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읽기
금정연 지음 / 스위밍꿀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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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후덥지근한 밤은 무겁다. 시곗바늘이 자정으로 향할수록 밤은 점점 무거워진다. 더위에 지친 몸은 열대야의 무게를 느낀다. 열대야를 견디지 못한 몸은 눕는다. 내가 언제 눕는지 기다리고 있었던 졸음이 찾아온다. 졸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 눈꺼풀이 눈동자를 덮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얼른 자야지


그러자 한쪽 손이 뒤척거린다. 손은 빨리 자기 싫다. 항상 붙어 다니는 스마트폰과 더 놀고 싶다. 손도 지쳤을 텐데 마지막 힘을 내서 스마트폰으로 다가간다. 손가락 끝이 스마트폰에 닿자, 쉬고 있던 스마트폰이 네모 눈을 뜬다. 네모 눈에서 빛이 나온다. 스마트폰의 빛은 어둠과 졸음을 깰 정도로 세다. 톡 쏘는 빛에 눈꺼풀이 놀라서 올라간다. 잠에서 깬 눈동자는 스마트폰의 빛나는 눈과 마주친다. 스마트폰이 재미있는 동영상들을 눈앞에 보여준다. 이거 봐봐, 재미있겠지? 눈동자는 줄줄이 지나가는 여러 편의 짧은 동영상을 쫓아간다. 보고 싶은 동영상이 너무 많다. 멈출 수 없는 재미. 눈동자는 즐겁지만 불안하다‘과연 일찍 잘 수 있을까?’

 

사람들은 피곤해도 자기 전에 항상 스마트폰과 눈 맞춤한다. 그렇지만 스마트폰은 같이 있으면 힘이 나는 애인이 아니다. 오히려 달콤한 동영상으로 유혹해서 우리의 소중한 힘을 빼앗아 가는 서큐버스(Succubus)와 인큐버스(Incubus). 한밤중에 스마트폰과 놀고 나면 아침에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아침이 되자마자 일어날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하루를 살아가는 힘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서평가 금정연스마트폰과 함께하는 한밤의 놀이에 익숙해진 우리 사회가 잘못됐다고 진단한다. 한국 사회는 사람들에게 책을 읽을 여유를 주지 않는다대부분 사람은 스마트폰 중독이 나쁜 걸 알면서도 스마트폰을 보면서 뇌에서 퐁퐁 솟아오르는 쾌락을 잊지 못한다. 스마트폰 앞에서 너무나도 쉽게 고개를 숙이는 본인의 통제력이 저질이라면서 자책한다하지만 금정연은 사람들이 독서를 포함한 여가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스마트폰의 즐거움에 의존하게 됐다고 주장한다. 야근과 주말 근무는 노동자의 몸과 정신을 지치게 만든다. 초과 근무 수당은 여가비보다는 생활비로 쓰이게 된다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피곤한 상태에서도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놀이를 선호한다. 스마트폰은 피곤해도 일찍 자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놀아주는 파트너로 최적이다.


금정연은 한밤의 놀이를 즐기기 위한 새로운 파트너을 추천한다. 그는 스마트폰이 독점한 한밤의 놀이대신에 한밤의 읽기를 해보자고 제안한다. 그가 말하는 한밤의 읽기는 단순히 심야 독서를 뜻하지 않는다한밤의 읽기는 프랑스의 비평가 헬렌 식수(Hélène Cixous)가 처음으로 언급한 표현이다그녀는 독서를 몰래 읽기라고 정의한다. 밤은 무언가를 몰래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시간대다. 독자는 자신만의 여행을 떠나기 위해 종이로 만든 마법의 양탄자를 준비한다. 종이 양탄자를 펼치면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다종이 양탄자의 정체는 이다


대부분 사람이 주로 읽는 책은 자기계발서와 실용서. 그들이 읽는 것은 지금 여기에 있는 것들이다. 목돈을 만들 수 있는 금융 정보, 요즘 유행하는 것들이 지금 여기에 다 있다. ‘지금 여기에 있는 것들은 살아가는 데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것들이다. 자기계발서와 실용서는 자신을 보러 온 독자들에게 명령한다. ‘당신, 잘살고 싶어? 그러면 주변을 돌아봐. 현실 감각이 떨어지면 당신은 뒤처져.’ 자신이 남들보다 게으르다고 믿는 독자는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는 책을 찾는다.


한낮의 읽기’가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소설과 인문학 도서를 피한다. 이런 책들은 지금 여기에 없는 것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소설에 묘사된 지나간 날들, 과거가 돼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죽은 철학자들이 남긴 생각들은 흥미롭지만 실용적이지 않다한낮의 읽기에 익숙한 독자는 쓸모없는 잡학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상상력을 중시하고, 철학과 잡학에 푹 빠진 독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현실에 아주 밝은 한낮의 독자들이 많아지자, 책 읽는 몽상가와 철학도는 자신만의 은신처에서 몰래 책을 읽는다.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에 없는 것을 만나러 떠난다. 은신처가 조금 어두워도 상관없다. 그들이 종이 양탄자를 펼치는 순간, 대낮은 밤으로 변신한다한밤의 읽기는 고요하게 시작된다.


