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어의 마지막 한숨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2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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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가며 할인 하나 없는 값비싼 대가로 흘리는 눈물마저도 자신이 남다르기에 치러야 하는 형벌로 받아들이면서까지 그 안에 가르침을 인정하며 불가피한 운명마저 순순히 받아들였던 무어는, 살만 루슈디는, 우리에게 말한다. 죽을 때까지는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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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비 2025-07-11 20: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죽을 때까지는 살아야한다“ 인상적인 말이네요.

곰돌이 2025-07-11 21:08   좋아요 1 | URL
옮겨 적고 싶은 문장이 많았어요. 이 책 읽으면서 숙연해지는 느낌도 받았는데 아무래도 저자의 삶을 의식해서였겠죠? 그렇기에 더 힘 있게 다가왔어요!!☺️

초록비 2025-07-11 2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좋은 책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곰돌이 2025-07-11 21:38   좋아요 1 | URL
리뷰 읽어주신 것만으로도 제가 더 감사하네요.🙇‍♀️
 
무어의 마지막 한숨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2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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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목숨을 위협받으며 살아온 인도계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가 이슬람 극단주의자에게 끔찍한 증오범죄를 당했음에도 폭력에 예술로 답하겠다는 기사를 읽고 그의 초연함이 놀랍기만 했다. 인간이기에 죽음 앞에 두려움과 공포를 떨치기 어려웠을 텐데 그만큼 표현의 자유를 갈망했다는 걸 알려준다.

이 책이 저자와의 첫 만남이다.
몇 장 읽지 않아도 자신에게 칼을 휘두른 범죄자 청년의 대해 ‘유머의 결핍’을 지적했을 만큼 그가 이 유머라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가를 느낄 수 있었다. 만담가처럼 너불너불 털어놓는 말이 너무 재밌다. 도저히 웃을 상황이 아닌데도 능글맞게 은근슬쩍 들어올 때가 있는데, 오히려 그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고 읽다보면 기다려진다.

‘모라이시 조고이비’(애칭으로 ‘무어’라고 불린다.)라는 명문가에서 태어난 혼혈 남성이 생애 마지막 나날을 보내며, 이제는 아련한 그림자 같은 자신의 가족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이 소설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들려줄 말이 꽤 많은 것 같으니, 나는 진득하게 자리 잡고 앉아 들으면 될 것 같다.

무어의 외가는 향신료 장사와 대기업 경영으로 막대한 재산을 벌어들인 ‘다 가마’가문이다. 재배조건이 까다로웠던 후추는 인도 외 지역에서 구하기 어려웠기에 ‘검은 황금’이라고 불릴 만큼 귀족들만 누렸던 향신료였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가문 이야기에 이 후추를 빼놓고는 시작이 될 수 없다는 듯, 냅다 후추부터 찾고 본다.

(P. 14) 소음과 분노가 가득한 무어의 이야기. 들어보시려는가? 뭐, 듣기 싫어도 상관없지만. 그럼 우선 후추부터 건네주시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다 가마 집안의 이야기들 속에 진보적 정치 성향을 갖고 있던 외증조부를 대신해 그와 반대되는 외증조모 ‘이피파니아’가 가모장이었던 시절, 그녀의 호락호락하지 않은 며느리 ‘벨’과의 매콤한 입담 대결이 후끈하게 열을 지폈다.
결혼도 마지못해 허락해줬건만 명랑하게 핀잔을 놓는 며느리가 그 입 좀 다물었으면 좋겠는지, 애먼 아들에게 한마디 하는 이피파니아 말이 무지 웃겼다.

(P. 24) “카몽시, 네 색시한테 수도꼭지 좀 잠그라고 해라야. 어디서 물 새는 소리가 들리는구나야.”


