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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시 삼백수 - 스님들의 붓끝이 들려주는 청담을 읽는다
정민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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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 사물 바라보고 눈으로는 들으니

마음 들음 어이해 귀뿌리를 쓰겠는가?

모름지기 두 귀 먼 것 안타까워하지 말라

소리란 원래부터 듣는 데서 현혹되니.

 

(허응 보우 『의옥 스님에게 보이다. 의옥은 귀가 먹어 주눅이 들었다[示義玉禪人, 玉以耳聾爲屈]』, 136쪽)

 

 

귀로 듣는 것이 무조건 믿어야할 실체가 아닐 수 있다. 과거에는 출처 불분명한 ‘악성 루머’가 심각했었다면, 요즘 기승부리는 부정적 대상이 ‘가짜 뉴스’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가짜 뉴스’가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다. 일반 대중은 가짜 뉴스와 악성 루머로 인해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쉽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로 가짜 뉴스와 악성 루머는 빛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전달되어 군중들의 두려움과 망상을 부추긴다. 특히 박사모와 극우 세력들은 특정 대상을 비난의 표적으로 삼기 위해 악의적인 의도로 거짓을 퍼뜨린다. 가짜 뉴스가 많이 퍼지고, 대중이 여기에 쉽게 현혹될수록 사회 전체가 흔들린다. 그뿐만 아니라 가짜 뉴스로 인해 깊이 파인 심리적 외상까지 치유해야 하는 문제도 남는다.

 

 

평생을 부끄럽게 입으로만 나불대다

끝판에 와 깨달으니 백억(百億)의 말 저편일세.

말을 해도 옳지 않고 말 없어도 안 된다면

사람들 모름지기 자각하길 청하노라.

 

(정관 일선 『임종게[臨終偈]』, 178쪽)

 

 

불교에서 고승들이 입적할 때 평생 수행에서 얻은 깨달음을 전하는 마지막 말이나 글을 임종게(臨終偈)라 한다. 일선 스님이 남긴 임종게는 최후의 반성이다. 스님 역시 평생 입으로 나불대는 속세의 인간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이 뒤늦게 깨달은 것을 산 자의 몫으로 남겼다. ‘가짜 뉴스’에 의지하는 박사모와 극우 세력들은 그것이 마치 진실인 마냥 입으로 나불댄다. 과연 그들이 일선 스님처럼 죽기 전에 자신을 ‘자각(自覺)’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도 여전히 ‘가짜 뉴스’에 속아 넘어가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설정한 ‘가상의 적’에 대항하려고 든다. 자신들이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연령에 상관없이 현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은 귀머거리다. 그들이 알아서 뭘 잘못했는지 자각하기가 상당히 힘들어 보인다.

 

 

그대를 만나서 막야검을 건네주니

칼날에 푸른 이끼 끼지 않게 하시게.

오온산 앞에서 도적을 보게 되면

한 번씩 휘둘러서 하나하나 베시게나.

 

(벽송 지엄 『범준 선백에게 보이다[示法俊禪伯]』, 92쪽)

 

* 오온산(五蘊山) : 현상 세계 전체

 

 

막야검(鏌鎁釼)은 지혜를 상징하는 전설의 검이다. 정신을 옭아매는 아집(我執)을 한 번에 뎅겅 잘라버릴 수 있는, 막야검이 실제로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다. 막야검만 있으면 국민의 정신에 해로운 국가의 도적들을 하나하나 벨 수 있다. 막야검의 주인은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는 영웅이 된다. 한편 반대로 생각해보면, 막야검은 이 세상에 없는 게 낫다. 막야검의 칼날에 조금이라도 녹슬지 않으려면 검의 주인은 끊임없이 자기 수양에 힘써야 한다. 훌륭한 검을 가질 만한 자격을 갖추는 것이 남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되겠지만, 검의 주인에게는 평생 부담을 짊고 가야하는 일이다. 만약 막야검이 주인을 잘못 만나게 되면, 검의 용도가 배움의 목적을 남에게 과시하는 위인지학(爲人之學)으로 변질한다.

 

 

뜬 인생 참으로 쏜살같이 지나가니

얻고 잃음 슬픔 기쁨 어이 족히 헤아리랴.

그대 보라 귀천(貴賤)과 현우(賢愚)를 가리잖고

마침내는 똑같이 무덤 흙이 되는 것을.

 

(원감 충지 『사람에게 보이다[示人]』, 34쪽)

 

* 현우(賢愚) : 어진 자와 어리석은 자

 

 

지금까지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교훈적인 선시(禪詩) 세 편을 골라봤다. 이 글의 마지막을 장식한 선시는 특별하다. 인생의 허무함을 강조하는 충지 스님의 선시를 고른 이유가 있다. 생의 끝자락에 서면, 권력과 명예와 부를 누리며 충분히 산 삶이나, 언제나 초름한 결핍으로 산 삶이나 도긴개긴이다. 삶이란 참으로 덧없이 왔다 떠나는 뜬구름 같은 것이다. 가장 불행한 삶의 비극은 죽음이 아니다. 불교에서 인간은 본래 고요하고 청정한 물결과 같은 ‘청정심(淸淨心)’을 갖춰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푸르른 물결에 욕심과 집착의 바람이 몰아닥치면 번뇌와 고통의 파도가 된다. 커다란 파도에 떠밀리면, 원래 이전의 고요한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아웅다웅 싸우다가 결국 허무하게 죽어가는 것, 전체적으로 보면 그런 삶이야말로 불행한 비극이다. 이 세상에 상이한 이해와 갈등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패거리를 지어서 아귀다툼하며, 남보다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처절한 혼전을 계속하고 있다. 알고 보면 우리 삶은 아름답고도 살아내기 힘든 시간의 연속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쏜살같이 지나간다. 이 귀한 하루하루를 소중히 생각하면서 갈무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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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5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3-15 17:36   좋아요 1 | URL
박근혜뿐만 아니라 박사모를 뒤에서 지원해준 세력까지 뿌리 뽑듯이 밝혀내야 합니다. 이거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다음 정권에게 향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어요.

