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지음 / 열림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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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김애란이라는 소설가 이름을 들은 게 언제더라. 잘 생각나지 않지만 이름 알고 시간 많이 흐른 것 같다. 소설가가 되고 바로 알았는지 소설가가 되고 첫번째 소설집이 나왔을 때 알았는지. 첫번째 소설집 나왔을 때 알았다. 《달려라 아비》를 사기도 했다. 그다음 소설집은 나왔다는 말은 들었는데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소설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지만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세번째 단편소설집 《비행운》은 분명히 만나지 않았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봤다. 그다음 《바깥은 여름》도 만났다. 김애란이 낸 책에서 반 이상은 만났구나. 잠시 소설 안 쓴 적도 있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니 안 썼다기보다 책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소설을 봐도 어느 부분이 소설가 경험인지 모른다. 그건 작가 자신이나 둘레 사람만 알겠지. 이 책을 보니 김애란 자신의 경험을 소설에 쓰기도 했다는 걸 알았다. <칼자국>에서 어머니는 칼국숫집을 하는데 김애란 어머니가 실제 손칼국수를 팔았다. 어머니가 해준 음식을 먹고 자랐다는 이야기는 바로 김애란 이야기였다. 어머니는 피아노도 사주었다고 한다. 그게 또 부러웠다. 피아노를 치는 부분이 나오는 소설도 있었던 것 같은데. 난 그걸 읽지는 않았다. 라디오 방송 사이에 그 부분 읽는 게 나왔다. 김애란을 잘 아는 것도 아니면서 피아노 치는 이야기 나오는구나 했던 것 같다. 집에 피아노가 있었으니 김애란은 피아노 칠 수 있겠구나. 가장 놀라운 건 김애란이 쌍둥이라는 거다. 세상에 쌍둥이는 많을 텐데 그것에 놀라다니. 내가 읽지 못한 소설에 쌍둥이 나오기도 했을까. 그게 알고 싶다니 나도 참 우습구나.

 

 언니가 있다는 말은 있지만 쌍둥이 언니하고 일은 거의 없다. 그런 걸 꼭 말해야 하는 건 아니구나. 자신만 알고 싶은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부모님이 만나고 결혼하는 이야기는 재미있다. 김애란이 소설로 상을 받았을 때 마을에 현수막을 걸었단다. 김애란은 그런 일 쑥스러웠겠지만 김애란 부모님은 자랑스러웠을 것 같다. 중학생 때 춤추기를 좋아했다니 뜻밖이었다. 처음 나온 소설집 《달려라 아비》는 재미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다. 읽었지만 하나도 생가나지 않는, 어느 때를 지나고 김애란 소설이 조금 바뀐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게 언젠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니 소설가는 늘 다르게 쓰려고 할 거다.

 

 처음에 김애란은 시도 썼던가 보다. 시는 안 되고 소설이 된 거구나. 하나라도 된 게 어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김애란은 조금 아쉬웠던 것 같다. 자기 글이 뽑혔다는 전화를 받고 시가 아니고 소설이냐고 물은 걸 보니. 이 책은 열림원에서 나왔는데 이 안에는 창비가 오십년이 된 걸 축하하는 글이 있다. 창비는 오십년이 됐구나. 이제는 넘었겠다. 소설가는 소설가와 친하게 지낼까, 마음이 맞는 사람하고 더 친하게 지낼까. 소설가라고 다 친하게 지내지는 않겠구나. 여러 번 만나다 친구가 되는 사람이 있는 거겠지. 김연수 편혜영 박완서 윤성희. 네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박완서는 책을 본 느낌 같기도 하지만. 편혜영은 여러 번 만나고 친구가 됐다. 윤성희는 윤성희가 가진 틈을 말한다. 파란 손바닥, 잊지 못하겠구나.

