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나가
김진영 지음 / 반타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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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김진영 님의 <여기서 나가>라는 소설이란다. 아빠가 예전에도 이야기했지만, 김진영 님은 아빠의 회사 지인의 누나라서 그런지 신간 소식이 더 반갑더구나. 김진영 님은 몇 년 전에 읽은 스릴러 <마당이 있는 집>로 소설가 데뷔를 하신 분인데, 그 이전에는 영화 감독도 하셨다고 하는구나. 아빠가 <마당이 있는 집>을 읽고 영화화가 시급하다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이후에 드라마로 만들어져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더구나. 이번에 나온 신작 <여기서 나가>는 오컬트가 가미된 스릴러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번 소설도 속도감 있는 전개로 쉴 틈을 주지 않고 읽게 만드는구나. 이번 소설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더구나.

 

1.

이상조 할아버지와 순화 할머니는 80대 노부부로 부안 지역에서 농사를 지내신단다. 그들에게는 가슴 아픈 상처가 있단다. 똑똑하고 착했던 큰아들 형진이 작년에 심장마비로 죽었기 때문이야. 이상조 할아버지의 가족 소개를 좀 해볼게. 작년에 죽은 형진은 생전에 공무원이었고, 마흔두 살이 되어서야 해령이라는 여자와 결혼했어. 그런데 해령은 재혼이었어. 전남편과 사별하고 형진과 만나 결혼한 것이야. 전남편과 해령 사이에는 수인이라는 딸이 있었어. 그리고 둘째 아들 형용은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최근에 구조조정으로 해고당하고 말았어. 돈 많이 들어가는 두 아이가 있어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지. 형용의 아내 유화는 베이커리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그것으로 생활비 충당은 쉽지 않았어. 막내딸 성희는 중학교에서 선생님을 하고 있었고 결혼한지 10년이 되었는데 아직 아이가 없었단다. 이상조 할아버지의 가족 소개는 이쯤하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이상조 할아버지는 어느 폭우 내리던 밤, 물길을 내러 밭에 갔다가 밭에서 검은 형체를 보고 깜짝 놀랬어. 그 형체는 금방 사라지고 그 형체가 있던 자리에 가보니 불에 그을린 오 만원 지폐에 한자로 자신의 축은 아들 이름 이형진이 적혀 있었어.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이 일로 놀란 이상조 할아버지는 형용과 성희를 집으로 호출했단다. 그리고 이상조 할아버지는 한가지 고민이 있었단다. 자신의 아들이 죽고 나면 재산 상속을 해야 하는데, 자신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해령과 수인도 법적으로 상속인이 되는 거야. 형진이 죽은 이후 이상조에게는 남남처럼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야. 그래서 자신이 죽기 전에 땅을 미리 형용과 성희에게 증여하기로 했어. 그 이야기를 이번에 내려온 형용과 성희에게 이야기했단다. 그 대신 자신이 죽기 전에는 그 땅을 매매도 하면 안되고, 담보로 돈을 빌려도 안 된다고 다짐을 받았단다.

평생 자신이 일군 땅에 애착이 있으니 자식에게 증여를 하더라도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공감이 가더구나. 그런데 형용은 엄마로부터 형의 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 형이 엄마의 명의로 1억짜리 땅을 산 것이 있다는 거야. 형용은 엄마에게 이야기해서 그 땅을 자신에게 증여하게 했단다. 형용은 형이 산 땅 청사동을 가보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베이커리 카페였어. 해 지는 바다가 보이는 위치에 베이커리 카페를 하면 잘 될 것 같았어. 그래서 아내 유화에게 이야기했더니 아내는 좀 내키지 않았어. 서울을 떠나 군산에 가는 것도 마음에 내키지 않고, 아이들 전학도 신경 쓰이고하지만 남편의 뜻에 따르기로 했단다.

 

2.

형용은 형의 친구 필석 형의 도움으로 베이커리 카페를 설계하고 짓기 시작했단다. 그 땅에는 일제시대 지은 집이 한 채 있었는데 그 집의 기둥을 그대로 두고 리모델링 하자고 했어. 건물의 컨셉을 일본식 건물과 현대식 건물의 콜라보라고 정했지. 그런데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가게 되어 아버지와 약속을 어기고 아버지로부터 받은 땅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았단다. 그래도 돈이 모자라 필석 형에게 1억원도 투자 받았어.

그런데 유화가 우연히 들린 이웃에 있는 중국집 주인으로부터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어. 형용이 산 청사동 땅은 죽은 자의 땅이라는 거야. 귀신이 사람 잡는 땅이라서 오랫동안 건물을 안 짓고 방치한 것이라고 말이야. 유화는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그냥 괴담이라고 생각했어.

어느날 형진의 아내 해령이 상조 할아버지를 찾아와서 형용과 성희에게 땅 증여한 것에 대해 항의를 했어. 3분의 1은 수인의 땅 아니냐면서 말이야. 해령이라는 여자도 만만한 여자는 아닌가 보구나.  같이 산 시간도 얼마 안 된 남편이 죽었고 전 남편의 딸을 남편이 입양을 했더라도 그렇게 상속 지분을 주장하기 쉽지 않을 텐데 말이야. 상조 할아버지도 화를 내면서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큰소리치며 쫓아냈단다.

유화는 군산에 내려와서 해령을 외면할 수만은 없어서 만났단다. 해령이 대뜸 형진이 죽기 전에 대출한 1억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어. 자신이 그 대출 이자를 내고 있다면서 말이야. 유화는 뜨끔했어. 1억으로 산 땅이 바로 청사동 땅이니까 말이야. 형이 대출하고 해령이 이자를 내고 있는 돈으로 산 땅을 형용의 소유가 된 거야. 이 사실을 해령이 알면 가만 안 있을 것 같은데

상조 할아버지가 형용이 약속을 어기고 땅을 담보로 대출한 사실을 알고 크게 화를 내셨어. 형용도 대들어 크게 소리 지르고 집안 분위기를 점점 안 좋아졌단다. 유화는 그저 침묵할 수밖에. 유화는 공사중인 카페를 찾아갔다가 카페 안에서 검은 형제에 얼굴만 하얀 남자를 보고 깜짝 놀라 기절했단다. 그 남자는 데테이케라는 일본말을 계속 외쳤단다. 나중에 그 말을 찾아보니 나가라라는 뜻이었어.

우여곡절 끝에 카페 이름은 유메야로 하고 오픈을 했단다. 독특한 분위기에 노을 맛집으로 SNS에 소문이 나면서 금방 인기를 끌게 되었단다. 손님들도 늘면서 인근 상가에도 좋은 영향을 끼쳐서 다들 반기는 분위기였어. 어느날 해령이 찾아왔어. 상속 관련해서 소송 진행 중이고 청사동 땅도 실제 주인은 형이라면서 차명으로 된 땅을 증여 받은 것 아니냐면서 형용에게 추궁을 했단다. 형용은 모른다고 잡아 떼자, 유화에게도 물어보자 유화는 울먹이며 미안하다고 했어. 형용은 해령을 내쫓듯 보내고, 유화에게도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다고 잔소리를 쏟아 부었어. 한편 상조 할아버지는 밭에 나갔다가 형진이 꺼내달라는 소리와 형상에 이끌려 땅에 얼굴을 박고 땅을 파내다가 정신을 잃고 말았단다. 지나가던 이웃이 발견하지 못했다면 큰일 날 뻔 했어.

그런데 이상한 일들은 계속 일어났어. 카페의 음식과 빵이 너무 빨리 상하는 거야. 하루도 안되어 곰팡이가 생기기도 했어. 그러다 보니 리뷰도 음식과 빵이 맛없다는 안 좋은 내용들이 올라오기 시작했어. 형용은 그것이 유화의 짓이라고 의심했어. 서울로 돌아가고 싶어서 한 짓이라고 말이야.

유화는 읍내에 나갔다가 우연히 해령이 어떤 무당을 만나는 것을 보았어. 아니, 무당을 왜? 이걸 형용에게 이야기를 하자, 형용은 무당을 찾아가 만나보았어. 무당이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형용이 생각하기를, 해령은 무당으로부터 누군가를 저주하는 짓을 했다고 했어. 필석 형도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했단다. 형용은 혜령을 찾아가 경고하려고 했으나, 해령도 맞받아치며 강경하게 나오자, 화가 난 형용은 자신도 모르게 해령에 손찌검을 했단다. 곧 후회를 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지. 그런데 해령이 그런 형용을 보고 형진과 똑같다고 이야기를 하는 거야? 형이 해령을 때렸다고? 문득 형용은 어렸을 적 형이 떠올랐어. 사실 형진은 내면에 폭력성을 품고 살았어. 가끔씩 욱하여 폭발하는 스타일이었어. 그래서 형용은 어렸을 때 형에게 심하게 구타를 당한 적도 있었어.

