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성장의 ‘장기파동‘이 나타남에 따라 프랑스에서는 이놈이 가속화하고, 삶의 질이 높아지고, 여가가 일반화하고, 특히 세르주 말레serge Mallet와 알랭 투렌 AlainTouraine 이 분석한 ‘신노동자계급‘이 등장했다. 고등교육의 대중화는 주관적으로 인식되는 사회적 기회와 실질적인 사회적 기회의 격차를 두드러지게 했다. ‘소외‘라는 감정은 이 격차 속에 존재했다. - P72

‘주요한 전선‘은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에 ‘부차적 전선‘은 크게 확장됐다.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 투쟁(‘제2의 물결‘ 페미니즘), 민족해방운동, 동성애자 운동,
이제 막 태동한 정치생태학écologic politique 이 눈에 띈다. 이런 전선은 경제적 억압의 중심성을 약화하고, ‘착취‘ 개념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의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그리하여 ‘소외‘ 개념이 그 역할을 하게 된다. - P74

구조주의 패러다임은 1960~1970년대의 이론적 계기‘moment‘를 떠받치던 지주 가운데 하나였다." 이후 수십 년간 구조주의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으며 비판이론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마르크스주의와 함께 구조주의는 모든 사상 부문에 영향을 끼치고 다른 흐름들과 매우 체계적으로 ‘교배‘된 유일한 흐름이다. 마르크스주의적페미니즘, 생태학, 문학 연구가 존재하는 것처럼 구조주의의 영향을받은 페미니즘, 생태학, 문학 연구가 존재한다. - P87

1960~1970년대 비판사상은 두 가지 주요한 특징이 있다. 하나는 해방 주체의 다양화, 다른 하나는 권력에 대한 ‘탈중심적‘ 접근을 위해 ‘국가중심적‘ 권력개념을 점진적으로 포기한 것이다. 이런 특징은 당시 전통적인 노동자계급의 정치적·노동조합적 기구가 겪은 위기의 결과인 동시에, 특히 - P97

페미니즘·반식민주의·생태학 주변에서 형성된 ‘부차적 전선‘의 증가에서도 유래한다. 그런데 이런 특징은 1990년대 후반에 출현한 오늘날의 비판이론에서도 볼 수 있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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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와 지식인 거리가 멀어진 이유. 1920년대 후반 소련과 공산당의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성격이 정해지면서.
추상적 지식의 전개. 현장과는 멀어짐. 지식인의 정치적 고립은 점점 더 추상적인 분석으로 이끌어.

로자 룩셈부르크 사상에 대해 알아보고 그것이 식민지 조선에 어떤 방식으로 수용되었는지 정리할 것.

비판이론은 대부분 대학교수인데 미국 대학은 개방성이 있어 열려 있기 때문에 많은 지식인들이 자리를 옮겼다. 정체성 정치로 억압받는 소수자에 적합한 사유 전통이 만들어짐.

사상의 지리학이라는 것이, 이 경우에는 비판사상의 지리학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고전 마르크스주의를 중요하게 발전시킨 것은 중유럽과 동유럽 사상가들이었다. 그러다 이쪽 대륙에서 스탈린주의화가 진행되며 이후 이론 형성이 차단되자, 사상의 구심점이 서유럽으로 옮겨 갔다. 이 사회적 공간에서 한동안, 즉 반세기 동안 비판적인 지적 생산물이 만들어졌다. 1980년대 동안에는 유럽 대륙에서 이론적이고 정치적인 비판이 쇠퇴하고, 또 정기간행물 뉴 레프트 리뷰 - P32

New Left Review』 『세미오텍스트Semiotext(e)』 『텔로스Telos』 『뉴 저먼 크리틱New German Critique』 『이론과 사회Theory and Society』 『크리티컬 인콰이어리Critical Inquiry』를 중심으로 지적이고 역동적인 활동이 이뤄짐으로써 비판의 중심이 영미권으로 점차 옮겨 갔다. 이처럼 비판이론은 역사적으로 비판이론이 거의 활발하지 않았던 곳에서 매우 활발히 전개됐다. - P33

