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힘 우리 시대의 고전 16
자크 데리다 지음, 진태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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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법의 중요성과 당위를 이렇게나 깨달았던 적이 있었던가. 메타 질문(해체적 질문)은 비단 법과 정의, 도덕, 정치에 대한 질문이 아니더라도 적용해볼 수 있는 질문이라 생각했다. 특히 책임 있는 방식으로 개입하여 세계를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의식이 중요하다는 말에 대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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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 새기는 빛 - 서경식 에세이 2011-2023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 연립서가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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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선생님이 타계한지 어느덧 1년하고도 수개월이 지났다. 재일조선인에 대한 책에 이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2011년부터 2023년까지 칼럼의 내용을 엮어서 모아 놓은 것이다. 저자의 글을 읽고 있으려니 어쩐지 안타까움과 함께 씁쓸함이 몰려왔다(사실 눈물을 좀 훔치기도). 2차례의 큰 세계 전쟁을 거친 후 최소한의 선의와 도덕, 양심에 기반한 정책들이 후퇴하고 전 세계적인 반동의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저자처럼 타자에 대한 선의와 양심을 가진 지식인은 세상을 뜨고 있고 자기 자신만 알고 잘못된 혀와 지식을 놀리는 인간은 배를 두드리는 형국이라니 생각할수록 열이 받는다.
책에 플래그를 붙여나가다가 포기했다. 공감가는 말들이 대부분이라 어느 순간에 플래그를 더 이상 붙이지 않고 계속 읽었다.

서두에 노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늙음을 마주한다. 갑작스런 사망이 아니라면 자연스레 누구나 노인이 되기 마련인데 우리는 노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곱씹어야 한다. 우리는 노인을 더 이상 생산력이 존재하지 않는 무용한 존재이자 짐짝처럼 취급하려하지 않는가 말이다. 저자는 그런 압력에 반기를 들며 결코 생산력이나 이윤으로 잴 수 없는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얼마 후 다가올 나의 노년을 위해서라도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해볼 질문이다.

재일조선인으로 살아온 저자에게 ‘디아스포라’는 저자의 삶에 응축된 단어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의 내용 대부분을 차지한 것도 디아스포라, 경계를 넘나든 지식과 이를 설파한 사람들의 향연이었다.

