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의 축제 2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2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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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만에 돌아온 고향에서, 한때 라파엘 트루히요 독재 정권의 핵심 권력자였으나 이제는 모든 것을 잃고 병든 채 누워 있는 아버지 아구스틴 카브랄을 내려다보는 우라니아. 얼어붙은 눈동자가 마주한 것은 단지 병든 노인이 아니다. 그 시선 끝에서, 35년 전 인간의 영혼까지 길들였던 권력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거대한 서커스장. 사람들의 등에 보이지 않는 줄을 꽂아 조종하는 인형술사로서의 트루히요. 그 무대 위에서 가장 비참한 줄인형들은 역설적으로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장관과 관료들, 우라니아의 아버지인 아구스틴 카브랄 같은 인물들이다. 트루히요라는 줄잡이가 줄을 조금만 팽팽하게 당겨도 공포에 질리고, 다시 느슨하게 풀어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탐욕스럽게 춤을 춘다. 줄이 끊어지는 공포보다 줄에 매달려 사는 굴욕을 견디는 것이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아니, 뻔히 알면서도 끝내 ‘염소’의 변덕스러운 손가락 끝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 세계에서 트루히요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는 언론과 수치심이다. 그는 사람을 무너뜨린 뒤 다시 손을 내민다. 그러면 사람들은 모욕받았다는 사실보다, 버림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무엇보다 치가 떨리는 건, 트루히요가 쥔 줄이 인간의 가장 내밀한 영역인 ‘가족’과 ‘성(性)’에까지 꽂혀 있다는 점이다. 부하들의 충성심을 시험하기 위해 그들의 아내나 딸을 요구하고, 부하들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이들을 제물로 바친다.

한편, 우라니아는 자신의 애칭인 ‘우라니타’라고 불러주는 유일한 친척인 고모를 만나게 된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견뎌온 이들의 대화는 같은 언어에 닿지 못한 채, 조심스럽게 상대의 상처 주변만 맴돈다.

“그 일이 내 삶을 완전히 뒤바꿔놓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우라니타, 적어도 네게는 전화위복이 되었어. 그렇지 않았다면 넌 지금 위치에 있지 못했을 거야. 반면에 우리에게는 재앙이 되었지.” (p. 19)

트루히요가 친 그물에서 빠져나간 자와 남겨진 자의 대화는, 서로 악의가 있어서라기보다 지나온 삶이 너무 달라서 어딘가 계속 서글프게 어긋난다. 14살 때 도미니카 공화국을 떠나 미국에서 번듯한 엘리트로 성공했으나 자신의 가장 깊은 아픔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우라니아와, 반대로 정권의 찌꺼기를 온몸으로 감당하며 눈에 보이는 사회적, 경제적 고초만 이야기하는 고모.

그래, 이제는 말해야만 한다 우라니아. 오래 침묵했던 이유를, 그리고 침묵으로밖에 버틸 수 없었던 시간들을.

그러나 혹시라도 그 고백이 치유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붕괴로 이어지면 어쩌나 우려스러워,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숨죽여 들여다봐야 했다. 나에게 우라니아는 과거를 회상하는 인물이라기보다, 현재 속으로 걸어 들어온 과거 그 자체였다. 악몽 같은 시간을 어떻게든 지우고 잊어보려 일과 공부, 그리고 책을 붙잡고 단 한 순간도 ‘생각’에 빠질 틈을 주지 않으려 했던 우라니아의 날들. 그렇게 시간은 멈춘 듯이 흘렀다.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는다. 우라니아는 컵을 들지만, 텅 비어 있다. (p. 364)

