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코
서보 머그더 지음, 정방규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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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 머그더의 <도어>가 남긴 배타적인 침묵, 그리고 <아비가일>의 엄격한 기숙사 규율 속에서 집을 그리워하던 소녀의 날 선 긴장감이 여전히 기억에 선하다. 같은 헝가리 작가인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를 읽을 때도 느꼈지만, 끊임없이 주인이 바뀌며 내어주어야 했던 땅의 기억 때문인지, 이들이 빚어낸 인물들은 마음의 빗장을 깊게 걸어 잠그고 있다. 흉터가 단단해질 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 그제야 삭히고 삭힌 감정들을 토로하는 것처럼 들리는 이 탄식과도 같은 고백을 다시 마주하고 싶었던 걸까.

서보 머그더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늘 같은 지점에서 마음이 동요되곤 한다. 인물들이 무너지지 않으려고 세워둔 벽이 보이기 시작할 때. 아직은 그들이 선택한 방식들을 이해와는 조금 다른 자리에서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그러나 곧 알게 된다. 숨이 턱 막히다가도 한 꺼풀만 더 들춰보면 그 벽이 단순한 방어가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쌓아 올린 가장 처절한 흔적이라는 걸.

목사 집안에서 자란 ‘어누슈커’는 어머니의 부고를 듣고 9년 만에 고향집으로 향한다. 올해 스물아홉 살인 그녀에게 집은 따스한 품이라기보다, 오랫동안 구석에 처박아두어 쿰쿰한 먼지가 내려앉은 옛 물건을 억지로 꺼내 보는 일에 가깝다. 종교적 규율에 막힌 숨 가쁜 공기, 단정과 엄숙으로 무장한 집안의 권위주의에 조용한 반항이라도 하듯 그녀는 격식을 갖추지 않은 채 나갈 준비를 마친다. 이런 모습이 집안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칠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내뱉는 한마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보면 되겠지.”

무엇이 그토록 그녀를 짓눌렀기에 9년 전 그날, 도망치듯 집을 나와야만 했을까.

여기에 ‘프레스코’라는 제목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덜 마른 벽 위에 그려지는 이 그림은 한 번 스며들면 수정할 수 없어, 잘못 그리면 벽을 아예 깎아내야만 한다고 한다. 이미 굳어버린 벽처럼, 이 소설 속 가족 역시 뒤늦게 고쳐보려 애써도 결코 수정할 수 없는 균열을 품은 걸까. 화가인 어누슈커는 이 단단히 굳은 풍경 위에 새로운 이미지를 덧입힐 수 있을지, 아니면 그저 지워지지 않을 작은 금 하나를 더 긋는 데 그칠 뿐일지 궁금해진다.

초반에는 인물들의 관계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가계도를 살피듯 읽어 나가야 했다. 하지만 일단 관계의 윤곽이 잡히고 나니, 그들 각자의 삶이 지닌 모습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어>의 에메렌츠가 길 잃은 동물을 품에 들이고 손길이 필요한 여성들을 돌봤듯, 이 소설에도 타인의 허기를 제 몸으로 받아내는 인물이 등장한다. 주인공 어누슈커보다 열한 살 많은 언니, 연커다. 연커는 과거 자신의 아이에게 젖을 물릴 때마다 동생 어누슈커를 떠올리곤 했다. 엄마가 한 번도 젖을 물리지 않아 늘 차가운 젖병 꼭지에만 의지해야 했던 어린 동생을.

밖에서는 신앙적 권위를 내세우는 목사였으나, 집안에서는 가족의 숨통을 조이는 권력자였던 아버지 밑에서 연커는 ‘어린 식모’처럼 자랐다. 집안에 문제를 키우고 싶지 않아 하는 성향이 강한 연커는 모든 갈등을 자기 선에서 조용히 눌러 담으려 애쓰는 사람이다. 더 안타까운 건, 결국 침묵 뒤로 숨어버릴 수밖에 없는 스스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정작 자신도 행복 근처에 가보지 못했으면서 동생의 허기를 기억해 내는 연커. 그녀가 건넬 수 있었던 유일한 구원은 상황의 해결이 아니라 그저 차마 꺼내 놓지 못한 것들을 가슴속에 꾹꾹 눌러 담으며 함께 아파하는 애달픈 연대였을지도 모른다.

