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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굴장으로 - 제139회 나오키상 수상작
이노우에 아레노 지음, 권남희 옮김 / 시공사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그동안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품들을 여러 편 읽어봤는데 대중적인 소설상답게
대부분의 작품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재미와 감동을 보장했다.
주로 미스터리 계열의 작품들을 즐겨 읽다 보니 나오키상을 수상한 미스터리 작품들은
거의 놓치지 않고 읽었는데, '내가 죽인 소녀'(102회), '마크스의 산'(109회), '얼어붙은 송곳니'(115회),
'이유'(120회), '부드러운 볼'(121회), '용의자 X의 헌신'(134회) 등 모두 미스터리의 묘미는 물론
문학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간직하고 있었다.
순수 문학작품이라 할 수 있는 책들도 '별을 담은 배'(129회), '공중그네'(131회),
'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135회),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142회)까지 여러 권을 읽었는데
139회 수상작인 이 작품도 과연 어떤 내용일지 기대가 되었다.
채굴장이란 좀 옛스럽고 촌스런 이미지가 연상되는 장소가 제목에 사용되어 묘한 느낌이 들었는데 책 표지에는 '그에게 끌린다. 남편을 사랑하는데... 더 이상 나아갈 수도 되돌아나올 수도 없는
마음의 갱도'라는 불륜을 암시하는 문구가 적혀 있어서 왠지 막장드라마가 펼쳐지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예상 외로 한 여자의 담담한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얘기가 담겨져 있었다.
한때 탄광업이 번영했지만 지금은 쇠퇴한 작은 섬에서 전교생이 열 명이 채 되지 않는 초등학교의
양호교사인 주인공 아소 세이는 그림을 그리는 남편과 함께 소박한 행복을 누리면 살고 있다.
3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 아소 세이가 근무하는 학교에 이사와 사토시라는 남자 교사가 등장하면서
일어나는 여러 에피소드들을 그려내고 있는데, 책 표지에 쓰인 마음의 갱도에 갖혀 오도 가도 못하는
인물이 바로 아소 세이다. 사실 이 책 속에서 아소 세이가 이사와 사토시를 의식하는 듯한 느낌은
충분히 받을 수 있지만 그녀가 제대로 그런 마음을 표현하지 않기에 기대했던(?) 사건이 벌어지진
않는다. 오히려 아소 세이와 단짝 친구처럼 지내는 자유분방한 여교사 쓰키에가 이사와 사토시와
사고를 치는데, 그럼에도 아소 세이와 이사와 사토시 둘이 있는 장면들에선 뭔지 모를 감정의
교환이 느껴진다. 순진한 시골 아낙같이 구수한 사투리를 쓰다가도 때론 본토의 표준어를 쓰는
아소 세이의 모습에서 불륜이란 잣대를 갖다 대기는 뭔가 어색한 점도 있었지만 분명 그녀의 마음
속에 남편이 아닌 이사와 사토시가 들어온 것은 분명한 듯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부적절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고 누구나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이 있음을 생각하면 그녀에게 불륜이란 주홍
글씨를 부여하기엔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다. 결국 누구의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생각도
달라질 것 같은데, 아소 세이의 입장에 서면 남편에겐 좀 미안한 마음도 들겠지만 잠시 흔들린 것에
불과하니 별 일 아니라는 듯 합리화할 수도 있겠고, 남편의 입장이라면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마음이
움직인 걸 안다면 배신감과 속상함이 교차할 듯 하다. 암튼 아소 세이의 남편의 두 사람의 미묘한 감정을 눈치채지는 않은 것 같아 누구에게도 고통스런 일이 생기지도 않았고, 이사와 사토시가
1년 후에 불현듯 사라지면서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남편과 아소 세이는 소박한 행복을 이어간다.
전반적으로 외딴 섬을 배경으로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얘기인지라 아기자기하면서도 수수한
느낌을 줬는데 화끈한 불륜 얘기를 기대했다면 밋밋한 스토리에 좀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오히려 각종 MSG가 첨가되지 않은 재료 그대로의 맛을 맛볼 수 있는 그런 담백한 느낌의 소설이었는데 사람의 연애 감정은 어떻게 하기 어려운 미묘한 것임을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