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신론자다. ()종교인이다. 종교에 대해 잘 모른다. 어린 시절, 내게 불쑥 다가와서 교회에 다녀보라면서 전도하는 사람들이 싫었다. 신이 어쩌고저쩌고 말하는 그들이 이상했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 위인전을 읽고 나서 적은 독후감종교에 대한 거부감을 표출한 글이었다당시에 썼던 감상문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나는 교회가 싫어요!” 


인간과 유인원은 같은 조상에게서 진화된 종()이라고 주장한 다윈. 종교는 다윈의 진화론을 반기지 않았다성직자들은 만물을 창조한 신이 설 자리가 없어 보이는 진화론을 비난했다. 종교를 미워한 나는 다윈이 무지하고 편협한 종교에 괴롭힘을 당하는 위인이라고 믿었다.


과학과 종교. 이 두 단어를 한자리에 모아놓으면 대부분 사람은 제일 먼저 갈등충돌을 떠올린다. 과학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한 손에 성경을 들고 다니면서 창조론을 주장하는 종교인들을 비난한다. 종교인들은 기적과 천국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들을 싫어한다. 그들 중에는 종교를 비판하는 과학자들이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와 같은 전투적 무신론자에 속한다고 인식한다. 종교인이 과학자들을 싫어하면 과학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과학을 외면하는 종교인들을 싫어하면 종교를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과학자와 종교인들은 과학과 종교 사이에 커다란 갈등의 벽이 세워져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에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분리의 역사가 아닌 ‘상호보완의 역사였다는 관점이 주목받고 있다과학책방 담다의 두 번째 큐레이션 주제는 과학과 종교 톺아보기. 국어사전은 톺아 보다의 뜻이 샅샅이 살피다라고 말한다과학과 종교를 톺아보는 일은 과학과 종교에 오랫동안 달라붙은 편견을 씻어내는 일이다. 과학과 종교를 둘러싼 편견의 대표적인 예가 앞서 언급한 과학과 종교의 갈등 관계이다.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편견이 지속되면 또 다른 편견을 낳는다. 과학의 입지가 줄어든 중세를 암흑시대로 규정하는 관점 역시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오해해서 생긴 편견이다.


















* 로널드 L. 넘버스, 코스타스 캄푸러키스 엮음, 김무준 옮김 통념과 상식을 거스르는 과학사: 뉴턴에서 멘델까지, 과학을 둘러싼 역사적 오해들(글항아리사이언스, 2019)

 

* [절판] 로널드 L. 넘버스 엮음, 김정은 옮김 과학과 종교는 적인가 동지인가(뜨인돌, 2010)




과학이 종교보다 우위에 서 있는 학문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종교의 부정적인 면을 바라본다. 이러면 과학과 종교가 서로 만나면서 발전되는 역사적인 순간을 보지 못하게 된다통념과 상식을 거스르는 과학사과학과 종교는 적인가, 동지인가라는 두 권의 책의 집필에 참여한 역사가와 과학철학자들은 과학과 종교의 갈등 관계중세는 암흑시대라는 상식이 잘못된 통념이라고 입을 모아 주장한다.

















* 토머드 딕슨, 김명주 옮김 과학과 종교(교유서가, 2017)




과학과 종교는 과학과 종교, 두 분야 모두 생소한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입문서다.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과학과 종교 관계는 갈등또는 조화로 너무나도 쉽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하지 않다. 진화론 대 창조론과 같은 과학과 종교가 충돌한 역사적인 사례를 분석한 이 책은 과학과 종교가 만나는 지점에 정치적 이해 관계도 작용하고 있음을 설명한다과학 대 종교라는 이분법적인 관점은 과학과 종교가 복잡하게 얽힌 관계를 이해하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 바이올렛 몰러, 김승진 옮김 지식의 지도: 일곱 개 도시로 보는 중세 천 년의 과학과 지식 지형도(마농지, 2023)


* 김주연 김주연의 철학사 수업 2: 고중세 그리스도교 철학(사색의숲, 2022)


* 움베르토 에코, 이윤기 옮김 《장미의 이름》 (열린책들, 2009)




중세는 우리가 생각한 것과 다르게 어둡지 않았다중세에도 과학이라는 학문이 있었다지식의 지도고대 그리스의 과학 지식을 보존하고 독자적인 방식으로 연구한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지적 풍토를 주목한 책이다. 이 책은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유럽 학문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실을 보여준다.


