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적인 질문하기는 늘 그랬던 것처럼 고유한 것이나 속성/소유/-
고유성의 가치들 전체, 주체의 가치 및 따라서 책임을 지는 주체,
법의 주체 및 도덕의 주체, 법이나 도덕적 인격, 지향성의 주체의가치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따라나오는 모든 것의 가치의 역설들을동요시키고 복잡하게 만들거나 환기시킨다. 이러한 해체적 질문하기는 전적으로 법과 정의에 대한 질문하기, 법과 도덕, 정치의 토대들에 대한 질문하기다. - P21

어떤 결정이정당하고 책임감 있기 위해서는 이러한 판단은 자신의 고유한 순간에 만약 이런 것이 존재한다면 규칙적이면서도 규칙이 없어야 하며, 법을 보존하면서도, 매 경우마다 법을 재발명하고 재정당화하기 위해, 적어도 그 법의 원칙에 대한 새롭고 자유로운긍정과 확증 속에서 이를 재발명할 수 있기 위해 법에 대해 충분히파괴적이거나 판단 중지적이어야 한다. 매 경우가 각각 다른 것인만큼, 각각의 결정은 상이할 뿐 아니라, 기존의 법전화된 어떤 규칙도 절대적으로 보증할 수 없고 보증해서도 안 되는, 절대적으로특유한 해석을 요구한다. - P64

결정 불가능한것은 적어도 하나의 유령, 하지만 본질적인 유령으로서, 모든 결정, 모든 결정의 사건에 포함되어 있고 깃들여 있다. 이것의 유령성은 결정의 정당성, 사실은 결정의 사건 자체를 우리에게 보증하는 모든 확실성, 모든 현전의 안전성 또는 모든 공언된 척도 체계를 내부로부터 해체한다. 도대체 누가 어떤 결정이 그 자체로 발생했다고 보증할 수 있겠는가? 도대체 누가 어떤 규칙의 적용이나비적용을 자유롭게 결정하는 이 지각할 수 없는 판단 중지 없이도,
그러한 결정이 이러저러한 우회를 따라 어떤 원인, 어떤 계산, 어떤 규칙을 따랐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 P53

정의는 현전 불가능한 것이긴 하지만 기다리지 않는다.
직접적이고 단순하고 간략하게 하기 위해, 하나의 정당한 결정은항상 직접적으로, 당장, 가능한 한 최대한 빠르게 요구된다고 말하기로 하자. 이것은 자신을 정당화해줄 수 있는 조건들이나 규칙들내지는 가언 명령들에 대한 무한한 정보, 한정 없는 지식을 스스로부여할 수 없다. 그리고 비록 정당한 결정이 이를 보유할 수 있다하더라도, 비록 그것이 이렇게 할 시간, 이 주제에 필요한 모든 시간과 모든 지식을 얻어낼 수 있다 하더라도, 결정의 순간, 정당해야만 하는 이 순간 자체는 항상 긴급하고 촉박한 유한한 순간으로남아 있어야 한다. - P56

거대한 지정학적 차원에서 오늘날 식별될 수 있는 이 사법화·정치화의 영토들을 넘어서, 모든 이해타산적인 노선 변경과 일탈을 넘어서, 국제법에 대한 특수하게 규정된 모든 재전유를 넘어서, 처음에는 부차적이거나 주변적인 지대들과 비슷해 보일 수 있는 또 다른 지대들이 지속적으로 개방되어야 한다. 이러한 주변성은 또한[중심적인 문제 영역들에 의한) 하나의 폭력 및 심지어 테러리즘을의미하며, 따라서 또 다른 형태의 인질극"이 진행 중인 셈이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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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1] "시적 지혜"는 장엄한 시인이 동시에 장엄한 형이상학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규정한다. 왜냐하면 형이상학은 감각으로부터 정신을 추상해내는 반면 시적 능력은 정신 전체를 감각속에 잠기게 만들기 때문이다. 형이상학은 보편 위로 날아가는 반
‘면 시적 능력은 개별 속으로 파고 들어가야 한다. - P675

[873] 트로이 전쟁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호메로스가 그의 서사시라는 - P695

