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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와 장 ㅣ 우주의 가장 위대한 생각들 2
숀 캐럴 지음, 김영태 옮김 / 바다출판사 / 2025년 6월
평점 :
4점 ★★★★ A-
양자물리학은 백지(白紙)와 같은 과학이다. 물리학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양자역학을 설명한다. 그들은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계산해서 측정한다. 측정해서 나온 결과는 ‘참’이며 ‘실재(reality)’이다. 하지만 양자계에 속한 입자는 측정할 수 없다. 양자계의 입자는 위치와 운동량이라는 물질 고유의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위치와 운동량 중 하나만 측정해도 양자계의 입자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다. 따라서 불완전한 측정, 즉 예측만 가능하다. 측정 결과가 분명하지 않아서 물리학자들은 양자계의 입자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양자물리학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한 것들을 말끔히 지워버린다. 고전물리학으로 설명 가능한 ‘실재’라는 상식은 양자계에 들어서면 편견이 된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전부 실재라고 믿는 사람들은 양자물리학에 쉬이 접근하지 못한다.
양자물리학은 수많은 과학자를 알쏭달쏭하게 만든다. 그래도 양자물리학은 여전히 살아 있다. 올해로 양자물리학의 나이는 100살이다. 양자물리학은 하이젠베르크(Heisenberg), 막스 보른(Max Born), 파스쿠알 요르단(Pascual Jordan)이 함께 만든 ‘행렬역학’에서 시작되었다. 행렬은 수와 함수를 사각형 형태로 배열한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슈뢰딩거(Schrödinger)는 입자가 파동의 성질을 가질 수 있다는 루이 드브로이(Louis de Broglie)의 견해에 영감을 얻어 ‘파동역학’을 제시했다. 파동역학의 핵심은 파동함수다. 파동함수는 파동처럼 움직이는 입자의 상태를 방정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행렬역학과 파동역학은 처음에 서로 다른 관점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두 개의 역학이 수학적으로 동등한 방식이라는 사실이 증명되면서, 이들을 통틀어 ‘양자역학’으로 부르게 되었다.
수학은 양자물리학이 태어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산파다. 수학이 없었으면 행렬역학과 파동역학은 완성되지 못했다. 과학자들의 머릿속을 백지상태로 만들어버리는 양자물리학이 지금까지도 주목받는 이유는 수학이 양자물리학의 빈틈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숀 캐럴(Sean M. Carroll)이 진행한 온라인 강연 ‘우주의 가장 위대한 생각들(The Biggest Ideas in the Universe)’은 물리학과 수학이 잇닿은 이론들을 소개한다. 작년에 나온 강연 1부 《공간, 시간, 운동》은 고전물리학에 해당하는 뉴턴역학(Newtonian mechanics, 뉴턴의 운동법칙: 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작용 반작용의 법칙)과 아인슈타인(Einstein)의 상대론 이론을 다룬다.[주1] 2부 《양자와 장》(Quanta and Field)의 주제는 양자물리학과 양자장 이론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저자는 물리학에서 많이 사용되는 수학적 개념들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물리학자들은 연구하다가 생각이 꽉 막힐 때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수학이 내민 손을 잡았다. 수학을 깊이 공부해 본 적이 없는 물리학자들은 수학에 선뜻 손길을 내밀지 못했다. 강연 1부에 소개된 아인슈타인은 중력이 물질을 끌어당기는 힘이 아닌 ‘시공간의 곡률’로 설명하기 위해 리만(Riemann)의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참고했다. 하지만 수학과 친분이 깊지 않은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을 수학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에 불만이 있었고, 리만 기하학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친구이자 수학자인 마르셀 그로스만(Marcel Grossmann)에게 리만 기하학을 배웠다. 양자역학 하면 가장 많이 언급되는 하이젠베르크는 행렬이라는 수학적 개념을 몰랐다. 그의 선배 동료인 막스 보른이 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에 행렬을 도입했다.
