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 EBS <인문학 특강> 최진석 교수의 노자 강의
최진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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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보다 더 살고, 잘 보이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자신의 유능함을 과시하는 성향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부자와 빈자가 구분되는 세상이 되면서 부자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특별한 단어’를 만든다.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도 귀족이 되는 부자들은 자신만의 계급의식(class consciousness)을 드러내고 싶었다. 혈연관계 중심으로 신분이 세습되는 고대 중국 사회에서 탄생한 ‘특별한 단어’가 바로 ‘군자(君子)’다. ‘군자’의 반대말은 ‘소인(小人)’이다. 소인은 육체노동을 하는 백성이다. 그러면 군자는 정신노동, 학문을 가까이하는 사람이다. 맹자(孟子)는 이러한 이분법적 구도를 가지고 군자와 소인을 정의했다. 계급 사회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철기 시대부터 봉건적 계급의식은 공고해진다. 중국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는 인류가 청동기에서 철기 시대로 넘어오는 최대의 격변기였다. 이 변화의 과정에서 생산력은 급격하게 증가하게 되고, 비교적 윤택하게 살 수 있게 된 소인들이 군자를 따라 하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계급 갈등이 일어난다.

 

자기들만의 이익만을 위한 갈등과 분쟁이 극에 달할수록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는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이때 공자(孔子), 맹자, 한비자(韓非子)제자백가(諸子百家)로 알려진 사상가들이 등장한다. 여기에 노자(老子)가 빠지면 섭섭하다. 노자는 동시대 사상가인 공자처럼 분열과 반목이 이어지는 난세의 시대를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노자는 공자와 사뭇 다른 사상적 노선을 취했다. 공자는 바른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인(仁), 즉 군자의 덕목을 사람들이 추구하지 못해 사회가 혼란스러워졌다고 생각했다. 반면 노자는 오히려 사람들이 오히려 인위적인 법과 도덕에 얽매여서 자연스러운 본성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노자는 공자의 주장에 반대했다.

 

노자는 사람들이 자신의 본성을 잃어가는 것을 일찌감치 우려했다. 그는 인위적인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가치론적 판단’을 부정하고, 거기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인 무위(無爲)의 경지를 지향한다. 무위의 경지는 모든 가치 판단이나 사회적 구속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상태의 단계이다. 억지를 부리지 않고 원래 자연 그대로의 순리에 따르는 것은 인간 본연의 회복이며, 자유를 추구하는 삶이다. 유가 사상가들은 도가사상을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자들이 좋아하는 초월적인 사상’이라고 비난한다. 요즘에도 있는지 모르겠으나 가끔 길을 걷다 보면 “도를 아십니까?”라는 말로 사람들에 접근해 귀찮게 하는 수상한 사이비 종교 전도사를 만난다. 사이비 종교 전도사를 만났던 찜찜한 기억 때문인지 도(道)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은 노자의 도를 현실성이 떨어지는 관념적 개념으로 인식한다. 사실 원문 풀이가 제대로 된 《도덕경》을 읽어도 도의 개념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노자의 사상에는 시대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실전 감각이 깃들어 있다. 건명원 초대 원장인 최진석 교수는 노자를 ‘시대가 낳은 아들’이라고 했다. 아들은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기성세대로 상징하는 아버지에 반항한다. 노자는 개인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인위적인 기성 사회의 문제점을 극복하려고 했다. 노자가 태어나기 전까지 사람들은 ‘상제(上帝)’라고 부르는 신에게 빌면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았다. 노자는 인간이 스스로 깨달아야 할 자기 존재의 의미를 ‘개인의 자유’라고 봤다. 그리고 자기 존재의 의미를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는 이상적인 세상은 ‘관계’를 지향하는 사회이다. 최진석 교수는 노자 사상의 핵심을 함축한 유무상생(有無相生)을 보다 구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현대적인 단어인 ‘관계’와 함께 설명했다. 유무상생. 이 말은 ‘있음(有)’과 ‘없음(無)’이 새끼줄로 꼬여 있는 형태가 되어 서로 어우러져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유무상생의 세계는 ‘대림면의 꼬임’으로 구성되어 있고, 서로 대립하는 사물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공자는 자신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군자’가 될 수 있도록 수양을 권한다. ‘군자’는 공자의 가르침을 받고, 제대로 행동으로 실천한 사람만이 획득할 수 있는 일반 명사다. 그러나 노자는 공자의 가르침을 반대하고 공자가 만들어낸 일반 명사를 거부했다. 그는 인간 존재 그 자체의 개별성을 존중하는 세상을 원했다. 유가 사상과 도가 사상을 비교하는 순간, 진실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편견이 생긴다. 편견은 우리의 눈과 정신을 가리는 인위적인 거미줄과 같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거미줄 틈 사이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렇게 좁은 틈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 사회의 다양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렇다 보니 나와 정반대인 대상을 만나면 무조건 나빠 보이고, 해롭다고 믿는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당연하다고 믿는 사람은 ‘생각하는 힘’이 부족하다. ‘생각하는 힘’이 없으니까 ‘편견’의 거미줄에 걸린 ‘자기 자신’을 구출해낼 능력도 없다. 거미줄에 빠져나오려면 남의 시선, 남의 눈치, 남의 생각 등 인위적인 요소들로 채워진 가짜 ‘나’를 비워내야 한다. 춘추전국시대보다 더 혼란스러운 지금의 현실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각하는 힘’을 키우려면 노자를 공부해야 한다. 노자의 사상은 현실적인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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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0-11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리뷰 감사합니다. 군자의 길은 너무도 멀고 험난 한것 같습니다. 노자의 도덕경 곁에 두고 틈나는대로 읽어야 할것 같아요.

