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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2 사계절 만화가 열전 21
이창현 지음, 유희 그림 / 사계절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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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익명의 독서중독자들 2에 새로운 독서중독자가 등장한다. 별명은 다크섹시다. 직업은 사서. 2권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다크섹시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아무도 책을 읽지 않는 집안에서 혼자 책을 좋아했다. 독서에 재미를 못 붙인 집에 책이 늘어날 까닭이 없으니 별수 없이 같은 책을 반복해 읽었다


(8)

 


이 문장을 보면서 살짝궁 눈가가 촉촉해질 뻔했다면 당신은 독서중독자다익명의 독서중독자들 2시작 전에 독서중독자의 조건이 명시되어 있다. 그중 하나가 부모가 강요하지 않아도 책 읽기를 좋아한 아이







책을 읽지 않는 부모라면 자녀에게 책 읽기를 강요하지 않을 수 있다. 책 대신에 자녀에게 유익하면서 재미있는 놀이를 가르쳐줄 것이다. 하지만 책 읽지 않는 부모도 책 읽기의 중요성을 안다. 그러므로 자녀에게 책 읽기를 강요할 수 있다나는 ‘책을 읽지 않는 부모가 강요해서 책 읽기를 좋아한 아이였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어머니는 내가 똑똑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책을 잔뜩 구매했다어머니는 내가 밖에 돌아다니면 껄렁껄렁한 아이들과 어울릴까 봐 잔뜩 걱정했다. 오락실에 가지도 못하게 했다. 혼자서 밖에 나갈 일이 없던 나에게 장난감이 먼저 다가왔다. 그 장난감은 바로 이었다.


아버지는 배고픈 청춘 시절에 먹고 살기 위해 온갖 일을 했다. 그중 한 일이 책 장사였다. 노상에 가판대를 설치하고 그 위에 책들을 올려놓고 파는 일이었다. 아버지가 그 일을 얼마 동안 했는지 모르겠다. 경상도 출신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말수가 적다. 아마도 책을 좋아하지 않은 아버지는 책 파는 일이 썩 즐겁지 않으셨나 보다.


그래도 팔다 남은 책 몇 권은 버리지 않았다. 그 책들은 지금도 우리 집 창고 어딘가 먼지 이불 속에서 자고 있다. 몇 년 전 창고로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얼마든지 펼쳐 볼 수 있었다. 내가 자주 봤던 책은 문고본으로 나온 명탐정 셔얼록 호움즈》 전집과 세로쓰기로 된 세계 단편 문학 전집이다. ‘셔얼록 호움즈셜록 홈스의 옛 표기. 말이 전집이었지 셜록 홈스 시리즈에 속한 모든 단편이 수록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편집 상태가 상당히 조악했다. 그렇지만 틈만 나면 읽었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세계 단편 문학 전집은 나를 세계문학이라는 거대한 세계에 진입하게 해준 결정적 역할을 한 책이다. 아, 갑자기 이 오래된 친구들이 보고 싶다. 당장 창고에 가서 얼른 깨워주고 싶군.


익명의 독서중독자들 2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독서중독자들을 위한 거울이다. 하지만 거울이라고 해서 독서중독자들의 공통점만 보여줄 수 없다. 분명 동족과 다른 독특한 성격과 독서 취향을 가진 독서중독자도 있다독서 모임을 참여해보면 알 수 있다. 독서중독자들은 책을 좋아하는 성격만 같을 뿐이지 읽은 책에 관한 생각이나 책을 대하는 태도 등에 있어 확연한 차이가 있다.







전작에 등장한 축구광 독서중독자인 사자는 독서중독자들은 가짜 뉴스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유는 독서중독자들은 책 읽느라 가짜 뉴스 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127~128). 나는 사자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책 속에 독서중독자들도 무심코 믿어버리기 쉬운 가짜 정보가 있다. 사자가 생각하는 책은 여기저기 가짜로 널려 있는 소셜미디어 플랫폼과 반대되는 가짜 정보가 없는 청정 지식의 보고. 하지만 현실 속의 책은 그렇지 않다. 


책의 유익함을 지나치게 긍정하고, 책을 쓴 저자의 견해를 의심 없이 옹호하는 것은 우리 개는 절대로 사람 안 물어요라고 주장하는 견주의 생각과 비슷하다. 반려견의 성격과 행동에 무관심한 견주는 본인이 생각하기에 반려견이 자기 말을 잘 알아들을 정도로 똑똑해서 타인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리하고 순둥순둥한 반려견도 어떤 내 · 외적 요인에 의해서 타인, 심지어 견주를 공격하기도 한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견주가 많다.

