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지조론>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된다.

지조란 것은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 지조가 교양인의 위의(威儀)를 위하여 얼마나 값지고 그것이 국민의 교화에 미치는 힘이 얼마나 크며 따라서 지조를 지키기 위한 괴로움이 얼마나 가혹한가를 헤아리는 사람들은 한나라의 지도자를 평가하는 기준으로써 먼저 그 지조의 강도를 살피려 한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음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의 영리만을 위하여 그 동지와 지지자와 추종자를 일조(一朝)에 함정에 빠뜨리고 달아나는 지조 없는 지도자의 무절제와 배신 앞에 우리는 얼마나 많이 실망하였는가.”

 

(63)

최승호 교수는 <청록집>에 실린 조지훈의 시를 분석한다.

조지훈은 우주를 보편생명의 흐름으로 보고 있다. 이 보편생명의 흐름 속에서 진선미를 구하고, 거기서 시정신을 건져 올리려 하고 있다. 또한 인간 자신을 보편생명 속에 잘 조화되어 있는 개별생명으로 보고 있다. 보편생명의 일부로서의 개별생명은 절대적으로 선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절대적으로 선한 개별생명과 보편생명 사이의 교감으로 미가 발생한다는 것에 대한 믿음이 그의 서정시학의 정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파시즘이 이 나라를 점령한 시점에서는 하나의 방법적 대응전략일 수가 있었다. 이는 마치 2차대전 전후에 생명사상을 가지고 나와서 그것으로써 파시즘과 대결하려고 했던 중국의 동방미(東方美)와 유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파시즘이 지닌 가공할 만한 파괴력에 맞서서, 인간이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길은 모든 생명의 고향인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는 인식에 이른 것이다.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조지훈의 초기시학이 출발하는 것이다.”

 

(74)

조지훈은 반대편이었다. 일제말기 수많은 문인이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귀축영미를 저주할 때, 그는 침묵하거나 순수시를 통해 조선의 전통과 불교적 선()에 심취하였다. 그리고 해방공간에서 너도나도 인민과 조국, 계급을 주창할 때도 자신의 패턴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111)

다시 시란 무엇인가. 지난 번에는 자연과 인생을 통해서 보는 시전통의 생명적 본질에 대해서 생각한 나머지 나는 시를 하나의 도()라고 보고 인간의식과 우주의식의 완전일치의 체험이라고 말하였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시의 생명을 체험하는 자로서 시인은 자연의 사랑을 인생의 괴로움에 통하게 하고 인생의 괴로움을 자연의 사랑에 통하게 하는 창조적 계기를 찾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시인은 무엇으로 시를 창조하는 것인가. 창조는 형수(亨受)와 구현의 합치된 개념이다.

바꿔 말하면 내용과 형식이 융합된 상태이다. 그러면 무엇이 시인의 안에서 시를 형수하고 시를 구현하는 것인가. 나는 먼저 보람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하여 저 자신의 사상을 가질 것과 시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저 자신의 사상을 재편성해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시를 위한 사상의 재편성이란 말은 다시 말하면 사상의 감성화라는 말임을 미리 말해 둔다.

 

(127)

고루거각이 어찌 나의 멋이 될 수 있겠는가. 다만 멋 아닌 멋으로 멋을 삼아 법당을 돌고 싶으면 법당을 돌고, 염주를 세고 싶으면 염주를 세고, ()을 읽고 싶으면 경을 읽으며, 때로 눈을 들어 먼 신을 바라고 때로는 고개 숙여 짐짓 무엇을 생각나니 나의 선()은 곧 멋밖에 아무것도 없는가 보다. 오늘을 모르는 세상에 내일을 생각함은 어리석은 일일러라. 내일을 모른다 하여 오늘에 집착함은 더욱 어리석은 일일러라.

다만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나를 사랑하지 않으며 남을 도우려고도 않아 들녘에 피었다 사라지는 이름 모를 꽃과 같고자 하노라.

 

(135)

1950년대 고래대학교 국문과 제자들 사이에는 지다(知多)’ 선생으로 통하셨다는 이야기를 제자분들로부터 들었다. 워낙 박학다식이라서 지어 올린 별호였다고 한다. 그때도 아버지께서는 빙긋이 웃으시면서 그 위에다 내 성()을 올려놔 봐. ‘조지다가 되는군

좌중이 박장대소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68)

조지훈은 변절행위를 매섭게 질타한다.

변절이란 무엇인가. 절개를 바꾸는 것. 곧 자기가 심신으로 이미 신념하고 표방했던 자리에서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철이 들어서 세워놓은 주체의 자세를 뒤집은 것은 모두 다 넓은 의미의 변절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욕하는 변절은 개과천선의 변절이 아니고 좋고 바른 데서 나쁜 방향으로 바꾸는 변절을 변절이라 한다. 일제 때 경찰에 관계하다 독립운동으로 바꾼 이가 있거니와 그런 분을 변절이라 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독립운동을 하다가 친일파를 전향한 이는 변절자로 욕하였다.”

 

(189)

조지훈은 4월혁명의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혁명 대열에 직접 참여하고, 혁명 후에는 이의 성공을 위해 다른 지식인들이 하기 어려운 발언을 쏟아냈다. 이 논설의 마지막 부분이다.

조용히 힘을 기르라. 먼저 황폐한 학원을 재건하고 출발전야의 제2공화국이 제군의 피를 헛되이 하지 못하도록 깨끗하고 거창한 압력을 주라. 반동세력의 대두를 막기 위하여 그들을 국민 앞에 고발하고 주권자의 위신을 회복하기 위하여 국민을 계몽하는 선두에 나서라. 무엇보다 먼저 제군들이 그것을 분별하는 눈을 마련해야 하고, 제군들이 먼저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

우리가 바라는 바는 아니지만, 제군들의 고귀한 피가 또 한 번 뿌려져야 할 때야 올런지도 모른다는 의구는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그런 불행이 오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는 제군의 발언권이 증대되어야 하고, 그 발언권은 제군들이 자중하는 위의와 단결과 정화 속에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191)

조지훈은 이 시기 누구 못지않은 영향력 있는 논객이었다.

