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 프라이 - 시대의 예술, 세기의 우정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병화 옮김 / 글항아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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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F: Thank Woolf! It’s (Roger) Fry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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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동물이다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전대호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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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본성적으로 알고 싶어 한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의 형이상학에 나오는 첫 문장이다.[주1]은 에서 시작된다. 시각적 감각(aisthēsis)은 현상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 현상을 파악하면 현상에 대한 정보가 기억에 남는다. 현상을 여러 번 기억하면 현상을 판단하고 처리할 수 있는 경험(empeiria)이 된다. 시각적 감각을 즐기는 인간은 기억과 경험을 거쳐 학문적 인식에 도달한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앎의 발전 단계.


아리스토텔레스는 앎을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인간과 그렇지 못한 동물을 구분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동물은 기억과 상상에 의존하면서 살아가지만, 경험 능력을 쌓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다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생각은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은 이분법 중의 하나다야생 동물을 길들이는 데 성공한 인간은 동물을 알기 위해 그들을 포획하고 관찰했다앎의 욕구가 점점 커지는 동시에 학문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자연을 개발하고 파괴했다


인간은 지구에서 가장 유일한 전지(全知)적 존재다. 유전공학 · 나노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CRISPR)로 유전병을 교정하고, 생명을 연장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중이다호모 데우스(Homo Deus: 신이 되고 싶은 인간)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인간상이 아니다.[주2] 가장 똑똑한 지구의 주인으로 살아온 인간은 전지전능한 지구의 주님이 되려고 한다. 지구의 주님은 학문이 더 발전하면 아직 밝혀내지 못한 자연의 수수께끼들이 풀릴 거라고 낙관한다. 과거에 인간이 동물과 지구를 괴롭히면서 일으킨 여러 가지 문제들도 주님이 알아서 해결해 주리라 믿는다. 전지적 주님은 자신만만하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Markus Gabriel)천사와 이름은 같지만, 지구의 주님을 섬기는 시종이 아니다.[주3] 그는 전지적 존재가 되기 위한 용도로 학문에 접근하는 분위기에 경종을 울린다. 지구의 주님은 종교가 아닌 과학을 편애하는 과학주의자다. 과학주의는 과학만능주의와 같은 말이다. 과학주의자는 과학만 있으면 인간은 전지적 존재가 될 수 있으며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최악의 문제들(환경 파괴, 전염병 유행)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과학을 찬양하자는 지구 주님의 가르침을 거스른다.


철학을 사랑하는 사람(philosophos)이라면 죽을 때까지 만나야 하는 거대한 질문이 있다. “인간은 누구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엄청 짧고 간단한 질문이지만, 정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사실 정답이 없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만난 사람들이 밝힌 대답들은 다양하다. 그래서 인간의 정의를 알기 위한 질문은 한없이 크다가브리엘은 이 거대한 질문을 변형한다. 동물로 간주하는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동물이다는 마르쿠스의 변형된 질문에 대한 답변들을 정리한 책이다이 책에서 마르쿠스는 인간을 동물로서의 인간으로 재정의한다. ‘동물로서의 인간은 겸손하다스스로 슬기로운 사람(Homo sapiens)이라고 선포한 인간은 오만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반대로 동물로서의 인간은 앓을 지향하면서도 앎을 통해 얻은 지식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그리고 자기 생각이 틀렸으면 고치려고 한다이러한 태도를 가브리엘은 인식적 겸손이라고 표현한다. 겸손한 동물로서의 인간은 차분하다. 자신이 몰랐던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해 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기억을 반복하면 경험이 된다호모 사피엔스는 생각의 오류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자신의 오류를 받아들이는 것을 어려워한다슬기롭다고 믿는 사람들은 오류를 직시한 경험을 잊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겸손한 동물로서의 인간은 생각의 오류가 발생하면 게 눈 감추듯 지우지 않는다. 생각의 오류를 더 나은 생각으로 고치기 위한 디딤돌로 삼는다.


