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다른 지배적 담론들, 그중 특히 과학적 인종주의가 의사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었던 것은 은유를 통해서였다. 의사들은 열렬히 외과술을 실행하려고 했으며/하거나 관찰의 신뢰성을 확립하려고 했다. 레즈비언의 ‘남성화된 성욕, 유대인 남성의사내답지 못함, 흑인 레즈비언의 과잉 남성성hypermasculinity [또는 초남성성]에 대한 견해들은 전부 경멸당하는 이들을 서로서로 연결하는 고리들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이와 똑같이 치명적이게도, 특정 성향, 표현, 행위를 특정하게 젠더화되거나 인종화된 집단들의 자연스러운 영역으로 분류하는 작업을 정당화했다. - P240

많은 연구자는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가 정신 치료 요법보다 - P259

우월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정신 치료 요법을 보완한다고 가정했다. 전자는 성욕 그 자체를 표적으로 삼고, 후자는 동성애의신경증에만 관여한다는 것이다. 1940년대에 많은 연구자가런 방법으로는 성적 지향을 거의, 혹은 전혀 변화시킬 수 없다는것(일부 경우에는 오히려 성적 활동이 증가하기도 했다)을 목격했음에도불구하고 의사들은 이후로도 40년간 계속 환자의 호르몬 수치를 조작했다. 의료계가 내놓은 불필요한 선택지들이 뒤죽박죽인 상태에서 호르몬 치료는 외과적 거세보다 좀 더 인도주의적인 대응으로 간주됐다. - P260

1970년대 중반, 되르너는 동성애를 "선천대사이상[또는 선천대사장애]"로 분류하면서 이는 임신부에게 스테로이드호르몬을 주입함으로써 예방될 수 있다고 시사했다. 1980년 되르너는 남성 동성애의 원인을 산전 스트레스 탓으로 돌렸다.
동독 6개 지역에서 성병 전문의들에 의해 등록된 동성애자 남성 865명 중에는 스트레스가 심했던 전시 및 전후 초기에 출생한 사람이 월등히 많았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산전(혹은 주산기[분만 전후의 기간])에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사건들이 동성애의유전적 병인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 P271

과학이 뒷받침된 정치적 백래시는 주변화된 집단의 평등 요구가 가시화할수록 무성해진다. - P283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조직적 문제(일방적 자원 분배, 제도화된 인종주의, 능력주의[또는 비장애중심주의] 등)에 대해 개인적 해결책 (예컨대 복지 수급자라면 자녀 수 줄이기)을 강조한다. 그 결과 단종수술 남용, 인권침해, 고압적인 인구 조절 프로그램과 같은 유사한 방법을 지지할 때의 우파를 연상하게 하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접근법으로 이어졌다. - P290

벅 대 벨 사건의 원고, 캐리 벅은 젊은 백인 여성으로 앨버말리카운티에서 양부모 손에 자랐다. 벅이 후견인의 조카에게 강간당해 임신하자,
그 가족은 벅이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벅을 정신 의료 시설에 입원시켰다. 강간당한 것이 부도덕의 지표로 받아들여지듯, 부도덕은 정신장애의 지표로 받아들여졌다. 지방법원에서 "부도덕하고 성매매를 저지르며 거짓된 일생을 산" 여성으로 묘사된 벅의생모 역시 정신 의료 시설에 수용됐다. 벅은 1924년 버지니아주법률의 시험 사례가 됐는데, 이 법은 "유전병처럼 재발하는 정신이상, 백치, 치우, 정신박약, 또는 간질을 앓고 있는" 수용자의 단종수술을 규정했다." 미 대법원이 8대 1의 의견으로 주 정부가단종수술을 할 권리를 확정하면서 벅이 "사회 부적응자인 자녀의 부모가 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판결한 사실은 오늘날까지도 - P300

