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몸에 대한 의학의 배신
엘리자베스 코멘 지음, 김희정 외 옮김 / 생각의힘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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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약한 환자여, 당신의 이름은 여성이다.” 




남성 의사들이 만든 병원 정문에 새겨진 말이다. 정문은 열려 있지만, 아픈 여성을 쏘아붙이는 말이 떡하니 문을 막고 서 있다. 말문이 막힌 아픈 여성은 병원 정문 앞에서 머뭇거린다. 들어갈까, 들어가지 말까? 그것이 문제다.’ 그렇게 한참을 서성거린 여성은 고민 끝에 절망적인 결론을 내린다.그래, 건강하지 못한 가 문제였구나.’ 자기 자신이 부끄러워진 그녀는 발길을 돌린다.


아픈 몸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여성 환자를 겁쟁이로 만든다. 언제 덮칠지 모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쇠약해진 여성의 마음을 누른다. 소심한 여성 환자는 아픈 자신을 돌보는 가족들에게 미안해한다. 주부는 아프면 안 된다는 강박을 느낀다. 집안일을 혼자서 도맡은 주부는 아프면 쉬지 못한다.






병에 걸리면 안 되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럴 시간이 없어요.”









아픈 여성은 부끄러움 많은나날을 보낸다. 건강하지 못해서 부끄럽고, 노폐물과 진물로 범벅이 된 병든 몸이 부끄럽고, 집에 누워 있어야만 하는 상태가 부끄럽다아픈 여성은 스스로 실격이라고 규정한다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숙인 여성 환자는 의사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다. 입이 얼어버린 환자는 어디가 아픈지, 통증이 어느 정도인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한다의사는 진료실 밖에 기다리는 환자들을 신속하게 진료하고 싶어 한다. 진단하기 어려운 여성 환자를 만나면 그럴듯한 병명을 알려주고, 아픔을 일시적으로 줄이는 약을 처방한다. 여성 환자는 의사의 처방을 믿는다. 하지만 부실한 진료와 처방은 여성의 건강을 더 나쁘게 만든다. 남성 의사들은 의대생 시절에 배운 의학 교과서의 모든 내용을 머릿속에 담고 있다. 너무 오래된 교과서에 여전히 털어내지 못한 먼지가 남아 있다. 먼지의 정체는 여성의 몸과 정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편견이다



여성의 몸은 연약해서 남성보다 질병에 잘 걸린다.’


여성 환자는 건강 관리에 소홀히 한다.’


여성의 뇌는 남성보다 크기가 작아서 정신 질환에 취약하다.’


여성의 몸은 운동할 수 없는 불리한 구조로 되어 있다.’



의학 교과서를 펼치면 나오는 먼지는 지금도 진료실에 하얗게 쌓여 있다여성의 몸에 대한 편견과 무지가 합쳐져서 생긴 오진(汚塵, 더러운 먼지)은 치명적인 오진(誤診)을 유발한다병원 밖으로 나온 먼지는 여성이 주도적으로 살아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걸림돌이 된다.









미국의 종양내과 전문의 엘리자베스 코멘(Elizabeth Comen)은 환자를 만나면 그들의 몸 상태보다 속마음을 먼저 진찰한다. 그녀는 진료실에서 만난 유방암 환자들이 건강하지 못한 자신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확인한다. 수치심은 환자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를 그냥 지켜볼 수만 없었던 코멘은 환자들을 괴롭힌 의학계의 먼지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고 싶어서 여성의 몸에 대한 의학의 배신을 쓴다


저자는 의학 교과서에 갇힌 의사들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지식이 바뀌지 않은 의학 교과서는 여성 차별적인 성 관념을 재생산한다. 남성 의사들은 여성의 몸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진단을 내린다. 여성 차별적인 진단과 치료는 아픈 여성을 평생 약에 의존하게 만들거나 삶을 망가뜨린다저자는 아픈 여성을 제대로 진찰하지 못한 남성 의사들의 무능함을 고발하면서도 남성 의료인에 대한 불신을 강화하는 것을 경계한다. 저자는 과거의 자신도 의학 교과서에 갇힌 의사였다고 고백한다. 저자의 책은 여성의 성()과 몸을 둘러싼 지식을 중시하지 않는 의학 교육계와 의료계를 되살핀다.


아픈 여성을 배려하지 않는 병원은 몸에 좋은 쓴 약이 아니라 부끄러운 여성의 마음을 더 쓰라리게 만드는 약을 처방한다. 병을 낫게 해주는 치료제를 복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도 아픈 여성은 자신의 병든 몸 상태를 제대로 이해해 주는 의료인을 만나고 싶어 한다. 아픈 여성을 친절하게 대하는 좋은 의사가 부작용이 없는 살아 있는 치료제.









철학자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전체성과 무한에서 사랑한다는 것은 타인의 약함에 도움을 주는행위라고 말했다. 사랑하는 여자가 아프면, 연인과 가족은 그 사람의 약해진 모습까지 사랑한다. 그러나 사랑을 듬뿍 주기 전에, 아픈 여자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보듬어 줘야 한다. 아플수록 점점 변하는 몸과 환자로서 살아가는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다독이고, 아픈 여자의 입에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픈 여자를 제대로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은 계속되는 통증에 지친 삶의 한가운데에 행복이 자라날 수 있게 북돋우는 상비약이다



아픈 여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지낼 수 있어서 잘 살아가고 있구나, 하고 

느끼게 해주면 된다.







<책의 문장에 묻은 오탈자 먼지를 털어내는

cyrus가 만든 주석과 정오표>










* 서평에 밑줄 친 문장은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희곡 햄릿(Hamlet)에 나오는 햄릿의 대사를 패러디한 것이다.