 

 제목은 ‘잊기 좋은 이름’이지만 세상에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고 한다. 이름이라고 해서 사람만 나타내지는 않는구나. 언젠가 일어난 일이기도 하다. 그건 ‘기억’이구나. 소설은 잊지 않으려 쓰는 거겠지. 소설만 그런 건 아니다. 글은 기록이고 기억이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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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형사 부스지마 스토리콜렉터 64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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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면서 형사인 사람 실제 있을까. 형사였다가 작가가 되는 일은 있을 수도 있겠지. 반대로 작가가 형사가 되는 일은, 좀 어려울 듯하다. 형사보다는 탐정은 그럴 수도 있겠다 하겠다. 이런 생각부터 하다니.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일이 더 많을 텐데. 작가 형사 부스지마는 형사였다가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형사였을 때 범인을 잘 잡았는데 작가로도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졌다. 자신이 경험한 것을 소설로 잘 쓰는가 보다. 소설속에 나온 사람이지만 대단하구나. 일본도 많은 듯한데 한국에도 작가, 소설가가 되고 싶다 생각하는 사람 많을 거다. 그런 사람에서 소설가가 되고 죽 소설가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여기에 나온 것처럼 작가지망생이나 작가가 쉽게 망상에 빠질까. 여기서는 전문가만 이야기하지 않는구나. 책을 읽고 블로그에 글을 쓰는 사람도 안 좋게 말했다. 이 말은 좀 잘못됐다. 책을 읽고 블로그에 늘 비판만 쓰는 사람 이야기였다. 그런 글을 쓰고 자신이 평론가라도 된 것처럼 생각했다. 실제 그런 사람이 없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에 나온 사람은 모두 실제보다 더 지나치게 쓴 거 아닌가 싶다. 소설이니 그렇다고 해야 할지도. 소설 보면서 나를 생각하기도 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전문가든 아니든 조금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나도 글쓰기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런 마음이 아주 없지 않은 듯하다. 작가도 아니고 블로그에 글을 써도 많은 사람이 보지도 않지만. 글을 쓰는 건 조금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일지도. 나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조금 있지만, 아주 많은 사람이 아는 것도 싫다. 이건 대체 무슨 마음일까. 나를 아는 사람만 내가 쓰는 걸 보면 된다. 하지만 그런 일 별로 없구나.

 

 앞에서 쓸데없는 말을. 부스지마라는 이름에는 독(毒 부스)이 들어간다. 그래설까, 말을 좀 심하게 한다. 하지만 잘 보면 그건 사실이다.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 기분을 생각하고 부드럽게 말하려고 하는데, 부스지마는 남의 마음은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스지마가 일부러 안 좋은 말을 하는 건 아니다. 형사 일을 할 때 범인을 꾀어내려고 그랬다. 글은 또 말과 다른가 보다. 부스지마가 사실을 말하지만 다른 사람 인격을 깎아내리지는 않는 듯한데. 부스지마가 자기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은 후배 형사 다카치호 아키호뿐인 것도 같다. 아니 그래도 말은 거칠게 하던가. 여기에서 죽임 당하는 사람인 편집자 작가 프로듀서는 다른 사람한테 안 좋게 말했다. 안 좋은 말을 듣는 사람이 그걸 크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작가지망생은 자신은 대단한데 다른 사람이 그걸 못 알아본다고.

 

 누군가를 죽인다고 자기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그런 일은 없다. 남의 마음을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안 좋은 말을 한 사람이 잘못이지만. 그런 말했다고 자신이 죽임 당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겠지. 부스지마는 글 쓰는 사람은 경쟁자라 여기는 듯했다. 난 그 마음이 더 자연스러운 것 같은데. 글 쓰는 선배는 글 잘 쓰는 후배가 자꾸 나오기를 바랄까(이런 생각하는 난 어른이 안 되겠구나). 한 문학상을 심사한 작가는 상을 받는 사람이 좋은 글을 쓰기를 바라고 심한 말을 했다. 그건 그 사람이 앞으로도 작가이기를 바라고 한 말일지도. 옛날에는 그런 말이 상대 마음에 전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어려울 듯하다.

