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트(Colette)프랑스적인 작가가 아니라 파리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작가. 파리는 센강(Seine R.)을 기준으로 북쪽의 우안(右岸, right bank) 지역, 남쪽의 좌안(左岸, left bank) 지역으로 나뉜다. 좌안은 보헤미안적 낭만을 지니고 있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곳에 값싼 주거지를 찾아 외지에서 모여든 예술가들이 많았다. 이곳의 개방적인 분위기는 자유분방한 보헤미안적 기질의 예술가들에게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 [품절] 안드레아 와이스 파리는 여자였다(에디션더블유, 2008)

 

    

1920~1930년대 파리 좌안에 터전으로 삼은 여성들이 있었다. 그녀들은 자유와 해방을 만끽했고, 당시 문화와 유행의 흐름을 이끌기도 했다. 미국의 작가이자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안드레아 와이스(Andrea Weiss)파리는 여자였다는 멋 좀 부릴 줄 알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던 파리 좌안의 여자들(레프트뱅크의 여자들)을 소개한 책이다.

    

 

 

 

 

 

레프트뱅크의 여자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창작 활동을 펼친 콜레트, 레즈비언 커플 래드클리프 홀(Radclyffe Hall)우나 트루브리지(Una Troubridge), 르네 비비엔(Renée Vivien)나탈리 클리포드 바니(Natalie Clifford Barney) 등은 서로를 알아봤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 [품절] 래드클리프 홀 고독의 우물(펭귄클래식코리아, 2008)

* 주디스 잭 핼버스탬 여성의 남성성(이매진, 2015)

    

 

 

래드클리프 홀은 남성으로 살아가길 원하는 레즈비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장편소설 고독의 우물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책에 묘사된 레즈비언의 사랑이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금서로 지정됐다. 우나는 트루브리지라는 칭호를 가진 남작의 아내였으나 1919년에 이혼한 후에 홀의 연인이 되었다.

 

 

 

 

 

퀴어 페미니스트 주디스 잭 핼버스탬(Judith Jack Halberstam)여성의 남성성에서 홀이 활동하던 시대의 성 담론을 분석한다. 홀과 우나는 어디든 여행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한 레즈비언이었다. 그래서 그녀들은 도덕주의자들의 비난을 조금은 피할 수 있었다. 홀과 우나는 레즈비언들만 모일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었다.

 

    

 

 

    

 

 

 

 

 

 

 

 

 

 

 

 

* [레드스타킹 선정 도서] 게일 루빈 일탈(현실문화, 2015)

*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큐큐, 2017)

    

 

 

나탈리 클리포드 바니 역시 풍족한 삶을 살았던 레즈비언이다. 그녀의 집에서 열리는 살롱은 당대의 예술가들이 모여 들었고, 콜레트도 바니 살롱에 드나든 인물 중 한 명이다. 60년 동안 이어진 바니 살롱에 한 번쯤 다녀간 인물은 이름만 들어도 아는 거물급문학계 및 예술계 인사들이다. 앙드레 지드(Andre Gide),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 등이 있다. 간첩으로 발각되기 전에 관능적인 댄서로 명성을 떨친 마타 하리(Mata Hari)도 바니 살롱의 단골이었다. 바니 살롱에 다녀간 남성 작가들은 세계 모더니즘 문학의 흐름을 주도한 인물이었고, 파리 좌안은 시대를 앞서간 문화의 근거지였다.

 

 

 

 

              

 

 

 

 

바니와 르네 비비엔의 연인 관계는 당대 모더니즘 작가들의 작품에 간접적으로 묘사될 정도로 유명했다. 두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시인 사포(Sappho)의 레즈비언 정신을 이어받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고, 사포가 태어난 곳인 레스보스 섬(Lesbos I.)에 레즈비언 학교를 세우려고 했었다. 비록 이 계획은 실패했지만, 바니는 파리에 여성들을 위한 공동체를 만들어 레즈비언 문화를 전파했으며 르네 비비엔은 바나의 후원을 받으면서 시와 소설을 발표했다.

    

 

 

 

 

 

 

 

 

 

 

 

 

 

 

* [No Image, 절판] 레미 드 구르몽 색 색 색(문지사, 1993)

* [절판] 루 알버트 라사르트 내가 사랑한 시인 내가 사랑한 릴케(하늘연못, 1998)

 

    

 

바니는 낙엽을 쓴 시인 레미 드 구르몽(Remy de Gourmont)의 연인으로도 알려졌는데, 구르몽은 그녀를 아마조네스(amazones)라고 불렀다. 두 사람은 문학 및 철학적인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거나 편지로 주고받았다.[1] 릴케도 바니와 편지를 주고받은 문인이다. 바니는 릴케에게 받은 편지를 수록한 정신의 모험(Aventures de l’Esprit)을 발표했다.

 

동성애자 시인 및 작가들의 시 선집인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에 비비엔이 쓴 시 네 편이 수록되어 있다(물론, 사포의 시와 래드클리프 홀이 쓴 시도 있다). 퀴어 페미니스트 게일 루빈(Gayle Rubin)은 비비엔이 쓴 유일한 소설의 서문을 썼다. 이 서문은 일탈에 수록되어 있다.

    

 

 

 

 

 

 

 

 

 

 

 

 

 

 

 

* [번역 예정작] 콜레트 Le Pur et lImpur(Distribooks Inc, 2003) [2]

* [e-Book] 김인환 외 프랑스 문학과 여성(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18)

[3]

* 엘렌 식수 메두사의 웃음 / 출구(동문선, 2004)

    

 

 

한편 콜레트는 파리의 동성애자(게이, 레즈비언)들의 일상을 기록한 순수와 불순(Le Pur et lImpur)을 신문에 연재했다. 이 책에 바니와 비비엔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 있다. 그러나 동성애를 성적 일탈로 보는 독자들은 콜레트의 글을 비난했고, 결국 연재 4회 만에 중단되었다. 순수와 불순20세기 초 파리의 퀴어 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책이다. 콜레트 본인이 이 책을 높게 평가했을 정도면 순수와 불순 콜레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프랑스의 페미니즘 연구가 엘렌 식수(Helene Cixous)가 정의한 여성적 글쓰기를 충실히 따른 작품으로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콜레트의 순수와 불순을 분석한 논문이 실린 프랑스 문학과 여성》에서 확인할 수 있다.

 

파리 좌안은 여성의 삶을 구속하는 전통적 인습에서 벗어난 여성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이혼이나 인공 임신 중절(낙태)을 경험한 여성 예술가가 있었고, 예술에 향한 열정이 가득한 그녀들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았다. 파리 좌안의 여자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녀들이 파리 좌안에 모여 산다고 해서 동질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적, 계급, 정치적 견해, 섹슈얼리티의 차이에 의해 대립하는 양상이 전개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과 다른 사람의 삶에 일절 간섭하지는 않았다. 프랑스에 정착한 미국 출신의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의 말을 빌리자면 파리 좌안은 내 삶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이었다. 파리 좌안의 여자들은 남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삶을 오로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서 살아왔다. 예술에 향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파리 좌안 여자들의 우정은 파리를 예술의 도시로 성장하게 만든 중요한 힘이었다.

 

 

      

    

[1] 2015년에 구르몽의 색 색 색리뷰를 쓴 적이 있다. 색 색 색의 역자 해설에 구르몽과 바니의 연인 관계를 언급한 내용이 있다.

 

 

[2] 큐큐읻다출판사가 만든 퀴어 문학 출판 브랜드다. 이 출판사가 언급한 출간 예정 작품들에 순수와 불순이 포함되어 있다.