 


1. 약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로다.” (21, 28)

병약한 환자여, 당신의 이름은 여성이다.

 


2. 살 것이냐 아니면 죽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31, 100)

들어갈까, 들어가지 말까? 그것이 문제다.

 


3. 내적 반성은 우리 모두를 겁쟁이로 만들며‥… (31, 101)

아픈 몸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여성 환자를 겁쟁이로 만든다.


 




* 48~49

 

 아나이스 닌은 거울에서 또 다른 것을 보았다. 이미 그녀의 발목을 잡는 신체적 결함들, 늙어가면서 그녀의 사회적 가치를 떨어뜨리기만 하는 결점들을 본 것이다. 실제로 닌은 두 차례 미용 수술을 받았다. 그녀가 수술을 받았던 1930년대 초중반에 코 성형 수술은 꽤 드물었는데, 닌은 자기 얼굴을 조금 더 예쁘게 만들려다가 얼굴에 영구적인 흠집을 만들 위험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수술이 잘못되면 사람들과 관계를 완전히 끊고 대중의 시선에서 사라지겠다고 일기에 적었다.[주1] 하지만, 깨어나 거울을 본 그녀의 반응은 순수한 환희였다. 거울로 내 코를 보는 순간이 왔다, 피범벅 아래 쭉 뻗은, 그리스 코!”



[1] 에로틱한 소설을 쓴 작가 아나이스 닌(Anais Nin)의 일기 제목은 헨리와 준이다헨리는 닌의 연인이자 미국의 작가 헨리 밀러(Henry Miller)를 가리킨다저자가 인용한 일기의 문장은 헨리와 준번역본 274쪽에 나온다.







 거울 속에서 내 코를 보는 순간이 왔다

피로 얼룩졌지만 그리스인처럼 똑바로 곧은 코였다!  


(274)







* 84~85

 

 1868, 파리의 인류학자이자 외과의사인 폴 브로카는 여성에 관한 연구가 긴급한 필요성을 갖게 되었다고 결론지었다. 여성 인권 운동이 유럽과 북미에서 힘을 얻기 시작했는데, 이는 브로카의 관점에서 볼 때 불길한 발전이었다. 의사들과 인류학자들은 여성의 천부적 열등성을 입증하는 과학적 증거를 제시할 수 있다면, 어리석은 선동을 멈출 것으로 생각했다.

 브로카의 제자들은 즉시 이 대의를 이어받았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귀스타브 르 봉은 이 주제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출판했던 1879년으로 시간을 빨리 되감아 보자. 현대의 역사가 스티븐 제이 굴드가 근대 과학 문헌에서 여성에 대한 가장 악랄한 공격이라고 불렀던 문헌이다.[주2]



[2] 귀스타브 르 봉(Gustave Le Bon)의 여성 차별적 인류학 문헌을 비판한 내용이 나오는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의 글 제목<여성의 뇌>. 이 글은 판다의 엄지: 자연의 역사 속에 감춰진 진화의 비밀(김동광 옮김, 사이언스북스, 2016)에 수록되어 있다.



※ 《판다의 엄지서평

[자연은 순식간에 도약한다]

201747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9264030






* 119





세계 레슬링연맹(WWF) [주3]



[3] WWF‘World Wrestling Federation’의 약자다. 세계 최대 프로레슬링 단체 WWE의 옛 명칭이다. 비영리 자연보전 기관인 세계자연기금(World Wide Fund for Nature)’의 약자가 WWF. 2002년에 세계자연기금이 WWF 상표 사용 권리를 얻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고, WWF가 패소했다. WWF는 당해 5월에 회사명을 ‘WWE’로 바꾼다. WWE‘World Wrestling Entertainment’의 약자.






* 320옮긴이 각주






염즈이 염증이






* 414






쌍동이 쌍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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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들의 행성 - 여섯 개의 다리로 이룩한 위대한 제국
주잔네 포이트지크.올라프 프리체 지음, 남기철 옮김 / 북스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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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엔디아 가문(Buendía family) 사람들은 

마콘도(Macondo)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좁다란 섬처럼 생긴 도시 마콘도에 4년 넘게 비 바람벽이 푹푹 내린다

그칠 줄 모르는 거대한 비 바람벽에 쓸쓸한 고독만이 오고 간다.

[주1]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백 년의 고독은 환상과 현실이 얽섞인 도시 마콘도에서 부엔디아 가문이 몰락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부엔디아 가문이 6세대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근친혼이다. 가문의 대부(大父)이자 마콘도를 개척한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José Arcadio Buendía)사촌 우르술라(Úrsula)와 결혼한다. 친척들은 근친혼의 저주를 무시한 두 사람 사이에 돼지 꼬리가 달린 아이가 태어날까 봐 우려한다.


근친혼의 저주는 가문의 일곱 번째 후손 아우렐리아노(Aureliano)를 집어삼킨다. 돼지 꼬리가 달린 아우렐리아노는 가문의 6대손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Aureliano Babilonia)그의 이모 아마란타 우르술라(Amaranta Úrsula)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우르술라는 부유한 남편을 버리면서까지 조카를 사랑했지만, 아우렐리아노를 출산하다가 과다 출혈로 사망한다. 돼지 꼬리 아기마저 죽게 되자, 충격을 받은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는 밤새도록 거리를 헤맨다. 동이 틀 무렵에 정신을 차린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는 아내와 아기의 시체가 방치된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끔찍하게 매장되는 아기의 시체를 발견한다. 마당에 있는 개미 떼들이 바싹 마른 아기의 시체를 땅에 파놓은 소굴로 끌고 간다. 이 상황을 지켜본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는 부엔디아 가문의 저주와 관련된 예언을 떠올린다. 




