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벨커 외,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1529스트라스부르크(Straßburg)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적인 현실화는 실제적인 부분에서 주목받아야 할 한 남자의 역할과 관련이 있다. 그의 이름은 마르틴 부처(Martin Bucer, 1491-1551)이다. 실제로 이 자유 국가도시에는 16세기 초중반에 수많은 주요 인물이 있었다. 그들은 인문주의와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의 영향을 받았으며, 또한 유럽 전역에 영향을 끼쳤다. [...] 요한네스 스툼(Johannes Sturm), [...] 경륜 있는 정치인으로서 이 도시의 관심사를 황제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며 대변하는 것을 성사시킨 야콥 스툼(Jakob Sturm) [...] 등을 떠올릴 수 있다.(513)

 

1529스트라스부르(Strasbourg)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적인 현실화는 실제적인 부분에서 주목받아야 할 한 사람의 역할과 관련이 있다. 그의 이름은 마르틴 부처(Martin Bucer, 1491-1551)이다. 실제로 이 자유 제국도시에는 1526-1550수많은 주요 인물이 있었다. 그들은 인문주의와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의 영향을 받았으며, 또한 유럽 전역에 영향을 끼쳤다. [...] 요한네스 슈투름(Johannes Sturm), [...] 경륜 있는 정치인으로서 이 도시의 관심사를 황제에게 항상 노련하게 대변하는 것을 성사시킨 야콥 슈투름(Jakob Sturm) [...] 등을 떠올릴 수 있다.

 

독일어 원문: Der Durchbruch der Reformation in Straßburg 1529 ist zu einem beträchtlichen Teil auf das Wirken eines bedeutenden Mannes zurückzuführen: Martin Bucer (Bucerus, Butzer, 1491-1551). Zwar gab es in der freien Reichsstadt im zweiten Viertel des 16. Jahrhunderts zahlreiche wichtige Gestalten, die vom Humanismus bzw. von der Botschaft Luthers geprägt waren und die auf europäischer Ebene Einfluss ausübten: so Johannes Sturm, [...]; Jakob Sturm, der erfahrene Politiker, dem es gelang, die Interessen der Stadt immer geschickt gegenuber dem Kaiser zu verteidigen; [...]

 

Straßburg = Strasbourg = 스트라스부르

 

im zweiten Viertel des 16. Jahrhunderts = 1526-1550년에

 

Sturm = 슈투름

 

geschickt = 능란한, 숙련된

 

단어와 인명을 바로잡았다.

 

 

 

요한네스 슈투름(1507-1589)

야콥 슈투름(1489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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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벨커 외,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다양한 역병이 만연하면서 암브로시우스의 사역은 어려워졌지만, 그는 더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마르가레테는 1541역병이 도는 와중에 [...] 사망했다. [...] 환자들을 쉴 새 없이 돌보던 요한네스 츠비크 역시 1542역병으로 사망했다. 이러한 곤경의 시기에 암브로시우스에 의해 전승된 22개의 곡 가운데 몇 곡이 등장한다. 그중 두 곡부활절 찬송인 <환호하라, 땅이여 그리고 하늘이여, 밝게 환호하라>[...]와 나중에 만들어진 <깨어라, 깨어라, 혼인시간이 다가왔다>[...][] 독일 개신교회 찬송가에 수록되었다.(266)

 

여러 차례 페스트 전염병이 만연하면서 암브로시우스의 사역은 어려워졌지만, 그는 더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마르가레테는 1541페스트 도는 와중에 [...] 사망했다. [...] 환자들을 쉴 새 없이 돌보던 요한네스 츠비크 역시 1542페스트 사망했다. 이러한 곤경의 시기에 암브로시우스에 의해 전승된 22개의 곡 가운데 몇 곡이 등장한다. 그중 두 곡성령강림절 찬송인 <환호하라, 땅이여 그리고 하늘이여, 밝게 환호하라>[...]와 나중에 만들어진 <깨어나소서, 깨어나소서,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독일 개신교회 찬송가에 수록되었다.

 

독일어 원문: Verschiedene Pestepidemien machten Blarers Arbeit als Seelsorger schwer, aber umso notwendiger. Margarete Blarer starb in der Pestzeit 1541, [...] Auch Johannes Zwick, die Kranken unermüdlich besucht hatte, starb 1542 an der Pest. In dieser Notzeit entstanden einige der 22 von Ambrosius Blarer überlieferten Lieder. Zwei seiner Lieder stehen im Gesangbuch: das Pfingstlied Jauchz, Erd, und Himmel, juble hell (EG 127), und das später entstandene Wach auf, wach auf,’s ist hohe Zeit (EG 244).

 

Pestepidemie = 페스트 전염병

 

Pestzeit = 페스트 시기

 

Pest = 페스트

 

페스트와 역병(疫病)을 구별할 것.

