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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에 제가 쓴 모더니스트 마네》(환대의식탁, 2022) 서평에 대한 저자 홍일립 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 <인상주의자로 박제가 된 모더니스트를 아시오?> 2022104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13985837

 

* 홍일립 <cyrus님께 답변해드립니다> 20221011

https://blog.aladin.co.kr/713543113/14002326




답문을 뒤늦게 써서 이제야 공개해서 죄송합니다. 서평 한 편 쓸 수 없을 정도로 연말에 개인적으로 몹시 바빴습니다. 그렇지만 저자님이 쓴 글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떤 오류를 범했는지 파악하고 검토하기 위해서 저자님이 지적한 부분을 꼼꼼하게 읽었습니다. 저자님의 견해를 인정합니다.


모더니스트 마네서평은 명백히 오류가 가득한 글입니다. 보통 잘못 쓴 글은 삭제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냥 삭제하지 않습니다. 글을 지우기만 하면 잘못 쓴 행위에 비롯한 과실은 자연스럽게 묻히기 쉽습니다. 저는 그런 상황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실수를 제대로 인정하고, 저자에게 진정성 있게 사과하려면 글 속에 있는 오류를 삭제하기보다는 그 내용에 취소 선을 표시해서 제가 어떤 오류를 범했는지 남겨야(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못 쓴 글을 지우기만 한다면 제대로 반성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저의 이러한 태도가 낯설게 느껴진다면 예전에 제가 쓴 글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이 글에 글쓰기를 하면서 생긴 실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할지 구체적으로 밝혔으며 반성문을 써야 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저의 신조와 철칙이 담긴 글입니다.

 


* <다시 글을 쓰는 용기> 2019419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10807968

 

 

그리고 모더니스트 마네서평에 있는 별점을 삭제했습니다.

 

사실 서평의 오류보다 제가 더 크게 잘못한 점은 글 속에 비속어를 연상케 하는 단어를 썼다는 점입니다. 제가 너무 오만했고 경솔했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앞으로 타인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표현을 쓰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저의 부족한 서평을 꼼꼼하게 읽어주시고, 상세하게 저의 오류를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자님의 글 덕분에 서평 쓰는 방식에 대해 반성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문헌을 좀 더 철저하게 검토하고 확인해 볼 것. 공인이 쓴 글이라도 그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회의할 것. 책의 질이 낮다고 해서 그 책을 쓴 저자를 업신여기거나 조롱하거나 깔보지 말 것. 내 의견은 틀릴 수 있으며 오류로 판명되면 실수를 인정해야 하고, 바로 고칠 것. 저자님의 글은 나태해진 저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해주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올해도 건강하시고 건필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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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01-07 17: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cyrus님, 반가워요
잘 지내시죠!
책을 읽으며 저 역시 항상 오독을 하는 것 같아서 리뷰를 쓰면서도 걱정이 됩니다^^

cyrus 2023-01-08 12:57   좋아요 1 | URL
반갑습니다. 페넬로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잘못 읽으면 실수를 인정하고 고치면 되니까요. 틀렸는데도 맞다면서 고집을 부리거나 다른 사람의 견해를 무조건 틀렸다고 비난하는 게 오독하는 행위보다 제일 큰 문제죠. ^^

차트랑 2023-01-07 1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우 유익한 리뷰였고 좋은 사과문입니다.

cyrus 2023-01-09 12:49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차트랑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제가 쓴 <모더니스트 마네> 서평은 지금까지 제가 쓴 글 중에 최악의 글이라고 생각해요. 글을 쓰기 위한 과정과 결과 모두 좋지 못했으니까요. 그래도 제가 몰랐거나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을 알게 돼서 저자님의 글이 저에게 유익한 글이었어요. ^^

solitman 2023-01-09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cyrus님! 홍일립입니다. 새해에도 건강함과 즐거움이 가득한 날들이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 님과 같은 훌륭한 독자를 만날 수 있음을 큰 기쁨으로 받아들입니다. 님의 지적을 통해 저자인 저 역시 여러 미흡함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2023-01-09 2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셜록 홈즈 다시 읽기의 저자 안병억 교수님이 내가 쓴 서평을 읽고 댓글로 의견을 남겨주셨다. 저자의 의견을 수용하여 내 서평을 검토하고, 서평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싶어서 이 글을 썼다

 















* 안병억 셜록 홈즈 다시 읽기: 홈즈의 비밀을 푸는 12가지 키워드(열대림, 2022)




이 글에 서평을 읽은 저자의 반박 의견을 재반박한 내용도 있다저자의 의견이 틀려서 재반박한 것은 아니다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믿는 진리의 불확실성을 인식하고다른 관점으로도 생각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 셜록 홈즈 다시 읽기231

 

 영국 소설가 브램 스토커1897년에 드라큘라를 출간했다.



[231쪽에 인용한 내용 비판] 브램 스토커(Bram Stoker)영국에서 활동한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저자의 반론] 아일랜드는 1921년에 독립하기 전까지 영국(UK, United Kingdom)에 속했기 때문에 스토커의 국적은 영국이다.


