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을 대상으로 하는 테러 행위는 스스로의 "내면"이 군중에 합류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엘리아스 카네티가 군중과 권력』에서 보여준 통찰을 보강해줄 시각이다. 혁명 군중은 터져나온자신의 "내면"을 육화한 존재다. 상징이 아닌 육화다. 군인 남성에게 혁 - P638

명 군중은 역겨운 체액의 혼합물을 완벽하게 구체화한 무엇으로 느껴졌다. 이제 무의식은 더 이상 생산력이 아니라 육체적 산물이 되었다. 일단 풀려나면 통제 불가능한 물질이 되어서 외부의 무도한 군중에 합류해 육체 경계를 집어삼킬지도 모른다. - P639

사고의 질서가 얼마나 우리 사고를 규정짓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남성/여성, 통제/무통제, 정확/모호, 밖/안, 의식/무의식 등 수많은 반대말개념쌍이 특정 질서를 코드화하며 지배 관계를 안정화시킨다. 지배적질서에서 "아래"는 옳지 않다.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단독자"
"고급문화"는 복된 총체성을 추구하지만, 그들에게는 육체적 완결성이결여되어 있다. 그래서 압제를 휘두를 "아래"가 필요한 것이다. - P697

마르크스주의가 주장하는 계급 없는 해방 사회는 이들이 보기에 "인종 혼합"에 다름 아니며 살인이다. 파시스트적 상상력이 마르크스주의적 유토피아를 결정적으로 때려잡은 비결이 여기에 있다. 계급 없는 사회를 상상하는 것을 가로막는 것은 바로 육체에 각인된 구별성이다. 내면은 엄연히 외부가 아니다. 남자는 여자가 아니다. 위는 아래가 아니다.
군중이 사회를 이끌어서는 안 된다 등등.
시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은 죽어 마땅하다. 지배는 생존에 있어 필수다. 자연법칙이다. 양성 관계는 대립이 필연적이다.
인종 간 투쟁은 생존 투쟁이며 자연법칙이다. "아랫것들"은 밑바닥에머무르는 것이 순리다 등등.
이 모든 이유로 공산주의는 있어서는 안 될 존재다. "지상낙원"을 세울사상이라니, 가만둬서는 안 된다. 인류 망할 소리가 아닌가! - P730

"국가"가 필요한 희생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누가 희생해야 할까? 나치당 지도층이 희생을 요구한다면 아마 자기 자신의 희생은 아닐 것이다. 희생해야 하는 것은 언제나 타자다. 즉 하층민, 여성, 군중, 피지배계급이다. "국가"의 사나이는 "희생을 감수하려는 피"32를 지녔다고 브로넨은 칭송한다. 이는 총통에게 전쟁의 제물을 바쳐야 할 때, 자신 말고 남을 죽일 때에만 "끓어오르는" 피다. - P748

파시스트 연설자는 청중을 단순한 수용자로 놔두지 않는다. 오히려 연설 속 정신적 "내용"의 부재를 통해 말할 수 없는 것을 나름대로 말하려 한다. 군중의 막혀 있는 욕망을 일깨운다. 욕망은 그의말에 반응하지만,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형성되기 시작한다. "총통과
"군중"은 위계적 공생 관계를 이루고 "통일성"과 "총체성을 갈망한다.
이러한 관계 형성은 절대 논박으로 이길 수 없다. 경제적 혹은 여타
"이해관계"적 관점으로는 결코 분석되지 않는다. 그러한 방식으로 "설명 가능한 "역사적 주체는 잘못된 추상에서 기인한 허구일 뿐이다. 우리에게도 존재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맞설 해독제는 아마 정치적 행동과 상황을 만들어내는 데 있을것이다. 파시즘과 딴판인 형태의 군중 형성으로 집단성을 느끼는 경험이 중요하다. 개별분자적이고 아름답고 쾌락적이면서도 자아가 보호되는 형태의 총체성 형성은 가능하다.않고 안이러한 방법을 모색하고 싶다면, 좌파는 이제 집단적 관행에서 벗어나 다시 스스로 분자적 군중으로 변모해야 한다. - P798

그들의 "자아"는 리비도가 내면으로부터시작되어 신체 외곽부로 확산되면서 동일시를 통해 형성된 것이 아니다. 그들의 "자아"는 외부로부터 덧씌워졌다. 외부적 구조가 자아의 경계를 점령해 들어오는 것은 아마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때려서 키우는 부모, 때려서 가르치는 교사와 스승. 자기네끼리 서열을 정하려고 치고받는 청소년들. 군대에서는 끊임없이 경계선이 어딘지 의식하고 있어야만 한다. 금기선이 어딘지 똑똑히 알아야만 한다. 결국 작동하고 통제되는 육체 갑옷이 "육성된다". 철통같은 방어벽의 거대한 구조속으로 순조롭게 결합될 수 있는 능력이 몸에 익는다. 군인 남성의 육체갑옷이 곧 그들의 자아다. - P840

프로이센 사회주의 공식은 실체 없는 허상이었다. 부하가 상관을 추월하는 일은 거의 없다. 한번 선임은 영원한 선임이다. 위에서 까라면 까는 거다.
훈련 교관 역시 프로이트가 만들어낸 사랑받는 지도자상과 아무 관련이 없었다. 군인 남성이 스스로의 "자아-이상ich-Ideal"과 동일시하는
"아버지"와 교관은 전혀 달랐다. 오히려 완전히 반대였다. 사회에서는변변찮은 인간이 그저 주어진 권력을 휘두르면서 성인 남자들을 가혹하게 굴렸다. 군대 밖에서 그리고 실제 전쟁터에서도 모든 면에서 잘난 게없는 인간인데 말이다. - P855

파시즘은 욕망을 급진적으로 장악했다. 욕망을 뚜렷하게 형식화했다.
피가 흘러야 한다! 밑바닥까지 뒤틀린 욕망의 형식이다. 독일공산당은욕망의 현실 생산력을 이해하지 못했다. 해방의 쾌락, 새로운 연결의 쾌락, 새로운 흐름의 해방이 주는 쾌락을 인식하지 못했다. 대신 욕망의방향을 틀어 정교한 전략 전술로 만들려고 했다. 그동안 파시즘은 외쳤다. 독일이여, 깨어나라! 그 말을 듣고 여기저기서 부활한 "잠들어 있던자들이 있었다. 썩어가던 내장에서 "죽은 자들이 되살아났다". - P871