영국령 인도를 배경으로 굶주림에 생사가 오고 갔던 빈민가 사람들의 비하면 하루하루가 구름 위를 걷는 듯할 텐데도, 풍족함으로 과잉된 삶이 문제인 것인지 친인척 간 패싸움이나 벌어지고 견제하고 지지고 볶고 분열된 가족의 모습을 보인다. 하인들을 업신여기는 모습에다가 오고 가는 욕지거리를 비롯한 모욕까지, 풍년이 아닐 수 없다.
문제 많은 집구석이 점점 반으로 쪼개지는 소리를 냈다.

무어는 자신의 가문에서 일어났었던 치가 떨리는 고난들의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며 털어놓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또한 우리의 참모습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은 원래 그렇다며.

무어의 부모님은 신분과 관습도 무시하고 결혼했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억대 재산의 유일한 상속자였던 어머니 ‘아우로라’와 어눌하지만 잘생긴 창고지기이자 유대인이었던 아버지 ‘아브라함’의 만남은 양쪽 집안이 혼혈, 사생아 등 다채로운 가계도를 갖고 있음에도 서로 혈통을 무시하고 16세기 이슬람교도와 유대인의 전쟁까지 파고들어 가는 등 지독한 운명의 냄새를 풍겼다.

그래도 이들의 녹록지 않은 삶의 이야기에 웃음마저 잃지 말라며, 저자는 후추 향 가득, 코 매콤한 익살스러운 재치를 담은 문장을 잊지 않으니 넘실넘실 책장이 넘어간다.


무어가 태어나기 전, 인도는 안팎으로 전쟁이 잦았다.
당대 가장 유명한 화가로 이름을 날리던 아우로라가 민족주의운동의 선봉에 섰고, 이 년 동안 교도소에 복역했다가 1945년이 저물어갈 무렵, 아브라함과 함께 코친을 떠나 봄베이(현 뭄바이)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인도 전역에서는 저항이 거대하게 일어났다.
1946년 영국군 소속 인도 수병들의 반란과 봄베이 전역의 총파업 등이 이어졌고, 영국 제국주의가 인도 통치를 위해 힌두교도와 무슬림의 분열을 조장했으며, 안타깝게도 그 분쟁은 파키스탄이 인도에서 분리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경제 성장이 빠른 나라였던 인도는 뭄바이에 한꺼번에 몰려든 사람들이 불평등과 빈곤을 안고 극단으로 달렸고, 시내에는 빈민을 제거하는 미화계획을 세웠다.

현재의 인도는 어떨까.

가장 최근 2023년에도 인도 정부 당국이 G20 뉴델리 정상회의를 앞두고 미화 작업의 목적으로 판자촌 강제철거를 진행했었다. 인도 수도 뉴델리의 빈민가에 살던 주민은 하루아침에 거주지를 잃은 것이다.

풍요의 뿔을 쥐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어야만 할 뿐인가.

아우로라는 이렇게 가려져 있는 사람들을 스케치북에 그려나갔다. 하지만 예술이라는 활동 자체가 낯선 사람들로부터 경찰의 끄나풀이라고 의심을 받는 등 위협으로 가득 찬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흔들림 없이 영국 정부에 도전하는 내용의 그림을 그려나갔다. 물론, 값비싼 차를 타고 다니는 그녀에게 성난 군중의 시선이 좋아봤자 얼마나 좋았겠느냐만.


무어 위로는 세 명의 누나가 있다.
막내 누나와는 여덟 살 터울인데, 무어가 태어나기 전 애들 키우는 일이 정말 끝이 없어서 빨리 자랐으면 하는 엄마 아우로라의 바람이 뒤늦게나마 이루어진 것인지 1957년 새해 첫날, 무어는 정상인들보다 훨씬 빠른 2배속으로 사는 사람으로 태어났다.
속도의 저주와 함께 오른손이 곤봉처럼 뭉툭한 기형의 모습을 한 무어는 인도의 불안정한 성장 모습까지 닮아 있었다.