[재반론] 1921년 영국-아일랜드조약이 체결되면서 아일랜드 자유국(Irish Free State)이 출범했다. 하지만 완전한 독립 상태가 아니었고, 1937년부터 아일랜드 자유국은 헌법을 수정하면서 영국으로부터 완전 독립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국명은 아일랜드(Ireland)에이레(Éire, 아일랜드어)로 변경되었고, 영국 식민지 국가들로 구성된 영 연방을 탈퇴한다고 선포했다. 1949년에 영국은 아일랜드의 영 연방 탈퇴를 승인했고, 아일랜드의 국명은 아일랜드 공화국(Republic of Ireland)으로 변경되었다.


영국령 아일랜드에서 태어나고 활동한 인물의 국적은 ‘아일랜드’. 위키피디아 영문판에는 스토커의 직업이 ‘Irish author’로 기재되어 있다저자의 논리대로라면 윌리엄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국적도 영국이다요즘에 이 두 작가를 영국 출신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던가? 예이츠는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참여한 시인이다. 그런 그가 영국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국적을 영국이라고 주장하는 건 어폐가 있다.
















* [절판] 피터 애크로이드 엘리엇: 영혼의 순례자(책세상, 1999)




2019년에 영국 소설가 피터 애크로이드(Peter Aykroyd)가 쓴 평전 엘리엇: 영혼의 순례자를 읽다가 다음과 같은 문장을 본 적이 있다.



엘리엇영혼의 순례자》 431

 

 엘리엇은 영국인으로는 키플링, 타고르, 예이츠, 와 골스워시에 이어 여섯 번째 노벨상 수상자였다.


러디어드 키플링(Rudyard Kipling)1907, 라빈드라나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1913, 예이츠는 1923,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1925, 존 골즈워디(John Galsworthy)1932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타고르가 상을 받을 당시 인도는 영국 식민지였다. 그렇지만 그는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아시아인이다. 영국 식민지 인도에서 활동한 타고르의 국적을 영국이라고 주장하게 되면 아시아인 첫 수상자라는 기록이 소멸한다. 예외로 아일랜드 출신 작가인 쇼는 주로 영국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국적이 영국으로 되어 있다





셜록 홈즈 다시 읽기》 117쪽


 당시 가정교사는 교육받은 여성이 선호하는 직업이었다. 학생 집에 들어가 함께 살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보살폈다. 가정교사 양성소도 전국에 몇 군데 생긴 것으로 보아 신여성을 꿈꾸는 여성들의 열망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돈을 벌고 어느 정도 대접을 받으며 독립적인 인격체로 살아갈 수 있었다.



[117쪽에 인용한 내용 비판실제 가정교사의 급여는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교양이 있는 직업인데도 하녀로 취급받았다. 그리고 남성 고용주에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성범죄의 표적이 되기 쉬웠다. 가정교사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처우를 알 수 있는 사료가 남아 있는데도 저자는 가정교사가 돈을 벌고 어느 정도 대접받으며 독립적인 인격체로 살아갈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견해는 사실과 다르다.
















* [절판] 이영석 영국 제국의 초상: 19세기 말 영국 사회의 내면을 읽는 아홉 가지 담론들(푸른역사, 2009)




[저자의 반론영국사 연구의 권위자이자 영국 제국의 초상의 저자인 이영석에 따르면 중간계층의 젊은 여성 가운데 일부는 가정교사로 진출하거나 중등학교 교사로 일했다. 19세기 전반까지만 하더라도 중간계급 출신 미혼 여성에게 개방된 직업 중의 하나가 가정교사다. 박봉과 나이 때문에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없었지만, 미혼 여성에게 인기가 있었다. (영국 제국의 초상5딸들의 반란?193~196)


너도밤나무 집(The Adventure Of The Copper Beeches)에 등장하는 의뢰인인 바이올렛 헌터(Violet Hunter)를 제외한 나머지 가정교사들은 보수를 충분히 받았으며 고용주로부터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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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8-24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작가님과 의 의견나눔이라니 넘 좋습니다. 근데 왜 전 또 다시 cyrus님 손을 들고싶지요 ㅎㅎ

cyrus 2022-09-12 15:10   좋아요 1 | URL
이 글에 저자의 응답은 오지 않았어요. 글로 저자와 의견 나누기가 쉽지 않군요. ^^;;
 




리뷰(review)리뷰(re-view)하다

 

EP. 1


 



십 년 전에 루이스 세풀베다(Luis Sepulveda)의 소설 연애소설 읽는 노인을 읽었다. 이번 달 독서 모임 필독서는 연애소설 읽는 노인이다. 이 책을 다시 읽기 전에 십 년 전에 쓴 연애소설 읽는 노인리뷰를 먼저 읽었다.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서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리뷰를 보면서 줄거리를 이해하느라 헤맸다. 어떤 문장은 여러 번 읽어도 이해되지 않았다. 도대체 십 년 전의 나는 리뷰에서 뭘 말하고 싶었던 걸까? 과거의 글에 박제된 나에게 물어봤는데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답답하다. 이 때 나는 맞춤법 검사기가 있는 줄 몰랐다. 머릿속에 나오는 대로 거침없이 글을 썼고, 다 쓰고 난 후에 글속에 오자와 비문이 있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십 년 전의 나를 사이러스 군’, 줄여서 사 군이라고 부르겠다. 리뷰(review)리뷰하니까 여러 가지 감정이 느껴진다. 사 군, 너 참 열심히도 썼구나. 그런데 내용이 부실하고, 필력도 부족해. 오자가 너무 많고 비문도 있어. 그리고 문장을 좀 줄여서 쓸 수 없겠니? 내가 널 위해 리뷰를 리뷰하면서 고쳐 써볼게. 물론 지금의 나도 글을 잘 쓰는 편은 아니야. 그래도 네 글을 고쳐 쓰면서 작문 실력을 향상할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



















