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ying in H Mart

Life is unfair, andsometimes it helps to irrationally blame someone for it.
Sometimes my grief feels as though I‘ve been left alone in a roomwith no doors. - P6

I‘m searching for memo-ries. I‘m collecting the evidence that the Korean half of my identity didn‘t die when they did.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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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전부는 아니지만) 진실의 왜곡은, 어떤(전부는 아니지만) 광기는, 어떤(전부는 아니지만) 불건강은, 어떤(전부는 아니지만) 삶의 부정은 진실을 주고, 제정신을 부여하고,
건강을 증진하고, 생기를 드높인다. - P86

작가의 노트는 작가가 작가로서 정체성을 한 도막한 도막 쌓아 올리는 장의 역할을 한다. 대개 작가의 노트에는 의지에 관한 진술이 가득 담기기 마련이다. 쓰려는 의지, 사랑하려는 의지, 사랑을 포기하려는 의지, 계속 살아가려는 의지 등. 이노트는 작가가 자신을 영웅으로 느끼는 공간이고 그 안에서 작가는 인식하고 고통받고 몸부림치는 인간으로만 존재한다. 그렇기에 카뮈의 노트에서는 개인적 발언도 본질적으로는 비개인적이 - P97

며, 일상 속 사건이나 사람들이 철저히 배제되는 것이다. 카뮈는자신을 고독한 인물로서만, 즉 고독한 독자, 관찰자, 태양과 바다숭배자, 세상의 산책자로만 그린다. 노트에서 카뮈는 전적으로 작가로서 존재한다. 고독은 현대 작가의 의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메타포이므로 파베세처럼 자신을 감정적 부적응자로 선언한 사람뿐 아니라 카뮈처럼 사교성 있고 사회적 의식이 있는 사람에게도고독이 필요하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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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는 사람의 본보기로서의 에술가

일기는 작가의 영혼의 작업장을 보여준다. 우리는 왜 작가의 영혼에 관심을 갖나? 작가 개인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심리에 대한 오늘날의 끝없는 집착 때문이다. 심리에 대한 집착은사도 바울과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시작한 기독교 성찰 전통의 유산이 현대에 강력하게 발현된 것으로, 자아의 발견을 고통받는 자아의 발견과 동일시한다. 현대적 인식에서는 예술가가 (성인 대신)수난받는 자의 본보기다. 또 예술가 중에서도 특히 작가, 언어로작업하는 사람이 고통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된다. - P74

오늘날 우리는 육체의 삶을 갈망하고 유대교와 기독교의 금욕적 전통을 거부하지만 여전히 종교적 전통이 우리에게 부여한 전반적 감성에 제약을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불평한다. 우리는 체념하고 거리를 둔다. 다시 불평한다. 파베세는 엄격한 은둔과 고독의 삶을 살아갈 힘을 달라고 끊임없이 기도하는데("유일한 영웅적 원칙은 혼자 있고, 혼자 있고, 혼자 있는 것"), 이 기도는 자신의 무감함에 대해 되풀이되는 불평과 전적으로 같은 것이다(예를 들어 가장 친한 친구이자 저명한 교수이며 레지스탕스 지도자였던 레오네 긴츠부르그가 1940년 파시스트 정권의 고문으로 사망했을 때 아무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언급한 것을 보라). 바로 이 자리에 현대의사랑 숭배가 들어온다. 이것을 통해 얼마나 강한 감정을 가질 수있는지 시험하고 결국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된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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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양미술 순례 창비교양문고 20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 창비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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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부모를 잇따라 잃고 누이와 함께 바람도 쐴 겸 1983년 8월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떠나기 5개월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어머니도 꼭 같은 병으로 3년 전에 돌아가셨다니 두 남매 모두 그 슬픔이 컸을 것이다. 저자는 벨기에의 브뤼주에서 헤랄드 다비드의 ‘캄비세스왕의 재판‘이라는 그림을 보고 꽂힌다.
캄비세스왕은 기원전 6세기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군주인데 그림 속 주인공은 판사로 가죽이 벗겨지는 끔찍한 형벌을 받고 사망했다. 저자도 화가의 이름이나 이력이 생소했다고 하는데 나 또한 그렇다. 그림을 보면 너무 사실적으로 그려져 사실 계속 보고 있기가 어려웠다(이런 그림이 또 있는데 이는 뒤에 언급하겠다). 아무튼 헤랄드 다비드가 활동하던 당시 벨기에의 브뤼주는 세심하게 그려진 정물화가 유행이었다. 정물화는 색감이 화사하니 보고 있으면 기분 전환이 되어서일까 어디에 놓고 보기에 안성맞춤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당시 귀족들에게 정물화는 인기였다고.
저자는 이 그림을 보고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렸다고 한다. 1920년대 아버지(저자에게는 할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 저자의 아버지는 고국의 땅에 정착하지 못하고 그렇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좀 더 좋은 시절에 태어났다면 어떠했겠는가 그런 착잡함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내맘대로 되는게 아니지만 그럼에도 안타까운 그런 감정들이 내게도 와 닿았다.

