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마이리뷰 당선작

8점
수리남 곤충의 변태 - 거리의화가
<수리남 곤충의 변태>
평소 곤충과 친하지도 않고 식물과도 친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은 알고는 있었으나 머릿 속에서 지웠었다. 그러다 어떤 강연을 듣고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의 삶과 작업 세계를 보면서 ‘궁금하다’ 싶었고 그 자리에서 바로 주문해서 집으로 받았던 책이다. 그동안 이런 저런 일들로 읽지 못하다가 이제야 읽게 되었다.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은 예술과 출판을 가업으로 하는 환경에서 자라났는데 아버지는 출판사 주인의 딸이었고 새아버지는 꽃 정물을 그리는 화가였으며 이복 오빠는 동판화 화가였다. 나중에 새아버지의 제자와 결혼을 하는데 남편도 건...

10점
함무라비가 포박당한 지점으로부터 질문 네 개의 거리만큼 - syo
<기억의 몫>
함무라비가 포박당한 지점으로부터 질문 네 개의 거리만큼 0 기원전 18세기, 바빌로니아 왕조의 6대 왕이었던 함무라비는 태양의 신 사마쉬의 뜻을 받아(-ㅆ다고 주장하며) 법전을 하나 만들었는데, ‘눈눈이이’로 유명한 바로 그 함무라비 법전이다. 칼춤이 국민체조고 유혈 낭자가 세계적 트렌드였던 당시 기준으로 보면 내 눈 뽑은 놈이라도 함부로 죽이면 안 되고 눈 뽑기까지는 가능하다-는 식의 아주 온건하고 자애로운 법이었는데, 오늘날에는 와, 눈 뽑혔다고 눈을 뽑냐 잔인하다 그야말로 야만의 법 명불허전 18세ㄱ기- 하는 대접을 받게...

10점
인문학책 추천: 모든 위기는 연결되어 있다 (기후위기, 기후재난) - 피로
<모든 위기는 연결되어 있다>
지구에 사는 인간은, 아니 모든 생명체는 현재 생존에 빨간불이 켜졌다.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가 시작했다. 더운 나라에는 폭설이, 추운 나라에서 폭염이 일어났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선 계절 구분이 희미해졌다. 더운 계절은 폭염이 지속되었고, 추운 계절에는 혹한의 날씨가 지속된다. 기후재난이 시작된 것이다.다들 ‘기후위기’라고 말한다. ‘탄소중립’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말 쉽게 말한다. 쉽게 말한 것 치고는, 이를 이겨낼 해결 방안은 없다. 정확히 말하면 전 인류가 해결 방안을 알고는 있다....

10점
달빛 고래의 노래 - 레삭매냐
<바다를 말하는 하얀 고래>
내가 최애하는 작가 중의 한 명이 루이스 세풀베다 작가가 우리의 곁을 떠난 지가 벌써 5년이 되었다. 다시 코비드19의 위력을 실감한다. 우리가 그런 시절을 지나왔구나 하는 생각 한 조각. 그리고 을사년 들어 처음 산 책이 바로 세풀베다가 들려 주는 달빛 고래의 이야기 <바다를 말하는 하얀 고래>다. 부피는 얼마 되지 않지만, 상당한 울림을 담고 있다. 그리고 작년 말에 세풀베다의 신간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읽은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의 연장선이라고나 할까. 대지의 사람들, 마푸체 사람들의 ...

8점
특별할 것 없는 삶일지라도 - 꼼쥐
<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
다른 작가가 쓴 소설인 줄 알았다. 혹시 번역가가 바뀌었나 해서 신경도 쓰지 않았던 번역가의 이름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달라진 건 없었다. 작가의 이름은 에쿠니 가오리, 번역가는 김난주.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번역을 맡았던 사람은 주로 김난주 또는 신유희 번역가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달라졌다고 느낀 나의 감상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내가 알던 에쿠니 가오리는 간결한 문체와 절제된 감성, 그리고 인간의 욕망에 대한 거침없으면서도 적나라한 묘사, 각이 잡힌 구성 등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작가의 최신작 &l...