무거운 늪처럼 끌어당기는 이야기 위로, 서늘한 바람을 확 불어넣으며 “정신 차리고 이 집안의 진짜 얼굴을 봐!”라고 속삭이는 듯한 인물이 있다. 바로 전쟁고아였던 아르파드다. 아버지가 부모를 잃은 조카를 ‘시혜’하듯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비상한 기억력을 가진 아르파드는 이 가족의 사소한 습성부터 감춰진 진실까지 하나하나 눈에 담는다. 당사자들조차 외면하고 싶어 하는 구석들을.

이 소설에는 배경으로 치우칠 인물이 단 하나도 없다.
오랜 세월 목사 집안의 그림자로 살았던 하녀, 커티의 삶 또한 그랬다. 그녀는 장례식에 가기 위해 서랍 깊숙이 넣어둔 ‘검은 옷’을 꺼낸다. 그것은 40년 전, 그녀가 첫 월급으로 산 유일한 사치였다. 평생 누더기만 걸치다 죽는 순간까지 남루했던 아버지를 기억하는 그녀에게, 이 빳빳한 검은 옷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에게도 온전한 내 것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가장 서글픈 안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 읽은 박완서 작가의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문맥에 딱 들어맞는 ‘정확한 단어’를 찾아냈을 때 짜릿한 희열을 느낀다는 고백을 봤다. 일개 독자인 내가 감명 깊게 읽은 책에 대한 감상 글을, 공을 들여 써 내려갔을 때, 그 결과물이 제법 만족스러울 때의 천 배의 쾌감일까? 만 배쯤 될까? 나는 그 마음을 추측할 뿐이다. 그러나 박완서 작가가 말한 쾌감이 꼭 쓰는 사람만의 쾌감은 아닐 것이다. 작가가 단어 하나를 고르기 위해 스스로를 들볶았을 고심의 흔적들, 누군가의 생을 앓아본 듯한 문장을 발견할 때면 독자인 나 또한 찌르르한 전율을 느낀다. 이 소설을 읽으며 여러 번 그런 문장을 만났다.

“이 소설은 열세 시간의 기록이다”

이 문구 하나가 내 마음을 확 사로잡았다. 단순히 열세 시간의 기록일 뿐이라고? 그런데 그걸 서보 머그더가 들려준다? 고민하고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

사실 낯선 땅, 타인의 삶을 잠시 들여다보고선 그 속내를 다 안다는 듯 공감하는 일이 때론 스스로도 멋쩍다. 그럼에도 나는, 주인공이 집으로 돌아오는 열세 시간의 여정부터, ‘이런 얘기쯤은 해도 되겠지’ 싶은 속내를 마음 놓고 털어놓을 사람 하나 없는 이들의 미처 다 드러나지 않은 삶까지 짐작해 내고, 그 통증을 함께 앓았다. 누구 하나 특별히 악한 의도를 품은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이들의 삶에는 사랑이 부족했는지. 이 지독한 정서가, 참 쓰고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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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코
서보 머그더 지음, 정방규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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꺾인 기대 속에서도 서로의 허기를 알아채는 찰나가 스치듯 남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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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빨강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2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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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밀화가의 죽음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누가, 왜 그랬는지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16세기 오스만 제국, 궁정에서는 서양식 원근법을 몰래 도입하려는 책이 제작되고 있었다. 전통과 새로운 시선 사이에서 흔들리며, 세밀화가들의 내면도 조금씩 드러난다. 처음에는 범인이 누구인지가 가장 궁금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그보다 그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에 더 마음이 기울었다.