악명이 높다. 대법관 올리버 웬들 홈스는 단종수술을 통해 "[단종수술을 받지 않을 경우] 갇혀 있어야만 할 자들을 사회로 돌려보낼수 있고, 그리하여 그 밖의 사람들을 정신 의료 시설에 수용할 수있으므로 모두를 위한 평등에 더욱 가까워질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 판결은 법원에서 뒤집힌 적이 없다. - P301

생어는 아동노동부터 세계대전까지 모든 것의 원인을 번식을 억제하지 않고 내버려둔 탓으로 돌렸다." 우생학적 고려 사항과 ‘해결책‘이 다른 모든 구체책을 압도했다. 생어는 해블록 엘리스를 인용해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을 교육하는 일과 아이들이건강한 상태로 잘 태어나도록 하는 일 중에 선택해야 한다면교육을 포기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발생장애‘가 최우선이라는 믿음, 부적절한 번식을 통해 사회 및 인종이 쇠약해진다는믿음, 그리고 정부 개입에 대한 열망은 우생학을 규정하는 특징이었다. 생어가 제시한 유전성 범죄자 목록(은 물론 생어가 그러한사람들을 묘사하는 데 사용한 언어)은 해리 로플린 등 당대 우생학계유명인사들이 말한 것과 똑같았다. - P310

<산아제한 평론》 편집자들은 산아제한[즉, 피임]을 여성의 주권을 신장하기 위한 자유로운 선택지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외부에서 부과해야 할 인구 조절 장치로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경우에 그 외부는 식민 지배 당국이었다. 벳시 하트만이 지적했듯, 섬나라의 빈곤을 주시하는 미국 관리들은 푸에르토리코 경제를 훼손시킨 자신들의 책임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 P330

・의사들은 여전히 내가 난관결찰술을 받을 것을 고집했고, 나는 그저 "싫어요, 안 받겠어요"라고 반복하고 있었어요. 진통이 너무 심했고, 이러다가 죽겠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똑똑히 아는데, 나는 {단종수술에 동의}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내게 차트를 보여준 간호사가 있었는데, 차트에는 내가 동의했다는 표시가 없었어요. 차트에는 내가 단종수술을 하려는 의사들의 갖은 노력을 거부했다고 적혀 있었어요."
메리 디아스는 공동 원고들이 그랬듯 단종수술을 받은 지몇 주가 지나도록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디아스의 의사는 디아스에게 울지 말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식을 더 낳지 않는 게당신한텐 최선이에요. 멕시코에서는 다들 너무 가난하니까 자식이 없는 게 가장 좋은 거예요." - P374

전미여성기구는 젠더 연관성에 분명 주의를 기울였지만, 지지층 너머에 있는 여성들의 삶에 인종주의 및 계급주의가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자유주의 폐미니스트들은 자신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모든 여성에게 적용되는 오직 하나의 기준으로 삼았다. 미 보건교육복지부 규정에•대한 전미여성기구의 반대는 단종수술을 적극적으로 받으려고하는 여성과 단종수술의 표적이 된 여성이 그 당시든 역사적으로든 그 수술과 관련해 똑같은 위험에 빠져 있으며 똑같은 보호 - P380

가 필요하다는 믿음, 전자의 불편과 후자가 직면한 위기가 유사하다는 믿음에 기반한 것이었다. 이는 사실상 불평등한 대우의핵심 원인인 구조적 인종주의 및 경제적 협박을 단순히 "이상理想에서 벗어난 유감스러운 일탈(들)" 8"‘로 취급하는, 자유주의 담론내에서만 가능한 논리였다. 이처럼 인종 및 계급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려는 의지의 부재 그리고 산아제한이 빈곤을 일시적으로완화해줄 것이라는 유구한 믿음(더 크게는 테크노픽스에 대한 몰두를바탕으로 한 믿음)은 강압적인 인구 조절 전술에 대한 자유주의적지지와 새로운 위협 앞에서의 침묵으로 이어졌다. - P381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임신을 차단한다는 것은 오랫동안 인구 조절론자들의 필수 과제였으며, 장애와 출산에 관한 견해들에서 반복적으로 출현했다. 더 일반적인의미에서 보자면, 이제 ‘태아의 권리‘뿐만 아니라 아직 임신되지않은 사람의 ‘권리‘까지도 양형의 고려 사항으로 참작하는 사법•적 숙의-마치 둘 중 어느 쪽이든 법적 혹은 물질적 실체를 구성한다는 양-는 하나의 섬뜩한 판례를 남겼다. - P396