물리학 역사에서 언급된 수학은 ‘중요하지만, 이해하기 쉽지 않은 조연’ 또는 ‘어려워서 대충 보기만 하는 단역’으로 취급받는다. 숀 캐럴의 물리학 강연은 수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1부와 마찬가지로 저자는 물리학 이론을 설명하기에 앞서 물리학 이론이 만들어지는 데 사용된 수학 개념과 수식들을 소개한다. 1부에 나온 수학 개념이 2부에 다시 나온다. 1부를 건너뛰고 2부를 먼저 읽거나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라면 숀 캐럴의 강연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내용이 어려운 책은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된다. 《양자와 장》은 완독을 포기하게 만드는 어려운 책이다. 완독하지 못하더라도 이 책의 끝부분인 11장과 12장은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물론 두 장의 내용도 쉽지 않다). 11장에 저자는 독자에게 흥미로운 질문을 한다.
원자는 왜 말랑말랑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원자 집단을 모아서 단단한 물체로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요? (323쪽)
물질이 단단한 이유는 페르미온(fermion)이라는 입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페로미온 안에 아주 더 작은 입자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쿼크(quark)다. 12장의 주제는 양자를 이해하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원자’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이라서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두 개의 입자가 언급된다.
미국의 물리학자 파인먼(Feynman)은 복잡한 양자장 계산을 좀 더 간단하게 할 수 있는 ‘파인먼 도형(Feynman diagram)’을 고안하고, 양자전기역학(QED: Quantum Electro Dynamics)을 완성했다. 그런 과학자가 양자역학을 완벽히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확신했다. 양자물리학은 과학자들도 모르는 과학 분야로 악명이 높다. 알면 알수록 물음표가 계속 늘어나기만 한다. 양자물리학을 연구해서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이 많아도, 양자물리학 100주년을 맞이해서 양자물리학에 관한 책들이 계속 나와도, 일상과 전혀 관련 없는 학문이라는 씁쓸한 꼬리표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과학을 전공하지 않는 사람이 양자물리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대부분 사람은 물음표가 가득한 눈빛으로 넌지시 말한다.
양자물리학이 재미있어요?
살면서 쓸데없는 과학을 왜 공부하세요?
양자물리학을 공부하면 이득이 있나요?
양자물리학이 이해가 안 된다면서 계속 공부를 하는 건
시간 낭비하는 일 아니에요?
(모르겠으면 포기하세요)
양자물리학을 몰라도 된다. 하지만 몰라도 되는 학문이라고 해서 공부할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입자들과, 입자들끼리 상호작용을 하는 힘이 있어서 우리가 안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양자물리학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의 기본 성분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학문이다.
<cyrus가 만든 주석과 정오표>
[주1] 《공간, 시간, 운동》 서평
『수학자의 어깨 위에 서서』
(2024년 1월 22일 등록)
https://blog.aladin.co.kr/haesung/15241954
* 175쪽
물리학은 항상 무한대(infinity)와 편치 않은 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한편으로 무한대는 종종 매우 유용한 방식으로 곳곳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뉴턴과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가 미적분을 개발했을 때, 그들이 직면한 과제에는 무한대를 체계적으로 다루는 것이 있었습니다. 무한대는 ‘무한히 큰’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0과 1 사이에는 무한개의 실수가 존재합니다.[주2] 실제로 시공간에서 힐베르트 공간에 이르기까지 매끄럽고 연속적인 모든 수학적 구조에는 무한개의 원소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기초 물리학에 관한 현재 최고의 아이디어들은 모두 이러한 구조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알지 못하지만, 우리의 실제 우주는 공간이나 시간, 또는 두 가지 모두 무한히 멀리 뻗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주2] 실수는 자연수보다 많다. 독일의 수학자 게오르크 칸토어(Georg Cantor)는 이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 ‘대각선 논법’을 사용했다. 칸토어는 난해한 ‘무한’ 개념을 수학적으로 규명하려고 시도한 수학자다. 하지만 검증이 불가능한 무한을 받아들이기 힘든 수학자들은 칸토어를 비난했다. 학문적으로, 정신적으로 외톨이가 된 칸토어는 심한 우울증에 걸렸다. 말년을 정신병원에서 지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참고문헌: 아미르 D. 악젤, 신현용 · 승영조 함께 옮김 《무한의 신비: 수학, 철학, 종교의 만남》, 승산, 2002년)
* 181쪽

