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들의 행성 - 여섯 개의 다리로 이룩한 위대한 제국
주잔네 포이트지크.올라프 프리체 지음, 남기철 옮김 / 북스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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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엔디아 가문(Buendía family) 사람들은 

마콘도(Macondo)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좁다란 섬처럼 생긴 도시 마콘도에 4년 넘게 비 바람벽이 푹푹 내린다

그칠 줄 모르는 거대한 비 바람벽에 쓸쓸한 고독만이 오고 간다.

[주1]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백 년의 고독은 환상과 현실이 얽섞인 도시 마콘도에서 부엔디아 가문이 몰락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부엔디아 가문이 6세대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근친혼이다. 가문의 대부(大父)이자 마콘도를 개척한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José Arcadio Buendía)사촌 우르술라(Úrsula)와 결혼한다. 친척들은 근친혼의 저주를 무시한 두 사람 사이에 돼지 꼬리가 달린 아이가 태어날까 봐 우려한다.


근친혼의 저주는 가문의 일곱 번째 후손 아우렐리아노(Aureliano)를 집어삼킨다. 돼지 꼬리가 달린 아우렐리아노는 가문의 6대손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Aureliano Babilonia)그의 이모 아마란타 우르술라(Amaranta Úrsula)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우르술라는 부유한 남편을 버리면서까지 조카를 사랑했지만, 아우렐리아노를 출산하다가 과다 출혈로 사망한다. 돼지 꼬리 아기마저 죽게 되자, 충격을 받은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는 밤새도록 거리를 헤맨다. 동이 틀 무렵에 정신을 차린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는 아내와 아기의 시체가 방치된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끔찍하게 매장되는 아기의 시체를 발견한다. 마당에 있는 개미 떼들이 바싹 마른 아기의 시체를 땅에 파놓은 소굴로 끌고 간다. 이 상황을 지켜본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는 부엔디아 가문의 저주와 관련된 예언을 떠올린다. 




가문 최후의 인간은 개미 밥이 되고 있다.” [주2]




마르케스는 세상의 모든 개미 떼가 아기의 시체를 끌고 간다고 묘사했다. 텍스트를 마주 보다가 불쑥 튀어나온 나의 특이한 궁금증. 아기의 시체를 운반할 정도로 힘이 센 개미 떼는 환상이 빚어낸 곤충일까, 아니면 실제로 볼 수 있는 곤충일까?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갓난아기의 시체는 개미 떼의 식량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개미는 먹잇감을 독차지할 수 없다. 파리와 송장벌레도 썩어가는 시체를 좋아한다. 이처럼 시체를 먹고 사는 곤충을 시식성 곤충(屍食性 昆蟲, carrion insect)’이라 한다곤충학자들은 시체를 좋아하는 곤충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개미, 파리, 송장벌레가 없으면 썩지 못한 시체들이 엄청 많이 널려 있었을 것이다. 시식성 곤충은 자연의 청소부. 시체를 청소하는 곤충 또는 동물을 스캐빈저(scavenger)’라고 한다. 그들이 있어서 시체의 부패가 빠르게 진행되고, 완전히 분해된 시체는 식물의 영양분이 풍부한 흙이 된다.


개미는 보기보다 힘이 세다. 자신보다 몸집이 큰 먹잇감을 혼자서 또는 동료 일개미와 협력해서 옮긴다. 자신보다 몸집이 크고 살아있는 먹잇감을 발견하면, 정예 부대처럼 공격을 감행하는 군대개미가 있다. 하지만 개미 떼가 갓난아기의 시체를 운반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개미집 밖은 위험하다. 개미의 천적들이 많다. 먹잇감을 노리는 다른 종의 개미들을 만나면 싸워야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린 일개미는 떠돌다가 객사한다. 지쳐서 죽거나, 아니면 천적에게 잡아먹혀서 죽는다.