레삭매냐 2017-03-15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학자 정민 샘이 번역을 맡아 주셨군요 ~ 그래서 왠지 더 정겹더라는.

cyrus 2017-03-15 20:38   좋아요 0 | URL
선시가 행 수가 적은 편이고, 정민 교수의 평설 분량이 비교적 길지 않아서 좋았어요. 인상 깊은 선시가 아주 많았습니다. ^^

dellarosa 2017-03-15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꼼꼼한 리뷰 좋습니다. ^^ 그리고 저도 임선스님의 임종계를 읽고 반성해봅니다.

cyrus 2017-03-15 20:39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하게 해주는 선시 몇 편 더 있는데 소개하면 리뷰가 길어질까봐 포기했습니다. 책에 좋은 내용의 선시가 많이 있습니다. ^^

transient-guest 2017-03-17 0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시를 많이 읽으시네요.ㅎ 시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가끔 들여다보는 정도인 저는 이상하게 일본의 와카나 단카 (이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같은 정형시나 짧은 걸 좋아합니다. 사실 민족감정이나 일제의 범행에 대한 태도 같은 것들 말고, 일본문화에 큰 반감이 없네요. 좋은 것도 많고...ㅎ
정민 선생님 책은 몇 권 읽었는데, 다소 고루하지만, 아주 진지한 맛이 있습니다. 다만, 어떤 건 그냥 받아들이기 어려운, 어쩌면 나이든 분들에게서 느껴지는 그런 것들이 없지는 않더라구요.

cyrus 2017-03-17 10:49   좋아요 0 | URL
일본 문화의 장점을 받아들이거나 선호하는 대로 좋아하는 것은 절대로 나쁘지 않습니다. 역사를 속이고,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 정부나 그들의 비호 아래에 활동하는 극우 세력들을 비판해야 합니다. 일본의 과오를 하나도 모른 채 좋은 것만 찬양하는 사람이나 무조건 일본을 배격하는 사람이나 피차일반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합니다.
 
옛사람이 건넨 네 글자 - 생각을 잊은 인생에게
정민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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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이 다가오면 여기저기서 사자성어들이 등장한다. 학자와 정치인, 관료, 법조인, 기업인까지 경쟁적으로 어려운 사자성어들을 쏟아낸다. 교수들이 모여 올해의 사자성어를 정하기도 한다. 모두 그 어렵다는 주역과 논어, 맹자를 비롯해 도덕경, 손자병법까지 경쟁적으로 원문을 뒤져 새해를 예견하고 지나간 세월을 정리하고 있다. 한국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이 본다면 한국인들은 모두 동양고전에 박식한 인문학 민족으로 비칠 정도다. 일부 고사성어의 경우 말하는 사람이 정확한 뜻을 알면서 한 것인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구석도 있으니 문제다. 무엇보다 높으신 분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 힘든 일반인들로선 사회의 리더들이 꼭 이런 식으로 유식을 뽐내야 하는지 생각해볼 문제다. 어려운 성어의 겉멋보다 그 속에 담긴 뜻을 살리는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 우선이다.

 

서양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은 성경과 셰익스피어라고 한다. 우리는 속담이나 사자성어를 많이 인용한다. 인용문의 힘은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드는 데 효과적이다. 인용문은 지극히 감성적인 효과를 지닌다. 상당히 논리적인 말을 인용하더라도, 인용문이 가지는 후광효과에서 이미 우리의 감성이 자극된다. 특히 사자성어 인용문은 상대의 관심을 끌어내는 것은 물론 짧은 메시지로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데 유용한 무기가 된다. 그 역량의 중심에는 독서와 인용 노트 작성, 상황을 고려해서 미리 인용문을 준비하는 계획이 있다. 평소 책을 읽다가 좋은 말이 있으면 그것을 기록한다.

 

인간의 뇌는 정보에 따라 반응한다. 지식은 대개 독서를 통해 입력된다. 오근독서(五勤讀書)라는 것이 있다. 중국 역사학자 리핑신이 오근독서를 즐겼다. 부지런히 읽고, 부지런히 초록해 베껴 쓰며, 부지런히 외우고, 부지런히 분류해서, 부지런히 편집해 정리한다. 리핑신은 좋은 문장을 따로 기록한 것들을 취보합(聚寶盒)이라는 이름의 그릇에 보관했다. 그는 그릇에 담은 메모들을 소중한 보물로 여겼다. 연구하다가 필요한 자료를 찾을 때 취보합을 이용했다. 우리도 보물을 모을 수 있다. 이른바 인용 노트를 만드는 것이다. 자신에게 처할 주요 상황별로 카테고리를 만들어두고, 그에 어울리는 인용문들을 평소에 하나씩 기록해서 모으면 나중에는 엄청나게 중요한 자산이 된다.

 

인용 노트를 작성하는 일은 생각보다 재미있다. 그렇지만 베껴 쓰면서 정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많아질 수 있다. 처음에는 필기로 인용문을 정리했지만, 지금은 한글 워드로 입력한다. 주로 다섯 줄 이상의 인용문을 모아 둔다. 컴퓨터 자판 입력 속도가 비교적 빠른 편인데도 1시간 걸린다. 인용문 중에 불필요한 문장을 추려내면서 재편집하는 과정에 많은 시간을 들인다. 그런데 가끔 이 일이 귀찮게 느껴질 때가 있다. 딴생각이 많아지면 책 읽는 속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이럴 때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인용문을 정리하면 되는데, 이 일마저도 집중하지 못한다.

 

독서를 게을리하는 일은 변덕스러운 장마와 가뭄을 만나 농사짓는 시기를 잃는 것과 같다. 책을 읽는 일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읽은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활용해야 한다. 옛사람은 농사일하다가 공부에 관한 생각이 퍼뜩 떠오르면 나뭇잎을 따서 그 생각들을 얼른 적었다. 그리고 그 나뭇잎을 항아리에 보관했다. 이덕무와 박지원도 이런 습관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책 한 권을 읽는 도중에 메모나 밑줄 긋기를 하지 말라고 권한다. 책 읽다가 메모하면 책의 내용에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견하면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책을 다 읽고 나면 그 인용문의 존재감을 잊어버린다. 인용문을 찾기 위해서 책을 다시 읽어야 한다. 다 읽은 지 얼마 안 된 책을 다시 펼치는 건 시간 낭비다. 그래서 책 속에 중요한 문장을 발견하면 메모하는 대신에 쪽수만 기록한다. 나중에 인용문을 찾고 싶으면 쪽수를 보고 책을 펼치면 된다.

 

중국의 서석린(1873~1907)은 삼심양합(三心兩合)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삼심이란 책을 읽을 때 지녀야 할 세 가지 마음가짐으로 전심(專心), 세심(細心), 항심(恒心)을 말한다. 전심은 잡념을 버리고 오직 책에만 몰입하여 읽는 것이다. 세심은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정독하는 것이다. 항심은 꾸준하게 책을 읽는 마음이다.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자는 것처럼 책도 그렇게 꾸준히 읽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삼심에 다른 두 가지를 결합시켜야 하는 것이 양합(兩合)이다.

