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잉 홈
문지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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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간 사람 많았던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정치나 가난으로 이곳이 아닌 다른 나라로 간 사람 좀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일은 지금도 있겠다. 지금은 이민보다 공부하러 가는 사람이 더 많을까. 공부하러 갔다가 거기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정착하는 사람 있을지도 모르겠다. 문지혁 소설 《고잉 홈》에는 미국으로 이민 가거나 공부하러 간 사람 이야기가 담겼다. 아예 미국으로 떠난 사람은 많지 않구나. <에어 메이드 바이오그래피>에서는 사위가 이민 1세대인 장인 리호철 이야기를 한다. 사위는 미국 사람인가 보다. 코로나19에 감염된 장인을 아내와 한국으로 만나러 가면서 글을 쓴다. 리호철 딸인 조이는 무척 걱정하는데. 조이는 리호철이 입양했다. 미국 사람이 한국 사람을 입양한 게 아니고 미국에 사는 리호철과 아내가 한국 아이를 입양한 거다. 한국에 오고 격리 기간 두주가 지난 뒤에 리호철은 좀 나아진다. 죽지 않아서 다행이구나.


 이 소설 제목이기도 한 <고잉 홈>에서 구현은 AI 실험에 참가한다.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돌아갈 돈이 모자라서였다. AI 실험은 차에 타고 말만 하면 뉴욕으로 가고 500 달러를 준다고 했다. 현은 500 달러에 차비 11 달러를 안 쓰니 611 달러나 번다고 생각한다. 난 현이 배우가 되려고 미국에 왔다고 했을 때 조금 놀랐다. 그건 정말이었을지. 현이 말한 나이 차이 나는 누나는 실제로는 없었다.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다니. 현은 그걸 연기로 여긴 듯하다. 현이 배우가 되려고 미국에 온 건 정말일지도. AI한테 소설을 쓰게 하려는 사람 정말 있겠지. 벌써 그런 소설 나왔던가. AI로 소설 쓰기. 그 일을 미국에서 한국말로 하게 한다니. 이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유학생 부부 이야기는 <핑크 팰리스 러브>와 <나이트호크스>다. ‘핑크 팰리스 러브’에서 두 사람은 결혼하고 한해가 된 기념으로 팽크 팰리스라 하는 호텔에 간다. 거기에서 두 사람은 저마다 결혼하기 전에 헤어진 애인을 만난다. 두 사람 애인은 다 죽었다. 헤어진 것도 죽은 것도 같다니. 이런 일 있기도 할까. 남자가 헤어진 사람은 남자가 헤어지자고 하자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고 남자한테 자신한테 연락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했다. 그런 뒤 정말 죽었다. 왜 그랬으려나. ‘나’는 그 일을 아주 잊었다. 그때 일을 다르게 기억했다. <나이트호크스>에서는 아내가 손목을 크게 다쳐서 병원에 가는 이야기다. 미국에서 보험 없이 병원에 가려면 돈이 걱정되겠지. 여기에서 ‘나’는 처음엔 아내 말대로 약국으로 가고 다음엔 조금 돈이 덜 들 듯한 병원으로 갔다. 세번째에서야 제대로 된 병원으로 갔다. 그런 마음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구나. 나중에 계산서 받고 제대로 대응하고 병원에 낼 돈이 줄었기를.


