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이 잃어버린 여성 - 신, 물리학, 젠더 전쟁
마거릿 워트하임 지음, 최애리 옮김 / 신사책방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점


3.5점  ★★★☆  B+











코스모스(cosmos)는 여름 바람이 식어가는 가을에 피는 꽃이다. 코스모스는 원래 질서 또는 조화를 뜻하는 그리스어다. 코스모스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꽃보다 과학을 떠올린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코스모스는 질서정연한 우주를 표현할 때 쓰는 단어가 되었다.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 덕분에 그리스가 원산지인 코스모스는 시들지 않았다(꽃 이름은 그리스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꽃의 원산지는 멕시코다). 대중이 과학과 친해지길 바란 칼 세이건은 1980년에 만든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에 출연했다. 브라운관을 채운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종이 위에 피어나 한송이의 책이 되었다. 세이건은 살아있는 모든 존재가 코스모스의 자녀라고 말했다.[주1] 우리는 우주의 별에서 왔다. 유기물이 들어 있는 별 먼지들이 모여서 ‘창백한 푸른 코스모스(pale blue cosmos), 지구가 피어났다.[주2]


과학자들은 코스모스 우주론’을 매우 좋아한다. 코스모스 우주는 완벽할 정도로 질서정연하게 움직인다. 한 치의 오차가 없는 우주는 아름다운 예술과 같다. 코스모스 우주의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눈여겨 본 과학자가 피타고라스(Pythagoras). 피타고라스는 모든 덕은 조화(harmonia)’이며 좋은 것도, (god)조화라고 했다.[주3] 우주에 질서를 부여한 존재는 조화로운 신이다. 피타고라스는 수()를 만물의 근원으로 이해했다. 피타고라스는 코스모스 우주가 완벽한 비율로 만들어진 음악이라고 상상했다. 피타고라스에게 수와 수학은 신이 만들어낸 우주를 듣기 위한 보청기였다.


세이건은 중세가 시작되면서부터 서양 과학이 혼수 상태에 빠졌다고 주장한다. 그는 1,000년이나 지속된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표현한다. 이 기간에 종교는 과학을 이단 학문으로 규정하여 탄압하고 학살했다. 교황과 성직자들에 의해 쫓겨난 과학은 학문에 관심이 많은 이슬람 국가로 도피했다. 무슬림 과학자들은 이방의 나라그리스에서 온 과학을 보듬어주었다세이건뿐만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은(특히 종교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 ‘로마가톨릭이 장악해 버린중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종교가 과학을 박해했다고 믿는다. 종교의 폐해를 고발할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과학자는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로마 교황청은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돈다고 확신한 갈릴레이를 이단 심문소로 소환했다. 처형과 종신형을 겨우 피한 갈릴레이는 가택 연금 처분을 받았다종교를 비판한 18세기 계몽주의자들은 천 년 동안 죽어 있던 코스모스가 르네상스 시대에 다시 피었다고 주장했다. 계몽주의자에게 과학은 코스모스의 씨앗이라면 이성은 코스모스를 활짝 피게 해주는 거름이다.


하지만 역사가들은 과학과 종교의 갈등 관계의 관점으로 과학사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들은 과학과 종교가 서로 보완하면서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중세는 생각보다 어둡지 않았다. 중세 지식인들의 서재에 고대 그리스 과학이 자취를 감춘 것은 사실이지만, 과학에 관심이 있는 수도사들이 있었다. 우리가 아는 갈릴레이 재판 사건은 반종교주의자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진 것이다. 갈릴레이는 가톨릭 신자였다. 그와 친분이 있는 성직자들은 과학을 배척하지 않았다. 로마가톨릭은 과학의 후원자였다. 비록 가톨릭이 선호하는 과학은 천동설(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설)이었지만, 성서의 교리에 크게 거슬리지 않는 과학 이론을 부분적으로 인정했다.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가 두려워한 세력은 가톨릭이 아니라 대학교수가 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와 추종자들은 실험과 관측을 건너뛴 채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심지어 자신들이 믿는 지식과 상반되는 견해를 무시하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 과학의 발전을 막은 주범은 종교가 아니라 지식의 수정을 거부한 보수적인 과학자들이었다.


과학 친화적인 종교는 코스모스 우주론을 활짝 피게 해준 거름이다. 교회는 과학의 정원이 있는 경건한 온실이었다. 가톨릭과 기독교 신자들은 과학의 정원에 마음껏 드나들었고, 성직자들은 코스모스를 소중히 보살피는 정원사가 되었다. 그러나 코스모스가 필 무렵에 여성은 온실에 들어갈 수 없었다. 과학과 종교는 합심하여 여성이 과학의 정원에 발을 내딛지 못하게 했다.