악몽의 시대 예술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여겨진다. 예술마저 권력에 빌붙은채 눈치를 본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숨구멍을 찾을 것인가.
허가를 받아야 하는 예술. 예술가는 그런 허가에 눈치를 보게 되는 현실. 그러나 예술가는 허가가 있든 진실을 발굴하고 이야기하기 위한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종말‘의 도래를 막을 수 없다.(P151)
이 책에서는 많은 예술 작품과 예술가를 다루지만 그 중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람은 윤이상이다. 그는 동베를린 사건(1967년 7월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대규모 공안 사건. 대한민국에서 독일과 프랑스로 건너간 유학생과 교민 등이 동베를린의 북한 대사관과 평양을 드나들며 간첩 교육을 받고 대남 적화 활동을 펼쳤다)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으나, 서독 정부 등의 항의로 복역 2년 만에 석방되었다(2024년 7월 대법원 결정에 따라 윤이상에 대한 재심이 확정되었다).
어느 예술가가 ˝꿈이 현실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꿈을 모방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는데, 실로 윤이상의 생애는 이 꿈처럼 절대적인 해방의 환희에 겨우 4분의 1음을 남기고 도달하지 못하는 경험의 연속이었다. 또 그것은 그 개인적 좌절의 역사라기보다 우리 민족의 경험을 상징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4분의 1음이라는 미세한 공극이 만들어 내는 음의 울림이 비할 데 없는 ‘아름다움(美)‘을 낳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P206~207)
그의 생애는 너무나 안타깝다. 한반도의 분단 이후 지나치리만큼 매몰된 이념 사회로 그는 남한을 결국 끝끝내 방문할 수 없었다(남한은 끝끝내 자신들의 입장을 윤이상에게 강요했으나 그는 거부했다). 그는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영상>(1968)을 작업했다. 당시를 생각하면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에 간 것이었을텐데 정말 많은 용기를 갖고 떠난 것일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사고가 난 이후 여러 차례 주변 지역을 방문해서 기록을 남겼다. 후쿠시마에 갈 때마다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힌다. ‘현실만이 지니는 비현실감‘이라고나 해야 할까. 이미 결정적으로 손상당했고 지금도 계속 위협에 노출된 환경.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얼핏 보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고 있다. 현실 그 자체를 바라보고 있는데도 그것이 매우 비현실적으로 생각된다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방사능 재난의 특질이 아닐까. 요컨대 방사능 재난은 우리의 감각이나 상상력의 원근법에 도전한다.(P227)
후쿠시마의 일이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보게 된다.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으니 괜찮겠지, 거기서 많이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으니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 말이다. 저자는 그것을 ‘동심원의 패러독스’라고 명명하는데 우리는 거기에 갇혀서는 더 나아진 환경을 만들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공간과 시간을 넘어선 상상력을 발휘하는 일이 요구된다는 저자의 일침에 자극을 받게 된다.
프리모 레비는 나치 수용소의 만행에 대한 증언으로 주목을 받았다. 타자의 고난에 대한 상상력과 존중 의식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알고 있다. 특히나 증언의 불가능성을 깨고 용기를 내주었기에 그의 말이 계속 살아남아 유효성을 가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상화는 1922년 간토 대지진을 목격하고 돌아와 조선의 식민 지배 수탈을 확인하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를 지어 조선인의 마음을 대변하는 동시에 재일조선인의 마음을 노래하였다. 그 무렵 재일조선인의 1세대가 일본에 형성되었다. 조선의 환경이 악화되어 떠밀려 일본에 정착한 이들이었다.
프리모 레비의 말과 글, 이상화의 시와 후쿠시마를 관련 짓는 일은 동심원의 패러독스를 뛰어넘는 하나의 행위가 되었다.

냉전은 끝났으나 그 후 분단이 고정화되면서 세계는 오히려 극우화되어가고 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전후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더욱 사태는 심각해졌다고 느낀다.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악마화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여기에 미국과 유럽, 중동의 책임도 무관하지 않다). 남북한의 대립과 끊임없는 위기, 미국과 유럽의 이민 배척의 심화(이는 한국도 마찬가지), 일본의 평화헌법 폐기와 군사국가 행보, 장기 집권하는 푸틴에 빌붙어 권력을 30년 이상 놓지 않고 있는 벨라루스의 루카셴코, 여전히 진행중인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등.
피에르 비달-나케는 기억을 부정하려는 자들을 향한 경고의 저술을 남겼다. 기억을 살해하는 것은 언어를 살해하는 것이라는 말이 인상깊다. 일본이 패전을 종전이라 표현하고 전멸을 옥쇄라 명령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을까. 일본의 전후 지식인인 가토 슈이치는 <언어와 탱크>에서 ‘탱크는 모든 목소리를 침묵시키고 환경을 파괴시킬 수 있지만 탱크라는 존재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무력하지만 압도적인 언어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잔혹함의 역사는... 언제 끝을 고할까. 애당초 그것이 ‘끝날‘ 수는 있을까.(P272)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왜 인간은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는지였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나를 냉소주의로 점점 몰아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어차피 안되. 그래봤자 안되. 이전에도 똑같았잖아.’ 이런 생각들 말이다. 이상이 없으므로 힘과 돈만을 진실로 여기는 시대, 국가주의가 횡행하고 이념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국가주의를 앞장서 추종하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상마저 포기한다면 결국 돈과 권력 같은 욕망에 정복당해 파멸의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인간이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연대‘다.(P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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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06-03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들 형제의 삶이 마음 아팠었습니다.
그들은 도대체 어디에 발을 디딜까도 생각했었습니다.
문제의식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이산민을 머물게 해주는 곳이 없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거리의화가 2025-06-03 20:34   좋아요 1 | URL
형님의 복권을 위해 애써주신 분들이 참 많더라구요. 재일조선인의 위치에서 늘 자신이 경계에 있다 생각하셨고 그래서 난민, 소수자 등 타자에 눈과 귀를 기울이셨던 것 같습니다. 부디 영면하시길... 그리고 오늘 투표 결과에도 귀를 기울이고 계실거란 생각도 했네요.
 
