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러스킨(John Ruskin)《참깨와 백합》은 1864년에 대중을 상대로 한 두 차례 강연을 묶은 책이다. 아마도 이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는 제목만 봐서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참깨’는 첫 번째 강연 제목 「참깨: 왕들의 보물」을 뜻하며 올바른 독서법의 의미와 그 중요성을 다룬다. ‘백합’은 두 번째 강연 「백합: 여왕들의 화원」을 의미한다. 이 강연은 여성의 사적 · 공적 역할과 여성이 받을 수 있는 교육의 범위를 다룬다.

 

 

 

 

 

 

 

 

 

 

 

 

 

 

 

 

 

 

 

 

 

* 존 러스킨 《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 (민음사, 2018)

* 리처드 프랜시스 버턴 《아라비안나이트 V》 (동서문화사, 2010)

* 앙투안 갈랑 《천일야화 5》 (열린책들, 2010)

 

 

 

첫 번째 강연 내용을 보면 ‘옛적 아라비아 마법의 곡물이며 닫힌 문을 여는 참깨로 빚은 빵’[주1]이라는 구절을 확인할 수 있다. 아라비아, 마법, 닫힌 문을 여는 참깨. 이 세 개의 단어는 《아라비안나이트》‘알리바바와 40명의 도둑’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보물을 가득 숨겨둔 동굴 앞에 선 알리바바가 동굴의 문을 열기 위해 외친 마법의 주문이 ‘열려라, 참깨(Open sesame)이다. 러스킨이 말하는 ‘참깨’는 동굴 속에 있는 ‘보물’을 찾기 위한 열쇠이며, ‘보물’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러스킨은 ‘최고의 지혜’로 채워진 유익한 책을 ‘왕들의 보물’로 비유하면서 독서의 참된 의미를 강조한다.

 

 

 

 

 

 

 

 

 

 

 

 

 

 

 

 

 

 

 

* 존 러스킨 《존 러스킨 라파엘 전파》 (좁쌀한알, 2018)

* 티머시 힐턴 《라파엘 전파》 (시공사, 2006)

* 팀 베린저 《라파엘 전파》 (예경, 2002)

 

 

 

백합의 꽃말은 ‘순결’, ‘변함없는 사랑’이다. 그래서 중세 시대의 고귀한 여성을 상징하는 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러스킨이 ‘백합’에 보인 지대한 관심은 중세 시대 문화를 동경하던 라파엘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와 관련되어 있다. 라파엘전파에 소속된 화가들은 함축적인 의미가 담긴 사물 또는 자연물을 그림에 그려 넣었다. 라파엘전파 화가들은 꽃말에 관심이 많았는데, 꽃말은 자신들이 그리고자 하는 그림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일종의 단서로 활용했다. 라파엘전파가 활동하는 데 큰 도움을 준 사람이 러스킨이다. 그는 고전주의에 벗어나지 못한 주류 화단으로부터 비난받은 라파엘전파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백합: 여왕들의 화원」을 한마디로 평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글’이다. 이 글에서 드러난 러스킨의 여성관은 여성을 능동적인 존재로 인식하지 못한 빅토리아시대의 케케묵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러스킨은 산업자본주의의 폐해를 날카롭게 지적한 진보적인 사상가였지만 여성을 억압하는 인습에 얽매인 빅토리아시대 남성 지식인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편견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여성을 ‘전쟁(논쟁)을 중재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존재로 본다. 러스킨은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고 정확하게 판단을 내리는 여성의 역할을 찬양하고 있지만, 그러한 능력을 남성이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여성은 중세 귀부인처럼 ‘남성에게 보호받아야 할 고귀한 존재’인 것이다. 러스킨에 따르면 여성이 다스리는 ‘가정’은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지켜야 할 평화적인 안식처이다.[주2] 그는 세상을 온갖 위협과 유혹으로 가득한 일터와 가정으로 나눈 후 남성과 여성을 각 공간의 책임자로 배치한다. 러스킨 본인은 ‘남성은 공적 영역, 여성은 사적 영역’으로 철저히 나누는 이분법적 젠더 구분을 반대하면서도[주3] 여성이 공적 영역에 진입하는 데 필요한 교육의 범위를 한정짓는다. 그는 여성은 ‘자기 계발을 위한 지혜’를 멀리해야 하며 ‘신학’을 공부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러스킨이 선호하는 여성은 ‘남편을 섬길 줄 아는 지혜롭고 아름다운’ 여성이다.

 

 

 

 

 

 

 

 

 

 

 

 

 

 

 

 

 

 

 

* 존 스튜어트 밀 《여성의 종속》 (책세상, 2018)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책세상, 2018)

* [절판] 케이트 밀렛 《성 정치학》 (이후, 2009)

 

 

 

케이트 밀렛(Kate Millett)은 자신의 주저 《성 정치학》에 「백합: 여왕들의 화원」을 대차게 비판한다. 이때 그녀는 러스킨을 궁지로 몰아세우기 위해 《참깨와 백합》을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여성의 종속》과 비교한다. 밀렛은 《여성의 종속》을 ‘역사를 통틀어 여성이 처한 현실적 입장을 가장 조리 있게 저술한 저서’[주4]라고 높이 평가한다. 한술 더 떠서 《자유론》에 버금가는 강력한 주장을 담은 책이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비록 러스킨의 편협한 여성관과 남성중심주의를 비판하기 위해서 그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밀을 좀 더 좋게 평가한 것도 있지만, 급진적 페미니스트로 알려진 밀렛이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고전을 열렬히 호평하는 반응은 이례적이다. 사실 《여성의 종속》을 통해 알 수 있는 밀의 자유주의 페미니즘도 한계가 있다. 《성 정치학》이 나온 1970년대 이후에 밀의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논문들이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밀의 《여성의 종속》에 대한 비판적인 논평은 다음에 다루기로 한다.

 

빅토리아시대 남성은 여성을 ‘어른 아이’로 여겼다. 그러니까 그들은 여성을 미성숙한 ‘소녀’로 인식했던 것이다. 그래서 러스킨은 소녀들을 고상하게 가르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면서 소녀를 가르칠 수 있는 가정교사의 역할을 강조한다. 실제로 러스킨은 아홉 살의 소녀 로즈 라 투셰(Rose La Touche)에게 드로잉을 가르치는 가정교사로 일했다. 이미 한 번 이혼으로 인해 사랑에 실패한 경험[주5]이 있는 러스킨은 로즈를 사랑하게 된다.  「백합: 여왕들의 화원」에서도 러스킨은 소녀를 ‘순수한 존재’로 언금한다. 러스킨이 생각하는 백합은 아름다운 여성으로 자라기 위해 보호받아야 할 순진무구한 소녀를 의미한다. 밀렛은 소녀에 집착하는 러스킨의 관심을 ‘노망난 에로티시즘’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주6].

 

 

 

 

 

 

 

 

 

 

 

 

 

 

 

 

 

 

* 설혜심, 박형지 《제국주의와 남성성》 (아카넷, 2016)

* 존 러스킨 《존 러스킨의 드로잉》 (오브제, 2011)

 

 

 

사실 「참깨: 왕들의 보물」도 시대적 한계가 보이는 글이다. 러스킨의 강연을 듣는 대중은 주로 중산층에 속하는 부유한 사람들이다. 이 글에 젠체하는 러스킨의 오만한 엘리트주의를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양질의 책을 읽어서 지혜로운, 고상한 국민인 ‘신사(紳士)를 치켜세우면서 저속한 ‘군중’을 지적한다. 그가 생각하는 ‘군중’은 지나치게 감정적이며 사리분별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다. 「참깨: 왕들의 보물」과 「백합: 여왕들의 화원」에서 드러나는 러스킨의 남성성은 ‘점잖음’을 중시하는 빅토리아시대 신사와 ‘백합’ 같은 고귀한 여성을 보호하고 싶은 중세 기사의 모습에 가깝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책 중 한 권이 코번트리 펫모어(Coventry Patmore)의 장편 담시 『집안의 천사』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집안의 천사’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희생하는 여성성을 상징한다. 러스킨은 「백합: 여왕들의 화원」뿐만 아니라 드로잉의 기초를 설명한 《존 러스킨의 드로잉》에서도 『집안의 천사』를 ‘뛰어난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이쯤 되면 그가 과연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 장 자크 루소 《에밀》 (한길사, 2003)

* 장 자크 루소 《에밀》 (책세상, 2003)

* 장 자크 루소 《루소의 에밀 읽기》 (한길사, 2003)

 

 

 

 

 

 

 

 

 

 

 

 

 

 

 

 

 

* 케르스틴 뤼커, 우테 댄셸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 (어크로스, 2018)

 

 

 

《참깨와 백합》 옮긴이는 러스킨을 ‘여성의 교육에 앞선 교육 개혁가’라고 소개했다.[주7] 러스킨은 사회 참여적인 교육가이지 ‘여성을 위한 교육 개혁가’로 평가받을 만한 인물이 아니다. 그의 여성관과 여성 교육에 대한 입장은 《에밀》에서 ‘여성의 역할은 남성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 루소(Jean Jacques Rousseau)와 유사하다. 루소도 여성을 남편과 가정을 위해 집안일 하는 존재로 한정 지었다.