10점
[마이리뷰] 아무튼, 술 - 아시마
<아무튼, 술>
비행기는 어떻게 하늘을 나는가 『아무튼, 술』by 김혼비읽은 날 : 2025.1.5.주말에 제주를 다녀오느라 비행기를 탔다. 최초의 동력 비행기가 1903년, 내가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 본 건 그로부터 한세기가 거의 다 지날 무렵인 1998년,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뜬금없이 비행기라는 걸 한번 타 보고 싶다는 이유로 탔다. 서울-부산 간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그렇게 잦지는 않게, 그렇지만 그렇게 드물지도 않게 비행기를 탄다. 그런데 비행기를 탈 때마다 나는 늘, 이 거대한 쇳덩이가 하늘을 난다는 사실이 무슨 마법 같고 놀...

10점
<대멸종의 지구사>: 무덤 위에서 꽃핀 칠전팔기의 생명들에게 - 최영규
<대멸종의 지구사>
대멸종은 요즘 참 매력적인 주제입니다. 상업적으로 어필하기 참 어려운 지질학-거시생물학 분야에서 가장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끌기 때문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 한 단어가 품은 잠재력만으로 먹고 사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겁니다. "제 6의 대멸종" "인류세의 종말" 같은 캐치프레이즈는 수많은 미디어를 통해 홍보되고 있습니다. 종말의 위협이 시각적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분노하는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 단어가 지나치게 남발되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적어도 인류의 이 모든 행위의 결과가 많은 생...

8점
우리가 고아가 아니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 sunrisin
<우리가 고아가 아니었을 때>
우리가 고아가 아니었을 때/조재선 다시문학 2024​이 책을 지하철을 타고 병원에 가면서 읽었다. 2주간의 감기에서 벗어나 외출한 첫날, 막 오후가 된 시각, 열두시 반에서 한시 반, 사람들은 모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고 나 혼자 서 있는 가운데, 혼자 책을 펼쳐들고 읽었다. 어쩌다 빈자리가 나면 올라탄 이들이 잽싸게 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책은 느렸고 내 삶도 느렸다. 가는데 한 시간, 오는데 한 시간 그 시간을 모두 책 읽기에 골몰했다. 건너편에 앉은 할아버지가 물건이 떨어졌다고 주의를 주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10점
[사소한 일]문학이 할 수 있는 최대치 - 다락방
<사소한 일>
그들이 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들은,정찰을 위해 이곳에 머무른다지만 민간인에게도 가차 없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각별히 조심하자고 서로에게 일렀다. 그들의 눈에 띄면 안돼, 우리는 숨어서 은밀히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었다.그 날도 잘 숨었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개가, 우리와 함께 있던 개가 짖었다. 조용히 하라고 우리 모두 일렀지만 그러나 개가 짖었다. 아마도 개는 다른 이의 기척을 들은 것 같았다. 우리는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나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그들이 우리를 발...

그 기사는 그 소녀의 이야기를 안 다루었기 때문에 총체적인 진실에 도달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 P92


8점
식물을 살리려는 노력 - kinye91
<식물 없는 세계에서>
지금 기후 위기가 기후 재앙으로 넘어가고 있다. 해마다 겪게 되는 기후 재앙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지만, 여기에 대한 대응책은 서류에 그치고 말 뿐이다. 그나마 서로 합의된 사항도 정작 지켜야 할 나라들이 지키지 않고 있는 현실이고.처음에는 발전이 덜 된 나라에서 피해가 더 심해지겠지. 그리고 이것이 점점 퍼져나가겠지. 그렇게 되면 지구에 인간을 위한 환경이 파괴되고, 인간은 자신들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이 되겠지. 하긴 누군가는 화성으로 이주하면 된다고 하고 또 어떤 누군가는 바다에 자신의 피난처를 만들면 된다고 하니...같...

