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의 축제 2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2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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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만에 돌아온 고향에서, 한때 라파엘 트루히요 독재 정권의 핵심 권력자였으나 이제는 모든 것을 잃고 병든 채 누워 있는 아버지 아구스틴 카브랄을 내려다보는 우라니아. 얼어붙은 눈동자가 마주한 것은 단지 병든 노인이 아니다. 그 시선 끝에서, 35년 전 인간의 영혼까지 길들였던 권력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거대한 서커스장. 사람들의 등에 보이지 않는 줄을 꽂아 조종하는 인형술사로서의 트루히요. 그 무대 위에서 가장 비참한 줄인형들은 역설적으로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장관과 관료들, 우라니아의 아버지인 아구스틴 카브랄 같은 인물들이다. 트루히요라는 줄잡이가 줄을 조금만 팽팽하게 당겨도 공포에 질리고, 다시 느슨하게 풀어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탐욕스럽게 춤을 춘다. 줄이 끊어지는 공포보다 줄에 매달려 사는 굴욕을 견디는 것이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아니, 뻔히 알면서도 끝내 ‘염소’의 변덕스러운 손가락 끝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 세계에서 트루히요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는 언론과 수치심이다. 그는 사람을 무너뜨린 뒤 다시 손을 내민다. 그러면 사람들은 모욕받았다는 사실보다, 버림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무엇보다 치가 떨리는 건, 트루히요가 쥔 줄이 인간의 가장 내밀한 영역인 ‘가족’과 ‘성(性)’에까지 꽂혀 있다는 점이다. 부하들의 충성심을 시험하기 위해 그들의 아내나 딸을 요구하고, 부하들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이들을 제물로 바친다.

한편, 우라니아는 자신의 애칭인 ‘우라니타’라고 불러주는 유일한 친척인 고모를 만나게 된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견뎌온 이들의 대화는 같은 언어에 닿지 못한 채, 조심스럽게 상대의 상처 주변만 맴돈다.

“그 일이 내 삶을 완전히 뒤바꿔놓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우라니타, 적어도 네게는 전화위복이 되었어. 그렇지 않았다면 넌 지금 위치에 있지 못했을 거야. 반면에 우리에게는 재앙이 되었지.” (p. 19)

트루히요가 친 그물에서 빠져나간 자와 남겨진 자의 대화는, 서로 악의가 있어서라기보다 지나온 삶이 너무 달라서 어딘가 계속 서글프게 어긋난다. 14살 때 도미니카 공화국을 떠나 미국에서 번듯한 엘리트로 성공했으나 자신의 가장 깊은 아픔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우라니아와, 반대로 정권의 찌꺼기를 온몸으로 감당하며 눈에 보이는 사회적, 경제적 고초만 이야기하는 고모.

그래, 이제는 말해야만 한다 우라니아. 오래 침묵했던 이유를, 그리고 침묵으로밖에 버틸 수 없었던 시간들을.

그러나 혹시라도 그 고백이 치유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붕괴로 이어지면 어쩌나 우려스러워,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숨죽여 들여다봐야 했다. 나에게 우라니아는 과거를 회상하는 인물이라기보다, 현재 속으로 걸어 들어온 과거 그 자체였다. 악몽 같은 시간을 어떻게든 지우고 잊어보려 일과 공부, 그리고 책을 붙잡고 단 한 순간도 ‘생각’에 빠질 틈을 주지 않으려 했던 우라니아의 날들. 그렇게 시간은 멈춘 듯이 흘렀다.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는다. 우라니아는 컵을 들지만, 텅 비어 있다. (p. 364)