cyrus 2017-10-11 22:04   좋아요 1 | URL
별말씀을요. 제가 책을 오독했거나 내용 전달이 잘못 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도덕경은 오독율이 높은 책입니다. 최진석씨 책 덕분에 오랜만에 도덕경을 읽었습니다. 역시 도덕경은 심오한 책입니다.

sprenown 2017-10-11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짜 ‘나‘를 비워내기 위해서는 조금은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하긴 할거 같네요.

cyrus 2017-10-12 12:28   좋아요 0 | URL
저는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자는 가치 판단을 부정했지만, 집착만 하지 않으면 적당한 수준의 인위적 노력도 좋다고 봅니다. ^^

2017-10-11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0-12 12:29   좋아요 0 | URL
고등학교 윤리 선생님이 장자를 읽으면 마음이 시원하다고 말씀한 적이 있어요. 정말로 장자를 읽으면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요? ^^;;

2017-10-11 2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0-12 12:31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의 좋은 점만 부각시키는 언론의 행태 때문에 한국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관련 기사들은 조용히 묻히는 경우가 많아요.

qualia 2017-10-12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매끄럽게 잘 읽힙니다. 공자와 노자의 사상 핵심도 명료하게 전달돼 옵니다. 이렇게 탁월한 cyrus 님의 글을 읽고 직간접으로 많은 걸 내심 깨닫습니다. 한데 저는 요즘 현대 중국인들에겐 전혀 좋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솔까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중국인들한테는 인종주의자적 태도와 편견을 내보이는 제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겠더군요. 궁극적으로 이런 태도와 편견은 자가당착적인 것이고 자업자득적 손실로 다가올 수도 있음이 필연적인 것인데요. 그럼에도 현실론적 혹은 실용론적 혹은 민족론적 견지에서는 현대 일본인들과 중국인들의 적대적이고 지배자적인 심리 구조와 심리 경향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한민족의 생존을 위해선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해서 저는 일본과 중국에 대한 그 어떤 형태의 호감, 찬양, 숭배, 이런 것들을 비판적으로 봅니다. 우리가 저들을 극복하기 위해 저들을 잘 파악하고 분석할 필요는 있지만, 경계심 결여된 호감, 찬양, 숭배 등등은 저들의 적대적이고 지배적인 심리 구조/경향을 더욱더 강화시켜주는 것밖에 안 된다고 봅니다. 고대로부터 근대, 21세기 지금 현대까지 한국과 일본/중국과의 역학적 관계는 나쁜 쪽으로 악화되었으면 되었지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저는 삼국지나 대망 따위 같은 것들이 한국인들 사이에서 폭넓게 읽히고 있는 사실에 무척 개탄스러운 마음입니다.