비판이론은 사상이 국제적으로 유통되는 일반 체제를 따른다. 파스칼카사노바 Pascale Casanova의 말처럼 "문학의 세계 공화국"이 있다면, ‘비판이론의 세계 공화국‘도 있다. 이 공화국은 동질적이지 않다. 모든 지역이 지적 생산에 공평하게 기여하진 않는다는 점에서 ‘불균등한 발전‘ 형태가 이 공화국을 지배한다. 어느 한 지역의 이론생산에 영향을미치는 여러 결정적 요인들이 있겠지만, 특히 대학 체계의 성격, 경제발전의 정도, 사회운동의 효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지역 격차가 명백히 존재함에도, 오늘날에는 세계적 차원에서 비판사상의 생산과 유통 조건이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 P47

신비판이론의 중요한 특징은 그 내부에서 마르크스주의가 헤게모니를 상실했다는 점이다. 통념과 달리 마르크스주의는 오늘날 확실히 살아 있는 패러다임이다. 동시대 비판이론가 가운데 가장 뛰어난이들 상당수가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표방한다. 이 전통은 비판이론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사회과학 내부에서도 여전히 활발하다. 수 - P53

1990년대 후반 비판사상이 부활했다는 것이 ‘패배‘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뜻은 아니다. 급진 좌파는 오늘날 확실히 방어 태세를 갖춘다. 군사적 패배나 운동 경기의 패배와 정치적 패배가다른 것은, 정치적 패배에는 정해진 끝이 없기 때문이다. 군사적 대치상황에서 무력관계는 어느 한 교전국에 유리한 방식으로 언젠가는변한다. 그러면 전투는 끝이 난다. 운동 경기에서는 경기 시간이 종료함에 따라 패배의 규모가 언제나 제한된다. 반면 정치 영역에서는 패배가 무한히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민주적이고 사회적인 권리‘ 같은노동운동의 성과가 무한히 파괴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비판사상의부활을 두고 뭐라 말하건, 그런 변수만은 시야에서 놓치지 말아야 한다. 신비판이론은 그 변수에 상당 부분 종속되어 있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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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 - 전면 개역판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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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긴 항해가 끝나면, 두 번째 항해가 시작된다. 두 번째가 끝나면 세 번째가 시작되고, 그렇게 영원히 계속된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견딜 수 없는 세상의 노고인 것이다.

읽어본 듯 하다가도 아닌 것도 같은 묘한 느낌이었다. 아마도 전에도 읽기를 시도했던 것 같은데 앞부분 몇 페이지만 읽다 그만두지 않았던가 싶다. 그것도 아주 오래 전. 이슈메일이 퀴퀘그를 만나 피쿼드 호를 타게 되기까지 과정이 그랬다. 그 뒤 피쿼드 호를 타고 벌어지는 일들은 솔직히 지난하고 지루한 읽기 과정이었다. 핵심 줄거리는 간단한데 가지가 많은 나무 같은 느낌이랄까.
고래의 분류(향유고래 등), 포경업의 역사, 흰색이 의미하는 바, 고래가 등장하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 바다와 육지의 차이까지... 물론 그 와중에 흥미를 끄는 부분이 있을 때는 덤으로 이런 것을 얻어가는구나 싶었다.

그래도 완독하고 나서 느낀 것은 이 책은 한 번쯤은 도전해봐야 할 책이라는 것이다. 영문학 책 중 꼭 읽어야 할 책으로 분류되는 이유는 어떤 관점에 맞춰 읽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기 때문에 꾸준히 읽기를 시도(도전)하는 책이 아닌가 싶다. 너무 뻔한 클리셰와 해석만 있는 책은 계속 읽힐 수 없을 테니까. 이 책은 역자들의 긴 주해가 있으며 다양한 해석들이 있다. 나는 책의 등장 인물과 상황에 대한 상세한 분석까지 할 자신은 없어서 이성과 감정이 가는대로(내 방식대로) 읽었다.

