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마이리뷰 당선작

8점
김사량의 <빛 속으로> - 은하수
<빛 속으로>
김사량 작가의 단편집 <빛 속으로>한때는 남과 북에서 모두 잊혀진 작가였던 김사량 작가의 <빛 속으로>를 읽었다. 4개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마지막의 「노마만리 」는 김사량이 타이항산 지구의 항일근거지로 떠나는 과정을 담은 탈출기로서, 이 책에서는 망명기 도입부만 실려 있다. 그럼에도 흥미진진하여 그 전편이 궁금했다.단편인 「빛 속으로」는 작가가 일본에서 일본어로 써서 발표였으며 아쿠타가와상 후보에도 올랐다. 이 작품의 배경은 동경이며 화자인 '나'는 동경 제대에 다니는 조선인 학생으로 빈민촌의 S협회에서 ...

8점
일곱 개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 - cyrus
<세상의 모든 아침>
평점4점 ★★★★ A-[대구 책방 <일글책> 평일 독서 모임 10월의 책]나는 왜 여기 서 있나오늘 밤엔 수많은 별이기억들이 내 앞에 다시 춤을 추는데 어디서 왔는지 내 머리 위로작은 새 한 마리 날아가네어느새 밝아 온 새벽하늘이다른 하루를 재촉하는데 종소리는 맑게 퍼지고저 불빛은 누굴 위한 걸까새벽이 내 앞에 다시 설레이는데 - 전인권 『사랑한 후에』(1987년) 노랫말 중에서 -소리는 고막을 춤추게 한다. 고막은 아주 얇다. 그래서 고막이 물리적 충격을 받으면 파열되는 약한 신체 기관으로만 알...

8점
좋은 책이다 - stella.K
<조선 청소년 이야기>
평소 각색에 관심이 있긴 하지만 이 책은 정말 각색을 통하지 않으면 못 읽을 것 같다. 조선의 고소설을 원문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공자가 아니면 읽기가 어렵지 않을까. 물론 그것을 현대어로 풀어서 쓸 수도 있겠지만 각색은 그보다 더 나아가 작가의 상상력과 등장인물에 더 많은 비중을 두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일까? 요즘의 언어 감각을 최대한 살리면서 등장인물을 더 적극적이면서 실존적으로 그렸다는 생각이 든다. ​난 처음에 이 책을 읽지 않으려고 했다. 아무래도 책 제목도 그렇고 나 같이 청소년기를 지나도 한참 지나 온 사람이 과...

10점
베트남 전쟁소설을 단 한 권 고르라면... - 파란-말
<전쟁의 슬픔>
이 책 『전쟁의 슬픔』을 처음 읽었을 때, 깊은 슬픔을 느꼈고 낯선 충격을 받았다. 그 슬픔과 충격은 내가 접해 왔던 기존의 전쟁 소설과 영화에서 느낀 것들과는 다른 차원이었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시점의 변화였다. 이제껏 우리가 접해온 베트남 관련 소설과 영화는 주로 미국(혹은 한국)의 관점에서 생산된 것들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베트남 영화 중에 1986년 미국이 제작한 플래툰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기존의 전쟁 영화와는 달리, 전쟁의 참상을 휴머니즘 시각으로 살렸다며 전세계적으로 흥행했다. 전쟁을 영웅주의로 다루지 않고 인간성의...

10점
박상륭의 소설, 그 자폐적 마음의 세계에 다가가기 - 필리아
<소통의 잡설>
우리 독자들은 문학작품을 읽고 저마다 다양한 감상을 갖게 된다. 그것은 감동과 공감의 감응이기도 하고 이질성과 낯섦, 혹은 도덕적이거나 취향의 거부로 부정과 비판의 소회를 남기기도 한다. 그런데 순순히 읽히지 않거나 이해에 어려움을 주는 작품에는 더더욱 작품과는 다른 엉뚱한 찬양이나 비판이 가해지곤 한다. 대개는 당해 작품을 구성하는 언어, 문장, 사상 등에 대한 결여나 적대하는 무엇이 방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읽나? 무언가 낯선 세계를 그 책을 통해 알고 싶어서가 아닐까? 만일 뻔히 알고 있는 인간들과 세...