독일의 두 개미 연구자가 함께 쓴 개미들의 행성소설보다 재미있는 개미 사회 이야기[주3]이 책에 나오는 일개미를 보면 친근함이 느껴진다. 열심히 일한 일개미도 당장 해야 할 일이 없으면 빈둥거린다. 근면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빈둥거리는 노동자를 질책하고, 찰나의 여유를 게으른 태도로 인식한다. 하지만 휴식은 내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소중한 시간이다. 일개미들은 일과 휴식의 균형을 맞출 줄 안다.


개미 제국은 계급이 뚜렷한 모권 사회다. 여왕개미는 수컷 개미를 만나 결혼 비행을 하고 알을 낳는다. 수컷 개미는 오직 여왕개미와의 짝짓기하기 위해 태어났다. 황홀한 결혼 비행이 끝나면 수컷 개미는 죽는다. 여왕개미가 되지 못한 자매들은 일개미로 살아간다. 일개미가 하는 일이 엄청 많다. 제일 중요한 임무는 미래의 여왕이 태어날 개미알들을 지극정성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개미알은 곰팡이와 병균에 취약하다. 일개미들은 특별히 신경을 써서 개미알이 저장된 곳을 청소한다.


인간의 눈에는 여왕이 되지 못한 일개미들이 불쌍해 보인다. 아늑한 궁전과 같은 개미집에서만 지내는 여왕개미가 죽도록 일하는 자매들보다 호사를 누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미 제국을 일군 것은 일개미다. 여왕개미는 알을 낳는 기계처럼 산다. 일개미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일을 척척 한다. 개미 제국의 사회 형태는 무정부주의에 가까운 민주주의.


식량을 찾으러 개미집을 떠나는 일개미들은 늙은 암컷이다. 단지 그들이 나이가 많아서 힘든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경험이 많아서 위험한 임무를 전담한다. 늙은 일개미의 몸속에 활력을 넘치게 만드는 호르몬이 있다고 한다. 우리 발밑에 지나가는 일개미들은 자신이 속한 군체(群體)를 위해 희생하는 베테랑이다일개미는 동고동락하는 자매를 각별하게 대한다. 도토리 개미(Temnothorax Nylanderi)는 병든 개미를 여왕개미 못지않게 보살핀다. 아프리카 마타벨레 개미(Megaponera analis)는 다른 개미 떼와 싸우다가 다친 자매를 버리지 않는다. 집으로 데려와서 자매를 치료한다.



하찮다는 이유만으로

심심풀이로 개미를 죽이려는 당신에게 묻는다

개미 함부로 발로 밟지 마라

일개미는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연탄과 같다. 



병든 일개미는 자신을 정성껏 간호한 자매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집을 떠난다. 외근하는 일개미는 개미집에서 일하는 젊은 자매들을 생각한다. 페로몬이라는 화학 물질을 발산해서 젊은 자매들이 마음 놓고 걸어갈 길을 만든다.[주4]



개미를 잘 모르는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 발밑에 지나가는 조그만 누구를

알고 사랑하는사람이었느냐

[주5]









<백석의 시를 좋아하는 cyrus가 쓴 주석과 정오표>








* 오늘 215일은 시인 백석의 기일이다. 올해가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광복 이후 백석은 고향인 평안도에 거주했고,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북한에 정착했다. 월북 시인으로 낙인찍힌 백석의 시집은 출판 금지 도서로 지정되었다. 1988년 월북 작가 해금 조치가 이루어지면서 백석은 다시 주목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 백석이 생존했는지 아니면 사망했는지 확인이 어려웠다. 북한 내에서의 시인의 행적을 알 수 없었던 남한 연구자들은 시인이 1963년에 숙청당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백석의 생애를 연구한 기자 출신의 작가 송준은 어렵사리 취재한 끝에 백석이 살아 있음을 확인했고, 본인이 쓰고 1994년에 출간된 백석 평전을 다시 쓰는 일에 착수했다백석은 1996년에 사망했다. 송준이 다시 펴낸 백석 평전 시인 백석(흰당나귀, 2012년, 절판)에 따르면 백석은 심한 감기에 걸려 215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백석 평전(다산책방, 2014)을 쓴 안도현 시인과 다른 연구자들은 시인이 1월에 세상을 떠났다고 주장한다.





