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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실험 10장면
로렌 슬레이터 지음, 조증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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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한 광고

6월 23일, 16강 진출의 명운이 달렸던 한국 vs 나이지리아 전.
우리나라의 첫 원정 16강 진출의 역사를 보기 위해서 새벽 3시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만 40만 명의 시민들이 밤샘 거리응원에 참여했다.
이에 힘입어 청와대도 시민들과 함께 응원을 하기로 공식 트위터에 알려 
청와대 직원들이 시민들과 함께 나이지리아 전에서 열띤 응원을 펼쳤다.
청와대 내에도 아닌, 그리고 청와대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대통령과 함께 하는
응원은 아니었지만, 이전에 청와대가 가졌던 엄중하고 폐쇄적인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시도였다. 
청와대의 행사는 그 이전에  먼저 몇 몇 네티즌들이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거리 응원을 제안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축구 거리 응원에 참여하는 시민 대부분이 젊은 층임을 감안하면
시민들의 제안에 청와대는 눈 감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젊은 층에 대한 정치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며 이번 6.2 선거가 젊은 층의 변수가 컸기에
이미지 쇄신이 필요했다. 결국 월드컵이라는 시기에 맞물려
청와대뿐만 아니라 정부가 시민들에게 보다 좋은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
특별한 광고를 알린 것이다.  

  

 

 

 

 22년 전으로 회귀 

 

잠깐만, 월드컵 기간이 되고나니 뭔가 잊혀져가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천안함 사건 진상 규명과 세종시 수정안 및 4대 강 사업, 그리고 나로호이다.
비록 세종시 수정안은 상임위에서 부결되었지만  

4대 강 사업에 대한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부는 월드컵 열기를 틈타 어떻게든 4대 강 사업을 강행하려는 눈치다.
천안함 사건은 북한과의 대립 긴장이 팽돌았던 몇 주과 비교하면 많이 시들해져 있다.
월드컵 개막 전에 천안함 사건은 북한이 저지른 국제 위반이라면서
UN 안보리에서 진상 규명을 각국에 설명하였지만 세계의 반응이 생각보다 미지근하다.
오히려 우리나라 내부에서는 정부의 천안함 사건 원인 발표가  

조작되었다는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반대 여론도 월드컵 열기에 가려져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나로호가 생각보다 너무 빨리 잊혀졌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충격적인 나로호의 발사 실패를 빨리 잊고 싶었던 것일까?
나로호 2차 발사 시도를 보기 위해서 나로호 우주센터에 모였던 사람들은
앞으로 열릴 월드컵 대표팀의 16강전에 집중하고 있다.
결국은 월드컵 때문에 중요한 국내 정치 여론이 묻히고 있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
22년 전, 제5공화국 시절의 전두환 정부 때와 유사하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점점 선진국으로 발전하고 있는  

한국의 이미지를 한 단계 드높여주었다.
하지만 올림픽이라는 큰 행사 뒤에는  

독재 권력의 유지라는 어두운 속내도 있었다. 
남아공이 월드컵 유치 확정 이후에 가난한 나라의 티를 벗기 위해서
나라의 절반을 이루고 있는 빈민촌을 강제 철거하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올림픽 개최 전에 서울에 있는 노점상들을 단속하여 강제 철거를 단행하였다.
노점상을 비롯한 도시빈민들은 올림픽을 참관하는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기에는
부끄러운 존재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에 올림픽 기간 중에 서울의 노점상들이 모여 정부에 반발하는 단결 집회를 열었으나,
서울 올림픽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 때문에 빛을 보지 못했다. 
 

모든 여론 수단을 동원하여 국민들에게
서울 올림픽이라는 자국에서 개최하는 국제적 행사를 홍보하는데 열을 올렸다.  

결국 국민들은 여론이 전달하는 정보에 무의식적으로 각인되어

자신의 나라에서 개최하는 올림픽에 무조건 집중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를 통해, 국제 스포츠 대회를 이용한 포퓰리즘을 보여주고 있다.