물리학이 잃어버린 여성: , 물리학, 젠더 전쟁과학과 종교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자란 코스모스를 보여준다. 이 책을 쓴 마거릿 워트하임(Margaret Wertheim)은 종교가 없었으면 과학이 발전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논리적이며 객관적으로 자연 현상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신이 만든 코스모스 우주를 이해하고 싶어서 과학을 연구했다. ‘조화로운 신에 지나치게 심취한 피타고라스는 훗날 피타고라스학파로 알려진 비밀스러운 공동체를 이끄는 교주가 되었다. 피타고라스학파가 소멸하여 사라진 뒤에도 질서가 잡힌 자연 세계를 탐구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멈추지 않았다. 성경을 열심히 읽은 중세 과학자들은 신을 과학자 또는 수학자로 인식했다. ‘중세의 가을이 최고조로 무르익은 르네상스 시대로 접어들자 그리스도적인 코스모스가 만개했다. 이 시기에 활동한 코페르니쿠스(Copernicus)는 피타고라스의 정신을 물려받은 과학자였다. 그의 천문학은 수학적 창조주인 신을 위한 학문이었다. 조화로운 우주를 좋아한 코페르니쿠스는 모든 천체의 궤도가 완벽한 원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뉴턴(Isaac Newton)은 자신의 과학이 신을 탐구하는 데 유용한 지식이 되기를 바랐다.


저자는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뉴턴 등과 같이 종교에 협력한 과학자들을 사제(司祭)’에 비유한다. 그러면서 과학의 사제 대부분이 남성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물리학과 수학은 남성 과학자들의 텃세가 유독 심한 과학 분야이다. 저자는 가톨릭-기독교 남성 중심의 과학을 수학적 인간(Mathematical man)으로 의인화한다. 영국의 페미니스트 언어학자 데버라 캐머런(Deborah Cameron)남성 지배 사회에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고 말한다






* 남성은 정권이나 지도부를 독점하거나 지배하고, 정치적 의사 결정에서 여성보다 더 많은 발언권을 지닌다.

 

* 남성은 여성보다 더 많은 경제적 자원을 소유하거나 통제한다.

 

* 남성의 활동, 직업, 문화적 산물, 사상, 지식은 여성의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


(데버라 캐머런, 강경아 옮김, 페미니즘》, 

신사책방, 2022년, 

24~25쪽)




종교의 권위가 약해졌어도 남성 지배 사회는 건재했다. 남성 계몽주의자들도 수학적 여성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여권 신장에 반대한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감성에 손쉽게 지배당하는 여성은 과학을 이해하는 역량이 부족하다. 여성에 대한 수학적 남성의 편견은 절대불변의 진리가 되었고, 남성 과학자들은 가부장적 권위를 내세워 수학적 여성의 과학적 열망을 억눌렀다. 계몽주의 사상을 지지하는 남성 과학자들은 영국 왕립학회를 설립했다. 그런데 왕립학회는 여성 회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왕립학회의 초창기 회원들은 과학 연구에 매진하기 위해 독신 생활을 유지했다. 하지만 수학적 여성은 독신녀가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여성은 결혼하지 않으면 경제적 자원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수학적 인간’은 남성이 지배하는 가부장적 과학의 산물이다. 


오늘날의 과학은 교회의 보호를 받지 않는다신이 만든 우주를 규명하는 일이 숙원이었던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유명해진 덕분에 물리학은 과학의 꽃이 되었다. 물리학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자연계의 네 가지 힘인 전자기력, 강력, 약력, 중력을 하나로 통합해서 설명하는 만물이론(Theory of Everything, ToE)이다. 과학의 정원은 연구소와 천문대 그리고 거대한 기계가 돌아가는 발전소에 있다. 저자는 만물이론을 알고 싶어 하는 과학자들의 열망 속에도 우주의 신적인 원리를 이해하려는 종교적 기조가 스며들어 있다고 주장한다. 물리학자들은 만물이론 연구에 쓸 예산을 많이 받길 원한다. 저자는 과학이 대중의 실생활에 동떨어진 학문으로 전락하는 상황을 우려한다. 결국 대중은 과학을 어렵고 지루한 학문으로 인식한다. 대중과의 소통이 익숙하지 않은 과학자들은 논문 쓰기에 여념이 없다. 수학적 여성들이 물리학에 진입할 수 있는 문턱은 더 높아진다.


코스모스의 꽃말은 순결과 순정이다. 하지만 코스모스 우주를 좋아하는 과학은 순수하지 않다. 객관적이고 가치 중립적인 과학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가 정의한 과학은 지저분한 과학이다. 지저분한 과학은 종교를 포함한 문화적 환경의 영향을 받아서 형성된 학문이다


물리학이 잃어버린 여성1995년에 출간된 책이다. 원서 제목은 피타고라스의 바지(Pythagoras’ Trousers)’.[주4] 저자는 종교와 과학계의 여성 차별이 불가분 관계임을 쉽게 설명했다. 하지만 저자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톺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남성과 여성’, ‘이성과 감성과 같은 이분법이 여성의 물리학 진출을 막는 문화적 관성이라고 지적한다(352쪽). 저자가 과학을 의인화해서 표현한 수학적 인간에는 수학적 남성수학적 여성’이 있다. 과학 연구에 참여해야 하는 수학적 여성이 생물학적 여성을 전제한다면 젠더 이분법(gender binary)의 한계를 답습하게 된다. 저자는 수학을 연구하는 여성의 역량이 남성보다 떨어진다고 보는 성차(性差)를 비판하기 위해 미국의 생물학자 앤 파우스토스털링(Anne Fausto-Sterling)의 연구 결과를 인용한다(349). 파우스토스털링은 남성중심주의와 이성애주의(heterosexism)를 옹호하는 생물학을 비판한 페미니스트 생물학자다. 이성애주의는 남성과 여성이 만나고 사랑하는 것을 정상으로 규정한다. 이성애주의의 문제점은 남녀 간의 성차를 강화하고, 이성애주의의 기준으로 비정상’에 속한 동성애와 젠더퀴어(genderqueer) 차별한다. 파우스토스털링은 성차의 한계를 넘어서서 인간의 다양성을 이해하기 위해 두 개의 성이 아닌 다섯 개의 성을 제안한다.[주5