[주1]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소개한 서평의 머리글은 백석의 시구절을 접붙여서 썼다.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중략)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중에서

안도현 풀어씀, 《사슴》 (민음사, 2016년), 96~97쪽-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중에서

안도현 풀어씀, 《사슴》 , 59쪽 -









[2]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조구호 옮김, 백 년의 고독 2, 민음사, 303.





[주3] 최재천개미 제국의 발견(사이언스북스, 1999, 절판)의 부제.



※ 《개미 제국의 발견서평

[개미가 작다고 얕보지 마라]

2014426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6990026




[4, 5] 서평을 마무리하는 문장은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연탄 한 장 시구절을 접붙여서 썼다. ‘알고 사랑하는이라는 표현은 최재천 교수가 글과 강연에서 늘 강조하는 말, ‘알면 사랑한다를 인용, 변형한 것이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너에게 묻는다』 중에서

외롭고 높고 쓸쓸한》 (문학동네, 2004), 11쪽 -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중략)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 안도현, 연탄 한 장중에서

외롭고 높고 쓸쓸한, 12~13-





* 227

 

 노예 사육 개미들은 어차피 약탈 과정에서 죽음을 맞이할 위험성을 피할 수 없기에 많은 수의 노예를 확보할 가능성이 높은 큰 군체를 선택하여, 가능한 한 적게 전투를 치루는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치루는 치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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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6-02-15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미가 만약에 인간이 밟을 수 없을 정도로 인간 만한 크기에 자아를 가지고 진화가 되었다면 인류는 어떻게 될까요? ㅎㅎ

cyrus 2026-02-16 21:57   좋아요 1 | URL
인류가 멸망했거나, 살아 있어도 개미의 노예가 되었을 거예요. 실제로 다른 개미 종을 노예로 부리는 개미 종이 있습니다. ^^

서니데이 2026-02-15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개미의 생활사를 보니 한 조직을 위해서 여왕도 일개미도 모두 일정 역할을 끝내면 결말이 좋지 않은 것 같네요. 아마 벌들의 세계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잘 읽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즐거운 명절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도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cyrus 2026-02-16 21:59   좋아요 1 | URL
수컷 개미가 제일 불쌍해요. 정말로 짝짓기만 하고 죽으니까요. 그런데 예외로 결혼하고도 죽지 않는 수컷 개미 종이 있다고 합니다. ^^
 
인간은 동물이다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전대호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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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본성적으로 알고 싶어 한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의 형이상학에 나오는 첫 문장이다.[주1]은 에서 시작된다. 시각적 감각(aisthēsis)은 현상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 현상을 파악하면 현상에 대한 정보가 기억에 남는다. 현상을 여러 번 기억하면 현상을 판단하고 처리할 수 있는 경험(empeiria)이 된다. 시각적 감각을 즐기는 인간은 기억과 경험을 거쳐 학문적 인식에 도달한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앎의 발전 단계.


아리스토텔레스는 앎을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인간과 그렇지 못한 동물을 구분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동물은 기억과 상상에 의존하면서 살아가지만, 경험 능력을 쌓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다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생각은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은 이분법 중의 하나다야생 동물을 길들이는 데 성공한 인간은 동물을 알기 위해 그들을 포획하고 관찰했다앎의 욕구가 점점 커지는 동시에 학문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자연을 개발하고 파괴했다