모비 딕은 눈처럼 새하얗고 주름이 잡혀 있는 이마와 피라미드처럼 높이 솟은 하얀 혹을 가진 고래다. 이런 두드러진 특징을 가지고 있어 바다에서도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며 먼 거리에서도 고래잡이들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모비 딕이 ‘흰 고래‘라는 별명을 얻은 것은 대낮에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바다에서 거품을 만들어내며 모습을 드러낼 때 은하수 같은 포말처럼 아름다우면서도 한편으론 하얀 수의 같기도 해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앞서 언급했듯 이슈메일은 피쿼드 호를 타고 항해를 하게 되었다. 고기잡이배를 타고 바다를 몇 년간 돌아다니는 일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물을 무서워하는 데다가 그 망망대해를 어떻게 몇 년씩이나... 짧게 1~2시간을 이동하는 배에서도 멀미가 날 듯말듯하여 고역인데 말이다. 일반 고기잡이배는 그래도 항해 기간이 좀 짧은데 포경선은 그 기간이 무척 길다. 그런데 이들은 이를 몇 십년동안 몇 회를 반복한다. 한 번 나가면 3~4년은 걸린다고 하니 40년 동안 배를 탄다고 하면 10번을 반복한 게 되려나?

피쿼드 호의 중심 인물은 에이해브 선장이다. 에이해브는 과거 모비 딕으로부터 한쪽 다리를 잃은 후 복수(!)를 위해 고래를 추적한다. 그는 항해를 하면서 만나는 배마다 모비 딕의 행보를 물어본다. 선장은 그 욕망에 집착한다. 마치 인간이 세상을 향해, 자연을 향해, AI(기계)를 향해 (무모할 수 있는) 도전을 하는 것 같다. 마침내 이겨보겠노라고, 내가 쓰러뜨려보겠노라고. 그래서 그의 모비 딕에 대한 추적은 집착과 광기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빌대드, 이슈메일, 퀴퀘그, 펠레그, 스타벅을 비롯한 선원들은 그저 고래를 잡으러 가는 목적이거나 돈을 벌기 위함이거나 등 달랐기에 갈등은 항해를 할수록 더해간다.
모든 악마성-이 모든 악이 미쳐버린 에이해브는 아담 이후 지금까지 모든 인류가 느낀 분노와 증오의 총량을 그 고래의 하얀 혹 위에 쌓아 올려, 마치 자기의 가슴이 대포라도 되는 것처럼 마음 속에서 뜨거워진 포탄을 그곳에다 겨누고 폭발시켰던 것이다.

왜 하필 모비 딕일까, 왜 하필 흰 색의 고래일까 생각했다. 흰색은 여러 함의를 지닌다. 그것은 깨끗함을 상징하기도 하지만(과거 우리 선조들이 입었던 흰색의 한복) 흰 배경 사이에서는 보호색처럼 은폐되기도 하여 눈에 띄지 않음으로써 두려움을 이끌어낸다. 가장 중요한 것은 흰 색이 수의로 널리 쓰인다는 것이다. 죽음의 세계와 가장 가까운 색이라 두려움을 자아내면서도 사후세계와 신-인간을 연결하면서 영적인 힘, 신성함과 숭배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는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포경선을 타는 선원들은 언제라도 사고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죽음을 가깝게 느끼고 준비한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살 날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배를 타기 전에는 무사히 그 여정을 끝마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의식을 가지고, 만약 무사히 육지에 닿는다면 남은 날들은 덤으로 사는 인생으로 여길 수 있는 일이다.

사실 인생을 살다 보면 내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다. 내 의지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인데도 불평하고 한탄하며 감정 낭비를 하여 손해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나. 따지고 보면 에이해브의 집착과 광기를 나 또한 어느 측면에서는 갖고 있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목에 밧줄을 두른 채 태어났다. 하지만 인간들이 조용하고 포착하기 힘들지만 늘 존재하는 삶의 위험들을 깨닫는 것은 삶이 갑자기 죽음으로 급선회할 때뿐이다. 그래서 태어남과 사라짐만이 인간에게 유일한 공통점이 아닐까. 살아가는 모양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결국 태어나고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은 동일하니까.