 

 

《참깨와 백합》을 해설한 옮긴이의 설명은 빈약하다. 왜냐하면 1871년에 《참깨와 백합》 개정판을 내면서 새로 추가된 러스킨의 서문세 번째 강연 「The Mystery of Life and Its Arts」에 대해선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정판 서문과 세 번째 강연을 번역하지 않더라도 이에 대해서 언급했어야 한다.

 

 

 번역하는 내내 바른 가르침을 받는 행복감으로 충일했고 저자의 탄탄한 지성과 면밀한 논리는 생명을 살리는 먹거리가 차려진 소박하나 소중한 밥상과 같았다.

 

(옮긴이의 말, 14쪽)

 

 

옮긴이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참깨와 백합》을 읽는 내내 러스킨의 젠체함과 공허한 논리에 거부감이 생겨서 ‘밥상’ 같은 책을 엎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주1] 유정화 옮김, 「참깨: 왕들의 보물」, 80쪽

 

 

 

 

 

 

 

 

 

 

 

 

 

 

 

 

 

* [절판] 존 러스킨 《베네치아의 돌》 (예경, 2006)

 

 

[주2] 러스킨은 고딕 건축 양식과 베네치아 고딕 양식을 분석한 저서 《베네치아의 돌》에서 건축의 세 가지 미덕을 제시한다. 그 중 하나는 건물의 효율성이다. 그는 자연재해와 외부의 침입을 막을 수 있는 기능성이 있어야 좋은 건물이라고 주장한다. 러스킨이 「백합: 여왕들의 화원」에 언급한 ‘가정’은 기능성을 최대한 살린 건축의 의미와 일맥상통하다.

 

[주3] 유정화 옮김, 「백합: 여왕의 화원」, 121쪽

 

[주4] 김전유경 옮김, 《성 정치학》, 191쪽

 

[주5] 필자의 졸문 「에피 그레이의 재앙」을 참조하길 바란다.

 

[주6] 김전유경 옮김, 《성 정치학》, 190쪽

 

[주7] 《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 옮긴이의 말, 9쪽

 

 

 

 

 

난센스 퀴즈의 정답은 스킨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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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5 17: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2-26 00:06   좋아요 0 | URL
급할 거 없습니다. 다음 달에 날씨가 좋아지니까 날 맞춰서 만나요. ^^

stella.K 2019-02-25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설마! 넘 심했다.ㅎㅎㅎㅎㅎㅎ

cyrus 2019-02-26 00:09   좋아요 0 | URL
러스킨이요? ㅎㅎㅎㅎ 러스킨과 에피 그레이의 이혼 스캔들이 너무나 유명해서 러스킨과 로즈 라 투셰의 관계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요. 러스킨과 같은 시대에 산 루이스 캐럴도 소녀 앨리스 리델을 좋아했어요.. ^^;;

AgalmA 2019-02-26 0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성, 여성의 차이에 대해 결정론적 해석을 하는데 유전학이 어쩐지 기여를 하고 있는 것 같죠?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폭력성의 관계 등등.
대니얼 리처드슨이 <심리학자들이 알려주지 않는 마음의 비밀>에서 고찰했듯이 복잡한 상황은 모두 무시한 채 인물에 집중하는 ‘기질적 귀인 오류’ 인지작용도 있죠.
이런저런 사고 오류에 대해 말해도 안 들으려는 사람은 안 들으니ㅜㅜ;;

cyrus 2019-02-26 00:22   좋아요 1 | URL
유전학의 흑역사가 우생학이에요. <그들은 왜 극단적일까>라는 책을 쓴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몇몇 심리학자는 어용 학자입니다. 어용 학자는 특정 집단이 권력을 유지하는 데 유리한 이론을 강조하고, 자신들이 지지하는 특정 집단에 반하는 타 집단을 부정적으로 규정하는 이론을 만들어요.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입니다. 이들은 개인이 환경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개인은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쉽게 동조하게 되고, 집단 구성원이 되어 동질감을 느끼려고 하죠. 이게 더 발전되어 나온 이론이 ‘집단 극단화 이론’입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하나의 집단이 만들어지고, 집단의 폐쇄적인 환경으로 인해 개인의 의견은 무시되고, 집단을 대표하는 입장이 남게 됩니다. 이러한 집단은 자신들의 입장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타 집단의 입장을 무시합니다. 그런데 집단 극단화 이론의 단점은 동질감의 긍정적 기능을 무시하고 집단의 목소리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듭니다. 예를 들면 임금 인상을 원하는 정당한 노조 파업은 집단 극단화 이론에 따르면 집단이기주의로 규정될 수 있는 거죠.

오늘 AgalmA님이 소개한 <심리학자들일 알려주지 않는...>을 보면서 심리학 이론을 무조건 받아들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해로행(薤露行)토머스 맬러리(Thomas Malory)아서왕의 죽음을 각색한 단편소설이다. 5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 나쓰메 소세키, 박현석 옮김,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현인, 2018)

* 나쓰메 소세키, 노재명 옮김, 런던 소식(하늘연못, 2010)

    

 

 

 

 

 

 

 

 

 

 

 

 

 

 

 

 

 

 

 

 

 

 

 

 

 

 

 

 

 

 

 

 

 

* 토머스 맬러리, 아서 왕의 죽음(나남출판, 2009)

* [절판] 토머스 불핀치,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황금가지, 2004)

* [절판] 토머스 불핀치,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들(현대지성사, 1998)

 

 

 

 

아서왕의 죽음은 아서왕(King Arthur)의 일대기와 원탁의 기사들에 대해 쓴 장편 산문이다. 이 작품은 중세 유럽의 문학과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로 다루어져 왔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집대성한 토머스 불핀치(Thomas Bulfinch)는 여러 판본으로 전해져온 아서왕 전설을 추려 엮어 펴냈는데, 국내에선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The Age of Chivalry, or Legends of King Arthur)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

 

 

 

 

 

 

 

 

 

 

 

 

 

 

 

 

 

 

 

 

 

 

 

 

 

 

 

 

 

 

 

 

 

 

 

 

 

 

 

 

 

 

 

 

 

 

 

 

 

* [e-Book] 앨프레드 테니슨, 김천봉 옮김, 율리시스: 테니슨 시선(글과글사이, 2017)

* [e-Book] 앨프레드 테니슨, 테니슨 시선(지만지, 2015)

* [품절] 앨프레드 테니슨, 테니슨 시선(지만지, 2011)

* [절판] 김천봉 엮음, 빅토리아 여왕 시대 1: 19세기 영국 명시(이담북스, 2011)

* 앨프레드 테니슨, 눈물이, 부질없는 눈물이(민음사, 1975)

 

 

 

 

영국의 시인 앨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22년에 걸쳐 아서왕 전설을 주제로 한 장편 서사시 국왕 목가(The Idylls of the King)를 썼다. 이 작품의 분량이 방대해서 국내에 완역된 적은 없다. 소세키는 테니슨의 장편 서사시를 칭송하면서 해로행을 쓰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언급한다. 해로행의 두 번째 이야기 제목은 거울인데 샬럿의 여인(The Lady of Shalott)에 대한 내용이다. 테니슨은 맬러리의 아서왕의 죽음에 나오는 랜슬롯(Launcelot)과 일레인(Elaine) 이야기를 바탕으로 샬럿의 여인이라는 시를 썼다. (눈물이, 부질없는 눈물샬럿의 여인이 수록되지 않은 테니슨의 시 선집이다)

 

랜슬롯은 원탁의 기사 중 한 명으로 그가 아서왕 전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일레인은 랜슬롯에 한눈에 반해 짝사랑하는 영주의 딸이다. 테니슨은 일레인의 비극적인 사랑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그녀를 저주받은 여성으로 설정했다. 테니슨이 묘사한 일레인은 혼자 샬럿 섬의 성에 지내면서 직물을 짜야 하는 저주에 걸려 있다. 그녀는 성 밖에 나가지 못한다. 방 안에 있는 거울에 비쳐진 바깥 세계의 풍경(거울의 특성을 생각하면 거울 속 세상은 실재가 아니라 환영이다)을 보면서 산다. 거울은 일레인이 사는 성 근처를 지나가는 랜슬롯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레인은 거울 속에 나타난 랜슬롯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그 후로 그녀는 랜슬롯이 자신의 성 앞을 지나가기를 애타게 기다린다. 일레인은 거울의 환영을 계속 봐야하는 자신의 처량한 신세에 불만을 가진다. 결국 그녀는 저주를 무시하고, 랜슬롯을 좀 더 가까이 보기 위해 창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그 순간 저주가 깨지면서 거울은 산산조각이 나고, 그녀가 짜고 있던 직물은 풀어진다. 일레인의 저주가 깨지는 극적인 순간과 그녀가 랜슬롯을 찾기 위해 홀로 방황하다가 쓸쓸히 최후를 맞는 장면은 중세 문화에 심취한 라파엘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 화가들이 즐겨 그린 주제였다.