최악의 호모 사피엔스는 지식을 무기로 삼아 자신과 다른 생각을 공격하고 죽인다. 그들은 타자를 공격할 때 사용하는 지식이 정확하지 않고, 틀렸음에도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동물로서의 인간은 알고 싶어 하는 본능을 따르면서도 자신이 무지하다는 점을 안다. 가브리엘이 제시한 앎의 발전 단계는 무지(無知)의 윤리에서 시작한다. 무지의 윤리는 정직하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지식이 틀릴 수 있고, 그 지식을 통해 편집한 생각도 틀렸음을 인정한다. 우리가 괴물로서의 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무지의 윤리를 떠올려야 한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다. 많이 안다고 해서 잘난 척하지 않아도 되고, 모르는 것을 숨길 필요도 없다. 영국의 시인 토머스 그레이(Thomas Gray)는 생전에 자신을 시인이 아닌 사람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레이가 남긴 시구절[주4]은 인간은 동물이다의 한 줄 평으로 쓰기에 잘 어울린다.





Where ignorance is bliss,

‘Tis folly to be wise.


무지가 행복인 곳에서, 현명해지는 것은 어리석다









[1] 아리스토텔레스, 조대호 옮김, 형이상학, 31, 도서출판 길, 2017.



[2] 유발 하라리, 김명주 옮김, 호모 데우스 , 김영사, 2017.



[주3] 가브리엘은 성경에 나오는 대천사다.

 


 천사가 그에게 대답했다. “나는 가브리엘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있어요. 그대한테 말해 주라고 나를 보내셨어요. 이 좋은 소식을 그대에게 알려 주라고요.” 


(누가복음 제119절, 새 한글 성경 신약과 시편, 대한성서공회, 136)



[주4] Ode on a Distant Prospect of Eton College (17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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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보다 긴 촉수 - 철학의 공포 3 Horror of Philosophy 3
유진 새커 지음, 김태한 옮김 / 필로소픽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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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철학(哲學)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리에 밝다(). 그들은 꾸준히 숙고한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Immanuel Kant)는 자주 생각할수록 자신의 마음을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그것은 그의 머리 위에 있는 별이 총총한 하늘그의 마음속에 있는 도덕 법칙이다.[주1] 별이 빛나는 밤은 객관적으로 설명 가능한 자연이다. 칸트가 생각하는 인간은 도덕적으로 판정하는 이성의 사례들을 손에 지닌 존재이다.[주2] 칸트는 자연을 탐구하는 데 유용한 이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도덕 법칙은 우리가 자발적으로 지켜야 하는 보편적인 원칙이다.


칸트는 이성을 제외한 자연 탐구와 도덕 탐구를 경계했다. 마음에 이성이 사라지면 미신이 불쑥 자란다미신을 집어삼킨 두려움은 멈출 줄 모르고 부풀어 오른다. 미신에 빠진 인간은 사색(思索)하는 능력을 잊어버린다. 얼빠진 그의 얼굴은 사색(死色)으로 뒤덮여 있다이성적으로 판단하는 태도를 유지하면 진실로 둔갑한 오류 구덩이에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상식에 벗어난 기상천외한 일이 일어나도 당황하지 않고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서양 철학자들은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일어날 이유가 있고,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렇듯 현상의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기 위한 철학 원리를 충족 이유율이라고 한다. 충족 이유율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를 포함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처음으로 주장했으며 라이프니츠(Leibniz)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가 관심을 보인 철학 논제였다.[주3]


이성으로 무장한 철학자들은 탄탄한 논리적인 전략을 내세워 미신과 광기를 무찔렀다. 원인과 결과로 설명할 수 없는 사물과 사건은 더 이상 논의할 가치가 없다. 승승장구를 거듭한 철인(哲人) 군단은 진리와 학문의 수호자가 되었다철인 군단은 문학과 예술마저 정복하려는 야심을 드러냈다. 이데아(idea)를 찾느라 바쁜 플라톤(Plato)을 제외한 철인들은 문학과 예술을 향해 진격했다. 문학에 조예가 깊은 철인은 문학 작품을 철학적으로 독해했다. 예술을 감상할 줄 아는 철인은 아예 미학과 예술 철학을 만들었다.