* 루이스 세풀베다 연애소설 읽는 노인(열린책들, 2009)

 

* 사 군이 쓴 리뷰 전문

<자연 vs 인간, 싸움의 미학> (201094일 등록)

https://blog.aladin.co.kr/haesung/4083751




 




Scene 1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 완독을 할 겸 남미 계열 작가인 루이스 세풀베다(칠레 태생)작품을 읽기 위해서 도서관에서 대출하여 읽게 되었다.[1] 제목이 참 독특하다. 노인이 연애소설을 읽는다? 왜 노인이 연애소설을 읽는지 궁금하기만 하였다.[2] 하지만 이 책을 결정적으로 읽은 이유는... 책의 분량이 얇았기 때문이다. 사실 도서관에서 두 권 짜리 니코스 카잔차키스의최후의 유혹과 루이스 세풀베다의 책 사이에서 무엇을 읽을 것인지 많이 고민을 했다. 결국 얇은 책을 좋아하는 나쁜 습관(?)을 이기지 못해 세풀베다의 짧은 책을 선택했다

[3] [4]

 

 

[1] → 칠레의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의 대표작 연애소설 읽는 노인》을 읽고 싶어서 도서관에 있는 책을 빌렸다.

 

[2] 노인이 연애소설을 읽으면 안 되나? 읽을 수 있지! 사 군은 왜 저런 생각을 했을까? 어쨌든 이 문장은 지우자! 

 

[3] → 사실 연애소설 읽는 노인이 얇아서 읽고 싶었다. 


뒤에 있는 문장 세 개도 다 지우자! 앞에 나온 문장과 비교해봐. 넌 처음에 세풀베다의 소설을 읽고 싶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카잔차키스의 소설을 읽어야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어? 말이 안 되잖아?


 

[4] 지금은 얇은 책만 선호하는 편식성 독서를 하지 않는다







Scene 2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은 아마존의 숲에서 홀로 사는 안토니오 노인이다. 그리고 노인과의 갈등 구도를 맺고 있는 인물이 뚱보 읍장이다. 그는 아마존 개발에 앞장 서는 권력자로 등장하며 노인과 반대로 자연의 위대함을 모른다.[1] 이야기 초반에보면 아마존의 독거 노인인 안토니오 노인은 초라하고, 읍장이라는 직책의 명함을 가지고 있는 뚱보의 기세는 당당하게 등장한다. 그러나 안토니오 노인이 뚱보 읍장의 사냥 수색대에 합류한 뒤부터는 이야기에서 읍장은 점점 조롱거리의 대상이 되어간다.[2] 질퍽한 늪지대를 지나가는데 노인이 알려준 늪지대를 수월하게 가는 방법을 따르지 않는다. 자신은 수색대의 우두머리라고 큰소리치며 절대로 그런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걷지 않는다고 똥고집을 부린다. 노인의 말을 따르지 않은 읍장은 결국에는 가다가 넘어지게 되면서 수색대원들마저도 그를 비웃고 만다.[3] 자연의 이치를 따르지 않고 무조건 자연을 인간의 생존을 위한 대상으로 생각하는 정치 권력자의 속물 근성을 세풀베다는 은밀히 조롱하고 있다.[4]

 

 

 

사 군! 두 번째 문단에 뜯어 고쳐야 할 부분이 많군!

 

 


[1] 소설의 주인공은 안토니오라는 노인이다. 그는 아마존 숲에서 혼자 산다. 소설의 또 다른 인물 뚱보 읍장은 아마존 개발을 추진하는 권력자다. 노인과 정반대의 성격이라서 자연의 소중함을 모른다.

 

[2] 아마존의 독거노인 안토니오는 초라해 보이고, 사냥 수색대를 이끄는 읍장은 당당하다. 그러나 안토니오가 사냥 수색대에 합류한 후부터 읍장은 점점 조롱거리가 된다.

 

[3] 노인은 늪지대를 수월하게 가는 방법을 안다. 그러나 읍장은 노인의 조언을 무시한다. 체면을 중시한 그는 늪지대를 지날 때 우스꽝스럽게 걷지 않으려고 애쓴다. 결국 노인의 말을 따르지 않은 읍장은 넘어지고 만다. 늪에 빠진 읍장을 본 수색대원들은 대놓고 비웃는다.

 

[4] 작가는 물질적 부를 좇으면서 자연을 자원으로 이용하려는 권력자의 속물근성을 희화화한다.







