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3
이희영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에 자기 얼굴만 못 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일이 있다면 답답할지, 얼굴에 덜 마음 쓸지. 《페이스》에서 인시울은 자기 얼굴을 보지 못했다. 시울이 거울을 보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시울이는 여섯살 쯤까지 모두 그렇다고 여겼다. 다른 사람은 자기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조금 충격 받았다. 아빠나 엄마 어느 한쪽하고만 살던 아이가 다른 집은 엄마 아빠가 다 있는 걸 본 것과 비슷하려나. 아니 좀 다른가. 남과 이야기하지 않으면 남도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정말 그럴까. 난 어릴 때 그러지 않은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르다는 걸 알았던 것 같기도 한데. 어저면 이건 좀 더 자랐을 때 생각한 걸지도.


 사람은 자기 자신을 제대로 못 보기도 한다. 남이 보는 자신과 자신이 보는 자신이 조금 다르기도 하지 않나. 시울이는 자신을 아예 못 보니 다른 걸 잘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라미는 늘 자기 이가 비뚤어져서 교정해야 한다고 하지만, 시울이가 보기에 라미는 괜찮다. 라미는 사진을 찍을 때와 다르게 활짝 웃기도 한다. 그 모습을 라미 자신은 제대로 못 본다. 보려고 하지 않던가. 거울로 보는 자신이 진짜 자신이다 할 수 있을까. 거울 속 자기 모습은 좌우가 바뀐 거 아닌가. 그걸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는구나. 자신을 남이 보는 것처럼 보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어릴 때 시울이는 자기 얼굴이 안 보인다고 했다가 여러 병원에 가기도 한다. 엄마와 아빠가 걱정하는 걸 보고 시울이는 자기 얼굴이 보이게 됐다고 거짓말한다. 어느덧 시울이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시울이가 거울을 보면 거기엔 얼굴이 아닌 다른 게 보인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어도 그게 안 보인다니 별난 일이 다 있다. 시울이는 가끔 엄마한테 자기 얼굴이 어떤지 묻는다. 그때마다 엄마는 예쁘다고 말한다. 사람 얼굴을 나타내는 말은 그리 많지 않구나. 자기 얼굴이 어떤지 설명하라고 하면 말하기 어려울 듯하다.


 시울이가 이마를 다치게 된다. 같은 반 아이 묵재가 바닥에 튕긴 공이 시울이 옆얼굴을 치고, 시울이는 사물함 모서리에 이마를 찧었다. 묵재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사고였다. 시울이는 이마를 다치고 지금까지 얼굴을 다친 적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이마가 많이 찢어졌는지 스무 바늘이나 꿰맸다. 엄마와 라미는 흉터가 생기면 어쩌나 걱정하고 묵재도 흉터를 자신이 없애주겠다고 한다. 실밥을 빼고 거울을 보니 꿰맸던 자국이 보였다. 다른 곳은 여전히 안 보였는데 꿰맸던 자리는 잘 보였다. 시울이는 이제야 자기 얼굴을 본 듯 기뻐했다. 미술시간에 시울이는 얼굴은 파랗게 칠하고 흉터를 그렸다. 자화상을 그려야 해서다. 다른 사람은 믿지 않겠지만, 그게 시울이가 보는 자기 모습인데 묵재는 시울이가 흉터를 마음 쓴다고 여겼다.


 얼굴 전체가 아니고 아주 조금이라도 보이면 기쁠까. 그런 일이 없어서 시울이 마음을 다 알기는 어렵다. 시울이가 흉터만 보는 건 자기 상처와 마주하는 거다 하는데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까지 묵재는 자기 상처와 마주하지 못했는데 시울이를 알게 되고 이야기하다가 엄마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는 아무한테도 못했던 거다. 어떤 건 누군가한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조금 나아지기도 하겠지. 시울이와 묵재는 같은 반이어도 말을 나누지 않았는데, 사고를 기회로 서로 이야기하게 됐구나. 우연히 그렇게 됐다 해도 그런 우연이 일어나서 다행이다. 시울이는 다쳐서 아팠지만, 그걸로 자기 얼굴에서 아주 조금을 보게 됐구나. 사람은 서로한테 영향을 주고받겠지. 자신이 보지 못하는 걸 상대가 보고 말해주기도 하겠다. 묵재가 웃는 게 묵재 아빠와 닮았다는 것도.




