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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야기 1-1 - 동양문명, 수메르에서 일본까지 ㅣ 월 듀런트의 문명 이야기 1
윌 듀런트 지음, 왕수민.한상석 옮김 / 민음사 / 2011년 5월
평점 :
이 책은 사둔지가 꽤 되었다. 윌 듀런트의 문명 이야기 시리즈는 본래 11권(동양, 그리스, 카이사르와 그리스도, 신앙의 시대, 르네상스, 종교개혁, 이성의 시대의 시작, 루이 14세의 시대, 볼테르의 시대, 루소와 혁명, 나폴레옹의 시대)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리즈 완간이 번역되길 기다리고 있었지만 르네상스 이후는 나오질 않았고 더는 나올 기미가 없는 듯하여 책장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책을 이제 읽어보기로 했다. 그래도 1-1, 1-2 동양 편은 예전에 한 번 읽었다. 아마도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 간략하게 알고자 하는 욕심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책을 펼쳐보면서도 ‘이걸 내가 읽었다고?‘ 너무 생소해서 민망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문장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핵심 인물이나 사건 등이 낯설지만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스럽다면 다행스러운 점.
윌 듀런트는 이야기를 쉽게 풀어쓰는데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두꺼운 책임에도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은 큰 장점이다. 책의 앞부분에 한 번에 한 장 이상 읽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를 보고 풉 하고 웃었는데 그말을 굳이 지키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나도 분량을 욕심내지 않고 읽었다. 이 책은 그렇게 읽어도 충분히 괜찮다.
책에서 말하는 ‘문명‘의 정의는 문화 창조를 촉진하는 사회적 질서이다. 문명은 경제적 요소(물자 비축), 정치적 요소(정치 조직), 철학적 요소(윤리적 전통), 문화적 요소(지식 및 예술 추구)로 구성된다. 문명은 지질(지리)적 요인, 경제, 정신적 요소(정치 질서, 통합된 언어, 윤리적 규범, 교육)로 가능한 조건이 된다.
수렵의 시대에서 경작의 시대로의 이행은 목축, 경작, 야금 기술 등의 발달이 이끌었다. 특히 불의 발견은 차원이 다른 발견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교역은 물물교환에서 시장, 상점 등에서 이루어지는 정기 무역 형태로 발전하였고 교역의 대상도 물건에서 점차 통화로 바뀌어나간다.
공동 소유, 공동 분배가 가능했던 사회는 내 몫을 갖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점차 사라졌고 노동과 계급이 분화되면서 불평등 사회가 시작되었다.
수메르는 2만년 전 수사 고원 지대를 중심으로 약 6천년간 살아남아 번영을 누렸다. 수메르인들이 살았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잦은 홍수로 관개 시설을 개발해야 했다. 안정적인 물 공급을 통해 상업 활동이 활발해졌고 의학이 발전하였으며 달력을 만들기도 했다. 수메르인들은 인간이 하는 모든 활동을 판단하는 신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신관은 가장 부유한 사람으로 막강한 지위를 누렸다. 이들은 점토판에 쐐기 문자로 길가메시 등의 글을 남겼고 집, 신전, 기둥과 둥근 천장 및 아치 형태를 처음 만들기도 했다.
이집트는 앞선 수메르와 마찬가지로 나일강의 잦은 범람으로 관개 용수를 통해 치수에 적합한 토양을 만들어 생활했다(이들은 나일강의 범람을 선물이라고 생각했다고^^). 이집트는 사실 나폴레옹이 발견하기 전까지 지금처럼 문명의 요람으로 알려지지는 못했다.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을 올 때 기술자와 화가 등을 데려와 이집트를 파헤치듯 탐사하여 지도를 제작하고 학자들에게 연구하게 만들면서 흐름이 시작된 것이다(이들의 제국주의와 침략주의적 성격은 잠시 내려놓기로 하자). 이집트의 파라오는 신관들의 도움을 받아 신성한 혈통과 권력, 지혜를 강조하며 각종 특권을 누렸다. 여자의 위치는 당시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었다. 재산을 소유하고 상속할 수 있었으며 정숙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등 자유로운 편이었다. 그리스인들이 이집트인의 지혜를 소중하게 여겼다는 사실을 통해 이집트의 철학이 상당히 높은 수준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이푸웨르는 이집트판 쇼펜하우어였으며 죽음을 찬양하고 현재를 소중히 여기라고 말하는 스윈번도 있다). 수메르와 마찬가지로 이집트도 만물을 종교 대상으로 삼아 종교의 수도 많고 다양했다. 특히 토테미즘은 이집트 종교에 토착적인 요소로 중요했으며 특히 불멸성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바빌로니아는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유역을 중심으로 비옥한 토양에서 물자를 교역하며 생활했다. 바빌로니아 하면 법이 떠오르고 그 중에서도 함무라비 법전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함무라비 법전에는 사유재산, 부동산, 교역과 사업, 가족, 상해, 노동법 등 체계를 잘 갖춘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함무라비는 운하를 건설하여 홍수를 방지하고 도시를 보호하였으며 법전을 만들어 많은 이들에게 혜택을 주고 바빌론 역사상 가장 부유한 도시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바빌론은 신정국가였던만큼 도시마다 수호신이 있어 신들의 수만 해도 약 6만 5천에 달했다고 한다. 신관은 상인이자 금융업자일 정도로 신전의 부가 어마어마했다. 바빌로니아는 페르시아의 침입으로 2백년간 지배당하면서 몰락했다. 그러나 유럽의 종교에 영향을 주었고 수학, 천문학, 의학, 문법, 사전 편찬술, 고고학, 역사, 철학의 토대를 마련해주었다. 또한 건축술은 중세 첨탑과 종탑, 미국의 현대 건축에 영향을 주었다.