6점
나쁜기자들의 위키피디아 - 베터라이프
<나쁜 기자들의 위키피디아>
이 글을 쓴 강병철 기자는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합니다. 2008년 서울신문에 입사한 뒤, 문화부, 사회부 법조팀, 사회2부 서울시청팀, 정치부 국회부 등 경력을 쌓고 현재는 정치부 외교안보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과거 이명박정부의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보도'로 한국기자협회 기자상을 수상했는데요. 또한 이달의 기자상을 3회 수상할 정도로 언론계에서 유명한 민완기자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2019년 12월에 출간되었고, 제가 구입한 판은 초판 2쇄였습니다...

그런데 실은 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다름 아니라 뉴스를 소비하는 층의 성격이 변했다는 점이다. 언론의 저열한 습성을 걸러내는 사람들의 눈은 예전에 비해 훨씬 더 매서워졌다.


8점
에로 아님 주의 - 구단씨
<아이 러브 모텔>
살아오면서 모텔을 이용할 일이 거의 없었고, 심지어 모텔을 다녀본 지도 20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몇 달 전 옆자리의 젊은 남자 동료가 무슨 축제에 간다고 숙소 찾는 걸 도와달라고 해서 같이 보고 있는데, 숙박 앱으로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많이 놀랐다. 가격도 예상과 다르게 많이 올랐지만(당연하지, 세월이 얼마나 흘렀더냐), 예전의 모텔이 아니었다. 일부러 호텔을 찾지 않아도 될 만큼(물론 호텔을 이용해야만 하는 상황과 이유도 분명 있다) 깔끔하고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사진만으로 그 숙소의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지만, 어차피 직접...

10점
사랑하니까 고독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풀꽃> - 새파랑
<풀꽃>
N23062˝과연 내가 그렇게 눈부시게 과거를 살았을까? 사랑받을 수 없었던 나, 그저 사랑하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면서도 가슴속의 고뇌로 마음이 찢어지던 나, 그런 나는 정말로 옛날에 한 점 후회 없이 살았을까? 그리고 또 하나의 의문. 내가 사랑한 사람들은 왜 나를 떠나갔을까?˝고독하다는 건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받아들여질 수 없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 이 책의 주인공 ‘시오미‘는 고독했다. 그렇기 때문에 살려는 의지를 상실했다. 그래서 폐 질환을 가지고 있던 그는 성공확률이 극히 낮은...

10점
슬픈 중국 : 대륙의 자유인들 1976-현재 - Ganesa
<슬픈 중국 : 대륙의 자유인들 1976-현재>
인간은 날카로운 이빨도 두꺼운 피부도 큰 덩치도 가지지 못하지만 진화를 거듭해오면서 상태계의 최대 포식자로 군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협동이 가장 중요한데 나보다 큰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여럿이서 힘을 합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나와 힘을 합치는 이의 능력이 아니라 상대를 얼마만큼 믿을 수 있느냐이다. 한 순간 생사가 오갈 수도 있는 상황에서 등 뒤를 맡긴다는 것은 어지간한 믿음이 아니고서는 쉽지 않은 일이기에 내가 속한 무리와 다른 무리를 본다면 손을 먼저 내미는 것 보다는 적대를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

10점
친밀한 적 - 상호속박 - 된장찌개 - 단발머리
<친밀한 적>
아시스 난디의 <친밀한 적>을 읽었다. 작고 얇은 책인데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래 걸렸다. 읽기는 다 읽었지만 내용의 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거 같아 나중에 시간이 되면(시간을 내서) 다시 읽어봐야겠다, 그런 기특한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방대함을 담기에 나는 너무나 작고 연약한 한 마리의... 독자일 뿐이며... (고라니, 라고 쓰고 싶었는데, 고라니님 허락을 받아야 해서 쓰지 않음) 책 뒤쪽에 출간 25년을 맞이해 작성된 기고문이 있는데, 본인의 책을 이렇게 요약해 두었다. 그대로 옮겨본다. ...