이처럼 철저히 외면해 온 우라니아의 과거는, 35년 전 독재자의 숨통을 끊으려 했던 이들의 역사와 맞물리는 순간 더 이상 개인의 비극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1권에서 암살단이 독재자를 향한 거사를 앞두고 차 안에서 과거를 되짚는 사이 정권의 악행들이 조각처럼 흘러나왔다면, 2권은 트루히요의 내부 집무실과 핵심 관료들의 시선으로 깊숙이 들어가 그야말로 ‘트루히요의 긴 팔’이 조종하는 추악한 실체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아직 정권이 무너지지 않아 언제 잡혀 죽을지 모르는 타들어 가는 공포 속에서, 암살자들의 이름이 신문과 텔레비전을 통해 한 명씩 호명되는 장면을 읽는 동안, 이들에게 씌워진 대역죄인이자 테러리스트라는 낙인은 내 안에서 거꾸로 읽히고 있었다. 만만한 제물에 책임을 씌우고 본보기로 처벌하면서, 그 안에서 국민에게 어떤 교훈을 남기려는 독재자들의 모습은 어딜 가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제아무리 날조와 수치심으로 인간을 지배하던 트루히요라 할지라도, 국민의 영혼을 쥐고 있는 교회와의 불화와 미국의 냉혹한 외면 앞에서는 무력했다. ‘신과 트루히요’라는 기만적인 축제가 끝나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서커스장의 천막도 걷힌다. 다 드러난 줄 알았는데, 그때부터다. 이제 무대 뒤조차도 권력이 작동하는 또 하나의 무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독재라는 건 거대한 폭력인 동시에, 각자 살아남기 위해 택했던 비겁함이 얽혀서 지탱해 온 시간이었다. 이 소설에서 가장 끔찍했던 것은 사람이 망가지는 순간보다, 망가진 자기 모습을 끝내 견디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비린내 나는 피와 달콤한 향수가 뒤섞인 공간에서 벌어진 일들을 지켜보는 것은 지옥을 체험하는 기분이었다. 인간이 한 사람으로 존재하기보다 역할 속에서 살아가도록 길들여진 세계를, 달리 말할 방법이 없다.

어떤 시간은 끝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한 사람의 전부가 되지는 못한다. 우라니아는 지옥 같은 세계가 씌운 역할로부터 멀어지고도,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채 잊으려고 애썼던 세월이 너무나 길었다. 상처는 우라니아가 지나온 시간의 일부일 수는 있어도, 우라니아의 이름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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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6-01 2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라니아‘가 ‘우리나라‘로 읽히는 것도 트라우마의 흔적 같네요.

곰돌이 2026-06-01 21:07   좋아요 1 | URL
‘우라니아’ 자리에 ‘우리나라’를 대입해서 다시 한번 쭉 읽어봤어요. 모든 문장이 뼈아프게 겹쳐 읽히네요. 글자 하나 바꿨을 뿐인데 마음이 괜히 더 울적해지고 먹먹해집니다. 깊이 있는 레이어가 더해진 것 같아요.

혼자 읽을 때보다 훨씬 깊은 마음으로 책을 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염소의 축제 2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2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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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의 마지막 ‘하루’와 희생자가 견뎌낸 ‘35년’, 그리고 거사를 앞둔 암살자들의 팽팽한 밤. 이 세 갈래 시간을 정교하게 엮어 독재의 공기를 되살린 서사. 섬뜩했지만, 이상하리만치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건 아마 오래전 남의 나라 공기가 낯설지 않아서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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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책 읽기 딱 좋은 계절이다.

앞에 어느 달을 갖다 붙여도 어울릴 문장이겠지만, 5월이니까 한번 적어봤다.

작년 5월 내 생일날 나에게 주는 선물로 파스칼 메르시어의 《언어의 무게》를 샀었는데, 이번에는 식구가 조금 더 늘었다. 새 책을 들이는 일은 언제나 설레는 법. 아직 첫 페이지도 열어보지 못한 책들이 태반인 마당에, 내가 덥석 도전해도 될까 싶은 책들이 줄줄이 이어져 위압감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뭐, 글자가 나를 잡아먹는 것은 아니니까. 어쨌든 ‘축하의 명분’으로 모인 책들이다.



저메이카 킨케이드 《지금, 그리고 그때》

나는 남의 감정에 꽤 영향받는 인간이라, 일상에서든 책에서든 같은 말도 꼭 상처처럼 던지는 사람을 마주하면 금세 피로해진다. 이런 감정은 꼭 젖은 솜처럼 달라붙는다. 달라져야지, 몇 번이고 되뇌어봐도 별도리가 없다. 그래서일까.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갈 길을 가는 무심한 문장들이, 나를 붙잡곤 한다. 그래서 킨케이드의 신간 소식이 반가웠고, 다시 또 만났다.