혁명정신은 어디로 갔는가? 참으로 혁명정신은 지하에서 통곡하고 병원의 베드 위에서 저주하고, 학원의 캠퍼스 구석구석에서 침통한 우수와 뉘우침의 안개 속에 싸여 있다. 오직 순정과 의분으로 혁명에 임했던 학생들이 독재정권을 무너뜨림으로써 자족하고 물러설 때 식자들은 그것을 찬양하고, 그런 자세가 어쩌면 새로운 혁명의 전형으로서의 영예를 성취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기대는 마침내 바로 그대로 맹점이 되고 말았다. 혁명정신은 과연 어디로 갔는가?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먹는다는 속담대로 피는 학생들이 흘리고 공은 정치가들이 따로, 민중의 신임은 혁명대변 세력이 받고, 칼자루는 반혁명 세력이 쥐었다는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은 바로 인세무상(人世無常)의 그것을 다시 한번 깨우쳐 준다.”

 

(214-215)

조지훈이 5.16 초기에 군사쿠데타를 수용하고 재건국민운동의 요강을 작성하는 등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재론은 변함이 없었다. ‘요강 <혁명은 이 나라를 누구에게 맡겨야 하나?>에서 다섯 가지 인재의 자격론을 피력한다.

첫째, 지조가 굳고 신념이 있는 사람을 골라야 한다. 사상적으로나 행동적으로 변화의 재주가 넘치는 사람은 믿을 수가 없다.

둘째, 식견이 있고 경륜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나라와 겨레를 위한 문제의 한 부분의 연구도 없는 사람과 자기의 포부를 실천할 경륜이 없는 사람은 백해무익이다.

셋째, 청렴결백하고 공명정대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 부패가 오늘의 위기를 조성한 것을 생각하면 그까짓 하찮은 권모술수를 가지고 정치적 역량인 듯이 자타가 공인하는 그런 부류는 소용이 없는 것이다.

넷째, 정성스럽고 삼가면서도 과단성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정성이 모자라면 세밀하지 못하고 허술하다. 판단성이 없으면 잘라야 할 것을 자르지 못하고 시작해야 할 것을 때를 놓치고 만다. 망설이다가 망치지 않으려면 박력이 있어야 한다.

다섯째, 제 먹을 것을 가진 사람, 가난을 알면서도 가난에 포원이 지지 않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 무식하고 돈 없는 자들이 국회의원이 되자니 무슨 짓이든 해서 되어 가지고는 그 벌충으로 들인 밑천을 뽑아내자니 나쁜 짓을 하지 않고 무슨 수가 있는가. 가난을 모르면 백성의 마음을 모르기 쉽다. 그러나 너무 가난에 포원이 된 사람은 돈과 권력의 유혹에 약할 뿐 아니라 생각이 편벽된다.”

 

(239)

이 길이든 저 길이든, 우리가 찾는 길은 우리의 역사적 현실에 가장 적합한 길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길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풍토에 맞추어 우리 손으로 닦은 길이 최선의 길이라는 것이 대원칙이지만, 이와 같은 길은 기성 이데올로기의 강력한 힘이 혐오하고 저해하고 봉쇄하고 파괴하려는 길이다. 그러나 우리는 조상이 닦아 놓은 길이든 외국 사람이 닦아 놓은 길이든 간에 그것을 오늘 우리가 가야 할 길로 선택할 때는 대폭으로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255)

<20세기의 한국>을 조감한다는 것은 곧 우리 근대문화의 거의 전 과정을 부관(俯觀)하는 일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희랍 델피의 신전에 새겨진 경구로서 소크라테스를 통하여 알려진 교훈이거니와 오늘의 한국-우리들의 민족적 자아의 모습을 찾는데 일조가 될까하여 이 책을 엮었다. 제 눈으로 제 눈을 볼 수는 없다. 역사의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볼 수 있을 따름이다.

이 거울에 비친 20세기 세계사상의 한국의 모습이 과연 얼마나 정확한 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자아는 각자가 체득할 수밖에 없으니 제 모습을 찾는 일깨우는 것만으로 이 책의 사명은 다한다고 할 수 있다.

 

(260)

이란 말이 미적인 것의 한 특수한 형상으로서 한국 민족의 예술적 생활의 표현 목표와 이념 또는 미가치의 한 표준을 의미하고 있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은 오랜 세월은 두고 우리 민족의 미적 체험속에 체득되고 제작과 행위에서 수련되어 왔기 때문에 에 대한 취미성과 감수성은 우리 민족의 민중생활 일반에 보편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렇게 이라는 특수한 미에 대한 감수성과 취미가 한국적 미의식의 중요한 특성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미적개념으로서의 의 본질 내용은 지극히 불분명하고 더구나 그것의 한국적 미의식의 구조상의 위치와 관계 내지 의미에 대한 이론적 반성과 고구(考究)는 일찍이 있어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한국적 미의식의 구조를 밝힘으로써 의 위치를 찾고, 아울러 미적 범주로서 의 내용과 나아가서는 생활이념으로서의 멋의 지향을 밝혀보려는 것이 본고가 의도하는 바 주체이다.

 

(296-297)

절정

 

나는 어느새 천길 낭떠러지에 서 있었다. 이 벼랑 끝에 구름 속에 또 그리고 하늘가에

이름 모를 꽃 한 송이는 누가 피어 두었나

흐르는 물결이 바위에 부딪칠 때 튀어 오르는 물방울처럼 이내 공중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 그런 꽃잎이 아니었다.

 

몇만 년을 울고 새운 별빛이기에 여기 한 송이 꽃으로 피단 말가

죄 지은 사람의 가슴에 솟아오르는 샘물이 눈가에 어리었다간 그만 불붙는 심장으로 염통 속으로 스며들어 작은 그늘을 이루듯이 이 작은 꽃잎에 이렇게도 크낙한 그늘이 있을 줄은 몰랐다.

 

한 점 그늘에 온 우주가 덮인다 잠자는 우주가 나의 한 방울 핏속에 안긴다 바람도 없는 곳에 꽃잎은 바람을 일으킨다 바람을 부르는 것은 날 오라 손짓하는 것 아 여기 먼 곳에서

지극히 가까운 곳에서 보이지 않는 꽃나무 가지에 심장이 찔린다.

무슨 야수의 체취와도 같이 전율할 향기가 옮겨 온다

 

나는 슬기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기에 한 송이 꽃에 영원을 찾는다. 나는 또 철모르는 어린애도 아니었다 영원한 환상을 위하여 절정의 꽃잎에 입맞추고 길이 잠들어버릴 자유를 포기한다

 

다시 산길을 내려온다 조약돌은 모두 태양을 호흡하기 위하여 비수처럼 빛나는데 내가 산길을 오를 때 쉬어가던 주막에는 옛 주인이 그대로 살고 있었다. 이마에 주름살이 몇 개 더 늘었을 뿐이었다. 울타리에 복사꽃만 구름같이 피어 있었다 청댓잎 잎새마다 새로운 피가 돌아 산새는 그저 울고만 있었다.