 

역병 = Eepidemie, Seuche

 

Pfingstlied = 성령강림절 찬송

 

부활절 찬송 = Osterlied

 

es ist hohe Zeit = 절박한 때이다

 

Wach auf, wach auf,’s ist hohe Zeit

 

= 깨어나소서, 깨어나소서,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이 찬송 가사의 출전 = <신약성경> 마가복음 4:37-38: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단어와 문장을 바로잡았다.

 

 

 

Jesus schläft im Sturm auf dem See, Hitda-Codex, um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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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벨커 외,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예배 규정은 1536년에 공포되었는데, 주일예배에 루터교적 미사가 아닌설교를 중심 위치에 세워놓는북부 독일적인 설교자 예배의 종교개혁 이전 형식을 고려했다.(264)

 

예배 규정은 1536년에 공포되었는데, 주일예배에 루터교적 미사가 아닌설교를 중심 위치에 세워놓는남부 독일적인 설교자 예배의 종교개혁 이전 형식을 고려했다.

 

독일어 원문: Eine Gottesdienstordnung wurde 1536 erlassen, die fur den sonntäglichen Gemeindegottesdienst nicht die lutherische Messe vorsah, sondern die vorreformatorische Form des oberdeutschen Prädikantengottesdienstes, die die Predigt in den Mittelpunkt stellte.

 

oberdeutsch = 남부 독일의

 

독일의 방위와 지형을 구분할 것:

 

독일 남부 = 고지(ober), 북부 = 저지(nieder).

 

단어를 바로잡았다.

 

 

다음 번역문도 모두 바로잡을 것:

 

북부 독일 제국도시들에서, 예컨대 메밍겐, 이스니, 켐프텐, 울름, 가이슬링엔, 그리고 린다우(262)

 

남부 독일 제국도시들에서, 예컨대 메밍겐, 이스니, 켐프텐, 울름, 가이슬링엔, 그리고 린다우

 

[...] in den oberdeutschen Reichsstädten erbeten wurde, so in Memmingen, Isny, Kempten, Ulm, Geislingen, Esslingen und Lindau.

 

 

북부 독일 신학자들로 하여금(264)

 

남부 독일 신학자들로 하여금

 

[...] der oberdeutschen Theologen

 

 

북부 독일 도시들은 황제에게 굴복해야 했다.(266)

 

남부 독일 도시들은 황제에게 굴복해야 했다.

 

[...] die oberdeutschen Städte mussten sich ihm unterwerfen.

 

 

 

 

지도를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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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벨커 외,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개혁자들은 수도원 설득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암브로시우스는 수도원 규정을 기안했다. 1525 공포된 이 규정은 성서적 예배를 통해 수도원 생활을 개신교적으로 재편하려고 했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264)

 

개혁자들은 수도원 설득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암브로시우스는 수도원 규정을 기안했다. 1535 공포된 이 규정은 성서적 예배를 통해 수도원 생활을 개신교적으로 재편하려고 했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독일어 원문: Große Mühe verwendete man auf die Überzeugungsarbeit in den Klöstern. Hierfür wurde 1535 eine wohl von Blarer verfasste Klosterordnung erlassen, die eine evangelische Neugestaltung des Klosterlebens mit schriftgemäßem Gottesdienst vorsah. Dieser Ordnung blieb jedoch ein durchschlagender Erfolg versagt.

 

규정의 공포 연도를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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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벨커 외,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그들의 연합은 아주 밀접했다. 콘스탄츠가 메밍겐 및 린다우와 함께 스트라스부르크의 종교개혁자(마르틴 부처옮긴이 주) 기초한 신앙고백을 받아들였을 정도였다. 이 신앙고백은 1530년 아우크스부르크 제국회의에서 <콘페시오 테트라폴리타나>(Confessio Tetrapolitana) 또는 <네 도시의 신앙고백>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신앙고백이다.(262)

 

그들의 연합은 아주 밀접했다. 콘스탄츠가 메밍겐 및 린다우와 함께 스트라스부르의 종교개혁자들(마르틴 부처와 볼프강 카피토옮긴이 주) 기초한 신앙고백을 받아들였을 정도였다. 이 신앙고백은 1530년 아우크스부르크 제국회의에서 <콘페시오 테트라폴리타나>(Confessio Tetrapolitana) 또는 <네 도시의 신앙고백>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신앙고백이다.

 

독일어 원문: Die damit Konstanz geknüpften Verbindungen waren so eng, dass Konstanz, zusammen mit Memmingen und Lindau, dem von den Straßburgern verfassten Bekenntnis beitrat, das auf dem Augsburger Reichstag 1530 als Confessio Tetrapolitana oder Vierstädtebekenntnis vorgelegt wurde.

 

dem von den Straßburgern verfassten Bekenntnis beitreten

 

= 스트라스부르 사람들에 의해 작성된 신앙고백에 동의하다

 

 

주의할 것: 작성자는 복수(複數)

 

= 마르틴 부처, 볼프강 카피토

 

 

문장과 옮긴이 주를 바로잡았다.

 

 

마르틴 부처(1491-1551)

볼프강 카피토(1478-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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