(P. 255) 내게 온갖 기쁨과 슬픔을 안겨준 봄베이처럼 나도 불쑥불쑥 팽창을 거듭해 점잖지만 꼴사나운 거구로 자라났다. 차근차근 계획을 세울 시간도 없고, 이런저런 체험이나 시행착오나 동년배를 통해 배움을 얻을 겨를도 없고, 이것저것 생각해볼 여유도 없었다. 그러니 엉망진창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대체로 호전적이다.
그동안 내가 읽었던 인도를 배경으로 한 책 속에서의 여성들 모습에 비하면 확실히 여러면으로 존재감이 확실했고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아무래도 무어가 아닌가 싶다.
성인의 몸을 했지만 어린 소년이었던 무어의 성장 과정은 내 시선에서는 풍요로움 속 공허함으로 애처롭기만 한데, 정작 본인은 어느 집이든 문짝 너머 들여다보면 모두 기상천외한 난장판일 거라며, 그래도 행복했다고 말한다.
(왜냐, 우리 집이니까.)

온갖 기억들을 머리에 이고지고 살아왔던 무어.
본인은 천주교인도 아니고 유대교인도 아닌 어정쩡한 존재, 봄베이 잡탕이라고 칭하며 정곡을 찌르는 신랄한 비판과 연민이 섞인 이야기들을 늘어놓았지만, 분명 그 안에 가족들을 향한 매콤한 후추향 풍기는 애정 또한 전혀 없다고 볼 수 없었다.
(왜냐, 가족이니까.)


인생을 살아가며 할인 하나 없는 값비싼 대가로 흘리는 눈물마저도 자신이 남다르기에 치러야 하는 형벌로 받아들이면서까지 그 안에 가르침을 인정하며 불가피한 운명마저 순순히 받아들였던 무어는, 살만루슈디는, 우리에게 말한다.

죽을 때까지는 살아야 한다.

(P. 258) 두려움에 맞서 혁명을 일으켜 그 천박한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방법은 이른바 ‘용기’와는 별 상관이 없다. 비결은 훨씬 더 간단하다. 살아야 한다는 단순한 욕구. 내가 두려움을 버린 까닭은 지상에서 살아갈 시간도 부족한 마당에 한순간도 겁에 질려 낭비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무어는 과거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글을 쓰는 시간을 통해 마지막으로 내쉬는 한숨처럼 모종의 끝맺음을 원했고, 그의 어머니 아우로라는 자신의 작품 <어둠을 밝히는 빛>을 통해 환상의 힘을 빌려 비극적 상황을 감추었으며, 예술이라는 힘을 빌려 결함을 초월하고 극복하려는 결의를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이 책을 읽은 모든 사람이 저자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써내려갔을지, 무엇을 들려주고 싶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부정부패가 세상을 주무르는 소리, 예술을 향한 열정의 목소리, 사랑에 빠진 상극끼리의 거친 숨소리, 호화스러움에 헤엄치는 소리, 비참함에 뒷걸음질 치는 소리, 짧디짧은 인생이 한없이 빨리 지나가는 소리 그리고 적막.
며칠 동안 이 속에서 함께 있어보니, 내 인생이 되레 심심한 인생처럼 느껴진다. 감사한 일이라고 여겨질 만큼.

저자의 인생도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지나간 세월이 남긴 고통에서 조금은 편안해질 수 있는 나날들과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이 차오른다.

(P. 215) 이 글을 쓰고 있자니 꿈이 실현된 듯하다. 고통스러운 꿈이라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겠다. 현실세계에서는 아무리 잘 익었어도 사람의 껍질을 벗기는 일이 바나나처럼 간단하진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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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07-12 05: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읽어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무척 재미나던 건 머리에 꽉 박혀 있는 책입니다. 루슈디의 책 중에서도 대표작 가운데 한 편으로 꼽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곰돌이 2025-07-12 06:06   좋아요 1 | URL
개그 코드가 저랑 잘 맞아서 더 재밌게 읽었어요. 살만 루슈디의 익살스러움 어쩌죠?😆담고 있는 내용이 묵직해서 절대 가벼이 읽을 책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더 좋았고요!! 다음엔 <광대 샬리마르> 읽을 생각인데, 벌써 기대하는 마음이 생길 만큼 첫 책이 참 좋았어요.