 

문득 한 마리 흰 나비! 나비! 나비! 나를 잡지 말아다오. 나의 인생은 나비 날개의 가루처럼 가루와 함께 절명(絶命)하기에 - 아 눈물에 젖은 한 마리 흰나비는 무엇이냐 절정의 꽃잎을 가슴에 물들이고 사()된 마음이 없이 죄 지은 참회에 내가 고요히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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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동사의 멸종 - 사라지는 직업들의 비망록 한승태 노동에세이 3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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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한승태 님의 <어떤 동사의 멸종>이라는 책이란다. 책 제목만 봤을 때는 국어 관련 교양 서적인 줄 알았단다. ‘동사‘라는 말이 있어서 그렇게 생각했지. 사라진 우리말에 대한 이야기 정도? 책 소개를 읽어 보니, 뜻밖에도 노동 에세이라고 하는구나. 노동 에세이라는 장르도 처음 들어보는 것 같은데, 이 책은 한승태 님이 출간한 세 번째 노동 에세이라고 하는구나. 미래 AI가 발전하면서 사라질 직업에 관한 이야기라고 소개되었어. 제목이 왜 어떤 동사의 멸종이냐면, AI에 의해 사라지는 직업을 나타내는 동사, , ‘청소하다’, ‘요리하다’, ‘운반하다’, ‘전화받다를 의미한단다. 먼저 읽은 이들의 평점이 좋고, AI 관련 내용이기도 해서 함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지은이는 한승태 님은 대학 졸업 후 작가를 꿈꾸며 신춘문예에 도전을 했는데 실패하고 자신이 직접 몸 담았던 노동의 경험을 살려 에세이를 써 오셨단다. 그가 한 일은 꽃게잡이 배, 주유소, 양돈장 등 그야말로 몸을 쓰는 힘든 일들을 했었어. 그 때 일들의 경험으로 적은 것이 앞서 출간한 두 권의 노동에세이이고, 이번에 출간한 것도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글을 쓴 것이란다. 책을 위해 일부러 그런 직업들을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그런 일들을 하고 나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구나.

그의 글에는 현장감이 잔뜩 묻어 있으면서도, 잃지 않는 것은 고도의 유머 감각이란다. 아빠가 책 읽는 동안 몇 번을 뿜었는지 모르겠구나. 그리고 그의 문학적 소양도 엿볼 수 있었어. 작가를 꿈꾸셔서 그런지 책도 많이 읽으신 것 같고, 다른 고전 소설들에서 발췌한 글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단다. 노동 에세이가 이렇게 유쾌상쾌통쾌해도 되는 건가? 그렇다고 비판의 소리가 빠져 있는 것도 아니야. 유머와 재미로 쓴 글들 속에 현실 노동 문제에 대한 비판도 담겨 있단다.

 

1.

이 책에는 문장 속에 어떤 직업이 등장하면, 각주로 해서 숫자가 적혀 있단다. 그 숫자들은 미래에 AI에 의해 대체될 확률을 나타낸 것으로 1에 가까울수록 대체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단다. 어떤 동사의 첫 번째는 전화받다인데, 이것은 콜센터에서 일하는 직원들에 관한 이야기이고, 이 직업의 대체 확률은 무려 0.97~0.99에 달한다고 하는구나. 이미 A/S 서비스는 사람이 아닌 AI가 대신하는 경우가 많고, 아빠도 경험을 하고 있으니 0.99라는 수치가 놀랄만한 수치는 아니구나. 콜 센터의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은 많이 유명하지만, 자세히 몰랐는데 아빠가 몇 달 전에 실화를 바탕으로 한 <다음 소희>라는 영화를 보고 충격을 받을 정도로 열악하고 경쟁이 심한 직업이란 것을 알았어. 이 책에서 언급되는 사례들도 읽다 보면 영화 <다음 소희>라는 영화가 생각나더구나.

이 세상에는 정말 고약한 소비자들이 엄청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왜 이 직업에 퇴사 직원들이 가장 많은지도 알겠더구나. 오늘날 직업들 중에 미래에 AI로 대체되면 어쩌나 걱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콜센터의 직업은 오히려 AI로 모두 대체되었음 하는 생각도 들었어. 콜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하지만, 그 사람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 이런 콜센터 업무는 없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어. 지은이 한승태 님도 어떤 마트의 콜센터에서 일한 경험들을 이야기했는데, 일하는 동안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다고 하면서, 행복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첫 번째 필수 조건은 콜센터에서 일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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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행복하기 위해선 콜센터에서 일하지 않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것이 내가 첫 근무를 마치고 내린 결론이었다. 출발은 무난했다. 다음 날 아침, 이 상태로 과연 전화를 받을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을 안고 정식 출근길에 올랐다. 내 심정을 대변해 주듯 새벽부터 두툼한 봄 안개가 도시를 뒤덮었다. 온 세상이 뿌옇고 축축한 것이 마치 서울이 쌀뜨물 아래 잠긴 것 같았다. 양돈장을 그만둔 이후로 이렇게 아침 일찍 지하철을 타로 나선 게 얼마 만인가. 그나 저나 지하철의 흡입력은 세월이 지나도 변함이 없었다. 진공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듯이 전철역 인근의 직장인들을 무서운 기세로 빨아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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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가 얼마나 정신적으로 힘들었으면 일을 그만 둔 후에도 한동안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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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텅 빈 집에 홀로 있는 동안에도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소프트폰을 대기 상태에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때처럼. 그러다가 전화벨이 울리거나 메시지 수신음이 울리면 매번 깜짝깜짝 놀란다. 내 핸드폰으로 연락을 할 사람은 가족이나 친구밖에 없는 걸 아는데도 그렇다. 시간이 지나면 적응이 될 줄 알았는데 아니다. 매일 첫날 근무를 끝마쳤을 때처럼 똑같이 불안하고 똑같이 짜증 난다. 불안과 짜증이 모든 사람을 대하는 일반적인 상태가 된다. 일을 그만둔 후에도 완전히 예전처럼 되돌아가지는 못한다. 이 일은 사람을 뿌리까지 바꿔놓는다. 전쟁터가 젊은이들을 바꿔놓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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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사라질 동사는 운반하다란다. 화물 창고 종사자들에 관한 이야기로 이 직업의 대체확률도 0.99나 된다고 하는구나. 얼마 전에 택배회사에서 물류 작업을 하던 젊은이가 사망한 사건도 있듯이 이 일 또한 엄청난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힘든 일이란다. 특히 물류센터에서 택배 상하차를 하는 작업을 까대기라고 하더구나. 아빠가 예전에 읽으려고 샀던 만화책 <까대기>가 있는데, 그 만화책의 제목이 이런 뜻이었구나. 그 책도 찾아서 함 읽어봐야겠구나.

