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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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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2023년 프랑스 콩쿠르 상 수상작을 읽었단다. 아빠가 콩쿠르 수상작을
가끔 읽는데, 최근 수상작들은 작품성뿐만 아니라 재미도 함께 담고 있는 것 같구나. 그래서 이번 책도 인터넷 서점에서 보고 망설임 없이 샀단다. 책
제목은 <그녀를 지키다> 지은이는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물론 처음 들어보는 작가란다. 작가 소개를 보니 소설가이면서 영화감독으로도
성공한 사람이라고 했어. 책이 생각보다 두껍더구나. 600페이지가
넘어서 지루하면 끝까지 읽기 힘들 텐데, 하는 걱정을 했는데, 역시 이번 콩쿠르 수상작도 최근 트렌드를 따라 가는 것 같았어. 작품성과 재미, 두 마리를 다 잡은 듯했어. 어떤 조각가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역사 소설의 성격을 띠면서, 시대의 관습을 이겨내려는 한 여자의 이야기까지 담고 있었어. 책
두께가 괜히 두꺼운 것이 아니었구나. 책 두께가 두껍다 보니 할 이야기도 많고 바로 시작하자.
1.
주인공의 이름은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 프랑스 사람이란다. 아버지가 석공이셨는데, 아들도 훌륭한 조각가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름을 미켈란젤로라고 지어주셨어.
그런데 안타깝게도 미켈란젤로에게는 왜소증이 있었어. 미켈란젤로의 아버지는 세계 1차 세계대전 참전했다가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단다. 미켈란젤로의 어머니는
아들의 조각 공부를 위해 아들을 이탈리아에 있는 삼촌 알베르토에게 보냈단다. 알베트토도 조각을 하고
있었거든.
삼촌 알베르토는 이탈리아 피에트라달바
지역에 살고 있었단다. 알베르토는 조카를 처음 봤는데, 조카가
왜소증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그런 조카를 썩 좋아하지는 않았단다. 미켈란젤로는 알베트로의 도제로 일하면서 조각을 배우기 시작했단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싫어해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미모’라고 불러
달라고 했단다. 아빠도 이제부터 미모라고 할게.
삼촌 알베르토는 술주정이 심해서
술에 취하고 나면 미모를 때리고 그랬어. 알베르토의 도제는 미모뿐만 아니라 별항, 엠마누엘레 쌍둥이도 있었단다. 미모는 그들과 친하게 지냈단다. 어느날 심한 폭우가 쏟아졌는데, 그 폭우로 인해 오르시니 후작의
저택에 있는 조각상이 파손되어 수리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단다. 미모도 삼촌을 따라 그 저택에 갔는데, 그곳에서 13살 동갑내기 비올라를 우연히 만났단다. 조각가의 도제와 후작의 딸은 신분 차이가 있어 대놓고 만날 수 없는 사이였지.
그들은 그 이후 가끔씩 묘지에서 몰래 만나며 우정을 쌓아갔단다. 어쩌면 사랑일수도…
비올라는 미모에게 책을 빌려주었고, 미모는 그 책을 열심히 읽었단다. 비올라에게는 꿈이 있었어. 공부를 많이, 열심히 하는 것과 하늘을 나는 것이라고 했어. 그래서 비올라는 책도 많이 읽어서 아는 것도 많았어. 비올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날개를 보완하면 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 그러면서 비올라는 미모에게 하늘을 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단다. 그런데, 비올라가 미모에게 빌려준 책을
후작에게 걸렸어. 후작은 당연히 미모가 훔친 것이라고 생각했어. 미모도
그 책을 비올라가 빌려 준 것이라고 말할 수 없었지. 결국 미모는 마을 사람들 앞에서 매질을 당하는
벌을 받았단다.
이 일을 주관한 것은 후작의
아들이자 비올라의 오빠 스테파노였단다. 천사 같은 소녀와 악마 같은 오빠..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 비올라에게는 오빠가 세 명 있는데, 첫째 오빠는 전쟁에 참전했다가 죽었고, 둘째 오빠가 스테파노이고, 셋째 오빠는 좀 이따가 등장한단다.
