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감각 - 새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팀 버케드 지음, 노승영 옮김, 커트리나 밴 그라우 그림 / 에이도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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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동물들 중에 가장 고등한 동물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사람들은 인간이라고 답을 할 거야. 과연 그럴까? 그렇게 고등한 동물이라서, 모든 생물들의 삶의 터전인 지구를 이렇게 망쳐놓았을까? 겨울에도 따뜻한 날씨는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

본격적으로 이번에 아빠가 읽은 책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고등하다고 하는 인간들도 할 수 없는 능력이 있으니 하늘을 나는 능력이란다. 사람들에게 되고 싶은 동물이 있냐고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새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구나.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는 능력. 지구상에 살았던, 그리고 살고 있는, 어쩌면 앞으로 살아갈 수많은 사람들 중에 새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 그래서 예부터 사람들을 새처럼 나는 것을 동경해왔단다. 결국 오늘날 여러 기계의 도움으로 하늘을 날 수 있지만, 새처럼 자유롭게 마음대로 본능적으로 날 수는 없단다.

새는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갖게 되었을까? 진화론으로 봤을 때도 새는 왜 날 수 있게 진화가 되었을까? 인간이 아무리 빠른 비행기를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아직 도약 없이 바로 날 수 있고, 날아가다가 재빠르게 방향전환하는 새들의 원리를 밝히지 못했다고 들은 적이 있어. 이렇게 새의 능력을 부러워하면서, 새의 비밀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새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참 많단다. 이번에 아빠가 읽은 <새의 감각>도 그런 과학자들의 결실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고 볼 수 있어.

새의 여러 비밀 중에 감각에 대한 이야기란다. , 감각이라고 하면, 사람에게는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이렇게 다섯 가지가 있잖아. , 새들도 이 다섯 가지 감각을 모두 가지고 있을까? 그런데 있잖아, 새들은 이 다섯 가지 감각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새에게는 그것 이외에 또 다른 감각이 있다고 하는구나. 그것이 무엇이냐고? 좀 이따가 이야기해 줄게. 아빠도 깜짝 놀란 새의 감각의 감각. 이로 인해 동물들 중에 가장 고등한 동물은 새들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단다.


1.

도대체 새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새의 감각을 연구하여 이 책을 쓴 사람은 팀 버케드라는 사람이란다. 아빠는 당연히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지. 아마도 며칠 지나면 지은이의 이름을 까먹을 거야. 팀 버케드라는 사람은 영국의 유명한 생물학자로, 특이 조류학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해서 아이센만 메달이라는 상도 받았다고 하는구나.

이 책의 차례를 보면, 아빠가 앞서 말한 감각들 순서로 되어 있단다. 1장 시각부터 시작해서 감각에 대해 다루고 있단다. 새의 시력은 인간의 시력에 비해 아주 좋단다. 저 높은 하늘 위해서 땅 위에 작은 먹이를 발견하고 잽싸게 내려오는 매를 보더라도, 얼마나 시력이 좋은 지 알 수 있을 거야. 먹이를 잘 보기 위해 시력이 좋을 쪽으로 진화가 되었겠지만, 그런 이유라면 사람도 충분이 시력이 더 좋게 진화할 수도 있었을 텐데, 사람은 그렇지 못하고, 새는 그렇게 시력이 좋단다. 날 수 있는 능력도 그렇고 시력도 그렇고 새의 진화 속도는 엄청 빠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단다. 그뿐만 아니라, 두 눈의 용도가 다르고, 필요할 때는 동시에 각기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다고 하는구나. 새들은 너무 완벽한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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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54)

물론 사람은 대체로 오른손잡이 아니면 왼손잡이다. 눈도 우세한 쪽이 있다. 75퍼센트는 오른쪽 눈이 우세하다(우리가 눈을 다르게 쓴다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인식하지 못하지만). 하지만 눈이 양옆에 달린 새는 두 눈을 다른 용도로 쓴다. 이를테면 햇병아리는 먹이처럼 가까운 대상을 볼 때에는 오른쪽 눈을 쓰고 포식자처럼 먼 대상을 볼 때에는 왼쪽 눈을 쓴다. 게다가 한쪽 눈을 일시적으로 안대로 가린 기발한 행동 실험에서 새들이 어느 쪽 눈을 쓰느냐에 따라 과제(이를테면 박새와 유럽어치가 먹이를 찾는 것) 수행 능력에 큰 차이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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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눈의 능력으로 인해 한쪽은 뜨고 잠을 자기도 한다는구나. 그러면 뇌의 절반은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된대. 이거 뭐, 기계가 아니고 이런 능력이 있다니.. 완전 사기 캐릭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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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짐작했겠지만, 오른쪽 눈을 뜨고 자는 새는 뇌의 우반구가 휴식을 취한다(오른쪽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는 좌반구에서 처리하고 왼쪽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는 우반구에서 처리하기 때문이다.). 한쪽 눈을 뜨고 자는 것이 무척 유용한 경우는 두 가지다. 첫째는 근처에 포식자가 있을 때다. 오리, , 갈매기는 땅에서 잘 때 여우 같은 포식자에게 잡아먹히기 쉽기 때문에 한쪽 눈을 뜨고 있는 게 유리하다. 청둥오리를 연구한 바에 따르면 무리 한가운데에서 자는-상대적으로 안전한-녀석들은 가장자리에서 자는-포식자에게 잡히기 쉬운-녀석들에 비해 눈을 뜬 채 자는 시간이 훨씬 적으며 무리 가장자리에 있는 녀석들은 포식자가 접근할 만한 방향을 바라보는 눈을 뜨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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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을 시작으로 새의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의 이야기를 시각에서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 새의 능력이라면, 청각, 촉각, 미각, 후각에서도 아빠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어서 새들의 뛰어난 감각 능력에 그리 놀라지 않았단다. 예상하지 못했던 부리에서도 촉각을 느낄 수 있다는 점 정도?