저자의 두 형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는 바가 있었다(당시는 한 개인을 정치적 이슈로 몰아가 파멸로 이끌기에 넘치는 흑색 시절이었다. 저자의 두 형은 그렇게 감옥에 몇 년을 가 있게 되었다. 이 책에도 여러 번 형에 대한 상황과 저자의 그에 대한 생각과 감정이 실려 있다).

저자는 여행 전 루브르 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보아야만 한다고 점찍어두고 있었다. 작품을 보고 싶어했던 형을 대신해 저자가 직접 보고 그 감상을 전하기로 한 것이다.
밧줄로 묶여 있는 노예는 상체와 하체를 서로 반대 방향으로 뒤틀어 저항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눈동자는 볼 수 없지만 시선은 저항하는 눈빛임을 느끼게 한다. 이 조각상은 ‘반항하는 노예‘라는 제목으로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다. 이를 보면서 저자는 형의 상황을 자연스레 떠올릴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일부러 보러 가지 않았더라도, 우연히 스쳐 가다가 봤을지라도 상황상 형이 생각났을 것이다. 조각상을 감상하고 흔들리는 마음으로 써 내려갔을 그림엽서 속 편지의 내용과 그걸 받았을 형의 마음을 생각하니 나도 좀 울컥했다.

형에 대한 이야기는 고흐의 ‘거친 하늘과 밭‘ 그림을 보면서도 나온다. 고흐는 알려져있듯 테오라는 동생이 조력자였는데 예술가로서의 자존심, 자부심과 생활 사이에서 그는 여러 번 번뇌했다.
내 생활을 뿌리가 뽑히고 내 걸음걸이도 휘청휘청한다. 나는 내가 너희들의 저주스러운 짐짝이 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전적으로 그렇진 않을지 몰라도 어쨌든-염려하게 되었다. - P60
형의 존재가 단순히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좀더 근원적인 의미에서 ‘저주스러운 짐짝‘이 아닐 리 없다. 현세적인 가치관에 대한 순수한 저항을 관철하기 위해서도 의식주 따위 현세적인 뒷받침은 필요하다. (고흐의 경우는 화구까지도. 그것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이 단순한 모순이야말로 옛날옛적부터 창조자·구도자·혁명가를 괴롭혀왔다. ... 창조자·구도자·혁명가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들의 이해자들이 그 채찍의 아픔을 참고 견뎌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짐짝‘인 것이다. - P69
예술가라고 해도 생활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먹고 살지 못한다면 생계를 어떻게 유지해나갈 것인가. 그럼에도 대중에게 먹히고 팔릴 그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할 때 고뇌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테오는 고흐를 뒷바라지하면서 형이 잘되기를 바라면서도 어쩔 때는 힘에 부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처럼 살아 있는 생애 고흐를 괴롭힌 것은 생활 문제였다. 저자도 형의 처지와 상황이 안타까우면서도 그의 존재가 때로는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싶다.