 

해로행런던 소식(하늘연못)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현인)에 수록되어 있다. 전자의 책을 번역한 노재명 씨는 고인이다. 그러나 고인이라고 해서 그의 번역에 대한 비판의 칼날을 거둬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노재명 씨의 번역에 대해 따지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해로행북망행으로 바꾼 점이다. 노재명 씨는 제목을 바꾼 이유를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일문학을 전공하지 않았으며 일본어를 쓰고 말할 줄 모른다. 번역해본 적도 없다. 네이버 일본어 사전과 구글 번역기를 이용하면서 오역으로 의심되는 문장 하나하나 검토했다. 일어를 독해하고 이것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능력이 없어서 해로행』 '거울' 편만 검토했지만, 생각보다 오역이 많았다. 이건 정말 심각하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독자는 엉터리로 번역된 나쓰메 소세키의 단편소설을 읽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에 번역을 검토하면서 하늘연못 판본의 별점을 네 개에서 두 개로 변경했다.

 

오역인지 아닌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 문장에 대해선 의견을 피력하지 않았다. 일본어와 번역 비전공자인 내가 의견을 밝히면 주제넘은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대신 원문과 두 가지 번역본의 문장을 한 눈에 비교할 수 있게 써놨다.

 

 

 

 

 

* 해로행원문 출처: http://www.natsumesoseki.com/home/cairoko

      

 

 

 

 

 テニソンのアイジルス優麗都雅において古今雄篇たるのみならず性格描写においても十九世紀人間古代舞台おどらせるようなかきぶりであるからかかる短篇するにはおおいに参考すべき長詩であるはいうまでもない

 

 

テニソンの: 알프레드 테니슨(1809~1892, 영국의 시인).

古今雄篇: 고금의 웅편. 

 

* 하늘연못

  테니슨의 <아이딜스>[원주]는 유려한 문장이 돋보이는 위대한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성격 묘사에 있어서도 19세기 인간을 고대라는 무대에 되살려 낸 작품이다. 이 소설을 쓰는 데 테니슨의 장시(長詩)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원주] The Idylls of the King의 약칭. 목가적인 서사시. 아서 왕과 그 기사들이 중심이다. 

 

* 현인 (387~388)

  테니슨의 아이지루스[역주]는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고상하다는 점에서 고금의 웅편(雄篇)일 뿐만 아니라, 성격의 묘사에 있어서도 19세기 사람을 고대의 무대에서 뛰어놀게 한 듯한 필치이기에 이 단편을 집필하는 데 커다란 참고로 삼아야 할 장시(長詩)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역주] 테니슨의 샬럿의 아가씨(The Lady of Shalott)를 말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2 

 

 

 あるときはかしらよりただ一枚わるる真白上衣うわぎかぶりて眼口手足しかとちかねたるがけたたましげにかねらしてぎるもゆるこれはらいをやむ前世ごうをみずからぐるむご仕打ちなりとシャロットのるすべもあらぬ

 

 

けたたまし: 요란한

:

: 나환자

前世: 전세의 업

: 세상에 알리는

むご: 잔혹한

シャロットの: 샬럿의 여자

      

* 하늘연못

  또 어느 때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윗도리 하나만 걸친 사람이 나타난다. 도무지 몸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형체가 거울에 비친다. 이 사람은 전생에 나병이라도 앓은 사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 현인 (396)

  또 어떨 때는 머리부터 단 한 겹이라 여겨지는 새하얀 상의를 뒤집어쓰고 눈과 입도 손과 발도 분명히도 알아볼 수 없지만 요란하게 징을 울리며 가는 모습도 보였다. 이는 문둥병 환자가 전세의 업을 스스로 세상에 알리는 잔혹한 행동이라는 사실을 샬럿의 여자는 알 길이 없었다.

 

 

하늘연못 판본에 요란하게 징을 울리며 가는 모습도 보였다(원문에 밑줄 친 구절)라는 구절이 없다. 현인 판본에 문둥병 환자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나병 환자를 낮잡아 부르는 말이다. 문둥병 환자’, ‘문둥이는 나병 환자를 비하하는 혐오 단어이므로 번역할 때 이러한 표현을 써선 안 된다.

 

 

 

 

 

 

3

 

 旅商人たびあきゅうどのせにえるつつみのにはきリボンのあるか下着のあるか珊瑚さんご瑪瑙めのう水晶真珠のあるかめるらさねばにあるものはにはらず

 

 

旅商人: 떠돌이 장사꾼

きリボン: 붉은 리본

下着: 하얀 속옷

 

      

* 하늘연못

  상인들의 등짐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무엇일까? 흰 의복이라도 들어 있을까? 산호, 마노(瑪瑙), 수정, 진주라도 들어 있는가? 포장 속에 있는 것들은 거울에 비치지 않는다.

      

* 현인 (396)

떠돌이 장사꾼들이 등에 짊어진 보따리 속에는 빨간 리본이 있는지, 하얀 속옷이 있는지, 산호, 마노, 수정, 진주가 있는지, 보따리 안을 비추지 않으면 안에 들어 있는 물건도 거울에는 비치지 않았다.

 

 

 

하늘연못 판본에 원문의 빨간 리본(きリボン)이 빠져 있고, 노재명 씨는 햐안 속옷(下着)흰 의복으로 번역했다.

 

 

 

    

 

 

 

4

 

 シャロットのるは不断はたであるむらの萌草もえぐさのれる釣鐘めるるときはのいつくべしともえぬほどのであるうなのうねりなみのかすときは底知れぬさを一枚きにあるときはじにゆるほのおのにて十字架濁世じょくせにはびこる罪障すきまなく天下いて十字れる経緯たてよこのにもるとしくのみははたをれてばんとす

 

 

不断: 평소(=독특하지 않은), 끊임없음(계속하거나 이어져 있던 것이 끊이지 아니하다)

: 꽃 그림자

うな(海原, うなばら): 넓고 넓은 바다

うねり: 파도

: ~(), ~처럼(동작 · 상태 따위를 나타내는 데 씀)

濁世: 더러운 세상

罪障: 죄장. 성불의 장애가 되는 죄업 

 

* 하늘연못

  샤롯 여인이 짜는 그림은 독특한 것이 아니다. 풀밭을 배경으로 종() 모양의 꽃을 짤 때는 꽃 그림자가 지금이라도 당장 솟아나올 것처럼 보인다. 짙은 꽃이다. 넓은 들판을 배경으로 ()과 지는 꽃을 수놓을 때도 있다. 어느 때는 검은 대지를 배경으로, 타오르는 불꽃같은 십자가를 만든다. 그 순간 그림 속의 불꽃들은 그림을 떠나서 공중으로 날아오를 듯하다 

 

* 현인 (399~400)

  샬럿의 여자가 짜는 것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단이었다. 수풀에 새로 돋은 풀이 무성하게 우거진 바탕에 초롱꽃이 잠겨있는 모습을 짤 때는 꽃이 언제 떠오를지도 모를 만큼 짙은 색이었다. 널따란 바다의 파도 속으로 눈처럼 떨어지는 물결의 꽃을 새길 때는 끝을 알 수 없는 깊이를 한 겹 얇은 천에 새겼다. 어떨 때는 검은 바탕에 타오르는 불꽃과 같은 색으로 십자를 새겼다. 더러운 세상에 만연한 죄업(罪業)의 바람은 온 천하에 불어, 십자를 짜는 날줄과 씨줄 사이에도 들어가는 듯, 불꽃만은 비단에서 나와 치솟으려 했다.