 결혼하지 않고 혼자 미국으로 공부하러 간 사람 이야기는 <골드 브라스 세탁소> <뷰잉> <뜰 안의 볕>이다. 혼자 공부하러 가면 마음이 더 불안할지도. 여기 담긴 소설에서 ‘뜰 안의 별’만 한국말 제목이다. ‘골드 브라스 세탁소’와 ‘뷰잉’은 좀 씁쓸하다. 그래도 ‘골드 브라스 세탁소’는 좀 나았다. ‘뜰 안의 볕’은 늘봄이 목회자로 살기에 한국보다 미국이 낫겠다고 여기고 미국으로 왔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여성 목사는 한사람이라도 있던가. 신부는 없다 해도 목사는 조금 있을 것 같은데 어떨지. ‘뜰 안의 볕’은 마지막엔 따듯하다. 서로 다른 사람이 잠시나마 마음을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제목 덕분일까. 늘봄은 아버지가 지은 자기 이름이 웰워이스 스프링(늘 봄)보다 이터널 스프링(영원한 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한국이나 일본에는 식구가 다 함께 죽으려고 하는 일 있다는 거 아는데, 그런 일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가 보다. <크리스마스 캐러셀>에 나온 고모 부부가 입양한 아이 에밀리는 식구들이 함께 죽으려고 했단다. 그때 에밀리는 죽지 않았다. 부모가 에밀리를 버렸다고 말했다. 에밀리가 홀로 남은 곳은 디즈니월드였다. ‘나’는 아버지가 두번째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에 사는 고모 집에 오고 에밀리가 태어난 날과 크리스마스가 다가와서 모두 디즈니월드에 가기로 한다. 에밀리는 고모 부부가 입양한 아이니 ‘나’와 사촌이지만,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에밀리는 ‘나’를 삼촌이라 한다. 미국도 촌수 정확하게 따지지 않는구나. 일본은 이모나 삼촌을 언니, 누나나 형, 오빠다 하기도 한다. 촌수는 제대로 따져야지. 이렇게 생각하는 나 딱딱한가.


 에밀리는 몇해 전부터 디즈니월드에 가고 싶어했다. 에밀리가 그렇게 거기 가고 싶어한 건 다시 혼자가 되어 보고 싶어서였다. 에밀리는 어린데 생각이 깊었다. 에밀리는 가짜 엄마(낳은 엄마)가 자신을 버린 게 아니고 살려준 거다 생각했다. 에밀리는 자신을 입양한 엄마를 진짜 엄마다 했다. 에밀리는 부모가 자신과 죽으려고 했던 걸 알았던가 보다. ‘나’는 에밀리 말을 듣고 한국에 가면 아주머니라고 하던 새어머니를 엄마라 해야겠다 한다. ‘나’는 자신이 중학생 때 엄마가 죽어서 슬펐겠지. 아버지가 두번째로 결혼한 사람은 좋은 사람이지만 바로 엄마라 할 수 없었다. ‘나’가 에밀리를 만난 건 잘된 일이구나.


 마지막 소설 <우리들의 파이널 컷>은 영상 편집 프로그램 파이널 컷이면서 이 말 뜻 그대로인 우리들의 파이널(마지막) 컷이기도 하겠다. 이런 말밖에 못하다니. 여기에서는 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한 아버지 마음을 알게 된다. 그게 가장 기억에 남는구나. 잘 몰라도 아버지는 미국에 사는 아이들한테 전화하고 싶어서 전화 카드를 모았겠지. 더 모를 말을.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지만,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미국에서 사는 건 더 힘들겠다. 예전에 한국 사람은 미국에서 세탁소를 많이 했다고 한 듯하다. 지금은 여러 일을 할지도 모르겠다.




희선





☆―


 종합병원 응급실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두 군데였다. 해켄색 대학 메디컬 센터, 그리고 홀리 네임 메디컬 센터. 이제 고민은 어디로 가야 조금 더 저렴하게 치료받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긴급 상황과 병원비, 응급실에 대해서는 이미 너무 많은 괴담을 들어버렸다. 앰뷸런스 부르는 순간 만 달러야. 입원 몇 달 하면 수십만 달러짜리 빌이 날아와서 집안이 망한다던데? 미국 사람도 돈 없으면 집에서 스스로 상처 꿰맨다잖아.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늘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은 루머들이 ‘친구의 친구’ 이야기로 둔갑해 사실인 양 떠돌았다.  (<나이트호크스>에서, 202쪽)



 “정말 좋은 사람이란 건 없어요. 그냥 애써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거지.”  (<뜰 안의 볕)에서, 2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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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5-07-10 1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엔 챗gpt 등 AI 쓰는 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소설 속에서도 인공지능 설정이 등장하는 것 같네요. 점점 빠른 속도로 새로운 것들이 자리를 잡는 것 같습니다.
희선님, 더운 날씨 조심하시고, 시원한 하루 보내세요.^^

희선 2025-07-11 05:35   좋아요 1 | URL
요새 인공지능 쓰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고 하더군요 소설뿐 아니라 그림 음악이나 영화도 만들다니... 사람이 할 게 없어지는 걸지, 꼭 그런 건 아니겠지요 사람이 해서 괜찮은 것도 있겠습니다 그래야 할 텐데...

