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후작(Marquis de Sade)은 역사상 가장 논쟁적 인물 중 하나이다. 그는 사후 100년이 넘도록 금기와 저주의 대상이었다. 100년 뒤엔 초현실주의자들로부터 ‘역사상 최고의 반항아’란 찬사를 받으며 부활했다.

 

 

 

 

 

 

 

 

 

 

 

 

 

 

 

 

 

* 사드 《사드 전집 1 :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워크룸프레스, 2014)

* 사드 《악덕의 번영》(동서문화사, 2011)

 

 

 

 

 

 

 

 

 

 

 

 

 

 

 

 

* [품절] 존 필립스 《HOW TO READ 사드》(웅진지식하우스, 2015)

* [절판] 에스텔라 V. 웰든 《사도마조히즘》(이제이북스, 2006)

* [절판] 스튜어드 후드 《사드》(김영사, 2005)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는 1909년에 사드의 주요 작품을 선집으로 묶어 출간했다. 이 선집에 아폴리네르의 해설이 있는데, 사드 사후 200주기에 맞춰 나온 《사드 전집 1 :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워크룸프레스, 2014)에 수록되어 있다. 1955년, 프랑스 파리 법원이 사드의 작품 네 권을 압수하여 파기하라고 판결하기 직전에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사드를 화형시켜야 하는가(Faut-il brûler Sade?)[주1]라는 에세이를 발표했다. 그녀는 사드를 ‘정신분석학의 선구자’로 칭송했고, 사드의 잔혹한 에로티시즘이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은 살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문학적 상상력이라고 옹호했다. 보부아르의 글은 《악덕의 번영》(동서문화사, 2011)에 수록되어 있는데 번역이 썩 만족스럽지 않다. 영국의 페미니스트 작가 안젤라 카터(Angela Carter)는 자신의 책 <사드적인 여자(The Sadian Woman)>에서 사드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 ― 《악덕의 번영》의 주인공 쥘리에트(Juliette)[주2] ―을 새로운 시선으로 접근했다.

 

 

 사드 자신은 여성의 성교할 수 있는 권리를 명백히 선언한다. 그는 여성들에게 할 수 있는 한 적극적으로 성교하라고 권장한다. 그리하여 여성들은 지금까지 사용되지 않았던 거대한 성적 에너지로 무장하여 자신들의 방식을 역사와 성교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역사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주3]

 

 

카터의 주장에 따르면 사드는 여성의 개인적인 성적 경험을 여성의 삶뿐만 아니라 세상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가장 중요한 ‘정치적 영역’으로 본 것이다. <사드적인 여자>는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고, 생각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카터의 책이다. 비록 일부분이지만, 사드를 옹호하는 카터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2차 문헌은 《사드》(김영사, 2005),《사도마조히즘》(이제이북스, 2006), 《HOW TO READ 사드》(웅진지식하우스, 2008)다.

 

 

 

 

 

 

 

 

 

 

 

 

 

 

 

 

 

 

* 게일 루빈 《일탈 : 게일 루빈 선집》(현실문화, 2015)

* [절판] 안드레아 드워킨 《포르노그래피 : 여자를 소유하는 남자들》(동문선, 1996)

 

 

 

그러나 사드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소수에 불과하다. 일반인에겐 사드는 그저 가까이 해선 안 될 ‘위험인물’일 뿐이다. 보부아르와 안젤라 카터 같은 페미니스트들이 사드를 호의적으로 본다고 해서 여성의 신체를 성적 대상화한 온갖 직설적인 사드의 표현들이 가려지는 건 아니다. ‘반포르노 운동’에 앞장 선 안드레아 드워킨(Andrea Dworkin)은 사드가 남성(지식인)들이 만들어 낸 ‘강간 신화’에 의해서 과장된 평가를 받았다고 비판했다. 반포르노 운동을 이끈 페미니스트들은 포르노 영화 속에 묘사된 사도마조히즘을 근거로 사도마조히스트들을 공격했다. 레즈비언 사도마조히즘 그룹을 만든 게일 루빈(Gayle Rubin)은 포르노그래피와 사도마조히즘이 정치적 검열의 표적으로 삼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을 드러냈다. 《일탈 : 게일 루빈 선집》(현실문화, 2015)에 포르노그래피를 옹호하는 루빈의 글(『오도된, 위험한, 그리고 잘못된 : 반포르노그래피 정치에 대한 분석』)이 수록되어 있다. 과거 1970년대 여성운동을 회상한 글인 『과거가 된 혈전』에서 루빈은 포르노그래피와 사도마조히즘을 옹호한다는 이유로 반포르노 페미니스트들에게 공격당했던 살벌한 경험을 털어놓는다.

