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3월
평점 :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정말 오랜만에 만난다.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언제인지 확인해 보니 2008년에
읽은 '저물 듯 저물지 않는'이었는데 느낌으로는 그보다 훨씬 오래된 것 같더니 생각보단 오래되지
않아 오히려 의외였다. 이 책은 이번에 다시 개정판이 나왔는데 예전에 나왔을 때는 책으로는 보지
못하고 영화로만 봐서 책으로는 과연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었다. 솔직히 좀 파격적인 스토리라 좀
공감이 안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에쿠니 가오리의 문체는 그런 스토리와는 별개로 그녀만의 독특한
느낌으로 얘기를 끌고 나간다.
20대 대학생인 두 남자의 특별한(?) 사랑 얘기는 그들의 상대가 연상의 유부녀들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토오루와 코우지 두 20대 청춘들은 그 나이 또래 남자들과는 달리 성숙한 여자들과의 사랑
놀음(?)에 빠져 정신이 없다. 토오루는 엄마의 지인인 시후미와 가끔씩의 만남을 항상 기다리면서
그녀를 그리워하고, 코우지는 키미코와의 육체적인 관계에 빠져 정신이 없다. 키미코만으로도 만족
못해 또래의 유리와도 연인 관계를 이어가며 연애사업에 바쁜 코우지와 오매불망 시후미의 연락만
기다리며 그녀와의 만남을 애타게 기다리는 토오루. 두 남자의 사뭇 다른 로맨스는 상대가 연상의
유부녀이다 보니 아무래도 떳떳하게 만날 수 있는 사이들은 아니었다. 그래도 각자의 방식대로 아무나
경험하지 못하는 특별한 관계를 이어가는데 토오루와 시후미의 묘한 관계가 좀 더 인상적이었다.
고등학생때부터 만나기 시작한 시후미와의 관계를 좀 더 가까운 특별한 관계로 만들고 싶어하는
토오루나 왠지 어린애를 가지고 노는 듯한 시후미의 모습을 보면 토오루가 왜 그렇게 시후미에게
집착(?)을 할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더 젊었을 때의 시후미에 대해 궁금해하며 그녀의 과거를 질투
하는 토오루와 토오루의 미래를 질투하는 시후미. 이렇게 같은 시간대를 공유하기 어려운 두 사람의
관계는 시후미와 토오루의 관계를 알면서도 방치하는 듯한 시후미 남편의 태도도 한몫하는 듯 했다.
한편 코우지와 키미코의 관계는 오히려 훨씬 현실적이었다. 서로의 육체를 탐하는 관계이다 보니
목적을 달성하면 쿨하게 헤어질 듯 싶었는데 코우지는 점점 자신에게 집착하는 키미코가 부담스럽지만
쉽게 정리를 하지 못한다. 유리와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보니 아슬아슬한 순간들도 늘어나고 게다가
예전에 만났던 여자의 딸인 요시다까지 들이대니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른다. 결국 파국의
순간이 찾아오고 코우지는 몰랐던 자신의 감정을 깨닫게 된다. 어떻게 보면 아직 철부지인 두 남자의
무모한 사랑 얘기라고도 할 수 있었는데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빠져드는 거야'라는 책 속 글귀처럼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 일일 수 있다. 사랑에는 나이도 국경, 종교도
없다지만 현실에선 여러 가지 장벽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청춘들이다 보니 이러한 사랑에도 과감하게
뛰어들 수 있고 몸과 맘이 가는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반대로 여자들은 그럼 뭐지ㅋ). 암튼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듯한 두 커플의 얘기들 보면서 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적지 않았지만
에쿠니 가오리표 작품답게 그녀 스타일과 문체로 얘기를 능수능란하게 끌고 나간다. 이들의 관계가
과연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을 남기며 마무리를 하는데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함께 살아
가고 있기 때문에 행복해'라는 마지막 문구처럼 굳이 전형적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함께 살아갈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묘한 여운을 남겼다. 이 작품의 후속편을 써도 되지
않을까 싶긴 한데 그러면 여자들의 나이가 너무 많아져 아무래도 남자애들이 변심을 했을 듯 싶어
여기서 마무리하는 게 그나마 추억으로라도 남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