나는 누가 어떤 종교를 믿든, 그 사람이 자기와 다른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남을 죽이거나 모욕하지 않는 한, 그 사람의 종교에 대해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사람의 종교가 정말로 광신적이 되어 그 사람에게 명백한 고통이 되면, 그리하여 결국 우리의 이 지구를 살기 힘든 곳으로 만들어버리면, 그 개인을 구석으로 데려가서 문제점을 따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위처럼 종교적 관용성과 포용성을 주장하는 부분도 있지만 이 책의 주요 흐름은 ‘기독교=문명‘ 이라는 레퍼토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기독교세계, 문명과 그 외를 분류하며 차별화하고 계급화, 위계화시키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지금으로서는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게 한다. 특히나 골상학에 대한 신봉은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저 멀리 아메리카와 아시아를 향해 너도 나도 배를 띄웠던 일들이 19세기와 20세기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흐름의 시작이라고 한다면 포경선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여겨진다. 나아가 지금의 자본주의 세계도 위계화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주축국과 식민지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런 측면에서 포경선은 참으로 여러 함의를 지니고 있다고 보여진다.
고래의 남획으로 개체수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알고 있다. 이를 비롯하여 인간의 탐욕으로 들소, 호랑이, 펭귄 등이 지구상에서 많이 사라졌다. 모두 다 인간의 창 끝에 사라진 것들이다. 현재 들끓는 지구의 기후도 이의 영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 책을 완독하며 숙제 하나를 끝낸 기분이 들었다.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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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7-09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도 숙제 같은 책이에요. 몇년 째 책꽂이에서 저를 노려보고 있어요. ㅎㅎ
어쨌든 좋은 책이란 이렇게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하게 할 수 있는 책일테니 이 책도 많은 사람들이 좋다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요. 화가님 글 읽으면서 또 어떤 부분을 생각하며 읽어야 할지도 생각이 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거리의화가 2025-07-10 07:55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런 숙제 같은 책들이 많죠^^; 저도 책꽂이에 노려보는 책들은 그대로 둔채 책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서(요즘은 그나마 자제한다고 하는데도ㅎㅎ) 민망합니다.
맞아요. 여러 사람이 좋다고 하는데는 이유가 있기 마련인것 같아요. 읽어주셔서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다락방 2025-07-09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을 읽어도 생각이 뻗어나가는 방향은 다르다는게 독서의 재미이며 알라딘에서 글 읽는 재미인 것 같습니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은 거리의화가 님 글이라 확실히 감상도 다릅니다. 잘 읽었습니다, 거리의화가 님!

거리의화가 2025-07-10 07:57   좋아요 0 | URL
같은 책을 읽어도 다양한 소감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이곳이지요. 그래서 제가 이곳을 여전히 붙박고 있는 이유겠지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희선 2025-07-10 0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몇해 전에 그래픽 노블로 나온 걸로 한번 봤어요 긴 소설로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사람이 자연을 이기려는 것처럼 모비 딕도 자연일까 하는 생각이 조금 들기도 하네요 지금은 이런 걸 보면 그냥 내버려두지 합니다 고래를 많이 잡아서 사라진 게 많으니...


희선

거리의화가 2025-07-10 08:00   좋아요 0 | URL
그래픽 노블로도 있었군요.
인간 대 자연의 싸움으로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너무 뜨거워진 지구를 보니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맘브루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7
R. H. 모레노 두란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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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버지 없는 자는 고통과 향수가 아니라 호기심 때문에 자기 아버지가 누워 있는 곳에 세워진 십자가를 찾는다. 우리 아버지는 너무나 먼 시대의 지시물이라 내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했다. 아버지는 내가 여섯 살 때의 사진과 느낌, 그리고 희미한 기억이 서로 교차하면서 행방불명된 지시물에 불과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사람의 아들이라면서 대표적 본보기로 나를 내세우는 사람들에게 더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주인 행세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 P415


주인공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아버지의 후예라는 위치에서 태어나 아버지란 사람에 대한 궁금증과 전쟁에 대한 의문점을 갖고 관련 연구를 시작한다. 국내외 문서보관소와 도서관의 자료부터 찾는 것을 시작으로 알려진 일들이 과연 진상인가 궁금증이 일면서 사건에 더 파고들게 된다. 하긴 수치로 기록된 통계를 얼마나 믿을 수 있을 것이며 기록의 사실들이 서로 맞지 않는 경우도 있었을테니 참전한 군인들로부터 증언을 들어보자 생각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짐작하겠지만 자료나 보고서에서 기록된 수치적 통계와 참전 용사들의 증언은 일치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이로서 기록과 현실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느끼게 된다. 결국 보고서와 증언이 미묘하게 겹치는 공간을 추적하고 빈 공간을 다른 자료를 통해서 교차 분석하는 것만이 가장 가까운 진실에 다가가는 일이 아닌가 싶다. 