가문 최후의 인간은 개미 밥이 되고 있다.” [주2]




마르케스는 세상의 모든 개미 떼가 아기의 시체를 끌고 간다고 묘사했다. 텍스트를 마주 보다가 불쑥 튀어나온 나의 특이한 궁금증. 아기의 시체를 운반할 정도로 힘이 센 개미 떼는 환상이 빚어낸 곤충일까, 아니면 실제로 볼 수 있는 곤충일까?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갓난아기의 시체는 개미 떼의 식량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개미는 먹잇감을 독차지할 수 없다. 파리와 송장벌레도 썩어가는 시체를 좋아한다. 이처럼 시체를 먹고 사는 곤충을 시식성 곤충(屍食性 昆蟲, carrion insect)’이라 한다곤충학자들은 시체를 좋아하는 곤충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개미, 파리, 송장벌레가 없으면 썩지 못한 시체들이 엄청 많이 널려 있었을 것이다. 시식성 곤충은 자연의 청소부. 시체를 청소하는 곤충 또는 동물을 스캐빈저(scavenger)’라고 한다. 그들이 있어서 시체의 부패가 빠르게 진행되고, 완전히 분해된 시체는 식물의 영양분이 풍부한 흙이 된다.


개미는 보기보다 힘이 세다. 자신보다 몸집이 큰 먹잇감을 혼자서 또는 동료 일개미와 협력해서 옮긴다. 자신보다 몸집이 크고 살아있는 먹잇감을 발견하면, 정예 부대처럼 공격을 감행하는 군대개미가 있다. 하지만 개미 떼가 갓난아기의 시체를 운반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개미집 밖은 위험하다. 개미의 천적들이 많다. 먹잇감을 노리는 다른 종의 개미들을 만나면 싸워야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린 일개미는 떠돌다가 객사한다. 지쳐서 죽거나, 아니면 천적에게 잡아먹혀서 죽는다.


독일의 두 개미 연구자가 함께 쓴 개미들의 행성소설보다 재미있는 개미 사회 이야기[주3]이 책에 나오는 일개미를 보면 친근함이 느껴진다. 열심히 일한 일개미도 당장 해야 할 일이 없으면 빈둥거린다. 근면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빈둥거리는 노동자를 질책하고, 찰나의 여유를 게으른 태도로 인식한다. 하지만 휴식은 내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소중한 시간이다. 일개미들은 일과 휴식의 균형을 맞출 줄 안다.


개미 제국은 계급이 뚜렷한 모권 사회다. 여왕개미는 수컷 개미를 만나 결혼 비행을 하고 알을 낳는다. 수컷 개미는 오직 여왕개미와의 짝짓기하기 위해 태어났다. 황홀한 결혼 비행이 끝나면 수컷 개미는 죽는다. 여왕개미가 되지 못한 자매들은 일개미로 살아간다. 일개미가 하는 일이 엄청 많다. 제일 중요한 임무는 미래의 여왕이 태어날 개미알들을 지극정성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개미알은 곰팡이와 병균에 취약하다. 일개미들은 특별히 신경을 써서 개미알이 저장된 곳을 청소한다.


인간의 눈에는 여왕이 되지 못한 일개미들이 불쌍해 보인다. 아늑한 궁전과 같은 개미집에서만 지내는 여왕개미가 죽도록 일하는 자매들보다 호사를 누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미 제국을 일군 것은 일개미다. 여왕개미는 알을 낳는 기계처럼 산다. 일개미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일을 척척 한다. 개미 제국의 사회 형태는 무정부주의에 가까운 민주주의.


식량을 찾으러 개미집을 떠나는 일개미들은 늙은 암컷이다. 단지 그들이 나이가 많아서 힘든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경험이 많아서 위험한 임무를 전담한다. 늙은 일개미의 몸속에 활력을 넘치게 만드는 호르몬이 있다고 한다. 우리 발밑에 지나가는 일개미들은 자신이 속한 군체(群體)를 위해 희생하는 베테랑이다일개미는 동고동락하는 자매를 각별하게 대한다. 도토리 개미(Temnothorax Nylanderi)는 병든 개미를 여왕개미 못지않게 보살핀다. 아프리카 마타벨레 개미(Megaponera analis)는 다른 개미 떼와 싸우다가 다친 자매를 버리지 않는다. 집으로 데려와서 자매를 치료한다.



하찮다는 이유만으로

심심풀이로 개미를 죽이려는 당신에게 묻는다

개미 함부로 발로 밟지 마라

일개미는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연탄과 같다. 



병든 일개미는 자신을 정성껏 간호한 자매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집을 떠난다. 외근하는 일개미는 개미집에서 일하는 젊은 자매들을 생각한다. 페로몬이라는 화학 물질을 발산해서 젊은 자매들이 마음 놓고 걸어갈 길을 만든다.[주4]



개미를 잘 모르는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 발밑에 지나가는 조그만 누구를

알고 사랑하는사람이었느냐

[주5]









<백석의 시를 좋아하는 cyrus가 쓴 주석과 정오표>








* 오늘 215일은 시인 백석의 기일이다. 올해가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광복 이후 백석은 고향인 평안도에 거주했고,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북한에 정착했다. 월북 시인으로 낙인찍힌 백석의 시집은 출판 금지 도서로 지정되었다. 1988년 월북 작가 해금 조치가 이루어지면서 백석은 다시 주목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 백석이 생존했는지 아니면 사망했는지 확인이 어려웠다. 북한 내에서의 시인의 행적을 알 수 없었던 남한 연구자들은 시인이 1963년에 숙청당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백석의 생애를 연구한 기자 출신의 작가 송준은 어렵사리 취재한 끝에 백석이 살아 있음을 확인했고, 본인이 쓰고 1994년에 출간된 백석 평전을 다시 쓰는 일에 착수했다백석은 1996년에 사망했다. 송준이 다시 펴낸 백석 평전 시인 백석(흰당나귀, 2012년, 절판)에 따르면 백석은 심한 감기에 걸려 215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백석 평전(다산책방, 2014)을 쓴 안도현 시인과 다른 연구자들은 시인이 1월에 세상을 떠났다고 주장한다.