10점
한 영장류의 성장 보고서이자 혼돈의 자아 정체성을 겪고 있는 고백서<핫 밀크> - scott
<핫 밀크>
'메두사 깃발이 펄럭일 때는 바다 수영을 하지 않는 게 최선입니다.'스페인 한 해변에서 메두사라 불리는 해파리에게 다리를 쏘인 소피아는 자신의 삶이 메두사의 저주를 받아서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이름: 소피아 파파스테르기아디스나이:25세국적: 영국직업:소피아는 원인 모를 다리 통증에 시달리고 있는 엄마 로즈를 고메즈라는 남자가 운영하는 스페인의 한 요양 병원에 입원 절차를 밟기 위해 보호자 서약서에 양식을 기입하던 중 <직업>란에 어떤 직업도 기입하지 못하고 있다.따스한 남쪽 해안가에 자리 잡은 휴양지의 리조...

10점
도시를 이루는 것들 - L
<내일의 도시를 생각해>
최근에 이사를 했다. 원래 살던 동네가 한적하고 조용해서 오래도록 머물고 싶었는데, 물가를 반영하듯 자연스레 오른 월세와 겨울철 동파 방지를 위해 세탁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고택의 문제점 등의 이유로 갑작스럽게 결정된 것이었다. 책 『내일의 도시를 생각해』 작가의 말마따나, 내가 그 동네를 좋아하건 말건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급하게 준비하느라 계약할 당시에는 이사 갈 곳의 주변을 둘러보지 못했다. 그런데 막상 입주하고 나서 필요한 곳 이곳저곳을 들르다보니 사람들이 왜 ‘역세권’에 혀를 내두르는 지 절실하게 체감하게 됐다. 생활과...

아내와 저는 이 동네에서 오랫동안 아이를 키우며 살기로 결정하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2년 후 전세 가격이 급등하면서 더 이상 그 동네에 살 수 없게 됐습니다. 제가 그 동네를 좋아하건 말건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었지요. - P6


10점
Publisher 4. 우리는 모두 걸리버가 될 수 있다 - 異之我_또다른나
<걸리버 여행기>
정치풍자는 꼭 해야만 한다. 특히 '정치 권력'을 향한 뼈를 때리는 농담은 '살아있는 권력'에 싱싱함을 더해주기 때문에, 권력자는 풍자에 귀를 기울어야 하고 때로는 잘 받아넘겨야 한다. 그렇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치풍자를 하다가는 종종 생명를 위협받기 일쑤다. 부정한 권력일수록 권력을 제대로 쓰기는커녕 그저 맹목적으로 권력을 휘두르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잘하라'는 의미의 풍자에도 화들짝 놀라 '무능한 권력'이 들통날새라 벌벌 떨며 잡아다 족치기에 급급할 뿐이다. 그러니 정치풍자는 부정한...

8점
한국 근대예술가들의 이야기에 주목하다 - 거리의화가
<살롱 드 경성>
올해 들어 한국 근대문화(예술)사에 관한 신간을 여러 권 읽었다. 그 중 이 책은 특히나 읽으면서 놀라움을 많이 느꼈는데 작가 자체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만을 다루지 않고 작가의 주변 친분 관계, 그리고 뒷 이야기들을 위주로 다루고 있다. 최근 들어서야 나는 작가와 작품은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작가의 주변 관계를 알면 작가의 생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작품 세계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과거에서부터(작가 자신) 현재(후손)까지의 흐름까지 알려줘서 여러 번 놀라움을 느끼게 했다. ...