문어발식 확장(과학 철학, 종교 철학, 정치 철학, 페미니즘 철학 등)에 성공한 철인 군단이지만, 명석한 그들을 머뭇거리게 만드는 적수가 있다철학의 적수는 바로 공포 문학이다.


밤보다 긴 촉수는 독특한 철학책이다. 이 책은 <철학의 공포>라는 연작의 세 번째 책이다. 연작 첫 번째 책은 2022년에 출간된 이 행성의 먼지 속에서<철학의 공포> 연작을 기획한 저자는 철학도를 도발한다. 나는 공포 소설을 철학 작품으로 오독(誤讀)할 것이다.” 저자는 그전에 이미 <철학의 공포> 두 번째 책(국내 미출간)에서 철학 작품을 공포 작품으로 오독하기를 시도한 바 있다.






* [절판]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홍인수 옮김, 공포 문학의 매혹(북스피어, 2012)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말도로르의 노래(문학동네, 2018)

 

*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이동신 옮김, 러브크래프트 걸작선(을유문화사, 2024)

 

*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정진영 · 류지선 옮김, 러브크래프트 전집 1~6(황금가지, 2009, 2012, 2015)

 

* 단테 알리기에리,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박상진 옮김, 신곡(3, 민음사, 2007)

 

* 단테 알리기에리, 귀스타브 도레 그림, 김운찬 옮김, 신곡(열린책들, 2022)





저자가 제안한 독서는 공포 문학 작품을 철학책으로, 공포 문학 작가를 철학자로 전환해서 읽는 독해 방식이다. 저자가 철학적으로 오독하기 위해서 가져온 작품들이 흥미롭다.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단편소설 검은 고양이, 거대한 괴물들이 나오는 러브크래프트(Howard Phillips Lovecraft)의 단편소설들, 단테(Dante Alighieri)신곡의 지옥 편, 도저히 인간이 썼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난해해한 로트레아몽(Lautréamont)말도로르의 노래.


 

철학의 공포라는 듣도 보도 못한 표현을 마주한 철학도는 의아할 것이다. 공포’를 철학적으로 사유할 수 있다고?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공포’를 어떤 상황에서 느끼는지 알아야 한다. 공포 문학의 거장인 미국의 소설가 러브크래프트는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인간의 감정이 ‘미지에 대한 공포라고 말한다. 








우리는 낯선 것을 만나면 의구심을 품는다. 의구심은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뜻한다. 우리는 낯선 것에 대해서 전혀 모르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한다. 두려움을 가까스로 추스르면서 이성적 판단을 시도한다. 두려움을 해소하려면 그것을 알아야 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안심이 된다. 하지만 공포 문학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미지의 대상을 만나면 이성이 마비된다. 그들은 두려움에 압도당한다. 초자연적 상황이 왜 일어나는지 설명하지 못하면 충족 이유율을 의심하게 된다. 따라서 충족 이유율을 믿고 따른 사람들은 누구도 설명하지 못한 초자연적 현상을 경험하면 철학의 공포를 느낀다.


유령과 괴물이 출몰하고 이상야릇한 환상이 가득한 공포 문학은 시시하지 않다. 공포 문학은 여전히 이성의 힘을 믿고, 이성에 의한 진보를 확신하는 우리의 오만한 낙관론을 의심한다. 공포 문학은 완벽해 보이는 이성과 충족이유율에 철학적 의문을 던진다. 이성과 충족 이유율은 허깨비다


철학은 설명하기 힘든 공포를 만나면 잠시 얼어붙는다그 순간 철학은 진격을 멈춘다철학이 멈추는 날은 철학의 종말을 뜻하지 않는다지금까지 숙고한 것들을 가다듬는다. 철학을 사랑하는 사람은 좌절하지 않고, 질문과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철학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고 해서 철학의 패배철학 무용론, 비관론을 부르는 것은 섣부르다철학을 내팽개치고 우리의 정신을 돌보지 못하면 생각하지 않는 괴물이 된다.









