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앞부분만 보았다가 묵혀놓았던 중국 드라마 삼국지를 최근에 보기 시작했다.
2010년작이니 꽤 오래된 작품이지만 지금 봐도 공들여 만든 작품임을 느낄 수 있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은 대배우들이 된 주연 배우들을 만나는 것도 반가운 일이고.
아무튼 워낙 스케일이 크고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지라 당시 연기자 가동 범위 풀을 다 끌어다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를 보는 김에 만화로 쉽게 설명해주는 중국어 삼국지도 읽고 있는 중이다. 드라마만큼 진도를 뺄 수는 없지만 매일 조금씩 읽고 있는데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알라딘에서 산 노트로 중국어 단어 공부를 진행 중이다. 듣기만 하고 단어 공부를 안하니 제자리 걸음이거나 퇴보하는 것 같아서. 건너뛰는 날도 있지만 아직까지 2일 이상은 넘기지 않고 있다. 욕심내지 않고 하루에 2~4개 단어를 쓰면서 공부한다. 많은 양의 단어가 아니라서 투자 시간은 길어봤자 20분 남짓이지만 노트의 빈 페이지가 채워져감을 보는 일은 작은 성취감을 준다.

주말이면 여지없이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한다. 겨울 동안에는 해가 짧아 오전 8시가 되어서야 날이 밝았는데 이제는 7시만 되어도 해가 난다. 오전 시간이 인적이 드문 편이라 걷기 좋지만 그동안은 추워서 좀 미뤄왔다. 이제 걸어도 될 듯하여 얼마 전 이른 새벽 산책을 하며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역시 더 좋았다. 당분간은 이른 아침 산책을 하지 않을까 싶다.

이것 저것 읽는 중이다.
우선 러시아 역사 책을 읽고 있다. <러시아의 역사> 상권을 끝냈고 하권을 읽는데 하권이 아무래도 내가 관심이 있어서 알고 싶었던 내용들이 많다. 상권의 뒷부분과 하권의 앞부분은 재정 러시아 말과 혁명 초입 기간까지로 혼돈의 사회상만큼 이야기 소재가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덕분에 문학과 예술 분야가 풍요로웠다. 종이책을 주로 사지만 전자책도 조금씩 산다. 급하게 읽어야 하거나 종이책으로는 딱히 읽을 것 같지 않은 책을 전자책으로 사는 편이다. 혹은 대여 기간이 충분한 경우 살 때도 있다. 열린책들 문학 전집도 마지막 이유 때문에 구입했었다. 리스트를 보니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이 많이 들어 있어서 굳이 새로 구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러시아의 역사를 읽으면서 닥터 지바고를 읽기 시작했다. 다 읽으면 남길 이야기가 많으면 좋겠다^^
지난 달 동계 방학으로 쉬어갔던 역사책 함께 읽기도 이달 예정되어 있어서 동학 운동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다. <1894년 남북접 동학군의 공주 점거투쟁>은 기존 동학 운동의 역사가 전봉준이라는 구심점, 호남 중심의 운동 서술 흐름으로 한계가 있다 지적하면서 그것을 깨기 위한 시도를 한다. 동학 운동의 공주하면 우금치(우금티)만 떠올렸던 나 같은 사람이라면 새로운 시선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동학 초기 지도자인 최제우, 최시형을 다룬 책이 있어서 <최제우.최시형.강일순>을 병행하면서 읽고 있다(강일순은 비록 구한말 증산교를 창시한 인물로 비록 동학과는 관련이 없지만 비슷한 시기의 인물이다). 책에서 최제우가 동학을 만든 배경, 그리고 동학을 만든 이후 개인적으로 겪었던 일들이 상세히 다뤄지고 있다. 최시형과 최제우의 연결 고리를 찾는 과정도 흥미롭다. 또한 앞선 책들과 관련해서 동학과 전봉준 관련해 많은 이야기를 남긴 이이화 선생님의 책들을 함께 비교해보며 읽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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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18- 민중의 함성 동학농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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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남북접 동학군의 공주 점거투쟁- 남접·호남 중심 농민전쟁론 넘어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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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기온은 다시 내려갔지만 그래도 낯은 따뜻한 볕 덕분에 봄 기운이 나기 시작했다.
어제 점심 먹고 산책하면서 보니 매화 꽃망울이 어우러진 것을 발견했다. 곧 꽃봉오리가 피어오름을 짐작케 한다.
매화, 산수유를 시작으로 개나리, 목련, 벚꽃, 철쭉 순으로 피어오르겠지. 꽃을 기다리는 일은 즐겁다.