Falstaff 2025-07-12 06:06   좋아요 1 | URL
살리마르는 무대가 카시미르 분쟁지역으로 넘어가는데 아오, 그것도 무척 재미있습니다.
만땅 즐기셔요!

곰돌이 2025-07-12 06:17   좋아요 1 | URL
만땅 즐길 채비 확실히 해뒀습니다.🤭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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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념이 많아져서 조금은 기대고 싶어지는 책이 있다면, 내겐 그 중 하나가 권여선 작가님의 책이 아닌가 싶다.

겉으로는 강퍅해 보이지만 속은 따뜻할 것 같은 ‘여자 어른’과 무겁지 않은 먹거리를 안주 삼아 술잔을 주고받으면서 인생의 달고 쓴 이야기를 들을 때의 그 묘한 따뜻함이 간절할 때가 있다. 그래서 괜히 잘만 살다가도 가슴 깊숙한 곳에 잘 눌러 싸매놓은 감정이 올라올 때면 자연스레 작가님의 책에 손이 간다.

이 책 7편의 단편들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고 싶은 마음에 책을 펼쳤다. 무언가를 꼭 얻기 위해 책을 읽는 건 아니더라도 가끔은 기대하고 싶다.

천천히, 천천히, 욕심내지 않고 읽어내려갔다.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잊히지 않을 상처를 입은 「봄밤」에 영경은 켜놓은 촛불이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에 안심하고 들여다볼 수 없었다.
결국 꺼져버린 연기만 허무하게 바라보게 되진 않을지 염려하는 마음으로 보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영경에게 필요한 건 현재로썬 컵라면과 소주 한 병 같다.

내 전부를 잃게 된 사람들의 만남.
그런 두 사람 앞에 펜션처럼 보이는 요양원과 응급환자들을 수송하기 위한 앰뷸런스 그리고 아담한 정원이 보인다.
조경이 잘된 산책로까지 함께.
신용불량자 수환과 알코올 중독 환자가 돼 버린 영경은 서로 불행한 삶을 살다가 뒤늦게 만나 동거하게 된 사이인데 서로 힘들었던 시간만큼 모든 게 아파졌다.
류머티즘을 앓고 있던 수환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아져 이제는 요양원에서 지내야만 했다. 그와 떨어져 살지 않기 위해 함께 들어온 영경까지.

불안한 자신의 몸 상태를 알기에 보호자가 늘 곁에 있어주길 분명 바랬을 텐데도, 수환은 영경에게 염려와 걱정 대신 그녀를 기다리는 컵라면과 소주 한 병이 있는 편의점으로 기꺼이 보내준다.

네가 나를 이해하듯, 그런 내가 너를 이해하면서.


섣불리 이해하는 척하며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삶의 대해 말하는 것이 난 조심스럽다.

내가 경험한 감정과 맞닿은 인물은 간병인 종우였다.
누군가의 죽음을 대면해 본 적 없었던 종우의 마음.

자신이 돌보는 환자인 수환의 동거녀 영경을 때론 이해할 수 없는 마음과 원망의 눈빛으로 바라봤지만, 수환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영경의 눈빛을 멀리서 바라보니 감히 자신이 헤아릴 수 없는 감정 또한 느꼈나 보다.

(P. 35) 난 아줌마 별로 안 좋아하는데 어쩔 때 아줌마가 아저씨 빤히 쳐다볼 때는 괜히 눈물나요.

사람에게 최후로 남아있는 감각이 청각이라는 얘기를 들은 종우가 수환 곁에서 계속 자신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꺼내는 동안 이 두 사람을 들여다보는 내 가슴과 눈두덩이가 너무 뜨거워졌다.

무서워 하지 말라며 흐르는 눈물을 교묘하게 감추고 더 잘 들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의젓하고 어른스럽게 건넨 나의 목소리가 아직도 너무 생생하면서도 믿어지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그때의 심정으로 종우를 들여다보니 왜 이리 고마운지.
아니, 어쩌면 수환과 영경의 힘겨움을 들여다보는 게 내겐 너무 벅차서 종우에게 내 감정을 덜어낸걸 지도 모르겠다.