10점
더 많이 사랑한다는 것이 의미를 잃을 때 - 잠자냥
<셰리>
그는 ‘셰리Cheri’- 마흔아홉의 레아가 사랑에 빠져버리는 남자, 스물다섯 그의 애칭은 셰리- 이 작품에서는 ‘소중한 아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애지중지하는 사람’,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더 잘 어울린다. 레아가 셰리를 셰리라고 달콤하게 부를 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다른 셰리가 떠오른다. 내 머릿속의 그는 바로 ‘셰리Sherry’ 어처구니없게도 식전주의 대명사 셰리이다. 식사 전 입맛을 돋우기 위해 마시는 술, 셰리- 그런데 묘하게도 그 셰리와 이 셰리가 잘 어울린다. 그러니까 레아의 소중한 아이 셰리Cheri는 그...

10점
[토니 모리슨의 말]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 여기 있습니다 - 단발머리
<토니 모리슨의 말>
토니 모리슨 뽐뿌의 제 1요소는 바로 이 사진. 출처는 수이님. ​​토니 모리슨 뽐뿌의 제2요소는 바로 이 100자평. 출처는 유수님. ​모리슨의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빗발치는 궁금증은 적나라한 응시와 동시에 어떻게 이런 거리를 유지하는지, 에 대한 것이었고 이 책을 읽으면서 일정 부분 해소되었다. 다만 인간적으로 여전히 궁금하다. 극단을 다루면서도 그에 시달리지 않고 의연하게 지켜내는 인간애에 대해서. 내가 오독한 게 아니라면 작가는 그것이야말로 예술의 영역이라 내내 힘주어 말하고 있다. (출처: 유수님 100자평)​​나도 그게 ...

흑인 페미니스트는 스스로를 ‘우머니스트‘라고 불렀습니다. 간극이 있었죠. 둘은 달랐습니다. 역사적으로 흑인 여성은 언제나 남성을 보호했어요. 남자들이 일선에 나가 있었고 죽을 확률이 더 높았거든요. 실제로 저는 이것이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출판계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많은 여성이 대학을 가기 위해 가족을 설득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아들은 당연히 공부를 시켰지만 딸은 공부를 하려면 몹시 애를 써야 했어요. - P167


10점
아름다움은 인생에 주는 의미다 - 바스티안
<자금성의 물건들>
이 책의 후속작인 『자금성의 그림들』은 작년 3월에 읽었는데, 정작 전작인 이 책은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읽지 않고 있었다. 도서관에 신청까지 해놨는데도. 그러다 지난 달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에 다녀오면서 중국어권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복습하고 싶어서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에 관한 책을 읽으려고 했는데 국내서 중에서는 한 권도 없었다. 아쉽지만 대신 예전부터 읽으려고 기억하고 있었던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이 내전을 치르던 시기, 국민당의 수장인 장제스는 대만으로 후퇴하...

8점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고통, 그 여정 속에서 - 카므
<[고화질세트] 동경일일 (총3권/완결)>
자신이 담당한 만화 잡지의 매출이 좋지 않아 폐간을 계기로 책임을 지고 퇴사한 시오자와.만화를 좋아하여 편집자의 일을 시작하였지만, 만화가의 자유를 중시한 나머지 흥행을 고려하지 않아 대중성과는 거리를 먼 잡지를 만들었고, 잡지 폐간을 기점으로 출판사와 방향성의 차이를 느끼고 퇴사하여 만화와 거리를 두려 한 그였지만 결국 그의 인생에서 만화란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퇴직금으로 다시 한번 만화 잡지를 만들고자 하는 이야기.시오자와는 편집자이긴 하지만 그의 캐릭터성은 편집자보다는 만화가와 팬의 입장의 중간에 가까운 느낌을...

10점
노학자가 들려주는 괴테의 지혜 - 피오나
<괴테 할머니의 인생 수업>
독문학자가 되려고 독문학과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외국문학을 했기 때문에 특별한 득이 있었습니다. 혼자서 외국어를 배우느라고 절절맸지만, 그냥 언어를 하나 배운 게 아니고 어느 사이 세계 하나가 제게로 왔더군요. 낯선 세계가 하나 열려왔어요. 엄청난 작가들을 읽게 됐고, 거기서 끝이 아니라 온갖 학계에 이리저리 가봤더니 같은 작가를 공부하고 읽은 사람들은 또 바로 다 친구가 돼서 너무나 좋은 친구들이 세계에 널려 있고요. p.16<시인의 집>,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등의 ...