날이 거의 샜는데 바람이 시원하더군요 서니데이 님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오늘도 꿈사탕 가게 길벗스쿨 그림책 22
콘도우 아키 지음, 황진희 옮김 / 길벗스쿨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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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책 《오늘도 꿈사탕 가게》는 꿈사탕 가게 그림책 첫번째야. 몇달 전에 만난 건 두번째였지. 처음부터 보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두번째를 먼저 만났어. 그것도 괜찮지. 꿈을 사탕으로 만들다니 좋은 것 같아. 꿈을 파는 사람도 있고 꿈을 사는 사람도 있겠지. 자신이 판 꿈을 살 수도 있을까. 그럴 수 있을 것 같기도 해. 난 꿈을 팔고 싶어도 좋은 꿈을 안 꿔서 팔기 어려울지도.


 꿈사탕 가게를 하는 건 펭펭이야. 펭펭은 할아버지한테서 가게를 물려받았나 봐. 펭펭과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와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언젠가 나올까. 그건 이 책을 보는 사람이 상상하는 게 좋으려나. 펭펭은 꿈사탕 가게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대. 그랬군, 몰랐어. 펭펭이 왜 꿈사탕 가게를 좋아하지 않느냐면, 늦은 밤에 꿈을 파는 사람 집에 가야 해서였어. 펭펭은 어두운 걸 무섭게 여겼어. 펭펭은 모구모구와 함께 가. 그래도 조금 무섭겠지. 마침 손님이 무서운 꿈을 꾸면 더 무서울지도.


 예쁘고 멋진 꿈도 있지만, 꿈사탕 가게에는 무서운 꿈도 있어. 그걸 사는 손님(닭)도 있었어. 이 꿈사탕 가게에는 사람도 가고 동물도 가는 듯해. 이 그림책속 세상은 동물과 사람이 어울려 사는가 봐. 그림을 보고 이런 것도 생각할 수 있군. 늘 잘 보는 건 아니야. 그림책 여전히 잘 못 봐. 무서운 꿈은 값을 싸게 해주더군.


 펭펭은 꿈을 팔겠다고 하는 사람한테서 전화를 받았어. 한해에 한번만 꿈사탕 가게에 꿈을 팔 수 있대. 꿈을 자주 파는 것보다 한해에 한번 파는 게 더 좋군. 언제 어떤 꿈을 꿀지 몰라서 언제 꿈을 팔면 좋을지 모를 것 같아. 어떤 꿈은 여러 번 꾸기도 하던가. 펭펭은 밤에 모구모구와 함께 꿈을 판다고 한 손님 집에 찾아가. 손님이 잠을 자면 꿈이 보여. 그걸 모구모구가 먹어. 지난번에도 말했겠지만, 모구모구는 꿈을 먹는 전설의 동물 맥이야.


 그날 밤 손님이 꾼 꿈은 여러 가지였어. 빵을 많이 만드는 꿈과 밤하늘 별을 보는 꿈과 비눗방울을 타고 나는 꿈이었어. 그다음 꿈은 손님이 다른 사람과 꽃밭에서 시간을 보내는 거였는데, 그건 모구모구가 먹지 못했어. 나이가 많이 들어서 모구모구는 꿈을 많이 먹지 못한대. 모구모구가 먹은 꿈은 꿈사탕이 됐어. 난 마지막 그 꿈 중요할 것 같았는데.


 다음 날 손님이 꿈사탕 가게에 와서 사진을 보여주고 자신이 그 사람이 나온 꿈을 꾸지 않았느냐고 물어봤어. 펭펭은 그 꿈은 사탕으로 만들지 못했다면서 미안하게 생각했어. 사진속 사람은 손님 아내로 먼저 세상을 떠났어. 펭펭은 그 꿈은 꿈사탕으로 만들지 못했지만, 꿈을 떠올리고 그림을 그렸어. 아주 잘 그리지는 못했지만, 손님과 아내가 함께 있는 모습이었어. 손님은 그 그림을 보고 기뻐했어. 펭펭은 마음이 따듯하군.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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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복이 이야기 4
공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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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시대 고양이는 어떻게 살았을까. 알 수 없구나. 그때는 집고양이는 거의 없고 들고양이가 많았을 것 같다. 사람 집에 살아도 자유롭게 드나들지 않았을까. 고양이한테는 그게 더 좋을지도. 지금 고양이는 집에 살다 밖으로 나오면 살아가기 힘들 거다. 고양이를 잃어버리고 찾으려는 사람도 있겠지만, 일부러 집에서 먼 곳에 버리는 사람 있을지도. 이런 거 생각하니 슬프구나. 고양이가 안됐다. 개와 고양이 다. 새끼일 때는 귀엽게 여겨도 자라면 무서워하다니. 의균 집에 찾아오는 묘왕이가 그랬구나. 묘왕이 이야기는 다른 권에 따로 잠깐 나왔다.