제목에 미래를 뜻하는 단어는 빠져있다. 내가 느낀 킨케이드라면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에 믿을 수 없는 시간이라 여기는 사람에 가까워서, 미래 대신 ‘지금’과 ‘그때’에 더 의미를 둔 걸까, 하는 별 중요하지 않은 혼자만의 넋두리를 덧붙여본다. 킨케이드의 다른 소설과 마찬가지로 자전적 성격이 짙고 카리브해 앤티가섬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한 중년 여성의 삶을 전지적 시점으로 쓴 소설이다. 작곡가인 남편 미스터 스위트와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내 미시즈 스위트. 행복한 결혼생활?

지금 내 아내인 저 여자, 하지만 처음 만났던 그때는 그저 빼빼 마른 소녀였지. 전지가위를 기다리는 삐져나온 나무의 삐져나온 나뭇가지 혹은 잡초처럼, 진정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치워버려도 되는 존재. 아, 그래, 저 여자에게서 벗어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p. 34)

남편이 아내를 바라보며 속으로 삼키는 이 잔인한 생각만 들여다봐도 이들의 관계가 전혀 달콤하지 않다는 것쯤은 알 수 있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녹턴뿐이었다. 이 곡에 〈이 결혼은 끝장이야〉라는 제목을 붙이며 온갖 방식의 분노를 집어넣고,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게 없는 시한폭탄처럼 자신들의 관계가 파국에 이를 것임을 알려준다. 안 그래도 책 소개 글을 읽어보니 미시즈 스위트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이후로, 어머니를 떠올리며 글을 써 내려간다는데? 여기서 어머니란, 그리움의 대상이 아니다. 나를 버리고 간 망할 엄마다.



하인리히 뵐 《여인과 군상》

최근 《천사는 침묵했다》를 읽었는데, 어쩐지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하나라도 제대로 읽어보고 난 뒤 천천히 읽어봐야지 했는데 어디 그게 맘처럼 쉽나. 고민이야 평상시에도 숱하게 하는 게 고민이니, 책 사는 데서라도 덜 하자 싶어, 그냥 샀다.

소설은 화자가 ‘레니 파이퍼’라는 48세 독일 여성의 삶을 추적하는 보고서 형식으로 시작된다. 1941년, 하사관과 단 사흘간의 결혼생활 끝에 전쟁 미망인이 된 레니는 연금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삶 자체가 완전히 무너져 있다. 하나뿐인 아들마저 감옥에 갇혀 있으니 말이다. 화자는 레니를 아는 주변 인물을 인터뷰하고 서류를 뒤져가며 그녀의 삶을 복원해 나간다.

소설의 시작점은 1970년대 초반이지만, 이야기는 곧 레니의 어린 시절과 제2차 세계대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화자는 왜 하필, 이토록 무너져 버린 레니의 삶을 그토록 집요하게 좇는 걸까? 다른 건 몰라도 세상이 보는 레니와 실제의 레니 사이에는 거대한 간극이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막스 프리슈 《슈틸러》

또! 또! 또! 하나라도 진득하게 읽어보고 나서 사도 될 것을, 책이 어디 도망이라도 가는 것도 아니고, 선착순으로 손들고 사야 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이렇게 성급한 마음을 누르지 못하고 《호모 파버》를 인연으로 이 책까지 책장에 날름 채워 넣었다.

방금 집어 든 《여인과 군상》이 주변 사람들의 기억 조각들을 모아 ‘레니’라는 한 여자의 삶을 외부에서부터 짚어 들어간다면, 이 책 《슈틸러》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시작된다. 감옥에 갇힌 한 남자가 “나는 슈틸러가 아니다!”라고 처절하게 외치며, 세상이 강요하는 ‘슈틸러’라는 이름과 정체성을 온몸으로 거부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꾸만 그를 6년 전 행방불명된 스위스인 조각가 ‘아나톨 슈틸러’라고 부르고, 자신을 미국인 ‘화이트’라고 주장하는 이 남자는, 자신의 정체를 증명하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아니, 그런데, 그 와중에 30센티미터가 조금 못 되는 자기 구두로 감방 크기를 재보는 게 아닌가?

길이 3.10미터, 폭 2.40미터, 높이 2.50미터...

이 대목에서 앞서 펼쳐봤던 《호모 파버》가 머릿속을 스친다. 비행기가 사막에 비상 착륙하는 난리통 속에서도 엔진 결함을 숫자로 계산하고 있던 그 남자! 막스 프리슈의 주인공들은 어쩜 이렇게 하나같이 상황에 안 맞게 이성적이고 치밀한 건지 모르겠다.



