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 현실에서

 

 

 

평범한 알라딘 서재 글도 뮤즈가 될 수 있다. 특히 생각 거리를 심어주는 글은 또 다른 글을 위한 영감을 제공한다. 오늘 사월의책출판사 대표 안희곤 님이 페이스북 계정으로 쓴 글을 오거서(五車書)님의 소개로 읽었다. 필자의 단단한 사유와 정성이 묻어나 있는 글에 좋아요만 누르고, ‘잘 썼다라고 칭찬하면서 지나치기가 아깝다.

 

 

 

 

 

 

 

 

 

 

 

 

 

 

 

 

 

    

 

안희곤 대표의 글은 책 안 읽는 사회의 단면을 정확하게 보여줬다. 그의 말대로 오늘날의 책은 책 좋아하는 덕후들만 위한 골수취미 상품이 되었다. 애서가들은 책 안 읽는 사람보다 유난히 책을 소중히 여긴다.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책은 제작자나 소유자에게나 귀중한 물건이었다. 중세 사회에서 책을 소유한다는 것은 기독교 대중을 지배하던 두 계층, 즉 성직자와 귀족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에 속했다. 따라서 책은 특권층의 전유물이 되었다. 18세기에 들어 읽을거리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자 독자와 책의 관계는 훨씬 자유로워졌다. 이때부터 20세기 초반까지는 종이책의 전성기였다. 20세기 중반 이후 정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많은 정보를 소유하는 사람이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독자는 사용자라는 개념으로 변화한다. 사용자는 독자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독자가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사용자는 꼭 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서 사용자는 자신에게 필요한 책만 읽는 사람이다. 진짜 독자는 종이책을 향한 애정이 강하다. 일단 책을 사서 보려고 한다. 반면 사용자는 읽는 것이 힘들어서 책을 사지 않는다. 원하는 지식 및 정보는 구글 같은 검색 도구에 찾으면 된다. 결국, 소수의 독자만이 종이책을 사서 모으는 덕후가 된다. 책은 책 덕후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이쯤 되면 책 안 읽는 사회가 정말 심각하다는 걸 깨닫는다. 그런데 안 대표가 너무나도 뻔한 문제를 강조하려고 길게 글을 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 안 읽는 현상만큼이나 심각한 것이 책을 무기로 삼은 가짜 식자들이 넘치는 현실이다. 책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책을 향한 애서가들의 뜨거운 열정만 숨 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열정을 파괴하는 차가운 광기도 흐른 적이 있었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책은 귀족 같은 특권층의 전유물이라고 했다. 그들은 책(지식)뿐만 아니라 권력도 가졌다. , 책을 소유한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권력자들은 책의 위력을 알고 있었다. 자신들만 가지고 있던 지식의 무기가 피지배층의 손에 쥐어지면,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흉기가 된다는 것을. 그래서 권력자는 진실을 가리거나, 더 편하고 쉬운 통치를 위해서 책을 없애기 시작했다. 권력자들은 종교, 국가, 미풍양속 등을 거스른다고 '위험한' 책들을 금서로 만들었다.

 

시대가 변하고, 권력 변동이 수차례 이루어지면서 이제 지식인들이 지식 권력자가 되었다. 국가 권력자들은 과거처럼 책을 가지지 않아도,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 그들을 대변하는 지식 권력자들이 있으니까. 지식 권력자들은 국가권력을 동원해서 자기 사상을 강요한다. 심지어 자신들의 이념과 다른 책을 금서로 지정한다. 진시황이나 히틀러의 시대에 있을 법한 일이 우리나라에도 일어났다. 이제는 교과서마저 마음대로 바꾸려고 시도한다.

 

지식을 왜곡하고, 자기 입맛대로 통제하는 이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바로 책이다. 안 대표는 독서로 키운 분별심이 대항적 지식이라고 말한다. 분별력은 올바른 시민 정신과 도덕적 행동을 위해 선약을 구별하는 능력이다. 옳고 그른 지식을 분별하는 능력이 없으면, 문제점을 날카롭게 포착한 비판이 비난으로 보이고, 자기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국가 권력 및 지식 권력의 결점을 보지 못한다. 페미니스트가 쓴 책을 한 번도 안 읽은 사람은 페미니즘을 남성을 위협하는 사상으로, 자본론을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마르크시즘을 북한이 좋아하는 사상으로 여긴다. 단순한 생각이지만, 책을 멀리하여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이 편견에 빠지기 쉽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안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들은 공감불능의 괴물로 변한다.

