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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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까지 시간이 좀 남았다. 책을 펼쳤다.
시간을 떼우듯 읽고 싶진 않았지만, 마음보다 내 손이 먼저 움직였으니 도리가 없다. 점점 엉덩이가 무거워지고, 앉은 자리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흠, 식상한 표현이지만 어쩔 수 없다. 정말 그랬으니까.

오르한 파묵의 책에 관심이 생겨 몇 권을 사두었는데, 작년에 《눈》을 읽고 완전히 홀딱, 정말 홀딱 빠졌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터키의 낯설고도 쓸쓸한 풍경이 이제는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질 만큼, 나는 그 이야기에 깊이 잠겨 있었다. 아, 이럴 때 김밥 꽁다리 먹는 것만큼이나 기분이 진짜 좋다! 겨울이면 떠올릴 책이 생겼다는 소소한 기쁨까지 준 그의 책은, 앞으로도 꾸준히 읽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최근 《순수 박물관》을 훑다가, 다음을 기약하고 가장 읽고 싶었던 《내 이름은 빨강》을 드디어 펼쳤다. 이 소설은 16세기 오스만 제국,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화가들이 세밀화를 그리던 시절의 풍경과 사람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다 알 만한 도입부.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 있다. 마지막 숨을 쉰 지도 오래되었고, 심장은 벌써 멈춰 버렸다. 그러나 나를 죽인, 그 비열한 살인자 말고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모른다.”

나도 이 언저리에서 강렬함만 확인하고 책을 내려놓았기에, 터키어로 ‘검정’을 뜻하는 카라가 나고 자란 이스탄불에서 마주하는 아련함과 낯선 것들, 가슴 한편이 저며오는 느낌, 흩날리는 눈밭 속에서 옛 연인을 떠올리는 순간… 그리고 그녀의 집에 여전히 서 있는 보리수와 밤나무를 바라보며 푸르른 여름날을 떠올리는 풍경까지, 이렇게 서정적인 장면들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책이 이슬람 회화와 서양 회화를 다룬다고 해서,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카라의 선명한 옛 기억을 따라가다 보니 내 속울림까지 덩달아 일렁였다. 머릿속은 등장인물의 설명으로 가득 차고, 막연하게 멀게 느껴지던 거리감도 금세 좁혀졌다. 역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마음을 건드린다. 괜히 내 사랑 이야기도 슬쩍 얹고 싶게 만든다. 오르한 파묵이 담아내는 ‘사랑’에 있어서는, 나는 그가 사랑하는 순간조차 이미 그 사랑이 사라진 뒤의 시간을 예감하며 인물의 감정을 다루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그는 사랑하는 순간보다, 그 사랑을 기억하는 시간을 더 잘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그리움에 사무친 카라를 떠올리게 할 만큼, 작품의 시작을 참 잘 열어주었다.

십이 년 만에, 눈 덮인 나뭇가지 사이로 드러난 그 아름다운 얼굴! 그녀의 검은 눈동자는 나를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 앞쪽의 다른 세상을? 슬픈 표정을 짓고 있나? 미소를 지은 걸까? 슬픈 미소를 짓고 있는 걸까? 어리석은 말아, 내 심장 박동에 따르지 말고 좀 천천히 가란 말이다! 나는 안장 위에서 몸을 돌린 채 그리움 가득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얀 나뭇가지 뒤로 가냘프고 우아한 그녀의 신비로운 얼굴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말을 타고 가는 나와 창문에 기대선 그녀의 모습이 휘스레브가 쉬린의 창가로 다가가는 장면, 숱한 화가들에 의해 수천번도 더 그려진 그 장면(그러나 내 등 뒤에는 슬픈 나무 한 그루가 더 있었다.)과 얼마나 닮았는지를 나는 나중에, 그녀가 보낸 편지 속에 든 그림을 보고야 알았다. 그 둘의 유사성을 깨달았을 때, 나는 우리가 몹시 아끼고 좋아했던 그 책 속의 그림처럼 사랑으로 활활 타올랐다. (p. 75)