지은이는 물류센터에서 직접 일을 했는데, 이곳에는 다양한 이력을 가졌던 사람들,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고 했어.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정형외과의 주요 고객이라는구나. 물류작업이다 보니 주로 밤샘 작업이 많은데, 그렇게 힘들게 밤샘 작업을 하고 퇴근길에 맞는 해돋이는 새로운 희망 마저 갖게 한다고 했어. 노란 해가 아니고, 노오오오란 해가 퇴근하는 이들을 반겨주는매일은 아니지만, 그런 기분은 한번쯤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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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나 처음 일한 날이었는데 새벽 내내 땀 뻘뻘 흘리면서 일하다가 다 끝나고 밖에 나왔는데어떤 건지 알죠? 진짜 그지꼴로 간신히 서 있을 힘만 남아서근데 나가니까 햇빛이 막 쏙아지는데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게, 와아아 세상이 어떻게 그렇게 달라 보이냐. 오기 전엔 나도 걱정 많이 했어요. 20대 때 노가다 좀 뛰었지만 그거야 30년 전 일이고 젊은 애들도 골골댄다는데 내가 할 수 있을까, 처음엔 좀 버벅댔지만 끝날 때쯤 되니까 할 수 있겠더라고. 나는 거뜬히 하는데 등치 막 이따만 한 노랭이들이 힘들다면서 집에 가는 거 보니까 기분도 좋고 흐흐.

그러면서 밖에 나왔는데노오오오란 해가 떠 있는 걸 딱 보고 있는데그럴 뭐랄고 할까, 뭐라고 하면 좋을까나 살 수 있겠다충분히 살 수 있겠다. 그런 기분이 들어요. 그게 참 희한해. 밤새 술 퍼마시다가 해 뜨는 걸 볼 때는 세상에 그렇게 비참한 게 없는데, 내가 너무 별 볼 일 없고 쓰레기 같고 이렇게 또 하루 사느니 그냥 콱 뒤져버리는 게 낫겠다 싶은데, 알 끝나고 해 뜨는 걸 보면 나도 뭔지 모르겠는데, 보고 있으면 그냥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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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멸종될 동사는 요리하다란다. 대체 확률은 레스토랑 요리사가 0.96, 주방 보조는 무려 1.0, 패스트푸드 직원은 0.89로 비교적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단다. 지은이는 대형쇼핑몰 지하에 위치한 뷔페 식당에서 일을 했었대. 요리 자격증? 그런 것은 필요없다고 했어. 정형화된 조리법으로 일할 수 있다고 했어. 뷔페 식당이다 보니 음식을 대량으로 만들어야 했는데 핫 파트(뜨거운 음식 만드는 코너)가 가장 힘들었다고 하는구나. 요리뿐만 아니라 준비, 청소, 마무리까지 해야 하루 일과가 끝나는데, 어떨 때는 요리보다 청소하는 시간이 더 걸린다고 했어. 그리고 이곳은 서열이 엄청 칼 같이 지켜지는 곳이라고 했어. 뭔가 실수를 하면 상사로부터 엄청난 질책을 받는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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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화상을 입힐 수 있는 눈빛이 있다면 신입 직원이 요리하는 꼴을 쳐다보는 주방장의 시선이 그럴 듯싶다. 느닷없이 살기가 느껴져 뒤를 돌아보니 조윤진 씨가, 눈에 조금만 더 힘을 줬다간 관통상까지 남길 법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사극에서 성난 왕이 주변의 신하들을 물리칠 때 사용하는 손짓을 해 보이며 주방으로 들어섰다. 전문가가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절망감과 즐거움을 동시에 안겨주는 경험이다. 불과 칼을 이토록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점에서 요리사들은 현대 사회에서 간달프에 가장 가까운 존재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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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이 책에 고도의 유머 감각이 담겨 있다고 있는데 특히 요리하다의 부분에 재미있는 부분들이 많았어. 동료 직원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은 너무 재미있어서 발췌를 해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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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227)

나는 민재를 보면서 질량 불변의 법칙이야말로 만고 불변의 진리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얘는 뇌세포 만드는 데 쓸 단백질을 끌어다가 죄다 가슴근육으로 바꾼 게 분명했다. 그는 말도 거칠고 체격도 우람해서인지 선준 씨가 한 번도 시비를 걸지 않은 유일한 주방 직원이었다. 나는 이이제이(以夷制夷)를 떠올리며 선준이와 민재가 서로 치고받고 싸우다 둘다 사이좋게 동반으로 그만두는 날을 고대했지만 놀랍게도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사이코는 사이코까리 통한다는 슬픈 진실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별수 없이 그간의 선례를 따라 부검 시 검출되지 않는 독약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는데, 안타깝게도 민재는 이미 내가 만든 요리를 입에 대지 못할 음식으로 평가했기 때문에 내가 그 사랑스러운 물질을 손에 넣는다 하더라도 사용할 기회는 없었을 거다. (그나저나 그런 마법 같은 약이 정말 존재하긴 하는 거예요? 화학자 여러분, 독약이 필요한 선량한 사람들 괴롭히지 말고 대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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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페 식당의 일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무척 고되다 보니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구나.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그만두면 그것은 식당 입장에서도 손해지.. 그만두지 않는 사람들을 뽑으려면 애 있는 엄마를 뽑으라고 하는데, 엄마의 힘은 정말 강력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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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