출처: https://www.jungle.co.kr/magazine/27177

 

 

[3] 2003년에 이미 종이책으로 나온 적이 있다. 알라딘에 검색하면 종이책에 대한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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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밀렛(Kate Millett)성 정치학(이후)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성의 변증법꾸리에)과 함께 미국 급진주의 페미니즘(radicalism feminism)의 고전으로 꼽힌다. 두 권의 책 모두 1970년에 출간되었다.

    

 

 

 

 

 

 

 

 

 

 

 

 

 

 

* [품절, 레드스타킹 선정 도서] 케이트 밀렛 성 정치학(이후, 2004)

* [레드스타킹 선정 도서]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성의 변증법(꾸리에, 2016)

 

    

 

밀렛은 1970년을 황금 같은 나날들이었다고 회고한다. 성 정치학성 변증법이 출간된 1970년에 페미니즘의 두 번째 물결인 급진주의 페미니즘이 미국 사회를 뒤흔들기 시작한다(페미니즘의 첫 번째 물결은 18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등장했던 자유주의 페미니즘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프랑스의 68혁명을 계기로 탄생한다. 전 세계에 전쟁의 폭력성과 식민지주의,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구호가 거리를 뒤덮은 시기에 여성들도 여성 억압 문제를 제기하면서 가부장제에 대항했다.

 

 

 

 

 

 

 

 

 

 

 

 

 

 

 

 

 

 

* [품절] 로즈마리 푸트남 통 페미니즘 사상(한신문화사, 2000)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 자체가 아니라 법적 차원에서 남성과의 동등한 평등을 목표로 활동한 자유주의 페미니즘(liberal feminism)을 비판했다.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이 투쟁한 끝에 얻은 투표권만으로는 여성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 여성의 경험을 드러내는 언어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됐던 성폭력이 사회 구조적 문제임을 강조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The private is political)라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구호를 확증한 것이 밀렛의 책이다.

 

밀렛은 성(, sex)의 정치적 측면에 주목한다. 즉 성은 단지 개인적인 영역이 아니라 명백히 권력과 지배개념이 작동하고 있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영역이다. 밀렛이 성의 정치적 측면을 들여다보는 이론적 틀은 가부장제이다. 그녀는 사회 각 분야와 제도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가부장제를 파헤쳤다. 그녀가 비판하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지배적인 남성성과 순종적인 여성성을 극단적으로 분리하고, 성별 체계를 견고하게 유지하도록 만든다.

 

 

 

케이트 밀렛이 성 정치학에서 인용(비판)한 책들

  

  

    

 

 

 

 

 

 

 

 

 

 

 

 

 

* 존 러스킨 참깨와 백합

    

 

 

 

 

 

 

 

 

 

 

 

 

 

 

 

 

 

 

 

 

 

 

 

 

 

 

 

 

 

 

 

 

 

 

 

 

 

 

 

 

 

 

 

 

 

 

 

 

 

 

 

 

 

 

 

 

 

 

 

 

 

 

 

 

*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아들과 연인(민음사, 2002)

*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아들과 연인(열린책들, 2011)

*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채털리 부인의 연인(민음사, 2003)

*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무지개(민음사, 2006)

* [절판]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날개 돋친 뱀(을유문화사, 1974)

    

 

 

 

원제: Sexus (1949, The Rosy Crucifixion 1)

     

* [절판] 헨리 밀러 섹서스(정음사, 1972)

* [절판] 헨리 밀러 쎅서스(산호, 1991)

* [절판] 헨리 밀러 장밋빛 십자가(카나리아, 1991, 2)

* [절판] 헨리 밀러 속 북회귀선(정민, 1993, 2)

    

 

 

원제: Nexus (1960, The Rosy Crucifixion 3)

 

* [절판] 헨리 밀러 넥서스(범한출판사, 1984)

* [절판] 헨리 밀러 관계(세연, 1992)

* [절판] 헨리 밀러 본능(산호, 1992)

* [절판] 헨리 밀러 신들의 정원(홍원, 1994)

* [절판] 헨리 밀러 욕망(일문, 1997)

   

 

 

 

 

 

 

 

 

 

 

 

 

 

 

 

 

 

 

 

* 노먼 메일러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민음사, 2016)

* [품절] 노먼 메일러 아메리카의 꿈(학원사, 1992)

 

 

 

밀렛은 가부장제로 인한 여성의 종속이 문화 담론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유명한 남성 작가들의 작품을 비판한다. 그녀는 존 러스킨(John Ruskin),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 헨리 밀러(Henry Miller), 노먼 메일러(Norman Mailer)를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수호한 작가로 거론하면서 그들의 작품에 남성의 지배력과 폭력성을 옹호하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음을 드러낸다.

    

 

 

 

 

 

 

 

 

 

 

 

 

 

 

 

 

* 앨리스 에콜스 나쁜 여자 전성시대(이매진, 2017)

 

 

그러나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황금 같은 나날은 오래 가지 못한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의 목소리와 경험만이 페미니스트로서의 자기 정체성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여성 내에서 다양한 경험이 존재하며, 계급에 의한 여성 간의 격차와 차별이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이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1970년대 중반부터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여러 개의 단체의 활동으로 유지되어 온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내적 분열을 피하지 못한다. 급진적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은 진정한 여성 해방이 이루어지려면 남성과의 관계를 단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들은 레즈비어니즘(lesbianism)을 여성 운동의 정치적 명령으로 내세웠다. 이로 인해 이성애자 여성들이 페미니즘 운동을 떠났고,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힘을 잃는다. 나쁜 여자 전성시대(이매진)1967년부터 1975년까지 광장으로 나아간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의 황금기와 여명기를 보여주는 책이다.

    

 

 

 

 

 

 

 

* [품절] 토릴 모이 성과 텍스트의 정치학(한신문화사, 1994)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정전인 성 정치학도 후대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에 직면한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열기가 식어가는 무렵인 1980년대부터 성 정치학을 비판하는 입장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영국의 페미니즘 비평가 토릴 모이(Toril Moi)성과 텍스트의 정치학(한신문화사)은 영미 페미니즘 이론과 프랑스 페미니즘 이론을 정리한 책이지만, 이 책을 쓴 토릴 모이는 해체주의에 중점을 둔 프랑스 페미니즘을 긍정적으로 본다. 그러면서 가부장제 비판에 몰두한 미국의 급진주의 페미니즘을 비판한다. 특히 케이트 밀렛을 비판하는 토릴 모이의 입장은 성 정치학을 감명 깊게 읽은 독자(페미니스트)들의 뼈를 때릴 정도로 강도가 세다.

    

 

 

 

 

 

 

 

 

 

 

 

 

 

 

 

* 시몬 드 보부아르 2의 성 1(을유문화사, 1993)

* 메리 엘만 Thinking About Women(Palgrave Macmillan, 2014)

* 이규명 영미 여성시인과 여성이론(동인, 2011)

    

 

 

토릴 모이는 밀렛이 자신에게 영향을 준 선배 페미니스트들의 업적을 기꺼이 인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밀렛을 남성 작가의 작품 속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남근중심주의를 처음으로 비판한 페미니즘 비평의 선구자로 보는 평가가 있는데, 페미니즘 비평의 계보를 연도순으로 정리한다면 그 평가가 틀렸음을 알 수 있다. 성 정치학이 나오기 전에 보부아르(Beauvoir)2의 성에서 로렌스의 남근중심주의를 비판했으며, 메리 엘만(Mary Ellman)1968년에 발표한 여성을 생각한다(Thinking About Women)라는 책에 남성 작가가 묘사한 여성성의 한계를 지적했다(메리 엘만은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많이 언급되지 않은 페미니스트 비평가다. 그녀의 저서가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그녀의 이론을 조금이나마 언급한 책조차 찾기가 어렵다. 메리 엘만의 이론을 언급한 책은 토릴 모이의 책과 영미 여성시인과 여성이론이다). 밀렛은 분명히 보부아르와 엘만의 책을 참고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 두 사람의 이름을 각각 한 번씩만 언급했다(성 정치학번역본: 465, 641). 프로이트(Freud)의 정신분석학을 비판한 밀렛의 입장도 다른 페미니스트들로부터 도전받아왔다. 토릴 모이는 밀렛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오독했다고 비판한다.

