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탈식민주의에 대한 성찰 : 푸코, 파농, 사이드, 바바, 스피박 - 살림지식총서 248 살림지식총서 248
박종성 지음 / 살림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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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서 벗어났는가. 이 책은 탈식민 이론가들을 여럿 소개하고 탈식민주의를 이해하기 위해 가져야할 다양한 시선과 질문을 던진다. 탈식민주의를 이해하고 개괄하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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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름, 완주 듣는 소설 1
김금희 지음 / 무제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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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서 시작하여 여름의 초입을 지나 뙤약볕을 쬐고, 폭풍 같은 비바람을 만난 뒤 평온해지는 느낌.

이 책은 여름 한 계절을 겪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계절 하나를 보내는 것이 뭐 그리 대수인가 싶지만 이 경험은 주인공에게 새로움이었다.
주인공은 손열매, 어린 시절을 충남 보령에서 비디오 가게 손녀 딸로 살다가 커서는 상경했다.
성우가 되었으나 프리랜서로 수입이 일정치가 않아 고군분투한다. 어느 날부터 목에 문제가 생겨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을 때가 있었고 정신과 진료 결과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아마도 일로 스트레스를 받은 것도 있지만 함께 살던 룸메이트 언니에게 돈을 빌려줬다가 떼인 것도 큰 몫을 했을 것. 그녀는 목 때문에 일도 할 수 없어 수입이 거의 끊겨서 룸메이트 언니인 고수미의 고향 집을 찾아가기로 하면서 소설의 무대는 그곳으로 이동한다.

손열매는 심신이 지쳐있어서 매사 시니컬했다. 고수미 고향은 서울에서 1시간 남짓 걸려서 도달할 수 있는 동네였다.
지하철에서 내려 마을을 향해 가는 버스에 탔다가 어저귀를 만났다.

고수미 고향 집을 찾아가니 고수미 엄마는 이미 그런 일을 많이 겪은 듯 달관한 태도였다. 고수미는 이곳에 찾아온지 오래인 듯했고 열매는 딱히 어디 갈 데도 없어서 이곳에 세입자로 지내게 된다.

이곳은 열매에게 온통 신기한 곳이었다.
항암치료를 하면서 아침마다 장례를 위해 시신의 염을 하러 가는 고수미 엄마가 있었고
지나치게 슬픔에 대해 논의하는 아이들 양미, 파드마, 율리아가 있었다.
유명한 배우가 대저택에 은둔하며 사는 곳이기도 했다.
인류애를 잃어버렸다면서 온갖 마을 일에 도움을 주는 어저귀가 있었다.

마을의 논밭을 다 밀어버리고 골프장으로 개발하려는 개발회사가 있었다. 개발을 위해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고자 중간 다리를 놓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의 설득에 넘어가 동조하는 마을 사람들이 있었지만 상당수는 지금의 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곳은 풀벌레 소리, 전나무 냄새가 느껴지는 곳이었으니까.
이처럼 마을은 개발을 두고 분열이 일어났는데 이는 수해 때문에 생긴 큰 사건이 있어서다.

결론적으로 고수미는 이곳에서 지내면서 욕망을 다시금 되찾게 된다.
그렇지만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반드시 있음을 그녀는 깨닫게 되었다.

인생의 무게는 가벼울 리 없다. 아직 내가 그 무게를 알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때론 살면서 비굴해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실수할 때는 인정하면 된다고 생각하니까(그러지 못한 경우가 많지만).

싱그러움이 느껴지다가도 온전히 맑지만은 않아서 물기 어린 시선이 느껴졌다.