2.

그리고 5감각의 이야기를 마치고, 6장의 제목 자각(磁覺)을 보고 제목을 여러 번 보았단다.  제대로 본 것 맞나? 자각? 한자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자()는 자석, 자기장을 뜻하는 한자란다. 뭐야, 그런 새는 자기장을 느낄 수 있다는 거야? 이 자각이라는 감각이 아빠가 앞서 이야기한 사람들은 없지만 새에게 있는 놀라운 감각이란다. 자각을 느낄 수 있다고? 정확히 이야기하면 자각을 볼 수 있다고 하는구나.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새들이 정확하게 목적지를 갈 수 있는 이유를 많은 과학자들이 연구를 했다고 하는구나. 예전에는 두 가지 가설이 있다고 했어. 하나는 새들이 둥지에서 밖으로 나갈 때 길을 기억한다는 가설이고, 두 번째 가설이 지구의 자기장을 감지할 수 있다는 가설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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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213)

새들이 어떻게 길을 찾는지에 대한 연구는 오래고 험난한 역사가 있다. 1800년대 중엽에는 비둘기 같은 새들의 귀소 방법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대립했다. 하나는 새들이 둥지에서 밖으로 나갈 때 길을 기억한다는 견해인데, 증거는 전혀 없다. 또 하나는 지구가 일종의 거대한 자석이며 새에게 여섯 번째 감각이 있어서 지구 자기장을 감지한다는 비교적 최근의 발견을 바탕으로 삼는다. 소설가 쥘 베른은 이 견해를 재빨리 받아들였다. <해터러스 선장의 모험과 항해(1866)>의 주요 등장인물은 자기력의 영향을 받아 늘 북쪽으로 걸었. 새가 사람과 달리 자각을 이용하여 길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러시아의 동물학자 알렉스 폰 미덴도르프가 1859년에 처음 했지만, 18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영국의 앨프리드 뉴턴을 비롯한 대부분의 조류학자들은 여기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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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과학자들에 연구에 의해 오른쪽 눈을 통해서 자각을 인식한다는 것을 알아냈대. 유럽울새라는 새의 오른쪽 눈만 뿌옇게 처리한 렌즈를 씌웠더니 방향을 찾지 못했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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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오른쪽 눈과 왼쪽 뇌는 어떻게 자각을 처리할까? 단지 오른쪽 눈이 빛에 더 민감해서일까? 빌트슈코는 진상을 알기 위해 유럽울새에게 일종의 콘택트렌즈를 씌우는 후속 실험을 실시했다. 오른쪽 눈과 왼쪽 눈에 씌운 렌즈는 같은 양의 빛을 받아들이지만 하나는 뿌옇게 처리되어 영상이 흐릿하게 보였고 또 하나는 투명했다. 이번에도 결과는 놀라웠다. 오른쪽 눈에 뿌연 렌즈를 씌워 세상을 보게 했더니 유럽울새는 방향을 찾지 못했다. 이에 반해 오른쪽 눈에 투명한 렌즈를 씌웠더니 여느 때처럼 정밀하게 방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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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런 생각을 해보았단다. 새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혹시 어벤져스의 아이먼맨의 특수 안경과 같이 모든 정보가 보이는 것은 아닐까? 혹시 다른 생물체의 마음까지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지구의 자기장까지 볼 수 있는데 말이야. 6장의 자각(磁覺)에서 놀라서 그런지, 7장에서 이야기한 새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새들이 유대관계를 갖는다는 내용은 그저 그런 내용으로 읽혀지는구나. 이렇게 고등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생물체인데 한낱 인간이 겪는 스트레스도 있겠지.

아냐, 고등한 생명체라고 하면 멘탈도 강해서 스트레스도 없어야 맞는 것인가? 아무튼 새들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니, 좀더 진화할 거리는 남아 있는 것 같구나. 만약 새들보다 좀 미개한 인간들이 지구를 엉망으로 만들어서 생명체가 못살게 되지 않는다면 말이야.

그런데 너희들은 왜 이렇게 새들, 특히 비둘기를 싫어하니?^^

오늘은 이만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 “망했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자기네 조류 동물상을 이렇게 표현한다.

책의 끝 문장 : 현재 우리는 새의 감각을 (적어도 일부는) 기초적으로는 훌륭히 이해하고 있지만, 아직도 이해해야 할 것이 많다.