이번 리뷰에는 살인사건의 전개보다, 서로 다른 삶의 방식과 선택을 보여주는 두 여성, 세큐레와 에스테르, 그리고 마음에 남는 몇 장면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려 한다.

일단 세큐레. 1권에서 등장한 남자 주인공 카라(검정)가 사랑하는 여자. 그녀는 내 마음을 가장 널뛰게 한 인물이다. 전쟁터에 나간 남편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채, 사회적으로도 애매한 위치에서 아이 둘을 키우고, 시동생 하산과도 얽혀 있다. 그렇다고 카라에 대한 감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처음에는 그냥 변덕스러운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럴까 싶고. 그런데 계속 따라가다 보니, 그게 그렇게 단순하게 잘라 말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과 제도의 경계 속에서 선택해야 하는 현실, 거기에 카라의 사랑까지 얽히니, 감정 하나로 정리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해가 될 때도 있지만, 어느 순간은 전혀 못 따라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티고 있던 감정의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마다 자신도 모르게 둘째 아들의 따귀를 ‘찰싹’ 때리는 장면이 그랬다. 삶이 마음대로 안 될 때, 결국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감정이 튀어버리는 것이다. 단순히 나쁜 행동이라고 잘라 말하기에는, 그 안에 그녀가 느끼는 상태가 고스란히 보이는 느낌이었다. 사람이 무너지는 순간을 옆에서 보고 있는 기분.

나는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 책을 통해 여러 감정을 접하려고 하는 편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좀 막혔다. 현실에서도 흔히 목격되는 패턴 아닌가. 아이들이 감정의 출구처럼 소비되는 장면을 보면서, 내가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 잘 모르겠더라.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인간의 모순을, 부모와 어린 자식의 관계 속에서 드러내니까 불편하게 받아들여졌다. 물론 소설 속에서는 잠깐 스치듯 지나가는 장면이지만. 이 소설이 그려내는 전통과 새로운 시선, 서양과 동양, 예술과 삶의 경계가 흔들리는 틈에서, 세큐레는 당시 여성으로서 얼마나 불안정한 선택의 기로 위에 위태롭게 서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약간 다른 방향에서 이야기를 건드리는 여성도 있었다. 유대인 상인 에스테르. 현실적이고 계산적이며, 때로는 속물적이기까지 하지만, 감정에 휩쓸리는 사람은 아니라서 오히려 덜 답답했다. 그녀는 카라와 세큐레 사이에서 오가는 편지를 배달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소식을 전하고 관계를 이어 붙인다. 감정적으로 깊이 들어가지는 않지만, 관계와 정보에는 깊숙이 개입하는 인물이다. 늘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느낌.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시선이 묘하게 불편하지만, 희한하게 이해가 갔다. 따뜻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차갑다고도 할 수 없는 사람. 정을 쌓기보다는, 필요할 때 닿았다가 떨어지는 관계처럼 존재한다. 딱 그 순간만 같은 편에 서주는 사람 같았다. 그래서 사실 가까이 두고 싶은 타입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숨이 트였다.

이 소설의 사건들, 세밀화가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들은 단순히 범인을 찾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처럼 보인다. 그중에서도 같은 이야기와 소재를 서로 다른 화풍으로 그린 두 권의 책을 나란히 놓고, 어느 세밀화가의 손길인지 맞혀보는 장면은 굉장히 흥미롭고, 몰입해서 읽은 장면이었다. 이슬람 회화가 서명도 없이 한 작품을 여러 명의 화가가 나눠 그리지만, 그래도 각자의 특징이 자연스레 드러난다는 점을 발견하는 재미 덕분이었다. 우리 삶 속에서도 생각지도 못한 아주 작은 디테일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순간이 있지 않은가.