cyrus 2017-10-12 12:35   좋아요 0 | URL
최진석 씨가 쉬운 언어를 써가면서 공자와 노자 사상을 잘 비교했습니다. 저는 책의 주요 내용을 정리했을 뿐입니다.. ^^

transient-guest 2017-10-12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고 드는 생각은 사회적인 규범과 법체계는 유가를 개인의 삶은 도가를 바탕으로 잡아보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쓰고 나니 모씨의 극중주의가 떠오르면서 이건 현실적이지 못한 가운데놀이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만...ㅎ

cyrus 2017-10-12 12:39   좋아요 1 | URL
저도 유가와 도가의 장점만 골라서 뭔가 연결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런 작업이 가능하려면 죽을 때까지 동양철학을 공부해야합니다.. ㅎㅎㅎ

양철나무꾼 2017-10-12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은 좋았었는데,
‘탁월한 사유의 시선‘도 앞부분을 읽으면서는 좋다고 설레발을 쳤었는데, ㅋ~.
어느 부분부터 맥이 빠지더라구요.

암튼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꾸벅~(__)

cyrus 2017-10-12 19:10   좋아요 0 | URL
사실 최진석씨의 책을 비판적으로 읽어보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배움이 부족해서 저자의 설명에 설득당했습니다.. ㅎㅎㅎ

임모르텔 2017-10-13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히 읽습니다.... 평소 상선약수 무위자연,,, 이 단어만 남발하며 살던 게름뱅이가 ,,,,
... 요즘들어 노자의 책을 제대로 한번 읽어보고자해서 방황(?)하며 도서관을 헤매었었는데
읽어보고 싶게 만드시네요~ 이 책! ...

cyrus 2017-10-14 16:11   좋아요 0 | URL
최진석 교수의 책을 먼저 읽고 나서 도덕경을 펼치면, 봐도 봐도 보이지 않던 구절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

 
이토록 황홀한 블랙 - 세속과 신성의 두 얼굴, 검은색에 대하여
존 하비 지음, 윤영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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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白鷺)야 가지마라.

성난 까마귀 흰빛을 세울세라.

청강에 좋이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

 

    

 

포은 정몽주의 어머니가 지었다는 이 시조는 옛 선비들의 정결한 마음을 알 수 있다. 선비가 명리를 다투는 곳에 들어가면 깨끗한 깃털을 더럽히고 선비의 이름을 다치게 된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까마귀는 시커멓다. 속도 겉도 검은 까마귀는 부정적 이미지를 벗기 어려웠다. 지금의 까마귀는 그다지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옛날에는 상당히 신비한 새로 인식되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까마귀는 예언의 능력을 갖춘 예언의 신 아폴론(Apollon)의 성조였다. 아폴론의 까마귀는 원래 검지 않았다. 그런데 까마귀의 거짓말이 아폴론에게 발각되었고, 분노한 아폴론은 까마귀의 깃털을 새까맣게 만들었다.

 

우리는 색과 더불어 산다. 아니, 색에 꼭 붙어산다고 표현하는 게 적절하지 싶다. 어디를 봐도 색이 아닌 건 없다. 색으로 건물을 평가하고 옷을 평가하고 사람을 평가한다. 각기 다른 색에는 특유의 감정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토록 황홀한 블랙(위즈덤하우스, 2017)은 색에 대한 인식이라는 것이 주관적이고 문화적인 산물인가를 보여주는 책이다. 검은색이 현대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 될 때까지 서구사회에서 얼마나 천대받는 색이었던가를 추적했다. 검은색의 역사가 이리 방대했던가. 시대와 분야를 넘나드는 서술 방식을 소화하기 힘들긴 하지만, 검은색의 억울한 사연(?)을 알기 위해선 천천히 읽어야 한다.

 

아직 색이냐 아니냐?’로 논쟁을 벌이는 것이 검은색이다.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색, 존재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색. 검은색의 정체는 모호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검은색은 색이 아니다라고 정의했다. 그는 검은색을 아무것도 없는 공간 상태, ‘()’의 실체를 나타내는 색이라고 생각했다. 검은색은 어둠의 색깔이다. 검은색은 죄의식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기독교가 등장하기 전에는 속죄로 말끔히 제거할 수 있는 죄의 얼룩으로 비유했다. 기독교가 지배적인 종교로 부상하면서 선과 악의 대립이라는 이원론적 교리가 정립되면서 검은색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기독교가 설정한 악마는 보통 검은색이다. 피부가 검거나 검은 옷을 입고 있다.