청와대의 행사는 분명 시민들과의 응원을 통해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의도이기는 하나,

22년 전처럼 월드컵으로 시끄러운 국민의 여론을 잠재우고 

국민의 인기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적 뉘앙스가 드는 것은 지울 수가 없다.   
 

국민들이 금메달을 따는 우리나라 선수들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동안
정부에 부당하게 억압받은 힘없는 소수민들은 분노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22년 뒤, 우리나라 대표팀의 16강 진출에 밤을 새며 기쁨의 열기를 만끽하고 있는 동안에
나로호 연구센터 관계자들은 보고 싶은 가족들을 뒤로 한 채  

오늘도 발사 실패 원인에 대해 밤을 새며 머리를 싸매고 있으며,
어머니는 천안함 사고로 잃어버린 아들이 그리워서 

오늘도 밤을 새며 슬픔에 잠겨 있다.
  

 

 

 

 스키너의 유토피아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가 스키너가 꿈꿔왔던 세상일지도 모른다.
심리학자 스키너는 인간을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동물로 인식하고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인간은 단순한 반사 기계가 아닌 행동의 결과로  

자신의 행동까지도 바꿀 수 있는 대상으로 보았다.
즉, 인간은 보상과 처벌이라는 환경으로 인해 행동이 결정되며,
인간에게는 자유 의지가 없는 자동 장치라는 것이다.
그래서 스키너는 자신의 실험을 세상에 적용시킨 이상(理想) 국가를 제시한다.
조건반사를 이용하여 시민들을 로봇처럼 제어하는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다.
조건반사는 학습에 의해서 익히는 특정한 자극으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삼겹살을 먹는다고 가정해보자.
삼겹살 고기 몇 점이 구워져가는 소리와 구우면서 생기는 고기 냄새로 인해
우리는 삼겹살이 맛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다음에 삼겹살이 구워져가는 소리를 듣거나 냄새만 맡아도 우리는 입 안에 침이 고인다.
대뇌피질의 자극으로 인해 우리는 맛있는 삼겹살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월드컵 조건 반사

우리나라는 이번 월드컵을 포함해서 7회 연속으로 진출했으며
연수로 따지면 24년 동안 월드컵에 얼굴을 비추었다.
우리나라 대표 팀이 세계 축구 강국들의 축제인 월드컵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국민들은 기뻐하고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게 되며
전 세계의 스타급 축구 선수들이 등장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다.
거기에다 2002년에는 4강 진출이라는 성적으로 대한민국은 축제 분위기였다.

하지만 우리나라 월드컵 24년은 월드컵 참가라는 백(白)과
숨기고 싶고, 잊히고 싶은 흑(黑)이 공존하는 복잡기괴한 역사였다.
1986년 월드컵의 흑은 제5공화국 정부의 독재 정치,
1994년 월드컵의 흑은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전쟁 위기설 때문에 흔들렸던 민심,
1998년 월드컵의 흑은 IMF 외환 위기를 불러온 무능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냉랭한 민심,
2002년 월드컵의 흑은 월드컵 기간에 발생한 연평해전,
2006년 월드컵의 흑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 계획으로 인한 한반도 긴장 고조.
월드컵이 개최했던 해들을 되돌아보면 공통적으로 국내 정세는 어두웠다.