Scene 3



 하지만 이 작품에서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갈등은 안토니오 노인과 암살쾡이 사이의 갈등이다.[1] 사실 루이스 세풀베다 이전 세계문학들을 살펴보면 자연 대 인간이라는 골자로 하는 작품이 몇 편 있다.[2] 허먼 멜빌의백경의 에이햅 선장 대 흰 고래 모비 딕, 그리고 어니스트 헤밍웨이의노인과 바다에서의 노인 대 청새치, 상어 떼로 구성되어 있다. 두 작품은 공통적으로 인간은 거대한 자연 앞에서 굴복하는 이야기로 끝나지만 두 작가가 독자들에게 전하려는 의도는 과감하게 자연과 대결하는데 인간의 위대한 존엄성을 강조하고 있다. 에이햅 선장이 모비 딕과의 치열한 싸움 끝에 깊은 바다에 빠져 죽어도, 고생 끝에 잡은 청새치를 상어들에게 다 뜯긴 채 노인이 집으로 돌아와도 결국 자연은 자신에게 패배한 두 인간의 존엄성을 빛나게 해주는 배경 뿐인 것이다.[3]

 

 

[1] 하지만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대립 구도는 노인과 암컷 삵이다.

 

[2] 역대 서양고전 중에 자연 대 인간을 소재로 한 작품이 있다.

 

[3] 사 군은 거짓말을 했다. 그는 모비 딕노인과 바다를 읽은 적이 없으면서 읽은 척했다. 사 군이 초등학생이었을 때 동화로 편집한 두 작품을 읽었다. 풋내기 독서를 했던 사 군이 모비 딕노인과 바다를 깊이 있게 분석할 리 없다. 내 기억이 맞으면 사 군은 작품 해설을 참고했다. 서평을 쓸 때 한 번도 안 읽은 책을 언급하거나 설명하지 말아야 한다. 괜히 어설프게 썼다가 책을 제대로 읽은 독자에게 책잡힌다. 반성하는 차원으로 올해에 두 작품을 읽겠다.







Scene 4



 그러나 연애소설 읽는 노인에는 오히려 반대이다. 노인과 암살쾡이의 1 1 대면과 대면 후 결과는 긴장감보다는 엄숙미가 느껴진다. 사람을 해친 암살쾡이의 습성과 자취를 파악할수록 노인은 짐승의 힘과 용기에 경탄하면서 둘 중 하나는 살아남게 되는 최후의 대결을 준비한다.[1] 노인에게는 암살쾡이를 죽여서 자신은 살아남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암살쾡이의 두 눈을 통해 자신과의 대결에서 물러서지 않으려는 확연한 의지를 읽게 된다. 노인과 암살쾡이에게는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인간 대 자연. 당연히 일어날 수 밖에 없으며 결코 피할 수 없는 숙명의 대결은 이 둘은 어쩔 수 없이 운명의 순리로 마주치게 된 것 뿐이다.[2]

 

 

[1] 최후의 대결을 끝내기 위해 노인과 암 삵이 만나는 장면은 긴장감보다는 엄숙미가 흐른다. 노인은 암 삵의 습성을 이해할수록 짐승의 힘과 용기에 경탄한다. 그러면서 둘 중 하나만 살아남아야 하는 최후의 대결을 준비한다.

 

[2] 노인은 암 삵을 죽여서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드러내지 않는다. 노인과 암 삵은 단지 살기 위해서 싸우지 않는다. 두 존재는 인간 대 자연이라는 거대한 숙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뿐이다.







Scene 5



 결국 안토니오 노인은 암살쾡이와의 사투 끝에 살아남는다. 비록 그는 살아남았지만 그다지 기뻐하지 않는다. 죽은 암살쾡이의 시체를 흐르고 있는 아마존 강에 떠내려가게 함으로써 암살쾡이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노인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연애소설을 읽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끝나게 된다.[1] 노인의 안식처는 아마존의 자연을 상징한다. 암살쾡이를 죽였어도 아무 일 없다듯이 자신이 좋아하는 연애소설 읽기에 매달리는 것은 그냥 자연 속에 몸을 맡겨 본능적으로 살려는 자세이다. 노인이 살고 있는 광활한 아마존에는 인간의 손길을 거치치 않은 자연의 원시성을 간직하고 있는 동물들이 많이 있다. 노인의 암살쾡이 사살은 거대한 자연을 파괴하고 승리자인마냥 도취하고 있는 인간의 행위가 무의미하며 자연과 인간의 대결에는 승자는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2]

 

 

사 군이 소설 결말을 언급했다‥…

 

 

[1] → 치열한 사투 끝에 노인이 살아남는다. 하지만 그는 기뻐하지 않는다. 노인은 암 삵의 송장을 강물에 띄우면서 죽은 짐승을 애도한다. 수색 임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노인은 다시 연애소설을 펼친다.

 

[2] 노인의 안식처는 인간의 보금자리가 아닌 거대한 자연의 일부이다. 연애소설을 읽는 행위는 자연의 섭리에 따르면서 살려는 자세이다. 아마존은 인간의 손길을 모르는 야생의 터전이다. 노인과 암 삵의 만남은 승자와 패자가 없는, 누구에게 승자 또는 패자라고 단정할 수 없는 의미심장한 대결이다.