10점
독서를 바라보다 - 얼룩
<독서의 이름>
#2025 새해 첫 책 새해에 닿아 첫 책이 도착했다. 하얀 표지에 『독서의 이름』이라는 간결하고도 단호한 제목이 정갈하게 박혀있다. 표준국어대사전뿐만 아니라 우리 고전에서 길어올린 독서의 이름들이 125가지 담겨있는 책. 독서라는 단어 외에 어떤 말로 글 읽기를 말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책 속에서 다양한 이름과 이야기를 만나며 내 곁의 독서를 다시 보게 된다. 내게 독서는 무엇인가, 하고. 한겨울 한기 서린 창을 바라보며 따뜻한 차를 곁에 두고 읽는 책은 삶을 너그럽게 바라보게 하고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내어준다. 한때 독서는 ...

10점
예언자의 노래 - 꼬마요정
<예언자의 노래>
이 이야기는 이야기가 아니다. 예언자의 경고이자 어딘가에서는 실현되었고 어딘가에서는 일어날 뻔한 일이다. 우리는 독재정권 때 이미 겪었고, 또다시 겪을 뻔한 일이다. 시리아 내전으로 시리아 인들이 겪은 일이고,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에서 동호가 겪은 일이고, 이 책의 베일리가 겪은 일이다. 그들은 어렸고, 단지 누군가를 돕고자 했을 뿐인데 어른들이 잔인하게 살해했다.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다고 사람들을 잡아간다. 그들에게 적용되는 건 정권이 정한 법 뿐이다. 구인절차도, 재판도 없다. 사복경찰은 그저 지목하고 데려가...

10점
진짜 하산! - 반유행열반인
<최낙언의 커피 공부>
-20250112 최낙언. 식품, 향료 전문가여서 아는 사람만 아는, 그래도 제법 유명하신 것 같은 저자이지만 알라딘 마니아 목록에는 아직 없는 최낙언 선생님… 알라딘에 최낙언의 매니아가 추가된다면 (아마 안 될 듯... 해당 도서 독후감 올리는 사람이 여럿이어야 가능하니...) 내가 1위 안 하면 진짜 억울할 수준이다. 2012년부터 13년 읽었으면 이제 진짜 됐어 그만 봐 임마…(괄호 안은 읽은 년도) 1.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2012) 2.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2013) 3. 맛의 원리 (2015...

10점
별과 별이 맞닥뜨릴 때 - moonbirdb95
<별자리들>
1. 이 책에 대한 얘기를 하기 전에 먼저 『빛, 행성, 사람들』의 추천사에 대해 적어두고 싶다. 그 책은 물론 책 자체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이주원 작가의 추천사가 있어 조금 더 반짝였다(고 나는 느꼈다). 그러니 내가 반했던 글을 여기 적어두고."때론 수백 광년 떨어진 별보다 내 옆에 앉아 있는 이를 이해하는 것이 휠씬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타인뿐인가. 내 마음의 소리는 세상 속 잡음에 섞여 희미해진지 오래다. 나를 비롯하여 누군가를 알아가는 일은 광활한 우주속에서 작은 신호를 찾아 헤매는 천문학자의 일과 닮아 있다. 긴...

8점
열려라, 과학상자! - cyrus
<책을 쓰는 과학자들>
4점 ★★★★ A-과학상자는 공예를 좋아하는 어린이가 받고 싶은 선물이다. ‘열려라, 과학 나라!’ 장난감을 만들고 싶은 어린 마음이 주문을 외치자, 과학상자가 열린다. 상자 속에 여러 개의 부품이 있다. 어린이는 고사리손으로 부품들을 만지작거리면서 자신만의 장난감을 만든다. 과학상자에 들어간 어린이가 장난감을 만들면, 과학상자는 발명가와 공학자를 만든다. 일 년 중 과학상자가 제일 많이 열리는 달은 과학의 날이 있는 4월이다. 어린 과학자와 발명가들을 만날 때마다 활짝 열어준 과학상자가 43년 만에 닫는다. 과학상자를 잠그는 ...