이처럼 철저히 외면해 온 우라니아의 과거는, 35년 전 독재자의 숨통을 끊으려 했던 이들의 역사와 맞물리는 순간 더 이상 개인의 비극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1권에서 암살단이 독재자를 향한 거사를 앞두고 차 안에서 과거를 되짚는 사이 정권의 악행들이 조각처럼 흘러나왔다면, 2권은 트루히요의 내부 집무실과 핵심 관료들의 시선으로 깊숙이 들어가 그야말로 ‘트루히요의 긴 팔’이 조종하는 추악한 실체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아직 정권이 무너지지 않아 언제 잡혀 죽을지 모르는 타들어 가는 공포 속에서, 암살자들의 이름이 신문과 텔레비전을 통해 한 명씩 호명되는 장면을 읽는 동안, 이들에게 씌워진 대역죄인이자 테러리스트라는 낙인은 내 안에서 거꾸로 읽히고 있었다. 만만한 제물에 책임을 씌우고 본보기로 처벌하면서, 그 안에서 국민에게 어떤 교훈을 남기려는 독재자들의 모습은 어딜 가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제아무리 날조와 수치심으로 인간을 지배하던 트루히요라 할지라도, 국민의 영혼을 쥐고 있는 교회와의 불화와 미국의 냉혹한 외면 앞에서는 무력했다. ‘신과 트루히요’라는 기만적인 축제가 끝나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서커스장의 천막도 걷힌다. 다 드러난 줄 알았는데, 그때부터다. 이제 무대 뒤조차도 권력이 작동하는 또 하나의 무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독재라는 건 거대한 폭력인 동시에, 각자 살아남기 위해 택했던 비겁함이 얽혀서 지탱해 온 시간이었다. 이 소설에서 가장 끔찍했던 것은 사람이 망가지는 순간보다, 망가진 자기 모습을 끝내 견디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비린내 나는 피와 달콤한 향수가 뒤섞인 공간에서 벌어진 일들을 지켜보는 것은 지옥을 체험하는 기분이었다. 인간이 한 사람으로 존재하기보다 역할 속에서 살아가도록 길들여진 세계를, 달리 말할 방법이 없다.

어떤 시간은 끝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한 사람의 전부가 되지는 못한다. 우라니아는 지옥 같은 세계가 씌운 역할로부터 멀어지고도,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채 잊으려고 애썼던 세월이 너무나 길었다. 상처는 우라니아가 지나온 시간의 일부일 수는 있어도, 우라니아의 이름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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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6-01 2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라니아‘가 ‘우리나라‘로 읽히는 것도 트라우마의 흔적 같네요.

곰돌이 2026-06-01 21:07   좋아요 1 | URL
‘우라니아’ 자리에 ‘우리나라’를 대입해서 다시 한번 쭉 읽어봤어요. 모든 문장이 뼈아프게 겹쳐 읽히네요. 글자 하나 바꿨을 뿐인데 마음이 괜히 더 울적해지고 먹먹해집니다. 깊이 있는 레이어가 더해진 것 같아요.

혼자 읽을 때보다 훨씬 깊은 마음으로 책을 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염소의 축제 2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2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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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의 마지막 ‘하루’와 희생자가 견뎌낸 ‘35년’, 그리고 거사를 앞둔 암살자들의 팽팽한 밤. 이 세 갈래 시간을 정교하게 엮어 독재의 공기를 되살린 서사. 섬뜩했지만, 이상하리만치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건 아마 오래전 남의 나라 공기가 낯설지 않아서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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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의 축제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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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해 동안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던 고향, 산들바람과 바닷소리가 들려오는 거리에 ‘미스 카브랄’이 섰다. 아니, 잔혹한 비극의 땅에 발을 내디뎠으니, 오랫동안 누구도 부르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그 이름으로 불러야겠다. 우라니아.

열네 살의 나이에 고향을 떠났던 아이는 이제 마흔아홉의 어른이 되어 돌아왔다.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조차 외면했던 그녀는 왜 이제야 돌아왔을까. 뒤늦은 연민일까, 끝내 끊어내지 못한 피의 이끌림일까. 평생을 절대 권력의 가장 충직한 사냥개이자 맹신자로 살며 온갖 영욕을 맛보았던 아버지는, 이제 말 한마디조차 하지 못한 채 병상 위에 무력하게 누워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그 파멸을 내려다보는 우라니아의 서늘한 시선은 연민이라 부르기엔 너무나 지독하고, 증오라 부르기엔 너무나 시리다.