* 군인 남성의 자아는 혹독한 군사훈련으로 바짝 군기가들어간 육체적 태세의 형태로 존재한다. 이는 당연하게도 안정적이지못하다. 근육은 자아를 건설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재료다.
그의 내면에는 언제나 혼란스러운 충동이 가득하다. 그는 안간힘을다해 외부에서 부과된 육체 갑옷을 보존한다. 총체성의 부속물인 안정화된 사회적 자아가 있기는 하지만 진정 그의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 P959

남근의 본질은 사회적인 반면 항문의 본질은 사적이다.3항문에는 사회적 리비도 기능이란 것이 없다. 항문의 기능은 오직 배설적 성격을 지니며 사적일 뿐이다. [...] 사적 인간이 개별적이고 수치심을 지닌 존재로 양성되는 과정은 "항문적"이다. 반면 공적 인간의 양성은 "남근적"이다. 항문은 남근이 지닌 양가성, 즉 음경 Penis과 남근Phallus의 이중적 실존을 전혀 갖지 않는다. 음경을 보여주는 행위는 부끄러운일이지만, 위대한 사회적 남근을 보여주는 일은 명예롭다. 남근은 사회적 역할을 확보한 남성에게만 있다. 반면 항문은 모든 인간에게 있다. 항문은 철저히 자신에게 속한 것이며 완전히 은폐되어 있다. - P1026

동성애는 하나의 틈새다. 이성애의 공포스러운 강박적 코드화, 이른바 정상성, "여성성"으로 코드화된일반적인 영역에서 절반쯤 허용된 쾌락 등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틈새다. 동성애는 자신이 "부르주아답지 않은" 존재성의 증거이자, 용기있는 비범성의 증거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종류의 "동성애는 섹슈얼리티가 되지 못한다. 이들이 도망치고자 하는 이성애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코드화되어 있다. 이들에게 동성애는 일탈, 위반, 불량 청소년의 비행, 변태적 유희, 스스로를 테러하는 자해 행위여야만 한다. 이러한 의미체계의 동성애는 남자들 간의 사랑이 아니다. 이렇게 행해지는 일탈은성적 코드의 해방적 탈코드화가 되지 못한다. - P1043

"동성애"는 의학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다. 동성애 - P1059

"평화" 시기에 해당 연령층 남성들은 권력 행사에서 배제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권력이란 사회적 삶의 - P1076

핵심적 기능이었다. 이들은 몸만 다 큰 아이들 같았다. 인디언 모험담,
세계 정복, 세상의 풍기문란을 일거에 쓸어버릴 제4의 빙하기 망상11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지난 50년간 인류가 달성한 위대한 산업적 성취를 바람직하게 이용할 방법과 당위성은 아예 생각조차 못 했다.
독일 제국주의는 이들을 필요로 하면서 동시에 이들을 적대시했다.
제국주의는 모순적 양면성의 형태로 나타났다. 자본주의로서의 제국주의는 이들에게 혐오스러웠다. 군사주의로서의 제국주의는 이들에게 힘을 주고 삶을 약속했다. - P1077

혁명과 복수의 욕망을 정치적 범주로 표현하자면 각각 "극단" 좌파 및극단 우파에 해당된다. 극우와 극좌는 서로 닮아 있다. 양자 모두 부르주아적 부조리가 가득한 일상적 방식을 거부한다. 죄책감만 유발하는숭고한 망상적 위선을 거부한다. 교묘하게 의무가 은폐된 이중 구속을거부한다. 실컷 고생만 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자발적 희생은하기 싫다. 아무리 안락한 뒤안길이라도 사양한다.
혁명가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 존재와 상황을 인식하고자 한다. 특히 현상의 다양성을 인식해야만 한다. 반면 파시스트는 세상을 재료 삼아서 거대한 단일체와 새로운 총체성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 P1097

더 나은 삶에 대한 꿈은 실질적으로 파괴되었다. 청년들은 희망을 잃었고 울분으로 가득했다.
거기에 바이마르 공화국의 수많은 이중 전선 계층 청년이 느꼈던 감정이 더해졌다. 그들은 무언가를 빼앗겼다. 자신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것, 누릴 자격이 있던 것을 빼앗겼다.
독일의 위대한 승리를 이끌어낼 사명감을 지닌 채 제1차 세계대전에징집되었던 수많은 젊은이는 어마어마한 상실감에 시달렸다. 위대한 미 - P1139

래에 대한 약속과 기대를 품고 전쟁터로 끌려갔다. 그들은 죽음을 무릅썼다. 잠시만 격렬하게 전쟁하면 선택받은 민족이 되어 유럽을 제패하고 더 나아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믿었다. 독일인이니까, 가장 우월한 인종이니까.* - P1140

독일 및 대부분 유럽 국가의 노동 정당들은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부르주아가 이론적으로 장악하고 있다. 이는 정치경제학적 분석이 예전 - P1163

부터 지금까지 전략 논쟁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경제학적 문제의식이 중심적이라는 것은 부르주아적 개인 특유의 모순이 발휘된 결과처럼 느껴진다. 즉, 계획적 연구 능력, 자연 착취능력 및 스스로의 본성에 대한 무지 등이다. 부르주아적 자아는 세상을조작, 정복, 인식 가능한 대상으로 여긴다. 감정의 정량화 가능성이라는발상, 지배를 염두에 둔 심리경제학이라는 발상 등은 부르주아적 자아에게 매력적이기만 하다.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드넓은 지도에 찍힌 흰점에 불과하다. 즉 검은 대륙이다. - P1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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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군인 남성은전통적인 정신분석학에서는 무의식으로 숨겨야 마땅할 판타지를 절대숨기려들지 않는다. 기를 쓰고 반드시 떠벌린다. "거세 불안"은 의식적이다. 공산주의 총잡이 빨갱이 계집도 마찬가지로 의식적이다. 따라서결론적으로 군인 남성들에게는 억압 기제가 전무하거나 거의 없었다. 이들은 집단적으로 정신증적 / 변태적 심리 구조를 지닌 사람들이 아니었다. 정신적 표상 수준에서 꿈 분석 기법으로 언어를 분석했는데도 아무것도 발견한 게 없다면, 정말로 억압이 존재하고 욕망/공포가 숨겨져있을 곳에서 아무것도 발견한 게 없다면 어떻겠는가? 무의식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주어진 텍스트를 그 자체로 읽어보면 필연적으로 결론에 도달한다. 주관적 - 객관적 요소, 의식적 - 무의식적 생각과행동, 프롤레타리아 - 부르주아, 공산주의 - 파시즘 등의 상반된 개념쌍은 텍스트 이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 P148