 밤이 되고 사람이 된 금복이는 복성이를 만나러 갔다. 복성이는 이끼인가 보다. 털인지 알았는데. 복성이는 현실에는 없는 생물이구나. 금복이 친구고. 복성이는 의균한테 준 꽃을 또 찾고 꽃이 추울까 봐 자기 이끼를 떼어내서 따듯하게 해줬다. 금복이는 그걸 보고 의균이 사준 옷을 주고 그걸로 꽃을 덮으라고 한다. 둘은 좋은 친구 사이구나. 날이 샐쯤 금복이는 담을 넘어 집으로 들어왔다. 그걸 의균 동생 하균이 보았다. 아이가 간 곳이 형 방인 걸 알고 가 보니 거기엔 아이가 아닌 고양이 금복이가 있었다.


 하균은 금복이를 보고 의심했다. 금복이가 사람으로 바뀐다고. 괴물로 여겼다고 할까. 의균은 가벼운 고뿔이고, 의균이 나갈 때 금복이도 문 밖으로 나갔다. 금복이는 문앞에서 의균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날 밤 금복이 몸이 좀 안 좋아서 사람이 되고도 밖으로 나가지 않고 의균 옆에서 잤다. 이튿날 의균 고뿔이 심해졌다. 그날 밤 하균이 의균 방에 오고 금복이가 사람이 되는 걸 보게 된다. 그렇게 들키다니. 금복이는 울면서 집을 뛰쳐나갔다. 하균은 의균이 금복이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금복이가 사람이 된다는 걸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 않겠다고 한다.


 사람이 된 걸 하균한테 들켜서 금복이는 이제 의균과 못 살겠다고 여겼는데, 그렇게 되지 않아 다행이구나. 한번은 사람이 되고 하균 방에서 밤을 보낸다. 하루뿐이었다. 전에 의균이 대장간에서 만들어 달라고 한 솟대를 가지고 왔다. 거기에는 금복(金福)이란 이름을 새겨 넣었다. 그걸 본 의균은 대장간 사람한테 이름을 물어본다. 산호라 했다. 금복이는 솟대 좋아했다. 거기에 올라가고 놀면 좋을 텐데. 어쩌다가 아버지가 아끼는 도자기를 깨고 의균이 공부하는 거 방해하고 먹물을 다 쏟고 방을 엉망으로 만들어뒀을까. 사람이 된 금복이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다 하면서 울었다. 그러다 의균과 마주쳤다. 의균도 하균이 한 말을 듣고 아이가 금복이가 아닐까 생각하는 듯했다.


 어디선가 새끼 고양이가 왔다. 어디에서 온 건지. 금복이와 조금 친해진 느낌이다. 하균이 부인도 이 집(시집이구나)에 오고 의균을 만나러 와서는 새끼 고양이와 금복이를 보게 된다. 금복이와 새끼 고양이가 방에서 놀 때 사람들이 들어온 거다. 그 새끼 고양이는 하균이 부인이 데리고 갔던가 보다. 앞으로 하균도 고양이와 살지도. 집으로 데리고 갈 것 같다. 겨울이고 눈이 와서 사람이 된 금복이는 추웠다. 사람이 되면 밖으로 나오니. 그런 금복이를 묘왕이 따듯한 곳으로 데리고 갔다. 묘왕이는 좋은 친구구나. 이튿날 금복이는 의균이 자기한테 준 생선을 묘왕이한테 갖다줬다. 귀엽구나.