….
1918년 전쟁이 끝나고,
1919년 유럽에는 사회주의 물결이 들이닥쳤단다. 노동자들의 폭동이 일어나서 오르시니 가문도
표적이 되어, 노동자들이 오르시니의 농장에 불을 냈어. 스테파노는
스라드리스타라고 부르는 파시스트 행동대원들을 알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강제 진압을 했고, 여덟 명이 죽고 말았단다. 이렇게 시대가 흉흉한 시절이었단다.
2.
시대가 흉흉했지만, 비올라는 꿈을 위해 정진했단다. 미모, 별항, 엠마누엘레가 날개 제작에 도움을 주었어. 하지만 그들의 첫 번째 비행은 실패하고 말았단다. 1920년 11월 22일. 비올라의
생일을 앞두고, 비올라는 미모에게 비밀을 하나 이야기해주었어. 집
근처 숲의 동굴 속에서 몰래 곰을 키운다는 거야. 어렸을 때 새끼곰을 알게 되어 키웠는데, 지금은 그 곰이 무척 커졌다고 했어. 미모에게도 소개해주었는데, 그 곰의 이름은 비얀카이고 비올라를 아주 잘 따랐단다. 미모는 비올라의
생일 기념으로 곰 조각상을 만들어 주었어. 그런데 그 조각상이 정말 훌륭했단다. 열여섯 살짜리가 만들었다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후작이 그 곰
조각상을 보고 극찬을 할 정도였어. 그래서 미모는 비올라의 16번째
생일 잔치에 초대받게 되었단다.
앞서 이야기한 셋째 오빠 프란체스코가
미모를 찾아왔어. 프란체스코는 수도사 지망생이었어. 프란체스코는
미모에게 잘 대해주었고, 그들은 그 이후로 오랜 시간 우정을 쌓게 된단다. 비올라의 16번째 생일 잔치. 후작은
그날 중대 발표를 했단다. 비올라의 약혼 발표로 6개월 뒤에
약혼을 한다고 했어. 미모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지만, 비올라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이었어. 당시 이탈리아에서 여자에게 결혼은 모든 경력의 단절을 의미했고, 집에서만 지내며 사교 활동이나 하는 그런 일이었어. 하지만 비올라에게
위대한 꿈이 있었잖니. 그녀는 자신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지붕 위에 올라가 새로 만든 날개를 달고 날아
올랐단다. 생일 파트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어. 비올라는
잘 날아가다가 회오리 바람을 만나 30미터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어.
…
한편 삼촌 알베르토는 미모를
피렌체의 필리포 메티 공방으로 보냈단다. 미모는 비올라의 소식도 궁금했고, 비올라와 멀리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았지만, 삼촌의 말을 거역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피렌체 메티의 공방에 오게 되었어. 미모는 메티의 공방에서 조각을 하고 싶었지만, 두오모 성당 보수 작업만 해야 했어.
…
뒤늦게 비올라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단다. 비올라는 3주만에 코마 상태에서 깨어났지만, 다시는 걷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어. 여기저기 골절상이 많아서 여전히
병원에서 지낸다고 했어. 미모는 계속 편지를 보냈으나 답장이 오지는 않았어. 한참 뒤에야 편지가 왔는데, 더 이상 편지를 보내지 말라는 가슴
아픈 편지였단다. 미모는 깊은 상심에 빠졌고, 모든 것을
그만두고 떠나고 싶은 생각을 실천에 옮겼어. 메티의 공방을 그만두고 방황했어.
그러다가 비차로 서커스단에 들어갔단다. 비차로, 사라, 미모
이렇게 셋이 함께 다녔어. 앞서 이야기했듯이 왜소증인 미모는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서커스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을 거야. 그런데 그들은 패싸움에 휘말려 비차로가 몇 달 동안 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서커스 영업도 중단되었단다. 그러던 중 비올라의 오빠
프란체스코가 바티칸 성당 소속의 신부가 되어 찾아왔어. 미모를 조각가로 채용하고 싶다면서 말이야. 그의 제안은 파격적이었어. 오르시니 가문의 소속으로 있으면서 바티칸의
일도 하는 것이라 했어. 미모를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어. 많은
돈도 좋았지만 그보다 비올라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지.