[주1]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소개한 서평의 머리글은 백석의 시구절을 접붙여서 썼다.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중략)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중에서

안도현 풀어씀, 《사슴》 (민음사, 2016년), 96~97쪽-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중에서

안도현 풀어씀, 《사슴》 , 59쪽 -









[2]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조구호 옮김, 백 년의 고독 2, 민음사, 303.





[주3] 최재천개미 제국의 발견(사이언스북스, 1999, 절판)의 부제.



※ 《개미 제국의 발견서평

[개미가 작다고 얕보지 마라]

2014426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6990026




[4, 5] 서평을 마무리하는 문장은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연탄 한 장 시구절을 접붙여서 썼다. ‘알고 사랑하는이라는 표현은 최재천 교수가 글과 강연에서 늘 강조하는 말, ‘알면 사랑한다를 인용, 변형한 것이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너에게 묻는다』 중에서

외롭고 높고 쓸쓸한》 (문학동네, 2004), 11쪽 -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중략)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 안도현, 연탄 한 장중에서

외롭고 높고 쓸쓸한, 12~13-





* 227

 

 노예 사육 개미들은 어차피 약탈 과정에서 죽음을 맞이할 위험성을 피할 수 없기에 많은 수의 노예를 확보할 가능성이 높은 큰 군체를 선택하여, 가능한 한 적게 전투를 치루는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치루는 치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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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6-02-15 2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미가 만약에 인간이 밟을 수 없을 정도로 인간 만한 크기에 자아를 가지고 진화가 되었다면 인류는 어떻게 될까요? ㅎㅎ

cyrus 2026-02-16 21:57   좋아요 2 | URL
인류가 멸망했거나, 살아 있어도 개미의 노예가 되었을 거예요. 실제로 다른 개미 종을 노예로 부리는 개미 종이 있습니다. ^^

서니데이 2026-02-15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개미의 생활사를 보니 한 조직을 위해서 여왕도 일개미도 모두 일정 역할을 끝내면 결말이 좋지 않은 것 같네요. 아마 벌들의 세계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잘 읽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즐거운 명절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도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cyrus 2026-02-16 21:59   좋아요 1 | URL
수컷 개미가 제일 불쌍해요. 정말로 짝짓기만 하고 죽으니까요. 그런데 예외로 결혼하고도 죽지 않는 수컷 개미 종이 있다고 합니다. ^^
 











아침에 마시는 위스키가 창의력을 높여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술을 마시면서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나는 이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









아침에 마시는 위스키의 효능에 대한 출처는 뉴로크리에이티브 연구소(Neurocreative Institute)라는 기관이 발표한 연구 논문이다뇌에 약간의 알코올이 들어가면 긴장이 풀려서 아이디어가 잘 떠오른다고 한다


















* 스켑틱 협회 편집부 엮음(마이클 셔머제임스 랜디 외 여러 명의 필자 참여), 김보은 · 류운 · 하인해 외 옮김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 스켑틱 10주년 베스트 에세이(바다출판사, 2025)




논문이 과학자들에게 알려지려면 학술지에 실려야 한다.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은 과학자들의 검토 대상이 된다뉴로크리에이티브 연구소가 발표한 위스키 관련 논문 제목과 이 논문의 게재를 허락한 학술지 제목이 있는지 구글에서 검색을 해봤는데,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연구소의 위치와 연구소 공식 홈페이지도 나오지 않는다나는 실험 과정이 상세하게 언급되지 않았거나 출처가 확실하지 않은 연구 결과를 믿지 않는다


애주가는 아침에 술을 마실 때면 어디인지도 모르는 연구소가 주장한 연구 결과를 언급한다어디에서 본 건데‥…”, “누구에게 들은 이야긴데‥…견해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길게 설명하지 않고, 연구소와 과학자 이름을 같이 언급하면 상대방은 그 견해를 과학적으로 증명된 내용이라고 믿는다사람들은 지적 능력이 높다고 생각하는 권위 있는 과학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과학에 취한 애주가는 회의주의자(skeptic)다. 낮술을 즐기면서도 아침에 마시는 술이 정말로 창의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지 의심한다잠정 가설로 받아들이고,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견해에 애매모호한 점(실험 방식, 통계 자료나 견해를 뒷받침하는 증거에 대한 설명이 빈약할 때)이 있으면 의심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내 경험상 늦은 밤에 술을 마시면 글이 잘 써진다. 하지만 술이 나의 머리끄덩이를 잡을 때가 많다이럴 때 정말 피곤해진다직장 일에 지친 상태에서 술을 마시면 문장 한 줄을 쓰는 데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글이 안 써지는 어둠의 시간은 술맛이 사라지는 지루한 안주다.