8점
[마이리뷰] 오늘은 진행이 빠르다 - dalgial
<오늘은 진행이 빠르다>
얼룩. 시집에 3번 얼룩이 진하게 졌다. 첫 번째 얼룩. 화자는 5월에 ‘그대’를 잃은 ’10년 하고도 몇 해‘의 삶이 ‘그림자 끌며 흘러왔다는 생각’을 하며 덩굴장미 꽃을 보고 ‘쓸쓸해진다’ 그러고는“젊음은 소란스럽지, 예전처럼 늙어서 노회한 시의 가슴을 더듬을 때 만져지는 것은 몰라보게 접질린 주름들, 저 불꽃장미 또한 지상의 꽃이니 며칠만 타올랐다 스러지는 것을 나는, 여한 없이 바라본다, 저버린 약속이 없었음을 시간은 일러주리라 며칠 내 물음처럼 맴돌던 언덕 위 아카시아 향기도 어느새 지워졌다 낙화의 뒤끝으로 오는 신생이란 ...

10점
‘어른‘이 되어가는 어른들에게 건네는 다정한 인사 - 초란공
<한 줄도 좋다, 그림책>
'어른'이 되어가는 어른들에게 건네는 다정한 인사《한 줄도 좋다, 그림책》: 여기 다정한 인사가 있습니다구선아 지음 | [테오리아] | (2021)작가는 그림과 그림책을 좋아하는 책방지기다. 책방 이름은 ‘연희’인데, 위치는 홍대입구역근처에있다.지난 주말에 야외에서 진행된 도서 관련 행사에 가서 업어온 책이 《한 줄도 좋다,그림책》이었다. 저자가 읽어나간 그림책 24권에 대해 간결하게 글로 남겨놓은 책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눈이 점점 나빠지는 반면, 점점 읽고 싶은 책은 많아지니 조바심내며 책을 찾게 된다. 이 책은 손에 들면 잠시...

[1] "여전히 난 어른이 아니다. 어른의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 어른은 어렵다. 이십 대엔 삼십대가 되면 어른의 삶으로 살 줄 알았고, 삼십 대엔 사십 대가 되면 어른이 될 줄 알았다. 어쩌다보니 사십 대가 되었다. 어이쿠, 맙소사다. 그러나 다행히도 사십 대가 되며 "나는 특별하지 않다"라는 걸 깨달았다."(32)


10점
글쓰기, 작가의 삶에 대한 통찰 - 모나리자
<글쓰기에 대하여>
마거릿 애트우드의 책이 블로그에 많이 보여서 검색하다가 만나게 된 책이다. 오랫동안 글을 써왔지만 글쓰기 관련 책을 만나면 늘 설렌다. 더구나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세계적인 문학가이며 부커상을 두 차례나 수상했다는 대작가는 어떤 글쓰기로 자신의 삶을 엮어가는지 궁금했다. 서문을 읽으면서 벌써 노작가의 문장들은 나를 미소짓게 했다. 1960년대 초반에 영문학도였던 저자는 윌리엄 엠프슨이 쓴 ≪모호함의 일곱 가지 유형≫이라는 권위있는 비평서를 읽어야 했고 2000년도에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엠프슨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

10점
무법의 바다 - jyooster
<무법의 바다>
이 책은 바다의 광활함 때문에 해사법 집행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과 버려진 요새로 한 국가를 만들고, 해상 낙태 시설을 제공하며, 낚시와 밀렵을 넘어 현대의 바다 노예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이 약점을 이용하는 다양한 방법을 말한다. 바다에서는 물리적 법적 거리가 멀기 때문에 육지에서는 적발될 수 있는 행위도 쉽게 저지를 수 있다. 바다에서의 국경은 모호하며, 각국은 근해에서 발생하는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수익성이 있을 때 자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해역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다. 그러나 선박이 의도적으로 선...

10점
한식 역사책 추천: 한식 인문학 - 피로
<한식 인문학>
‘고추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서 전래되었다.’ 라는 이야기는 자주 들었다. 심지어 우리 신랑도 이 사실을 정설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깊게 생각해보면 ‘이게 정말이야? 아닌거 같은데?’ 싶을 정도로 고추 임진왜란 전래설에는 여러 모순이 보인다. 예컨데 우리나라에는 고추를 메인으로 한 음식들이 있는 반면, 일본에는 고추를 메인으로 한 음식이 없다. 무엇보다 고추가 임진왜란 당시 전래되었다는 것 치고는, 한반도에서 대중화된 시기가 너무 빠르다. 임진왜란 이후 고추가 전래되서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서 발효식품인 고추장이 되고, 갈아...

