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와 함께하는 여름이라는 이름으로 독서 모임을 꾸린다면 과연 몇 명을 모을 수 있을까? 나를 제외한 두 명이 모인 것만 해도 감지덕지다독서 모임 이름은 책세상 출판사의 책 제목에서 가져왔다. 최근에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개정판이 출간되었다. 모임 이름을 줄이고 싶어도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summer(여름)’를 합친 포썸으로 정하면 4명만 모여서(foursome) 골프를 치는 모임으로 착각할 수 있다. ‘포썸 말하기가 망설일 정도로 위험천만한 단어. 왜냐하면 ‘4인 난교를 뜻하는 성적인 은어의 발음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포 읽기 모임꾸리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모임을 만드는 사람이 제일 먼저 부닥치는 문제가 독서 모임 선정 도서. 수많은 번역본 중에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





























* 에드거 앨런 포, 권진아 옮김 모르그 가의 살인: 추리. 공포 단편선(시공사, 2018)

 

* 에드거 앨런 포, 권진아 옮김 타르 박사와 페더 교수 요법: 추리. 공포 단편선(시공사, 2018)

 

* 에드거 앨런 포, 권진아 옮김 한스 팔의 전대미문의 모험: 환상. 비행 단편선(시공사, 2018)

 

* 에드거 앨런 포, 권진아 옮김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이야기: 장편소설(시공사, 2018)

 

* 에드거 앨런 포, 손나리 옮김 글쓰기의 철학: 작법 에세이(시공사, 2018)

 

* 에드거 앨런 포, 손나리 옮김 글쓰기의 철학: 시 전집(시공사, 2018)




단편소설, 장편소설, , 에세이 등 포의 모든 작품을 수록한 전집을 함께 읽으면 좋겠지만, 모임 진행 기간을 길게 잡아야 한다그리고 포의 모든 글에 관심 있는 독자 한 명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 소설보다 난해한 시, 단편소설들보다 인지도가 낮은 미완성 장편소설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이야기, 포의 글 쓰는 방식을 알 수 있는 에세이를 읽어보겠다는 특이한 독자가 나타난다면 기인으로 볼 게 아니라 귀인으로 대해야 한다. 음울하고 음산한 묘사가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포의 추리소설과 고딕 소설(Gothic novel, 공포 소설) 읽기가 거북할 수 있다. 공포 소설을 읽는다고 해서 잔뜩 기대한 독자들은 포의 고딕 소설이 시시하게 느낄 것이다.


포 전집 함께 읽기모임 꾸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다면 포의 대표작들만 읽는 독서 모임을 꾸려야 한다포의 이야기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의 관심을 높이려면 독서 모임 선정 도서는 포의 추리소설과 고딕 소설 위주로 수록된 포 단편 선집이 좋다


잘 만든 포 단편 선집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첫 번째, 추리소설과 고딕 소설이 골고루 수록되어 있어야 한다. 두 번째, 번역자의 주석이 많을수록 좋다. 포의 소설은 현학적이다. 그의 글에 국내 독자들이 모르는 저자 이름, 책 제목, 인용문이 나온다. 세 번째, 포의 생애와 포 문학의 위상을 알려주는 해설문이 있어야 한다이 세 가지 조건에 부합하는 포 단편 선집은 총 세 권이다.



















* 에드거 앨런 포, 김석희 옮김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열린책들, 2021)

 

* 에드거 앨런 포, 전승희 옮김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민음사, 2013)

 

* 에드거 앨런 포, 마이클 코널리 엮음, 조영학 옮김 더 레이븐: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림자(RHK, 2012)




열린책들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민음사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더 레이븐: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림자는 포의 대표작이 수록되어 있다. 검은 고양이, 모르그 가의 살인, 도둑맞은 편지, 어셔가의 몰락(어셔가의 붕괴)은 포 단편 선집에 반드시 있어야 할 작품들이다. 그러나 민음사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에 유일하게 실린 추리소설은 도둑맞은 편지.