살아 있는 것이 살아 있는 것을 돕고 싶은 마음. 나는 그것을 갖고 있을까?
소설을 읽으며 이 여름을 조금은 더 잘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참고로 이 책은 오디오북으로 먼저 나오고 뒤에 종이책이 나온 경우다. 윌라 독점 계약으로 오디오북 프로젝트로 작가가 원고를 썼다고 한다.사투리, 음향 효과 등 때문에 이 소설은 가능하면 오디오북으로 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프로젝트로 성우를 비롯하여 배우들이 재능 기부를 했다고 한다. 나도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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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5-11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디오북을 먼저 내고 종이책을 내는 방식도 나왔군요. 신선하네요. 예전에 창덕궁 밤구경 갔다가 행사로 배우들이 나와서 책을 읽어주는걸 들었었거든요. 그런데 진짜 딱 첫문장 듣는데 와 전문가구나 진짜 다르다 했었어요. 전 듣기를 좀 힘들어해서 책으로 읽겠지만 그래도 이런 다양한 시도는 참 좋네요. ^^

희선 2025-05-12 0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디오북으로 만나셨군요 배우가 읽는, 거의 연기할 듯하네요 라디오 드라마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습니다 라디오 드라마 들은 적은 별로 없지만... 예전에 EBS FM에서 예전 소설 드라마처럼 읽어준 적 있군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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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조선으로 - 해방된 조국, 돌아온 자들과 무너진 공동체
이연식 지음 / 역사비평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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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느새 일국사 틀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해외 귀환자 문제는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 그리고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이 문제를 마이너 테마로 간과하거나 애써 배제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은가. 일제강점기 말에 그렇게 많은 조선인이 해외로 끌려갔다고 교과서에 적어놓고선 그들이 그 후 어떻게 돌아왔고, 어떤 과정을 거쳐 새 나라의 국민이 되어 갔는지는 정작 설명하지 않는다. 즉 ‘사람’의 실체가 보이지 않는 역사책을 만들고 그것을 줄줄이 암기해 온 셈이다. - P315


종전 후 이루어진 대규모 인구이동은 본질적으로 뚜렷한 특징을 내포하고 있었다. 즉 이동하는 사람들의 송환과 수용 사이에는 이동 당사자의 개인적인 선택권보다는 조선인•일본인•점령군이라는 각 행위 주체의 집단적•민족적•국가적 이해관계가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말하자면 이들 3자 간의 각기 다른 필요•욕망•지향이 서로 충돌하는 가운데 이것이 미세 조정되는 방식으로 전후 인구이동의 논리와 틀이 만들어진 셈이다. - P68


남한의 제 정당 및 사회단체, 그리고 학계에서는 일본인들이 항복 방송을 듣자마자 벌인 일련의 행동을 지켜본 뒤, 끔찍한 사태를 예상하고 다양한 경로로 일본인 소유 재산을 당장 ‘동결’해 자유 매매를 금지하고, 이들이 보유한 화폐를 공공 기관에 ‘등록•예탁’시켜 국가(남한에 수립될 임시정부나 군정 당국)가 철저히 ‘관리’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하지만 미군은 진주 후 이러한 남한 사회의 권고를 무시한 채 1945년 9월 25일 일본인 사유재산의 매매(미군정법령 제2호)를 허용함으로써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탐욕과 죄악의 판도라 상자를 기어코 열고야 말았다. - P132

또한 남한 사회는 긴급한 사회문제로서 일본인의 불법적인 재산 처분과 밀항에 대한 단속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에 미군정은 1945년 10월 초 법령 제10호를 발표해 당국의 허가 없이 반경 10킬로미터 이상의 이동을 금지했지만, 이를 어겨도 이를 단속할 의지나 여력이 없었다. 이에 미군정 당국자(하지 등)는 도리어 ‘돈에 눈이 먼 의식 없는 조선인’ 탓이라며 일본인을 도와 밀항을 알선한 브로커를 비난했고, 단속할 방법을 찾아달라며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 결국 1945년 12월 15일이 되어서야 남한의 구 일본국에 소속된 재산과 권리를 모두 군정청에서 관리한다는 선언을 발표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이를 돈냄새를 맡은 이들은 횡령, 사재기, 밀수 등으로 이미 법망을 다 빠져나간 뒤였다. 


