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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세계사 -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엠마 메리어트 지음, 윤덕노 옮김 / 탐나는책 / 2024년 7월
평점 :
평점
3점 ★★★ B
역사는 원래 색이 없다. 역사가와 정치가는 역사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그들은 역사에 손을 갖다 댄다. 시간이 지나면서 역사에 얼룩이 생긴다. 사람들의 손길이 닿은 역사는 얼룩덜룩 더럽혀져 있다. 지저분한 역사는 ‘정치색’을 띠고 있다. 짙은 정치색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정치색은 사실을 지워버린다.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낙서 쟁이다. 그들은 역사가 된 사람들의 얼굴에 끼적끼적 낙서한다. ‘안중근 의사는 테러리스트다.’, ‘5·18 민주화운동은 북한 특수 부대가 주도한 폭동이다.’,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 덕분에 우리가 잘 살 수 있었다. 두 대통령을 독재자로 헐뜯는 사람들은 전부 빨갱이다!’ 낙서로 뒤덮인 역사는 누렇게 녹이 슬어 있다. 녹은 사실을 갉아먹는다. 하지만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은 낙서 내용이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낙서 쟁이들은 자신이야말로 사실을 올바르게 기록하는 역사가라고 믿는다. 그들은 항상 오른손으로만 펜을 쥐면서 역사에 낙서한다. 오른손에서 나온 낙서는 역사에 거짓과 편견을 덧칠하는 오록(誤錄)이다. 낙서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오른손에 있던 펜은 성난 칼이 된다. 날카로운 칼날로 변한 펜은 낙서를 열심히 지우는 역사가들을 공격한다. 낙서 쟁이는 자신들을 지지하는 정치인을 좋아한다. 낙서는 정치색과 무척 잘 어울린다.
역사는 연약하다. 그래서 역사 속에 있는 사실은 오랫동안 살아남기 힘들다. 시간이 지날수록 역사는 물렁물렁해지고, 조그만 틈이 생긴다. 사실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면 역사적 진실이 담긴 목소리는 다시 들을 수 없다. 역사의 증언이 기록으로 남아 있으면 다행이지만, 기록 또한 역사와 마찬가지로 항상 완벽한 상태로 유지되지 않는다. 의미 있는 사건은 수많은 역사가와 호사가를 만나면서 과장되고, 각색되고, 조작된다. ‘진실’로 꾸며진 사건은 ‘역사’가 된다. 우리가 배운 역사 대부분은 ‘만들어진 것’이다.
《만들어진 세계사》는 정치색과 편견, 오해와 거짓으로 물들인 역사를 모아놓은 책이다. 역사 속 정치인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선정을 베푼 위대한 정치인 대 최악의 독재자. 사람들은 역사책에서 훌륭한 정치인을 만나면 그 사람의 좋은 점만 보려고 한다. 반면에 미운털이 제대로 박힌 독재자를 만나면 눈에 거슬리는 미운털만 보인다.
독일을 통일하여 강력한 제국으로 건설한 비스마르크(Bismarck)의 별명은 ‘철혈 재상’이다. ‘철’과 ‘혈(血, 피)’은 비스마르크가 연설 중에 언급한 단어다. 철은 무기, 피는 군대를 뜻한다. 이러한 별명으로 인해 비스마르크는 무자비한 전쟁광으로 비난받는다. 하지만 실제로 비스마르크는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적대국인 프랑스와 외교 협상을 진행했다. 그리하여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도 프랑스를 고립시키는 데 성공했다. 히틀러(Hitler)의 나치 정권은 비스마르크가 세운 독일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어 했다. 히틀러는 자신이 제2의 비스마르크라고 선동했다. 한술 더 떠서 비스마르크가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분명히 자신의 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치 정권은 비스마르크를 왜곡했다. 비스마르크는 반유대주의와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경계한 정치인이다.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는 방대하고 지루한 역사를 최대한 줄여서 재미있게 보여준다. 그러나 역사를 드라마로 만들어지면 사실과 다른 이야기가 덧붙여지며 이 과정에서 진실이 축소되거나 왜곡될 수 있다.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한 서부극에 총을 든 카우보이가 항상 등장한다. 서부극에 나오는 악당은 은행을 털거나 이주민을 습격하는 강도단이거나 백인을 잔혹하게 죽이는 호전적인 아메리카 원주민이다. 서부극의 서부 개척 시대는 재미있게 ‘만들어진 역사’다. 총을 소유한 카우보이는 많지 않았다. 권총이 비쌌기 때문이다. 백인이 주인공인 서부극에서는 아메리카 원주민이 악역을 맡는다. 서부극은 미지의 땅을 개척한 백인을 찬양한다. 서부 시대의 백인들만 주목하는 역사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비참한 처지를 은폐한다. 백인들은 도시와 철도를 만들기 위해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쫓아냈으며 그들의 삶의 터전을 짓밟았다.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는 역사를 냉소적으로 정의한다. 그의 말은 이 책의 시작을 알리는 제사(題詞)로 나온다.
역사란 당시 그곳에 없었던 사람들이 말하는
일어나지 않았던 사건들에 대한 거짓말 모음이다.