위대한 흔적을 남겨놓지 않았더라면 그러한 난관은 우리로 하여금 그가 자연 속에 존재하는 특정의 인물이 아니라 관념 속의 시인이었다고 말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쪽으로는 그리도많은 큰 난관들이 있지만 다른 한쪽으로는 그 서사시들이 남아서전해진다는 사실을 함께 고려하면 중간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어보인다. 즉 호메로스가 그리스의 역사를 노래로 말한 한 그는 그리스인들의 영웅에 대한 관념 또는 그 시적 인격체였다는 것이다. - P696

[1088] 로마는 세 가지 형태의 국가 체제를 이 새로운 학문」에서 수많은 증거를 들어 논증했던 자연적 순서에 따라 거쳐가면서 각 단계마다 그것이 자연적으로 다음 단계로 이어질 때까지 존속했던 것이다. 그들은 푸블릴리아 법과 페텔리아 법에 이르기까지 귀족제를 지켰고 [104~115], 아우구스투스의 시대까지는 민중의 자유를 지켰으며, 군주제 국가의 형태를 파괴하는 내적, 외적인 원인들에 대해 인간으로서 저항하는 것이 가능할 때까지는 군주제를 지켰다. - P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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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금·은·동·철의 네 시대로 구분한 것은 타락한 시대의 시인들이 만든 일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최초의 그리스인들에게 황금시대라는 말을 부여했던 것은 이 시적인 황금인 곡식이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그 시대의 순수함이라고 말하는것은 폴리페모스의 극도에 달한 야만성에 불과했다. 이미 여러 차례 말했던 것처럼 [296, 338, 503] 플라톤은 그들을 최초의 가부장이라고 인식했다. 그들은 따로 떨어진 각자의 동굴에서 아내와 자식들과만 살았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폴리페모스가 오디세우스에게 말했던 것처럼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일에 간섭하지 않았던 것이다. - P430

씨족들의 자연법은 신의 섭리에 의해 민중들이 개별적으로 준수했던 것인데, 서로 접촉하면서 그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146]. 즉 로마의 약초로 만든 관(冠)을 써서 신성하게 된 로마의 전령이 라티움의 다른 민족들로부터 해를 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들이 서로 몰랐다 할지라도 동일한 관습을 시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것이다.
[551] 이렇게 가부장들은 종교를 통해 그들 가족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즉 가족은 종교를 통해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이다. - P436

그 당시에 귀족들은 "법적 소유권자"였는데 이제 그러한 사실은 토지를 구입한 소유자가 그 토지에 대한 반환 청구를타인으로부터 받았을 경우 그들을 돕고 지켜줄 수 있는 "권위를인용할 수 있는"(laudatio auctoritatis) 형태로 남아 있게 되었다. 이제 그러한 공민적 소유권은 재산 반환의 소송에 의해 도움을 받을수 있는 사적인 사회적 소유권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그것은 단지 소유하는 것만으로 유지되는 소작권과는 구분된다.
[622] 이와 같은 방식으로 중세 돌아온 야만의 시대에 봉토의원한 본성도 돌아왔다. 프랑스 왕국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시 프랑스 왕국을 구성하는 여러 지역은 왕에게 복종하는 영주들의 자치권역이었으며, 그 영주들은 아무런 공적 채무도 갖지 않는 자신들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그 뒤 계승이나 반역이나 후계자 단절로 인하여 그 모든 재산은 왕국의 소유로・병합되었으며, 영주들의 모든 재산은 "최고의 법에 따라"(ex iure - P514

optimo) 공적인 과세의 대상이 되었다. 왜냐하면 결혼이나 양도를 통해 봉신들의 수중으로 들어가게 된 왕의 집이나 땅도 과세나공납의 대상이 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렇듯 세습 왕국에서
"최고의 법에 따른" 소유권은 점차 공적인 채무의 대상이 된 사적소유권과 혼동이 되기에 이르렀고, 그것은 로마 황제의 가산이었던 왕실 재정이 점차 국고와 혼동되기에 이른 것과 마찬가지이다[1076]. - P515

부족이라는 단어인 "트리부"(tribu)로부터 "공납"을 뜻하는 말인 "트리부툼"(tributum)이 나왔다. 왜냐하면 도시 국가에서 평민은 부족을 뜻했는데, 그들은 지배하는 원로원으로부터 명령을 받기 위해 모였고, 가장 중요하고 가장 빈번한명령이 국고에 세금을 납부하라는 요구였기 때문이다. - P517