 

3.

유화는 청사동 땅에서 이상한 일과 안 좋은 일이 계속 생기자, 전 주인을 찾아가 보았어. 전 주인은 김규선이라는 사람인데 그 분은 치매로 요양병원에 있었어. 유화는 김규선을 만났는데, 알 수 없는 일본말만 지껄였어. 그러면서 김규선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녀를 유화에게 주었어. 그리고 유화는 해령을 만나러 갔어. 해령은 문뜩 형용을 도와주고 있는 필석을 멀리하라고 했어. 필석은 죽은 자를 불러내는 사람이라며 카페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는 말까지 했어. 도대체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유화는 청사동 땅에 있던 집의 주인들을 계속 추적했어. 김규선 이전의 주인은 일본인이었는데, 아내를 죽이고 자살을 했다는 끔찍한 사실도 알게 되었어. 어렵게 그 일본인의 사진을 찾았는데, 오래되긴 했지만 자신이 카페에서 본 사람과 비슷한 거야. 그러다 보니 그 땅이 저주받은 땅이라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었어.

유화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굿을 하기로 했단다. 여기서 실수남편과 상의를 하고 했어야지. 굿판을 한창 벌이고 있을 때, 이 사실을 알게 된 형용이 와서 화를 내면서 깽판을 쳐서 굿은 중단되고 말았지유화는 자신의 마음도 이해해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폭력까지 쓰는 남편에게 화도 나고 실망도 나고 서울 친정집으로 가겠다고 했어. 형용은 갈 때 가더라도 카페의 식자재만 제대로 정리하고 가라고 했어. 유화가 카페 안에 있는 베이커리 룸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형용은 베이커리 룸을 밖에서 잠갔단다. 유화가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로 갈까 봐 했다고 하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것 같구나. 정말 카페에 저주가 그들을 이렇게 만든 것이 아닌가 싶구나.

형용은 필석 형의 글씨가 아버지가 밭에서 발견한 지폐에 써진 글씨체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형용은 필석 형이 살고 있는 당진으로 찾아갔어. 그런데 평소 잘 꾸미고 다니던 모습과 달리 그의 집은 다 쓰러져가는 폐허 같은 집이었어. 안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랐어. 온갖 부적과 저주의 글이 적혀 있는 글들을 보았어. 그 속에서 형의 이름과 자신의 이름도 보았어. 필석 형의 정체는 무엇?

그 때 필석 형이 왔어. 청사동 땅에 있는 집의 주인은 죽은 자의 주인이라고 했어. 이치카와 다케오. 그가 지은 집이었어. 일제 시대 군산에서 미곡수출업으로 떼돈을 번 갑부이자 지주였지. 해방 후 자신의 재산을 버릴 수 없다면서 귀화를 신청하려고 했지만 실패했어. 더욱이 그의 아내 마카오는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어했어. 그렇게 집에 돌아가려고 하는 아내를 창고에 가두었어. 마카오는 창고에 갇혀서 미쳐갔지. 창고로 들어온 다케오를 비녀로 찔렀고 다케오는 마카오의 목을 졸라 둘 모두 죽고 말았단다.

집은 다케오의 하녀였던 이효심이라는 사람에게 넘어갔는데, 이효심은 바로 유화가 만났던 김규선의 어머니였지. 청사동 땅에 저주를 내린 것이 필석 형이라는 걸 알고 그에게서 도망쳐 유화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해 다시 카페로 왔어. 유화는 베이커리 룸에 갇혀 미쳐갔어. 귀신에 들렸다고 볼 수도 있지. 자신이 그 옛날 마카오가 되어 창고로 들어오는 마케오를 비녀로 얼굴과 목을 찌르고 도망을 갔어. 이내 정신이 돌아오고 나서야 자신은 유화이고 자신이 찌른 사람은 형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필석은 결국 청사동 땅을 자신이 사들였단다. 사실 필석은 청사동 땅의 원주인 다케오의 손자였단다. 그는 그 땅을 다시 되찾기 위해 오랜 시간 준비했던 거야. 청사동 땅을 되찾았다는 것에 승리감까지 느꼈어. 그런데 그때 밖에서 카페 밖에서 불이 났어. 목조건물이었던 유메야 카페는 삽시간에 불이 번졌어. 그런데 창 밖에 보니 형진, 아니 형용의 모습이 보였단다. 형용이 죽지 않았나? 문이 다 밖에서 잠겨 있어서 탈출하지도 못했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어.

소설은 재미있게 읽었으나 오컬트 스타일의 소설의 줄거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더구나. 그냥 흘러간 문장이 나중에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경우도 있고 말이지. 그래서 아빠가 오늘 줄거리를 이야기해주었지만, 매끄럽지 않아도 이해 바람. 일제시대 군산은 국내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빼돌리는 주요 항구로 엄청 발전했으나 그 이후 점점 쇠퇴하여 소멸 도시를 이야기를 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아픈 근대사의 흔적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는 곳으로 관광을 많이들 가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 아빠는 지나가면서 유명하다는 짬뽕집을 들른 적은 있으나, 군산 여행을 제대로 해 본 적은 없는 것 같구나. 나중에 시간이 되면 함께 군산 여행을 가보면 좋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전라북도 군산부 청사정 남서쪽 해변에 자리한 언덕 위에, 일본인 이치카와 댜케오 씨의 신저택 준공식이 지난 13, 지방 유지 및 조선 유지를 초정한 가운데 성대히 거행되었는바, 본 저택은 군산항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명승지에 건축되었으며, 동씨의 개간사업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라 하겠노라.

책의 끝 문장: 그리고 누군가가 주인으로 모셔주기를, 자신과 같은 염원을 가진 이가 자신을 위해 삶을 빌려주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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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은 간강이요, 부자연스러운 것은 질병이다. 허파가 공기를, 눈이 빛을 맞아들이듯, 신체는 건강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건강은 생활 감정 전반에 걸쳐 말없이 살고 함께 성장한다. 그러나 질병은 이질적인 것으로서 갑자기 들이닥치고, 예상치 못하게 영혼을 덮쳐 충격에 빠뜨린 뒤 그 속에 잠들어 있는 수많은 질문들을 흔들어 깨운다. 다른 어떤 곳에서 온 이 사악한 적은 도대체 누가 보낸 것일까? 그는 머무를까, 아니면 사라질까? 그를 붙들고 간청한 것인가, 아니면 다스릴 것인가? 질병은 날카로운 발톱으로 우리를 할퀴어 극도로 상반된 감정들을 마음에 새겨넣는다. 경외, 신앙, 희망, 낙담, 저주, 겸허, 절망 질병은 환자에게 묻고 생각하고 기도하라고, 겁에 질린 눈을 허공으로 들어 올려 붙안을 떠맡아주는 어떤 존재를 꾸며내라고 가르친다. 고통이 인류에게 종교적 감정, 신에 대한 생각을 창조해주는 순간이다.

 

(60)

옛 방법이 은폐하려 애쓰던 그것을 만천하에 드러내라고 요구했다. 모르는 체하지 말고 확인하라는 것이다. 돌아가지 말고 들어가라는 것이다. 눈 돌리지 말고 깊이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외투를 입히지 말고 벌거벗기라는 것이다. 충동을 인식하는 사람만이 그것을 틀어쥘 수 있다. 악마의 심연에서 충동을 끌어내 거리낌 없이 마주하는 사람만이 그것을 길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의학은 미학이나 문헌학 못지않게 도덕이나 수치심과는 상관이 없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인간의 가장 은밀한 비밀을 침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말하게 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그 세기가 얼버무리고 싶어 한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억업과 무의식에 대한 자기 인식과 자기 고백의 문제를 시대의 한복판에 던져놓았다. 그리하여 그들의 억압된 근본적 갈등을 위선에서 학문으로 변모시킴으로써 수많은 개인들뿐 아니라 도덕병에 걸린 그 시대 전체를 치료하는 일에 착수했다.