 

선현들이 독서에 대해 남긴 글을 보면 한결같이 강조한 내용이 있다. 정독의 한 방편으로 권장되는 다독의 효과, 의심과 질문을 통해 확장되는 생산적 독서 훈련 등이 그것이다. 독서를 제대로 하려면 다독, 낭독 훈련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여기서 말하는 다독은 많은 책을 폭넓게 읽는 것이 아니라, 읽은 책을 또 읽고, 또 읽는 다독이다. 책 많이 읽고 깊은 감화를 얻으면 저절로 똑똑해지게 될까? 아니다. 습관적 독서는 좋지만 기계적 독서는 좋지 않다. 무조건 책을 먹어치우게강요하는 것은 책을 싫어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독서의 즐거움이 먼저다. 독서처럼 돈 들지 않는 오락도 없고, 독서처럼 오래가는 기쁨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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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6 2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5-27 16:48   좋아요 2 | URL
북플이 다른 회원의 독서량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이루어져서 의식적으로 독서량을 비교하게 됩니다. 저도 처음에 그 점이 신경 쓰였습니다. 그런데 조바심 내면 책에 집중할 수 없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서평 업로드할 때만 북플에 접속합니다. 자주 들어오면 읽고 싶은 책이 점점 많아지고, 다른 회원의 활동에 눈이 가게 됩니다. 주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것이 바람직한 독서 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

페크pek0501 2016-05-26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많이 내는 저자의 신간이네요.
저도 인용 노트를 몇 권 가지고 있어요. 볼펜으로 쓰다가 팔이 아파서
이젠 컴퓨터로 작성해야 되나, 그러고 있어요.
그런데 베껴쓰기는 종이 노트에 볼펜으로 해야 맛이 나는 것 같아요.

필사가 유행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저는 주로 산문을 베껴 쓰곤 했는데 시를 베끼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cyrus 2016-05-27 16:51   좋아요 0 | URL
컴퓨터 자판기를 많이 두드리면 손목이 피곤해집니다. 인용문 기록하는 일을 누가 대신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책 읽을 시간이 많이 생길 겁니다. ^^

돌궐 2016-05-28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인용초록을 책마다 파일로 만들어서 작성해요. 저자명-책명으로 파일을 만들죠. 물론 소설책 같은 건 쓰지 않을 때가 많지요. 명문장이 나오면 그제서야 옮기긴 하지만요.ㅎㅎ 노트북이 없을 땐 직접 노트에 필사도 합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문장이 새롭게 다가올 때도 있고 다시 읽게 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초록 작성에 힘쓰다 보면 책을 더 깊이 분석하고 분류하게 되고, 그러면 책을 여러 번 읽는 효과가 있어요.

cyrus 2016-05-28 11:48   좋아요 0 | URL
정말 꼼꼼하게 인용문을 기록하는 분들이 많군요. 대단하면서도 부럽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8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노란색연필로 밑줄을 그은 후 시간 날 때마다 밑줄 친 문장을 반복해서 읽습니다.

cyrus 2016-05-28 11:48   좋아요 0 | URL
아주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

transient-guest 2016-05-29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밑줄을 긋는데요, 지나가면 다 잊어버려서 책을 읽으면서 해야합니다. 다만 이렇게 하고, 다시 그 책을 한 두번 정도 더 읽으면 좋을텐데,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있네요.ㅎ 정민교수는 내공이 상당한 분 같습니다만, 왜 그분이나 장정일작가 같은 분들이 박유하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를 옹호하는지는 좀 의문입니다. 아마도 연구하는 학자로서 성역없이 어려운 주제와 내용도 파고들어야한다는 점을 이유로 드는 것 같은데, 박유하의 책은 단순히 감정적인 이유로 비난을 받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서요. 암튼 일전에 읽은 정민교수의 책은 묵직한 울림이 있더라구요.

cyrus 2016-05-29 13:54   좋아요 0 | URL
특별한 계기가 아니면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는 일이 잘 없어요. 저도 같은 책을 두 번 이상 읽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

yureka01 2016-05-29 14: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밑줄도 물론..낙서도 많이 하며 읽는 편이라서.책한권 다 읽고 나면 진짜 책이 중급으로 품질하락....ㄷㄷㄷㄷㄷ

cyrus 2016-05-29 18:29   좋아요 0 | URL
저는 낙서가 조금 있는 책을 절대로 팔지 않습니다. 낙서 몇 개 남아있는 책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잖아요. ^^

yureka01 2016-05-29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맞아요. 못팔죠..^^
 

 

 

 

 

 

 

 

‘2,900원짜리 문고본치고는 너무 두껍군.’

 

 

올재 출판사의시경에 대한 첫 느낌이다. 문심조룡시학 / 데 아니마와 같이 올려놓으면 확실히 시경의 분량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된다. 시경의 전체 쪽수는 707쪽이다. 이틀 전에 올재 클래식스 열일곱 번째 시리즈를 소개할 때 역자 신동준 소장과 인간관계 출판사의 관계에 염려한 적이 있다. 이번 달에 인간사랑 출판사도 시경을 출간할 예정인데, 올재 출판사가 염가로 먼저 내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기우에 불과했다. 올재 출판사의시경일러두기라는 글에 출간 목적을 알게 되었다. 올재 출판사의 시경은 공익 목적으로 펴낸 한정판 문고본이며, 인간사랑 출판사에서 양장본을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올재 출판사의 문고본과 인간사랑 출판사의 양장본은 내용상 큰 차이를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가격에서 큰 차이가 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재고가 동나기 전에 얼른 인터넷 교보문고로 들어가십시오, 여러분!

    

 

현재 역자 서문까지만 읽은 상태다. 주요 내용만 간추려서 정리하면 이렇다. 시경을 공자가 쓴 책으로 알려졌는데, 틀린 말이다. 책의 저자명에 공자를 쓸 수 없다. 공자는 3,000편의 시 중에 500여 편을 골라서 시경을 만들었다. 그래서 공자는 저자라기보다 편저자에 더 가깝다. 그러나 편저자가 정말로 공자가 맞는지 확실하지 않다. 공자가 시경편집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맨 처음 언급한 사람이 사마천이다. 사마천의 증언을 토대로 공자가 원래의 시를 10분의 1로 산삭(刪削)했다는 일명 산거설(刪去說)’이 나오게 된다. 산삭이란 불필요한 글자를 삭제하는 것을 말한다. 학자들은 사마천의 증언을 믿고, 공자가 시경을 만들었다고 확신했다. 산거설에 이의를 제기한 몇 몇 학자들이 있었으나 산거설의 아성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시경을 만든 이에 대한 논란이 남아 있어서 작자 미상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중국의 학자들은 공자와 시경의 관계를 타당성 있게 설명하고 싶어 한다. 그들은 사마천의 증언을 확신하는 결정적인 이유를 논어에서 찾기도 한다. 논어양학편에서 공자가 시의 중요성을 설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경서경, 역경(주역)과 함께 유교 3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유학의 관점으로 시를 이해하는 학습 방식이 하나의 전통이 되자 문제점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주자학을 집대성한 주희의 시경집전은 유학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텍스트가 되었다. 그렇지만 사대부들은 시경집전을 과거시험 합격을 위해서 읽어야 하는 책으로 사용했다. 이들은 시를 읽는다기보다는 과거시험 합격을 기원하면서 달달 외웠다. 이런 공부 방식은 악습을 낳는다. 지금의 대학수능시험을 생각하면 된다. 수험생들은 한 문제 더 맞추려고 적지 않은 양의 한국 시를 거의 외우듯이 공부한다. 이렇다 보니 시를 읽는 기회가 줄어들고, 시구 하나하나 해부해가면서 해석하려고 한다. 알고 보면 시구에 별 의미가 없는데도 말이다. 시험문제 출제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시의 해석에 부합하는 정답을 요구한다. 문학작품을 대하는 수능시험 공부 방식은 해석의 다양성이 외면 받는다. 사대부들이 대하는 시경집전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주희의 시경주석에 반박할 생각을 하지 않고, 무조건 외웠다. 유학자들은 주희의 해석을 흠잡을 데 없는 완전무결한 진리로 믿었다.

