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옷들의 금속음을 내며 제후들은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마치 교회에 들어선 것처럼 정중하게 한쪽 무릎을 꿇고 투구를 벗었다.
기사들도 말에서 내려 그들의 뒤를 따랐다.
병사들 중에는 저도 모르게 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하늘로 올리며울음을 터뜨리는 이도 있었다.
모두가 감동에 몸을 떨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태어났을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성도 예루살렘이 지금 그들의 눈앞에,
때마침 붉게 물든 석양을 받으며 조용히 그곳에 있는 것이다. 마침내여기까지 왔다는 감회가 모든 이의 가슴 가득 차오르고 흘러넘치는것을 감미로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을 것이다.
이 순간 제1차 십자군의 전사들은 온전히 겸허한 순례자가 되었다. - P221

그런데 팔레스티나의 이슬람교도들은 왜 고드프루아가 아닌 레몽에게 무혈입성을 요청했을까. 이 문제에 대한 해석은 동서고금 변함없는 ‘뉴스‘에 대한 고찰로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까지의 십자군을 기술한 그리스도교측 기록자와 이슬람측연대기 작가의 공통점은, 십자군에 참가한 제후들 중 고드프루아를 언급하는 빈도가 적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이 종교의 차이와 상관없이 가장 자주 기술한 것은 보에몬드와 레몽이었다.
안티오키아 공방전 때 보여준 보에몬드의 활약상은 주지의 사실이었으니 당연하다 해도, 그때부터 레몽의 이름이 자주 언급되는 것은이 사람의 언행이 항상 떠들썩했고, 따라서 그 시대 ‘저널리스트‘들의 - P251

주목을 끌었기 때문이다.
기록자든 연대기 작가든, 항상 화제를 제공해주는 사람의 언행에 주목하는 성향은 오늘날의 저널리스트와 전혀 다르지 않다.
한편 로렌 공작 고드프루아처럼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아니면 동료들끼리의 분쟁에 끼어들지 않고 담담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유형의 인물은, 뉴스, 바꿔 말해 가십을 제공하는 일이 적기 때문에 언급되는 횟수도 많지 않은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유명도를 재는 기준이 이렇다면, 이슬람측이 받는인상도 그에 좌우되는 것이 당연했다. 게다가 레몽은 제후들 중 가장연장자이며, 이슬람 세계에서는 연장자를 존중하는 기풍이 강했다.
그래서 그들은 제안을 받아줄 사람으로 레몽이 적격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 P252

예루살렘의 대주교는 콘스탄티노플과 안티오키아의 대주교와 함께, ‘아르키베스코보(arcivescovo)‘가 아닌 ‘파트리아르카(patriarca)‘ - P264

로 불린다. 후기 라틴어인 ‘아르키베스코보‘와 달리 그리스어를 어원으로 하는 ‘파트리아르카‘를 나는 ‘대주교(敎)‘라고 번역하는데,
이는 대도시의 종교 지도자라는 의미가 담긴 명칭이다. 예루살렘은대도시를 의미하는 ‘메트로폴리스‘는 아니었지만 그리스도교 최대의성지라는 이유로 메트로폴리스와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었던 셈이다. - P265

병사의 수가 줄었다고 해도 이것을 강행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탄크레디의 정복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또한 그후에산악지대를 사이에 두긴 했지만 대도시 다마스쿠스 영주 두카크의코앞을 태연하게 통과하기도 했다. 두카크는 이를 알면서도 방해조차하지 못했다.
이 에피소드를 기술한 이슬람측 기록은 분기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자신들이 집안싸움만 벌인 것이 원인이다, 즉 프랑크인의 성공은이슬람이 통일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집안싸움은 그리스도교측에도 많았다. 다만 제1차 십자군의주역이었던 제후들은 궁극적인 목표 앞에서는 다른 걸 잊었던 것뿐이다. - P269

성직자는 종교인이므로 정신적인 면을 갈고닦는 데만 전념하고 세속의 자산 등에는 관심이 없을 거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중세의 가톨릭교회는 신도들을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로 재산, 이 시대로 말하자면 토지를 소유하는 데 무척 열심이었다.
게다가 시리아와 팔레스티나는 그리스도교도에게 ‘성지‘다. 그리고예루살렘은 ‘성도‘다. 성지이고 성도인 이상 그 소유권은 교회로 돌아 - P275