수학적 남성수학적 여성만 존재하는 과학은 또 다른 차별을 만든다. 이성애주의의 잔재가 남은 과학은 젠더 이분법에 속할 수 없는 성소수자를 희미하게 만든다. 이런 과학은 성소수자를 비정상적으로 취급하는 우파 기독교의 우군이 된다과학과 종교가 서로 차이를 인정하면서 만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조화롭고 안정적인 사회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여성과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억압하는 과학과 종교는 잘못된 만남이다.





[1] 칼 세이건, 홍승수 옮김, 코스모스, 사이언스북스, 2006, 477.

 

[2] 칼 세이건, 현정준 옮김, 창백한 푸른 점, 사이언스북스, 2001.

 

[3]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김주일, 김인곤, 김재홍, 이정호 함께 옮김,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 나남출판, 2021. 8권 피타고라스학파, 175.








[주4] 물리학이 잃어버린 여성1997년에 원서 이름을 그대로 옮긴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 책의 부제는 여성의 시각에서 본 과학의 사회사출판사는 사이언스북스이다. 번역자는 최애리. 이번에 나온 물리학이 잃어버린 여성번역을 다시 맡았다. 물리학이 잃어버린 여성피타고라스의 바지의 구판인 셈인데, 번역자와 출판사는 구판이 출판된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주5] 티에리 오케, 변진경 옮김, 셀 수 없는 성: ‘두 개의 성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 오월의봄, 2021, 36.

 






※ cyrus의 주석과 정오표







* 297, 옮긴이 각주 [닐스 보어]


 덴마크 물리학자. 특정 원자핵의 비대칭 모양과 그 이유를 규명하여 1975 노벨상 수상[주6]



[주6] 연도 오류닐스 보어(Niels Bohr)1922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 297, 옮긴이 각주 [하이젠베르크]


1933 노벨상 수상. [주7]



[주7] 연도 오류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1932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 337




 

리정다오(Tsung-Dao Lee, 1926~ ) [주8]



[주8] 올해 84일에 별세했다.





* 356

 

 SSC 사업은 본래 2억 달러 예산으로 시작되었으나, 1993년 중반에는 100억 달러로 확대되었으며, 일각에서는 사업 완료까지 130억 달러는 들리라는 예측도 나왔다. 그 시점에 다다르자, 국회에서 플러그를 뽑았다. 이는 만물이론 학계로서는 커다란 좌절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꿈은 절대로 무산되지 않았다. 유럽 공동체가 자신들의 초가속기, 대형 강입자 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 LHC)를 지을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여전히 관련 정부들은 재정 지원 문제를 놓고 옥신각신하고 있다. LHC를 짓는 데 드는 비용은 훨씬 적어서 100억 파운드(150억 달러) 정도이며, SSC만큼 강력하지는 못하지만, 그것도 통일 영역에서 새로운 전망을 보여줄 희망이 있다. [주9]



[주9] 이 책이 출간된 1995년에 LHC 건설이 승인되었다. 건설비와 실험을 위한 예산 등이 포함된 LHC 프로젝트의 예상 비용은 32~64억 유로(46천억 원)였다. 그러나 비용이 늘어나면서 건설 속도가 더뎌졌다. 우여곡절 끝에 건설이 완료되었고, 2008910일에 가동하기 시작했다.





* 미주, 390





Nicolaus Cusanus, De docta ignorantia [주10]



[10]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조규홍 옮김, 박학한 무지, 지식을만드는지식,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극단주의
J. M. 버거 지음, 김태한 옮김 / 필로소픽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점


4점  ★★★★  A-





이상 한파가 일주일째 불고 있다. 칼바람을 아직 꺼내지 못한 동장군은 당황스럽다. 전국을 덮친 이상 한파는 용산에서 시작되었다. 용산에 독재자가 살고 있다. 독재자는 온종일 권력에 취해 있다. 자야 할 시간에 숙취가 덜 풀린 독재자는 잔뜩 화가 나 있다.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들 생각에 구역질한다. 계속되는 구토가 짜증이 난 독재자는 급기야 스스로 독불장군이 되기로 결심한다.

 


적 같은 녀석들이번 기회에 다 싹 잡아들여야겠어.” 

 


밤중에 그는 썩은 권력 찌꺼기를 토하면서 국민에게 호소한다. 국민에게 전하는 글이 적힌 종이 위에 독재자의 머릿속에서 나온 오물이 떨어진다. 더러워진 글은 비상계엄 선포문으로 변한다.