어릴 적 나는 그림을 본다는 게 결국 ‘얼마나 실제처럼 그렸는가’를 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건 서양의 시선에 너무 기울어진 생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양 회화가 원근을 만들고, 눈에 보이는 세계를 붙잡으려 했다면, 이슬람 회화는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더 중요한 질서와 의미를 드러내려 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세밀화가들은 자신의 개성을 지우고 전통을 따르며, 독창성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자연스럽게 여겼다. 자신을 한 걸음 물러놓고, 모든 것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몸짓처럼 느껴졌다.

어떤 세밀화가가 말 그림을 설명하며,
“세밀화가는 자신의 분노와 질주를 그리지 않는다네. 가장 완벽한 말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하면서, 세상의 풍성함과 그것을 창조한 이에 대한 사랑, 삶에 대한 사랑의 빛깔들을 보여줄 뿐이지”라고 했다.

세밀화가는 자신의 시선보다 오래된 방식을 존중하며 작품 속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세큐레와 에스테르는 각자의 현실 속에서 생존을 위한 선택을 하며 삶을 이어갔다. 서로 다른 길이었지만, 자아를 지워가며 살아야 했던 그들의 결은 어딘가 닮아 보였다. 자신을 지울수록 그 삶이 견뎌내야 했던 괴로움만은 유난히 선명하게 다가왔기에, 소설 속 인물들이 그려낸 인생사는 내 마음 한편을 왠지 모르게 서글프게 했다.

이슬람 회화와 서양 회화, 두 세계의 충돌뿐 아니라 결국 사람을 그리고, 삶을 다룬 소설이기에 더 집중하며 읽을 수 있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생경한 계절의 풍경을 바라보듯 느껴보기도 했지만, 이렇게 다양하게 느껴보기 위해 소설을 읽는 거지 싶다. 과연 범인이 누구일까 따라가는 긴장감 속에서도 유독 기억에 오래도록 남은 장면이 하나 있다. 2권 초반에 천국과 지옥 사이 어딘가에 놓인 인물이 등장하는 장면이었는데, 나는 이미 생을 마감한 자의 독백 안에서 여러 감정을 헤아려보았다. 물론 이 세계가 실제 존재할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읽는 동안 잠시, 존재하는 듯 느껴졌다.

베르자흐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보이고 공간의 경계도 없다. 그러나 삶이 꽉 끼는 셔츠만 같다는 것은 오직 시간과 공간의 감옥에서 벗어나야만 깨달을 수 있다. 죽은 자들의 왕국에서 진정한 행복은 육신이 없는 영혼이라면, 산 자들의 영토에서 가장 큰 행복은 영혼 없는 육신이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죽은 다음이 아니면 알 수가 없다. 고매한 신을 향해 기도했다. 우리에게 천국에서는 육신 없는 영혼을, 그리고 이승에서는 영혼 없는 육신을 베풀어 주십사고. (p. 57, 베르자흐는 천국과 지옥 사이의 세계. 연옥을 뜻한다)

죽음과 삶의 역설 속에서, 씁쓸하면서도 묘하게 평온한 느낌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내가 붙잡고 있는 것들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 이후로, 다음을 알 수 없는 불완전한 삶과 그 안의 모순을 굳이 다 이해하려 하지 않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이 문장에 마음이 더 붙들렸는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낯선 세계처럼 느껴지는 16세기 오스만 제국과 그 시대를 살아간 세밀 화가들의 감춰진 감수성까지, 꽤 가까이에서 들여다본 기분이었다. 오르한 파묵은 좁은 골목의 그림자, 집 안의 속삭임, 창문 너머로 흩날리는 빛까지 하나하나 살아 숨 쉬는 순간처럼 담아냈기 때문이다. 때론 날 것 그대로의 감정과 맞닥뜨려 당혹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이 또한 나 자신이 피할 수 없는 내면을 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통해 느낀 조용한 감정의 소통, 그게 이야기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장면은 줄거리 속 중심이 아니어도, 마음속에 오래 남아 우리를 조금 더 섬세하게, 조금 더 깊이 바라보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내 이름은 빨강》은 내 삶과 감정을 비춰보기에 충분했다. 물론, 재미도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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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6-04-10 1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돌이 님의 리뷰를 읽으면 늘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이 책 꼭 읽어봐야겠다. 그런 생각을 갖게끔 만들어요. 읽었는데도 또 읽고싶게 만드는…^^
그만큼 리뷰를 잘 쓰신다는 결론이겠죠.
한동안 오르한 파묵에 푹 빠져 사셨을 듯한 상상도 해보면서 저도 곧 파묵 세계로 풍덩해야지. 또 지켜지지 않을 결심?을 했어요.ㅋㅋ