 

중국과 일본의 시경학(詩經學)시경집전에 의지하는 시경해석을 폐기한 지 오래다. 오늘날의 시경학은 시경을 유교 경전으로 이해하는 방식을 넘어섰다. 고대 중국의 사회구조 및 풍습을 이해할 수 있는 서정적인 민가(民家)로 분석한다. 다양한 관점의 해석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여전히 주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 소장은 김학주의 새로 옮긴 시경(명문당, 2010)이 구시대적인 주희의 해석에서 벗어나지 못한 텍스트로 지적한다. 신 소장은 최근 시경학의 추세가 반영된 번역본으로 을유문화사의 시경(정상홍 역, 2014)을 추천했다.

 

신 소장은 시경사랑 타령의 유행가인 뽕짝연가(戀歌)”로 이해하면서 접근했다고 밝혔다. 시경은 악보가 없는 노랫말 모음집과 같다. , 남녀 간의 애정을 소재로 만들어진 고대 중국의 가요 모음집으로 보면 된다. 그런데 뽕짝이라는 표현이 꺼림칙하다. 뽕짝은 트로트를 비하하는 의미가 있는 속어다. 시경의 학문적 분위기를 생각하면 뽕짝은 비유에 적절한 단어로 부적합하다. ‘대중가요’로 비유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 《시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같이 읽을 수 있는 책들 (신동준 소장이 역자 서문에서 소개한 책들) (링크로 연결되어 있어서 클릭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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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끼 2016-01-22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고판과 양장본은 두께가 다른가요? 교보문고에서만 살 수 있는건가요! 시경은 제가 유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이자 다다르고 싶은 지점인데 꼭 읽고싶네요..

cyrus 2016-01-22 18:42   좋아요 1 | URL
올재 클래식스 시리즈는 주로 동서양 고전 작품을 펴내는 출판사입니다. 2,900원 가격으로 한정 판매합니다. 책의 수익금은 여러 사회복지단체에 기부되고, 재고는 군부대나 교육기관에 기부됩니다. 올재 클래식스 시리즈는 인터넷 교보문고, 교보문고 매장에서만 살 수 있습니다. 알라딘에서는 팔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인터넷 교보문고에 접속하셔서 재고가 있는지 확인해보세요. 2,900원의 착한 가격으로 나오는 고전을 만나기 힘듭니다.

양장본은 인간사랑 출판사에서 나올 예정입니다. 당연히 가격은 2만 원 이상대로 책정될 것 같습니다.

서니데이 2016-01-22 1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날이 너무 춥네요.
다른 책보다도 시경은 참 두꺼워보여요. ^^
cyrus님, 따뜻하고 좋은 금요일 저녁 되세요.^^

해피북 2016-01-22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왓~~2900원에 만날 수 있는 양서라니요! 흔치 않은 기회인걸요 ㅎ 저도 마실 좀 다녀와야겠습니다. 그런데 하단에 말씀하신 링크가 북플에서는 보이지 않은가봐요? 아니면 저만? ㅎ

해피북 2016-01-22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방금 다녀왔는데 인터넷 재고는 마감이라는! 역시 눈밝은 독자들이 귀한 보물을 먼저 찾는거 같아요^~^

cyrus 2016-01-22 19:59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리스트를 만들었는데, 북플에 뜨지 않는군요. 북플에서는 링크 기능이 되지 않습니다. ‘알라딘 서재’로 접속해야 링크와 리스트를 볼 수 있습니다.

워낙 인기가 많아서 금방 팔립니다. 책값이 싸니까요. ㅎㅎㅎ 그러면 해피북님이 사시는 지역에 교보문고 매장에 있으면 그곳에 가보셔야 합니다. 매장 직원에게 올재 클래식스 시리즈가 있냐고 물어보세요. 재고가 있으면 알려줄 겁니다. 여기에도 없으면 다음 기회에... ㅎㅎㅎ

인터넷 검색창에 ‘올재’를 검색하면 ‘사단법인 올재’ 공식 홈페이지가 뜹니다. 거기에 가입하면 문자 메시지로 출간 소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짜라투스트라 2016-01-22 2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감!! 시경은 이제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사랑을 이해하는 텍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cyrus 2016-01-23 15:46   좋아요 0 | URL
공감!! 맞습니다. 혹시 <서경>을 읽어보셨습니까? 어제부터 본문을 읽었습니다. 옛 사람들의 사랑을 진솔하게 느껴지는 노래들이었습니다. 이런 노래들을 유교 관점으로 해석했다는 사실에 놀라웠습니다.