진품을 보지 않으면 그 훌륭함과 기막힘을 알 수 없는 그림이 있다. 모름지기 명작이라는 것이 다 그렇다 할 수 있겠지만 「게르니까」야말로 바로 그것이다. 도판으로 보면 「게르니까」에서 삐까쏘가 채택한 표현의 참신성이라든가 기발함 따위는 느낄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슬픔의 깊이, 분노의 격렬함 같은 것은 알기 어렵다. 바로 그와 같은 것들을 표현하기 위하여 고심을 거듭한 끝에 이러한 참신성이 산출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필연성을 깨달을 수는 없다. ...
일본에는 전쟁에 협력한 그림은 있어도 「게르니까」에 비길 만한 것은 없다. 전쟁 찬미는 더 말할 것도 없고, 한다하는 명인대가들이 전쟁에 협력한 그림을 그린 그 자체를 ‘없었던 일‘처럼 괄호 속에 묶어넣어둔 채 능청거리고 있는 퇴영적 정신에서는 「게르니까」가 태어나지 못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 P88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담은 게르니카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좋았다. 이는 게르니카를 언급하기 전에 일본 화가인 코이소 료오헤이가 그린 그림 ‘낭자관 행군‘을 언급함으로써 대비 구도를 만든 것이다(그의 그림은 전쟁이 아니라 어느 사막을 군인들이 지나가다 잠시 쉬고 있는 풍경화 느낌을 받는다). 일본이 군국주의를 향해 나아가던 때 당시 화가들은 전쟁을 미화하거나 선전하고 찬양하는 그림은 그렸어도 전쟁의 참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 그림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피카소의 게르니카에 그림 요소들을 보면 전쟁이 얼마나 끔찍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아우성치고 뒤틀린, 몸부림치는 몸들을 말이다. 피카소는 한국전쟁 시기 학살을 배경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이처럼 전쟁은 예술을 위한 하나의 표현적 배경이 된다. 예술이 선전의 도구로 이용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단번에 대중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가 동조하게 만든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화가, 작품들이 많다. 그중 레온 보나라는 화가가 있다.

일반적으로 19세기 프랑스 미술사는, 들라크루아, 꾸르베, 밀레, 도미에, 마네, 모네 나아가서 고갱이나 고흐 같은 선구적 반역자들과, ‘쌀롱‘을 근거로 하는 권위주의적이고 공식적인 아카데미즘 화가들, 곧 뽕삐에들과의 투쟁의 역사로 이해된다.
보나는 오로지 그러한 뽕삐에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말하자면 미술사상의 적방인 것이다. (이렇게) 보나가 살았던 19세기 후반, 보나는 빛나는 승자의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1세기가 지난 오늘에 와서는 완전히 미술사상의 패자 무리 속에 처박혀버렸다. 비정하다고 할 만큼의 콘트라스트이다. - P119, P122

레온 보나는 처음에는 지지부진했지만 초상화가로 이름을 알린 후에는 계속 승승장구했다고 한다. 당시로 말하면 프랑스 미술사에서 주류 화가계에 속했다고 할 수 있다. ‘화가 누이의 초상‘ 그림을 보면 그럴 만도 하겠다 싶다. 그러나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 고흐나 마네, 밀레, 고갱 등의 이름과 그들의 그림은 알려져 있지만 레온 보나(와 그 그림)는 거의 알려지지 못한 것 같다. 만약 내가 이 책을 안 읽었으면 그 이름도, 그림도 보지 못했을 것 같다. 하긴 고흐도 생전에 자신의 그림이 이리 인기 있게 될 줄 몰랐을테니 생각해보면 놀랍다.

이제 앞에서 잠시 언급했던 그림을 마지막으로 소개할 차례다.

이 치졸하고 짝이 없는 무명의 그림장이는 ‘죽음을 생각하라‘는 외침 속에서, 그의 시대의 요구에 미련하게 충실한 응답을 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 졸렬함으로 인하여 진실을 나타낼 수 있는, 으스스하고 더러운 한 폭의 그림을 남긴 것이다. 선남선녀들은 이 그림 앞에 망연자실,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공포에 압도당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 P194

제목만 ‘죽은 연인들‘로 남아 있는 이 그림은 그린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모양이다(찾아보니 15세기 독일의 어느 고딕 화가가 그렸을 거라고 한다). 그런데 보고 있으면 기괴하기도 하기도 으스하기도 하고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인다. 만약 내가 관 속에 묻힌다면 저런 모습이려나 그런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다. 사람은 죽으면 시체가 되어 썩고 부패한다. 혼이 있다고는 하지만 남아 있는 것은 육신의 모습 뿐이니 흙이 되기 전까지는 적나라한 과정이 진행이 될 것이다. 마치 그 과정의 어느 한 순간을 그림으로 포착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저자의 대표작 중 하나임에도 이제야 읽게 되었으니 너무 늦은 셈이다. 눈에 띄는 것은 그림이나 화가의 원문을 발음이 나는 대로 한글로 표현했다는 점(미껠란젤로, 삐까쏘, 게르니까 등)인데 이것이 좀 어색한 독자가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자는 정착자의 시선이 아니다. 경계인이자 이방인인 저자의 시선이 여행자의 위치와 오버랩된다고 느꼈다. 여행 일기이자 자신(과 주변)의 처지와 상황에 대한 읆조림, 그림과 절묘하게 섞이는 설명이 참 인상적이었다.