"좋은" 어머니 상은 분열되어 있다. 하나는 자식을 한없이 사랑하고지켜주는 자신의 어머니다. 특히 아버지로부터 자식들을 지켜낸다. 다른 하나는 강인한 어머니다. 대개는 동료 등 남의 어머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길러낸 아들이 죽어도 눈썹 하나 까딱 않는강철 같은 어머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부드러움과강함 모두를 칭송하지만 다만말을 아끼는 편이다. 어머니에대한 언급은 부인에 대한 언급보다 훨씬 더 드물다. 하지만 과장된 어휘가 사용된다. 어머니는 "선하신 천사"이며 "최고의 여성"이고 "고향"이다. "무한한 사랑"을 바친다. "세상 그 무엇보 - P167

다 더 사랑한다. 이 정도 사랑은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독일만이 받는다.
또한 어머니의 특성은 순백의 귀부인간호부의 특성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한편으로는 사랑하고 보살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차갑고 도도하며 영웅적이다. - P168

프로이트는 이를 일찍이 간파했다. 억압적 부르주아 도덕관념 아래서 자라난 소년은 부모가 침실에서 하는 행동을 죄악으로 이해한다. 그리하여 어머니가 하는 짓을 창녀 짓과 동일시한다. (Freud, GW VIII, p. 73; XIV, p. 418.)이러한 이해 방식은 근본적인 반박을 못 할 뿐 아니라 근본적인 이해도 못 한다. 왜 "좋은" 여성은 좋고 ‘나쁜‘ 여성은 나쁠까?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좋은" 여자는 "나쁜 여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생명을 빼앗긴다는 점에서 차이 날 뿐이다. 이상화는 곧 비생명화다. 또 다른 형식의 살해일 뿐이다. "나쁜" 여자를 살해하는 것은 곧 어머니의 섹슈얼리티, 즉 창녀 짓을 격퇴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여성의 "치명적" 본질을 격퇴하는 것이다. - P172

군인 남성은 여성에 대해서 두 가지 강박을 동일한 강도로 느끼는 듯하다. 하나는 여성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아주 멀리 떨어뜨려두려는 방어다. 다른 하나는 여성을 아주 가까이에 잡아두고 꿰뚫으려는 강박이다. 살해 행위를 통해 상반되는 두 강박이 충족된다. 군인 남성은 여성에게서 목숨을 빼앗음으로써 아주 멀리 보낼 수 있다. 한편으로 아주 가까이에서 총알, 몽둥이, 개머리판 등을 삽입할 수 있다. 여성을 마음놓고 가까이 둘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성에게서 대상물의 성질을 박탈했기 때문이다. 육체 경계를 깨부수고 고유한 이름을 없애버린다. 그녀는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군인 남성들이 열광하는 것은 관능적 여성의피부와 겉표면 너머에 있다. 살해는 마치 교정 행위처럼 거행된다. 여성의 허위와 가식을 걷어내고 "진실" 본질을 폭로하는 작업이다. - P286

자아는 프로이트가 생각했듯 이드에서 분화되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아이의 공생 관계, 즉 이중 단일체 Dual - Union로부터 분화되어 생겨난다.
공생 분리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자아 기능에 심각한 장애가 발생한다. 정상적인 발달이 불가능해지고 대상관계 능력에 심각한 장애가 반드시 생긴다. 공생 관계로부터 아이를 분리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양극단 모두에 존재한다. 지나치게 딱딱한 어머니라면 아이를너무 일찍 떼어놓거나 애초에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지나치게 "질척한" 어머니라면 아이를 감싸기만 하고 안 놓아줄 수도 있다. - P303

무의식은 "억압 장치가 내주는 것만을 ‘재현‘할 수 있을 뿐"이다". 욕망은 오직 변형된 욕망으로만 존재할 수 있다.
들뢰즈와 과타리는 프로이트가 변형된 욕망의 차원만 분석한다고 비판한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이란 사회적 억압이 재현된 것을 스스로 무의식이라고 받아들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명칭 자체의 타당성을 문제 삼지 않는다. 프로이트는 "근친상간" "거세" 등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여 개념화했다. 그러나 무의식이이들로부터 형성되고 표출된다고 설명함으로써 무의식이 사실은 사회적 생산력의 폭발적인 지배 구조임을 간과하고 만다. - P313

오스트리아 출신이나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프란츠 안톤 메스머는 인간이 "유체, Flutstoff"의 바다에서 유영하고 있다고 봤다. 그에 따르면흐름은 인간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 사이의 관계에도 흐름이 있다. 이는 스타로뱅스키에 따르면 피치노와 파라켈수스의 체액설을계승한 이론이다.
"피에르 자네는 메스머 이래로 과학계가 흐름 요법을 두고 찬반 양론으로 갈라졌다고 제대로 진단했다.
흐름 요법 찬성론자들은 자력이 있는 것과 자력을 받는 것 사이에 물리적 힘이 실제로 오간다고 믿었다. 반대론자의 주요 논리는 환자 내면의 심리적 과정에만 흐름이오간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두 가지 대립되는 입장이 생겨났다. 하나는 이른바 "유 - P365

체외래설Exo-Fluidismus"이다. 자력이 있는 것으로부터 유체가 흘러나와환자에게 전달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다른 하나는 "유체 내재설Endo-Fluidismus"이다. 신경 에너지는 움직임을 유발하는 물질이며 개인의 몸 안에 보존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정신분석학은 두 번째 입장을 계승했다.
"갇혀 있는 에너지의 흐름을 이론의 모델로 삼고 있다. - P366