때때로 과학은 진리를 추구하는 행위로 표현된다. 가식적으로 들리겠지만, 여기서 ‘진리’의 의미는 단순하다. 진리란 ‘자신이 가진 과학적 증거를 근거로 우리가 지금 믿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자들이 누군가의 가설을 재검증했는데 검증 결과가 원래 가설과 일치하면 원래 가설이 살아남는다. 하지만 다른 연구자들이 애초의 실험 결과를 재현하지 못하거나 현상을 더 훌륭하게 설명하는 새 가설을 찾아내면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새로운 견해나 더 나은 증거에 비추어 생각을 바꾸는 것은 과학적 진보의 구성 요소다. 그렇다면 ‘현재의’ 증거를 바탕으로 우리가 참이라고 믿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현재로서는 진리’라는 표현이 더 나을 것이다.- P17

마틴은 올빼미의 눈이 정면을 향한 이유에 대해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올빼미의 눈이 매우 커야 할 뿐 아니라-빛이 약한 곳에서 날아다녀야 하니까-귓구멍이 매우 커야 하는데, 이 때문에 두개골에서 눈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정면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틴이 묻는다. “그곳 말고 어디에 갈 수 있었겠는가?” 올빼미 두개골에 눈과 귀(그리고 뇌) 자리가 얼마나 부족한가 하면 귓구멍으로 눈알 뒤쪽을 볼 수 있을 정도다!-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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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내가 말하려는 하는 것은, 구례가 비록 우리 현대사에서는, 피아골 공비의 이미지와 겹치는 불운한 벽지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문화, 예술의 중심지였고, 당대사를 다룬 걸작 역사서가 탄생할 만큼의 정보가 오가는 물류의 교차로였다는 것이다. 무지한 미군놈들이 함부로 총구를 들이댈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 고을 한 고을마다 축적된 문명의 심도는 이루 헤아릴 길이 없다. 아메리카의 산천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문명, 문화의 서기가, 풀 한 포기에도 자욱하다. 정유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선조에게 심한 고문을 당하고도 칠천량해전의 참상을 연민하며 백의종군 하겠다고 쓸쓸한 심사를 달래며 거쳐간 곳이 구례이며(구례에 지금도 백의종군로가 남아있다. 구례군민들의 지극한 간호와 위로로 이순신은 고문의 여독을 좀 풀 수 있었다), 해방 후 지방 건준조직이 최초로 결성된 곳도 구례다.

(60)

우리가 중국의 속국인 듯한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쿠데타사건 이후로 과도하게 조선왕조를 스스로 비하시키고, 제후국으로서의 모든 프로토콜을 엄수하게 된 이후의 사태이다. 조선왕조의 성립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비극적인 사건이다. 이성계는 고려제국에서 본다면 아웃사이더적인 인물이었고, 그의 군사쿠데타는 정통성이나 정당성을 확보하기 힘들었다. 우리는 정도전이나 조준 같은 개국공신들의 인식체계를 통하여 고려말 사회를 필망(必亡)”의 혼란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공민왕의 반원 개혁정치를 잘 도와 새로운 세상을 도모했더라면, 친명이 그토록 비굴한 사대나 이념적 굴종으로 발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새로운 정권 이씨조선은 개국초기의 혼란상이나 정통성 부재의 현실, 그 모든 것을 철저히 명에 대한 굴종적 아이덴티티를 통하여 극복하려 했다.

(69)

1236년에 시작하여 1251년까지, 그러니까 16년 동안에 이루어진 이 기적 같은 대장경사업을 단지 몽골의 변화를 불심으로 극복하겠다는 종교적 신념의 한 금자탑으로 보는 터무니없는 오류를 범해서는 아니 된다. 생각해보라! 6.25전쟁 때 북쪽에서 엄청난 탱크군단이 밀려오는데 그것을 대장경판각으로 물리친다! 도대체 이게 상식적으로 될 성부른 말인가? 3차의 대장경조조는 제1차와 제2차의 대장경조조와의 연속선상에 생각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몽골별의 화환(禍患)은 세계적인 대문화사업의 계기를 마련한 것일 뿐, 표면적 레토릭이 어떠한 상징적 수법을 쓰고 있든지간에 그것은 고려라는 대제국의 역량이 문화적 사업과 전쟁사업을 분리시켜 진행시킬 수 있을 만큼의 거대한 포텐셜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 택도 없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16년간의 제3차 고려대장경의 조조는 그 자체로써 전쟁대비사업보다도 더 막대한 재력과 인력을 소모해야만 하는 것이다.

(74)

나는 개인적으로 정도전과 깊은 인연이 있다. 그 직계 장손과도 친하게 지냈고, 그에 관해 책도 썼고, 강연도 많이 했다. 그리고 조선왕조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처럼 자격 있는 혁명가를 찾기도 힘들다. 그는 맑스나 레닌과 같은 진짜 혁명가이다. 이론과 실제를 다 갖춘, 혁명을 위하여 자기의 삶을 불사른 멋진 사나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전체대의를 위해 생각을 해볼 때, 그가 저지른 오류도 적지 않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오류는 고려대제국의 실태와 그 가치를 근원적으로 훼멸시킨 것에 관한 것이다. <고려국사>는 용서할 수 없는, 왜곡의 사서이다. 그것이 정도전 개인의 오류로 끝났으면 다행이겠지만, 향후 조선민족의 역사 인식 전체에 너무도 끔찍한 악영향을 미쳤다.