인간은 지구에서 가장 유일한 전지(全知)적 존재다. 유전공학 · 나노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CRISPR)로 유전병을 교정하고, 생명을 연장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중이다호모 데우스(Homo Deus: 신이 되고 싶은 인간)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인간상이 아니다.[주2] 가장 똑똑한 지구의 주인으로 살아온 인간은 전지전능한 지구의 주님이 되려고 한다. 지구의 주님은 학문이 더 발전하면 아직 밝혀내지 못한 자연의 수수께끼들이 풀릴 거라고 낙관한다. 과거에 인간이 동물과 지구를 괴롭히면서 일으킨 여러 가지 문제들도 주님이 알아서 해결해 주리라 믿는다. 전지적 주님은 자신만만하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Markus Gabriel)천사와 이름은 같지만, 지구의 주님을 섬기는 시종이 아니다.[주3] 그는 전지적 존재가 되기 위한 용도로 학문에 접근하는 분위기에 경종을 울린다. 지구의 주님은 종교가 아닌 과학을 편애하는 과학주의자다. 과학주의는 과학만능주의와 같은 말이다. 과학주의자는 과학만 있으면 인간은 전지적 존재가 될 수 있으며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최악의 문제들(환경 파괴, 전염병 유행)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과학을 찬양하자는 지구 주님의 가르침을 거스른다.


철학을 사랑하는 사람(philosophos)이라면 죽을 때까지 만나야 하는 거대한 질문이 있다. “인간은 누구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엄청 짧고 간단한 질문이지만, 정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사실 정답이 없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만난 사람들이 밝힌 대답들은 다양하다. 그래서 인간의 정의를 알기 위한 질문은 한없이 크다가브리엘은 이 거대한 질문을 변형한다. 동물로 간주하는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동물이다는 마르쿠스의 변형된 질문에 대한 답변들을 정리한 책이다이 책에서 마르쿠스는 인간을 동물로서의 인간으로 재정의한다. ‘동물로서의 인간은 겸손하다스스로 슬기로운 사람(Homo sapiens)이라고 선포한 인간은 오만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반대로 동물로서의 인간은 앓을 지향하면서도 앎을 통해 얻은 지식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그리고 자기 생각이 틀렸으면 고치려고 한다이러한 태도를 가브리엘은 인식적 겸손이라고 표현한다. 겸손한 동물로서의 인간은 차분하다. 자신이 몰랐던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해 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기억을 반복하면 경험이 된다호모 사피엔스는 생각의 오류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자신의 오류를 받아들이는 것을 어려워한다슬기롭다고 믿는 사람들은 오류를 직시한 경험을 잊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겸손한 동물로서의 인간은 생각의 오류가 발생하면 게 눈 감추듯 지우지 않는다. 생각의 오류를 더 나은 생각으로 고치기 위한 디딤돌로 삼는다.


최악의 호모 사피엔스는 지식을 무기로 삼아 자신과 다른 생각을 공격하고 죽인다. 그들은 타자를 공격할 때 사용하는 지식이 정확하지 않고, 틀렸음에도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동물로서의 인간은 알고 싶어 하는 본능을 따르면서도 자신이 무지하다는 점을 안다. 가브리엘이 제시한 앎의 발전 단계는 무지(無知)의 윤리에서 시작한다. 무지의 윤리는 정직하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지식이 틀릴 수 있고, 그 지식을 통해 편집한 생각도 틀렸음을 인정한다. 우리가 괴물로서의 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무지의 윤리를 떠올려야 한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다. 많이 안다고 해서 잘난 척하지 않아도 되고, 모르는 것을 숨길 필요도 없다. 영국의 시인 토머스 그레이(Thomas Gray)는 생전에 자신을 시인이 아닌 사람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레이가 남긴 시구절[주4]은 인간은 동물이다의 한 줄 평으로 쓰기에 잘 어울린다.





Where ignorance is bliss,

‘Tis folly to be wise.


무지가 행복인 곳에서, 현명해지는 것은 어리석다









[1] 아리스토텔레스, 조대호 옮김, 형이상학, 31, 도서출판 길, 2017.



[2] 유발 하라리, 김명주 옮김, 호모 데우스 , 김영사, 2017.



[주3] 가브리엘은 성경에 나오는 대천사다.