아니 근데 사람도 아니고 색깔이 화자가 돼서 말한다? 아직 2권은 안 읽어봐서 모르겠지만, 1권만 해도 33장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정말 다양한 화자가 등장한다. 사람만 말하라는 법 있나! 개도 말하고, 새도 말하고, 나무도 말한다. 앞서 언급한 검정을 뜻하는 카라 외 뭐뭐뭐 많지만, 어쨌든 다채롭게 펼쳐진 이야기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내 머릿속만 개방형 모드로 켜두면 된다. 아참, 화자가 많다고 정신 사나운 게 아니라, 오히려 다음에 등장할 화자가 들려줄 이야기가 더 궁금해진다! 대략적인 소개는 이정도에서 멈추고, 어쨌든 살인사건으로 시작되었으니, 왜 죽었고, 왜 죽였는지가 궁금하다. 죽은 시체가 말하고, 개도 말하고 새도 말할 판이니, 살인자도 직접 등장해 입을 연다. 그의 직업은 세밀화가다. 사건의 세부적인 상황이나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는 방식이 화가답다. 거장의 작품이나 그 작품이 품고 있는 의미를 당연히 독자가 알 거라 여기면서 얘기하는데, 나로선 참 머쓱해질 따름이다. 그래도 괜찮다. 다행스럽게도 친절히 설명해 주니 말이다.

이 소설에서는 고전 페르시아 서사시도, 이슬람 세밀화 전통도, 서양 회화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그중에는,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아름다운 책을 갖지 못하게 화가를 죽이려 했다는 사람 이야기도 나온다. 사랑하듯 집착하고, 결국 파괴로 이어지는 마음. 아름다움을 가두려는 것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강박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렇게 강렬한 욕망과 집착의 심리와 비교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일상의 작은 질투나 욕심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스친다. 오르한 파묵이 그려낸 인간 심리는 그래서 낯설지가 않다. 물론, 나와 다른 시선과 다른 감정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또한 존재할 것이다.

아마 이런 다채로운 인간의 시선과 감정이 바로 여러 장으로 나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슬람 세밀화가 한 작품 안에서 여러 화가의 붓질로 완성되듯 구성된 이 소설은, 화자들이 각각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영화에서 여러 인물 시선을 번갈아 보여주는 느낌이랄까? 덕분에 단일한 관점에 갇히지 않고, 여기저기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단순히 사건만 따라가는 게 아니라, 서로 겹친 삶의 풍경을 오래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사람마다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다르고, 선택은 어쩔 수 없이 불완전할 때가 많다. 그 불완전함 속에서 우리는 자기 방식대로 삶을 그려 나간다. 겹겹의 시선과 흔적은 쉽게 설명되지 않고, 오래 음미해야 조금씩 어렴풋이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림은 이성의 침묵이며 응시의 음악이다(p. 122)”라는 문장이, 소설에서 느껴지는 감각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1권을 다 읽고 나니, 자연스럽게 《눈》의 주인공 카(Ka)가 떠올랐다. 종교와 정치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사랑에는 완전 젬병이었던 그의 찌질함 덕분에 의외의 재미를 느꼈듯, 이 작품 역시 예상과는 다른 방향에서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강렬한 도입부 때문인지 무겁게만 갈 줄 알았는데 중간중간 은근히 웃기고, 화자가 바뀔 때마다 “이번엔 또 누구야?” 하며 읽게 되는 맛이 있다. 《눈》에서 인물들이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던 순간들과, 《내 이름은 빨강》에서 화가들이 전통과 새로운 화풍, 동양과 서양의 시선 사이에서 흔들리는 모습이 겹쳐 보였다.

오르한 파묵은 흔들리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머무는 인간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나는 그 끝없이 흔들리는 시간, 고독한 집착, 머뭇거리다 결국 선택하지 못하는 인간의 두려움 같은 솔직한 내면 때문에 그의 책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솔직함과 오만함은 생각보다 가까운 경계에 있다. 자기 경험과 관점을 보편적 진리처럼 믿으면, 가끔은 오만하게 받아들여지니까. 하지만 그의 글에서는 절제가 느껴진다. 자기 인식은 분명하면서도, 굳이 남을 재단하는 데까지 끌고 가지 않는다는 점이 바로 내가 오르한 파묵에게 끌린 이유다. 그 감각을 계속해서 느끼고 싶다. 그냥 취향에 잘 맞는 작가라고 말하면 될 것을, 괜히 말이 길어졌다.

에잇! 다 떠나서, 16세기 이스탄불, 특히 화가들 사이에 오가는 은밀한 시선과 대화를 따라 그 시대를 상상하고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충분히 재밌다. 대부분의 소설처럼 줄거리를 모른 채 하나씩 알아가며 읽어야 더욱 즐거운 작품일 것 같아서 줄거리를 최대한 숨기고 ‘재미’를 전하고 싶었는데, 잘됐는지는 모르겠다.