희선





☆―


 나는 내 얼굴을 볼 수 없다. 하지만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늘 다채롭다. 안개에 싸여 있거나, 검게 물들어 있거나, 이상한 꽃이 활짝 피거나, 동그라미가 가득 차 있거나, 색색의 블록인 적도 있었다. 이렇게 기묘한 삶을 살다 보니 아침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 됐다. 그런데 날마다 보는 엄마의 얼굴은 늘 똑같다. 아니, 똑같다고 믿었다. 그런데 거울 속 내 모습처럼 엄마도 날마다 조금씩 바뀌어갔다. 조금씩 세월에 물들어갔다. 익숙함이란 안개가 가려서 나는 그걸 보지 못했다. 애써 못 본 척했다.  (73쪽)



 정말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게 인생이구나. 삶이란 결국 짙은 안갯속을 걸어가는 것이다. 한 발 그 너머에 뭐가 있는지 전혀 안 보이니까. 깊은 구덩이가 나올 수도, 커다란 벽에 가로막힐 수도 있다. 그런데도 모두 거침없이 보이지 않는 길을 잘도 걸어간다.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용기가 있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98쪽)



 “나는 인간이 스스로를 정확히 보는 게 뜻밖에 힘들다고 생각해. 그런데 어떤 사건이나 기회로 비로소 보일 때가 있어. 그것이 더 나은 부분일 수도 있지만, 애써 감추려 했던 아픔이 수면으로 올라올 수도 있어. 누군가한텐 상처가 될 수도 있다고. 뻔한 말이지만 어쨌든 흉터는 그 고통의 시간을 지나왔다는 상징이니까, 굳이 감춰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  (14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빨간색 불이야

잠깐 멈춰


신호등 앞에선

빨간색 불이면 멈춰도

몸과 마음이 빨간색 불이면

좀처럼 멈추지 않는군


몸과 마음이 잠깐 멈추라고

신호를 보내도

쉬기 어려울지도 모르지


자기 몸과 마음 잘 살펴 봐

빨간색 불이면 잠시 멈춰

잠깐이면 돼




희선





댓글(1)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march 2025-07-01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잠깐 멈춤이 얼마나 중요한지 평소 잊고살아요.
빨간 불에 앞으로 나아가면 탈이 날 수 밖에 없는데, 멈추기도 하면서 여유있게 보내요.^^
 
侍 (新潮文庫) (文庫)
엔도 슈사쿠 / 新潮社 / 198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무라이

엔도 슈사쿠






 한동안 책을 읽지 못하다 읽기로 한 책이 바로 엔도 슈사쿠 소설 《侍 사무라이》다. 한국말로 나왔지만, 일본말로 읽어 보고 싶어서 예전에 사두고 이제야 만났다. 이 책을 느리게 보면서, 한동안 책을 안 봤으니 좀 편하게 볼 책을 골랐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책 한권을 열흘 넘게 보다니. 하루에 한시간 본 날이 많아서 그렇다. 일본말로 보면 더 느린데 하루에 겨우 한시간만 보다니. 언제 다 보려나 하면서 조금씩 읽었는데, 끝이 났다. 다행이다. (이 책을 보고 시간이 좀 지났다. 지금은 책을 그런대로 본다.)


 이 소설 《사무라이》는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썼단다. 1600년대에 무사와 상인이 멕시코와 무역을 하려고 스페인 왕한테 허락을 받으러 배를 타고 멕시코로 갔다. 소설에는 그렇게 나왔는데 자세한 건 모른다고 한다. 여기 나온 무사 하세쿠라 로쿠에몬은 일기를 썼는데, 그 일기는 남아 있지 않단다. 참 아까운 자료가 아닐 수 없다. 남의 나라 일이기는 하지만. 조선도 천주교를 박해한 적이 있다. 집안 식구가 천주교도로 귀양간 사람도 있다(정약용). 조선시대에 천주교에 관심을 가진 건 서양 학문에 관심을 가진 게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때 조선에도 죽은 사람 많겠다.


 조선에서는 천주교다 했는데 일본에서는 기리스탄이다 했다. 그리스도교, 기독교, 카톨릭이라는 말도 썼다. 일본은 나라에서 기리스탄을 금지하고 신부나 신도를 나라에서 쫓아내고 죽이기도 했는데, 일본에서 그리스도교를 널리 알리려는 신부가 있었다. 그 한사람만 그런 건 아니지만, 벨라스코는 야망이 있었다. 그리스도를 모르는 나라에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고 싶어했다. 벨라스코는 통역사로 일본에 오고 선교사로 활동했는데, 감옥에 갇힌다. 다시 통역사로 기회가 온다. 멕시코와 무역을 자유롭게 하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벨라스코한테 통역을 맡긴다. 그곳 영주는 다테 마사무네였던 것 같은데, 멕시코와 무역하기를 바란 건 다테 마사무네였을지, 그 밑에 사람이 생각한 건지. 벨라스코는 자신이 통역을 하면 스페인 왕뿐 아니라 교황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벨라스코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가 했는데, 벨라스코 집안 사람이 대단하기는 했다. 벨라스코 자신도 조상을 생각하고 일본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거다. 벨라스코는 일본에서 자신이 주교가 되기를 바랐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그런 꿈을 꿨구나.