10점
SF소설의 새로운 지평 - yamoo
<잘못 들어선 길에서>
한때 SF소설 덕후였다. 김용의 대하역사 소설을 다 읽고 시쿤둥해질 즈음 발견한 아시모프의 소설 시리즈. <강철도시>와 <로봇>은 내 20대의 동반자였다. 이후 걸출한 SF소설들을 거쳤고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을 읽을 즈음 내게서 멀어졌다. 아마도 에코의 소설에 심취하면서 나의 문학 편력은 시작됐을 거다. 그런데 SF소설은 장르적 기대감과 함께 한계가 분명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가치나 사회비판적 의식의 부재였다. 그래서 가볍게 읽는 장르 소설이라는 인식이 강했기에 멀어졌는지도 모른다. 비록 출중한 SF...

8점
쉼표로 계속되는 삶, 아침 그리고 저녁 - 페넬로페
<아침 그리고 저녁>
가끔씩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이 완전히 소멸되고 어느 것도 인식할 수 없다는 것,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 혼자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무섭고 막막하다. 종교를 믿고 있기에 영생의 삶이 존재한다고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사실 죽는 순간, 모든 것이 없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죽음에는 언제나 ‘만약’ 이라는 가정과 상상만이 있을 뿐이다. 아무도 죽음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작가,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은 작가가 상상하...

8점
살아 있는 동안, 존재 그 자체는 위대하다 - 자목련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한 번뿐인 생을 생각하면 모든 게 의미 있고 소중하게 여겨진다. 순간에 충실하라는 '카르페 디엠'을 외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순간에 직면한다. 절실하게 매달렸던 것들이 무너지고 믿고 사랑했던 이가 배신하는 건 다반사다. 삶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고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다 죽고 사는 게 아니라면 삶에 얽매일 필요 없이 단순하게 살는 게 제일 현명하다는 결론을 맺는다. 단순하게 사는 게 가능한가 싶지만 말이다. 지난 7월 사망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

8점
작가를 생각함 - 꼼쥐
<고통에 관하여>
소설가 정보라는 무척이나 학구적인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곤 한다. 그를 직접적으로 대면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쓴 소설의 일부 장면에서 일반 독자가 이해할 수 없는 전문적인 지식과 생경한 단어들의 조합이 맥락도 없이 길게 이어지곤 하기 때문이다. 그 분야의 전문가라면 오히려 아주 쉬운 단어를 동원하여 가장 쉬운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 테지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는 소설가가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지적 욕구가 왕성한 정보라 작가는...

10점
걷기의 즐거움 - 단어벌레
<걷기의 즐거움>
박완서는 수필 <나의 환상적 피서법>에서 여름에 혼자 집에 남아 있어 보면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없어도 시원하다고 썼다. 이웃집에서도 인기척이 들리지 않으면 약간은 고독하겠지만 고독처럼 산뜻하고 청량한 냉기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텅 빈 집에 홀로 있으면 시원하기야 하겠지만 방해받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는 온전히 털어낼 수 없는 ‘무엇’이 우리 위에 여전히 그늘을 드리울 때가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건 집안에서 홀로 있더라도 자기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버지니아울프가 &l...

10점
[마이리뷰] 황야의 이리 - 물감
<황야의 이리>
나님은 아무래도 헤세 문학을 말할 때 mbti를 꺼내지 않을 수가 없다. 한심하단 건 알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방법 말고는 쉽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INFJ는 16가지 유형 중에서 가장 복잡하고 알기 힘든 유형으로 알려져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 INFJ를 ‘예수 아니면 히틀러‘라고 말하더라. INFJ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자 골칫거리라면 모든 만물에서 선과 악을 동시에 들여다본다는 것. 그러니까 양측의 상황을 판단하고 몇 수 앞을 내다보기까지 하는 시뮬레이션들이 한꺼번에 작동한다고 보면 된다. 어찌 보면 참 피곤 답답한 이 시스템은 ...