 저는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2024123, 1038. 용산의 독재자는 자신과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적들에게 선전포고했다. 독불장군이 일으킨 이상 한파는 헌법과 국회, 민주주의, 그리고 모든 사람의 일상을 얼어붙게 했다


광장에 모여서 독재자의 한파에 맞서는 시민들이 있는 반면에 이상 한파가 뜨거워서 좋다는 정치인과 시민들이 있다. 그들은 용산의 독재자를 지지한다. 그리고 독재자가 호명한 적들과 맞서 싸울 태세를 갖춘다자신들이야말로 애국심이 가득한 보수주의자요, 진정한 자유주의자라고 주장한다


독재자의 계엄령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도,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계엄령은 독재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독재자를 비판하는 국민은 처단’해야 할 적대 세력이 된자유주의민주주의는 독재자를 만나는 순간, 오염된 단어가 된다. 독재자의 손아귀에 들어간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엉뚱하게도 좌파와 사회주의에 대항하는 우파의 아군이 된다나와 너’, ‘우리와 그들로 구분 지어서 서로 대립하는 관계를 지향하는 것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극단주의(extremism)’.


올해 9월에 출간된 극단주의: 카르타고 파괴에서 백인 우월주의까지 극단주의의 본질을 파헤친 간결한 입문서극단주의가 만든 계엄령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책이다이 책은 극단주의를 너무 단순하게 이해하고, 종종 오해하는 문제점에서 출발한다. 대부분 사람은 상식에 벗어날 정도로 한 가지 생각으로 치우친 성향을 극단주의로 인식한다그렇지만 극단주의를 너무 단순하게 접근하면 오용될 수 있다자기 생각과 정체성과 완전히 다른 타인 및 사회 집단을 극단주의로 규정하면 차별을 조장하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대화가 단절된다. 타인을 극단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정작 자신은 극단주의자가 아니라고 믿는다.


역사상 최초의 극단주의자는 기원전 2세기에 활동한 고대 로마의 정치가 카토(Marcus Porcius Cato). 당시 로마는 카르타고와 세 번이나 혈전을 치른 끝에 승리했다. 기고만장한 원로원 의원 카토는 자신의 연설을 마치면 카르타고는 멸망해야 한다(Carthago delenda est)라고 말했다결국 로마는 무장 해제한 카르타고 시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극단주의자는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을 내집단으로 인식한다. 자신이 소속되지 않은 집단은 외집단이다. 내집단과 외집단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 문제가 없다. 그런데 내집단이 외집단을 으로 인식하는 순간 극단주의가 생긴다. 극단주의에 물든 내집단은 영향력이 줄어들었고, 결속력이 낮아진 외집단을 말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내집단의 모든 구성원이 다 같을 수 없다소수의 구성원은 내집단에 소속되면서도 내집단의 의견에 따르지 않는다. 극단주의 내집단 안에서 외집단으로 분류되는 구성원부적격 내집단이 된다. 극단주의를 거부하는 부적격 내집단은 내집단으로부터 배제될 수 있고, 내집단의 결속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잠재적인 적’이 된.


용산의 독재자는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국회의 업무에 제동을 걸고, 국가 예산을 삭감하는 데 앞장선 야당(더불어민주당)을 종북 세력이라고 주장했다. 계엄사령부 포고령에는 의료정책에 반대하여 파업에 참여한 의료인들을 으로 규정했다. 48시간 안에 병원으로 복귀하지 않으면 처단한다고 명시했다용산의 독재자와 그를 지지하는 여당(국민의 힘)은 극단주의 내집단이다. 독재자가 계엄군을 동원해서 처벌하려는 반국가 세력, 즉 야당은 외집단이다. 여당은 독재자가 탄핵당하는 상황을 막으려고 한다여당은 국민을 위한 보수주의 정당이 아니다. 독재자 한 사람을 지키려는 극단주의 내집단이다. ‘국민의 힘이 아니라 극단의 힘이다독재자 탄핵을 찬성하는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있는데, 이들은 부적격 내집단이다극단주의자들은 내집단의 결속력이 무너지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극단주의 내집단은 외집단과의 타협을 거부한다. 극단주의 내집단이 외집단을 적대 세력으로 바라보는 근거는 주관적이다. 그들이 접하는 외집단에 관한 정보의 출처는 정확하지 않으며 대개 부정적인 편견이 섞여 있다.


여당이 극단주의 내집단이라 해서, 야당을 극단주의 내집단에 의해 고통받는 외집단으로 바라본다면, 극단주의의 본질이 흐려진다극단주의를 단순한 기준을 선호하는 이분법으로 접근할 수 없으며 극단주의는 특정 정파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127, 여당 의원들의 집단 투표 거부로 인해 독재자 탄핵소추안 표결이 무산되었다. 당시 투표가 진행되고 있을 때 여당 의원들은 의원 총회에 참석했다고 한다. 야당 의원들은 갑자기 열린 여당의 의원 총회를 지적하면서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여당 의원들이 감금되었다고 주장했다.[주] 근거가 불충분한 견해와 가짜 정보로 외집단(여당)을 비난하는 행위는 외집단을 적대하는 극단주의 내집단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극단주의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예외가 아니다. 인간은 자신이 본 것, 들은 것, 알고 있는 것을 옳다고 생각한다. 모르는 것, 낯선 것,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것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국 자기 생각과 같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내 주변에 있는 극단주의자를 비판하기 전에 나도 극단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탄핵소추안 부결 이후에 나온 기사들을 살펴보면 여당 의원 감금설을 발언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치인의 이름이 여러 명으로 나온다. 내가 확인한 이름은 박찬대 원내대표, 한준호 최고위원, 황운하 의원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ransient-guest 2024-12-12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화의 내용도 그렇지만 그걸 녹화로 발표하는 것도 기괴한데 그게 유출되기까지 한 건 정말 너무 황당합니다. 정상이 아니에요 모든 것이...
 