넌 그와 의사소통을 할 수 없어. 넌 계속해서 혼자 말해야 해. 네가 30년 넘게 매일 그랬던 것처럼. (p. 185)

분명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없을 그 잔인한 기억들이, 세월을 뚫고 카리브해의 눈 부신 햇살 아래로 들춰지기 시작한다. 어릴 적 기억을 따라 위태롭게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심장을 마구 뛰게 만드는 우라니아의 그 시절의 기억 속에는, 단지 개인의 과거를 넘어 도미니카 공화국 전체를 뒤덮은 비극이 자리하고 있었다.

첫 장부터 압도적인 분위기로 숨죽이게 할 만큼 몰입력이 대단하다. 특히 트라우마로 가득 찬 ‘과거’를 향해 스스로 던지는 인물들의 내면 고백, 저자가 배치해 둔 독특한 문장들이 내게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와서 속으로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보통 자신의 기억을 회상할 때는 1인칭을 쓰기 마련인데, 이 소설 속 인물들은 자꾸만 자기를 ‘너’라고 부른다. 우라니아뿐만 아니라 도미니카 독재정권 아래에서 저마다의 트라우마를 겪은 인물들에게, 과거의 기억은 너무나 끔찍하고 파괴적인 역사적 상처였던 것이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자신을 부르는 이 지독한 역설.

소설은 3인칭으로 건조하게 흘러가다가도, 갑자기 2인칭 ‘너는’으로 가슴을 훅 찔러 들어오는 문장들이 불쑥불쑥 등장한다. 그 시점의 균열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그들의 감정 속으로 더 깊숙이 끌려 들어갔고, 가슴 한구석이 서늘할 정도로 슬퍼졌다. 이야기를 읽고 있다기보다, 바로 옆에 나란히 선 채 그들이 외면해왔던 기억들을 함께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깊은 내면에 숨겨둔 상처를 억지로 끄집어내느라, 자신을 얼마나 아프게 다그치고 있을지가 문장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초반부터 할 말이 왜 이렇게 많아지는지 모르겠다. 이 뒤로 교차하며 펼쳐질 독재자 ‘라파엘 트루히요’의 심리와 암살자들의 긴박한 이야기까지 남았는데, 이번 리뷰는 어째 막판에 무 자르듯 잘라야 할 것 같다.

당시 도미니카가 처한 고립된 국제 정세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절대 권력자 트루히요의 내면이 드러나는 장면도 꽤 흥미롭게 읽었다. 현재의 우라니아 시점과 35년 전의 과거가 교차하는데, 과거 속 트루히요가 목욕을 하면서 라디오 채널을 돌리는 장면이 특히 그렇다. 검열을 받는 라디오 속 세상은 국민을 현혹하고 독재자의 눈을 가리기 위한 뻔한 거짓 승리 소식만 가득했다. 베네수엘라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으로 인해 실제로는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왕따가 된 상태인데, 독재자 혼자 욕실 안에서 그런 방송을 들으며 가짜 우아함과 통제력을 끝까지 붙들고 있는 셈이다. 그가 통제 못 하는 것은 단 하나, 빌어먹을 방광이다.

재미있는 건 소설 속 트루히요가 자기 안의 ‘검은색’을 경멸했다는 점이다. 자신의 안에 흐르는 아이티 혈통은 죽도록 혐오하면서도 정작 라디오 속 기만적인 세상 뒤에 숨어 완벽한 척 허세를 부리는 모습, 여기에 제 목숨 하나 보전하겠다고 미신에까지 매달리는 그 지독한 열등감과 기괴한 집착을 들여다보자니 참 없어 보이기 짝이 없었다. 제아무리 절대 권력자라 떵떵거려도, 라디오의 거짓말 뒤에 숨은 실망스러운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명치에서 신물이 올라오는 파국의 서막을 본인 또한 이미 직감하고 있지 않았을까? 더위를 식혀주는 인공적인 찬바람조차 ‘가짜 바람’이라며 집무실에 에어컨조차 두지 않았을 만큼 예민한 사람이니 말이다.

