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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곳에서 만나요
이유리 지음 / 안온북스 / 2023년 7월
평점 :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요. 죽고 바로 혼이 자기 몸을 빠져나와 둘레를 바라볼지. 그건 산 사람이 지어낸 이야기지만, 그게 거짓이다 말할 수 있을까요. 아직 저도 안 죽어 봐서 모르겠습니다. 이유리 소설집 《좋은 곳에서 만나요》에서는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되는군요. 하지만 다른 귀신은 만나지 않아요. 이게 신기합니다. 귀신이 있다 해도 서로 보지는 못한다는 것도 괜찮네요. 귀신이 되어서도 누군가를 만나고 사귀어야 한다면 싫을 것 같아요. 두 사람이 함께 죽어서 서로 보고 같이 어딘가로 걸어가기도 해요. <세상의 끝>이에요. 혜수는 죽고 싶어했지만 지우는 죽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함께 죽고 말았습니다.
여기에는 단편소설이 여섯편 담겼어요. 이어지는 이야기는 아니어도 사람은 이어져 있기도 하더군요. 그렇다고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예요. <오리배>에서 지영은 죽은 뒤 한강 오리배 선착장 지박령이 되고, 엄마와 동생 희재를 기다려요. 동생은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서 생겼는데, 희재 엄마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아버지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함께 살게 됐어요. 지영은 엄마와 희재가 함께 있어서 다행이다 여기지 않았을까 싶어요.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보고 싶어서 죽은 다음 바로 떠나지 못한 것 같아요.
두번째 이야기 <심야의 질주>에서는 앞에 나온 이야기에서 택시를 운전하던 사람이에요. 그때 택시기사 ‘나’도 죽었어요. 택시 기사와 지영은 서로 보지 못했어요. 시간 차이가 있었던 건지, 귀신이어도 서로 못 보는 건지. 저는 못 보는 쪽일 것 같아요. 택시 기사는 자신이 좋아하던 영화배우 집에 머물러요. 영화배우였던 강산은 혼자 살고 잠만 잤습니다. 한때 강산은 영화배우로 잘 나간 적도 있지만, 불러주는 사람이 없을 때는 영화에 나가면 잘할 거다 했어요. 막상 영화에 나가게 되자 연기를 못하게 돼요. 그 뒤로 강산은 술을 마시고 알코올의존증이 되고 아내는 죽고 딸은 미국으로 떠나버렸어요. 택시 기사는 강산을 부러워하기도 했는데. 그건 강산이 영화제에서 멋지게 나오거나 텔레비전 방송에서 좋은 말을 해서였어요. 배우는 보이는 모습이 다가 아니겠지요. 미국에서 강산 딸과 결혼했다는 남자가 찾아와요. 강산은 누구한테도 말하지 못한 걸 사위한테 해요. 마음을 터놓을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있다면 덜 우울할지도 모르겠네요.
다음 이야기 <세상의 끝>에서 죽은 사람은 택시 기사가 젊을 때 죽게 한 두 사람 같기도 해요. 택시 기사는 술을 마셨는데 다른 사람이 부탁해서 트럭을 몰다가 두 여자를 치고 어딘가에 시체를 숨겼다더군요. 그 뒤 그 사람 삶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죄를 지었으니. 죽은 두 사람은 자신들을 죽인 사람을 원망하지는 않았어요. 혜수가 늘 죽고 싶어한 까닭은 분명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혜수와 지우가 함께여서 다행일지도. 죽음은 혼자만의 것이기는 하겠지만. <아홉번의 생>은 고양이가 아홉번 태어나고 죽는 이야기예요. 고양이는 자기 삶을 다 기억했어요. 대단하지요. 다섯번째 삶에서 고양이는 선인장을 좋아하게 되고 그 뒤에는 선인장을 찾으려고 해요. 아홉번째 삶에서 고양이는 선인장이었던 작은 나무를 다시 만나요. 어쩐지 부럽네요. 만나고 싶어한 상대를 만나서.
나머지 두 편 <영원의 소녀>와 <이 세계의 개발자>에도 죽은 사람이 나옵니다. 죽고 나타나면 귀신이다 하는군요. ‘영원의 소녀’에서 수정은 한때 영원을 증명하겠다고 한 정민과 사귀다 헤어지기를 여러 번 했어요. 수정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정민을 찾아가요. 정민과 정민 아내는 아이를 잃고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정민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려 하자 수정은 뛰어내려 했다가 정민을 막아요. 수정이 막아서는 아니겠지만 정민은 죽지 않아요. 이제 죽어도 상관없다 여기는 사람이 더 미련이 많을지. 여기 나온 사람은 죽고 나서 바로 떠나지 않았네요. 정말 사람이 죽은 다음에 그렇게 될지. 그건 모르겠네요. 죽음 다음을 생각하기보다 지금을 잘 사는 게 나은 것 같기도 합니다.
희선
☆―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는 알게 되었다. 다섯번째 생에서 나를 절망에 빠뜨렸던 그 질문, 나를 사랑하느냐는 그 질문이 사실은 뜻없고 덧없는 덫이었다는 것을.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이란 날마다 함께 있고 싶은 것, 모든 것을 알고 싶은 것, 끊임없이 생각나는 것이다고. 물론 어느 부분에선 옳았지만, 그것들은 사랑이라는 커다란 우주에서 작은 별 하나일 뿐이었다. 별 하나가 없다고 해서 우주가 우주가 아닌 것이 되지 않듯이 사랑도 그랬다. 사랑을 무엇이다 정의해 버리는 순간, 사랑은 순식간에 작아지고 납작해진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가 해야 할 일은 사랑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저 몇천만의 행운이 겹쳐 만들어낸 오늘을 최대한 즐기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 (<아홉번의 생>에서, 204쪽~2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