보면은 직장에서 젊은 사람들 힘센 남자들, 이런 사람들 뽑으려고 하잖아요? 그게 뭘 모르는 거예요. 그런 젊은 애들, 덩치 좋은 남자들은 언제든지 내키지 않으면 그만둬요. 우리 남편만 해도 누구랑 싸웠다고 누가 기분 나쁘게 했다고 그만둔 게 몇 번째예요. 그치만 결혼해서 애까지 있는 여자들은 가게가 망하기 전까진 절대 안 그만둬요. 그런 사람들은 정말 필사적이에요. 절대 중간에 일을 그만두지 않는 사람들은 애 있는 엄마들이에요. 직원들이 자꾸 들락날락해서 골치가 아픈 사람은 애 키우는 엄마들만 뽑아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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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하다라는 동사의 멸종 확률, 그러니까 청소부의 대체확률은 1.0 이라고 하는구나. 우리집 청소도 이미 로봇청소기가 하고 있으니…^^ 지은이는 청소하는 일도 했는데, 40대인 그의 나이가 너무 젊어서 채용이 어렵다고 했어. 청소 일은 대부분이 60대 어르신들이 하시고 간혹 50대가 있다고 했어. 임금도 무척 적고, 식비도 제외되고, 휴가도 일년에 3회밖에 없으며 주말 근무도 자주 있다고 했어. 이 힘든 청소 일도 마치고 나온 퇴근길을 묘사한 글이 있는데, 정말 행복한 퇴근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더구나. 누군가의 퇴근길이 안 그렇겠냐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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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

반면에 퇴근길은 순간순간을 음미해야 하는 정찬이다. 건물을 빠져나오는 순간 피부에 닿는 서늘한 공기, 거리에서 지나쳐 가는 사람들의 얼굴, 뿌옇게 저물어가는 햇빛, 교복 입은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하나하나를 최고급 코스 요리처럼 색, 소리, 냄새 모두 온전하게 맛보고 싶어진다. 서울 사람들이 하루 중 유일하게 인류애를 잠시 회복하는 시기가 이때다. 회사를 빠져나와서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서울의 모든 것이 조금씩 덜 구리고 덜 괴상하게 느껴진다. 가래와 담배꽁초는 조금 줄어든 것 같고 음식 쓰레기를 쪼아대는 비둘기는 조금 덜 흉측해 보인다. 때마침 거리는 언제부턴가 가로수로 각광받기 시작한 벚나무 때문에 홍단 났다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은 풍경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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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에필로그에 쓰다라는 제목으로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어.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커서 작가의 꿈을 갖게 되고 가족을 가지게 되는 이야기를 해주는데, 이 부분도 재미있게 잘 풀어나갔어. 이 부분만 살을 더 붙여서 하나의 장편 소설로 써도 되지 않을까, 싶었단다. 충분히 신춘문예에 당선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이 책을 너무 재미있을 읽어서 그의 다른 작품들도 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노동 에세이라는 장르가 시의성을 띌 것도 같지만, 해악과 재미가 가득 담겨 있다면 괜찮을 것 같아. 그리고 앞으로 나올 신간도 기다려봐야겠구나.

이 책에서 많은 직업군들의 대체확률을 알려주었다고 했잖아.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에는 숫자 대신 지은이의 깊은 진심이 적혀 있었는데, 너무 공감이 가는구나.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이 사무치게 원통한 직업 1 ^^ 재미 있으라고 썼지만, 국회의원도 충분이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싶구나.

아빠가 책 읽고 너희들에 편지 형식으로 리뷰를 쓰고 있는데, 이것도 또한 쉽게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런데, 인공지능의 영역이 넓어지는 것이 과연 사람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할 것인가아빠가 망설임 없이 “NO”라고 이야기하겠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PS,

책의 첫 문장: 새우는 바다의 열매 같은 거야.

책의 끝 문장: 다가오는 시간은 지금보다 아주, 아주 많이 더 추우리라는 사실을.



상대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이럴 때가 가장 두려운 순간이다. 극도로 화가 난 고객이 갑자기 조용해졌을 때, 이런 상황은 상담사에게 이런 이미지로 다가온다. 두 사람이 격렬하게 말다툼을 벌인다. 침이 튀고 삿대질이 오간다. 분노에 눈이 뒤집힌 이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상식적인 방식으로는 더 이상 자신이 느낀 좌절감을 담아낼 수가 없다. 뒷일은 상관없다. 어떻게든 이 분노를 해소해야만 한다. 칼, 망치, 포트, 연필, 젓가락 무엇이든 상대를 한 방에 보내버릴 무기를 찾는다. 이 순간의 정적은 수화기 너머의 고객이 상담사에게 휘두를 언어적 흉기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다는 뜻이다. - P55

첫날 근무가 끝나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는 막장에 다다랐다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막장’은 본래 탄광에서 석탄층이 드러난 갱도의 끝을 가리키는 단어다. 암벽의 석탄을 떼어내야 하는 막장에서의 작업이 탄광에서도 가장 고된 일인 데다 그 위치도 가장 깊숙한 지점이다. 여기에 사회적인 추락의 맥락까지 더해져서 ‘갈 데까지 가버렸다’라는 의미로 굳어진 것이다. 까대기의 면면이 탄광의 막장을 떠올리게 한다. 한여름의 컨테이너는 그 자체로 굴이다. 철판은 한낮의 열기를 그대로 머금고 있어 자정이 넘어 문을 열었을 때도 후텁지근한 열기가 가득 차 있다. 내부엔 바람도 빛도 들지 않고 레인 끝에 달린 희미한 전등 빛에 기대 작업한다. - P139

근무 첫날은 어디서나 정신이 없는 법이지만 식당 근무 경력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주방에서의 첫날은 어느 정도는 생과 사를 오가는 경험이다. 칼질과 불길이 난무하는 가운데 한쪽에선 기름이 끓고 바닥은 미끈거리고 어디 하나 긴장을 풀 구석이 없었다. 똑같이 요리하는 공간이라고 해도 가정 주방과 업소 주방은 엄연히 달랐다. 업소 주방에서는 오감이 극대화됐다. 이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닌 게 각종 재료며 양념을 항상 대용량으로 사용하고 칼은 집에서 쓰는 것보다 훨씬 큼지막하고 화구의 불길은 가정용보다 두세 배는 강력했다. 사방이 맵고 뜨겁고 날카로운 것투성인 데 깔끔하게 정리한 서커스 차력 쇼의 한 귀퉁이 같았다. - P190

당장 먹어도 아무 문제 없는 음식을 버릴 때는 뭔가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는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한 해에도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 시대에 이렇게 멀쩡한 음식을 필요 이상으로 만들어서 버리는 건 범죄다. 하지만 뷔페라는 공간이 그렇다. 마감되기 전까지 빈 접시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이래저래 낭비할 수밖에 없다. 만약 현명한 소비가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어려운 일이라면 최소한 상식적으로 낭비할 수는 없을까? 주방에서 일하기 부적합한 사람은 위생 관념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멀쩡한 음식이 버려지는 꼴을 두고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베이비부머들을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정신이상으로 몰고 갈 만큼 고문하고 싶다면 뷔페 짬밥을 처리하는 알바를시켜보라. - P201

