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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4분의 1
오사키 요시오 지음, 우은명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오사키 요시오의 단편집

뜻밖에 선물(?)로 받은 책이라 그런지 좀 다른 느낌이 들었다.

4개의 단편으로 엮어진 이 책은 4개의 단편이 다른 빛깔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애뜻함이랄까 하는 감정으로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주었다.

 

'보상받지 못한 엘리시오를 위해'

대학 체스 동우회 회원인 야마모토와 요리코, 타케이

친구 사이인 야마모토와 타케이 그리고 연인 사이인 요리코와 타케이

타케이를 연결 고리로 만나던 야마모토와 요리코 사이에 차츰 알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이 삭트는데...

 

비틀즈의 'If I fell'을 들으며 요리코가 한 얘기가 기억에 남는다.

요리코가 중학교 때 fell을 넘어진다고 번역해 망신당한 얘기

흔히 우리는 사랑에 빠진다고 번역하지만 넘어진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듯 싶다. ^^

그리고 야마모토의 요리코를 꼭 찾아내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뇌리에 남는다.

'퀸이 오로지 킹을 지키듯이, 어쩌면 나는 지금의 너를 지킬 수 있는 단 하나의 말인지도 몰라.

그리고 퀸이 모든 것을 걸고 그렇게 하듯 나도 전력을 다해 너를 찾아내서 구해내겠다.'

 

'켄싱턴에 바치는 꽃다발'

이 단편에서의 압권은 역시 '나는 몇 기린이냐'고 묻던 미나코의 대사

동물원에서의 거래는 기린이 화폐처럼 통화의 기준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동물은 기린을 통화로 해서 거래가 된다나...

예를 들면 코뿔소는 300기린은 한다는 등

이에 대해 미나코가 유이치에게 자신에 대한 감정을 묻는 표현이

참 재밌다. '지금의 나는 유짱에게 있어서 몇 기린이야?'

사랑을 확인하는 직설적이지 않고도 재밌는 표현인 것 같다.

그리고 명왕성 얘기. 이젠 태양계에서 퇴출(?) 당해버린 명왕성

늘 명왕성은 그대로 존재했지만 사람들은 오래도록 인식 못했고

인식한 후엔 태양계의 한 식구로 넣었다가 이제 다시 식구가 아니라고 버렸다.

그럼에도 명왕성은 늘 변함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겠지...

암튼 우리 세대는 명왕성의 태양계의 9번째 식구로 기억되고 있다.

 

'슬퍼서 날개가 없어서'

삿포로의 같은 고등학교에서 밴드를 하던 마츠자키와 마미

그들은 어느새 연인 사이가 되지만 마츠자키는 도쿄로 진학하고

서로 멀리 떨어진 마츠자키와 마미

도쿄로 진학하지 않고 삿포로에 남은 마미가 마츠자키에게 보낸 편지 중 인상적인 구절

'만나고 싶어질 때도 있습니다. 사랑스러워질 때도 절실할 때도

슬퍼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저에게는 날개가 없습니다.'

날개가 없어 마츠자키에게 날아가지 못한다는 마미

사랑하고 함께 있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는 자신의 애뜻한 마음이 너무 잘 담겨 있어 맘이 찡해졌다.

 

'9월의 4분의 1'

브뤼셀에서 만난 켄지와 나오

작가가 되기 위해 많이 준비했음에도 글을 전혀 못 쓰던 켄지와

사랑하던 사람에게 버림받고 아파하던 나오

그들은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데

'9월의 4일'에서 만나자는 편지를 남기고 떠나 버린 나오

켄지는 이를 9월 4일에 만나자는 얘기인 줄 알았지만

이는 역 이름이었을 때 넘 안타까웠다.

나오는 그들의 인연을 시험해본 것일까?

켄지가 이를 알아차렸으면 그들은 좀더 오래 인연을 이어갔을텐데

만날 사람은 반드시 만난다고 아직도 운명을 믿는 나에겐

아쉽지만 그들은 인연이 아니었다고 위안할 수밖에 없었다.

 

오사키 요시오는 60년대말에서 70년대 사이의 음악을 좋아하는 듯

비틀즈, 롤링 스톤즈, 레드 제플린 등 그 시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그룹들의 음악이

그의 단편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나도 물론 좋아하기에 너무 반가웠다.

