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세 번 알라딘 동성로점에 간다. 한 번 서점에 방문하면 책을 잔뜩 구매한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책(적게 주문하면 여섯 권, 많이 주문하면 열 권)을 받으러 서점에 간 것뿐인데 2, 30분 지나고 나오면 구매한 책은 곱절이 넘는다. 이렇다 보니 차마 손을 뻗지 못하고, 눈길만 주는 책들이 많다. 이런 책들은 내 마음속 장바구니에 꽤 오랫동안 보관되어 있다. 3월의 장바구니를 채운 많은 책 중 한 권이 요네자와 호노부의 역사 추리 장편소설 《흑뢰성》이었다.
* 요네자와 호노부, 김선영 옮김 《흑뢰성》 (리드비, 2022)
지난달 중순에 대구 장르문학 전문 서점 <환상 문학>이 첫 독서 모임 공지를 올렸다. 모임 일정은 한 달 격주 금요일이었고, 4월 7일, 4월 21일 일정과 4월 14일, 4월 28일 일정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대구 최초의 장르문학 전문 서점에서 열리는 역사적인 첫 번째 독서 모임에 참석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평일 저녁에 진행되는 독서 모임에 꾸준히 참석할 자신이 없었다. 예상치 못한 잔업으로 인해 목요일 저녁에 진행되었던 독서 모임 <우주지감>에 불참하거나 늦게 출석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요네자와 호노부를 좋아하는 장르문학 마니아들이 많이 신청하길 바라면서 책 읽고 글 쓰는 일상에 충실히 살기로 했다.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에 나를 포함해서 총 일곱 명의 정기 회원이 참석하고 있다. 그중에 ‘향기’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회원이 있다. 향기님은 장르문학을 엄청나게 좋아한다. 역시 장르문학 마니아답게 그분은 <환상 문학> 독서 모임에 신청했다. 3월 말에 <환상 문학> 독서 모임 공지가 다시 떴다. 모임 신청자 수가 적어서 그런지 모임 일정이 4월 7일과 4월 21일로 변경되었다. 4월 3일까지 신청자가 없으면 독서 모임이 취소된다고 했다. 대구에 흔하지 않은 장르문학 독서 모임이 시작도 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게 너무 아쉬웠다. 조금의 망설임 없이 신청 링크를 눌렀다.
모임 신청한 당일 《흑뢰성》를 받으러 <환상 문학>에 방문했다. 《흑뢰성》은 일본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서 내겐 무척 낯설었다. 《흑뢰성》을 다 읽은 책방지기한테 《흑뢰성》을 쉽게 읽는 방법이 있는지 조언을 구했다. 책방지기는 《흑뢰성》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시대적 배경과 관련된 지식을 알아가면서 읽으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만 읽어보라고 하셨다. 시키는 대로 읽으니까 생각보다 소설이 술술 읽혔다.
4월 7일에 <환상 문학> 첫 번째 독서 모임이 진행되었다. 그날 30분 정도 잔업을 하게 되었고, 결국 내가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퇴근하자마자 바로 서점으로 향했지만, 모임 시작 전까지 서점에 도착하는 건 불가능했다. 피로가 쌓이면 입 안에 염증이 생긴다. 말을 할수록 통증이 느껴져서 발언보다는 경청에 집중하려고 했다. 헐레벌떡 서점에 와보니 책방지기와 향기님, 딱 두 분만 계셨다. 말을 안 할 수 없었다.
본격적으로 책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책방지기는 《흑뢰성》의 등장인물과 역사적 배경을 간략하게 들려줬다. 그런 다음에 책 속의 주요 장면들을 짚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시 모임 때 주고받은 대화 내용은 생략하겠다. 지금 모임 후기를 쓰려고 하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내가 모임 때 한 발언은 《흑뢰성》 서평을 쓸 때 언급되는 내용이라서 여기서 밝힐 수 없다. 장르문학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원인은 스포일러다. 그러므로 장르문학 전문 독서 모임만큼은 그날 나온 대화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싶지 않다. 책과 모임 분위기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까.
<환상 문학> 첫 번째 독서 모임 후기가 용두사미로 되고 말았다.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참석하려는 다른 독서 모임 일정을 소개하겠다. 내 근황에 궁금해하는 사람이 없겠지만.
1. 대구 인문학 서점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 4월 22일 토요일 오전 10시
* 아이스킬로스, 천병희 옮김 《아이스킬로스 비극 전집》 (도서출판 숲, 2008) 『아가멤논』
2. 대구 페미니즘 북클럽 <레드 스타킹>: 4월 30일 일요일 오후 2시,
장소: 카페 ‘스몰토크’
*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여/성이론 통권 제47호》 (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