 

 

 

 

 

 

 

 

 

 

 

 

 

 

 

 

 

 

 

 

 

 

 

 

 

 

 

 

 

 

 

 

 

 

 

* 에드거 앨런 포 《검은 고양이》 (민음사, 2017)

* 에드거 앨런 포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2 : 공포 편》 (코너스톤, 2015)

* 에드거 앨런 포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민음사, 2013)

* 에드거 앨런 포, 마이클 코넬리 엮음 《더 레이븐 :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림자》 (RHK, 2012)

 

 

 

《악덕의 번영》 번역본의 문제점에 대해서 몇 마디 지적하겠다. 첫 번째 각주에 후술하겠지만, ‘사드를 화형시켜야 하는가’는 번역 투 문장이다. 《악덕의 번영》 47쪽에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단편소설의 제목 ‘The Pit and the Pendulum’이 나온다. 이 작품은 ‘구덩이와 추(《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함정과 진자(《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2 : 공포 편》, 《더 레이븐 :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악덕의 번영》에서는 ‘우물과 진자시계’로 엉뚱하게 번역했다. 소설을 보면 알겠지만, ‘진자’는 시계추가 아니다.

 

72쪽 다섯 번째 주석에 연도 오류가 있다.

 

 

 1972년 6월 25일, 사드는 라투르라는 하인을 데리고 마르세유로 돈을 받으러 갔다가 (…)

 

 

주석의 글자 크기가 깨알과 같이 작아서 오자를 그냥 지나치기 쉽다. 1972년을 ‘1772년’으로 고쳐야 한다.

 

85~86쪽 33번째 주석에 잘못된 인명 표기가 있다.

 

 

 《소돔 120일》은 바스티유에서 분실되어 20세기가 되어 베를린의 정신과 의사 이반 프로흐 박사가 오이겐 뒤랭(Eugène Dühren)이라는 필명으로 과학적 주석을 달아 원문과 함께 편집한 것이 1904년에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180부 한정으로 출판되었다.

 

 

‘이반 프로흐’가 아니라 ‘이반 블로흐(Iwan Bloch)라고 써야 한다. ‘Bloch’를 ‘프로흐’로 발음하는 것이 맞으면, 영화 《싸이코》의 원작자(Robert Bloch)는 ‘로버트 플록’으로, 《희망의 원리》를 쓴 독일의 철학자(Ernst Bloch)는 ‘에른스트 프로흐’로 읽어야 한다.

 

 

 

 

 

[주1] ‘화형시키다’는 번역 투 문장이다. ‘사드를 화형에 처해야 하는가?’라고 쓰는 게 맞다. 《악덕의 번영》에는 ‘사드를 화형시켜야 하는가’라고 되어 있다. 유일하게 보부아르의 글이 수록된 《악덕의 번영》의 출판사는 번역 문제로 악명 높은 ‘동서문화사’다.

 

[주2] ‘악덕의 번영’은 국역본 제목이며, 원제는 ‘Histoire de Juliette ou les prosperites du vice(쥘리에트 이야기 또는 악덕의 번영)’이다. 다른 책에서는 이 작품을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 ‘쥘리에트’로 언급된다.

 

[주3] 안젤라 카터, <The Sadian Woman>, 1979. (에스텔라 V. 웰든 저, 최정우 옮김, 《사도마조히즘》, 이제이북스, 2006, pp.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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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우스(St. Anthony)사막의 성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수도승이다. 젊은 안토니우스는 마태복음에 기록된 부자 청년에 대한 설교를 들은 뒤 처음으로 성령의 뜨거운 기운을 받았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사막에 들어가 기도와 묵상에 전념했다.

 

 

 

 

 

 

 

 

 

 

 

 

 

 

 

 

 

 

* [품절]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 사막의 안토니우스(분도출판사, 2015)

* 아타나시우스 성 안토니의 생애(은성, 2009)

 

 

 

온갖 종류의 유혹과 환영이 안토니우스에게 나타나 그를 무너뜨리려 하였다. 그는 이런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아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사막으로 옮겨갔다. 10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안토니우스는 사막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 그는 단 두 번 은둔처를 벗어났다. 첫 번째는 311년 알렉산드리아에서 일어난 박해로 유죄 판결을 받은 죄수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두 번째는 아리우스 파(Arianism)와 논쟁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예수의 신성(神聖)을 부인한 아리우스 파에 맞서 싸우던 알렉산드리아의 교부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of Alexandria)를 도와 교회의 정통 교리를 수호했다. 아타나시우스는 안토니우스의 생애를 기록했고, 그가 쓴 성인 전에 영향을 받은 젊은 성도들이 사막에 찾아왔다. 안토니우스와 그를 따르는 성도들은 사막에 모여든 제자들에게 금식과 기도와 자선에 관해 가르쳤다. 최초의 수도원은 사막에서 시작되었다.