 

논리적 추론 능력이 뛰어난 독서중독자도 책 속의 가짜 정보와 저자가 사실을 왜곡한 거짓 정보를 알아내지 못한다. 우리 독서중독자는 사람인지라 편견에 빠지기 쉽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어 한다. 자신이 책에서 봤던 내용을 반박하는 견해를 접하면 낯설어서 최대한 거리를 두고 싶어 한다. 가짜 정보로 채운 책의 손아귀에 벗어나지 못하는 독서중독자는 가짜 정보를 제대로 간파한 독서중독자를 무시하거나 공격한다. 책의 강점을 너무 믿는 그들은 떳떳하다. ‘내가 읽은 책은 정말 좋은 책이에요.’ 모든 사람을 좋아하는 착한 개가 절대로 없듯이 모든 독서중독자에게 유익한 좋은 책은 없다


친애하는 익명의 독서중독자 친구들이여, 조심하자

믿는 책에 독서중독자 머리 찍힐라.






<알아 둬도 쓸 덴 없는 cyrus의 주석>




* 77






남방 우편기는 생텍쥐페리(Saint-Exupéry)의 첫 소설이 아니다. 1926년에 발표된 단편 <비행사>(L’Aviateur)가 생텍쥐페리의 첫 소설이다. 남방 우편기1929년에 발표된 소설이다.





* 119~120









광인이라는 별명의 독서중독자는 전직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다. 그는 단테(Dante)의 신곡을 좋아하는데, ‘광인과 같이 일하는 잔디 코치T.S. 엘리엇(T.S. Eliot)의 장시 황무지에 푹 빠져 있다. 익명의 독서중독자들 2저자가 의도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신곡황무지는 깊은 연관성이 있다.

 

엘리엇은 자신의 시 황무지초고를 검토해준 선배 시인 에즈라 파운드를 위해 헌사를 남겼다.

 


보다 나은 예술가

에즈라 파운드에게.

 

For Ezra Pound

il miglior fabbro.


(황동규 옮김, 황무지》, 민음사)

 


‘il miglior fabbro’는 단테의 신곡연옥 편 26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황무지와 엘리엇의 또 다른 대표작인 프루프록의 사랑 노래속에 신곡지옥 편을 인용한 시구가 나온다. 시를 좋아하는 독서중독자들은 고전의 반열에 오른 시, 특히 황무지같은 텍스트가 언급되면 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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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8-08 18: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그러니까 같은 동족이지만
결국 다를 수 밖에 없다.
읽은 텍스트는 같지만 해석은 다
르기 때문에...

오래 전, ˝리바이어던˝에 대한 해석
을 진영 논리에 따라 기묘하게 뒤틀
어 버린 어느 지식인 행세를 하던
인사의 글을 읽고 식겁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른바 포스트트루스 시절의 단상
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cyrus 2023-08-09 12:13   좋아요 2 | URL
예전에, 그러니까 박근혜 탄핵 전에 페이스북에 자유주의를 강조하려고 고전이나 그 밖의 다른 책들(주로 경제 서적이나 사회과학 서적)을 인용하면서 글을 쓰는 사람들이 활발히 활동했어요. 그런 글의 공통점은 결국 ‘ 종북 좌파는 문제 많아, 우파 최고’로 결론을 내리더군요. 본인 글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의견이 나오면 교묘히 깎아내리면서 비난해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신념이 무섭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 신념에 집착하는 사람을 재수 없게 만난 책은 아무 죄가 없어요. ^^;;

우끼 2023-08-08 2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구절절 공감하며 읽었습니다!ㅋㅋ 저도 편향적으로 독서하는 인간이기도 하고요 ㅎㅎㅎ