 


 천사가 그에게 대답했다. “나는 가브리엘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있어요. 그대한테 말해 주라고 나를 보내셨어요. 이 좋은 소식을 그대에게 알려 주라고요.” 


(누가복음 제119절, 새 한글 성경 신약과 시편, 대한성서공회, 136)



[주4] Ode on a Distant Prospect of Eton College (17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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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마시는 위스키가 창의력을 높여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술을 마시면서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나는 이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









아침에 마시는 위스키의 효능에 대한 출처는 뉴로크리에이티브 연구소(Neurocreative Institute)라는 기관이 발표한 연구 논문이다뇌에 약간의 알코올이 들어가면 긴장이 풀려서 아이디어가 잘 떠오른다고 한다


















* 스켑틱 협회 편집부 엮음(마이클 셔머제임스 랜디 외 여러 명의 필자 참여), 김보은 · 류운 · 하인해 외 옮김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 스켑틱 10주년 베스트 에세이(바다출판사, 2025)




논문이 과학자들에게 알려지려면 학술지에 실려야 한다.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은 과학자들의 검토 대상이 된다뉴로크리에이티브 연구소가 발표한 위스키 관련 논문 제목과 이 논문의 게재를 허락한 학술지 제목이 있는지 구글에서 검색을 해봤는데,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연구소의 위치와 연구소 공식 홈페이지도 나오지 않는다나는 실험 과정이 상세하게 언급되지 않았거나 출처가 확실하지 않은 연구 결과를 믿지 않는다


애주가는 아침에 술을 마실 때면 어디인지도 모르는 연구소가 주장한 연구 결과를 언급한다어디에서 본 건데‥…”, “누구에게 들은 이야긴데‥…견해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길게 설명하지 않고, 연구소와 과학자 이름을 같이 언급하면 상대방은 그 견해를 과학적으로 증명된 내용이라고 믿는다사람들은 지적 능력이 높다고 생각하는 권위 있는 과학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과학에 취한 애주가는 회의주의자(skeptic)다. 낮술을 즐기면서도 아침에 마시는 술이 정말로 창의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지 의심한다잠정 가설로 받아들이고,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견해에 애매모호한 점(실험 방식, 통계 자료나 견해를 뒷받침하는 증거에 대한 설명이 빈약할 때)이 있으면 의심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내 경험상 늦은 밤에 술을 마시면 글이 잘 써진다. 하지만 술이 나의 머리끄덩이를 잡을 때가 많다이럴 때 정말 피곤해진다직장 일에 지친 상태에서 술을 마시면 문장 한 줄을 쓰는 데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글이 안 써지는 어둠의 시간은 술맛이 사라지는 지루한 안주다.


쉬는 날이나 주말에 마시는 술은 마음이 편해지고, 두뇌 회전 속도가 평일보다 빨라진다. 지난주 토요일 아침, <과학책방 갈다>에 가서 맥주를 마셨다. <갈다>는 커피, , 맥주를 판다. 음료를 주문하면 책방 2층에서 마실 수 있다. 나는 책 한 권을 안주 삼아 맥주를 주문한다









<갈다>에 판매하는 맥주는 총 다섯 종류다. 올해 여름에 반딧불이라는 맥주가 새로 들어왔다. ‘반딧불을 마시고 싶어서 지난주 토요일에 <갈다>에 갔다<갈다>에서 고른 책 안주는 다른 과학은 가능하다, ‘느린 과학선언이다.

















* 이자벨 스탱게르스, 김연화 · 장화원 함께 옮김 다른 과학은 가능하다, ‘느린 과학선언: 상호의존의 관계를 다시 엮는 과학으로(에디토리얼, 2025)




느린 과학은 과학 문제에 올바른 해답을 최대한 빨리 찾는 것을 거부한다. 느린 과학은 대중과 소통한다. ‘느린 과학에 익숙한 대중은 과학자들이 발견한 연구 결과에 열광하는 마니아가 아니다. 그들은 신중하다우리 삶에 필요한 과학 지식이 무엇인지 논의하며 가꾸어야 할 가치가 있는 과학 지식인지 판단한다.


