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광인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23년 11월
평점 :
나는 책을 읽을 때, 감정이입을 좀 많이 하는 편이다.
책을 읽고 평가를 내려야 하는 예리한 눈이 필요하지 않은, 그저 오롯이 독서를 즐기는 눈만이 필요한 사람이기에 책들을 하나씩 꺼내 읽는 그 자체만으로도 온갖 감정을 느낄 수 있어 즐겁고 행복하고 슬프고 아프다.
그런 내가 이번에는 감정이입을 덜 하려고 애썼다.
그 이유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호감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와 다른 사람들의 선택이나 감정들을 그들의 입장에 서서 바라보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책을 읽는 흥미를 잃게 될 것 같았다.
그랬던 내가 마지막 장까지 읽고 이 책을 덮는 순간엔, 가슴 속 깊은 곳부터 아려오듯 올라오는 연민 섞인 울음을 끌어내려야만 했다.
본업은 곡을 쓰고 생업으로 플루트 레슨을 하는 준연.
마흔이 넘어 결혼문제로 어머니와 다툰 후 안해본 걸, 생각조차 안했던 걸 해보고 싶어 레슨 광고를 보고 준연을 찾아간 해원.
이제는 도전도, 사랑도 내맘처럼 쉽지가 않고, 열정이란 것도 예전만큼 뜨겁지 않은,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상황과 내 앞에 놓여진 선택의 순간들도 지나간 경험들에 빗대어 보며 더 나은 방향, 안전한 방향을 구분하고 조언도 할 수 있는 안목을 갖은 마흔을 넘긴 두 남자의 만남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
그리고 이 두 남자 사이에 등장하는 준연의 오랜 친구이자 음악을 관두고 위스키 만드는 일을 하는 여자 하진.
해원은 특히 사랑 앞에 더욱 조심스럽다.
괜히 내색했다가 차게 식는 상대방의 표정 보면서 쪽팔리는 것도 싫고, 앞만보고 자신의 감정만을 폭발시키며 상대에게 달려가기엔 ‘사랑’이라는 것 조차가 이제는 그에게 우선순위에 있는 것도 아닌 듯 싶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사랑에는 어차피 시작도 있지만 다 끝이나게 되어있어라고 단언 하는 듯한 해원의 태도는, 어린 시절의 부모에게 얻은 상처와 충만하지 못했던 사랑의 부재가 서로 겹겹이 쌓여 그의 마음들이 퍼석하게 된 것임을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그런 그에게 ‘하진’만큼은 달랐다.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 것이다.
해원이 처음 준연을 만났을때를 떠올려보면, 첫 만남에도 이렇게나 진심일 수가 있나 싶을만큼 굉장히 진지했다.
오래되지 않은 사이 임에도 어머니 병원비로 준연에게 천만원을 건네는 해원의 행동에 나는 흠칫 놀랐다. 물론 책에서 묘사되는 준연이가 해원과 마찬가지로 침착하고 가벼워 보이지 않는 우직함을 주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쉽게 큰 돈을 줄 만큼 서로의 대해 잘 안다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좋았나보다.
서로의 엇비슷한 면을 발견하는 대화속에서 진심의 우정을 자아낼만큼 두 사람에게 짧은 시간의 만남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안에는 사람을 향한 외로움도 있었을 것 같다.
서울시 내에 신축아파트가 자신의 명의로 되어있고, 아버지는 건설회사 대표이고, 뉴스에 상장 대박으로 자주 나왔던 그 회사에서 주가와 재무관리 일을 하고 있는 해원은 풍족한 삶을 살아온 반면, 어머니를 향한 아버지의 폭행이라는 지우지 못할 고통과, 그럼에도 아버지 손을 벗어나지 않는 이해하지 못 할 어머니를 향한 증오가 있는 사람이었다.
하진은 위스키 만드는 일에 굉장히 열정적인 여성이다.
사랑의 표현을 ‘돈’으로 해결하는 듯한 해원과는 다른 사람이다.
서로 자신과 다른 모습에 끌렸는지 이 둘은 첫 만남부터 호감을 느끼고 사귀게 되었지만 왠지 어딘가 모르게 해원과 준연 사이 그 중간 어디쯤에서 머무는 듯한 하진.