테크노픽스는 점점 더 암호화된 방식으로 활용됐고, 자유주의자들에게 더욱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했다. 자유주의자들은 의식적이든 아니든 보수주의자들과 합세해 인종, 계급, 젠더(청소년 여부 및 장애 유무에 의해 더 강화됨)를 우생학 프로젝트의 주요 결정 요인으로 확립했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공공 정책 분야의 ‘혁신‘과 손을 맞잡고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양상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여성 및 여자아이들이 먼저 하나 이상의 특정 인구통 - P411

계학적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병리화된 다음, 의학적으로위험하고 헌법에 비춰 의심스러운 ‘치료법‘을 받아들이도록 압박을 당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 P412

임신 후 및 산전 개입이 중심적 위치를 갖게 된 것은 비교적최근 현상이다. 20세기 대부분은 실제 혹은 상상된 장애인들 사이에 임신을 아예 막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20세기 초 우생학법령은 발달 지연자, 정신 질환자, 간질 환자, 신체장애인을 표적으로 삼았다. 1912년 국제우생학대회에서 제안된 ‘연방차원의실험적법률안‘은 모든 연방 병원 ‘수용자‘, 그중에서도 "결함이 있는이민자 및 유전적 결함이 있는 이민자"에 대한 단종수술을 촉구했다. - P418

미국 우생학의 역사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반동주의적 의제와 개혁주의적 의제가 늘 협력한 것은 아니더라도 공통의 목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그럼에도 많은 경우 자유주의는 보수주의, 그리고 심지어 전면적인 파시즘도 이룰 수 없었던 것을 더 밀고 나아갔다. 여성, 가난한 사람, 인종화된 사람, 장애인에 대해서는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 양쪽 모두 온정주의적인 자세를 취했다. 구조적 불평등을 해결하는 데양쪽은 모두 실패했다. 양쪽 모두 미국 국내와 ‘개발도상국‘의 인구 조절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이런 공동의 대의의 기틀을 만들고 조성한 사람이 바로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우상 중 한 명인 마거릿 생어다. 물론 생어 혼자서 한 일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 P430

우리가 할 일은 이렇게 자문하는 것뿐이다. "우생학에영향을 받아 이뤄진 입법 때문에 가장 크게 타격을 입게 될 것은 - P449

누구의 몸인가? 이 지형의 물리적, 정치적 결과로 인해 대가를지불한, 또 앞으로도 계속 지불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우생학적실천이 이어진 지 100년이 넘도록 이 물음들에 대한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 그 대답을 무시한다면 우리 스스로 위험을 무릅써야만 할 것이다. - P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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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섬 미 공중보건국의 부의였던 하워드 녹스Howard Knox는 1914년 《유전학 저널》에실은 한 논문에서 그 명칭의 애매모호함을 예찬했다. 녹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행히 ‘정신박약‘이라는 용어는 대부분의 정신감정의에게 다양한 형태와 정도의 저능을 싸잡아넣을 수 있는 쓰레기통 같은 것으로 간주된다. 또한 법적으로 반드시 제외해야 할 결함으로 규정돼 있으므로 {엘리스섬} 검사관들의 필요에특히 적합하다.
일련의 검사를 통해 엘리스섬 관리들은 "정신박약자이며 결함이 있는 자만이 아니라, 충분히 건강해 보이지만 나중에 허약해질지도 모를 "잠재적 결함이 있는 자"를 가려내기 시작했다. - P78