 

검은 피부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기독교의 선악 이분법을 제멋대로 버무려서 만들어진 위험한 도그마(dogma). 기독교는 인간의 원초적 죄의식을 부각해 왔다. 그래서 기독교 설교자들은 아프리카인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그들을 죄악의 살아 있는 증거로 봤다. 검은색의 부정성이 강조될수록 아프리카인에 대한 경멸적인 시각이 형성되었다. 미국의 흑인은 건국 초기 아프리칸(African)’이라고 불렸다. 노예제도가 심화하면서 니그로(negro, 깜둥이)’라는 경멸적 단어가 보편화했다.

 

권력과 지위를 가진 남성들이 검은색 옷을 시작했다. 검은색 옷은 정치적 권력의 상징이 됐다. 무솔리니(Mussolini)와 그의 친위부대원들이 검은색 유니폼을 입기 시작하면서부터 검은색은 이탈리아 파시스트를 상징하는 색깔이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여자 옷에서 검은색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어둡고 무거운 기운에 가려져 있던 검은색을 클래식 패션코드로 끌어올린 디자이너가 바로 코코 샤넬(Coco Chanel)이다. 1926년 샤넬은 지나친 장식을 덜어낸 과감하고 단순한 디자인으로 리틀 블랙 드레스를 선보였다. 그녀는 옷을 입은 여성이 주인공이 되도록 했고, 오히려 여성의 우아한 매력을 더욱 돋보이도록 만들었다. 세련된 옷을 원하던 여성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미국판 <보그>는 리틀 블랙 드레스를 세상 사람 누구나 입게 될 옷이라고 소개할 정도였다.

 

인간은 시각을 통해 전달된 정보를 가장 신뢰하지만, 인간의 시각적 능력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단순한 색깔이라도 보이는 것에 대한 반응은 저마다 다르다. 반응이 다른 이유는 색깔에 대한 저변의 지식이나 경험의 차이일 수 있으며 색깔에 대한 감정의 기복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검은색은 억울하다. 어둡다는 이유로 색깔로 인정받지 못한 것도 서러운데, 다른 색깔들보다 더 천대받고 공격당했으니까. 검은색은 죄가 없다. 문화적 의미와 편견으로 덧칠해온 우리가 잘못했다. 못난 인간의 곁에 있어준 검은색에게 정말 미안하드아아악!

 

 

 

 

 

 

 

Triv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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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5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7-15 20:29   좋아요 0 | URL
흑백 사진이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유니크한 매력이 있어요. ^^

꼬마요정 2017-07-15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검은색 좋아합니다. 세련된 느낌이에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달까요... 까만색의 역사가 참으로 고달픕니다.

cyrus 2017-07-15 20:33   좋아요 0 | URL
검은색 때문에 피해를 많이 받은 존재가 동물입니다. 불길한 검은색을 띠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받고,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이하라 2017-07-15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색깔이 경멸의 뜻으로 전이된 것이 신기하군요 종교적으로 까지 인식되고 악용된 것도 그렇구요

cyrus 2017-07-15 20:35   좋아요 0 | URL
이 책을 보면서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무섭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감은빛 2017-07-16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덧이름 감은빛이 순 우리말로 ‘윤기나는 검은색‘이라는 뜻이죠.

검은색은 무정부주의를 상징하는 색이라 좋아해요.

가만보니 제 옷 중에도 유독 검은색 옷이 많네요.

cyrus 2017-07-17 11:34   좋아요 0 | URL
처음에 제가 감은빛님의 글을 읽었을 때 이름의 의미를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감미로운 은빛‘. ㅎㅎㅎ
 
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 - 미래 로봇이 알아야 할 인간의 모든 것, 2018년 행복한아침독서 선정
닉 켈먼 지음, 김소정 옮김 / 푸른지식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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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4회 영남일보 책읽기賞 독서감상문 대회에 출제한 글입니다.

 

 

 

기초과학 연구 환경이 척박한 이 땅에서 로봇기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요즘처럼 뜨거운 적은 일찍이 없었다. 언론에선 로봇 산업을 제4차 산업혁명을 이끌 차세대 미래 산업이라며 연일 치켜세운다. 대중의 상상력은 온갖 궂은일을 대신해주는,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Bicentennial Man)’에 나오는 인간형 로봇을 꿈꾸고 있다. 그 즐거운 공상 속에 인간을 닮은 존재를 만들려는 염원이 들어 있다. 인간이 기계를 발명하게 된 계기는 기계가 인간의 일을 대신 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행동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해 내는 일, 안드로이드(Android)는 기술 발전의 꼭대기에 이르는 것이 된다.