 

나는 책 읽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올 거라는 낙관적 희망에 반대한다. 앞으로는 책보다 재미있는 것들이 계속 나온다. 책 읽는 사람들이 많아진다고 해서 사회 전체가 건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좋은 책을 읽고 지식을 얻는 것은, 남을 업신여기기 위한 것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가 했던 말이다. 이 말에 내 생각을 덧붙이자면 책은 남에게 자랑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책 읽은 권수는 중요하지 않다. 독서로 단련한 분별력은 보여주기식 지식의 차원이 아니라 삶 속에서 실제로 실천해야 한다. 안 대표의 글이 대충 읽으면 안 되고, 끝까지 정독해야 한다. 이 글의 핵심 내용은 후반에 나와 있다. 반성 의식과 비판 의식을 키우지 않는 독서는 위험하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ureka01 2016-09-01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분별할 수 없으니 음주 경찰청장도 나오는 시대가 된 거예요......
새로운 문맹자 시대가 아닌가 싶습니다...ㄷㄷㄷㄷ

cyrus 2016-09-01 21:02   좋아요 1 | URL
요즘 시대가 이미지 텍스트가 대세라고 해도 문자 텍스트의 가치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간결하고 금방 이해할 수 있는 이미지 텍스트 읽기에 익숙해지면 문자 텍스트를 이해하는 반응 속도가 느려질 겁니다. 그렇다 보니 긴 글을 끝까지 못 읽고 말아요.

초딩 2016-09-02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통치자들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즐겁게 문맹의 길을 걷고 있어서 ㅜㅜ

cyrus 2016-09-02 10:37   좋아요 1 | URL
그래서 국회의원들이 도서정가제 도입을 찬성했던 걸까요? ^^;;

transient-guest 2016-09-02 0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수는 점점 더 바보가 되어가는 느낌입니다

cyrus 2016-09-02 10:38   좋아요 1 | URL
다수의 바보 때문에 이성을 가진 소수가 바보 소리 듣는 이상한 세상입니다. ㅠㅠ


stella.K 2016-09-02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좋은 글이다.
책도 알고보면 가치중립적인 것 아니겠어?
칼을 누가 쥐느냐와 같은 거겠지.
이 책들 읽어보면 좋겠네.
이달의 페이퍼다!

cyrus 2016-09-02 14:42   좋아요 0 | URL
예스24로 책을 주문했는데 아직 안 왔어요. 2~3일 이내에 배송된다는데 늦으면 다음 주에 받을 것 같아요.

페크pek0501 2016-09-02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동화에서 보니 아버지가 아이에게 책을 읽지 말라며 컴퓨터로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책을 읽는 건 시간 낭비라고 하더라고요. 긴 사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짧은 지식과 정보가 무슨 소용이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중요한 건 지식의 양이 아니라 생각의 힘이다, 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cyrus 2016-09-02 14:47   좋아요 0 | URL
실제로 아버지가 저런 얘기했으면 자녀 교육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겁니다. 아이가 혼자 책을 읽는 것보다 부모와 같이 소리 내서 읽는 것이 아이 두뇌 발달에도 좋고, 친화력이 향상된다고 합니다.

집에 아이 혼자서 책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합니다. 자신의 세계에 갇혀 지내는 자폐 증상이 보일 수도 있어요.

나뭇잎처럼 2016-09-07 2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로 단련한 분별력은 보여주기식 지식의 차원이 아니라 삶 속에서 실제로 실천해야 한다.˝ 밑줄 쫙 옆에 별표 치고 싶은 말입니다. 요즘 나오는 독서관련 책들을 보면 ˝많이 읽어서 성공하기˝인 책들이 많더군요. 안 읽는 것도, 군림하기 위해 많이 읽는 것도 모두 위험하긴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cyrus 2016-09-08 08:32   좋아요 0 | URL
독서를 `삶에 실천`하는 의미가 굉장히 어려워보여도 쉽게 생각하면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떠한 관점에만 치우치지 않기. 서로 상반된 양쪽 입장의 장단점을 살펴보고, 의견을 드러내는 것. 살면서 겪는 이런 복잡한 상황들에 대처하려면 책을 잘 읽어야해요. 물론 책 많이 읽어도 편견에 사로잡히는 사람들도 있긴 합니다.
 