 

(63-64)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류가 자신에 관해 더 명백하게 알게 해주었다. 이것은 한 개인의 위대한 업적이다. 나는 더 명백하게라고 말하지. 더 행복하게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는 한 세대 전체의 세계상을 심화했다. 나는 심화했다고 말하지, 미화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과격한 것은 행복을 주지 않고 결단을 가져올 뿐이다. 그러나 인류의 영원한 동심을 언제까지나 꿈결 속에서 달래어 재우는 일은 학문의 과제가 아니다. 학문의 과제는 이 무정한 대지 위에서 올곧게 걸어갈 것을 인류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 불가결한 작업을 함으로써 자기 몫을 모범적으로 행했다. 일하면서 그의 냉혹함은 강인함이 되었고, 그의 엄격함은 불굴의 법칙이 되었다. 프로이트는 단 한 번도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안식처로 가는 탈출로를 가르쳐준 적이 없다. 지상의 낙원이나 천상의 천국을 향해 도주하는 길을 가르쳐준 적이 없다.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로 들어가는 길, 자기만의 심연에 이르는 위험한 길을 가르쳐주었을 뿐이다. 그의 통찰에 너그러움 따위는 없었다. 그는 매서운 북풍처럼 예리하게 음습한 대기 속으로 침입하여 황금빛 안개와 장밋빛 구름으로 가득 찬 감정을 붙어내버렸다.

 

(67)

그의 삶의 리듬은 쉼 없이 균일하고 끈기 있게 흘러가는 일의 리듬에 완전히 예속되어 있었다. 75년 동안 한 주 한 주가 제한된 활동의 똑같은 순환 주기를 명확히 보여주었으며, 하루하루가 다른 날과 쌍둥이처럼 비슷하게 지나갔다. 대학에 몸담은 시기에는 매주 한 번의 강의와 매주 수요일 저녁 제자들과 했던 소크라테스 대화법에 따른 학술 심포지엄, 매주 토요일 오후의 카드놀이를 제외하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자정이 될 때까지 일분일초까지도 분석, 치료, 연구, 독서, 이론적 구성에 바쳤다.

 

(74)

니체가 망치를 들고 철학을 했다면, 프로이트는 평생 메스를 들고 철학을 했다.

 

(77)

그의 사유가 그것들을 비판적으로 파악하기도 전에 그의 눈은 벌써 창조를 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의견의 오류를 가르쳐줄 수는 있지만, 창조적 시선을 가르쳐줄 수는 없다. 직관은 외부의 영향이 마치 인간의 눈빛이 한 번도 비춘 적이 없는 것처럼 바라보는 것, 수천 번 표현된 것을 마치 인간의 입이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는 것처럼 말끔하게 새로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 직관적 탐구자가 지닌 이 시선의 마법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가르칠 수 없고, 천재적 본성의 소유자가 최초이자 단 한 번의 직관을 고수하는 것은 괜한 고집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깊이가 그렇게 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96)

감정이 억압된다면 도대체 누가 그것을 억누르는가? 그리고 어디를 향해 억압되는가? 어떤 법칙에 따라 정신에서 나온 힘이 신체적 힘으로 전환되며, 그 끊임없는 변화들은 어떤 공간에서 작동하는가? 깨어 있는 인간은 이런 것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한편으로 그것들에 관해 알기를 강요받으면 곧바로 알게 된다. 지금까지 학문이 감히 탐험하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이 그의 눈앞에 어렴풋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멀리서 흐릿하게 보이는 새로운 세계릐 윤곽을 알아차렸다. 바로 무의식이었다. 개인적 심리 생활 속 무의식적 부분의 탐구가 이제부터 그가 평생을 몰두하게 될 문제이다. 심연으로의 하강이 시작된 것이다.

 

(109-110)

그가 보기에는 모든 심리적 사건에는 특정한 의미가 있고 모든 행위에는 행위자가 있다. 또한 그렇게 실수할 때 한 사람의 의식은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억압받는데, 이 억압하는 힘이야말로 그가 오랫동안 성과 없이 찾아녔던 그 무의식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프로이트가 보기에 실수는 생각 없음이 아니라 억압된 채 밀려들어 가 있던 생각의 자기 관철이었다. ‘잘못말하기, ‘잘못쓰기, ‘잘못잡기에서 뭔가가 말을 걸어온다. 우리의 깨어 있는 의지는 그것이 말로 나오기를 바라지 않는다. 또한 그 무언가는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우리도 배워야만 하는 무의식의 언어를 구사한다.

 

(124-125)

프로이트는 꿈이 우리의 심리적 균형을 안정시키는 데 필수적임을 처음으로 입증한다. 꿈은 우리 감정 능력의 밸브이다. 우리의 작은 세속적 육신 속에는 정말이지 너무도 막강한 욕만, 헤아릴 수 없는 괘락욕과 생존 본능이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소원 가운데, 평범한 사람들이 옹졸하게 꽉 짜인 일상 속에서 성취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몇 개나 되겠는가? 우리들 중 누구도 자신의 쾌락의지를 천분의 일도 실현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이루어지지 않고 이룰 수도 없는 한없는 욕망이 더없이 궁색한 소액 연금 생활자, 임금 노동자, 일용직 노동자의 가슴속에 밀려드는 것이다. 저마다의 마음속에 못된 욕망들이 음란하게 들끓는다. 지배권이 부재하는 권력의지, 억눌리고 비겁하게 일그러진 무정부주의적 욕구, 감춰진 허영심, 열정, 질투 등. 날이면 날마다 수많은 여자들이 지나다니며 저마다 순간적인 정욕을 도발하고, 이루어지지 못한 그 모든 소망과 소유욕은 똬리를 튼 채 독사처럼 틀어박혀 혀를 날름거르며 새벽종이 우릴 때부터 밤이 깊어질 때까지 잠재의식 속에 숨어 있다. 밤마다 꿈이 이 모든 응어리진 소원들에 배출구를 마련해주지 않는다면, 영혼은 그런 대기압 아래에서 폭발하거나, 갑자기 흉악한 난동이라도 부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157-158)

프로이트는 깨달았다. 성 의식은 사춘기쯤 되었을 때 처음으로 갑자기 몸 안에 주입되는-대체 그것이 어디로부터 올 수 있다는 말인가?-것이 아니라, 오히려-모든 강단 심리학보다 천 배는 더 심리학적인 언어가 이미 오래전부터 대단히 구체적으로 표현해주었듯이-영글다 만 인간 속에서 성 충동이 그저 깨어날뿐이라는 사실, 따라서 성 충동은 잠든 채로(말하자면 잠복 상태로) 오래전부터 어린이의 신체 속에서 현존해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유아가 걷기 전에 걸을 수 있는 잠재력을 두 다리에 지니고 있듯이, 말할 수 있기 전에 언어 욕구를 지니고 있듯이, 성욕도-목전에 맞는 행동에 대해서는 짐작도 못 하면서-유아 속에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유아는-결정적 표현!-자신의 성욕에 관해 안다. 그저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189)

인간의 지성이 인간의 충동 활동에 비해 무기력하다는 것은 얼마든지 강조되어도 좋고, 그런 주장이 옳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약점에는 특징이 있다. 지성의 목소리는 낮게 속삭이지만, 자신의 말이 경청될 때까지 쉬지 않는다. 수없이 여러 번 거듭 퇴짜를 맞지만 결국에는 성공한다. 이것은 인류의 미래를 낙관하게 해주는 몇 안 되는 점들 가운데 하나이며 적지 않은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지성이 우위를 차지하는 날은 확실히 멀리 있지만, 그렇다고 닿을 수 없을 만큼 멀지는 않을 것이다.

 

(199)

현재 우리는 프로이트 덕분에 처음으로 개인의 중요성을, 모든 인간 영혼의 대체 불가능한 일회적 가치를 새롭고 생생하게 깨닫게 되었다. 유럽에서 예술, 연구, 생명과학의 모든 영역에서 내로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찬성하든 반대하든 프로이트의 사상 체계로부터, 그의 견해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창조적인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이 외부인은 모든 영역에서 삶의 중심부-인간적인 것-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 작업이 의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철학이든 교과서적 의미에서 엄밀하게 규칙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전문가들이 망설이는 동안, 개별성과 궁극적 가치에 관해 추밀 고문관과 학자들이 열심히 싸우는 동안, 프로이트의 이론은 이미 오래전에 반박할 수 없을 만큼 참된 것으로 입증되었다. 괴테가 잊을 수 없는 말로 우리에게 새겨놓은 창조적 의미에서 참된 것으로 입증된 것이다. ”결실이 있는 것만이 참된 것이다.“

 

(211-212)

당신이 빠짐없이 알고 있는, 그의 작품이 지닌 거의 모든 특성들은 그 자신의 특성에 기인하며, 우리에게는 특이한 것이지만 러시아인들에게는 흔히 있는 심리 구조입니다. 사실 성적 기질에 기인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이것을 더 상세히 설명해야 하겠지요. 우선 그것은 학대하고 맟설게 하는 모든 것입니다. 우리는 정신분석 없이 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 그는 스스로 각 인물들과 각 문장들을 통해 정신분석을 하고 있으므로, 정신분석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카라마조프 씨네 사람들>이 도스토엡스키의 가장 개인적인 문제인 아버지 살해를 다루며 범행과 무의식적 악의에 관한 정신분석적 원리를 그 근거를 삼고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또한 그가 표현한 기이한 성애는 충동적 발정이거나 승화된 연민입니다. 자신의 영웅들이 사랑할 때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지 아니면 미워하는지 등에 관한 회의[=양가감정]는 그의 심리학이 어떤 독특한 토양에서 자라났는지를 보여줍니다.