아시리아는 강력한 군대로 정평이 나 있던 국가다. 방대한 행정 체계를 갖고 있으면서도 도시에는 자치권을 주어 조공만 바치면 통치권을 주어 잦은 반란을 피했다. 학문과 예술은 수메르와 바빌로니아에서 상당 부분을 수입해서 썼으나 군대가 중요했던 만큼 군사적인 것들 위주로 받아들였다. 의학과 천문학도 바빌로니아의 것을 답습하였으나 도서관만큼은 훌륭했다고 알려져 있다. 건축은 웅장함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얕은 돋을 새김 예술이 뛰어났고 템페라 그림 같은 독특한 예술 세계도 존재했다. 그러나 아시리아는 쌓은 부를 정복 사업에 의존하면서 차츰 그 힘을 상실했다.
유대는 성서에 따르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그만큼 좋은 기후와 환경임을 의미)을 토대로 일어났다. 탐나는 자연 환경이었던 만큼 주변에서 호시탐탐 노리는 자들이 많았던 것 같다. 유대인들은 셈족이지만 사실 여러 부족의 연합체다. 다만 그들은 다른 민족과 교류하면서도 자신의 민족적 특성을 최대한 수호하려 애썼다고 한다.
솔로몬 시대에는 아라비아와 아프리카 교역로를 만들어 부를 늘리며 도시에서 산업이 흥기했다. 그러나 신전을 건설하면서 이스라엘은 고갈되어 프롤레타리아 계층은 늘었다. 유대인들은 신전 건축을 계기로 야훼라는 신에 단일성을 부여하여 숭배하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은 이후에도 경전을 중심으로 생활했고 종교는 일상의 규법이자 정치적 기반이었다.
페르시아는 군사적으로도 정치적으로 조직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조직의 수장은 왕(크샤트리아)으로 절대 권력을 지녔으나 귀족들이 왕권을 어느 정도 제한했다. 왕권과 정부의 힘은 근위대와 상비군을 비롯한 군대에 있었다. 제국은 속주별로 분할된 행정 체계를 갖고 있었고 각 속주에는 장군을 파견하였으며 속주의 리더인 태수와 장군을 감시하는 대신을 파견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아케네메스 왕조를 연 키루스는 관대한 제도로 제국을 반석 위에 세웠고 종교에 있어서도 관용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뒤를 이은 다리우스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세력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패배의 쓴맛을 본 왕이기도 하다. 페르시아는 조로아스터교가 일어난 곳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다리우스 1세 시기 조로아스터를 국교로 삼은 바 있다. 조로아스터교는 다른 종교보다는 덜 호전적이었고 우상 숭배나 미신적인 요소가 적었으나 후에 이슬람교가 흥기하면서 그 폭발적인 힘에 밀려 세력이 감소한다. 페르시아는 자유로우면서도 개방적인 문화로 정평이 나 있었다. 여성들도 비교적 높은 위상을 차지했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그 지위는 낮아졌다고. 페르시아는 뒤로 갈수록 왕권이 부패하고 타락의 길에 접어들었으며 제국 곳곳의 속주에도 왕의 구속력이 떨어지면서 반란이 이어져 그 힘이 약화되었다.
1권은 이 정도로 마무리된다. 2권은 앞선 곳보다 더 익숙한 인도, 중국, 일본의 문명 이야기가 다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