추억에 관한 모든 것 - 향수의 심리적 효능과 경제적 가치에 대하여
다니엘 레티히 지음, 김종인 옮김 / 황소자리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용한 밤이면 홀로 깨어 있던 그리움의 눈빛들. 가슴 속에 접혀있던 추억의 장면이 펼쳐진다. 몸은 고향을 기억한다. 어머니는 생명의 모태로 모든 것을 포근하게 감싸는 이미지를 동반하고, 고향은 누구에게나 가장 소중하게 각인된 유년의 기억과 맞물린다. 향수병은 생의 궤적에서 고향을 떠난 후 그리워하는 인지상정의 연장이다. 그러나 추억의 향수병에 너무 취하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준다. 갈 수 없는 고향은 그립고 아련한 공간이다. 진한 향수병은 추억의 상실에 대한 몸부림이다.

 

우리는 지나간 시절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특히 학창시절의 추억은 쉽게 버리지 못한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이러한 복고심리에 편승한 상품이나 문화 콘텐츠 등이 등장하고 있다. 우리는 추억이 깃든 상품을 소비하면서 찌든 생활의 스트레스를 털어내고 한편으로는 재미와 유쾌함을 즐긴다. 어린 시절의 행복한 추억은 평생의 자산이 된다. 한마디로 어린 시절은 심리적 텃밭을 가꾸는 일이다. 즐거운 향수는 병이 아니라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자아를 형성하도록 돕는다. 옛 시절 분위기에 한껏 젖어 현실을 잠깐 잊어보는 것도 나름대로 효과가 있다. 심리학자들은 향수를 양면성이 있는 감정으로 본다. 행복했던 추억을 잊지 못한 사람은 어려운 일에 맞닥뜨리더라도 이에 맞설 힘을 얻게 된다. 반면에 그리움이 눈물이 되어 흘리는 사람은 쉽게 슬픔에 빠지고 매사에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추억은 종종 우리에게 장난을 걸기도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과거가 현재보다 더 좋게 느껴진다. 옛 추억을 들춰보면서, ‘그래, 그땐 그랬지’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이 달콤한 기분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살다 보면 어려운 시기에 여러 번 봉착하게 되는데, 이때 과거가 현재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지금 현실이 살기 팍팍하게 느껴져도 수십 년 지나고 나면 ‘그때가 좋았는데’라는 식으로 왜곡된 추억이 환기된다. 이뿐만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경험을 기억한다고 믿거나 안 좋았던 경험을 억지로 긍정적으로 미화하기도 한다. 이러한 반응이 상대방을 속이는 거짓 증언으로 보이지만, 일반적으로 뇌가 가끔 오작동을 일으키면서 생기는 오류 기억이다. 뇌는 끊임없이 감각으로 느낀 경험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기억해두는 학습을 한다. 그 과정에 부정적 경험은 더 빨리 잊게 되고, 긍정적 경험만 저장된다.

 

추억을 기억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모두에게 같은 시대였지만 기억하는 주체에 따라 추억의 내용이 달라진다. 그렇지만 누구나 공유하는 기억과 감정은 정서적 연대감을 만들어주고, 인생을 훈훈하고 풍요롭게 해준다. 물론 모든 지나간 일들이 전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될 수 없다. 나쁜 것은 나빴다고 말할 수 있는 게 기억이라면 나쁜 것조차 그립고 아름다웠던 것으로 각색하는 것이 우리의 추억이다. 향수(鄕愁)는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씩 품고 있는 향수(香水)다. 숱한 기억 속에서 아련한 그리움으로 떠오르는 추억을 찾고 싶을 때 향수(鄕愁)를 향수(香水)처럼 살짝 뿌려본다. 향긋한 추억의 냄새가 정신을 맑게 해준다. 하지만 과도한 향수(香水) 냄새는 시큼털털한 냄새의 여운을 더욱 짙게 만든다. 이렇듯 강렬한 향수(鄕愁)에 벗어나지 못하면 과거의 기억에 집착하거나 때로 과거를 왜곡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과거를 미화하는 일이다. 향수(鄕愁)는 안 좋은 추억을 가리기 위한 향수(香水)로 사용해선 안 된다. 정신 건강에 이로운 향수(鄕愁)는 진하게 오래가는 것이 아닌 가볍고 은은해야 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amoo 2016-08-11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억하니, 기억이 생각나고, 동시에 <물질과 기억>의 내용이 마구 떠오르네요...