더 레이븐: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림자는 단편 선집이지만, 포의 시 두 편(<까마귀>, <종소리>)과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이야기에서 발췌한 내용, 그리고 미국 미스터리 작가 협회에 소속된 추리 소설가들의 작품 해설이 실려 있다미국 미스터리 작가 협회가 만든 상이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에게 주는 에드가 상이다이 단편 선집의 해설문을 쓴 열다섯 명의 소설가는 에드가 상 수상자다. 이중에 국내에서 인지도가 높은 작가는 스티븐 킹(Stephen King)이다. 킹이 추천한 포의 소설은 고발하는 심장(일러바치는 심장)이다. 소설가들이 쓴 글은 해설문보다는 에세이에 가깝다. 그래서 글이 어렵거나 딱딱하지 않다. 작가들은 자신이 포의 이야기를 좋아하게 된 이유와 포 이야기의 매력을 알려준다모든 작가가 포를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사라 패러츠키(Sara Paretsky)라는 작가는 포의 암호소설 황금 벌레에 흑인을 비하하는 묘사를 지적한다.


더 레이븐: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림자 아쉬운 점이 있다. 포의 초기 단편 소설 병 속에 든 편지(병 안의 수기) 끝부분에 포의 주석이 달려 있는데, 이 책에 원주가 빠져 있다(민음사’ 판본에도 원주가 없다)실제로 포는 고양이 집사였다. 88쪽에 포의 반려묘 이름이 나온다. 카타리나로 되어 있는데, 정확한 표기는 캐터리나(Catterina)422쪽에 오자(‘<종소리>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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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4-07-12 21: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포섬 possum이라는 귀여운 동물이 있는데… 철자는 다르지만 그걸로 우겨보면 어떨까요? :)

cyrus 2024-07-14 11:36   좋아요 0 | URL
좋은 정보를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포섬’으로 입력하니까 건수하님이 말한 동물이 나오네요. ^^

transient-guest 2024-07-13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모르그 가의 살인에서 그려지는 밤의 정경과 도취를 좋아합니다. 뭔가 살짝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뒤팽과 화자의 관계설정도 그렇구요.ㅎㅎ 저는 근처에 있으면 모임에 참석하고 싶네요.

cyrus 2024-07-14 11:36   좋아요 2 | URL
저도요. 어렸을 때 <모르그가의 살인>을 읽으면서 도입부가 너무 좋아서 몇 번 반복해서 읽었을 정도예요. ^^

stella.K 2024-07-13 09: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고 싶으면 일단 온라인에세 해 봐. 그믐이라는 곳이 그렇게 하더라. 대신 진행자가 질문지도 만들고 그러나 봐. 첨부터 오프에서 하면 부담스러울수도 있으니까. 또 누가 아니 나도 참여하게될지. ㅋ
근데 책이 저렇게 새 단장을 하고 있으니까 웬지 갖고 싶다는 생각이드네.

cyrus 2024-07-14 11:38   좋아요 1 | URL
사람 만나는 일이 익숙하지 않지만, 그래도 오프라인 모임으로 진행해 보고 싶어요. ^^

청아 2024-07-13 1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울하고 음산한 묘사 좋아합니다. 서울서도 진행하시면 저는 갑니다ㅎㅎ

cyrus 2024-07-14 11:39   좋아요 2 | URL
‘모임 하면 참석할 수 있다’라고 말하신 분들, 제가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ㅋㅋㅋㅋ
 









이분법을 좋아하지 않지만, 에도가와 란포(江戸川乱歩)추리 소설가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첫 번째 유형은 범죄형이다. 범죄형 추리 소설가는 탐정보다 범죄자를 좋아한다. 범인의 엽기적이고 잔혹한 범죄 행위와 심리를 묘사한다. 범죄형 추리 소설가가 쓴 추리 소설에 나오는 탐정은 조연에 불과하다. 또 다른 유형은 탐정형이다. 탐정형 추리 소설가는 탐정이 추리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 에도가와 란포, 이성규 · 오현형 함께 옮김 음험한 짐승(시간의물레, 2022)