 

(360)

삶은 언제나 값지고 안락하게 만들어주고 싶어 하는 직업적 위로꾼들에게 우리는 이미 신물이 나 있고, 이와 같은 대담한 진산을 느끼하기 짝이 없는 그들의 변명들을 보상해준다. 심리학의 측연이 시대적으로 풀리지 않는 중요한 문제의 심연을 향해 내려져 있다는 것은 이제 확실하다. 그러나 우리는 순조롭게 풀릴 만한 문제들을 진짜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낙관적 해석이든 비관적 해석이든 중요치 않다. 한 학술원이 [학문과 기술의] 진보가 인류를 더 선하게 만드는지에 관한 유치한 논문을 현상 고모하고, 장 자크 루소가 막무가내로 아니라고 대답하여 세인의 열광을 얻었던 시대는 지났다. 프로이트가 자신의 명제들을 제시하는 방식, 엄격하고 객관적이고 어떠한 미신이나 편향성으로도 사탕발림하지 않는 이 방식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질문을 함께 진지하게 생각해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엄밀하고도 결정적인 무언가를 제공할 것이다.

 

(368)

마지막에 그는 공허와 망각의 시대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확고부동한 사람, 절대적인 것, 지속적으로 타당한 것 말고는 이 세상에서 중요한 것이 없다고 여겼던 순수한 진리 탐구자. 마지막에 그는 우리의 눈앞에, 경외로 가득 찬 우리의 마음 앞에 있었습니다. 끝없는 논쟁을 불러일으킨 가장 고귀하고 완전한 유형의 연구자. 어떤 깨달음에 확신이 서지 않을 때는 일면 주의 깊고 세심하게 검토하고, 일곱 번 숙고하고도 자기 자신을 의심했지만, 확신이 들고 나면 즉각 온 세상의 저항에 맞서 그것을 지켜냈던 연구자. 그를 만나고 우리가 얻은 것, 다시 한 번 시대의 이상으로 배운 것은, 지성인의 자유롭고 독립적인 용기보다 더 멋진 용기는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용기를 우리는 잊지 않을 것입닏. 그는 다른 사람들이 감히 찾으려 하지 않거나 표현하지도 고백하지도 않았기에 발견하지 못한 깨달음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는 감행하고 또 감행했습니다. 갈수록 더욱 감행했고, 혼자서 모든 사람과 맞섰습니다. 생의 마지막 날들까지도 그동안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을 모험했습니다. 깨달음을 향한 인간의 긑없는 투쟁 속에서 이런 불굴의 정신은 도대체 우리에게 어떤 본보기를 제시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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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노예 남편 아내 - 2024 한국인 최초 퓰리처상 수상작
우일연 지음, 강동혁 옮김 / 드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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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홍보성 문구로 알게 된 책이란다. 아빠가 귀가 얇아서 그런 문구에 잘 휩쓸리잖니. ”2024 한국인 최초 퓰리처상 수상이라는 홍보 문구였단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해야 옳겠구나. 퓰리처 상은 뉴스 보도 관련된 상인 줄 알았는데, ()보도 부문도 있다고 하더구나. 그 비보도 부문을 한국계 미국인 우일연이라는 분이 2024년에 수상하셨다고 하는구나. 2024년은 한강 님이 노벨 문학상을 타고, 김주혜 님이 톨스토이 문학상을 타고, 우일연 님이 퓰리처상을 탔었구나. 2024년은 우리나라 문학계에 한 획을 그은 한 해라고 해도 될까? 물론 김주혜 님과 우일연 님은 교포시지만,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계시니까

예전에는 한국계 미국인의 작품들이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되는 것이 흔치 않아서 신기하게 생각하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많은 작가들의 작품들이 소개되는 것 같구나. 물론 실망을 준 작품들도 있지만…. 아빠는 퓰리처상을 받은 작품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구나. 우일연님이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해서 그의 작품이 우리나라와 관련된 작품은 아니란다. 1848년 미국에서 실제 있었던 일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라고 하더구나. 소설 제목은 <주인 노예 남편 아내>로 네 단어로 나열하여 독특하구나. 소설 제목을 보면 노예 해방 관련된 이야기라 추측을 할 수 있겠구나.

 

1.

1848년 조지아 주 메이컨이라는 곳에 예속 피해자 윌리엄과 엘렌 크래프트 부부가 있었단다. 이 소설에서는 예속 피해자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원문에서는 enslaved를 번역한 것이래. 보통 노예는 slave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 책에서는 enslaved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하는구나. 이유는 노예라는 신분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 강제로 부여된 상태를 분명히 하려고 그런 것이라고 하는구나. 그래서 옮긴이는 ‘enslaved’예속 피해자, ‘enslaver’예속 가해자로 옮겼다고 하는구나. 엘렌은 노예 엄마와 백인 주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피부는 완벽하게 백인 주인 아빠를 닮아서 흰색을 가지고 태어났단다. 하지만 당시 노예의 피 한 방울만 섞여도 노예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엘렌도 그냥 노예 피해자였단다.

=======================

(101)

힐리 가족은 서로를 남편과 아내로 불렀을지 몰라도 법은 그들에게 주인과 노예가 아닌 어떤 관계도 맺지 못하게 했다. 조지아주에서 개인에 의한 해방은 금지돼 있었다. 초기에는 조지아주 사람들도 자기 의지에 따라 노예를 해방할 수 있었다. 버지니아주의 조지 워싱턴이 (조건을 붙이긴 했어도) 노예를 해방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시대에 힐리에게는 메리 일라이자나 그들의 자녀를 해방할 힘이 없었다. 아이들의 아버지가 백인이라는 점, 그들의 모습도 백인 같다는 점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 시기에는 소위 한방울 법칙이라는,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들어가면 그 사람의 몸 전체가 유색인종으로 변한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었다. 게다가 노예제도는 언제나 어머니의 혈통을 따랐다. 흑인이라는 혈통과 예속은 건드려서도 취소해서도 안 되는 영구적인 조건으로 간주되었다. 힐리 가족이, 그리고 이제는 엘렌도 바로 이런 가정에 반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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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은 흑인 노예였으며, 고급 가구 제작자 밑에서 일하는 유능한 기술자였어. 엘렌과 윌리엄은 조지아 주를 떠나 노예제가 폐지된 북부로 도망가기로 계획을 세웠어. 엘렌이 흰색 피부인 것을 이용하기로 했어. 엘렌이 남장을 하고 존슨이라는 가명을 쓰기로 했고, 윌리엄은 엘렌을 모시는 노예라고 하고 조지아 주를 탈출하기로 했단다. 엘렌이 피부가 희기는 하지만 체구가 작아서 남장하는 것이 눈에 띌 수 있는 위험도 있고, 윌리엄이 180cm가 넘는, 당시로는 큰 키라 눈에 잘 띄는 위험도 있지만, 그들에게는 그런 위험을 감수할 만큼 자유를 절실히 원했단다.

엘렌이 탈출하기 직전에는 자신의 주인이자 아빠인 사람이, 딸인 일라이자에게 소유권을 넘긴 상태였단다. 일라이자와 엘렌은 이복 자매였으나 신분 차이는 주인과 노예였던 거야. 그래도 다행히 이복자매 일라이자는 엘렌에게 잘 대해주었어. 하지만 자유는 주지 않았지.

조지아 주부터 북부 필라델피아까지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어. 조지아 주에서 기차표를 사는 것부터 그들에게는 위험한 순간이었어. 그리고 엘렌은 주인의 친구, 오래 전에 자신에게 청혼을 했던 남자 등 지인을 만나는 위기를 맞이했지만 다행히 그들은 엘렌을 알아보지 못했어. 기차 안에서는 귀머거리 행세를 하고 류머티즘으로 팔을 다친 척 했단다. 윌리엄도 기차 출발 전에 가구 제작사 주인이 와서 주변을 두리번거려서 걱정했으나 다행히 기차는 출발하였단다.

...