금정연은 한밤의 읽기대낮에 탈주하는 읽기로 표현하기도 한다. 마법의 종이 양탄자는 독자를 어딘가 다른 곳으로 보내준다. ‘한낮의 읽기는 살기 위해서 책을 읽는 행위라면, ‘한밤의 읽기는 오로지 읽기 위해서 읽는 행위다. 두 유형의 독서 중에 어느 한쪽만 좋다고 말할 수 없다금정연이 말하길 독자는 고정적인 존재가 아니다. 한낮/한밤의 읽기만 오랫동안 하다가 어느 순간에 한밤/한낮의 읽기를 선호할 수 있다. 한낮의 읽기한밤의 읽기를 동시에 할 수 있다. 나는 하얀 밤(백야, 白夜)의 읽기라고 부르고 싶다.


무거운 여름밤에 지쳐서 잠들고 싶지 않으면 책 읽는 밤을 만들어야 한다. 매일 책 읽는 밤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피곤해도 책이 눈에 들어오고, 두 손이 스마트폰을 세게 밀칠 힘이 있다면 한밤의 읽기가 이루어진다. 힘이 부족해서 책이 반갑지 않으면 쉬면 된다한밤의 읽기가 즐거우면 무거운 밤이 무섭지 않다마법의 양탄자가 된 책은 절대로 독자를 지루하게 하지 않는다어떻게 하면 낮에 봤을 땐 평범했던 책을 ‘마법의 책탄자로 만들 수 있을까? 책을 펼치기 전에 주문을 외워 보자






책탄자야, 내 눈앞에서 펼쳐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이 무거운 밤을 뚫고 어디든 날아 보자꾸나.



흠, 내가 봐도 정말 이상(李箱)한 주문이군. 

그러니 밤에 몰래 읽기 전에 주문도 몰래 할 것






※ cyrus의 정오표



* 31

 




도블라토프의 책은 고작 네 권이 번역되어 있을 뿐입니다.



* 37





 북쪽에 있는 수용소에서 경비원으로 군복무를 하는데 이때의 경험이 훗날 수용소라는 소설이 됩니다. 아쉽게도 국내에는 번역되지 않았고요.


 



세르게이 도블라토프(Sergey Dovlatov)는 미국에 이주한 러시아 작가다. 지금까지 국내에 나온 도블라토프의 책은 네 권이 아니라 총 다섯 권이다. 국내에 출간된 순서로 열거하면 우리들의, 보존지구, 외국 여자, 여행 가방, 수용소: 교도관의 수기. 이 책들 모두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출판사에서 만들었다.







이 책의 첫 번째 글은 원래 강연을 위해 만들어진 글이다. 수용소: 교도관의 수기가 출간된 해는 2020(5)이다. 도블라토프의 작품 세계를 주제로 한 강연이 이루어진 시간이 수용소》가 출간되지 않은 20205월 이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세 명의 작가 중 한 사람이 도블라토프라고 언급했다. 도블라토프를 좋아하는 금정연이라면 수용소: 교도관의 수기를 분명 입고했을 것이다. 그럴 리 없겠지만, 저자가 수용소가 번역된 사실을 정말 모르고 계신다면 다음 입고 도서목록에 포함시켰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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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7-29 11: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 너의 글은 묘한 중독성이 있어. 뭔말인지 알지? ㅋㅋㅋ
왠지 알라딘이 이 리뷰로 너에게 이달의 당선작을 줄 것 같아. ㅋㅋ
심심찮게 금정연이 많이 나오네. 책표지가 맘에 들긴하는데 페이지 수에 비하면 좀 비싸네. 중고샵에 나오면...

cyrus 2024-08-05 06:55   좋아요 1 | URL
나름 재미있게 써봤어요.. ㅎㅎㅎ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 처음 듣는 이야기
우치다 다쓰루 지음, 박동섭 옮김 / 유유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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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이상하다. 분명히 예전에 빌려 읽은 책인데, 왜 없을까도서관은 내가 찾으려는 책이 없다고 말한다. “찾으시는 자료가 없습니다.”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서 내가 책 제목을 잘못 알고 있나? 다시 한번 책 제목을 입력한다. “찾으시는 자료가 없습니다.” 





책 제목의 띄어쓰기가 틀렸나? 붙어 있어야 할 두 글자 사이에 일부러 틈을 만든다. 억지로 띄어쓰기한 제목을 한 번 더 입력찾으시는 자료가 없습니다.” 도서관은 똑같은 답변을 반복한다. 그렇다면‥… 이번에 책의 저자 이름과 출판사 이름을 같이 입력한다. “저기요, 찾으시는 자료가 없다니까요.”