[1] <실천이성비판> 맺는말(맺음말)의 첫 문장. 임마누엘 칸트, 김석수 · 김종국 옮김 도덕형이상학 정초, 실천이성비판(한길사, 2019), 353. 임마누엘 칸트, 백종현 옮김, 실천이성비판(아카넷, 2019, 개정 2), 331.

 

[2] 도덕형이상학 정초, 실천이성비판<실천이성비판>(김종국 번역) 맺음말, 355.


[주3]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배선복 옮김, 모나드론 외(책세상, 2019), <모나드론>,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김미영 옮김,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나남출판,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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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5-10-10 0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글은 지금까지 읽었던 시루스님의 글과는 약간 다른데요. 철학과 공포라. 둘 다 너무 마음이 동하는 주제인데, 과연 어떻게 공포소설을 철학책으로 읽는지, 철학책을 어떻게 공포소설로 오독할 수 있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네요. 나중에 알려주실 건가요? ㅎㅎㅎㅎ

cyrus 2025-10-10 07:01   좋아요 0 | URL
현재 ‘철학의 공포’ 연작 두 번째 책이 번역되지 않아서, 이 책을 읽어봐야 알 수 있어요. 저자는 문학 작품을 철학 사상을 인용해서 분석하고 독해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견해는 틀릴 수 있다는 의미에서 ‘오독’을 강조했어요. 저는 이 단어가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철학을 좋아한다면 자신만의 해석을 내세울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어요. ^^
 
황현산 전위와 고전 : 프랑스 상징주의 시 강의 아주까리 수첩 3
황현산 지음 / 수류산방.중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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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고전 도서로 채워진 집은 편안하다. 아주 오래전에 나온 고전은 여러 번 읽어도 여전히 흥미롭다. 그래서 고전은 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고전의 매력에 푹 빠진 독자들은 고전의 집을 자주 찾는다. 이곳에 모인 독자들은 고전을 함께 읽으며 각자의 감상과 해석을 마음껏 표현한다.


고전의 집은 튼튼하고 오래 간다. 누구나 살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그러나 너무 튼튼하고 하도 오래돼서 문제다. 고전들만 꽂혀 있는 서재는 밀폐되어 있다. 밀폐된 서재는 생각의 성장을 방해하는 책들의 웅덩이. 이 웅덩이에 갇힌 독자들은 늘 똑같은 생각을 재차 얘기하면서 살아간다. 생각이 늙어버린 독자들은 고전을 비판하는 해석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거나 경계한다. 고전의 장점을 철저히 보호하려는 독자들은 고전의 집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그들은 고전을 파괴하는 책이 고전의 집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 그리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서 생소한 주제나 분야의 책들을 멀리한다겉은 멀쩡하지만, 내부는 케케묵은 고전의 집은 고집(固執)이 센 고집()’이다.


고전을 색다르게 읽는 행위는 전위적이다. 전위적인 읽기는 고전의 명성을 깎아내리는 일이 아니다. 고전을 다른 방식으로 건드리는 일이다전위대처럼 책을 읽는 독자는 기존에 나온 해석을 답습하지 않고, 이를 과감히 비판한다. 


