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하기 어려운 질문 하나. 철학자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와 시인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의 공통점이 있을까? 이 질문을 만든 내가 생각해 봐도 두 사람을 잇는 접점이 없어 보인다.

























* 에마뉘엘 레비나스, 서동욱 옮김 

존재에서 존재자로(민음사, 2003)

 

[레비나스 읽기 모임 두 번째 도서 (8~10월)]

* 에마뉘엘 레비나스, 김도형 · 문성원 · 손영창 함께 옮김

전체성과 무한: 외재성에 대한 에세이(그린비, 2018)

   

[레비나스 읽기 모임 첫 번째 도서 (6~8월)]

* 에마뉘엘 레비나스, 강영안 · 강지하 함께 옮김 

시간과 타자(문예출판사, 2024)




레비나스에게 문학은 철학을 무럭무럭 자라나게 만든 자양분이다레비나스는 어렸을 때부터 문학 작품을 즐겨 읽었다. 그는 타자를 환대하는 철학도스토옙스키(Dostoevskii)의 소설에서 드러난 사해동포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레비나스가 죽음의 철학적 의미에 대해 논할 때 자주 인용하는 작가는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시간과 타자에서 레비나스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분석하기 위해 셰익스피어의 비극 작품의 주인공 맥베스(Macbeth)가 죽어가면서 내뱉는 말을 인용한다






















* 아르튀르 랭보, 한대균 옮김 나의 방랑(문학과지성사, 2014)

 

* 아르튀르 랭보, 김현 옮김, 황현산 감수 지옥에서 보낸 한 철(민음사, 2016)


* [구판 절판] 아르튀르 랭보, 김현 옮김 지옥에서 보낸 한 철(민음사, 1974)


















* 폴 발레리, 김현 옮김 해변의 묘지(민음사, 2022)

* [구판 절판] 폴 발레리, 김현 옮김 해변의 묘지(민음사, 1973)




존재에서 존재자로1947년에, 전체성과 무한1961년에 발표된 레비나스의 저서다이 두 권의 책에서도 작가와 문학 작품 속 문장들을 만날 수 있다레비나스가 태어난 곳은 과거에 러시아 영토였던 리투아니아다. 그는 독일에서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철학을 만났고, 프랑스로 건너가 후설의 현상학을 소개했다. 문학을 사랑하는 레비나스가 프랑스 문학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존재에서 존재자로전체성과 무한19세기 중후반에 활동한 프랑스 시인들이 나온다. 보들레르, 랭보(Arthur Rimbaud),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 폴 발레리(Paul Valéry).























샤를 보들레르, 황현산 옮김 악의 꽃》 (난다, 2023)


* 샤를 보들레르, 윤영애 옮김 악의 꽃(문학과지성사, 2003)


[절판] 샤를 보들레르, 박은수 옮김 《보들레르 시 전집》 (민음사, 1995)


* [절판] 샤를 보들레르, 김붕구 옮김 악의 꽃(민음사, 1974)





존재에서 존재자로에 인용된 보들레르의 시는 <여행>, <밭 가는 해골>, <심연>(Le gouffre) 등이다. 작품 출전은 시집 악의 꽃이다. 1857년에 발표된 이 시집은 태어나자마자 집중포화를 맞았다. 법원은 시집에 외설스럽고 부도덕한 표현이 많다는 이유를 내세워 보들레르를 재판에 서게 했다. 법원은 보들레르에게 벌금형을 내렸다. 악의 꽃2판은 여섯 편의 시가 삭제된 채 1861년에 출간되었다. 보들레르가 세상을 떠난 후에 악의 꽃3판이 출간되었다.










 






 

 



* 앙투안 콩파뇽, 김병욱 옮김 보들레르와 함께하는 여름(뮤진트리, 2020)


* 이건수 보들레르: 저주받은 천재 시인(살림, 2006)

 

* [절판] 윤영애 지상의 낯선 자 보들레르(민음사, 2001)


 



레비나스가 보들레르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철학을 설명하는 모습이 내게는 색다르다윤리를 제1철학으로 내세운 레비나스도덕을 경멸한 보들레르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공통점이라고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다른 철학자와 시인의 기묘한 만남이다. 레비나스는 인간을 선한 존재로 전제하지만, 보들레르는 원죄에 물든 나쁜 존재로 봤다. 보들레르는 도덕적인 생활이 인간의 악을 감춘다고 생각했다레비나스는 유대인이다. 보들레르는 반유대주의자다.