연거푸 소형 참사가 있었다.
가방에 만년필 잉크를 넣어둔 걸 깜빡했는데 며칠 뒤 확인해보니 잉크가 좀 쏟아졌는지 가방 바닥이 젖어있는 것 아닌가.
중국어 교재 책에 일부 묻었길래 이 정도야 괜찮지 했으나 실크 스카프가 안에 든걸 몰랐다.
그 실크 스카프는 작년 중국 여행 갔을 때 항저우에서 산 거였는데...
짐작하시겠지만 스카프에 잉크가 쏟아지는 바람에 얼룩이 졌다. 비싸게 준 건 아니지만 기념으로 하나만 산 건데 아깝게 되었다.
덕분에 교훈을 얻었다. 이제 다시는 가방에 만년필 잉크를 넣지 말아야지 싶었던 것.
그런데 어제 퇴근하다가 휴대용 만년필 노트를 꺼냈더니 노트가...노트가...
핑크색 노트에 검은 만년필 잉크가 다 번져 있는 것이 아닌가.
나름 봄맞이 한다고 평소 잘 쓰지 않던 화사한 색의 노트를 산 것이었는데...
이쯤되면 궁금했다. 대체 왜 묻은 걸까.
병잉크가 들어있던 건 아니었는데 만년필의 뚜껑이 제대로 안 닫혀 있었던 건지?
엎질러진 물이지만 실크 스카프도 그렇고 노트도 그렇고 어쩔 수 없이 속이 쓰리다ㅜㅜ

어제 레드문이 뜬다길래 퇴근 후 집밖을 나섰다.
그런데 구름이 많이 껴서 달 언저리가 희미했다.
‘이래가지고 사진 찍어서 나오겠어?‘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겠지 싶어서 카메라를 야간모드를 설정한 후 최대한 줌을 당긴 후 하늘 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사진을 찍었다.
다행히 2~3장쯤 건졌다.

얼마 전 미국의 역사를 읽고 러시아의 역사를 읽기 시작했다.
러시아 문학 작품을 읽을 때 도움을 얻기 위해서다.
이미 집에 구비해 놓았던 <러시아의 역사>에 이어 관련 역사책을 장만했다.
아쉽게도 번역된 책들이 풍부하게 갖춰져 있지 않은 것 같지만(절판되었거나 아직 번역안된 책들도 있어서).
아무래도 19~20세기에 관심이 가므로 해당 시기 역사를 더 읽게 될 것 같다.
역사책을 읽으면서 관련 소설도 읽지 않을까 싶다. 집에 있는 도선생님 남은 작품도 읽을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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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6-03-04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레드문이라니요! 이런 것도 모르고(모르니 볼 생각도 못했고) 뭐하고 사나 싶네요
화가 님 덕분에 레드문 감상합니다^^

거리의화가 2026-03-04 10:13   좋아요 0 | URL
어제 레드문에 개기월식이 있다고 해서 나갔었거든요. 정작 하늘이 많이 흐려서 월식 장면까지는 도저히 담을 수 없겠더라구요^^; 레드문 사진이라도 대리만족하셨다니 저 또한 기분이 좋습니다.