쉬는 날이나 주말에 마시는 술은 마음이 편해지고, 두뇌 회전 속도가 평일보다 빨라진다. 지난주 토요일 아침, <과학책방 갈다>에 가서 맥주를 마셨다. <갈다>는 커피, , 맥주를 판다. 음료를 주문하면 책방 2층에서 마실 수 있다. 나는 책 한 권을 안주 삼아 맥주를 주문한다









<갈다>에 판매하는 맥주는 총 다섯 종류다. 올해 여름에 반딧불이라는 맥주가 새로 들어왔다. ‘반딧불을 마시고 싶어서 지난주 토요일에 <갈다>에 갔다<갈다>에서 고른 책 안주는 다른 과학은 가능하다, ‘느린 과학선언이다.

















* 이자벨 스탱게르스, 김연화 · 장화원 함께 옮김 다른 과학은 가능하다, ‘느린 과학선언: 상호의존의 관계를 다시 엮는 과학으로(에디토리얼, 2025)




느린 과학은 과학 문제에 올바른 해답을 최대한 빨리 찾는 것을 거부한다. 느린 과학은 대중과 소통한다. ‘느린 과학에 익숙한 대중은 과학자들이 발견한 연구 결과에 열광하는 마니아가 아니다. 그들은 신중하다우리 삶에 필요한 과학 지식이 무엇인지 논의하며 가꾸어야 할 가치가 있는 과학 지식인지 판단한다.


책방 바로 맞은편에 나무 한 그루가 있다. 2층에 넓은 창문이 있어서 나무를 제대로 볼 수 있다이파리는 다 떨어졌고, 나뭇가지 끝에 겨울눈(winter bud)이 붙어 있었다맥주를 마시면서 창밖의 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겨울눈을 알고 싶어졌다. 술에 살짝 취한 뇌에 호기심이 돋아났다겨울눈이 자란 나무의 이름을 알고 싶어졌고, 겨울눈이 왜 생기는지 궁금했다다음날인 일요일에 대구로 돌아와서 겨울눈을 언급한 책들을 찾으러 도서관에 갔다.



















김태영 · 윤연순 · 이웅 함께 씀 겨울나무: 우리 땅에 사는 나무들의 겨울나기(돌베개, 2022)

 

* [개정판] 소경자 · 이광만 함께 씀 겨울눈 도감: 4단계 분류법에 따라 겨울눈을 구별한다(나무와문화, 2020)



겨울눈은 겨울에 난 싹이다. 이 싹은 비늘이나 털로 덮인 상태, 추운 겨울바람을 버티면서 봄을 기다린다겨울눈의 크기는 작은 편인데, 이 속에 겨울을 지내기 위한 양분과 봄에 발아하는 데 필요한 영양분이 저장되어 있다.







책방에서 본 겨울눈은 타원형이고, 털로 덮여 있다. 두 권의 겨울눈 도감을 같이 보면서 내가 내린 잠정 결론은 백목련 혹은 목련과 식물의 겨울눈이다.

















트리스탄 굴리이충 옮김 나무를 읽는 법나무껍질과 나뭇잎이 알려주는 자연의 신호》 (바다출판사, 2024)




탐험가 트리스탄 굴리(Tristan Gooley)식물을 관찰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래서 자연의 셜록 홈스(Sherlock Holmes)’라는 별명이 있다그는 나무가 인간과 동물, 주변의 다른 식물에 알리는 수백 가지 자연 신호(natural sign)를 알면 나무를 읽을 수있다고 말한다자연 신호는 너무나 많고, 여전히 우리가 알지 못한 것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를 누구보다 잘 아는 굴리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나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없다면서 겸손하게 말한다. 나무 한 그루를 제대로 식별하는 방식을 배우려면 평생을 바쳐야 한다









책을 참고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다. 책방에서 만난 나무가 백목련이라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 봄에 변신하는 나무의 모습을 보면 백목련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과학에 (심)취하려면 성급하게 해답을 찾거나 결론을 도출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해답과 결론을 찾는 과정을 즐겨야 한다그리고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정직하면서도 차분한 여유도 있어야 한다내가 좋아하는 과학은 결론을 쫓아가는 빠른 과학이 아니다. 호기심을 유지하면서 꾸준히 관찰하는 느린 과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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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2-25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를 읽는 법, 이 도서 찜합니다.

cyrus 2025-12-29 00:08   좋아요 0 | URL
나무를 관찰하는 다양한 방식을 정리한 책입니다. 호시우행님의 독서 취향에 어울리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

stella.K 2025-12-25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봤더니 술꾼이었구만! 책을 안주 삼는다고 썰이나 풀고. 말이나 못하면...칫!
한 잔이 두 잔되고, 석 잔된다. 건강 생각해서 지나친 과음은 삼가하고. ㅋ 암튼 올해 사느라 고생 많았다. 토닥토닥~ 한 해 마무리 잘하고 희망찬 새해 맞아라. ^^

cyrus 2025-12-29 00:11   좋아요 1 | URL
책과 술 중 딱 하나만 고른다면 저는 책을 고르겠어요. 그런 만큼 책을 먼저 읽으면 술 한 모금이라도 입에 안 대려고 해요. 술 마시는 횟수를 줄이도록 노력해 볼게요. ^^