    

 

 

 

 

 

 

 

 

 

 

 

 

 

 

* 김정매 로렌스와 여인들(태학사, 2006)

 

 

로렌스의 문학에 여성 혐오가 반영되었다고 주장한 보부아르와 밀렛의 입장에 동의하는 독자(페미니스트)라면 로렌스의 소설을 읽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로렌스를 여성 혐오 작가, 남성 우월주의자로 규정하는 관점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로렌스와 여인들(태학사)은 로렌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과 로렌스와 친분을 맺은 여성들을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로렌스를 전문적으로 연구했으며 한국 영미문학 페미니즘학회 회장, 한국 로렌스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민음사 판 《무지개》의 역자다). 저자는 로렌스가 여성성과 여성의 심리를 잘 이해한 작가라고 평가한다. 물론 저자도 로렌스의 여성 비하를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저자는 여성의 주체적인 의지에 초점을 맞춘 로렌스의 글쓰기를 언급하면서 로렌스를 여성혐오자로 일방적으로 공박하는 것은 비평적 안목의 공평성을 잃은 자세(김정매, 240)라고 말한다.

 

로렌스에게는 항상 야한 소설을 쓴 작가여성 혐오 작가라는 두 가지의 불명예스러운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오래전부터 학자들은 비평가로부터 외면받은 로렌스를 긍정적으로 재평가해오고 있지만, 로렌스를 기피하는 독자들의 마음을 돌려세우는 일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로렌스를 연구하는 여성 학자들이 많다고 하던데, 로렌스의 소설을 읽는 여성 독자는 얼마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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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5-09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심이시네요 :>

예전 모습 그대로.

cyrus 2019-05-10 13:13   좋아요 0 | URL
레샥매냐님도 열심히 글을 쓰는데요... ㅎㅎㅎ
박한이 선수가 ‘꾸준함의 대명사’인 것처럼 저도 꾸준한 블로거가 되고 싶습니다. ^^
 

 

 

독서 모임을 통해 알게 된 분이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채널 이름은 스몰토크입니다. 스몰토크? 어라? 이 이름…‥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죠? 제 글을 눈팅한 분들은 눈치 챘을 것입니다.

 

 

 

 

 

 

 

 

 

스몰토크는 대구 페미니즘 북클럽 레드스타킹공식 모임 장소인 카페 이름입니다. ‘스몰토크채널을 운영하는 분은 레드스타킹 멤버입니다. 427일에 수정이라는 예명으로 북튜버 활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책 리뷰 방송을 시작한 지 일주일 밖에 지나지 않은 새내기 북튜버입니다. 작년에 제가 블로그를 통해 이분을 소개한 적이 있어요. 사실 소개라기보다는 홍보였어요. 수정씨를 지방선거 비례대표 후보자로 소개해서 홍보를 했었죠. 올해는 북튜버로서의 수정씨를 홍보하려고 합니다.

 

예전에는 북튜버라고 하면 나랑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작년부터 북튜버 방송을 꼬박꼬박 챙겨보지 않았어요. 아주 가끔씩 봤어요. 그런데 수정씨가 북튜버로 활동한다고 하니까 이 분의 북튜브 방송만큼은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첫 방송을 보고 난 후에 궁금한 점이 있어서 수정씨한테 여쭤봤어요. 북튜버로 활동하면서 다음에 소개하려는 책의 주제는 어떤 건지 궁금했거든요. 제 질문에 수정씨는 본인이 읽고 싶은 책을 소개하고 싶다고 대답했어요. 이미 찍어둔 영상이 있다고 하네요. 수정씨의 북튜브 방송이 좋게 느껴졌던 이유 중 하나는 소개할 책 선정 방식입니다. 수정씨는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이거나 관심 있는 책을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저는 그게 정말 좋았어요. 수정씨의 독서 취향이 어떤지 아직까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 분만의 책을 고르는 안목이 있을 것입니다.

    

 

 

 

 

 

 

 

 

 

 

 

 

 

 

* [품절]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천진난만한 탕녀(문학동네, 2000)

*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파리의 클로딘(민음사, 2019)

 

    

 

수정씨가 두 번째로 소개한 책인 콜레트(Colette)천진난만한 탕녀는 제가 추천했어요. 수정씨에게 책을 추천했던 날이 영화 <콜레트>가 국내에 개봉하기 전이었어요. 수정씨가 뜬금없이 제게 책을 추천해달라고 질문했을 때, 저는 엄청 당황해서 바로 대답하지 못했어요.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한 것 같아서 몇 시간 동안 생각한 끝에 카톡 메시지로 책 제목을 전달했어요. 그때 카톡 메시지로 적은 책 제목이 천진난만한 탕녀였어요.

 

 

 

 

 

 

 

 

 

 

 

 

 

 

 

 

 

* 박서련 체공녀 강주룡(한겨레출판, 2018)

* 조선희 세 여자(한겨레출판, 2018)

 

 

 

 

 

 

 

 

 

 

 

 

 

 

 

 

 

 

 

* 프란츠 카프카 (워크룸프레스, 2014)

 

    

 

지금까지 등록된 동영상은 총 6편이고, 수정씨가 리뷰한 책은 총 세 권(박서련의 체공녀 강주룡, 콜레트의 천진난만한 탕녀, 조선희의 세 여자)입니다. 나머지 한 권(카프카의 )은 수정씨가 낭독한 책입니다.

 

앞으로 수정씨가 어떤 책을 리뷰할지 많이 기대됩니다. 제가 안 읽은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수정씨의 북튜브 방송 채널 구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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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19-05-06 1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각보다 공을 많이 들인 북튜브네요~^^

cyrus 2019-05-07 14:41   좋아요 0 | URL
로쟈님의 칭찬을 들으니 괜히 제가 기분 좋아지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kiddie 2019-05-06 1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정말 고맙습니다. 봐주시는것만 해도 감사한데 이렇게 추천까지 해주시다니ㅠ 계속해서 재밌는 책 많이 리뷰할게요:)

짜라투스트라 2019-05-06 1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추천하셔서 구독 누르고 왔습니다^^

cyrus 2019-05-07 14:4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블랙겟타 2019-05-07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cyrus님의 추천으로 살포시 구독했습니다.
또 챙겨봐야할 북튜버가 한분 늘어났네요. ^^

cyrus 2019-05-07 18:0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유튜버는 아니지만 구독자 한 분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소중하게 느껴지네요. ^^
 

 

 

상대방에게 ‘재미있는 책’을 추천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상대방이 생각하는 ‘재미’의 조건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책을 추천하지 못한다. 나는 책을 추천하는 것보다 책을 ‘추천받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상대방으로부터 추천받은 책들 전부 다 읽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 책의 제목과 저자, 출판사는 꼭 기억해둔다. 꼭 한 번은 그 책을 읽어야 할 순간이 온다. 상대방이 계속 재미있는 책을 추천해달라고 조르면, 나는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이렇게 대답한다.

 

 

 “평소에 본인이 읽고 싶다고 생각한 책이 있어요? 정말로 그 책이 있다면 그게 당신이 원하는 ‘재미있는 책’이에요.”

