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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 - 나를 이루는 원자들의 세계
댄 레빗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24년 11월
평점 :
🙅
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4점 ★★★★ A-
우로보로스(Ouroboros)는 질기다. 인간의 상상력이 만든 이 뱀은 자신의 꼬리를 삼킨다. 꼬리가 먹혀도 다시 돋아난다.
뱀은 둥글게 말아서 돌고 돈다(Round and Round). 영원히 죽지 않는다. 우로보로스는 무한과 순환을 상징한다.
원자(Atom)는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그리스어 atomos)’ 것처럼 보여도, 잘만 쪼개진다. 한 개의 원자가 분해되면 그 안에 들어있는 전자, 양성자, 중성자 등이 나온다. 이들은 원자보다 더 작은 ‘아원자 입자’다. 세상으로 뛰쳐나온 아원자 입자들이 다시 만나면 새로운 원자가 생긴다. 만약 원자가 절대로 분해되지 않는 속성을 가진다면, 생명체는 태어날 수 없다. 분해와 재결합을 무수히 반복하는 원자의 성질은 우로보로스와 같다. 원자는 죽지 않는다(Atoms Never Die).
인간은 원자들이 뭉쳐져서 만들어진 생명체 중 하나다. 한 사람의 몸속에 들어 있는 원자의 개수는 얼마나 될까? 전 세계 모든 사막에 있는 모래알보다 무려 10억 배나 더 많다. 인간이 죽으면서 나온 원자들은 또 다른 생명체를 만든다. 모든 생명체는 원자에서 태어난다. 그렇다면 그 많은 원자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책으로 만들어진 TV 다큐멘터리 《코스모스》(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4년)에 출연한 칼 세이건(Carl Sagan)은 우리가 우주에서 온 특별한 존재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별 먼지(star stuff)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별이 폭발해서 우주 사방으로 산산이 흩어지는 별 먼지 속에 원자가 있다.
따라서 원자의 역사를 알려면 제일 먼저 우주에서 시작한다.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나게 큰 우주의 씨앗은 원자다. 그뿐만 아니라 지구의 씨앗, 생명체의 씨앗이기도 하다. 원자는 다재다능한 입자다. 《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 나를 이루는 원자들의 세계》는 우주와 생명체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원자의 업적들을 정리한 책이다.
수많은 물리학자, 화학자, 천문학자, 생물학자들은 태초의 씨앗을 밝히기 위해 무진장 노력했다. 그들의 연구는 동시대 과학자들로부터 외면당하거나 비난을 받았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그리려고 했던 프랑스의 화가 쿠르베(Gustave Courbet)는 ‘보이지 않는 천사’를 그리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명백한 사실을 알고 싶은 과학자들은 확인 불가능한 ‘보이지 않는 원자’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원자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우리는 원자의 실체를 부정한 과학자들이 어리석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원자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실험기구가 없었던 그 당시로서는 보편적인 인식이었다. 미국의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Thomas S. Kuhn)은 집단적인 인식을 ‘패러다임(paradigm)’이라고 명명했다.[주1]
벨기에의 가톨릭 성직자 조르주 르메트르(Georges Lemaître)는 아주 작은 원시 원자(primeval atom)가 폭발하는 순간 우주가 탄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방정식을 이용해 우주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하지만 우주는 변함없이 고정되어 있다고 믿은 아인슈타인은 르메트르의 우주 팽창설을 거부했다. 그의 인생 최대의 실수였다.[주2] 르메르트가 제시한 원시 원자 개념은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빅뱅(Big bang) 우주론의 원형이다.
20세기 중반에 아원자 입자들의 정체가 하나둘씩 밝혀지기 시작했다. 당사 물리학자들은 기뻐하기보다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 중 일부는 여전히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원자의 속성을 믿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반복되는 실험과 정밀한 측정을 중시한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의 실체를 제대로 밝히지 못한 상황을 찝찝하게 여겼다. 아원자 입자들이 발견되는 상황을 지켜본 미국의 물리학자 머리 겔만(Murray Gell-Mann)은 모든 물질의 기본 입자는 원자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과감한 생각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는 유령과 같은 입자에 ‘쿼크(quark)’라는 괴상한 이름을 붙여주었다. 쿼크는 독일어로 ‘헛소리’를 뜻한다.
이 책은 과학의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여섯 가지 편향’을 소개한다. 과학자도 인간이라서 때로는 착각하고,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설과 이론을 의심하는 과학자들의 태도를 무조건 편향으로만 볼 수 없다. 과학적인 관점에 따라 의심하는 태도는 증거가 부실한 유사과학과 독단적인 편향에 맞서 싸우는 ‘회의주의(scientific skepticism)’다.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의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김동광 옮김, 까치, 2021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과학책이었다. 15년이 지난 후에 이 기록을 깬 과학책이 빌 브라이슨(Bill Bryson)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이덕환 옮김, 까치, 2020년)다.[주3] 이 두 권의 책은 잘 만들었지만, 단점이 있다.
과학책의 역사를 정리한 책을 펴낸 브라이언 클레그(Brian Clegg)에 따르면, 호킹의 책은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들에게 불친절한 책이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2003년에 출간된 책이다. 최신 과학 정보가 반영되지 않았다. 《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에는 기본적인 과학 개념들이 쉽게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2023년에 나온 이 책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보다 10년은 젊다.