10점
츠바이크를 통해 다시 배우는 삶의 진심 - 페넬로페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 책을 읽다가 뭔가 이상하고 믿기지 않아 책의 처음부분으로 다시 돌아갔다. 여기 실려 있는 아홉 편의 글이 츠바이크가 ‘생애 마지막 2년 동안 쓴 기록’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작가 소개에는 분명 그렇게 적혀있었다. 알려진 대로 유대인인 슈테판 츠바이크는 나치를 피해 브라질까지 갔었지만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할 사람이 어떻게 이런 희망적이고도 따뜻한 내용의 글을 쓸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경쾌하기까지 하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이 특별한 사람을 세상 끝으로 내몬 집단적이고도...

8점
<나의 친구들>참으로 묘한 캐릭터라... - 은하수
<나의 친구들>
제목으로만 보면 내 친구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건가 생각을 하게 되지만 아니 아니다. 전쟁에 나갔다가 팔을 다쳐 일을 못하고 상이군인 연금으로 겨우겨우 생활하는 외로운 청년 빅토르 바통은 진실한 친구를 만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들은 번번이 어떤 이유로 인해 실패하거나 어긋난다. 그런데 또 이상한 건 정말 이 사람이 진정 친구를 사귀고 싶어하는 게 맞나 의심하게 되는 장면들이 있다는 거다. 좀 더 적극적으로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을 해야 친구를 사귈 수 있을텐데 다시 만나자고 하고선 다시 만나러 ...

10점
생존을 위해 우린 무얼 포기할 수 있나? - 필리아
<부적격자의 차트>
“그 눈빛은 이미 자기의 삶을 장악한 자의 것이었거든.” - 116쪽에서강렬한 이야기다. 경계를 두르고 그 내부에 폐쇄적 집단을 형성하는 인간 무리들의 삶의 형식과 내용을 통해, 그들의 언어와 행동 양태를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바라보는 것은 야릇한 흥분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의 힘, 상상력의 힘이란 어쩌면 인류가 자신들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위대한 방편인지도 모르겠다. “2692년 8월 23일, 생애한도가 연장될 수 있다는 소문이 병원을 도는 중이었다.” 소설의 첫 문장이다. 그리곤 “이번 오류 사건...

8점
난 우울한 은둔자 - 희선
<명랑한 은둔자>
책 제목 《명랑한 은둔자》는 어떤 걸까. 캐럴라인 냅이 명랑한 은둔자라면 난 우울한 은둔자다. 명랑한 구석은 하나도 없다. 처음부터 어두운 말을 하다니. 내 우울이 어디에서 오는 건지 나도 잘 모른다. 여러 가지겠지.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하지만, 잘 안 된다. 그냥 살아야지 어쩌겠나. 나도 꽤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다. 어릴 때 학교에는 어떻게 다녔는지 모르겠다. 지금 같은 때 학교를 다녀야 했다면 무척 괴로웠을 것 같다. 사람은 뭔가에 적응하기는 하지만, 그때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난 그게 참 싫었다. 캐럴라인 냅은 아버지가...

8점
다시 안 읽으려고 쓰는 독후감 - 유수
<면도날>
여기 래리가 있다. 이름난 소설가이자 이 책의 서술자인 서머싯 몸은 시카고에 들렀다가 그를 알게 된다. 사교계 인사 엘리엇의 초대로 그 누이의 집에 가게 되고 거기서 가족과 지인 몇몇을 소개 받는다. 엘리엇의 조카인 이사벨의 약혼자인 청년이 바로 래리, 로렌스 대럴이다. 첫만남에서 래리에게는 별다른 존재감도 없었다. 그랬던 그가 몸의 눈에 특별하게 들어오기 시작한 건 도서관에서 혼자 책을 보는 그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후부터다. 잠깐의 대화와 하루종일 도서관에 처박힌 모습에서 그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인상을 받고 지켜보기 ...