전위와 고전: 프랑스 상징주의 시 강의황현산 선생의 마지막 프랑스 시문학 강의를 채록하여 정리한 책이다. 고인이 된 선생을 대신해서 쓴 서문은 서로 만나지 못하게 만든 전위와 고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전위는 고전의 반대말이 아니다. 그들은 고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전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가짜를 부정하는 자들이다. 시공을 초월해 고전이 내장해 온 정수에 가 닿지 못하는 예술, 그 숨겨진 것을 찾으려는 모험심을 자극하지 못하는 예술,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의식을 망각시키는 예술을 부정한다


(일러두기를 위한 서문중에서, 11)



쌩쌩한 전위는 얌전한 고전과 잘 어울리는 단어다전위는 쉽게 말하면 다르게 본다는 뜻이다전위적인 읽기는 늙은 고전을 좀 더 젊게 만든다하지만 고전을 깊이 읽지 않으면서 고전이라는 껍데기만 뒤집어쓴 독자와 전문가들은 다르게 보기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그들의 흑색선전은 성공했다. 고전 파수꾼은 고전을 잘 아는 전문가 또는 작가로 변신했다. 고전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출판사들은 초판본 표지를 씌운 고전들을 대량으로 만들었다








황현산 선생의 전공은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아폴리네르는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준 시인이다. 황 선생은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를 프랑스 근대 시문학의 시작점으로 설정하여 보들레르 이후의 시문학이 두 개의 계열로 나누어 발전했다고 말한다. 하나는 베를렌(Paul Verlaine)과 랭보(Arthur Rimbaud), 아폴리네르로 이어진 초현실주의 계열이다이 시인들은 개인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으며 논리와 규칙적인 문법에 얽매이지 않는 시구를 썼다반면 주지주의 계열에 속한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와 발레리(Paul Valery)이성의 힘을 믿었고, 단어 하나를 쓸 때도 논리적으로 생각하면서 썼다. 그래서 주지주의 계열의 시를 읽으면 마치 철학자가 쓴 시처럼 느껴진다.


초현실주의 계열의 시 문학은 전위, 주지주의 계열의 시 문학은 고전에 가깝다. 물론 주지주의 계열의 시인들 또한 전통적인 시작(詩作)법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시작법을 시도했으나 초현실주의 계열의 시인들은 주지주의 계열보다 좀 더 과감하게 시를 썼다. 대부분 문학 연구자와 비평가들은 주지주의 시인들을 높이 평가한다. 왜냐하면 시인이 시구에 숨겨 놓은 의미들을 읽을 수 있고, 설령 못 찾는다 하더라도 연구자와 비평가는 그럴듯한 해석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초현실주의 계열의 시는 연구자와 비평가를 당혹스럽게 한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러 번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시는 작품성이 떨어진 작품으로 취급받았다. 결국 주지주의 문학을 옹호하는 비평가들이 많아지면, 그들이 소개한 문학에 동조하는 문인들이 등장한다. 황 선생은 우리나라 해방 전후에 국내 영문학자들이 불문학 작품들을 번역하면서부터 주지주의 계열이 문단을 지배했다고 말한다초현실주의 계열 시인들의 작품은 독자들에게 덜 알려진 편이며 항상 난해함이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다.


고전에 대한 해석은 자주 반복되면 신선하지 않다. 그래도 독자들은 이미 누군가가 주장한 해석에 의존한다. 그들은 고전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착각한다. 이렇듯 모든 사람이 인정한 해석도 고전 껍데기로 들어가면 틀릴 수 없는 정답이 된다. 시험 점수를 잘 받기 위해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틀릴 수 없는 정답을 외운다. 이들은 문학을 자유롭게 감상할 여유가 없다. 학교에서 외운(배운) 문학을 전위적으로 생각하는 힘이 부족하다.


황 선생은 상징주의 시인들의 다양한 매력을 가리는 진부한 고전적인 해석에 문제를 제기한다. 랭보는 전통에 반항한 천재 시인또는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를 묘사한 상징주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생전에 랭보 전집 번역 작업을 진행했던 황 선생은 랭보의 문학이 사실주의에 더 가깝다고 주장한다. 랭보는 첫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철을 발표한 후에 시 쓰기를 그만두었고, 세계 이곳저곳 떠도는 노동자로 살아간다. 황 선생은 먹고 사는 현실적인 문제에 더 관심 있는 랭보를 주목한다.