엘렌과 윌리엄은 기차를 타고 서배너로 가서, 합승 마차과 증기선을 타고 찰스턴으로 행했단다. 가는 내내 자신들의 신분이 들통날까 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단다. 엘렌이 류머티즘으로 팔을 다친 척 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도 했어. 사람들이 어디로 가냐고 물어 보면, 류머티즘을 고치러 의사 삼촌이 있는 필라델피아로 간다고 했고, 그러면 그들은 필라델피아에 가게 되면 노예가 도망갈 거라고 경고도 했어. 그런데 또 어떤 이들은 윌리엄에게 필라델피아에 가면 탈출하라고 조언하기도 했단다.

찰스턴에서 배를 갈아타고 워싱턴으로 갈 때 큰 고비가 찾아왔어. 찰스턴 세관원의 싸인 요청이 있었어. 글을 모르는 엘렌은 글을 쓸 줄 몰랐거든. 엘렌은 팔 아프다고 세관원에게 싸인을 대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어. 그런데 다행히 찰스턴으로 오는 배에서 알게 된 선장이 엘렌을 알아보고 서명을 대신해주었단다. 물론 존슨이라는 백인 신사라고 생각하고 말이야.

워싱턴에서 다시 기차 타고 볼티모어 역에 도착했을 때 다시 한번 고비가 찾아왔지. 볼티모어 역 관리인이 노예주인이라는 증서를 요구했어. 이번에도 기차의 차장이 그들을 알아보고 보증을 해주었단다. 그렇게 여러 번의 위기를 넘기고1600km의 긴 여정을 끝내고 드디어 필라델피아에 도착했단다. 하늘이 그들을 돕고 있는 것 같구나.

 

2.

그곳에서 반노예 협회의 스틸과 미플린 위스타 깁스라는 사람들이 그들을 도와주었어. 남자인줄 알았던 엘렌이 여자라는 사실에 놀랬지. 그리고 흑인 최초 지방판사인 퍼비스라는 사람도 그들도 도와주었어. 그들이 필라델피아에 도착을 했지만, 아직 안심할 상황은 아니었단다. 도망간 노예 사냥꾼들이 잡으러 올 수도 있거든. 그들을 도와주는 이들 중에 백인은 불안하고 의심을 살 수밖에 없었단다. 하지만 세상에는 피부색이 아닌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엘렌은 글도 배우기 시작했어. 그들은 노예 탈출한 후 폐지론 강연자 겸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윌리엄 웰스 브라운을 만났어. 브라운은 그들에게 강연해 줄 것을 요청했단다. 고민 끝에 엘렌과 윌리엄은 받아들였단다. 그리고 브라운과 함께 강연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의 영화 같은 이야기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어. 그러면서 신문 보도도 되었고, 그들이 떠나온 조지아 주 메이컨에도 알려지게 되었단다.

해가 바뀌고 1849년 엘렌과 윌리엄은 보스턴, 매사추세츠 등 순회 강연을 하였고, 이는 노예 폐지 지지자들이 늘어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단다. 그들은 노예 폐지론자들과 함께 활동을 했는데, 그들 사이에서도 의견 차이로 갈등을 빚기도 했어. 그렇게 순회 강연을 하긴 했지만, 크래프트 부부는 정착하기를 원했어. 그래서 그들은 강연을 중단하고, 보스턴에 있는 흑인 공동체에 정착하기로 했단다.

이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 1849년 미국은 노예제의 찬반으로 정치권도 갈등이 깊어지고 있었어. 그래서 연방 분리 이야기도 했었고,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도 무성했단다. 웹스터라는 상원의원이 연방의 분리의 위기를 지켜냈지만, 남부에서 도망친 노예들을 잡을 수 있는 도망노예법의 발의되어 통과되었단다. 이것은 남부에서 북부로 도망 와서 자유인이 된 이들에게는 최악의 법이었단다. 그들은 이제 납치 위협 속에 살아야 했어. 그래서 또다시 그곳을 떠나 캐나다로 탈출하는 이들도 늘어났단다.

한편, 엘렌의 주인이었던 콜린스는 도망노예법에 따라 엘렌과 윌리엄을 잡기 위해서 휴즈와 나이트를 고용하여 보스턴으로 보냈어. 휴즈와 나이트는 엘렌과 윌리엄에 대한 영장을 받으러 법원에 갔지만 판사들은 그 일을 꺼려 서로 미뤘어. 휴즈와 나이트는 변호사들을 찾아가 도움을 받으려고 했어. 휴즈와 나이트가 엘렌과 윌리엄을 잡으러 왔다는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시위를 하면서 그들을 방해하고 조종하고 위협했단다. 당시 엘렌과 윌리엄은 파커 목사의 집에 숨어 지내면서 예의주시하고 있었어.

결국 엘렌과 윌리엄은 보스턴을 떠나 캐나다로 갔단다. 캐나다에 미국에서 건너오는 자유인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찬반 논쟁이 있었대. 캐나다는 더욱이 미국과 붙어 있기 때문에 100% 안전한 곳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엘렌과 윌리엄은 대서양을 건너 영국 리버풀로 가기로 했단다. 1850 11 29일 캠브리아 호를 타고 엘렌과 윌리엄은 드디어 리버풀로 출발하여 13일만에 리버풀에 도착했단다. 미리 와 있던 윌리엄 웰스 브라운과 재회를 했어. 오랜 여행 때문인지 엘렌은 신체적으로 많이 지쳐서 좀 쉬고, 윌리엄은 브라운과 함께 폐지로 강연을 다시 하기로 했단다. 그렇게 노예론 폐지 강연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면서 오컴에 정착하려고 노력했단다. 조지아 주에서 자유를 찾아 떠난 그들의 여정은 리버풀까지 와서 이뤄낸 것 같구나.

….

미국에서는 결국 노예제 찬반의 갈등이 심화되어 남북전쟁이 일어났단다. 너희들도 학교에서 배웠겠지만 남북전쟁에서 북부가 이기면서 미국 전체 지역에서 노예제는 폐지되었어. 전쟁이 끝난 후 엘렌의 어머니 마리아는 영국에 와서 17년만에 딸 엘렌과 재회했단다. 그 때의 기분을 어찌 상상할 수 있을까. 그리고 엘렌과 윌리엄 크래프트 부부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단다.

….

이 소설은 반전이나 박진감 넘치는 재미는 없었지만 두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소설을 읽는다면 손에 땀을 쥐면서 읽을 수 있고, 그들이 결국은 자유를 찾았을 때 그들과 함께 쾌감을 느낄 수 있단다.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끝나고 공식적으로 노예제는 폐지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인종차별이 이어져 와 아직도 숙제로 남아 있단다. <주인 노예 남편 아내>의 지은이 우일연 님의 다른 작품들도 우리나라에 소개되면 또 한번 읽어보고 싶더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1848, 미국 조지아주의 예속 피해자인 윌리엄과 엘렌 크래프트 부부는 서로의 해방을 위해 서계 반대편으로 가는 8,000킬로미터의 여행길에 올랐다.

책의 끝 문장: 바로 그 공간이 우리가 들어갈 자리다.




엘렌은 기차가 메이컨을 떠나기를 기다리면서 이번 기차 여행 이후로는 믿을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알았다. 이곳에 돌아오면 아마 족쇄를 차게 될 것이다. 성공하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영영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늘이 기도를 들어준다면 윌리엄만은 볼 수 있겠지만, 살아남는다면, 엘렌은 어머니를 해방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먼저 그녀와 윌리엄이 자유로워져야 했다. - P54

크래프트 부부의 특별한 탈출이 신문1면에 실렸을 때는 미국 정제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멕시코와의 전쟁이 끝나고, 미국은 기존 영토의3분의1에 해당하는 영토를 더 얻었다. 정착민들이 서쪽으로, 특히 캘리포니아로 몰려가고 있었다. 캘리포니아는 모든 신문에서 요란하게 광고되었다. 이런 광고의 헤드라인은 "골드러시!"라고 소리쳤다. 신문을 배달하는 소년들은 "새 배가 떠납니다!"라고 외쳤다. 이 모든 흥분의 한가운데에는 불안한 질문이 있었고, 크래프트 부부의 도망은 바로 그 질문을 강조했다. 이 땅에서 노예제도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 전체에서는? - P256

많은 사람이 엘렌을 백인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은 겉보기에는 백인인 이 여성이 흑인 남성을 사랑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인종 간 결혼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금지되었던 주에서는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 엘렌은 청중에게 사회적 질서를 고정해 두는 그 모든 범주의 의미에 질문을 던지라고 요구했다. 그 범주가 북부든, 남부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주인이든, 노예든, 남편이든, 아내든 간에 말이다. 엘렌과 윌리엄은 힘을 합쳐 널리 퍼져 있던 인종차별주의적 주장을 뒤집었다. 흑인은 사회악이거나 최선의 경우에도 자선의 대상이며 구원이 필요하다는 주장, 흑인이 백인이 되고 싶어 한다는 주장을 말이다. - P307