자본주의는 전반적인 탈영토화를 초래했다.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은 모든 오랜 질서와 종교적, 철학적, 과학적 규범을 노후화하고 해체하고기능 변경했다. 새로운 세상이 개발되고 새로운 영역이 열렸다. 인간의 육체, 사상, 감정에 새로운 가능성이 범람했다. 심지어 기존 질서로부터의 도피 가능성도 활짝 열렸다. 모든 지배 세력은 지배력을 유지하고자 한다. 봉건 지주 세력이 그랬듯 부르주아 자본가 세력도 새로운 가능성을 막아서려고 했다. 존재를 지워버리고 막아서고 새로운 흐름을 돌이키려고 했다. 혹은 자신들의 이익에 맞도록 새로운 흐름을 "코드화"하여이용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자유라는 환상은 유포하려고 노력했다. - P398

초월성과 경쟁, 여성의 탈경계화와 탈인격화는 욕망을 대거 추상화하여 적절한 대상성을 결여시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욕망이 적절한 대상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바로 지배의 장벽이다. 지배의 장벽때문에 여성상과 욕망 충족 관념이 결합되는 것이다. 욕망이 결합 대상으로 삼는 것은 살아 움직이는 현실의 여성이 아니었다. 심지어 남성이자신이 상상한 바를 특정한 여성에게 체화시키는 경우에도 그랬다. 구체적인 예술작품도 마찬가지였다. - P418

핵가족은 초기부르주아 사회의 내부적 경계가되었다. 핵가족이 길러내는 "자아"는 세상을 목적 달성의 가능성으로 본다. 자신이 노리는 이해관계가 현실화될 무대라고 여긴다. 핵가족이라는 경계가 틀어막으려는 것은 세계의 판타지다.
무한하게 넓은 전인미답의 세계라는 총체, 인간의 욕망 생산을자극해 미처 몰랐던 쾌락을 널리 퍼뜨릴 세계라는 판타지다. - P454

탈경계화를 통한 유럽 세계의 외부적 영역 확장은 "원시 민족"을 향한제국주의로 전환되었다. 이에 상응하여 내면의 제국주의도 있었다는것이 내 추측이다. 내면의 제국주의는 여성 육체로 표상되는 정복된 자연에서 벌어지는 내면적 영토 수탈이다. 세계 원시 민족의 육체에서 외부적 황금이 약탈되었듯, 새로운 자유를 구가하는 남성적 자아라는 "내면적 황금"은 정복당한 여성성의 육체에서 탈취되었다. - P468

고귀한 여성의 육체는 도형화 과정을 거쳐 신체 부위별로 표상 장식물이 되었다. 이와 더불어 토지의 중앙집권적 정복이 질서 있게 진행되었다. 여기서 드러나듯 고귀한 여성의 생산 능력은 잘못된 기계화를 겪게 된다. 이는 부르주아/절대주의 사회에서 경제 생산이 기계적으로 무한 확장되기 시작하는 과정과 맞물려 나타났다. - P515

본래 부르주아 지식인이었지만 출신 계급에 환멸을 느끼고 떠난 사람을 예로 들어보자. 그는 지배자의 권력 정당성을 무너뜨리려면더 높은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며 프롤레타리아를 격려한다. 이로써 그는 자신이 싸우려 했던 바로 그 일탈적 지배자와 다름없는 방식으로 직접적 지배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즉, 억압받는 이들의 욕망 생산 속에위계적 풍기 질서를 설치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 전선 계층 출신의 전향자들이 이끄는 혁명 운동은 종종 새로운 풍기의 기치를 앞세워 진행된다. 이 과정은 최우선으로 여성을 겨냥한다. 새 시대를 창조하기 위해서 남자는 그저 순결하고 강직한 전사 노릇으로 충분하지만, 여자는 추가적으로 성적 순결도 지켜야만 했다. 독일 사회민주당과 그 뒤를 이은독일공산당은 사업가 가문의 요염한 따님들이 보이는 성적 풍기문란을노동자 처녀들의 육체에서 몰아내려고 했다. 그들은 노동자의 딸을 성처녀로 만들려고 했다.
"새로운 풍기"는 이런 식으로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억압 구조를과거 사회에서 다음 사회로 이어지게 만든다. - P526

소년의 눈앞에 유혹과 매력을 지닌 여성상이 내던져진다. 여성상 속에는누이와 어머니의 모순적 육체성이 마구 뒤섞여 있다. "네가 원하는 것은바로 이거야." 누이와 어머니는 도달할 수 없는 존재다. 그들을 "대체해주는 여성상은 소년의 각성된 욕망이 충족되지 못하도록 만드는 여성이다. 아들과 오라비가 자유롭게 다가와서 흐름에 동참하도록 내버려두질못하는 여성들이다. 무엇보다 어린 소녀, 누이들은 교육에서 배제되어성애화되지 못한다. 이들은 남자를 겪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순진한 소녀들은 남자들의 비밀스러운 성관념이 얼마나 끔찍한지 전혀 모르고 있다. 소녀는 결혼에서 "구원"을 기대하도록 교육받는다. 부 - P541

부관계는 모르지만 결혼생활은 기대한다. 애초부터 소녀는 결혼을 통해사회적 삶을 기대하고 자식을 낳을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미래의 신랑감은 아내에게서 "온 세상"을 기대한다. 자신의 모든 욕망을 성취시켜주리라 기대한다. 아내는 남자들이란 웃기고 별나다고 생각한다. 남자의 숭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러므로 아내는 세상의 필터 역할을기꺼이 떠맡을 수가 없다. 남성의 욕망을 순화하고 걸러내 사회적으로수용시키는 역할을 떠맡을 수 없고 해낼 수도 없다. 아내의 욕망은 억제된다. 여성 생산력은 반생산력으로 변신한다. 여성은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없도록 교육된다. 사회와 인생으로부터 뭔가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오직 남편에게 요구하고 기대해야 한다. 남편을 잘 만나야 안정감,
돈, 집, 지위, 자식들을 얻을 수 있다. 아내의 내조로 남편은 사회적 기능과 연결된다. - P542