감은빛 2025-12-26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흡연자들이라면 공감할텐데, 담배를 피우면 잠시 집중력이 올라가고 각성효과가 생겨요. 그래서 저는 아주 오래 전 대학 시절에 도서관에서 시험공부를 하지 않고 혼자 학교 뒷산 산책로 넓다란 바위에 앉아 가끔 담배를 피워가며 공부했던 기억이 있어요. 글을 쓰다가 막히거나, 일을 하다가 뭔가 풀리지 않을 때 담배를 피우고 돌아오면 갑자기 풀리지 않았던 문제의 답이 떠오르기도 하죠. 물론 당연히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술도 정말 소량이라면 조금은 그럴 수 있겠다 싶어요. 한 십여년 전에 저도 맥주 마시며 책을 읽는 버릇이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서재에 음주 독서라고 글을 썼던 기억도 나구요. 언젠가부터 맥주를 거의 안 마시게 되며 그 버릇은 사라졌어요. 소주를 마시며 책을 읽기엔 도수가 너무 쎄서 책에 집중을 못하게 되죠. 술을 조금 마시고 책을 읽는 건 가능하겠지만, 술을 계속 마시며 읽는 것은 쉽지 않아요.

cyrus 2025-12-29 00:19   좋아요 0 | URL
제가 담배까지 피웠으면 벌써 건강이 나빠졌을 거예요. 그런데 밤에 잠을 늦게 자는 일이 잦아서 비흡연이라고 해도 건강 상태가 좋다고 말을 못 하겠어요. 다행히 올해는 크게 아픈 적이 없지만, 이럴 때 조심해야죠. 시간 날 때 건강 검진을 받아야겠어요. ^^
 
하늘 읽기 - 날씨와 기후 변화,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공기에 숨겨진 과학
사이먼 클라크 지음, 이주원 옮김 / 동아시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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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높은 하늘 위에 푸른 거인이 우뚝 서 있다.

높푸른 거인은 45억 년째 지구를 듬쑥 끌어안고 있다.

나이를 먹어도 지구는 여전히 푸르다.




우리는 거인을 볼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거인과 함께 살고 있다. 지구를 상냥하게 안은 거인이 모든 생명체를 먹여 살린다.


건강한 거인은 평온하다거인의 기분이 좋으면 날씨가 매우 좋다. 반대로 기분이 안 좋으면 날씨가 사나워진다그런데 우리는 거인을 잘 모른다거인에게 고마워할 줄 모른다오히려 거인에 역정을 낸다. 우리는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거인이 미쳐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이 푸른 거인의 이름은 대기(大氣)’우리가 매일 마시는 공기는 대기가 숨을 쉴 때 나온다거인의 드넓은 포옹은 지구를 아늑하게 해준다행복한 지구는 대기와 함께 춤을 춘다. 지구는 빙그레 미소를 띠면서 빙글빙글 돈다그러나 분노한 대기는 지구를 숨 막히게 한다. 힘겨운 지구가 울먹거리면 암울한 날씨가 이어진다. 불볕더위는 지구를 빨갛게 불태울 기세다. 동장군이 휘두르는 칼날은 점점 매서워진다지구온난화가 심해질수록 암울한 날씨는 더욱 자주 나타난다그런데 우리는 대기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알지 못한다. 지구는 계속 뜨거워지는데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학을 모르는 정치인과 화석 연료로 수익을 올리는 기업인들은 지구온난화를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이들은 지구온난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을 멍청한 사기꾼이라고 비난한다.


하늘 읽기우리가 잘 몰라서, 제대로 보지 못한 대기를 더 가까이 볼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대기가 어떻게 움직이고,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려준다저자 사이먼 클라크(Simon Clarke)는 영국의 기상학자. 기상학은 여전히 대중에게 생소한 학문이다. 대부분 사람은 기상학자를 과학자로 여기지 않는다. 내일 날씨를 정확히 예측하는 전문가 혹은 공무원 정도로 인식한다. 내일 날씨에 관심은 많지만, 기상학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기상학자들이 몸담은 기상청을 불신한다.


기상학은 생각보다 오래된 학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하늘에 일어나는 현상을 알고 싶어 했다. 비록 정확하지 않지만, 날씨에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설명하려고 했으며 기상학(Meteorologica)이라는 논문을 썼다. 물리학과 공학은 온도계와 기압계의 발전을 이끌어 왔다. 특히 유체역학은 지구가 움직이면서 생기는 기후와 기후 변화를 방정식으로 설명할 수 있게 해주었다물리학 학위를 받은 저자는 지구 물리 유체역학(geophysical fluid dynamics)이라는 학문을 만났고, 본격적으로 대기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기후는 기온, 습도, 바람 등의 기상 현상을 아우르는 장기적인 대기 상태를 의미한다. 기상학은 복잡하면서도 광범위한 기후 변화를 연구하는 대기물리학이다. 기상학자와 대기물리학자는 이상 기체 법칙(상태 방정식)을 이용해서 대기 거인이 움직이는 모습을 본다. 이 법칙은 기압, 온도, 습도 등이 상호작용을 하는 기후를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도구다.


가끔 기상학자는 태풍의 경로를 예측하지 못하거나 정확하지 않은 날씨 예보를 내놓는다. 그렇다고 누구보다 대기 거인의 기분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과학자들을 멍청하다고 비난할 수 없다. 대기 거인의 성격은 장난기 가득한 카오스(Chaos). 대기 거인은 뒤죽박죽으로 움직인다. 정밀한 관측 기기가 있어도 무질서하고 예측이 어려운 거인을 따라가지 못한다. 여기서부터 오차가 생긴다. 대기 거인의 어수선한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면 아주 작은 오차는 점점 커진다.


기후 변화는 우리의 삶과 생태계를 위협한다. 암울한 날씨는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터전을 사라지게 할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악영향을 준다. 대기 거인은 환경 오염에 민감하다. 대기 거인을 화나게 하면 안 된다. 진노한 거인은 무섭다지구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꽉 껴안는다숨 막힌 지구는 생명체가 살기 힘든 지옥이다. 대기와 지구가 건강해야 우리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대기만성(大器晩成)형 인간이 되고 싶은 

해성(海成)이 만든 주석과 정오표>




* 18


 글레이셔와 그의 동료 헨리 콕스웰열기구 조종사, 그러니까 말 그대로 공중 선원이었습니다. 기구를 타며 여행하는 용감한 개척자였죠.