하지만 우리는 이상하게도 월드컵 때만 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 듯이
국내의 민감한 문제들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거나 

전에 가지고 있었던 사회에 대한 감정과 정서들은 잊히곤 했다. 
역대 정부는 국내 정세의 안정화를 도모하기 위해서
여론을 이용하여 월드컵에 집중시키려는 의도적인 정치적 무관심을 만들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의도적인 정치적 무관심은  

독재 정권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적 사회 현상의 원인을 정부 탓만 돌릴 수는 없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24년 동안 월드컵 기간의 즐거움을 학습하게 되어
월드컵 기간만 되면 무의식적으로 그 때 기억이 되살아나
온통 머릿속에는 월드컵에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월드컵 이전에 관심 가졌던 것들은 머릿속에 사라지게 된다.
국민들의 뇌에는 온통 ‘월드컵’, ‘우리나라 16강 진출’ 밖에 없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월드컵이라는 조건 반사에 집단적인 반응을 하고 있는 셈이며
국민들은 월드컵이 주는 기쁨의 보상이라는 환경으로 인해
지나친 월드컵 관심이라는 행동의 결과가 드러난 것이다. 
 

 

  

 

 심리 실험을 통한 세상 바라보기

스키너가 죽은 이후에, 심리학계에서는 그의 연구에 대한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인간을 기계처럼 동등하게 여겼으며, 인간의 자유 의지는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심리 실험이 비(非) 인간적이며 내용 자체가 잘못되더라도
스키너가 바라던 유토피아는 분명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다. 

44년 만에 월드컵에 진출한 북한 대표 팀의 선전을 이용하여   

북한 정부도 뒤숭숭한 국내 민심을 추스르려고 하였다. 

월드컵 중계권도 없으면서 북한과 브라질의 경기를 무단 중계하였으며 

포르투갈과의 경기는 생중계까지 하여  

점점 위축되어져가는 북한 노동당과 김정일 선전 구축에 시도하였다. 

국민들의 감정을 로봇처럼 제어하려는 북한 정부가 스키너의 유토피아와 흡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스키너의 유토피아는 허구라고 규정지을 수 없다.  

그의 유토피아는 허구적인 토머스 모어와 비교하면 직접 실험에 기반을 둔 실증론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스키너의 실험이 무조건 비난만 하기에는 찝찝한 구석이 있다.
이 책의 실험 내용을 읽으면서 결과에 대해서
독자들은 단순히 비난과 칭찬이라는 고정된 사고로 결정하는 것보다는
먼저 이 실험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비춰보고
그 다음에 옳은지 그른지 결정하는 것이 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악명 높은 심리 실험들의 이야기로만 읽을 것이 아니라
실험 결과들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비추어보면 

우리가 색안경으로 인해 보지 못했던 세상의 면면들이 보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한층 더 높아질 것이다.

  

 

인용 관련기사 출처 및 링크 

 

[靑, 네티즌들과 월드컵 합동 응원] YTN 6월 22일 입력
http://www.ytn.co.kr/_ln/0101_20100622165242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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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철학의 역사 시공 아크로 총서 6
브라이언 매기 지음, 박은미 옮김 / 시공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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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철학 사상과 미술 그림과의 조화로 어렵지 않게 읽혀지는 철학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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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를 말하다 - 인류최초의 지식인간
존 스트로마이어.피터 웨스트브룩 지음, 류영훈 옮김 / 퉁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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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Quiz. 다음 세 가지 보기의 공통점은? 

 

1) 한 스승과 제자들로 보이는 남자들이 병사들에게 쫓기어 도망가고 있었다.
    정신없이 도망가다 보니 그들의 앞에 넓은 콩밭이 있었다.
    제자는 스승에게 콩밭을 가로질러 가자고 재촉하였으나 스승은  

    콩이 싫다는 이유만으로 도망가기를 거부하였다. 결국 그들은
    병사에 체포되어 그 자리에서 살해되고 말았다.  

 

2) 어느 죄인이 왕이 보는 앞에서 사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죄인은 마지막으로 부모님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왕에게 간청하였다. 
    왕은 죄인의 소원에 탐탁치 않게 여겼으나 사형장에 있던 죄인의 친구가  

    보증을 서겠다면서 만약 친구가 돌아오지 못하면 자신이 처벌을 받는다고 하였다.
    왕은 친구의 말을 믿고 죄인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죄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왕과 주위 구경꾼들은 죄인이 도망갔다고 생각하였고 친구에 대한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하지만 죄인은 가까스로 약속 시간 안에 도착하였다.  