간다. 다임베르트 역시 추호의 의심 없이 이렇게 생각하던 중세의 성직자였다. - P276

피사인과 제노바인은 해적을 상대하는 해전과 이슬람교도와의 교역 둘 다에 무척 적극적이었지만, 이 사람들의 활약은 개인이거나 혹은 그 개인들로 이루어진 집단의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제노바는 개인주의가 심해서, 갤리선과 범선처럼 속도가 다른 배들을 한 선단으로 편성하는 것조차 싫어했을 정도다.
그런데 베네치아인은 이들이 과연 같은 이탈리아인인가 하고 놀랄정도로 다르다. 베네치아의 통사를 다룬 『바다의 도시 이야기』에서말한 것처럼, 모든 베네치아인을 ‘베네치아주식회사‘의 사원이라 생각해도 좋을 정도로 항상 한데 뭉쳐 진출했다. - P277

이것이 이슬람 세계를 환호하게 만든 1100년 십자군측의 3대 불행이었다.
고드프루아가 죽었다.
보에몬드는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 잡혀 있다.
레몽은 콘스탄티노플로 가버렸다. - P284

같은 이탈리아인이면서 베네치아인에게서는 그들 같은 적의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베네치아 교역의 주요 대상이 비잔틴제국이나 중근동의 이슬람 국가였고, 북아프리카와의 교역량은 그에 비해 적었기 때문이다. 즉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도에게 습격과 약탈을 당하거나, 선원과 상인이 납치되어 돈을 내고 자유를 얻어야 했던 일이 적었던 것이다. - P304

베네치아와는 반대로 피사와 제노바가 해양국가가 되어 강력한 해군을 갖게 된 것은, 교역에 앞서 북아프리카에서 습격해오는 해적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에서든해군은 해적에 대한 방어책으로 생긴 것이지만, 피사와 제노바의 경우는 이슬람의 해적 대책이 최우선이었다 해도 좋을 것이다. - P305

역사상의 탄크레디는 이상하게도 젊음의 상징처럼 간주되어왔다.
16세기 이탈리아 문인인 타소의 장편시 해방된 예루살렘에서 탄크레디는 청춘 그 자체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또한 19세기에는 조아키노 로시니가 오페라 <탄크레디>를 작곡해 젊음으로 인한 비극을그려냈다.
그리고 20세기에는 루키노 비스콘티가 감독한 영화 <레오파드 11Gattopardo>를 들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알랭 들롱은 늙은 공작 살리나의 조카를 연기하는데, 영화의 원작을 쓴 시칠리아 작가 람페두사는이 혈기왕성한 캐릭터에 탄크레디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지금도 유럽인들, 특히 남유럽 사람들은 탄크레디라는 이름을 들으면 거의 자동적으로, 신의가 두텁고 생기 넘치는, 영원한 젊은이를 떠올린다. - P336

제1차 십자군에 의해 시리아와 팔레스티나 땅에 수립된 십자군 국가는 이들 제1세대가 만들어냈다. 유럽을 뒤로한 1096년부터 예루살렘을 함락할 때까지 3년 동안 정복하고, 그후 18년을 들여 확립해나간것이다.
황제도 왕도 참전하지 않은 제1차 십자군의 주역들은 유럽 각지에영지를 가진 제후들이었다. 그들은 때때로, 아니 자주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분열을 반복했지만, 최종 목표 앞에서는 언제나 단결했다.
이 점이 이기적이고 분열을 반복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였던 이슬람측 영주들과의 차이였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제1차 십자군이 성공한 주된 요인이었다. -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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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오키아를 떠난 이후 여기까지 십자군이 답파한 지역은 오늘날로 따지면 시리아에 속한다. 이 길을 답파하는 데 레몽이 이끄는 군대는 4개월, 늦게 출발한 고드프루아의 군대도 3개월이나 걸렸다. 그런데 이후 레바논을 지나 이스라엘로 들어가 예루살렘에 도착하기까지는 3주밖에 걸리지 않는다. 전원의 생각이 일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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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ek religion of Wisdom perished in a falsephilosophy -‘Oppositions of science, falsely so called.‘
The Medieval religion of Consolation perished in falsecomfort; in remission of sins given lyingly.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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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오키아는 산 중턱에서 오론테스강을 향해 펼쳐진 평지에 건설 - P133

된 도시다. 따라서 도시의 중심은 중앙이 아닌 북서쪽으로 치우쳐 있다. 다만 산을 끼고 있기 때문에 용수가 풍부했다. 그리고 성벽은 견고함 그 자체다. 산 위 가장 높은 곳에는 견고한 성채가 서 있다. 이런 성채는 일본 성의 천수각(天守閣)과 비슷하게, 시내가 적에게 점령당한후에도 방어하는 측이 끝까지 틀어박혀 싸울 수 있는 거점 역할을 한다. 그 외에는 성채가 없다. 이 사실은 안티오키아의 방어가 4백 개나되는 탑으로 중요 지점을 단단히 지키고 있는 성벽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P134