 

 

‘재미있는 책’을 만난다는 건 ‘모 아니면 도(all or nothing)’다. 한 번 보고 책이 재미있으면 다행이고, 반대로 그렇지 않으면 주저 없이 책을 덮으면 된다. 간혹 상대방에게 책을 추천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상대방에게 ‘서점이나 도서관에 직접 가서 책을 한 번 살펴보라’고 당부를 한다. 그러니까 내가 추천한 책을 온라인 서점의 ‘장바구니’에 담되, 바로 주문하지 말라는 것이다. 책 주문은 그 책이 어떤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 하나다 나나코, 기타다 히로미쓰, 아야메 요시노부

《책방지기가 안내하는 꿈의 서점》 (앨리스, 2018)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상대방에게 책을 추천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다. 그게 바로 ‘죽은 자’를 위해 책을 추천하는 일이다. 말도 안 되는 일로 보이겠지만, 실제로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서점이 있다. 일본에 있는 ‘겟쇼쿠 서점(月蝕書店)’이다. 특색 있고 개성 있는 22개의 일본의 중소 서점을 소개한 《책방지기가 안내하는 꿈의 서점》이라는 책에 첫 번째로 나온다. ‘겟쇼쿠’는 ‘월식을 뜻한다. 이 서점 주인의 주 고객은 고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보겠습니다. 대체 ‘죽은 자를 위한 추천 도서’라는 게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씀드리면, 돌아가신 분을 위한 책을 준비해서 제안하는 일입니다. 묘소나 불단에 꽃이나 고인이 좋아했던 음식을 올리잖아요. 그것을 책으로 대신하는 것이지요.

 

고인이 자주 읽던 책을 공양하는 건가요?

아니요. 그것과는 조금 달라요. 고인의 장서나 생전에 좋아했던 물건 등을 보고 그분이 살아계셨으면 분명 샀을법한 신간이나 장서와 관련 있는 책을 추천하는 겁니다.

 

 

(《책방지기가 안내하는 꿈의 서점》 9, 11쪽)

 

 

서점 주인은 고인의 장서나 유품을 확인한 뒤에 고인이 좋아할 만한 책을 고른다. 책은 고인을 위한 공양품(供養品)이다. 이 일이 쉬워 보일지 모르지만, 직접 해보면 전혀 다를 것이다. 자기 일을 충실히 하려는 서점 주인 입장에선 나름대로 생각을 많이 할 것이다. 서점 주인은 고인이 가지고 있던 장서나 유품을 통해서만 고인이 샀을 법한 책을 추정하는데, 고인의 장서가 아닌 책을 생전에 고인이 읽지 않은 책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책을 사지 않고도 서점 혹은 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바야시 서점(小林書店)을 운영하는 고바야시는 자신이 직접 쓴 서평으로 손님에게 판매할 책을 추천한다. 그가 쓴 서평도 상품이다. 서평 한 편당 300엔이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약 3,000원이다. 서평만 따로 살 수 있다. 그가 남긴 서평만 해도 수천 편이 넘는다. 나도 제법 서평을 많이 썼지만, 고바야시처럼 내가 읽은 책을 상대방에게 추천하기 위해서(내가 읽은 책을 구매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서평을 쓰는 건 아니다. 나는 ‘이런 책이 있다’는 식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알리고 싶어서 서평을 쓴다. 내 서평이 상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품 가치가 어느 정도 있는 서평을 쓰려면 책 구매자들이 선호하는 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구매자의 관심을 끌도록 맛깔나게 잘 써야 한다. 나는 그런 글을 쓸 능력이 없고, 그렇게 쓸 생각은 없다.

 

나는 널리 알려지지 못한 채 독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책,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절판본을 알리는 서평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즉 내 서평은 ‘죽은 책을 위한 글’이다. 서평을 쓰는 나 자신을 직업으로 비유하면 ‘묘비를 만드는 사람’이다. 죽은 책을 기억하기 위해 묘비명과 같은 글을 쓴다.

 

 

 

 

 

 

 

 

 

 

 

 

 

 

 

 

 

 

* 천상병 《천상병 전집: 시》 (평민사, 2018)

 

 

 

 

 

 

 

 

 

 

 

 

 

 

 

 

 

* 크리스티나 로세티 《로세티 시선》 (지만지, 2013)

* [절판] 김천봉 옮김 《빅토리아 여왕 시대 2》 (이담북스, 2011)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픽션들》 (민음사, 2011)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픽션들》 (민음사, 1994)

 

 

 

 

만약에 내가 죽으면 공양품이 될 책은 어떤 것일까, 상상해본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젖는 종이책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주1] 하늘에 지내면서 읽을 만한 책이 뭐 있을까? 과연 이승 너머에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가 단편 『바벨의 도서관』에 언급한 ‘천국’과 같은 도서관이 있을까? 어차피 사람은 죽으면 어떤 것을 ‘가질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니 책 공양은 안 받는 걸로…‥.

 

 

 내가 죽거든, 사랑하는 이여,

 나를 위해 슬픈 노래 부르지 말아요.

 내 머리맡에 장미도 심지 말고,

 그늘 드리우는 책도 놓지 말아요.

 내 무덤 위에 있는 푸른 풀이

 소나기와 이슬방울에 젖도록 내버려 두세요.

 그리고 당신이 기억하고 싶으면, 기억해 주세요.

 또 당신이 잊고 싶으면, 잊어 주세요. [주2]

 

 

 

 

 

[주1] 천상병의 시 『귀천』 1연 구절을 변형했음. 원문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주2] 크리스티나 로세티(Christina Rossetti)의 시 「내가 죽거든, 사랑하는 이여」 1연 구절을 변형했음. 원문은 ‘내가 죽거든, 사랑하는 이여, / 나를 위해 슬픈 노래 부르지 말아요. / 내 머리맡에 장미도 심지 말고, / 그늘 드리우는 사이프러스도 심지 말아요. / 내 무덤 위에 있는 푸른 풀이 / 소나기와 이슬방울에 젖도록 내버려 두세요. / 그리고 당신이 기억하고 싶으면, 기억해 주세요. / 또 당신이 잊고 싶으면, 잊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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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3-15 2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되도록 두껍지 않고 재밌게 술술 읽히는 책을 선호하고 이런 책을 추천하려고 합니다.
한 가지 조건이 더 있는데 깨달음을 주는 것. 게다가 문장까지 좋으면 금상첨화.
요즘 단편소설에 빠졌어요. 주로 장편을 많이 읽었는데 찾아보니 빼어난 단편이 많더군요.
단편 독서의 장점은 좋은 작품은 한 번 더 읽을 수 있다는 거예요.

고인이 좋아할 법한 책을 찾는 것, 쉽지 않겠습니다. 고인이 좋아하던 작가의 신간이면 되려나요?

죽은 책을 위한 님의 서평 쓰기. 의미있네요. 응원합니다!!!

cyrus 2019-03-18 11:58   좋아요 0 | URL
짧은 글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분량이 많은 책을 끈덕지게 읽지 못하겠어요. 책에 몰입이 되지 않아요. 그렇다 보니 저도 단편소설이나 짧은 분량의 책을 찾게 됩니다. ^^;;

고인을 위한 책을 고를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었네요. 맞아요.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작가의 신작 도서를 공양품으로 바치면 되겠어요. ^^

카르페디엠 2019-03-17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아주 재미있게 보았어요. 일본의 서점문화가 이렇게 발전했나싶기도 하고..

cyrus 2019-03-18 12:00   좋아요 0 | URL
지난 달 모임에 도현 쌤이 <꿈의 서점>이 재미있다고 말씀하셔서 읽게 되었어요. 그 때 성은 쌤은 <아침의 피아노>를 추천하셨고요. 두 권 모두 좋았어요.