 

* [절판] 에도가와 란포, 김은희 옮김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2: 본격 추리 2(도서출판 두드림, 2009)

※ <음울한 짐승> 수록




란포의 견해가 나오는 출처는 그의 소설 <음험한 짐승>이다. 이 소설은 추리 소설가의 두 유형을 언급하면서 시작된다. 란포는 실제로 범죄형 추리 소설과 탐정형 추리 소설을 즐겨 썼다. 하지만 그가 쓴 수많은 작품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범죄형 추리 소설이다. 탐정이 나오지 않은 범죄형 소설도 썼는데, 이런 소설은 추리 소설이 아닌 환상 소설또는 공포 소설로 보기도 한다.

















에도가와 란포, 권일영 옮김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 1》 (검은숲, 2016)


에도가와 란포, 권일영 옮김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 2》 (검은숲, 2017)




란포는 일본에 추리 문학과 환상 문학을 본격적으로 확립하는 데 공헌했다. 일본 문학사에서 이 소설가가 서 있는 위치는 미국의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와 비슷하다. 포 역시 범죄형 추리 소설과 탐정형 추리 소설을 즐겨 썼다. 에도가와 란포는 에드거 앨런 포의 이름에서 따온 필명이다.























* 에드거 앨런 포, 에도가와 란포 해제, 이진우 옮김 《포와 란포》 (도서출판b, 2021)

※ <탐정 작가로서의 에드거 앨런 포수록


[절판] 에도가와 란포김은희 옮김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1본격 추리 1》 (도서출판 두드림, 2008)

※ <2전짜리 동전수록




탐정소설의 역사는 에드거 앨런 포부터 시작된다. 란포 역시 탐정 작가로서의 에드거 앨런 포라는 글에서 포의 업적을 언급한다. 란포는 포가 1841년에 발표한 <모르그 가의 살인>을 시작으로, <마리 로제의 불가사의한 사건>, <황금 벌레>, <네가 범인이다!>(Thou Art the Man), 1845년에 발표한 <도둑맞은 편지>까지를 탐정소설로 본다. 란포는 탐정소설에 대한 포의 관심이 단순히 일시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란포는 암호를 푸는 과정이 묘사된 포의 <황금 벌레>에 영감을 받아 단편 추리소설 <2전짜리 동전>을 썼다. 이 소설을 발표함으로써 란포는 정식으로 추리 소설가로 데뷔한다.

















에도가와 란포김소연 옮김 에도가와 란포》 (손안의 책, 2021)




세계문학 전문 독서 모임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 두 번째 선정 도서는 란포의 소설 선집인 에도가와 란포. 이 책에 총 다섯 편의 단편과 한 편의 중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에도가와 란포, 박용만 옮김 《파노라마 섬 기담》 (시간의물레, 2022)


에도가와 란포, 채숙향 옮김 《도플갱어의 섬》 (이상미디어, 2019)


에도가와 란포김단비 옮김 《파노라마 섬 기담 / 인간 의자》 (문학과지성사, 2018)




이 책에 유일하게 실린 중편은 <파노라마 섬 기담>이다. 란포의 대표작 중 하나로, 이미 번역된 적이 있는 작품이다도플갱어의 섬이라는 다른 제목의 번역본도 있다.
