cyrus 2023-08-09 12:15   좋아요 1 | URL
저 또한 익숙한 주제와 분야와 관련된 책만 자주 읽게 돼요.. ㅎㅎㅎ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사계절 만화가 열전 13
이창현 지음, 유희 그림 / 사계절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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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내가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서평을 이러쿵저러쿵 줄거리 소개하면서 마무리로 ‘애서가는 꼭 읽어보십쇼로 쓴다면 시간 낭비다. 왜냐하면 책 좋아하는 사람 대부분은 이미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을 봤기 때문이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이 얼마나 재미있는 만화인지 애서가들은 다 안다서울 독서 모임 <달의 궁전>의 기둥이자 알라딘 파워블로거 레샥매냐는 이미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썼다. 대구 책방 <일글책> 주인장‘서울의 최해성(cyrus)서한용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이 엄청 재미있다고 추천했으면 끝난 거지. 두 책쟁이 사이에 낀 내가 가세해서 글로 추임새를 넣고 싶지 않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을 읽는 내내 몇 번이나 웃었는지 모르겠다. 만약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속 등장인물들의 얼굴에서 본인 모습이 보인다면 당신은 독서 중독자. 나만큼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얼굴도 보인다. 그러면 내가 아는 독서 중독자들에게 책을 보라고 권하게 된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은 실제 독서 중독자들끼리 서로 돌려 가면서 보는 거울이다. 거울이 말한다. 너두 독서 중독자야.

 

인물들의 대화나 장면 곳곳에 실제로 출간된 책뿐만 아니라 책 좀 읽는 사람이라면 한 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잡다한 상식들이 나온다. 그래서 서평 대신에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속 대사나 장면에 대한 주석을 모은 글을 쓰려고 했건만, 책 뒤편에 작가가 직접 쓴 (알아 둬도 쓸 덴 없는) 주석이 있다. 젠장!


하지만 그냥 조용히 넘어갈 최해성이 아니지.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초판 발행 연도는 2018년이다. 내가 읽은 책은 3쇄다. 비록 쓸데없는 정보이지만, 다음 쇄가 나오기 전에 수정해야 할 내용이 있다옥에 티도 있다.




<알아 둬도 쓸 덴 없는 cyrus의 주석>

 


* 145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은 총 1,058쪽의 양장본이다. 닉네임이 경찰인 남자 인물은 한 손으로 벽돌 책을 들면서 읽는다. 실제로 저렇게 읽으면 손목이‥….






* 알아 둬도 쓸 덴 없는 작가 주석, 381

 




브릴 엠볼로2022년에 프랑스 리그앙(Ligue 1, 1부 리그)에 속한 AS 모나코로 이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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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7-26 09: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 난 이 책 아직 안 봤다. 만화는 내 취향이 아니라. 글고보면 난 아직 중독자는 아닌게벼. 근데 그리 재밌다며 별점은 만점이 아니구만. 역시 깐깐해. 쵝오!👍

cyrus 2023-07-29 04:53   좋아요 2 | URL
책 좋아하는 독자 중에 만화 속 대사나 장면에 공감하지 못하는 분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만점을 줄 수 없었어요.. ㅎㅎㅎ

은오 2023-07-26 1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서재에 계속 올라와서 나만 안 읽었나.. 근데 딱히 땡기진 않았는데 사이러스님 이 리뷰 읽으니까 궁금해집니다. 좀 재밌을 것 같다.....!!

cyrus 2023-07-29 04:55   좋아요 1 | URL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읽기 전에 주의할 점이 있어요. 만화 속에 실제로 나온 책들이 언급돼요. 그 책들 중 몇 권은 읽고 싶거나 사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수 있어요. 독서 욕구와 구매욕을 부르는, 무서운 책입니다.. ㅎㅎㅎ

새파랑 2023-07-28 2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어보고 싶긴 한데 사서 보기는 좀 망설여집니다 ㅋ

cyrus 2023-07-29 04:55   좋아요 1 | URL
저는 <일글책> 책방지기님 책을 빌려 읽었어요. 그분이 만화가 재미있다고 부추겨서 저도 보게 됐습니다. ^^
 
크툴루 신화 대사전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히가시 마사오 지음, 전홍식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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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점  ★★★  B






러브크래프트(H. P. Lovecraft)는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와 함께 미국 공포문학의 대가로 평가받는 작가이다러브크래프트의 에세이 공포문학의 매혹(Supernatural Horror in Literature, 1927)은 기성 문학에 가려진 공포문학 작품들을 양지로 드러나게 한 글이다이 글의 시작을 알린 첫 문장은 공포문학을 논할 때 반드시 언급된다.



* 공포문학의 매혹(홍인수 옮김, 북스피어) 중에서, 9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인간의 감정은 공포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것이 미지에 대한 공포다.