미셸 투르니에 《마왕》

제목을 보는 순간 슈베르트의 가곡 〈마왕〉이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괴테의 시에 영감을 준 게르만 신화와 유럽의 식인귀 전설, 그리고 소년 예수를 어깨에 태워 강을 건넌 성 크리스토프의 생애를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덕분에 책장을 넘기기 전부터 슈베르트의 긴박한 반주 소리와 함께 아이를 유혹해 데려가는 존재라는 이미지가 겹치면서, 소설이 어떤 분위기로 흘러갈지 어렴풋이 느껴볼 수 있었다.

이야기는 ‘아벨 티포주’라는 기이한 남자의 일기로 시작된다. 말 못 해 죽은 귀신이 붙었는지 말이 엄청 많다. 물론 초반이 일기 형식이라 더 그렇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말이 너~무 많다. 더욱이 자신을 세상의 징후를 읽어내는 특별한 존재라 믿으며 지극히 사소한 것들까지 장엄한 서사처럼 떠들어댄다. 망상증인가? ㅋㅋㅋ

사실 이 지독한 집착의 뿌리에는 어린 시절 기숙학교에서 만난 절대적 권력자, ‘네스토르’가 있다. 같은 학생이었지만 티포주에게는 신이나 다름없던 존재. 세상의 모든 우연을 자신들만의 특별한 운명으로 해석하는 법을 가르쳐준 그는, 티포주의 자아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인 것 같다.

초반에는 약간 “뭔 소리지?”라며 미간에 살짝 힘을 주고 읽게 할 만큼 몰입력을 요하는데, 이게 단순히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는 소설들과는 결이 좀 다르다. 오히려 한 남자의 내면을 아주 집요하게 들여다보는 기분이라 전개가 묘하게 흥미롭다.
나중에는 전쟁의 발발과 함께 징집되고, 나치의 엘리트 교육 기관인 ‘나폴라’에서 소년들을 선발하는 역할까지 맡게 된다는데, 슈베르트의 마왕과 성 크리스토프의 생애 그리고 티포주의 기괴함까지 이 삼박자가 본격적으로 읽기 전 약간의 흥분을 주는 데는 틀림없다.



시어도어 드라이저 《아메리카의 비극》

대공황이 터지기 전, 성공과 돈에 눈먼 인간들의 탐욕이 절정에 달해 있던 192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어릴 때부터 초라한 현실과 번쩍이는 상류층 세계 사이의 간극을 뼈저리게 느끼며 자란 ‘클라이드 그리피스’는 거리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전도하던 부모 밑에서 자랐다. 가난과 궁핍을 견디기보다 어떻게든 다른 세계로 들어가고 싶어 안달 난 청년이다. 호텔 벨보이 일을 하며 번쩍이는 옷차림과 돈 냄새, 부유한 젊은이들의 삶을 가까이서 본 뒤부터는 더더욱 그렇다.

‘저 세계에 들어가고 싶다’라는 감각만을 따져본다면, 슈테판 츠바이크의 《우체국 아가씨》 속 크리스티네가 떠올랐다. 단 한 번 맛본 화려한 세계 때문에 평범한 일상이 더없이 초라하고 견디기 힘들어져 버린 크리스티네처럼, 클라이드 역시 호텔의 돈 냄새를 맡은 순간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게 아닐까.

이 얼마나 화려한가! 정말로 부자라는 것이, 또 이 세상에서 출세한다는 것이, 한마디로 돈이 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웅변적으로 말해 주고 있었다. 그것은 곧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며 자기와 같은 다른 사람들의 시중을 받는 것을 뜻했다. 이런 모든 사치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것은 가고 싶을 때 가고, 가고 싶은 곳에 가며, 가고 싶은 방식대로 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p. 91)



오노레 드 발자크 《사촌 퐁스》

슈테판 츠바이크가 이 작품을 발자크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했다고 하니 요거 은근히 기대를 안 할 수가 없군! 책 소개 글에 “유행에서 뒤처진 노총각이자 식충 취급을 받는 퐁스의 비극적 일대기”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시작부터 인간 취급이 영 박하다. 뭘 얼마나 잡수시길래 식충소리까지...