중세 영국의 신학자이자 스콜라 철학자인 로저 베이컨(Roger Bacon)실험을 통해 지식이 옳은지 아닌지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험과학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강조한 학자.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프란체스코회 수도사 윌리엄은 자신의 스승이 로저 베이컨이라고 언급한다김주연의 철학사 수업 2: 고중세 그리스도교 철학에 로저 베이컨의 철학을 자세하게 소개한 내용이 나온다.
















* 도널드 R. 프로세로, 류운 옮김 화석은 말한다: 화석이 말하는 진화와 창조론의 진실(바다출판사, 2024)




화석은 말한다화석과 같은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잔뜩 널려 있는데도 이를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창조론자들을 반박한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과학을 이해하는 종교의 긍정적인 사례들도 언급한다. 진화론을 이해한 종교가 있었기에 진화론 연구가 발전되었다. 현재 활동 중인 고생물학자들 대다수는 기독교인이다. 이들은 교적 교리와 별개로 반복된 실험을 거쳐서 나온 결과를 가지고 연구한다.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관한 연구는 현재진행형이다. 내가 고른 책들에 담긴 모든 지식은 오류 가능성이 있다. 정설에 반하는 증거가 나오면 정설을 의심해 보고 검증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실행하는 학문이 바로 과학이다.








[과학책방 담다]

2021421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15476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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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4-07-20 2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갈다˝ ˝담다˝^^

cyrus 2024-07-21 20:43   좋아요 2 | URL
‘갈다’보다 ‘담다’라는 표현이 더 좋지 않나요? ^^
 
아름다운 실험 - 세상을 증명하는 실험과학의 역사
필립 볼 지음, 고은주 옮김 / 소소의책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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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점  ★★★★☆  A





열매는 씨앗 주머니다. 열매는 먹어야 사는 우리를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열매가 우리에게 날 먹어도 돼요라고 말한 적이 없다열매가 하는 일이 있다. 열매는 씨앗을 보호한다. 열매가 생겨야 씨앗을 보호해서 온 세상에 퍼뜨릴 수 있다


실험의 머리글자 열매를 뜻하는 한자()실험이 열매라고 하면 그 속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들어있다. 우리는 그것을 이론 또는 법칙이라고 부른다열매가 생기기 전 상태를 씨방이라 한다. 씨방이 변해야 열매가 된다. 씨방은 가설에 해당한다. 가설이 사실인지 알려면 반드시 실험해야 한다. 사실로 검증되지 않은 가설은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진리가 될 수 없다. , 열매로 맺어질 수 없다. 가설이 사실로 판명되면 이론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열매가 맺으면 학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법칙으로 영글어진 진리를 섭취한다누군가는 실험을 통과하지 않은 가설을 진리인 것처럼 주장한다제대로 익지 않은 씨방을 먹음직스러운 열매라고 우기는 꼴이다사이비 꾼은 사실이 아닌 본인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억지로 주장한다. 그들은 실험과 검증을 의도적으로 피한다. 왜냐하면 사실이 아닌 사실이 들통나니까. 변하지 않은 씨방은 열매가 될 수 없듯이 실험을 진행하지 않은 가설은 법칙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실험은 공부하는 사람들이 믿고 먹을 수 있는 학문의 열매가 되기 위한 과정이다.