10점
낄낄거리며 읽다 - 그레이스
<순례 주택>
오랜만에 유쾌한 독서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그 흐름을 거스르며 사는 것은 투쟁하거나 소외되거나 무리를 떠난 캐릭터가 되기 쉽다. 순례 씨라는 캐릭터는 작가가 말했듯 우리가 만들어놓은 세상에 대안이 될 삶의 방식을 사는 사람이라고 할까? 만일 이 이야기를 순례씨를 주인공으로 그녀의 삶이나 마음을 통해 풀어 갔다면 식상했을 것이다. 중학교 3학년 수림이가 가족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통해 어른들의 모습과 순례 씨의 특별한 삶을 그리고 있어 재미있었다. 순례 씨의 생각을 완전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녀가 지향하는 삶이 ...

10점
로봇의 신화를 열고 깬 희곡 - kinye91
<R. U. R.>
희곡이다.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로봇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쓴 작품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쓰고 있는 로봇이라는 말이 이 희곡에서 나왔다고 하니...희곡은 로봇을 생산한 사람들과 로봇이 등장한다. 그런데 사람의 관점에서 시작한 로봇 생산이 로봇의 반란으로 이어진다.기계를 통해 인류의 편리함을 추구했던 결과가 결국 인류의 멸종으로 나타난다. 이런 결말을 암시하는 것이 '귀머거리 꽃'이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여자 주인공인 헬레나가 사람들이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기사를 읽은 뒤에 듣게 되는 꽃의 이름. ...

8점
[마이리뷰] 은둔기계 - rendevous
<은둔기계>
[은둔기계]를 읽고 : 적은 것이 더 총체적일 수 있는가마음의 사회학’ 이론의 창시자 김홍중은 학계와 출판계 모두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학자이자 작가다. 계간 『사회비평』과 『문학동네』의 편집위원을 역임한 경력은 그가 학자로서의 엄밀성과 작가로서의 미학성을 두루 겸비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런 그가 『사회학적 파상력』 이후에 낸 단독 저서인 산문집 『은둔기계』가 단상 모음집이란 사실이 눈길을 끈다. 애초에 단상 형식으로 쓴 글을 모은 게 아니라 일반적인 산문으로 쓴 글들도 단상으로 변형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한 권의 ...

10점
나의 다정한 그림들 - 테일
<나의 다정한 그림들>
" 언제나 맛없는 비스킷을 먼저 먹고 가장 맛있는 건 나중에 먹는 나는, 힘든 일을 한번 겪고 나면 나머지는 웬만하면 다 웃어넘길 수 있다. 그러니까, 햇살 가득한 스타벅스에서 이 글을 쓰는 수요일은 행복 그 자체이다. (41) " 어떤 분야이든 전문적인 지식과 안목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괜히 거리감이 들었다. 굉장히 평범한 사람인 나는 언제든 어느 누구와든 대체될 수 있는 흔한 사람인데, 그들은 뭔가 특별한 능력이나 세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특히나 예술을 감상하고 그걸 풀어낼 힘을 가진 사람들은 더욱 멀었다. 분야마저 ...

8점
다정도 병이라고? - Falstaff
<배꼽>
. 문인수의 시는 쓸쓸하다. 스산하고 애잔하다. 그러나 시인의 시선이 난감의 언덕을 넘지 않아 궁상스럽지 않다. 시집을 열자마자 곧바로 독거노인과 개펄 일을 마친 쪼그랑 할머니다. 데뷔 28년 만에 첫 시집을 낸 3단短short, 체구가 작고 가방끈이 짧고 극약같이 짤막한 시만 쓰는 서정춘이며, 씨멘트를 반죽해 벽을 바르는 미장이 사내였다가, 맹물에 밥 말아 밥 떠넣고 장 떠넣고 밭에 나가 그 길로 세상 등진 경운기 할아버지이고, 법원 앞 신호등 무시하며 횡단보도를 건너는 무법자 할머니이기도 하다. 어쩌면 가여운 모든 이들한테 시...