사이러스 님에게 <물질과 기억>도 읽어보시라고 추천드리고 싶지만, 번역이 워낙 좋지 않아. 좀 거시기 하네요..

향수 냄새가 어떻게 추억을 환기하는지, <물질과 기억>에서 다루어 지거든요~

저도<추억에 관한 모든 것>을 소장해서 봐야 할 듯합니다~^^

cyrus 2016-08-11 20:28   좋아요 0 | URL
그 어려운 책을 안 주셔서 다행입니다. 받기만 하고 안 읽었을 겁니다... ㅎㅎㅎ

그런데 야무님이 책 내용을 언급하시니까 그 부분만 따로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추억에 관한 모든 것》은 도서관에 빌려서 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 추억의 긍정적 심리효과에 관한 내용이 많습니다. 이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이 많이 소개되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yureka01 2016-08-11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거의 추억이 미화되는 경우..
현재의 불안의 반작용은 아닐까 싶어요.
역시 향수를 돋구는데는 맛의 향기가 제일 아닐까 싶습니다.
어릴 때 먹던 맛은 평생이 입맛을 좌우하는 역항이더군요..

cyrus 2016-08-11 20:30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향수가 현실의 불안을 잊게 해주는 효과가 있어요. 현재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점점 많아질수록 추억 마케팅이 성행할 것입니다.
 
내가 논어에서 얻은 것 - 삶이 흔들릴 때 나를 잡아주는 힘
사이토 다카시, 박성민 / 시공사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이토 다카시의 명성에 이끌려서 책에 관심이 있는데, ‘출판사’ 때문에 읽기가 망설이는 독자는 이 책을 안 읽어도 됩니다.  

 

http://blog.aladin.co.kr/haesung/8619436

 

http://blog.aladin.co.kr/haesung/8621585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lummii 2016-07-13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세번 죽이시는 군요..이러다 테러당하시는거 아니에요? ㅋㅋㅋ

cyrus 2016-07-13 17:05   좋아요 0 | URL
제가 뭘 쓰고 있는지 출판사는 관심 없을걸요. 저는 책의 문제점을 솔직하게 밝혔을 뿐입니다. 출판사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 책을 호의적으로 소개하는 건 독자를 배반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독자를 위해서 책을 소개해야 합니다. 만약 논어 관련 글이 갑자기 사라지면 출판사가 저에게 태클을 걸었다고 생각하세요. ^^

yureka01 2016-07-13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고전은 직접 당사자의 뜻을 물어 볼 수가 없으니...해석하기 나름이더라도,
저자의 검증이 불가능하니..햐 ㄷㄷㄷㄷ

cyrus 2016-07-13 17:07   좋아요 1 | URL
논어가 공자의 제자들이 정리한 책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스승의 사상을 자기 입맛대로 해석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논어가 정말 어려운 책입니다. 여러 번 봐도 어려운 내용이 많습니다. ^^

2016-07-13 1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7-13 19:24   좋아요 1 | URL
네. 즐독하세요. ^^
 

 

 

 

 

 

 

 

 

 

 

 

 

 

 

 

 

 

 

 

 

사이토 다카시의 《내가 논어에서 얻은 것》을 읽으면서 오히려 잃은 것이 더 많았다. 내가 이 책에서 잃은 것은 시간이다. 논어 국역본 두 권과 같이 읽으니까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내가 논어에서 얻은 것》의 역자는 논어의 문장을 아주 이해하기 쉽게 번역했다. 사이토 다카시의 일본 원서를 저본으로 삼아 번역한 것으로 추측한다. 역자가 논어 인용문을 번역할 때 논어 국역본을 참고했는지 확실하지 않다. 그런데 논어와 같이 해석이 분분한 책의 한자 원문을 우리말로 옮기려면 당연히 국역본을 참고해야 한다. 논어를 번역한 김원중 한국중국문화학회 부회장도 중국학자가 번역한 논어 텍스트까지 참고했음을 밝혔다. 김원중 씨는 지금까지 나온 다양한 해석의 사례들을 열거하면서 논어 문장을 설명했다. 그래서 논어 비전공자가 논어나 일본학자, 중국학자가 쓴 논어 입문서 번역에 손을 대면 의심을 하면서 읽어봐야 한다. 논어 문장을 옮기고 해석하는 과정에 역자의 주관적인 생각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이토 다카시도 이러한 오류의 함정에 피하지 못했다. 그는 공자가 시(詩)의 효용의 장점을 강조한 대목을 근거로 공자가 실학을 지향하고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사이토 다카시의 책에 나오는 논어의 문장이 바르게 번역되었는지 검토하기 위해서 김원중의 《논어》와 이을호의 《한글 논어》(올재 셀렉션스)를 참고했다.

