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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신유물론이다 - 브뤼노 라투르, 로지 브라이도티, 제인 베넷, 도나 해러웨이, 카렌 바라드의 생각
심귀연 지음 / 날(도서출판) / 2024년 4월
평점 :
현재 대부분의 학문(이론 또는 사상)은 홀로 서지 못한다.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를 넘어서 다양성을 요구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 100~200년은 어떠했는가.
근대론은 이분법적 사고로 인해 많은 위기와 폐단을 불러왔다. 우리는 한때 어느 한쪽 편에 서야만 했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는 차별과 배제, 인종주의를 비롯한 극단주의에 매몰되게 만들었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라면 경쟁하듯 쫓았다. 인간 중심의 사고, 개발 중심의 정책이 현재의 기후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이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의 사유 능력임을 믿었던 근대론자(대부분의 근현대인)들은 세계를 인간의 정신, 그 외에는 물질(몸)의 구성요소로 보았다. 이때 물질은 기계(어떤 동력이 있어야 움직이는 물체)로 취급되었다는 것이 문제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물질은 살아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신유물론은 죽은 물질을 되살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신유물론자들은 물질이 내재적인 힘에 의해서 활력을 띤다고 말한다. 존재 자체가 품고 있는 운동 에너지로 스스로 변화하고, 새로운 힘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들뢰즈는 이를 리좀Rhizome이라고 했다.
이 책은 신유물론이 어떤 배경에서 등장했는지, 그 개념은 무엇인지, 그리고 신유물론을 주장하는 다양한 철학가(사상가)를 소개한다. 브뤼노 라투르를 비롯한 로지 브라이도티, 제인 베넷, 도나 해러웨이, 카렌 바라드가 그 주인공이다.
브뤼노 라투르가 신유물론의 맨 꼭지를 담당하는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라투르는 누구보다도 이분법을 허물고자 한 사상가였다. 라투르의 행위자들에는 인간만이 있지 않다. 그래서 행위자망(행위자 간의 연결망)에는 여행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여행 가방, 지도 등이 함께 들어있다. 그는 자연이 스스로 자기 존재의 권리를 갖고 있다고 보았던 최초의 생태학자였다. 그가 살았던 때보다 현재에 그의 이름이 계속해서 거론되는 이유를 충분히 납득하고도 남음이 있다.
‘신유물론’이라는 용어를 처음 언급한 사람에 로지 브라이도티가 있다. 1999년 출간한 <들뢰즈와 페미니즘 이론>에서 공저자와 함께였다. 브라이도티는 ‘차이’에 주목하며 개별성을 보편성에 억지로 담으려하는 동일성 철학에 반대한다. 나는 무엇보다 ‘인간은 유목하는 주체’임을 언급한 부분에 주목하게 된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는데 끊임없이 변화하며 스스로를 만들어나가는 존재를 개념화했다는 면에서 놀라움이 있다. 인간은 집에만 있는 존재가 아니다. 머물던 곳에서 언제든 박차고 나와 타인을 만나고 세상을 만난다.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는 다 다르다는 말이 참 좋았다.
베넷은 마르크스의 유물론을 변형시켜 생동하는 유물론을 만들어냈다. 마르크스는 노동을 인간의 삶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조건이자 가치로 여겨 물질과 인간(의 노동)을 엄연히 분리하는 이원론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베넷은 물질도 인간처럼 스스로 활력을 가지고 있고 능동성을 가지므로 일원론을 주장한다고 볼 수 있다. 물질은 변화하고 창조하는 힘을 가지고 움직인다. 인간은 그저 다양한 물질 중 하나일 뿐인 것이다. 동물, 사물도 정치적이고 능동적인 행위자로 보았다는 면에서 라투르의 입장과 기본적으로 이어져 있다.
도나 해러웨이하면 혼종성을 떠올린다. 종과 종이 만나고 함께 섞이고 얽힌다. 종은 ‘보다, 응시하다’라는 라틴어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반려종은 ‘서로를 따뜻하게 바라보며 식사를 나누는 관계’를 뜻한다고. 관계는 관심(사랑)이 이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기계와 유기체의 결합인 사이보그도 해러웨이는 관계의 한 부분으로 보는 것이 인상적이다. 스마트 워치를 착용한 사람, 안경을 쓴 사람, 마이크를 들고 강의하는 교수 등… 우리는 기계와 떨어져서 몸만으로 살 수 없다. 사이보그는 인간과 문화의 결합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를 ‘자연문화’라는 용어로 정의했다. 둘은 얽혀 있고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그녀는 강조한다. 해러웨이의 철학을 한 단어로 정의하라면 ‘관계’로 이어진 인간, 그리고 그 세계가 아닐까.
카렌 바라드는 타자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응답함으로써 책임과 윤리 의식을 강조한다. 물질도 느끼고 대화를 나누며 겪고 욕망하며 기억한다. 존재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서로 얽혀 있는 내부 작용을 통해서 새롭게 만들어지고 생성된다. 거미불가사리가 포식자 앞에서 자신의 몸 일부를 절단하는 행위적 절단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때 얽힘은 사물들이 그저 엉켜 있다는 말이 아니라 서로 부족하지만 연결되어(의존하고) 있다라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극심한 가뭄, 더위, 홍수, 잦은 태풍, 전염병 등 자연은 이제 인간의 통제 범위를 한참 벗어난 상태다. 신유물론자의 이론에 목소리를 기울여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페미니즘이 종래의 이분법적 사고를 깨뜨리려는 시도였다면 신유물론도 그와 결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신유물론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신유물론을 가능한 쉽게 설명한 책이다. 어려운 개념을 최대한 풀어 설명하고 적절한 예시를 제시해 이해를 도운다. 개인적으로도 앞으로의 독서 행보에 힌트를 얻었다. 얇지만 알찬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