    왕은 약속을 끝까지 지킨 죄인의 행동과 친구의 우정에 감탄하여
    죄인을 사면하게 해주었다. 
 

 3) a2 + b2 = c2 
 

 

1번 보기는 생소한 일화라고 치더라도
2번 보기는 이솝 우화에 나오는 친구의 우정을 강조하는 내용이고
3번 보기는 학창 시절에 수학 좀 했다거나 수학이라면 질색인 사람들도 수업 시간에
많이 보던 ‘피타고라스의 공식’ 이다.

이제 답은 나온 거 같다. 하지만 보기에 나오는 콩을 싫어하는 스승과
우정에 관한 일화가 피타고라스와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일까?  

  

 

 수수께끼의 학파  

 

세 가지 보기의 정확한 답을 말하자면 ‘피타고라스 학파’ 이다.

그의 이름을 딴 수학 공식이 지금까지도 수험생(?)들에게 큰 영향력을 주고 있어
우리는 그를 수학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학문을 계승하기 위해 공동체 생활을 하는 집단을 만들었는데
그 집단이 ‘피타고라스 학파’다.
이 학파는 피타고라스가 제창한 지식과 계율을 실천하면서 집단 생활을 하는

지식과 종교가 혼합된 학파였다. 학파의 대표적인 계율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 콩을 먹어서는 안 된다.

   2. 떨어진 물건은 주워서는 안 된다.

   3. 통째로 음식을 들지 말라.

   4. 말 위에 앉지 마라.

   5. 마음을 졸이지 마라.

 
   


특히 1번 계율은 앞에서 언급했던 1번 보기 내용과 일맥상통하다.

피타고라스의 죽음에 대해 많은 일화들이 와전되고 있는데
1번 보기는 그 중의 하나이며 그만큼 피타고라스가 자신이 세운 계율을  

끝가지 고수하는 면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그는 모든 사물들은 조화(Philia)에 따라 구성이 되며 미덕이라고 강조하였다.
질서와 조화를 지니고 있는 우주, 즉 ‘코스모스(Cosmos)'라는 개념을  

처음 정립하게 된다.
그래서 피타고라스 학파는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이  

조화가 이룬 아름다움의 결정체라고 여겼고
소속되어 있는 학파 사람들과의 '우정'을 중요시 여겼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피타고라스 학파를 ‘수수께끼의 학파’ 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학파에 대한 기록들이 지금까지 많이 전해 내려오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피타고라스와 그의 학파들을 알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전해 내려오는  

단편적인 기록들과 세월이 지나서 와전된 일화들로만 알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들의 단체가 더욱 더 우리에게 궁금증을 증폭하게 만드는 이유는
아마도 비밀 종교 단체의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입단 시에는 학파의 계율을 지키겠다는 절대적 복종과 학파에 대한 비밀을 유지해야 했다.
학파 내의 절대 복종은 스승 피타고라스의 권위를 존중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학파 일원들이 발견한 학문의 성과는 무조건 스승의 업적으로 돌려져야만 했다.
그런 학파의 독특한 분위기 속에 피타고라스는 교주로서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게 된다.
그의 신적 행동과 관련된 일화가 있는데
콩만 먹는 소에게 귓속말로 콩을 먹지 말라고 속삭였더니 소가 콩을 먹지 않았다거나
자신의 허벅지에 신의 증거가 있다는 등 마법과 기적을 부렸다고 전해진다.
지금으로 생각하면 사이비 종교단체로만 볼 수 밖에 없겠지만
당시 고대 사회에서는 피타고라스 학파 외에도 비밀 종교 단체와 같은 것이  

성행하였다고 한다.
학파 일원 중에도 귀족들도 있는 걸로 보아서는 대중적인 단체였음을 알 수 있다.
또 정치적으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였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몰락

 