그레이스 2026-03-04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사진 잘 찍으셨네요
저도 어제 나가서 월식 한참 보고 사진도 찍었는데,,, 맘에 드는 사진이 없어서... 그냥 눈으로 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36년만의 월식이라고 했던것 같은데,,, 이걸 맨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게 넘 신기했습니다.^^

거리의화가 2026-03-04 10:16   좋아요 1 | URL
맞아요. 너무 날이 흐렸던... 오늘 새벽에 나오면서 보니 하늘이 께끗하던데 어제도 그랬으면 사진 좀 더 많이 건졌을 것 같아요.
자주 돌아오는 일이 아닌데다가 날씨도 받쳐줘야 볼 수 있는 것이라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경험이 소중했습니다^^

책읽는나무 2026-03-06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드문…와!
뭔가 미스터리한 일이 일어나기에 참 좋은 예쁜 달입니다.
그나저나 잉크 때문에 스카프 망쳐 속상하셨겠어요.ㅜ.ㅜ

거리의화가 2026-03-07 09:18   좋아요 1 | URL
스카프는 망쳐서 속상하긴 했는데 이미 벌어진 일 그만 속상해하려고요. 묻은 부분 안 보이게 해서 매고 다녀보려고 합니다^^; 그날 달은 정말 오묘한 느낌을 줬다는!
 

이반의 통치 전반부에 대한 의견 차이는 주로 표준화와 중앙집중화에 대한이반의 노력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의 문제와 관계된다. 일부 사람들은, 예를 들면 좀더 확대되고 보다 효율적인 중앙 행정, 보다 일관성 있는 법적 규칙과 절차, 더욱 강한 군대, 충성스런 중간 봉직계급, 그리고 충성스럽고 일 잘하는 지방행정의 발전 속에서 정치적인 "근대화"의 증거를 본다. 그렇지만 다른 학자들은 이런 것들은 근대화가 아니라, 주로 정치적인 "동원(mobilization)"을 위한 노 - P230

력이라고 주장했다. 이 시대는 좀더 자유로운 사회라든지 서구 방식으로 독립적인 시민 영역을 발전시킨 사회도 아니었고, 국가의 필요에 잘 이용되는 사회였다는 것이다. - P231

전제정치의 많은 상징들과 의식은 그 자체로 왕국 통합의 징표로서, 보야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에 한계를 그어주었다. 이것은 영향력을 얻기 위해서 많은 다툼을 벌이는 가운데서도 한 사람의 통치자를 둔 골치 아픈 정치체제였다. 여기서는 절대주의적인 통치라는 공식적인 얼굴을 제시하면서도, 계속해서 설득하고 회유하고 책략을 벌이기 위해서 통치자가 필요했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그 체제가역기능적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보야르들의 경우는 다르겠지만, 이반과 봉직귀족에게는 그 체제가 제대로 기능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 경우에 오프리치니나는 이러한 구속적인 체제를 깨고 나가려는 노력이었다고 볼수 있다. - P232

모스크바국의 전제자들이 오래된 상층계급에 대해서 거둔 비교적 손쉬운 승리는 그 뒤에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낳았다. 특히 모스크바국 정부가 실질적인 대체 인물들을 마련하지도 않은 채, 너무나 성급하게 분령지의 통치 세력을 제거해버렸다는 주장이 있어왔다. 그 결과 정치적 및 사회적체계가 약화되었고, 이것은 동란의 시대가 발생하는 데에 일조했다. 그리고 보리스 고두노프가 사망한 이후에 차르의 권위가 약화된 것에 이어서, 보야르의반발도 동란의 시대의 한 원인이 되었다.
모스크바국이 팽창하면서 행정과 기구를 중앙집중화하며 표준화하고, 또다른 계급의 이해를 봉직귀족의 이해에 종속시켰기 때문에 도시도 어려움을 겪었다. - P238

그러나 좀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던 농민의 지위가 약화된 것이었다. 물론 농민들은 봉직귀족의 영지에서 노동력을 제공했고, 따라서그 계급이 성장했다는 사실로부터 즉각적이고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분명히 봉직귀족의 성장은 점점 더 많은 국유지와 농민들이 포메스티예 제도를 통해서 봉직귀족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 자신이 국가에 대한 과중한 의무를 감당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던 봉직귀족 지주들은 될수 있는 한 많은 것을 농민들로부터 짜내려고 했다. 게다가 오프리치니나로 인한 파괴 행위는 이미 지나친 부담을 지고 있던 중부 러시아의 많은 지역의 농민경제를 완전한 파국으로 몰고 갔다. - P239