문제는 돈이란 존재는, 얻기 위해 평생을 쏟아부은 다음에야 자신이 그들 삶의 정답이었는지 아닌지를 알려준다는 거다. 다시 말해 삶의 가능성이 말기 위암 아니면 고독사 중 하나만 남았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돈이었는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다. 물론 열심히 돈을 모으지 않은 사람 역시 말기 암, 고독사와 마주한다. 결국 어느 쪽이든 그 순간을 피할 수 없다면 청춘의 굴라그마다 가득했던 외침에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응답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특권이라고 한승태는 생각했다. 단순히 글을 쓰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 글을 쓸 줄 안다는 것, 스스로를 온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다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이 생각을 어떻게 조리 있게 아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결국 대답하지 못했다. - P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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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무한 - 지식과 지혜를 실천으로 이끄는 마음 여행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개정판)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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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랜만에 채사장의 반가운 책이 나왔단다. 그것도 공존의 히트를 쳤던 지대넚얕 시리즈의 제목을 달고 나왔어. 아빠가 독서기록을 찾아봤더니, 채사장의 마지막 책은 2021 12월에 출간된 소설 <소마>를 읽은 것이 마지막이더구나. 한 동안 책도 나오지 않고, 유튜브나 팟캐스트도 안 해서 무엇을 하며 지내나 궁금했었는데, 약간은 갑툭튀 같이 책을 출간되었더구나.

이번 책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라는 제목으로 지대넓얕 시리즈의 완결편이라고 하는구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 2권이 약 10년 전쯤에 나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그것보다 앞선 이야기가 나중에 출간되어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권이 출간되었어. 아빠는 채사장의 팬으로써 이 세 권을 모두 읽었는데, 현실 세계의 지식을 다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권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단다. 0권은 신비를 다루고 있어서 그런지 읽기 쉽지 않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았던 기억이 있구나.

그렇게 지대넓얕 시리즈가 마무리가 된 것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 출간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가 완결편이라고 하는구나. 이전에 출간된 0, 1, 2권이 지식에 관한 이론을 이야기한 것이라면 이번에 출간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는 실천 편이라고 하는구나. 그 전의 지식의 이론을 실천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런데, 책 제목에 ∞(무한)을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지식이라는 것은 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의 모양새를 보면 구부러져 다시 연결되어 있는 모양이잖니, 그러니 지식에 대한 실천도 그렇게 구부러져 다시 돌아온다는 의미를 담겨 있다고 책소개에 적혀 있더구나.

이번 책은 실천의 각 단계를 일곱 단계로 나눠 설명해주고 있어. 발심, 정비, 정진, 견성, 출세, 조망, 전진얼핏 보기에는 불교 용어가 많이 섞여 있는데, 책을 읽다 보면 아빠가 오래 전에 관심 있게 읽은 불교 경전에서 볼 수 있는 용어들이 자주 보였단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책을 읽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아빠가 이해한 측면을 위주로 짧게 이야기를 해볼게.

 

1.

실천 없는 지식은 메마르고 삐쩍 마른 잡초에 비유했어. 지식이라는 것이 지혜가 되려면 실천이 필요하다고 했어. 그러면서 깨달음은 지식과 지혜 중 어느 것에 가까울 것 같으냐고 질문을 던졌는데, 지혜라는 답변을 이끌어낸 질문 같았고, 역시나 실천을 통한 지혜가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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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렇다면 깨달음은 어떠한가? 지금은 깨달음이 뭔가 싶은 마음이 더 클 테지만 일단 처음 듣는 단어는 아니니 대략적인 느낌을 말해보자. 당신에게 깨달음은 어디에 가까운가? 그것은 지식의 영역인가, 아니면 지혜의 영역인가? 모든 것이 그러하듯 깨달음도 이 두 가지 측면이 혼재해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느낀다. 어쩐지 깨달음은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니라 실천적인 지혜일 것이라고 말이다. 물론 지식을 통해 깨달음이 무엇인지 언어로 정리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그 경계가 명확해지고 그에 따라 깨달음의 윤곽을 더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깨달음의 실제 의미를 깊이 이해할 수는 없다. 실천을 통해 그것의 실제 의미가 체화될 때에야 우리는 깨달음에 대한 지혜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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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어떻게 깨달음에 다다를 것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구체적인 방법을 알아보자는 생각에 책을 넘기기 시작했단다. 실천의 핵심은 결국 자신의 내면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것이란다. 먼저 1단계 발심은 세상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것이야. 그 세상 모든 것에는 도 포함되어 있단다. 그리고 우리가 가려는 모든 길을 의심하여 선택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믿는 신념의 한계는 임의성, 제한성, 맹목성을 띤다고 했어. 임의성은 나의 신념이라는 것은 역사적, 시대적, 지정학적, 문화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고, 제한성은 나의 신념은 제한된 체계 안에서만 모순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맹목성은 나의 신념이 타인의 이익이 개입된 결과라고 것을 의미한대.

이런 의심의 단계가 높아지면 내면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우리가 앞서 이야기했던 자신의 내면의 세계로 나아가려는 것에 가장 큰 방해물이 될 수 있다고 하는구나. 내면 자체를 없다고 생각하면 내면으로 간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말이니 말이야. 유물론이라는 것이 내면 세계를 부정하는 것 같지만, 내면을 또 하나의 객관적 탐구의 대상으로 생각하기도 한대. 그렇게 모든 것을 의심하는 단계를 지나면 2단계는 정비란다.

정비는 주변을 정리한다는 의미라고 했어. 여기서 주변은 공간적인 것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공간, 생활 환경을 모두 의미하는데, 특히 시간의 정비는 오늘날 분절된 시간을 연속된 시간으로 환원하는 것을 의미했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면, 오늘날 스마트폰과 SNS 때문에 짤막한 시간대로 나눠 쓰고 있다는 것이야. 내면 세계로 가는데 가장 큰 방해물이기 때문에 이것을 연속적인 시간으로 정비를 하라는 거야. 스마트폰, SNS 시간을 한번에 끊기 어려우니 점점 줄여나가라고 했어. 이건 정말 힘든 실천 사항인 것 같구나. 스마트폰, SNS을 줄이라는 것은 자극을 멀리하라는 의미도 되는데, 이렇게 해야만 고요, 평온을 되찾을 수 있다고 했단다.