Scene 6



 아무리 암살쾡이가 인간들을 무참히 죽였다지만 정작 암살쾡이가 인간들을 향한 살기를 드러낸 이유는 자연에 해를 가하려는 인간의 행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암살쾡이 입장에서는 총을 들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이 자신뿐만 아니라 자연을 향한 선전포고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암살쾡이가 어쩔 수 없이 날카로운 어금니와 발톱을 인간들에게 향한 것은 사필귀정이다.[1]

 

 간혹 뉴스을 보게 되면 도심 한복판에 야생 맷돼지가 돌아다닌다거나 사람이 사는 집에 말벌 떼들이 커다란 벌집을 틀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리고 소방대원들이 동원되어 맷돼지는 사살되고, 벌집은 가차없이 파괴된다. 인간의 눈에는 도시 속에 있는 맷돼지와 말벌은 우리에게 해를 가할 수 있는 위험한 존재로만 비춰질 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도시에 살고 싶어서 산 것은 아니다. 단지 살고 싶은 보금자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존재가 쉽게 노출되는 인간의 보금자리에 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들을 도시로 불러들이게 한 것은 무분별하게 자연을 개발하는 인간의 행위가 만든 현상이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려는 못된 사고와 행위가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리지지 않는 한 자연 파괴가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만은 우리 인간들 스스로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주2]

 

 

사 군. ‘맷돼지가 아니라 멧돼지라네

그리고 제일 마지막 문장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1] 암 삵은 인간을 죽이는 야생 괴물이 아니다. 살아있는 짐승과 자연을 위협하는 인간의 행위에 맞선 것이다. 암 삵은 총을 쥔 채 야생에 접근하는 인간의 행동을 선전 포고로 받아들였다. 분노가 서린 암 삵의 어금니와 발톱이 인간에게 향한 상황은 사필귀정이다.

 

[2] 뉴스에서 도심 한복판에 나타난 멧돼지와 가옥에 튼 벌집과 말벌 떼에 대한 소식이 심심찮게 나온다. 흥분한 멧돼지는 사살되고, 유충과 꿀이 있는 벌집은 파괴된다. 우리는 멧돼지와 말벌을 위험한 존재로 여긴다. 하지만 야생은 도시에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의 유일한 터전인 자연이 사라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우리 보금자리 주변을 떠돈다. 인간이 계속 자연을 개발할수록 야생은 도시로 향할 것이다. 자연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우리의 욕심을 조절하지 못하면 우리의 소중한 터전마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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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1-03 19: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 맞아요 예전 리뷰를 읽으면 얼굴이 붉어지곤 하죠 젊은 시절 치기도 보이고. 전
지금도 얼굴이 빨개져요. 중학생때 글이랑 별반 달라진 게 없는 듯해서요 ㅎㅎ 사군님 글 읽으니 다시 읽어봐야 겠단 생각이 들어요.~

cyrus 2021-01-03 19:45   좋아요 2 | URL
옛날에 쓴 글을 읽으면 재미있어요. 옛날 생각도 나고 좋아요. cyrus는 제1부캐, 사군은 제2부캐입니다.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은데요... ^^;;

stella.K 2021-01-03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 군! 대단해. 난 지난 리뷰는 거의 안 보는데...
책을 내 본 사람으로서 부끄럽군.
이런 작업도 꽤 의미있어 보인다.^^

cyrus 2021-01-03 20:01   좋아요 1 | URL
다시 쓰는 일이 생각보다 시간이 좀 걸렸어요. 빨라도 두 시간 이내에 다 쓸 줄 알았어요. 문장을 계속 보면서 이걸 어떻게 고쳐 쓸지 생각하니까 두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어요. ^^;;

곰곰생각하는발 2021-01-03 2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가 쓴 옛글 읽다 보면 내가 쓴 글인데도 의미를 모를 때가 많더군요. ㅎㅎ

cyrus 2021-01-04 11:43   좋아요 1 | URL
곰발님의 옛날 글에 있는 언어유희는 지금 봐도 재미있어요. 보면 볼수록 부러워요. 저도 나름 시도를 해봤지만, 반응이 시원찮네요. ^^;;
 



어제 공개한 피은경의 톡톡 칼럼리뷰에 책의 아쉬운 점 몇 군데를 언급했다. 그날 밤에 해당 책의 저자인 페크는 필자가 리뷰에서 지적한 것들을 해명한 글을 써서 공개했다. 저자는 필자의 비판적 의견들을 조목조목 반박했으며 그중 하나는 필자의 오해와 무지에서 기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 피은경 《피은경의 톡톡 칼럼: 페크의 생활칼럼집》 (해드림, 2020)




* 피은경의 톡톡 칼럼141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에 장발장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는 배고파하는 어린 조카들을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감옥에서 19년의 세월을 보내다가 석방한다.

 


* 피은경의 톡톡 칼럼174

 빅토르 위고의 <가난한 사람들>이란 소설의 내용이다.




필자는 리뷰에서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가난한 사람들>은 내용이 같은 소설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페크는 해명 글에서 <레 미제라블><가난한 사람들>은 내용도, 형식도 다른 소설이라고 알려줬다. 저자의 말이 맞다.

 














 

* 빅토르 위고 빅토르 위고 동화(그린북, 2005)

 

 


<가난한 사람들>(Les Pauvre Gens)1859년에 나온 빅토르 위고(Victor Marie Hugo)의 서사 시집 <세기의 전설>(La Légende des siècles) 1집에 포함된 글(정확히 말하면 시편)이다. 이야기가 있는 시라서 단편소설로 소개되었다. <세기의 전설>은 총 세 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2집은 1877, 3집은 1883년에 발표되었다.