우생학자들은 히스테리로 부풀려진 교리라면 그게 무엇이든 사용할 준비가 돼 있었다. 이 경우, ‘순수한‘ 앵글로-게르만 혈통의 보존은 적색 위협에 대한 최후의 방어책이었다. 볼셰비즘에 대한 보루로서의 최근 우생학 이론을 보자면, 미국기업연구소의 벤 J. 와튼버그Ben J. Wattenberg가 1987년에 한 경고를 들 수 있다. 그는 공산주의 국가 여성들이 미국 여성들에 비해 어머니 한명당 자식을 1.8~2.3명 더 낳고 있다며, 미국 여성들이 이를 따라잡지 않으면 미국은 "자유를 증진하고 수호하기 어렵다"는 점을깨닫게 될 것이라 말했다. 와튼버그는 미국 내 생식을 장려하고세계 무대에서의 경제적, 군사적, 이데올로기적 손실을 막기 위해 현금 형태의 특별수당 지급을 권장했다. 와튼버그의 지지자중에는 잭 켐프Jack Kemp와 (미국이 "유전적 자살을 저지를 수 있다고 말한) 팻 로버트슨Pat Robertson이 포함됐다. - P98

로플린은 "이민자에 대한 검사를 그들의 자국에서 받게 하고, 필요한 신체, 도덕, 위생, 정신 및 가계 혈통 검사를 통과한 이민 예정자에게 미국 영사가 개별적으로 ‘이민자용 여권‘을 발급하도록 할 것"을 권고했다. 로플린에게는 바람직하지 못한 이민자가 어떻게든 이 망을 뚫고 들어와 미국에 입국할 경우의 대비책도 있었다. 재외국인에 대한 국가 등록제를 촉구했던 것이다. "우리는 국가의 보존에 관심이 있는 건실한 미국인으로서 이민자의 귀화 및 미국화 과정을 추적해야 한다. 정신이상, 정신박약, 도덕적 타락 행위, 혹은 무기력 때문에 이민자가성공하지 못할 경우에는 그를 국외 추방해야 한다." - P110

우생학자들은 이민 및 인종 간 결합의 직접적인 결과로 범죄, 질병, ‘정신박약‘이라는 망령이 국민 혈통을 갉아먹을 것이라는 두려움에만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생학자로서, ‘블러드퀀텀‘ 도표 작성자로서, 유전자가 부채질하는 범죄 급증 및 ‘인종 퇴화‘를 다루는 통계학자로서 그들은 앞으로 국가의 시민을 더는 쉽게 분류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맞닥뜨리고 있었다. 그들은 미국이 과거에는 에스닉 관점에서 동질적이었다는 허구 그리고 그런 미래의 중요성을 옹호했다. 그들이 그어놓은 경계선이 흐려진다면-신화 속에서든 현실 속에서든 - P130

백색 국가 건설이라는 게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인종적 순수성에 대한 그들의 지속적인 탐구는 유럽에서 구체화되고 있던 우생 정책들과 친화력을 갖게 되었다. - P111

우생학은집단 병리가 사회경제적 조직 방식을 미리 결정짓는다고 강력히주장함으로써 불평등을 무너뜨릴 위협 없이 불평등을 설명할 손쉬운 길을 제공했다. 이런 패러다임 속에서 평등한 접근권과 보상과 지위를 가질 수 있는 사회는 리처드 C. 르원틴 Richard C. Lewontin이 서술했듯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했다. - P159

인과론은 도덕적 타락 행위에서부터 출발해(흔히 인종에 따른) 해부학적 결함으로, [특정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생물학적이고 우생학적인 주범으로, 정신 질환으로, 호르몬 불균형으로까지 이르렀다가 다시 우생학으로 되돌아왔다. 이런 패러다임들은 하나가 다른 하나를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인종, 범죄, 도시화, 계급에 관한 우생학적 견해에 자주 기대고 이를 지지하기도 했다. 이 패러다임들은 가산적이므로 그 어떤 것도 이전의것을 바꾸지 않았고, 동성애 혐오에 대해 실질적으로 아무런 이의 제기도 하지 않았다. - P180