생명으로 우리는 귀엽다
임주혜 지음 / 행복우물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평점


4.5점  ★★★★☆  A






브론테 자매는 영국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자매다. 큰언니 샬럿(Charlotte Brontë)의 대표작은 제인 에어. 둘째 언니 에밀리(Emily Brontë)폭풍의 언덕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Wuthering Heights를 썼다《폭풍의 언덕》은 그녀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소설이다. 막내 앤(Anne Brontë)은 두 편의 소설을 썼다두 동생을 먼저 떠나보낸 샬럿은 앤의 첫 번째 소설 아그네스 그레이를 다시 펴내는 일을 맡았다. 그러나 앤의 두 번째 소설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을 다시 출간하고 싶지 않은 작품이라고 혹평했다20세기 중반이 지나서야 앤의 소설들은 두 언니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은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작품이지만, 드라마와 연극으로 각색될 정도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앤의 대표작이다.


아그네스 그레이는 가정교사의 사회적 지위가 잘 묘사된 소설이다. 가정교사는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들이 선호한 직업이다. 소설의 주인공 아그네스 그레이(Agnes Grey)는 가정교사로 일했던 작가의 삶이 반영된 인물이다아그네스는 가정교사를 하찮게 대하는 귀족의 집에 생활하면서 귀족의 자녀들을 가르친다. 그녀가 가르치는 톰 블룸필드(Tom Bloomfield)는 예의범절을 모르는 소년이다. 톰은 아주 못된 버릇이 있다. 정원에 있는 새를 잡아서 잔인하게 죽인다. 아그네스는 동물을 괴롭히는 행동이 잘못되었다면서 꾸짖지만, 톰의 어머니와 삼촌은 톰의 행동을 옹호한다. 톰의 삼촌은 조카의 동물 학대를 지켜보는 것을 즐긴다아그네스는 새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느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톰의 어머니는 모든 생명체가 인간의 편의를 위해 창조되었다면서 동물 학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오히려 톰의 어머니는 동물 학대를 지적하는 아그네스의 지도 방식에 문제가 있다면서 비난한다. 아그네스는 인간의 쾌락을 위해 동물을 고문할 권리가 없다(We have no right to torment them for our amusement)고 맞받아친다


우리는 동물의 생명도 인간의 생명처럼 소중하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안다. 하지만 동물을 존중하는 마음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일에 서툴다왜냐하면 동물을 위한 권리의 필요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동물권을 생각해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게 된 우리는 마음으로 아그네스를 지지하지만, 우리의 입은 톰의 어머니가 된다인간은 언어 능력을 가진 유일한 동물이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감정을 느낀 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일에 익숙한 우리는 종종 착각에 빠진다. 말하지 않는 동물은 우리처럼 생각하지 않으며 감정이 없다고 생각한다.


임주혜 작가의 두 번째 책 생명으로 우리는 귀엽다: 생명 존중과 동물권 그리고 존재하는 것에 대한 사유는 우리의 언어가 동물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준다우리의 입은 듣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 동물에게 말을 걸 수 있다. 당연히 동물은 인간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동물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행위가 부질없는 것은 아니다. 동물을 존중하는 자세다. 저자는 우리의 언어가 동물의 목소리가 되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동물과의 대화는 인간과 동물을 같은 위치에서 마주 바라보게 만들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공생 관계를 잊지 않게 해준다.







작가는 책에 실린 모든 글을 거의 혼자 쓰지 않았다. 작가와 함께 사는 반려견 고동이(책 앞표지의 모델)가 언급된 글은 작가와 고동이와 함께 쓴 글이다고동이는 눈빛과 몸짓으로 작가에게 말을 걸고, 작가는 고동이의 마음을 읽는다인간과 동물이 아닌 생명과 생명으로 교감하는 일상은 귀엽다.


