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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을 발로 찬 소녀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드디어 밀레니엄 시리즈의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2부를 읽은 후 상당한 시간동안 공백이 있었지만 3부를 손에 들자마자 금방 푹 빠질 수밖에 없었는데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 짙은 여운과 함께 아쉬움이 가득 남는다.
원래 스티그 라르손이 무려 10부작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3부작으로 그치고 말았으니 리스베트와 블롬크비스트 콤비의
멋진 활약상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는 사실이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에선 그동안 살라첸코를 보호하기 위해 온갖 악행을
서슴지 않았던 세포내 비밀조직 섹션의 정체와 그 연루자들이 만천하에 공개된다.
사실 섹션이 리스베트를 다시 정신병원에 감금하기 위해서 벌이는 추악한 음모는 이미
블롬크비스트와 그의 친구들이 파악한 상태였기 때문에 오히려 섹션이 블롬크비스트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는 상황이라 언제 그들이 통쾌하게 처벌을 받을 것인지만 기다리면 되는 단계였다.
하지만 블롬크비스트가 밀레니엄을 통해 뭔가를 준비하고 있음을 눈치 챈 섹션은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블롬크비스트 집에 마약을 숨겨 놓고 살인청부업자들을 통해 그를
처치하려 하지만 이런 사실을 극적으로 알아챈 세포내 수사기관에 의해 간신히 화를 피한다.
그리고 드디어 시작된 리스베트의 재판. 엑스트룀 검사가 살라첸코에 대한 살인 미수 등
많은 죄명으로 그녀를 기소하지만 리스베트는 파격적인 복장으로 법정에 출석하여
그들의 주장이 완전히 거짓임을 조목조목 밝혀낸다. 특히 그녀를 정신병원에 감금되고
후견체제 하에 놓이게 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페테르 텔레보리안을 증인신문하는 장면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었다. 자신이 저명한 정신과의사라는 권위를 바탕으로
아무런 증거없이 그녀를 위험한 정신병자 취급했던 그의 추악하고 역겨운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그를 조금씩 무너뜨리며 그의 정체를 밝혀내는 레스베트의 변호사 안니카 잔니니의
변론은 짜릿한 전율과 소름끼치는 통쾌함을 안겨주기 충분했다.
권위 있는 전문가라는 가면을 쓰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악마의 본모습을 까발리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뭐든지 알아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리스베트와 그의 친구들에겐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이렇게 거대한 산처럼 군림했던 섹션의 몰락은 한순간이었는데 너무도 쿨한 리스베트는
이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지브롤터로 여행을 떠난다. 이렇게 사건이 모두 마무리되는가 싶었지만
살라첸코가 유산으로 남긴 벽돌 공장을 찾아갔던 리스베트는
잠시 잊고 있던 니더만과 재회하고 최후의 대결을 벌이게 되는데...
2부와 3부에선 국가기관이 개인에게 얼마나 끔찍한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를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스웨덴같은 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게(물론 픽션이지만)
충격적인데 우리는 너무 많이 겪은 일들이라 오히려 익숙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남북분단 상황에서 정권유지를 위해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간첩으로 만들어 고문하고
범죄자로 만들어냈던 전력이 있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리스베트가 겪은 끔찍한 일들은
결코 남의 일 같지가 않았는데 문제는 지금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온갖 조작이 횡행하고 권력이 거기에 개입되어 있는 불편한 진실들이 여전히 유효한 현실에서
리스베트가 당한 그런 일들, 아니 우리가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 재발되지 않게 하기 위해선
국가권력에 대한 철저한 통제와 감시가 필요하다. 특히 국정원, 검찰, 경찰, 국세청, 군대 등
부당한 권력행사로 인권을 짓밟을 수 있는 기관들은 잠시만 방심하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시스템적으로 투명한 법집행이 이뤄지게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물론 이 책에 등장하는 섹션의 인간들처럼 자신들의 조직과 목적을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하는
광신도 확신범들은 마땅한 대책이 없을 수도 있지만 이런 인간들이 애초에 그런 짓을 못하도록
확실한 방책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도 그런 엄청난 일들을 겪고도 자신의 신념과 소신을
꿋꿋하게 유지하는 리스베트는 정말 대단하다 할 수 있었다.
보통 사람은 그런 끔찍한 일들에 쉽게 굴복하고 말 것 같은데 고통을 이겨내고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리스베트는 그야말로 신념의 화신이었다.
이렇게 엄청난 얘기들을 쏟아냈던 스티그 라르손이 더 이상 좋은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을 수
없다는 점은 정말 애통하다. 만약 밀레니엄 시리즈가 계속 되었으면 어떤 얘기들이 이어졌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니 더욱 아쉬움이 가득한데 이런 아쉬움을 달래줄 만한 작품을 만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