 척박한 산골에서 살던 하세쿠라 로쿠에몬은 어느 날 예전 땅을 돌려줄 수도 있다면서 일본 사절로 멕시코에 갔다오라는 명령을 받는다. 하세쿠라와 세 사람 그리고 상인과 하인은 배를 타고 떠난다. 하세쿠라는 쓰키노우라에서 배가 떠나는 날 자기 운명이 바뀌리라는 걸 깨닫는다. 하세쿠라는 예전에 일구던 기름진 땅보다 지금 사는 산골이 더 좋았다. 하지만 돌아가신 아버지나 작은아버지는 예전 땅을 되찾기를 바랐다. 이번 일을 잘 해낸다고 해서 예전 땅을 돌려받을지 그건 모른다. 다른 무사도 그런 말을 듣고 한번도 가 보지 못한 나라에 가게 됐다. 무사 네 사람에서 다나카는 자신들을 버리는 돌이다 말했다.


 1600년대에 배를 타고 다른 나라에 가는 일은 쉽지 않았을 거다. 폭풍우를 만나기도 했지만, 멕시코에 도착한다. 하지만 바로 뭔가 잘 되지는 않았다. 스페인에 가야 했다. 벨라스코 혼자 갈 것 같았는데, 무사한테도 같이 가자고 한다. 스페인에 갔다 해도 바로 왕을 만나지도 못했다. 벨라스코가 베드로회에서 안 좋은 말을 들어서. 일본에서 정말 포교활동을 할 수 있나 없나를 따지려 했다. 무사는 맡은 일을 해내는 데 도움이 된다면 기리시탄이 되고 세례를 받겠다고 한다. 하세쿠라는 일이어도 그러지 않으려 했는데, 두 사람이 세례를 받겠다고 해서 하세쿠라도 따른다. 그 뒤에는 잠시 좋아 보였는데, 일본에서 기리스탄을 금지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예전보다 더 심해졌다.


 벨라스코와 무사가 일본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게 됐는데, 어느새 한해 반이 지났다. 다나카는 자신들이 한 일이 아무 소용없다는 걸 알게 되고 한탄했다. 일본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나카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하세쿠라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지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보고 마음을 쓴다. 왜 사람들이 추하고 마른 그 사람을 따르는지 신기하게 여겼다. 맡은 일 때문에 세례를 받았지만 예수를 믿지 않는다 했다. 여러 해가 지나고 하세쿠라와 니시와 하인은 겨우 일본으로 돌아온다. 위에서는 하세쿠라와 니시한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여기라 했다. 그런 말 들으면 지금까지 자신이 한 게 뭔가 싶은 생각이 들 것 같다. 니시는 젊어서 스페인말에 관심을 갖고 배우고 스페인에 남아 다른 것도 배우고 싶어했는데.


 하세쿠라는 일본으로 돌아오고 나름대로 예수가 뭔지 생각한다. 언제나 곁에 있어주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늘 함께 한 요조는 기리시탄이기도 했다. 벨라스코는 마닐라에서 지내다 일본을 잊지 못하고 돌아오고 잡힌다. 벨라스코는 이제 야망을 가졌던 때와 많이 달라졌다. 이제야. 벨라스코가 일본으로 돌아온 일로 하세쿠라와 니시도 죽게 된다. 벨라스코는 하세쿠라와 니시가 기리스탄이었다는 말을 듣고 웃었지만, 난 벨라스코 때문에 두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있겠지만, 정치에 휘말려 죽임 당한 거다. 니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하세쿠라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때 조금 슬펐다. 요조는 하세쿠라한테 그분이 함께 할 거다 했다.




희선





댓글(1)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5-07-02 2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 쓰기를 부추기네


뭐든 오래 쓰게 만들지 않고

잠깐 쓰고 다시 사게 해


쓰는 사람이 더 오래 쓰고

새 것을 덜 산다면

덜 만들지도 몰라


자본주의 사회가

부추기는 대로 살지 마

자기 대로 살아야지


세상을 생각하고 하는 행동은

자신한테도 도움이 될 거야




희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누군가한테 도움이 되지 않아도 돼


사람은 누군가한테 도움이 되기를 바라지

어릴 땐 자신이 있기에

부모가 기뻐하길 바라네


사람이 꼭 누군가한테 도움이 되어야 할까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그냥 있으면 안 될까


그저 있는 그대로

누구의 자식도 아무것도 아닌

오로지 자신으로 있기

그렇게 있어도 돼




희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