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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 워크 ㅣ 밀리언셀러 클럽 143
스티븐 킹 지음, 송경아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1월
평점 :
100명의 소년들이 최종 한 명이 남을 때까지 계속 걷는 '롱 워크' 경기에 참여한다.
규정된 속도 이하로 걷는 등으로 인해 경고를 3회 이상 받으면 즉시 사실당하는 무시무시한 게임에,
살아남는 최후의 1인에게는 그가 원하는 소원을 들어주는 롱 워크에
각자 자신이 최후의 1인이 될 거라 생각하고 참여한 100명의 소년들.
정각 9시가 되자 드디어 대장정이 시작되고 그들에겐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이젠 장르문학에 있어 최고의 경지에 이른 스티븐 킹에게도 역시 작가로서의 애송이 시절이 있었다.
그것도 스티븐 킹이라는 낯익은 이름이 아닌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낯선 필명으로 쓴 이 작품은
그의 첫 장편소설이라는데 처녀작임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완성도와 깊이를 선보인다.
소년들이 무작정 행군 아닌 행군을 하는 모습을 보니 왠지 온다 리쿠의 '밤의 피크닉'의 보행제도
연상되었지만 초반의 가벼운 분위기와는 달리 한 명씩 탈락자가 나와 바로 처형을 당하자
1위를 하기 위한 경쟁 분위기는 순식간에 생존경쟁의 장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때부터는 딱 '헝거게임'이 떠오르는 상황이 연출되었는데,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건 1등을 제외한
나머지 참가자들은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롱 워크 참가했다는 점이다.
'헝거게임'에서는 독재국가 판엠이 식민지처럼 통제하는 12구역의 남녀 2명씩을 뽑아
일종의 살아있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거나 다름없는 끔찍한 게임을 국가적인 축제로 만들었다면,
이 책에선 신청자 중 100명의 소년을 선발하여 끝까지 살아남는 우승자에게
독재자 통령이 그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방식으로 비슷한 듯 하면서도 자발성 차원에서 완전히 달랐다.
목숨을 걸고 경기에 참여한다는 건데 초반에 참가한 소년들의 모습을 보면
자신이 죽을 거란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행동들을 해서 좀 의아했다.
다들 자기가 1등을 할 거란 확신이 있어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조차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무작정 걷는 롱 워크는 어떻게 보면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행동이어서 만만하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잠시라도 멈추면 바로 경고를 받고 식사, 용변, 수면 등 인간으로서 필수적인 활동을 모두 걸으면서
해야 하기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물이나 먹을 것은 원할 때 지급해주고 짐이 없는
상태인 게 천만다행이라 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고통이 물 밀듯이 밀려왔다.
딱 군대에서 완전군장하고 행군하던 시절의 고통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는데,
참가자들이 한 명씩 사살되면서 롱 워크는 점점 아비규환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그런 와중에 우정을 나누는 소년들도 있는 반면 서로 못 잡아 먹어 괴롭히는 애들도 있는데
점점 숫자가 줄어들면서 몸과 정신이 공황상태에 빠지게 된다.
결국 극한의 순간들에 도달한 소년들이 하나둘 티켓을 끊게 되고 최후의 1인이 남게 되는데
마지막 마무리가 뭔가 허무한 느낌이 들었다. 왠지 처녀작다운 여운이 물씬 남았는데,
이런 극한의 도전을 목숨 걸고 해서 살아 남았으면 성취감 같은 게 있어야 하지만
오히려 허무감과 무력감만 남아 롱 워크의 공포가 더 강렬하게 남았던 것 같다.
리처드 바크만은 스티븐 킹이 살해해서 더 이상 활동을 못할 것 같은데
스티븐 킹의 또 다른 자아가 쓴 첫 작품이라 그런지 더욱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스티븐 킹의 이야기 화수분이 메말라갈 때가 오면 리처드 바크만을 부활시키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