미하일 로마노프는 이반 뇌제와 아나스타샤 로마노바의 결혼을 통하여 이전 왕조와 관련되어 있었다. 이 가문은 대중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특히 사람들은 이반 뇌제의 첫 아내였던 착한 아나스타샤, 난폭한 차르의 희생자가 될 뻔했던 몇몇 사람들을 위험을 무릅쓰고 옹호해주었던 그녀의 남자 형제인 니키타 로마노프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젬스키 소보르가 소집되고 있을 때니키타의 아들이자 미하일의 아버지인 필라레트 수좌대주교가 폴란드인들의 포로로 있었다는 점도 로마노프 가문에 이점으로 작용했다. 특히 밀류코프 등의사람들은 필라레트가 투시노 진영과 아주 가까웠으며, 다른 보야르들보다 카자크들과 훨씬 더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하일이 어리다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 P256

모스크바국은 외국인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였다. 잉글랜드의 찰스 2세가 알렉세이에게 보낸 사절단의 서기인 드 미주와 같은 서구의 방문자들만이 아니라다른 많은 사람들도 모스크바국을 마법의 세계와 비슷한 무엇인가로 묘사했다. 즉 기이하기도 하고, 호화롭기도 하고, 다채롭기도 하고, 그들이 그때까지보았던 어떤 것과도 달랐으며, 아주 야만적이기도 했다. 외국의 사절들은 호화로운 복장, 특히 모피 옷, 눈에 띄는 회색 수염, 정교한 궁정 예식, 풍성한 연회그리고 엄청난 음주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였다. 모스크바국의 기본적인 특징들은 더욱 중요했는데, 방문자들은 이것을 재빨리 알아챘다. 즉, 차르의 거대한권력과 권위 그리고 심지어 대수롭지 않은 문제들도 고위 관료의 결정을 요구해야 할 정도로 극심한 중앙집권화가 바로 그것이다.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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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많은 역사학자들은 분령 시기가 위기와 생존의 시기였을 뿐만 아니라, 공국들 사이에서 앞을 향한 경쟁의 시기이기도 했고, 변화의 시기이기도 했다고 본다. 각각의 공국들은 키예프의 과거에서 자신들의 유산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 모스크바가 경쟁 공국들을 물리치고 승자로 입증되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역사적 시대 구분이라는 언제나 골치 아픈 문제에 대한 관점에서 보면, 역사학자들이 키예프와 분령 시기를 "중세 러시아"로 부르며, 중앙집권화된 모스크바국의 성립기를 "근대 초기의 출발이라고 규정하는 경향은 점차 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러시아 발전의 독자성보다는 폭넓은 유럽적 흐름과의 비교 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 P103

노브고로드의 역사는 그 자체로서 주목받을 만하지만, 키예프가 쇠퇴한 이후에 키예프 루시의 땅이 변모되어갈 때에 생긴 하나의 변형된 발전 형태로서 그이상의 관심을 끌고 있다. 노브고로드의 특이한 성질을 강조하는 것이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이런 성질들이 키예프 시대-어느 정도는 키예프 이전 시대로부터 직접 유래되었으며, 때때로 키예프의 일부 핵심적인 특징을 강조된 형태로대변했다는 점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 노브고로드의 도시생활과 문화, 중간계급의 중요한 지위, 그곳의 상업, 외부 세계와의 긴밀한 접촉 등과 같은 모든것들은 노브고로드를 키예프 역사의 주류와 연결시켜주고 있다. 물론 베체 역시 키예프의 삶과 정치에서 의미심장한 역할을 담당했다. 노브고로드인들은 그것의 권위와 기능을 더 부각시킴으로써 키예프 루시의 정치적인 구성 요소들 중다른 두 가지를 희생시키고, 오직 한 가지, 즉 민주정적 요소를 발전시켰다. 그두 가지는 전제정치적 요소와 귀족정치적 요소인데, 우리가 보게 되듯이 이 두요소는 러시아의 다른 지역에서 더 비옥한 토양을 발견했다. - P134