[절판] 에도가와 란포김은희 옮김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 기괴 환상》 (도서출판 두드림, 2009)




에도가와 란포에 수록된 다섯 편의 단편 중에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작품은 <압화와 여행하는 남자>압회(押絵)’라고 하는 일본식 전통 공예의 원래 명칭은 오시에()’국내에 생소한 명칭이라서 번역된 작품 제목이 제각각 다르다《에도가와 란포 결정판 1》에 실린 작품 제목은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이다. 누름꽃과 여행하는 남자( 《란포 전단편집 3: 기괴 환상》)라는 제목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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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열린책들 세계문학 272
에드거 앨런 포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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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취향(趣向):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또는 그런 경향

(표준국어대사전)

 




두 달 전에 세상을 떠난 폴 오스터(Paul Auster)는 작가라는 직업을 이렇게 정의했다작가는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되는 것이다. 이 말은 오스터의 자전적 글 빵 굽는 타자기》(김석희 옮김, 열린책들, 2000년) 나온다. 글의 원제는 ‘Hand to mouth’하루 벌어 근근이 먹고 산다는 뜻이다빵 굽는 타자기》는 가난과 싸우면서 글을 썼던 작가의 젊은 시절 이야기다. 글쓰기를 좋아해서 전업 작가로 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하지만 글만 써서 생계를 이어가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생계비를 벌 수 있는 본업을 유지하면서 부업으로 글을 써야 한다. 오스터는 대부분 작가가 이중생활을 한다고 했다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는 작가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부업과 본업을 넘나드는 삶을 살아왔다.


빵 굽는 타자기의 부제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젊은 시절 오스터는 주제와 소재를 가리지 않고 소설, 연극 대본, 서평 등을 썼다그는 폴 벤저민(Paul Benjamin)이라는 필명으로 탐정소설을 썼다. 이 글은 오스터가 처음으로 쓴 소설이다원래 이 소설은 Hand to mouth에 수록된 작품이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한 권의 책으로 따로 나왔다제목은 스퀴즈 플레이(김석희 옮김열린책들, 2000).


닥치는 대로 글 쓰는 생계형 작가들을 주제로 큐레이션을 한다면 나는 이 작가를 반드시 포함할 것이다. ‘이 작가’ 또한 소설비평문을 썼다그가 남긴 수많은 글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시와 탐정소설이다이 작가는 세계 최초로 탐정소설을 쓴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포의 본업은 평론가다. 그는 미국 문단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평론을 썼다. 포는 전업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궁핍한 삶이 그의 재능을 막아섰다포병 부대에서 군 생활을 한 포는 형의 이름을 몰래 빌려서 시와 소설을 발표했다. 잡지에 투고한 글의 원고료는 쥐꼬리만 한 수준이었다포는 자신의 글을 마음껏 실을 수 있는 신문과 잡지를 발간하기 위해서 직접 언론사를 차렸다하지만 경영난에 빠지게 되면서 신문과 잡지가 폐간되었다.


포는 잡지에 게재한 단편소설들을 모은 소설집 <그로테스크와 아라베스크 이야기>(Tales of the Grotesque and Arabesque)을 발표한다그러나 불행하게도 포는 자신의 첫 소설집을 펴낸 출판사를 잘못 만났다출판사가 포에게 인세(royalty)를 주지 않은 것이다소설집에 수록된 작품 대부분은 당시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한 고딕소설(Gothic novel)이다고딕소설은 공포 소설의 시조에 해당하는 장르다


포는 소설가보다는 시인으로 인정받고 싶었다그래서 그의 단편소설에 시가 삽입되어 있다. <어셔 가의 붕괴>에 나오는 유령의 궁전(The Haunted Palace)은 포가 직접 쓴 시다. 포는 자신이 쓴 고딕소설과 탐정소설을 독자들을 즐겁게 해주는 오락거리로 여겼다포의 고딕소설은 유령 이야기를 좋아하는 대중의 취향에 맞았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그의 소설이 유행한 지 한참 지난 독일풍(Germanism)’을 지나치게 모방한다고 비판했다포는 소설집 서문에 비평가들의 냉담한 평가를 반박하기 위해 공포를 이렇게 정의했다.



공포는 독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영혼의 보편적인 문제이다.”