그들은 너무도 긴 거리를 달려왔다. 남부에서 북부로1,600킬로미터, 뉴잉글랜드 전역을 다니며 다시1,600킬로미터,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거친 파도를 건너4,800킬로미터, 그들은 서로를 위해, 서로와 함께 달렸고 이제는 바로 이곳, 이 시간에 서로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곳은 두 사람이 함께, 충분히 강하게, 각자의 정체성을 따로 탐색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누구를, 또 무엇을 잃었든 그들은 아무도 깨뜨릴 수 없는 가정을 만들겠다는 꿈을 이룰 수 있었다. - P482

주인과 노예로서 나란히 선 것도 아니고, 남편과 아내로서 팔짱을 끼지도 않은 채, 친구들 사이에 함께 선 지금의 크래프트 부부는 미국에서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그들을 규정했던 역할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세계를 거닐었다. 그들이 순회강연에서 반복적으로 끌어다 쓴 역할, 충격과 눈물, 경이감을 끌어내기 위해 뒤섞어 짜맞춘 역할은 이 마지막 시위에 빠져 있었다. 수정궁은 미국에서든, 그 너머에서든 가능한 삶의 모습이자 하나의 가능성으로, 언젠가는 이루어질 희망으로 나타내는 투명한 국제적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윌리엄과 엘렌, 엘렌과 윌리엄은 모든 방해에서 해방되어 세계 시민으로서 걸었다. 그들은 더 이상 주인과 노예, 남편과 아내가 아니었다. - P560

"나는 노예 상태로 돌아가겠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자유보다 노예제도를 선호할 만큼 자유를 부정하는 건 신계서도 금하시는 일입니다. 사실 나는 노예제도로부터 탈출한 이래로 모든 면에서 내가 예상조차 못했을 만큼 나아졌습니다. 만약, 그 반대였다고 해도 이 문제에 관한 내 감정만큼은 똑같았을 것입니다. 나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훌륭한 인간의 노예가 되기보다 잉글랜드에서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편이 훨씬 좋습니다." - P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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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내 감정들에 이미 정해진 간단한 이름들이 있다는 것을 진작 배웠다면 많은 게 달라졌을까. 이 세상 모든 것에 이름이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도 이름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나는 나만의 이름 짓기를 했기 때문에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걸까. 이 세상 모든 것에 이름이 있다는 걸 몰라서, 모든 것에 새로운 이름을 짓고 싶어하는 지금의 내가 된 걸까.

이미 만들어져 있는 말을 이리저리 조합해, 원래 있던 것과 새로 나타난 모든 것에 이름을 짓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51)

가부장제와 남아선호사상에 물든 대가족 집안에서 태어난 우리 엄마 김경형의 미친년 인생은 엄마 탓이 아니다. 엄마 탓은 아니지만 엄마가 미친년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잔혹한 굴레 속에서 나 또한 미친년으로 자라났다. 그나마 나는 내 이야기를 세상에 꺼낼 수 있는 미친년이라 다행이다. 하지만 나뿐 아니라 엄마의 미친년 역사도 무척 소중하기에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다.

 

(80-81)

온 가족 구성원이 화가 많고 예민한 우리집에선 언제나 고성방가가 끊이질 않았다. 동시에 예술적 기질도 많아서 엄마 아빠는 시를 쓰고 노래를 하고, 동생은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하고, 언니는 춤을 추고, 노래를 했다. 그리고는 또 박 터지게 싸우다 한 번씩, 한 명씩 부엌에서 칼을 쥐고 나와 휘둘렀다. 어떻게 보면 스펙터클, 어떻게 보면 지옥 같은 광경이 자주 펼쳐졌다. 장례식상에서마저 댄스 공연을 하고, 공연이 끝나자마자 욕하고 소리지르며 싸운 것까지도 전부 괴롭고 웃긴 우리 가족의 풍경이었다. 귀신이 된 언니가 그 모습을 봤다면 다들 미쳤다며 껄껄 웃을 것 같았다.

 

(110)

언니는 가족이 싫다고 10대 때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내가, 부럽고 미웠을까.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동생을 돌보느라 정신없던 언니에게 나는 수차례 그만두라고 말을 했다. 언니는 그때마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가족이 필요하다며 울었다. 언니가 필요로 했던 가족은 아마 건강한 가족이었겠지만, 우리가 가진 가족은 너무 허약했고 결핍투성이였다. 언니는 그들에게 힘을 보태느라 자기 힘을 다 소진해버렸다. 나는 언니의 죽음이 자살이라기보다 힘이 다 빠져 죽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죽음은 뭐라고 부를까. 소진사(消盡死)? 가끔 그렇게 가진 힘을 다 소진하고 죽는 사람들의 소식을 듣는다. 평생 남을 위해 살던 사람들.

 

(112)

세상에는 완전한 이해도 완전한 사랑도 없다. 모두들 살아 있기 위해서 견디는 것만 같다. 하지만 저마다 느끼는 감정은 너무 다양하고 그중엔 고통을 기반으로 하는 감정들이 더 많다. 분노로 질투로 좌절감으로 절망감으로 삶에서 멀어지고픈 생각이 꼬리를 문다. 내 등뒤에 나에게 의지하는 생명이 있다. 모든 소중함에도 한계가 있다. 등뒤에 준이치가 앉아 있다는 것을 알면서 내가 여러 가지 죽음의 방법을 떠올리는 것처럼. 그래도 준이치를 두고 죽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못 할 것 같다. 살아서, 다음주에 준이치를 병원에 데려가야한다.

 

(149)

깊은 사랑과 냉철한 이성과 오래된 우울감이 함께 존재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이 모든 걸 언니에게 말하고 싶다. 사랑받지 못해서, 사랑을 모른다고 서로 말하던 우리 두 자매였는데, 언니가 떠난 뒤에 나는 강렬하게 원하는 것이 생겼음을. 그래서 무척 아프고 괴롭지만 굉장한 것을 배우고 있음을 언니에게 꼭 말하고 싶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으로 어쩐지 언니에게 전해질 거라고 느낀다.

 

(157-158)

30대에 접어들면서 더 이상 젊은 여성 역할을 수행하고 싶지 않았다. 마침 20대 여성만을 주로 소비하는 가부장제 속에서 30대 여성으로서 느끼는 자유도 조금씩 생기고 있던 참이었다. 하기 싫은 것부터 하나씩 줄여나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사는 것은 아니었다. 젊은 여성 역할 수행을 너무 오래 했던 탓일까. 이제 와서 내가 원하는 모양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정신을 사용한 창작과 그 창작을 포장하기 위한 용도로만 몸을 사용했다. 몸을 위한, 몸이 원하는 삶의 방식은 지금껏 생각해보질 못했다.

 

(189)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해서 땅에 발을 붙이고, 정신과 몸을 붙여내고야 만다. 반면에 나는 너무 오랫동안 머리만으로 산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몸을 놓고 살았다. 감정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느끼는 방법이 대체 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겪는 공황은 머리의 파업일지도 모르겠다. 정신적으로 한계를 느끼니 몸 전체를 셧다운시켜서 몸도 머리도 멈추게 해버리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04-205)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정신과 몸은 사실 하나였다. 영혼, 정신, 마음이라고 불리는 그것들 모두가 결국 자체였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눈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찰나의 순간으로 결정되는 부재를 감당할 수 없어서 온몸으로 영혼의 실재를 기도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존재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닿으려고 노력하면서, 그들의 부재와 나의 외로움을 달래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그들의 몸과 함께 사라졌다. 나는 내 몸을 가지고 그들의 기억과 함께 살고 있다. 내가 살아 있고, 기억하는 동안 내 세계에 그들은 함께 있다. (다만 영혼이나 유령으로서가 아니가 기억으로서.)

 

(205-206)

나는 자신의 약함을 아는 인간을 좋아한다. 약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탐구하는 인간이 좋다. 살아나가는 두려움을 아는 인간이 좋다. 살아갈 방법을 무언가에 의탁하지 않고 끊임없이 스스로 생각하려는 인간이 좋다. 자신의 방법을 전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이 좋다. 더 탁월한 방법으로 말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이 좋다. 겪기 않은 이야기로 끝없이 상상할 수 있는 인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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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4
제인 오스틴 지음, 원영선.전신화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얼마 전에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이야기해주면서, 작년 2025 12 16일이 제인 오스틴 탄생 250주년 되는 날이라고 했잖아. 그래서 그 즈음에 제인 오스틴 관련된 책들이 많이 출간되었어. 아빠도 그런 책들 중에서 읽어보려고 두 권을 샀단다. 그런데 제인 오스틴에 관한 책들을 읽어보기 전에, 먼저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을 읽어보면 그 책들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 아빠가 읽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오만과 편견> 한 권뿐이었거든.

