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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키아
줄리앙 슈나벨 감독, 게리 올드만 외 출연 / 무비홀릭 / 2010년 4월
평점 :
깊고 푸른 회랑. 희뿌연 빛줄기를 따라 어린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넓은 방에 들어선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 한 점. 일그러진 얼굴, 상처 입은 말, 세상을 버티고 선 소 등이 뒤틀린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분노와 슬픔, 격정이 뒤섞인 그림이다.
엄마는 울고 있다. 흑백의 단색에 아이들 그림처럼 단순한 그림인데도 말이다. 아이는 엄마의 얼굴을 보며 생각한다. 엄마를 울릴 수 있는 화가가 되리라. 그가 바로 ‘검은 피카소’로 불리던 화가 장 미셀 바스키아이고, 그때 본 그림이 피카소의 「게르니카」이다. 영화 <바스키아>의 첫 장면이다.
바스키아.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화가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27세에 요절한 흑인 화가이다. 뉴욕의 거리를 전전하며 벽에 그림을 그리는 그래피티였다. 뉴욕 현대미술관 앞에 앉아 엽서와 티셔츠에 그림을 그렸고, 심지어 담배 종이에 그림을 그려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지하철역과 거리의 낙서로 ‘공공의 적’이었던 그는 어렸을 적 교통사고로 비장을 들어낸 적이 있다. 그 때 어머니로부터 선물 받은 <그레이의 해부학> 책에서 영감을 얻어 전통적인 미술언어에 구애받지 않고 내키는 대로 닥치는 대로 그려낸다. 시멘트벽, 분수대, 양철벽, 보도블록 등 틈만 보이면 그림을 그렸다.
바스키아 「교활한 자들에 에워싸인 성 조 루이스」 1982년
그는 자신의 우상이자 흑인들의 우상이었던 재즈뮤지션 찰리 파커, 야구선수 행크 아론 등 미국 사회의 흑인 영웅들을 왕관을 씌운 모습으로 그려냈다. 거칠고 강렬하게, 때론 천진하고 심각하게 정치적인 주제를 다루면서 현실과 기존의 가치에 감자를 먹이기도 한다.
바스키아가 유명해지자 사람들이 그림이 그려진 벽을 모조리 뜯어내 팔기도 했다. 뉴욕 뒷골목, 가난한 흑인들과 숨 막힐 듯 억눌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는 최고의 우상이었다. 4개월 만에 유명해지고, 6개월 만에 떼돈을 버는 예술가의 초단기 성공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영화는 화가의 꿈을 가지고 뉴욕의 뒷골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잘 그려주고 있다. 식당 웨이트리스로 집에서 그림을 그리는 바스키아의 여자 친구 지나, 40세 넘어서도 화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화랑의 전기 기술자 등 ‘꿈의 도시’ 뉴욕을 찾아온 무수한 무명화가들을 대변한다.
그 중에 바스키아는 단연 ‘걸인’의 모습이다. 머리는 새집처럼 감아 올렸고, 때가 꼬질꼬질한 옷에 다 떨어진 운동화를 끌며 흐느적거리며 걷는다. 앤디 워홀이 들어간 레스토랑을 찾아갈 때도 이 모습이다. 딱지처럼 그린 그림을 워홀 앞에 내며 “1장당 10달러에 사라”고 한다. ‘걸인’의 모습에 내칠 만도 하지만 워홀은 그림을 찬찬히 보고는 몇 장을 산다. “응, 괜찮군. 근데 손이 별로 가지 않은 그림인데?”라고 묻자 바스키아는 “당신 그림도 그렇지 않으냐?”고 한다.
앤디 워홀과의 운명적 만남이다. 어느 날 파티에서 그의 그림을 본 미술 평론가 르네의 눈에 띄면서 주류의 수면 위로 떠오른다. 르네는 타임스퀘어 전시에서 그를 처음 만나 후견인이 될 것을 자청하고 나서 그를 스타로 키워낸다. 뉴욕 뉴웨이브 전시회에 참가하게 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얻는다. 화랑업자 브루노와 전속 계약을 맺으면서 워홀과도 재회하게 된다. 그 후 브르노를 만난 그의 화랑에 전속작가가 되어 당대의 쟁쟁한 예술가들과 교유하면서 성공한 예술가들의 대열에 동참한다. 그의 이러한 성공의 바탕은 그가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탓에 흐르는 감정에 따라 몸을 맡기는 힙합 리듬 같은 자유로움에 있다.
바스키아는 시사 주간지 타임의 표지를 장식하는 등 벼락 성공(?)을 한다. 아이들 그림처럼 천진난만한 그림과 낙서풍의 휘갈겨 쓴 글 등은 아프리카의 원시적 예술과 이집트의 벽화에 비유되면서 9년간 전성기를 누렸다.