책방 바로 맞은편에 나무 한 그루가 있다. 2층에 넓은 창문이 있어서 나무를 제대로 볼 수 있다이파리는 다 떨어졌고, 나뭇가지 끝에 겨울눈(winter bud)이 붙어 있었다맥주를 마시면서 창밖의 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겨울눈을 알고 싶어졌다. 술에 살짝 취한 뇌에 호기심이 돋아났다겨울눈이 자란 나무의 이름을 알고 싶어졌고, 겨울눈이 왜 생기는지 궁금했다다음날인 일요일에 대구로 돌아와서 겨울눈을 언급한 책들을 찾으러 도서관에 갔다.



















김태영 · 윤연순 · 이웅 함께 씀 겨울나무: 우리 땅에 사는 나무들의 겨울나기(돌베개, 2022)

 

* [개정판] 소경자 · 이광만 함께 씀 겨울눈 도감: 4단계 분류법에 따라 겨울눈을 구별한다(나무와문화, 2020)



겨울눈은 겨울에 난 싹이다. 이 싹은 비늘이나 털로 덮인 상태, 추운 겨울바람을 버티면서 봄을 기다린다겨울눈의 크기는 작은 편인데, 이 속에 겨울을 지내기 위한 양분과 봄에 발아하는 데 필요한 영양분이 저장되어 있다.







책방에서 본 겨울눈은 타원형이고, 털로 덮여 있다. 두 권의 겨울눈 도감을 같이 보면서 내가 내린 잠정 결론은 백목련 혹은 목련과 식물의 겨울눈이다.

















트리스탄 굴리이충 옮김 나무를 읽는 법나무껍질과 나뭇잎이 알려주는 자연의 신호》 (바다출판사, 2024)




탐험가 트리스탄 굴리(Tristan Gooley)식물을 관찰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래서 자연의 셜록 홈스(Sherlock Holmes)’라는 별명이 있다그는 나무가 인간과 동물, 주변의 다른 식물에 알리는 수백 가지 자연 신호(natural sign)를 알면 나무를 읽을 수있다고 말한다자연 신호는 너무나 많고, 여전히 우리가 알지 못한 것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를 누구보다 잘 아는 굴리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나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없다면서 겸손하게 말한다. 나무 한 그루를 제대로 식별하는 방식을 배우려면 평생을 바쳐야 한다









책을 참고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다. 책방에서 만난 나무가 백목련이라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 봄에 변신하는 나무의 모습을 보면 백목련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과학에 (심)취하려면 성급하게 해답을 찾거나 결론을 도출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해답과 결론을 찾는 과정을 즐겨야 한다그리고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정직하면서도 차분한 여유도 있어야 한다내가 좋아하는 과학은 결론을 쫓아가는 빠른 과학이 아니다. 호기심을 유지하면서 꾸준히 관찰하는 느린 과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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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2-25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를 읽는 법, 이 도서 찜합니다.

cyrus 2025-12-29 00:08   좋아요 0 | URL
나무를 관찰하는 다양한 방식을 정리한 책입니다. 호시우행님의 독서 취향에 어울리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

stella.K 2025-12-25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봤더니 술꾼이었구만! 책을 안주 삼는다고 썰이나 풀고. 말이나 못하면...칫!
한 잔이 두 잔되고, 석 잔된다. 건강 생각해서 지나친 과음은 삼가하고. ㅋ 암튼 올해 사느라 고생 많았다. 토닥토닥~ 한 해 마무리 잘하고 희망찬 새해 맞아라. ^^

cyrus 2025-12-29 00:11   좋아요 1 | URL
책과 술 중 딱 하나만 고른다면 저는 책을 고르겠어요. 그런 만큼 책을 먼저 읽으면 술 한 모금이라도 입에 안 대려고 해요. 술 마시는 횟수를 줄이도록 노력해 볼게요. ^^