 

 

 

원문의 不断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항상’, ‘평소’, ‘끊임없음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인용한 문장을 보면 샬럿의 여인이 직물로 짠 그림에 묘사된 대상들은 하나같이 역동적이다. 이런 그림이 독특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노재명 씨는 원문의 넓고 넓은 바다의 파도(うなのうねり)넓은 들판으로 번역했는데 명백한 오역이다.

 

 

 

 

 

   

5

 

 まことの横縦くぐらせばせてげるマリヤの姿となるいをたてにりをよこにあられふる木枯こがらしせば荒野ひげリア面影ずかしきくれないとめしき鉄色をよりせてはうてえたるむべく温和おとなしきがれるかわるがわるにめばわれし乙女おとめのわれはがおにぶれるさまをたもとくにまつわるえぬねがいれなるべし

 

 

, あられ: 싸라기눈(빗방울이 얼어 떨어지는 쌀알 같은 눈)

木枯(), こがらし: 초겨울(늦가을)의 찬바람

: 밝은

リア: 리어 왕

: 만나다

: 길다

, たもと: 소맷자락

まつわる: 휘감긴

いえぬ: 말할 수 없는

, ねがい: 소망

: 어지러운

      

* 하늘연못

  사랑의 실()과 정성의 실을 종횡으로 연결하면, 두 손을 어깨에 올려놓고 하늘을 향한 마리아의 모습이 된다. 광기와 분노를 섞어 고목을 만들면 그 모습은 흰 수염의 리어(King Lear)가 된다. 부끄러운 붉은색과 한 맺힌 회색을 섞으면 떠나간 사람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다. 또 온화한 황색과 기운찬 자색을 섞으면 마귀에 홀린 여인의 흥분된 얼굴이 나타난다. 이렇듯 그녀의 베틀에는 구름에 휘감긴 사람들의 소원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다.

      

* 현인 (400)

  사랑의 실과 정성의 실을 가로와 세로로 물레의 북을 지나게 하면 손을 어깨에 엇갈려 얹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마리아의 모습이 되었다. 광기를 종으로 분노를 횡으로, 진눈깨비 날리며 삭풍이 부는 밤을 베틀 앞에서 밝히면, 황야에서 흰 수염을 흩날리는 리어의 모습이 나타났다. 부끄러운 주홍과 원망스러운 쇳빛을 한데 모아 간절히 만남을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을 읽어낸 듯했으며, 온화한 노랑과 흥분한 보라를 차례로 짜면 마법에 걸린 아가씨가 자신의 얼굴에 감동한 모습이 나타났다. 기다란 자락에 구름처럼 휘감긴 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는 소망의 실이 헝클어진 모습이었다.

 

 

 

원문의 木枯고목이 아니라 목고로 읽는다. 마를 고이다. 리어 왕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 사람이 맞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싸라기눈(あられ)은 빗방울이 찬바람으로 만나 얼은 상태에서 내리는 눈을 뜻한다. 싸라기눈과 진눈깨비는 다르다. 진눈깨비는 비가 섞여 내리는 눈이다[출처].

 

[출처] <카드뉴스> 가루눈보다 굵고 함박눈보다 가는 것은? (뉴스웨이, 2018113) http://www.newsway.co.kr/news/view?tp=1&ud=2018011217351479073

 

 

 

 

 

 

 

6 

 

     

うつせみの

うつつめば

みうからまし

むかしも

うつくしき

うつす

やうつろう

なに

 

 

うつせみ: 이승, 이 세상

うつつ: 제 정신

      

 

* 하늘연못

허망한 세상을

혼미하게 살면

살기 힘들다네

옛날도 지금도

아름다운 사랑이

비치는 거울에

색이 비치리라

아침 저녁마다

      

* 현인 (401)

이 세상을,

맑은 정신으로 살면

살기 괴로울 테지,

예나 지금이나.

아름다운 사랑,

비치는 거울에

색이 비치네,

아침저녁으로.

 

 

노재명 씨는 원문에 없는 허망한이라는 표현을 썼다.

 

 

 

 

 

 

 

7 

 

   

らしてすえる

 

すえる: 응시하다, 눈여겨보다

      

* 하늘연못

여인은 순간 숨을 몰아쉰다. 눈을 감는다. 

 

* 현인 (402)

여자는 숨을 멈추고 눈을 고정시켰다.

 

 

 

すえる(응시하다)눈을 감는다로 번역하다니…‥.

 

 

 

 

 

   

8

 

 

 このシャロットのサー・ランスロットんでそばにかけってあおきいだすとはきに地震くにける

ぴちりとがして々こうこうたる真二つにれるれたるおもてはびぴちぴちとくがこな微塵みじんになってしつの七巻ななまき八巻やまきりかけたる布帛きぬはふつふつとれてなきに鉄片はほつれ千切ちぎれもつれてつち蜘蛛ぐものくにシャロットの髪毛にまつわる。「シャロットのすものはランスロットランスロットをすものはシャロットのわが末期まつごののろいをうてかたへ両手げてちたる野分のわきをけたる五色あざむく砕片るる[革堂][cyrus ]どうとたおれる

 

[cyrus ] 원문에는 (가죽 혁)+(집 당)이 합쳐진 한자(‘이 부수인 한자)로 표기되어 있음. 네이버 한자사전, 일어사전에도 등록되지 않은 한자라 뜻과 음은 모르겠음 

 

 

サー: ()

ランスロット: 랜슬롯

きに地震: 멀어져 가는 지진

: 지나가다, 달리다

 

       

* 하늘연못

  그때 샤롯의 여인은 다시 소리친다. “랜슬롯 경!” 여인은 창문 쪽으로 몸을 돌려 놀란 얼굴을 세상 속으로 반이나 내민다. 사람과 말이 하나가 된 물체는 높은 저택 아래를 그냥 지나쳐간다.

      

* 현인 (402~403)

  이때 샬럿의 여자가 다시 랜슬롯 경.”하고 외치며 홀연 창 옆으로 달려가 창백한 얼굴을 세상 속으로 반쯤 내밀었다. 사람과 말은 높다란 전각 아래를 멀어져가는 지진처럼 달려 나갔다.

  쩍,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교교하던 거울이 갑자기 한가운데서 2개로 갈라졌다. 갈라진 표면이 다시 쩍쩍 얼음이 갈라지듯 산산조각 나서 방 안으로 튀었다. 일곱 두루마리, 여덟 두루마리, 짜던 비단이 갈가리 찢어져 바람도 없는데 철조각과 함께 날아올랐다. 붉은 실, 초록 실, 노란 실, 보라색 실은 흐트러지고 끊어지고 풀리고 엉켜 땅거미가 친 그물처럼 샬럿의 여자의 얼굴에, 손에, 소매에, 기다란 머리카락에 휘감겼다. “샬럿의 여자를 죽이는 것은 랜슬롯. 랜슬롯을 죽이는 것은 샬럿의 여자. 내 마지막 저주를 짊어지고 북쪽으로 달려라.”라며 여자는 두 손을 높이 하늘로 올리고 썩은 나무가 태풍을 맞을 때처럼 오색실과 얼음과도 같은 파편이 어지러운 가운데로 털썩 쓰러졌다.

      

 

노재명 씨는 해로행의 결말에 해당하는 문장을 번역하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해로행거울편과 테니슨의 시 샬럿의 여인의 결말은 다르다.

 

 

 

 

 

 

 

 

 

 

 

 

 

 

 

 

 

  

* [품절] 에드거 앨런 포, 우울과 몽상(하늘연못, 2002)

 

 

지금은 절판되어 사라졌지만, 하늘연못 출판사하면 반드시 언급되는 최악의 번역본이 있었다. 그 책이 바로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단편소설들을 수록한 우울과 몽상이다. 그 책에 엉터리 번역문이 많았지만, 가장 최악의 오역은 진자와 함정의 결말 마지막 문장이 누락된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졸문을 참고하시라[출처].

