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조네(Giorgio, 1477?~1510)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 베르메르) 못지않게 베일에 싸인 화가이다. 조르조네는 짧은 생애동안 뛰어난 재능을 가진 화가로 활동하여 명성을 얻었지만, 그의 삶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 [구판] 조르조 바자리 《이태리 르네상스의 미술가 평전》 (한명출판사, 2000)
* [개정판] 조르조 바자리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 2》 (올재, 2017)
※ 두 책 모두 같은 역자(이근배)임.
조르조네의 생애를 소개한 조르조 바자리(Giorgio Vasari)에 따르면 피렌체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라는 거장이 활동하고 있었을 때, 조르조네가 베네치아를 주름잡고 있었다고 한다. 조르조네의 등장이 베네치아 회화의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르조네는 카스텔프랑코(Castelfranco)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인들의 이름에는 자신들이 태어난 고향 이름이 들어가 있다. 빈치(Vinci)는 피렌체 근교에 있는 자치도시(Comune, 코무네) 이름이다. 이곳에 레오나르도가 태어나서 그의 이름이 ‘빈치 출신의 레오나르도’, 즉 레오나르도 다 빈치로 알려졌다. 이렇듯 조르조네의 본명은 조르조 바바렐리 다 카스텔프랑코(Giorgio Barbarelli da Castelfranco)이다.
조르조네는 ‘젊고 유능한 예술가’로서의 레오나르도와 비슷한 행보를 걷었다. 레오나르도와 조르조네는 공통으로 류트(Lute)라는 악기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았다. 조르조네는 사교계 모임에 자주 참석했고 베네치아 사교계 최고의 인기 예술가로 알려졌다. 바자리는 빛과 그늘을 다루는 조르조네의 표현력을 레오나르도와 비교했다. 조르조네도 레오나르도 특유의 화법인 스푸마토(Sfumato: 물체의 윤곽선을 자연스럽게 희미하게 그리는 명암법)를 능숙하게 사용했다. 그러나 조르조네는 천부적인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지 못하고 33세(혹은 3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사교계 연회에서 알게 된 여성과 사랑에 빠져 교제를 하게 됐는데, 이 여성이 흑사병(Plague, 페스트)에 걸렸다. 이 사실을 몰랐던 조르조네는 흑사병에 걸려 목숨을 잃고 말았다.
* 마크 로스킬 《미술사란 무엇인가》 (문예출판사, 1990)
* 스티븐 파딩 《501 위대한 화가》 (마로니에북스, 2009)
르네상스 미술 전공 미술사가인 마크 로스킬은 바자리가 조르조네의 생애에 관한 내용을 수집할 때 상당히 애먹었을 거로 추정한다. 이상하게도 조르조네의 생전 활동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고, 조르조네가 죽고 난 후 그에 대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스킬은 조르조네의 죽음에 관련된 일화를 전설로 치부하고 있다. 《501 위대한 화가》 ‘조르조네’ 편에 보면 조르조 바사리가 조르조네를 ‘머리를 멋있게 기른 온화한 성격의 미남’이라고 썼다는 내용이 나온다. 바자리의 기록에 근거하면 조르조네가 뛰어난 외모와 성품을 지닌 미남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머리를 멋있게 길렀다’는 내용은 바자리의 책(그가 쓴 《예술가 열전》을 번역한 책)에 나오지 않는다. 바자리는 조르조네를 ‘몸집이 큰 남자’라고 묘사했다.[1] 이 내용이 조르조네의 외모를 짐작할 수 있는 바자리의 유일한 설명이다.
* 에른스트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예경, 2003, 2013, 2017)
* 진중권 《교수대 위의 까치》 (휴머니스트, 2009)
조르조네의 몇 안 되는 작품 가운데 가장 불가사의한 작품은 『폭풍우』이다. 아쉽게도 우린 그림 속에 서 있는 남녀의 정체가 무엇인지 영원히 알아낼 수 없다. 그밖에도 관람자의 눈을 사로잡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또 있다.
남자 옆에 있는 부러진 원주(圓柱)와 회색빛 구름 사이에 번쩍거리면서 빛나는 번개. 이 그림 속 수수께끼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금까지 이 그림을 해석하기 위해 주장한 가설이 무려 스무 개나 넘는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미술사가 리오넬로 벤투리(Lionello Venturi)와 진중권은 『폭풍우』의 번개에 주목한다. 『폭풍우』는 ‘눈으로 보는 풍경화’일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그 그림에 숲, 하늘, 물, 도시 그리고 날씨 현상 등 눈으로 보는 소재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폭풍우』는 자연현상의 변화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풍경화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이 그림 속에 숨겨진 ‘진짜 의미’를 찾아내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폭풍우』는 ‘무언가 다른 것을 말하고 있는 숨겨진 텍스트’이며 그림 속 대상은 알레고리(Allegory)이다. 진중권은 『폭풍우』에 묘사된 자연을 ‘신이 떠난 세상’, 즉 자연현상의 실체를 파악한 인간의 관심이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이 그림을 알레고리 측면으로 바라보면 또 다른 해석이 튀어나온다. 그림 속 남녀가 신화 또는 기독교와 관련된 전설적인 인물을 상징한 것이라면, 번개는 신의 능력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상징물이 된다. 에른스트 곰브리치(Ernst Gombrich)는 아기가 장래에 영웅으로 성장하는 존재,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여성은 아기의 어머니(젖을 먹이는 여성이 ‘유모’일 수도 있다), 남성은 의지할 데 없는 어머니와 아기를 보살펴주는 친절한 목동으로 해석했다. 곰브리치의 해석과 연관 지어 부러진 원주와 번개를 설명하면 각각 ‘아기 영웅이 겪게 될 시련’, ‘영웅의 성장을 지켜보는 신’이다. 결국, 이 그림에 나타난 자연은 ‘여전히 신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관람자는 그림의 ‘진짜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 다양한 도상학적 분석 방식을 동원할 수 있고, 자신만의 색다른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폭풍우』는 ‘마음으로 보는 풍경화’이다. 관람자의 감정이입은 ‘보이는 것(직접적 표현)’과 ‘보이지 않은 것(암시적 표현)’의 간극을 채운다.