전쟁 발발 후 미국을 비롯하여 많은 해외 국가가 참전했다(그 시기와 규모만 다를 뿐). 콜롬비아도 그 중 하나다. 콜롬비아군은 총 두 차례에 걸쳐 한국에 파견되었다. 1951년 5월에 제1파견대가 에이킨 빅토리호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고 휴전이 가까워질 무렵(1953년 3월) 제2파견대가 출발했다. 시기적으로 보면 짐작할 수 있듯 1차 파견대는 실 전투(녹십자 전투, 바르불라 전투, 불모 고지 전투 등)를 겪었으나 제2파견대는 부산에 도착할 무렵 휴전 즈음이 되어 실 전투에는 투입되지 않았다. 당시 콜롬비아 내정은 혼란스러웠다. 명분은 국가를 위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내정의 눈을 외부에 돌리고자 대통령은 준비도 되지 않은 이들을 전쟁터에 내보냈다.

천 명이 넘는 신병들이 레알 거리를 행진했어요. 마치 엄청난 승전보를 울리러 가는 것처럼. 오로지 낙관적인 친구들만, 우리를 보면 적들이 부리나케 숨어버릴 거야, 하고 말했어요. 난 군기 인도식을 거행하면서 대통령이 했던 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대통령은 말끝마다 그가 매일 짓밟았으나 검열 때문에 그 누구도 문제 삼지 못했던 단어인 '자유'를 입에 올렸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자유가 범죄인데 머나먼 아시아 국가로 가 자유를 위해 죽으라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 P54

자유를 억압당하는 와중에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나가라니 참 어처구니가 없을 법하다. 이는 콜롬비아가 내정도 어지러웠지만 당시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는 현실이다. 


한국전쟁은 1951년 무렵이 되면 전선이 이미 교착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그 2년 동안 격렬한 전투들이 이루어지면서 많은 병사가 희생되었다. 콜롬비아 1파견대군은 (이전과는 달라진 전투적 양상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중국군을 비롯한 북한군과 어려운 전투를 치러야 했다. 미군의 강요와 입김으로 올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은 후방에 있는 미군들을 위해 전방에 나서야 했던 것이다(예를 들어 미군 앨라배마 연대 병사가 뒷정리를 하는 동안 전선의 돌파구를 열고 앞장서는 일 같은 것). 

전쟁을 마주한 어느 병사는 당시 전쟁터의 상황을 이렇게 증언한다. 우리는 한강변의 화천지구를 따라가고 있었고 나는 휘파람을 불었어요. 종종 새의 노랫소리가 들렸고 도로변에 탱자나무가 한 그루 보였지요. 우리는 마치 굶주린 벌레들처럼 바로 열매를 따먹었어요. 저 멀리 버려진 집 몇 채와 폭격 맞은 집들이 보였어요. 이런 평화는 지옥 속의 전원곡이었지요. 그러나 정찰에 나선 날은 모든 게 달랐어요. 광활한 사막, 재로 뒤덮인 평원,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황무지, 정말이지 나무 한 그루 구름 한 점 없었죠. 침묵에 잠긴 참호가 있을 뿐이었지요.(P36) 전쟁이 시작하고 이미 1년이 지난 즈음 한반도는 그야말로 초토화되어 있었다.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생각지도 못했던 통역이었다. 