가난해서 가난밖에 생각 할 수 없었던, 사랑이라는 것을 시작도 하기전에 단념해야만 했던, 해원의 여자친구이기 전에 자신과 오랜 친구 사이였던 하진의 주변을 떠나지 않는, 경제적으로 우월한 해원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 준연.
기대가 결과가 될 때까지 그걸 하는 사람인 해원을 향해 하진이를 잘 부탁한다는 준연의 말이 왠지 신경쓰인다.
내 곁에 있는 정말 좋은 사람이 상처 받지 않았으면 하는 진심의 마음이 우러나왔던 그 말에서 쓸쓸함도 보이지만 무언가를 우려하는 사람처럼 불안감을 주기도 했다.
나는 주식에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 하지만 굳이 빗대어 표현하자면, 이 책을 향한 내 마음이 주식시장의 변동성 만큼이나 불확실함으로 오르락 내리락 하여 다소 불안정하게 읽어나가야만 했다. 예측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공감하고 싶지 않을만큼 내겐 이 사람들이 다 별로였다. 그렇기에 등장인물들에게 생긴 거리감을 쉽게 좁히진 못했다. 달리 말하면 저자가 심리묘사를 굉장히 섬세하게 잘했다.
시간이 필요했다.
서서히 중후반을 지나 이들이 만들어 낸 서사들에서, 이 세상을 살아가며 그 안에서 발견한 자신의 사랑,기쁨, 절망, 고독함 등 어느 것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든 감정들을 쉼 없이 쏟아내는 이들의 모습에서, 곳곳에 공감의 구역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전달된 나의 감정 낙차 때문에 더 선명하게 느낀걸지도 모르겠다.
항상 위축이 돼 있었던 유학시절을 보냈던 하진은 그 시절이 그녀를 강인하게 만들었다. 한 사람 몫을 하니까 받을 수 있었던 존중과 대우. 경험해 본 사람들은 모를 수가 없다고 말하는 그녀의 말에 해원도, 나도 끄덕여 본다. 해원은 자신에게 의지하길 바랬지만 그러지 않았던 하진에게 서운하고 불안감을 느낀다.
하지만 쉽지 않았던 유학시절들이 그녀를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걸 다 이해하기엔 그들의 시작점이 달랐다. 살아온 삶이.
어딘가 마음 한 구석에 모서리가 있는 준연, 해원, 하진 이 세명의 삶 속에 들어있는 감정들이 이제 막 피운 꽃봉오리처럼 싱그럽지는 않다. 그것은 살아가게 해주는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속에서 얻은 단단함이자 뭘 요구하지 않는, 기대하지 않는 마음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사랑이 어렵고 의지도 어렵고 기대하는 마음은 두렵고.
하지만,
그럼에도 진짜 사랑을 찾고 싶은 게 사람이다.
(P. 282) 우리는 자기 얘기에 눈물을 흘릴 줄 모르기 때문에, 대신 눈물 흘려 줄 사람이 필요한지도 몰랐다.
나는 책에 흠집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읽는 편인데, 이 책은 조금은 따뜻한 색의 색연필로 밑줄도 좀 그려주고 싶고, 와닿는 문장에 예쁜 색의 인덱스도 붙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온기를 주고 싶은 마음이었나보다.
벽돌같은 책이 품고 있는 이 살벌하게 길고도 긴 글들은 공감이 되서 짜증이 나고, 시리기도 하고, 헛헛하기도 했다.
이들이 드러내지 않았던 외로움을 모른 척 할 수 없을만큼 나도 이제 서서히 알아가는 나이라서 그런지 읽을수록 마음이 쓰리다. 그리고 점점 가열되어가는 이들의 관계에서 오는 혼란의 감정이 더욱 더 불편해져만 간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떠밀림에 그대로 떨어져도 봤었고 다시 내 자신을 끌어올려도 봤었던, 그렇기에 매일 매일 마음까지 바빴던 나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가슴속에 얼기설기 얽혀있는 감정들을 이 책에서 발견하는 순간만큼은 공감의 쓴웃음 한번 지어보지 않았을까 싶다.