 

 

 

 

 

 

 

 

 

 

 

 

 

 

 

 

 

* 엘리자베트 루디네스코 악의 쾌락 변태에 대하여(에코의서재, 2008)

* 로이 포터, 미쿨라시 테이흐 엮음 섹슈얼리티와 과학의 대화(한울아카데미, 2001)

 

 

 

안토니우스는 금욕과 고행, 그리고 청빈한 생활을 중시했다. 그는 하루 한 끼만 먹었고, 배가 고플 때는 맹물을 잔뜩 퍼마셨으며, 빈 동굴 무덤에서 거지처럼 웅크리고 잠을 청했다. 일정 기간 간격으로 친구들이 마른 빵을 가져다준 덕분에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다. 오늘 우리의 기준으로 안토니우스의 생활을 보면 극단적인 금욕에 가까운 고행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시 중세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마음속의 욕념을 깨끗이 비워 버리는 방법이다. 안토니우스뿐만 아니라 여러 종파의 수도승, 신비주의자들은 마음속에 층층이 남아 있는 잡다한 악덕의 모습을 기도 속에서 훌훌 털어버림으로 마음을 정화하고자 했다. 이들은 예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 고통을 받아들여 자신의 삶을 믿음에 일치시키기 위해 예수를 따르고자 노력했다. 그리하여 육신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고행을 실천했다. 고행자들은 자발적으로 십자가의 고통에 참여하려고 때로는 자신의 몸에 채찍질을 가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육신에 직접 고통을 가하기도 했다. 소박한 종교적 반성에서 시작한 채찍질 고행은 마조히즘(masochism)의 이상 현상에 휘말려 미친 듯 인기를 끌게 된다. 중세 말기에 와서 자기 파괴적 고행 방식은 이단으로 규정 받기 시작했고, 채찍질 고행은 악마의 행위와 동일시되었다.

 

정신분석학자 엘리자베트 루디네스코(Elisabeth Roudinesco)는 자신의 책 악의 쾌락 변태에 대하여 (에코의서재, 2008)에 중세의 극단적인 고행 문화를 소개하면서 인류의 도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섹슈얼리티와 과학의 대화 (한울아카데미, 2001) 2(사디즘, 마조히즘의 역사, 언제 어떤 행동이 사도마조히즘이 되는가)은 사디즘(sadism)과 마조히즘의 용어 성립에 대한 통념을 깨는 글이다. 여기서 말하는 통념이란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19세기 근대 성과학의 등장과 함께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사도마조히즘은 병리적인 형태가 아니라 인류의 내면에 잠자고 있는 원초적 본능이다. 섹슈얼리티와 과학의 대화도 중세 고행자들의 마조히즘을 근거로 내세워 고통으로부터 느끼는 쾌락을 누리는 문화가 오래전부터 만연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중세 고행자들은 사드 후작(Marquis de Sade)이 태어나기 전에 마조히스트로 살고 있었던 셈이다.

 

 

 

 

 

Trivia

 

섹슈얼리티와 과학의 대화서론 15쪽에 괴테(Goethe)의 작품명이 언급되어 있다. ‘괴테의 사고력 실험소설 선택적인 유사성(Elective Affinities)이라고 적혀 있는데,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린가 했다. 우리말로 옮긴 작품명에 영문명이 안 적혀 있었다면 작품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Elective Affinities’18세기에 나온 화학 용어인데 물질의 결합을 일으키는 힘을 뜻한다. 과학에 조예가 깊은 괴테는 이 과학적 개념을 빌려 인간의 관계를 묘사한 친화력이라는 소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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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8-22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 안토니우스의 금욕과 고행 그리고 극단적 청빈
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부합할 터인데
오늘날 한국 대형교회의 모습과는 정말 동떨어진 것 같
아 씁스릅하기만 합니다.

cyrus 2018-08-22 17:34   좋아요 0 | URL
종교인들도 사람이라서 쾌락을 누릴 수 있어요. 그런데 성행위를 부도덕한 행위로 보면서도 자신들은 남 몰래 즐기는 위선적인 행동은 마음에 들지 않아요. 특히 ‘신의 이름’을 내세워서 여신도들에게 접근하는 사이비들은 싫어요.