쌤 댓글을 보자마자 ‘우주지감’ 카페에 접속했는데, 이번 달 모임 신청 끝났더군요... ㅠㅠ

Angela 2019-06-18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하고 싶으면 기억하고, 잊고 싶으면 잊으라는 말은 기억해달라고 매달리는것보다 더 강열하네요~^^
 

 

 

 

지난 달 ‘우주지감-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선정 도서는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호밀밭의 파수꾼》이었다. 지난 한 달 동안 가장 많이 들춰본 책은 ‘Little Brown & Company’에서 출간된 《호밀밭의 파수꾼》 원서와 3종의 번역본(민음사, 문예출판사, 동서문화사)이다.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The Catcher in the Rye》 (Little Brown & Company, 1991)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이덕형 옮김 《호밀밭의 파수꾼》 (문예출판사, 1998)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공경희 옮김 《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2001)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이가형 옮김 《백년의 고독 / 호밀밭의 파수꾼》 (동서문화사, 2008)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이가형 옮김 《백년의 고독 / 호밀밭의 파수꾼》 (동서문화사, 2016)

 

 

 

 

내가 가지고 있는 번역본은 민음사 판본이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가장 많이 알려진 《호밀밭의 파수꾼》 번역본이다. 그러나 이십 년 전부터 거론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민음사 판본의 오역 문제는 독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사실 국내에 출간된 여러 가지 《호밀밭의 파수꾼》 번역본들 중에 가장 번역이 잘 된 것은 없다.[주] 민음사 판본 다음으로 인지도가 높은 문예출판사 판본에도 오역으로 볼 수 있는 문장 몇 개가 있다. 동서문화사 판본은 당장 절판시켜야 할 최악의 번역본이다. 왜 그런지는 리뷰로 따로 밝히겠다.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윤용성 옮김 《호밀밭의 파수꾼》 (문학사상사, 1993)

* [절판]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김욱동, 염경숙 옮김 《호밀밭의 파수꾼》 (현암사, 2005)

 

 

 

그 밖의 《호밀밭의 파수꾼》 번역본으로는 문학사상사 판본(윤용성 옮김)현암사 판본(김욱동, 염경숙 옮김) 등이 있지만, 번역을 검토하는 작업을 나 혼자 감당하기에 무리가 있어서 살펴보지 않았다. 영문학을 전공하지 않았으며 번역 일에 전혀 관련이 없는 일반 독자인 내가 더 나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민음사 판본과 문예출판사 판본 중심으로 번역문을 대조하면서 읽은 뒤에 번역문에 해당하는 원서의 문장을 살펴보는 방식으로 검토했다. 다른 분들이 지적한 오역 사례들도 참고했다. 많이 도움이 됐다. 번역에 대한 내 견해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글에 대한 지적이나 다른 의견은 언제나 환영한다.

 

 

 

[주] <“영미문학 완역본 54%가 표절”> 한겨레, 2004년 2월 13일.

 

 

 

 

 

 

 

1

 

 

* 원문

 

 She had a big nose and her nails were all bitten down and bleedy-loooking and she had on those damn falsies that point all over the place, but you felt sort of sorry for her.

 

 

※ bleedy: 피가 나는

※ falsies: 여자의 가슴을 더 커 보이게 만들기 위해 브라 안에 넣는 물건

 

민음사, 12쪽

 

 셀마는 큰 코를 가지고 있었고, 손톱은 하도 물어뜯어서 애처로울 정도인 데다가, 터무니없이 커다란 브래지어를 하고 있었다.

 

문예출판사, 10쪽

 

 코가 유난히 컸고 손톱은 물어뜯어 그 밑의 살에서 피가 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가슴이 커 보이게 하는 브래지어를 하고 있었는데 안쓰러울 정도였다.

 

 

 

민음사 판본의 번역문은 ‘bleedy-looking(피가 비치는, 피가 보이는)’이 나오는 구절이 빠져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문제가 있는 건 민음사 판본의 역자와 문예출판사 판본의 역자 모두 ‘falsies(폴시즈)’를 브래지어로 번역한 점이다. 원문에는 브래지어(brassiere)라는 단어가 없다.falsie’는 ‘가짜’, ‘모조품’을 뜻하는 단어인데, 원문에 나오는 ‘falsies’는 ‘가짜 유방’, 즉 브래지어 안에 넣는 패드를 뜻한다.

 

 

※ ‘falsies’에 대한 오역을 지적한 글 (작성자: asnever)

https://asnever.blog.me/70188360728

 

 

 

 

 

 

 

2

 

 

* 원문

 

 “We studied the Egyptians from November 4th to December 2nd,” he said. “You chose to write about them for the optional essay question. Would you care to hear what you had to say?”

 

민음사, 22쪽

 

 「우린 11월 넷째 주부터 12월의 두번째 주까지 이집트인들에 대한 공부를 했었다. 자넨 선택 문제로 이집트인들에 대한 에세이를 쓰기로 했어. 자네가 뭐라고 썼는지 한번 들어보겠나?」

 

문예출판사, 22쪽

 

 “우리는 11월 4일부터 12월 2일까지 수업 시간에 이집트인을 공부했지. 자네는 자유 논술 문제에서 이집트인을 주제로 택했더군. 그런데 뭐라고 썼는지 한번 들어보겠나?”

 

 

 

 

 

 

3

 

* 원문

 

 The first football game of the year, he came up to school in this big goddam Cadillac, and we all had to stand up in the grandstand and give him a locomotive―that’s a cheer. Then, the next morning, in chapel, be made a speech that lasted about ten hours.

 

 

※ grandstand: 야외 경기장의 지붕이 씌워져 있는 관람석

※ locomotive: 기관차

 

민음사, 29~30쪽

 

 그 해 학교에서 첫번째 축구 경기가 열렸을 때 오센버거는 죽여주는 캐딜락을 타고 학교로 왔다. 그래서 우리는 관람석에서 모두 일어나 열렬한 환호와 박수 갈채를 보내야만 했다. 그 다음 날 아침, 예배당에서 그가 연설을 했다. 열 시간도 넘었을걸.

문예출판사, 30쪽

 

 그해 첫 축구 시합에 그자가 큼직한 캐딜락을 타고 왔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스탠드에 일어나 그에게 기차박수를 보냈다. 다음날 아침 예배당에서 그자가 설교를 했는데, 그 설교는 무려 열 시간이나 계속되었다.

 

 

 

‘기차박수’라는 표현이 생소하다. 국어사전에 등록되지 않은 표현이지만, 인터넷에 검색하면 적게나마 이 표현이 사용된 글을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박수 소리를 기차가 움직일 때 내는 소리(‘칙칙폭폭’)를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원문에 ‘환호(cheer)’라는 표현은 있지만, ‘박수(clapping)’라는 표현은 없다. 두 역자 모두 왜 원문에 없는 단어를 썼을까?

 

 

 

 

 

 

 

4

 

* 원문

 

 I didnt answer him right away. Suspense is good for some bastards like Stradlater.

 

 

※ suspense: 긴장감, 마음을 졸이는, 초조해 하는

※ bastards: 새끼, 개자식

 

민음사, 44쪽

 

 나는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스트라드레이터 같은 놈들도 약간은 걱정이라는 걸 해봐야 한다.

 

문예출판사, 47쪽

 

 나는 당장 대답하진 않았다. 스트라드레이터 같은 개새끼들에겐 어정쩡한 미결의 상태가 약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문예출판사 판본의 번역문이 원문의 의미를 살리지 못한 ‘어정쩡한 상태’의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어정쩡한 미결의 상태’라는 표현은 무슨 의미인지 확 와 닿지 않는다. 번역문을 어렵게 쓸 필요가 있을까?