부르주아적 물질주의가 사회를 지배하던 1840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서, 젊은 시절 예술가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로마 유학까지 다녀온 작곡가이자 지금은 대중극장의 지휘자로서 여생을 보내고 있는 주인공 실뱅 퐁스는,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난 옷을 입고 다니는 노총각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먼 친척 집들을 전전하며 ‘식충’ 소리까지 듣는 궁색한 처지의 인물이다.

상상해보라, 1844년에 스펜서를 입은 사람의 출현은, 마치 두어 시간 동안 나폴레옹이 부활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p. 8)

겉보기엔 그저 친척 집 식탁을 전전하는 ‘프로 수저러’ 같지만, 퐁스 선생에겐 다 계획이 있다. 한 끼 식사값, 낡은 외투를 새로 맞출 돈까지도 아껴 예술품을 사들이는 것이다. 남들은 근사한 저녁 식사에 쓸 돈으로, 퐁스는 예술품 한 점을 꿈꾸는 인간이랄까.

보물이 대놓고 “나 보물이다~” 하고 굴러다닐 리 없으니, 퐁스 선생은 극장 업무 외의 시간을 죄다 작품을 찾아다니는 데 바친다. 일찍이 유학 시절부터 다져온 안목 덕분에 그의 집은 어느새 온갖 걸작들로 빼곡해진다. 정작 본인은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스펜서를 입고 친척들의 눈칫밥을 먹으면서도 말이다. 게다가 웃을 때 드러나는, 희고 튼튼한 치아는 상어도 부러워할 만했다고 하니, 저작기능도 타고 나셨군! 식도락가에게 이보다 더한 축복이 또 있을까 싶다.

보통 전지적 시점이라고 하면 한 발짝 떨어져서 보는 느낌인데, 이 소설은 화자가 내 옆에 딱 붙어서 팔짱을 끼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느낌이라 파리 한복판에서 퐁스의 뒤를 몰래 밟고 있는 스토커가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소설의 앞부분은 순수한 영혼인 퐁스 선생을 알아가는 재미로 평화롭게(?) 즐기기만 하면 되는데, 책 소개 글을 참고하니 퐁스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충격을 받고 몸져눕는가 보다. 흑흑.

그런데,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평생에 걸쳐 수집해 온 예술품들이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보물이라는 것! 이 사실이 드러나자, 사람들이 하이에나처럼 모여든다는데 아휴, 징글징글하다 정말. 발자크는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건 애정보다 돈이라는 사실을 들춰내려는 걸까.



옌롄커 《딩씨 마을의 꿈》

결국 여기에서도 사람을 움직이는 건 돈이었다. 피와 맞바꾼 돈 때문에 죽음이 코앞에 닥쳐와도 멈추지 못하는 욕망이라니.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소박한 꿈은 결국 마을 전체를 재앙으로 몰아넣는다.

갑자기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에서 근룡이와 방씨를 따라 얼떨결에 매혈하러 가던 허삼관도 떠오른다. 하지만 그 인간적인 온기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다. 최근에 읽은 옌롄커의 《물처럼 단단하게》에서는 인물들이 풍기는 강렬함을 통해, 후끈, 아니 거의 화끈거리는 감정들을 느꼈었는데, 이번에도 꽤 지독한 인간 군상을 보여줄 것 같다. 어쩌다 보니 이번 책장엔 인간 욕망 파멸 세트가 잔뜩 모였다.



마지막으로, 《사촌 퐁스》에서 발견한 몹시 위험한 문장을 공유하며 글을 마친다.

“실제로 어떤 고민도, 어떤 우울도 마음에 뜨는 뜸과 같은 기벽 앞에선 저항하지 못한다. 어느 시대에서나 ‘쾌락의 술잔’을 들이켜지 못하는 이들이여, 무엇이든(벽보를 수집하기도 한다!) 수집하라. 그러면 행복이라는 금괴를 잔돈으로 얻을 것이다” (p. 19)

아니, 행복이라는 금괴를 잔돈으로 얻을 수 있다니. 이보다 실속 있는 기쁨이 또 있을까. 비워도 자꾸만 채워지는 장바구니 아닌가... 흠, 그래 좋다. 안 그래도 읽고 싶은 책만 잔뜩 쌓였는데, 앞으로도 ‘마음의 뜸’이라 생각하며 책을 사겠다. 끄떡끄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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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5-25 2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옌렌커의 소설 중 <딩씨 마을의 꿈>이 가장 좋았어요. 다른 소설처럼 너무 판타지스럽지도 않고요.
그나저나 책들이 다 한 두께 합니다.