도서관의 무성의한 답변을 받아들이지 못한 나는 도서 대출 이력을 뒤적였다. 도서관에서 행방불명된 책은 찾으러. 눈을 크게 뜨면서 대출 도서 목록을 살펴봤다. 드디어 책 제목을 찾았다. 도서관이 없다고 했던 그 책을 만난 적이 있다내가 데려온 도서관 책들은 짧게는 이틀, 길게는 2주 정도 우리 집 책상에서 지냈다. 내가 책상에 앉으면 책은 온몸을 펼쳐서 그 속에 가득 담긴 이야기를 보여줬다. 한 번도 펼치지 못하고 도서관으로 돌려보낸 책들도 많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제대로 만나지 못한 책을 다시 데려왔다. 유년기와 청년기에 도서관을 내 집 드나들 듯이 했다.


우치다 다쓰루(内田樹)도서관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활자 중독자. 우치다 선생이라면 있어야 할 책들이 사라지는 도서관에 일침을 가했을 것이다. 기업을 닮고 싶은 도서관은 사람이 책보다 더 많다. 민간 업체는 성과를 중시한다. 도서관을 관리하는 민간 업체의 목표는 도서관에 사람들을 많이 오게 할 것. 민간 업자는 베스트셀러를 잔뜩 구매한다. 베스트셀러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빌려 보는 인기 도서다. 독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인기 도서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려면 자리가 있어야 한다. 딱 봐도 재미없어 보이는 학술서, 사람들의 눈길과 손길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을 것 같은 조용한 책들. 이런 책들은 대출 횟수가 적어서 깨끗한 편이다. 하지만 퇴출 대상 일 순위다. 새로운 책들이 들어오면 나이 많고 인기 없는 책들은 수용소 같은 서고에 보관된다. 서고에도 자리가 없으면 상태가 좋지 못한 낡은 책들은 헌책으로 분류되어 쫓겨난다. 쓰레기로 취급받아 무더기로 버려지고 폐기물 처리장에서 죽음을 맞이한다어쩌면 내가 찾지 못한 책도 그런 운명에 휘말렸으리라.


우치다 선생은 도서관에 사람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도서관에 사람이 너무 많으면 책과 독서의 가치가 가려지기 때문이다. 생은 사람 소리 한 점 없는 한적한 도서관에 있으면 제일 먼저 책이 눈에 들어온다고 말한다. 그는 수많은 장서를 바라볼 때마다 자신의 무지함을 깨닫는다. ‘내가 몰랐던 책들이 엄청 많구나. 이 책들 다 읽을 수 있으려나?’ 선생이 좋아하는 도서관은 그곳에 책을 보러 온 독자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편안하지 않은 도서관은 사람들의 무지함을 넌지시 알려 준다. ‘넌 모르는 게 아주 많아.’ 도서관의 따끔한 목소리가 귀에 꽂힌 사람은 각성해서 진정한 독자가 된다. 무지한 독자는 알고 싶은 새로운 정보를 머릿속에 채우기 위해 책을 읽는다. 죽을 때까지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전부 다 읽을 수 없다. 그렇지만 애서가는 피할 수 없는 삶의 한계를 알면서도 도서관으로 직진한다그곳에서 닥치는 대로 읽는다.


책을 상품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도서관에 절대로 들어올 수 없다. 그들은 상품성이 있는 책들, 즉 잘 팔리는 책이나 실생활에 쓸모 있는 책들을 고른다. 도서관에 이런 사람이 너무 많으면 책은 도서관 방문자를 유혹하는 상품으로 전락한다. 내용이 좋은데도 인기 없는 책은 도서관이 자랑하고 싶은 상품이 아니다. 조용한 책은 독자를 만나지 못하고 어느 순간 사라진다좋은 책을 내다 버린 도서관은 나쁘다. 심지어 머리도 나쁘다.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책을 기억 못하다니저기요, 내가 찾으려는 자료가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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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4-15 12: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딜레마다. 난 아무리 책 좋아하는 사람도 독서의 한계는 있을테니 손이라도 타 보는 책이 차라리 낫지 않나 싶기도 해. 도서관도 분명 조용하고 한가하면 좋긴한데 그만큼 책을 안 읽는다는 걸 반증하는 것 같아 아주 환영할 일은 못되는 것 같기도하고. 뭐는 반반이 좋지않나 싶기도 하다. ㅋ

cyrus 2024-04-21 11:50   좋아요 3 | URL
저, 이 책을 독서 모임 도서로 선정했는데, 모임에 오는 사람이 한 명뿐이에요. 그 한 분은 다른 독서 모임을 통해 알게 된 분인데, 독서 모임에 새로운 분들이 왔으면 좋겠어요. 이 책의 관점을 다르게 보는 독자가 분명히 있을 거예요. 이런 분들이 독서 모임에 와야 해요. ^^