그래서 예전에 사두고 책장에 재워두었던 제인 오스틴의 <설득>이라는 소설을 이번에 읽었단다. 이 책도 지난번에 이야기해준 <오만과 편견>과 마찬가지로 술술 잘 읽혔단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아 보는 것 같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야기 전개 방식이 <오만과 편견>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어. 책을 읽다 보면 <오만과 편견>에서 본 캐릭터들이 생각하곤 했어. 제인 오스틴이 살던 시절 소설을 쓰는 방식이 그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

 

1.

그럼 바로 소설 <설득>을 이야기해보자. 서머싯셔 켈린치 홀에 월터 엘리엇 경이라는 홀아비가 있었단다. 1760년생으로 당시 나이는 54세였어. 외모를 잘 관리하여 54살 답지 않게 젊어 보였어. 하지만 허영심이 많았단다. 그에게는 딸이 셋 있었어. 첫째 딸 스물아홉 살 엘리자베스, 둘째 딸 스물일곱 살 앤, 셋째 딸 스물세 살 메리.

첫째 딸 엘리자베스가 열여섯 살 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엘리자베스는 집안일을 도맡아 했단다. 엄마의 친구이자 대모인 레이디 러셀이 그들의 살림을 가끔씩 도와주고 이런 저런 조언도 해주었단다. 막내 메리는 찰스 머스 그로브와 결혼하여 아이들 두 명을 낳았어. 엘리자베스의 아버지는 엘리자베스를 사촌인 윌리엄 윌터 엘리엇과 결혼시키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단다. 월터 엘리엇 경은 집안의 경제 사정이 좋아지지 않아서 첫째 딸 엘리자베스에게 이야기하고 함께 고민을 했단다. 그들이 알고 지내는 변호사 셰퍼드 씨와 레이디 러셀에게도 조언을 구했고, 그들은 결국 켈린치 홀을 떠나 바스로 이사가기로 했단다.

켈린치 홀은 세를 주기로 했어. 식구들이 모두 착잡하겠구나. 세입자로는 셰퍼드가 크로프트라는 해군 제독을 소개해주었어. 크로프트 제독은 부인만 있고, 자녀는 없었어. 크로프트의 부인은 예전에 켈린치 홀 인근에 살았던 프레더릭 웬트워스의 누나였단다. 그런데 그 프레더릭 웬트워스와 둘째 딸 앤은 사연을 가지고 있었어. 8년 전 앤이 열아홉 살 때 프레더릭과 사랑에 빠진 적이 있었거든. 둘은 결혼까지 약속했지만, 당시 월터 경과 레이디 러셀이 반대를 했어. 프레더릭이라는 사람이 앤에게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 착했던 앤은 아버지와 대모의 말을 들었어. 그렇게 앤과 프레더릭은 헤어졌단다. 하지만 한 동안 앤은 무척 힘들어했어. 그리고 프레더릭은 그 이후 그곳을 떠나 해군에 들어가 복무했단다. 그는 일을 잘 해서 진급도 빠르게 하고, 돈도 많이 벌었고 지금은 대령이 되었단다. 그런 프레더릭의 누나가 켈린치 홀로 이사 온다고 하자 앤의 마음은 복잡해졌단다.

앤은 켈린치 홀을 떠날 구실이 없을까 고민했는데, 동생 메리가 병이 나서 보살펴 줄 사람이 필요하여 앤이 메리의 집에 갔단다. 메리는 약간 푼수라고 해야 할까? 진중하지 못하고 가벼운 성격의 소유자란다.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의 동생들이나 엄마처럼 말이야. 메리는 남편 찰스와 관계도 썩 좋아 보이지 않았어. 메리의 집은 어퍼크로스 커티지라는 이름이었고, 시댁은 근처에 있는 그레이트 하우스였단다. 메리에 집에 온 앤도 예의상 그레이트 하우스에 인사하러 다녀왔단다. 메리의 시어머니는 메리를 썩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어.

크로프트 제독 부부는 이사 오고 나서 주변 사람들을 초대하고 또 이웃들을 방문했단다. 그런 것이 당시 영국의 사교 활동 중에 하나인 것 같구나. 크로프트 제독 부부는 메리의 집도 방문했어. 앤도 어쩔 수 없이 크로프트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어. 크로프트 부인은 앤과 프레더릭의 관계를 몰랐어. 앤과 프레더릭이 사귀던 시간이 워낙 짧았거든. 크로프트 부인이 말하길, 동생이 조만간 방문한다고 했어. 앤에게 있어 피하고 싶은 순간이 다가오고 있구나.

메리의 남편 찰스는 동생들이 많은데, 그 중에 두 여동생은 그레이트 하우스에 머물고 있고, 남동생 리처드는 2년 전에 해군 복무 중에 그만 죽고 말았대. 그런데 당시 리처드는 프레더릭과 같은 부대에서 복무를 했었다는구나.

프레더릭 웬트워스 대령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어. 앤은 그의 만남을 피하려고 애썼지만, 만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어. 프레더릭이 그레이트 하우스에 방문했을 때, 메리의 큰 아들 찰스가 낙상으로 큰 부상을 입는 사고가 났어. 앤은 자신이 찰스를 봐줄 테니 메리와 제부에게 그레이드 하우스에 다녀오라고 했단다. 앤은 그렇게 프레더릭과 만남을 피할 수 있었어. 하지만 언제까지 피할 수는 없었단다.

얼마 후 프레더릭이 메리의 남편 찰스와 사냥을 가기 위해 어퍼크로스 커티지에 찾아왔단다. 그때 프레더릭과 앤은 잠깐이지만 눈이 마주쳤어. 앤이 생각하기에 프레더릭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고, 오히려 더 세련되어 보였어. 그에 반해 자신은 나이도 많이 들어 보인다고 생각했어. 더 이상 자신은 프레더릭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생각도 한 것 같아. 나중에 메리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프레더릭이 이야기하기를 앤이 너무 많이 변해서 못 알아볼 뻔했다고 했대. 그 이야기를 듣자 앤은 더 실망하게 되었어.

번듯한 해군 대령이 결혼을 안다고 미혼으로 지내고 있자, 주변 사람들은 프레더릭에게 결혼 이야기를 많이 물어본 모양이야. 프레더릭은 공개 구혼을 했어. 마음 잘 맞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지 결혼한다고 말이야. 누나인 크로프트 부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했단다. 그러자 메리의 남편인 찰스의 여동생들인 루이자와 엘리에타가 프레더릭에게 급관심을 가졌단다. 그러자 난감한 상황이 된 사람이 한 명 있었어. 루이자와 엘리에타의 사촌인 찰스 헤이터라는 사람이야. 프레더릭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헨리에타와 찰스 헤이터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내심 결혼도 생각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프레더릭이 오고 나서는 찬밥 신세가 되었어.

 

2.

앤은 메리의 집에 머물면서 사교 모임에 참석을 했는데,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과 만남은 더 자주 함께 했어. , 메리와 찰스 부부, 헨리에타, 루이자, 프레더릭. 이렇게 여섯 명은 자주 모임을 갖게 되었어. 하지만 앤은 프레더릭과 일부러 거리를 두어 많은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어. 루이자가 프레더릭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했으니 거리 두기도 편했어.

그들은 라임이라는 지역에 놀라갔다가 프레더릭의 친구들인 하빌 부부와 벤윅 대령을 만났어. 벤윅 대령은 얼마 전에 약혼녀를 잃고 상심이 큰 상황이었어. 그런 사정을 알게 된 앤은 벤윅 대령을 위로해 주고 공감해 주었단다. 그런데 그들이 놀라간 라임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나 생겼어. 루이자가 장난하다가 낙상하여 머리를 다치게 되었어. 다들 놀라서 당황하고 주저할 때, 프레더릭과 앤이 침착하게 대응하고 판단하여 응급 조치를 잘 했단다. 그러면서 앤과 프레더릭은 대화를 나누긴 했는데 주로 사무적인 대화 몇 마디뿐이었어.