‘염소’는 도미니카 공화국을 30년 세월이 넘도록 철권통치한 독재자 라파엘 트루히요의 별명이다. 겉으로는 대단히 고결하고 전지전능한 지도자인 척했지만, 뒤로는 수많은 여성을 유린했던 그의 추잡한 성적 탐욕과 징글징글한 권력욕을 ‘발정 난 염소’에 비유해 비꼬아 부른 것이다. 그 뒤에 붙은 ‘축제’는 절대 권력자가 벌였던 광란의 지배 역사와 동시에 그 독재를 끝장내기 위해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준비한 거사를 뜻한다. 이렇게 제목의 의미를 알고 나니 확실히 다르게 와닿는다. 하지만 읽기 전에는, 언젠가 꼭 읽어보고 싶은 작가라는 생각만 있었을 뿐 선뜻 손이 가는 제목과 표지는 아니었다. 딱히 그런 걸 많이 따지는 편은 아닌데도 어딘가 껄쩍지근한 느낌이 있었달까 ㅋㅋㅋ 원래는 리뷰도 안 남기고 읽었다는 흔적만 남길 생각이었는데, 이렇게까지 할 말이 많아질 줄은 전혀 예상 못 했다.

이제 2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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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6-05-24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돌이 님 리뷰 덕에 아, 이 소설 읽었지 생각합니다!
근데 내용은 자세히 생각이 나지 않아요 ㅎ

곰돌이 2026-05-24 20:56   좋아요 0 | URL
이 책에 자목련님 리뷰를 못 본 것 같아서 안 남기셨구나 했는데 양장본으로 읽으셨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자목련님 리뷰를 못 봤었나 봐요. 그 참에 예전에 쓰신 자목련님의 글을 찾아 읽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지 뭐예요! ㅎㅎ
 
염소의 축제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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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스스로를 ‘너’라고 부르며 밀어내는 여자. 그 한 문장만으로도 이 소설은 충분히 잔인하다. 진짜 무서운 건 독재보다, 그 시대가 사람 안에 남긴 상처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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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침묵했다 창비세계문학 69
하인리히 뵐 지음, 임홍배 옮김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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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났다는 사실보다 끝났다고 말할 수조차 없는 사람들의 삶. 폐허 속에서 그들은 사랑하고, 굶주리고,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하루를 이어간다. 현재의 풍경 위로 과거의 기억이 겹쳐지며 순간순간 묘한 혼란을 준다. 그럼에도 전쟁터에서 도망쳐 나온 한 남자의 위태로운 발걸음을 따라가게 된다. 그의 이름은 한스 슈니츨러.

저 멀리 어떤 형체가 그의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더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 어떤 살아 있는 얼굴보다 더 사람 같았던 먼지 쌓인 석조 천사상이었다. 한스는 기묘한 희열을 느낀다. 전쟁터에서 그는 사람을 서로 죽여야 할 대상으로만 보았을 것이다. 혹은 이미 영혼이 빠져나간 ‘죽은 표정’으로만 기억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천사상은 그를 그저 가만히 응시해 준다. 인간의 흔적을 간직한 그 미소에서, 너무 오랜만에 누군가의 따스한 시선을 느낀 걸까.

하지만 입김을 불어 먼지를 털어내자, 희열은 금세 사라진다. 서서히 드러나는 번들거리는 니스칠과 조악한 도금의 흔적. 전쟁이 끝난 뒤에도 결국 다시 돌아가야 할 세계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그는 어쩌면 그 순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도입부가 참 좋았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정신없이 잔해뿐인 거리를 떠돌던 한스는 어느 순간 폭격으로 무너진 자기 집 앞에 서 있다. “드디어 집에 돌아왔다.” (p. 29) 그런데 돌아온 곳엔 집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도입부가 좋건 안 좋건,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인가 싶다. 이 폐허 속에서 무슨...