과학자들은 실험을 반복한다. 실험을 여러 번 해서 비슷한 결론이 나올 때까지. 한 치의 오차가 있으면 다시 실험한다. 우리는 그걸 실패라고 부른다. 실패는 우리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실패를 좋아한다. 과학 분야에서 실패는 빈번한 일이다. 실패한 경험이 누적되면 과학자들은 실험 방식의 미흡한 점이나 자신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다


과학이라는 거대한 나무에 실험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지금도 수많은 과학자가 과학나무를 돌보고 있다. 과학자들은 잘 익은 실험열매를 수확할 뿐만 아니라 과학나무에 기생해서 자라라는 가짜 정보와 유사 과학을 잘라낸다아름다운 실험: 세상을 증명하는 실험과학의 역사과학나무에 열린 실험열매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여주는 실험 열매 도감이다이 책에 실험과 관련된 도판이 풍부하다실험 과정의 한 장면, 실험 도구와 장비들의 생김새, 과학자들이 직접 쓴 실험 노트 일부를 알 수 있는 도판들은 독자를 실험 현장 한복판으로 데려다 놓는다.


아름다운 실험제목과 내용이 다른 책이다. 왜냐하면 이 책에 소개된 실험열매들의 탄생 과정이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앞서 과학자들이 실패를 좋아한다고 했지만, 실험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결론에 직면하면 난처해한다. 그래서 자신이 믿고 있는 지식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은 실험 결론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1887년에 앨버트 마이컬슨(Albert Abraham Michelson)에드워드 몰리(Edward Morley)빛의 속도를 측정하는 실험을 진행한다. 이 실험이 진행되었던 시기에 활동한 과학자들은 빛은 파동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며 빛을 전달하는 매질은 에테르(aether)’라고 믿었다마이컬슨도 에테르의 실체를 믿었다. 그는 에테르를 증명하고 싶어서 실험했다. 실험 도구는 정밀도가 높은 간섭계였다. 그런데 간섭계는 마이컬슨에게 에테르는 없다라는 결론을 보여주었다. 자신이 원하는 결론을 얻지 못한 마이컬슨은 처음에 이 실험이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은 마이컬슨은 실험을 반복했고 간섭계가 알려준 결론을 받아들인다.


과학자들이 모든 현상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과학 실험도 처음부터 끝까지 논리적인 인과 관계에 따라 완벽하게 진행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실험 도중에 불쑥 끼어든 우연이 뜻밖의 결론을 유도할 수 있다.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우연으로 만들어진 발명이 없다(None of my inventions came by accident)고 말했다. 하지만 우연으로 만들어진 실험이 생각보다 많다.


실험과학의 역사는 실패와 우연이 뒤섞인역사다여기에 과학자들의 솔직한 욕망한 움큼도 섞여 있다아름다운 과학이 아니라 지저분한 과학이다지저분한 과학은 실험실에서 이루어진다. 우연과 실패가 과학자들을 괴롭혀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다시 처음부터 실험해야 한다. 명예욕이 큰 과학자들은 자기기만의 유혹을 참지 못한다. 자신을 속이는 과학자들은 남들을 속인다. 자신에게 유리한 결론을 얻으려고 실험 과정을 조작하거나 결론에 맞지 않는 오차를 의도적으로 은폐한다과학 교과서는 실패’, ‘우연’, ‘욕망을 말끔히 제거한 아름다운 과학을 보여준다학생들은 실험실이 아닌 교실에 갇혀 있다. 교실에서 보정이 심한과학을 외운다. 실험 과정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채 성공적인 결과만 본다. 우리나라 과학 교육은 학생들에게 실험열매가 생기는 과정을 알려주지 않는다. 성적을 잘 받기 위해서 열매를 주야장천 먹으라고 강요한다. 과학 교과서에 의존하는 교육 환경 속에서 자란 사람은 과학이 긍정하는 실패를 용납하지 못한다과학은 지저분해야 한다. 실패와 오류를 두려워하고, 성공과 실적을 중시하는 아름다운 과학나무는 성장이 더디다. 실패가 자라나지 않는 아름다운 과학나무에서 달린 실험열매는 빛 좋은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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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4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4-06-25 06:37   좋아요 1 | URL
책이 크고 사진이 많은데, 글자 크기는 작아요. 그래도 이 책, 재미있어요. 과학의 역사와 과학철학 두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내용이 알차요. ^^
 