책 속에 사소하지만, 못 본 척하면서 지나칠 수 없는 ‘옥에 티’가 있다.
* 28쪽
몇 년 후에 그는 교황 피우스 7세에게 자신의 이론을 영적 진리에 대한 증거로 활용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원문]
Years later, he would ask Pope Pius XII not to use his theory as evidence of scriptural truth.
‘피우스(Pius)’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교황은 총 열두 명이다. 국내 천주교인들이 많이 쓰는 표기는 ‘비오’다. 비오 7세(Pius VII, 1742~1823)는 1800년에 바티칸에 입성한 251대 교황이다. 조르주 르메트르가 살아 있었을 때 활동한 260대 교황은 비오 12세(Pius XII, 1876~1958, 재위: 1939~1958)다.
* 55쪽
그는 이 기묘한 입자를, ‘quack(돌팔이)’ 또는 ‘quork(꽥꽥거림)’라는 이름을 저울질하다가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야경』(Finnegan’s Wake)에 나오는 쿼크(quark)로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Wake’는 ‘깨어나다’ 또는 ‘밤을 새다’를 뜻하는 단어다.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고국 아일랜드에는 장례식이 끝난 후에 지인들끼리 모여 밤새도록 고인을 추억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풍습이 있다, 소설 제목의 ‘Wake’는 아일랜드의 장례 풍습을 뜻한다. 따라서 ‘피네간의 야경’은 오역이다. 정확한 제목은 ‘피네간의 경야(經夜)’다. 야경은 ‘밤의 경치(夜景)’ 또는 ‘밤에 순찰하는 일(夜警)’을 뜻한다.
* 92쪽
아폴로 10호 우주 비행사들이 달 궤도를 돌았던 것이 고작 두 달 전이었다. 이제는 아폴로 11호의 우주 비행사인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최초의 달 착륙을 시도하고 있었다.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과 버즈 올드린(Buzz Aldrin)과 함께 아폴로 11호에 탑승한 우주 비행사 한 사람이 언급되지 않았다. 그 사람은 바로 마이클 콜린스(Michael Collins)다. 그는 두 사람과 함께 달 표면을 밟지 못했고, 우주선 조종을 담당하는 임무를 맡았다. 콜린스는 처음으로 달의 뒷면을 본 우주 비행사(넓게 보면 인간)다.
* 274~275쪽
1970년대에 발간된 『식물의 사생활』(The Secret Life of Plants) 때문에 식물 생리학은 유사 과학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식물에 거짓말 탐지기를 연결한 실험을 통해서 식물이 인간의 감정에 반응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주장하는 전직 CIA 수사관의 책이었다. 그의 실험은 재현할 수 없었고, 그 책은 저명한 생물학자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결국 식물이 지능을 가졌을 수도 있다는 주장은 모두 초심리학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식물의 사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언급된 이 책의 정체는 《식물의 정신세계: 식물도 생각한다》(황금용 · 황정민 옮김, 정신세계사, 1993년)다. 저자는 피터 톰킨스(Peter Tompkins)와 크리스토퍼 버드(Christopher Bird)다. 두 저자는 과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뉴에이지 관련 서적을 펴냈다.
피터 톰킨스는 제2차 세계 대전에 종군 기자와 미국의 첩보기관 OSS(미국 전략사무국, Office of Strategic Services) 요원으로 활동했다. OSS는 CIA(중앙정보국)의 전신이다. 저자는 피터 톰킨스를 ‘전직 CIA 수사관’이라고 잘못 언급했다. CIA는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인 1947년에 설립되었다.
영국의 생물학자 데이비드 애튼버러(David Attenborough)가 1995년에 기획한 BBC 자연 다큐멘터리 제목도 ‘식물의 사생활(The Private Life of Plants)’이다. 식물의 탄생 및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이 다큐멘터리는 책으로도 나왔는데, 애튼버러가 썼다. 다큐멘터리 제목과 같은 책의 번역본(과학세대 옮김, 1995년, 절판)을 펴낸 출판사가 ‘까치’다. 따라서 ‘유사 과학’으로 비판받은 피터 톰킨스와 크리스토퍼 버드의 책 제목을 ‘식물의 사생활’로 번역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주1] 토머스 S. 쿤, 김명자 · 홍성욱 옮김, 《과학혁명의 구조》(까치, 2013년)
[주2] 데이비드 보더니스, 이덕환 옮김, 《아인슈타인 일생 최대의 실수》(까치, 2017년, 절판)
[주3] 브라이언 클레그, 제효영 옮김, 《책을 쓰는 과학자들: 위대한 과학책의 역사》(을유문화사, 2025년), 304~307쪽.
<cyrus의 정오표>
* 108쪽
베르헤른 폰 브라운 →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
성홍렬 → 성홍열(猩紅熱)
* 138쪽
1940년대에 오파린은 권력에 굶주린 생물학자로서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마르크스주의적 유전 이론으로 스탈린의 호감을 얻은 토로핌 리센코와 손을 잡았다.
토로핌 리센코 → 트로핌 리센코(Trofim Lysen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