동성애의 원인이나 치료법을 찾는 것이 동성애에 일탈이라는 꼬리표를 단다는 점, 동성애에 대한 의학적 또는 정신의학적 병리화가 이성애를 정상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없다. 미 국립보건원은 어쨌든 이성애 유전자를 찾는 일에는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다만, 아마도 의도치 않게 연구를 하는 경우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니 1869년 헝가리 작가 카로이 마리아 케르베니 Károly Mária Kertbeny가 만든 ‘동성애자 homosexual라는 용어가 ‘이성애자 heterosexual‘라는 용어보다 먼저 통용된 것도놀랍지 않다. - P183

19세기의 마지막 몇십 년을 시작으로, 소도미를 처벌하는 주 법률들이 내리 통과되거나 더 다양한 성행위를 포괄하도록 개정됐다. 의사들은콜로라도주 수정헌법 제2조 소송 전략을 예고하기라도 하듯, 로비스트들 사이에서 합법적인 존재감을 뽐냈다. 거세 등의 방식이 법원 명령에 따른 처벌에서 의료적으로 승인된 치료로 전환된 데는 특정한 호혜주의가 관련돼 있었다. 의사들은 자기 진단이 법적으로 승인되고, 따라서 자기 평판 및 영향력이 굳건해지는 것을 지켜봤다. 동시에 사법제도는 신체적 처벌을 가하면서도 여전히 피고인/환자, 대중, 그리고 국민 유전자군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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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생학은 언제나 극히 기민한 이데올로기였다. 우생학은 스스로 힘을 실어주기도 하고 동원되기도 한 운동들, 즉 국가주의, ‘개혁 지향‘ 자유주의, 절대적인 동성애 혐오, 백인우월주의, 여성 - P56

혐오, 인종주의와 따로 떼어낼 수 없다. 우생학이 오래도록 살아남은 것은 순전히, 어떤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오명을 뒤집어쓰더라도 나머지 사람들은 다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런 운동들과공모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생학이 모든 유형의 편견에 호소력이 있다는 것은 배제나 유전적 추정이나 외과 수술의 대상으로 지목된 개인들이 대부분 다중적 정체성을 가지며, 어느 하나가 아니라 그 이상의 표적 집단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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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인들은 중국 철학의 엄숙주의에 대해 속죄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이었다. - P420

무대에는 소품이나 무대 장치가 거의 없었으며 출구도 없었다. 엑스트라를포함한 모든 출연 배우가 연극이 끝날 때까지 무대 위에 앉아 있다가 차례가되면 일어나 연기를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보조자가 그들에게 차를 대접하기도 했다. 다른 직원들은 관객 사이로 다니면서 담배와 차, 과자를 팔기도 하고여름밤에는 얼굴을 닦을 뜨거운 수건을 제공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례적으로 훌륭한 연기가 이루어지거나 큰 소리가 나면 무대에 집중했다. 배우들은 대사가 들리도록 큰소리로 고함치듯 해야 하는경우가 많았다. 아울러 사람들이 배역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가면을 썼다. … 배우들은 곡예와 춤의 전문가가 되어야 했다. - P439

중국에서 지혜 추구란 공허한 형이상학이 아니라 개인 계발과 사회 질서를 목표로 삼는 실증 철학을 의미했다. 마찬가지로 아름다움을 향한 열정이란 인간사와 무관하게 예술 형태만 추구하는 어설픈 예술 애호주의나 비전적(的) 예술 지상주의가 아니라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현실적으로 접목시켜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물건이나 도구를 장식하려는 노력이었다. 중국은자체의 이상들을 굽히고 서구의 영향을 받아들일 때까지는 예술가와 장인 혹은 장인과 일꾼을 구별하지 않았다. - P454