서랍안에바다 2024-04-22 10: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입수되는 책은 늘어나고 서가 공간은 부족하고. 책이라는 매체는 부동산의 규모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요. 이용률이 낮은 책들은 보존서고에 내리거나 제적하는 수밖에요. 지역 공공도서관은 국립중앙도서관만큼 규모가 크지 않잖아요. 국립중앙도서관이 자료보존 역할을 대표로 하고있고 지역공공도서관은 잘 이용되는 자료를 잘 활용해야해요. 이 책은 폐가제를 주장하는데 애초에 그건 공공도서관이 지향하는 문화민주주의와도 맞지 않아요. 공공도서관은 책바다라는 상호대차서비스가 전국 네트워크로 잘 되어있어요. 그걸 활용하심 되겠네요. 현직 사서로서 지나가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댓글 남깁니다.

cyrus 2024-05-01 20:23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사서님. 지난달 말에 있었던 독서 모임을 위해서 우치다 다쓰루의 책을 다시 읽었어요. 다시 읽고 나니 장서로 가득한 도서관의 부활을 바라는 우치다 선생의 생각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우치다 선생의 견해에 회의적인 마음을 가지게 되었는데, 지난 독서 모임 때 참석하신 분 역시 사서님과 비슷한 관점으로 우치다 선생을 비판했어요.

독서 모임에 나온 책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들을 정리해서 글을 쓸 예정입니다. 제가 이 책을 지나칠 정도로 긍정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Ssong 2024-05-10 0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을 재밌게 잘쓰십니다 잘읽었어요
 
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 법 -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저자 은유 추천
낸시 슬로님 애러니 지음, 방진이 옮김 / 돌베개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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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글쓰기는 종이 위에 호흡하는 일이다. 숨을 들이쉬면 산소를 마시고, 내쉴 때마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우리 몸에 이산화탄소가 많아지면 산소의 농도가 낮아진다. 이때 숨이 가빠지면서 어지러운 증상이 나타난다. 심하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우리 삶의 이산화탄소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낀 부정적인 감정들이다부정적 감정의 생김새는 다양하다분노는 시간이 지나도 화를 품고 있어서 항상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질투와 미움은 타인의 마음을 찌르는 날붙이다. 열등감은 내 마음을 쪼그라들게 하는 감옥이다. 좁은 열등 감옥에 오랫동안 갇히면 마음의 몸집이 작아진다. 열등 감옥 수감자는 작아져서 초라해진 자신의 존재를 더더욱 감추려고 한다이산화탄소 농도가 짙은 삶은 정신 건강에 해롭다. 건강한 내 삶을 지키고 싶으면 글을 써보자종이에 대고 이산화탄소를 뱉자.[주] 어떻게 하면 뱉을 수 있을까.


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 법은 종이에 호흡하기, 즉 글쓰기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책이다. 호흡과 글쓰기의 공통점은 생명 활동이다. 호흡하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 또한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다이 책에서 말하는 내 삶의 이야기는 자전적 수필(essay)을 뜻한다자전적 수필을 쓰려면 부정적 감정의 이산화탄소를 끄집어내서 뱉어내야 한다. 부정적 감정의 이산화탄소는 자기 자신과 상대방을 죽일 수 있는 살인 기체. 하지만 살인 기체가 종이를 만나면 이라는 울창한 숲이 생긴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한 글 숲은 글 쓰는 사람을 위한 치료제다부정적 감정의 이산화탄소에 중독되면 삶이 무기력해진다글을 쓰면 정신이 개운하다. 글 숲의 주인은 글쓴이다. 글 숲의 주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소리 높여 외친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이런 것들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고, 지금 나는 여기에 있어(13)’라고.


저자는 글 쓰는 사람의 영혼은 배움을 즐기고, 자신을 위해 성장하고, 성찰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글 쓰는 사람의 영혼을 우리말로 표현하면 이다. 은 서로 다른 두 개의 뜻을 가진 단어다. 긍정적인 의미의 얼은 정신과 영혼이다. 반면 부정적 의미의 얼은 밖으로 드러나 있는 흠 또는 다른 사람 때문에 겪는 피해. 자전적 수필은 얼의 두 가지 얼굴이 있는 글이다. 글에서 표현된 얼의 한쪽 얼굴은 글쓴이의 내면 상태다. 글을 쓰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 있다. 자전적 수필에 늘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내가 숨기고 싶은 흠이나 약점을 솔직하게 글로 표현할 수 있다. 또 타인의 말과 행동으로 생긴 마음의 상처가 어느 정도인지 진단하기 위해 기록하기도 한다. 따라서 자전적 수필은 글쓴이의 얼이 담긴 얼글이다.