 

 

 

[원문] 由也, 千乘之國, 可使治其賦也, 不知其仁也.

(제5편 공야장 8장)

 

 

* 자로가 대국에서 군사를 훈련시킨다면 훌륭하게 해낼 테지만 ‘인’을 갖추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이토 다카시, 169쪽)

 

* 유(자로)는 천 대의 수레를 낼 수 있는 나라에서 세금을 관리하는 일을 시킬 수 있을 정도이나, 그가 인한지는 모르겠습니다. (김원중 99쪽)

 

* 제후국의 국방장관쯤 됨직하지만, 사람답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을호 75쪽)

 


노나라의 재상 맹무백이 공자에게 자로에 대해서 물어보는데, 이에 공자는 자로를 솔직하게 평가했다. 원문의 ‘賦’(부세 부)를 직역하면 ‘세금을 부과하는 재정 담당 업무’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賦’에는 군정(軍政)의 의미도 있다. 

 

 

 

[원문] 三年學, 不至於穀, 不易得也. (제8편 태백 12장)

 

 

* 오랫동안 학문을 했으면서도 벼슬길을 탐하지 않기는 어려운 일이다.
(사이토 다카시, 85쪽)

 

* 3년 동안 배우고도 관직에 나아가지 않는 사람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김원중, 157쪽)

 

* 삼 년 공부에 벼슬 뜻이 없는 사람은 손쉽게 찾아내기 어렵다.
(이을호, 131쪽)

 

 

공자는 3년 동안 공부해서 벼슬에 오른다고 해도 학문을 제대로 익혔는지 아닌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벼슬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학업에 정진하는 사람을 좋아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원문] 子貢曰 “有美玉於斯, 韞匵而藏諸? 求善賈而沽諸?”

(제9편 자한 13장)

 

 

* 자공이 공자에게 관직에 나가 일할 뜻이 있는지 알아보고자 이렇게 빗대어 질문했다.
“여기에 아름다운 보석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상자에 넣어 보관해두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후한 값을 쳐주는 사람을 찾아가 파는 것이 좋을까요?” (사이토 다카시, 53쪽)

 

* 자공이 물었다.
“여기에 아름다운 옥이 있으면 궤에 넣어 보관하시겠습니까? 좋은 상인을 구하여 파시겠습니까?” (김원중, 170쪽)

 

* “아름다운 구슬이 여기 있다면 궤 속에 감추어 둘까요? 좋은 장사치를 찾아서 팔까요?” (이을호, 146쪽)

 

 


자한은 스승이 벼슬을 하지 않는 태도와 관련해서 비유적인 표현을 쓰면서 질문했다. 김원중과 이을호는 원문의 ‘賈’(값 가, 장사 고)를 ‘상인’으로 번역했다. 다만, 두 사람이 번역한 ‘장사’의 의미에 차이점이 있는데, 이을호는 상인을 낮잡아 이르는 표현을 썼다. 사이토 다사키(혹은 《내가 논어에서 얻은 것》 역자)는 원문의 ‘賈’를 ‘價’(값 가)와 동일한 단어로 보고 ‘좋은 가격을 쳐주는 사람’이라고 해석했다. 김원중은 이 해석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원중은 공자가 장사치와 비슷하게 보는 해석을 부정적으로 봤다. 본인의 해석과 모순된 입장이다. 다른 해석을 부정적으로 보는 김원중의 주장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원문] 吾豈匏瓜也哉, 焉能繫而不食 (제17편 양화 7장)

 

 