그리고 탐욕은 부에서 끝나지 않고 권력으로도 이어진다. 식민지 시기 이루어졌던 요정에서의 밀실 정치가 해방 후에도 이어져 총독부 고관 대신 미군정 관료와 통역관 등이 그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다. 심지어 이곳에서 포르노 상영회가 이루어졌다고 하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도색영화 상영 모임의 물주는 물건을 사재기하거나, 귀환하는 일본인으로부터 값싸게 물건을 건졌거나 건물 등의 운영권 등을 따내 떼돈을 번 사람들이었다. 아! 도색영화 현장에는 당시 수도경찰청장인 장택상도 있었다. 

이 무렵 서울은 귀환자와 월남민 외에 생계를 찾아 몰려드는 사람들로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던 시점이었다. 주거난이 심각하여 역의 대합실,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방공호, 길거리를 전전하는 사람들이 념쳐났다. 이런 모리배와 투기꾼들이 주지육림에 빠져 있는 동안 정작 일거리가 없고 먹고 살 길이 막막하여 길을 떠돌다 굶어 죽는 사람들이 다반사였던 것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미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여기에는 미군정의 행태와 잘못이 가장 크다. 미군정은 구 총독부 시스템을 답습하여 남한의 정치 기본 시스템을 망가뜨리고 잘못된 곡가 정책으로 인해 물가 인플레이션을 발생시켜 경제를 위기에 빠뜨렸다. 거기에 미군정 핵심 인사는 친일파나 정재계의 거물들에게서 각종 뇌물과 향응 등의 이익을 받고 뒷배를 봐주기까지 했다. 여기에는 초대 서울시장인 김형민도 있다. 그는 특별한 흠결이 없었고 영어가 되어(유학 경험) 미군정으로서는 그를 점찍었던 모양이다. 서울 시장으로 있었던 기간은 단 2년 7개월이었다는데 그가 그 자리에 있는 동안 온갖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심지어 그 비싸다는 청파동 가옥을 매입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분배했다). 

만약 미군정이 일본인들이 떠난 후 적산가옥과 대규모 요정, 유곽 시설을 귀환자나 월남인들을 위해 적절히 배분해주었다면 어땠을까. 


귀환자와 월남민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생한 뒤 많은 나라들에서 이루어진 상황이었다. 한반도에 200만의 인구가 유입이 되었고 일본도 60만의 인구가 유입되었으나 둘 간의 정책에는 차이가 있었다. 우선 일본은 정부와 의회가 있어 이들의 의견을 청취할 수 있는 창구가 열려 있었다. 그러나 남한은 미군정이 1944년 조선총독부가 만든 조선구호령 제도의 틀을 그대로 끌어오고 군정령을 더해 처리한 미봉책으로 빈곤자들마저도 혜택을 받을 수가 없었다. 일본은 귀환원호단체의 지도자나 경성일본인세화회 회장 등이 귀환자들을 지지하여 의회에 진출하여 그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반면 조선은 그런 창구 자체가 거의 전무했다.

연합국총사령부의 간접 통치 아래 있던 일본은 귀환자 구호를 위한 ‘제도’에 관한 논의가 공적으로 이루어졌고, 귀환자도 독자적 정치 세력화를 통해서 요구 사항을 제도적으로 관철하려는 등의 움직임을 보였다. 반면에 한국은 귀환자의 정착을 위한 미군정의 제도적 노력도 부족했고, 귀환자들의 정치 세력화에도 한계가 있었다. 이것은 한일 간의 역사적 경험 차이와 더불어 19세기에서 20세기 중반까지 한국과 일본의 국가 운영 경험과 행정 능력의 차이, 그리고 점령국인 미국에게 있어 전후 한일 양 지역이 지닌 전략적 중요성과 국가적 위상의 차이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 P285~286