곰돌이 2026-04-10 14:40   좋아요 1 | URL
제가 들어도 될 칭찬이 아닌 것 같아요. 구멍 하나 파고 들어가야 할까봐요. 몸이 커서 안 들어가겠지만요 ㅎㅎ
차분함을 느끼셨다는 말씀에 씨익 미소가 지어졌어요. 끄적거리는 동안 머릿속 정리하는 시간이 더 많은 편이라, 왠지 제가 어떤 마음으로 읽고 써내려갔는지를 책나무님께서 알아봐주신 것 같았거든요. 어떤 지점에서 공감이 닿는 느낌이었어요. 그런 기분 좋은 순간을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내 이름은 빨강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2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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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을 쫓다 그 시대를 견딘 이들의 생애에 마음이 기울었다. 16세기 이스탄불, 세밀화가의 붓끝과 여성들의 불안한 현실 사이에서 ‘삶이 왜 꽉 끼는 셔츠 같은지’ 그 이유를 마주한다. 나를 지워야 본질이 보인다는 역설이 오늘날의 내 감정을 비춰보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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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빨강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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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까지 시간이 좀 남았다. 책을 펼쳤다.
시간을 떼우듯 읽고 싶진 않았지만, 마음보다 내 손이 먼저 움직였으니 도리가 없다. 점점 엉덩이가 무거워지고, 앉은 자리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흠, 식상한 표현이지만 어쩔 수 없다. 정말 그랬으니까.

오르한 파묵의 책에 관심이 생겨 몇 권을 사두었는데, 작년에 《눈》을 읽고 완전히 홀딱, 정말 홀딱 빠졌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터키의 낯설고도 쓸쓸한 풍경이 이제는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질 만큼, 나는 그 이야기에 깊이 잠겨 있었다. 아, 이럴 때 김밥 꽁다리 먹는 것만큼이나 기분이 진짜 좋다! 겨울이면 떠올릴 책이 생겼다는 소소한 기쁨까지 준 그의 책은, 앞으로도 꾸준히 읽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최근 《순수 박물관》을 훑다가, 다음을 기약하고 가장 읽고 싶었던 《내 이름은 빨강》을 드디어 펼쳤다. 이 소설은 16세기 오스만 제국,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화가들이 세밀화를 그리던 시절의 풍경과 사람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다 알 만한 도입부.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 있다. 마지막 숨을 쉰 지도 오래되었고, 심장은 벌써 멈춰 버렸다. 그러나 나를 죽인, 그 비열한 살인자 말고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모른다.”

나도 이 언저리에서 강렬함만 확인하고 책을 내려놓았기에, 터키어로 ‘검정’을 뜻하는 카라가 나고 자란 이스탄불에서 마주하는 아련함과 낯선 것들, 가슴 한편이 저며오는 느낌, 흩날리는 눈밭 속에서 옛 연인을 떠올리는 순간… 그리고 그녀의 집에 여전히 서 있는 보리수와 밤나무를 바라보며 푸르른 여름날을 떠올리는 풍경까지, 이렇게 서정적인 장면들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책이 이슬람 회화와 서양 회화를 다룬다고 해서,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카라의 선명한 옛 기억을 따라가다 보니 내 속울림까지 덩달아 일렁였다. 머릿속은 등장인물의 설명으로 가득 차고, 막연하게 멀게 느껴지던 거리감도 금세 좁혀졌다. 역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마음을 건드린다. 괜히 내 사랑 이야기도 슬쩍 얹고 싶게 만든다. 오르한 파묵이 담아내는 ‘사랑’에 있어서는, 나는 그가 사랑하는 순간조차 이미 그 사랑이 사라진 뒤의 시간을 예감하며 인물의 감정을 다루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그는 사랑하는 순간보다, 그 사랑을 기억하는 시간을 더 잘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그리움에 사무친 카라를 떠올리게 할 만큼, 작품의 시작을 참 잘 열어주었다.