공화국을 "늪"이라고 부른 것은 한 단어를 다른 단어로 대체하는 단순 비유가 아니다. 이들 남성은 스스로의 육체가 정말로 가래와 곤죽이된 듯 느꼈다. 달리 느낄 방법이 없었다. 언제나 금지되고 부정적인 것으로 육체에 발생하는 생리 현상이었다. 군인 남성들이 노동자 반란군을 붉은 홍수와 연관 짓는 데에는 그다지 긴 연상 작용이 필요치 않았다. 한눈에 명백했다. 저들은 억누르고 살지를 않는구나. 나는 필사적으로 억누르는데. - P592

직업 군인과 군대, 장교에 대한 왜곡된 열광적 존경은 하루아침에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1870년, 1871년의 프로이센 - 프랑스 전쟁승리와 독일 제국의 성립은 독일 소년들의 육체에 체계적으로 주입되었다. 독일이 존재하게 된 것은 승리 덕분이다. 군대 덕분이며 군인‘
분이다. 군인이 안 되겠다는 것은 독일 남자로 불릴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건립된 승전비 아래에서 다음 세대가 길러졌다. 하지만 독일 제국은 - P610

곧 군사독재의 성격을 드러냈고, 여타 제국주의 열강과 세계시장 및 식민지를 두고 경쟁에 돌입했다. 그래서 장차 군인이 될 청년들을 육성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필요해졌다. 이와 병행하여 독일 처녀들은 군인을사랑하도록 훈련되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앞둔 독일은 생산 능력,
원자재 확보 등에서의 확연한 물질적 열세를 "벌충하기 위해 "최고의병사"를 양성하는 데 의존해야만 했다. 40한편으로 군인에 적합한 특정 남성들이 있고 군인 아내에 적합한 특정 여성들이 있다. 그들의 육체에는 흐르지 말라는 금지가 깊이 각인되어 있다.
다른 한편으로 1918년 11월 혁명과 그 결과들이 있었다. 군중은 망설임 없이 모든 금기를 넘어섰다. 군인 남성을 훈련시킨 엄격한 금기들이무너졌다. - P611

파시즘은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했다. 파시즘은 직접적으로는 공개적제의를 통해 여성의 복속을 과시했다. "자연"의 정복, 그리고 무의식의욕망 생산을 연출했다. 그러나 더 중요했던 것은 군중의 복속, 특히 남성 군중의 복속이었다. 사회주의의 현실적 위협을 격퇴하고 여성 육체의 "자연성"을 과시적으로 정복하는 것만으로는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 P623

파시즘은 남성 내면으로 파고들어서 무의식의 재료를 침탈하고자 했다.
파시즘은 남성에게 약속한다. 내면의 적대적 일부를 한데 묶어 견딜 만하게 만들어주겠다고. 내면에 숨어 있는 위험한 "여성성을 남성성으로 눌러 정복하게 해주겠다고. 파시즘 언어에서 "경계"는 주로 육체 경계를 의미했다.
애초부터 공공 영역과 남성적 생산 영역에서 여성을 배제했던 파시즘은 새로운 형태의 여성 억압을 추가한다. 파시스트 남성은 반항적이고 성애적인 "흐르는" 여성을 무찌른다. 심지어 남성 자신의 무의식과욕망 생산 안에 들어 있는 여성성을 무찌른다. - P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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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장미가 지천인 계절이 되었다. 주말에 산책을 나갔다가 장미를 많이 만났는데 참 좋았다. 장미는 붉은 잎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이맘때쯤 연둣빛, 초록빛 나무와 대비되어 더 쨍한 느낌을 준다. 더군다나 요즘 햇빛이 참 눈부신지라 그 색깔이 더 곱게 느껴진다. 

사실 나에게는 장미가 6월의 꽃이다. 예전에도 페이퍼에서 언급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고등학교 때 교화가 장미였고 항상 6월에 축제를 했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축제 준비로 5월부터 바빠서 축제가 지나고 나면 번아웃 비슷한 것이 왔었다ㅋㅋ 세월이 흘러도 등나무 그늘과 써클실, 운동장 교단은 여전히 그 기억이 또렷하다. 













지난 주말은 산책 말고는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책을 읽고 낮잠을 자고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주말에 읽은 책은 <질병, 낙인>, <오월의 정치사회학>이다. <질병, 낙인>은 이번 주 책모임용 책이었는데 읽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덧 일정이 코앞이라 후다닥 읽었고 <오월의 정치사회학>은 5.18에 맞춰서 읽었다. 원래 낮잠을 자는 편이 아니었는데 생체 리듬이 바뀐 건지 아침 나절 책을 몇 시간 읽고 나면 졸음이 쏟아져서 종종 자곤 한다. 졸면서 책을 읽을 수는 없으니까^^; 요즘 보는 드라마는 <삼국지>랑 어느 가족드라마다. <삼국지>는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으나 95부작으로 워낙 길어서 아직 1/3쯤 봤나보다. 명장인 여포의 죽음이 나왔는데 그가 죽을 때보다 그의 책사인 진궁이 죽을 때 더 감동적이었다. 조조는 진궁을 잡고 싶었으나 진궁은 자신을 보내달라며 죽음을 택한다. 조조가 노모와 가족들을 보살펴줄 것을 알고 있다고... 멋진 풍경을 보며 한 마디 하고 감탄하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가족드라마는 사람 많은 집에 바람 잘 날 없다고 돌아가면서 사고를 치는 통에 울화통이 터진다. 그럼에도 서로를 보듬고 나아가는 과정을 보면 따뜻함을 느끼기도 한다. 늘 느끼지만 결국 가족이 없는 이는 없으니까 결국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있더라도 그들만의 관계는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다.


지난 주말은 사실 지지난주 주말에 너무 놀아서 체력이 방전된 탓에 쉬어줘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오랜만에 시가 모임을 갔더니 술을 마셔야 해서 힘들고(어찌나 말술들인지...) 사람들과 수다를 떨어야 해서 힘든 상황이ㅎㅎㅎ 그래도 항상 우리가 가면 반가워하고 챙겨주려고 하셔서 감사한 마음은 든다. 매년 6~7월쯤 모임을 하다가 5월에 모임을 가지니 날씨도 더 쾌적하고 여행하기에 좋았다. 게다가 매년 시가 근처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이번에는 장소를 아예 바꾸어서 진행했더니 새로웠다. 몇 년만에 충주를 다녀왔는데 놀멍 술멍하며 즐겁게 놀고 왔다. 일찍 출발하여 오전에 시간이 있길래 옆지기와 데이트를 했다. 탄금대 공원이랑 충주박물관을 보고 맞은편에 중앙탑공원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칠층석탑을 구경했다. 탄금대 공원에 갔다가 길을 잘못 들어 계단을 몇 번 더 오르락내리락했는데 덕분에 옆지기는 관절통을 호소하고ㅎㅎ 충주박물관은 스탬프를 다 찍으면 칠층석탑 키링을 주어서 덤으로 기념품도 챙겨서 기분이 더 좋았다. 석탑 인증샷 찍으려고 기다렸지만 사람이 계속 와서 석탑만 찍는 것은 포기했다.