 


 

 










* 테오필 고티에, 권유현 옮김 모팽 양(열림원, 2020)

* [구판 절판] 테오필 고티에, 권유현 옮김 모팽 양(열림원, 2006)

 

* 샤를 보들레르 · 테오필 고티에, 임희근 옮김 보들레르와 고티에: 아름다움을 섬긴 두 사제(걷는책, 2020)




레비나스는 존재에서 존재자로테오필 고티에(Theophile Gautier)가 한 말을 사물들을 즐기고자 하는 모든 욕심으로 해석한다

 

 


 나는, 그들을 위하여 외부 세계가 존재하는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다.” 라는 말로, 테오필 고티에는 사물들을 즐기고자 하는 모든 욕심을 표현한다. 이 욕심이 세계 내 존재를 구성한다.


(존재에서 존재자로》 중에서, 56~57쪽)



여기서 레비나스가 말한 욕심은 타자를 지향하는 욕망과 동일하다레비나스는 전체성과 무한에서 타자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존재가 아닌 무한한 자로 바라보면서 조건 없이 환대하는 욕망을 형이상학적 욕망이라고 표현한다.


고티에는 예술지상주의를 강조한 시인 겸 소설가. 그의 대표작 모팽 양서문예술지상주의 선언문이라 할 수 있다. 고티에는 이 서문에서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들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들뿐이며, 유용한 것은 추하다고 했다. 예술지상주의자 혹은 유미주의자라고 부르는 예술가들의 제1철학은 아름다움이다예술의 유일한 목적은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누리는(향유) 이다. 그 밖에 실용적인 사물과 도덕은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어서 예술지상주의자에게는 쓸모가 없는 것들이다.


보들레르는 자신의 첫 시집 악의 꽃초판에 고티에에게 보내는 헌사를 남겼다. 실제로 두 사람은 친했으며 서로를 존경했다. 보들레르 사후 1868년에 출간된 악의 꽃3판의 서문은 고티에가 보들레르를 만났던 일을 회상한 <샤를 보들레르>라는 글이다. 보들레르는 1859년에 쓴 <테오필 고티에>에서 모팽 양아름다움에 바치는 찬가라고 평가했으며 정치에 무관심한 예술지상주의자 고티에를 옹호한다.


레비나스의 책을 읽을 때 그가 인용한 문학 작품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레비나스는 철학을 만들기 위해 문학이라는 풍부한 재료를 마음껏 사용한 철학자다물론 몇몇 작품들은 레비나스의 타자 철학을 도드라져 보이게 만드는 문학적 장식품일 수 있다. 그렇지만 문학으로 철학에 접근하면, 처음에 난해하게 느껴진 내용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철학자가 의도하지 않은 새로운 해석도 나올 수 있다. 철학을 공부하면서 사랑하는 방식은 무한하다보들레르의 시를 자주 읽은 독자로서 레비나스와 보들레르의 기묘한 관계를 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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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성과 무한: 외재성에 대한 에세이는 철학자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의 대표작이다. 이 책에 레비나스 철학의 코어(Core, 핵심)’가 들어 있다그래서 레비나스 철학을 공부하려면 반드시 전체성과 무한를 만나야 한다문제는 철학이 단순한 코어가 아니라는 점이다. 레비나스 철학은 하드코어(hardcore)’. 책을 펼치자마자 이해하기 어려운(hard) 문장들이 튀어나온다.  눈빛은 당혹스러워서 굳어진다(hard). 문장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페이지를 좀처럼 넘기지 못한다. 책을 잠깐 덮고 나는 자책한다. 내 머리는 철학과 친하게 지낼 수 없는 딱딱한(hard) 돌머리인가 봐.’









 








[레비나스 철학 읽기 모임]

* 에마뉘엘 레비나스, 김도형 · 문성원 · 손영창 함께 옮김

전체성과 무한: 외재성에 대한 에세이(그린비, 2018)





전체성과 무한은 난해한 책이다. 하지만 이런 책을 못 읽는다고 해서 자신의 무지함을 꾸짖지 말자. 전체성과 무한독자에게 불친절한 책이다. 전체성과 무한을 우리말로 번역한 역자는 세 명이다. 그들은 전체성과 무한철학 전공자도 힘겹게 읽는 책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그러므로 번역자는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를 위해 좀 더 친절하게 글을 써야 한다. 레비나스 철학과 관련된 용어가 어떤 뜻인지 알려줘야 한다. 레비나스가 왜 이런 문장을 썼는지도 주석을 통해 설명해야 한다.