 

(폴 콜린스에드거 앨런 포삶이라는 열병, 81)

 


대중을 위한 글은 문학적으로 우수하지 않다는 이유로 저평가받기 쉽다. 그래서 공포 소설과 추리소설은 어린이나 대학생들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고전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다독자에게 교훈을 줄 수 있는 작품또는 교육에 유익한 작품은 고전이 될 수 있다는 좁은 편견은 편 가르기 독서를 조장한다. ‘편 가르기 독서에 익숙한 독자들은 오랜 세월 인정받은 고전을 아주 좋아한다고전에 분류되지 못한 작품이나 책특히 장르문학이라는 이름이 따로 붙여진 추리소설과 공포 소설, SF, 판타지 소설 등을 즐겨 읽는 독자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전이 아닌 책을 읽는 일 자체를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편 가르기 독서의 문제점은 독자 본인이 낯설어하는 장르나 주제의 책에 친해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과 완전히 다른 독자의 독서 취향을 무시한다.


엄격하게 작품을 비평하기로 악명 높은 포는 대중 소설을 관대하게 평가했다오히려 그는 대중 소설을 싸구려 오락거리로 바라보는 비평가들의 고상한 도덕주의와 실속 있는 독서를 지향하는 교양주의를 비판한다.



터무니없음이 고조되면 엽기를 만들고,

두려움의 빛깔이 짙어지면 공포가 됩니다.

재치를 과장하면 우스꽝스러워지고,

독특함이 기괴함과 신비스러움을 낳습니다.

당신은 아마 이 모든 것들을 나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나는 꼭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말한 것들이 나쁜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면 먼저

사람들이 읽는 책이 되어야 합니다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들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열렬히 원하는 것입니다.


(폴 콜린스에드거 앨런 포삶이라는 열병, 53)



포는 비평가들이 호평하는 문학과 독자들이 좋아하는 문학은 항상 겹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포의 문학론에 독자는 주인공이다주인공이 된 독자는 남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취향과 관심사에 맞는 책을 고른다만약 포가 지금 살아서 추리소설과 공포 소설을 가볍게 여기는 독자나 비평가를 만난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취향입니다. 취향은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것입니다. 존중해주시죠.”






<cyrus의 주석>



* 45





그레세의 베르베르와 샤르트르 수도원』 [주]

 

 

[] 장 바티스트 그레세(Jean Baptiste Gresset)는 프랑스의 시인이자 극작가다. 주요 대표작은 <어셔 가의 붕괴>에서 제목으로 언급된 작품 두 편이다. 자크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의 오페라로 만들어진 <베르베르>(Vert-Vert ou les voyages du perroquet de la visitation de Nevers)<샤르트뢰즈>(La Chartreuse). 샤르트뢰즈는 프랑스령 알프스 산악 지대에 있는 수도원이다. 샤르트르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Chartres)과 다른 건물이다샤르트뢰즈와 샤르트르는 철자가 다른 명칭이다. 샤르트르 수도원은 오역이다.





* 316







티에스트 티에스테스(Thyes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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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7-01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그런 성향이 없진 않지. 딴뜻은 없고 단순히 고전 안 읽은 게 넘 많아서.
근데 너 땜에 포가 좋아지려고 한다. 포의 단편선을 읽는다면 이 책으로 해야겠군! ㅋ
요즘 나도 대중소설 읽고 있는데 잘 썼더군. 옛날엔 왜 그렇게 폄하했는지 모르겠어.
대중소설에 민감한 부류는 영화나 드라마 제작자들이지.
대중문화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 그들이 그러는데 독자는 팔짱끼고 보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어. 같이 관심 가져주고 잘하면 박수쳐 주고 그래야지.

cyrus 2024-07-02 22:23   좋아요 0 | URL
제가 추천하고 싶은 포 단편선은 열린책들, 민음사, 그리고 <더 레이븐: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림자>에요. ^^

공쟝쟝 2024-07-01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포에 동의해요! 독자가 주인공이죠. 그리고 읽는 사람은 압니다. 느낀다고 생각해요.