동물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방식은 다양하다. 그래도 동물 철학대표적인 학자가 피터 싱어(Peter Singer)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을 공부하지 않고도, 동물권을 지키기 위한 비건(vegan)이 되지 않아도, 동물권 운동 단체에 가입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동물과 함께 살 수 있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인간에게 무참히 짓밟힌 동물들의 실태를 가까이서 본 동물권 운동가들은 저자가 불편한 실상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면서 동물권 문제를 천천히 고민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저자는 비건 중심의 세상을 조급하게 바꾸려는 실천이 때론 나의 것(생각)이 가장 옳다라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느리면서도 세밀한 고민이 빠진 동물권 운동은 다른 동물 또는 타자를 차별하고 혐오를 생산할 수 있다저자가 강조한 대로 동물의 삶에 대한 통찰과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을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 동물권을 어떻게 확보해야 할지 고민하는 일을 멈추는 태도는 동물과의 공생 관계를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의 언어와 입은 내 생각을 지키기 위한 무기가 되어선 안 된다. 내 생각이 옳다고 믿는 입은 꾹 다문 상태였다가 나와 다른 목소리를 만나면 세게 때릴 자세로 돌변한다. 타자를 위협하는 언어는 포악하다. 반면 다른 생명을 존중하는 입은 계속 움직인다. 늘 열려 있다. 동물에 대해 생각하고 느낀 점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자신의 무지함과 오류를 정직하게 인정한다. 우리가 가져야 할 입은 공생의 의미를 천천히 알아가면서 진정한 공생을 말하는 입이다. 이런 입에서 나온 언어는 포근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4-11-25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시로선 꽤 앞선 생각이었겠구나. 나도 어렸을 때 잠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어른들의 생각이 그대로 전수된 거지 뭐.
지금도 비행하다 빌딩 유리창에 부딪혀 즉사하는 새가 그렇게 많다더군. 인간이 죄가 많아. ㅠ

cyrus 2024-11-29 19:44   좋아요 0 | URL
아그네스 그레이가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말을 동물권 운동 구호로 써도 전혀 낯설지 않아요. ^^
 
고목 원더랜드 - 말라 죽은 나무와 그곳에 모여든 생물들의 다채로운 생태계
후카사와 유 지음, 정문주 옮김, 홍승범 감수 / 플루토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평점


4.5점  ★★★★☆  A





고목에 꽃이 핀다라는 속담이 있다. 초라한 집안에 경사가 일어난 상황을 비유한 말이다. 희망이 말라버린 사람은 마른나무에 꽃이 피랴?’라고 되묻는다. 이 말은 애당초 기대하지 말자는 속담이다불가능한 일에 희망을 품는 사람에게 경고하는 속담이 마른나무에 물 내기. 물기가 사라진 나무에 물 한 방울이 나올 수 없다그래도 마른나무는 쓸모 있다. 겨울이 되면 마른나무에 따끈한 불꽃이 핀다마른나무는 찬 바람에 약한 인간을 위해 아궁이에서 화장(火葬)된다.


사람들은 마른나무를 죽은 나무로 대한다. 하지만 마른나무는 죽지 않았다. 여전히 살아있다. 생기가 없어서 땅에 축 늘어져 잠을 잔다사람들은 마른나무를 땔감으로 쓰지만, 정작 마른나무는 장작이 되고 싶지 않다. 마른나무는 몇 년을 더 살 수 있다. 


나무를 연구하는 생태학자들은 마른나무를 존중한다. 이들은 마른나무에 버섯이 피는 사실을 알고 있다이때부터 마른나무에 생기가 돋는다마른나무는 여전히 푸르다. 땅에 누운 마른나무는 이끼 담요를 덮고 있기 때문이다마른나무에 버섯과 이끼가 자라면 곤충이 다가온다버섯과 이끼는 곤충의 양식이다곤충은 마른나무에 보금자리를 짓는다. 버섯, 이끼, 곤충이 달라붙어도 마른나무는 너그럽다마른나무는 자신의 몸에 작은 생명들을 활짝 피우면서 천천히 시들어 죽는다.


고목 원더랜드: 말라 죽은 나무와 그곳에 모여든 생물들의 다채로운 생태계마른나무에서 시작되는 생태계를 보여준다이 책의 주인공은 졸참나무 고목이다. 저자는 졸참나무 고목에 사는 동식물을 관찰하면서 마른나무 위에 펼쳐진 세계를 펜으로 직접 그렸저자는 마른나무를 모든 생명체가 투숙하는 호텔로 비유한다마른나무 호텔의 첫 손님은 균류맨눈으로 보기 힘든 아주 작은 손님이다균류가 마른나무 호텔에 오래 머무르면 그 안에 있던 포자가 발아하면서 곰팡이실(균사, 菌絲)이 생긴다곰팡이실이 커지면 버섯이 된다. 곰팡이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버섯의 싹이다다람쥐는 마른나무 호텔에 푸짐하게 차려진 버섯을 먹으러 오는 귀여운 손님이다. 다람쥐가 분주하게 마른나무 위를 지나가면 아주 작은 구멍이 생긴다. 다람쥐의 조그만 발자국이 많아지면 여러 종의 이끼가 자랄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만들어진다. 마른나무에 물 한 방울 짜내기 힘들지만, 그래도 이끼가 충분히 자랄 수 있는 물기를 머금고 있다.


마른나무가 기운 없이 누워 있어도 지구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 마른나무는 썩으면서 천천히 죽는다. 불에 타서 죽으면 마른나무 속에 있던 탄소가 한꺼번에 나온다. 그러나 천천히 죽어가는 마른나무는 탄소를 많이 배출하지 않는다탄소 일부는 대기로 방출되지만, 천천히 나온 탄소는 흙을 튼튼하게 만드는 영양분이 된다. 마른나무가 하는 일을 탄소 저류(貯留)’라고 한다.