청한 하늘이 금세 먹구름에 뒤덮이듯이, 하나의 희망 뒤엔 금세 새로운 불안이 밀려든다. 역사는 단선적으로 나아가지 않는 법. 세계를 전체적으로 본다면 좋은 변화가 많이 있었다고는 하기 어려우며, 가까운 미래가 희망에 차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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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 관하여 수전 손택 더 텍스트
수전 손택 지음, 김하현 옮김 / 윌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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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전이었나 정수리에 흰머리를 처음 발견하고 순간 철렁했던 기억이 난다. 몇 년전만 해도 동안이라는 소리를 들었었는데 이제는 웃으면 눈가에 주름이 진하게 잡히고 팔자 주름은 말할 것도 없게 되었다. 조금만 무리하면 ‘아이고야...‘ 하는 소리가 나오니 나이듦에 대한 화두는 이제 자연스레 피부로 와닿는 주제가 되었다.

이 책은 손택이 여성에 관해 언급한 에세이들을 묶은 것이다(일부 벗어난 글들이 있는 것 같지만).
신체적 노화는 성별의 구분 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유독 여성에게만은 외모 지적이 뒤따르는 듯하다. 그러고 보면 여성은 나이가 어리든 들든 왜 하나같이 외모에 대한 언급이 끊이지 않는지.

우리가 물려받은 아름다움 개념은 남성이 발명한 것이며 (더 우월하고 심오한 자신들의 가치를 지탱하기 위해) 지금도 거의 남성의 손에 관리되고 있다. 남성은 이 체제에서 용의주도하게 자신을 배제한다.

이 문장은 지금도 유효하다. 아름다움이라는 기준이 외적인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건만 나도 모르게 그 기준에 동조하여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여자다움‘이라는 기준도 그렇다. 여성은 반드시 이래야 하는 기준이 나를 오래도록 괴롭혔었다.
어딜 가도 변명을 해야 하는 일이 잦았다. ˝남자인가(요)?˝ 질문을 받았던 적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답변을 하면서도 ‘왜 내가 이런 변명을 해야 하는 거지‘ 화가 나는 것이다. 여성이면 화장을 하고 치마를 입어야 하며 상냥해야 해야 한다 등등등. 돌이켜보면 부모님, 특히 어머니는 내게 여자다움을 강요하신 적이 많았던 것 같다. 너는 너무 딱딱하고 섬세하지 않다. 나긋나긋하게 굴어라 등등... 어머니의 그 지시에 오히려 반발심이 생겨 반대로 행동했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사실은 내가 이렇게 오래도록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결혼을 한다고 해서 일을 그만두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어떤 것을 하더라도 내가 스스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왔다. 어차피 인간은 어떤 순간이 되면 혼자일 수밖에 없는데 그때 누구에게 의지해야할 생각을 해선 곤란하니까. 물론 여성이 선택할 직업에 대한 고정 관념이 존재하고 여성의 직업적 능력에 대하여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은 여전하다. 이는 제도적 시스템이 동반되어야 하겠지만 그러기 위해서 여성들은 더 적극적으로 사회에 진출하여 나가서 자기 주장을 할 필요가 있다.

여성은 그저 친절한 것이 아니라 현명해지기를 염원할 수 있다. 그저 쓸모 있는 것이 아니라 유능해지기를, 그저 우아한 것이 아니라 강해지기를 원할 수 있다. 그저 남자와 자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야심을 품을 수 있다. 여성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이 들며 이 사회의 나이듦의 이중 잣대에서 비롯된 통념에 적극적으로 불복하고 저항할 수 있다.