짜라투스트라 2016-01-23 16:04   좋아요 1 | URL
네 유쾌하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표맥(漂麥) 2016-01-22 2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동준 선생이 최근들어 가장 활발하게 중국고문을 번역하는데요... 전 그게 불만입니다. 임팩트는 분명 있는데 갈고닦은 맛이 없어요... 숙성된 김치가 아니라 겉저리(생김치) 같다는 느낌이... 뭐 그렇다는겁니다... ^^

cyrus 2016-01-23 15:48   좋아요 0 | URL
신동준 소장의 책을 처음 읽은 것이 <군주론>입니다. 서양 고전이니까 이 책을 제외하고, 동양고전은 어제부터 읽은 <시경>입니다. 신동준 소장이 번역한 <장자>도 집에 있는데,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어느 시점부터 이분 이름이 들어있는 책이 한꺼번에 나오니까 당혹스럽습니다. 천천히 몇 달 간격으로 내도되는데 말이죠. ^^;;

심심토끼 2016-01-23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친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책에 관한 좋은이야기 나누면 좋겠네요.

cyrus 2016-01-23 15:58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심심토끼님, 오히려 제가 고마워해야죠. 그런데 제가 평소에 읽는 책이 요즘에 나오는 신간과 베스트셀러와 완전 거리가 멉니다. 좋은 신간에 대한 정보를 제 블로그에서 얻기 어렵습니다. 심심토끼님도 책 이야기 많이 알려주세요. ^^

심심토끼 2016-01-23 15: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책벌레와 메모광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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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은 애매한 단어다. '헌책'이라는 게 어디 있나. 그냥 책이다. '오래된 책방'이라고 쓰는 것이 더 편하다. 오래된 책방은 정말 오랜 세월 그 자리에서 책을 팔고 있는 집이다. 그 집에 쌓여있는 책들은 책이 아니고 문화며 역사다. 70년대에 나온 책에는 경제개발 시대의 새까만 먼지가 묻어있다. 80년대 전공서적을 들여다보면 콧구멍 속이 매캐해진다. 책방에서 책을 고르는 건 묘한 전율이 있다. 어떤 책을 사겠다고 작정하고 찾아 나서는 경우는 대개 드물다. 오히려 책이 찾아온다는 게 맞다. 오늘은 어떤 책이 있을지 막연한 호기심으로 기웃거린다.

 

저자나 지인이 면지에 사인을 남긴 책, 행간마다 꾹꾹 눌러 그은 밑줄로 굵은 볼펜 심 자국이 선명한 책, 여러 번 넘겨 읽은 증거인양 곳곳에 찢어진 흔적이 있는 책. 고서쯤 되면 가치도 평가받지만 사람 손길을 많이 거친 헌책은 그저 버려도 되는 책으로 치부되는 게 현실이다. 책과 맺은 인연이 이렇듯 하찮다. 그깟 책쯤이야 버린다 한들 무슨 대수랴, 하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과연 책이 그렇게 버려져야 할 존재인가. 책이라는 게 그렇게 하찮은 존재에 불과한가.

 

오래된 책을 만나는 또 하나의 묘미는 누군가의 흔적 속에서 나의 어떤 기억과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전 책 주인의 심중이 드러난 한 줄의 메모는 그 책의 고고학적 연대기이자 숨결이다. 책 안에 들어있는 비밀스러운 사연들은 선택한 이가 받는 덤이다. 커버를 넘기면 연필로 꾹꾹 눌러 쓴 편지글이 적혀 있다. ‘보고 싶은, ○○에게로 시작하는 문장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편지글을 쓴 사람은 자신의 애틋한 마음을 책과 함께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저자가 직접 사인까지 해준 책도 책방에 발견된다. 책을 준 저자, 그 저자의 친필 사인 본을 받은 사람 모두 유명하면 책의 가치가 높아진다.

 

자신의 물건에 자신만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건 자연스럽다. 책의 경우 보통 날짜와 자신의 이름을 적거나, 간단한 단상을 적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책 속의 흔적들은 자신이 간직하는 책에 그 소유를 밝히기 위해 찍는 도장과 같다. 동양에서는 책의 소장자가 자기의 소유임을 알리기 위해 장서인을 찍는다. 우리나라 애서가들은 책에 있는 전 주인의 장서인을 따로 도려낸다. 장서인이 잘려나간 종이 부분이 흉물스러운 상처처럼 남는다. 그러면 거기에 종이를 덧대어 붙인 뒤에 자신의 장서인을 찍는다. 반대로 중국 애서가들은 전 주인의 장서인을 없애려고 하지 않는다. 장서인이 많이 찍혀있는 책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도장이 많이 찍힌 종이가 지저분하게 보여도, 책값은 올라간다. 유명인의 장서인이 하나라도 있으면 책값이 더 오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유명인의 흔적이 있는 책은 귀한 대접을 받는다.

 

나는 책방에 가면 전 주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책을 산다. 지저분하게 보이는 남의 흔적들을 애써 지우려고 하지 않는다. 장서가인 최석정의 말씀처럼 책을 모을 힘이 있어서 책이 내게 모인 것이다. 책이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때를 밀려고 때밀이 수건으로 피부를 박박 문지르면 피부 살갗이 벗겨지듯이 종이의 때를 억지로 없애면 책 상태가 더 나빠진다. 헌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주인의 이름이 적혀 있는 책을 선뜻 사지 않는다. 당연히 새 책이 좋다. 누구나 깨끗한 상태의 책을 읽고 싶어 한다. 그래야 읽을 맛이 난다. 연필 자국으로 덮인 활자가 눈에 거슬릴 수 있다. 그렇지만 주인의 친필 메모에 공부에 대한 주인의 열정을 확인할 수 있다. 활자가 적힌 책이어도 그 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독자의 눈에는 타블라 라사(Tabla rassa)일 뿐이다. 진정한 애서가는 책 한 권을 읽다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을 책의 여백에 기록해둔다.

 

 

 

 

 

 

내가 책방에 산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푸코의 진자》 1권 페이지마다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한 부분이 많다. 더러는 그 밑줄이 내 생각과 맞아떨어지고 어떤 부분은 의문을 품게 된다. 타인의 마음을 더듬는 것이 즐겁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마음이나 생각을 가늠하는 것 말고 나보다 먼저 책을 읽은 독자의 마음을 느끼는 재미도 보통이 아니다. 다른 인생과 교감하는 즐거움이다. 알뜰살뜰 적어둔 주인의 메모는 다음 책 주인의 가슴에 식은 공부 열정의 온도를 다시 뜨겁게 해준다. 굳이 주인의 기록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 내 생각이 주인의 생각과 다르다면 새로운 생각의 길을 만들면 된다. 또 다른 여백에 메모를 남기는 것이다. 메모에는 책 읽은 사람의 생각이 갇혀 있다. 이것은 서가에 꽂혀있을 때는 박제돼 있다가도 지식이 필요한 독자들을 만나면 다시 살아 숨 쉰다.

