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숙청의 문을
구로타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졸업식을 하루 앞둔 고등학교 교실.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사들에게도 무시당하던

 

여교사 곤도 아야코는 이전과는 다르게 학생들에게 강하게 나가며

 

학생들을 인질로 잡고 숙청작업을 시작하는데...

제1회 호러 서스펜스 대상을 받은 작품답게 화끈한 내용을 선사한 이 책은

 

그동안 종종 만났던 청소년 범죄들의 종합선물세트이자 완결판이라 할 수 있었다.

 

여교사가 학생들을 인질로 잡고 살인행각을 벌이는 것도 충격이지만

 

학생들이 저지른 짓은 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못하지 않았다.

 

권총과 나이프로 무장한 곤도 아야코는 자신을 만만하게 보고 덤비는 학생들을 처절하게 응징하며

 

죽은 학생들이 저지른 죄를 하나씩 폭로한다. 한 교실이 무슨 범죄자들을 모아놓은 곳도 아닐 것인데

 

인질로 잡힌 학생들은 모두 온갖 범죄들을 두루 섭렵한 인간말종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인질극을 벌이는 여교사에게 오히려 공감이 가고 그녀의 편이 되어

 

이 나쁜 쓰레기들을 깨끗하게 청소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묘한 입장이 되었다.

학생들의 반항과 경찰의 침입을 철저하게 방어하는 곤도 아야코의 모습이 놀라웠는데,

 

경찰과 학생들, 그리고 언론과 학생들의 부모까지 능수능란하게 조종하는 곤도 아야코의

 

24시간 동안의 인질극은 최후를 향해 치달아가고 과연 인질극은 어떤 결말을 맺을 것인가...

사실 설정 자체가 극단적이라 현실감은 좀 떨어지지만 뭔가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을 주는 책이었는데,

 

한편으론 학교의 심각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줘서 씁쓸한 기분도 들었다.

 

교실이 예전의 교실이 아니고 학생들이 예전의 학생들이 아닌 게 하루 아침의 일은 아니지만

이 정도까지 갔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다.

 

교사의 권위가 바닥으로 떨어진 지는 오래되었고

 

전혀 통제가 되지 않는 학생들의 얘기도 익숙한 사실이 되었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학생들이 저지른 잔인무도한 범행들엔 치가 떨릴 정도로 경악스러웠다.

 

그런 짓들을 저지르고도 전혀 죄책감이나 반성의 기미조차 없는 인간들을 졸업시켜 세상으로 나오게

 

하는 건 또 다른 범죄라 할 수 있어 곤도 아야코의 결단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전에 봤던 '천사의 나이프''고백'에서도 청소년 범죄의 심각성에 불구하고

 

안이하게 대응하는 무용한 법률에 대한 비판이 등장했는데, 이 책에서도 범죄청소년의 인권만

 

비호하고 피해자들은 안중에도 없는 한탄스런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인질들의 몸값을 준비하던 부모들의 한심한 모습이나

 

21세기가 낳은 괴물들이 활개치게 내버려두는 무능한 교육현장 등

부조리한 상황들을 계속 접하다 보니 숙청의 현장이 오히려 당연한 응징의 시간으로 받아들여졌는데,

 

엄청난 인질극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낸 작가의 솜씨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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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귀 후지코의 충동
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사치스런 엄마와 폭력적인 아빠 밑에서 동생과 함께 고군분투하던 초등학생 후지코는

 

한창 사춘기에 접어든 상태라 학교에서도 남자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고 만다.

 

K를 비롯한 남자 아이들의 노리개로 전락하여 절망적인 생활을 하던 후지코는

 

K의 사고와 일가족이 끔찍하게 살해당하던 사건이 발생하자

 

이모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만 또다시 학교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뒷맛이 나빠 읽고 나면 불쾌한 기분이 남는 미스터리를 뜻하는 '이야미스'라는 신조어가 있는데

 

이 책이 딱 거기에 속하는 작품이었다.

제목 그대로 후지코가 살인귀가 되어 가는 과정을 리얼하게 보여줬는데

사실 평범했던 소녀가 그렇게 망가지는 데엔 안타까운 사정이 있었다.

부모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인간들 밑에서 여동생과 함께 꿋꿋하게 버텨가던 후지코는

 

학교에서마저 나쁜 아이들의 괴롭힘에 시달리는 신세가 되고 만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이런 환경 속에서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나오기는 정말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런 비참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후지코의 처절한 투쟁은 그녀를 점점 괴물로 만든다.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안 들키면 괜찮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된 후지코는

 

자신의 삶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을 하나씩 제거해가는 살인귀가 되고 만다.