(90)

원 지사에 대한 제주도민의 사랑은 무척 깊습니다. 그렇다면 그 깊은 만큼 원 지사는 깊이 제주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진정 제주도 사람이 무엇인지, 그 아이덴티티에 대한 깊은 감각이 없습니다. 제주도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가치있게 사는 것인가에 관한 심오한 반추가 없습니다. 그의 관심은 오직 중앙정계로의 진출뿐이고, 그 관심을 집중하기 위하여 제주도를 천박한 개발모델의 전위로 만드는 것이죠. 그는 제주도민의 깊은 기대와 사랑을 저버리고 있습니다. 위대한 정치인이 된다는 것은 꼭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사로서 정말 제주도를 위대하게 만들 때만이 혹 결과적으로 대선의 기회도 올 수 있는 것이지, 대통령 되기 위해 산다는 놈 치고 제대로 된 놈 있습니까? 제주사랑이 무엇인지, 제주역사가 무엇인지, 제주비젼이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지, 문명이 있으면 반문명도 있어야 하고, 유위(有爲)가 있으면 무위(無爲)도 있어야 한다는 것, 선생님의 책을 젊은 날에 읽었다고 한다면, 선생님께서 그런 것 좀 원희룡에게 가르쳐 주세요. 조금만 정신 차리면 훌륭한 인물이 될 텐데 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 같아요. 제주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대치할 만한 스타도 없고 참 딱하게 생각하고 있지요.”

애정 어린 깊이 있는 제주도사람 양 교수의 크리티칼 멘트였다.

(103)

여순민중항쟁이야말로 세계사를 선도한 조선민중의 정의감의 발로였으며, 여순민중항쟁을 빌미로 6.25동란을 위시한 향후의 모든 세계사적 비극이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나타났고, 우익반공파시즘의 가치체계가 설칠 수 있었는가 하며, 또 반면 우리 민중의 심오한 내성의 양심 속에서 인류사에 새로운 희망을 던질 수 있는 민주의 촛불이 켜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어마어마한 세계사적 사건을 해방 정북의 복잡하고 중층적인 인식체계로부터 접근해야만 합니다. 나는 이 접근을 시도하기 전에 여러분과 함께 다음과 진실을 외쳐야만 하겠습니다. 여순은 민중항쟁이다!

(132)

우리는 해방이라는 원점의 성격으로부터 다시 문제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해방을 맞이하는 건준이라고 하는 슬기로운 주체세력이 있었고 그것은 전국의 인민위원회 조식의 구심점이 되었지만, 해방을 가능케 한 물리적 주동세력은 미국과 소련이라고 하는, 세계사의 무대를 분할하는 양대 신흥세력이었다는 것은 이미 갈파한 바와 같아. 해방의 주체가 우리민족이 아닌, 미국과 소련이었다고 한다면 이 해방정국 공백의 새로운 모델링의 결말은 이미 명약관화하다. 그것은 미국에 붙어 미국말을 잘 듣는 놈이 이남을 먹을 것이요, 소련에 붙어 소련말을 잘 듣는 놈이 이북을 먹을 것이다. 이 두 놈은 모두 토착세력이 아닐 것이고 소련과 미국에서 자기세력을 키웠거나, 소련과 미국의 지도자들에 특별한 총애를 받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141)

동아시아역사에 대하여 맥아더가 저지른 가장 큰 오류는, 인류사의 근원적 진보에 공헌할 수 있는 결정적 찬스를 놓친 죄악에 가까운 오류는 전후에 일본의 천황제를 존속시킨 것이다. 천황제를 존속시키는 것이 미국의 일본지배를 쉽게 만들고, 동아시아에 있어서 공산주의의 팽창을 막을 수 있는 확실한 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히로히토는 1945 9 27일 맥아더의 SCAP 헤드쿼터를 두 발로 찾아가 목숨을 구걸했다. 그리고 미국의 이해관계에 전적으로 부속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것은 미국이 나치정권의 독일국가를 근원적으로 해체시킨 것과는 사뭇 다른 방식의 전후처리였다. 일본국가가 근원적 변화가 없이 존속하도록 하면서 몇 명의 전범만 코스메틱한 효과로 처형한 것이다.

(173)

여러분들은 해방정국에서 좆됐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나의 말을 기억할 것이다. 이들은 좆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8 15일부터 움츠러들었고 소리 없이 지냈다. 그런데 움츠러든 사람들은 누에의 굴신작용처럼 반드시 펼 날을 기약하게 마련이다. 오늘날 촛불혁명 때문에 움츠러든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들 좆됐다파들은 대체로 가문이 좋고 지체가 높고 지식이 많았고, 영어를 잘했고 서구유학파들이고 기독교도들이 많았다. 이들은 건준에 가담하지 않았고 건준+인민위원회세상의 형국을 불쾌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에게 희소식이 날아왔다. ! 미군이 온다! 드디어 미국이 입성한다. 이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 이제 움츠리고만 있을 수 없다. 기지개를 펴자! 이들은 본시 서양파들이었기 때문에 미군의 입성, 미국이 조선의 최대의 권좌를 차지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모래밭에서 죽어가는 물고기에게 물을 부어 연못을 만들어주는 것과 똑같았다.