지금까지 전체성과 무한1(‘동일자와 타자’, ~149)를 읽었는데, 주석이 있어야 할 단어와 인명이 있다서문에 레비나스는 프란츠 로렌츠바이크(Franz Rosenzweig)라는 학자가 쓴 책을 자주 참고하면서 전체성과 무한》을 썼다고 언급한다. 어떻게 보면 프란츠 로렌츠바이크는 이 책을 태어나도록 도움을 준 철학의 산파이며 레비나스는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는 프란츠 로젠츠바이크가 구원의 별에서 전체성 관념에 반대하는 데 큰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그 저작은 이 책에 자주 인용되어 등장한다. 그러나 우리가 빌린 발상들을 제시하고 발전시키는 데는 모두 현상학적 방법이 사용되었다. 지향적 분석은 구체적인 것에 대한 탐색이다. 자신을 정의하는 사유의 직접적 시선에 포획된 개념은, 그 순진한 사유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사유가 생각지도 못했던 지평들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임이 드러난다. 이 지평들이 그 개념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것이 바로 후설(Edmund Husserl)의 본질적인 가르침이다.

 

(서문, 18)



독자는 로렌츠바이크가 누군지 모른다. 나도 모른다. 우리는 책을 읽다가 낯선 용어나 사람 이름이 만나면 스치듯이 보면서 지나간다. 그래도 된다. 하지만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내용을 눈앞에 보고도 놓칠 수 있다.















* [절판] 마리 안느 레스쿠레, 변광배 · 김모세 함께 옮김 레비나스 평전(살림, 2006)




로렌츠바이크는 독일의 유대인 철학자다. 그는 헤겔(Hegel)을 전공했으며 첫 번째로 쓴 책이 <헤겔과 국가>. 로렌츠바이크는 1916년부터 <구원의 별>을 쓰기 시작한다. ‘구원의 별유대교의 상징인 다윗의 별을 뜻한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 , 세계의 관계성을 다윗의 별기호를 가지고 설명한다. 레비나스는 로렌츠바이크에 대한 글을 여러 편 썼다. 로렌츠바이크는 레비나스가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와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된 철학자다. 레비나스는 <구원의 별>이 헤겔 철학의 한계를 넘어서서 반전체주의를 주장한 책으로 평가한다레비나스 철학은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를 비판한다. 따라서 레비나스 철학과 로렌츠바이크의 연관성을 아무런 설명 없이 지나간다는 것은 레비나스와 블랑쇼의 철학적 교감을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관점과 같다.


레비나스는 존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 헤겔 철학(존재론)의 한계를 지적한다. 그래서 전체성과 무한에 헤겔이 심심찮게 언급된다.



 결국 행복과 욕망을 분리하는 거리는 정치와 종교를 분리한다. 정치는 상호 인정을, 즉 동등성을 향한다. 정치는 행복을 약속한다. 그리고 정치적인 법은 인정 투쟁을 완성하고 신성화한다. 종교는 욕망이지 결코 인정 투쟁이 아니다. 종교는 동등한 자들이 이루는 사회에서의 가능한 잉여다. 즉 영광스러운 비참함의, 책임의, 희생의 잉여다. 이것은 동등성 자체의 조건이다.

 

(79~80)

 


인정 투쟁(Anerkennungskampf)은 헤겔 철학의 핵심 용어다헤겔은 인간이 서로 사랑하면서 인정하는 행동을 철학적으로 접근했다. 헤겔이 바라보는 자아는 그 타자가 자기 자신을 자립적인 가치로 인정해 주길 원한다. 그것은 인정에 대한 욕구. 헤겔은 상호 인정 행위를 정신현상학에서 주인과 노예로 비유하면서 설명한다
















* 헤겔, 임석진 옮김 정신현상학(한길사, 2005)


* 스티븐 홀게이트, 이종철 옮김 헤겔의 정신현상학입문(서광사, 2019)




주인은 노예에게 인정받고 싶다. 하지만 주인은 불안하다. 노예가 나를 제대로 주인으로 대접해 주고 있는 것일까, 나에게 복종하는 노예의 태도는 과연 진심일까. 그래서 주인은 노예를 따뜻하게 대하면서 그에게 자유로운 생활을 하도록 허용해 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주인은 또 불안감을 느낀다. 자유민이나 다름없는 생활에 익숙한 노예가 나를 섬기지 않으면 어쩌지? 자유민이 된 노예는 주인으로부터 해방되는 동시에 자립적으로 살아가야겠다는 자기의식을 발견한다. 노예는 예전처럼 주인의 지배를 받으면서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의 노예가 아닌 내가 주인인나답게 살려고 한다. 그런데 과거에 노예로 살았던 그가 막상 주인이 돼서 살아보니, 자신을 인정해 주는 노예, 즉 타자가 없다는 현실을 깨닫는다. 결국 모든 사람은 타자를 만나면 내가 주인이요!’라고 외치면서 생사를 건 투쟁(Kampf auf Leben und Tod)’을 벌인다.

