이 공감에 가닿을때까지 고단함도 물론 있었지만 그렇기에 준연, 해원, 하진의 감정들이 더 선명하고 강력하게 다가왔다.
아직은 정돈되지 않은 내 마음속에 말이다.
열정을 넘어 집착으로 이어지는 욕망의 감정이 고통을 줬어도 어쩌면 그렇기에 내가 서서히 이 책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걸지도 모르겠다.
읽는동안 속이 타들어가서 술이라도 한잔 넘기면서 미간에 주름 세우고 인상 좀 쓰고 싶어졌다. 피우지 않는 담배 일지언정 크게 들이마시고 연기를 한숨 삼아 푸~~~우 하고 복잡한 감정들을 다 내뱉고 싶은 심정도 들었다. ‘님아 그 강을 건너가지 마오’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여러 번 들락날락 했다. 감정 폭력을 당한 기분이 들어서 중간 중간 고비도 있었다.
(P. 499) 인생이란 희극도 비극도 아니고 촌극이라는 걸. 짤막짤막한, 아무 의미도 깊이도 없고 그저 지푸라기 잡듯 지폐를 붙잡아 보려 서로 밀치고 깨물고 할퀴고 때리는, 도대체 왜들 그렇게 천박하고 구질구질하게 사느냐는 말밖에 안 나오는 촌극.
이득을 좋아하고 손해를 싫어하는게 인간이라고 말하는, 한 때는 경멸의 대상이었던, 그리고 돈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대물림 해준 아버지와 지옥이라 여기던 집에서 끔찍이 싫어한 서재에 나란히 앉아 위스키를 마시며 돈이 주는 쾌락을 말하고, 도망치지 말고 도망치게 만들라는 말을 들으며 해원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버지가 하는 말을 자르지 않고 중간에 나오지도 않은 걸 보면, 납득하고 있던 중일까? 또 다른 힘을 얻고 있는 중이었을까? 그 돈이 주는 권력이 옳았음을 인정하고 있었을까?
해원은 페달을 밟았다. 짓밟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장 증오했던 아버지에게 먼저 손을 내밀게 할 만큼, 사랑했던 하진 곁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짓밟고 뭉개버리고 연기로 날려버리고 나면 자신이 꿈꾸던 장면처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 날이 분명 올 것이라 믿었다.
자신에게 의지할 수 있도록 그녀의 모든 걸 앗아간 이후에 말이다. 이것이 해원에게는 희열이고 사랑이었다.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봤던 준연은 더 이상 친구가 아니라 걸림돌일 뿐이었다. 그런 준연에게 손길을 건네는 하진을 바라보는 일이 해원을 미치게 만들었다. 사랑하니까 존중하고 싶지만, 사랑하기에 그녀 곁에서 준연이 떨어져 나가줬음 좋겠다.
(P. 515) 이 사랑은 운명 같은 것이 아니었다. 운명 그 자체였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열어젖힌, 내가 시작했고 내가 완성하려는 사랑.
작은 물결이 치는 잔상까지도 담아낼 만큼 여백없이 꽉 채운 이들의 서사는 혼란과 불편함을 주기도 했지만, 지나칠만큼 불완전했던 감정과 상황에서 공존했던 진솔함과 처참함으로, 헛헛하면서도 안타까웠고 한 인간을 향한 연민을 느끼게 했다.
단순한 집착이 광기에 옷을 입고 통제할 수 없는 소유욕으로 분별력을 잃게 만들고 책임질 수 없는 상황까지 만들어냈다.
한 여자를 향한 남자의 욕망이 결국 산산 조각나는 자신을 마주하게 만들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부자 아버지 밑에서 풍족함으로 과잉된 삶을 살아왔던 해원에게 없던 것은 사랑 하나였다. 이런 사랑이 결여 된 사람이 운명처럼 사랑을 느낀 한 여자를 향한 집착은 인간이기에 그 사랑을 갈구했던 것이며, 또 인간이기에 죄의식을 느끼게 했다.
암초에 부딪혀 좌초되는 배처럼, 서서히 무너져가는 해원의 내밀한 감정에서 그의 선택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 해원은 더이상 피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했다.
헤어짐을, 죽음을.
(P. 586) 모든 것이 다 대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