페크pek0501 2018-08-22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통으로부터 느끼는 쾌락을 제가 경험한 게 있어요. 발레 시간에 앉아서 동작을 하다가
누워서 동작을 하는데 꽤 힘들어서 끙끙대게 되는데 묘한 쾌감이 있습니다. 윗몸 일으키기도 하는데 꽤 많이 시켜서 땀을 흘리며 고통을 느끼게 되는데 그 시간이 싫지 않은 거예요.
왜 그럴까, 생각을 하곤 해요.
저는 인간들의 공통점이 많을 거라고 봐요. 다만 느낄 기회가 없거나 무지해서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인간은 이상한 존재입니다. ㅋ

cyrus 2018-08-23 17:00   좋아요 1 | URL
페크 님의 경험은 고통의 쾌감이라기보다는 성공에 대한 기대감이 주는 쾌감인 것 같아요. 발레 동작을 하려면 고통을 참아야 하잖아요. 그 고통을 견디면 몸이 유연해지고, 발레 동작이 가능해져요. 발레 동작을 할 수 있다는 성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 고통을 못 느낄 수 있어요. ^^
 

 

 

 

누구나 학창 시절에 한 번쯤은 번안시집을 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집의 여백에 감상문 몇 자 끼적거린 경험도 있을 것이다.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미라보 다리』는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알려진 외국 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른다

우리 사랑을 나는 다시

되새겨야만 하는가

기쁨은 언제나 슬픔 뒤에 왔었지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주1]

 

 

 

아폴리네르는 절친한 피카소(Pablo Picasso)의 소개로 화가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을 만난다. 아폴리네르와 로랑생은 결혼을 전제로 5년간 교제했으나 양가 어머니의 반대에 부딪혀 헤어지고 만다. 사실 두 사람을 갈라서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 있다. 아폴리네르는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된 「모나리자」 도난 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돼 절도 혐의로 구속된다. 다행히 그는 구속 일주일 만에 풀려나지만, 이미 그의 이름에 크게 찍힌 ‘범죄자’라는 낙인은 쉽게 사라지지 못한다. 로랑생은 ‘사랑받지 못한 이방인’ 아폴리네르를 감싸 안지 못하고 이별을 선택한다. 『미라보 다리』에는 세월이 가도 절대 지워지지 않는 사랑의 실루엣이 남아 있다.

 

 

 

 

 

 

 

 

 

 

 

 

 

 

 

 

 

 

 

 

* 아폴리네르 《알코올》 (열린책들, 2010)

* 아폴리네르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 (민음사, 2016)

* 아폴리네르 《동물시집》 (난다, 2016)

 

 

 

 

아폴리네르의 시를 읽으면 범접할 수 없는 뜨거운 충동성이 느껴진다. 첫 번째 시집 《알코올》은 구두점이 하나도 없다.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에 삽입된 두 번째 시에는 과격한 욕설이 있다. 《칼리그람(Callimgrame)은 언어를 배치하여 그림으로 만든 상형시집이다. 문자를 읽고 내면 깊숙이 느끼며 감상하는 보통의 시와 달리 《칼리그람》은 언어로 만들어진 그림을 보여준다.

 

 

 

 

 

 

올해는 아폴리네르 사후 100주기이다. 1918년 아폴리네르는 ‘빨강 머리 여인’ 자클린 콜브(Jacqueline Kolb)와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스페인 독감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폴리네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불문학자 황현산 교수가 올해 세상을 떠났다. 황 교수가 경남대학교 조교수로 일하고 있던 시기에 파스칼 피아(Pascal Pia)《아뽈리네르》(열화당, 1981)를 번역했다. 황 교수가 생전에 남긴 저작물(학술 논문 제외)에 대해서 좀 더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아뽈리네르》는 황 교수가 대중 앞에 처음으로 선보인 책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아뽈리네르》는 1983년에 나온 2판이다. 황 교수는 이 번역서에 부록으로 《동물시집》 일부를 수록했다. 《동물시집》은 동물을 주제로 한 짤막한 시 30편과 화가 라울 뒤피(Raoul Dufy)의 목판화 30점이 채워진 시집이다. 황 교수는 《동물시집》 12편과 목판화 12점을 《아뽈리네르》의 부록으로 선보였다. 《아뽈리네르》에는 아폴리네르의 삶 전체뿐만 아니라 다채롭고 폭넓은 그의 문학 세계를 보여주려는 황 교수의 열망이 느껴진다. 이 책 덕분에 나는 아폴리네르와 황현산이라는 두 명의 사내를 알게 됐다.