인생에 대해 조언하는 구루에게서 도망쳐라, 너무 늦기 전에 - 우리를 미혹하는 유행, 가짜, 사기 격파하기
토마시 비트코프스키 지음, 남길영 옮김 / 바다출판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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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논리학에서 언급되는 오류 중에 그릇된 권위에 호소하기(appeal to unqualified authority)’라는 것이 있다. 특정 분야에 전혀 알지 못하는 전문가나 유명인의 주장을 의심 없이 받아들일 때 생기는 오류이다. 수십 년 동안 한 분야만 공부하고 연구한 전문가도 때론 헛다리 짚을 때가 있어서 항상 맞는 말만 할 수 없다. 전문가가 똑똑하고 유명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말한 잘못된 주장을 믿는 것도 오류이다.


프랑스의 시인 라퐁텐(La Fontaine)이 엮은 우화집에 자신이 똑똑하다고 착각하는 전문가와 그들을 믿고 따르는 어리석은 대중을 풍자하는 우화가 나온다. 라퐁텐이 살았던 17세기는 점쟁이들이 활개 치고 다니던 시절이다. 과거 점쟁이들은 앞날을 맞추는 척하면서 전문가 행세를 했다라퐁텐은 점을 믿는 독자들에게 현명한 사람과 거짓말하는 점쟁이를 혼동하지 말라는 교훈을 전달하기 위해 길을 걷다가 우물에 빠진 점쟁이가 나오는 우화를 들려준다. 우화가 아주 짧다. 



 어느 날 점쟁이가 우물에 빠졌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말했다.

 “바보 같으니라고. 자신의 운명은 한 치 앞도 못 보면서 어떻게 남의 운명을 점친다고 하는 거야?”

 

(다니구치 에리야, 김명수 옮김, 라퐁텐 우화중에서, 350)



지금도 여전히 점을 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 중 대다수는 점쟁이의 말을 전부 믿지 않는다. 재미로 점을 본다. 과거가 점쟁이들의 점성(점성술과 전성기를 합친 조어) 시대였다면, 오늘날은 구루(guru)의 영성(靈性, 또는 영성과 전성기를 합친 조어) 시대. 구루는 선생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다. 지금은 전문가와 권위자와 같은 뜻을 가진 단어로 변했다. 대중은 구루를 마치 신을 떠받들듯이 따른다. 그들이 바라보는 구루는 그저 빛에 가까운 존재다. 심오한 영성과 빛나는 예지를 갖춘 스승이다. 구루 신봉자는 스승의 말이 진실이며 자신의 삶을 좋은 쪽으로 인도해 준다고 믿는다. 


만약 라퐁텐이 구루의 영성 시대에 다시 태어났으면 구루를 가짜 스승이라고 비난하는 우화 한 편을 썼을 것이다라퐁텐이 하지 못한 일은 과학적 회의주의자들(Scientific Skeptics)이 하고 있다과학적 회의주의자는 점성술이나 미신과 같은 비과학적 문화의 허점을 지적한다. 이들의 역할은 그럴듯하게 과학을 인용하면서 전문가 행세하는 사기꾼을 비판하는 일이다몇몇 대중은 심리학을 과학으로 간주하는데심리학은 과학적 회의주의자들이 늘 경계하는 분야이다. 폴란드의 심리학자 토마시 비트코프스키(Tomasz Witkowski)대중을 속이는 심리학을 비판하는 과학적 회의주의자다.