러브크래프트가 선호한 공포소설은 미지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그래서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속에는 초자연적인 미지의 존재 앞에서 두려워하고, 정신이 처참히 무너지는 무력한 인물들이 나온다그들은 꿈도, 희망도 없는 최악의 상황에 부닥친다러브크래프트의 단편소설 크툴루의 부름(The Call of Cthulhu, 1928)은 그의 작품 세계관이 드러난 작품이다크툴루는 인류가 등장하기 전에 이미 지구에 지배했던 신적 존재이다러브크래프트는 크툴루 이외에 다양한 고대의 신들을 묘사했다. 후대의 작가들은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고대의 신들을 모티프로 한 창작물을 썼고러브크래트프의 작품 세계관이 반영된 크툴루 신화(Cthulhu Mythos)’를 완성시켰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이 일찍 소개된 나라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 감명받은 일본 작가들이 많았고, 크툴루 신화는 일본의 대중문화에 영향을 주었다크툴루 신화 대사전은 러브크래프트와 크툴루 신화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책이다이 책은 1995년에 처음 발간되었고, 현재까지 개정 5판이 나왔다. 국내에 번역된 크툴루 신화 대사전2018년에 나온 개정 5판이다.


이 사전은 러브크래프트의 작품들과 크툴루 신화 세계관에 나온 고대의 신들, 등장인물 이름, 지명, 기타 용어들을 소개하고 집대성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러브크래프트에게 영향을 준 작가(공포문학의 매혹에 언급된 작가들)와 그에게 영향받은 후대의 작가들도 나온다이 책의 뒤표지에 크툴루 신화 체계와 러브크래프트 문학에 입문하는 최고의 안내서라는 문구가 있다. 냉정하게 보자면, 크툴루 신화 대사전은 입문용 도서로 적합하지 않다최고의 안내서도 아니다


국내에 생소한 서구권 작가들이 많다. 공포문학에 조예가 깊은 독자가 아니라면 그들의 이름과 작품명이 생소하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사전 항목의 구성 방식 아쉽다. 러브크래트트의 작품에 등장한 가상 인물과 작품에 언급된 실존 인물을 명확히 구분해서 소개해야 하는데, 가상 인물과 실존 인물이 용어라는 범주(category)로 분류되어 있다스페인의 화가 고야(Goya, 사전 14~15쪽)와 이탈리아의 화가 살바토르 로자(로사, Salvator Rosa, 사전 152쪽)는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속에 잠깐 언급된 실존인물이다그런데 이 두 사람은 용어에 포함되어 있다. 반면에 소설을 쓴 실존 인물은 작가라는 범주에 들어있다. 흔히 작가를 글 쓰는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 작가의 의미는 문학 작품, 사진, 그림, 조각 따위의 예술품을 창작하는 사람이다. 사전의 항목 분류가 세밀하지 않다.


이 책을 번역한 역자는 국내에 출간된 작품명을 번역본 제목으로 소개했으며 출판사 이름까지 밝혔다사전을 보는 독자가 번역본을 읽을 수 있도록 역자가 꼼꼼하게 번역 작업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하지만 엄청 많은 사전 항목의 내용(항목이 몇 개인지 세어보지 않았으나 대략 500개 이상일 것으로 추정한다)을 한 사람이 전부 옮기다 보면 실수할 수 있고, 오역도 할 수 있다. 정체불명의 이름과 오자가 많이 보인다(사전에 있는 모든 오자와 오류를 정리한 글은 다음에 공개하겠다. 그 글의 제목은 크툴루 신화 오식 대사전’이). 오류가 많고, 정확성이 떨어지는 사전은 최고의 안내서’라고 할 수 없.


그래도 크툴루 신화 대사전최악의 안내서’는 아니다사전의 완성도는 높지 않지만, 부록은 읽어볼 만하다.그 후의 크툴루 신화는 크툴루 신화의 탄생 배경과 신화 창작에 기여한 작가들의 활동을 보여준다. 러브크래프트가 있는 일본 문학사는 러브크래프트가 일본 문학에 영향을 끼친 장면들을 정리한 글이다. 독자는 이 글에서 일본 문학사를 정리한 책에서 보기 힘든 일본 장르 문학의 역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부록은 러브크래프트와 크툴루 신화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독자에게 요긴한 자료가 될 수 있다내 눈에는 이 사전의 배꼽이 배보다 더 크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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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음식, 죽은 음식 - 호모 사피엔스는 무엇을 먹도록 설계된 동물인가
더글라스 그라함 지음, 김진영 외 옮김 / 사이몬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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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점   ★★   C