가끔씩 미군들이 말하고 연락장교가 통역하고 나머지 군인들이 끝없는 논쟁을 벌일 때면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미군들 전략에 오류가 있거나 그것에 반대했기 때문이 아니라, 연락장교가 마음대로 통역하는 바람에 그런 끔찍한 소동이 벌어졌던 거거든요. ... 발단은 미군들이 참호로 들어가 더 넓게 파라는 뜻으로 '호우hoe'하고 지시한 것이었습니다. 이 말은 '괭이' 혹은 '파다'라는 의미였지만, 우린 자기들 스스로를 비하하거나 우리에게 욕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호그hog', 그러니까 '돼지'라고 들었던 거죠. - P174

그러고 보니 낯선 땅에 가서 소통을 해야 하는데 통역을 어떻게 했을까 싶은 것이다. 전투에서 여러 개의 전략이 충돌하며 갈등이 일어나고 언제 사고가 터질지 알 수 없는 와중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니 생각해보면 당황스럽다. 전쟁만큼 소통이 중요한 때가 있을까. 말귀 못아먹어서 작전이 잘못 전달되면 나도 너도 죽고 다 죽는 일인데 허허. 단 한 번도 통역을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인지 좀 놀라웠다.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언급조차 안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을 것 같다.


공감가는 이야기는 역시 미국의 매카시즘, 반공주의였다.  

몇몇 사람들은 서양이란 단어는 미국을 의미한다는 생각을 머리에서 지울 수가 없었지요. 파나마 아래쪽과 적도 북부를 끊임없이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 도살장 말입니다. ... 우리가 한국에 관해 뭘 알고 있었을까요? 아무것도 몰랐어요. ... 무조건 복종하는 통역사는 괴로워하는 목소리로 그들을 빨갱이, 빨갱이 개자식들, 빨갱이 살인자라고 칭했지요. - P167 

한국은 당시 매카시즘 광풍의 한복판에 있었다. 어쩌면 미국 국내보다도 전선에서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을 오가며 한편에선 자유주의와 다른 한편에선 공산주의의 길로 나뉘어 있었던 것이다. 자유주의 편에 서지 않으면 살아남을 길이 없었다. 콜롬비아도 같은 이념을 강요받았다. 


(이와 이어진다고 볼 수 있는데) 주인공이 홉스봄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으로 흥미로웠다. 홉스봄의 이야기는 지금은 철지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한국이 이념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의 세기가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세기이며 진정한 야만의 극치라는 것은 틀린 소리가 아니라네. 제3차 세계대전은 한국에서 시작됐거든. 많은 사람들이 줄기차게 지칭하던 '냉전'을 말하는 것이네. 한국전쟁은 특정 지역에서 일어난 전쟁이었지만 전쟁터가 아니라 협상 테이블에서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보여주지. 새로운 방식이자 새로운 전략이었어. 미국은 자기들이 한국에서 싸우는 건 북한군이 아니라 중공군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고, 백오십 대의 중공군 비행기들이 사실상 소련인들이 조종하는 러시아 비행기라는 것도 알고 있었네. 그러니까 내 말은 콜롬비아는 사실상 미국의 사주를 받아 한국에 가서 북한군과 싸웠지만, 북한군이 중공군의 사주를 받았다는 것도 모른 채 러시아군과 싸운 꼴이 되었다는 소리야. - P281


그렇지만 이 책을 읽는 일은 어렵다. 포르노 잡지 사진을 제작 및 보급하여 돌려보는 병사들과 유곽과 유흥업소를 드나드는 일을 무훈처럼 떠벌리는 병사들이 계속 등장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전투 고지를 여성의 신체 기관에 빗대어 묘사하는 부분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콜롬비아군은 전투에서 북한군의 공격으로 부모가 사망하여 고아가 된 아이를 부대원으로 들이는데 이들이 보고 배우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기가 찰 노릇이었다. 모성을 찾아, 실연을 찾아 성을 찾아다닌다는 논리가 말이 된다고 보는가? 그저 구실이고 허언이며 집착이자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하지만 이것이 전쟁터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 현실이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하물며 전쟁터 뿐이겠는가). 


파견된 콜롬비아군은 1954년 10월에야 부산을 떠날 수 있었다고 한다. 1953년에 휴전협정이 맺어졌음에도 1년이 훌쩍 지난 기간동안 이들은 전선을 정리하고 봉사하는 일에 시간을 보냈다. 이들이 귀국하자 그야말로 환영 인파들이 가득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보상을 바라고 떠났던 이들에게 실제로는 원하는 만큼 주어지는 것은 없었다. 살아 돌아온 병사 중 몇몇은 범죄의 세계에 빠지기도 했다. 정부는 군대 파견으로 미국에 성의를 보였고 국민에게 체면 치레를 했지만 이들은 정작 돌아온 것이 작지 않았나 싶다. 물론 명예는 다른 일이겠지만(명예가 밥 먹여주나. 실제적인 것이 있어야지^^;). 