cyrus 2024-07-02 22:36   좋아요 0 | URL
요즘 출판사들은 신간을 내면 서평단을 모집하더군요. 독자들을 끌어들여서 신간을 홍보하려는 출판사의 전략이 판매 부수를 높이는 효과가 있겠지만, 책을 사서 책을 평가하는 독자들은 많이 주목받고 있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사서 읽은 책의 리뷰를 보면 출판사 서평단 활동을 한 독자들의 리뷰 수가 많아요. 출판사가 책 홍보를 위해 독자들을 선택하고 있으니 이런 상황이 저는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어요.

서니데이 2024-07-01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석희님 번역이 좋은 책이 많은 편인데, 이 책에는 이런 부분이 있었군요.
잘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는데 찾으신 걸 보면 눈이 좋으십니다.
단편선으로 구성되어 있어 여름밤에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시원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cyrus 2024-07-02 22:37   좋아요 1 | URL
예전에 여러 번 읽은 이야기라서 결말은 다 알지만, 오랜만에 읽으니까 좋네요. ^^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윌북 클래식 호러 컬렉션
에드거 앨런 포 지음, 황소연 옮김 / 윌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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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평점


2.5점  ★★☆  B-





오귀스트 뒤팽(Auguste Dupin)이 나오는 탐정소설을 발표 연도순으로 열거하면 <모르그 가의 살인>(1841), <마리 로제의 불가사의한 사건>(1845), <도둑맞은 편지>(1845). 탐정이 나오지 않는 추리소설<황금 벌레>(1843)<네가 범인이다!>(Thou Art the Man, 1844)가 있. <네가 범인이다!>추리소설로 분류하기 애매모호한 작품이라서 대부분 연구자와 번역자는 이를 제외한 네 편을 포의 추리소설로 소개한다. 일본의 소설가 에도가와 란포(江戸川 乱歩)는 1949년에 발표한 탐정 작가로서의 에드거 앨런 포라는 글에 <네가 범인이다!>가 추리소설이라고 주장한다. [주1]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윌북 클래식 호러 컬렉션’ 3부작 중 하나다.공포를 주제로 한 시리즈에 맞춘 단편 선집이라서 탐정소설과 추리소설이 모두 빠져 있다. 환상적이며 불가사의한 현상을 소재로 한 고딕 소설(Gothic novel)만 수록된 선집이다. 출판사가 호러’와 관련된 세계 문학 시리즈를 기획하기 위해 포 문학의 노른자’인 추리소설을 제외한 선집을 만든거라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고 해설한 글이 없다는 것이 책의 문제점이다포가 어느 시대에 살았으며 그가 글로 표현하고 싶은 문학이 어떤지 알지 못한 채 그의 소설을 읽으면 포 문학에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포를 모르는 독자가 고딕 소설을 읽으면 시시하게 느낄 것이다. 이러면 포의 소설을 왜 읽어야 하는지, 그리고 독자와 작가들이 포의 소설을 호평하는 반응을 이해하지 못한다독자들이 포의 소설을 시시하고 고리타분한 글로 보지 않게 하려면 포 소설의 문학적 가치를 알려줘야 한다. 그것이 해설 글의 역할이며 해설 글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이유다.


포의 소설에 국내 독자들이 잘 모를 수 있는 인명이나 책 제목이 나온다. 포는 작가가 되기 전에 다양한 책을 많이 읽었다. 그래서 포의 소설에 고대 작가들이 쓴 책 제목이나 문장이 제법 많이 나온다. 포가 언급한 고대 작가 중에 유명한 사람도 있고, 지금은 완전히 잊힌 사람들도 있다. 작품 줄거리와 관련 없는 불필요한 묘사라서 슬쩍 지나가듯이 읽으면 된다. 그래도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표현을 자세히 알고 싶어해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나 같은 독자들도 있다. 이런 독자들을 위해 번역자는 주석을 달아야 한다.