8점
한국판 국화와 칼 - 닷슈
<한국인의 탄생>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자신이 속한 자연환경에 맞게 진화한다. 하지만 늘 성공적이진 않다. 진화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고 우연적이다. 그래서 그 자연환경에 맞게 신체와 심리가 진화하지 못하거나 적응할 시간이 불충분하다면 멸종하거나 아니면 그 지역을 신속히 떠나야 한다. 하지만 인간에겐 다른 방법이 있다. 바로 문화다. 인간은 자신이 진화과정에서 얻게 된 높은 지능과 사회성과 언어, 손기술, 모방 등의 능력으로 인해 대규모로 자연을 자신에게 맞게 개조하거나 여기에 적응할 도구로서 의식주를 개발하게 되었다. 문화의 건설 과정은 ...

6점
우리가 끝이야 - bookholic
<우리가 끝이야>
사랑하는 딸과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가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읽기도 한단다. 그런 소설 중에 로맨스 소설이 제격이기도 하지. 그래서중년의 아재인 아빠도 가끔 그런 로맨스 소설을 읽곤 한단다. 비록 공감이 안 가는 부분이 있어도 가볍게로맨스 영화 한 편을 본다는 생각으로 읽곤 하지. 그러고 보니, 아빠가젊었을 때 로맨틱 영화들을 쫌 본 것 같구나. 아빠의 친구들이 한 소리 할 만큼 말이야. ㅎㅎ 그런 취향이 여전히 아빠의 핏속에 흐르고 있는 게 아닐까 싶구나. 오늘 이야기할 소설은 콜린 후버라는사람이 쓴 <우리가 ...

8점
[마이리뷰] 젊은 베르터의 고뇌 - 물감
<젊은 베르터의 고뇌>
의외로 고전문학은 20세기보다 19세기 이전의 문학들이 더 쉽게 읽힌다. 적어도 내게는 20세기의 문학들이 더 심오하고 복잡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오래된 작품일수록 버거울 거라는 예상이 깨질 때마다, 슬슬 세월을 더 거슬러 올라가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일부러 피했던 괴테를 이제서야 만났다. 무려 1749년생이라는데 괜스레 예의를 갖춰야 할 것만 같았다는. <젊은 베르터의 고뇌>는 사랑에 빠진 남자의 절규를 담아낸, 다소 평범하기 그지없는 짝사랑 이야기에 불과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인지 썩 재미있게 풀...

10점
좋은 글로 보답하고 싶은 - 자목련
<생활체육과 시>
좋은 책엔 좋은 글로 보답하고 싶다. 불가능하겠지만. 그러니까 이 말은 김소연 시인의 『생활체육과 시』가 좋은 책이라는 말이다. 얇고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책. 그 안에서 펼쳐지는 글은 쉽고 정겹다. 그러나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지 않으며 간결하고 힘 있다. 모두가 바랐을(어쩌면 일부는 바라지 않았을) 어제의 일과 앞으로 기대하는 일들을 생각하며 이런 글을 다시 읽는다. 우리가 배우고 공부했던 것들, 그것을 말하고 쓰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혐오의 말들에 대하여 글로 써보기로 했지만,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이런 주제로 집필된 책들...

10점
정정하는 힘 - 쎄인트saint
<정정하는 힘>
〈 Book Review 〉 《 정정하는 힘 》 _아즈마 히로키 / 메디치미디어 정정(訂正) : 사전적 풀이로는 ‘글자나 글 따위의 잘못을 고쳐서 바로잡음’으로 되어있지만, 이 책에선 ‘생각이나 마음의 방향을 고쳐서 바로잡음’으로 이해한다. 무엇을 어떻게 정정한다는 것인가? 이 책의 저자 아즈마 히로키는 일본의 사상가이자 비평가로 소개된다. 서브컬처에 관심 많은 대중문화 연구자이자 소설가이기도 하다. 논문, 소설, 인문서 등 여러 저서를 발표했다. 근 20년 동안 ‘일본을 대표하는 철학자’로 평가받는...