과학적 회의주의라는 메스를 든 심리학자는 만병통치약으로 둔갑한 심리 치료, 전문가인 척하는 구루의 문제점을 낱낱이 파헤친다. 그가 쓴 책 제목이 인생에 대해 조언하는 구루에게서 도망쳐라, 너무 늦기 전에: 우리를 미혹하는 유행, 가짜, 사기 격파하기. 제목이 직설적이면서도 길다. 구루의 영성 시대를 비판하는 우화를 쓰는 라퐁텐이라면 아직 정신을 못차린 독자들을 향해 저렇게 직설적으로 충고했을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수많은 심리 치료를 만들고 홍보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심리 치료가 과학 이론이라고 주장한다. 대중은 과학적인 심리 치료를 신뢰한다. 전문가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지만, 일단 그들은 학계가 인정하는 전문가이며 그들이 과학이라고 여러 번 강조했으니 심리 치료는 무조건 좋다고 믿는다. 기세등등한 심리 치료 전문가는 심리 치료를 잘 받으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과학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갈지 정확한 방향을 알려주는 학문이 아니다과학이 해야 할 일은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진리가 언제든지 틀릴 수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며 진리가 타당한지 스스로 의심하고 검증해야 한다. 이렇게 살아가면 행복할 수 있으니 당장 실행하라고 주장하는 과학은 자가 검증이 없는 유사 과학이다과학자는 앞날을 예언하는 일에 어울리지 않는다. 


자신이 한 말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약점을 철저히 은폐하는 구루는 선생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 그들은 명성을 오래 유지하려면 대중 앞에서 잘 보여야 한다. 대중이 싫어할 만한 약점이 알려지면 자신의 권위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의 견해를 학계와 대중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쓰는 학자들이 종종 저지르는 행동과 비슷하다. 학자들은 자신의 견해를 관철하려고 일부러 불리한 증거들만 쏙 뺀다구루와 전문가를 지나치게 믿지 말자. 그들의 번지르르한 권위에 기 눌리지 말고, 의심해 보고 검증하자. 거짓말하는 구루는 구라. 자신의 그릇된 견해를 과학으로 포장하면서 뻥치는 전문가는 구루(九漏)’[주]다. 논리에 전혀 맞지 않는 구멍이 뻥뻥 나 있는 그들의 말에 더러운 것들이 새어 나온다.





[] 사람의 두 눈, 두 귀, 두 콧구멍, , 항문, 오줌 구멍을 아우르는 아홉 구멍을 가리키는 불교 용어. 아홉 구멍에 더러운 것이 새어 나온다고 한다.





※ cyrus의 주석








교황 연대기(바다출판사, 2014년, 절판)는 비잔티움의 역사를 연구한 역사가 존 줄리어스 노리치(John Julius Norwich)가 쓴 책이다. 이 책은 남길영 번역가가 단독으로 번역한 책이 아니다. 임지연, 유혜인 번역가와 함께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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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6-03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리는 있는 것 같다만 작가의 말을 믿어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난제다. ㅋ

cyrus 2024-06-04 06:47   좋아요 0 | URL
저자의 견해도 의심해 보면 좋죠. 저자의 견해 전부 다 옳을 수 없으니까요. ^^
 
무한한 가능성의 우주들 - 다중우주의 비밀을 양자역학으로 파헤치다
로라 머시니-호턴 지음, 박초월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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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점  ★★★★☆  A





우주는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과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든 과학에 별 흥미 없는 사람이든 이구동성으로 우주는 빅뱅(Big Bang)’으로 시작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빅뱅, 즉 대폭발이 일어나기 직전 우주의 모습은 특이점(singularity)이었다. 모든 물질이 모여 있는 특이점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면서 우주가 팽창하기 시작했다. 우주는 지금도 커지는 중이다.


그런데 우주의 시작점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견해들이 주목받고 있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인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빅뱅이 일어나서 현재 우주가 될 확률을 계산했다. 그가 내놓은 확률값은 놀랍게도 거의 0에 가깝다! 펜로즈는 우주가 태어나면서 점점 커지는 상태가 과거에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정말로 운좋게 우주가 생겼어도 결국 우리는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절대로 알 수 없다.