말이 변하고 다양해졌음에도 동일한 글자체가 이렇게 계속 유지된 덕분에 중국은 사상과 문화를 보존할 수 있었으며, 동시에 보수주의가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다. 그 덕분에 유서 깊은 사상들이 중국을 지배하며 젊은 세대의 정신세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중국 문명의 특징을 상징적으로보여주는 것이 바로 독특한 글자체가 지닌 이런 현상적 특성인데, 다양성과 성장 속에서의 통일성과 철저한 보수주의, 짝을 찾을 수 없는 연속성이 그것이다.
이 글 체계는 어떤 의미에서 보더라도 대단한 지적 업적이었다. 그 체계는 (사물과 활동, 속성으로 이루어진) 온 세상을 뿌리가 되는 "부수"라는 몇 백 개의 부호로 분류해 놓았고, 그 부수들을 1500개 정도의 서로 구별되는 표지들과 결합시켜 완성된 형태를 통해 문헌과 삶 속에서 사용되는 개념을 모두 표현할 수있게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 P498

그들은 조상을 존중하지만 도교와 불교의 사원에 대해서는 승려들과 일부 여자들만 관심을 보일 뿐이다. 그들은 역사상 가장 세속적 정신을갖고 있다. 그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이생이다. 그들이 기도할 때 구하는 것은낙원의 행복이 아니라 여기 이 땅의 복이다. - P515

그들은 서양의 과학과 방법론, 역사, 사상 등을 가르치는 신식교육을 감사하고 흠모하며 마음껏 받아들였다. 주변에서 보는 편의 시설과 활기찬 생활, 서양인의 개인의 자유, 국민들의 참정권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서양철학을 공부했으며 조상들의 종교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 아울러 조국의 문명이 지닌 모든 요소에 반기를 든다는 면에서 교육자로서의 위상과 새로운 환경의 격려받는 존경스러운 진보론자라는 위치를 즐겼다. 해마다 국적을 잃은 이런 수천 명의 젊은이가 중국으로 돌아와 조국의 느린 속도와 물질적 퇴보에 대해 불만을 쏟아 놓으며 모든 도시에 연구와 반항의 씨앗을 뿌렸다. - P540

이 나라는 화려함과 몰락, 죽음과 부활을 되풀이하며 300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가장 창조적이었던 여러 시대에서 볼 수 있는 모든 물리적 정신적 활력을 지금도 여전히 보이고 있다. 세상에서 이들보다 더 활기차거나 보다 지적인 민족은 없다. 여건에더 잘 적응하거나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더 크거나 고통을 더 잘 이겨 내거나, 역사를 통해 차분하게 인내하고 끈질기게 회복하는 법을 더 잘 배운 민족은 없다. - P556

신도는 어떤 신조도 정교한 의식도 도덕률도 없었다. 특별한 제사장 제도도, 불멸의 존재나 하늘에 비위를 맞추는 교리도 없었다. 신자에게 요구된 것은 이따금의 참배, 조상과 천황과 지난 과거에 대한 숭상이 전부였다. - P566

일본 봉건 사회를 움직인 기본 원리는 신사(神)는 모두 병사이고 병사는 모두 신사라는 것이었다. 신사는 병사이기보다 학자여야 한다고 생각한 평화 시대 중국과 일본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 P583

이 고대와근대 간의 전쟁에서 근대는 고대인을 드높여 찬미함으로써 승리를 거두었다. 간가쿠샤, 즉 (친)중국적인 학자들은 자기 나라를 야만으로 폄하하고 모든 지혜는 중국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중국 문헌과 철학을 해석하고 주석을 다는 것으로 자족했다. 와가쿠샤, 즉 (친)일본적인 학자들은 이런 태도를 반계몽적이며 비애국적이라 비난하고, 국민에게 중국을 배격하고 자체의 시와 역사 속에서 힘을 되찾자고 호소했다. - P616

이들 판화는 처음에는 손으로 색깔이 덧입혀지다가 1740년경에 세 개의 목판이 사용되었는데, 첫 번째 목판에는 무채색을 두 번째는 일부분 장밋빛 붉은색을 그리고 세 번째는 군데군데 초록색을 칠해 종이를 눌러 찍었다. 그리고 1764년에 마침내 하루노부가 최초로 다채색 판화 제작에 성공해 호쿠사이와 히로시게의 생기 넘치는 소묘를위한 초석을 닦고, 문화적 병목 현상에 걸려 새로움을 갈구하던 유럽인에게 시사적이며 자극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우키요에(浮世), 즉 풍속화는 이렇게 탄생했다. - P655