곰돌이 2026-05-25 21:36   좋아요 1 | URL
딱 뭘 읽을까 헤매던 참에 잉크냄새님이 추천해주셔서 덕분에 옌롄커와의 두 번째 만남은 큰 고민이 없었네요. 상봉이 빨랐어요. ㅎㅎ 직업 특성상 평소에 두꺼운 책이나 서류들을 워낙 끼고 살다 보니, 두께에 대한 거부감은 없어서 겁 없이 잘 사기만 합니다. 앞으로도 종종 추천해주시면 덥썩 물어가겠습니다!!

yamoo 2026-05-26 06: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갑게도 4권이 겹치네요..ㅎㅎ
그리고 작품은 다르지만 저자들의 다른 책도 한 권씩 소장하고 있네요..^^

곰돌이 2026-05-26 08:01   좋아요 0 | URL
일단 사촌 퐁스는 무조건 들어가 있을 것 같아요. 퐁스 선생처럼 예술을 곁에 두고 계시는 yamoo님이라면 말이죠! 그 외 마왕, 슈틸러도 들어가 있을 것 같은데, 어쨌든 같은 책들을 공유하고 있다니 전우애가 생깁니다 ㅋㅋㅋ 나중에 완독의 길에서 만나뵐 날이 올지도 모르겠네요!
 
염소의 축제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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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해 동안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던 고향, 산들바람과 바닷소리가 들려오는 거리에 ‘미스 카브랄’이 섰다. 아니, 잔혹한 비극의 땅에 발을 내디뎠으니, 오랫동안 누구도 부르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그 이름으로 불러야겠다. 우라니아.

열네 살의 나이에 고향을 떠났던 아이는 이제 마흔아홉의 어른이 되어 돌아왔다.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조차 외면했던 그녀는 왜 이제야 돌아왔을까. 뒤늦은 연민일까, 끝내 끊어내지 못한 피의 이끌림일까. 평생을 절대 권력의 가장 충직한 사냥개이자 맹신자로 살며 온갖 영욕을 맛보았던 아버지는, 이제 말 한마디조차 하지 못한 채 병상 위에 무력하게 누워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그 파멸을 내려다보는 우라니아의 서늘한 시선은 연민이라 부르기엔 너무나 지독하고, 증오라 부르기엔 너무나 시리다.

넌 그와 의사소통을 할 수 없어. 넌 계속해서 혼자 말해야 해. 네가 30년 넘게 매일 그랬던 것처럼. (p. 185)

분명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없을 그 잔인한 기억들이, 세월을 뚫고 카리브해의 눈 부신 햇살 아래로 들춰지기 시작한다. 어릴 적 기억을 따라 위태롭게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심장을 마구 뛰게 만드는 우라니아의 그 시절의 기억 속에는, 단지 개인의 과거를 넘어 도미니카 공화국 전체를 뒤덮은 비극이 자리하고 있었다.

첫 장부터 압도적인 분위기로 숨죽이게 할 만큼 몰입력이 대단하다. 특히 트라우마로 가득 찬 ‘과거’를 향해 스스로 던지는 인물들의 내면 고백, 저자가 배치해 둔 독특한 문장들이 내게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와서 속으로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보통 자신의 기억을 회상할 때는 1인칭을 쓰기 마련인데, 이 소설 속 인물들은 자꾸만 자기를 ‘너’라고 부른다. 우라니아뿐만 아니라 도미니카 독재정권 아래에서 저마다의 트라우마를 겪은 인물들에게, 과거의 기억은 너무나 끔찍하고 파괴적인 역사적 상처였던 것이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자신을 부르는 이 지독한 역설.