앤은 메리의 집에서 두어 달 머물고 이제 새로운 집인 바스의 캠던 플레이스로 돌아왔단다. 아버지와 엘리자베스가 그곳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분위기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어. 알고 보니 그 이유는 사촌 윌리엄 월터 엘리엇이 방문해서 그렇구나. 아버지가 예전에 엘리자베스와 결혼을 시키려다가 어긋나버린 그 윌리엄이야. 당시 윌리엄은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아버지가 엄청 싫어했는데, 얼마 전에 아내를 잃고 이번에 와서 용서를 빌었다고 했어. 오히려 아버지는 이제 윌리엄을 좋게 생각하여 엘리자베스의 배필로 생각하고 있었어. 그리고 윌리엄은 아버지의 법적 상속인이기 때문에 윌리엄이 엘리자베스와 연결되어야 아버지의 재산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셨어. 그런데 앤이 라임에 친구들과 놀러 갔다가 그곳에서 마주친 사람이 있었는데 나중에서야 그 사람이 사촌 윌리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그가 집에 와 있다고 하니 다소 놀랬어. 윌리엄도 외출에서 돌아와 앤을 보고 라임에서 마주쳤던 일을 기억하고 놀랬어.

….

어느날 라임에서 놀라온 소식이 전해져 왔어. 루이자가 벤윅 대령과 결혼했다는 거야. 두 사람의 성향이 너무 달라서 두 사람의 결혼 소식에 앤은 놀랬단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루이자가 낙상 사고로 다쳤을 때 라임에서 오랫동안 머물게 되었는데, 그때 벤윅 대령과 많은 시간 갖게 되면서 관계가 발전했다고 하더구나. 아무튼 앤에게는 놀라운 소식이었어.

프레더릭이 바스 지역에 방문하면서 앤과 또 마주치게 되었단다. 앤이 식구들과 연주회를 갔는데 그곳에 프레더릭도 왔던 거야. 앤이 사촌인 윌리엄과 함께 있었는데, 이를 본 프레더릭은 질투심이 일어났단다. 질투심, 사랑.. 이런 것은 내가 조절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프레더릭도 사실 8년이 지나도 여전히 앤을 마음에 두고 있던 거야. 윌리엄은 아버지의 뜻과 달리 엘리자베스가 아닌 앤에게 점점 접근하는 것 같았어. 앤이 생각하기에 윌리엄이 친절하고 교양 있어 보이지만, 앤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프레더릭이 꽉 자리잡고 있었단다.

바스는 앤이 예전에 다니던 학교가 있던 곳이기 때문에 동문들도 만날 수 있었단다. 그 중에 학교 선배였던 스미스 부인도 만났어. 스미스 부인은 안타깝게도 가난한 미망인이 되어 혼자 지내고 있어서 앤이 위로해주기도 했어. 그런데 얼마 후에 스미스 부인이 이야기하기를, 앤이 윌리엄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이야기했어. 앤은 강하게 부정했단다. 그가 청혼을 해 온다고 해도 거절할 거라고 이야기했어. 그러자 스미스 부인은 예전에 윌리엄을 알고 지냈다면서, 그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

윌리엄은 자신의 남편과 무척 친한 사이였다고 했어. 그러나 윌리엄의 속은 시커멓고,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이고 기회주의자라고 악담을 했어. 윌리엄이 결혼한 것도 돈을 보고 결혼한 것이라고 했어. 결혼한 다음에도 아내에게 무관심했다고 했어. 스미스 부인의 남편 스미스 씨는 생전에 윌리엄에게 재정적 도움도 많이 주었다고 했어. 윌리엄은 스미스 씨에게 계속 지출을 유도하고 그랬대. 그래서 스미스 씨는 결국 파산까지 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결국 스미스 씨가 죽고 나서 스미스 부인은 어려운 생활을 하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윌리엄 때문인 거야. 스미스 부인은 윌리엄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아는 척도 하지 않고 거절했다는구나. 윌리엄이 다시 바스 지역에 온 이유도 있다고 했어. 최근에 월터 엘리엇 경이 클레이 부인이라는 사람과 가깝게 지냈는데 둘이 결혼할까 걱정되어 온 것이라고 했어. 그들이 결혼하여 아들이라도 낳으면 윌리엄은 엘리엇 경의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게 되니까 말이야. 바스에 와서 상황을 보면서 월터 엘리엇 경과 클레이 부인의 결혼을 방해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라고 했어. 최고의 빌런이구나.

얼마 후 프레더릭은 앤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어. 8년 전 마음은 아직 변함이 없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라고그 편지를 받은 앤은 프레더릭의 마음을 확인하고 프레더릭의 마음을 받아주었단다. 그렇게 둘은 결혼을 하게 되었어. 8년이나 늦은 결혼이지만, 그만큼 더 성숙하고 더 많은 사회 경험을 하고 나서 하는 결혼이니 더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 8년 전 결혼하지 않고 8년이 지난 후의 결혼이 더 완벽한 결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

이번에 읽은 소설 <설득>은 제인 오스틴의 마지막 작품이자 유작이라고 하더구나. 제인 오스틴이 41살의 어린 나이로 죽고 나서, 가족들에 의해 출간되었다고 하는구나. 브론테 자매들도 그렇고, 제인 오스틴도 그렇고, 유능한 작가들의 요절이 참 안타깝구나. , 앞서 이야기했던 제인 오스틴 탄생 250주년 기념 책들을 읽어볼까. 아니면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을 좀더 읽어 볼까, 살짝 고민이 되는구나. 250주년 기념으로 나온 책들인데 시간이 더 늦어지면 의미가 줄어들 것 같은 생각도 드니, 조만 간에 읽어봐야겠구나. 그리고 제인 오스틴의 다른 소설들도 천천히 하나씩 찾아 읽어봐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서머싯셔 켈린치 홀의 월터 엘리엇 경이 재미 삼아 읽는 책은 준남작 명부뿐이었다.

책의 끝 문장: 그러나 국가적인 중요성보다 가정적인 미덕으로 더 돋보이기도 하는 직업에 속한 탓에, 그녀는 마치 세금을 지불하듯 만약의 일을 걱정하며 살아야 했던 것이다.

 


앤은 지금 그가 심지 굳은 성품이 우월하고 행복해진다는 이론을 펼쳤던 자신이 옳았는가를 자문해보고 있을지, 그리고 다른 성격들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나름의 균형과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유연한 성품도 때로는 결단력 있는 성품만큼이나 행복에 필요한 것이라고 그 또한 느끼지 않을까 싶었다. - P157

"아니, 아니에요. 그건 남성의 본성이 아니지요. 지조 없이 사랑하는, 혹은 사랑했던 사람을 잊는 것이 여자의 본성이 아니라 남자의 본성이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 반대라고 믿어요. 우리의 신체적 구조와 정신적 구조엔 진정한 유사성이 있다고 믿으니까요. 남자의 신체가 더 강하듯이 감정도 더 강하니, 그만큼 고된 일도 견딜 수 있고 거친 풍파도 헤쳐나갈 수 있는 것이죠." - P308

"아!" 앤이 열렬한 목소리로 탄성이 내지르며 말했다. "당신이, 그리고 당신 같은 남자들이 느끼는 모든 것을 온당하게 대접할 수 있길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따뜻하고 신실한 감정을 하찮게 본다면 벌받을 일이겠지요. 제가 감히 진실한 애정과 절개는 오로지 여자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경멸받아 마땅할 겁니다. 아니, 저는 남자들이 결혼해 살면서 온갖 위대하고 선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어요. 꼭 필요한 일을 위해 애쓰고, 가정에서 참을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답니다. 다만, 이런 표현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대상이 있는 한 그렇다는 얘기지요. 제 말은 당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살아 있고, 그 여자가 당신을 위해 사는 동안에 한해서라는 거예요. 제가 여자들을 위해 주장하는 특권이란-별로 시기할 만한 게 아니니 탐내실 필요는 없어요-더 이상 대상이 존재하지 않아도, 희망이 사라져버린 뒤에도, 여자는 남자보다 더 오래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 P311

"세상에!" 그가 소리쳤다. "그리하셨겠군요! 제가 이룬 모든 성공의 정점으로 그것을 생각해보지 않았거나 소망하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제 자존심, 지나친 자존심 때문에 다시 청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당신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눈을 질끈 감은 채 당신을 이해하려고도, 제대로 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보면, 모든 사람을 다 용서해도 저 자신만의 용서할 수 없게 된답니다. 육 년의 세월을 그렇게 떨어져 힘들게 보내지 않아도 되었겠지요. 그런 고통스러운 감정은 전에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어요. 제가 누렸던 축복은 모두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는 만족감에 익숙해져 있었으니까요. 명예로운 노고와 정당한 보상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왔지요. 인생의 패배를 겪은 다른 위대한 인물들처럼." 그는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저도 제 의지를 누르고 운명을 따르도록 해야겠습니다. 마땅히 받아야 할 몫 이상의 행복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하겠지요."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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