* 악셀 호네트, 이현재 · 문성훈 옮김 인정 투쟁: 사회적 갈등의 도덕적 형식론(사월의책, 2011)

 

* 악셀 호네트, 강병호 옮김 인정: 하나의 유럽 사상사(나남출판, 2021)

 

* 이현재 악셀 호네트(커뮤니케이션북스, 2019)





레비나스가 언급한 인정 투쟁은 헤겔 철학 용어다악셀 호네트(Axel Honneth)는 헤겔의 용어를 좀 더 확장해서 논의한다. 사회적 약자 또는 소수자는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하면 생사를 건 인정 투쟁을 한다. 그들의 인정 투쟁은 자기 존엄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는 사회 구조의 문제점을 주목하게 만든다. 기득권층과 사회적 약자 간의 갈등 관계를 단순히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 그것은 사회적인 약자가 해야만 하는 ‘인간다운 삶을 찾기 위한 저항이며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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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4-08-22 0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비나스를 공공정책 개발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것이 제 주요 관심사 중 하나입니다...^^
책만 들입다 읽는다고 세상이 나아지진 않으니까요. 오히려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지요.

cyrus 2024-08-26 06:48   좋아요 1 | URL
오장원님이 레비나스 독서 모임에 오시면 좋겠어요. 오장원님의 견해가 궁금해요. ^^

yamoo 2024-08-21 1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레비나스 책은 정신현상학보다 10배는 쉬워요~~ㅎㅎ 지젝 보다 훨씬 읽기 수월합니다. 읽어서 이해가 안되는 건 역자들이 깜양이 안되어도 마구 번역하여 한국어 문법규정을 초월한 문장을 사용해서 그래요. 전혀 자책할 필요가 없어요~~ 현상학을 이해하고 보면 좀더 수월합니다..

cyrus 2024-08-26 06:49   좋아요 0 | URL
시간이 지나니까 적응됐어요.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이 있긴 하지만, 헤겔의 <정신현상학> 읽는 것보다 낫네요.. ㅎㅎㅎ
 



나는 과거에 철학사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철학책은 읽기 어렵다는 핑계로 철학 개론서와 철학사 관련 책만 골라 읽었다. 철학 개론서와 철학사에 축약된 철학 지식이 담겨 있다. 그것만 충분히 이해하면 철학을 좀 안다고 착각했다철학책 읽기 모임을 하면서 철학사가 아닌 철학을 사랑해 보기로 결심했다











지난달 초에 시작된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철학 읽기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선정 도서는 레비나스의 강연록 시간과 타자



















* 에마누엘 레비나스, 강영안 · 강지하 함께 옮김 《시간과 타자》 (문예출판사, 2024)


* 마르틴 하이데거, 이기상 옮김 《존재와 시간》 (까치, 1998)




레비나스는 이 책에서 자신의 철학 스승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저서 존재와 시간에 담긴 존재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하이데거는 라는 존재는 이미 구성된 거대한 세계에 내던져진’ 상태라고 주장한다하이데거의 는 현존재(Dasein)’즉 거대한 세계 안에 존재하는 세계가 없으면 는 존재할 수 없다하이데거는 현존재를 세계 속 타자와 함께 살 수밖에 없는 공존재(共存在, Mitsein)’로 정의한다여기서 레비나스는 개인보다 전체를 더 중시하는 공존재가 전체주의로 변질되는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한다그뿐만 아니라 주체 및 이성 중심 철학까지도 비판한다레비나스에 따르면주체와 이성에 초점을 맞춘 철학은 타자와의 관계성을 진지하게 논의하지 않는다.


레비나스는 자신의 철학이 파르메니데스와 결별하자는 시도(시간과 타자, 37)’라고 한다왜 레비나스는 갑자기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을 언급했을까? 레비나스는 왜 그런 표현을 썼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파르메니데스는 존재는 하나요불변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철학자다. 영원불변하는 일원론 철학사를 통해 알려진 파르메니데스 철학의 핵심이다철학사를 사랑하는 사람은 파르메니데스가 만물의 변화를 거부하는 철학자’라고 외운

















플라톤, 정준영 옮김 《테아이테토스》 (아카넷, 2022)

플라톤, 김인곤 · 이기백 함께 옮김 《크라튈로스》 (아카넷, 2021)




파르메니데스 철학과 반대되는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는 만물의 변화를 인정한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철학사를 외운’ 사람은 플라톤이 헤라클레이토스가 한 말이라고 주장한 격언을 강조한다. “너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크라튈로스》 402a).” 플라톤이 인용한 헤라클레이토스의 격언은 만물 변화설을 설명할 때 반드시 언급된다플라톤은 테아이테토스에서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 철학을 명확하게 일원론과 다원론으로 구분 지어서 설명한다.