5월도 어느덧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젠 낮에 초여름 이상의 기온으로 올라서 덥다 느껴진다. 그래서 저녁에 산책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그래도 아카시아 향을 맡으며 장미를 품을 수 있는 계절이 지금이다. 만끽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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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5-18 16: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화가 님 술... 잘 드시는 줄 알았는데 힘들다고 하셔서 엥? 했더니 말술들이시군요. ㅋㅋㅋㅋ
(책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소소한 일상 이야기가 더 재미난 것인가..;;)

충주 탄금대 진짜 아름답죠? 저 거기서 서울까지 자전거 타고 온 적 있어요! 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6-05-19 08:40   좋아요 1 | URL
시간이 지나도 시가 어른들 주량이 안 줄더라구요~ㅋㅋ 저랑 비슷하거나 아래인 연배도 있는데 하나같이 술을 잘 마셔서 모임 가는 날은 좀 각오를 하게 되는 편인 것 같습니다!ㅎㅎ
제가 주로 재미없는 책을 읽긴 하죠. 그렇더라도 책 이야기를 재미나게 쓰시는 분들이 부럽습니다^^
충주 탄금대 참 좋더라구요. 쨍한 날씨에 잔잔한 물결 위에 비치는 햇빛이 눈부셨답니다. 안 그래도 거기 국토 자전거종주길이 있던데... 거기서 서울까지요? 얼마나 걸리셨을려나 궁금합니다!

다락방 2026-05-18 1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저녁 먹고 동네 산책 갔다가 장미를 보고 아아, 5월이로구나! 했어요. 물론 절반이 다 지나버렸지만요. 그래서 장미 사진도 찍고 그랬습니다. 장미는 볼 때마다 참 아름다워요. 그래서 꽃중의 꽃이라고 하는가봅니다. 이렇게 화가 님 서재에서 장미꽃 보니 또 너무 예쁘네요.
여행 사진 보면서는 아 역시 여행이 좋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 낯선 곳에 간다는 것은 삶에 있어서 큰 활력인 것 같아요. 아름다운 봄을 만끽합시다. 물론 여름같지만...

거리의화가 2026-05-19 08:43   좋아요 1 | URL
점점 꽃들이 피고 지는 시기가 빨라지고 있지만 결국 장미 시즌이 돌아오긴 했네요. 동양에서는 모란을 꽃중의꽃이라고 여기지만 사실 현실에서는 장미만한 게 없는 것 같긴 합니다. 햇볕 위에 빛나는 붉은 장미는 정말 아름다워요!
말씀대로 어딘가로 떠나는 경험은 일상을 새롭게 보게 하는 마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 또 떠나고 하는가봐요. 남은 봄 소중하게 보내시기를!

희선 2026-05-19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에 장미가 보여야 할 때 같은데 하다가 보니 피기는 했더군요 그때는 조금 피었는데 어제 가서 보니 많이 피었더군요 하룬가 이틀 사이에 많이 피었어요 흰 장미여서 더 반갑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장미와 닮은 찔레꽃도 봤군요 거리의화가 님 사진에도 있는 것 같은데, 흰색이 찔레꽃이 맞을지...

공원 좋네요 박물관은 스탬프 찍으면 기념품도 주고... 좋은 시간 보내셨군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6-05-19 13:57   좋아요 2 | URL
꽃을 구경하는 것은 좋아하는데 막상 꽃들 이름을 잘 알지는 못해요ㅠㅠ 흰꽃의 정체는 저도 잘...ㅎㅎ 민망합니다. 오늘은 살짝 날이 흐리네요. 아직은 많이 덥지 않고 꽃들이 많이 피어 있어서 산책하는 길이 즐겁습니다. 남은 5월 행복한 시간 만드시길!
 

차가다이계의 침략과 1398년 티무르의 일시적인 델리 정복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남아시아는 몽골에 복속하지 않은 채로 있었다.
몽골의 각 칸국과 남아시아의 다양한 정치체 사이의 외교 소통은 빈번하게, 그리고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이루어졌다. 이러한교류는 13~14세기 조선 기술의 발달과 항해술의 발전으로 더욱활발해졌다. 무슬림, 힌두교도, 중국인 상인들이 운영한 상업 네트워크도 외교적 교류에 기여했다. 게다가 이븐 바투타(1304~1377)와 같이 아프로-유라시아 세계의 먼 지역 사람들도 이러한 교류에 참여했다. - P292

남아시아와 몽골 제국 사이의 상업적 연결은 여러 상인 집단에 속한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무슬림과 타밀 상인의네트워크, 중국 선원들의 운송 시설, 시리아 기독교도들의 디아스포라적 연결 등이 있었다. 이러한 상업 교류는 다양한 통로를 통해이루어졌으니, 인도양의 해상 항로, 미얀마와 티베트를 건너 원의영토로 가는 육로, 델리와 일 칸국 이란을 연결하는 아프가니스탄 고개 등이 있다. 거래되는 상품의 종류와 무역의 양상 역시 매우 다양했다. 은, 말, 향신료, 도자기, 직물, 노예 등이 남아시아와몽골 칸국들 사이에서 교역된 주요 상품이었다. 남아시아와 몽골칸국들이 이러한 품목을 직접 교환하기도 하고, 남아시아 항구와시장이 더 큰 아프로-유라시아 무역 환경 내에서 단순히 중개 허브 역할을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말라바르해안의 항구들은 원과일 칸국 사이에서 교환되는 상품들의 중요한 환적(積) 지점이었다. 이러한 남아시아의 중개 역할은 상인 집단들이 장거리 무역의특정 부문에 집중하는 분절적 무역 양상 때문에 등장했고 시간이지나면서도 유지됐다. - P301