10점
고요한 읽기: 우주를 품은 내면의 동굴 - 맥락없는데이터
<고요한 읽기>
이승우 작가와의 첫 만남은 『고요한 읽기』를 통해 이루어졌다. 에세이라서 가벼운 마음으로 펼쳐든 책 속에는 단순한 감상의 나열을 넘어서는 깊은 통찰과 치열한 사유의 흔적이 담겨 있었다. 특히, 오르한 파묵이 "사무원처럼" 일한다고 비유하며 소설가의 역할을 설명한 부분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시인이 신의 계시를 받는 자라면, 소설가는 신의 의도를 스스로 해독하며 끊임없이 애쓴다는 파묵의 관점은 이승우의 글쓰기 태도와 맞닿아 있다. 그는 언어의 미로 속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며, 독자에게 피상적인 독서를 넘어 진정한 내면 탐구를...

8점
기묘한 골동품 서점 - 올리버 다크셔 - Breeze
<기묘한 골동품 서점>
#기묘한골동품서점 #올리버다크셔 #RHK 런던의 새크빌스트리트에는 1761년에 문을 연 소서런 서점이 있다. 소서런은 중고 서적 및 인쇄물을 취급한다. 고서점의 수습 직원으로 근무하게 된 올리버 다크셔의 책과 서점, 책 판매자로서 성장하는 에세이다. 일자리 면접을 위해 찾은 고서점의 문턱을 밟는 순간 책의 마력에 빠지고 만다. 그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현재에도 여전히 건재한 소서런 서점에서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고서적을 바라보는 감정과 누군가 내어놓은 책을 구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

10점
보편적인 노래를 너에게 주고 싶어 - 교당산
<세포의 노래>
영국의 문학자이자 칼럼니스트 존 서덜랜드는 그의 책 <문학의 역사(소소의책, 2023)>에서 “우리는 문학에 관한 한 치즈 속의 구더기들” 이라는 인상적인 구절을 남긴다. 이 구절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문학의 세계가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문학을 사랑하고 그를 읽는 독자들은 마치 게걸스럽게 치즈를 먹어대는 구더기와 같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또한 구더기가 치즈를 먹으며 만들어내는 치즈 터널의 모습과 경로가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문학을 읽는 것 역시 정해진 하나의 모습과 경로가 있는 것 없이 모두 각자만의 문학 읽기...

10점
죽음의 침상 옆의 조촐한 잔치 - Falstaff
<브뤼셀의 한 가족>
. 1950년에 태어난 범띠 여사님 샹탈 아케르만은 소설가가 아니라 평생을 유명한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뉴욕시립대학 영화과 교수로 지냈다. 47년간 40편 이상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남겼다. ‘남겼다’라고 쓰는 것은 아케르만이 가지고 있다가 스르르 없어진 필름도 상당 수 있다는 의미다. 보관하는 방법이 필름 원본을 둥근 양철통에 담아 창고에 쌓아두는 것이었던 시절이라 자기 공간이 없는 유명하지 않은 감독한테 이런 일은 그리 드물지 않았으리라. 문학작품으로 분류할 수 있는 두 권의 책을 출판했으며 이 가운데 첫째가 1998년,...

10점
기록이라는 세계 - 구름모모
<기록이라는 세계>
기록하는 부지런함에는 성실함도 필요조건이 된다. 무용해지지 않아야 하는 이유들까지도 필요해지면서 이 책이 던지는 기록이라는 주제가 흥미를 유발하면서 저자가 기록한 필체와 내용들에서 샘솟는 희망들을 마주 볼 수 있었던 내용들이 인상적이다. ​​기록은 누군가의 삶을 무심하게 지나치지 않는다. 평이한 일상이지만 그 속에 존재하고 끈끈하게 유영하는 용기와 감정들을 주워 담게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그러한 진짜가 되는 보물들을 수집하게 된다. 하나하나 모아서 가득해진 보물주머니에서 서로 닮은 것들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기록은 유용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준 건 기록 - P7


6점
과거의 총명이 그리운 노년이로다 - 구단씨
<그때 뽑은 흰머리 지금 아쉬워>
1940년대 1950년대에 태어나서 2025년을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그 시대에 익숙한 문화에 몸이 적응했고, 그렇게 살아오는 과정이 당연했겠지. 시간이 흐르면서 나이는 먹어가고, 그만큼 세상은 변화했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는 나이 먹어가는 속도와 비례하듯, 점점 더 빨라지는 듯하다. 나이를 먹어가는 만큼 저절로 알아지는 삶의 경험과 의미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기 어려운 문화를 마주해야 했다. 현금이나 토큰, 승차권으로 타고 다녔던 버스는 이제 카드 한 장의 알림음으로 요금을 대신한다. 내가 버스 토큰 세...