번역자의 주석에 잘못된 내용이 있다25사티로스(Satyr)’가 나온다. ‘사티로스가 언급된 포의 소설은 <어셔가의 몰락>이다. 번역자는 사티로스를 디오니소스의 자손으로 뿔이 달린 반인반수라고 설명했다사티로스는 풍요와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Dionysos)를 따르는 정령이다. 사티로스의 혈통을 묘사한 고대 기록들이 제각각 달라서 명확하지 않지만, 대부분 신화학자는 헤시오도스(Hesiodos)의 기록을 주로 참고한다.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사티로스의 아버지는 고대 토속 신 헤카테로스(Hecaterus)이며, 어머니는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있는 아르고스(Argos)의 왕 포로네우스(Phoroneus)의 딸이다. 사티로스의 아버지를 디오니소스라고 묘사한 고대 문헌이 있는지 확인해 봤는데, 아직 찾지 못했다.


오탈자도 눈에 띈다.



* 31





쾌할한 쾌활한


 


* 278





실중팔구 십중팔구

 



* 280





아바리안나이트 아라비안나이트

 



* 383




 

포로투갈 포르투갈



포에 관한 흥미로운 여담. 포는 비평가로 활동했는데, 같은 출신지 작가들을 좋게 띄워주는 주례사 비평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작가와 편집자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오자도 무조건 언급했다. 포는 오자를 지적하는 일을 새로운 비평문학의 지평을 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2]





[1] 에도가와 란포, 이진우 옮김, 탐정 작가로서의 에드거 앨런 포, 포와 란포, 도서출판b, 2021년, 7~8쪽.


[주2] 폴 콜린스, 정찬형 옮김, 에드거 앨런 포, 삶이라는 열병》, 역사비평사, 2020,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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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7-01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그래서 이 책에 대한 평점이 짠거야? 근데 진짜 오자 많으면 책 읽을 맛 안 나지. 포가 그런 말을 하니 나도 오자에 대해선 관대해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든다. ㅋ

cyrus 2024-07-01 19:58   좋아요 0 | URL
번역만 잘된 책이라고 해서 무조건 평점을 좋게 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번역자는 독자에게 작품이 어떤 점에서 읽을 가치가 있는지,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소개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해요. 그만큼 번역자는 번역한 작품과 작가를 잘 알아야 하죠. 번역자는 단순히 문장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번역된 작품이 어떤 매력이 있는지 독자들에게 알려줘야 해요. 그래서 이 책에 평점을 낮게 줬어요. ^^
 










2024년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를 위한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는 카프카 서거 100주년, 체호프 서거 120주년이다. 카프카가 쓴 글뿐만 아니라 카프카의 삶과 문학을 재조명한 책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카프카는 죽기 전에 자신이 쓴 모든 글이 불 속으로 들어가서 완전히 사라지길 바랐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친구 막스 브로트(Max Brod)에게 원고를 모조리 태워버리라고 유언을 남겼지만, 브로트는 약속을 어겼다. 





















* 프란츠 카프카, 이주동 옮김 변신: 단편 전집(솔출판사, 2017)


* 프란츠 카프카, 홍성광 옮김 변신(열린책들, 2009)


* 프란츠 카프카, 전영애 옮김 변신. 시골 의사(민음사, 1998)




체코 프라하 출신의 카프카는 생전에 독일어로 글을 썼다. 이제 카프카의 글은 프라하를 넘어서서 전 세계 언어의 옷을 입은 채 변신하여 수많은 독자를 만나고 있다.


