한 민족의 제도와 관습, 예술, 도덕은 수많은 시행착오가자연스럽게 정선되고 전 세대의 정형화되지 않은 지혜가 축적된 결과로서, 한철학자의 지성이나 연구자의 지력으로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하물며 공정하게 평가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 P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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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황제와 함께 도피 길에 올랐던 바로 그 참모들이었고, 청나라 안에 유럽인들이 들어와 있는 것을 몹시 싫어한 바로 그 만주족매파였다. 그들은 새로운 조약의 폐지를 꿈꾸었고, 외국인들에 대한공친왕의 온순해 보이는 태도를 의심스러워했다. 그들이 권력을 잡게되자, 외교 기관을 신설하려는 그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그는 유럽인들을 달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려고 전담 기관을 따로 만들어놓고 청나라의 남은 힘을 태평천국과의 전쟁에 다 쏟아붓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게는 그 섭정들이 정부를 맡는 것이 매우좋은 징조였다. 황제의 궁에 있는 그의 주요 후원자 숙순이 새 섭정의일인자였기 때문이다. - P411

양쯔강에서는 외국 증기선이 돛과 노를 사용하는 중국인들의 배보다 경쟁에서 훨씬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었다. 미국남북전쟁의 발발로 중국의 조약항들이 영국의 무역 경제 붕괴를 막아줄 수 있는 미개발 자원으로서 새로운 중요성을 띠게 되었다. 그런데어쩌다보니 그 항구들은 중국 전쟁 지역의 한복판에 위치해 있었다.
미국이 점점 더 깊은 혼란에 빠지면서, 이 상황은 영국이 이전에 중국에서 취했던 느긋한 정책에 대한 재평가를 촉발했다. - P426

1861년 4월 17일, 에이브러햄 링컨은 남부연합의 모든 항구를 봉쇄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하나의 전쟁 행위로서, 국제법상 이분쟁이 단순한 반란이 아니라 내전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에 영국정부는 5월 13일 남부연합의 교전국 지위를 인정한다고 발표했다. 이 - P426

것은 영국이 미국 남부를 불법적인 반란군이 아니라 권력을 다투는별도의 정부로 대하겠다는 의미였다.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으로, 영국은 자국민들에게 양측 사이에서 중립을 지킬 것을 요구했다. - P427

그에게 굉장한 지위와 명예를 내린 것은 중앙 정부가 그로 하여금 목숨 바쳐 청나라를 반란군으로부터 지키게 하려는 가장 강력한유인책(사실 유일한 유인책)이었다. 그리고 난징은 가장 큰 상이었다.
난징은 단지 반란군의 수도가 아니라, 전통적으로 장쑤성, 안후이성,
장시성을 관할하는 총독의 권좌가 위치한 곳이었다. 태평천국이 패배한다면 그곳은 증국번의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동생 증국전이 난징을 치기 위해 후난성에서 새로운 군대를 모집할 때, 그리고 제자 이홍장이 새로운 안후이군을 조직할 때, 증국번은 태평천국 수도의 탈환과 그곳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영원한 개인적 영광(자기 자신과사랑하는 형제들과 자기 가문과 그 가문의 후손들을 위한)에 온 마음이 쏠려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 이것이 증국번으로 하여금 청나라에 계속충성하게 하는 이유였다. - P464

겨울 중에 태평천국의 공격이 있을 게 거의 확실시되고 영국과프랑스의 보호를 받는 것이 보장되지 않는 가운데, 상하이의 부유한중국인들은 프레더릭 타운센드 워드 휘하의 돈이 많이 드는(그러면서도 거의 효과가 없는) 외국인 용병 외에는 의지할 데가 없었다. 세일럼태생의 ‘필리버스터‘ 워드는 높은 보수와 무제한적 약탈에 대한 계속된 약속에 이끌려, 그의 용병 활동을 멈춰 세우려는 영국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계속했다. - P470