 

안드로이드도 잘만 이용할 수 있다면 인간 생활은 더 윤택하고 편해질 수 있다. 하지만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존재하듯이 안드로이드 산업에도 그림자가 어려 있다. 그 그림자는 정보사회로의 급격한 이행 중에 경험했던 대량실업의 공포다. 몇몇 학자는 안드로이드의 등장으로 사람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회사와 공장들이 속속 생길 것을 경고한다.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먼 미래에 인간과 신이 결합한 호모 데우스(Homo Deus)가 지구에 살고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는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전망한다. 인류에 행복을 선물할 거로 기대했던 데이터가 오히려 인류의 종말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하라리는 디스토피아의 미래가 꼭 예언은 아니라며, 비극으로 치닫지 않을 선택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몰락한 인류 대신 안드로이드가 지배하는 세계는 공포영화보다 더욱 심각한 현장이 될 수 있을까? 하라리의 전망이 남긴 찝찝한 뒷맛을 지우고 싶을 때 시나리오 작가 닉 켈먼(Nic Kelman)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푸른지식, 2017)을 읽으면 된다. 이 책의 주인공은 호모 사피엔스가 되고 싶은 안드로이드 이다. 잭이 사는 세상은 인류와 안드로이드가 공존하는 미래 사회이다. 안드로이드 주제에 여성 인간을 사귀기도 한다. 닉 켈먼은 과감한 역발상으로 안드로이드의 시선으로 인간을 관찰한다. 그래서 책의 부제가 미래 로봇이 알아야 할 인간의 모든 것이다.

 

이 책은 특이하게 두 개의 이야기로 교차 편집되어 있다. 하나는 잭의 이야기이며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의 인간 관찰 보고서다. 편집 방식 때문에 이야기의 몰입도가 떨어지지만, 탄생의 비밀을 추적하는 잭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결말이 몹시 궁금해진다. 잭은 처음에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의 눈은 정확하다. 그가 바라보는 인간은 비합리적인 행동을 한다. 우리는 자신이 합리적으로 의사 결정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의 선택은 대부분 비합리적이다. 잭은 인간처럼 행동하기 위해 인간의 약점까지 따라 한다.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안드로이드가 약점이 많은 인간이 되기 위해 흉내 내는 모습이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잭은 왜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걸까? 재미있게도 잭은 안드로이드야말로 인간보다 연약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안드로이드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말한다.

 

우리 안드로이드에 관한 사람들의 환상은 사실에 기반을 두었다기보다는 우리가 인류를 멸종시키거나 인류를 대체할 거라는 공포에 기반을 두고 있어.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들이 지금까지 만들어온 기계들이 얼마나 엉성한 것이었는지 잘 알면서도 우리는 처음부터 파괴될 수 없는 존재로 창조되었다고 믿기 때문이지. 그건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야. 우리도 사람처럼 연약한 존재란 말이야. 아니, 사람보다 더 연약할지도 몰라. (11~12)

 

듣고 보니 그럴싸하다.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문제와 마주친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이성적으로 똑똑한 결정을 내린다고 자부한다.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에는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은 인공지능,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AI 로봇이 상용화되는 미래를 원한다. 반면 어떤 이들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을 깊숙이 침투하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착각하는 인간이 엄청 똑똑한 안드로이드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생각이 우습다. 아직 완벽하게 실현되지 않은 안드로이드 제작 기술에 벌벌 떠는 인간의 모습도 좀 웃기긴 하다.

