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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지구는 대만원 1 - SciFan 제43권 ㅣ SciFan 43
로버트 블로흐 / 위즈덤커넥트 / 2017년 1월
평점 :
우리나라에서 ‘신인류’라는 말이 유행한 것은 1990년대 초반일 것이다. 1993년에 나온 015B 4집의 타이틀곡 <신인류의 사랑>이 없었으면 평소에 ‘신인류’라는 말을 사용하는 상황이 없을 것이다. 노래 제목은 거창하게 ‘신인류의 사랑’이라고 했지만, 여기서 말하는 ‘신인류’는 ‘신세대’를 의미한다. 시간이 흘러 신세대는 나이 많은 ‘쉰 세대’, 즉 구세대가 된다. 그러나 신인류가 단순히 구습을 벗어나 기성세대와는 다르게 사고하고 행동할 줄 아는 젊은 세대를 의미하지 않는다. 일탈과 파격으로 구세대에게 충격과 공포를 준 신세대는 인류사가 시작된 이래 그 어느 시대에도 늘 있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인류가 등장하려면 인간의 생물학적 측면에서 ‘진화적 변화’가 진행되어야 한다.
진화를 거쳐서 등장하는 신인류라는 소재는 그 성격상 SF 작가들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좋은 영양분이다. 신인류가 사는 SF소설의 미래 세계는 유토피아(utopia)보다는 디스토피아(dystopia)가 많은 편이다. 미래 세계의 모습을 비관적이거나 암울하게 묘사한 작품이 많다. ‘엘로이’와 ‘몰록’이라는 미래의 신인류가 나오는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의 《타임머신》(The Time Machine, 1895)은 디스토피아 소설의 고전으로 꼽힌다. 그런가 하면 유토피아의 신인류를 그린 것인지 아니면 디스토피아의 신인류를 그린 건지 분류하기 어려운 로버트 블록(Robert Bloch, ‘로버트 블로흐’로 표기하는 사람도 있다)의 《지구는 대만원》(This Crowded Earth, 1958)이 있다. 로버트 블록은 영화가 더 유명한 《사이코》(Psycho, 1959)의 원작자이다.
폭발적인 인구 증가로 살기가 어려운 미래의 지구. 푸른 별에 거주하는 인구의 수가 1,000억 명에 이른다. 좁아 터지는 지구의 모습이 상상이 안 된다면 우리나라 전 지역의 모든 지하철의 통근 길을 ‘지옥철’로 상상해보시라. 해리 콜린스는 인구 초과 밀집 도시에 생활하는 삶을 견디지 못해 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고 레핑웰 박사의 주도로 설립된 심리 치료 센터에 입원한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이 정부의 실험 대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심리 치료 센터의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지구는 대만원》은 여타 SF소설들과는 다르게 기묘한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많은 SF 작가들은 과학기술에 맹신하는 인류의 미래가 어두울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지구는 대만원》은 그 클리셰(Cliché)를 살짝 거부한다. 이 소설에 나오는 신인류는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 덕분에 수명을 멈추게 하는 장애물이 없는 장밋빛 삶을 살고 있다. 그야말로 질병이 없고, 전쟁도 일어나지 않은 완전 평화의 시대이다. 하지만 전 인류의 무한한 번식과 수명 연장은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이어지고, 완벽해 보이는 평화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내부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는 일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구 조절 정책을 내놓는다. 여성은 임신할 때마다 호르몬제 주사를 맞아야 한다. 호르몬제 주사를 맞은 아이는 다 성장해도 난쟁이로 살아야 한다. 난쟁이들의 수명이 짧기 때문에 인구가 번식해도 인구 증가 문제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 정책이 실현되면서 난쟁이의 수가 정상인의 수를 넘어선다. 호르몬 주사를 거부한 키가 큰 정상인은 정부가 강요하는 진화를 거스르는 불순 세력으로 낙인찍힌다.
《지구는 대만원》은 단순히 인류의 어두운 미래를 그리지 않는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신인류의 복잡다단한 감정을 섬뜩할 만큼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 소설은 해리 콜린스가 자살을 시도하는 시점인 ‘현재’를 시작으로 65년 후의 미래까지 보여준다. 65년이라는 짧으면서도 긴 세월 동안 해리 콜린스를 비롯한 신인류는 정부의 통제에 의해 진행되는 진화의 흐름 앞에서 전전긍긍한다. 이 소설에 실려 있는 12개의 이야기는 저마다 사연이 있는 인물들(윈드롭 대통령, 미니 슐츠, 마크 카벤디시, 에릭 도노반, 제시 프링글, 리틀존 등)의 등장과 가볍지 않은 문제의식(정부와 과학의 은밀한 결탁,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부의 통제, 생명 윤리, 인종 차별 등)을 통해 인류의 미래를 다양한 각도에서 그려내고 있다.
이 소설은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의 중간 경계에 서 있다. 전염병, 기아, 전쟁에 대한 근심이 사라진 지구는 유토피아에 더 가깝지만, 인구 증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윤리적인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인류가 사는 지구는 디스토피아다. 이상적인 세계이건, 아니면 암울한 세계이건 간에 과학기술 자체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크게 영향을 주즌 것이 아니다. 과학기술의 혜택을 누려왔던 우리가 인류 문제를 과학 기술에 책임 전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잘 살고 싶은 인간의 본능적 욕망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인간의 욕망을 한결같다. 삶의 욕망을 멈추지 못한 인류는 장밋빛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선택을 한다. 그런 만큼 《지구는 대만원》에 묘사된 인류의 미래는 구체성과 현실성을 지닌다. 사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대상은 급속도로 변화하는 사회 환경이 아니라 어느 틈엔가 달라져버린 우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의 욕망이 숨 가쁘게 우리의 세상을 변모시키고 있는 것이다. 변화에 잘 적응하는 누구는 미래가 유토피아로 보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누군가의 미래는 디스토피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