감은빛 2025-12-26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흡연자들이라면 공감할텐데, 담배를 피우면 잠시 집중력이 올라가고 각성효과가 생겨요. 그래서 저는 아주 오래 전 대학 시절에 도서관에서 시험공부를 하지 않고 혼자 학교 뒷산 산책로 넓다란 바위에 앉아 가끔 담배를 피워가며 공부했던 기억이 있어요. 글을 쓰다가 막히거나, 일을 하다가 뭔가 풀리지 않을 때 담배를 피우고 돌아오면 갑자기 풀리지 않았던 문제의 답이 떠오르기도 하죠. 물론 당연히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술도 정말 소량이라면 조금은 그럴 수 있겠다 싶어요. 한 십여년 전에 저도 맥주 마시며 책을 읽는 버릇이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서재에 음주 독서라고 글을 썼던 기억도 나구요. 언젠가부터 맥주를 거의 안 마시게 되며 그 버릇은 사라졌어요. 소주를 마시며 책을 읽기엔 도수가 너무 쎄서 책에 집중을 못하게 되죠. 술을 조금 마시고 책을 읽는 건 가능하겠지만, 술을 계속 마시며 읽는 것은 쉽지 않아요.

cyrus 2025-12-29 00:19   좋아요 0 | URL
제가 담배까지 피웠으면 벌써 건강이 나빠졌을 거예요. 그런데 밤에 잠을 늦게 자는 일이 잦아서 비흡연이라고 해도 건강 상태가 좋다고 말을 못 하겠어요. 다행히 올해는 크게 아픈 적이 없지만, 이럴 때 조심해야죠. 시간 날 때 건강 검진을 받아야겠어요. ^^
 
해석에 반하여 수전 손택 더 텍스트
수전 손택 지음, 홍한별 옮김 / 윌북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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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탁의 탁월한 문장을 볼 때마다 감탄해서
손으로 머리를
‘탁’ 칠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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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5-12-22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혹시 아재 개그인가요? ㅎㅎㅎㅎ

cyrus 2025-12-25 06:30   좋아요 0 | URL
아재개그가 결합된 이행시입니다.. ㅎㅎㅎ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 - 삶과 문학, 읽고 쓰기에 관한 네 번의 강의
제임스 우드 지음, 노지양 옮김, 신형철 해제 / 아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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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탑에 박힌 문학은 고루한 학문이다. 잘난 체하는 문학은 지루하다. 독자는 거꾸로 학문이 된 문학에 다가서지 못한다. 뻣뻣하게 경직된 문학과 친해질 수 없다. 


문학의 정석(定石) 비평가와 문학 교수들이 정교하게 깎아 만든 비석이다. 학생들은 거대한 비석에 새겨진 이론과 비평 방식을 받아 적으면서 수련(修鍊)한다



문학을 학문으로 받아들인 학생들은 비석을 윤이 나게 열심히 닦는다(). 


학생들의 오랜 반복 훈련으로 단련된() 문학의 정석은 

절대로 깨질 리 없다


학생들은 문학의 정석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정답을 찾는다. 




상아탑이 편한 문학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 펑퍼짐한 문학은 상아탑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뚱한 문학은 독자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독자의 눈빛을 받지 못한 문학은 쓸쓸하다. 아무리 잘 썼다고 해도 쓸모가 없다문학이 있어야 할 곳은 상아탑이 아니다문학은 반드시 독자를 만나야 한다. 독자의 곁에 있어야 한다.








영국의 비평가 제임스 우드(James Wood)는 유년 시절에 문학의 숲(wood)을 심기 시작했다한 권의 책이 문학 숲의 씨앗이다. 이 책은 시, 소설, 수필, 희곡도 아니다. 독자들에게 소설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기 위해 만든 것 같은 소설과 소설가들이라는 입문서다. 어린 우드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좋아했고, 그 부분만 열심히 읽었다. 전 세계 작가들의 이름을 알파벳순으로 나열하여 그들의 작품 세계를 요약한 장이었다그는 작가들의 이름과 소설 제목을 기억했고 틈틈이 그들의 작품을 읽었다. 이때부터 문학 소년의 마음속에 문학 새싹들이 모도록 돋아났다문학 소년과 함께 자란 문학의 숲은 비평가로 성장하기 위한 영양분이 되었다책을 읽고 글을 쓰는 비평가가 심어 가꾼 문학의 숲은 싱그럽다.