 

<레 미제라블>은 국내에 다양한 이름으로 소개되었는데, 비참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다. 필자는 가난한 사람들이 국내에 알려진 <레 미제라블>의 이명(異名)이라고 오해했으 피은경의 톡톡 칼럼에 언급된 위고의 소설 제목을 지적했다. 필자는 제목을 잘못 알았다. 또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위고의 글이 있다는 사실과 피은경의 톡톡 칼럼에 언급된 <가난한 사람들> 줄거리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독을 반성하고, 책의 저자에게 사과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앞으로 글을 쓸 땐 더 신중하게 살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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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20-12-09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실 장 발장이 빵을 훔친 것만으로 19년을 복역한 것은 아니죠. 몇 차례 탈옥을 했기 때문에 가중처벌 받았죠. 아무리 19세기의 일이지만 빵 하나 훔쳤다고 19년 복역하는 것은 아닙니다 ㅎㅎㅎ

cyrus 2020-12-09 19:56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저도 착각했어요. ‘빵 훔친 죄’가 워낙 임팩트가 크다 보니 사람들은 빵 하나 훔칠 걸로 19년 감옥 생활을 했다고 생각해요. ^^;;

페크pek0501 2020-12-09 22:0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착각했어요 2

빵 하나로 감옥 19년 어쩌구 하는 글을 여러 책과 인터넷에서 너무 많이 봐서 고정 관념으로 박혀 있어서요. 잘 따져 보면 알 텐데 말이죠.

페크는 항복, 하겠습니다. ^^

2020-12-09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9 2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9 2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님의 도움을 받아 One Hundred Years of Solitude(약칭 백 년’) 번역본 2(문학사상사, 민음사)의 번역 실태에 대한 글을 다시 쓸 수 있게 되었다. scott님이 아니었으면 이미 썼던 두 편의 글은 필자의 부족한 외국어 실력만 드러낸 부끄러운 반쪽짜리 작업의 결과물이 될 뻔했다. scott님은 스페인어로 된 원작에 있는 원문을 직접 찾아 확인해주셨다. 그리고 스페인어 원문과 국역본 2종의 번역문을 비교 분석도 해주셨다. 이 글을 통해 scott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가르시아 마르케스, 안정효 옮김 백년 동안의 고독(문학사상사, 2005)

    

 

 

 

 

 

 

 

 

 

 

 

 

 

 

 

 

* 가르시아 마르케스, 조구호 옮김 백년의 고독(민음사, 2000)

 

 

 

    

 

이 글은 기존에 썼던 두 편의 글을 보완한 글이다. 새로 추가된 내용은 댓글에 있는 scott님의 의견이다. 그래서 scott님이 단 댓글의 내용을 인용했다글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scott님의 댓글 내용 중 필자가 쓴 글과 중복된 내용(영문판 원문과 국역본 2종에서 인용한 문장)은 제외했다백 년번역본 2종과 관련된 새로운 내용이 나오는 대로 계속 추가할 것이다.

 

 

 

 

 

 

 

 

 

1

 

 

* 영문판

  Úrsula on the other hand, held a bad memory of that visit, for she had entered the room just as Melquíades had carelessly broken a flask of bichloride of mercury. Its the smell of the devil, she said. Not at all, Melquíades corrected her. It has been proven that the devil has sulphuric properties and this is just a little corrosive sublimate.

 

 

* 문학사상사 10

  우르슬라만큼은, 멜키아데스가 실수로 제2산화수은이 담긴 병을 깨뜨린 순간 방에 들어섰기 때문에, 그의 방문에 대해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냄새, 정말 악마의 냄새처럼 고약했어요.” 우르슬라가 말했다. “아닙니다.” 멜키아데스가 대꾸했다. 지옥의 악마한테서는 유황 냄새가 나는데, 그날 부인이 맡은 냄새는 거기에 비하면 퍽 고상했죠.”

 

 

* 민음사 119

  멜키아데스가 2염화수은이 담긴 유리병을 실수로 깨뜨리는 순간에 하필 그의 방에 들어갔던 우르술라는 그의 방문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을 간직하게 되었다.

이건 악마의 냄새예요그녀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멜키아데스가 바로잡아 주었다. 「악마는 유황 성분을 지니고 있다는 게 밝혀졌고요, 또 이건 단지 약간의 염화수은일 뿐이지요

 

 

 

* 필자가 쓴 것

 

bichloride of mercury: 염화수은(II), 염화 제2수은, 2염화수은, 승홍(昇汞, corrosive sublimate)

 

염화수은: 염소와 수은의 화합물, 염화수은(II)화학식 HgCl2

 

산화수은(mercury oxide): 수은의 산화물(한 개 이상의 산소 및 다른 원소와 결합하고 있는 화합물), 화학식 HgO

 

 

 

 

* scott님의 분석 

  

 

스페인어 원문

  Úrsula, en cambio, conservó un mal recuerdo de aquella visita, porque entró al cuarto en el momento en que Melquíades rompió por distracción un frasco de bicloruro de mercurio.

-Es el olor del demonio -dijo ella.

-En absoluto -corrigió Melquíades-.