      

[출처] 책을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 알 것 같습니다(20151214)

http://blog.aladin.co.kr/haesung/8052770

 

 

 

 

 

 

+1

 

 

 

 

 

 

 

 

 

 

 

 

 

 

 

 

* 팀 베린저 라파엘 전파(예경, 2002)

 

 

 

이왕에 이렇게 된 거 오역 사례 하나 더 언급한다. 예경 출판사라파엘 전파160‘The Lady of Shalott’샬롯 양으로 번역했다. 샬럿은 여인의 이름이 아니라 섬 이름이다. 이 섬에 있는 성에 저주받은 여인이 산다고 해서 샬롯의 여인으로 알려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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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8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2-18 18:14   좋아요 0 | URL
지난달에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독서 일정이 꼬였어요. 토요일 새벽에 번역문 대조 작업을 했어요. 이거 하느라 오늘 페미니즘 독서모임을 위해 읽어야 할 책을 읽지 못했어요. 제가 다른 책을 보느라 독서모임 책을 안 읽은 것도 있었지만, 괜한 작업 때문에 힘을 너무 많이 소모했습니다... ^^;;

syo 2019-02-18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렸다...... 역시 당신은....bbbb

cyrus 2019-02-18 18:15   좋아요 0 | URL
일문학 전공자가 나쓰메 소세키의 단편소설을 다시 읽어보라고 말씀하셔서 읽어봤는데 정말 노재명 씨의 번역에 문제가 많았어요. 대조하면서 글 쓸 때 정말 짜증이 났어요... ㅎㅎㅎ

oren 2019-02-18 1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어도 공부하시지 않으셨는데, 정말 꼼꼼히 비교하셨네요. 고생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글의 제목과 본문에서도 간혹 잘못 입력된 이름들이 보입니다. ㅎㅎ
(나쓰메 소메키, 캐슬롯)
책에서든 블로그에서든 오탈자들은 그나마 애교로 봐줄 수도 있지만,
판매중인 책에서 발견되는 엉터리 번역은 정말 끔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cyrus 2019-02-19 15:13   좋아요 1 | URL
오자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주말 새벽에 글을 써서 그런지 실수가 많네요. 이 때 정말 힘들었어요... ^^;;

카알벨루치 2019-02-18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시루스박사!!!!🔥🔥🔥

cyrus 2019-02-19 15:14   좋아요 0 | URL
저는 아마추어입니다.. ^^

transient-guest 2019-02-23 0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울과 몽상‘은 여러 모로 많이 아쉽고 덕분에 최근에 나온 전집을 다시 구매했지요. 번역이 어려운 것도 이해하고 운문/산문을 가져오는 것도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제가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번역문제는 결국 불성실한 editor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야말로 모든 오역/오탈자 등에 대한 최후의 방어선이 editor라고 생각하는데 종종 이런 건 좀 편집하면서 걸러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합니다.

cyrus 2019-02-24 16:26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역자가 번역하면서 잘못 쓴 단어라든가 인쇄 중에 발생한 오식은 편집자가 확인해야 합니다.

2019-02-25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25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25 1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올해는 존 러스킨(John Ruskin)이 태어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인데, 러스킨의 생일은 2월 8일이다. 러스킨은 산업혁명으로 최성기를 구가하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미술비평가, 사회 사상가로 활동했다.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과 러스킨은 같은 해에 태어났다. 1837년에 여왕이 왕좌에 오르면서 빅토리아 시대가 시작되었고, 여왕의 시대가 서서히 열리고 있던 1843년에 러스킨은 『근대 화가론』을 펴내면서 미술비평가로 주목받았다. 빅토리아 시대는 여왕이 1901년에 세상을 떠나면서 막을 내린다. 러스킨은 1900년에 세상을 떠났다.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의 죽음은 대내외적으로 전성기를 누리던 대영제국의 종말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 영국 빅토리아 시대와 라파엘 전파에 대한 책들

 

 

 

 

 

 

 

 

 

 

 

 

 

 

 

 

 

 

 

 

 

 

 

 

 

 

 

 

 

 

 

 

* 존 러스킨 《존 러스킨 라파엘 전파》 (좁쌀한알, 2018)

* 이주은 《아름다운 명화에는 비밀이 있다》 (이봄, 2016)

* [품절] 리처드 D. 앨틱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과 사상》 (아카넷, 2011)

* 티머시 힐턴 《라파엘 전파》 (시공사, 2006)

* 팀 베린저 《라파엘 전파》 (예경, 2002)

 

 

 

1840년대 후반, 영국 화단의 보수성에 반기를 든 신진 예술가 집단이 등장한다. 1786년에 창립된 왕립 미술 아카데미(Royal Academy of Arts)는 고전주의에 바탕을 둔 역사화의 전통을 중시하고, 상류층 중심의 예술가를 배출하는 보수적인 곳이었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Dante Gabriel Rossetti),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윌리엄 홀먼 헌트(William Holman Hunt)는 왕립 미술 아카데미가 가르치는 보수적인 화풍을 벗어나 라파엘로(Raffaello) 이전에 활동한 중세 화가들의 작품을 본보기 삼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 세 사람은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라는 이름으로 작품들을 남겼다.

 

‘Pre-Raphaelite Brotherhood’를 직역하면 ‘라파엘 전(全) 형제동맹’이다. 우리나라에선 ‘라파엘 전파’로 단순하게 번역되어 알려지는 바람에 라파엘로의 화풍을 이어받는 예술가 단체로 오해하기 쉽다. 라파엘 전파는 라파엘로로 대표되는 르네상스 시대의 고전주의 화풍을 거부하고 중세 예술을 선호했다. 라파엘로를 거부하는 화가들의 목적은 르네상스 미술을 모방하는데 급급하던 당시 왕립 미술 아카데미의 전통을 넘어서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라파엘 전파는 전통적이고 엄격한 기법과 양식을 버리고 자연을 직접 관찰해 생동감 있는 그림을 그리려 노력했다.

 

러스킨은 라파엘 전파를 적극적으로 옹호해준 지지자다. 라파엘 전파가 혹평을 받으면 러스킨이 나서서 라파엘 전파를 옹호하는 글을 발표했다. 러스킨은 1857년에 발표한 평론집 《라파엘 전파》에 밀레이와 홀트를 ‘온갖 만류와 반대를 무릅쓰고 견뎌대는’[주] 전도유망한 청년 화가로 소개했다. 러스킨과 밀레이는 서로 절친한 사이가 되었고, 러스킨은 밀레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한편 그의 화풍의 방향성까지 알려주는 정신적인 스승이 되어주었다.

 

 

 

 

 

 

 

 

 

 

 

 

 

 

 

 

* 이주헌 《그리다, 너를》 (아트북스, 2015)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밀레이가 러스킨의 아내 유페미아 그레이(Euphemia Gray, 애칭은 ‘에피’)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에피도 밀레이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녀는 행복하지 않는 결혼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에피와 러스킨의 결혼은 사랑보다 집안 체면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또 에피의 연애 행각을 비난할 수만 없는 결정적인 원인이 있는데, 그건 러스킨과 관련되어 있다. 러스킨은 6년 동안 에피와 부부로 지내면서 단 한 번도 육체적 관계를 맺지 않았다. 그는 아내와의 섹스를 피했다. 러스킨은 벌거벗은 에피의 몸에 난 털을 보는 것을 두려워했다. 특히 그는 음모(陰毛)를 싫어했다. 러스킨은 털 한 올도 없고 매끈한 피부를 가진 여성의 몸을 좋아했다.

 

애정 없는 결혼 생활과 시부모의 지나친 간섭에 싫증이 난 에피는 러스킨과 이혼하기로 결심한다. 이 삼각 스캔들이 몰고 온 파장은 엄청났다. 자신의 친구이자 지지자인 아내를 뺏어간 밀레이와 대담하게도 자기 남편을 상대로 이혼 소송을 낸 에피는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됐다. 이혼 소송을 접수한 교회 법정은 에피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에피와 러스킨은 부부 관계를 완전히 정리한다. 그 후 에피는 밀레이와 결혼하여 슬하에 4남 4녀를 두었다.

 

 

 

 

 

 

라파엘 전파번역본 끝부분에 러스킨의 생애를 정리한 연표가 있다. 당연히 이 연표에도 러스킨, 밀레이, 에피의 삼각 스캔들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에피와 이혼한 지 4년이 되던 해에 러스킨은 아일랜드 출신의 로즈 라 투셰(Rose La Touche)와 사랑에 빠졌다. 이때 로즈는 아홉 (!), 러스킨은 39, 곧 마흔()을 앞둔 나이였다. 러스킨은 로즈가 18살이 되던 해인 1866년에 청혼하지만, 로즈는 3년을 더 기다려달라고 요청했다. 1869년에 러스킨과 로즈는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서 만났지만, 그때도 로즈는 러스킨에게 확답을 주지 않았다. 사실 두 사람의 결혼을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나이 차이가 많은 것도 있지만, 로즈의 부모 입장에선 이혼 경력이 있는 섹스리스(sexless)인 러스킨을 신랑감으로 볼 수가 없었다. 결국 1872년에 로즈는 러스킨의 청혼을 거절했다. 1875년에 로즈가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러스킨은 큰 충격을 받았고, 말년에 강신술에 빠질 정도로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시기를 보냈다.