 

그런데 알라딘에 파스칼 피아의 책을 찾을 수 없다. 알라딘이 이 책을 등록하지 않아서 유감스럽다. 이 책이 알라딘에 정식으로 등록될 수 있게 내가 ‘사소한 부탁’이라도 해야 하나. 아폴리네르와 황현산, 이 두 개의 실루엣이 멀어지기 전에 이 특별한 책 한 권을 ‘망각의 안개’ 속에서 끄집어내야 한다. 세월은 가더라도 책은 남아야 한다.

 

 

아 가을 가을은 여름을 죽였다

안개 속으로 회색 실루엣 두 개 멀어진다

 

[주2]

 

 

 

 

 

[주1]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중에서, 황현산 옮김, 《알코올》, 열린책들, 2010, pp. 52.

 

[주2] 아폴리네르, 『가을』 중에서, 같은 책, pp.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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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8-08-21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기억은 오래 가지 못하지만 사진은 남고 감상은 금새 가물해지는데 그래도 책은 남아 있더군요 ... 어떨땐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도 않지만 그래도 서가에 꽂힌 책을 보면 그냥 흐믓 ㅋㅋㅋ

cyrus 2018-08-21 16:55   좋아요 0 | URL
책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끼는 게 애서가다운 마음이죠. ^^

카알벨루치 2018-08-21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가을 가을은 여름을 죽였다...역쉬 시는 맛이 있어요!

cyrus 2018-08-21 16:56   좋아요 1 | URL
홍시도 맛있어요.. ㅎㅎㅎㅎ

카알벨루치 2018-08-21 17:03   좋아요 1 | URL
푸하하하! 홍시가 맛있을라믄 여름이 완전히 죽어야겠네요 여름의 눈물샘이 마르면 홍시의 맛의 진가를 알 수 있겠슴돠 ㅋ
 

 

 

 

에도가와 란포(江戸川乱歩)의 단편소설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를 읽다가 익숙한 지명을 발견했다.

 

 

 

 

 

 

 

 

 

 

 

 

 

 

 

 

 

* 에도가와 란포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 (도서출판 두드림, 2008)

 

 

 **관음은 도쿄로 치면 아사쿠사쯤 되는 곳인데, 경내에는 여러 가지 구경할 만한 작은 전시실도 있고 극장도 있었다. 시골인 만큼 그런 것들이 한층 더 황량하고 그로테스크해 보이지만, 요즘에야 말도 안 되지만 그때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교사가 연극을 보러가는 것조차도 금지했다. [주1]

 

 

 

 

 

 

 

 

 

 

 

 

 

 

 

 

* 미리엄 실버버그 《에로틱 그로테스크 넌센스》 (현실문화, 2014)

 

 

 

아사쿠사(浅草)는 일본 도쿄에 있는 구역이다. 이 구역에 도쿄에서 가장 큰 절인 센소지(浅草寺)가 있다. 센소지 주변에는 에도 시대부터 형성된 번화가가 있다. 절과 신사를 찾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상인들이 모이면서 만들어졌다. 근대 일본 사상과 문화를 연구한 미리엄 실버버그(Miriam Silverberg)는 센소지의 거리 문화를 ‘참배와 놀이의 문화’[주2]라고 했다. 메이지 정부 시절에 아사쿠사는 대대적인 정비가 이루어졌고, 센소지 일대는 일곱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졌다. 아사쿠사 제4구와 제6구는 도쿄를 대표하는 향락지가 되었다. 이곳에 기형적인 외모를 가진 사람들만 모아 구경거리로 세우고 묘기를 시키는 프릭 쇼(freak show)나 기이한 것들의 모습을 담은 활동사진을 전시하는 쇼가 유행했다. 일본인들은 기이한 것들을 구경하는 문화를 즐겼고, 이를 ‘미세모노(見世物, 구경거리, 웃음거리)라 불렸다.

 

아사쿠사는 서양 문화에 익숙한 중 · 상류층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모던한 유흥 장소’였지만, 그곳에 거지, 넝마주이, 불량아 등 도쿄의 밑바닥에 있는 하층민들이 모여 살아가기도 했다. 아사쿠사는 계층에 구애받지 않고 ‘에로 그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의 안식처였다. 그래서 실버버그는 아사쿠사에서 볼 수 있는 그로테스크, 즉 자본주의가 만든 계층 피라미드 ‘밑바닥’에 속한 하층민의 그로테스크를 주목한다.