이 책을 통해서 콜롬비아군이 한국에 어떤 배경으로 파견되었고(정치적 상황이라던지) 전쟁터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등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혹시라도 읽고 싶은 분들이 계시다면 지금처럼 찜통 같은 계절에 이 책을 읽는 것은 결코 추천하지 않는다(울화통 터짐 주의. 분노 조절 장애 주의). 


"우리가 서로 죽고 죽이는 건 내가 보기엔 정치적 이유 때문이야."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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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전쟁 1494~1559 - 근대 유럽의 질서를 바꾼 르네상스 유럽 대전
크리스틴 쇼.마이클 말렛 지음, 안민석 옮김 / 미지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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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중세(근세까지도)까지의 역사에서 이탈리아의 지분이 크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중세의 역사에서 십자군 전쟁, 종교 개혁, 르네상스까지 이탈리아는 늘 중심에 있었으니까. 서양사를 잘 알지 못해서 틈날 때마다 공부 중이지만 여전히 어렵다. 그래도 서양 중세의 역사(보다는 미술 쪽인 듯)에서 그나마 가장 흥미를 느끼는 부분은 르네상스의 시기인데 이 당시의 미술가들을 유독 좋아하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화가의 그림에는 신이 아닌 인간이 등장했고 인간의 실제 모습처럼 그려졌다. 이탈리아에 갔을 때 라파엘로의 그림을 보았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화가란 그림의 주체에 생동감을 부여해야 함을 그가 그린 그림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달까. 살아 움직이는 그림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던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은 15세기(1494년)에서 16세기(1559년)에 걸쳐 이탈리아 반도에서 일어난 60년간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기 이탈리아에서는 왜 전쟁이 일어났는가. 긴 십자군 전쟁이 끝나고 난 뒤 이탈리아 반도에 있었던 베네치아, 제노바, 피사는 해상 왕국으로 발돋움하며 세력을 확장중이었다. 이때 이탈리아 왕국에 눈독을 들이며 권리를 주장하는 여러 세력이 있었다. 프랑스 왕과 스페인 왕은 나폴리의 왕위를 두고 계승권을 주장했고 대가 끊긴 밀라노 공국의 왕위를 두고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당시 북부와 중부 이탈리아 영토의 많은 부분이 제국의 봉토였음)이 격돌했다. 당시 이탈리아는 여러 왕국으로 나뉘어 있었다. 대표적으로 나폴리, 밀라노, 피렌체, 베네치아, 그리고 교황령의 큰 도시 국가가 있는가 하면 이 밖에도 시에나, 루카, 제노바, 페라라를 비롯한 수많은 소국이 존재했다. 소국들은 서로 동맹을 맺고 연합하여 대국을 상대하고 방어했다고 한다. 

주요 참전국은 프랑스, 스페인, 밀라노 공국, 나폴리 왕국이었다. 여기에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 발칸반도의 국가의 군인들이 참전하며 전쟁 참전국 범위가 확대되었다. 


전쟁의 흐름을 바꾼 몇 차례의 전투가 있다. 


1503년 벌어진 체리뇰라 전투는 프랑스군의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프랑스 기병과 스위스 창병의 공격에 맞서 스페인은 화승총병으로 맞서며 승리했다. 이 전투는 화승총을 사용하여 승리한 최초의 유럽 전투로 평가되고 스페인의 지휘관이었던 곤살로 데 코르도바였는 위대한 지휘관으로 회자되었다.

1508년부터 1516년까지 이어진 캉브레 동맹 전쟁은 베네치아를 상대로 일어났다. 반베네치아 연합에는 프랑스, 스페인, 신성로마제국, 교황령 등이 동맹에 포함되었다. 전쟁 기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이 전쟁하는 동안 동맹관계가 자주 바뀌어 전쟁의 흐름이 복잡했다. 캉브레 동맹 전쟁 중 아냐델로 전투는 1509년 벌어졌다. 전투에서 베네치아가 프랑스군에 지면서 이탈리아에 소유하고 있던 상당수의 영토를 토해내야 했다. 