영경이가 이들과 지금 함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두 사람만이 주고받던 불행도 때론 아주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걸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
누군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니까.

너무 슬픈 눈으로만 바라보지 않으려고 했다.
이번 생에 더는 없을 줄 알았던 행운이 남아있다는 벅찬 감정을 영경이가 느낄 수 있도록 해준 수환이가 있어서 참 다행이었고, 그들이 주고받는 눈빛과 손길은 너무 따뜻했으며, 더없이 사랑했으니까.

(P. 32) 취한 그녀를 업었을 때 혹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로 앙상하고 가벼운 뼈만을 가진 부피감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봄밤이 시작이었고, 이 봄밤이 마지막일지 몰랐다.


터질듯 말듯 위태로우면서도 이제 더는 손 쓸 수 없는 상황인 부부 규와 주란 그리고 이들의 친구 훈이 함께 떠난 여행 이야기를 담은 「삼인행」은 읽는 동안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딱히 맞는 구석이 없어 보이는 이 세 사람이 내뿜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그 기운을 들여다보는 게 힘들었다.
친구로서 규와 주란의 관계가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이야 당연히 있었을 테지만 훈은 섣불리 긍정의 말들을 건네지 않는다.
그런데도 종종 낄낄거리면서 원래 그래온 사람들처럼 서로 들여다보고 함께 할 뿐이다.

규의 모습에서는 예전의 나를 봤다.
그래서 아주 불편했다. 지우고 싶은 시절의 꽁꽁 숨기고 싶은 그때의 나와 닮은 모습을 또 봐서 그랬다.
마음에선 안 그런데 꼭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시가 돋친 말로 상처를 주고, 입 밖으로 말이 나가는 그 순간부터 후회할 걸 알면서도 억한 감정만 쏟아내는 그 낯설지 않은 모습을 보자니 입이 떫었다.

주란이 운전대를 잡은 차가 고속도로에서 최고속도 175킬로미터를 넘어간다. 무아지경에 빠진 그녀 옆에서 규는 속도 낮추라는 듯 쇠고삐 당기는 소리를 내어 제동을 걸었다.
이들의 불완전함을 뒤에서 바라보던 훈은 시야를 돌린다.
창밖으로 탁 트인 바다가 보이고, 한적한 마을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P. 53) 훈은 잘린 시간의 단애 앞에서 화들짝한 분노와 무력한 애잔함에 사로잡혔다.


타인의 불행을 들여다보는 마음이 당연히 좋을 수가 없다.
어떤 이야기는 차마 손도 댈 수 없는 무너짐을 바라만 봐야 하는 입장으로 읽어야 했다.
그 사람이 쥐고 있는 술잔은 내려놓고 대신 내 손을 붙잡게 해주고 싶은 사람도 있었고, 내 잔도 하나 집어들고 옆에 앉아서 같이 마셔주고 싶은 사람도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비극에는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그 상황보다 사람의 이면에서 풍기는 비릿한 냄새가 더 그랬다.


7편의 이야기들을 모두 다 읽고 난 뒤에도 훌훌 털어내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봄밤」의 수환과 영경이가 자꾸만 떠오른다.

굳이 행복과 희망을 말하지도 않고 기운 내라고, 힘 내보자고 어깨 두들겨 주고 손잡아주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난 왜, 이 책을 읽으면서 묘한 위안을 얻었을까.
뚜렷하지 않음에도 분명히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뭘까.

내가 그렇듯, 그들 모두가 묵묵히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P. 135) 그들은 오랫동안 그렇게 앉아있었다. 세상의 모든 시간이 멈추고 그들 둘만 돛단배를 타고 캄캄한 강물에 실려 떠내려가는 것 같았다. 관희가 무릎 위에 얹힌 문정의 주먹 쥔 손을 살며시 펴주며 말했다.