십이 년 만에, 눈 덮인 나뭇가지 사이로 드러난 그 아름다운 얼굴! 그녀의 검은 눈동자는 나를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 앞쪽의 다른 세상을? 슬픈 표정을 짓고 있나? 미소를 지은 걸까? 슬픈 미소를 짓고 있는 걸까? 어리석은 말아, 내 심장 박동에 따르지 말고 좀 천천히 가란 말이다! 나는 안장 위에서 몸을 돌린 채 그리움 가득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얀 나뭇가지 뒤로 가냘프고 우아한 그녀의 신비로운 얼굴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말을 타고 가는 나와 창문에 기대선 그녀의 모습이 휘스레브가 쉬린의 창가로 다가가는 장면, 숱한 화가들에 의해 수천번도 더 그려진 그 장면(그러나 내 등 뒤에는 슬픈 나무 한 그루가 더 있었다.)과 얼마나 닮았는지를 나는 나중에, 그녀가 보낸 편지 속에 든 그림을 보고야 알았다. 그 둘의 유사성을 깨달았을 때, 나는 우리가 몹시 아끼고 좋아했던 그 책 속의 그림처럼 사랑으로 활활 타올랐다. (p. 75)

아니 근데 사람도 아니고 색깔이 화자가 돼서 말한다? 아직 2권은 안 읽어봐서 모르겠지만, 1권만 해도 33장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정말 다양한 화자가 등장한다. 사람만 말하라는 법 있나! 개도 말하고, 새도 말하고, 나무도 말한다. 앞서 언급한 검정을 뜻하는 카라 외 뭐뭐뭐 많지만, 어쨌든 다채롭게 펼쳐진 이야기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내 머릿속만 개방형 모드로 켜두면 된다. 아참, 화자가 많다고 정신 사나운 게 아니라, 오히려 다음에 등장할 화자가 들려줄 이야기가 더 궁금해진다! 대략적인 소개는 이정도에서 멈추고, 어쨌든 살인사건으로 시작되었으니, 왜 죽었고, 왜 죽였는지가 궁금하다. 죽은 시체가 말하고, 개도 말하고 새도 말할 판이니, 살인자도 직접 등장해 입을 연다. 그의 직업은 세밀화가다. 사건의 세부적인 상황이나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는 방식이 화가답다. 거장의 작품이나 그 작품이 품고 있는 의미를 당연히 독자가 알 거라 여기면서 얘기하는데, 나로선 참 머쓱해질 따름이다. 그래도 괜찮다. 다행스럽게도 친절히 설명해 주니 말이다.

이 소설에서는 고전 페르시아 서사시도, 이슬람 세밀화 전통도, 서양 회화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그중에는,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아름다운 책을 갖지 못하게 화가를 죽이려 했다는 사람 이야기도 나온다. 사랑하듯 집착하고, 결국 파괴로 이어지는 마음. 아름다움을 가두려는 것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강박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렇게 강렬한 욕망과 집착의 심리와 비교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일상의 작은 질투나 욕심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스친다. 오르한 파묵이 그려낸 인간 심리는 그래서 낯설지가 않다. 물론, 나와 다른 시선과 다른 감정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또한 존재할 것이다.