우드의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은 자신만의 문학의 숲을 가꾸고 싶은 독자, 작가들이 꾸민 문학의 숲을 거닐고 싶은 독자를 위한 안내서다. 책 제목은 영국의 소설가 조지 엘리엇(George Eliot)이 말한 예술은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에서 따왔다. 우드는 상아탑에 박힌 문학만 보는 비평을 선호하지 않는다. 상아탑에 박힌 문학은 보면 볼수록 따분하다. 상아탑을 지키는 일에 몰두한 비평가와 문학 교수는 문학을 학문으로 취급한다학구적 문학 비평은 독자와 문학의 사이를 멀어지게 한다독자는 재미없는 상아탑을 보러 가지 않는다문학을 즐기기 위해 문학의 숲을 산책한다









문학의 숲에 문학만 있는 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널려 있다문학의 숲을 모험하는 우리는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이름을 붙일 수 있다사용할 수 있는 것’의 이름과 형태는 무수하다. 그것은 우리가 쓰고 있는 평범한 물건이 될 수 있고, 과거에 만났던 사람일 수도 있다.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우리의 인생 가까이에 있다. 그래서 금방 찾을 수 있다.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문학과 밀접하다. 우리는 이론에 의존하지 않고도 문학을 마음껏 감상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다. 상아탑에 달라붙은 비평가는 독자의 비평에 관심 없다. 오히려 자신이 배운 비평 방식을 가르치려고 한다. 이와 반대로 우드가 강조한 문학 비평 방식은 비평가가 아닌 독자들도 따라 할 수 있다. 독자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독자적으로 사용하면 된다그리하여 독자는 소설의 여백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되거나 문학 작품의 매력을 볼 줄 아는 비평가가 된다. 우드는 문학에 편하게 말을 걸 수 있는 독자가 되라고 권한다. 문학과 친분이 두터운 독자 문학 작품을 읽다가 발견한 것을 이야기하고(retelling), 목소리를 낸다(re-voicing). 우드는 자신의 비평 방식을 비평적 다시 이야기하기또는 책을 통과하는 글쓰기라고 표현한다.


독자가 책을 통과하려면 우선 진지한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진지한 관찰자는 다른 독자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아주 사소한 세부 사항(detail)’을 좋아한다. 진지한 관찰자 유형에 속한 독자는 세부 사항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소설 속 등장인물이 말로 표현하지 못한 숨은 감정까지 포착한다.


문학의 정석은 무겁다. 우리가 만나야 할 문학은 가벼워야 한다. 우리가 가져야 할 문학은 평생 간직할 수 있는 소박한 조각으로 되어 있다



우리는 소중한 문학 조각을 쓰다듬는다

문학 조각 위에 글을 쓰(고) 다듬는다







우리가 정답게 어루만지는 문학 조각은 문학의 정석(貞石)이다.









<세부 사항을 관찰하면서 읽는 cyrus가 만든 주석>




[1] 정석(貞石): 단단하고 아름다운 돌





* 43, 역자의 각주





라스콜리니코프: 톨스토이죄와 벌의 주인공 [주2]


 


[주2죄와 벌》을 쓴 작가는 도스토옙스키(Dostoevskii).






* 117


 



리디아 데이비스의 단편소설 <문법 질문>(Grammar Questions) [주3]

 



[주3리디아 데이비스(Lydia Davis)의 작품집 불안의 변이(강경이 옮김, 봄날의책, 2023)에 수록되어 있다. 번역된 제목은 문법 질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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