[764] 따라서 헤라클레스, 에반데르, 아이네이아스와 같은 이름들은 그리스로부터 라티움으로 들어왔으며 그것은 고대 민족들의다음과 같은 관습들을 설명해준다.
[765] 먼저, 야만의 시대에는 민족들마다 그들 고유의 관습에애착을 갖지만 문명화가 시작되면서 그들은 외국의 상품이나 복장 - P631

은 물론 외국어도 좋아하게 된다. 따라서 로마인들은 그들의 신 피디우스를 그리스의 헤라클레스로 바꾸었고, "피디우스에 걸고"라는 원래의 맹세 대신에 "헤라클레스에 걸고!", "폴룩스에 걸고!",
"카스토르에 걸고!" 같은 표현이 도입되었던 것이다.
[766] 다음으로, 민족들마다 특히 자신의 기원이 야만적이었다고 믿을 이유가 있을 때 명성 높은 외국에 기원을 두고 싶어 한다는 민족의 자부심 때문에[125] 로마인들은 그들의 참된 창시자인피디우스를 그리스의 창시자인 헤라클레스로, 그들의 전원 시인들의 시적 인격체를 아르카디아의 에반데르로 자발적으로 바꿨다. 그와 비슷하게 중세의 돌아온 야만 시대에 조반니 빌라니는피에솔레를328) 아틀라스가 건설했고, 트로이의 왕 프리암이 게르마니아를 다스렸다고 말했던 것이다.
529)[767] 1번째로, 민족들마다 외국의 물건을 봤을 때 자국어로확실하게 표현할 수 없다면 필연적으로 외국어를 사용한다.
[768] 마지막으로 네 번째, "시적 논리학"에서 논했던 것처럼[410] 최초의 인간은 대상으로부터 특성을 추상해내지 못했다. 추상적으로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특성을 말할 때 그 대상 자체를 말했다. 라틴어에는 이에 관한 명백한 사례가 많다. - P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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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법"은 "말하기의 기술"이 - P310

라고 정의된다. 그렇지만 그리스어 "그라마타"(Ypáwata)는 "문자‘
를 가리키기 때문에 "문법"은 "글쓰기의 기술"이라고 정의할 수도있을 것이다. 실로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렇게 정의했다. 실상은 사실이 그러했다. 왜냐하면 모든 민족이 본디 벙어리여서 글을 씀으로써 말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225, 400, 435].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문법"과 관련된] "문자"는 "관념", "형상", "유형"을뜻하며, 시적 문자가 명확하게 분절된 음성보다 먼저 출현했다. - P311

첫 번째로 초기의 모든 민족은 벙어리였음이 증명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관념과 자연적으로 연관되는 몸짓이나 물건을 통해 표현하려 했던 것이 확실하다[224, 401]. 두번째로 그들은 자신 땅의 울타리를 고정시키거나 그들의 권리에대한 영속적인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기호를 사용했던 것이 확실하다[486]. 세 번째로 그들은 모두 화폐를 사용했다[487]. 이러한모든 진리는 언어와 문자의 기원, 그에 따른 상형문자, 법, 이름, 가족의 문장(章), 메달, 화폐의 기원을 제시해줄 것이다. 그리고그 결과로서 여러 민족 초기의 자연법을 말하고 글로 썼던 초기언어의 기원을 우리에게 제시해줄 것이다. - P318

언어는 농축된 영웅어법 표현이 풍부할수록 더욱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런 언어가 더 아름다운 것은 더 생생하기 때문이며, 더 생생하기 때문에 더 진실에 가깝고 더 믿음이 간다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언어가 어원을 알 수 없는 단어들로 번잡할 때 그것은 즐겁지 못하고, 따라서 모호하고 혼란스러우며 따라서 기만적이고 오도될 공산이 크다. 이 후자의 언어는 많은 야만적인 언어의 혼합으로 이루어진 것이 확실하며, 따라서 그 어원과 비유적의미가 전해져 내려오지 않는다. - P334

모든 고대의 언어에서 명사가 먼저 만들어지고 그 뒤에 동사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동사의 빈약함을 명사와 결합시켜 보완하기 위해 복합어가 만들어지는 것은 모든 최초의 언어에 공통적인 특징이었음이 확실하다. 이것이 모르호펜이 독일어와 독일시 개설에서 논했던 원리였음은 확실하다. - P358