* “나는 쓰디쓴 참외가 아니다. 그저 매달려 있기만 할 뿐 아무도 먹으려고 하지 않는 열매가 아니니 나를 써줄 사람이 있다면 내 능력을 발휘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겠느냐?” (사이토 다카시, 58쪽)

 

* “내가 무슨 썩은 조롱박이더냐? 어찌 매달아놓기만 하고 [물 한잔 떠서] 먹을 수도 없단 말이냐?” (김원중, 317쪽)

 

* “나는 어찌 조롱박이던가? 대룽대룽 매달려서 먹지도 못하고 물건인가?” (이을호, 293쪽)

 

 

공자는 속된 충동에 타협하지 않으려고 벼슬을 피하는 자신의 신세를 ‘쓸데없이 매달린 조롱박’으로 비유했다. 원문의 ‘匏瓜’(포과)는 전래동화 ‘흥부와 놀부’에 나오는 덩굴식물 열매 ‘박’을 뜻한다. 그런데 사이토 다카시의 책에는 ‘참외’로 잘못 번역되었다. 참외의 한자어는 ‘甘瓜’(감과), ‘甛瓜’(첨과), ‘眞瓜’(진과)다.

 

 

 

 

 

 

‘쓰디쓴’이라는 표현도 원문과 맞지 않다. ‘豈’(어찌 기)와 ‘苦’(쓸 고)의 형태가 닮아서 해석하는 과정에 혼동하기 쉽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lummii 2016-07-13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읽기는 해석이 천지차이이니 초보라도 꼭 원서로 봐야할 것 같아요 . 그래서 아직 시작도 못한 1인입니다저는..ㅋㅋ

cyrus 2016-07-13 16:55   좋아요 0 | URL
김원중의 논어에는 다른 학자들의 해석을 주석으로 소개했습니다. 아주 바람직한 글쓰기 방식입니다. 저도 논어를 여러 번 봐도 모르는 게 너무 많습니다. 그만큼 오독할 위험성이 높습니다. ^^

yureka01 2016-07-13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설이 차이가 있었네요..ㄷㄷㄷㄷ

cyrus 2016-07-13 16:58   좋아요 1 | URL
문장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미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논어 전공하는 학자들도 논어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할 정도입니다. 논어 한 권 독파했다고 잘난 척하는 사람 있으면 100% 믿어선 안 됩니다. ^^

아무 2016-07-13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주로 접한 논어는 어릴 적 최인호의 유림을 읽으면서였는데, 차이가 많이 나네요 ㅎㅎ 집에 가서 비교해봐야겠습니다...

cyrus 2016-07-13 16:59   좋아요 0 | URL
번거로운 일입니다.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3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 고전 원전은 정말... 누가 해석하느냐에 따라 180도 달라지더군요..

cyrus 2016-07-13 17:02   좋아요 0 | URL
고전 좀 읽었다고 잘난 척하면 안 되겠어요. 꼴랑 한 권 다 읽은 자신감 믿고 전공자에게 덤비다가는 들통 납니다. ^^
 

 

 

논어는 정말 어려운 책이다. 번역이 잘 된 논어 한 권을 독파했어도 공자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보기 어렵다. 어떤 동양학자가 국내에 나온 논어 대부분이 왜곡 번역되거나 해석되고 있다고 주장할 정도다. 동아시아 유교 문화권에서 논어가 차지하는 위상이 중요한 만큼, 번역을 둘러싼 논란이 없을 수 없다. 특히 논어를 읽으면서 주희의 해석에만 의존했던 전통을 가진 우리나라는 더욱 그렇다. 지금도 논어의 일부 구절은 제대로 풀이하기가 쉽지 않다. 번거로운 일이지만, 논어 한 구절을 이해하려면 중국 학자와 일본 학자들의 주석까지 참고해야 한다.

 

논어 읽기가 어려우면 논어를 쉽게 소개한 입문서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논어 입문서를 고를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입문서를 쓴 저자 약력을 살핀다. 논어와 같은 동양고전을 연구했던 사람이라면 충분히 믿고 읽을 만하다. 간혹 새로운 접근으로 논어를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럴 때 다른 학자들의 입장과 비교하면서 본다. 원전을 읽을 시간이 없어서 입문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있는데, 시간이 나면 원전을 꼭 읽어야 한다. 가라타니 고진은 요약본이나 입문서는 잊어버리기 쉬우니 꼭 원전을 찾아 읽으라고 했다. 논어를 전공한 적 없는 저자가 펴낸 입문서는 꼼꼼하게 따져보면서 읽어야 한다. 이런 저자는 논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논어에 대해서 주관적으로 맥락을 잡은 입문서는 고전을 억지로 끼운 경박한 처세론과 다를 게 없다.

