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하르트 슈바르츠, 마틴 루터, 정병식 옮김, 한국신학연구소, 2010(초판 2).

 

루터는 라이프치히 논쟁에서 13(12)번째 논제가 지니고 있는 선동적인 성격 때문에 잘 알려졌다.(144)

 

루터는 라이프치히 논쟁에서 13(12)번째 논제가 지니고 있는 선동적인 성격을 알고 있었다.

 

독일어 원문: Luther war sich des provozierenden Charakters seiner 13. (12.) These für die Leipziger Disputation bewußt.

 

번역을 바로잡았다.

 

sich eines Dinges bewußt sein = 무엇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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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르트 슈바르츠, 마틴 루터, 정병식 옮김, 한국신학연구소, 2010(초판 2).

 

메르제부르크 감독과는 달리 전적으로 토론을 환영한 그는 119일 토론 승인을 에크에게 통보하라고 대학에 명했다.(142)

 

그는 1519117일 메르제부르크 감독에게 토론의 실행에 대한 찬성을 매우 강하게 표명하고 119일 토론 승인을 에크에게 통보하라고 대학에 명했다.

 

독일어 원문: Der[=Landesherr] sprach sich am 17. Jan. 1519 gegenüber dem Bischof von Merseburg sehr energisch für die Durchführung der Disputation aus und forderte auch schon am 19. Jan. 1519 die Universität auf, Eck eine Zusage zu geben.

 

빠진 곳을 보완하고 번역을 바로잡았다.

 

sich für A aussprechen = A에 대해 찬성을 표명하다

 

auffordern = 요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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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르트 슈바르츠, 마틴 루터, 정병식 옮김, 한국신학연구소, 2010(초판 2).

 

칼슈타트-에크의 논쟁이 공개되기 전 15185/6월 이 둘 사이에 서신 교환이 있었다.(140, 각주 15)

 

칼슈타트-에크의 논쟁이 공개되기 전 이미 15185/6월 이 둘 사이에는 서신 교환을 통한 논쟁이 있었다.

 

독일어 원문: [...] Ehe die Kontroverse Karlstadt-Eck publik wurde, war sie schon im Mai/Juni 1518 Gegenstand eines Briefwechsels zwischen beiden.

 

번역을 바로잡았다.

 

war sie[=die Kontroverse] schon im Mai/Juni 1518 Gegenstand eines Briefwechsels zwischen beiden

 

= 논쟁은 이미 15185/6월에 두 사람 사이에 편지 교환의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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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르트 슈바르츠, 마틴 루터, 정병식 옮김, 한국신학연구소, 2010(초판 2).

 

루터 문제와 상관없이 황제는 제국의원들에게 어느 누구도 제국의원들의 조사 없이 제국회의가 판결할 수 없다고 약속했다.(139)

 

루터 문제와 상관없이 황제는 제국의원들에게 제국의원들의 조사 없이 어느 누구에게도 제국 외 추방을 판결할 수 없다고 약속했다.

 

독일어 원문: [...] er den Reichsständen, freilich ohne Bezug auf Luther, versprochen hatte, über niemanden ohne Prüfung durch die Reichsstände die Reichsacht zu verhängen

 

번역을 바로잡았다.

 

über niemanden ohne Prüfung durch die Reichsstände die Reichsacht zu verhängen

 

= 제국의회에 의한 조사 없이 아무에게도 독일제국 국외추방을 판결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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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르트 슈바르츠, 마틴 루터, 정병식 옮김, 한국신학연구소, 2010(초판 2).

 

새로운 황제를 선출하고자 선제후들이 모였을 때(151974일 프랑크푸르트 황제선출), 작센 선제후는 트리어 대주교이자 선제후와 함께 뵐데에서 개최될 차기 제국회의에서 트리어 대주교 앞에 루터를 부르기로 합의했다.(138)

 

새로운 황제를 선출하고자 선제후들이 모였을 때(151974일 프랑크푸르트 황제선출), 작센 선제후는 트리어 대주교이자 선제후와 함께 머지않아 개최될 차기 제국회의에서 트리어 대주교 앞에 루터를 부르기로 합의했다.

 

독일어 원문: Anläßlich der Zusammenkunft der Kurfürsten zur Wahl des neuen Kaisers (Frankfurter Kaiserwahltag 4.7.1519) vereinbarte der sächsische Kurfürst mit dem Erzbischof und Kurfürsten von Trier, daß Luther beim nächsten Reichstag, der in Bälde zu erwarten war, vor dem Trierer Erzbischof als richterlich untersuchender Instanz erscheinen sollte.

 

번역을 바로잡았다.

 

in Bälde = bald, in (relativ) kurzer Zeit

 

= ,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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