이제 2권으로 넘어가야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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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4-01 1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입부가 강렬합니다!!!

곰돌이 2026-04-01 21:04   좋아요 0 | URL
죽은 시체가 말을 한다는 설정 자체가 몰입감을 확 올려주긴 하더라고요. 이 강렬함을 어떻게 끌고 갈까 궁금했는데, 뒤로 갈수록 이야기가 계속 쌓이면서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하네요. 미술 쪽은 문외한이라 괜히 이해 못 할까 봐 미뤄두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더 재밌네요. 방금 퇴근해서 얼른 마저 읽어보려고요. ㅎㅎ

책읽는나무 2026-04-02 07: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은지가 정말 오래되어 구체적인 기억이 죄다 소실되어서인지 곰돌이 님의 리뷰를 읽으니 엄청 낯설기도 하고 기억이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는 듯도 합니다. 아, 나의 기억력이란.쯧쯧.ㅋㅋㅋ
그래도 무척 재미나게 읽었던 기억은 남아 있어요. 그래서 오르한 파묵 책은 좀 더 읽어보고 싶었던. 그러나 늘 파묵 책도 벽돌책이어서.ㅋㅋㅋ 지난번 곰돌이 님의 <눈>리뷰를 읽은 기억이 또 떠오르네요.
단정한 서재 책상 속 사진에도 여전히 <눈>책이 눈에 띕니다. ^^
근데 책탑을 쌓아도 어쩜 이리 단정하시고 깔끔하신가요?^^

곰돌이 2026-04-02 08:23   좋아요 1 | URL
북타워에 그냥 올려만 둔 건데, 제법 깔끔해 보이죠? 제가 깔끔이랑은 거리가 좀 있어서요, 괜히 찔립니다 ㅋㅋ
안 그래도 이 책 리뷰 이것저것 보다가 책나무님 예전 글을 발견했어요. 정말 반가웠어요. 그때도 이미 책나무님은 지금처럼 시선이 좋으시더라고요. 저도 오래 꾸준히 읽다 보면 그렇게 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지금처럼만이라도 꾸준히 읽어보겠습니닷!
아, <눈>은 나중에 추운 겨울에 찬찬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아직은 그 책이 제 마음에 꽤 남아 있어요. 워낙 오랜 시간 책을 읽으셔서, 그동안 읽은 책 중 기억에 남는 책 있으면 나중에 꼭 소개해 주세요! 따라 읽어보고 싶어요.
 
뭇 산들의 꼭대기
츠쯔졘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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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꽃망울이 여기저기 톡톡 터질 거다. 그럼 나는 또 출근길에 괜히 핸들 꺾고 싶어지겠지. 그냥 계속 가보고 싶을 테지. 이유도 없이, 어디 갈 것도 아니면서.

블라인드 사이로 햇빛이 한 줄기 들어온다. 그 빛 하나로 방이 따뜻해진다. 얇은 숄 하나 가볍게 두르고 츠쯔젠의 책을 펼쳤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좀 멍해진다. 이럴 때는 내가 책을 읽는 건지, 책이 나를 읽는 건지 잘 모르겠다. 느릿하게 읽어 내려간다. 한 줄씩, 게으르게.

중국 변방, 오래된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들어간다. 화려하고 명망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남쪽과 달리, 북쪽의 룽잔진은 스무여 가구 남짓이 모여 밑바닥 삶을 이어가는 공간이다. 도축을 하는 사람, 비석을 깎는 사람, 가장 위에 있는 사람, 그리고 아래에서 버티는 사람. 각기 다른 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들 가운데에는 순진한 사람도 있고, 눈앞의 이익과 손해를 저울에 올리듯 재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변죽이 들끓듯 쉽게 달아오르고 또 쉽게 식어버리는, 그 가벼운 태도 속에서 인간의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다. 서로 다른 결을 지닌 인물들의 삶은 17개의 장으로 나뉘어 이어진다.