무한대의 퍼즐은 도모나가, 슈윙거, 파인먼, 다이슨 및 그들의 동료가 해결했으며, 처음 세 사람은 그 공로로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이들이 발명한 절차를 재규격화라고 부릅니다. 재규격화는 무한대를 없애 산란 계산의 최종 해를 물리적으로 측정 가능한 양으로 표현하는 특별한 방법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 절차를 완전히 만족스럽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중략) 파인먼 자신도 이를 ‘멍청한 과정’, ‘속임수’라고 부르며 “수학적으로 정당한 것이 아니다”라며 의심했습니다. [* 원주]
[* 원주] 파인먼의 인용문은 R. P. Feynman, QED: The Strange Theory of Light and Matter(Penguin), 128에 나와 있습니다. [주3]
[주3] 저자가 참고한 파인먼의 책은 《일반인을 위한 파인만의 QED 강의》(박병철 옮김, 승산, 2001년)로 번역되었다. 본인의 과학적 업적 중 하나인 ‘재규격화’를 의심한 파인먼의 견해는 190쪽에 나온다.

일종의 도박이다. 이를 전문 용어로는 재규격화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멋진 용어를 갖다 붙인다 해도 그러한 도박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중략) 나는 재규격화가 수학적으로 합법적인 방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반인을 위한 파인만의 QED 강의》 중에서, 190쪽)
* 209쪽

우리를 생각하도록 만드는 찰스 임스와 레이 임스의 영화 <10의 거듭제곱>(키스 뵈케 원작)은[주4] 1제곱미터―시카고 호숫가에서 소풍을 즐기는 한 커플―의 시야에서 시작하여 10초마다 10배씩 축소시켜 관객이 우주를 경험하도록 초대합니다. 우리는 점차 축소되는 도시, 지구, 태양계, 가까운 별, 은하수 은하, 그리고 은하단과 더 큰 우주 구조를 보게 됩니다. 그런 다음 이번에는 확대하여 피부 세포, 세포 소기관, 부자, 원자 및 소립자들을 보면서 더 미소 스케일을 향한 여행을 시작합니다.
[주4] 1977년에 나온 <10의 거듭제곱>(Powers of 10)은 9분 30초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다. 짧은 영화라서 지금도 유튜브로 볼 수 있다. 원작은 네덜란드의 교육자 키스 뵈케(Kees Boeke)의 저서 <우주의 조망: 40번의 도약으로 본 우주>(Cosmic View: The Universe in 40 Jumps, 1957년 작)이다.

1982년 미국에 출간된 책을 번역한 것이 《10의 제곱수: 마흔두 번의 도약으로 보는 우주 만물의 상대적 크기》(사이언스북스, 2012년)다. 책의 공동 저자명에 오른 필립 모리슨(Philip Morrison)은 미국의 물리학자로 영화 해설(narrator)과 자문을 맡았다. 이 책의 공저자인 필리스 모리슨(Philis Morrison)은 필립의 아내이다. 그녀는 과학 칼럼 및 어린이용 과학 서평을 주로 썼다.

(TMI: 필립 모리슨은 파인먼의 《일반인을 위한 파인만의 QED 강의》 추천사를 썼다)
* 219쪽

조지 즈와이그 → 조지 츠바이크(George Zweig)
* 역자 후기, 385쪽

숀 캐롤 → 숀 캐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