새로운 학문 대우고전총서 50
잠바티스타 비코 지음, 조한욱 옮김 / 아카넷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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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내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읽지 않았다면 ‘비코’를 모르고 살았거나 뒤늦게 알게 되었을 것이다. 철학사를 훑어 읽은지 이제 얼마 안 된 새내기라 지식이 너무나 얕은 탓이다. 특히나 서양 철학 지식은 아직 너무 많이 부족하다. 아무튼 비코를 만나 읽어봐야겠다는 결심은 <오리엔탈리즘> 덕분이었다.

‘새로운 학문’이라… 우선 책의 제목부터 흥미로웠다. 그렇다면 과거의 학문은 잘못되었으니 새로운 방식의 학문을 제시하겠다는 것 아니겠는가.
서양 근대 철학의 포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데카르트는 명백하게 판단된 사실만이 진리라고 여겼다. 대표적인 학문인 수학, 과학은 수치로 평가하고 측정할 수 있어 이후 중요한 학문으로 자리매김한다. 반면 기억에 의존한 과거를 다루는 역사학은 낮게 평가됐다.
비코는 그런 데카르트에 반기를 들었고, 인간 사회의 바탕이 되는 것은 인간의 이야기라며 역사를 비롯한 인문학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간파했다. 비코가 살던 당시만 해도 그의 철학은 주목받지 못했다. 대세를 거르는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비코의 철학은 여러 모로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환경의 중요성, 인간 정신의 파괴로 인한 윤리적 물음이 그 어느때보다도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비코는 1723년 나폴리 대학 법과대학 교수직에 응모했다 탈락했다. 원래 그는 수사학 교수였는데 법과대학 교수는 6배의 봉급을 더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자격을 갖추었지만 소위 인사 로비를 잘하지 못하여 탈락해버리고 말았던 충격으로 그는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학문 연구와 집필에 몰두하게 되었다. <새로운 학문>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짐작하겠지만 당시에는 그 책이 별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책과 사상의 진가를 알아본 사람들이 등장하게 된다. 19세기 프랑스 역사가였던 미슐레, 20세기 역사가인 베네데토 크로체, 소설가인 제임스 조이스, 에리히 아우어바흐, 에드워드 사이드 등등 근현대 최고의 지성인들이 자처하고 그의 사상을 언급했던 것이다. 1944년 비코의 자서전이 나온 뒤 1948년 <새로운 학문>의 영역본(비코는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이다. 당연히 이탈리아본이 원본)이 나오면서 그의 사상은 본격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비코는 중세 말, 근대 초의 시기를 살았던 사람이다. 그의 세계에 신의 섭리는 중요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 뿐만 아니라 당시 세계를 살았던 철학(사상)가들의 바탕에는 신의 관념이 자리하고 있었다.
책의 앞부분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는 비코의 철학을 압축한 그림이다.