4개의 단편 모두 사람의 맘을 찡하게 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 이 책은

이 가을에 내 맘을 설레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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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 대디, 플라이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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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중년의 가장인 스즈키 하지메

어느날 딸인 하루카가 폭행을 당해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일어난다.

딸을 폭행한 건 딸과 또래의 유망한 복싱선수 이시하라

딸을 폭행하고도 별로 반성의 빛도 보이지 않고

선생들을 동원해 대충 무마하려 하자

스즈키는 불끈(?) 일어나 복수를 결심한다.

문제아(?) 집단인 좀비스, 특히 재일교포 박순신의 도움을 받아

스파르타식 하드트레이닝을 힘겹게 소화해낸 후

드디어 이시하라와의 숙명의 한판 대결을 벌이는데

과연 스즈키는 이시하라에게 복수를 할 수 있을까?

 

이책을 만나게 된 계기는 정말 특별하다.

인터넷으로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를 주문했었는데

집에 배달된 책이 바로 이책이었다.

물론 다시 교환을 했지만 그사이 잘못 배달되었던

이책을 거의 다 읽었다. 그야말로 전화위복이랄까 ㅋㅋ

공짜로 책 한권을 다 읽게 되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이책의 유쾌발랄함이

한번 책을 손에 잡으면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일상에 찌든 중년의 샐러리맨 스즈키가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의 폭행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겪은 후

오히려 그동안 무료했던 일상에서 벗어나 삶의 활기를 되찾고

사가지 없는 이사하라 일당에게 통쾌한 복수를 펼치는 장면은

정말 하늘을 날아갈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곧 영화로도 선보인다던데 스즈키역에 이문식을 캐스팅한 것은

영화를 코믹하게 몰고 가기 위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스즈키에 걸맞는 배우로 안성기를 캐스팅했으면

훨씬 더 원작에 충실하지 않았을까 싶다.

박순신 역도 이준기처럼 이쁜(?) 남자보단

좀 더 터프한 이미지의 배우를 캐스팅하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암튼 아직 개봉 안 한 영화지만 왠지 너무 코믹스러운 쪽에 초점을 둬

원작에서 보이는 스즈키의 딸의 복수에 대한 비장함(?)이

제대로 표현될까 걱정스럽다. ㅋ

 

요즘 권위도 사랑도 다 잃어버린 우리 아버지 세대의 슬픔을

한방에 날려 버리는 정말 유쾌,상쾌,통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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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과 남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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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와 불륜이란 두 단어는 묘하게 잘 어울린다.

남미는 우리에게 머나먼 이국의 정취와 뜨거운 정열의 이미지이고

불륜은 금지된, 허용되지 않은 것이기에

더 강렬한 열정을 내포하고 있어 묘한 조화를 이룬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등을 여행한 후

여행지를 배경으로 한 7편의 단편을 모은 이 책은

여행의 경험을 기행문이 아닌 공통된 소재의 단편으로 엮어 내어

요시모토 바나나의 재능에 감탄하게 만들었다.

 

마치 아르헨티나에 직접 간 듯한 느낌을 주는

각 단편의 마지막에 실린 사진들

특히 이구아수 폭포의 시원한 물줄기는

그동안 맘 속에 쌓인 체증을 잠시나마 가시게 해 주었다.

그리고 표지를 비롯한 묘한 느낌의 삽화들도

낯선 이국의 느낌을 물씬 풍겼다.

 

같은 소재의, 하지만 다른 느낌의 7편의 단편들은

남미나 불륜이라는 두 단어와는 달리

차분하면서도 왠지 모를 애뜻한 느낌마저 주었다.

 

바나나와의 첫만남은 그렇게 첫 눈에 반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친한 친구처럼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바나나의 다른 작품들과도 만나보고 싶다. ^^

(난 맛난 바나나를 좋아하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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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늘 두려워한 것은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이지 운명이니 자연의 위협이니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게 하루란 늘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커다란 고무공같은 것이었고 그 안에서 어쩌다 가끔 무언가를 바라볼 때, 아무런 맥락도 없어 불쑥 꿀처럼 달콤하고 풍요로운 순간이 찾아오곤 했다.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황홀한 느낌......그 아름다움이 느껴지면 나는 넋을 잃고 온 몸으로 언제까지나 그것을 만끽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치하니 중

슬픔이란 결코 치유되지 않는다. 단지 엷어지는 듯한 인상을 주어 그것으로 위로 삼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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