우리는 상황과 주변 환경에 따라 변한다. 자전적 수필을 꾸준히 기록하면 시시각각 달라진 내 삶을 되돌아볼 수 있다. ‘글 숲이 우거질수록 이야기는 풍성해지고,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글 숲 주인의 모습과 얼도 다양해진다. 한 사람이 종이에 만든 글 숲속에 얼의 화음이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진다. 하나의 글 숲은 ()의 얼글이다.





[] 김수영의 시 의 시구들(‘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 마음껏 뱉자’)를 인용해서 패러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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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5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08 0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 글자로 불리는 사람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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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도락(道樂)이다. 국어사전이 알려준 도락의 의미는 세 가지다. ()를 깨달아 스스로 즐기는 일. 재미나 취미로 하는 일. 술과 도박 같은 못된 일에 흥미를 느껴 빠지는 일. 책에 조언을 구하는 독자는 도락가가 아니다. 책 속의 보물을 찾는 독자가 진정한 도락가다. 도락가가 원하는 보물의 종류는 다양하다. 그중 도락가가 선호하는 책 속의 보물은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잡학이다. 보물은 명성 있는 저자가 쓴 책 속에만 묻혀 있지 않다. 무명 저자의 책, 또는 돈 주고 보면 안 될 쓰레기책에도 보물이 있다. 전자의 보물찾기는 진흙 속에 파묻힌 진주를 찾는 일이라면, 후자는 괴팍한 취향을 가진 도락가가 선호하는 일이다


오탈자는 책에 생긴 때다. 그런 오탈자를 보물로 여기는 도락가가 있다. 그의 눈은 단순히 책을 보기 위한 신체 기관이 아니다. 종이를 빡빡 문지르는 때밀이 수건이다. 오탈자 찾기 도락가가 종이를 문질러서 오탈자들을 쏙쏙 골라내면 저자와 편집자는 따가운 고통을 느낀다. 그런데 너무 세게 문지르는 때밀이는 피부 건강에 좋지 않다. 종이 때 밀기도 마찬가지다. 오탈자 찾기 도락가가 과욕을 부리면 오탈자가 아닌 낱말마저 문질러서 떼려고 한다. 오탈자 찾기 도락가도 사람인지라 그가 쓴 글에도 맞춤법이 틀린 낱말이 있다. 그러니 잘하자cyrus.

 

도락가가 책을 너무 좋아하면 책을 훔치는 도벽을 끊지 못한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고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지식 습득에 대한 욕구를 좋게 생각했던 과거 사람들은 책 도둑을 너그러이 용서했다. 하지만 책을 소유한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훔치는 행위는 중범죄다.

 

책을 훔치는 도벽이 없어도 독자는 조용한 도둑이다. 프랑스의 작가 파스칼 키냐르(Pascal Quignard)는 독서를 소리 없는 절도에 비유한다. 그가 쓴 산문 세 글자로 불리는 사람독서라는 고상한 범죄 행위를 예찬한다. 책 제목의 세 글자도둑을 뜻하는 라틴어 ‘fur’이다. 고대 로마인들은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를 제 입으로 말하길 꺼렸다. 그래서 ‘fur’를 직접 말하는 대신에 세 글자로 불리는 사람이라고 에둘러 표현했다.

 

책 읽는 도둑도 책 속의 보물을 훔치는 일에 능숙한 도락가다. 그들이 훔치고 싶은 보물은 앞서 언급한 쓸데없는 잡학이라면, 쓸모 있는 보물은 다른 나라의 언어다. 언어 훔치기 도락가의 활동 구역은 외국 서적이다. 지식이든 언어든 독자는 타인이 쓴 책 속에 있는 모든 것을 훔쳤다. 책을 읽으면서 훔친 남의 보물로 치장해서 만들어진 존재가 바로 . 키냐르는 책 읽는 인간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창조자가 아닌 ‘ab alio(타인을 통한) 피조물로 여긴다. 그러므로 독자는 겸손해야 한다. 불손하고 허세가 심한 독자는 사기꾼이다. 그들은 저자나 다른 독자들의 소중한 생각들을 훔쳐 왔으면서 자기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다는 식으로 거짓말을 한다.

 

글 쓰는 도락가는 책 속 보물을 계속 만져보고, 군더더기를 잘라내고, 다듬는다. 그렇게 해서 다른 독자들이 탐낼 만한 새로운 보물이 나온다. 그것이 바로 한 편의 글과 한 권의 책이다서평은 책 속 보물찾기 전문 도락가가 다시 만드는 보물이다. 서평 쓰는 도락가가 주로 찾는 보물은 책의 핵심 내용이다. 17세기 프랑스 시인 생 타망(Saint-Amans)은 저자를 고기파이 속에 잠들어 있는 토끼고기로 비유했다. 책은 고기파이를 담은 접시다. 서평 쓰는 도락가는 칼과 포크를 쥐고 고기파이에 박힌 토끼고기를 골라낸다. 먹음직스러운 토끼고기는 저자가 독자들에게 먹여주고 싶은 본인 생각이다. 독자는 고기파이를 먹기 전에 이미 그것을 맛본 도락가의 서평을 먼저 본다. 독자는 서평을 읽으면서 고기파이가 먹을 만한지 아니면 맛이 괜찮은지 판단한다.