사람들은 땅에 쓰러져 있는 고목을 볼품없는 쓰레기로 여긴다. 하지만 마른나무는 새로운 숲이 시작되는 씨앗이다마른나무도 숲의 일부다. 저자는 가능한 한 마른나무를 자연 상태 그대로 놔두는 것을 권한다. 이끼 담요를 덮은 마른나무에 어린나무(실생, 實生)가 자라기 때문이다놀라운 사실은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마른나무에도 어린나무가 자라기도 한다


너무 못생긴 마른나무는 목재로 쓸 수 없다. 그렇지만 돌고 도는 생태계의 과정을 알려주는 교재가 될 수 있다마른나무는 누워서 흙이 된다. 바로 그 자리에 다시 나무로 태어나 우뚝 선다마른나무에 절대로 꽃이 피어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지쳐 쓰러진 마른나무는 아직 죽지 않았다고. 여전히 살아 있다. 아주 길고 느린 잠에 빠져 있다. 마른나무를 함부로 뜨거운 불로 깨우지 마라. 자고 있어도 우리를 위해 느릿느릿 일하고 있다. 잠든 나무에 나무가 핀다






※ cyrus의 주석과 정오표




* 6쪽, 감수자의 글중에서





 나무의 주요 줄기 성분인 난분해성의 셀룰로오스[주1]와 리그닌을 분해할 수 없다. 이때 등장하는 곰팡이가 우리가 흔히 버섯이라고 하는, 나무의 주성분인 셀룰로스[주1]와 리그닌을 분해할 수 있는 목재부후균이다.

 


[주1] 셀룰로스(cellulose)셀룰로오스섬유소의 또 다른 용어다. 셀룰로스, 셀룰로오스 둘 다 쓸 수 있다.





* 113








수잰 시마드 → 수전 시마드(Suzanne Simard) [주2]



[2] 76쪽에 ‘수잔 시마드로 표기되어 있다. 수전 시마드는 식물의 뿌리와 곰팡이실의 공생관계가 숲의 성장에 기여하는 사실을 주목한 생태학자다. 그녀는 서로 다른 종의 식물이 서로 소통하면서 자라는 관계를 월드 와이드 웹(WWW)에 빗대어 우드 와이드 웹(WWW, 숲의 인터넷)으로 표현했다. 수전 시마드의 저서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 숲속의 우드 와이드 웹(김다히 옮김, 사이언스북스)가 작년에 출간되었다.





* 249~250

 

 소나무재선충병은 북미에서 들어온 소나무재선충이라는 몸길이 1밀리미터 정도의 선충이 일본 토종 솔수염하늘소를 매개충으로 하여 퍼지는 병이다. [3]

 


[3] 솔수염하늘소는 우리나라에도 서식한다. 북방수염하늘소도 소나무재선충의 매개충이다. (출처: 한국임업진흥원)







 






[주4] 저자는 고등학생 시절에 만난 모리구치 미쓰루(盛口滿)의 저서 우리가 사체를 줍는 이유: 자연을 줍는 사람들의 유쾌한 이야기가 자신의 생태학 연구에 큰 영향을 준 책으로 언급한다. 고목 원더랜드뒤쪽에 참고문헌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을 국내 미출간으로 되어 있다(참고문헌 374~375). 우리가 사체를 줍는 이유2004년 가람문학사에서 출간되었고, 한동안 절판되었다가 2020년에 숲의 전설이라는 출판사에서 새로운 표지로 다시 태어났다.

 

이뿐만 아니라 의식은 언제 탄생하는가: 뇌의 신비를 밝혀가는 정보통합 이론(박인용 옮김, 한언출판사, 2019, 참고문헌 377), 로빈 월 키머러(Robin Wall Kimmerer)이끼와 함께: 작지만 우아한 식물, 이끼가 전하는 지혜(하인해 옮김, 눌와, 2020, 참고문헌 380쪽에 책 제목이 다르게 나온다. 일본에 나온 번역서 제목인 이끼의 자연사로 되어 있다. ‘국내 미출간표시가 없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월든국내 미출간도서로 분류되어 있다(참고문헌 383).









 

국내에 출간된 참고문헌을 정확하게 소개하지 않은 점은 이 책의 옥에 티. 과학을 읽고 즐기고 알아가는(플루토 출판사 네이버 블로그에 있는 출판사 소개 글이다)’ 독자를 위해서 출판사 편집자와 번역자는 참고문헌을 꼼꼼하게 써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학공식 - 개정판
리오넬 살렘 외 지음, 장석봉 옮김 / 궁리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점


3점  ★★★  B





단어가 세상에 처음 태어났을 때의 모습말밑이라고 한다. 말밑과 비슷한 뜻의 단어는 어원(語原)’이다. 아름답다의 말밑은 어떻게 생겼을까?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내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가설은 아름의 말밑이 이라는 가설이다당신은 아름다워를 말밑으로 풀어 써보자. 당신을 알아가 된다상대방을 잘 알면 그 사람의 매력이 아름다워 보인다.