그리고 점점 자신이 제일 싫어했던 엄마의 모습을 닮아가게 되는데...

미스터리 장르의 작품이지만 이미 살인귀로 낙인 찍힌 후지코의 구질구질한 삶을

 

인내심을 갖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데 마지막에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을 선보인다.

 

그녀의 삶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던 일가족 몰살사건의 진실이

 

사실은 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녀를 수렁에서 건져낼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나약한 후지코는

 

학교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나쁜 아이들과 엮이면서 결국 파멸의 길로 걸어들어가게 된다.

 

이후 후지코는 원하는 것을 위해선 뭐든지 하는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이 되고 마는데

 

그녀 자신의 문제도 많았지만 그녀를 그렇게 만든 가정과 학교에도 큰 책임이 있었다.

 

우리의 아이들이 저런 환경 속에서 악마로 변신하게 된다면 그건 순전히 어른들의 책임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후지코의 일생은 그야말로 세상의 어두운 단면을 고스란히 담아낸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마리 유키코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이야미스가 멋지를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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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불꽃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엄마와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슈이치의 집에 난데없는 불청객이 찾아온다.

 

엄마의 전 남편인 소네가 집에 들어와 행패를 부리면서 나가지 않고 가족들을 괴롭히자

 

슈이치는 엄마와 여동생을 지키지 위한 여러 방법을 시도하지만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

 

점점 소네의 존재에 두려움과 압박감을 느끼던 슈이치는 소네를 처치할 극단적인 계획을 세우는데...

가정에 불화가 있는 경우 그 고통은 무엇보다 극심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자녀들은 부모들의 눈치만 보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이라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닌데

 

엄마와 여동생의 보호자 역할을 해야 하는 슈이치는

 

소네로 인해 하루하루가 불안과 고통의 연속인 상황에서 결단을 내린다.

 

어찌 보면 정말 극단적이고 무모한 선택이라 할 수도 있지만

 

심정적으론 충분히 슈이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슈이치가 아직 미성년자여서 '천사의 나이프'처럼 약한 처벌을 받을 수도 있지만

 

온라인을 통한 신상털기와 급속한 정보확산은 가족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줄 것이 분명하기에

슈이치는 완전범죄를 꿈꾼다. 나름 법의학 연구와 철저한 준비를 통해

소네를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강제종료' 시키는데 성공하고

 

경찰의 수사도 무사히 넘어가는가 싶었지만 역시 완전범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꾸몄던 계획은 한때 절친이었던 친구가 자신을 목격하면서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오히려 친구의 협박을 받으면서 새로운 위기에 처하는데...

이 책을 읽다 보면 묘하게 살인범인 슈이치의 편에 서게 된다.

 

그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지만 만약 그의 입장이 된다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상황 논리라는 게 변명이자 핑계에 불과하다고 이성으론 판단하지만

정말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끔찍한 상황을 인내하면서 견뎌내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슈이치가 잘못되지 않기를 은연 중에 바라게 되었다.

 

하지만 경찰이 그렇게 허술하진 않았고 결국 슈이치는 막다른 길로 내몰리게 된다.

 

하지만 슈이치에겐 그런 엄청난 짓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으니 결코 외롭지는 않을 것 같다.

 

그의 선택이 옳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결과적으론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비극이 초래되지 않으려면 가정이 건강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가정들이 적지 않다는 게 슬픈 현실이다.

 

이 책을 통해 기시 유스케와는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그의 명성에 비하면 정말 늦었다고 할 수 있다.

영화로 본 '검은 집'의 작가여서 뭔가 독특한 스타일의 작가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이야기 솜씨는 충분히 인정할 만했다.

특히 이 작품에서 과학적인 지식이 상당히 많이 사용되었는데

 

왠지 히가시노 게이고와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대부분 첫인상이 좋으면 다른 작품들도 잘 맞는 편인데 기시 유스케의 다른 작품들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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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천 정사 화장 시리즈 1
렌조 미키히코 지음, 정미영 옮김 / 시공사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미스터리라고 하면 대부분 선혈이 낭자하는 살인사건과 이를 해결하는 탐정의 얘기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런 미스터리의 정석에서 벗어난 작품들을 간혹 만나곤 하는데

 

이런 작품들은 대부분의 작품들과는 또 다른 묘미를 보여준다.