8점
소설과 영화의 빼어난 이종교배 - 레삭매냐
<재능 있는 리플리>
오래 전에 세기의 미남이라던 알랭 들롱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를 봤다. 그리고 또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 맷 데이먼이 나오는 <재능있는 리플리>라는 제목의 영화를 봤다. 희대의 사이코패스-시리얼 킬러 톰 리플리를 주인공으로 한 동명의 소설과 그렇게 연결점을 찾아냈다. 미국 출신의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이상하게도 본국이 아닌 유럽에서 먼저 그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선지자는 무릇 그 고향에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했던가. 하이스미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아니 어쩌면 자기 나라보다 유럽을 자신의...

10점
가난하다고 인권이 없는가? - 고민
<깻잎 투쟁기>
힘들게 읽었다. 답답하고 속상하고 화가 나서 책장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한숨 쉬어가며 읽은 책이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다 알기는 어렵지만, 내가 관심을 두지 않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나 몰랐었구나 싶은 자책이 들었다. 책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떠올리고 알게 되고 생각하게 되어 저자에게 감사함을 느낀다.과거 뉴스로 접한 사건 하나가 떠올랐다.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가 출입국사무소의 단속을 피하려다 추락해 사망한 사건이었다. 그는 미얀마 국적의 20대 청년이었다. 뇌사 상태에서 한국인 4명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

6점
미래가 없는 아이들 - 닷슈
<있지만 없는 아이들>
책 제목 '있지만 없는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확 눈에 띄었다. 아마 소외된 아이들을 다루는 책일 것이라 생각했고, 대충 맞았다. 이 책은 한국에 존재하는 미등록 아이들에 관한 책이다. 미등록 이주 아동은 이주자 부모를 따라 한국으로 이주했거나 혹은 그들이 한국에서 낳은 아동으로 부모가 체류자격이 없거나 상실 된 경우, 또는 난민자격신청 실패 등 다양한 이유로 체류자격이 결국 없는 아이들을 지칭한다. 한국 정보는 이들을 사실상 있지만 없는 아이 더 나아가서 범죄자 취급하곤 하는데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매우 온당하다. 한국의 미등록...

8점
코끼리도 함께 살아야지 - 희선
<반둘라>
오래전 육천오백만년 전이던가, 이제 백년 더해서 육천육백만년 전이던가. 그때 공룡은 사라졌다.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이구나. 공룡은 커다란 몸집이니 작은 동물이 당해내기 어려웠겠다. 그때 작은 동물 있었던가. 아주 없지는 않았겠지. 지금 지구에서 가장 커다란 동물은 코끼리겠다. 더 오래전엔 코끼리와 비슷하지만 더 큰 맘모스가 있었다는 말이 있기도 하다. 이젠 하나도 없구나. 코끼리는 백년 전만 해도 1000만 마리가 있었는데 지금은 50만 마리가 남았다. 거기에서 아시아코끼리는 아프리카코끼리보다 더 적단다. 백년 사이에 엄청나게 죽어...

8점
당신의 낙원 - 다락방
<로마 이야기>
나는 아주 어릴적부터 교회를 다녔고, 아마 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짐작 가능하겠지만, 정말 열심히 다녔다. 국민학교 6학년 때는 교회에서 반주를 했고 예배 시작 전에는 일찍 가서 주보를 나누어주며 전도를 하기도 했다. 어른 예배에 초대되어 반주를 한 적도 있고 그래서 동네를 걷다보면 나를 아는 척 해주시는 어른 분들도 계셨다. 중등부에 올라가서는 예배 반주가 아닌 성가대 반주를 했는데, 합창 연습 때문에 평일에도 간혹 시간을 빼야 했고, 그즈음 반주 하는게 너무 싫고 또 못한다는 생각에 그만두겠다고 했다. 나도 일반 예배석에...