 

인간 관찰 보고서는 직업, , 사랑, 종교, 문화 등 여러 가지 삶의 방식에 얽힌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그것은 안드로이드를 위한 훌륭한 처세술이다. 인간으로 살고 싶은 안드로이드는 이 보고서를 읽고, 거기에 적힌 내용대로 행동한다. 그렇다고 이 글이 인간 독자가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 독자가 인간 관찰 보고서를 읽으면 그 글은 인간 탐구 보고서가 된다. 이 글을 읽고 우리 자신, 즉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사실 안드로이드보다 더 무서운 것이 보고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 속에 기술 발전에 집착하는 광기에 사로잡힌 인간의 모습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을 만들려는 욕구는 번식 욕구 다음으로 강하다. 인류의 초기 단계에서 이런 욕구는 아주 유용한 본능이었겠지만, 지금은 너무 지나치게 사람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욕구가 아닌가 싶다. (142)

 

우리 같은 안드로이드가 문자 그대로 사람을 종속시키거나 몰살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해도, 사람은 우리 같은 인공지능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144)

 

더 나은 기술을 끊임없이 갈망하는 인간의 상상은 미래에 대한 불안한 강박의 산물이다. 아이작 뉴턴(Isaac Newton)나는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사람들의 광기는 도저히 예측하지 못하겠다.”며 탄식했다고 한다. 미래의 모습보다 예측하기 힘든 것이 바로 우리 마음 어딘가에 숨어 있을 광기다. 안드로이드를 만들려는 인간의 시도는 바람직한 도전인가, 아니면 강박에 의한 집단 광기일까. 인간의 온기를 품지 않는 과학기술이 자본의 가치 증식에만 봉사한다면 사회적 경종이 울려야 할 것이다. 그 경종을 제때 울리려면 일단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다.

 

 

 

 

리뷰의 제목은 레미 드 구르몽의 시 낙엽의 구절(“시몬, 너는 좋냐? 낙엽 밟는 소리를.”)을 패러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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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읽을 거면 읽지 마라
다오얼덩 지음, 김영문 옮김 / 알마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고전은 후세에 전범이 될 만한 옛날 작품 또는 책을 의미한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고전을 사람들이 입에는 자주 올리면서도 막상 읽지 않은 작품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어떤 책을 두고 귀중한 지적유산이니 하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 책을 읽어보았느냐고 질문하면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굳이 마크 트웨인의 익살이 아니더라도, 읽자고 결심해 책장 앞에만 서면 손이 잘 가지 않는 책이 고전이다.

 

이렇게 읽을 거면 읽지 마라(알마, 2017)는 애서가의 마음에 떨떠름한 과제로 남아 있는, 가깝고도 멀기만 한 동양고전에 이르는 길을 알려주는 책이다. 그런데 꼬불꼬불하고 높기만 한 고전을 알려주는 중국인 길잡이가 까탈스럽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이렇게 읽을 거면 읽지 마라(不必讀書目). 다오얼덩(刀爾登)비판적 고전 읽기를 중시하는 칼럼니스트이다. 그런데 그의 비판 수위가 좀 세다. 그는 그 유명한 손자병법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오늘날 손자병법전쟁 같은 사회에 승리하기 위해 읽어야 하는 필독서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무한경쟁의 시대 속에 사는 사람들 모두 생존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알게 모르게 사람들은 손자병법의 지식을 실천으로 옮기면서 살고 있다. 손자병법을 완독하지 않아도 누구나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을 기억한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손자병법에 등장하는 어구 중에서도 승리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략이다. 그런데 그러한 전략은 경영학 교재에 나오는 내용이다. 상대방이 어떤 전략을 사용하는지를 알고 국제시장에서의 마케팅 기법을 파악하게 되면 그만큼 경쟁하기 쉽다. 이 때문에 전 세계 기업들은 자사의 기술 및 전략을 숨기고 경쟁 기업의 그것을 알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산해경은 중국이 자랑하는 최고(最古)의 동양 신화이다. 작년에 포켓몬 Go’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 때 이와 유사한 산해경 Go’가 출시된 적이 있다. 게임 이용 방식은 포켓몬 Go’과 거의 유사하다. 중국 고대의 신화집에 나오는 요괴들이 스마트폰 화면에 나타나면 손오공이 머리에 쓰는 금고아를 씌워 포획하면 된다. 산해경을 비판적으로 읽은 다오얼덩은 산해경 Go’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그는 산해경에 나오는 구절을 오독해서 근거 없는 중국 우월의식에 빠지는 것을 경계한다. 그리고 이렇게 읽으려면 안 읽는 것이 낫다라고 일침을 가한다.