[487]민족들마다 글 쓰는 법을 몰랐던 시대에 문장의 필요성이란 대체적으로 소유권의 확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훗날 평화 시에 그것이 공적인 휘장이 되었다. 비슷한 방식으로 메달도 출현했는데, 전쟁이 일어나면 이러한 것들이 군기(軍)가 되었다. 그것은 초보적인 상형문자로서의 용도가 있었는데, 서로 다른 언어를사용하는 민족들 사이의 전쟁이란 결과적으로 그들 사이의 묵음의 전쟁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 P366

가장 오래된 법은 한 사람만을 겨냥하여 명령하거나 금지하도록 입안된 것이었고, 그 이후에야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었다. 최초의 민중은 보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 P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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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인간은 인간 정신의 불명확한 본성 때문에 무지로 빠져들어갈 때마다 자기 자신을 만물의 척도로 만든다. - P148

[122] 인간 정신의 또 다른 속성은 멀리 떨어져 있고 알지 못하는 사물에 대해서는 그들이 알고 있는 것과 그들 앞에 존재하는것에 의해 판단한다는 것이다. - P148

[124] 앞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53, 59] 자만심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민족의 자만심이고 다른 하나는 학자의 자만심이다. - P149

[161] 인간사의 본질 속에는 모든 민족에게 공통적인 정신의 언어가 전제되어야 함이 확실하다. 이 언어는 인간의 사회생활.
에서 일어날 만한 일들의 본질을 균일하게 이해하도록 해주며 그사물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측면의 다양한 양태를 설명해준다[387]. 민중적 지혜의 금언인 속담이 그 예인데 고대와 현대의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의미가 그 민족들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이다[445]. 201 - P162

[173]이집트의 고대는 우리에게 두 개의큰 흔적을 남겨놓았다. 그 하나는 이집트인들이 세계의 모든 시간을 신의 시대, 영웅의 시대, 인간의 시대라는 세 시대로 구분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 세 시대의 순서에 따라 각 시대마다 세개의 언어를 사용했다고 하는 것이다. 즉 상형 언어 또는 신성한언어, 상징 즉 비유를 통한 언어 또는 영웅의 언어, 서간체 언어또는 인간의 민중 언어로 민중 언어란 일상적인 삶의 필요를 소통 - P127

하기 위해 기호를 사용한 언어이다[52,432]. - P168

첫 번째 공리는 민중이 신화를 만들고,
그것도 호화롭게 만들려는 자연적인 경향을 보여준다. 두 번째는인류의 소년기에 있던 초기의 인간은 사물을 개념화시킬 범주를 형성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시적인 인격체를 만들어야 할 자연적 필요성을 갖고 있었다. 시적인 인격체란 상상력의 속(屬) 또는 보편적 상상력으로서, 모델이나 이상적인 초상화처럼 그것을닮은 모든 특수한 종(種)들을 거기에 맞추어 환원시킨다. 이러한유사성 때문에 고대의 신화는 호화롭게 꾸며서 만들 수밖에 없었다. - P179

[250] 모든 민족은 어떠한 신성에 대한 숭배와 함께 시작하였기때문에, 가족 국가의 가부장들은 전조를 통한 점복에 능통한 현자였음이 확실하다. 그들은 점복을 수행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희생 의식을 거행하는 신관이면서 그들 가족에게 신성한 법을 전달하는 왕이기도 하다: - P190

[311] 씨족들의 자연법은 민족들의 관습과 함께 출현했고, 그것은 아무런 이성적 사고도 필요 없는 인간의 상식에 일치하며,
따라서 민족들 사이에 모방도 없다. - P215

모든 민족은 종교를 갖고 있고, 엄숙한 혼례를 거행하고, 죽은 사람들을 매장한다. - P225

방종한 인간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타고 난 힘이 결핍되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신앙에의존한다. - P232

육체의 운동을 통제하는 것은 인간 선택의 자유, 즉 인간의 자유의지의 결과임이 확실한데, 그것이야말로 정의를 포함한 모든덕성의 고향이자 안방이다. 정의의 지시를 받아 자유의지는 모든올바른 것의 원천이 되며, 올바른 것의 부름을 받은 모든 법의 원천이 된다. - P233

학문의 여왕인 형이상학은 "학문은 그것이 다루는 소재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314] - P238

새로운 학문이 사용하는 기준이란 사람들 전체 혹은부분이 옳다고 인식하는 것은 사회적 삶의 규칙이 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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