우주의 기원을 확인하기가 어려워도 여전히 과학자들은 입을 꾹 다문 채 자신의 출생 비밀을 철저히 숨기는 우주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기존 견해를 회의적으로 접근하며 그것이 타당한지 검증한다. 새로운 가설을 제시하는 일에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동료 과학자들의 반박과 비판을 받아들이는 일을 선호한다. 과학자들도 인간인지라 익숙한 것과 거리를 두면서 연구하는 것을 낯설어한다. 이미 검증된 이론을 지지하는 과학자들은 안정적인 우주론을 선호한다. ‘안정적인 우주론은 모든 과학자가 옳다고 인정한 법칙만으로 우주의 기원과 구조를 설명하는 이론을 뜻한다. 안정적인 우주론의 대표적인 예가 단일우주론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우주는 단 하나뿐이다반면 다중우주론은 불안정한 우주론이다. 단일우주론 지지자가 아니더라도 대부분 과학자는 검증되지 않은 가설을 이론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주 너머에 또 다른 우주가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단일우주론 지지자는 다중우주론을 SF에 나올법한 이야기로 치부한다.


알바니아 출신의 이론물리학자 로라 머시니-호턴(Laura Mersini Houghton)은 다중우주론 지지자다. 그녀는 양자역학을 이용해 현재 우주가 다중우주의 일부인지를 설명한다우주의 기원을 추적하는 과정을 보여준 그녀의 책 ‘Before The Big Bang(원서는 2022년 출간)’무한한 가능성의 우주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호턴은 우주론에 흥미를 느끼는 독자뿐만 아니라 단일우주론을 지지하는 독자 또는 과학자들에게 자신이 왜 다중우주론을 주장하는지 친절하게 설명한다. 무한한 가능성의 우주들은 정말로 보기 드문 친절한 과학책이다.


저자는 처음부터 다중우주론을 설명하지 않는다. 먼저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의 실체를 제대로 보여준 이론이다. 그동안 중력은 물질을 움직이게 만드는 으로만 인식됐는데, 일반상대성이론이 알려준 중력은 휘어진 공간이다.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양자는 입자와 파동 상태로 동시에 존재한다. 심지어 입자였다가 파동으로, 또 파동이었다가 입자로 변하기도 한다. 이러면 아무리 뛰어난 관측 기술이 있다고 해도 양자 상태를 확실하게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양자의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또 양자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덕분에 과학자들은 우주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었고, 우주론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저자는 끈 이론(string theory)평행우주론(Parallel Universe)과 같은 불안정한 우주론의 특징과 한계를 설명한다. 과거에 주목받은 여러 우주론의 단점을 보완한 것이 바로 저자가 제안한 양자 경관 다중우주론이다저자가 생각하는 양자 다중우주는 여러 갈래로 된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파동을 함수로 표현하면 여러 우주가 탄생할 확률은 모두 0이 아니라 제각각 다른 확률이 나온다. 양자 다중우주 속에 우주가 탄생할 확률이 0인 우주와, 0이 아닌 우주가 있는 것이다이 우주론 역시 완벽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불안정한 우주론에 속한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만만하다. 양자 다중우주론의 단점을 명확히 알고 있으면서도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이유를 알려준다. 저자는 계산과 관측 자료를 근거로 내세워 다중우주론이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기에 적절한 이론’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양자 다중우주론의 타당성을 근거로 내세워 우주의 탄생을 불가능하다고 본 펜로즈의 계산 결과가 틀렸음을 밝힌다.