2년 만에 피에르타달바에 돌아왔어. 삼촌 알베르토는 남쪽으로 이사 가고, 그가 쓰던 공방은 미모가 사용할
수 있었는데, 미모는 결혼한 친구 별항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헛간에서 지내겠다고 했단다.
…
오르시니 가문의 초대를 받아
갔어. 비올라는 많이 회복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비올라는
미모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단다. 비올라는 어렸을 때 미모와 소통했던 나무 그루터기에 그들이 몰래
만나 우정을 쌓았던 묘지에서 만나자는 편지를 남겼지만, 미모는 일 때문에, 아니 일 핑계를 대고 로마로 떠났단다. 미모의 큰 잘못이었지.
…
이후 미모는 조각가로 크게 성공하게
된단다. 프란체스코와 우정은 더 도타워지고, 오르시니 가문과
잘 지내게 되었지만, 비올라는 여전히 볼 수 없었단다. 그러다가
비올라의 결혼 소식을 들었어. 가문의 명성에 걸맞는 유능한 변호사라고 했어. 미모의 가슴은 무너지는 듯했지.
….
3.
다시 과거로 돌아가보자. 1918년 6월 24일. 그들은 10년 후 묘지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단다. 그리고 10년이 흘러 1928년 6월 24일. 미모는 그
약속을 잊지 않고 묘지로 갔는데, 비올라도 그 약속을 잊지 않고 나왔단다. 오랜만에 마주한 그들은 짧게 안부 인사만 전하고, 이젠 친구로 다시
만나게 되었단다. 비올라는 이제 결혼을 하였으니…. 비올라의
남편 캄파나는 밀라노, 미국 등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주말에만 온다고 했어.
비올라는 임신이 안 되어 병원에게
치료 받았지만 계속 실패했어. 그렇게 되자 캄피나는 바람을 피웠고, 비올라에게
폭행까지 가했단다. 비올라와 캄파나 사이는 점점 안 좋아졌고, 비올라는
미국에 보내달라고 폭발하듯 이야기를 했어. 캄파나는 미국에 보내주겠다고 했단다. 얼마 후 캄파나는 비올라를 영화 스튜디오를 데리고 왔단다. 그곳은
미국처럼 꾸며 놓았는데, 캄파나가 이야기하기를 이곳이나 미국이나 똑같다고 이야기를 했단다.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건지, 일부러 약 올리려고 그런지… 비올라는 크게 분노했단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미모는 비올라에게
함께 미국에 가자고 해서 길을 떠났단다. 그런데 프란체스코가 이를 말리며 미모와 중재하여 비올라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단다. 비올라는 미모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하였고 그 이후 미모도 멀리하게 되었단다.
…
어떤 날은 비올라가 사라졌어. 며칠 동안 식구들이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어. 미모는 그들만의
장소인 묘지에 가보았지만 그곳에도 없었어. 혹시나 하고 미모는 비올라의 곰 비얀카가 살고 있는 동굴에
가보니, 그곳에 있었단다. 비얀카가 죽어서 동굴에게 그를
추모하고 있었던 거야. 그 때 미모와 비올라는 다시 화해를 했단다. 캄파나와
비올라 사이는 더욱 안 좋아졌어. 캄파나는 가족들 앞에서 대놓고 비올라를 비판했어. 그리고 비올라의 사적인 것도 폭로했단다. 비올라가 그렇게 말렸는데도
말이야.