(232-3)

4*3은 결코 무장봉기가 아니다. 억눌린 민중이 소총 몇 자루 가지고 경찰서를 습격한 사건을 민중항쟁의 핵심적 사태로 인지하는 것은 전적으로 오류에 속하는 것이다. 그것은 민중항쟁의 가냘픈 호소일 뿐이다. 그들을 결코 무장대라고 불러서도 아니 되는 것이다. “무장대가 되려면 무력을 계속해서 공급받을 수 있는 루트가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이나, 월맹의 호치민과 같이 지속적으로 무기를 공급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4*3사태 이후의 토벌이라는 것은 무장 대 무장의 전쟁이 아니라, 그냥 정부병력의 민간학살일 뿐이다. 4*3의 의미를 침소봉대할 수 없다. 산으로 피신 간 사람들은 무장투쟁을 위해 간 것이 아니라, 단지 학살을 피하기 위한 도피였을 뿐이다. 한 번도 제대로 싸워본 적이 없다. 또한 사가들이 오해하는 거대한 오류 중의 하나가 무장대의 무장봉기남로당과 관련시키는 것이다.

(239-40)

박진경의 도민학살을 견디다 못해 그의 암살을 기획한 것은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였다. 그리고 그 거사에 동조한 양회천 이등상사, 신상우 하사, 강승규 하사, 배경용 하사, 이정우 하사(입산 미체포), 황주복 하사, 김정도 하사의 이름도 같이 기억되어야 한다. 문상길 중위는 충청도 사람으로 육사 3시다. 3중대장이었으며 독실한 기독교이었다. 그의 최후진술은 다음과 같다.

이 법정은 미군정의 법정이며, 미군정장관인 딘 장군의 총애를 받던 박진경 대령의 살해범을 재판하는 사람들로써 구성된 법정이다. 우리가 군인으로서 자기 직속상관을 살해하고 살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죽음을 결심하고 행동한 것이다. 재판장 이하 전 법관도 모두 우리민족이기에, 우리가 민족반역자를 처형한 것에 대해서는 공감을 가질 줄로 안다. 우리에게 총살형을 선고하는 데 대하여 민족적인 양심 때문에 대단히 고민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고민은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 법정에 대하여 조금도 원한을 가지지 않는다. 안심하기 바란다. 박진경 연대장은 먼저 저 세상으로 갔고, 수일 후에는 우리가 간다. 그리고 재판장 이후 모든 사람들도 저세상에 갈 것이다. 그러면 우리와 박진경 연대장과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저세상 하느님 앞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인간의 법적은 공평하지 못해도 하느님의 법적은 절대적으로 공평하다.”

(294)

이 미군정의 미곡수집령이야말로 1946년 전국적인 10월봉기의 주요 원인이었으며 제주 4*3과 여순민중항쟁의 가장 근원적인 요인이다. 이것은 남로당의 정치적 공작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남로당은 그러한 대중동원조직체계나 지지기반을 갖지 못했다. 그것은 몇몇 지식인들이나 지식인 반열에 들고 싶어하는 허영끼 있는 인간들의 픽션에 불과했다. 민중에게 절실한 것은 오직 이지 공산이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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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5 08: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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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6 0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녹색평론 통권 170호 - 2020년 1월~2월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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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2020 녹색평론

2020년 첫 번째 녹색평론을 읽었단다. 유난히 따뜻했던 겨울. 제대로 된 눈 한 번 보지 못하고 지나갈 뻔한 겨울. 간신히 얼마 전 내린 눈으로 눈을 보긴 했지만, 우리의 겨울이 어쩌다 이렇게 변한 것인지 모르겠구나. 이제 기후위기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었고, 변화된 기후위기에 어떻게 잘 적응할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되겠구나. 녹색평론에서 오랫동안 문제제기를 했지만, 격월마다 발행되는 비주류 잡지의 목소리는 너무 작았나 보구나.

올 겨울 이상 기온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모습뿐만 아니라, 전 지구촌 널리 퍼져 있는 뉴스이고, 몇 십 년 만에 최고기온을 기록했다는 뉴스는 더 이상 놀랍지도 않구나. 자본주의사회라는 것이 경제적으로는 평균적으로 풍족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경쟁심을 부추겨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들었고, 지구 환경은 돌이킬 수 없게 만들어 인류멸종을 앞당겼으며, 인간 사회의 시스템은 불균형과 불평등한 사회로 만들었구나.