하지만 동, 서양사에서 등장했던 밀교(密敎)들은 반짝 성행하다가  사리지게 마련이다.
결국,  피타고라스 학파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는데  

그 원인은 학파의 지나친 정치적 영향력 행사는 원로원 기득권층의 불만을 사게 되고
이를 구실삼아 역모를 꾸며 시민들을 선동하게 하여  

한 때 대중적이었던 피타고라스 학파는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학파 일원들은 추방당하게 되고 교주 피타고라스는   

도피 생활 중에 타지에서 죽었다는데
그의 죽음에 대한 일화가 많아서 죽음까지도 그의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자리 잡게 만들었다. 
 

피타고라스 학파 자체는 와해가 되었어도 그들의 사상은 고대세계 전역으로 번져 나갔다.
사상의 영향력은 중세까지도 전해져 내려왔다.
여기서 인상깊은 것은 그때까지도 '학자' 피타고라스보다  

피타고라스 '신'으로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비밀 종교를 바라보는 시선 

 

피타고라스 학파는 외부의 기득권층에 의해 무너졌다.
하지만 외부의 압력만으로 인해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학파가 쉽게 무너졌을까?
비밀을 고수해야 하는 폐쇄적인 종교 단체는 대중성을 잃은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그것도 대중성의 영향이 큰 정치계에 무심코 손을 뻗었으니
결국 피타고라스 학파 스스로 자멸하게 된 행동이었다.

우리 사회에서도 비밀 단체를 그닥 좋지 않게 보지 않는 이유가 있다.
밀교의 전형적인 특징인 비밀스러운 단체 분위기가 사람들이 좋게 보지 않는 것도 있고
더 큰 원인은 종교 단체를 대표하는 인물, ‘교주’의 맹목적인 신앙 강요와
비이성적인 행동은 더욱 더 그와 종교 단체를 대중들은 이상하게 여기게 된다. 
 

몇 년 전에 JMS 교주 정명석이 중국 도피 생활 끝에 체포, 구속된 적이 있다.
물론 그가 구속되어야 할 이유는 종교 단체를 만들어 혹세무민한 것도 있었으나
자신의 종교 단체의 여성 신도들에게 성폭행을 했다는 혐의도 있었다.
결국 사람들에게 참된 종교의 진리를 설파해야 하는  

종교인의 기본 자세에 벗어난 행동이다.

우리는 종교에 대한 자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만 해도 기독교, 불교, 천주교뿐만 아니라 이슬람 교, 힌두 교인들도 있다.
종교들마다 내용은 차이가 있으나
결국 우리가 종교를 가지는 이유가 종교를 가지면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일 것이다.
거기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그 종교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자신에게 맞는 종교를 잘 선택하는 것이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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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힘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 사계절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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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들의 新 성향, 쿼터리즘  

  

  최근 어느 연구 조사 결과에 의하면 예, 아니오가 주류를 이루는 디지털 사회에서  

현대인은 15분 이상 집중하기 어렵다고 한다. 수많은 TV 채널 속에 시선이 멈추는  

프로그램을 찾기란 어렵고, 인터넷에서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정보들의 의미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채 다른 페이지로 이동한다. 복잡한 것보다는 단순 명확한 것을  

찾는 것이다. 이러한 풍조를 '쿼터리즘' 이라고 한다. 신세대의 사고와 행동에 걸리는  

시간이 기성세대의 4분의 1, 혹은 15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해서 생겨난 말이다.  

이들은 '생각은 짧게, 행동은 빨리‘ 하고 있다. 고속 정보통신과 영상매체의 급격한 발전이   

한 가지 일에 진지하게 접근하고 집중하는 능력을 잃게 하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분야에 대해 15분도 채 대화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부족한 지식을  

가진 10대들이 늘고 있다. 
  

 

"고민하는 힘을 기르자!"  

 

  그러면 컴퓨터와 TV에 빠진 무미건조한 젊은 세대들을 가만히 놔둘 것인가?  