바스키아 「자화상」 1982년
그러나 예술적 경계를 뛰어 넘었지만, 현실적 벽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흑인 예술가라는 타이틀은 영원히 그를 '블랙' 속에 갇히게 했다. 근사한 옷을 입고, 최고급 레스토랑에 가지만 여전히 그는 흑인이었다. 뒤에서 수군대는 백인 남자들의 조소를 그는 견딜 수 없었다. 젊은 시절 이미 성공했지만, 더 큰 성공에 대한 압박감도 이겨내야 했고, 그의 예술에 대한 비평도 이겨내야 했다. 감수성 예민한 어린 천재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앤디 워홀과 함께 예술 자본주의의 마스코트로 불렸지만 앤디 워홀이 콩쥐였다면, 그는 팥쥐였다. 성공의 대가로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옛 친구 베니와도 멀어지면서 이제 그는 외로운 젊은 흑인일 뿐이다.
무명 시절 벽에 낙서를 하면서 쳐다본 하늘에는 거대한 푸른 파도를 타는 서퍼가 등장한다. 새로운 물결에 대한 그의 희망이고, 열망이다. 이제 그에겐 푸른 지폐는 있지만, 푸른 파도는 없다.
그래도 그를 견디게 한 것은 앤디 워홀이란 정신적인 지주였다. 그를 둘러싼 갖가지 의혹에도 그를 스승으로 모신다. 그러나 1987년 2월 워홀이 죽자 바스키아는 실의에 빠진다. 그리고 마약에 빠져 거리를 방황하다 거리에서 생을 마감한다. 거리에서 태어난 천재 화가는 결국 거리에서 끝을 맺은 것이다.
28년이라는 짧은 생, 코카인 중독으로 비극적 죽음을 맞은 그의 삶과 예술은 그의 친구이자 동료화가였던 줄리앙 슈나벨에 의해 영화로 그려지면서 현대미술에 대한 오해와 작가에 대한 신비화, 미술시장의 속성과 화상들의 인기 작가를 만들기 위한 작전 등등을 소상하게 드러낸다.
이 영화에는 데이빗 보위, 게리 올드먼, 데니스 호퍼 등 대 배우들이 출연한다. 뉴욕에서 명멸한 한 천재 화가를 기리는 뜻이다. 화가 출신답게 줄리앙 슈나벨은 감각적인 영상과 애정 넘치는 감수성으로 바스키아의 삶을 기린다. 바스키아를 선택해서 처음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어린나이에 분에 넘치는 자리에 올라 오랜 친구들과 헤어지고 매스컴과 화상들에게 이리저리 치여 섬세한 감성이 멍들기 시작하면서 외로움을 타는 성공의 이면과 문화계의 위선과 방탕 속에서 번민하고 방황했던 바스키아를 바로 곁에서 지켜보았기에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고독한 천재’ 바스키아를 그려낼 수 있었다.
바스키아의 그림은 어린 아이가 낙서를 한 듯, 자유롭고 제멋대로다. 미술에 관한 한 정규 교육을 받은 바 없는 그의 작품에 구도의 개념이란 있을 수 없다. 게다가 하나의 공간에 여기저기 널려 있는 개체들 사이에서는 그 어떠한 연관성도 찾아볼 수 없다. 사람들이 이토록 장난스러움만이 가득해 보이는 바스키아의 낙서에 열광해온 것은 단지 그의 독특한 세계관 때문일까?
바스키아의 그림에 등장하는 ‘SAMO’(‘Same Old Shit’란 욕의 약자)는 그가 조직한 낙서 그룹이다. 세상에 대한 통렬한 낙서 정신(?)이라고 할까. 그러나 '무지한 동풍의 탄원처럼', '세이모는 신의 대안책이다' 등 그의 글은 많은 상징을 담고 있다. 어느 날 기자가 물었다.
"그림 안에 있는 글을 해석해 주시죠?" "그냥 글자예요." "압니다. 그런데 어디서 따온 겁니까?" "모르겠어요. 음악가에게 음표는 어디서 따오는지 물어보세요. 그건 그렇고, 당신의 말은 어디서 따옵니까?"
끊임 없이 자유를 갈망하던 바스키아. 예술계의 거대한 빛을 너무 일찍 잃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의 예술성을 발휘하기에는 오히려 나쁘지 않은 시대였던 것 같다. 바스키아 본인에게는 거칠고 험난한 세상이었겠지만, 그 어둠과 장애물 덕분에 검은 피카소가 탄생하지 않았을까, 라는 조금은 잔인한 생각을 해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