최근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결국 비영어권 영화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수상하였단다. 우리나라 국민으로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그런 영화에 전세계의 사람들이 공감한다는 것이 슬픈 현실이구나. 자본주의 속에서는 빈부격차로 날이 가면 갈수록 심해지고,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 또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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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물론 인간사회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문제가 아니었던 때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너무도 지나친 데다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심화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아니, 세계적 차원으로 눈을 돌리면, 부의 격차는 경악할 만한 수준까지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은 세계의 최상위 부자 1%가 세계 전체 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10%가 그만큼의 부를 차지하고 있다고 알려졌지만, 눈 깜박할 사이에 이 수준까지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언론 지면에서도 우리는 부유층이라는 말 대신에 초부유층(super-rich)이라는 말에 자주 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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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이라는 영화의 성공으로 세계 각국의 지도층들이 빈부격차의 심각성을 깨닫고, 이 문제점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고민들을 했으면 좋겠는데, 트럼프님은 뻘소리를 하고 있더구나..


1.

이번 호의 책제목은 인공지능에 대한 근본 질문들이란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공지능이라고 하면, 몇 년이 지났지만,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경기를 떠올릴 거야. 당시 이세돌이 한 경기를 이겼지만, 그 이후 인공지능은 더욱 발전하고 진화해서, 이제 사람이 인공지능과 바둑을 두어 이길 수 없다고 했어. 작년에 이세돌이 은퇴를 하면서 인공지능과 또 바둑을 두었는데, 이번에는 접바둑으로 두 점을 깔고 두었다고 했어. 그래야 비등비등한 실력이 된다고 말이야. 비단 바둑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에 이제 인공지능을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단다. 인공지능이 소설을 쓸 정도라고 하니 말이야.

그리고 최근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에 대한 대처도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이용했다고 했어. 이런 인공지능에 대한 밝은 면과 어두운 면에 대한 이야기를 몇 꼭지를 이번 호에 실었단다. 인공지능의 시대가 오면 직업은 사라지는가? 그러면 인간은 무엇을 하면서 사는가? 미래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지만,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존하지 않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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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미래에 일자리 없는 세계는 오는 것일까? 사실 일자리 없는 세계는 저 멀리서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그런 세계로 한 걸음씩 들어가려 하고 있을 뿐이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일자리 없는 세계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이런 세계를 만들려 하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가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누군가가 인공지능에 돈을 대고 있고 또 누군가가 이 미래를 정해진 미래처럼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인공지능이 일자리 없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기술로 이익을 얻으려는 이들이 그런 세계를 만들려 노력하며 이것이 필연적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데이터 없이도 경험과 상식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간을 여전히 필요로 하며, 로봇은 환경을 통제하는 인간의 노력이 있어야 비로소 능력을 발휘한다. 이런 현실을 두고서도 마치 기술적 대량 실업이 예정된 미래인 것처럼 말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저항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개발을 누가 주도하고 있는지, 인간의 쓸모없음이라는 내러티브를 누가 생산하고 있는지, 그것이 어떤 정치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예의주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인간 없는 세상에 인공지능도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가 원하지 않는다면 인간 없는 미래, 인간이 더는 필요 없어진 세계는 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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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렇게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존을 하려면, 일단 일간이 생존해야 할 텐데, 앞서 말한 것처럼 지구 생명체 전체를 위협하고 있는 기후위기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그래야 공존을 하든 지배를 하든 지배를 받든 하지

이건 딴 이야기인데, 인공지능 관련 이야기하면서 어떤 분이 유발 하라리를 과학의 외피를 두른 예언자라고 비판하는 것이 있었는데, 몇몇을 두고 침소봉대하는 것은 아닌가 싶더구나. 그런 시각들이 늘 있어서 새롭지도 않고 놀랍지도 않았지만 말이야.


2.