8점
낭만주의적 역사 소설 『최후의 만찬』이 동경한 절대성 - 전주
<최후의 만찬>
1.우연이었다. 소설 『최후의 만찬』을 읽는 중에 ‘낭만주의’를 접한 건 지극히 우연이었다. 두 권 이상의 책을 동시에 띄엄띄엄 읽어 가는 버릇이 내게 준 선물이었다. 신문에 실린 어떤 칼럼을 읽다가 불현듯 ‘낭만주의가 뭐지?’라는 오래된 질문이 떠올랐고, 인터넷 검색에 만족할 수 없어서 『우리는 왜 지금 낭만주의를 이야기하는가』라는 책을 구매했다. 소설보다 더 몰입해서 읽었다. 그제야 겨우 소설 『최후의 만찬』을 제대로 안을 수 있었다. 감성, 상상, 환상, 주관, 동경, 죽음 등의 단어를 열쇠말로 삼아 소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0점
삶을 사랑하자 <삶의 한가운데> - 새파랑
<삶의 한가운데>
N25006˝당신은 사는 게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나만큼 잘 알고 있어요. 우리는 생의 의미를 알려고 했어요. 그래서는 안 되는 거죠. 만약 의미를 묻게 되면 그 의미는 결코 체험할 수 없게 돼요. 의미에 대해 묻지 않는 자만이 그 의미가 뭔지 알아요.˝다 읽고 나서 이 책의 제목에 대해 생각했었다. 왜 책 제목이 <삶의 한가운데> 일까?전후 독일의 가장 뛰어난 작가로 평가받는 ‘루이제 린저‘의 작품이자 세계 젊은이들에게 ‘니나‘신드롬을 일으킨 작품이라는 <삶의 한가운데>는 두명의 주인공이 등장 한다. 의사 ...

10점
세이건이라는 지지 않는 별을, 시적 과학서를 꿈꾸듯 읽다 - mazinga
<코스모스>
『코스모스』는 지루할 만큼 긴 시간 나의 책장에 꽂혀있던 묵직한 붙박이별이었다. 오다 가다 눈에 비치다보니 어느 순간 무덤덤한 배경이 되어버렸다. 가끔 펄서처럼 깜빡였다. 등대처럼, 반딧불이처럼 빛을 내기도 했다. 못 본 듯 스쳐지나가기를 상당기간 지속하다 몇 달 전 중고서점에 가서 『코스모스』를 구입했다. 읽어야 되는 책이잖아, 최소한 코스모스는 읽어야하지 않겠니. 순간 정확히 간파할 수 없는 모호한 기분은 들었다. 기시감이랄까. 그렇게 책은 두 권이 되었고 2025년 새해 벽두, 그러니까 1월 2일부터 함께 읽기를 시작하였고 1...

10점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김민섭 - 돼쥐보스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세상은 점점 안 좋게 변해가고 있어서 실망과 분노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요즘이다. 어차피 망할 거라는데 조금 괜찮은 쪽으로 망할 수는 없을까. 이것 또한 이상한 바람이다. 망해버리는데 괜찮고 안 괜찮은 게 어디 있다고. 그래도 이왕 망할 거 덜 아프고 덜 상처받으면서 망하고 싶다. 어제도 많이 먹어 버려서 망했다는. 오늘은 절식을 해야지 하는 마음. 이렇게 다짐해도 다시 먹을 거여서 예고된 망함.세상을 구하는데 필요한 건 세 가지. 유머와 귀여움 그리고 다정함. 이것들만 있으면 지구 멸망의 시간을 늦출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