더 많은 직업의 기회를 열어젖히고 어린 자녀를 맡길 무료 보육시설을 세움으로써 돈 벌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충분하지 않다. 일은 한낱 선택지이거나, 가정주부와 어머니라는 더욱 흔한 (그리고 규범적인) ‘커리어‘의 대안이어서는 안 된다. 대다수 여성이 남성과 마찬가지로 일하고,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반드시 요구되어야 한다. 일하지 않으면 여성은 남성에게 의존하는 고리를 절대 끊을 수 없다.

앞선 이런 글들도 좋았지만 나는 추가적으로 특히나 아래와 같은 글들이 좋았다.

우리가 역사의 연속체 위에서 자신을 인식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해요. 이때 우리 뒤에 놓인 과거는 무한히 두텁고 현재는 면도날처럼 얇습니다. 미래는, 음 문제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시간을 과거와 현재, 미래로 나눈다고 한다면, 마치 세 부분이 현실에서 동등하게 나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과거가 셋 중 가장 실질적이에요. 미래는 어쩔 수 없이 상실의 축적이 되고, 우리는 모두 평생 죽어가고 있어요.

과거에 ‘해석‘이라는 공간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과거의 나는 글이든 사진이든 남아 있는 기록을 통해서 보관되어 들여다볼 수 있기에 인식의 매개체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에 반해 현재와 미래의 나는 인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당장의 현실을 파악하고 미래가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물론 종착지는 죽음이지만). 손택이 과거를 실질적이라고 말한 이유는 그런 측면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역사에 흥미를 느끼는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제 생각에, 옹호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지성은 비판적이고 변증법적이며 회의적이고 단순화를 거부하는 지성이에요. 갈등을 완벽히 해결하려 하는(즉 갈등을 진압하려 하는) 지성, 조종을 합리화하는 지성(물론 공상과학 소설의 주요 전통에 계속 출몰하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속 대심문관의 훌륭한 주장처럼, 그 명분은 다른 사람들의 이익입니다)은 내가 생각하는 규범적 지성 개념이 아니에요.

손택이 말하는 지성의 개념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진정한 지성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일방적으로 옹호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질문하고 심문하며 끊임없이 회의하며 나아가는 과정, 그것이 지성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일부 챕터에서 국가(사회)주의와 파시즘에 대해 다루며 전체주의와 미학이 양립할 수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는데 마침 파시즘에 관한 책을 읽고 있어 더욱 눈에 들어왔다. 독일의 나치즘이 발돋움을 해 나갈 때 레니 리펜슈탈이 만든 예술은 이에 동조하고 협력하고 선전하는 데 쓰였다. 그녀는 1934년 9월 히틀러의 요청으로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제6차 나치당 전당대회를 촬영한 영화 〈의지의 승리(Triumph des Willens)〉를 만들었고 1936년 열린 베를린 올림픽을 기록한 영화인 <올림피아>를 만들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전범으로 몰린 그녀는 자신이 정치와 무관하고 영화(예술)적 이상을 좇았다라고 변호했다. 예술(미학)과 도덕은 구분되어야 하는가, 예술은 정치와 구분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드는 기회가 되었다.

국가사회주의는, 더 나아가 파시즘은, 삶이 곧 예술이라는 이상, 아름다움 추종, 용기에 대한 맹목적 숭배, 공동체에서 느끼는 황홀경을 통한 소외의 해소, 지성에 대한 거부, (지도자를 부모로 둔) 인간 가족처럼, 다른 기치 아래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는 다양한 이상을 옹호한다.

쓰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잡다한 글이 되버렸는데 아무튼 이번에 나온 <여자에 관하여>가 국내 초역본이라고 알고 있어서 더 값진 독서 경험이 되지 않았나 싶다. 손택은 여성이 성별이란 고정 관념에 갇히지 않고 개인의 권리를 갖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기를 바랐던 것 같다. 손택과 같이 깨어 있고 나아가려는 여성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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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5-12-10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지긋 지긋한 통념을 정작 깨야할 주체는 남성이라고 생각하는 일인입니다. 돌아가신 저의 할머니께서 밥그릇을 밥상 아래에 놓고 잡숫던 생각을 하면 아직도 치밀어오르는 화가 가라앉지 않습니다. 아... 얼굴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군요. 들킬까봐 후다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