이 그림 전체는 여러 민족의 인간 정신이 땅으로부터 하늘로 격상되는 세 가지 세계의 순서를 표현한다. 땅 위에 보이는 모든 상형문자는 인류가 가장 먼저 몰두했던 여러 민족의 세계를 뜻한다. 가운데에 있는 지구의는 이후 물리학자들이 관찰한 자연의 세계를 나타낸다. 위에 있는 상형문자는 정신의 세계와 형이상학자들이 마침내 관조하게 되는 신의 세계를 의미한다.(P66)
그는 신성한 것과 세계를 구분했고 세계를 물질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으로 구분했다. 신의 섭리가 (문헌학적) 정의와 준거를 바탕으로 형이상학을 이끈다. 그 준거가 되는 것은 ‘시적 지혜’인 만큼 비코는 시인을 중요시 여겼다.
비코는 민족의 자만심과 학자의 자만심이 인간 본성과 지성을 타락시킴으로써 왜곡된 역사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이를 타계하기 위해서는 ‘본연의 진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진리란 종교, 혼례, 매장이라는 공통 원리다. 이는 세계에서 나아가 학문까지 확장할 수 있다는 것까지 나아간 것이 특징이다.
인간은 낯선 대상(물질)을 만날 때 자신과의 비교를 통해서 그 대상을 이해하려고 한다. 이는 시의 은유성, 비유성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인간 사회의 지식을 이해하기 위해서 ‘시적 지혜’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시적 지혜의 시작인 형이상학을 바탕으로 모든 학문들은 시적으로 피어난다.
인간의 활동은 궤적이 되어 역사가 된다. 비코는 역사적 시대를 총 세 시대로 구분하는데 이는 신의 시대, 인간의 시대, 영웅의 시대이다. 민족마다 다양한 양상을 띠면서도 세 시대를 거쳐온 것은 보편성을 띤다고 말한다.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관습이 출현하며, 관습으로부터 법 체계가 등장하고, 법의 결과 사회 또는 국가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사회나 국가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언어나 문자가 개발되었다는 이유도 합리적이다. 민족의 역사 중 대표적으로 로마의 역사를 들어 설명해주고 있다.

옮긴 이의 박사 논문이 비코와 관련한 것이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이 책의 번역에 적임자라 여겨진다. 영역본이 나왔다지만 번역을 하는데 이탈리아 원전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결코 쉽지 않은 책인데 작업을 결심해준 저자에게 감사함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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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06-02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코 관심 있으시면 <비코 자서전> 추천이요!

거리의화가 2025-06-02 11:42   좋아요 0 | URL
정보 감사합니다. 참고할게요^^
 
이 책은 신유물론이다 - 브뤼노 라투르, 로지 브라이도티, 제인 베넷, 도나 해러웨이, 카렌 바라드의 생각
심귀연 지음 / 날(도서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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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부분의 학문(이론 또는 사상)은 홀로 서지 못한다.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를 넘어서 다양성을 요구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 100~200년은 어떠했는가.

근대론은 이분법적 사고로 인해 많은 위기와 폐단을 불러왔다. 우리는 한때 어느 한쪽 편에 서야만 했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는 차별과 배제, 인종주의를 비롯한 극단주의에 매몰되게 만들었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라면 경쟁하듯 쫓았다. 인간 중심의 사고, 개발 중심의 정책이 현재의 기후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이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의 사유 능력임을 믿었던 근대론자(대부분의 근현대인)들은 세계를 인간의 정신, 그 외에는 물질(몸)의 구성요소로 보았다. 이때 물질은 기계(어떤 동력이 있어야 움직이는 물체)로 취급되었다는 것이 문제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물질은 살아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신유물론은 죽은 물질을 되살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신유물론자들은 물질이 내재적인 힘에 의해서 활력을 띤다고 말한다. 존재 자체가 품고 있는 운동 에너지로 스스로 변화하고, 새로운 힘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들뢰즈는 이를 리좀Rhizome이라고 했다.


이 책은 신유물론이 어떤 배경에서 등장했는지, 그 개념은 무엇인지, 그리고 신유물론을 주장하는 다양한 철학가(사상가)를 소개한다. 브뤼노 라투르를 비롯한 로지 브라이도티, 제인 베넷, 도나 해러웨이, 카렌 바라드가 그 주인공이다. 

브뤼노 라투르가 신유물론의 맨 꼭지를 담당하는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라투르는 누구보다도 이분법을 허물고자 한 사상가였다. 라투르의 행위자들에는 인간만이 있지 않다. 그래서 행위자망(행위자 간의 연결망)에는 여행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여행 가방, 지도 등이 함께 들어있다. 그는 자연이 스스로 자기 존재의 권리를 갖고 있다고 보았던 최초의 생태학자였다. 그가 살았던 때보다 현재에 그의 이름이 계속해서 거론되는 이유를 충분히 납득하고도 남음이 있다.