 감 농사하는 사람 닭을 어떤 짐승이 다 죽였다. 그건 의균 아버지가 다 샀다. 부자구나. 자신이 가진 걸 잘 쓰는 사람이다. 그날 일하는 사람뿐 아니라 고양이도 맛있는 닭고기를 먹었다. 모두가 배부르고 즐거운 날이었다. 사람도 고양이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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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3
이희영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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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자기 얼굴만 못 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일이 있다면 답답할지, 얼굴에 덜 마음 쓸지. 《페이스》에서 인시울은 자기 얼굴을 보지 못했다. 시울이 거울을 보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시울이는 여섯살 쯤까지 모두 그렇다고 여겼다. 다른 사람은 자기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조금 충격 받았다. 아빠나 엄마 어느 한쪽하고만 살던 아이가 다른 집은 엄마 아빠가 다 있는 걸 본 것과 비슷하려나. 아니 좀 다른가. 남과 이야기하지 않으면 남도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정말 그럴까. 난 어릴 때 그러지 않은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르다는 걸 알았던 것 같기도 한데. 어저면 이건 좀 더 자랐을 때 생각한 걸지도.


 사람은 자기 자신을 제대로 못 보기도 한다. 남이 보는 자신과 자신이 보는 자신이 조금 다르기도 하지 않나. 시울이는 자신을 아예 못 보니 다른 걸 잘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라미는 늘 자기 이가 비뚤어져서 교정해야 한다고 하지만, 시울이가 보기에 라미는 괜찮다. 라미는 사진을 찍을 때와 다르게 활짝 웃기도 한다. 그 모습을 라미 자신은 제대로 못 본다. 보려고 하지 않던가. 거울로 보는 자신이 진짜 자신이다 할 수 있을까. 거울 속 자기 모습은 좌우가 바뀐 거 아닌가. 그걸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는구나. 자신을 남이 보는 것처럼 보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어릴 때 시울이는 자기 얼굴이 안 보인다고 했다가 여러 병원에 가기도 한다. 엄마와 아빠가 걱정하는 걸 보고 시울이는 자기 얼굴이 보이게 됐다고 거짓말한다. 어느덧 시울이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시울이가 거울을 보면 거기엔 얼굴이 아닌 다른 게 보인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어도 그게 안 보인다니 별난 일이 다 있다. 시울이는 가끔 엄마한테 자기 얼굴이 어떤지 묻는다. 그때마다 엄마는 예쁘다고 말한다. 사람 얼굴을 나타내는 말은 그리 많지 않구나. 자기 얼굴이 어떤지 설명하라고 하면 말하기 어려울 듯하다.


 시울이가 이마를 다치게 된다. 같은 반 아이 묵재가 바닥에 튕긴 공이 시울이 옆얼굴을 치고, 시울이는 사물함 모서리에 이마를 찧었다. 묵재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사고였다. 시울이는 이마를 다치고 지금까지 얼굴을 다친 적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이마가 많이 찢어졌는지 스무 바늘이나 꿰맸다. 엄마와 라미는 흉터가 생기면 어쩌나 걱정하고 묵재도 흉터를 자신이 없애주겠다고 한다. 실밥을 빼고 거울을 보니 꿰맸던 자국이 보였다. 다른 곳은 여전히 안 보였는데 꿰맸던 자리는 잘 보였다. 시울이는 이제야 자기 얼굴을 본 듯 기뻐했다. 미술시간에 시울이는 얼굴은 파랗게 칠하고 흉터를 그렸다. 자화상을 그려야 해서다. 다른 사람은 믿지 않겠지만, 그게 시울이가 보는 자기 모습인데 묵재는 시울이가 흉터를 마음 쓴다고 여겼다.


 얼굴 전체가 아니고 아주 조금이라도 보이면 기쁠까. 그런 일이 없어서 시울이 마음을 다 알기는 어렵다. 시울이가 흉터만 보는 건 자기 상처와 마주하는 거다 하는데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까지 묵재는 자기 상처와 마주하지 못했는데 시울이를 알게 되고 이야기하다가 엄마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는 아무한테도 못했던 거다. 어떤 건 누군가한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조금 나아지기도 하겠지. 시울이와 묵재는 같은 반이어도 말을 나누지 않았는데, 사고를 기회로 서로 이야기하게 됐구나. 우연히 그렇게 됐다 해도 그런 우연이 일어나서 다행이다. 시울이는 다쳐서 아팠지만, 그걸로 자기 얼굴에서 아주 조금을 보게 됐구나. 사람은 서로한테 영향을 주고받겠지. 자신이 보지 못하는 걸 상대가 보고 말해주기도 하겠다. 묵재가 웃는 게 묵재 아빠와 닮았다는 것도.