나는 비건(Vegan)은 아니지만, 채소와 과일을 자주 먹는다. 고기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먹는다. 불에 구운 고기(삼겹살 구이)보다 끓는 물에 푹 삶은 고기(수육)를 더 좋아한다. 건강을 위해 채소와 과일을 먹는 사람이라면 산 음식, 죽은 음식에 눈길이 가게 된다. 원제는 ‘80/10/10 Diet’이다. 이 책의 저자는 과일을 많이 먹는 식단을 통해 질병을 예방하면서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이 과일을 먹는 영장류(frugivore)’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진화해왔다면서다윈(Darwin)의 진화론과 충돌하는 지적 설계론(Intelligent design)에 가까운 입장이다. 후술하겠지만, 지적 설계론은 과학으로 보긴 어렵다과일을 주식으로 삼되, 부수적으로 채소를 먹는 식단을 권한다. 다만 저자는 다른 음식을 일절 먹지 않고, 오로지 과일만 먹는 극단적인 식단을 권장하지 않는다.


과일과 채소가 몸에 좋은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당뇨를 앓는 사람이나 만성 신부전증 같은 신장질환자는 과일이나 채소 섭취도 조심스럽다. 과일 자체 당분이 높아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좋지 않다는 지적이 있지만, 당뇨 예방을 위해 과일과 채소를 꾸준히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저자는 과일 섭취의 해악을 강조한 견해를 반박하면서 과일은 당뇨의 원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과일은 당뇨병 환자의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하며 혈압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국내 당뇨병 가이드라인에도 당뇨병 환자에게 과일, 곡류, 채소 등을 통해 당분을 섭취하라고 권하는 내용이 있다. 다만 당분이 낮은 과일(사과, 딸기 등) 위주로 섭취해야 한다


이 책에서 언급된 산 음식이 과일과 채소, 가열되거나 조리되지 않은 음식이라면, ‘죽은 음식은 조리된 음식과 가공 음식이다. 음식을 불로 익혀 먹으면, 몸에 꼭 필요한 영양소가 제거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독성물질을 발생시킨다. 토마토 속에 들어있는 항산화 성분인 리코펜(Lycopene)은 열에 강해서 가열해도 쉽게 파괴되지 않는다. 그러나 리코펜이 몸에 좋다는 이유만으로 토마토를 가열해서 먹으면 리코펜 이외의 다른 영양소들은 파괴된다. 저자는 한두 가지의 영양소를 중점적으로 섭취하기 위한 조리 방식과 식단을 경계한다


저자가 권장한 ‘80/10/10’은 한 사람의 식단에서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 차지하는 최적의 비율(칼로리 백분율)에 맞춘 식습관이다. , ‘80/10/10’은 탄수화물 80%, 단백질 10%, 지방 10%를 의미한다. 80%의 탄수화물은 과일을 통째로 먹어서 섭취해야 한다. 단백질과 지방을 10% 이상 섭취하면 건강에 해롭다.


나는 저자가 알려준 식단을 실천해보지 않았지만, 과일과 채소 섭취의 중요성을 강조한 저자의 견해에 공감한다. 하지만 과일이 건강에 좋다는 견해를 유리하게 전달하려고 제시한 저자의 근거에 문제가 있다. 저자가 제시한 근거 중 일부는 과학적이지 않다.


이 책의 부제는 호모 사피엔스는 무엇을 먹도록 설계된 동물인가이다. 저자는 과일을 먹지 않고, 조리된 음식 위주로 먹는 현대 인류의 식습관을 (자연)의 설계와도 배치될뿐더러, 우리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론적 설계와도 동떨어져 있다(18)”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책에 심심찮게 설계라는 단어를 썼다.

 

 

 (자연)이 당신에게 허락한 신선한 과일을 먹는 것이 가장 좋다. (52)

 

 우리 인간은 태초부터 부여받은 설계도면과 수백만 년 진화해온 기본적인 소화생리를 바꾸지 않았다. (133)

  


설계에 대한 저자의 관점은 지적 설계와 유사한데, ‘과일을 먹는 영장류는 신적인 존재나 자연(범신론: 모든 자연은 곧 신이며 신은 곧 모든 자연이라고 보는 관점)이 설계한 결과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정말로 과일을 먹는 영장류가 신이라는 지적 설계자가 만들었다면 과일을 먹으면 안 되는 사람이 왜 있는 것일까그런데 저자는 과일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과일 섭취의 해악을 강조한 정보(또는 거짓 뉴스)에 세뇌되었다고 비판한다