 

 

 

 

 

 

 

 

 

 

 

 

 

 

 

 

 

* [절판 / 안 읽었어요!] 가와바타 야스나리 《어둠의 거리》 (혜림사, 1999)

 

 

 

실버버그가 아사쿠사의 그로테스크한 풍경을 살펴보기 위해 참고한 문헌 중에는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소설아사쿠사 구레나이단(淺草紅團)이 포함되어 있다. 이 소설은 상인에서부터 밑바닥 사람들까지 아사쿠사에 살아가던 인간 군상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이 작품은 《어둠의 거리》  (혜림사, 1999)라는 제목이 붙여진 번역본이 나왔는데 절판되었고, 우리나라에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2년 전인가? 헌책방에서 이 책을 본 적이 있다. 그때는 이 책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다. 지금 그곳에 가면 책이 있으려나.

 

 

 

 

[주1]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은희 옮김,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 도서출판 두드림, 2008, pp. 86.

 

[주2] 미리엄 실버버그 지음, 서미석, 강진석, 강현정 옮김, 《에로틱 그로테스크 넌센스》, 현실문화, 2014, pp. 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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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8-10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중앙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맞은 편에 앉은 청년이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을 읽고 있었습니다.

아니 뭐, 갑자기 생각나서요.ㅎㅎㅎㅎ

cyrus 2018-08-10 17:30   좋아요 1 | URL
사실 그 청년은 저의 분신입니다. 저는 분신술을 씁니다. 어제 syo님이 보신 건 제2의 사이러스예요. 제3의 사이러스는 범어도서관에, 제4의 사이러스는 용학도서관, 제5의 사이러스는 고산도서관에 있어요. ^^

syo 2018-08-10 17:43   좋아요 1 | URL
아니 사이러스님..... 그게 가능하면 그건 이미 사이러스님이 아니라 바이러스님이잖아요....

사람을 뭘로 보고 그런 말씀을, 싶다가도 사이러스님이 5명이라고 가정하니 확실히 그 무지막지한 독서량이 이해가 되기도 하고...

아 혼란스럽다....

stella.K 2018-08-10 20:08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두 사람 대화가 웃겨욧!

<멀티플리시티>란 영화가 있는데
주인공이 일하는 게 힘들어서
어떤 박사한테 자기를 넷인가, 다섯쯤 복제해 달라고 하죠.
그런데 이 복제인간이 가면 갈수록 지능도 떨어지고
하는 게 영 시원치가 않아요.
뭐 그 복제인간들이 벌이는 소동극인데 나름 재밌게 봤던 것 같아요.
어제 스요님이 봤다는 사이러스는 두 번째라면 뭐 아직 쓸만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범어와 용학 도서관의 사이러스는 독서력이 조금 떨어지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나중에 제 2와 제 3의 사이러스를 처치하시면
두 사람이 얼추 독서력이 맞을 거라고 생각합니다.ㅋㅋㅋ

cyrus 2018-08-11 07:17   좋아요 0 | URL
범어와 용학은 건물이 넓고 좋은데, 단점은 둘 다 멀어요. 그래서 한 번 갔다오면 피로도가 높아져요.. ㅎㅎㅎ

레삭매냐 2018-08-10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랑은 상관 없는 이야기지만
처음으로 도쿄에 갔을 적에
아사쿠사 근처에서 묵었던 기억이 납니다...

센소지 상가에서 산 고양이 손수건은 지금
도 애정한답니다 :>

그 때 가을이라 국화 전시회가 열렸었는데
지금도 저에게 아사쿠사는 만발한 국화꽃
으로 기억되네요.

cyrus 2018-08-10 17:33   좋아요 0 | URL
작년에 일본 오사카에 갔어요. 4박 5일이 짧게 느껴졌어요. 다음에 또 일본에 가게 되면 도쿄에 가고 싶어요. ^^
 

 

 

‘SM’은 세 가지 의미를 가진 단어다. 하나는 EXO, 레드벨벳,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등이 소속된 기획사의 약자이다. 10대들이 말하는 ‘SM’은 ‘SM 엔터테인먼트’를 뜻한다. 또 하나의 ‘SM’은 ‘르노삼성자동차’가 출시한 자동차 시리즈 명이다. 나머지 하나의 ‘SM’은 성적인 용어다. 사디즘(sadism)마조히즘(masochism)을 일컫는 말이다. 이 두 단어를 합쳐서 ‘사도마조히즘(sadomasochism)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절판] 사드 《소돔 120일》 (고도, 2000)

* 사드 《소돔의 120일》 (동서문화사, 2012)

* 레오폴드 폰 자허마조흐 《모피를 입은 비너스》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사디즘은 성적 대상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성적 쾌감을 얻는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이다. 사디즘의 반대는 마조히즘이다. 마조히즘은 고통을 당하는 상황에 성적 쾌감을 얻는 성향이다.