3단계 정진에 이르면 내면의 길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야. 이때 사용되는 방법이 명상이란다. 그래서 이 단계에서는 명상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 주었어. 아빠도 명상에 관심이 많지만, 번잡한 일상에서 명상을 하는 시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구나. 이런 책을 읽을 때면, 다시 한번 명상을 규칙적으로 해봐야지 생각하지만, 금방 그 다짐을 사라지고 만단다. 명상은 집중대상이 있는 명상과 집중대상이 없는 명상이 있다고 하는구나. 어떤 명상이든 계속 떠오르는 잡생각 때문에 쉽지 않은 것 같아. 그래도 의도적으로 생각을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어. 그렇게 노력을 하다 보면 나 자신과도 대화하지 않는 상태가 되는데 이것을 침묵이라고 하고, 이 침묵이 바로 명상의 본질인 것이야.

침묵의 단계가 되면 고요와 평온을 얻게 되고 내면의 길로 향하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라고 하는구나. 그리고 행복, 분노, 불행 등 모든 것이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쉽지 않지) 그 이야기는 진정한 행복도 내 마음 속에 있고 진정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결국 내 마음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거지. 고통이라는 것은 내가 어쩔 수 없는 마음의 상태라고 하는데 이 또한 마음에 들어가야 고칠 수 있는 것. 명상이라는 것이 이 모든 것의 첫 관문이라고 이해했단다. 지은이가 명상이라는 단어를 설명해주는 부분이 좋아서 발췌해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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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명상이라는 단어도 그러하다. 사전적으로는 어두울 명()에 생각 상()으로 어두운 가운데 생각함을 의미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어떤 이들은 명상이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고 생각해 명상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인 맥락에서 사용한다. 다른 이들은 똑같이 명상이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기에 명상이라는 단어를 긍정적인 맥락에서 사용한다. 어떤 이는 명상을 실용적인 측면에서 이해해서 명상이라는 단어를 긍정적으로 사용한다. 반면 다른 이는 같은 이유에서 부정적으로 사용한다. 어떤 이는 명상이라는 단어를 진리와 엮어 사용하기도 하고, 다른 이는 현실 도피적인 무엇이라는 전제에서 사용하며, 또 다른 이는 오늘날의 힐링 문화가 만들어낸 상업화된 서비스의 일환이라는 측면에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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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단계는 견성의 단계이고 이 단계는 지식의 실천을 통해서 얻은 지혜의 단계라고 할 수 있대. 견성(見性)이라는 말은 마음을 보다는 뜻으로 자아의 본질이라고 하며, 여러 가지 단어로 부르고 있다고 했어. 불교에서는 아트만 또는 무아(無我)라고 부른다고 하는구나. , 견성이라는 것은 깨달음을 의미하기도 한대. 의식이란 깨어 있음을 의미하고 하는 것으로 깨어 있는 자의 내면 세계를 뜻하기도 한대. 보는 것은 의식의 가장 기본적인 능력이라고 했어. 침묵이라는 것도 보는 자가 보는 것, 관조자를 관조하는 것, 알아차림을 알아차리는 것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하는데, 이 때부터 점점 이해하기 쉽지 않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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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우리는 침묵을 통해 알게 된다. 이 텅 비어 있음은 크기가 없고 경계가 없다. 물질적인 것이 아니고 정신적인 것이 아니다. 존재자가 아니라 존재자의 배경이다. 그렇기에 모든 생명 안에 깃든 의식은 몸의 크기와는 무관하게 의식의 크기를 말할 수 없다. 작은 미물의 내면세계는 좁고, 큰 생물의 내면세계는 넓은가? 그렇지 않다. 그 반대는 어떤가? 개미는 상대적으로 작으니 외부세계가 크다 느끼고, 혹등고래는 상대적으로 크니 외부세계가 작다고 느끼는가? 그렇지는 않다. 의식은 몸의 크기나 신체 능력, 뇌의 크기, 지능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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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단계 출세’, 6단계 조망’, 7단계 전진은 지혜의 단계를 넘어선 삶의 단계란다. 깨달음에 이르렀다고 해서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고 했어. 삶은 계속 되고 문제도 계속 된다고 했어. 내면의 세계를 통해 깨달음에 이르렀지만, 우린 내면의 세계가 아닌 외면의 세계도 있잖니. 그렇게 외면의 현실에 나아가는 것을 출세라고 했어. 현실의 세계에서는 다잡은 고요와 평온에 다시 파동이 일어날 수 있지만, 자신의 본질을 늘 생각하고 세속과 거리를 두라고 하더구나.

6단계 조망은 삶의 조망과 삶 너머의 조망으로 나뉘어 설명해주고 있어. 조망이라는 것이 널리 바라본다는 의미인데,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 의식으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어. 의식으로 바라보다 보면 욕심과 성냄을 줄이고 말과 판단을 멈춰야 한다고 하는데 점점 어려운 주문을 하는 것 같구나. 사실 점점 이해하기도 쉽지 않았어. 이 단계의 글에서는 지혜로운 부모에 대한 글만 눈에 들어와서 발췌해 보았단다. 이 글을 읽다 보면 아빠는 지혜롭지 못한 부모인 것 같구나.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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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

지혜로운 부모를 상상해보자. 모든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듯 지혜로운 부모도 자녀의 안녕을 바란다. 하지만 지혜로운 부모는 그들의 자녀가 안락과 편안함보다는 적절한 위기와 실패에 대면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자녀가 스스로 어린아이의 모습을 깨뜨리고 어른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자아의 본질도 그러하다. 나의 깊은 의식, 수많은 삶을 살아내고 또다시 수많은 삶을 이어나갈 자, 세상을 스스로 일으키고 그것을 관조하는 자도 그러하다. 그 본질은 어른 되고자 할 것이다. 신의 어른이, 모든 의식적 존재의 어른이 되고자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그 모든 신체가 아이의 옷처럼 보이게 할 만큼의 깊은 성정을 원할 것이다. 그때서야 자아의 본질은 어른답게 세상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생과 사를 관통하는 깊은 의식의 관점에서 배움과 사랑은 삶의 이유로서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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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7단계 전진은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삶 속에서 성취를 하는 것으로, 짧게 이야기하면 삶 속에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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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