 

 

 

 

 

 

 

 

 

 

 

 

 

 

 

  

 

일본의 독서전문가, 다작 활동하는 작가로 알려진 사이토 다카시도 논어를 다룬 책 한 권을 펴냈다. 놀랍게도 내가 논어에서 얻은 것(원제는 논어력’)은 올해에 아홉 번째로 나온 사이토의 책이다. 이번 달에 나온 타 출판사의 번역본 두 권까지 포함하면 올해에만 출간된 사이토의 책이 무려 열한 권이나 된다. 책 앞날개의 저자 소개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이 책에서는 최고의 고전 논어를 독자들이 좀 더 쉽고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신(사이토 다카시-글쓴이 주)이 직접 논어를 읽으면 깨달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의 설명을 통해 우리는 자칫 단편적이고 무질서하게 뒤섞여 있는 듯 보이는 논어에서 연결의 힘을 발견하게 되고, 마침내 생동감 넘치는 논어의 세계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딱 이 내용만 보면, 사이토의 책이 믿고 읽을 수 있는 논어 입문서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이토는 저자 서문에서 원문을 몇 번 반복해서 읽을 것을 주문했다. 그래서 논어를 해석한 사이토의 생각이 옳은지 아닌지 판단하려면 결국 원전과 다른 입문서도 참고해야 한다. 원전을 읽어보지 않은 채 저자의 명성만 믿고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독서는 논어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이 심어질 수 있다.

 

 

 

 

 

 

 

 

 

 

 

 

 

 

 

 

 

사이토는 논어, 즉 공자가 생각하는 학문이 실학을 지향하고 있음을 주장했다. 그런데 여기서 그가 생각하는 실학이 조선 시대 실학과 명백한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조선 시대의 실학은 유교 기반 사회의 경직성을 비판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사회 개혁의 방안을 제시하는 학문이었다. 일본의 실학자들도 조선 실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성리학을 비판하면서 서구의 과학기술 수용을 강조했다. 다만 조선의 실학과 차이점이 있다면, 조선의 실학이 민생안정에 초점을 맞췄다면, 일본의 실학은 민중 계몽에 가깝다. 일본 메이지 시대의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는 정부의 역할에 의지하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비판하고, 국민 개개인의 독립된 정신을 함양하는 실학 교육을 표방했다.

 

사이토는 공자가 시 읽기의 효용성을 논하는 대목이 논어의 실학 지향적인 면이라고 주장한다.

  

 

시를 읽으면 감성을 갈고닦을 수 있으며 인격을 가다듬는 데 도움이 된다. 이 말은 지금 이 시대에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단지 여기서 매우 실학적이라고 여겨지는 말은 바로 멀리 군주를 섬길 때도 도움이 된다는 부분이다. 이는 곧 시를 읽는 것이 실무와 직결된다는 말이다. (내가 논어에서 얻은 것83)

  

 

나는 사이토가 유키치의 학문을 권장함을 제대로 읽었는지 의문이 든다. 유키치는 학문을 권장함이라는 책에서 유학과 봉건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만약 유키치가 살아 있었으면, 시 읽기가 실무로 연결된다고 주장하는 사이토의 실학에 기가 찼을 것이다. 유키치는 시를 잘 짓는 선비는 생활력이 강하지 않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유키치가 시를 잘 읽는 선비들이 실무에 능할 거라고 좋게 봤을까?