 

특별한 하늘의 운이 따르지 않는 이상, 책의 전 주인을 만나는 건 불가능하다. 단지, 주인이 어떤 사람이었을까 추측만 하게 된다. 그러나 주인이 남긴 글씨 속에 주인의 얼굴이 희미하게나마 보인다. 그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책을 파고드는 모습 말이다. 책 속의 메모는 한 인간이 책에 쏟아온 열정과 떨림을 엿보게 해 준다. 애서가는 눈빛으로 책을 갉아먹는다. 책벌레가 사라졌다고? 나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내가 아는 한 책방에 가면 이름 모를 책벌레들의 흔적으로 지저분한 책들을 발견한다. 책방에 가득 쌓인 책더미 사이를 지나다니는 책벌레를 만나곤 한다. 두어(蠹魚, 책벌레)가 습기를 좋아하고, 햇볕을 싫어하는 것처럼 인간 책벌레는 자신이 원하는 책을 찾을 때까지 어두컴컴한 책방에 서식한다. 나는 또다시 그곳에 간다. 책을 구경한다. 메모 흔적 가득한 낡은 책을 고른다. 다시 한 번, 책 속에 내 취향이 비슷한 독자, 아니 인간 책벌레 동지의 인생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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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11-30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이래서 글씨 연습이 필요한거 같아요. 저는 신랑이 글씨 못쓴다고 구박할 정도의 악필인데 악필속에 비친 희미한 제 얼굴이 어떤 표정일지 생각만해도 끔찍해요 ㅋㅂㅋ~~~

cyrus 2015-12-01 18:00   좋아요 0 | URL
제가 발견한 헌책의 낙서는 심하게 알아보지 못하는 악필 수준은 아니었어요. 자세히 읽으면 글씨를 알아볼 수 있어요. 저는 책을 메모하는 데 굳이 글씨를 잘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남들한테 보여주는 게 아니잖아요. 자기만 알아보면 됩니다. ^^

단발머리 2015-11-30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을 읽어도 어쩜 이런 다른 생각과 이야기가 이어지는지.... 정말 신기해요^^

cyrus 2015-12-01 18:02   좋아요 0 | URL
서평 대회 적립금을 받고 싶어서 다른 분들의 글을 쭉 읽어봤습니다. 제가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들을 이미 다른 분들이 다 썼더군요. 그래서 뭐 써야할지 한참 고민했습니다. ㅎㅎㅎ

물고기자리 2015-11-30 2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에 읽은 흔적을 많이 남기는 편이라 사진 속의 책에 어쩐지 정이 가네요^^ 읽은 책은 곳곳에 플래그를 붙이고 밑줄도 그어 놓는데 그걸로도 부족하면 책과 비슷한 크기의 노트 모양 포스트잇에 이런저런 메모들을 해서 책 뒷장 안쪽 날개에 붙여 두어요. 어떤 책은 앞 뒷면을 모두 빼곡히 채운 여러 페이지의 노트가 생기기도 하는데, 어느 날 그 책을 다시 펼쳐볼 때면 책도 책이지만 책 속의 제 흔적들을 보며 상념에 빠지게 되더라고요. 마치 저자와 제가 같이 쓴 일기장을 보는 것 같거든요ㅎ

사실 그 흔적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재독할 때인데 처음과는 전혀 다른 부분에 밑줄을 긋게 되거나 메모의 내용이 추가되면서 책을 통해 제 자신을 성찰하게 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일부러 재독하는 경우도 있어요. `나는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가 궁금해서요ㅎ 근데 이런 책은 제 일기장이나 마찬가지라 팔기는커녕 가까운 사람이 빌려달라고 해도 꺼려져요^^ 하지만 타인의 흔적이 남은 책은 저도 읽고 싶네요ㅎ 누군가와 같이 쓰는 일기 같을 것 같아요..

cyrus 2015-12-01 18:06   좋아요 0 | URL
책 읽고 난 뒤에 쓴 기록들을 ‘일기’로 비유하는 물고기자리님의 표현이 멋져요. 맞아요. 맨 처음 읽었을 때 느낌을 기록하고 난 후에 좀 시간이 흐르고 다시 읽으면 느낌이 달라져요. 사실 저도 이런 소중한 기록들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지금 알라딘에 서평을 쓰는 것도 책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공개하는 일기를 쓰는 행위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제 친구들은 제가 블로그 활동 사실을 몰라요. ㅎㅎㅎ

살리미 2015-11-30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모을 힘이 있어서 책이 내게 모인것!! 너무 멋지네요^^ 책장에 써서 붙여놓고 싶어요.
가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보다보면 타인의 흔적이 지나쳐서 너무 지저분한 경우도 있던데, 마구 그어놓은 밑줄이나 동글뱅이 같은 것들요 ㅎㅎ
저런 메모정도라면 전에 읽은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 반가울듯 합니다^^

cyrus 2015-12-01 18:08   좋아요 0 | URL
저 문장을 보면서 감동받았습니다. 제가 책방에 좋은 책을 만날 때 그 감정을 표현한 것 같았거든요. 도서관 책의 메모는 저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보기 흉할 정도로 공공도서관 책에 메모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무례한 행동입니다. 단, 약간의 밑줄은 봐줄 순 있습니다. ^^

보슬비 2015-12-01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책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데 cyrus님을 위해서 흔적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ㅎㅎ

cyrus 2015-12-01 18:10   좋아요 0 | URL
보슬비님은 알라딘에서 책에 관한 흔적을 많이 남기고 있습니다.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하는 일까지 기록하시는 모습이 대단해요. ^^

인디언밥 2015-12-01 0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라요. 그때 반 아이들이 책 한 권씩 교실에 기증하는.. 뭐 그런 식의 행사가 있었는데, 기증한 책은 학년이 올라가면 책을 다시 집으로 가져가는 식이었거든요. 어린마음에 제 책에 손때묻고 더러워지는 게 싫었는데, 그런 책은 친구들이 그만큼 많이 읽었던 책이니 오히려 좋은 것이라고, 책을 집에 가져갈 때 새책처럼 깨끗한게 좋은게 아니라고 하시던..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나네요. 그때 기증한 책이 <유명한 이야기>였는데, `유명한`이야기 인 줄 알고 샀다가 `유 명한 씨 이야기`였는줄은 모르고...

cyrus 2015-12-01 18:13   좋아요 0 | URL
인디언밥님의 추억담을 보면서 감동과 웃음이 한 번에 느꼈습니다. ㅎㅎㅎ 정말 좋은 은사를 만나셨군요. 요즘은 새것이 더 많이 나오는 세상이라서 헌 물건을 물려 쓰는 일이 잘 없는 것 같아요.