탈영병이기 전에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학교가 전부였던 학생이기도 했다는 사실과 마주하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오기 위해 수없이 이름을 바꿔야 했던 한스. 다른 이의 신분 뒤로 자신의 진짜 얼굴을 숨긴 채 돌아온 그를 맞이한 건, 그가 버려야 했던 이름만큼이나 처참하게 지워진 집의 흔적이었다. 그는 과연 ‘한스’로 돌아온 것일까, 아니면 누군지도 모를 타인의 그림자로 돌아온 것일까.

소설 속에서 과거 전쟁터로 나가기 전, 한스가 어머니와 나누는 대화가 유독 마음을 힘들게 했다. 가장 가슴 아픈 건 죽음의 공포 그 자체보다, 서로가 서로의 두려움과 슬픔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애쓴다고 달라질 수 없고, 감춘다고 감춰지지 않는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한단 말인가. 왜 그런 때가 있지 않나. 지금 가장 두렵고 막막한 건 분명 나 자신인데, 그런 나를 바라보는 가족이 더 가슴 아파할까 봐 오히려 그 마음이 더 견디기 힘든 순간들. 전쟁이라는 거대한 비극 속 이야기인데도, 참 현실적인 슬픔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지금의 한스에게서는 가족이나 지난 삶을 향한 그리움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랬었지.’ 정도에서 머문다. 그리움이나 슬픔도 마음의 에너지가 남아 있어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듯, 한스는 영혼까지 싹 다 타버린 걸까.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통이 너무 깊으면 본능적으로 ‘진짜 나로서 느꼈던 기억들’을 마음속 깊은 곳에 가둬버리는 것처럼.

이 소설은 ‘전쟁 이후’의 삶을 비춘다. 하지만 ‘전쟁이 끝났다’라는 그 선언만으로 이들의 비극을 단정 짓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본래의 삶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면, 포성이 멈췄어도 그것은 전쟁 중인 상황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고통이기 때문이다. 이제 더는 도망칠 곳도, 가짜 이름으로 숨어들 곳도 없다.

유령 같은 존재가 된 한스는, 자신처럼 겨우 숨만 쉬며 살아가는 한 여성을 만난다. 그녀의 이름은 레기나.

서로 상처를 들추지 않으려는 듯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그녀가 머무는 작은 방 한구석에 “영영 머물러도 되냐” 묻는 한스와 그것을 담담히 수락하는 레기나의 기묘한 동거. 더는 누구의 삶도 감당할 여력이 남아 있지 않기에 가능한 관계일지도 모른다. 폐허 속에서 마지막까지 남는 다정함이란, 이런 걸까.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지?”
“드디어 나한테 그런 의논을 하니까 기뻐.” (p. 90)

원초적인 생존 본능만 남은 세계에서, 다시 인간적인 감정과 관계가 생겨나는 순간. 누군가와 다시 ‘생활’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된 순간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레기나의 대답이 유독 인상 깊었다. 전쟁이 인간의 감정 자체를 어떻게 소진시키는지를 오래 바라본 소설이었기에, 한스와 레기나의 만남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이 작품은 시작부터 온갖 매캐한 악취로 코를 찔렀다. 제대로 된 건물 하나 없이 폐허가 된 도시, 고여 있는 물은 피부에 닿기만 해도 병에 걸릴 것처럼 썩어 있고,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환자들로 가득 찬 공간에는 숨 막히도록 짙은 죽음의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저자는 이 모든 상황을 번드르르한 것으로 덮거나 어설프게 칠하는 것을 질색이라도 하는 것처럼, 진짜 이름을 버리고 타인의 유령이 되어야 했던 배급제 시절의 절박함과 저마다의 방식으로 비루하게 혹은 처절하게 버텨내는 다양한 군상들의 삶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도무지 슬퍼할 수조차 없어. 우습지 않아?” (p.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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