 

 

 

 

 

 

 

 

5

 

 

* 원문

 

 All of a sudden―for no good reason, really, except that I was sort of in the mood for horsing around―I felt like jumping off the washbowl and getting old Stradlater in a half nelson. That’s a wrestling hold, in case you don’t know, where you get the other guy around the neck and choke him to death, if you feel like it. So I did it. I landed on him like a goddam panther.

  “Cut it out, Holden, for Chrissake!” Stradlater said. He didn’t feel like horsing around. He was shaving and all. “Wuddaya wanna make me do―cut my goddam head off?”

  I didn’t let go, though. I had a pretty good half nelson on him. “Liberate yourself from my viselike grip.” I said.

 

 

panther: 흑표범

※ for Chrissake: 빌어먹을

Wuddaya: ‘What do you’의 줄임말

viselike: (바이스처럼) 단단히 죈

 

 

민음사, 47쪽

 

 갑자기 난 세면대에서 뛰어내려 스트라드레이터를 하프 넬슨으로 확 누르고 싶어졌다. 그저 장난을 좀 치고 싶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 이유도 없이 말이다. 하프 넬슨은 레슬링에서 쓰는 용어로 상대방의 목을 뒤에서 있는 힘껏 졸라 반 죽여놓는 것을 뜻한다. 난 그렇게 했다. 그 녀석에게 딱 달라붙어 목을 조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만둬. 홀든. 제기랄!」 스트라드레이터가 말했다. 그는 장난치고 싶지 않은 모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면도를 하고 있던 중이었으니까 말이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묵을 벨 뻔했잖아」

  그렇지만 나는 그를 풀어주지 않았다. 이건 상당히 좋은 하프 넬슨 기술이었다. 「어디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 보시지」

 

 

문예출판사, 50쪽

 

 갑자기 그저 장난을 치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는데, 세면대에서 뛰어내려 스트라드레이터 자식을 하프 넬슨 수법으로 목을 졸라버리고 싶었다. 하프 넬슨이 뭐냐 하면, 상대방의 목을 뒤에서 졸라 원하면 죽일 수도 있는 레슬링의 기술이었다. 나는 표범처럼 그를 덮쳤다.

  “제발 그만둬!” 하고 스트라드레이터가 소치렸다. 그는 장난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면도를 하는 도중이었으니까. “어쩌려고 이래? 내 모가지라도 베려는 거야?”

  나는 여전히 손을 놓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꽤 그럴듯한 하프 넬슨 기술을 걸고 있었다. “풀어보시지. 바이스같이 억센 내 팔을…‥” 하고 내가 말했다.

 

 

 

민음사 판본에 ‘I landed on him like a goddam panther’라는 구절이 빠졌다. 문예출판사 판본의 역자는 ‘panther’를 ‘표범’이라고 번역했는데, 우리에게 많이 익숙한 얼룩무늬의 표범은 ‘Leopard’이다. ‘panther’는 흑표범을 뜻한다.

 

 

 

 

 

 

 

 

6

 

* 원문

 

 My brother Allie had this left-handed fielder’s mitt. He was left-handed. The thing that was descriptive about it, though, was that he had poems written all over the fingers and the pocket and everywhere. In green ink. He wrote them on it so that he’d have something to read when he was in the field and nobody was up at bat.

 

민음사, 57쪽

 

 동생인 엘리는 왼손잡이용 미트를 가지고 있었다. 그 애는 왼손잡이였기 때문이다. 얼마나 묘사적이었냐 하면, 그 애는 손가락 위도 좋고, 주머니도 좋고, 어디에나 시를 써놓았다. 초록색 잉크로 말이다. 그 애 말로는 수비에 들어갔을 때 타석에 선수가 나오지 않았을 때 같은 때 읽으면 좋다는 것이다.

 

문예출판사, 62쪽

 

 내 동생 앨리는 왼손잡이 야수의 장갑을 가지고 있었다. 그앤 왼손잡이였다. 그 장갑에 대해서 무엇이 묘사할 만한가 하면, 앨리는 야구 장갑의 손가락이고 주머니이고 어디든 간에 시를 적어 놓았던 것이다. 녹색 잉크로 쓴 시였다. 그렇게 써놓으면 자기가 수비에 들어가서 타석에 아직 선수가 들어오지 않았을 때 읽을거리가 있어서 좋다는 것이다.

 

 

 

내가 밑줄 친 민음사 판본의 문장은 문법이 맞지 않은 ‘비문’이다.

 

 

 

 

 

 

 

7

 

* 원문

 

 I usually buy a ham sandwich and about four magazines. If Im on a train at night, I can usually even read one of those dumb stories in a magazine without puking. You know. One of those stories with a lot of phony, lean―jawed guys named David in it, and a lot of phony girls named Linda or Marcia that are always lighting all the goddam Davids pipes for them.

 

 

puking: [puke의 현재분사] (속이) 뒤틀리는, 토하는

phony: [구어] 가짜, 허위의, 겉치레의

※ lean―jawed: 야윈(마른)

 

민음사, 77쪽

 

 평소처럼 햄샌드위치와 잡지를 네 권 샀다. 밤 기차를 타고 갈 때면, 이따위 잡지에 실린 지겨운 기사들도 그럭저럭 읽을 만하다. 그런 기사들은 대부분 데이비드란 이름에 턱이 길고, 사기꾼 같은 녀석들과 린다니 마르샤니 하는 이름을 가진 여자들이 언제나 담배에 불을 붙여주곤 하는 얘기들이다.

 

문예출판사, 85쪽

 

 나는 보통 햄 샌드위치를 한 개 사고 잡지를 네 권 가량 산다. 야간에 열차를 타면 그런 잡지에 실린 지루한 소설도 그럭저럭 읽게 된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엉터리 같고 턱이 훌쭉한 데이비드라는 놈과 항상 그놈의 파이프에 불을 붙여주는 린다니 마르시아니 하는 여자들이 등장하는 소설 말이다.

 

 

두 역자 모두 ‘puking(속이 뒤틀리는, 토하는)’을 ‘이따위(민음사)’, ‘그런(문예출판사)’으로 순화해서 번역했다. 평소 비속어와 과격한 표현을 입에 달고 사는 홀든 콜필드의 모습을 돋보이기 위해 ‘puking’을 직역하는 게 낫다고 본다.

 

pipe’도 담배의 일종이지만, ‘cigarette’와 다르기 때문에 ‘파이프 담배’로 정확하게 번역해야 한다.

 

 

※ ‘pipes’에 대한 오역을 지적한 글 (작성자: asnever)

https://asnever.blog.me/220209751917

 

 

 

 

 

 

 

 

8

 

 

* 원문

 

 Old Marty talked more than the other two. She kept saying these very corny, boring things, like calling the can the <little girls room>, and she thought Buddy Singers poor old beat-up clarinet player was really terrific when he stood up and took a couple of ice―cold hot licks. She called his clarinet a <licorice stick>.

 

 

※ beat-up: 낡아빠진

※ licorice: 감초 

 

민음사, 104쪽

 

 마티는 다른 두 여자보다도 좀 말을 많이 했다. 그나마 그녀가 하는 말도 케케묵은 이야기에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화장실을 <어린 소녀들의 방>이라고 부르지 않나. 버디 싱어의 밴드에서 불쌍할 정도로 말라비틀어진 첼리스트가 보여준 정말 썰렁하기 짝이 없는 연주를 듣고는 멋있다고 하면서, 그 첼리스트를 <감초 줄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문예출판사, 116쪽

 

 마티가 그래도 제일 많이 지껄였다. 그녀는 화장실을 ‘어린 소녀의 방’이니 뭐니 하면서 너절하고 지루한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그리고 버디 싱어 악단의 말라빠진 늙은 클라리넷 주자가 일어서서 몇 소절을 정열적으로 연주하자 아주 멋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의 클라리넷을 ‘감초의 줄기’라고 말했다.