나는 『폭풍우』가 종교적 알레고리가 들어간 풍경화라고 생각한다. 세 명의 인물은 이집트로 피신하는 ‘성 가족(Holy Family)’이다.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에 제작된 『폭풍우』에서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중세 시대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마크 로스킬은 『폭풍우』와 『카스텔프랑코의 성모』(약칭 ‘성모’)에서 발견되는 유사점을 근거로 두 그림 모두 조르조네의 작품이라고 확신한다.
『폭풍우』 그림 왼쪽에 있는 목동은 『성모』 그림 왼쪽에 있는 갑옷 입은 기사(율리우스 1세의 뒤를 이어 로마 교황으로 축성된 성 리베리우스라고 한다)의 자세와 똑같다. 그리고 『폭풍우』 속 어머니와 아기는 아기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모습과 닮았다. 그러면 『폭풍우』의 목동의 정체는 마리아의 남편 요셉(Saint Joseph)이다. 기사 복장을 한 성인과 요셉. 이 두 사람은 성모와 아기 예수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진 남성이다. 중세 기독교인들은 성모 마리아를 절망과 피폐해진 정신에 안식과 활력을 불어넣는 은혜로운 존재로 묘사했고, 성모는 ‘중세 남성들이 존경하는 여성상’으로 자리 잡았다.
* 크리스틴 드 피장 《여성들의 도시》 (아카넷, 2012)
* 프랑수아 라블레 《팡타그뤼엘 제3서》 (한길사, 2006)
그러나 초기 기독교인들은 ‘원죄 의식’을 근거로 여성을 ‘타락하고 남성보다 도덕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바라봤다. 기독교 내 여성차별 인식은 여성에 대한 차별의 이데올로기로 형성됐고, 편협한 사고방식은 중세로 이어졌다. 크리스틴 드 피장(Christine de Pizan)은 펜을 무기 삼아 여성을 비하하는 풍조와 맞서 싸웠다. 그러나 ‘인간’이 세상의 중심에 서기 시작한 르네상스가 도래했는데도 여성 차별적 편견은 여전했다. 중세의 낡은 관행을 풍자한 프랑수아 라블레(Francois Rabelais)는 ‘남성보다 못한 여성’을 무시하는 구시대적 인식을 그대로 답습했다.
* 아일린 파워 《중세의 여인들》 (즐거운상상, 2010)
* 요한 하위징아 《중세의 가을》 (연암서가, 2012)
* 카리 우트리오 《이브의 역사》 (도서출판 자작, 2000)
* 섀리 엘 서러 《어머니의 신화》 (까치, 1995)
중세 절정기에 성모 숭배와 기사도 정신이 하나가 되는 ‘어설픈 접목’이 이루어졌다. 중세 사람들은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는 성모를 ‘존경의 대상’으로 바라봤다. 특히 기사들은 성모와 같은 여성을 숭배하고 수호하는 일이 기사도 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의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조르조네의 『카스텔프랑코의 성모』는 성모 숭배와 ‘갑옷으로 무장한 성인’의 조합을 도상학적으로 나타낸 그림이다. 그림 속 성인은 종교인이라기보다는 성모를 지키기 위해서 언제든지 싸울 수 있는 ‘전사’에 가깝다. 중세 시대가 무너지고 기사의 역할이 사라져도 남성들의 ‘성모 바라기’는 멈추지 않았다. 중세 말기부터 아기 예수에게 젖을 주는 성모를 묘사한 그림들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남성 기독교인들은 모유 수유를 하는 여성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성모의 모유 수유는 인정했다. 이때부터 그림 속 성모는 가슴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때론 헐벗은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자, 이제 당신이 여성을 이중적으로 바라보는 남성의 못된 시선을 이해했다면, 조르조네의 『폭풍우』를 볼 때마다 불쾌하게 느껴질 것이다. 『폭풍우』의 여성이 수유하는 자세가 어설프다. 그녀는 오른쪽 허벅지를 드러내 보인다. 남성 관람자의 시선은 그녀의 허벅지와 가슴으로 향한다. 따라서 『폭풍우』의 여성은 남성의 욕망이 반영된 ‘에로틱한 성모’를 상징한다. 성모를 지켜야 할 기사가 사라지자 그 자리에 ‘한층 젊어진 요셉’이 등장했다. 요셉은 아기 예수를 양육하는 성모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 주변을 감시해야 한다. 그리하여 여성은 ‘자녀 양육에 힘써야 하고, 남성에게 보호받아야 할 연약한 존재’가 된다.
『폭풍우』는 중세부터 르네상스까지 이어지는 편협한 여성 차별 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불쾌한 그림’이다. 나의 그림 해석에 이견이 있을 거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림을 곰곰이 따져 보면 남성 중심적 세계를 보여주는 알레고리가 읽힌다.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남성들이 열광한 성모 마리아는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이상적인 존재’이다. 유럽 전역을 휩쓴 흑사병의 위력을 경험한 남성들은 암울한 현실이 주는 괴로움을 잊기 위해 성모를 예찬했다. 조르조네는 『폭풍우』와 『카스텔프랑코의 성모』를 그리는 내내 흑사병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불길한 예감을 감지했던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성모는 천부적인 능력을 갖춘 젊은 화가의 영혼을 지켜주지 못했다.
[1] 이근배 역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 2》 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