희선





☆―


 나는 내 얼굴을 볼 수 없다. 하지만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늘 다채롭다. 안개에 싸여 있거나, 검게 물들어 있거나, 이상한 꽃이 활짝 피거나, 동그라미가 가득 차 있거나, 색색의 블록인 적도 있었다. 이렇게 기묘한 삶을 살다 보니 아침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 됐다. 그런데 날마다 보는 엄마의 얼굴은 늘 똑같다. 아니, 똑같다고 믿었다. 그런데 거울 속 내 모습처럼 엄마도 날마다 조금씩 바뀌어갔다. 조금씩 세월에 물들어갔다. 익숙함이란 안개가 가려서 나는 그걸 보지 못했다. 애써 못 본 척했다.  (73쪽)



 정말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게 인생이구나. 삶이란 결국 짙은 안갯속을 걸어가는 것이다. 한 발 그 너머에 뭐가 있는지 전혀 안 보이니까. 깊은 구덩이가 나올 수도, 커다란 벽에 가로막힐 수도 있다. 그런데도 모두 거침없이 보이지 않는 길을 잘도 걸어간다.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용기가 있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98쪽)



 “나는 인간이 스스로를 정확히 보는 게 뜻밖에 힘들다고 생각해. 그런데 어떤 사건이나 기회로 비로소 보일 때가 있어. 그것이 더 나은 부분일 수도 있지만, 애써 감추려 했던 아픔이 수면으로 올라올 수도 있어. 누군가한텐 상처가 될 수도 있다고. 뻔한 말이지만 어쨌든 흉터는 그 고통의 시간을 지나왔다는 상징이니까, 굳이 감춰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  (1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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侍 (新潮文庫) (文庫)
엔도 슈사쿠 / 新潮社 / 198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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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

엔도 슈사쿠






 한동안 책을 읽지 못하다 읽기로 한 책이 바로 엔도 슈사쿠 소설 《侍 사무라이》다. 한국말로 나왔지만, 일본말로 읽어 보고 싶어서 예전에 사두고 이제야 만났다. 이 책을 느리게 보면서, 한동안 책을 안 봤으니 좀 편하게 볼 책을 골랐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책 한권을 열흘 넘게 보다니. 하루에 한시간 본 날이 많아서 그렇다. 일본말로 보면 더 느린데 하루에 겨우 한시간만 보다니. 언제 다 보려나 하면서 조금씩 읽었는데, 끝이 났다. 다행이다. (이 책을 보고 시간이 좀 지났다. 지금은 책을 그런대로 본다.)


 이 소설 《사무라이》는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썼단다. 1600년대에 무사와 상인이 멕시코와 무역을 하려고 스페인 왕한테 허락을 받으러 배를 타고 멕시코로 갔다. 소설에는 그렇게 나왔는데 자세한 건 모른다고 한다. 여기 나온 무사 하세쿠라 로쿠에몬은 일기를 썼는데, 그 일기는 남아 있지 않단다. 참 아까운 자료가 아닐 수 없다. 남의 나라 일이기는 하지만. 조선도 천주교를 박해한 적이 있다. 집안 식구가 천주교도로 귀양간 사람도 있다(정약용). 조선시대에 천주교에 관심을 가진 건 서양 학문에 관심을 가진 게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때 조선에도 죽은 사람 많겠다.


 조선에서는 천주교다 했는데 일본에서는 기리스탄이다 했다. 그리스도교, 기독교, 카톨릭이라는 말도 썼다. 일본은 나라에서 기리스탄을 금지하고 신부나 신도를 나라에서 쫓아내고 죽이기도 했는데, 일본에서 그리스도교를 널리 알리려는 신부가 있었다. 그 한사람만 그런 건 아니지만, 벨라스코는 야망이 있었다. 그리스도를 모르는 나라에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고 싶어했다. 벨라스코는 통역사로 일본에 오고 선교사로 활동했는데, 감옥에 갇힌다. 다시 통역사로 기회가 온다. 멕시코와 무역을 자유롭게 하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벨라스코한테 통역을 맡긴다. 그곳 영주는 다테 마사무네였던 것 같은데, 멕시코와 무역하기를 바란 건 다테 마사무네였을지, 그 밑에 사람이 생각한 건지. 벨라스코는 자신이 통역을 하면 스페인 왕뿐 아니라 교황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벨라스코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가 했는데, 벨라스코 집안 사람이 대단하기는 했다. 벨라스코 자신도 조상을 생각하고 일본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거다. 벨라스코는 일본에서 자신이 주교가 되기를 바랐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그런 꿈을 꿨구나.