 

 

 

 

 

정신의학에서는 사도마조히즘을 성도착증으로 분류한다. 우리 사회에서 사도마조히즘은 변태 성욕자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사도마조히즘은 변태의 대명사로 알려졌고 지금도 ‘불경한 단어’로 존재하고 있다. 사도마조히즘을 성적 지향으로 인정하고, 문화적 소재로 쓰이는 미국, 유럽 등과 비교하면 우리 사회에서 사도마조히즘의 ‘커밍아웃’은 먼 나라 얘기다.

 

 

 

 

 

 

 

 

 

 

 

 

 

 

 

 

 

 

* [절판] 에스텔라 V. 웰든 《사도마조히즘》 (이제이북스, 2006)

 

 

 

사도마조히스트는 가죽옷을 입고, 눈가리개, 채찍, 수갑 등 다양한 종류의 기구를 사용하면서 파트너와 함께 성적 행위를 한다. SM 플레이가 다소 변태적이고 극단적으로 묘사되는 경향이 있지만, 한쪽이 일방적으로 상대방을 통제하고 강요하는 행위가 아니다. 실제로 SM 플레이는 파트너 간의 신뢰와 합의가 있어야만 실행할 수 있다. SM 플레이를 실행하기 전에 자신이 원하는 역할(지배자 또는 피지배자)이나 성적 행위의 수위에 대해서 상대방과 논의를 해야 한다. 고문 위주의 SM 플레이 특성상 뜻밖의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SM 플레이어는 위험을 알리는 신호인 ‘안전 구호’를 만든다. 따라서 SM 플레이는 ‘상호 합의’로 이루어지는 ‘역할 놀이(role-playing)다.

 

1970~80년대 미국의 보수 우파들은 SM을 음란하고 위험한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SM 반대 운동을 펼쳤다. 여기에 반포르노 운동에 앞장서는 페미니스트들도 SM 반대 운동에 가세했다. 이들 세력은 SM을 ‘불법’, 또는 ‘위험한 행위’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미지의 대상에게 불안을 느끼면 그것과 관련된 인과성을 찾아 해소하려는 심리가 있다. 불안은 공포가 되고, 점차 확산한 공포는 미지의 대상을 경계하거나 차별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SM 문화를 잘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전혀 관련 없는 행위에 대한 호기심과 과도한 불안을 동시에 느낀다. 그래서 그들은 SM 클럽을 ‘변태 성욕자들의 모임 장소’ 또는 ‘게이들이 모여 변태 행위를 하는 불법 장소’로 오해한다. 과잉된 공포심과 무지의 편견은 SM 플레이어와 성소수자 모두를 공격하기 위한 빌미로 이용된다. 그리고 그들을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비정상인’으로 규정한다.

 

 

 

 

 

 

 

 

 

 

 

 

 

 

 

 

 

* 게일 루빈 《일탈 : 게일 루빈 선집》 (현실문화, 2015)

 

 

 

게일 루빈(Gayle Rubin)『가죽의 위협 : 정치와 S/M에 관한 논평』이라는 글에서 SM 문화가 억압받는 상황의 사회적 맥락을 분석한다. 그리고 그녀는 보수 우파의 반포르노 운동에 힘을 실어준 페미니즘 운동을 비판한다. 루빈의 주장에 따르면 반포르노 운동에 뛰어든 페미니스트들은 SM뿐만 아니라 동성애자의 섹슈얼리티까지 억압했다. 루빈은 미국의 레즈비언 사도마조히즘 그룹 사모아(Samois)의 공동 창립자 중 한 사람이다. 사모아는 1978년부터 1983년까지 존속되었는데, 이 시기에 주류 페미니스트들은 SM 페미니스트들을 우호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 당시 주류 페미니스트들은 SM 문화를 가부장제의 산물로 간주하고 있었다. 일부 페미니즘 서점은 사모아 출판물 전시를 거부했고, 전미여성단체(NOW)는 1980년에 ‘레즈비언 게이 권리’라는 결의안을 통과시켜 SM과 포르노그래피를 공식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했다.