 

 글을 안 쓰는 것보다 쓰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만 이게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좋겠다. 이건 나한테 하는 말이구나. 글을 읽고 쓰고 늘 나 자신을 돌아봐야겠다. 나를 아는 사람이 내가 쓴 글을 안 봐도 아쉽게 생각하지 않아야겠다. 내가 쓴 글이 재미없어서 그렇겠지. 내 글을 보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 해도 난 쓸 거다. 글쓰기는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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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진심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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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을 읽기 전에는 단편이었던 <문주>를 장편소설로 썼나 했다. 그때는 더 할 말이 있어서 그런 건가 했다. 조해진은 <문주> 때문에 이걸 쓴 건 아닌가 보다. 본래 쓰고 싶은 게 있었다고 한다. 그걸 생각하다 먼저 단편을 쓰고 다음에 장편을 썼겠지. 단편은 갑자기 끝나버리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깊은 인상을 받지 못했다. 그걸 보고도 여러 가지 느낀 사람도 있겠지만, 그때 생각한 건 그저 어렸을 때 프랑스로 입양되고 자신을 잠시 돌봐준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문주라 한 걸 기억하고 그 이름이 무슨 뜻인지 찾으려는 거구나였다. 끝내 그 이름이 뜻하는 건 알지 못했지만, 장편도 그건 다르지 않다. 어릴 때 프랑스로 입양되고 지금은 연극배우며 극작가인 나나한테 한국 사람 서영이 나나 이야기를 영화로 찍고 싶다 했다. 문주라는 이름이 나타내는 걸 마지막에 찾는 거였다. 나나는 자신 안에 아이가 생긴 걸 알고 자신을 낳은 엄마가 보고 싶었고 자신을 철길에서 구하고 문주라는 이름을 짓고 한해쯤 함께 산 기관사를 찾고 싶기도 했다.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한때 한국은 아이를 다른 나라에 수출한다는 말을 들었다. 좋은 말로는 가난한 한국보다 잘사는 나라에 가서 사는 게 낫다고 했겠지. 다른 나라로 입양된 사람이 부모를 찾으려고 한국에 오고 텔레비전 방송은 부모를 찾는 걸 도와주기도 했겠지. 부모를 찾아도 그렇게 좋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나도 한해 전에 한국에 와서 자신을 잠시 맡은 기관사나 부모를 찾으려 했지만 정보가 별로 없어서 찾지 못했다. 그때 일이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서 나나는 다시 한국에 오지 않으려 했다. 입양된 사람이나 부모한테 버림 받은 사람은 거의 자신한테 아이가 생기면 부모를 떠올리는 듯하다. 나나는 자기 이름을 문주라 지어준 기관사를 조금 원망했다. 친엄마가 자신을 버렸는데, 또 기관사가 자신을 버려서. 그런데도 나나는 기관사와 기관사 어머니와 살던 때 먹은 음식을 기억하기도 했다. 난 왜 기관사가 나나를 자신이 기르려고 하고 어머니가 반대했다고 생각했을까. 그런 말은 없었다. 기관사는 자신이 결혼하려는 사람이 아이를 함께 기르겠다고 했다면 나나를 고아원에 보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지 않아서 좋은 고아원을 찾으려 했겠지. 하지만 이건 영영 알 수 없게 됐다. 기관사는 다섯해 전에 병으로 죽었다.

 

 한해 전에 나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기관사 이름이나 기관사 아내와 연락을 하고 딸과 어머니를 만났다. 이건 기적 아닐까. 나나는 서영 집에서 지냈는데 1층에는 복희식당이는 곳이 있었다. 나나는 어느 날 그 식당에서 밥을 먹고 기관사 어머니가 해준 음식이 뭔지 물어본다. 나중에 복희는 그걸 나나한테 해준다. 나나는 식당 할머니를 복희라 했다. 복희는 할머니가 벨기에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아이 이름이다. 이런 인연도 있구나. 나나는 잠시 할머니를 오해하고 멀리하기도 했다. 어쩌면 나나는 자신을 버린 엄마를 떠올렸을지도. 식당 할머니 이름은 추연희였고 복희는 연희가 처음 받은 아이였다. 복희는 혼혈이었다. 복희를 낳은 엄마 백복순은 기치촌에서 일했다. 복순은 연희를 낳고 네해 뒤 죽었다. 연희는 복희를 기르고 지키고 싶었지만 세상과 싸울 힘이 없어서 다른 나라로 입양 보냈다. 그리고 줄곧 잊지 않고 언젠가 만나기를 바랐다. 연희는 복희를 낳지 않았지만 자기 딸처럼 여겼을 거다. 연희가 쓰러지고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복희가 한국으로 온다.