몽골은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어도 통치할수는 없다"는 중국의 유명한 클리셰를 반증하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말을 탄 채 이동하며 통치하는 것은 단점이 없지 않았지만매우 혁신적이었음이 입증됐다. 초기의 대규모 공격 이후에 몽골은 궁극적으로 문화적 활기, 유라시아 규모의 통합, 상업의 활성화, 기술, 과학, 예술의 혁신, 새로운 종교적, 종족적, 지정학적 지형,
초원과 정주 제국 모두가 받아들인 세련된 제도를 낳았다. 몽골은 그들의 파괴적 정복에서 기인하기도 했고, 근대 민족주의 정서의 부침에 의해 더욱 강화된 야만인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13~14세기에 이 제국적 유목민들은 세계를 변화시켰고, 오늘날의 세계화 시대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 P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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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5년 카라코룸을 건설하기 시작했을 무렵, 몽골은 중앙아시아와 만주, 북중국의 많은 부분을 정복 및 점령했고 고려로도 진출했다. 우구데이 카안은 추가로 서방 원정을 계획했고, 이 원정은러시아의 많은 지역을 정복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는 새로 획득한 영토를 약탈하기보다 이곳을 통치할 행정 중심이 필요함을 인정했다. 수도 건설은 몽골이 약탈자가 아니라 통치자로서 정통성을 한층 강화하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몽골 본토는 여전히이동하는 목축민들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중앙집권화되지 않았다. - P16

우구데이 가문과 차가다이 가문 간 충돌의 결과로 원 조정은1307년 몽골 지역의 군인뿐 아니라 주민을 위한 새로운 행정기구를 마련했다. 이러한 관료 기구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초원을 통 - P34

치했을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유목민 가구와 집단은 광활한 몽골지역 도처에 흩어져 있었다. 청(淸, 1644~1911)과 몽골인민공화국(1924~1992. 1928년부터 1932년까지 가축의 집산화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도목축민에게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하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몇몇작은 마을들과 주변 지역, 그리고 거의 끝없이 펼쳐진 초원이 앞으로 설명할 정책들을 따랐을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게다가 대도의원 조정에 있는 몽골인들은 원래 초원 출신이었지만, 많은 사람이 꽤 오랫동안 정주 세계에 거주했고 일부는 평생을 중국에서 보냈다. 그들은 유목민 사촌들과 연결이 끊겼고, 관심사와 정책 선호도도 달랐다. 이 몽골인들과 원 조정의 중국인 관료들이 고안한 행정기구가 과연 초원에서 효율적이었는지 여부를 규명하기는 어렵다. - P35

여러 몽골 집단 사이의 충돌은 다양한 요인에서 비롯됐다. 그가운데 하나는 중국에서 귀환한 몽골인과 몽골 지역에 남아 있던사람들 사이의 갈등이었다. 중국에서 돌아온 피난민은 그 정확한수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10만 명에 달했다. 이 새로운 집단은 목초지, 물, 가축 무리를 놓고 거주민과 경쟁했다. 따라서 식량과 필수품이 부족해졌다. 1388년까지 계속된 명의 공격으로 사태가 더욱 심해졌는데, 카라코룸에 위치한 보급 본부뿐만 아니라토지도 손상됐기 때문이다. 이어진 명조의 무역 제한으로 몽골은필요한 물품을 얻기 위해 중국을 침략해야만 했다. 이와 동시에 몽골은 분열 상태였다. 서몽골 집단 중 하나이자 몽골의 혼인 동맹이었던 오이라트가 칭기스 가문과 이른바 동몽골에 도전했다. 그들이 아릭 부케의 후손들과 손을 잡으면서 북원이 중국에 대한 권위를 되찾을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 P44

고려와 칭기스계 관계의다른 측면들은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거의 30년(1231~1259)가까운 파괴로 점철된 전쟁이 끝난 뒤 고려 황실은 1274년에 칭기스가문 황제와 혼인 동맹을 맺었고 이러한 관계는 한 세기 동안지속됐다. 칭기스계는 일부 초기 동맹 세력 및 지방 군주(콩기라트와 위구르 등)와 혼인 동맹을 맺었고, 몇몇 정치체(금, 남송, 맘룩)와는장기간에 걸친 전쟁을 벌였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전쟁과 혼인이라는 두 가지 형태의 상호작용이 이처럼 눈에 띄게 결합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14세기 중반까지 고려는 동북아시아에서 칭기스계의 방벽이 됐고, 1380년대에는 정통성을 갖춘 국가로서 칭기스계의 지위를 인정하는 동아시아의 유일한 나라였다. - P51

초기 고려-몽골 관계의 성격을 둘러싸고 논쟁이 진행중이다. 10 아마도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1218~1219년의 연합으로고려가 몽골 속국의 지위를 갖기 시작했고, 이 지위는 간간이 중단되긴 했지만 몽골 제국이 붕괴할 때까지 지속됐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볼 때 고려는 속국으로서 공물과 군사 원조 등 몽골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켜야만 했다. "반면 1218~1219년 연합과 초기고 - P55

려-몽골 관계를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한국 학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당시 몽골 지휘관들은 금에대항하기 위한 동맹이자 몽골의 지역 정권 통합을 위한 초석으로서 여러 지역에서 현지 세력을 물색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몽골은동진 정권이나 일부 거란 귀족들과 연합했던 것처럼, 고려와도 비슷한 관계를 맺고자 했다. - P56

유라시아의다른 곳에서도 그러했듯, 고려는 몽골 제국에 통합되면서 기존 무역 관계(주로 중국)를 확장했고 더 넓은 지역 간 네트워크에 연결됐다. 그리고 마침내 개별 칭기스계 귀족들과 그들이 통치하는 영역의 일체화가 대칸 한 사람의 지배 아래 통합된 정치체로서의 제국이라는 관념을 압도하자, 원 왕조의 일부는 고려를 독립적 속국이 아니라 하나의 지방으로 보고 원의 행정 구조 안에 편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지만, 이 주장은 고려의 지위가 칭기스계 체제의 변화하는 역학 관계를 어떻게 반영 - P71