갓 내린 아이스커피 한 잔을 쭉 들이키자 정신이 조금 돌아온다. 한 장, 두 장. 속도가 붙는다. 콧구멍에서 피식피식 바람이 빠지는 소리와 함께, 어느새 잠은 다 달아나 있다. 시동이 제대로 걸렸다. 칼로 벤 고리버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마치 떨어지는 노을 같다고 하는 감성과 칼끝에서 진동하는 싱그러운 풀 냄새가 집 안에 향수병을 달아놓은 듯하다는 후각을 자극하는 사실적인 묘사, 후루룩후루룩 바닥을 드러내도록 탕면을 먹어 치운 도축업자 신치짜와 그의 부인 왕슈만의 불구덩이 같은 첫날 밤 이야기가 투박하고 거칠지만, 정제되지 않은 무드가 묘하게 좋다. 며느리 인물이 영 못마땅해 아들을 대신해 억울함에 치를 떠는 노인, 신카이류. 그가 왜 본명 신융쿠가 아닌 ‘도망’이라는 뜻을 지닌 신카이류로 불리게 되었는지의 사연부터 스쳐 지나갈 법한 오리와 말, 돼지까지도 제 몫을 톡톡히 하는 세계가 쏟아지는 잠을 다 가져갔다.

이 집은 시계도 필요 없다. 계절도 상관없이 아침 6시면 일어나고 정오가 되면 점심을 먹는 삼식이 신치짜가 온종일 지친 몸을 녹여주도록 뜨거운 물에 발 담그면 딱 밤 9시다. 시간은 조용히, 그러나 정확하게 흐른다. 신치짜는 자식을 원하지 않았지만, 부인의 부탁으로 ‘신신라이’라는 아이를 입양하게 된다. 시간이 흐른 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신신라이는 비뚤어지고, 결국 가장 거친 자리로 흘러간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다. 여기서 멈췄다면 좋았을 텐데. 문제는, 그다음이다.

처음엔 맑은 국물처럼 담백하다. 익숙하고 편안해서 그냥 흘러가는 이야기. 그런데 안성탕면이 순식간에 핵불닭볶음면으로 변했다. 혀끝이 얼얼해질 만큼 강한 장면들이 불쑥 튀어나온다. 삼키기도 애매하고, 뱉어내기도 어려운 감정들. 이야기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확, 온도를 올려버린다. 그 온도 속에는 쉽게 말로 풀 수 없는 선택들도 섞여 있다. 누군가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그 여파는 오래도록 남는다. 손바닥만 한 자리에서도 사람 사는 일은 끊이지 않는데, 하물며 끝이 보이지 않는 땅이라면 그 안에 쌓인 이야기는 얼마나 많겠는가.

이 작품은 좋은 사람을 보여준다기보다, 그냥 사람을 그대로 꺼내 놓는다. 그래서 읽다 보면 감정이 하나로 정리가 잘 안된다. 뭐라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자꾸 남는다. 특히 염습사 리쑤전의 시선이 그 결을 더 짙게 만든다. 삶과 죽음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이 바라보는 이야기라서 그런지, 인물들이 더 숨김없이 드러난다. 그 안에는 인간의 아름다움과 추함, 존엄과 이기심이 아무렇지 않게 섞여 있다. 병마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젊은 여자를 염습하게 된 리쑤전은, 그녀의 남편이 정성껏 준비한 꽃으로 가득한 관을 마주한다. 생전에 아내가 좋아했다던 꽃을 하나하나 그려 넣은 정성을 보며, 리쑤전은 잠시 부러움을 느낀다. 동시에, 깊은 애도를 건넨다. 그러다 문득, 반신불수의 남편을 위해 새와 꽃을 들여놓으며 살아온 자신의 삶이 떠오른다.

“생이 어찌 이리 불공평하죠. 당신은 생긴 것도 이렇게 예쁜데 이렇게 정다운 삶을 살다가 하늘이 부르셨잖아요. 나는 생긴 것도 그냥저냥 한 데다 고생이란 고생은 잔뜩 했는데 몸은 또 왜 이렇게 멀쩡한지. 내가 당신을 대신해 갔더라면 좋았을텐데요. 안타깝게도 하늘은 나를 원치 않네요. 당신은 가서 꽃의 신이 될 수 있는데 나는 가서 뭘 할 수 있을까요? 거리를 청소하는 사람요? 하늘에는 먼지가 없잖아요.” (p. 87)

삶의 불공평함을 받아들이는 체념과, 자신을 별것 아닌 존재처럼 느끼는 감정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한편, 어떤 가족은 막 숨을 거둔 할머니의 반지를 두고 싸운다. 누군가는 죽음을 앞에 두고도 계산을 한다. 리쑤전은 그런 인간을 보며 씁쓸함과 허무함을 느낀다. 그런데, 그녀 역시 불륜이라는 모순된 선택을 한다. 불공평하고 뒤엉킨 삶 속에서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걸, 이런 장면들이 계속해서 확인시켜 준다. 이해가 되다가도 잘 모르겠고, 그렇다고 해서 쉽게 밀어내지도 못하는 그런 상태로 남는다. 나 역시 불완전한 존재로서, 누군가의 선택을 쉽게 판단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를 더 생각해보려고 했다.