천천히 눈을 뜬다. 충분히 쉬었다. 침묵은 오래 지속되었다. 세상은 아직 적막하고 창문에 맺힌 물방울은 아침 햇살에 반짝인다. 시계를 본다. 이제 사랑하는 이들을 깨우고 그들을 챙긴 후 출근할 시간이다. 어제는 나도 모르게 욕심을 부리고 화를 내었으며 어리석게 행동하지 않았던가. 오늘은 조금은 줄이리라. 심판이나 죄책감 때문이 아니다. 보상이나 인정 때문이 아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내가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이 세계를 일으킨 것도 나고 굳이 이 신체로 이 세계를 미워하지 않으리라. 이제 시간이 되었다. 몸을 일으켜 세상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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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읽는데 쉽지 않았지만 지은이 채사장 팬심으로 끝까지 읽었단다. 이 책은 지식의 실천의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지만, 실천은 무엇보다 어렵다는 것을 아빠는 잘 안단다. 각 단계의 실천이 모두 어렵지만, 중간에 잠깐 이야기했지만 명상이라는 것은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실천항목이구나. 그것에 내면 세계의 밑바닥까지 가는 것과 이어지지 못하더라고 번잡한 아빠의 마음과 영혼을 단순화시키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구나. 호흡에 집중하고 눈을 감고…. 얼른 독서편지를 마치고 시작해봐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안녕.

 

PS,

책의 첫 문장: 혹등고래가 자신의 하얀 배를 뒤집고 지느러미를 흔드는 것은 다이버에게 보내는 신호다.

책의 끝 문장: 당신이 내면의 바다를 자유롭게 여행하는 아름다운 혹등고래가 되기를 바란다.



인류 역사상 개인이 가장 많은 지식을 알고 있는 시대, 다만 문제는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공허하다. 가슴에 구멍이 난 것처럼 모든 것이 빠져나간다. 그럴수록 스스로를 의심한다. 아는 것이 부족해서인가? 머릿속에 정보와 지식을 더 쏟아 넣어 가득 채우면 나아지려나? 채워보고 채워보지만 그것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는 그 답 역시 이미 알고 있다. 우리가 머리만 키웠기 때문임을 말이다. - P8

사실 이 둘은 다른 사람이 아니다. 이들은 모두 당신 영혼의 두 가지 모습이다. 모든 개인은 한 가지 빛깔의 삶을 살지 않는다. 어느 때 우리는 지극히 세속적인 사람이었고, 다른 때에는 진리를 향한 투사였다. 어느 때에는 세상이 명료했고, 다른 때에는 혼란스러웠다. 과거의 당신 영혼은 치기 어린 젊은이의 영혼이었고, 미래의 당신 영혼은 원숙한 노년의 영혼일 것이다.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오늘의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지금 당신의 영혼은 어떤 빛깔을 하고 있는가? - P29

마음에서 어떤 원인에 의해 하나의 상념이 일어서면 그 즉시 마음은 그것을 끌어당기거나 밀어내려는 이원적 작용을 한다. 이때의 끌어당김과 밀어냄은 개인에게 매력과 혐오의 강렬한 감점으로 체험된다. 그리고 이 강렬한 감정은 상념을 강화하고 사유를 반복하게 함으로써 결국 그 상념이 마음 안의 하나의 존재자로 일어서게 한다. 나의 마음에 드러나는 모든 존재는 끌어당김과 밀어냄의 작용에 의해 생겨나고 눌러앉아 있는 것이다. - P119

어떤가? 당신은 아, 이것을 말하는 것이구나, 하고 그것을 움켜쥐었는가? 우리는 나에게 없는 어떤 멀고 험난한 세계에서 진리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는 나에게 없지만 노력을 통해 얻게 되는 어떤 경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나에게 있었다. 나에게 속하고 나의 바탕이 되는 것. 이것이 자아의 본질이고, 세계를 일으키는 배경이며, 모든 존재의 근원이다. 바탕과 배경이 그러하듯 있다고 말할 수 없고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고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없는 것. 사유와 논리로는 그 앞까지 갈 수 있지만 도달할 수 없고, 그 끝에서의 단 한 번의 체험으로 정확히 알게 되는 것. 이것이 내면의 근원이자 의식의 실체이며 본질적인 자아의 모습이다. 이것이 우리가 찾던 것이다. - P138

이것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의 일상과 나의 감정과 나의 선택과 나의 모든 것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제 그 이유를 안다. 끌어당김과 밀어냄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감정과 상념과 느낌과 욕망에 연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그 사랑은 커져간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행동을 좋아하고 그 좋아함은 커져간다. 나는 내가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고 그 미움을 키워간다. 나는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싫어하고 그 싫어함을 키워간다. 영원한 것은 없기에 나의 경향과 쏠림도 조금씩 변해갈 테지만, 나는 나의 행동 양식과 내면의 상태를 섬세히 들여다봄으로써 유의미한 시간의 범위 안에서 과거와 미래의 나를 가늠해볼 수 있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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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내리기 귀찮을 때....
제인 에어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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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인생과 사랑에서 그보다 더 빛나는 말은 없다. 꽃들의 향기, 벌의 선물, 샘물의 첫 모금, 종달새의 서곡, 창조의 칵테일에 얹힌 레몬 껍질-신부란 바로 그런 것이다. 아내는 신성하고, 어머니는 위대하고, 여름 여자는 눈부시다. 하지만 신부는 남자가 인간의 운명과 결혼할 때 신들에게 받는 결혼 선물 가운데 가장 확실한 보증수표다.


(567)

나는 이 도시의 목소리가 무엇인지 찾아야 해.” 내가 말했다. “다른 도시들은 목소리가 있어. 이건 과제야. 나는 찾아야 해.” 내 목소리가 커졌다. “뉴욕은 내게 시가나 건네면서 친구, 나는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어하면 안 돼. 다른 도시들은 그러지 않아. 시카고는 주저 없이 내가 하겠어. 필라델피아는 내가 해야 돼. 뉴올리언스는 나는 전에 했어. 루이빌은 해도 상관없어하지. 세인트루이스는 미안해하고 말해. 피츠버그는 다 말해라고. 그런데 뉴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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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눈보라의 군대는 공기의 나룻배를 타고 음울한 이스트 강 너머에서 도시를 공격했다. 눈은 이미 도로를 30센티미터 두께로 덮었고, 눈 더미는 포위된 도시의 성벽을 기어오르는 접이사다리처럼 차곡차곡 쌓여 올라갔다. 대로는 폼페이 거리처럼 조용했다. 이따금 마차들이 흰 날개의 갈매기처럼 달빛 어린 대양을 스치고 날아갔다. 그보다 수가 적은 자동차들은 비유를 계속하자면- 유쾌하고 위험한 여행에 나선 잠수함처럼 거품 이는 물결을 헤치고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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