‘신유물론’이라는 용어를 처음 언급한 사람에 로지 브라이도티가 있다. 1999년 출간한 <들뢰즈와 페미니즘 이론>에서 공저자와 함께였다. 브라이도티는 ‘차이’에 주목하며 개별성을 보편성에 억지로 담으려하는 동일성 철학에 반대한다. 나는 무엇보다 ‘인간은 유목하는 주체’임을 언급한 부분에 주목하게 된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는데 끊임없이 변화하며 스스로를 만들어나가는 존재를 개념화했다는 면에서 놀라움이 있다. 인간은 집에만 있는 존재가 아니다. 머물던 곳에서 언제든 박차고 나와 타인을 만나고 세상을 만난다.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는 다 다르다는 말이 참 좋았다.

베넷은 마르크스의 유물론을 변형시켜 생동하는 유물론을 만들어냈다. 마르크스는 노동을 인간의 삶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조건이자 가치로 여겨 물질과 인간(의 노동)을 엄연히 분리하는 이원론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베넷은 물질도 인간처럼 스스로 활력을 가지고 있고 능동성을 가지므로 일원론을 주장한다고 볼 수 있다. 물질은 변화하고 창조하는 힘을 가지고 움직인다. 인간은 그저 다양한 물질 중 하나일 뿐인 것이다. 동물, 사물도 정치적이고 능동적인 행위자로 보았다는 면에서 라투르의 입장과 기본적으로 이어져 있다.

도나 해러웨이하면 혼종성을 떠올린다. 종과 종이 만나고 함께 섞이고 얽힌다. 종은 ‘보다, 응시하다’라는 라틴어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반려종은 ‘서로를 따뜻하게 바라보며 식사를 나누는 관계’를 뜻한다고. 관계는 관심(사랑)이 이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기계와 유기체의 결합인 사이보그도 해러웨이는 관계의 한 부분으로 보는 것이 인상적이다. 스마트 워치를 착용한 사람, 안경을 쓴 사람, 마이크를 들고 강의하는 교수 등… 우리는 기계와 떨어져서 몸만으로 살 수 없다. 사이보그는 인간과 문화의 결합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를 ‘자연문화’라는 용어로 정의했다. 둘은 얽혀 있고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그녀는 강조한다. 해러웨이의 철학을 한 단어로 정의하라면 ‘관계’로 이어진 인간, 그리고 그 세계가 아닐까.

카렌 바라드는 타자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응답함으로써 책임과 윤리 의식을 강조한다. 물질도 느끼고 대화를 나누며 겪고 욕망하며 기억한다. 존재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서로 얽혀 있는 내부 작용을 통해서 새롭게 만들어지고 생성된다. 거미불가사리가 포식자 앞에서 자신의 몸 일부를 절단하는 행위적 절단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때 얽힘은 사물들이 그저 엉켜 있다는 말이 아니라 서로 부족하지만 연결되어(의존하고) 있다라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극심한 가뭄, 더위, 홍수, 잦은 태풍, 전염병 등 자연은 이제 인간의 통제 범위를 한참 벗어난 상태다. 신유물론자의 이론에 목소리를 기울여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페미니즘이 종래의 이분법적 사고를 깨뜨리려는 시도였다면 신유물론도 그와 결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신유물론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신유물론을 가능한 쉽게 설명한 책이다. 어려운 개념을 최대한 풀어 설명하고 적절한 예시를 제시해 이해를 도운다. 개인적으로도 앞으로의 독서 행보에 힌트를 얻었다. 얇지만 알찬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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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짧은 소련사 - 러시아혁명부터 페레스트로이카까지, 순식간에 사라진 사회주의 실험의 역사적 현장
실라 피츠패트릭 지음, 안종희 옮김 / 롤러코스터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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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류 역사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삶이 그렇듯이, 인류 역사에서 불가피한 사건은 거의 없다고 본다.
‘사회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정치철학자들이 고전적인 문헌을 참고해 다룰 수 있지만 나는 다른 관점, 즉 역사인류학자의 관점에서 접근할 것이다. 사회주의의 원칙적인 의미가 무엇이든, 1980년대에 어설프게 명명된 ‘실존하는 사회주의‘가 소련에 실제로 등장했다.