어떤 수학자는 수학 공식이 아름답다고 표현한다. 그들의 눈에는 복잡한 계산을 하지 않아도 되는 수학 공식이 아름다워 보인다. 하지만 수학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학 공식수학을 공부할 때 알아야 할 49개의 수학 공식을 소개한 책이다이 책을 펼친 독자가 알아야 할 것은 수학 공식의 기원이다. 그렇다고 해서 수학 공식이 탄생하는 과정까지 달달 외울 필요 없다수학 교과서에 갇힌 수학 공식은 딱딱하다. 전혀 아름답지 않다.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수학 교과서에 갇히지 않은 수학은 자유롭다. 그래서 교과서가 정해준 대로 수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수학 공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고 나면 수학이 부드러워진다. 반면 수학 교과서는 학생을 가르치듯이 수학 지식을 알려준다. 일단 먼저 수학 공식을 처음 만든 수학자를 소개한다. 그리고 본론으로 들어간다. 수학 공식을 이용해 문제를 푸는 방식을 알려준 다음에, 이를 응용해서 문제를 풀어보라고 지시한다. 이러니 수학이 딱딱하고 재미없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학 공식콩트 형식으로 수학 공식을 소개한다. 수학 콩트의 주인공은 수학자가 아니다. 수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호기심이 많은 소년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해바라기>가 그려진 포스터에 접힌 자국을 우연히 발견하고, 이를 이용해 포스터의 면적을 구한다. 이 과정에서 소년은 피타고라스 정리(직각삼각형 정리)를 발견한다. 존 네이피어(John Napier)라는 수학자가 고용한 정원사는 정원의 넓이를 구하기 위해 계산하다가 훗날 로그(log)’라고 불리게 될 수학 개념을 도출한다.


피타고라스 정리를 스스로 발견한 소년과 네이피어의 정원사는 허구 인물이다. 왜 이 책의 저자는 왜 수학 콩트의 주인공을 수학자가 아닌 사람으로 내세웠을까? 수학은 상아탑 안에서만 놀기 좋아하는 수학자들을 위한 학문이 아니다. 수학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수학은 실생활에 가까이 있다. 이 책은 수학 공식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호기심과 인내력이 있으면 수학자가 아닌 사람들도 수학의 매력에 빠진다.


저자는 수학적 사실을 왜곡하는 문제를 피하면서 허구를 가미한 수학 콩트를 썼다. 책 끝부분에 저자는 수학 콩트를 쓰면서 자기가 지어낸 장면을 상세하게 설명했다그래도 책 속에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다. 저자는 화가들이 황금비가 적용된 아름다운 사각형을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그림 <수태고지> 속에 숨겨진 황금비를 보여준다(70~71). 황금비의 아름다움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예술가들이 황금비에 맞춰 그림을 그렸거나 건축물을 세웠다고 믿는다. 하지만 근거가 없는 믿음이다. 예술 작품에서 황금비를 측정하는 방식은 오래전에 수학자들도 지적한 수학적 왜곡이다.


이 책에 수학자들의 일화가 나오는데, 대부분은 허구이며 후세에 지어진 것들이다. 러시아의 황제 예카테리나 2(Ekaterina II)는 프랑스의 철학자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에게 신이 존재하느냐고 물었다. 종교를 비판한 계몽주의자 디드로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황제에게 총애받아 러시아에 체류하게 된 스위스의 수학자 오일러(Leonhard Euler)는 아주 간단하게 수식을 제시하면서 신은 존재한다고 대답했다. 수학 공식을 알지 못하는 디드로는 오일러의 주장에 반박하지 못했다.







저자는 오일러, 디드로, 러시아 황제가 나눈 대화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주장한다(190)천재 수학자로 평가받는 오일러의 영특함을 보여주는 이 일화는 수학사에 많이 언급될 정도로 유명하다. 그러나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니다. 일화의 원전에 오일러가 아닌 러시아 출신 철학자가 나온다. 일화가 변형된 채 와전된 것이다.[주]







뉴턴(Isaac Newton)이 땅에 떨어진 사과나무를 보는 순간, 만유인력의 법칙을 생각했다는 일화(192쪽) 역시 사실이 아니다.

   

이 책의 39장은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건너기문제에 관한 이야기다. 쾨니히스베르크는 과거에 독일의 영토였다. 쾨니히스베르크를 지나가는 강에 일곱 개의 다리가 있었다. 누군가가 이 일곱 개의 다리를 한 번씩만 건너서 출발 지점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궁금했다. 이러한 방식을 한붓그리기라고 한다. 오일러는 한 번에 모든 다리를 건너가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증명했다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원래는 일곱 개의 다리가 있었다.






칼리닌그라드의 다리가 있는 현재 지도.

녹색으로 표시된 다섯 개의 다리는 현재 남아 있는 다리다.

빨간색으로 표시된 두 개의 다리는 전쟁 중에 파괴되어 사라졌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쾨니히스베르크는 러시아(당시 국명은 소련)의 영토가 되었다. 현재 지명은 칼리닌그라드. 저자는 여덟 번째 다리가 새로 건설되어서 이제는 한 번에 건너는 일이 가능하다고 말한다(150). 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다리의 개수는 총 다섯 개다. 두 개의 다리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폭파되어 소실되었다. 현재 다섯 개의 다리로 한붓그리기가 가능하지만, 무조건 출발점으로 돌아올 수 없다.





[주] 참고문헌: 박부성 천재들의 수학 노트(향연, 20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