증국번과 상하이 향신은 마침내 일치점을 찾았다. 향신은증국번의 군대가 강 하류로 내려와 자신들의 집과 생계를 지켜주기를바랐고, 증국번은 상하이를 난징 원정을 위한 자금 조달 수단이자 쑤저우 공격의 거점으로 여겼다. 양측 모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었지만, 그들의 당면 목표는 같았다. - P486

그들이 목표로 삼은 언덕은 꼭대기의 석축 요새에 의해 지켜지고있었고, "꽃이 비처럼 쏟아지는 누대"라는 뜻의 ‘위화타이‘로 알려져 있었다. 이 이름은 옛날, 숲이 우거진 언덕에서 설법하던 한 승려가 하늘을 크게 기쁘게 하자 하늘에서 꽃잎들이 떨어져 화사한 소나기처럼 그의 주위에 나부꼈다고 전해지는 행복했던 시절에 붙여진것이다. 이제 나무들은 울타리와 감시탑을 세우는 데 쓰이느라 모두베인 상태였다. 꽃은 없었다. 비라고는, 후난군 병사들이 진지를 구축하고 기슭에 참호를 파기 시작할 때 그들 발밑의 갈색 흙을 진흙으로만든 축축하고 우중충한 보슬비뿐이었다. - P524

파머스턴은 5월 20일 하원에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중국과의 무역이 우리에게 상업 활동의 광대한 장을 열어주리라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있어왔으며, 무엇보다 대중국 무역이 크게 확대된 덕분에 우리가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로 인해 우리의 상업과 제조업이 받은 불행한 방해를 재앙 없이 헤쳐나갈 수 있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78 즉, 한쪽 문이 닫혔을 때 다른 쪽 문이 열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 정부의 관리인과 하인들이 국가적 양심을 놓고 갈등할 때도, 또한 그 갈등이 지구 반대편에서 혼란스럽고 모순적인 정책들로 표출될 때도(중국에서 전진했다가, 후퇴했다가, 용병처럼 되었다가.
원칙을 따랐다가, 만주족 왕조를 응원했다가, 그 왕조를 매도했다가), 증국번과 그의 군대는 단일한 불굴의 목표에 끊임없이 집중했다. - P590

7월 28일 증국번이 심문을 넘겨받았을 때, 마침내 내전의 두 총지휘관, 비바람을 견뎌낸 백발의 두 총지휘관이 처음으로 직접 마주하게 되었다. 한쪽에는 떡 벌어진 어깨의 증국번이 있었다. 그는 피곤한 눈의 학자였고, 그의 긴 수염은 회색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다른쪽에는 강단 있어 보이고 안경을 쓴 이수성이 있었다. 그는 숯 굽는일을 하다가 한 나라의 군대를 지휘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나던 때와는 너무도 달랐다. 이 대등한 두인물 사이에는 회한과 존중의 애틋한 분위기가 감돌지 않았다. 패배자에게 그것은 화해의 서곡도, 굽이치는 농장에서의 황혼기의 서곡도아니었다. 이 전쟁은 항복이 아니라 전멸로 끝났다. - P617

결국 외세의 개입과 태평천국의 몰락은 잘못된 확신에 대한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이는 문화와 거리를 초월하여 우리가 인지하는 관련성(근본적으로 인간의 덕성은 매한가지라는 우리의 바람, 내면으로들어가면 우리는 어쨌든 모두 같다는 우리의 믿음)이 때로는 우리의 상상이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또한우리는 우리를 다른 문명과 분리하는 어두운 창문을 꿰뚫어보는 것을기뻐하고, 저편에 드리운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익숙한 형상들을 발견하며 신이 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가 단지 우리 자신의 반영을보고 있을 뿐임을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한다. - P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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