 인간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동일지역, 동종인종의 경우 나는 과일이 맞지 않는다거나 나는 태생적으로 채소를 싫어한다라는 말은 습관의 결과이자 세뇌된 편견일 뿐이라는 말이다. (132)



저자는 과일 섭취가 인간에게 이상적인 식단이라고 말한다. 그는 더 나아가 동일 지역에 사는 동일 인종은 과일 섭취를 좋아하며 과일을 많이 먹어서 건강에 좋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한국인이라면 과일을 무조건 좋아할까? 한반도에 사는 한국인은 동일 인종인가? 한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는 너무나 다양하다. 저자가 표현한 동일 인종은 한 사람의 의미를 대단히 협소하게 만드는 단어이며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저자는 일부만 보고(과일을 섭취하고 나서 건강이 좋아졌다고 믿는 저자와 과일 위주의 식단을 지지하는 영양학 전문가들의 견해, 과일 위주의 식단을 실천하는 일반인들의 긍정적인 반응) 전체를 판단하는(“인류는 태어날 때부터 과일 섭취를 선호했으며 과일을 많이 먹을수록 건강해진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했다


과일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과일 위주의 식단을 실천할 수 없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이 사람들은 과일은 건강에 해롭다라는 잘못된 믿음에 세뇌된 사람이라고 봐야 할까? 이런 식으로 한 사람을 규정하면 절대로 안 된다. 의학적으로 확인된 알레르기 유발 과일은 생각보다 많다. 사과, 딸기, 망고, 멜론, 바나나, 살구, 오렌지, 자두, 참외, 체리, 키위 등이 있다. 특히 망고, 멜론, 바나나는 열대지방에서 나는 과일이다. 그런데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는 열대과일을 먹도록 설계되어있다고 주장한다(174~177).


저자는 이 책에 잘못된 정보를 한 번이 아닌, 두 번이나 언급했다. 그는 혀 미각 지도가 과학적인 사실인 것처럼 말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본성적으로 단 것을 좋아한다. 따라서 달콤한 과일을 좋아한다. 당신은 중고등학생 시절 생물시간에, 혀의 가장 앞자리에 단맛을 감지하는 미뢰가 있다는 사실을 배웠을 것이다. 이것은 진화론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우리 인간은 문화와 환경에 의해 형성된 각각의 음식문화와 관계없이 달콤한 생과일에 끌린다. (41)

 

 고지방 식단은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노화를 촉진한다. 우리 인간은 지방의 맛을 느낄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혀의 맛 지도를 생물시간에 공부한 적이 있는 사람은 모두 알 수 있다. (226)

 

 

단맛은 혀의 앞쪽, 쓴맛은 혀의 뒷부분, 신맛은 혀의 옆 부분, 짠맛은 혀 가운데에서 느낀다고 알려져 있다. 과거에 만들어진 교과서에 미각을 표시한 맛 지도를 설명한 내용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맛 지도는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죽은 지식’이다. 실제로 혀의 어느 부분이든 모든 맛을 느낄 수 있다. 다만 혀의 여러 부분마다 맛을 느끼는 세포의 개수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민감하게 느껴지는 맛이 있다. 산 음식, 죽은 음식은 여러모로 검증하면서 읽어야 할 책이다. 특히 식단을 선택할 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식단을 권장한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살펴보고, 과학적으로 입증된 식단인지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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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20-12-13 14: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와 비슷하군요. 저도 채식 위주로 먹기 시작했는데 이거 외식할 때는 불가능하더라고요. 그래서 집에서는 채식 위주로, 나가서 술 마실 때는 아무거나....
개인적으로 제가 이 책을 신랄하게 비판한 적이 있는데 저자는 인간이 원래 과일만 먹고 살았다고 하던데... 그러면 겨울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합니다.

cyrus 2020-12-14 09:14   좋아요 1 | URL
맞아요. 먹고 마시는 우리 삶에 변수가 많이 일어나요. ㅎㅎㅎ

파트라슈 2020-12-14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일값이 얼마나 비싼데요. 마트에 사과 한 알에 3,000원씩 하던데 지금은 좀 내렸지요.
과일을 탄수화물 주 공급원으로 삼는다는 주장은 어이없어 보입니다. 비싼 과일을 삼시세끼 밥대신 먹을 수도 없고 먹을 능력도 안되고 무엇보다 쌀과 김치 된장이 없는 식단은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호모사피엔스가 열대지방에서 생겼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극지방까지 진출해서 다양하게 진화했다는 사실을 저자는 모르는 것입니까? 쌀과 밀을 대체하는 식품으로 과일은 정말 아닌 것 같아요.
혹시 이 책 저자는 독실한 기독교신자가 아닐런지?

