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부터 시작해서 3주 동안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성의 역사 1 : 지식의 의지》(나남, 2010)를 읽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2004년에 나온 2판이다. 2판의 부제목은 '앎의 의지'이다. 푸코는 《성의 역사》를 6권으로 펴낼 계획을 세웠다. 1976년에 1권 《앎의 의지》가 나왔고, 2권 《쾌락의 활용》(나남, 2018)과 3권 《자기 배려》(나남, 2004)[주1]는 푸코 사후(1984년)에 출간됐다. 푸코는 자신이 쓴 원고가 사후에 출판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고 한다. 푸코의 친필 원고는 그의 연인이었던 사회학자 다니엘 데페르(Daniel Defert)가 가지고 있었다. 그는 2012년에 푸코의 친필 원고를 프랑스국립도서관에 기증했다. 학자들은 유족들의 동의를 얻어 친필 원고를 정리할 수 있었고, 올해 초에 4권 《육체의 고백》이 공개됐다.
* 미셸 푸코 《성의 역사 1 : 지식의 의지》(나남출판, 2010)
《성의 역사》는 푸코의 말년을 대표하는 역작이다. ‘이성’과 ‘권력’의 관계에 천착해 온 푸코의 작업을 이해하지 않은 채 《성의 역사》 독서에 도전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앎의 의지》는 ‘성의 역사’ 시리즈의 서문에 해당한다. 2백 쪽이 되지 않은 서문(2판 번역본은 177쪽이다)이라고 해서 얕보다간 큰코다친다.
* 하상복 《푸코 & 하버마스 : 광기의 시대, 소통의 이성》(김영사, 2009)
* [절판] 요하나 옥살라 《HOW TO READ 푸코》(웅진지식하우스, 2008)
* 양운덕 《미셸 푸코》(살림, 2003)
* 피에르 빌루에 《푸코 읽기》(동문선, 2002)
푸코는 1981년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Libération)>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연구 작업을 ‘자서전의 한 일부’라고 말했다. 그는 동성애자였다. 푸코는 동성애가 정신병으로 ‘분류’되어, 병리학적 증상으로 ‘제조’되는 과정과 그 원인을 알려고 했다. 그에게 연구 작업은 자신의 온전한 삶을 찾아내 ‘자기 역사’로 새롭게 기록하는 일이었다. 푸코는 정신병을 바라보는 학계의 다양한 시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광기’라는 개념을 규정하는 권력의 실체를 추적한다.
* 미셸 푸코 《광기의 역사》(나남출판, 2003)
1961년에 발표된 푸코의 박사 학위 논문 《광기의 역사》(나남출판, 2003)는 ‘광기’가 정신병으로 분류되는 역사를 다룬 책이다. 근대는 미치광이를 ‘이성이 상실된 자’로 규정했다. 근대 이전에 살던 미치광이는 정신병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합리적 이성과 과학이 버무려진 ‘계몽의 시대’, 즉 근대 사회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광기를 본격적으로 차별하고 탄압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푸코에 따르면 광기가 결정적으로 정신병으로 판정되기 시작한 것은 1656년에 세워진 ‘대감호’였다. 한센병(나병, 문둥병)이 사라진 후 환자 수용소는 정신병자들을 가둬놓는 대감호로 탈바꿈한다. ‘이성이 상실된 자’는 인간이라 할 수 없다. 광기는 ‘동물성’을 상징하게 되고, 미치광이는 동물 또는 괴물로 취급받는다. 그리하여 미치광이는 ‘정신병자’라는 이름으로 추방되고, 축출되며, 격리되어, 감시되며 처벌을 받는다. 푸코는 광기를 탄압하는 주동자로 서구 사회의 이성을 지목한다. 인간의 이성을 중시해 온 인류는 관찰과 실험에 기초한 과학적 사고를 발전시키며 사회를 종교로부터 독립시켜나갔다. 그러나 자유사상, 평등 이념과 맥을 같이한 근대의 이성은 이성과 반대되는 존재를 배척했다. 푸코는 ‘자유’와 ‘해방’의 편에 섰던 이성 중심주의의 폭력성을 비판한다.
*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나남출판, 2016)
권력에 맛을 들인 근대인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힘을 휘두른다. 푸코가 《감시와 처벌》(나남출판, 2016)에서 상세하게 보여준 것처럼 근대의 권력은 효율적으로 죄수를 통제해왔다. 개인은 공간적으로 구획돼 감시되고, 시간상으로 일과표에 의해 통제되면서 권력에 예속된다. 감옥, 군대, 병원, 학교는 만인을 감시하는 근대적 공간이다.
푸코가 성 담론을 통해 권력의 속성을 파헤치고자 펴낸 책이 바로 《성의 역사》다. 섹스(sex)에 대해 말하도록(고백하도록) 부추기는 권력은 성 담론을 확산시킨다. 종교의 영향력이 막강했던 근대 이전에 가톨릭 신자들은 자기 성찰의 목적으로 성욕에 대해서 고백했다. 17세기 이후에 부르주아 사회가 되면서 섹스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성의 장치’가 작동되었다. 이 과정에서 생식을 위해서 필요한 섹스와 그렇지 않은 섹스(동성애, 사도마조히즘)를 분류하는 성 지식이 등장한다. 생식과 무관한 일탈적 성욕 또는 성행위는 교정 대상이 된다. 푸코는 성 담론이 형성된 근대를 ‘증가의 시대’로 보았으며 이때부터 ‘성적 도착’이 확립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근대사회가 섹스를 억압한 시대였다고 주장하는 입장을 ‘가설’로 설정하여 비판한다. 푸코가 생각하는 근대사회의 섹슈얼리티는 성을 검열하고 억압하는 분위기에 대항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니다. 권력이 만든 성의 장치는 성을 알고 싶고, 말하고 싶은 근대인의 욕망을 촉진했다. 감옥, 병원, 그리고 국가는 거대한 ‘성의 장치’이다. 성 담론 형성에 관여하는 의사, 정신의학자는 ‘이성애’와 ‘혼인’ 등의 기준에 어긋난 섹슈얼리티를 분류하는 ‘지식-권력(pouvoir-savoir)’을 가지고 있다. ‘지식-권력’은 관찰과 감시가 은연중에 작동되는 사회를 만들어 개인의 생활과 섹슈얼리티를 극도로 제한한다. ‘지식-권력’은 세상을 움직이는 은밀하고도 거대한 힘이다.
[주] 알라딘에 ‘성의 역사’ 3권을 검색하면 부제목이 ‘자기에의 배려’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