[1] 이 책의 1기상학의 발전에 이바지한 과학자들의 업적을 소개한다. 제일 먼저 나오는 사람은 열기구를 타고 세계 최초로 성층권에 도달한 제임스 글레이셔(James Glaisher)와 헨리 콕스웰(Henry Tracey Coxwell)이다. 저자가 참고한 글레이셔의 저서 <Travels in the Air>(1871)는 죽을 뻔했던 상공 비행에 대한 경험담을 기록한 책이다. 글레이셔는 이 책에 또 다른 열기구 탐험가들의 비행 시도와 실패 사례도 언급했다. 번역본은 열기구 조종사: 하늘길 여행자 에어로너츠(정탄 옮김, 아라한, 2020)이다. 정탄은 러브크래프트 전집(7, 황금가지, 2009, 2012, 2015)과 스티븐 킹(Stephen King)의 소설 그것(황금가지, 2017)을 번역한 정진영의 필명이다.



※ 《열기구 조종사: 하늘길 여행자 에어로너츠서평

<기구를 탄 이카로스

202113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12273532






* 112






터키 튀르키예






* 181, 각주 27










[2] 저자가 카오스 이론(Chaos theory)을 설명하기 위해 참고한 책은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다. 비록 출간된 지 꽤 오래되었지만(초판은 1987년에 출간되었다), 본격적으로 카오스를 대중에게 널리 알린 제임스 글릭(James Gleick)카오스(박래선 옮김, 김상욱 감수, 동아시아, 2013)를 참고하면 된다. 2013년 번역본의 저본은 초판 출간 20주년 기념판이다글릭이 쓴 책에도 카오스 이론 연구의 선구자로 알려진 프랑스의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Jules Henri Poincaré)와 러시아 수학자 안드레이 N. 콜모고로프(Andrey N. Kolmogorov)의 업적이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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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정복자들 - 농업부터 인공지능까지, 세상을 움직이는 곤충의 놀라운 변신
에리카 맥앨리스터.에이드리언 워시번 지음, 김아림 옮김 / 곰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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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카 맥앨리스터 · 에이드리언 워시번 함께 씀

김아림 옮김

작은 정복자들:

농업부터 인공지능까지, 세상을 움직이는 곤충의 놀라운 변신

곰출판

2025





4.5점  ★★★★☆  A






왕크왕귀. 왕 크면 왕 귀엽다를 줄인 신조어다. 왕크왕귀는 몸집이 크면서도 귀여운 동물에 호감을 느낄 때 쓴다왕크왕귀라는 별명이 잘 어울리는 동물은 우리에게 친숙한 반려동물이다. 순하디순하기로 유명한 골든 리트리버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왕크왕귀다.


왕크왕귀에 어울리지 못하는 동물이 있다. 이 동물의 몸집은 인간보다 작다. 그러나 인간보다 먼저 지구에 등장했고, 개체 수가 많다지구에 사는 동물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다이 동물의 정체는 곤충이다. 곤충은 동물계 절지동물에 속한다.


곤충의 매력에 푹 빠진 사람은 드물다. 여러 개의 발이 달린 곤충의 생김새는 귀여움과 거리가 멀다우리는 작은 곤충을 미물(微物), 엄청 커다란 곤충을 괴물로 인식한다. 그래서 거대한 곤충이 생포되는 일은 세상을 발칵 뒤집는 특종감이다<위클리 월드 뉴스>(Weekly World News)황당한 가짜 뉴스와 조잡한 합성 사진으로 지면을 도배했던 미국의 신문이다이 신문은 거대한 곤충이 발견되었다는 가짜 뉴스를 심심찮게 보도한다. 거대한 곤충의 모습이 나온 합성 사진도 실었는데, 사진의 출처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사람들은 진짜라고 믿는다.


사람 몸집만 한 곤충이 살아서 우리 눈앞에 있다면 기절초풍한다. 왕 커서 왕 무섭다. 기예르모 델 토로(Guillermo del Toro) 감독이 만든 공포 영화 <미믹>(Mimic, 1997년)인간의 형상과 비슷하게 진화한 크리처(creature) 나온다영화 주인공인 곤충학자(미라 소르비노 분)바퀴벌레를 죽이는 유전자 변이 곤충 유다(Judas)’를 만든다. 유전자 변이 곤충의 생태계 교란을 방지하기 위해 곤충학자는 유다의 생식 능력을 제거한다. 하지만 유다는 번식에 성공하고, 곤충의 천적 인간을 모방하면서(mimic) 괴물로 진화한다.


기예르모는 유다를 살아 있는 기계 장치처럼 보이도록 표현했다. 그가 유심히 관찰한 곤충은 자연의 살아 있는 기계 장치.











 “곤충은 자연이 만든 완성도 높은 작품입니다. 곤충의 구조는 경외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사회적, 정신적 기능은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곤충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합니다. 곤충에게는 정서라는 것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으니까요. 곤충은 진정한 의미에서 자연의 살아 있는 기계 장치입니다. 그래서 곤충이 그토록 많은 것들의 상징이 되는 겁니다. 그들은 완전히 에일리언이니까요.