광부의 미망인 옌포 역시 그렇다. 그녀는 말수가 적었지만, 자신의 말을 대신해 주는 것이 있었다. 반 척 높이에 구리로 만든, 입이 긴 찻주전자였다. 그 주전자에는 한 번도 차가 떨어진 적이 없었고, 옌포가 건네는 한 사발의 차는 만 마디 말을 대신하는 것만 같았다. 광부의 미망인이라는 삶, 짜리몽땅한 키와 새카만 얼굴 때문에 재혼 상대로는 선뜻 마음이 가지 않았던 옌포지만, 그녀의 차를 마셔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괜찮은 여자라고, 장가들어도 좋을 사람이라고. 어쩌면 사람을 이해하게 만드는 건 많은 말이 아니라 이런 순간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떻게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존재하며 마음을 건네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옌포 역시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다. 물건을 슬쩍하는 버릇이 있다.

이따금 중국 소설을 읽어보는데,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작가인 위화나 류전윈과는 결이 다르지만, 현실을 꽤 직접적으로 마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비슷하게 느껴진다. 다만 츠쯔젠은 그걸 그대로 드러내기보다는, 한 발 떨어져서 기억처럼 천천히 들려주는 쪽에 가깝다. 중국 소설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사람도 의외로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근데 이번에 읽은 《뭇 산들의 꼭대기》는 좀 놀랐다. 갑자기 수위가 확 올라간 느낌이랄까. 생각보다 거칠고, 잔인한 장면도 나오고, 읽으면서 “어... 여기까지 간다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분위기가 깨지는 건 아니고, 여전히 특유의 맑은 서정성은 살아 있다. 다만 그 안에 좀 더 날 것 같은 감각이 섞였다. 그래서 더 강하게 남는다.

쿰쿰한 곰팡내가 배어 있는 구석진 곳에서도, 누군가는 여전히 따사로운 햇살을 기다린다. 그 사람을 향한 츠쯔젠의 순한 마음씨는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자꾸 마음이 동요한다. 이전에 읽은 그녀의 《가장 짧은 낮》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기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눈에 들어오는 것이 시든 풀과 차가운 눈뿐일 때가 더 많다고 말하던 그녀. 그런 시선을 지닌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 인물들은 다들 자기 방식대로 버티며, 자기 몫의 통증을 안고 살아간다. 만약 고단하고 서글픈 풍경만 이어졌다면 가슴 한편이 뻐근해지고 조금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츠쯔젠의 글은 들키고 싶지 않은 내면을 슬쩍 건드린다. 괜히 아는 척했다가 불똥이라도 튈까 외면했던 기억처럼 찔리는 마음까지 드러나, 조금은 남부끄러워진다. 그런 걸 정확히 건드린다.

내린 비에 숲은 한층 더 푸르렀고 공기 역시 예전처럼 맑은 향기를 사방에 퍼트렸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게 다 달라 누구는 구주소나무 향기를 맡았다 하고 누구는 백합 향기를, 누구는 자작나무 향기를, 누구는 들국화 향기를, 누구는 호제비꽃 향기를 맡았다고 했다. 무료하기 짝이 없을 때 사람들은 향기를 놓고 입씨름을 하곤 했다. 마치 자신의 후각이 인정받지 않으면 자기 코가 무시당하는 것과 같다는 듯이. (p. 395)

계절이 다르듯, 인생에도 정답은 없는 것 같다. 삶은 생각처럼 잘 흘러가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오늘도 누군가는 버티고, 누군가는 괜찮고, 누군가는 무너진다. 공평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순간도 많다. 그러나 한쪽만 계속되지는 않는다. 좋은 날이 오면 또 아닌 날도 오고, 그렇게 번갈아 가면서 흘러간다. 다들 제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가끔은 가슴 속에 맺힌 걸 꺼내고 싶어지는 순간만큼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삶이란 하늘의 시편이 아니라 범속한 사람들의 즐거움과 눈물이라는 문장에,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내가 왜 한동안 놓아두었던 책을 다시 펼쳤는지. 그 마음을 따라 다시 한 장을 넘긴다.