 

이 책에도 다섯 편의 단편들이 실려 있는데, 모두 꽃을 모티브로 한 '花葬'시리즈이며

 

20세기초를 배경으로 한 사랑 이야기라는 공통점을 가진 색다른 작품들이었다.

먼저 첫 작품인 '등나무 향기'는 홍등가에서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자

대필을 하던 남자가 용의자로 체포되어 수감 중 자살한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전혀 뜻밖의 진실이 숨겨져 있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베풀 수 있는 호의의 수준을

 

한 단계 뛰어넘는 얘기에 마음이 짠해 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런 분위기는 다음 작품인 '도라지꽃 피는 집'에도 이어진다.

 

제대로 피어 보지도 못하고 열여섯 살에 홍등가로 팔려 간

 

소녀 스즈에의 애달픈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었다.

다음으로 얽히고 설킨 두 남녀의 관계가 결국 비극으로 치닫는 '오동나무 관'과

 

사랑과 아들을 위해 엄청난 짓을 저지르는 엄마의 얘기를 담은 '흰 연꽃 사찰',

 

마지막으로 일본 추리작가협회상 단편부분을 수상하였으며 자신의 작품을 위해

 

자신을 사랑한 여자들을 희생시키는 작가의 얘기를 그린 '회귀천 정사'까지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하나같이 애틋한 사랑 얘기 속에 숨겨진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묘한 매력을 보여주었다. 사랑을 이루지 못한 남녀가 동반자살 하는 '정사'를 다룬 얘기면서도

 

미스터리 본연의 재미에도 충실한 단편들이었는데 마치 활짝 폈던 꽃이 지는 것처럼

 

아름다움과 슬픔이 공존하는 그런 분위기의 작품들이라 할 수 있었다.

 

총 8편인 화장 시리즈의 나머지 3편은 '저녁싸리 정사'에 실려 있다는데,

 

그동안 내가 만났던 미스터리 작가들과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작가와의 첫 만남이어서 나름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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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의 사각 - 201호실의 여자 오리하라 이치 도착 시리즈 2
오리하라 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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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을 하면서 큰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오사와 요시오는

반년 전 맞은 편 연립주택 201호에서 여자가 죽은 모습을 발견한 후

죽은 여자의 환영에 시달리며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입원하였다가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오지만

옆집 201호에 새로 이사 온 여자의 모습을 보고 또다시 혼란에 빠져들게 되는데...

 

오리하라 이치의 '도착' 시리즈의 2편인 이 책은 이미 '도착의 론도',

'도착의 귀결'을 본 상태에서 봐서 신선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특히 '도착의 귀결'의 '감금자'에서 이 책의 기본적인 설정을 인용하고 있어

낯선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 이 책에서는 상태가 안 좋은 인물을 내세워

관음증과 정신착란에 교묘하게 빠져들게 만든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명작 '이창'을 떠올리게 하는 설정으로

옆집 여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엿보던 오사와 요시오는

1년 전에 살해당한 여자와 똑같은 모습의 시미즈 마유미를 보면서 야릇한 감정에 빠진다.

추리소설을 번역하던 작업이 제대로 진도가 나가지 않자

모든 탓을 시미즈 마유미에게 돌리며 그녀의 집에 몰래 잠입하기까지 하던 그는

결국 대형사고를 치고 마는데...

 

오사와 요시오와 시미지 마유미의 일기와 오사와 요시오와 악연이 있는

좀도둑 소네 신키치의 시선을 번갈아 보여 주며 얽히고 설킨 관계가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섬세하게 이끌어내는 이 책은

현대인들의 정신적인 문제를 잘 보여주고 있다.

관음증, 피해망상, 과대망상 등 타인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갖혀

그릇된 판단을 하는 모습을 이 책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잘 그려냈는데,

역시나 독자들을 도착에 빠뜨리고 예상치 못한 반전을 선사했다.

물론 이미 시리즈의 다른 두 작품을 통해 작가의 수법을 어느 정도 간파한 상태라

시리즈를 처음 만났을 때의 충격은 받지 못했지만 여전히 예상을 뛰어넘는 반전을 선보였다.

이 책으로 이제 도착 시리즈를 완결했는데 순서대로 읽었다면 '도착의 귀결'을

좀 더 재밌게 읽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나중에 다시 읽어 보면

처음 읽을 때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찾아내는 즐거움이 있지 않을까 싶다.

원래 서술트릭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오리하라 이치의 '도착'시리즈는

서술트릭의 묘미를 정말 잘 살려낸 작품들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얼마나 쉽게 도착상태에 빠져 진실을 바라보지 못하는지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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