 

 

두 역자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beat-up’을 ‘말라비틀어진’, ‘말라빠진’으로 번역했다. 새로 번역한다면 ‘늙어빠진’으로 쓸 수 있다. 민음사 판본의 번역을 맡은 공경희 씨는 ‘clarinet player(클라리넷 연주자)’를 ‘첼리스트(cellist)’로 잘못 번역했다. 심지어 원문의 의미와 전혀 맞지 않는 문장(‘첼리스트를 <감초 줄기>라고 부르기도 했다’)까지 썼다. ‘감초 줄기(licorice stick)’는 악기 연주자를 비꼬기 위해 붙인 별명이 아니라 그가 연주하는 악기, 즉 클라리넷을 우스꽝스럽게 비유한 표현이다.

 

 

 

 

 

 

 

9

 

* 원문

 

 “You’re goddam right they don’t,” Horwitz said, and drove off like a bat out of hell. He was about the touchiest guy I ever met. Everything you said made him sore.

 

민음사, 115쪽

 

 「그렇게 생각하면 됐어요」 호이트가 말했다. 그러고는 총알처럼 사라져버렸다. 그 사람은 이제까지 만났던 사람들 중 가장 화를 잘 내는 사람이었다. 내가 한 말은 전부 그 사람을 화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문예출판사, 128~129쪽

 

 “됐어요. 그놈들도 죽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면 됐어요.” 호위트는 이렇게 말하고 지옥에서 튀어나온 박쥐처럼 차를 몰고 사라졌다. 그렇게 성질이 급한 사람은 생전 처음이었다. 무슨 말을 하든 모두 그를 화나게 하는 것이었다.

 

 

 

민음사 판본의 오역 문장은 나를 화나게 한다…‥.

 

 

 

 

 

 

 

 

 

10

 

 

* 원문

 

 “You ought to go to a boys’ school sometime. Try it sometime,” I said. “It’s full of phonies, and all you do is study so that you can learn enough to be smart enough to be able to buy a goddam Cadillac some day, and you have to keep making believe you give a damn if the football team loses, and all you do is talk about girls and liquor and sex all day, and everybody sticks together in these dirty little goddam cliques. The guys that are on the basketball team stick together, the Catholics stick together, the goddam intellectuals stick together, the guys that play bridge stick together. Even the guys that belong to the goddam Book-of-the-Month Club stick together. If you try to have a little intelligent―”

 

민음사, 176~177쪽

 

 「언제 한번 남학교에 가봐. 시험삼아서 말이야. 온통 엉터리 같은 녀석들뿐일 테니. 그 자식들이 공부하는 이유는 오직 나중에 캐딜락을 살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야. 축구팀이 경기에서 지면 온갖 욕설이나 해대고, 온종일 여자나 술, 섹스 같은 이야기만 지껄여대. 더럽기 짝이 없는 온갖 파벌을 만들어, 그놈들끼리 뭉쳐 다니지 않나. 농구팀은 자기들끼리 몰려다니고, 가톨릭 신자들은 자기들끼리 뭉치지. 똑똑하다는 것들은 자기들끼리 몰려다니고, 브리지 하는 놈들은 또 저희끼리 모이거든. 그러니까 네가 영리하다면‥…」

 

 

문예출판사, 196~197쪽

 

 “언제 시간 있으면 남학교에 가보는 게 좋을 거야.” 하고 내가 말했다. “시험삼아 한번 가봐. 엉터리 자식들이 우글거릴 테니까. 놈들이 하는 일은 장차 캐딜락을 살 수 있는 신분이 되기 위해 공부하는 일뿐이야. 그리고 축구 팀이 지면 분해 죽겠다는 시늉이나 하고, 하루 종일 여자와 술과 섹스 얘기만 지껄여대는 거지. 게다가 더러운 파벌을 만들어 결속까지 하거든. 농구 팀은 그들대로 뭉치고, 천주교 신자들도 그들대로 뭉치고, 지랄 같은 지성인들도 그렇고 놀음하는 놈들은 저희끼리 뭉치거든. 심지어 월간 추천도서 클럽에 가입한 놈들도 끼리끼리 뭉친단 말이야. 그러니까 좀 똑똑하려면‥…”

 

 

민음사 판본에 ‘밑줄 친 원문’을 번역한 구절이 없다.

 

 

 

 

 

 

 

 

11

 

 

* 원문

 

 I remember Allie once asked him wasn’t it sort of good that he was in the war because he was a writer and it gave him a lot to write about and all. He made Allie go get his baseball mitt and then he asked him who was the best war poet, Rupert Brooke or Emily Dickinson. Allie said Emily Dickinson.

 

 

※ War poet: 전쟁 시인

※ Rupert Brooke: 영국의 시인(1887~1915)

※ Emily Dickinson: 미국의 시인(1830~1886)

 

민음사, 188쪽

 

 한번은 앨리가 형은 작가니까, 전쟁에 나가면 작품에 쓸 수 있는 자료를 듬뿍 얻을 수 있으니 좋은 게 아니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자 형은 앨리에게 야구 미트를 가지고 오라 그러더니, 루퍼트 브루크와 에밀리 디킨슨 중에 누가 더 훌륭한 시인이냐고 물었다. 앨리는 에밀리 디킨슨이라고 대답했다.

 

문예출판사, 210쪽

 

 지금도 기억하는데, 앨리가 형에게 형은 작가니까 전쟁에 참가하면 작품 쓸 자료를 많이 얻을 수 있어서 좋지 않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러자 형은 앨리에게 야구 미트를 가져오게 하고는, 루퍼트 부루크와 에밀리 디킨슨 중에서 누가 훌륭한 전쟁 시인인가를 물었다. 앨리는 에밀리 디킨슨이라고 대답했다.

 

 

‘전쟁 시인’은 전쟁에 직접 참여해서 경험한 것을 토대로 시를 쓰거나(종군 시인), 전쟁을 주제로 시를 쓰는 시인을 말한다.

 

그나저나 에밀리 디킨슨은 ‘전쟁 시인’이었던가? 그녀는 남북전쟁이 일어나던 시기에 살았다. 그녀의 삶이 전쟁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긴 한데, 전쟁을 주제로 한 디킨슨의 시를 본 적이 없다. 내가 제대로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디킨슨의 시를 다시 봐야겠구먼.

 

 

 

 

 

 

 

12

 

 

* 원문

 

 When I came around the side of the bed and sat down again, she turned her crazy face the other way. She was ostracizing the hell out of me.

 

 

※ ostracize: (사람을) 외면하다

 

민음사, 221쪽

 

 내가 침대 옆으로 다가가자 피비는 얼굴을 반대쪽으로 아예 돌려버렸다. 완전히 나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문예출판사, 247쪽

 

 내가 침대 가에 가서 앉자, 피비는 얼굴을 반대편으로 돌렸다. 나를 탄핵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 초반부에 홀든 콜필드는 자신의 어휘력이 부족하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런 그가 행정 용어‘탄핵하다(impeach)라는 표현을 쓴다는 건 말이 안 된다.

 

 

 

 

 

 

 

 

13

 

 

* 원문

 

 The mark of the immature man is that he wants to die nobly for a cause, while the mark of the mature man is that he wants to live humbly for one.