1512년 벌어진 라벤나 전투는 프랑스군 vs 스페인-교황군 간에 이루어졌으며 프랑스군이 승리했다. 스페인은 교황을 끌어들였지만 프랑스군에 승리하며 참패의 쓴맛을 봐야했다. 그러나 프랑스군도 지휘관인 가스통 드 푸아가 전투 중 사망하면서 그 빛을 퇴색시켰다. 

1515년 마리냐노 전투는 캉브레 동맹의 마지막 전투로 프랑스군과 스위스군이 격돌했다. 스위스군은 당시 유럽 최고의 보병으로 평가받았기에 프랑스군은 수세에 몰렸다. 그러나 이때 베네치아군이 프랑스군에 합류하면서 프랑스군이 최종적으로 승리했다. 프랑스의 지휘관은 이제 막 국왕이 된 프랑수아 1세였고 그는 이 전투로 자신의 능력을 만방에 알렸다.

1525년 파비아 전투는 신성로마제국군의 압승으로 끝났다. 프랑스는 군이 거의 전멸했을 뿐 아니라 국왕인 프랑수아 1세가 포로가 되는 수모를 겪었다. 전투의 결과 프랑스는 나폴리와 밀라노, 제노바에 대한 권리를 포기한다는 서명을 해야 했다. 


전쟁에 가담 인물도 많고 여러 국가가 엮여있다 보니 솔직히 많이 복잡하다. 게다가 짧지 않은 기간의 전쟁인 만큼 여러 차례의 전투가 벌어지기 때문에 넋놓고 보면 흐름을 놓치기 십상인데 책에서 전투의 배경과 전개 과정, 결과를 충분히 설명해주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책의 앞부분에 전쟁의 주요 등장인물인 스페인-합스부르크(막시밀리안 1세, 카를 5세), 프랑스(루이 12세, 프랑수아 1세, 앙리 2세), 교황령(율리우스 3세, 레오10세, 바오로 3세) 뿐 아니라 그 밖의 인물 중 체사레 보르자, 루도비코 마리아 스포르차, 피에로 데 메디치, 샤를 드 부르봉, 루도비코 마리아 스포르차 등 중심 인물들의 사진이 실려 있어 도움이 된다. 

또한 이탈리아 지도를 전체, 북부, 중부, 남부의 부분도로 나누어 놓아 독서 중 관련 지명이 나올 때마다 찾아볼 수 있어 도움이 되었다.


이처럼 이탈리아 전쟁은 서유럽 강대국들이 충돌하며 발생했다. 결국 승리는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가문이 차지했다. 그 결과 이탈리아에서 스페인 황실의 입김이 강해졌다. 전쟁 기술적으로는 보병의 강화, 장창과 화승총의 확산, 대포와 요새의 발전, 직업 군인 제도의 도입 등이 이루어졌다. 또 이탈리아 전쟁에의 교황의 참전은 유럽 전역에서 하나의 제도로서 교황과 교황권이 인식되는 방식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교황이 세속적 목적을 위해 기독교 세력들을 상대로 능동적으로 전쟁을 일으켰다는 점, 그리고 때때로 자기 가문을 군주적 지위로 격상시키겠다는 목적을 위해 일으킨 군사 원정에 교회 재산을 유용했다는 점 등은 로마 교황청을 향한 환멸을 더욱 자극하여 신교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이는 종교 개혁의 빌미가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전쟁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가 알프스 너머로 확산되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는 데 기여했다. 이는 향후 종교 개혁, 과학 기술의 발전과 맞물리며 서양 근대 문명의 기틀을 확산시켰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띤다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전쟁이 중요한데 왜 이제야 제대로 된 한 권의 책으로 정리되어 나왔는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이탈리아 전쟁의 역사를 읽으니 비로소 십자군 전쟁과 종교 개혁, 르네상스까지 비로소 한 흐름으로 정리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러 모로 구입하고 읽기를 잘한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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