 

서평 쓰는 도락가는 보물을 찾으려는 독자들을 위해 책을 잘게 나누고 찢어야한다. 종이를 문질러서 오탈자라는 때를 제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책 속의 오류와 거짓 정보를 찾아내서 찢는다. 책은 청정 지식 보고가 아니다. 거기에도 독자들이 걸러내야 할 보물인 척하는 가짜오물이 종종 있다. 보물이 아니라고 해서 모른 척할 수 없다. 서평 쓰는 도락가는 그걸 발견하는 즉시 잘라내야 한다. 저자의 명성에 기가 눌리거나 맹목적으로 신뢰하면 책의 오물이 눈앞에 있는데도 찾지 못한다. 서평 쓰는 도락가는 좀 더 과감해져야 한다. 저자의 견해를 무조건 믿어서도 안 되며 내가 믿는 지식도 틀릴 수 있다는 회의주의적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그는 책의 오물만 찾아 찢어버리는 책 더 리퍼(책 + Jack the Ripper)’. 비판과 검증은 책 더 리퍼가 책을 읽을 때마다 들고 다니는 무기다.

 

키냐르는 소리 없는 절도(vol)’ 행위인 독서가 올빼미의 비상(飛上, vol)과 흡사하다고 했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Hegel)은 자신의 책 서문에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편다(Die Eule der Minerva beginnt erst mit der einbrechenden Dämmerung ihren Flug)”라는 구절을 남겼다. 세상이 어두워지면 인간의 정신은 몽롱해진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수록 인간은 음모론과 가짜 정보를 너무 쉽게 믿어버린다. 그럴 때 지혜의 신 미네르바의 곁을 지키는 올빼미는 힘차게 날갯짓한다. 미네르바의 올빼미 독자는 진짜 보물’, 즉 진실을 원한다. 소중한 보물을 찾으러 글자 나무로 이루어진 책 숲을 혼자서 모험한다. 책 숲 이곳저곳 전전하면서 자신과 타인이 믿고 있는 지식과 정보가 맞는지 아닌지 스스로 검증한다. 하지만 독서와 글쓰기를 예찬한 키냐르도, 미네르바의 올빼미 독자도 안다. 한평생 책 속의 보물을 찾는 모험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고, 위험한지를.







그래도 나는 독서와 글쓰기를 즐기는 도락가, 대도(大盜)’로 살아가고 싶다. 매일 밤, 책 읽기 전에 기도해야겠다. 미네르바님, 오늘도 정의로운 도둑이 되는 걸 허락해주세요.







<‘오탈자 찾기 전문 도락가’, ‘책 더 리퍼’ cyrus가 발견한 책의 때와 오물>

 



* 26쪽 옮긴이 주 6







아우구스티누스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






* 195쪽 옮긴이 주 24





아프로디테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미와 사랑의 여신. 로마 신화의 디아나(Diana)[주1].



[주1] 디아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냥의 신 아르테미스(Artemis)와 관련된 로마 신이다. 아프로디테에 대응하는 로마 신은 베누스(Venus).






* 223쪽 옮긴이 주 3





 제임스 조이스의 장편소설(1922) 율리시스에 나오는 인물.[2] 이 작품이 오디세이아를 모방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자 오디세우스라는 주인공의 이름을 짐짓 율리시스라 쓴 것으로 보인다.



[2] 조이스의 소설에 율리시스(오디세우스)’라는 이름의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율리시스의 주요 등장인물은 오폴드 블룸(Leopold Bloom)과 그의 부인 몰리 블룸(Molly Bloom), 조이스의 또 다른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나온 스티븐 데덜러스(Stephen Dedalus) 등이다. 율리시스호메로스(Homer)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서사 구조와 등장인물들을 패러디한 소설이다.폴드 블룸은 오디세우스, 몰리는 페넬로페(Penelope)에 해당한다.






* 242쪽 옮긴이 주 1







오레스트 오레스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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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09-05 08: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성미 넘치고 날카로운 사이러스님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제목이 가장 마음에 드는 군요 :)
(중간에 들어간 이미지의 의미를 아시는 분이.. 많겠지요?)