전작에 이어 한달 안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역시 좋은 책이었다. 전작과 함께 이 책도 구매할 예정이지만 두 권의 책은 도서관에 꼭 있어야 하는 책이라는 생각을 했기에 희망도서로 신청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기존에 내가 알고 있었던 미군정의 정책에 더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모리배, 간상배, 아귀는 지금도 정재계와 사회에 뿌리 내려 있음을 앞선 역사를 통해서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재미난 사례와 그것을 사료와 적절한 설명으로 풀어내는 저자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전작이 2012년에 나왔는데 후속작이 무려 12년 만에 다시 나온 것이다. 연구 등으로 바쁘시겠지만 부디 저자가 앞으로도 이런 학술대중서를 출간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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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아민 말루프 지음, 김미선 옮김 / 아침이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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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사람들은 십자군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프랑크인들의 전쟁 내지는 침략이라고 말한다. 프랑크인들이라는 말이 지시하는 바는 지역, 저자들, 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 오늘날 서유럽인들을 가장 대중적으로 부르는 말로, 특히 프랑스인들을 지칭하는 프랑크다. - P11


최근 며칠 간 십자군 전쟁에 관련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몇몇 인물을 제외하고 내가 아는 소수의 지식이 얼마나 서구 중심, 그리스도교 중심의 역사였는지 깨닫게 되었다. 유럽 기독교 세력은 십자군 전쟁을 성지 예루살렘을 회복한다는 성전의 기치를 내걸며 시작했다. 그러나 상대측인 이슬람의 입장에서는 잘 살고 있는 땅을 유린당하고 가족, 친지를 잃으며 떠다녀야 하는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을 지은 작가 아민 말루프는 레바논에서 태어났으나 조국이 내전에 휩싸이는 바람에 고향을 떠나 프랑스에 정착하여 아랍 문화와 서양 문화를 동시에 경험한 배경을 지녔다. 게다가 소설가인 동시에 역사가이면서 저널리스트로도 활동한 바 있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아랍의 다양한 사료를 기반으로 갖고 와 당시 아랍인의 생각과 목소리를 전하고 사건은 르포처럼 현장감이 있으면서도 독자로 하여금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드는 특징이 있었다(작가가 머리말에서도 밝히듯 실화 소설을 다루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사료 중 가장 많은 목소리를 들려주는 이는 ‘이븐 알 칼라니시’이다. 그는 문필가이자 연대기 사가로 1096년 프랑크인들이 들어온 이래 사건을 목격하며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 그의 나이 23살 때부터 기록을 시작했으니 그야말로 청년 이후부터 죽을 때까지 십자군 전쟁을 겪은 셈이다. 


그 해 여름, 서쪽 하늘에 혜성 한 개가 나타났다. 그 혜성을 스무 날이나 계속 올라가더니 이윽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이러한 환상은 곧 사라져 버렸다. 소문은 점점 구체성을 띠어 갔다. 그리하여 9월 중순에 이르자 사람들은 프랑크인들의 전진 과정을 포착할 수 있었다.

1097년 10월 21일, 시리아에서 가장 큰 도시 안티오케이아에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퍼졌다. “그들이 온다!” … 이른 아침 수크의 왁자지컬함은 뚝 끊겼고 상인들과 손님들은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멈춰섰다. 여자들은 기도문을 웅얼거렸다. 삽시간에 온 도시는 공포에 휩싸였다. - P42~43

당시 사람들이 느꼈을 공포가 생생히 전해진다. 


프랑크인들은 계속 전진하여 1098년 말 시리아의 ‘마라’라는 도시에 들어오게 된다. 이 때 시리아에 들이닥친 프랑크인들이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보자.

마라에서 우리들은 이교도 어른들을 커다란 솥에 넣어 삶았다. 또 그들의 아이들을 꼬챙이에 꿰어 불에 구웠다. - P70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모습인데 프랑크군의 연대기 저자가 직접 쓴 것인만큼 충분히 잔혹한 상황이었을거라 짐작할 수 있다. 