하지만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 철학을 이분법적으로 정의한 플라톤의 견해는 정확하지 않다. 상식으로 굳어진 파르메니데스의 일원론 대 헤라클레이토스의 다원론’, ‘파르메니데스의 만물 불변설 대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 변화설은 두 철학자의 진짜 생각을 보여주지 못한다. 지금까지 일부만 남아 있는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와 관련된 고대 문헌들 속에 플라톤이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이 있다.



















* 김재홍 · 김주일 · 강철웅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아카넷, 2005)

 

* 움베르토 에코 · 리카르도 페드리가, 윤병언 옮김, 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1: 고대. 중세 편(arte, 2018)

 

* [절판] 피터 애덤슨, 신우승 · 김은정 함께 옮김 초기 그리스 철학(전기가오리, 2017)




헤라클레이토스가 쓴 글은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지 않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문장을 인용한 다른 학자들의 글만 남아 있다. 히폴뤼토스(Hippolytus of Rome)라는 고대 로마의 기독교 신학자는 헤라클레이토스가 로고스(logos)’를 언급한 문장을 인용했다.



 나에게 귀를 기울이지 말고 로고스에 귀를 기울여, 만물은 하나이다라는 데 동의하는 것이 지혜롭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236)



헤라클레이토스는 처음으로 로고스의 중요성을 언급한 철학자. 그가 생각하는 로고스는 모든 만물에 대한 완벽한 설명이다. 고대 사람들은 완벽한 것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고대 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문장을 근거로 내세워서 헤라클레이토스가 만물 변화설을 믿었다는 플라톤의 견해를 반박한다(참고 문헌: 피터 애덤슨, 초기 그리스 철학, 움베르토 에코,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1)

















* 김주연 철학사 수업 1: 고대 그리스 철학(사색의숲, 2021)




파르메니데스는 최초로 존재론을 정립한 철학자존재론에 초점을 맞춘 철학자들의 계보를 만든다면 당연히 제일 먼저 파르메니데스가 나와야 한다. 레비나스는 전통적인 존재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하이데거와 파르메니데스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파르메니데스가 생각한 존재의 정의는 아주 단순하다. 반드시 있는 것이어야 하며, 그것이야말로 참된 진리다. 있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은 것이므로 탐구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그는 더 나아가서 있는 것절대로 변하지 않은 완벽한 구()’의 형태라고 믿는다우리가 경험하는 실제 세계 속 존재들은 변한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는 우리가 보고 느끼는 변화하는 현상들 모두 감각이 꾸며낸 환영 또는 착각이라고 주장한다파르메니데스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이성이다. 그는 순수한 이성적 논리를 동원하여 존재의 불변함을 증명하려고 했다.


파르메니데스는 자연의 변화를 거부하는 엄격한 일원론자로 알려졌으나 흥미롭게도 다원론자들은 파르메니데스야말로 자신들의 지적 스승이라고 주장한다. 다원론자들은 자연이 변화한다고 믿는 자연철학자들이다. 그들은 자연 현상을 관찰하는 것을 언급한 파르메니데스의 글에 주목한다. 자연철학자들은 세계가 두 개의 층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변화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세계. 현실 배후에 ‘(변하지 않는) 만물의 근원이 있는 참된 세계가 있다. 다원론자는 참된 세계속 만물의 근원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고 주장한다. 두 개의 만물의 근원이 섞이면현실 세계에서 필멸하는 만물이 생긴다. 그리하여 자연철학자들은 항상 변하는 자연 현상의 원인과 변하지 않는 만물의 근원을 동시에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참고 문헌: 김주연, 《철학사 수업 1》).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로 분류된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은 여백이 많은 철학자. 출생 연도와 출생지가 불분명하고, 고대 문헌에 적힌 내용이 정확하지 않아서 연구 대상으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이렇다 보니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을 과소평가하는 철학도들이 있다하지만 철학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철학도는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철학 사상을 대충 보지 않는다.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공부한다. 그런 다음에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어제 쓴 글을 다시 강조하자면 지성을 사용할 용기(공부할 용기)와 무지와 오류를 인정할 용기가 모두 있어야만 철학을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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