Está comprobado que el demonio tiene propiedades sulfuricas, y esto no es más que un poco de solimán.

 

이렇게 놓고 비교해보니 확실히 조구호씨 번역은 스페인어판을 직역하셨고(나쁘게 말하면 어순을 뒤죽박죽 구글 번역기 돌리듯) 안정효씨 번역은 영어판으로 번역해서인지 의역을 했지만 스페인어판과 똑같이 우르슬라와 멜키아데스에 주체를 뒤바꾸지 않고 어순도 정확합니다.

 

‘en que‘라는 시간 접속 부사구(that절이 아닌 시간 부사구 just as로 번역해야함) 뒤 주어를 조구호씨는 문장 첫머리 주어로 번역했는데 영어판 번역 우슬라가 주어로 나와야 정확한 번역입니다.

 

‘porque~’ 구절도 이유를 뜻하는 ‘for~’ 구절로 번역한 영어판이 정확하고

 

조구호 씨 번역은 어순이 뒤바꿔버릴 정도로 엉망

solimán은 스페인어로 수은으로 만든 화장품

sulfurico(단수형) / sulfuricas: (스페인어) 황산

sulphuric: (영어) 유황

 

스페인어판 원본에는 ‘황산’이라는 단어를 썼고 영어판에는 유황으로 번역했고 ‘corrosive sublimate’는 영어판에서 염화 제2수은이라는 전문 화학용어가 아닌 원문이 품고 있는 진짜 뜻, 즉 수은 성분이 들어간 화장품 / 황산이 부식할 때 나는 유황 냄새’로 번역했네요.

 

올려주신 번역본만으로 볼 때 안정효 번역본이 스페인어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영어 번역본이 정확하고 (원문이 품고 있는 의미를 안정효 씨가 의역한 것은 있음) 2산화수은이라고 화학적 용어가 아닌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수은이 들어간 화장품을 의미했고 (원문에서) 조구호 번역은 일대일 사전 찾아 번역기 돌려버린 것 같아요.

 

 

 

 

 

 

 

 

8

 

* 영문판

  They found her dead on the morning of Good Friday. The last time that they had helped her calculate her age, during the time of the banana company, she had estimated it as between one hundred fifteen and one hundred twenty-two.

 

 

* 민음사 판 2203

  우르술라는 죽은 몸으로 성 목요일 아침을 맞이했다. 바나나 회사가 있던 시절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마지막으로 그녀의 나이를 계산해 보았는데, 그 당시 그녀가 백열다섯 살에서 백스물 살 사이라고 결론지었었다.

 

 

* 필자가 쓴 것

 

성 목요일(Maundy Thursday)은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Gethsemane)에서 체포된 날이며 성 금요일(Good Friday, 수난일: 십자가형을 받은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는 날) 전날이다. 그리고 백스물 살이 아니라 백스물 두 살이다.

 

 

 

* scott님의 분석

 

 

스페인어 원문

  Amaneció muerta el jueves santo. La última vez que la habían ayudado a sacar la cuenta de suedad, por los tiempos de la compañía bananera, la había calculado entre los ciento quince y los ciento veintidós años.

 

영어 번역본은 ‘good Friday’라고 했는데 스페인어 원문(el jueves santo)성 목요일이라고 되어있네요

 

‘ciento veintidós’는 백스물 두 살이 정확한 뜻입니다.

‘ciento quince’는 백 열다섯 살 정도

원문에는 백 열다섯 살에서 백스물 두 살 사이 라고 적혀 있어요.

 

 

 

 

 

 

 

 

10

 

 

* 영문판

  When he rode the bicycle he would wear acrobats tights, gaudy socks, and a Sherlock Holmes cap, but when he was on foot he would dress in a spotless natural linen suit, white shoes, a silk bow tie, a straw boater, and he would carry a willow stick in his hand.

 

 

* 문학사상사 420

  그는 자전거를 탈 때면, 곡예사의 흘태바지알록달록한 양말을 신고 셜록 홈즈의 모자를 쓰고 다녔지만, 걸어 다닐 때에는 티끌 하나 없는 단정한 양복에 흰 구두를 신고 비단으로 만든 나비넥타이에 밀짚모자를 쓰고 손에는 버드나무 단장을 짚고 돌아다녔다.

 

 

* 민음사 판 2254

  그는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닐 때는 곡예사 바지백파이프 연주자들이 신는 양말을 신고, 탐정들이 쓰는 모자를 썼으나, 걸어 다닐 경우에는 말끔하게 손질한 생 아마포 옷에 흰 구두를 신고, 비단 나비넥타이를 매고, 맥고모자를 쓴 차림으로 버드나무 단장을 들고 다녔다.

 

 

* 필자가 쓴 것

 

gaudy: 천박한, 촌스러운, 요란스러운, 번지르르한

 

인쇄가 잘못된 건지 아니면 안정효 씨가 잘못 적은 건지 알 수 없지만, 흘태바지가 아니라 홀태바지(통이 매우 좁은 바지)라고 써야 한다.

 

영문판에는 백파이프 연주자들이 신는이라는 번역문에 해당되는 표현이 없다. 그렇다면 스페인어로 쓰인 책에 백파이프 연주자들이 신는이라는 표현이 있을 수 있다. 필자가 스페인어 판을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뭐가 맞는 번역인지 판단하지 않았다.