프랑크인들에 대해 잘 아는 이들은 모두 한결같이 그들에게서 엄청난 용기와 전투에 대한 열정을 갖춘 맹수의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힘세고 호전적인 동물들이었다. - P71

그럼에도 ‘마라’ 근처의 도시인 ‘샤이자르’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이런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에 엄청난 기근이 있었다고는 해도 꼭 그런 상황이 불가피했는지 묻는다면 고개를 끄덕이기는 어렵다. 아무튼 마라에서 벌어진 살육은 아랍인들과 프랑크인들 사이에 큰 반감을 가져오게 만들었다.


주목할 만한 인물이 몇 있었다. 

이마드 알 딘 장기는 알레포와 모술의 새 통치자로 선출된 이후 프랑크인들과 최초로 맞선 전사로 추앙을 받는 인물이다. 그는 전사이자 전술가였을 뿐 아니라 추후 아랍계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탁월한 통치가였다. 그는 끊임없이 움직였으며 주변에 인물을 통해 지속적으로 정보를 얻음으로써 프랑크군에 맞설 준비를 했다고 한다. 장기는 선전술이나 교란술도 능수능란해서 프랑크군의 애를 먹였다. 그리고 그는 군율을 엄격하게 하여 군기를 어지럽히는 자를 벌하면서도 자신이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성이 아닌 막사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그리고 장기의 둘째 아들인 누르 알딘은 장기의 아들답게 선전선동에 탁월했다고 한다. 

그는 시와 서신, 책을 쓰게 하였으며 기대하는 효과를 거둘 만한 적당한 때를 골라 퍼뜨리게 하였다. 그가 설파하는 교리는 간단했다. 단일 종교. 곧 이슬람 순니파로서 모든 ‘이단들’에 맞서는 격렬한 싸움을 의미하였다. … 권좌에 머무른 28년 동안 누르 알 딘은 여러 울라마들을 부추겨 조약을 쓰게 했으며, 이슬람 사원들과 학교에서는 대중 강독을 통해 성지 알 쿠드스의 가치를 선전하게 하였다. - P208

그는 알레포를 장악하고 에데사를 함락시켰으며 프랑크군의 다마스쿠스 진군도 실패하게 만들었다(이때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롭게 넘겨받았다는 것이 탁월한 점). 또 각종 세금을 없앰으로써 군중이 인정하게 만들어 알레포와 다마스쿠스를 하나의 세력으로 통합시켰다는 점도 있다. 


장기는 힘을 실어준 술탄이 사망한 이후 계승 전쟁에서 불리해지는데 이때 타크리트의 지도자인 아이유브의 도움을 얻는다. 아이유브의 아들이 바로 살라딘(유수프)이다.

살라딘과 누르 알딘과는 교묘한 경쟁 관계였다고 보여진다. 당시 이집트 원정을 떠난 시르쿠와 살라딘에 맞서 이집트는 프랑크 세력과 동맹을 맺었다. 시르쿠가 사망하자 살라딘이 파티마 왕조 칼리프를 몰아내고 이집트의 통치자에 오른다. 누르 알딘은 경계 태세를 강화하고 결국 그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누르 알딘이 사망하면서 그 결행은 이어지지 못했다고. 만약 둘이 승부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아무튼 살라딘은 결국 예루살렘에 입성한다. 어떤 학살이나 약탈 행위도 없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러나 당시 주변 관리들이나 이슬람 주민들에게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고 한다. 