이 문제  해결 방안으로 어느 일본의 교수는 말한다.  
 

  ‘젊은이들이여, 고민하는 힘을 기르자!’  
 

  이 책의 저자는 강상중이라는 일본 도쿄 대 소속의 재일 교포 교수이다.   

일본 학계에서는 ‘강상중 열풍‘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보다 일본에 많이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자신이 고민했던 삶의 방식을 말하면서 자아와 자유, 일, 사랑, 돈 등  8가지  

다양한 삶의 의미를 고민하면서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특히 이 책을 시작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는 동 서양 지성사의 오래된 고민거리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젊은이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고 설파했다.   

신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지시하던 시대였기에, 인간은 아무것도 생각할 이유도 없이 

복종만 해야 하던 시대이기에 이 명언은 인간 중심 철학의 시작을 알렸다.  

시간이 지난 지금, 컴퓨터와 TV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였기에  

그리고 세계화라는 거대한 문화와 복합되어 가고 있는 시대이기에 저자는  

고민거리를 해결하는 것보다  이 고민거리들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소세키, 베버 그리고 테츠오

 

  저자는 인간이 변화의 흐름에 부적응하게 되면 소외와 고립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본인 역시 재일교포라는 인생의 이름표 때문에 젊은 시절부터 민족 차별의  

상처의 아픔과 자아 정체성 혼란에 대한 고립감을 느꼈음을 토로한다.  

  그는 일본 근대 문학의 아버지인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와 사회학을 발전시킨  

막스 베버라는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일 것 같은 두 인물을 통해 고민하는 힘을  

키워나가게 되는데 자못 독특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 인물이 언급되면서부터  

내용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염려하였으나 직업인 교수답게 젊은 독자들을 위해  

자신의 삶과 자신이 탐구하였던 두 인물들과 결부시켜 쉽게 설명하였다.  

  나쓰메 소세키, 막스 베버. 그리고 재일교포 나가노 테츠오.  

   

  시대와 국적, 탄생 배경은 다르지만 이 세 사람의 사고방식은 너무나 닮아 있었다.  

나쓰메 소세키가 살던 일본은 서양 열강이 진출하고 있었던 시기였으며 젊은 문학도는 

근대 일본의 발전에 대해 ‘고민’하였다. 그 반대로 막스 베버의 조국인 독일은 제국주의를 앞세워  

유럽,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아시아까지 세력을 확장하려고 하였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일명 ‘엄친아’였던 막스 베버는 자신이 무엇을 공부해야 할 지  

‘고민’하였다. 그리고 100년 후, 나가노 테츠오는 고 성장 산업화 시대 속에서  

젊은 시절을 ‘고민’을 벗하며 살았다. 후에 이들의 고민했던 결과들은 수십 년 후,  

자신들의 삶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다. 이 동양인은 젊은 시절 사유의 결과들을 소설로  

표현함으로써 일본 문학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되었고, 바다 건너편에서는  

신경쇠약을 걸리면서까지 고민했던 서양인은 오늘날의 여러 사회과학 분야에 대해서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 고민했던 재일교포는 자신의  

민족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면서 이제껏 써왔던 나가노 테츠오를 버리고, ‘강상중’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최초로 대한민국 국적으로 도쿄 대학교의 정교수가 되었다. 
  

 

고민하는 힘의 중요성 

   

  저자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힘을 키울 수 있었고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도 이 책을 읽고난 뒤에도 아직은 

‘생각’, ‘고민’이라는 단어는 무척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젊음의 생각과 고민들은 젊은이들의 특권이다. 오랜 옛날, 고대 아테네의 

젊은이들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모든 젊은이들까지 위인들을 거울삼아 자기 자신에  

대해 알려고 하였고, 자신을 표현하면서 세상을 주도하였다. 일제 강점기 시절,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고민했던 학생들은 유관순을 본받아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으며,  

60년대 학생들은 민주화 시위 도중 의거를 한 김주열 열사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4월 19일, 이승만 독재 정권에 맞서기도 하였다. 이제 다음 세대인 우리가 그 특권을 누릴  차례가 왔다. 