일본 도쿄 올림픽이 이제 다섯 달도 남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환경학자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이 방사능 때문에 도쿄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단다. 아빠는 도쿄에서 올림픽을 열더라도 방사능이 그나마 적은 곳에서 경기를 열 것이라고 생각했어. 아빠가 순진했던 거냐? 일본은 후쿠시마가 안전하다면서, 그곳에서 몇몇 경기를 치를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나는 농산물로 올림픽 선수촌에 음식을 제공한다고 하는구나. 아니 이런 뻔뻔한 사람들을 봤나. 아빠의 지인들 중에 도쿄 올림픽에 참가하거나 구경을 가는 사람이 있다면 가지 말라고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이런 사실들을 알면 사람들이 올림픽에 참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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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축구 훈련 시설은 물론, 남자 야구와 여자 소프트볼, 성화 릴레이 등, 올림픽 행사의 상당 부분은 일본정부가 원자력 비상사태를 선언한 지역에서 행해진다. 이것은, 선수들과 일반인들에 대해서, 일본 이외의 세계의 모든 다른 경기시설에 존재하는 피폭 기준보다 20배나 높은 수준의 방사선 피폭이 합법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미국과학아카데미가 밝힌 대로 방사선에 있어서는 역치(유해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기준치)가 따로 없다는 사실에 입각하여 위험성을 평가한다면, 올림픽에 참가는 선수들이 방사선 관련 질환에 걸릴 위험도 20배나 더 증가할 것이라는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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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끝나지 않고, 언제 끝날지도 모를 후쿠시마 방사능 사태.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미 다 끝났고, 안전하다고 선언을 하고, 후쿠시마에 살던 사람들에게 다시 후쿠시마로 돌아가라고 했다는구나. 그것도 강제로 말이야. 그들이 들어와서 살아야, 세계 사람들에도 안전하다고 큰 소리로 이야기할 수 있으니 말이야. 일본 정부가 너무 무리수를 두는 것이 아닌가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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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결론은 이렇다. 일본정부는 올림픽에 막대한 자금을 사용하면서도 제염 비용을 감축하기 위해서 16만 명의 후쿠시마 피난민들을 마치 실험동물처럼 취급하고 있다. 피난민을 재차 오염된 지역에 귀환하도록 강제하고, “아무 문제도 없다고 세계인들더러 믿으라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진지한 과학자들이 이 피난민들에 대한 방사선 영향을 정확히 조사하는 일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올림픽에 투입되고 있는 수십억 달러라는 막대한 자금은 후쿠시마 제1원전 재해 때문에 주거지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지원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이들이 지금 귀환을 강제당하고 있는 오염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집과 일자리와 새로운 공동체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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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남은 다섯 달. 방사능 수치가 급격하게 줄어들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올림픽은 정상적으로 열리겠지. 어떻게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런데, 최근에 일본의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방역체계가 뚫리면서, 우리나라도 걱정이지만, 일본도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었단다. 방사능이 아닌 코로나19때문에 올림픽이 취소될지도 모른다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어. 세계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축제의 장에 방사능 수치를 속이면서 올림픽을 개최하려는 나쁜 마음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침투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조용히 지나가되, 방사능 올림픽을 막아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물론 4년동안 피땀 흘리면서 꿈을 키워온 선수들을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그보다 보이지 않는 방사능의 악마가 몸 속으로 들어오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아빠가 이 편지를 며칠 전에 쓴 것인데, 그 며칠 사이에 코로나19가 우리나라를 집어삼켜 먹을 지경이 되었구나. 충분히 호미로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젠 갈래로도 막을 수 없을 지경이 된 것 같아 안타깝구나. 정부와 모든 국민들이 온 힘을 다 모아야 할 시점에, 독단적인 행동을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열 받더구나. 부디 최소의 피해로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구나. 우리도 늘 손 깨끗이 씻고 조심하자꾸나.


PS:

책의 첫 문장 :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지금은 전례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끝 문장 : 심장이 뛰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힘든 일이 될 지라도, 배를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우리가 사는 지구에는 화석연료와 광물자원이 무한히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는 어마어마한 양의 석유와 석탄 등 화석연료를 매일같이 대량으로 소모하지 않고는 단 하루도 지탱하지 못하는 경제시스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러한 경제시스템을 그만둘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연장하고 확대하려고 온갖 시도를 다 하고 있다. 애초에 말도 안되게 불합리한 틀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진보니 발전이니 번영이니 하는 말로 떠받들어오다가 마침내 지금과 같은 파국 직전에 내몰렸음에도, 여전히 미망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P6

석유가 현대 경제의 핵심 요소라는 점을 고려할 때, 왜 세계경제가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논리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는지, 우리는 이 석유의 EROEI 하강 현상에 근거하여 추리해볼 수 있다. 즉, 그 이전까지 꽤 잘나가던 세계자본주의 경제의 성장이 1980년대를 기점으로 둔화하기 시작한 것은 결국 석유의 EROEI 하강 현상 때문이라고 할 수 있고, 이 현상을 타개하기 위한 책략으로 도입된 것이 바로 신유주의 논리였다고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P11

중국의 지금과 같은 발흥은 유례가 없는 것이다. 1990년에서 2017년 사이에, GDP는 903%나 성장했다. 세계의 최대 은행 4개는 이미 중국의 것이 되었다. 경제분석가 매케스가 말하듯이, “갑자기, 모든 글로벌한 사태는 중국과 관련된 이야기가 돼버렸다. 발칸반도의 커져가는 불안정한 상황이건, 짐바브웨의 쿠데타이건, 혹은 오스트레일리아의 국내정치이건, 모든 게 중국과 관련되고 있다.” 이는 획기적인 변화이다. 그리고 이 현상은 저 ‘세계의 작은 고립된 부분’의 사람들로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P145

이 올림픽은 역사상 최대, 최후의 눈가리개이다. 이런 눈가리개는 과감히 벗어던져야 한다. 우리는 주어진 자신의 본래의 신체로, 스스로의 인생을 살고 싶다. 아이들이 원기 있게 웃는 얼굴로 뛰어노는 내일을 되찾기 위해서 우리 어른들은 온갖 장애물을 넘어서 서로 손을 잡고 힘을 합쳐야 한다. 난 이 올림픽을 용납할 수 없다.-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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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 심윤경 장편소설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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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책 관련 SNS에서 좋은 평을 받은 것에 귀가 얇은 아빠가 접수해서, 이번에 읽은 책은 심윤경님의 <설이>라는 책이란다. 심윤경님의 일곱 번째 장편소설이라고 하는데, 아빠는 심윤경님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란다. 그동안 접하지 않았던 것이 미안할 정도로, 이번에 읽은 <설이>라는 소설은 너무 좋았단다. 아빠가 책 읽는 속도가 빠르지 않고, 집중도 잘 못해서 오래 읽지도 못하는데, <설이>라는 책은 단숨에 읽어내려 갔단다. 앞으로 심윤경님의 작품들을 눈 여겨 봐야겠구나.