 

러스킨의 연표에 러스킨와 로즈 라 투셰의 관계를 언급한 내용이 있지만, 상세하지 않다. 그리고 그 내용에 오류가 있다.

 

 

 법적으로 성인이 된 로즈 라 투셰에게 청혼하나 투셰는 3년을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3년 후인 1872년 로즈는 러스킨이 사회주의자이자 무신론자라는 이유로 청혼을 거절했다.

 

(《존 러스킨 라파엘 전파》, 153쪽)

 

 

1866년에서 3년을 지나면 1869년인데, 책의 연표에는 ‘3년 후인 1872년’이라고 적혀 있다. 연도를 계산하면 저렇게 나올 수가 없다. ‘6년 후인 1872년’으로 쓰는 게 맞다.

 

 

 

 

 

 

 

 

 

 

 

 

 

 

 

 

 

 

* [절판] M. H. 에이브럼즈 《노튼 영문학 개관 2》 (까치, 1990)

 

 

 

절판된 《노튼 영문학 개관》 2권에 러스킨을 소개한 내용이 있는데, 여기에도 삼각 스캔들, 그리고 로즈와의 관계가 언급된다. 하긴 두 번이나 실패한 사랑은 러스킨의 명성뿐만 삶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친 결정적인 사건이므로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 번역본은 러스킨이 에피와 결혼한 것을 ‘재앙’이라고 했고, 부부 관계은 ‘예식’으로 순화하여 표현되었다.

 

 

 1848년 그가 에피 그레이와 결혼한 것은 하나의 재앙이었다. 6년간을 동거한 후에 단지 예식을 치르지 않았다는 것을 구실로 하여 결혼무효 소송을 제기하였다. 남들은 그녀를 대단한 미인으로 여겼으나, 러스킨 자신은 자기 아내의 몸매가 매력적이지 못하다고 증언하였다. 그녀의 미모를 예찬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던 라파엘 전파 화가 존 밀레이는 그녀의 남편의 초상화를 그릴 때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 결혼 무효가 성립된 직후 그녀와 결혼하였다.

 

(M.H. 에이브럼즈, 《노튼 영문학 개관 2》, 213쪽)

 

 

인용한 문장만 보면 러스킨의 이혼 스캔들을 편파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러스킨은 에피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했다. 여성에 향한 편견과 차별이 심했던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녀가 러스킨을 만나 결혼한 것, 또 이혼 소송에 냉담한 반응을 보인 시대를 만난 것이 재앙이었다.

 

 

 

 

[주] 존 러스킨, 임현승 옮김, 《존 러스킨 라파엘 전파》, 『젊은 화가들의 새로운 도전』, 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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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2-12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 러스킨이 그 존 러스킨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처음 그의 이름을 들은 게 중학생 때였어.
2학년쯤 됐을 것 같은데 베스트셀러가 시큰둥한 거야.
어려운 책을 읽고 싶었지.
단골 동네 서점에 존 러스킨의 책이 있냐고 했더니
없다는 거야. 내가 알기론 그 주인 아저씨도 나름
책 꽤나 아시는 분인데 말야.
난 속으로 그럼 그렇지 이런 동네에서 그런 책이 있을 리
없지 했는데 그때 참 겁이 없었어.
모르긴 해도 그때 러스킨의 책이 번역되어 나오기 전이었던 것 같아.
그때 누가 러스킨은 존경한다고 했걸랑 그래서 알고 싶었던 건데.ㅎㅎ

cyrus 2019-02-12 17:07   좋아요 0 | URL
<깨와 백합>이라는 책이 1972년에 을유문화사에서 문고판으로 출간된 적이 있어요. 혹시 누님이 읽은 책이 이거 아닌가요? ㅎㅎㅎㅎ 그 책이 작년 12월에 <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라는 이름으로 나왔어요. ^^

stella.K 2019-02-12 17:41   좋아요 0 | URL
아,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같네.
그게 또 작년에 새로 나왔구나.ㅋㅋ

페크pek0501 2019-02-14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시대의 이혼은 꽤 큰 사건이겠고 무척 상처가 되는 사건이었을 텐데 잘 극복했나 보군요.
다른 사람과 재혼하여 여덟 명의 자녀를 두다니... 질질 끌게 아니라 때론 냉정한 판단을 해야 할 때가 있긴 한 것 같습니다.

cyrus 2019-02-18 15:24   좋아요 0 | URL
러스킨이 에피의 이혼 요구를 무시하고 질질 끌었죠. 왜냐하면 이혼 스캔들이 나면 미술비평가, 사회사상가로서 자신의 명성에도 흠집이 생기니까요. 아마도 러스킨은 본인의 체면을 유지하고 싶었고, 가족과 같은 친구 밀레이에게 자신의 아내를 빼앗기기 싫어서 에피의 이혼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소설 몽십야(夢十夜)은 말 그대로 열 편의 꿈 이야기. 소세키가 영국 유학 생활을 끝내고 일본에 돌아온 후에 쓴 단편소설들은 그의 초기 작품으로 분류된다. 몽십야와 같은 초기 작품에 환영의 세계와 신비주의적 분위기를 보여주는 묘사가 많다.

    

 

 

 

 

 

 

 

 

 

 

 

 

 

 

 

* [품절] 나쓰메 소세키 몽십야(하늘연못, 2004)

* 나쓰메 소세키 런던 소식(하늘연못, 2010)

* 나쓰메 소세키 회상(하늘연못, 2010)

    

 

 

 

 

 

 

 

 

 

 

 

 

 

 

 

* 나쓰메 소세키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현인, 2018)

 

 

몽십야다섯째 밤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에 일본 요괴의 이름이 나온다.

 

 

 말굽 흔적은 지금도 바위 위에 남아 있다. 실제로 닭은 울지 않았다. 닭이 우는 흉내를 낸 것은 야마노자쿠(天探女)였다. 이 말굽 흔적이 남아 있는 한 야마노자쿠는 나의 적이다.

 

(몽십야, 몽십야, 44~45)

 

      

 말굽 흔적은 아직도 바위 위에 남아 있다. 닭 울음소리는 낸 것은 아마노자쿠였다. 이 발굽 흔적이 바위에 새겨져 있는 한 아마노자쿠는 나의 원수다.

      

(몽십야,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 283)

 

    

* 원문

 

あとはいまだにっている真似まねをしたものは天探女(あまのじゃく)あまのじゃくであるこのあとのみつけられている天探女自分かたきである

 

      

첫 번째 인용문은 2011년에 세상을 떠난 노재명 씨가 번역한 것이다. 노재명 씨가 번역한 열흘 밤의 꿈몽십야(하늘연못)런던 소식(하늘연못)에 수록되어 있다. 몽십야는 소세키의 중단편 24편을 한데 묶은 번역본인데, 현재는 런던 소식회상(하늘연못)으로 분권 되어 나온 상태이다. 두 번째 인용문은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현인)에 있는 구절이다.

    

 

 

 

 

 

 

 

 

 

 

 

 

 

 

* [품절] 구사노 다쿠미 환상동물사전(들녘, 2001)

    

    

 

그런데 노재명 씨가 번역한 몽십야런던 소식모두 일본 요괴의 이름을 야마노자쿠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원문에 있는 あまのじゃく를 소리 나는 대로 읽으면 아마노자쿠이다. 의 음(). ‘야마노자쿠는 번역가의 실수라기보다는 책이 인쇄되면서 나온 오자인 것 같다.

 

아마노자쿠는 인간의 마음과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 요괴이다. 인간으로 둔갑하거나 인간의 말을 흉내 내면서 인간들을 속인다. 노재명 씨는 주석을 통해 아마노자쿠를 일본의 전설에서 주로 나오는 악녀의 화신이라고 설명했다.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의 번역가는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 후에 악귀가 되었다고 여겨지고 있다[]라는 내용의 주석을 달았다. 두 사람 모두 아마노자쿠를 천탐녀인 것처럼 설명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마노자쿠는 요괴의 일종이다.

