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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ㅣ 밀리언셀러 클럽 147
야쿠마루 가쿠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8월
평점 :
어릴 때 누나가 동네 불량배들에게 성폭행을 당해 잃은 아픔을 간직한 사에키 슈이치는
경찰로 근무하다 사고를 치고 그만둔 후 탐정사무소에서 근무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11년 전 외동아들을 잃은 부부가 자기 아들을 죽인 범인 사카가미 요이치가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받게 되자 사에키 슈이치는
누나를 죽인 범인들이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틈틈이 조사하기 시작하는데...
소년 범죄를 다룬 데뷔작 '천사의 나이프'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했던 야쿠마루 가쿠의 작품이라 기대가 되었던 작품인데 전작과 같이 범죄자들이 과연 갱생을 하는지 여부를 살펴보는 과정을 담아냈다.
개인적으로는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범죄자의 갱생은 그야말로 희망사항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첫 번째 의뢰사건의 대상인 사카가미 요이치도 친구(친구라고 할 수도
없겠지만)를 죽인 다음 소년원에 2년만 살고 나와서 하는 짓이 보이스 피싱 총책이었다.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형벌이 약하다 보니 금방 출소해서 또 범죄를 저지르는 게 반복되는데
교정제도가 범죄자를 교화시켜 새 사람으로 만들어 사회에 적응시킨다는 이상을 갖고 있지만
현실에선 사회와 잠시 격리시키는 데 불과한 무기력한 제도임이 이미 판명된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일부 개과천선한 사례들이 있긴 하지만 대다수의 범죄자들은 재범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고,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무고한 사람들도 살아가기 힘든데 전과자들이 새출발을 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암튼 사카가미에 대한 조사 이후 사에키가 근무하는 탐정사무소는 범죄 피해자로부터 가해자의
근황을 조사하는 업무를 특화시켜 탐정 업계의 블루오션을 개척한다.
범죄 피해자나 그 가족 입장에서는 보통 범죄의 끔찍한 고통과 상처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하고
평생 고통에서 허덕이는 반면 가해자들은 언제 자기가 그런 짓을 했는지 까맣게 잊고 자기 맘대로
살고 있으니 가해자의 근황을 듣게 된 피해자나 그 가족들은 열불이 나게 마련이다.
사에키는 가해자의 근황조사 의뢰를 수행하면서 누나를 죽인 범인들의 근황도 알게 되자
자기 가족을 그렇게 만들어놓고도 잘 먹고 잘 사는 모습을 보면서 복수의 칼날을 갈게 되는데...
범죄 피해자의 가해자 근황 조사라는 독특한 소재를 다룬 이 작품은 각각 독립한 단편들로 봐도 손색이 없는 얘기가 주인공 사에키의 사연과 얽히면서 하나의 커다란 얘기를 만들어냈다.
과거에는 범죄자의 인권에만 관심이 있었지 피해자 보호나 피해보상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도대체 누구를 위해 법이 있는 건지 주객이 전도된 범죄에 대한 대응방법으로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피해자나 그 가족들과 같은 사람들이 피눈물 나게 만들었다.
요즘은 그나마 조금 개선되긴 헀지만 여전히 형사절차에서 주인공은 범죄자이고 피해자는 들러리에
불과한 취급을 받고 있는데 이 책을 보면 그다지 효과가 없는 범죄자의 갱생보다는
피해자의 치료와 회복, 보상에 정부가 훨씬 더 노력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전에 읽었던 '천사의 나이프'와 가해자의 갱생 여부를 확인한다는 기본 설정에 유사한 부분이 있었지만
세상에 판을 치는 악당들과 그들에게 받은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피해자의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주면서도 미스터리로서의 재미를 충분히 보여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