사실 비올라는 시(詩)를 쓰고 있었는데, 비밀로
해달라고 했거든. 그런데 그것을 까발린 거야. 홧김에 비올라는
나이프로 캄파나의 어깨를 찌르고 말았단다. 진작에 이혼을 했어야 했는데, 당시 아마 당시 유럽도 이혼은 못하는 분위기였던 가봐. 하지만 이런
폭행 사건까지 가족들 앞에서 벌어졌으니, 더 이상 어쩔 수 없었어. 프란체스코가
나서서 이혼을 제안했어. 그런데 캄파나는 반대를 했단다. 캄파나는
오르시니 가문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야. 캄파나가 이혼을 반대하자, 프란체스코는
혼인 자체를 무효로 하자고 했는데, 캄파나는 또 반대를 했어. 그러자
프란체스코는 캄파나가 저지른 강간 사건까지 이야기하면서 혼인을 무효 시켰단다. 프란체스코는 캄파나의
강간 사건까지 알면서 동생과 함께 살게 그냥 두었던 거야. 점점 비호감이네.
….
미모는 점점 자신의 실력을 인정
받아서 1942년에는 이탈리아 왕립 아카데미 정회원 자격을 받게 되었어. 그런데 정회원의 자격을 인정받는 행사에서 미모는 파시스트를 비판하는 연설을 했어. 그 일로 그는 아카데미 회원 자격 박탈당하고 체포까지 되었단다. 그가
갑자기 이렇게 파시스트를 비판한 것은 얼마 전의 일 때문이었어. 얼마 전에 서커스를 함께 했던 비차로가
찾아왔는데, 사라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수용소에 갇혔다는 거야. 미모에게
도와달라고 비차로가 찾아왔고, 미모는 인맥을 써서 사라를 풀어주었단다.
이 일을 경험하고 미모는 파시스트를 비판한 것이란다. 파시스트를 비판한 연설 이후 그의
작품 대부분이 파괴되었어. 그의 대표작 중에 하나인 피에타 상만 사크라 수도원에 옮겨서 지하 창고에
보관하였어.
…
4.
또 세월이 흘러 1946년 묘지에서 다시 만난 비올라와 미모. 비올라는 제헌 의회
선거에 출마한다고 했어. 여자가 의회 선거에 나간다는 것은 당시에는 드문 일이었어. 집에서도 반대를 했단다. 그런데 경쟁 후보는 오르시니 집안의 앙숙이었던
감발레 집안의 아들이었어. 비올라를 지지해주어야 할 오빠들이 감발레 집안과 밀약을 해서, 땅을 양도 받는 대신 비올라 후보 사퇴를 약속한 거야. 그러면서
프란체스코는 미모에게 같이 설득해 달라고 했어. 당시 비올라는 살해 협박도 받고 있었어. 미모도 살해 협박까지 받고 있으니 이번만은 포기하자고 비올라에게 이야기했지만,
비올라는 뜻을 굽히지 않았어.
비올라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꿈이 정해지면 성공하든 실패하든 끝까지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었잖니. 미모는 비올라에게 다시 한번 미움을
사고 로마로 돌아갔단다. 그런데 가는 길에 큰 지진이 일어났단다. 엄청나게
큰 지진이었어. 미모는 비올라 걱정에 다시 오르시니 저택으로 향했는데,
오르시니 저택은 폭삭 무너져 내렸고, 비올라는 그만 시신으로 발견되었단다. 오르시니 가족 중에 프란체스코만 로마에 머무르고 있어서 변을 당하지 않았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1946년 6월 1일, 실제로 이탈리아에 큰 지진이 나서 472명이 죽었다고 하는구나.
…
비올라가 죽은 시점으로 미모의
삶도 끝났다고 생각했어. 그의 삶에서 예술 부분만 남고 모든 것은 그때 끝이 났어. 미모는 그 이후 40년 동안 사크라 수도원에서 지냈단다. 평생 마음속에 비올라를 품고 말이야.
…
이 소설의 주인공 미모와 비올라
모두 매력적인 캐릭터인지만, 안타까운 결말이 안타깝구나. 결국
이 소설은 사랑이야기인데, 사랑 이야기만큼 서사적인 것이 또 어디 있겠니.