소설은 3인칭으로 건조하게 흘러가다가도, 갑자기 2인칭 ‘너는’으로 가슴을 훅 찔러 들어오는 문장들이 불쑥불쑥 등장한다. 그 시점의 균열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그들의 감정 속으로 더 깊숙이 끌려 들어갔고, 가슴 한구석이 서늘할 정도로 슬퍼졌다. 이야기를 읽고 있다기보다, 바로 옆에 나란히 선 채 그들이 외면해왔던 기억들을 함께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깊은 내면에 숨겨둔 상처를 억지로 끄집어내느라, 자신을 얼마나 아프게 다그치고 있을지가 문장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초반부터 할 말이 왜 이렇게 많아지는지 모르겠다. 이 뒤로 교차하며 펼쳐질 독재자 ‘라파엘 트루히요’의 심리와 암살자들의 긴박한 이야기까지 남았는데, 이번 리뷰는 어째 막판에 무 자르듯 잘라야 할 것 같다.

당시 도미니카가 처한 고립된 국제 정세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절대 권력자 트루히요의 내면이 드러나는 장면도 꽤 흥미롭게 읽었다. 현재의 우라니아 시점과 35년 전의 과거가 교차하는데, 과거 속 트루히요가 목욕을 하면서 라디오 채널을 돌리는 장면이 특히 그렇다. 검열을 받는 라디오 속 세상은 국민을 현혹하고 독재자의 눈을 가리기 위한 뻔한 거짓 승리 소식만 가득했다. 베네수엘라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으로 인해 실제로는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왕따가 된 상태인데, 독재자 혼자 욕실 안에서 그런 방송을 들으며 가짜 우아함과 통제력을 끝까지 붙들고 있는 셈이다. 그가 통제 못 하는 것은 단 하나, 빌어먹을 방광이다.

재미있는 건 소설 속 트루히요가 자기 안의 ‘검은색’을 경멸했다는 점이다. 자신의 안에 흐르는 아이티 혈통은 죽도록 혐오하면서도 정작 라디오 속 기만적인 세상 뒤에 숨어 완벽한 척 허세를 부리는 모습, 여기에 제 목숨 하나 보전하겠다고 미신에까지 매달리는 그 지독한 열등감과 기괴한 집착을 들여다보자니 참 없어 보이기 짝이 없었다. 제아무리 절대 권력자라 떵떵거려도, 라디오의 거짓말 뒤에 숨은 실망스러운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명치에서 신물이 올라오는 파국의 서막을 본인 또한 이미 직감하고 있지 않았을까? 더위를 식혀주는 인공적인 찬바람조차 ‘가짜 바람’이라며 집무실에 에어컨조차 두지 않았을 만큼 예민한 사람이니 말이다.

‘염소’는 도미니카 공화국을 30년 세월이 넘도록 철권통치한 독재자 라파엘 트루히요의 별명이다. 겉으로는 대단히 고결하고 전지전능한 지도자인 척했지만, 뒤로는 수많은 여성을 유린했던 그의 추잡한 성적 탐욕과 징글징글한 권력욕을 ‘발정 난 염소’에 비유해 비꼬아 부른 것이다. 그 뒤에 붙은 ‘축제’는 절대 권력자가 벌였던 광란의 지배 역사와 동시에 그 독재를 끝장내기 위해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준비한 거사를 뜻한다. 이렇게 제목의 의미를 알고 나니 확실히 다르게 와닿는다. 하지만 읽기 전에는, 언젠가 꼭 읽어보고 싶은 작가라는 생각만 있었을 뿐 선뜻 손이 가는 제목과 표지는 아니었다. 딱히 그런 걸 많이 따지는 편은 아닌데도 어딘가 껄쩍지근한 느낌이 있었달까 ㅋㅋㅋ 원래는 리뷰도 안 남기고 읽었다는 흔적만 남길 생각이었는데, 이렇게까지 할 말이 많아질 줄은 전혀 예상 못 했다.

이제 2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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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6-05-24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돌이 님 리뷰 덕에 아, 이 소설 읽었지 생각합니다!
근데 내용은 자세히 생각이 나지 않아요 ㅎ

곰돌이 2026-05-24 20:56   좋아요 0 | URL
이 책에 자목련님 리뷰를 못 본 것 같아서 안 남기셨구나 했는데 양장본으로 읽으셨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자목련님 리뷰를 못 봤었나 봐요. 그 참에 예전에 쓰신 자목련님의 글을 찾아 읽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지 뭐예요! ㅎㅎ
 
염소의 축제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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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스스로를 ‘너’라고 부르며 밀어내는 여자. 그 한 문장만으로도 이 소설은 충분히 잔인하다. 진짜 무서운 건 독재보다, 그 시대가 사람 안에 남긴 상처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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