  

 

예로부터 선비들 중 생활을 능숙하게 꾸려나가면서 시를 잘 짓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으며, 시를 잘 지으면서 장사까지 잘한다는 상인의 이야기도 좀처럼 들어본 적이 없다. (후쿠자와 유키치 학문을 권장함15)

 

 

유키치의 냉정한 생각 속에는 시 읽기와 작문에 몰두한 선비들의 현실성 결여를 문제 삼고 있다. 유키치의 실학은 실용성을 강조하는 학문을 넘어서서 과학의 의미까지 포함된 양학(洋學)으로 봐야 한다. 사이토는 단순히 실용성이라는 이유만 가지고 논어가 실학을 지향하고 있다는 무리수를 두고 말았다. 애초에 논어의 실학적인 면을 강조하려면, ‘유키치의 실학을 언급하지 않아야 했다. 내가 논어에서 얻은 것에 인용된 논어 구절을 논어 원전과 비교하면서 읽어봤는데 번역이 잘못된 문장도 있었다. 논어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쓴 논어 입문서의 한계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내일 이어서 소개하겠다. 아무튼, 사이토 다카시의 내가 논어에서 얻은 것은 논어 입문서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yo 2016-07-12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양반 또..... 아....

cyrus 2016-07-12 17:42   좋아요 1 | URL
‘양반’이라면 사이토 다카시를 말하는 거죠? 한국에 김병완이 있다면, 일본에는 사이토 다카시가 있습니다. 연말에 올해 펴낸 김병완의 책의 수와 올해 번역된 사이토 다카시의 책의 수를 결산해봐야겠습니다. ㅎㅎㅎ

루쉰P 2016-07-12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막판에 이 책은 제공을 받고 리뷰를 썼다는데서 빵 터졌네요 ㅋㅋ 이렇게 쓰셔도 되는거에요? ㅋ 출판사에서 책 괜히 줬다고 할 것 같아요 ㅋㅋ 그래도 이렇게 소신껏 쓰는 모습 좋네요 ㅋ 후쿠자와 유키치는 인간적으로는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ㅎ 그의 인생을 보면 감동적이라 할까요 그런 걸 느껴요 ㅎ 논어를 읽는 방식은 마치 불교 경문을 연구하는 과정과 흡사하네요 경논석이란 말이 있듯이 석존의 경문에 훌륭한 대사가 논을 하고 또 그 논을 해석한 석이 있듯이 지금의 논어도 그런 식으로 읽어봐야 하나봐요 정말 공자가 말하고자 싶던 것 그것을 찾는 것이 중요하겠네요 ㅎ

cyrus 2016-07-13 15:26   좋아요 0 | URL
독자에게 서평도서를 제공하는 출판사의 생각이 달라져야 합니다. 출판사가 서평도서를 무료로 받는 독자들이 칭찬 일색의 서평만 쓸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저는 서평도서를 읽게 될 다른 독자들을 위해서 솔직하게 책의 장단점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글쓰기는 전문 서평가가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독자도 충분히 다른 독자에게 책을 권하거나 읽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떳떳하게 밝힐 수 있습니다. 이게 능동적인 독서인거죠. 출판사로부터 불이익을 받더라도 책의 문제점을 독자들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그러면 다른 독자들이 책을 고를 때 판단하기 쉬워집니다.

옛날 선비들처럼 논어의 문장을 하나하나 해독하듯이 읽는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사실 고리타분하게 느껴져요. 현실에 맞게 고전을 새롭게 해석하는 방식을 저도 긍정적으로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유의 의미가 있는데도 그걸 무시하고 마음대로 해석하는 오독이 많아요. 특히 동양고전 같은 경우가 그래요. 저도 오독의 위험에 빠질까봐 노자, 장자 같은 책에 대해서 언급을 못하겠어요. ㅎㅎㅎ


초딩 2016-07-13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논어 책으로 장바구니에 담기 직전 내려놨습니다 ㅎㅎㅎㅎ

cyrus 2016-07-13 15:26   좋아요 0 | URL
사이토 다카시의 책을 도서관에 빌려서 읽어보시고 판단하셔도 좋습니다.

2016-07-13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7-13 15:34   좋아요 1 | URL
정말 어려운 질문인데요. 논어 관련 책이 너무 많은데다가 제가 전공자도 아니라서 어떤 책이 가장 좋은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 양자오의 <논어를 읽다>를 권해드립니다.


alummii 2016-07-13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ㅍㅎㅎㅎ 추천하고싶지않다 쵝오! 잘못읽은줄알고 다시 읽었어요

cyrus 2016-07-13 15:35   좋아요 0 | URL
이 책의 단점을 길게 설명하는 것보다는 이유를 짧게 설명해주고, 읽지 말라고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이 더 낫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