 

 다른 나라로 입양된 사람이 두 사람이나 나오다니. 그래도 두 사람은 살았다. 이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죽은 목숨도 아주 많았다.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사람 모습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엄마 배 속에서 사라지는 목숨 많겠다. 복희도 연희가 자신을 버렸다 생각했지만 누워 있는 연희를 보고 왜 연희가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된다. 사람은 힘들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하고. 태어나지 않았다면 힘들고 괴로운 일 없었겠지. 잘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 와서 좋았던 일도 많을 거다. 그게 오래 가지 않는다 해도. 한사람은 복희를 낳은 복순을 부러워했다. 그 사람은 아이가 생길 때마다 지웠다. 나나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낫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다르게 생각했다. 자기를 낳아준 엄마 자신을 구해준 기관사 자신을 길러준 부모한테 고맙게 여겼다. 나나에서 이어지는 목숨이 나나 배 속에 있어서겠지. 나나는 아이를 우주라 했다. 사람은 누구나 우주라고도 한다. 한사람은 여러 사람이 있어서 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부모한테 버림 받거나 혼자가 되고 힘들고 외로워도.

 

 피를 나누고 식구라는 이름으로 얽매이면 그것대로 힘들겠지만, 누군가와 오래 이어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그게 안 좋다는 건 아니다. 한때나마 자신을 돌봐준 사람이 있기에 지금 자신이 있는 거 아닌가 싶다. 이건 모든 사람이 그럴지도. 난 친구하고 오래오래 이어지고 싶다 생각하는데 그건 쉽지 않은 듯하다. 끊어지면 끊어지는대로 내버려두는 게 낫겠다. 잠시라도 닿은 인연을 고맙게 여겨야겠다. 그때만은 진심이었을 테니. 난 식구도 끊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식구라는 걸 믿고 함부로 대하지 않기를 바란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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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다는 건

조금 귀찮은 일이다

 

살아 있기에

이것저것 해야 하고

살아 있기에

셀 수 없이 바란다

 

살아 있기에

귀찮은 일도 많지만

괜찮은 일도 많다

 

하지만

죽는다고 끝은 아니다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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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없는 기분
구정인 지음 / 창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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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죽고 시간이 좀 지나면 그 집에 누군가 다시 살기 어려운 듯하다. 이걸 보니 내가 죽고 오랜 시간이 지나고 발견되면 안 될 텐데 했다. 그때는 날마다 아주 잠깐 안부전화하는 사람이 있어야 할지도. 그건 좀 귀찮을 듯하다. 한주에 한번이면 되겠다. 그러면 내가 죽고 나서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고 알겠지. 그래야 할 텐데. 나중에 그런 전화를 주고받을 친구가 있을지. 친구보다 주민센터 사람과 해야 할까. 그건 싫은데. 아직 오지 않은 일이니 그때 가서 생각해야겠다. 내가 집에서 죽을지 다른 데서 죽을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집이 아닌 다른 데서 죽고 싶지는 않다. 병원 같은 데는 정말 싫다. 누군가 도와줘야 할 때까지 살고 싶지 않다. 그러면 지금부터 운동을 조금이라도 하고 아파도 다른 사람 도움없이 살도록 해야겠다. 어쩐지 난 내가 죽을 때쯤 알 것 같다. 이런 생각 좀 이상한가. 그러면서 가끔 어딘가 안 좋으면 별 생각을 다한다.