 척박한 산골에서 살던 하세쿠라 로쿠에몬은 어느 날 예전 땅을 돌려줄 수도 있다면서 일본 사절로 멕시코에 갔다오라는 명령을 받는다. 하세쿠라와 세 사람 그리고 상인과 하인은 배를 타고 떠난다. 하세쿠라는 쓰키노우라에서 배가 떠나는 날 자기 운명이 바뀌리라는 걸 깨닫는다. 하세쿠라는 예전에 일구던 기름진 땅보다 지금 사는 산골이 더 좋았다. 하지만 돌아가신 아버지나 작은아버지는 예전 땅을 되찾기를 바랐다. 이번 일을 잘 해낸다고 해서 예전 땅을 돌려받을지 그건 모른다. 다른 무사도 그런 말을 듣고 한번도 가 보지 못한 나라에 가게 됐다. 무사 네 사람에서 다나카는 자신들을 버리는 돌이다 말했다.


 1600년대에 배를 타고 다른 나라에 가는 일은 쉽지 않았을 거다. 폭풍우를 만나기도 했지만, 멕시코에 도착한다. 하지만 바로 뭔가 잘 되지는 않았다. 스페인에 가야 했다. 벨라스코 혼자 갈 것 같았는데, 무사한테도 같이 가자고 한다. 스페인에 갔다 해도 바로 왕을 만나지도 못했다. 벨라스코가 베드로회에서 안 좋은 말을 들어서. 일본에서 정말 포교활동을 할 수 있나 없나를 따지려 했다. 무사는 맡은 일을 해내는 데 도움이 된다면 기리시탄이 되고 세례를 받겠다고 한다. 하세쿠라는 일이어도 그러지 않으려 했는데, 두 사람이 세례를 받겠다고 해서 하세쿠라도 따른다. 그 뒤에는 잠시 좋아 보였는데, 일본에서 기리스탄을 금지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예전보다 더 심해졌다.


 벨라스코와 무사가 일본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게 됐는데, 어느새 한해 반이 지났다. 다나카는 자신들이 한 일이 아무 소용없다는 걸 알게 되고 한탄했다. 일본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나카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하세쿠라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지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보고 마음을 쓴다. 왜 사람들이 추하고 마른 그 사람을 따르는지 신기하게 여겼다. 맡은 일 때문에 세례를 받았지만 예수를 믿지 않는다 했다. 여러 해가 지나고 하세쿠라와 니시와 하인은 겨우 일본으로 돌아온다. 위에서는 하세쿠라와 니시한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여기라 했다. 그런 말 들으면 지금까지 자신이 한 게 뭔가 싶은 생각이 들 것 같다. 니시는 젊어서 스페인말에 관심을 갖고 배우고 스페인에 남아 다른 것도 배우고 싶어했는데.


 하세쿠라는 일본으로 돌아오고 나름대로 예수가 뭔지 생각한다. 언제나 곁에 있어주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늘 함께 한 요조는 기리시탄이기도 했다. 벨라스코는 마닐라에서 지내다 일본을 잊지 못하고 돌아오고 잡힌다. 벨라스코는 이제 야망을 가졌던 때와 많이 달라졌다. 이제야. 벨라스코가 일본으로 돌아온 일로 하세쿠라와 니시도 죽게 된다. 벨라스코는 하세쿠라와 니시가 기리스탄이었다는 말을 듣고 웃었지만, 난 벨라스코 때문에 두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있겠지만, 정치에 휘말려 죽임 당한 거다. 니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하세쿠라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때 조금 슬펐다. 요조는 하세쿠라한테 그분이 함께 할 거다 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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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2 21: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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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6 17: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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