고전 작품이 훌륭하다고 해도 전위적으로 읽지 않으면 칙칙한 고전 껍데기를 깨부수지 못한다. 고전 껍데기를 열심히 핥는 독자는 고전의 여러 가지 맛을 모른다고전의 여러 가지 맛을 모르고 살아왔음을 스스로 인식한 독자는 전위적인 독서를 한다. 전위적인 독자는 자신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고전 껍데기를 버리고, 고전 알맹이를 자유롭게 검토한다. 황 선생은 자신의 트위터에 자유롭게 검토할 지성이 없으면, 제가 잘났다고 뽐내는 일밖에는 다른 일이 불가능하다라는 글을 남겼다.[주1] 고전을 자유롭게 생각할 힘이 없는 독자는 텅텅 빈 고전 껍데기를 요란하게 흔든다. 요란한 독자는 자기가 잘났다고 뽐낸다.






[1] 2015111일 트윗. 황현산,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2014-2018 황현산의 트위터(난다, 2019), 110.








<전위대처럼 책을 읽는 cyrus의 주석과 정오표>





* 21






보를레르 보들레르






* 28





몰트케(Helmuth von Moltke, 1848~1916) [2]




[2] 몰트케의 생몰 연도가 잘못 적혀 있다. 독일의 군인 헬무트 폰 몰트케는 두 명이다. 보불 전쟁에 승리한 프로이센 군의 참모총장 몰트케는 1800년에 태어나 1891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와 이름이 같은 조카 헬무트 폰 몰트케(1848~1916)는 제1차 세계 대전의 독일 제국 군을 지휘했다두 몰트케를 구분하기 위해 보불 전쟁에 참전한 몰트케를 () 몰트케,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조카를 () 몰트케로 표기한다.

 





* 195




 

 아무렇게나 말해 버림으로써, 계산하지 않음으로써 의미가 돋보이지 않고 노래만 남게 하는 방식으로 시를 만듦니다.



만듦니다. 만듭니다.






* 225




 

영국의 주지주의로 데이비드 흄, T. S. 엘리엇 등이 있다. [3]




[3] 20세기 영국 문학의 유파인 주지주의는 1차 세계대전 전후에 등장했다흄의 이름이 잘못 적혀 있다.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은 영국 경험론을 완성한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 T. S. 엘리엇(T. S. Eliot)과 같은 시기에 활동한 영국의 주지주의자는 T. E. (T. E. Hulme, 1883~1917)이다.






* 398





 


아폴리네르가 태어난 날짜는 826일이다갓 태어난 아폴리네르의 세례명을 지어준 성당의 영세부에 적힌 아폴리네르의 출생 날짜는 825이다.








[참고 문헌]

 

* 아폴리네르, 황현산 옮김, 알코올(열린책들, 2010)

기욤 아폴리네르 연보337

 

* 황현산, 아폴리네르: 알코올의 시 세계(건국대학교출판부, 1996)

 

* 파스칼 피아, 황현산 옮김, 아뽈리네르(열화당,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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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8-26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런 종류의 책들은 웬만한 내공이 아니면 좀처럼 읽을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cyrus 2025-08-26 14:38   좋아요 0 | URL
황현산 선생님도 프랑스어로 쓴 시를 읽고 연구하는데도 읽을 때마다 이해되지 않는 시 구절이 있고, 우리말로 번역하면 난감할 때가 있답니다. 시가 어려울수록 독자는 마음대로 생각하고, 느끼고, 해석할 수 있어요. ^^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 - 내면의 삶을 기르는 배움에 대하여
제나 히츠 지음, 박다솜 옮김 / 에트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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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공부 기계는 잘도 도네, 돌아가네.

공부 기계는 성적에 미쳐 돌아가네.