아마 이런 다채로운 인간의 시선과 감정이 바로 여러 장으로 나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슬람 세밀화가 한 작품 안에서 여러 화가의 붓질로 완성되듯 구성된 이 소설은, 화자들이 각각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영화에서 여러 인물 시선을 번갈아 보여주는 느낌이랄까? 덕분에 단일한 관점에 갇히지 않고, 여기저기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단순히 사건만 따라가는 게 아니라, 서로 겹친 삶의 풍경을 오래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사람마다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다르고, 선택은 어쩔 수 없이 불완전할 때가 많다. 그 불완전함 속에서 우리는 자기 방식대로 삶을 그려 나간다. 겹겹의 시선과 흔적은 쉽게 설명되지 않고, 오래 음미해야 조금씩 어렴풋이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림은 이성의 침묵이며 응시의 음악이다(p. 122)”라는 문장이, 소설에서 느껴지는 감각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1권을 다 읽고 나니, 자연스럽게 《눈》의 주인공 카(Ka)가 떠올랐다. 종교와 정치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사랑에는 완전 젬병이었던 그의 찌질함 덕분에 의외의 재미를 느꼈듯, 이 작품 역시 예상과는 다른 방향에서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강렬한 도입부 때문인지 무겁게만 갈 줄 알았는데 중간중간 은근히 웃기고, 화자가 바뀔 때마다 “이번엔 또 누구야?” 하며 읽게 되는 맛이 있다. 《눈》에서 인물들이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던 순간들과, 《내 이름은 빨강》에서 화가들이 전통과 새로운 화풍, 동양과 서양의 시선 사이에서 흔들리는 모습이 겹쳐 보였다.

오르한 파묵은 흔들리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머무는 인간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나는 그 끝없이 흔들리는 시간, 고독한 집착, 머뭇거리다 결국 선택하지 못하는 인간의 두려움 같은 솔직한 내면 때문에 그의 책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솔직함과 오만함은 생각보다 가까운 경계에 있다. 자기 경험과 관점을 보편적 진리처럼 믿으면, 가끔은 오만하게 받아들여지니까. 하지만 그의 글에서는 절제가 느껴진다. 자기 인식은 분명하면서도, 굳이 남을 재단하는 데까지 끌고 가지 않는다는 점이 바로 내가 오르한 파묵에게 끌린 이유다. 그 감각을 계속해서 느끼고 싶다. 그냥 취향에 잘 맞는 작가라고 말하면 될 것을, 괜히 말이 길어졌다.

에잇! 다 떠나서, 16세기 이스탄불, 특히 화가들 사이에 오가는 은밀한 시선과 대화를 따라 그 시대를 상상하고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충분히 재밌다. 대부분의 소설처럼 줄거리를 모른 채 하나씩 알아가며 읽어야 더욱 즐거운 작품일 것 같아서 줄거리를 최대한 숨기고 ‘재미’를 전하고 싶었는데, 잘됐는지는 모르겠다.

이제 2권으로 넘어가야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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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4-01 1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입부가 강렬합니다!!!

곰돌이 2026-04-01 21:04   좋아요 0 | URL
죽은 시체가 말을 한다는 설정 자체가 몰입감을 확 올려주긴 하더라고요. 이 강렬함을 어떻게 끌고 갈까 궁금했는데, 뒤로 갈수록 이야기가 계속 쌓이면서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하네요. 미술 쪽은 문외한이라 괜히 이해 못 할까 봐 미뤄두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더 재밌네요. 방금 퇴근해서 얼른 마저 읽어보려고요. ㅎㅎ

책읽는나무 2026-04-02 07: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은지가 정말 오래되어 구체적인 기억이 죄다 소실되어서인지 곰돌이 님의 리뷰를 읽으니 엄청 낯설기도 하고 기억이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는 듯도 합니다. 아, 나의 기억력이란.쯧쯧.ㅋㅋㅋ
그래도 무척 재미나게 읽었던 기억은 남아 있어요. 그래서 오르한 파묵 책은 좀 더 읽어보고 싶었던. 그러나 늘 파묵 책도 벽돌책이어서.ㅋㅋㅋ 지난번 곰돌이 님의 <눈>리뷰를 읽은 기억이 또 떠오르네요.
단정한 서재 책상 속 사진에도 여전히 <눈>책이 눈에 띕니다. ^^
근데 책탑을 쌓아도 어쩜 이리 단정하시고 깔끔하신가요?^^