살라흐 알 딘은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포위 공격을 할 때 방어자들이 거세게 저항하면 그는 이내 지겨워하며 포위를 풀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군주라면 그래서는 안 된다. 운명이 아무리 그에게 호의적이더라도 말이다. 그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지 않아 성공을 굳히기보다는 성공의 과실을 낭비하는 경우가 많았다. 살라흐 알 딘이 티레에서 보여준 행동은 그런 면모를 잘 보여주는 예다. 무슬림이 그 도시 앞에서 말머리를 돌린 것은 분명한 과오였다. - P287

공격자들의 공격이 지겨워서 설마 포위를 풀지는 않았겠지만 아무튼 그가 보인 행동은 이슬람 측에서 보면 답답하기도 하고 상대측에게 퍼주는 것처럼 보였을 수 있을 것 같다. 1189년 프랑크 왕은 살라딘과의 협약을 깨고 아크레를 포위해버리고 만다. 아크레 전투는 장장 2년 동안 이어졌고 결국 살라딘군은 프랑크군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살라딘의 동생이었던 알 아딜은 아이브유 왕조를 하나로 모으는 일을 일구어냈다. 그는 뛰어난 행정가로 아랍 세계를 평화롭게 유지시키고 번영하게 만들었으며 관용의 태도를 보인 사람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탈환하면서 아이브유 제국의 일인자가 되었으면서도 프랑크인들과 공존하는 정책을 펼쳤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아랍인의 목소리를 통한 서술인 점은 감안해야 하지만 저자가 이슬람 칭찬 일색으로만 이야기를 서술하지 않으려 하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이야기적 서술로 재밌게 읽을 수 있으나 사건이나 에피소드가 뒤섞여 나오는 경우가 많아 거시적으로 역사를 정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부분은 책의 뒤에 연대기를 실어놓고 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인물의 특징, 특정 사건에 대한 묘사에 초점을 맞추고 읽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십자군 전쟁 동안 에스파냐에서 이라크에 이르는 아랍 세계는 아직은 지적으로나 물질적으로 가장 앞선 문명의 보고였다. 그러나 나중에 세계의 중심은 결정적으로 서쪽으로 옮겨진다. 여기에는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 것일까? 과연 십자군이 서유럽에는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 주었으며 아랍 문명에는 종말을 고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을까?

물론 전혀 그릇된 판단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판단이 약간의 수정을 요한다는 점이다. 아랍인들은 십자군 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분명한 ‘결함’을 지니고 있었다. 프랑크인들이라는 존재가 그것을 드러나게 했고 더 악화시켰을지는 모르지만 그 결함을 창출한 장본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 P361~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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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저녁까지 걷기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리디 살베르 지음, 백선희 옮김 / 뮤진트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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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해야 했는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장 이해하지 못한 영역이 조각이었기에 그것을 하기 시작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제에 이끌려 읽게 된 책이었다. 자코메티라… 몇 년전 자코메티 전시를 보러 갔다가 ‘걷는 인간’을 보고 오래도록 잔상에 남았던 기억이 있다.

작가인 리디 살베르는 2014년 공쿠르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 그는 우연히 알리나를 통해 파리의 피카소 미술관에서 온전한 하룻밤의 시간을 보내며 자코메티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그녀는 ‘걷는 인간’을 보면서 작가가 어떠한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었는지 오래도록 고민하고 혼란스러워한다.

작가는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토해내는데 정서적 측면에서 상당 부분 공감이 갔다. 그녀는 이민자 부모 아래 자란 폭력적인 아버지 하에서 학대를 받은 경험을 고백하며 상처와 콤플렉스가 오래도록 그의 정서를 뒤흔들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과거는 흘러갔지만 잔상과 흔적은 오래 가기 마련이다.