불안정한 우주론은 연구할 가치가 없는 이론이 아니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계속 연구해야 할 이론이다. 안정적인 우주론은 완전히 닫힌 상태. 닫힌 상태를 유지하는 이론은 겉으로 보기에 편안해 보여도 예측하지 못한 변수를 설명하지도 못한다. 닫힌 마음의 과학자들은 새로운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반면 불안정한 우주론은 열린 상태. 열린 상태의 이론을 연구하는 열린 마음의 과학자들은 검증받는 일을 좋아한다. 동료 과학자들의 외면과 무관심은 가설이 이론으로 발전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가설이 이론이 되지 못한 것을 실패한 결과가 아닌 배우는 과정으로 바라본다. 열린 마음의 과학자는 넘어져도 아쉬움을 툴툴 털어 버리고 다시 연구를 시작한다.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도 사실 세상에 처음 공개될 당시에 불안정한 이론이었다. 두 이론을 지지한 과학자들은 주류 이론에 과감히 도전한 열린 마음의 과학자였다재미있게도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오랫동안 과학계를 군림해 온 뉴턴(Isaac Newton) 고전역학을 뒤집는 일반상대성이론을 주장한 열린 마음의 과학자였다. 하지만 우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예측할 수 없다고 보는 양자역학 앞에서는 닫힌 마음의 과학자가 되었다아인슈타인을 모순적인 과학자라고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게 우리가 알아야 할 진짜 과학자의 모습이다. 과학자는 세상의 이치를 완벽하게 설명할 줄 아는 천재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적인 과학자는 모순적이라서 친근하다. 과학자는 끈질기게 연구해서 기존 이론에 도전하는 용기를 가졌으면서도 때로는 친숙한 이론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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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자연사 - 협력과 경쟁, 진화의 역사
마크 버트니스 지음, 조은영 옮김 / 까치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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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표준국어대사전은 자연사(natural history)인류가 나타나기 이전 자연의 발전이나 인간 이외의 자연 발전의 역사라고 설명한다. 자연사의 사전적 의미에 인간 생존의 역사, 인류사가 빠져 있다. 자연사와 인류사는 서로 반대되는 의미가 있는 한 쌍의 단어로 느껴진다. 하지만 인간을 자연 세계의 일부로 이해한다면 자연사와 인류사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져야 한다.

 

두 발로 제대로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자연을 마음껏 쓸 수 있는 공짜 자원으로 활용했다. 자연을 개발 대상으로 인식한 인간중심주의가 득세하면서 자연 파괴 문제가 심각해졌다. 진화론에 심취한 지식인들은 인류의 문명, 특히 서양 문명이 진보의 정점에 있다고 착각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자연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원칙이 작동된 무한경쟁 세계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보다 열등한 자연을 얼마든지 이용하고 정복할 수 있게 되고, 자연이 있던 자리에 문명을 세운다. 인간의 자연 지배를 정당화한 문명사는 자연을 배제한 인류사.


문명의 자연사: 협력과 경쟁, 진화의 역사는 문명을 만든 인간을 치켜세우며 자연을 배제한 인류사를 거부한다. ‘인류가 나타나기 이전 자연만 바라보는 자연사와 인류사를 명확하게 구분해서 보는 관점도 따르지 않는다자연사를 논할 때 인류가 나타나기 이전 자연의 발전에 지나치게 쏠린 채 바라보면 인간은 지구에 민폐만 끼치는 동물로 비친다. 맞는 사실이지만, 자연을 약탈하는 인간의 폐해만 강조하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문명을 만든 인간의 능력이 간과된다이 책을 쓴 생태학자 마크 버트니스(Mark Bertness)는 자연사와 인류사를 서로 얽혀 있는 관계로 본다. 인간을 자연 속의 일부로 보는 문명의 자연사인간과 자연이 공생하고 경쟁하는 관계로 엮어진 지구사.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어느 하나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 자연과 인간은 서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살아온 집합체다. 






<cyrus가 쓴 주석과 정오표>



* 24







이유 이유





* 54

 




폴 에얼릭 파울 에를리히(Paul Ehrlich) [주]




* 뒤표지







[]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폴 에얼릭(1854~1915)인간의 본성()(이마고, 2008)의 저자이자 이 책의 추천사(책 뒤표지)를 쓴 미국의 생물학자 폴 에얼릭(Paul R. Ehrlich, 1932~ )과 동명이인이다. 인간의 본성()을 쓴 생물학자는 1964년에 자신의 논문에 공진화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노벨상을 받은 폴 에얼릭은 독일 사람이다. 그러므로 ‘Paul Ehrlich’를 영어식이 아닌 독일어식으로 표기하면 파울 에를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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