 

 

※ cause: 이유, 대의명분

※ humbly: 초라하게, 겸손(겸허)하게

 

민음사, 248쪽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 묵묵히: 말없이 잠잠하게

※ 겸손하게: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문예출판사, 277쪽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고귀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비겁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

 

 

 

홀든 콜필드가 직접 찾아가서 만난 엔톨리니 선생이 인용한 말이다. 이 말을 한 사람은 독일의 정신분석학자 빌헬름 스테켈(Wilhelm Stekel)이다.

 

‘cause’는 ‘이유’라는 의미의 단어이지만, 이 원문의 의미를 살리려면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나 본분을 뜻하는 ‘대의(명분)으로 쓰는 것이 낫다. 문예출판사 판본은 ‘비겁한 죽음’이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원문의 의미와 다른 오역이다. 원문을 보면 알겠지만, ‘죽음’을 뜻하는 단어가 없다. 그리고 두 판본 모두 ‘humbly’를 부정적인 뉘앙스로 번역했는데, ‘성숙한 인간’의 특징을 강조하기 위해 ‘겸손하게’로 번역해야 한다.

 

 

이 오역에 대해서 이미 asnever 님과 로쟈 님이 지적한 적이 있다.

https://asnever.blog.me/220238007548 (작성자: asnever)

http://blog.aladin.co.kr/mramor/3131995 (작성자: 로쟈)

 

 

 

 

 

 

 

 

14

 

* 원문

 

 “Where’re the mummies, fella?” the kid said again. “Ya know?”

I horsed around with the two of them a little bit. “The mummies? What’re they?” I asked the one kid.

“You know. The mummies―them dead guys. That get buried in them toons and all.”

Toons. That killed me. He meant tombs.

 

 

※ Toon: (식물) 인도 마호가니

※ tomb: 무덤

 

민음사, 266쪽

 

「미라는 어디에 있어요? 알고 계신가요?」 그 아이가 다시 물었다.

난 그 꼬마들을 상대로 잠시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미라라고? 그게 뭐지?」 내가 그 아이에게 물었다.

「정말 모르세요? 미라 있잖아요. 사람이 죽어 있는 거 말이에요. 에 들어 있는 것 말이에요」

이라. 정말 아이들은 어쩔 수 없었다. 아마 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문예출판사, 298쪽

 

 “미라는 어디 있나요? 알고 계세요?” 하고 그 아이가 다시 물었다.

나는 이 아이들을 상대로 잠깐 농담을 나누었다. “미라라니? 그게 뭐지?” 하고 내가 한 아이에게 물었다.

  “모르세요? 미라 말이에요. 그 죽은 것 말이에요. (toon) 속에 있는.”

이라니? 여기엔 손들고 말았다. 그 애는 무덤(tomb)을 생각하고 말한 것이었다.

 

 

 

샐린저의 소설을 원문으로 읽어보면 언어유희를 이용한 재미있는 표현을 확인할 수 있다. 인도산 마호가니 나무의 이름인 ‘툰(toon)’과 ‘무덤(tomb)’은 동음이의어다. 그런데 민음사 판본의 번역문은 원문이 주는 유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 공경희 씨는 ‘툰’과 ‘무덤’이 들어간 문장을 국내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건’과 ‘관(棺, coffin, casket)으로 번역했다. 그러나 이 문장을 여러 번 봐도 ‘건’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공경희 씨가 쓴 ‘건’의 의미를 아시는 분? 네이버 국어사전에 등록된 ‘관’의 의미는 10개나 넘는다. 그리고 ‘tomb’을 ‘관’으로 번역한 점도 의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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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5 1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3-05 17:30   좋아요 0 | URL
제가 처음으로 읽은 <호밀밭의 파수꾼> 번역본이 민음사 판본이었어요, 그때도 읽는데 바로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들이 있었어요. 문장 이해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느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겨울호랑이 2019-03-05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 cyrus님 이번 리뷰를 작성하시느라 정말 고생하셨을 것이라 짐작해 봅니다. cyrus님 자신에게도 큰 공부가 되셨겠지만, 좋은 자료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cyrus 2019-03-05 17:37   좋아요 2 | URL
제가 독서모임에 참석하는 쌤들한테 민음사 번역본을 추천했어요. 번역이 엉망인 걸 알았을 때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ㅎㅎㅎ 모임 날에 저를 포함해서 15명이 독서모임에 참석하셨는데요, 두 분 빼고 나머지 분들은 민음사 번역본을 읽었어요. ^^;;

반유행열반인 2019-03-05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음사랑 동서문화사 것이 집에 있는데 내가 제대로 보긴 한 걸까 싶어지는 시점이네요. (아마 처음 볼 땐 문예출판사 걸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봤던 듯 하고.) 좋은 번역이란 이렇게 어렵고 외국어를 잘 못 하니 번역에 불만이어도 늘 뾰족한 수가 없네요. 번역가를 욕하다 아니 그래도 그나마 이 정도라도 해석해 줘서 내가 읽게 해 주는구나 고맙다 아니 또 욕 나온다 반복하며 읽곤 합니다...

cyrus 2019-03-05 17:45   좋아요 1 | URL
가독성이 좋다고 느껴진 책이 나중에 번역이 좋지 않은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번역가에게 속은 느낌이 들어요... ^^;;

카스피 2019-03-06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정말 대단하시네요^^ 번역자들이 좀 각성해야 될것 같습니다.그래도 유명한 문학작품의 경우 번역가들이 나름 신중학에 번역하지만 장르소설의 경우 날림 번역이 많은 편이지요.그래도 번역만 해주면 장르 애독자들은 감지덕지 합니다ㅜ.ㅜ

cyrus 2019-03-06 18:32   좋아요 1 | URL
번역가 입장에서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장르문학 작품을 처음으로 번역하는 일에 부담감을 느낄 것입니다. 이미 유명해질 대로 유명해진 셜록 홈즈 시리즈를 번역하는 게 부담이 덜 되죠. 기존의 번역본들을 어느 정도 참고하면서 새로 번역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러한 번역 관행이 지속되면 번역의 질은 점점 나빠질 것입니다.

coolcat329 2019-12-11 08: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문예출판사로 읽었는데 ‘성숙한 인간은 비겁한 죽음을 택한다‘ 저 문장이 좀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겠네요. 어떻게 humbly에서 비겁한 죽음이라는 말이 나왔을까요ㅠ 그래서 저는 성숙한 인간이 미성숙한 인간보다 나쁘다는건가? 생각했어요.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9-12-23 22:04   좋아요 0 | URL
저는 처음에 읽었을 때 문장이 이해하지 못했어요. 저 문장이 왜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

2020 2020-02-21 0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문의 문장력자체는 민음사 판본이 월등히 좋다고 생각합니다. 더 재미있게 읽혀요.. 문예출판사 번역은 너무 딱딱하고 예스럽습니다.

cyrus 2020-03-01 19:05   좋아요 0 | URL
맞아요. 문예출판사 번역본이 나온 지 오래된 거라서 그 속에 요즘 잘 쓰지 않는 단어가 몇 개씩 보여요. ^^;;

먼어 2020-03-26 16: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즈음 번역에 대한 신뢰성이 많이 떨어져서..꼭 책을 구매하기 전에 미리 인터넷으로 비교글을 보곤 하는데, 너무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_^ 번역에 따라 책이 달라지기 때문에 더 예민해지게 되네요. 잘 참고해서 구매하도록 할게요. 좋은 하루 되세요!

cyrus 2020-04-01 08:09   좋아요 0 | URL
별 말씀을요. 이미 번역본의 문제점을 언급한 분들이 있어서 이런 글을 쓸 수가 있었어요. 저도 그분들의 비판적인 글을 참고했고, 직접 책을 읽어 보니까 생각보다 사소한 오역이 많이 보였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