 

다오얼덩이 읽지 말라고 당부하는 동양 고전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는 것들만 소개하면, 논어, 노자, 맹자, 장자, 이백(이태백), 주역, 삼국지, 서유기, 수호전 등이 있다. 우리는 고전을 전통으로 받아들여 고전 읽기를 통해 현대 사회 문제점의 해결책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다오얼덩은 공평한 마음을 가진 독자라면 고전이 제시하는 교훈이 오늘날에는 무효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다오얼덩은 비판적 독서를 주저하는 독자들이 곤경에 빠지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고전을 소개할 때 그것의 장점을 먼저 소개한 다음 비판점을 알린다. 고전 작품의 줄거리를 요약하기보다는 주제, 문학적 의의 등 작품 해제 쪽에 무게를 둠으로써 독자들이 고전 작품을 직접 찾아 읽도록 신경을 썼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고, 하라고 하면 더 하기 싫은 게 사람 마음이다. 다오얼덩의 책을 읽으면 굳이 안 읽어도 되는 고전을 한 번쯤이라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한 번 사는 인생에 읽어야 할 책이 엄청 많다. 다오얼덩이 소개한 고전은 평생을 두고 읽어도 다 못 읽는다. 그래서 다오얼덩의 책 한 권 제대로 읽고 나면 50여 권의 동양 고전을 섭렵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이 책을 읽는 독자, 바로 우리의 마음가짐이다. 읽지 않은 책을 읽은 척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속담처럼 알맹이 없는 요란한 말로 고전이 중요하다면서 호들갑을 떤다. 그리고 자신의 지적인 면모를 상대방에게 과시하기 위해 언변으로 치장하기에 바쁘다. 안 읽는 것보다는 한 번이라도 읽어보려는 시도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읽다가 포기하면 된다. 완독 달성이 독서의 전부가 아니다. 그래야 설득력 있는 비판적 독서가 가능해진다. 이 책, 이렇게 읽을 거면 읽지 마라의 독서가 우리에게는 능동적 독법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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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4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25 06:15   좋아요 0 | URL
저도 안 읽은 고전이 많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조금 위안이 되었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06-24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에 있는 책들중 상당수 책들을 못 읽었네요... 책의 내용을 알고 있어야 잘못 읽는다는 것도 깨달을텐데요... 한참 멀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cyrus 2017-06-25 06:21   좋아요 2 | URL
저는 삼국지를 안 읽어봤어요. 삼국지에 재미가 느껴지지 않았어요. 어렸을 때 저보고 삼국지 안 읽는다고 핀잔 준 녀석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들이 읽은 삼국지가 이문열 버전입니다. 이문열 버전만 읽으면 삼국지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

AgalmA 2017-06-26 0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삼국지 안 끌려서 안 읽었어요. 그 방대한 양에 투자한 만큼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많을까 심리가 늘 끼어서요ㅎ cyrus님 일화처럼 그걸 읽은 사람들이 뭔가 대단한 걸 넌 모른다! 으스대거나 핀잔 줄 때 많이 써서 더 기를 쓰고 읽고 싶게 만들긴 하죠ㅋ 읽어보니 별거 아니던데 맞받아쳐 주고 싶기도 하고ㅋㅋ 그런데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모든 고전이 모두에게 양식이 되지는 않아요. 전공자라면 모르겠지만 모두가 다 전문가가 될 이유는 없잖아요? 사람의 한계상 현실불가능한 부분도 있고요. 인공지능 인류 인종이 되면 문제는 달라지겠지만.
다오얼덩이 말하는 것처럼 유통기한 지난 정보나 틀린 이론도 많아서 최신 업데이트된 책들을 더 선호하게 돼요.

cyrus 2017-06-27 07:59   좋아요 0 | URL
저도 AgalmA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비판적 읽기를 강조하지 않고, 무조건 고전을 읽으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실 고전은 재미 없어요. 고리타분한 내용도 있고요.. ㅎㅎㅎ
 
후 WHO -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들
게르하르트 핑크 지음, 이수영 옮김, 김원익 감수 / 예경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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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 그랜트 《그리스. 로마 신화사전》 (범우사, 1993년)

* 아서 코트렐 《그림으로 보는 세계신화사전》 (까치, 1997년)

* 필립 윌킨슨 《세계 신화 사전》 (웅진지식하우스, 2002년)

* 피에르 그리말 《그리스 로마 신화 사전》 (열린책들, 2003년)

* 낸시 헤더웨이 《세계신화사전》 (세종서적, 2004년)

 

 

이 다섯 권의 책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전반적인 내용을 담은 사전 형태의 책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전부 절판되었다. 어딘가에 숨어 있을 그리스 로마 신화 덕후들의 한숨 소리가 내 마음을 울린다. 덕후들이여, 아쉬워하지 마시라.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그리스 로마 신화 사전’ 한 권이 있으니까.