 

 

 

 

 

 

 

 

 

 

 

 

 

 

 

 

 

* 삽 쇤마이어, 마틴 케셀 《쾌락도구사전》 (현실문화, 2003)

 

 

 

상호 합의 속에서 상대방과 신체적 학대를 주고받는 사도마조히즘은 조금 극단적인 성적 지향일 뿐이다. 사실 가죽옷을 입지 않아도, 채찍으로 파트너를 때리지 않아도 우리 마음 한 구석에는 사디즘이 있다. 《쾌락도구사전》(삽 쇤마이어 · 마틴 케셀 공저, 현실문화, 2003)의 ‘사디즘’ 항목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사디즘은 우리 자신의 일부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즐거워해본 적이 없는 사람, 어릴 때 동물을 괴롭혀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주1]

 

 

남자라면 어린 시절에 사디즘과 유사한 놀이를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마음속으로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만나면 남자아이들은 유치한 행동을 한다. 여자아이의 긴 머리를 잡아당기거나 팔을 꼬집고 도망친다. 이때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의 시선을 자신에게만 향하도록 만들기 위해 여자아이를 괴롭히는 행동을 한다. 그러나 단지 그 이유만으로 여자아이를 괴롭히지 않았을 것이다. 남자아이는 자신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여자아이의 괴로운 표정을 보면서 즐거워한다. 그래서 남성은 여성보다 사디스트가 될 가능성이 높다. 가부장적 사회는 남성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란 남성은 여성을 통제하는 사디스트가 되고, 여성은 마조히스트의 위치로 남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남녀 권력의 불평등이 생기는데, 페미니스트들은 사도마조히즘의 불평등적 관계를 비판한다.

 

 

 

 

 

 

 

 

 

 

 

 

 

 

 

 

 

 

 

* 장 자크 루소 《고백》 (책세상, 2015)

* [품절] 리오 담로시 《루소 : 인간 불평등의 발견자》 (교양인, 2011)

 

 

 

마조히즘에 가까운 성적 환상도 유년기에 형성된다[주2]. 심리학자들은 마조히즘의 원인을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찾는다. 유년기에 어머니나 아버지 등 친밀한 대상과의 관계가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면 아이는 상대방에 대한 의존성이 높아진다. 그러면 아이는 상대방에게 지배당하는 상황을 즐기면서 친부모가 채우지 못한 애정을 스스로 충족시킨다. 유년기의 마조히즘적 성향과 그 배경은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의 어린 시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루소의 어머니는 루소가 태어난 지 3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시계공인 아버지는 어린 루소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고, 여자 가정교사가 루소의 양육을 맡는다. 그녀는 루소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루소의 엉덩이를 때리는 벌을 준다. 모성을 경험하지 못한 루소는 가정교사의 체벌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었고, 엉덩이를 맞으면서 성적 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엉덩이 부위에 고통을 극대화하는 마조히즘적 행동을 반복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사람은 누구나 사도마조히즘 성향을 갖고 있다. 우리도 모르게 사도마조히즘이 꿈틀대고 있을 수 있다. 우리 모두는 변태다. 아니, 우리 모두는 퀴어(queer)하다!

 

 

 

 

[주1] 삽 쇤마이어 · 마틴 케셀 지음, 김봉규 옮김, 《쾌락도구사전》, 현실문화연구, 2003, pp. 95.

 

[주2] 에스텔라 V. 웰든 지음, 최정우 옮김, 《사도마조히즘》, 이제이북스, 2006, pp.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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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8-08-05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의 관심사는 정말 넓군요. 게다가 늘 각자의 입장을 존중하려 노력하시는 듯해요. 한때 저는 성소수자, 특히 동성애자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나중에 깨달았죠. 내가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요. 그냥 그들의 삶을 존중하면 된다는 사실을요.

지금껏 SM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시루스님 글을 읽으니 또 여러가지 생각이 드네요. 역시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존중하면 되겠지요? 아니 이해할 필요조차 없겠지요. 그냥 그들의 삶을 인정하면 될 일이겠지요.

cyrus 2018-08-06 17:30   좋아요 0 | URL
페미니즘과 성소수자를 잘 몰랐을 땐 여성혐오를 했고, 성소수자를 무시했어요. 나도 모르게 저질렀던 과오를 반성하려고 페미니즘과 성소수자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제가 몰랐던 것들이 계속 나오고, 반성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