 

아마노자쿠와 첨탐녀는 같으면서도 다른 존재이다. 아마노자쿠의 한자식 표기는 천탐녀(天探女)가 아니라 천사귀(天邪鬼). 아마노자쿠의 원형은 일본 신화에 나오는 천탐녀이다. 천탐녀의 히라가나 표기는 あめのさぐめ이다. ‘아메노사구메라고 읽는다.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을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소세키는 천탐녀와 아마노자쿠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서 썼다. 그러나 천탐녀는 사람의 말을 따르지 않고 거역하는 여신이고, 아마노자쿠는 천탐녀와 비슷한 습성이 있는 요괴이다. 따라서 소세키가 천탐녀=아마노자쿠라고 쓰는 바람에 우리나라 번역가들은 아마노자쿠를 여신으로 오해한 것이다. 천탐녀가 아마노자쿠의 원형이므로 둘 다 같은 존재로 볼 수 있지만, 일본 신화 속 천탐녀와 민간 설화에 묘사된 아마노자쿠의 모습을 생각하면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그러므로 몽십야원문에 있는 天探女아마노사쿠로 번역하려면, 아마노사쿠가 누군지 설명해야 한다. 우리가 일본 신화에 나오는 신이나 일본 요괴에 대해서 자세히 할 필요는 없겠다. 그렇지만 아마노사쿠를 마치 천탐녀인 것처럼 대충 설명한다면 독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셈이 된다.

 

      

 

[] 박현석 옮김,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현인, 2018,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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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1-30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한테 있어요, 저 두꺼운 <몽십야> ㅎㅎㅎㅎ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입니다.

cyrus 2019-01-30 16:58   좋아요 0 | URL
혹시 syo님이 가지고 있는 책에도 ‘야마노자쿠(天探女)’라고 적혀 있습니까? 장편소설보다는 단편소설이 더 재미있네요. ^^

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읽다가 재미없어서 포기했어요. 일단 <그 후>를 읽었어요. syo님이 추천한 <가뿐하게 읽는 나쓰메 소세키>가 소세키 작품을 이해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syo 2019-01-30 17:21   좋아요 0 | URL
네, 그렇게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별로 재미가 없었다면, 시루스 박사님과 저는 넓고 긴 강을 사이에 두고 멀리 멀리 서 있는 상황이겠어요 ㅋㅋㅋㅋㅋ

cyrus 2019-01-30 20:58   좋아요 0 | URL
언제 될지 모르겠지만, 나쓰메 소세키 전작 읽기에 다시 도전하고 싶어요. 솔직히 이번 달 안에 읽는 건 무리였어요. 읽어야 할 책들이 갑자기 늘어나서 소세키를 읽을 기회를 놓쳐버렸어요... ^^;;

stella.K 2019-01-30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한길사에서 전집이 나오면서 몽십야가 안 나왔단 말야?
언제고 나오려나?

cyrus 2019-01-30 17:11   좋아요 0 | URL
소세키의 단편 선집이나 단편 전집 번역본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하늘연못 출판사에 나온 번역본은 전집이고요, 작년에 현인출판사에 나온 번역본은 ‘이름만 전집인 선집’입니다. ^^;;

2019-02-01 1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2-01 15:3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댓글을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 일은 오히려 제가 사과해야 하는 게 맞습니다. 저는 일문학을 전공한 적이 없고, 일본어를 쓰고 말할 줄도 모릅니다. 이런 처지에 제가 나쓰메 소세키와 번역가, 그리고 번역본을 함부로 지적하는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천탐녀가 천사귀의 원형이라고 해도 천탐녀는 여신이고, 천사귀는 악귀이기 때문에 서로 다를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님이 인용한 사전의 내용을 확인해 보니, 제 생각이 틀렸어요.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을 ‘선집’으로 말한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저는 알라딘에 있는 ‘출판사 제공 책 소개’를 보지 못한 채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을 선집으로 오해를 했고, 번역자의 진심을 보지 못하고 책을 함부로 평가했습니다. **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야 ‘출판사 제공 책 소개’를 봤습니다. 내용으로 봐서는 책에 꼭 있어야 할 ‘해설’인데, 다음 쇄를 찍을 때 ‘출판사 제공 책 소개’가 ‘해설’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글로 책에 수록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저녁에 사과문과 정정문을 써서 공개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쓰메 소세키의 단편소설을 다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 읽은 나쓰메 소세키의 글이 단편소설이라서 제가 이 작가의 진가를 제대로 느끼지 못해 너무 몰랐습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글을 대충 읽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어설픈 글을 올려서 정말 죄송하고요, 제가 몰랐던 부분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019-02-01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1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2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2-01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노자쿠와 천탐녀>의 오류에 대한 정정문입니다. 이 글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http://blog.aladin.co.kr/haesung/10648987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에 관한 글을 쓰면서 엘리엇 평전을 언급하는 것을 깜빡했다. 국내에 출간된 엘리엇 평전은 3종이다.

 

 

 

 

 

 

 

 

 

 

 

 

 

 

 

 

 

 

 

* [품절] 피터 애크로이드 《엘리엇: 영혼의 순례자》(책세상, 1999)

* [절판] 폴커 초츠 《엘리엇》(한길사, 1997)

* [절판, No Image] T.S. 매튜우즈 《평전 T. S. 엘리어트》(탐구당, 1981)

 

 

 

가장 먼저 나온 게 《평전 T. S. 엘리어트》(탐구당)다. 워낙 오래된 책이라서 실물을 본 적이 없고, 알라딘에선 책표지가 등록되어 있지 않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엘리엇을 ‘엘리어트’로 부르거나 쓰기도 했다. 그래서 알라딘 검색창에 ‘엘리어트’를 입력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건 영화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와 주가의 움직임을 분석할 때 쓰는 ‘엘리어트 파동 이론’이다. 그래서 시인 엘리엇에 대한 책을 찾아보려면 번거롭더라도 ‘T. S. 엘리엇’으로 입력하면 손쉽게 찾아낼 수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계 철학자 폴커 초츠(Volker Zotz)가 쓴 《엘리엇》(한길사)‘로로로’ 평전 시리즈의 일곱 번째 책이다. ‘로로로’ 시리즈는 1950년대 말 독일 로볼트 출판사(Rowohlt Verlag)가 펴낸 평전 시리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길로로로’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평전이라기보다는 평전 형식의 입문서에 더 가깝다. 예전에 다른 ‘한길로로로 시리즈’ 몇 권을 본 적이 있는데, 늘 볼 때마다 인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빈약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가끔 한 번 봐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문장도 보인다.

 

 

 

 

 

 

 

 

 

 

 

 

 

 

 

 

 

 

* 버트런드 러셀 《인생은 뜨겁게: 러셀 자서전》(사회평론, 2003)

* 버트런드 러셀 《러셀 자서전》(사회평론, 2003)

 

 

 

 

 

 

 

 

 

 

 

 

 

 

 

 

* [품절] 버지니아 울프 《어느 작가의 일기》(이후, 2009)

 

 

 

영국의 소설가 피터 애크로이드(Peter Aykroyd)가 쓴 《엘리엇: 영혼의 순례자》(책세상)는 ‘평전’이라는 이름에 가장 걸맞은 책이다. 저자는 엘리엇이 쓴 글뿐만 아니라 엘리엇의 주변 인물들의 증언, 회고록, 일기 등 여러 가지 사료들을 참고하여 엘리엇의 사적인 모습을 복원했다. 특히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가 보는 엘리엇의 모습이 흥미롭다. 

 

 

 

 

 

엘리엇은 하버드대학 철학과 조교로 일하면서 러셀을 처음 만났다. 러셀은 영국에 정착한 엘리엇과 그의 첫 번째 아내 비비안 헤이우드(Vivien Haigh-Wood)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스승이자 친구였다. 궁핍한 경제 형편으로 인해 엘리엇과 비비안 사이의 관계가 소원해졌을 때 러셀은 두 사람의 관계 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러셀은 엘리엇과 비비안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두 사람을 자기 집에 데리고 와서 함께 살았다. 세 사람은 남들이 보기에 의심할만한 이상한 동거 생활을 시작한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일어난다. 러셀과 비비안은 ‘선을 넘은 관계’에 이르게 된다. 평소에 과묵할 정도로 내성적인 엘리엇은 이 사실을 알고도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엘리엇은 러셀과 아내의 불륜 관계를 알게 되었을 때 굴욕감을 느껴 엄청 고통스러웠다고 울프에게 고백했다. 나중에 살펴봐야겠지만, 엘리엇을 가까이서 본 동시대 인물들의 생각을 알아보려면 러셀의 자서전과 울프의 일기를 부수적으로 참고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피터 애크로이드는 이 두 사람이 쓴 기록을 많이 참고했다. 러셀의 자서전과 울프의 일기를 번역한 책에 엘리엇을 어떻게 언급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피터 애크로이드는 엘리엇의 삶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남긴 시 작품과 희곡 작품을 소개하면서 자세히 분석한다. 우리나라에서 엘리엇은 ‘시인’으로도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시인으로서의 엘리엇’이 엘리엇의 초 · 중기 문학으로 본다면, ‘극작가로서의 엘리엇’은 중기 · 말기 문학에 해당한다. 엘리엇은 문학비평가로도 활동했는데, 이 평전에서는 ‘문학비평가로서의 엘리엇’에 대한 내용이 다소 적은 편이다. 사실 이것까지 설명하게 되면 평전의 분량은 더 늘어날 것이다.