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 P72

1380년대 내내 고려는 가문, 외교, 군사 이해, 공동의 역사 등 공식적, 비공식적 관계를 통해 원과 얽혀 있었다." 요동은 고려를 떠난다수의 이주민이 거주하는 곳이자 고려 왕족과 홍씨 일가 [홍복원과 그의 후손들]의 자치에 익숙했던 곳으로, 명 왕조는 나름의 전략적 목표를 가지고 요동 장악에 도전했다. 더 넓은 맥락에서 보자면, 15세기 중반까지도 야심에 찬 초원 지도자들은 고려가 몽골제국의 부마국이었다는 점을 내세워 조선 조정의 충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는 명 조정에게는 한반도와 칭기스계 사이의 관계를상기시켰고, 우리에게는 칭기스계의 지속적인 유산에 대한 주의 - P82

를 일깨워준다.
한국사에서 더 중요한 점은 조선 왕조의 설립에 참여한 많은주요 정치인, 군인, 지식인이 몽골 치하에서 성장했다는 것이다. - P83

일 칸국이 성립한 이후 권력의 중심이 남쪽으로 이동했고, 코카시아에대한 통치는 더욱 간접적으로 이루어졌으며 현지 귀족에 의존했다. 일 칸국의 종말이 바로 캅카스에서 몽골 지배가 종식했음을의미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권력이 분산되고 패권 중심이 사라지는 등 정치적 재적응의 과정이 시작됐다. - P126

몽골 제국의 탄생은 중세 국제 무역의 역사에서 중대한 사건으로, 캅카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몽골의 정복은 새로운 무역로를 열었고, 서유럽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지역에서도 국제 무역이 활발해졌다. 몽골은 캅카스의 주요 경제 중심지를 수없이 파괴했지만, 생산과 교환의 중심을 다른 곳으로 이전함으로써 이전에 국제 무역에서 소외됐던 타브리즈와 마라가 같은 도시들을 성장시켰다. - P127

"시베리아"라는 지명은 13세기에 작성된 「몽골비사」에 처음 등장하는시비르, 즉 오비강과 예니세이강 사이에 거주하던 사람들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15세기까지 러시아에서 시비르는 오비와 이르티시지역을 가리켰고, 러시아가 동쪽으로 빠르게 진출하면서부터는우랄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북쪽 지역 전체를 의미하게 됐다. - P139

몽골의 통치권은 인구조사와 공물 납부, 그리고 공작들의 몽골 군사 원정 참여를 통해서도 관철됐다. 일반 루스인들은 몽골군에 징집되거나 강제 노동에 동원될 수 있었고, 특히 숙련 장인의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공작들은 주치 울루스를 자주 방문했고,
때로는 수개월, 심지어 몇 년 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1242년부터1445년 사이에 99명의 공작과 세 명의 공작 부인이 주치 울루스를250차례 방문했다. "주치 울루스에서 10년 이상을 보낸 야로슬라프와 스몰렌스크의 페도르 로스티슬라비치를 포함해 다섯 명의공작이 몽골 지배층과 혼인했다. - P180

몽골이 루스에 정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야를릭을 하사하고 공물을 받은 것에서 입증되듯 몽골은 루스를 지배했다. 찰스 핼퍼린이 언급했듯이 루스인들은 타타르 지배의 실제 현실에 익숙했으나, 106 몽골이 블라디미르 대공에게 공물의 관리를 양도하면서 문인들은 몽골의 통치권을 얼버무리고, 핼퍼린이 ‘침묵의 이데올로기 (ideology of silence)‘로 부른 태도를 취할 수 있었다. 문인들은 몽골의 약탈과 도시 파괴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이교도의 압제", "가혹한 노예화" 같은 용어를 사용했지만, 복속과지배라는 개념은 애써 피했다. 107루스는 몽골의 관습을 매우 잘 알고 있었고 타타르인들이 모스크바 사회로 진입해 심지어 보야르 집단을 만들기도 했지만, 몽골인은 루스 사회의 외부인으로 남아 있었다. - P203

침략의 충격을 극복하고 나자, 정치적, 상업적, 종교적 측면에서 관계가 발전했다. 정치적, 외교적 계획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이탈리아 해양 세력의 아시아 시장 진출은 호혜적 무역을 위한 유라시아 대륙로를 열었고, 흑해 식민지와 지중해 동쪽 항구라는 결절점을 통해 유럽과아시아를 연결했다.
하지만 상인과 선교사는 자신이 활동했던 사회로부터 매우분리된 상태로 지내며 몽골 지배층 내에 확고히 자리 잡았다. - P238

문화 교류의 측면에서 몽골 제국 내의 주요 과학적, 철학적 대화는 이슬람과 중국 사이에서 이루어졌고, 유럽은 몽골 조정에서있었던 주요한 지적 만남에서 주변부에 머물렀다. 몽골은 화약과같은 중국의 발명품을 유럽에 가져오는 데 주요 역할을 했을지도모르지만, 그 전파에는 여전히 의문의 여지가 있다. 몽골의 통치가 끝나자 유럽인들은 곧 내륙 아시아의 대상로에서 자취를 감췄다. 유럽인들이 몽골의 보호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현지 사회와의연결에 실패한 것이 아마도 이러한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다. - P239

1260년에 그랬듯이, 분명히정복 그 자체에 파괴적 성질은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시리아에서 - P278

는 그 영향이 크지는 않았다. 몽골의 점령이 짧기도 했고 그 후 맘룩이 지배권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몽골이 이 지역 전체에 진출한이후, 사람들이 이라크, 자지라, 아나톨리아 등지로부터 시리아와이집트로 이주하는 인구 변화가 발생했다. 맘룩-일 칸국 국경 지역에서는 일부, 어쩌면 상당한 정도의 문화 교류가 있었고, 이는1320 년대 초 ‘평화 협상 과정‘과 함께 확실히 증가했다. 몽골이 아시아를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개방한 것은 확실히 이집트의술탄국, 그리고 앞서 살펴본 것처럼 예멘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한 가지 영향만 특별히 꼽아야 한다면, 그것은 맘룩이 시리아를 점령하고 통치할 수 있도록 몽골이 길을 닦았다는 점이다. -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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