 

《Who :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가나다순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유일한 사전이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을 모르고선 방대한 분량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신화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풍성한 극적 요소가 가득하다. 사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엽기 드라마’다. 신이든 인간이든 서로 눈 한 번 맞으면 당장 몸을 섞어 육체적 쾌락에 탐닉한다. 사랑과 야망, 그리고 복수를 위해서라면 참혹한 피의 살육전을 마다하지 않는다. 드라마는 철저하게 각 인물의 복잡 미묘한 감정 변화, 상황 설정, 관계 등에 할애한다. 신화 속 인물들 역시 탐욕과 질투, 믿음과 배신, 그리고 사랑과 용기를 발휘하며 극단의 선에서 극단의 악까지 사생결단으로 내닫는 모습이 그려진다. 신화의 극적인 재미를 느끼려면 ‘신들의 족보’ 또는 복잡하게 꼬여버린 인물 관계 등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아무리 신화를 꼼꼼하게 읽어도 백 명이 넘는 등장인물을 한 번에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럴 때 신화 곁에 있어야 하는 존재가 바로 ‘사전’이다. 그리스 로마 인물 사전은 신화라는 미궁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데 꼭 필요한 실타래다. 아리아드네(Ariadne)가 건네준 실타래를 손에 꼭 쥔 테세우스(Theseus)는 한 번 들어간 이상 탈출이 어렵다는 크레타(Crete)의 미궁을 무사히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신화를 읽다가 낯선 인물을 만나면 사전을 찾아보면 된다. 《Who》는 1차 문헌인 고대 원전뿐만 아니라 신화에 파생된 근 · 현대 문학 및 예술 작품까지 담아냈다. 저자가 참고한 문헌의 출처까지 알려주고 있어서 풍부한 읽을거리까지 제공한다. 《Who》는 한 번 풀면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 실타래다. 독자가 찾은 표제어 속에 또 다른 표제어가 연결되어 있다. 메데이아(Medeia)를 찾다가 이아손(Iason)이나 테세우스에 눈길을 돌릴 수 있다. 메데이아에서 연결된 실타래를 따라 이아손을 만나면, 아르고(Argo) 호 원정대 동료인 음유시인 오르페우스(Orpheus)를 만나게 된다. 쭉 이어진 실타래를 따라가는 건 독자의 자유다.

 

 

 

 

 

 

 

 

《Who》는 들고 다니기 편한 가벼운 판형이다. 직접 책을 펼치거나 한 손으로 들어보면 정말 학창 시절에 들고 다닌 영어사전 같은 느낌이 든다. 책의 단점은 글자 크기가 작다. 그리고 책을 확 펼치기가 힘들다. 책을 펼치려고 무리하게 힘을 주면 책 상태가 망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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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8 0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5-18 14:53   좋아요 1 | URL
사전도 읽어보면 재미있어요. 특히 백과사전이요. 그 속에 있는 표제어 아무나 골라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어요. 사전 속에 이야기가 있고, 사전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됩니다. ^^

단발머리 2017-05-18 0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스 신화 속 인물들을 찾아볼 때 쉽게 이용할 수 있겠네요.
실제 책 모양도 보여주시고, 내부도 보여주시고^^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cyrus 2017-05-18 14:55   좋아요 0 | URL
예전부터 이 책의 실물이 궁금했어요. 포토 리뷰가 없어서 책이 궁금한 분들을 위해서 사진을 찍어 올려봤습니다. ^^

stella.K 2017-05-18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런... 다 좋았는데 마지막 두 문장에서 확 꺾기네.
무엇보다 글자 작은 건 이제 용서가 안 된다. 나와는 인연이 없을 것 같구만.
지금 천병희, 이윤기 씨가 쓴 책도 못 읽고 있는데...ㅠ

cyrus 2017-05-18 14:57   좋아요 0 | URL
책의 판형을 조금만 더 컸으면 보기 좋았을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