 

 

 

 

 

 

 

 

 

 

 

 

 

 

 

 

* 이철희 《T. S. 엘리엇의 황무지와 황무지 원본 연구》(L.I.E, 2012)

* [품절] 한국 T.S.엘리엇학회 엮음 《T. S. 엘리엇 시》(동인, 2006)

 

 

 

사실 애크로이드의 엘리엇 평전은 1984년에 나온 책이다. 당연히 이 책에 1990년대 이후부터 알려진 엘리엇에 관한 연구 결과들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엘리엇이 세상을 떠난 후인 1971년에 그의 두 번째 부인 발레리 플레처(Valerie Fletcher)한동안 분실된 것으로 알려진, 삭제된 《황무지》 원고를 공개했다. 엘리엇의 절친한 동료이자 시인인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가 《황무지》를 첨삭했다. 이 원고에 파운드가 삭제한 내용뿐만 아니라 엘리엇이 스스로 삭제한 내용도 남아 있어서 엘리엇 연구가들은 이 초고본을 《황무지》의 집필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로 보고 있다. '한국 T.S.엘리엇학회'에 소속된 학자들이 함께 엮은 연구서 《T. S. 엘리엇 시》(동인)에 수록된 ‘『황무지』 원고본 분석(글쓴이는 이창배)은 《황무지》 원고를 다룬 글이다. 이 논문도 나온 지 오래됐기 때문에 《황무지》 원고에 대한 최신 연구 결과를 정리한 책인 《T. S. 엘리엇의 황무지와 황무지 원본 연구》(L.I.E)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애크로이드의 엘리엇 평전도 ‘최신’과 거리가 먼 책이 되었지만, 그래도 엘리엇을 알고 싶은 독자(과연 있을까?)라면 이 평전을 그냥 지나쳐선 안 된다. 그래서 번역본에 대한 오자와 오역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111쪽에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가 친형 줄리안 헉슬리(Julian Huxley)에게 보낸 편지 내용 일부를 인용한 문장이 있다.

 

 

 엘리엇이 1916년 가싱턴을 처음 방문했을 때 누구를 만났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손님들 중에는 캐서린 맨스필드(Katherine Mansfield), 클리브 벨(Clive Bell), 그리고 올더스 헉슬리가 섞여 있었다. 헉슬리는 자신의 형제인 줄리안(Julian)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는 엘리엇의 작품들을 꼭 읽어보아야 한다. 그 저자가 한 평범한, 유럽화된 미국인일 뿐이며, 아주 교양 있고, 프랑스 문학에 대해서 가장 덤덤한 투로 얘기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작품들이 더욱 더 뛰어난 것으로 보일 것이다.’

 

 

줄리안은 1887년 생이고, 올더스는 1894년 생이다. 두 사람의 관계를 생각하면 올더스가 자신보다 일곱 살 많은 친형에게 ‘너’라고 부르는 게 어색하다.

 

 

123쪽에 J. B. 예이츠’라는 이름이 나온다. 아일랜드의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의 머리글자를 잘못 쓴 거라면 ‘W. B. 예이츠’로 고쳐야 한다.

 

 

 

 

 

 

 

 

 

 

 

 

 

 

 

 

 

*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도서출판 숲, 2007)

 

 

 

 

 

 

 

 

 

 

 

 

 

 

 

 

 

 

 

 

 

 

 

 

 

 

 

 

 

*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그림으로 보는 황금가지》 (까치, 2001)

*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황금가지》 (한겨레출판, 2003)

*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황금가지》 (을유문화사, 2005)

 

 

 

427쪽에 엘리엇이 이탈리아의 네미 호수에 방문했다는 내용이 있다. 베르길리우스(Vergilius)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에 네미 호수의 전설이 언급되는데, 이곳 근처 숲에 신성한 ‘황금 가지’가 있다고 한다.

 

 

 미국의 작가인 프레더릭 프로코시의 제안에 따라 오후 시간에 네미호 연안의 전설적인, 실제로는 볼품없는 참나무 고목인 ‘황금 가지(Golden Bough)를 함께 찾아가 보기도 했다.

 

 

황금 가지는 참나무 고목이 아니다. 이 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 가지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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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6 1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1-16 17:51   좋아요 0 | URL
엘리엇의 시를 이해하려면 동서양 철학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엘리엇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데도 인기가 없고, 그의 시를 읽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저도 러셀이 저지른 일을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그가 쓴 책 중에 ‘결혼과 도덕’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어요. 그 책을 아직 안 읽어봤지만, 만약 그 책을 읽게 되면 러셀의 불륜이 떠올릴 것만 같습니다. ^^;;

카알벨루치 2019-01-16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리엇과 그의 부인, 그리고 러셀... 이런 이야기가 있었네요!

cyrus 2019-01-16 19:52   좋아요 0 | URL
엘리엇에게는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겠지만, 평전을 읽고 있던 저로서는 세 사람의 관계를 지켜보는 게 흥미진진했습니다... ^^;;

oren 2019-01-17 16: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금 다른 얘기입니다만, 하워드 가드너가 쓴 『열정과 기질』이라는 책에도 T.S.엘리엇에 대한 흥미로운 얘기들이 많이 담겨 있더군요. 목차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황무지』의 재발견이나 『황무지』: 작시 과정과 배경 등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어서, 엘리엇을 이해하는데 꽤나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 * *
1968년 뉴욕 공립도서관의 버그(Berg) 콜렉션에서 오랫동안 잃어버린 것으로 여겨진 초고가 발견되었다. 대개는 타자로 친 54페이지 분량의 초고 뭉치였는데, 군데군데 육필 원고도 끼어 있었다. 별다른 표시가 없는 페이지도 있었지만, 여러 사람이 손을 댄 흔적이 뚜렷한 페이지도 있었고, 아예 가위표로 삭제 표시가 그어진 페이지도 있었다. 타자로 친 부분은 다양한 언어로 쓰여 있었다. 구어체 영어로 쓰인 대목도 많았고, 우아하고 심원한 문체로 쓰인 대목도 많았다. 각종 유럽어에서 산스크리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언어로 쓰인 시행이 페이지 곳곳에 널려 있었다.

흔히 얘기하는 초고와는 달랐다. 20세기 영시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가장 영향력이 큰 작품이라 할만한 『황무지』의 중간 초고였다. 세인트루이스 태생으로 영국에 정착한 시인이었던 T.S.(Tomas Steams) 엘리엇은 1914년 경에 이 작품(혹은 이 작품에 포함될 운문)을 쓰기 시작했는데, 수천 행에 이르는 초고를 완전히 끝낸 것은 1921년 말이었다. 그는 아내 비비언(Vivien)과 역시 미국에서 태어나 유럽에 정착했던 시인으로서 가까운 친구 에즈라 파운드에게 초고를 보여주었다. 이 ‘우호적인 비평가들‘은 엘리엇과 함께 작품에 중대한 수정을 가했다. 특히 에즈라 파운드는 원래 길이를 반으로 줄여버릴 정도로 가차없이 수정하라는 제안을 했다. 엘리엇 연구자인 헬렌 가드너의 말을 빌면, ˝파운드는 좋은 구절과 나쁜 구절이 함부로 뒤섞인 초고 뭉치를 한 편의 시로 만들었다.˝(402쪽)

cyrus 2019-01-18 12:32   좋아요 1 | URL
<열정과 기질>이라는 책에 엘리엇을 언급한 내용이 있군요.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oren 2019-01-18 13:09   좋아요 1 | URL
2014년에 T.S.엘리엇에 관한 글을 아주 길게 한 번 쓴 적이 있었는데, 그때 『황무지』라는 시를 주마간산 격으로나마 대충 한번 읽어봤었답니다. 그 뒤로 새로운 번역본이 나와서 새로운 책으로 다시 한번 그 시를 읽어봤는데도 여전히 그 시를 온전히 이해하기가 어렵더군요. 아무튼 2014년에 엘리엇의 『황무지』에 얽힌 글을 쓰면서 (그보다 훨씬 전에 읽었던) 『열정과 기질』이라는 책 말고도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함께 인용한 적이 있었는데, cyrus 님의 이번 글에서도 그 책을 함께 언급해 주셔서 더욱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 http://blog.aladin.co.kr/oren/7103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