최호영 2015-12-05 1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감사합니다

2016-01-21 2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2 16: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2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2 1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2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글 논어 - 시대를 초월한 삶의 교과서를 한글로 만나다 한글 사서 시리즈
신창호 지음 / 판미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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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논어』를 읽고 있다. 『논어』를 읽으면 겸손과 베풂을, 나쁠 때는 용기와 위안을 얻는다. 하지만 가끔 『논어』의 본의를 왜곡하면서 읽을까봐 조심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논어』는 동양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사랑받는 고전 중의 하나다. 그런 만큼 각종 해설서, 주석서, 입문서 등도 다양하게 나와 있는 편이다. 사람들은 『논어』 원전의 목차에 맞추어 일부를 조금씩 맛보거나 원전 전체의 해석서를 읽는 수밖에 없었다. 또는 아예 경제적인 입장에서, 경영자의 입장에서  등등 한쪽의 시각에 맞추어 잘리고 편집된 『논어』를 보았다. 전공자가 아닌 이상, 『논어』가 말하려고 하는 전체의 모습은 그리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논어』는 공자가 생전에 쓴 것이 아니라 그가 죽은 뒤 제자들이 모여 편찬한 어록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공자에 담긴 이야기 20편은 어찌 보면 ‘수수께끼 모음집’ 같은 모호한 성격을 띠고 있다.  『논어』 전체를 관통하는 체계적인 구성 원리나 앞뒤 문장 간의 연관성도 부족하다. 심지어 앞쪽에서 말한 내용과 어긋나는 문장이 등장해 읽는 이를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논어』는 일반인이 쉽게 도전하기엔 너무 어려운 점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어』는 지금도 널리 읽혀지는 고전이다. 인터넷 서점 웹사이트에 ‘논어’를 키워드로 입력하면 관련 내용물이 엄청나게 많이 나온다. 시판되고 있는 『논어』 해석본만 해도 100여종 정도는 넘을 것이다. 그만큼 한국 사회가 『논어』를 재생산하고 소비하고, 수용한다는 방증이다.

 

고전은 잘 숙성된 음식처럼 음미할수록 깊은 맛이 난다. 논어를 읽은 중국의 정자(程子)라는 학자는 “17, 18세부터 논어를 읽었으니 당시에 이미 글뜻은 알았으나, 더욱 오래 읽고서야 의미심장한 줄을 깨달았다”고 한다. 공자와 그 제자와의 문답을 주로 하면서 공자의 발언과 행적을 통해 삶의 지혜가 되는 말들을 간결하고 함축성있게 싣고 있다.

 

『논어』를 쉽고 바르게 읽는 것이 중요하다. 번역과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없을 수 없다. 시대에 따라 해석과 평가가 달라지곤 한다. 책 속 공자의 사상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면서 그가 권력자의 입장에서 민중을 억압했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인간관계의 회복을 강조한 그의 가르침이 사회적 요구와 맞아떨어지면서 재평가되고 있다.

 

『논어』를 읽으면 다양한 역자가 해석한 내용을 같이 보는 편이다. 처음에 한 권만 쭉 읽다가 가끔 이해가 안 되는 문장을 나오면 또 다른 역자의 『논어』를 읽어본다. A라는 학자는 『논어』의 어느 문장을 이렇게 해석했는데, 과연 B라는 학자는 이 문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했는지 서로 비교를 하는 것이다. 『논어』를 바라보는 역자의 해석은 일반적으로 동일하면서도 약간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논어』의 핵심사상을 한마디로 정의되는 ‘인’(仁)은 그 뜻이 무척 다양하다. ‘어질다’, ‘사랑’, ‘사람 구실’, ‘사람다움’ 등으로 규정된다. ‘인’은 천 가지의 얼굴을 가진 한자라고 보면 된다. 지금까지 수많은『논어』 연구가들은 동양 사유와 일상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인’의 개념을 둘러싸고 의미와 기원을 검토하고 해석했다.

 

다산 정약용의 『논어고금주』를 바탕으로 해석한 故 이을호 선생은 ‘인’을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친애, 형과 아우 사이의 우애처럼 ‘두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사람의 길’이라고 소개했다. 반면 성백효 교수는 다산의 해석을 반박하는 입장이다. 인과 효제(孝弟)를 동일시한 다산을 비판하고 이를 각각 내면의 본성과 외면의 실천으로 구별한 주자의 『집주』를 높이 평가한다. 관점에 따라 『논어』를 바라보는 방식과 해석에 차이점이 있다. 그래서 『논어』를 한 번 완독했다고 해서 100% 이해했다고는 볼 수 없다. 그 많은 번역서들 사이에서 딱 한 권만 읽고 독파하는 방식은 오독할 위험성이 있다.

 

『논어』를 이제 막 열심히 읽기 시작했을 뿐이고, 동양사상의 전반적인 내용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초보자 수준이라서 괜히 공자 앞에서 『논어』라는 문자를 입에 담기가 조심스럽다. 시간을 내서라도 원문과 해석서를 같이 읽어 봐야 한다.

 

故 이을호 선생, 성백효 교수, 김원중 교수의 『논어』까지 세 권을 읽고 있다가 최근에 출간된 신창호 교수의 『한글논어』도 덤으로 읽기 시작했다. 한자 원문 위주로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자를 모르는 독자나 청소년들에게는 어렵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사실 고등학생 때 한창 한자를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을 때 겁 없이 독학으로『논어』한자 원문 중심으로 읽어보려는 시도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참고한 책이 바로 성백효 교수의 『논어집주』였는데 작심삼일이 되고 말았다. 고등학생이라면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입시 준비와 왕성한 호기심 때문에 한 우물을 깊게 파지 못하는 성격 탓에 무모한 도전으로 남게 되었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논어』 읽기를 주저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 바로 ‘한자’였다. 그 당시 교과목에도 ‘한문’이 있었고, 학교에서 실시하는 정기고사에서 만점을 놓치지 않을 정도였다. 한문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좀 더 다양한 한자를 익히고, 한문으로 된 문장을 풀이하는 법을 공부할 때 적당한 텍스트로 『논어』를 추천하셨기에 나름 심화학습을 시도해본 것이다. 한문 원전을 그대로 직역하고, 풍부한 분량의 역주까지 국한문 혼용체를 된 성백효 교수의 『논어』를 동양사상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일개 고등학생이 읽는다는 것은 맨 땅에 헤딩하는 격이다. 한자를 안다고 해서 한자로 된 『논어』를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 읽다가 모르는 한자는 옥편을 찾아가면서 풀이했지만, 책을 읽어나가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당시 그렇게 여유롭게 한자 풀이를 하면서 『논어』를 읽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논어』가 번역이 잘 되었고, 공자 전문가가 공자 사상의 핵심을 제대로 짚어서 정리했더라도 일단 가독성이 떨어지면 독자는 부담이 생기고, 『논어』에 대한 흥미가 떨어질 수 있다. 동양사상에 입문하는 초보 독자라면 『논어』의 핵심 사상이 최대한 훼손되지 않으면서 우리말로 쉽게 풀이된 것을 읽으면 좋다.