cyrus 2020-12-14 21:58   좋아요 1 | URL
이 책을 현실적으로 비판한다면 파트라슈님의 의견이 제격이에요. 맞아요. 지구온난화로 환경이 변하면서 바나나 같은 과일이 점점 줄어든다고 하죠? 이러면 유통되는 과일 가격은 비싸져요. 물론 과일 가격을 오르게 만드는 또 다른 원인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저자가 지적 설계론을 지지하는 기독교신자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비수기의 전문가들
김한민 지음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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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는 곰과 호랑이로부터 시작한다. 환웅(桓雄)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곰과 호랑이에게 마늘과 쑥을 준다. 곰과 호랑이는 동굴에 들어가 쑥과 마늘을 먹으면서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고 지낸다. 호랑이는 환웅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실패하였고, 곰은 그 약속을 잘 지켜 여자가 되었다. 곰에서 인간으로 변신한 웅녀(熊女)는 환웅과 혼인하여 단군(檀君)을 낳는다. 단군신화에서부터 전설, 민화에 이르기까지 호랑이는 우리 민족에게 친숙한 동물이다. 호랑이들은 1920년대까지만 해도 한반도 곳곳에서 살았다. 그러나 일제의 무분별한 남획과 벌목이 자행되면서 그 후 남한에서는 호랑이가 멸종되다시피 했다. 세월이 지나 호랑이는 동물원에 가야만 볼 수 있는 동물이 됐다.

 

신화가 사회상의 반영이라면 그것은 사람의 행태가 보여준 보편적 현상이다. 단군신화만큼 ‘우리’라는 한민족의 마음을 상징하는 이야기도 없다.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곰과 호랑이가 지향하는 점은 같다. 그것은 ‘사람’이다. 우리 조상들이 지녔던 사람 생각이 이 신화 속에 그려져 있다. 곰이 겪은 고난의 과정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극복해야 할 과제다. 조상들은 햇빛이 들지 않는 동굴, 먹기 역겨운 쑥과 마늘, 그리고 100일이라는 삼중고를 겪는 곰의 인내심을 ‘성공한 사람’의 자세로 생각했을 것이다. 호랑이의 충동적인 야성이 아니다. 우리는 호랑이의 투쟁성보다 곰의 인내를 더 선호하는 교훈에 익숙하다. 그래서 주어진 현실을 불평하는 ‘호랑이 같은 인간’을 싫어한다.

 

김한민 작가의 그래픽 노블 《비수기의 전문가들》은 이 땅에서 사라져버린 ‘호랑이 같은 인간’에 대한 기록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호랑이 유형의 인간을 연구하는 ‘김 아무개’로 등장한다. 그는 호랑이 유형의 인간을 ‘호모 티게르’ 또는 ‘퀭’이라고 명명하고, 20년의 추적 끝에 호모 티게르를 발견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호모 티게르는 홀연히 종적을 감춘다. 김 아무개는 호모 티게르가 직접 남긴 글들을 취합하여 독자에게 들려준다.

 

호모 티게르의 시선은 어느 것 하나 놓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쇠창살에 갇힌 장애 콘도르(condor), 싸늘한 주검이 된 동물, 그리고 항상 혼자 다니는 자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호모 타게르는 길에서 만난 존재들을 관찰하면서,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호모 티게르의 글쓰기 방식은 마치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수집가이자 역사가 에두아르트 푹스』에서 묘사한 프랑스의 역사학자 푹스(Eduard Fuchs)처럼 일상의 세속적인 것들을 모으는 수집가의 자세와 비슷하다. 호모 티게르는 자신의 눈으로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존재들을 눈으로 수집하고 기록한다. 그는 자신이 기록한 존재들에 대해 어떠한 가치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자신과 다른 타자들에 대해 가치 판단을 내린다는 것은, 그것들의 존재 가치에 따라 서열을 매기거나 배제와 차별의 원리를 작용한다는 이야기다. 호모 티게르의 시선은 이러한 태도에서 벗어나 있다. 그의 시선은 존재들 그 자체를 고스란히 보여주려고 한다.

 

독자가 이 그래픽 노블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호모 티게르의 말 걸기’를 직면해야 한다. 호모 티게르는 너무나도 익숙한 질문 하나를 툭 꺼내면서 독자에게 말 걸기를 시도한다.