 

(기예르모 델 토로기예르모 델 토로의 창작 노트중에서, 88)




기예르모는 정서가 없는 곤충을 외계의 존재(alien)와 동일시한다. 하지만 곤충학자들은 기예르모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곤충은 인간보다 먼저 지구에 정착한 작은 동물이다그들은 뛰어난 학습 능력을 갖췄고, 혹독한 기후 변화에 적응하면서 살아남았다곤충이 정서를 느끼고 있는지 좀 더 연구해 봐야 하고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다윈(Charles Darwin)과 동물학자, 곤충학자들은 관찰과 실험을 통해 곤충을 포함한 동물은 고도의 지적 능력과 정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따라서 지구에 오래 살았던 곤충을 우주에서 온 이방인(alien)과 같다고 볼 수 없다.








곤충학자 에리카 맥앨리스터(Erica McAlister)와 과학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프로듀서 에이드리언 워시번(Adrian Washbourne)이 함께 쓴 책 작은 정복자들우리가 잘 모르는 곤충의 다양한 특기를 알려준다에리카 맥앨리스터는 파리를 사랑하는 곤충학자. 2년 전에 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그녀의 저서 위대한 파리》(이동훈 옮김, 마리앤미, 2023년)가 출간되었다파리는 자연을 깨끗하게 만드는 청소부다지구에 파리가 살지 않으면 우리가 버린 쓰레기와 사체는 썩지 않은 채 그대로 남게 된다.


기예르모의 유다는 인간을 죽이기 위해 인간의 신체 구조를 모방한다. 반대로 곤충학자들은 곤충의 신체 구조를 모방한 기술이나 제품을 개발하는 연구에 매진한다벼룩은 동물, 식물,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해충이다. 영화에 묘사된 곤충학자는 벼룩을 퇴치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하지만 벼룩에 정말로 관심이 많은 곤충학자는 벼룩이 어떻게 높게 뛸 수 있는지 궁금해한다벼룩은 날개가 없는데도 자기 몸집의 60배나 넘는 거리로 펄쩍 뛸 수 있다. 벼룩의 근육은 더 멀리, 더 높게 뛰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저장한다. 천적을 만나거나 장애물을 뛰어넘을 때 근육에 있는 에너지를 방출한다. 기술 공학자들은 벼룩이 점프하는 메커니즘을 응용한 소형 로봇을 만들었다.


기예르모의 유다는 바퀴벌레와 사마귀와 흰개미의 유전자를 결합, 조작해서 만들어졌다. 바퀴벌레는 생각보다 똑똑한 곤충이다. 바퀴벌레의 뇌는 다른 곤충에 비해 뇌가 크고, 뇌의 신경세포인 뉴런 연결망이 활성화되어 있다. 학습 능력이 뛰어난 바퀴벌레는 미로처럼 좁고 복잡한 공간을 잘 돌아다니며 자기가 지나가던 길을 기억한다. 바퀴벌레가 생존 본능이 강해서 요리조리 도망 다니는 것이 아니다. 바퀴벌레는 인간이 찾을 수 없는 안전한 구역과 은신처로 돌아가는 경로를 알고 있다그들은 똑똑해서 잘 숨고 다닌다.


책에 언급된 호주의 곤충학자는 이십 년 넘게 곤충 신경계를 연구하고 있다. 그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주변 환경을 이해하면서 단시간에 생존 전략을 찾는 곤충의 유연한 모습에 감탄했다.



 곤충은 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고정된 상황에서 판에 박힌 작업을 수행하도록 프로그래밍된 조그만 로봇이 아닌 거죠.”


(《작은 정복자들》, 8. 바퀴벌레의 신경」 중에서, 297)




해충과 익충으로 구분하는 곤충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이 곤충이라는 단어는 절지동물의 다양하면서도 복잡한 생활 방식을 설명하지 못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정지인 옮김, 곰출판, 2021년)를 쓴 과학 전문 기자 룰루 밀러(Lulu Miller)는 다윈이 말한 좋은 과학’이 해야 할 일을 강조했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중에서, 227쪽,

저자가 인용한 다윈의 말은 종의 기원》에 나온.)




좋은 곤충학은 해충과 익충으로 구분하기 위해 우리가 그어놓은 선을 무너뜨린다



우리가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할 곤충은 미물(微物)이 아니다

자연을 잘 아는 영리한 미물(美物)이다.








<곤충을 함부로 밟지 않는(不殺生戒) cyrus가 만든 주석>








《작은 정복자들》 270~271


 16세기 프랑스의 수필가이자 철학자인 미셸 드 몽테뉴(Michel de Montaigne)수상록2에서 1513년 포르투갈 군대가 샤틴(Xiatine)의 영토에서 벌인 타믈리 시 포위 공격에 대해 묘사했다. 상황이 좋지 않자 주민들은 성벽 너머로 여러 개의 벌집을 던지자는 기발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다. 벌집에 불을 붙인 채로 적을 향해 벌이 맹렬하게 날아갔고, 적들은 벌침에 쏘이는 것을 견디지 못해 짐을 싸고 물러나기에 이르렀다.” 화가 난 암컷 벌들 덕분에 주민들은 한 사람도 목숨을 잃지 않았다. [주]



[] 저자가 인용한 이야기는 에세 212레몽 스봉을 위한 변호(Apologie de Raimond de Sebonde)에 나온다. (심민화 옮김,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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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11-10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믹이란 단어를 보니 델 토르 감독의 미믹이란 영화가 생각나네요.참 충격적이고 공포스러운 영화였지요.

cyrus 2025-11-11 07:01   좋아요 0 | URL
제 글의 중간 부분을 안 보셨군요. 영화 <미믹>의 줄거리와 기예르모가 미믹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구상했는지 설명한 내용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