끝으로, 이 책의 마지막에 실린 작가의 말을 덧붙여본다.

침대에 누워 조용히 쉴 때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창밖 하늘을 보고 속으로 세상은 이렇게 따사로운 햇볕으로 찬란한데 왜 내 세계에는 늘 서릿발만 날릴까 하는 생각이 들어 더없이 비탄스러웠다. 나는 소설 속 비천한 인물들이 각자 자신만의 상처를 지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사람답게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생각하며 견뎌냈다. 그러기가 쉽지 않지 않은가. 내가 요양할 때 내 붓끝의 인물들 역시 따라서 ‘동면’했다. 나는 그 시간을 통해 더더욱 세세하게 그들의 고충을 헤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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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bass 2026-03-25 16: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책 재미있을것 같아요!! 찜콩~

rainbass 2026-03-25 16: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옷!!!! 품절이네요!!!! 대박....😮😮

곰돌이 2026-03-25 17:01   좋아요 0 | URL
<가장 짧은 낮>이 더 좋았지만, 츠쯔젠의 글 자체가 좋아서 추천을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ㅋㅋ

얄리얄리 2026-03-31 0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가 글쓰기를 멈추는 동안에는 당연히 작품 속 인물들도 정지해 있겠죠. 그런데 그 시간이 작가가 작품 속 인물들과 더 공명하고, 더 세세히 헤아리는 시간이었다니.. 이것만으로도 이 책에 얼마나 작가가 공력을 썼고 전념했는지 알 수 있고, 믿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곰돌이 2026-03-31 09:54   좋아요 0 | URL
작년에 <가장 짧은 낮>을 굉장히 좋게 읽은 뒤로, 다른 작품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작품 속에는 좋은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특히 서문이나 책 뒤의 후기를 통해 작가가 전하는 말들도 참 좋더라고요.
 
후리 - 2024 공쿠르상 수상작
카멜 다우드 지음, 류재화 옮김 / 민음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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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군부 중심)와 이슬람주의 세력 간의 충돌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알제리 내전. 이 비극적인 사건을 다룬 점과 번역가 류재화님이 옮기셨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고민 없이 책을 집어 들었다. 작년에 샤를로트 델보의 《우리 중 그 누구도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를 통해 경험한 류재화님의 섬세한 감각이 깊이 인상에 남았기 때문이다. 참혹한 현실 속, 그때의 기억을 지닌 사람들의 말해질 수 없는 슬픔과 트라우마, 그리고 감정의 흔들림이 마치 잔잔한 빛살처럼 가슴에 스며들어 시처럼 읽혔다. 읽다가 숨이 멎는 듯한 순간도 있을 만큼 그 정서적 울림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고, 이번 알제리 작가 카멜 다우드의 《후리》에서도, 류재화님의 세심한 번역 덕분에 원작이 담고 있는 고통과 감정을 천천히 음미할 수 있었다.

티 없이 맑은 하늘 아래 흩날리는 하얀 천. 알제리 내전의 잔혹함과 달리,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이 책의 표지만으로도 전하고 싶은 뜻을 헤아려보게 된다. 한 조각 천이지만, 숨죽인 세상 속에서 자유를 향해 흔들리는 저항이 담겨 있는 듯했다. 전쟁과 비극 속에서도 길을 찾아 나서는 인간의 굳센 마음과, 동시에 처연한 마음을 함께 느꼈다. 총 3부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각 부가 고통이 밀려오고 마음이 아려오는 순간에 숨구멍이 되어주듯 여러 장으로 나뉘어 있어, 천천히 숨을 고르며 읽을 수 있었다.

“난 한 권의 책이야. 서서히, 내가 너를 위해 빛을 밝혀 줄게. 왜냐면 내 안의 언어가 마침내 나 아닌 다른 출구를 찾아냈거든. 그게 뭔지 알아? 바로 너한테 있는 두 귀야”

‘오브’라는 이름의 여성이 자신의 뱃속 아기에게 속삭인다. 그녀가 내는 소리는 분명 내 귀에는 닿지 않을 말일 것이다. 다섯 살 때 테러리스트들에게 목이 잘린 뒤 성대가 손상되어 목소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온갖 손짓과 몸짓과 표정이 결합해 터져 나오는 그 소리에서 부드럽고 고운 숨결이 느껴진다. 불안의 흔적처럼 차디찬 떨림까지도. 사랑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은 그녀의 가슴은, 기억이 금지된 곳의 이야기를 드러내려 한다. 이는 침묵을 강요하고 잊으려는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 것이다. 존재 자체가 증언인 그녀가 기억을 되살리려 하기 때문이다.