cyrus 2023-09-06 06:58   좋아요 2 | URL
글 제목과 마지막 사진이 이 글의 ‘웃음 벨’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조용하네요. 수하 님이 알아주셔서 기분이 좋아요. ^^

stella.K 2023-09-06 10: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난 왜 엉뚱하게 그런 이미지를 썼나했던니 나름 심오했네. 근데 저 이미지는 우리 사랑하게 해주세요 이미지 아닌가?
암튼 이 글은 근래에 본 너의 글중 단연 쵝오다! 인정! 근대 이번 같은 경우엔 오탈자는 슬쩍 넘어가지 꼭 그리해야만 했냐? 이 미네르바 올빼미야! 😤

cyrus 2023-09-07 06:53   좋아요 2 | URL
제 눈에 보이는 걸 어찌 그냥 넘어갑니까? ㅋㅋㅋㅋ 저는 정의로운 일을 했을 뿐이에요. ^^

lyssauvage 2023-09-06 11: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 더 리퍼 cyrus 님
지적하신 내용 모두 맞습니다.
이 책을 번역하고 주를 단 오류의 생산자로서
한편 부끄럽고 (왜 이런 잘못을...? )
다른 한편으론 정정의 기회를 가지게 되어 한없이 감사한 마음입니다.
2쇄에 필히 반영토록 하겠습니다.

cyrus 2023-09-07 06:50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제 글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파스칼 키냐르의 책을 이번에 처음 읽었는데,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역자님이 예전에 번역한 다른 키냐르의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

2023-09-07 1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11 0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13 0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읽기의 의미
임주혜 지음 / 행복우물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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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3점  ★★★  B







너의 그 한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 산울림 <너의 의미>(1984) 노랫말 -





<직립보행>대구 삼덕동에 있는 인문학 헌책방이다. 주말에만 여는 곳이다. 책을 매우 좋아하는 부부가 책방을 함께 지킨다. 내 집 드나들 듯이 <직립보행>을 찾아간다. <직립보행> 부부와 대화할 때가 무척 즐겁다. 한 번은 내가 부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두 분은 책 한 권 내용을 요약해서 설명을 잘하시던데 왜 서평을 안 쓰시는 거죠?” 그러자 부부는 말없이 서로 마주 보면서 빙긋이 미소만 지었다


그땐 그 미소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부부는 집이든 책방이든 늘 붙어 다니면서 각자 읽은 책이 어떤 내용인지 이야기한다. 책 읽고 느낀 생각을 기록할 필요가 없다. 부부의 독서 취향은 다르지만,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각자만의 읽는 경험을 공유한다. 부부는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서로를 변화시키고 성장한다. 매일 머리와 마음에 책을 품고 사는 부부의 애정 온도는 늘 따뜻하기만 하다. 부부는 책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아도 읽는 인간으로서 살아있음을 서로 확인하고 있었다.


혼자서 책을 읽기, 혼자서 책이 많은 곳에 가기, 혼자서 책 속에 깊이 파고들어 생각하기. 책에 대한 내 생각을 글로 기록하기. 책을 펼치는 순간 내가 주로 하는 일들이다. 내게 서평과 독후감은 단순히 책을 소개하는 글이 아니다. ‘읽고 기록하는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스스로 확인하는 삶의 흔적이다. 내 글은 특별하지 않다. 내 글이 사람들의 주목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나는 계속 써야 한다. ‘읽고 기록하는 나로 살아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 책에 대한 기억을 혼자만 알고 있다면 기록해야 한다기억이 또렷한 형체로 남으면 기록이 된다기록하지 않으면 읽는 경험과 관련된 모든 기억은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는 삶의 의미도 희미해져 버린다.


방송작가로 활동 중인 임주혜읽기의 의미는 책을 읽은 후에 기록한 에세이들을 모은 책이다. 이 책은 어디선가 책 읽고 글을 쓰고 있을 무명의 존재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비타민 영양제. 저자에게 문학 읽기쓰는 일은 나를 제대로 알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다. 읽기의 의미를 처음 읽는 독자를 위해 이렇게 읽어볼 것을 제안한다. 당연히 독서의 시작점은 서문(즐거운 발견)이다. 그다음은 1부 제일 마지막 글 나의 글쓰기에 대하여를 읽는다. 이 두 편의 글은 저자가 글로 쓴 자화상이다. 글로 쓴 자화상은 읽고 기록하는 인간으로서 살아온 작가 자신 모습뿐만 아니라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책을 읽고 난 후에 무조건 글을 쓰라는 건 아니다. <직립보행> 부부처럼 읽는 경험을 말로 표현해서 (책을 좋아하는) 상대방에게 들려주는 일 또한 희미해져서 잃어버리기 쉬운 내 삶을 알록달록 빛나게 해준다. 독서 모임은 읽는 나를 만날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다.


저자의 글은 대체로 좋은 편이다. 하지만 글이 서평보다는 에세이에 가까워서 책을 제대로 소개하지 않은 글도 있다. 대부분의 우리는 언제나 위대하다라는 글은 저자가 C. S. 루이스(C.S. Lewis)책 읽는 삶: 타인의 눈으로 새로운 세계를 보는 독서의 즐거움》(두란노, 2021)을 읽고 느낀 것을 기록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면 글에 언급된 책은 책 읽는 삶이 아니라 루이스의 다른 책 순전한 기독교》(홍성사, 2018)스크루테이프의 편지》(홍성사, 2018). 책 읽는 삶은 루이스가 남긴 수많은 책과 편지 속에 있는 책과 독서와 관련된 문장을 발췌하여 엮은 책이다.