공부 기계의 연료는 수험서와 문제집이다. 공부 기계는 눈에 보이는 모든 문제에 매달려서 싸운다. 학교는 공부 기계를 제조하는 공장이다. 교사와 교수들은 공부 기계의 머리에 실용적인 학문과 기술 분야를 주입한다. 그래야만 사회에 쓸모 있는 공부 기계를 최대한 많이 만들 수 있다. 팔려 나간 공부 기계는 회사에 쓸모 있는 로봇(robot)이 된다. 로봇은 여전히 공부 기계다. 회사는 로봇을 믿고 강제로 공부를 시킨다.[주1] 로봇은 회사에서 인정받으려면 공부를 멈출 수 없다




공부 기계는 잘도 도네, 돌아가네.

새파란 청춘이 하얗게 녹슬 때까지

공부 기계는 끝없이 돌아가네.




공부 기계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공부를 찾아야 한다. 공부를 찾는 사람은 성적을 잘 받고 싶거나 학력을 쌓기 위해 공부하는 인간이 아니다. 우리가 찾아야 할 공부는 나 자신을 위한 공부나 자신을 위해 공부한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에 내 마음을 힘껏 뻗치는 일이다.


공부를 찾는 사람은 배움에 대한 사랑이 두텁다. 그래서 호기심이 마르지 않는다. 자신이 궁금해하거나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찾으려고 한다. 반면에 공부 기계는 배움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다. 명예욕이 줄어들지 않는다. 그들은 개인의 출세를 위해서 공부한다. 겉으로 보면 스스로 공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공부 기계가 책상에 앉아서 하는 일은 명예욕을 동력으로 삼아 머리를 빠르게 굴리는 것이다. 공부 기계는 돈을 부르는 학문이나 관심사에 열중한다.


공부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는 요란하다. 그들은 자신이 공부하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한다. 공부 기계는 학벌과 인맥을 전시한다공부 기계들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더 이상 공부를 찾지 않는다. 공부를 찾는 일은 지루하고, 화려하지 않다. 재미없는 공부는 재물이 도망간다공부 기계에 익숙한 사람들은 경제적인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 공부를 쓸모없다고 여긴다.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 내면의 삶을 기르는 배움에 대하여오랫동안 공부 기계에 박혀버린 공부를 빼내는 책이다. 저자는 우리가 찾아야 할 공부의 참모습을 알려준다. 공부 기계는 지식을 집어삼켜 머리에 욱여넣는다. 지식이 급하게 삼켰으니, 소화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본인의 입맛에 안 맞는 지식, 제 눈에 초라해 보이는 쓸모없는 지식을 뱉어낸다. 하지만 공부를 찾는 사람은 차분하다. 배움에 대한 사랑은 지식을 차별하지 않는다. 배움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은 남들이 쓸모없다고 여기는 지식을 소중하게 대한다. 지식을 천천히 음미하고, 씹으면서 생각한다공부를 찾는 사람은 공부를 즐긴다.


저자는 공부에 달라붙은 편견과 오해들을 제거한다. 상아탑에 거주하는 공부 기계는 지식을 쌓는다. 지식으로 지어진 상아탑의 문턱은 점점 높아진다. 평범한 사람들은 상아탑에 들어올 수 없다. 상아탑에 지식인만 갇히는 것이 아니다. 상아탑은 공부도 가둔다. 공부에 친하지 않은 사람들은 공부는 전문가들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공부가 전문가와 지식인들만 하는 직업상의 활동이 아니라고 말한다. 공부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공부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공부에 갈망이 있는 사람은 상아탑이 아니더라도 마을 도서관 안에서, 독서 모임에서 공부를 찾는다공부에 대한 갈망이 큰 사람은 상아탑을 직접 부수고 들어올 수 있을 만큼 지적 역량을 향상시킨다.