이곳, 내 머릿속에선, 내 기억에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할 단어들이 줄줄이 나와. 바깥 세상을 마주할 때 내 안의 언어는 정교함의 경이, 그 자체야. 그 안에서 저 옛날이야기가 꿈틀거리며 되살아나. 그 경이와 함께라면 모든 것이, 거의 모든 것이 태양 없이도 빛날 거야. (p. 20)

오브의 뱃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그녀의 어머니 하디자는 유명한 변호사다. 한 간호사 부부에게 입양되어 자란 그녀가 내전 중 학살로 일가족을 잃고 홀로 생존한 오브를 입양했다.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언제나 목숨을 건 일인 이 나라에서, 오브를 어떤 마음으로 키워냈을지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혼자서 딸을 안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마음이 어땠을지, 나는 그 불안과 두려움을 다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딸을 위해 온 힘을 다했던 그녀의 마음은 분명 느껴진다. 하디자는 딸의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성대 이식과 후두 복원을 꿈꾸며, 세계 각국의 의사들을 찾아다닌다. 절망과 희망이 뒤섞인 마음으로, 그녀는 딸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려 한다. 사람을 구하는 판결을 위해 법정에서 강하고 열정적인 목소리를 내는 하디자가, 목소리를 잃은 딸을 바라보는 심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오브가 마음으로 속삭이는 혼잣말을 들여다보는 동안,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아 이 이야기가 소설로 탄생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오브의 목에 남은 내전의 상처만큼 끔찍한 현실이, 가짜가 아니라 진짜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오브의 현재 삶을 따라가 본다. 내전에서 희생당한 생존자들에게 국가가 내민 조건은 연금을 받느냐, 아니면 관청에서 지급하는 상업 시설을 얻느냐였다. 오브는 연금 대신 미용실의 소유주가 되었다. 상처를 봉합하고, 치유를 안겨주는 듯 보였지만, 그 겉모습 뒤에는 침묵이라는 무거운 대가가 숨어 있는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에게 받은 손에 쥔 세 알의 약. 목구멍 속으로 삼키면 언제든 뱃속의 아이, ‘후리’를 천국으로 보낼 수 있다. 짧은 원피스만 입어도 생명이 위태로운 이곳에서, 오브는 단 하나, 아이를 이 위험한 세상에 내놓을 수 없다는 결정을 붙들고 있다.

뭘 원해? 여기 와서 죽은 살덩이가 되고 싶어? (p. 66)

아직 콩알만 한 후리에게는 설명이 필요하다. 귀가 생겼는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작은 생명을 향해, 어떤 때에는 생명을 죽이는 일이 오히려 살리는 일이 되어버리는 이 잔인하고 기막힌 현실을 말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오브는 한 아이에게 닿을 설명을 준비하듯, 우리를 또 다른 여성들의 삶으로 데려간다. 미래에 대한 기대를 쉽게 품을 수 없는 곳, 사방에서 위험이 도사리는 어둠 속을 지나고 있는 여성들의 삶으로.

오브의 미용실에서 함께 일하는 두 여성, 침묵을 지키는 하난과 재치 있고 유쾌한 메리암. 나름의 사정을 지닌 이들의 삶이 그저 연약하고 애처로운 숨결처럼만 묘사되었다면, 그 삶을 끝까지 바라보는 일은 때때로 버겁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다르다. 세 여성 모두 자기 안에 분명한 언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언어는 때로 위로가 되고, 잔잔한 미소를 불러오기도 한다. 이런 모습이 반가웠던 나는 잠시 오브의 미용실 단골손님이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묵을 원한다면 조용히 함께 앉고, 잊히지 않는 과거를 꺼낸다면 함께 분노하고 싶다. 서로를 조금씩 흔들어 주며 마음이 굳지 않도록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애처로운 시선 대신, 하난과 메리암에게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내어준 오브에게 고마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의 강인함이 든든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난과 메리암의 삶을 향한 절실함을 깊이 이해했을 오브는 주변을 세심하게 바라볼 줄 아는 여성이다. 조각난 고향의 기억을 온몸에 남긴 그녀. 문신을 하고 담배를 피우며 염색한 머리로 히잡을 쓰지 않는 여자들은 반드시 교정되어야 한다고 흥분하는 일부 이슬람 신도 남자들을 향해, 세 여성이 터뜨리는 웃음. 이야기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남성 중심의 알제리 사회에서 그 반란의 기쁨이 담긴 웃음을 마주하고서, 내가 어찌 통쾌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제서야, 오브는 나에게 아무도 기억하지 않거나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난 내 꿈속에 머물고, 그 꿈속에서 다른 이의 꿈속으로 들어가고, 내 발자국은 야자수 가지에 쓸려 사라진다”