 

   리쌍의 ‘변해가네’ 라는 노래 가사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너무 쉽게, 너무 빨리, 그리고 모두 변해가네.’ 그러기에 세상 앞에 때론 숨고 싶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좋거나 싫거나 우리 젊은이들은 변화 속에 살아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 그리고 진지하면서도 치열하게 고민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 ‘역사가 될 것인가, 전사가 돼 정상을 향해 뛸 것인가.’ 이 노래 가사 구절처럼 젊은 세대들은 인생의 두 갈래 길에서 어느 길에 가야할 지 선택해야 한다. 젊은 세대들이여, 당신은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던 ‘역사’라는 길에서 갈 것인가, 아니면 아무도 가지 않은 ‘정상’이라는 길을 향해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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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11-06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이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주인장은 무척 좋게 봤나보군요. ^^

마지막 구절에 리쌍의 노래 가사 도 잘 봤어요

cyrus 2010-11-06 15:5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매버릭꾸랑님^^

저도 맨 처음 군 부대있을 때 읽을 때는 별로 와닿지 않다가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으면 이해를 못하는
책일 겁니다.) 계속 읽게되니 (군 부대 소장되어 있는 책이 한정되어
있어서) 의미 있는 내용 같더라고요, 그래서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에 대한 책을 읽어보고 강상중 씨의 이 책을 다시 한 번
재독하려고 합니다.

별해무 2017-03-06 17: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의 서평들 뒤부터 읽고 있어요. ㅋㅋ 제가 읽지 못하고, 읽지 않은 책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네요. cyrus님의 서평들 하나씩 읽어보면서 책도 읽어봐야겠어요. 고민하는 힘은 도서관에 있던데, 과학의 변경지대는 울 도서관에 없네요. 다른 도서관 찾아봐야겠어요. ㅋ 절판되어서 구매할 수도 없네요. 제가 장르소설을 좋아해서 ㅋ 이 위주로 책을 읽다보니 뭔가 생각도 정체되는 것 같고 다양한 독서를 하고 싶은데 그게 또 생각처럼 쉽지 않고 말이지요. 특히 어려운 정치, 경제, 사회이런 건.... 더더더 안 읽게 되더라고요. ㅠ 어쨌든 조금씩 도전해 보지요. 이러면서 또 장르소설 대거 구입 ㅋㅋㅋㅋ -ㅠ-

cyrus 2017-03-07 14:24   좋아요 0 | URL
제 글은 딱히 볼만한 내용이 없어요.. ㅎㅎㅎ 저도 절판본을 읽고 싶을 때 난감해요. 사지도 못하고, 집 근처 가까운 도서관에도 책이 없는 경우가 있어요. 다른 분들의 서재나 북플을 볼 때마다 엘리카님의 리뷰가 있으면 읽어봅니다. 정독까지는 아니지만, 엘리카님의 리뷰는 정성이 느껴져서 글 읽고 나면 ‘좋아요’ 누릅니다. 사실 장르소설 리뷰를 길게 쓰는 분은 많지 않아요. 요즘은 리뷰를 짧게 쓰는 것이 글 쓰는 사람이나 글 보는 사람에게 좋지만, 정성과 성의가 없는 짧은 글은 별 내용도 없을뿐더러 감흥이 일어나지 않아요.

제가 장르소설을 많이 안 읽는 편입니다. 독서 편식이 심해요. 정치, 경제, 사회 관련 분야의 책을 안 읽는다고 해서 나쁘게 보지 않아요. 어떤 관심 분야의 책에 흥미가 생기면 바로 읽는 것이 낫습니다. 독서의 재미를 느끼면서 책을 읽는다면, 한쪽 분야의 책을 읽어도 문제없다고 생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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