소련의 근현대사를 압축하여 놓은 책이다. 1922년부터 1991년까지의 주요 흐름을 훓고 있다. 비단 역사적 사건에 대한 나열과 소개에만 그치지 않고 관련 인물과 사건에 대한 평도 실어 놓았다. 이것이 독자별로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소련의 역사에서 볼셰비키와 사회주의 체제의 등장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저자의 말처럼 사회주의 체제의 구성과 정치적 의미를 분석하는 것보다는 인류학적 관점에서 분석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소련의 사회주의의 정점이 언제였는지 생각해본 적 있었는데 이 책은 그 정점을 1980년대로 보고 있다(오히려 나는 미소 경쟁의 정점이었던 1950-60년대를 생각했었는데-길게 본다면 1970년대까지). 경쟁적인 냉전 체제가 한꺼풀 지나간 뒤 소련 사람들의 삶에 사회주의가 자연스레 스며들었기 때문이라고. 사회주의는 소련의 종식으로 일단락되지만 러시아로 전환되는 과정까지의 도입 부분의 역사도 조금 다루고 있다. 특히 푸틴이 권력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푸틴이 권력을 강화하고 전쟁을 유지하며 세계를 불화에 빠트리려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자연스레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

볼셰비키는 마르크스주의자들로 근대주의, 합리주의 신봉자들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들은 소비에트 연방에 적대적이었고 비러시아인의 민족주의를 권장하였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이는 볼셰비키 지도자 세력 중 다수가 비러시아인들이었다는 사실을 통해서 방증이 가능하다.

혁명 초 주역이었던 레닌, 트로츠키, 스탈린을 비교하는 대목은 언제 읽어도 흥미롭다.
트로츠키는 주로 전형적인 지식인으로 묘사가 된다. 레닌은 이론가이자 연설가로 이름을 드날렸다. 물론 세 사람 중 마지막에 권력을 쥔 자는 결국 스탈린이었다. 레닌과 트로츠키 모두 스탈린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고 한다. 보통 유언장에서 남을 평가하지는 않는데 레닌의 유언장에 묘사된 스탈린은 부정적이었다. 특히 트로츠키는 스탈린을 저급하고 상스러운 인물로 바라보았다.

스탈린의 국가 체제 변혁은 전방위적이었다. 5개년 계획에 따른 강제 산업화, 농업 집단화, 문화 혁명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농촌에서는 산업화를 위해 한 자금 조달이 농민에게 압박을 가져왔다. 이는 식량과 소비재 부족을 초래하여 수십년간 농업의 발전을 저해했고 농민을 소외시켰다. 도시에서는 초반에 반짝 산업이 발전하기는 하였으나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면서 산업 원재료가 부족해졌다. 결과적으로 농촌에서든 도시에서든 그의 경제 정책은 모두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대숙청으로 문제가 된다고 여겨진 대부분의 인물이 수면 아래로 사라졌고 문화 혁명을 통한 정치적 권력화와 영웅주의화가 이루어졌다.

스탈린 이후 후계자 투쟁이 이어진 그 결과 서열 5위에 불과하던 흐루쇼프가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물론 이전에 스탈린에 의한 독재 체제가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에 정치 형태는 집단지도체제로 가게 되었다. 흐루쇼프는 즉각적인 급진 개혁 프로그램을 주장하여 놀라움을 일으켰다. 정치국 동료들조차도 그의 계획의 성공 가능성을 낮게 보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디에서나 급진 개혁을 주장하는 것은 위험성이 따르는 것 같다. 흐루쇼프의 개혁은 그래도 꽤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사적인 공간에서 가족과 친교를 나누는 모습이 흐루쇼프 시대의 상징이었다. 그것을 통해 이른바 서구에서 시민사회라고 부르는 것, 이를테면 국가와 별도인 여론 형성 공간이 등장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스탈린 치하에서 서구 문화와 스파이의 접근을 막기 위해 폐쇄되었던 국경이 열리면서 제한적이긴 했지만 새로운 해외여행 기회가 생겨 여론 형성에 도움이 되었다.