역사가 거대한 모래밭이라면 진실은 진주다. 귀중한 진실을 찾는 일은 중요하다. 문제는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시야를 넓혀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시 좁아진다. 여기에 진실을 차단하는 색안경까지 끼게 되면 역사의 얼룩진 부분만 도드라져 보인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역사는 연약하고, 쉽게 변질되고, 거짓이 잘 섞인다. 진실 순도 100%인 완벽한 역사는 없다. 흠집이 생기기 쉬운 역사를 알아야 하는 우리 또한 완벽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의문과 검토를 멈춘 채 역사를 그대로 지켜만 볼 수 없다. 역사를 방치하면 역사를 왜곡하는 사람들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우리가 보는 역사는 요지경 속에 있다. 요지경 속 역사는 상당히 복잡하다.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진실, 좀처럼 인정하기 힘든 불편한 진실. 두 개의 진실은 떼어내기 힘들 정도로 포개져 있다. 우리는 역사의 양면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복잡한 역사를 단순하게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역사 전체가 아닌 반쪽짜리 역사만 골라서 본다. 보기 좋은 진실만 무조건 찬양하는 역사관은 반쪽 역사를 미화하는 일이다. 유독 불편한 진실만 건드려서 무조건 비난하는 역사관은 반쪽 역사를 무시하는 일이다. 《만들어진 역사》의 원래 제목은 ‘Bad History’다. 역사는 나쁘지 않다. 역사는 억울하다. 진짜로 나쁜 건 역사에 편견과 거짓이라는 불순물을 섞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색을 칠하여 제 입맛에 맞는 역사를 만들려는 사람들이다. 역사책인 척하는 그들의 책은 거짓말 모음집이다.
<cyrus의 주석과 정오표>
《만들어진 세계사》는 2013년에 《나쁜 세계사: 제멋대로 조작된 역사의 숨겨진 진실》(매일경제신문사)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 두 책의 역자는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역자는 《나쁜 세계사》에 있는 오탈자와 오역을 고치지 않은 채 《만들어진 세계사》를 펴냈다.
(21쪽) 이안 몰타이머, (22쪽) 이안 몰타이어
→ 이언 모티머(Ian Mortimer)
* 24쪽
종교 개혁과 → 종교 개혁가
* 86쪽
철 가면의 전설은 수많은 소설의 소재가 됐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알렉산더 듀마가 1850년에 발표한 대하소설 『삼총사』에 나오는 내용[주1]이다.
[원문]
The legend of the masked prisoner has spawned countless novels and films, most famously the third instalment of Alexandre Dumas’s 1850 saga The Three Musketeers.
[주1] 알렉산더 듀마 →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
《삼총사》는 3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3부작의 원제는 <달타냥 로맨스>(d’Artagnan Romances)다. 1부는 국내에 많이 알려진 <삼총사>(Les Trois Mousquetaires)다. 2부 <20년 후>(Vingt ans après), 3부 <브라즐론 자작: 10년 후>(Le Vicomte de Bragelonne Dix ans plus tard)는 번역되지 않았다.
뒤마가 쓴 ‘철 가면’은 1부가 아닌 3부 <브라즐론 자작>에 있는 내용이다. 3부 분량이 많아서 영문판은 3부작으로 출간되었는데, <브라즐론 자작> 3부가 바로 ‘철 가면’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 88쪽
죄수가 철 가면을 썼다고 주장한 최초의 인물은 철학자이자 작가였던 볼테르였다. 그는 1770년과 1772년 사이에 발행된 『백과전서』[주2]에서 죄수는 턱 아랫부분이 용수철로 고정된 철 가면을 쓰고 있었다고 밝혔다.
[원문]
It was the writer and philosopher Voltaire who first claimed that the prisoner wore an iron mask ― ‘a movable, hinged lower jaw held in place by springs ― in his Questions sur l’Encyclopédie, published some time between 1770 and 1772.
[주2] 《백과전서》(Encyclopédie)는 디드로(Denis Diderot), 달랑베르(d’Alembert), 볼테르(Voltaire),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등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편찬한 책이다. 1권은 1751년에 출간되었고, 1772년에 도판이 포함된 총 30권의 백과사전이 완성되었다. 볼테르가 철 가면을 언급한 저서는 《백과전서》가 아니다. 정확한 제목은 <백과사전의 질문>(Questions sur l’Encyclopédie)이다.
* 126쪽
1959년 마오쩌둥이 이렇게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민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주고 있다면 방법이 없다. 전체 인민의 절반이 죽으면 나머지 절반은 배고픔을 면할 수 있다.”
굶어주고 → 굶어죽고
* 141쪽
정리하자면 최초의 증기기관은 제임스 와트의 발명품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최초의 증기기관은 고대 그리스인이 만든 수증기를 이용하는 원시 장비[주3]라고도 할 수 있다.
[주3] 최초의 증기기관을 만든 사람은 알렉산드리아의 헤론(Hero of Alexandria)이다. 알렉산드리아는 헤론이 태어난 곳이다.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에 있으나 로마 제국에 속한 영토였다. 알렉산드리아에 거주한 로마인들은 그리스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자신들을 그리스인이라고 여겼다.
* 146쪽
로데지아 → 로디지아(Rhodesia)
* 159쪽
포리피린 증상 → 포르피린 증상(porphyria)
* 177쪽
갈릴레오가 1613년에 출판했던 『태양 흑점에 관한 서한』은 교황 바오로 3세에게 헌정된 책[주4]이었다.
[주4] 교황 바오로 3세(Paulus III)는 1468년에 태어나서 1549년에 사망했다(재위 기간: 1534~1549년). 『태양 흑점에 관한 서한』(Letters on Sunspots)이 발표된 시기에 활동한 교황은 바오로 5세(Paulus V, 1550~1621, 재위 기간: 1605~1621)다.
* 181쪽
매리를 여왕으로 인정했다. → 메리를 여왕으로 인정했다.
* 200쪽
패탱 원수 → 페탱(Pétain) 원수
구판에는 ‘페탕’으로 표기되어 있다.
* 203쪽
프랑스와 미테랑 → 프랑수아 미테랑(Francois Mitterr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