곰돌이 2026-04-02 08:23   좋아요 1 | URL
북타워에 그냥 올려만 둔 건데, 제법 깔끔해 보이죠? 제가 깔끔이랑은 거리가 좀 있어서요, 괜히 찔립니다 ㅋㅋ
안 그래도 이 책 리뷰 이것저것 보다가 책나무님 예전 글을 발견했어요. 정말 반가웠어요. 그때도 이미 책나무님은 지금처럼 시선이 좋으시더라고요. 저도 오래 꾸준히 읽다 보면 그렇게 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지금처럼만이라도 꾸준히 읽어보겠습니닷!
아, <눈>은 나중에 추운 겨울에 찬찬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아직은 그 책이 제 마음에 꽤 남아 있어요. 워낙 오랜 시간 책을 읽으셔서, 그동안 읽은 책 중 기억에 남는 책 있으면 나중에 꼭 소개해 주세요! 따라 읽어보고 싶어요.

꼬마요정 2026-04-06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는 오르한 파묵 책을 몇 권 쟁여두고 아직 읽지는 못했는데 당장 꺼내 읽고 싶어지는 글입니다. ㅎㅎ 그런데 정말 책상이랑 책들이 너무 정갈한데요. 부럽습니다!!!

곰돌이 2026-04-06 13:02   좋아요 1 | URL
쟁여둔 오르한 파묵, 얼른 꺼내십시오, 꼬마요정님!
어떤 책을 갖고 계신지 궁금해요. 나중에 리뷰나 페이퍼로 알려주실 날이 오겠죠?
저도 이 책 읽기 전에, 제가 잘 모르는 이야기라서 자꾸 미뤄두고 있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생각보다 잘 넘어가더라고요.
아, 어쩌면 너무 몰라서 놓친 게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ㅋㅋ
전 스릴러나 추리를 담은 영화를 굉장히 잘 보는데, 소설은 또 취향이 갈리는지 추리를 담은 소설은 거의 읽지 않았다가 이번에 살짝 그 느낌을 느껴볼 수 있었어요.
이슬람 세밀화뿐만 아니라 여성, 삶, 죽음까지 골고루 담겨 있어서, 중심이 되는 이야기 말고도 흥미롭게 읽히는 부분이 곳곳에 많아요.
사람을 그려서 좋고, 삶을 이야기해서 더 좋네요.
책정리 상태는 분명 보이는 게 다가 정말 정말 아니지만, 시치미 뚝 😆

rainbass 2026-04-08 0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흐흐, 이제 진짜 범인을 찾으러 떠나시와요~~

곰돌이 2026-04-08 10:18   좋아요 1 | URL
아! 재밌어!!
그런데 오르한 파묵 책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사랑을 되게 집요하게 붙잡는 사람 같아요.
그가 그리는 사랑의 퍼스널 컬러는… 찌질함?ㅋㅋ
사실 세련되고 노련하게만 그려지면 진짜 같아 보이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고요.
이제 뒷부분 조금 남겨두고 있습니다!

rainbass 2026-04-08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적당한 단어가 없었는데. 찌질함 잘 어울리네요!! ㅋㅋ 원근감없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라서 (본인들도 원근감을 부러워하면서도 억지로 밀어내는) 더 그런듯 해요.

rainbass 2026-04-08 1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에보면 그림을 그리다가 시력을 잃는다고 하는데. 곰돌님 사진의 조명을 보면 매우 걱정이 됩니다~ 😂

곰돌이 2026-04-08 15:30   좋아요 1 | URL
기꺼이, 장인 오스만의 길을 선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