“그렇게 꽉 쥐지 말아요, 문정씨. 놓아야 살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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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이들 2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15
구젤 야히나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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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향해서 어린 아이들과 함께 모진 삶 살아나간 어른들까지 모두가 다 서글펐고 슬픈 감정으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발견하지 못 한 삶을 향한 의지가 어딘가에는 숨어있는가보다. 그렇기에 생명의 숨소리를 듣고,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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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이들 2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15
구젤 야히나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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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과 이어진다.

러시아의 볼가강 유역 독일 식민지 마을 ‘그나덴탈’에 사는 ‘바흐’는 아이들에게 독일어를 가르치는 교사였다. 삶의 큰 흥분을 느끼지 못한 그는 시를 사랑했고, 잠들기 전 독서시간이 하루의 가장 큰 기쁨이었다.

그런 바흐의 심장을 들끓게 한 ‘클라라’와의 아련한 사랑, 그리고 1918년~1938년 사이 일생일대의 가장 큰 고통 속 볼가강 유역에서 독일계 러시아인으로 살아갔던 이야기를 담은 <나의 아이들>은 읽는 재미가 상당해 1권을 다 읽고 바로 2권을 읽는 것이 기대감으로 들뜨긴 해도 마음만은 편치가 않았다.

아무래도 1918년~1938년 사이 발생한 역사적 사건들의 여파가 그나덴탈 주민의 삶을 비켜나갈 수 없을 테니 고난이 예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1편에서 그나덴탈을 떠났던 사람들이 트랙터를 갖고 다시 돌아왔다.
머지않아 농업의 집단화가 시작될 것이고 이 말은 희생양이 된 농민들이 추방당하거나 기근에 시달리고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라는 의미 아닌가.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인 흐름은 단지 등장인물들 현실을 이해하는 도구가 되어줄 뿐이었다. 저자의 몰입하게 하는 섬세한 감각이, 이 소설을 예상 가능한 문장들로 채우지 않기 때문이다.


바흐는 그나덴탈에 새로 부임한 당 지도자 ‘호프만’을 만난다.
글재주가 없는 꼽추인데, 그래서인지 글쓰기에 탁월한 바흐를 자신의 끔찍한 글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로 선택한다. (이들이 만나게 된 사연은 1권에 자세히 나온다.)
그리고 바흐는 호프만을 위해 옛날이야기를 써서 갖다 주기 시작한다. 먹을 것을 글과 맞바꿔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바흐가 써 온 소설을 바탕으로 호프만은 자신의 이념에 맞게 수정의 작업을 거친 후, 그나덴탈 사람들이 보는 신문인 <볼가 쿠리어>에 싣기 시작한다. 즉, 선동을 목적으로 바흐의 글쓰기 능력을 갖고 오는 것이었다.

그나덴탈인들의 삶의 모습은 중세시대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호프만은 구시대적인 삶을 사는 그나덴탈을 자신이 원하는 정부에 필요한 용도를 갖춘 도시인 사회주의 건설에 혈안이 돼 있었다. 발주처이자 공사 현장에 감독관도 되었다가 관리관도 되었다가 현장 대리인도 되어 여기저기 간섭을 하고 다녔다.

호프만이 미친개미 날뛰듯 하는 동안 누군가 ‘볼가 독일 소비에트 공화국’에 금가루라도 뿌려 놓았는지 폐허로 가득했던 그나덴탈은 이제 주민의 마당이 아닌 콜호스의 공공재산 동물농장에서 우는 낙타와, 말소리가 들렸다. 그 울타리 안에서 날갯짓하는 거위와 오리를 볼 수 있고, 주변에는 사회주의 사상에 고취되어 가슴에 빨간색 넥타이를 나부끼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농부들은 소련의 멋진 일꾼들이 되어 몹시 바빴다.

그리고 이민자들에게 한 약속과 함께 미소를 짓고 있던 예카테리나 2세의 동상은 철거되며,

소비에트 연방의 최고 권력자는 볼가강을 바라본다.