 

 

뭐 하나만 물어보자

넌 알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비수기의 전문가들》 19쪽)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면? 혹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한다면? 이런 간단한 질문은 멀쩡하게 잘 지내던 우리를 갑자기 곤란하게 만든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림과 글을 빨리 훑어보는 성질 급한 독자들은 이 질문에서 잠시 멈추게 된다. 그냥 지나칠 수 없을걸.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꽂히는 순간,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뭐라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 같고, 그럭저럭 대충 살고 있는 자신이 하찮게 느껴진다. ‘삶의 의미’라는 프레임은 때때로 우리 마음을 괴롭힌다. “그래, 이왕이면 ‘호모 티게르’처럼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자유를 누리면서 살아보자”라고 생각하면서 그럴듯한 삶의 계획을 만든다. 그렇지만 어설픈 꿈은 가장 어려운 질문을 일시적으로 피하기 위한 변명이다. 우리 사회는 호랑이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학교는 단군신화의 곰을 인간으로 변하는 데 성공한 ‘승자’로 규정하면서 가르친다. 동굴을 뛰쳐나와 인간이 되지 못한 호랑이는 ‘패자’의 위치로 남는다. 단순 이분법적 논리에 의해 다수의 지지를 얻은 곰(‘성공한 사람’)은 권력을 얻으면서 ‘주류’가 된다.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떠도는 호랑이/호모 티게르는 ‘비주류’ 또는 ‘약자’로 전락한다. 이러한 일상화된 분류로 존재를 서열화하는 우리 사회에서 ‘호모 티게르’에 대한 어떠한 배려를 찾아볼 수 없다.

 

‘곰 같은 인간’이 살기에 아주 편안한 ‘동굴’ 같은 사회를 유지하는 데 큰 몫을 하는 것이 바로 ‘어쩔 수 없다’는 태도이다. ‘각자도생’이 우선인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정말 없다. ‘헬조선’을 탈출하고 싶다는 절망 섞인 목소리만 높아지고 있을 뿐이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주류는 비주류를 짓밟아서라도 자기 살길을 마련한다. 비주류는 주류에 속하기 위해 경쟁하고, 죽지 않기 위해 불편한 현실에 순응한다. ‘호모 티게르의 말 걸기’, 즉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계속된 질문들은 독자들의 자아 성찰을 유도한다. 독자는 호모 티게르를 미행하면서 자신의 불행(주류 사회 밖에 겉도는 삶), 세상의 불행(호모 티케르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닌 점) 모두가 어디에서 오는지 생각하게 된다. 독서는 그 책 속에 간접적으로 묘사된 우리의 모습을 보기 위해 저자와 텍스트의 길을 동행하는 일이다. 《비수기의 전문가들》을 읽는다는 것은 ‘불편한 동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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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9-01 1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이~ 오랜만!
한동안 안 보인 걸 보면 분명 늦은 휴가를 다녀왔으렷다!
어디를 다녀왔는공...?
암튼 다시 보니 반갑네.
어디를 가도 책은 안 빠트렸겠구만.ㅋ

cyrus 2018-09-01 13:56   좋아요 1 | URL
이번 휴가는 집에서 책을 읽으면서 지냈어요. 이번 주는 책방 독서모임이 있어서 낮에 책방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책 읽고, 아시안게임 중계 보면서 휴일을 즐겼어요. 시간 금방 지나가네요.. ^^;;

포스트잇 2018-09-01 1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랑이같은 인간은 ADHD를, 곰같은 인간은 신경쇠약을 앓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분열인가....... ㅜ

cyrus 2018-09-01 17:00   좋아요 1 | URL
곰, 호랑이 유형의 인간을 정신의학 관점으로 볼 수 있겠군요. 포스트잇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곰 유형의 인간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계속 쌓기만 할 것 같습니다. 마음속의 분노를 배출하지 못해서 혼자 끙끙 앓는 성격인거죠. 사실 제가 곰 유형의 인간에 가깝습니다. ^^;;

페크pek0501 2018-09-01 16: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으며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지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 지금 떠오른 생각으로... 개인적으로 행복하고 사회적으로 유익한 사람으로 살기, 라고 답하겠습니다.

cyrus 2018-09-01 17:01   좋아요 2 | URL
저도 페크님과 같은 생각을 했는데, 《비수기의 전문가들》을 읽고, 멘붕에 빠졌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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