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미(Me)
No. 4
<Thomas Ruff: d.o.pe>
장소: PKM 갤러리
전시 기간: 2024년 2월 21일 ~ 4월 13일
2024년 3월 1일 오후 12시경에 만남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대 길목에 서서
예쁜 촛불로 그대를 맞으리
향그러운 꽃길로 가면 나는 나비가 되어
그대 마음에 날아가 앉으리
아 한 마디 말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되고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대를 위해 노래를 부르리
그대는 아는가 이 마음
주단을 깔아놓은 내 마음
사뿐히 밟으며 와 주오
그대는 아는가 이 마음
- 산울림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1978년) 노랫말 1절 -
나는 예술 사진(fine-art photography)을 볼 줄 모른다. 나는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아주 오래전에 예언했던 ‘미래의 문맹자’에 속한다. 미래의 문맹자는 글자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사진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다.
* 발터 벤야민, 최성만 옮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 사진의 작은 역사 외》 (도서출판 길, 2007년)
* [절판] 발터 벤야민, 에스터 레슬리 엮음, 김정아 옮김 《발터 벤야민, 사진에 대하여》 (위즈덤하우스, 2018년)
사진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왔지만, 나는 여전히 예술 사진이 낯설다. 예술작품을 감상하면 습관처럼 그 작품에 담긴 ‘내용’을 찾으려고 한다. 나는 예술작품 앞에서 술래가 된다. 술래는 예술가가 작품을 만든 의도를 찾거나 작품 속에 있는 알레고리(allegory)를 해석하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요즘은 특별한 내용이 없는 예술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예술 사진도 마찬가지다. 이런 유형의 예술작품은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다. 전혀 아름답지 않고,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예술작품은 낯설면서도 어렵다.
벤야민이 경계하는 상업 사진은 사람들에게 항상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상만 반복해서 보여주기만 한다. 예술 사진의 가치를 알아본 벤야민은 사진작가들이 사진만 찍어서는 예술가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사진작가들에게 글을 쓰라고 조언한다. 상업 사진에 반기를 든 사진작가는 자신의 예술 사진에 대한 설명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벤야민과 같은 나라에서 태어난 사진작가 토머스 루프(Thomas Ruff)는 사진을 글로 설명하는 행위를 거부한다. 사진에 붙은 설명글은 감상자가 편안하게 해석할 수 있게 깔아놓은 푹신한 매트리스다. 하지만 루프의 사진 작품에 감상자를 위한 매트리스가 없다. 루프는 ‘현실을 묘사하는 사진’이라는 익숙한 정의에 타협하지 않는 사진작가다. ‘현실을 묘사하는 사진’은 감상자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온다. “내가 찍은 세상이 어때? 멋지지?” 멋짐이 흘러넘치는 사진은 감상자 앞에 매트리스를 펼친다. 경계심을 누그러뜨린 감상자는 사진을 해석한다.
루프의 사진 작품에 감상자가 보고 싶은 어떤 형상이나 내용이 없다. 오로지 ‘이미지’만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루프는 컴퓨터로 합성하거나 일부러 형상을 흐리게 한 사진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는 현실을 찍기보다는 현실을 ‘재조작’했다.
서울 삼청동의 PKM 갤러리에 전시된 <d.o.pe> 연작은 ‘현실을 묘사하는 사진’이 아니며, 감상자를 만족시켜 주는 작품도 아니다. <d.o.pe> 연작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독특하다. 루프는 벽에 거는 대형 카펫을 만드는 회사에 자신이 컴퓨터로 만든 이미지가 들어 있는 카펫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완성된 여러 장의 카펫 중에 본인이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골라서 설명글 대신에 ‘d.o.pe’라는 표제를 붙였다.
* [절판] 올더스 헉슬리, 권정기 옮김 《지각의 문. 천국과 지옥》 (김영사, 2017년)
* 윌리엄 블레이크, 서강목 옮김 《블레이크 시선》 (지만지, 2012년)
* [절판] 윌리엄 블레이크, 김종철 옮김 《천국과 지옥의 결혼》 (민음사, 1990년)
‘d.o.pe’는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자전적 에세이 《지각의 문》과 관련이 있다. ‘d.o.pe’는 《지각의 문》(The Doors of Perception)의 약자다. 작품 제목에 두 개의 점을 빼면 마약을 뜻하는 단어(dope)가 나온다. 헉슬리는 1953년에 메스칼린(Mescaline)이라는 환각제를 복용하기 시작한다. 1963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메스칼린뿐만 아니라 LSD도 복용했다. LSD는 당시 기성세대의 문화를 거부한 히피족들이 즐겨 찾은 환각제였다. 헉슬리는 《지각의 문》과 《천국과 지옥》, 이 두 권의 책에서 환각에 빠진 상태가 되면 현실을 뛰어넘은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두 권의 책 제목은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시에서 따왔다. 블레이크는 어린 시절에 환영(幻影)을 보기 시작한 이후로 자신의 환각 상태를 시와 그림으로 표현했다.
* 발터 벤야민, 최성만 옮김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 폭력 비판을 위하여 / 초현실주의 외》 (도서출판 길, 2008년)
* 제임스 글릭, 박래선 옮김, 김상욱 감수 《카오스》 (동아시아, 2013년)
* 필립 볼, 조민웅 옮김 《자연의 패턴》 (사이언스북스, 2019년)
* [절판] 에드워드 로렌츠, 박배식 옮김 《카오스의 본질》 (파라북스, 2016년)
루프의 <d.o.pe>에 나타난 이미지는 ‘우연히 부서진 현실’이다. ‘우연히 부서진 현실’은 프랙털(fractal)이다. 프랙털은 ‘우연히 부서지다’라는 뜻의 라틴어 ‘fragere’에서 파생된 형용사 ‘fractus’에서 유래된 단어다. 수학자들은 프랙털을 ‘부분이 전체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형태’로 본다.
토마스 루프
『d.o.pe 15』
2023년
루프가 만든 이미지는 프랙털 패턴이다. <d.o.pe>는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예술 사진을 옹호한 벤야민은 ‘초현실적 사진’에 회의적이다. 1929년에 쓴 <초현실주의>라는 글에서 그는 유령을 부르는 모임, 신비주의, 최면술을 선호하는 초현실주의자들을 비판한다. 루프의 초현실적 사진은 벤야민이 비판한 비현실성과 무관하다. 우리는 프랙털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지만, 주변을 자세히 보면 프랙털을 발견할 수 있다. 구불구불한 해안선에서 일부 지역을 확대하면 전체 해안선과 유사한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고사리의 커다란 잎은 작은 고사리 잎과 똑같이 생겼다.
토마스 루프
『d.o.pe 10』
2022년
<d.o.pe> 연작은 익숙하면서도 아름다운 현실을 해석하게 만드는 매트리스가 깔려 있지 않은 작품이다. 루프가 갤러리 벽에 깔아놓은 것은 이상한 ‘프랙털 주단’이다. 《카오스》의 저자 제임스 글릭(James Gleick)은 프랙털을 ‘마음속에서 무한을 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프랙털 주단은 무한한 이미지의 황홀경을 느낄 줄 아는 관람자를 맞이한다. 처음에 관람자는 낯선 이미지를 주시한다. 이미지에 익숙해진 관람자는 말없이 프랙털 주단을 사뿐히 밟는다. 관람자 한 사람의 눈빛에 밟힌 프랙털 주단은 ‘예술 사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