우리가 신앙을 바치는 종교가 번영해야 할 곳은 바로 그것이 발현한 - P156

땅이라는 것이 우리의 확신이다. 이 소망을 실현하는 데는 기존의 국가도 군대도 필요하지 않다. 신도들의 신앙과 의지만이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
그런 우리가 이곳 아시아 땅까지 찾아온 것은, 이슬람의 자비를 얻기 위해서도 아니고, 이슬람의 법을 따르기 위해서도 아니다.
더군다나 우리 그리스도교도는 칼리프 하킴 아래 일어났던 (90년 전의 이야기) 폭행을 잊지 않고 있다. 그때 예루살렘의 성묘교회가 파괴되었고, 그곳에서 참배하던 순례자들은 죽임을 당했다. 그 사건을 통해 우리는 배웠다. 성지는 그리스도교도가 지켜야 하고, 뿐만 아니라영유권을 갖고 지켜야 한다는 것을. - P157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의 셀주크투르크 세력을 결집한 대군의 총사령관인 케르보가는, 이날 처음으로 십자군 전군을 목격한다.
제후들은 모두, 가문의 문장을 수놓은 각양각색의 깃발을 손에 든기수 옆에서 아침 해를 받으며, 둔중하게 빛나는 강철 갑옷으로 중무장한 차림으로 말을 타고 다가왔다. 그 뒤를 따르는 기사들도 강철 갑옷으로 무장하고 오른손에 큰 창을 들고 말을 탄 모습이다. 군량부족으로 말을 희생시켜야만 했던 많은 기사들은 보병으로 싸워야 했으나,
그들도 강철 갑옷과 긴 칼로 중무장했다. 십자군은 일반 보병들도 가슴을 가죽 흉갑으로 보호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의 가슴에 붙은 하얀색 바탕에 붉은색 십자가 다채로운 무리를 통일시켜주었다. 투르크병사의 눈에 비친 십자군은 실제보다 훨씬 대군으로 보였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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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당시의 이슬람교도는, 투르크인이든 아랍인이든 이집트인이든, 어느 지역 출신이건 상관없이 서유럽 사람을 전부 ‘프랑크인‘이라고 불렀다. 또한 비잔틴제국의 백성인 그리스인은 ‘로마인‘이라 불렀다. 비잔틴제국이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로마제국으로 칭해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프랑크인‘이라는 호칭은 대충 정한 것으로 보여도 꽤 적확한 총칭이었다. 사실 유럽인들은 스스로를 ‘유럽인‘이라고 칭하지 않았다.
‘유럽‘이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유럽인‘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P84

지금까지는 계속 길잡이라고만 쓰고 이름을 밝히지 않았는데, 제후들의 십자군이 소아시아를 답파할 때 길잡이 역할을 한 사람에게는어엿한 이름과 지위가 있었다. 이름은 타티키오스, 지위는 그리스군사령관 중 한 명. 즉 황제 직속의 가신이다. 이 타티키오스가 황제 알렉시우스의 뜻을 받들어 행동하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일이었다. - P104

예루살렘을 탈환한 뒤에도 그곳이 계속 그리스도교 도시로 유지되려면, 북쪽에 있는 안티오키아 역시 계속해서 그리스도교 쪽에 있어야한다. 그리고 이 안티오키아를 이슬람측의 반격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북동쪽에 위치한 에데사까지 그리스도교 도시로 만들면 전략적으로 만전을 기하는 체제가 이루어진다. 더구나 그로 인한 이점은 즉각나타난다. 안티오키아를 공격할 때 십자군의 배후가 안전해질 수 있는 것이다. - P110

로마에서 열 수 없어서 대신 프랑스의 클레르몽에서 열린 공의회에서 우르바누스가 제창한 십자군이 실현되었을 뿐 아니라, 우르바누스의 제창에 호응한 제후들의 군대가 이제 실제로 오리엔트에 도착했다. 성도 예루살렘은 아직 해방되지 않았지만 서유럽이 모두 들고일어나 출발한 그리스도교도 군대가그들의 성지인 시리아와 팔레스티나에 도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서유럽의 그리스도교 세계가 받은 충격은 컸다. 이것은 모두 우르바누스 2세의 호소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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