편집 상태가 엉망진창이다. 띄어쓰기가 안 지켜진 여러 개의 문장은 눈 감아 줄 수 있다. 하지만 오자가 너무 많다. 오자 발견은 읽는 이에겐 썩 즐겁지 않다. 교정을 제대로 했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다. 오자가 책에 몰입한 눈동자를 멈추게 하는 건 화가 나는 일[]이다. 게다가 각주로 달린 책 정보가 정확하지 않은 것도 있다.




* 43


 나는 아니 에르노의 작품들을 좋아한다. 아마 국내에 번역 출간된 그녀의 글(세월, 진정한 장소, 사건 등)은 다 읽었을 거다.


* 88


염상섭의 삼대, 윤흥길의 장마도 읽지 않았다.



책 제목임을 알 수 있는 기호(‘《》’, ‘<>’)를 표시해야 한다.





* 59





 얼마 후 김화영 선생님이 번역한 장 지오노의 글을 읽게 됐는데, 다시 카뮈의 글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자가 읽었다는 장 지오노(Jean Giono)의 글 제목이 언급되지 않았다. 김화영 선생이 유일하게 번역한 장 지오노의 글은 나무를 심은 사람(크빈트 부흐홀츠 그림, 민음사, 2009)이다. 다음에 나오는 인용문(하루해는 어둠의 혼란된 시각에서 시작하고 끝난다~)은 김화영 선생의 책 행복의 충격: 지중해, 내 푸른 영혼》(문학동네, 2021)에 있는 구절이다.





* 67





또렸하게 → 또렷하게





* 69

 

 나는 기억한다. 매일 밤 8, 카메라 앞에서 조금은 흐트러짐을 허용하면서도 결코 흐트러짐이 없었던 그의 모습을.



69쪽 문장은 남아있는 장면들이라는 제목의 글 속에 있다. 손석희장면들: 손석희의 저널리즘 에세이(창비, 2021)에 대한 글이다. 손석희 앵커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진행한 JTBC 뉴스 프로그램 <JTBC news 9> 오후 2055, 즉 밤 9시에 시작했다. 손석희 앵커는 매일 밤 뉴스를 진행하지 않았다. 평일 방송은 손석희가, 주말 방송은 박성태 앵커가 진행했다.





* 149






<일리야스> <일리아스>

경계 → 경계가





* 157





문학?이라고 하면 너무 고고하게 느껴지려나,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물음표가 엉뚱한 곳에 있다.





* 164






포터에벗 → 포터 애벗





* 165쪽 각주






우찬 우찬





* 175






추긍하기 시작한다 추궁하기 시작한다.





* 193쪽 각주


C. 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임종성 옮김, 홍성사



C. S 루이스 C. S. 루이스


역자 이름이 잘못 적혀 있다. 역자는 두 명이며 장경철과 이종태다.





* 195






굴직한 절망들을 경험하고 견뎠다 굵직한 절망들을 경험하고 견뎠다.





* 200~201





내 주변 사람들의 언어에는 진심 어린 격려와 사랑이 늘 베어있다.


* 201


 <대성당>이라는 장편으로 유명한 레이번드 카버. 그의 단편 소설집을 읽으며 나는 카버가 세상을 존중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베다는 날이 있는 물건으로 끊거나 자르는 상태를 표현할 때 쓰는 동사다정확한 표현은 스며 있음을 뜻하는 배다(배어있다).


레이번드 카버 레이먼드 카버


카버의 대성당(문학동네, 2014)은 장편이 아니다. 표제작을 포함한 열두 편의 단편이 수록된 소설집이다.





* 220





 <멋진 신세계>는 다양한 철학적 의미가 담긴 글로 유명하지만 사실 나는 헉슬리의 문체가 좋아서 책을 다시 펼친다. 소설의 차가운 배경과 달리 문제는 한없이 따뜻하다.


 

문제‘(헉슬리의)문체의 오자다. 멋진 신세계번역본은 여러 권이다. 저자는 이 글에서 본인이 읽은 멋진 신세계의 역자와 출판사 정보를 언급하지 않았다. 저자는 어떤 번역본을 읽었길래 헉슬리의 문체가 좋다고 하신 걸까? 번역본이 아니라면 멋진 신세계원서의 문체일 수 있다.





* 238






위플 위플래쉬





* 252쪽






제레미 리프킨 → 제러미 리프킨

 




사실 발견된 오자가 몇 개 더 있다. 하지만 이 글의 배꼽(정오표와 주석)이 배보다 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 2부에 있는 글 제목이다. 저자가 신형철의 인생의 역사: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난다, 2022)를 읽고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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