(P. 81) 석양의 기다란 그림자는 노란 들판과 도로 위에 그려진 하얀 선에 드리워졌고, 거대한 볼가강은 천천히 흘러갔다. 그는 하늘 위에서 이 풍경을 바라보면서 이토록 광활한 대지를, 이토록 풍부한 물을 품은 강을 왜 하필 이렇게 작고 부산스러운 민족에게 선물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공평한 일인가?


1927년 스탈린의 지배기 이후로 호밀과 메밀 대신에 티타늄, 아연, 주철 등이 등장하면서 농업에 치중하던 소련은 공업화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P. 90) 졸지에 고아가 된 트랙터들은 세상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것인데, 그중 일부는 붙잡혀서 용광로로 들어갈 것이며...(중략)...광활한 독일 소비에트 공화국 어딘가에 버려진 채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힐 것이다.

이제 그나덴탈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볼가강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 소리는 들리지 않고, 소련의 공산주의 청년들의 나팔소리가 채우고 있었다.

조국이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타국이라 말할 수도 없는 독일제국을 향하여 그나덴탈인들은 떠났다.
왼쪽 노를 젓고 오른쪽 노를 저어가며 거센 물살을 거스르고 바람을 거슬러서 낯선 모국어와 문화가 기다리는 곳을 향해 갔다.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을 뛰어넘으면서도 희망을 품었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시대의 비극적인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현재의 삶이 행복이구나 싶다가도 궁금증이 인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지금의 우리 삶을 들여다본다면 도대체 무슨 생각이 들까. 정신없이 쏟아지는 차와 어딘가에서 뱉어내는 사람들로 가득 찬 도심 속에서 시뻘건 모자를 쓰고 벌떼 몰려다니듯이 해 가며 초점 잃은 눈으로 침 튀기며 무언가를 외쳐대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기괴해 보여, 그런 우리의 삶이 더 두렵게 느껴질까.

아니면 ‘이 사람네들도 우리랑 같네.’할려나.


그나덴탈에 남아있는 바흐는, 위험에 맞서기보다는 문을 굳게 닫고 피하던 예전의 우유부단한 겁쟁이가 아니다. 광기 가득한 세상으로부터 소중한 존재를 지켜주는 것만이 진정 의미 있는 삶이라 느끼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부랑자들로부터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킬 자신이 있다.
그러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남아있는 자가 떠나고 싶은 자를 가두는 모습으로 비칠 만큼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야 하는 삶을 벗어나기란 참 어려웠다.


2권까지 다 읽고 나니,
‘나의 아이들’이라는 제목이 단순하지만, 또 이처럼 따뜻하게 들려올 수가 없다. 그리고 왠지 모를 허탈감도 든다.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변화를 두려워하는 부모가 소중한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어르고 달래고 품 안에 끼고 지내며 사는 모습과, 낡은 것을 뒤로하고 어수선한 세상을 향해 눈을 반짝이며 다가가는 자식의 입장까지 낯설지 않은 감정으로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역사의 과정이 볼가강의 반짝이는 윤슬이 내려앉은 물줄기처럼 힘도 들이지 않고 흐르는 듯했다.
저자의 섬세하면서도 절제된 감정으로 차분하게 써내려간 문장이 오히려 상황의 서글픔을 더 잘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굳어가는 혀가 더 이상은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하게 만든 기구한 삶이 아닌 행복과 희망만을 담은 글을 써내려갈 수 있는 삶 속의 바흐를 상상해봤다. 그곳에서 바흐는 클라라와 행복했던 시절처럼 주위에는 무지갯빛 비눗방울이 떠다니고 모두가 소리 내 웃고만 있다. 모든 공포는 사라지고 없다.

현실이 상상을 비웃고 있기에 다시 바흐가 살아온 삶을 떠올려본다.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생존을 향해 어린아이들과 함께 모진 삶 살아나간 어른들까지 모두가 다 서글펐고 슬픈 감정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발견하지 못한 삶을 향한 의지가 어딘가에는 숨어있는가보다. 그렇기에 생명의 숨소리를 듣고,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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