…
소설 속에서 미모가 피에타 상을
조각한 것으로 나오는데, 역사상 가장 유명한 피에타 상은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이끈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이 아닐까 싶구나. 너희들도 잘 알지? 그런데, 이 책에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왔단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은 바티칸 성당에 전시되어 있는데, 예전에 보호막 없이 오픈되어 있었어. 그런데 1972년 라슬로 토스라는 사람이 바티칸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을 15번이나 망치질로 손상시켰다고 한다. 그 이후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는 방탄유리 안에 보호를 받기 시작했다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너희들과 엄마에게 이야기를 해주니
다 알고 있었다고 하는구나. 심지어 엄마가 이야기하기를, 예전에
바티칸 여행 갔을 때 가이드께서 설명해주셨다고... 으… 아빠도
분명 들었을 텐데, 좁쌀만한 기억력… 오늘 다시 이렇게 써
놓는 이유도 조금이라도 기억을 오래 유지해 보려고…
…
앞서 이야기했듯이 소설 참 재미있게
읽었단다. 두께가 만만치 않고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지만, 누군가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조심스럽게 추첨해보고 싶구나. 지은이 장바티스트 앙드레아는 눈
여겨 보았다가 그의 신작이 나오면 또 읽어봐야겠다.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그들은 서른둘이다.
책의 끝 문장: 하늘에 새들이 날던 시절 태어났던 미모 비탈리아니는
위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내 부모는 늙었다고, 나이를 말하는 게 아니야. 그들은 다른 세상 사람들이지. 그들은 앞으로 우리는 말을 타듯이 날게 되리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 여자들은 수염을 달고 남자들은 보석으로 치장하리라는 걸. 내 부모의 세계는 죽었어. 넌 좀비를 무서워하지만 네가 무서워해야 할 건 바로 그 세계라고. 그 세계는 죽었는데도 여전히 움직이거든. 누구도 그것을 보고 죽었다고 말하지 않았으니까. 바로 그런 까닭에 그건 위험한 세계야. 그 세계는 저절로 무너져." - P145
나의 표정에 별항은 겁에 질린 모양이었다. 입을 헤벌리고 나를 응시했으니까. 그러더니 어깨를 으쓱하고는 대리석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대리석은 가로 1미터, 세로 2미터의 평행 육면체였다. 나의 구상을 실현하기에 완벽했다. 하지만 비올라의 생일은 11월 22일까지는 고작 열흘이 남았다. 나는 제일 좋은 도구를, 치오가 날은 닳고 자루는 갈라져서 손가락에 가시만 남기는 도구들을 쓰게 하고는 만져 보는 것조차 단 한 번도 허락하지 않던 도구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래야만 할 바로 그 장소를 쪼았다. 별항이 커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 P199
많은 사람들이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만든 피에타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려고 옷 주름의 완벽함, 해부학적 정확성, 몸짓의 우아함, 그 밖의 이런저런 것들을 강조하는 일에 전력을 다했다. 전문가들이야 불쾌하든 말든,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은 얼굴에 있다. 성모가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 한, 그는 자신의 성모를 곱사등이로 만들어도 괜찮았을 거다. 거의 패배한, 피로가 포기의 순간, 영혼을 내맡긴 그 순간에 포착된 여인의 얼굴. <포착된>이라는 말에 모든 게 다 들어 있다. 조각가가 그 모습에 생명을 불어넣는 데 3년의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미켈란젤로는 스냅 사진을 찍은 거였다. 단순한 끌과 대리석 덩어리만으로 무장하고 전투를 치러 낸 3년.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이 그 얼굴의 전부는 아니다. 그 얼굴에는 자신에게 벌어졌던 모든 일이, 앞으로 곧 일어나려고 하는 모든 일이 담겨 있다. - P357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만약 전부 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다르게 선택할 수도 있겠지, 미모. 네가 단 한 번도 틀리는 법 없이 처음부터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넌 신인 거야. 네게 품은 그 모든 사랑에도 불구하고, 네가 내 아들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나조차 신을 낳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 P422
비올라는 단 한 번도 면회를 오지 않았다. 나는 그 점이 고마웠다. 비올라가 입원해 있으면서 왜 나를 멀리했는지 그제야 이해했다. 이제 그 시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련다. 모든 감옥은 다 거기서 거기이니까. 수감자들 역시 동일한 죄를 저질렀다. 즉,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믿었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화를 냈다는 죄. - P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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