlag im hinteren Wandfresko gefunden hat: Melanchthons Reise nach Bretten im Jahr 1524.

 

Niederschlag = ‘표현’, 여기서는 벽화

 

120쪽 벽화를 볼 것.

 

이 벽화 및 멜란히톤 생가 추모관의 3차원 정보는 다음 사이트를 참고할 것:

 

http://www.melanchthon.com/Melanchthonhaus-Bretten/de/Virtueller_Rundgang/Virtueller_Rundgang.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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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벨커 외,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어쨌든 브레텐의 종교개혁은 <아우크스부르크 종교화의> 이후, 즉 선제후 오트하인리히가 공무를 집행하는 사람들에게 교회의 가르침과 질서를 성서와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에 따라 이행하라고 지시했을 때 비로소 관철될 수 있었다.(123)

 

어쨌든 브레텐의 종교개혁은 1555 <아우크스부르크 종교화의> 이후, 즉 선제후 오트하인리히가 공무를 집행하는 사람들에게 교회의 가르침과 질서를 성서와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에 따라 이행하라고 지시했을 때 비로소 관철될 수 있었다.

 

독일어 원문: Die Reformation konnte sich allerdings in Bretten erst durchsetzen nach dem Augsburger Religionsfrieden von 1555, als Kurfürst Ottheinrich die Amtsleute anwies, die Lehre und Ordnung der Kirche nach der Bibel und dem Augsburger Bekenntnis zu gestalten.

 

빠진 곳을 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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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벨커 외,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누락

 

1518하이델베르크 논쟁으로 루터가 독일 남서부 지역에 알려지자 수많은 추종자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지역 영주인 팔츠의 백작 루드비히 5(1508-44)는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보름스 제국회의에서 루터에게 허가해준 자유 통행권을 박탈하자는 주장을 거부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1522년 슈바벤의 종교개혁자 요한네스 브렌츠(Johannes Brenz)와 테오발트 빌리칸(Theobald Billican)의 친()종교개혁적인 강의를 금지시켰다.(121)

 

1518하이델베르크 논쟁으로 루터가 독일 남서부 지역에 알려지자 수많은 추종자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지역 영주인 팔츠의 백작 루트비히 5(1508-44)는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1521 보름스 제국회의에서 루터에게 허가해준 자유 통행권을 박탈하자는 주장을 거부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1522년 슈바벤의 종교개혁자 요한네스 브렌츠(Johannes Brenz)와 테오발트 빌리칸(Theobald Billican)의 친()종교개혁적인 강의를 금지시켰다.

 

독일어 원문: [...] Die Haltung des Landesherrn, Pfalzgraf Ludwig. (1508-1544), war jedoch unentschlossen. Einerseits hatte er sich auf dem Wormser Reichstag von 1521 widersetzt, das Luther zugesagte freie Geleit zu brechen. [...]

 

빠진 곳을 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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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벨커 외,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로이힐린과 멜란히톤이 생존해 있을 때 인문주의운동은 독일 남서부와 라인강 상류에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150명에 달하는주로 시민 지식인들인인문주의자 그룹이 이 지역의 문화를 선도했다. 이 지역에는 인쇄소가 세워졌으며 슐레트슈타트, 스트라스부르크, 포르츠하임에는 수많은 학교들이 그리고 바젤, 프라이부르크, 튀빙겐, 마인츠, 하이델베르크에는 대학들이 세워졌다.(118)

 

로이힐린과 멜란히톤이 생존해 있을 때 인문주의운동은 독일 남서부와 라인강 상류에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150명에 달하는주로 시민 지식인들인인문주의자 그룹이 이 지역의 문화를 선도했다. 이 지역에서는 인쇄술이 발명되었으며 슐레트슈타트, 스트라스부르, 포르츠하임에는 수많은 학교들이 그리고 바젤, 프라이부르크, 튀빙겐, 마인츠, 하이델베르크에는 대학들이 세워졌다.

 

독일어 원문: Zu Lebzeiten Reichlins und Melanchthons erlebte die humanistische Bewegung in Südwestdeutschland und am Oberrhein eine Blütezeit. Die Gruppe von etwa eineinhalb Hundert zählende Humanisten vorwiegend bürgerlicher Gelehrter begriff diese Region als einen kulturell führenden Rau, in dem nicht nur der Buchdruck erfunden worden war, sondern wo sich auch viele bedeutsame Schulen etwa in Schlettstadt, Straßburg und Pforzheim, wie auch die Universitäten in Basel. Freiburg, Tübingen, Mainz und Heidelberg befanden.

 

erfinden = 발명하다

 

단어를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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