모스크바는 14-15세기에 강력하고 팽창하는 왕조 국가의 중심이되었다. 이 국가는 통치자의 "세습 재산"으로 정의된 엄청난 부와 광대한 영토에의해서, 중앙집권화된 정치권력에 의해서, 경쟁자들과 몽골 칸국에 대한 군사적인 승리에 의해서, 유산과 운명이라는 세속적이고도 종교적인 개념에 근거를 둔이데올로기에 의해서 강화되었다. 사실, 필연성이라든가 민족적 운명이라는 암축된 의미를 가지고서 이 과정을 "러시아 땅 모으기(sobiranie russkikh zemel)"라고 묘사한 전통은 이 과정에 대한 많은 역사 서술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다. - P145

모스크바의 성장의 성격과 의미에 대한 판단은 그 과정에 대한 기술이나 설명보다 훨씬 더 많은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혁명 이전의 대부분의 러시아 역사학자들은 모스크바의 성장이 모스크바 공들과 러시아 민족의 위대하고도 필연적인 업적이라고 찬양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외부의 침략을 받고도 살아남아서, 역사에서 자신들이 맡은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 통합해야 했기 때문이다. 소련시기의 역사학자들도 동일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고, 이 주장은 소련 이후의 공식적인 역사 교과과정에서, 그리고 러시아 지도자들이 민족의 과거에 대해서 언급할 때 소중하게 다루어진다. 반면에, 프레스냐코프 같은 혁명 전의 러시아 역사학자들, 오늘날의 많은 서구 역사학자들, 그리고 당연하게도 폴란드, 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 역사학자들 등은 이런 해석-비판자들이 보기에 이것은 "민족주의적 신화이다에 종종 의문을 제기한다. 이런 저술가들은 칭찬의 대상이 되고 있는 "러시아 모으기가 무엇보다도 노브고로드와 프스코프 같은 러시아인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다양한 비러시아 민족들을 대상으로 한 모스크바국 공들의 교묘한 침략이라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그리하여 모스크바국 공들은 그들에게서 자유를 빼앗았고, 모든 사람들을 모스크바국의 전제정치에예속시켰다는 것이다. - P169

학자들은 비록 분화의 근원이 그 이전으로 소급될 수 있을지라도, 14세기에 분리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데에 일반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확실히 많은 요인들이 영향을 미쳐서 이 언어들을 변화시켰는데, 특히 분령 시기의 분열 및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인들이 통치하던 영토와 모스크바국 러시아 사이의 심화된 분리가중요했다. 따라서 대러시아인들은 모스크바국의 영토와, 우크라이나인들과 벨라루스인들은 리투아니아 및 폴란드와 각각 관련을 맺게 되었다. 우리는 만약러시아인들이 키예프국을 통해서 자신들의 정치적인 통일성을 유지했다면, 혹은리투아니아-러시아가 모스크바를 대신하여 새로운 중심이 되었더라면, 사건의전개 양상이 달랐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비록 모든 것이 동일한 키예프로부터의 유산에서 시작되었지만, 정치적인 분리는 문화적인 이질화도 심화시키는 - P208

경향이 있었다. 오늘날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로 알려져 있는 지역에는 폴란드를 통해서 라틴 유럽의 강력한 영향력이 유입되었고, 그 영향력은 그곳에서 상이한 특성을 배양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입증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러시아 정교회는 마침내 행정적으로 분열되어, 키예프에 있던 별도의 수좌대주교가 리투아니아국의 정교회를 이끌게 되었다. 러시아인들이 대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으로 분리되었고, 몇 세기 동안 떨어져 살면서 그런 현상이 더욱 강화되었던 사실은 그 이후의 러시아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되었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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