10점
책으로 구원받은 어느 삶 - 잠자냥
<소네치카·스페이드의 여왕>
어젯밤에 <소네치카>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 나도 모르게 “대박이다” 하고 중얼거렸다. 문학 작품을 읽고 오랜만에 전율했다. <나는 고백한다> 이후 처음이었던 것 같다. 감동이 너무 커서 <소네치카> 뒤에 실린 단편 <스페이드의 여왕>은 읽지 않고 그대로 잠들어도 좋았을 것 같았다(그렇지만 끝까지 읽기는 했다). 책을 덮고 불을 끄고 나서도 누워서 가만히 <소네치카>의 여운을 느껴보았다. 이 작품은 책으로, 문학으로 구원받은 한 여인의 이야기라고 단 한 줄로 말할 수 있다. ...

10점
아름답고 평범하고 시시한 삶 - hnine
<평범한 인생>
" 이 얼마나 아름답고 평범하고 시시한 삶인가! 어느 곳에도 모험이나 투쟁 같은 것은 없으며 예외적이거나 비극적인 면도 없었다. 제대로 작동하는 기계를 바라보는 것같이 흐뭇한 눈길로 되돌아볼 수 있다. 나의 삶은 소리도 내지 않고 멈출 것이다. 아무런 흔들림도 없이, 조용하고 묵묵히 움직임을 끝낼 것이다. 또한 그래야 한다." (19쪽)나도 당신도 언젠가는 지나온 생을 되돌아 보고 정리하고 싶어질 때가 올것이다. 그때 나의 삶은 어떤 삶이었다고 말하고 싶을까. 이 소설의 '나'는 말한다. 나의 삶에서는 비일상적이고 극적인 일은 아무...

10점
[마이리뷰] 도련님 - 독주가
<도련님>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때문에 손해만 봐왔다고 선언하면서 시작하는 <도련님>은 그 성격 탓에 조용할 날이 없는 도련님을 그리고 있다. 뛰어내리지 못한 거란 친구의 비아냥에 2층에서 바로 뛰어내리지 않나, 외제 칼날의 성능을 믿지 못하는 친구의 말에 서슴없이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보지 않나, 이웃 논에 논구멍을 막아 물난리를 겪게 만드는 등 도련님은 뭐든 재지 않고 해보는 탓에 집에서도 밖에서도 처치곤란한 존재이다. 부엌에서 공중제비 넘다 어머니에게 꾸중을 듣고도 ˝꼴도 보기 싫다˝는 말에 집을 나갔...

10점
나는 어떤 이야기에 편입될 것인가-삶의 발명, 정혜윤 - sosimout
<삶의 발명>
2023년 10월 29일은 이태원 참사 1주기다. 백화점이 붕괴되지도, 다리가 끊긴 것도 아닌데 일상을 살던 시민들이 이태원 길에서 죽어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사과를 한 적이 없다. 용산구청과 용산 경찰서는 질서 유지와 치안의 책임을 서로에게 돌리며 1년을 때워왔다. 한 사람도 처벌 받지 않고 1년이 흘렀다. 믿을 수 없게도 용산구청장과 전 용산경찰서장에 대한 1심 결과는 올해에 나오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한다.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전부 퇴장한 가운데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내년 2월에나 표결에 부쳐...

10점
결국, 취향의 문제 - 미미
<친밀한 이방인>
우리가 질서를 연기하는 한, 진짜 삶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다면 진짜 삶은 어디 있는가? 그것은 인생의 마지막에서야 밝혀질 대목이다. 모든 걸 다 잃어버린 후, 폐허가 된 길목에서.133파장이 큰 소설을 읽을 때마다 그렇듯이 이번에도 책을 읽고 한동안 얼떨떨한 시간을 보냈다. 감상을 꼭 남기고 싶은 책이었지만 선뜻 써 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안나'라는 제목으로 이 소설을 각색한 드라마를 봤다. 원작을 많이 훼손한 느낌이었지만 주인공의 연기도 좋았고 나름대로 괜찮았다. 드라마는 6개의 에피소드로 나뉘어 있다. 퍼트리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