* 안톤 체호프, 오종우 옮김 아내. 세 자매(열린책들, 2024)


* 안톤 체호프, 박현섭 옮김 상자 속의 사나이(문학동네, 2024)



 

카프카에 비하면 체호프에 대한 출판계와 독자들의 관심이 상당히 저조하다. 올해 절반에 들어선 지금까지 출간된 체호프의 책은 세 권이다. 체호프가 쓴 장편 범죄 소설 사냥이 끝나고(최호정 옮김, 키멜리움), 단편소설과 희곡 두 편을 엮은 아내 · 세 자매, 단편 선집 상자 속의 사나이


상자 속의 사나이표제작을 포함한 총 열세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귀염둥이>는 체호프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귀염둥이>귀여운 여인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상자 속의 사나이>, <>, <로트실트의 바이올린>, <구스베리>(산딸기), <사랑에 관하여>사랑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체호프 단편 선집을 통해서 이미 소개된 작품이다.

 

올해 하반기에 체호프의 글이나 관련 책들이 나올 수 있다.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체호프의 소설들이 조용하게 주목받고 있는 반면에 희곡들은 꾸준히 무대 위에 오르고 있다

















* 안톤 체호프, 오종우 옮김 벚꽃 동산(열린책들, 2009)

 

* 안톤 체호프, 안지영 옮김 사랑에 관하여: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과 대표 단편들(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 안톤 체호프, 강명수 옮김 갈매기(지만지드라마, 2009)

 




2014년에 문을 연 안똔 체홉 극장(ACDC)’은 매년 체호프의 장막극과 단막극, 그리고 무대극으로 각색한 소설을 공연한다. 사이먼 스톤(Simon Stone)이 연출한 <벚꽃 동산> 전도연, 손석구, 최서희 등이 출연한다. 올해에 내가 극장에서 본 체호프 작품은 <진창><갈매기>.


<진창>은 매혹적인 여자 한 사람에게 휘둘리는 두 남자의 욕망과 허세가 많이 낀 남성성을 예리하게 묘사한 단편소설이다. 이 작품을 연극으로 만든 극단 이름은 원작 제목과 비슷한 창작집단 진창이다. 소극장과 여러 극단이 모여 있는 대구 대명동 대명공연거리에 활동하고 있다.

















* 안톤 체호프, 김규종 옮김 체호프 희곡 전집(시공사, 2010)

 

* 안톤 체호프, 이주영 옮김 체호프 희곡 전집 1: 단막극(연극과인간, 2002)



 

<진창>에 이어 두 번째로 선보이는 창작집단 진창’의 체호프 작품은 <청혼 소동>이다. 이번 달에 열리는 대구 소극장 페스티벌출품작이다. 원래 제목은 청혼이며 7장으로 이루어진 단막극이다.







오늘 저녁 5시에 하는 <청혼 소동> 마지막 공연을 예매했다. 이 시간에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확인했다. 연극을 보는 주말만 되면 왜 비가 내리는지. 주말의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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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6-15 10: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서 요즘 두 양반의 책이 그래 많이 나오는 거군. 오래 전 카프카의 일기 읽었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군. ㅠ
연극은 재미있겠다. 그래도 안 더운게 어디니?
손석구 전도연 연기 보고 싶은데 요원하다. ㅠ
근데 너 오늘 연극 본다고 은근 대놓고 자랑하는 것 같다. 그래. 재밌게 봐라. 이 젊은 청춘아! ㅎㅎ

cyrus 2024-06-16 09:52   좋아요 2 | URL
<청혼>이 코미디라서 웃으면서 봤어요. 코믹 연극도 재미있어요. 오늘도 연극 한 편 보러 갑니다.. ㅎㅎㅎ 다행히 연극 보는 시간에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았어요. ^^

페넬로페 2024-06-15 10: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 오는 날의 연극 관람이 더 운치가 있을 것 같은데요.
연극 관람 후 그 느낌으로 비오는 날 막걸리 한 잔도 좋을 것 같고요.
카프카는 워낙 유명하고 그의 작품도 많이 알려져 있어 그의 작품을 많이 읽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아직 안 읽은 작품도 많아요 ㅎㅎ

cyrus 2024-06-16 09:53   좋아요 2 | URL
연극 다 보고 난 후에 집 근처 돼지국밥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어요. 막걸리도 마셨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