 

신창호 교수의 『논어』는 일단 가독성이 좋다. 오래전부터 『논어』를 해석할 때 많이 사용된 텍스트인 주자의 『논어집주』를 한글로 풀이했으며 각각 문장에 대한 해설을 붙였다. 저자의 목표는 한글로 풀이된 『논어』를 통해 한국적으로 사유하려는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논어』의 주요 개념도 한자가 아닌 한글로 풀이했다. 성인군자(聖人君子)를 문장의 상황에 따라 ‘지도자’, ‘착한 사람’ 등으로 표현을 다르게 했고, ‘사’(士)를 기존의 ‘선비’라는 번역 대신에 ‘하급 관리’로 풀이했다. ‘인’은 ‘열린 마음’, ‘포용력’, ‘사랑’ 등으로 풀이했다. 한자 원문은 부록으로 따로 묶어 책 뒤편에 수록했다. 

 

故 이을호 선생도 경전의 한글화를 시도했는데 한국을 대표하는 사상가 다산의 『논어』해석을 따랐다. 주자의 해석을 따른 ‘한글로 된 『논어』’와 비교하면서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이을호 선생의 『한글논어』의 특징은 공자가 제자에게 직접 얘기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생동감 있게 문장을 풀이했다는 점이다. 또한 문장이 대체적으로 간결하다. 이을호 선생도 일반적인 『논어』역서처럼 각각 구절마다 ‘한자로 된 원문-풀이-해설’ 방식을 취하고 있는 반면 신창호 교수의 『한글논어』는 ‘풀이-해설’ 방식이다. 원문의 묘미를 느끼면서 읽고 싶은 독자라면 ‘선(先) 원문 후(後) 풀이’의 『논어』가 적합하지만, 한자를 잘 모르거나, 공자의 사상을 좀 더 가까이 알고 싶은 독자는 신창호 교수의『한글논어』를 읽는 것이 좋다.

 

특히 신창호 교수의『한글논어』는 책의 1부로 공자의 일생과 역사적 배경을 먼저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논어』를 좀 더 수월하게 읽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기본적인 틀을 제공하고 있다. 옥편을 찾아가면서 『논어』를 번거롭게 읽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신창호 교수의『한글논어』도 가독성이 좋은데 이전까지 풀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논어』해석의 차별성을 두면서도 일상적인 언어로 쓰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논어』의 첫 문장 ‘학이’(學而)의 유명한 문장을 풀이한 것을 비교해본다.

 

선생 “배우는 족족 내 것을 만들면 기쁘지 않을까! 벗들이 먼 데서 찾아와 주면 반갑지 않을까! 남들이 몰라주더라도 부루퉁하지 않는다면 참된 인간이 아닐까!” (이을호 역)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 동지(同志)가 먼 지방으로부터 찾아온다면 즐겁지 않겠는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서운해 하지 않는다면 군자(君子)가 아니겠는가. (성백효 역)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않은가?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이 또한 즐겁지 않은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으면 또한 군자답지 않은가?” (김원중 역)

 

공자는 배움을 통해 성취하려는 삶의 전모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삶에 필요한 기예를 배우고 익혀라. 그것만큼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자신을 알아주고 함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올 때, 이보다 반가운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남들이 알아주건 알아주지 않건, 자신의 자리에서 역할과 기능을 충실히 해 나갈 때, 참된 사람은 그 진면목이 드러나리라!” (신창호 역)

 

『논어』는 시대에 따라 얼마든지 계속 재해석되고 번역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동양철학이나 관련 경전을 오랫동안 연구하고, 읽은 사람이 여러 명이 모이면 『논어』를 읽고 난 뒤의 소견과 해석에 제각각 차이가 있을 것이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듯이 역자의 해석이 지나치면 공자의 사상이 왜곡될 수도 있다.

 

하지만 『논어』의 문장 해석에 옳고 그름을 따지는데 집착한다면 배움의 단계가 무너지고, 다른 사람과 연대하는 신뢰가 사라진다.

 

“공자가 말하였다. 함께 배울 수는 있어도 똑같이 길을 갈 수는 없다. 함께 길을 갈 수는 있어도 똑같이 설 수는 없다. 함께 설 수는 있을지라도 똑같이 법도에 맞게 실천할 수는 없다.” (자한(子罕)편 중에서, 252쪽)

 

『논어』는 언어에 갇힌 낡은 지식 모음집이 아니다. 일상적인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윤리적 지침서이다. 신창호 교수는 서문에서 『논어』를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일상의 미학, 삶의 예술’이라고 밝혔다. 『한글논어』가 필요한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누구나 읽는 고전, 죽기 전에 한 번쯤은 꼭 읽어봐야 할 책이 단지 ‘어렵다’는 인식 때문에 책 속에 있는 그 훌륭한 지식이 모든 사람에게 공유되지 못한다면 일상과 동떨어진 학문을 집대성한 책이 되고 만다. 『논어』에 관한 오해 중 하나가 바로 ‘유교 경전’에서 느껴지는 근엄한 분위기다. 『논어』를 읽기 전에 왠지 증조할아버지 앞에서 무릎을 꿇어 공손하게 앉아 있는 것처럼 읽어야하는 느낌이 든다. 이러한 선입견 때문에 요즘 같은 시대에 『논어』읽기의 중요성을 간과하게 된다. 어른들 말씀이 잔소리처럼 여겨지고 귀담아 듣지 않으려는 젊은 세대처럼 말이다 . 하지만 어른들 말씀에 틀린 말이 없는 것처럼  『논어』는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본적 인간관계를 가르쳐주고 있다. 오래 읽다 보면 일상생활 속에서 뜻밖에도 자주  『논어』속의 구절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우연한 만안남을 통해 읽었던 구절을 상시키시는 것. 이것이 바로 ‘일상의 미학, 삶의 예술’에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이 아닐까.

 

그때나 지금이나 삶의 본질이 바뀐 건 아니다. 따라서 공자의 일상적 삶의 생각을 전하고 있는 『논어』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증조할아버지의 꾸지람과 잔소리에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 우리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덕담을 전하는 것이다. 『논어』도 그렇다. 그 안에는 꼭 알아야 할 삶의 윤리와 일상의 지혜가 있다. 자꾸 생각하려는 두뇌에 힘을 빼고 읽는다면 『논어』가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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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 2015-02-02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논어 서평을 찾아보다가 cyrus님 서재에 또 왔네요.
저도 성백효 <논어집주> 읽다가 멘붕 왔었기 때문에 공감하며 읽었습니다.ㅋㅋㅋ
참 좋은 서평입니다.

cyrus 2015-02-02 21:17   좋아요 0 | URL
제가 논어를 읽은 지 얼마 안 됐고, 꾸준히 열독하지 않아서 깊이 알지 못합니다. 뭣도 모르고 자비로 <논어집주>를 사서 읽었는데 한자가 너무나 많아서 결국 중고서점에 팔았습니다. 아예 보지도 않는 책을 계속 책장에 방치해둘 수가 없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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