 

 갑자기 연락하지 않고 지내던 아버지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으면 어떨까. 사람이 나이가 많다고 죽고 나이가 적다고 오래 사는 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갑자기 죽을 수 있다. 혜진 아버지도 몸이 안 좋았던 건 아닌데 죽었다. 혜진은 슬프지는 않았지만 아버지 장례식이 끝나고 좀 이상해진다. 아무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할까. 머리가 멍하고 잠도 잘 못 자고 일도 잘 못했다. 심리상담을 받아도 그리 좋아지지 않았다. 요즘 사람은 심리상담 쉽게 받는구나. 난 한번도 그런 거 받아본 적 없다. 몸이 아주 안 좋아지지 않은 걸 보면 견딜 만한가 보다. 혜진은 자신이 우울증은 아니다 했는데 정신과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니 우울증이었다. 그때 혜진은 아파서 그런 거구나 약 먹으면 낫겠지 했다. 약을 먹고 잠깐은 괜찮았다. 약을 오래 먹다보니 다시 무기력해지고 일도 못하고 거의 누워만 있고 안 좋은 생각만 했다.

 

 혜진 아버지는 혜진이 어렸을 때 바람을 피우고 집을 나갔다가 어느 날 다시 돌아왔다.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돈을 집에 거의 가져다 주지 않고 빚을 많이 졌다. 성실하게 일하기보다 한번에 돈을 많이 벌려고 한 건 아닐까 싶다. 아버지 친구가 치킨집을 차려줬는데 그건 겨우 한해 하고 그만뒀다. 아버지 친구가 그런 걸 해주다니. 누군가 해줘서 하는 것보다 자신이 돈 벌고 했다면 그렇게 쉽게 그만두지 않았을지도 모를 텐데. 혜진이 스물다섯쯤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헤어졌다. 아버지는 혼자 살면서 두 딸한테 사업한다면서 명의를 빌려달라고 했다. 그때는 60대였다. 60대에는 돈 안 드는 취미 같은 거 가지고 살아도 될 텐데, 혜진 아버지는 큰돈 벌고 싶은 마음을 버리지 않았나 보다. 혜진과 언니는 아버지가 그렇게 사업을 한다면 아버지와 인연을 끊겠다고 한다. 그렇게 혜진과 언니는 아버지와 인연을 끊었다. 그게 거의 두 해였다. 아버지는 혼자 살면서 자기 몸을 돌보지 않았겠지. 아버지는 죽고 삼주가 지나고 발견된다. 냄새 때문에.

 

 여러 잘못을 한 아버지라 해도 죽으면 조금 슬플 것 같다. 혜진은 두 해 동안 아버지하고 연락하지 않아서 슬픈 마음이 덜했을지도. 아버지가 살았을 때라고 해서 혜진이 아버지와 그동안 쌓인 걸 풀었을지 그건 알 수 없다. 좀 어렵지 않았을까. 소설속에서는 잘만 하던데. 이것도 만화지만 거의 이 작가 경험이 아닐까 싶다. 이제 아버지가 없으니 원망도 못하고 화풀이도 못한다. 죽었다고 해서 그러지 못할까. 애도는 슬퍼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화를 푸는 것이기도 하단다. 그런 걸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심리상담사는 혜진한테 자기 마음을 잘 마주하라고 한다. 혜진은 괜찮다 생각했구나. 글을 쓰거나 누군가한테 말하면 조금 나을지도. 혜진은 상담사한테 말했다면 좋았을 텐데, 나중에 말했구나. 죄책감 없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을까. 혜진이나 언니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식이어서 평생 아버지 때문에 괴로워야 하는 건 아니다.

 

 부모와 자식이 잘 지내는 사람도 많지만, 부모 때문에 힘든 자식도 많다. 아이를 낳는다고 다 부모가 되는 건 아니다. 철없는 부모 밑에서는 아이가 빨리 철들지도. 제대로 부모와 자식으로 지내지도 못했는데 부모가 죽으면 자신을 탓하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는 게 좋다. 부모가 죽는 일은 마음을 아프게 할 거다. 부모와 잘 지냈든 못 지냈든. 애도하는 기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런 시간을 모르는 척하지 않는 게 자기 마음에 좋을 거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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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0 16: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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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1 23: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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