브레즈네프 지도체제는 소련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가장 안정된 치세로 기억한다고 한다. 단, 페레스트로이카 정책 이전 시기까지다. 전쟁도 기아도 없는 평화로운 시기였으니 평범한 민중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평화를 내세우기 위해서 치러야 하는 일도 있었다. 이전 정부보다 오히려 군사비 지출 규모가 훨씬 더 커서 1985년에 1960년대 군사비의 2배를 지출했다고 하니. 미소는 여전히 조용히 경쟁중이었다. 또한 소련 입장에서는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서라도 군사력을 유지하고 강화시킬 필요도 있었을 것 같다.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제로 점점 더 가파르게 지출 중인 대한민국의 군사 규모를 생각해보게 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역사는 사회주의의 편이었으나 갑자기, 겉보기에는 뚜렷한 이유 없이 엉뚱하게 흘러갔다고 이야기한다.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혁 추진 과정에서 소련의 붕괴는 갑작스럽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는 지도자 위치에 서기 전까지 중앙 정치 무대 경험도 없었던 사람이었고 전쟁을 겪은 세대도 아니었다. 그는 소련 시스템에서 성장한 최초의 지도자였다고 볼 수 있다. 고르바초프는 해빙을 위한 점진적 개혁은 필요하지만 사회주의는 더 강화되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었다. 그는 호기롭게 인민대표대회를 통한 선거 시행을 발표했으나 오히려 급진파인 보리스 옐친에게 압도적으로 밀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미 대통령 조지 H.W. 부시는 고르바초프와 소련의 존속 지지를 표명하였으나 이미 내부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데다 동유럽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도 혼란해진 상황이 더해져 모스크바 권력은 대폭 줄어든 상황이었다. 부시는 미 의회의 압력과 우크라이나의 로비로 인해 물러나게 되었고 옐친이 이끄는 러시아공화국은 소비에트연방의 핵심 공화국으로 올라섰다. 결과적으로 소련은 우크라이나가 연방을 탈퇴하고 미국이 묵인하면서 해체의 길로 갔다.
나는 다민족 연방 체제인 소련이 무너진 반면 러시아 공화국이 분열되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이는 옐친과 뒤이은 푸틴이 민족 분리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긴 지도자 입장에서는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어떤 민족이라도 분리를 허락하는 순간 쇄도할지 모를 위험 요소를 원천봉쇄하기 위함이겠지.

푸틴은 2020년 한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가 같은 민족인데도 분리되어 있음으로 인한 손실을 강조한 바 있다. 2022년 일어난 전쟁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소련의 역사를 빠르게 훑어볼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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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05-29 2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련, 소비에트 연방의 줄임말이겠죠?
오랜만에 이 이름 보네요.
옛날엔 아무 의문 없이 받아들였는데,,, 갑자기 생소해서 이름의 의미를 생각해보네요^^

거리의화가 2025-05-30 06:41   좋아요 2 | URL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요^^ 소련이 무너진지 꽤 되었는데 러시아의 행보는 여전히 크게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네요.

새파랑 2025-05-30 0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련(러시아)의 근대사는 언제나 흥미로운거 같아요~! 문학이든 정치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공부도 많이 했었는데 ㅋ 읽어보고 싶습니다~!!

거리의화가 2025-05-30 09:46   좋아요 1 | URL
새파랑 님은 러시아 작가 소설 많이 읽으시니까 관련 역사를 읽으시면 훨씬 도움이 되실 것 같아요^^ 역시 이전에 공부를 하셨군요!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