얼마 전, 늦은 밤 내 방 창문 밖에서 ‘쿵’ 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순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고, 숨을 죽인 채 혹시라도 이어질지 모를 바깥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을 소리였다. 하지만 이란과 이스라엘의 군사 충돌 소식이 연일 뉴스를 통해 전해지다 보니, 세상의 먼 전쟁 이야기가 내 일상 속 작은 소리에도 스며들어 있었던 모양이다. 혹시 우리나라에도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예전 같으면 엉뚱한 생각처럼 여겼을 상상이지만, 이제는 그 어느 것도 장담할 수 없다는 기분이 든다. 생각은 또 다른 생각으로 이어졌다. 전쟁이 나 피난을 가야 한다면 짐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싸야 할까 하는 현실적인 고민에서 시작해, 이런 계산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모든 것이 아쉬우면서도 한없이 부질없게 느껴지는 허무함으로 이어졌다. 나의 생명이 마치 보증수표라도 되는 것처럼 오직 일상만을 걱정하고 있던 그 순간, 여러 감정이 뒤엉켰다. 그리고 안전한 양지에서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보내는 나와, 매 순간이 살얼음판 같은 누군가의 하루가 겹쳤다. 나 자신을 향해 비위가 뒤틀리는 듯한 불편하면서도 부끄러운 감정이 올라왔다.

비극과 고통을 담은 이야기는 반복해서 읽을수록, 그 안에서 인간이 겪는 삶과 죽음, 두려움과 결심이 조금씩 더 가까이 느껴진다. 단순히 과거의 기록만이 아니라, 오늘 하루가 녹록지 않아 숨조차 고단한 삶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틈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이런 이야기들에 마음을 열고, 귀 기울여 읽게 될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상처와 고통 속에 남겨진 목소리를 느껴주는 것뿐이다. 나는 그 아픔과 고통을 함께 느끼며 읽어주고 싶다. 다 알고 있다고 믿는 눈을 하고 바라보는 대신에 말이다.

내 안에 무엇이 죽어 있는지, 무엇이 살아 있는지 알려면 내 몸을 더듬거려야 해. 그래야 어떤 부분이, 또 어떤 다른 부분이 더이상 숨을 안 쉬고 있는지 알 수 있어. (p.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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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리 - 2024 공쿠르상 수상작
카멜 다우드 지음, 류재화 옮김 / 민음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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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금지된 세계에서 인간은 어떻게 증언할 수 있을까. 목소리를 잃은 한 여성이 존재 자체로 그 질문에 답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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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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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땅 위, 보니것의 날카로운 시선과 자욱한 담배 연기 사이로 흐르는 삶과 세상을 향한 쓸쓸한 애정. 그의 농담은 인간이 변하지 않으면 세상이 웃음을 거둔다는 경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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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3-11 1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니것 소설 6권 읽었습니다. 블랙 유머가 좋습니다만...항상 2퍼센트 부족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항상 별4개...아직 읽지 않은 책 중에 5개가 있을 듯한 기대는 합니다...ㅎㅎ 저두 이 책 재밌게 읽었습니다..역시 평점은 별4개..

곰돌이 2026-03-11 12:58   좋아요 0 | URL
저는 다음에는 <제5도살장>을 읽어볼까 해요. 담담하게 농담을 툭 던지면서도, 뒤에는 묘하게 씁쓸한 냉소가 남는 느낌이 있어 더 읽어보고 싶습니다. 야무님 리뷰는 항상 솔직한 시선이 느껴져서 읽는 재미가 있어요!! 다음 보니것 작품 리뷰가 올라오면 저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