우리는 공부하기 전에 내가 알아야 할 지식을 어디에 써먹을 수 있을지 생각한다. 이 생각이 길어지면 공부를 찾고 싶은 갈망이 줄어든다. 공부 기계는 경제적인 부를 축적하기 위해 지식을 축적한다. 저자는 실무에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을 공부하거나 성과를 달성하기 위한 공부 활동을 도구적 이용이라고 한다. 공부를 찾는 사람은 실용성을 따지지 않는다. 지식이 궁금해서 공부한다.


공부 기계는 공부하지 않는 사람공부를 못하는 사람을 배척한다. 공부하지 않는 사람과 공부 못하는 사람은 대체로 공부에 흥미를 잃은 사람들이다. 학교 공장에 일하는 공부 기계 교사와 교수는 공부 기계가 되지 못한 학생들의 근성을 지적한다. 공부 기계들이 지배한 사회는 주입식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학교 공장 밖에 있는 지식을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괴짜로 취급한다.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디오게네스의 등불과 같은 책이다. 거리를 떠돌면서 살았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 of Sinope)낮에 등불을 들고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등불을 밝혔다.[주2]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수많은 공부 기계가 분주히 움직이는 세상에 가려진 사람들, 공부를 찾아 나서는 평범한 사람들을 찾기 위한 등불이다.








그렇다면 공부를 찾는 사람들이 항상 들고 다니는 등불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호기심과 궁금증이다. 우리가 배운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 수명이 다해서 빛나지 않는다. 영원한 진리는 없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호기심과 궁금증이 빛나는 등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등불에서 나오는 빛은 새로운 지식으로 이끌어준다. 배움을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호기심과 궁금증을 켜둔다.



공부 기계는 잘도 도네, 돌아가네.

어디선가 공부를 찾는 사람의 호기심은 밤새 빛나고.

 





     

 


    <cyrus가 만든 주석과 정오표>







[주1] 로봇의 어원인 체코어 robota강제 노역, 고된 일을 뜻한다. 참고문헌: 카렐 차페크, 유선비 옮김, R.U.R.: 로줌 유니버설 로봇(이음, 2020)



[주2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김주일 · 김인곤 · 김재홍 · 이정호 함께 옮김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1(나남출판, 2021), 509.




* 146




 

 소크라테스는 동료 시민들에게 끊임없이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개똥벌레[주3]처럼 시민들을 귀찮게 건드려서 그들이 가진 삶의 가치관에 의문을 제기하게끔 한 자신의 행동이 시민에 대한 봉사라고 주장한다.


* 원문, 89쪽

 

 Socrates claims that his relentless philosophical questioning of his fellow citizens is a civic service, as, like a gadfly, he stings and annoys them and forces them to question the values that they live by.

 


[3] 개똥벌레는 오역이다. gadfly소와 말의 등 주변에 날아다니는 등에와 쇠파리를 뜻한다.잔소리꾼을 비유하는 단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자신을 (아테네 시민들을 귀찮게 하는) 등에로 비유한 소크라테스(Socrates)의 말은 플라톤(Plato)소크라테스의 변명에 나온다.

 

 여러분이 날 죽인다면, 이런 유의 다른 사람을 쉽게 발견하지 못할 테니까요. 좀 우습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을 하자면, 그야말로, 마치 크고 혈통 좋지만 큰 덩치 때문에 꽤 굼뜨고, 어떤 등에가 있어서 일깨워 줄 필요가 있는 말()과도 같은 국가에 신이 붙여 놓은 그런 사람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30e, 78, 강철웅 옮김, 아카넷, 2020)





* 331쪽, 주







올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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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5-06-30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은 점점 등에 같은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cyrus님도 등에 같은 신 분입니다. 드디어 찾게 되었네요. 나타나 주셔서 감사합니다. _()_

cyrus 2025-07-06 17:01   좋아요 1 | URL
저는 한 방 크게 쏘는 말벌이 되고 싶은데, 현실은 파리입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