아무튼 그녀는 ‘걷는 인간’ 앞에서 거대한 벽을 느끼며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 내적 스트레스가 오히려 자신과 주변을 향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함께 사는 반려자와 입씨름을 하며 미술관의 미술품들이 자본주의의 노예로 좋은 투자처일 뿐 아니냐며 논쟁을 벌이기도 했으니까. 뭐 일부는 공감이 가기도 한다. 어떤 미술관의 미술품은 전리품인 경우가 있고 어찌 되었든 미술관에서는 돈이 되는 전시품을 모은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특히나 사설 미술관은 돈이 되지 않으면 영업을 이어갈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자코메티의 삶과 예술에 세 명의 중요 인물이 등장한다. 아네트, 이사쿠 야나이하라, 그리고 카롤린. 아네트는 아내이자 모델 겸 작업 조수였으며 그의 작품에서 상당 부분 등장했기에 가장 중요한 위치였다고 볼 수 있다. 둘은 술집에서 만나 동거 후 결혼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야나이하라는 사르트르의 소개로 자코메티를 만났고 이후 그의 모델이 되었다. 카롤린은 자코메티의 마지막 연인이었는데 자코메티는 그녀에게서 강한 에너지와 힘을 느꼈던 모양이다. 이처럼 삶과 예술은 밀접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걷는 인간’은 뼈대만 남은 사람이 앞을 향해 기운 채로 서 있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궁금했다. 아래 구절에서 답을 찾았다.
그는 실패를 계속해야 했고, 고꾸라져야 했다. 결과에 대한 보장 없이 실패해야 했고, 그 모든 암중모색과 망침, 후회, 망설임, 엉김, 돌출, 사고, 비틀림, 추함, 자신이 견뎌낸 모든 실패와 불확실성을 작품에 담아야 했다.
쉬지 않고 고집스레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왜냐하면 앞으로 나아가는 건 스스로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그저 자기 내면에서 나아가는 것일지라도.
그는 계속 걸어야 했다. 걷는 행위가 어쩔 도리 없이 그를 끔찍한 난파로 이끌지라도.
심장이 고동치는 한 걷고, 걷고, 걸어야만 했다.

자코메티 하면 실존주의가 자동으로 떠오른다. 그는 삶을 중요시 여겼고 수없는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실패를 새로운 창작을 위한 열정으로 승화시켰다. 실패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을 형상화한 것이 아닐까.
작가는 나아가 그것이 죽음의 메시지를 던진다고 말한다. 계속 걸어가다보면 그 끝은 죽음이 아니겠는가.
그녀는 공교롭게도 자코메티의 전시품을 피카소 미술관에서 보았다. 그러면서 그의 삶은 피카소와 비견된다고 작가는 말한다. 피카소는 예술을 사랑했고 삶을 사랑했다고 한다. 그는 ‘사’보다는 ‘생’을 추구했던 작가였다고. 하지만 나는 자코메티도 예술을 사랑했고 삶을 사랑했다고 본다. 다만 둘은 그 방식의 차이가 있었을 뿐.

예술은 사는 일이 우리에게 고통을 안긴다는 사실에 맞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 그럼에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예술이 우리의 기쁨과 삶에 대한 허기를 늘리기도 한다는 것. 예술이 죽음에 당당히 도전하거나 냉혹하게 우리에게 죽음을 상기하기도 한다는 것. 몸과 영혼이 포맷된 세상에 대한 우리의 거부를 날카롭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 시대는 더이상 불가능을 희망하지 말라고 엄명하는데 예술은 불가능을 좇는 우리의 취향을 자극하기도 한다는 것. 유용한 목적만 좇는 정신이 곳곳에서 우세할 때 예술이 무용한 것에 대한 우리의 취향을 되살리기도 한다는 것. 우리가 그것 없이는 살아가지 못하는, 꿈을 꾸고 자유로움을 갈망하는 강렬한 욕망을 다시 솟구치게 하기도 한다는 것. 우리가 유년기에 무척 좋아했던 색채들, 특히 빨강에 대한 취향, 잊어버린 취향을 우리에게 다시 안겨주기도 한다는 것. 형태와 사물에 대한 취향, 그것들의 소재와 빛에 대한 취향, 이 세계에 존재하지만 우리가 보지 못하는, 주어진 단순한 사물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취향을 다시 안겨주기도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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