 

그런데 조구호 씨는 ‘Sherlock Holmes cap’탐정들이 쓰는 모자라고 엉터리로 번역했다. ‘Sherlock Holmes cap’은 셜록 홈스가 써서 유명해진 모자(원래는 사냥꾼들이 즐겨 쓴 모자). 탐정들은 홈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모자를 쓰고 다니지 않는다. (잘못된 내용이라 필자가 취소선을 그었음)

 

 

 

* scott님의 분석

 

 

스페인어 원문

  Cuando andaba en el velocipedo usaba pantalones de acrobata, medias de gaitero y cachucha de detective, pero cuando andaba de a pie vestia de lino crudo, intachable, con zapatos blancos, corbatin de seda, sombrero canotier y una vara de mimbre en la mano.

 

우선 스페인어 원문에서

pantalones de acrobata-곡예사 바지

medias de gaitero- ‘gaitero‘가 백파이프 medias 는 양말 즉, 백파이프 연주자들이 신는 양말이라는 뜻(조구호 번역이 맞음).

 

특히 영어번역판에 셜록 홈즈의 모자라고 해석했는데 스페인어 원문에는 cachucha de detective-‘탐정들이 쓰는 모자라고 쓰여 있어요. (영어판이 의역 원문에 셜록 홈즈라는 단어가 없음)

 

안정효 씨의 번역에 [그는 자전거를 탈 때면]이라고 해석한 부분 스페인어 원문은[pero cuando andaba de a pie vestia de lino crudo]‘andaba de a pie vestia de lino crudo’ 자전거를 타고 구석구석(목적 없이) 돌아다니는 어슬렁거리는 의미입니다. pero cuándo~접속사구 해석을 영어에서 단순히 ‘when’으로 해서 안정효 씨가 그냥 ‘00~라고 번역한 것 같습니다.

 

이 단락 부분은 영어판이 원문과 다른 의미에 단어 없는 단어를 넣고 있는 단어를 빼 버림

 

스페인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한건 조구호

안정효 : 조구호- 50:50인 것 같네요.

 

 

 

 

 

 

* 필자의 소감

 

두 번째 글에서 필자는 조구호 씨의 번역문(‘탐정들이 쓰는 모자’)을 엉터리라고 지적했다. 스페인어 원문을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제넘게 조구호 씨의 번역을 엉터리라고 지적한 것은 잘못된 일이다. 잘못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문제의 구절은 지우지 않고, 취소선을 그었다. 그러면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확인할 수 있다. scott님이 두 번째 댓글을 달지 않았다면, 필자의 잘못된 의견이 고쳐지지 않은 채 그대로 공개될 뻔했다.

 

독자의 눈에 보이는 무지로 인한 오류와 실수로 쓴 문장은 삭제하면 되지만, 그런 식으로 너무 쉽게 글에 드러난 결점을 덮어버리고 넘어가선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과거의 결점이 뭐였는지 금방 잊게 되고, 이로 인해 글을 쓰다가 또 한 번 비슷한 실수를 저지른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으려면 글에 남아 있는 결점을 부끄러워하면서 지우기보다는 그냥 그대로 놔두는 게 낫다. 삭제하지 않고, 공개하는 것도 글쓰기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글에 얼룩처럼 남아 있는 과거의 오류를 되돌아보면서 다시 그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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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20-12-06 1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생은 이 소설이 원시적이고 무속적이라며 은근 낯설면서도 재미있었던 모양입니다만 저는 파리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읽다가 집어던져버렸던 기억입니다.그 뒤로 남미 문학에 대한 주저함이 생겼어요.지금도 바뀌진 않은 듯합니다.낯설고 어리둥절한 문화 차이...나의 개성이겠지만..벌써 18년 전의 일입니다.ㅎ

cyrus 2020-12-07 07:41   좋아요 1 | URL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소설을 읽으면 소설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어요. 과거에 좋게 본 책이 나중에 다시 읽을 땐 그때만큼 좋은 느낌이 안 날 수 있어요. ^^

곰곰생각하는발 2020-12-06 13: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거 사이러스 님과 스코트 님의 합작품이로군요..

cyrus 2020-12-07 07:41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

2020-12-06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0-12-07 0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읽다가 번역이 이상해보이면 그냥 짜증내고 마는데 이런 훌륭한 글을....

cyrus 2020-12-07 07:55   좋아요 1 | URL
번역 비판은 전문가가 해야 하는 일인데, 번역을 비판한 전문가의 글을 찾기가 쉽지 않아요. 물론, 제가 못 찾은 것일 수 있어요. 독자들이 번역을 지적한 서평이 있긴 합니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문장이 이상하고 잘못 되었는지 명시하는 내용이 없어요. 그냥 “이 책의 번역은 별로야”라고 언급한 게 전부에요. 번역을 비판한 독자의 글은 번역에 문제 있는 책을 읽으려는 다른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지만, 오역 사례를 제시하지 않는 이상 번역을 비판한 독자들의 입장 또한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여러 독자들이 왜 번역에 이상함을 느끼고, 지적하는지 알고 싶어서 이런 (비효율적인) 작업을 해왔어요.

2020-12-07 0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7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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