 

1.

이 책은 설이라는 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성장소설이란다. 설이의 나이는 12,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 학생? 이었단다. 설이가 주인공이니까 좀더 설명을 해볼게. 주인공 윤설. 초등 6. 갓난아기 때 풀잎보육원 근처 음식물쓰레기통에 버려져 풀잎보육원의 원장이 그 아이를 발견하고 보육원에 데리고 와서 자랐어. 윤설의 사연이 TV에서 소개가 되어 후원을 많이 받기도 했단다. 윤설은 자라면서 입양을 세번이나 했는데, 세 번 모두 이런저런 이유로 파양을 당하고 말았단다. 7살부터는 위탁모 김은숙과 함께 생활을 했는데, 윤설은 김은숙에게 이모라고 불렀어. 김은숙은 원래 풀잎보육원에서 일하고 있었고, 윤설을 무척 좋아했어. 보육원 원장이 바뀌면서 김은숙도 일자리를 잃게 되었는데, 설이를 좋아해서 자격이 안되었는데도 이전 원장님을 졸라서 위탁모가 될 수 있었어. 조건은 좋은 자리가 있으면 설이를 입양시키는 조건이었어.

설이가 세 번째 입양을 하고 파양을 당한 것은 12살 때였어. 이 소설의 시작은 설이가 세 번째 파양을 당하고 돌아온 시점이었단다. 세 번째 입양은 미국 군인 가족이었어. 설이도 그들을 사랑하려고 했고, 그들과 잘 지내려고 노력했지만, 몸이 자동 거부를 했단다. 계속 토를 하고, 말을 잃게 되었단다. 결국 다시 김은숙의 허스름한 집으로 돌아왔어. 그리고 진료를 받으러 동네 병원에 가서 곽은태 원장님을 만났어. 설이는 자신에게 더욱 친절한 곽은태 선생님을 좋아했어. 곽은태 선생님은 설이가 병원에 오면 뒷환자가 기다리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설이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어. 설이는 곽은태 선생님이 자신의 아빠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어.

설이는 파양당하고 오면 전에 다니던 학교에 가기가 어려웠어. 웬만한 학교는 모두 다녀서 이제 남은 곳은 사립초등학교였어. 인맥을 통해 교감의 허락을 받았어. 교감 선생님도 학기도 한 학기밖에 남지 않았고 해서 설이를 받아주었단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학부모들이 반대를 했어. 가난한 집안의 설이가 어떻게 그런 학교에 들어올 수 있느냐? 무슨 특혜를 받은 것이냐? 그래서 설이가 이 사립학교에 들어올 수 있는 실력이 되는지 부모님들 앞에서 평가를 받았단다.

대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어. 설이는 천재였어. 국어, 수학뿐만 아니라 영어도 무척 잘했어. 학원교육도 없이 보육원 출신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설이는 <헝거 게임>시리즈를 좋아해서 소설로도 읽고, 영화로도 엄청 많이 봤어. 너무 좋아해서 영화 대본을 다 외웠다는 거야. 원서로도 읽고 말이야. <헝거 게임>으로 스스로 익힌 영어 실력은 그대로 평가 결과로 나왔어. 부모님들도 깜짝 놀라서 설이의 사립학교 입학은 받아들여졌어. 설이를 보고 자신들의 아이들도 분발해서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셨거든.

 

2.

그 사립초등학교에서 설이는 시현이라는 부잣집 아들과 짝이 되었단다. 시현이는 키도 크고 춤도 잘 추어 인기가 많았지만, 몇몇 아이들과 몰려 다니며 다른 친구를 괴롭히는 그리 착한 아이는 아니었어. 설이한테도 곱게 굴지 않고 괴롭혔단다. 그런데, 설이는 시현이를 한 눈에 알아봤어. 동네 병원장, 설이가 존경하는 곽은태 선생님의 아들이었어. 곽은태 선생님 책상 위 사진 속 아이였거든. 설이는 겉으로 아는 척하지 않고, 속으로만 어쩜 아버지랑 어찌 다를 수 있지? 라는 생각을 했단다.

어느날 시현의 괴롭힘에 참다 못한 설이는 시현이와 대판 싸웠어.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여서 병원에 갔어. 곽은태 선생님이 찾아와서 사죄를 했단다. 그리고 자신이 설이를 위탁해서 키워보겠다고 했어. 설이를 잘 보살펴 주었고, 설이가 공부를 잘 한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어서 자기가 보살펴주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했어. 이모는 허락해 주었어. 설이를 잘 보살펴줄 있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양보하기로 했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설이는 곽은태 선생님 집에서 살게 되었단다. 곽은태 선생님의 아이는 시현 하나뿐이고, 부인도 설이을 무척 잘 대해주시려고 노력하고 대환영했단다. 시현엄마는 설이의 학업 실력을 알고 있었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좋은 학교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설이를 데리고 이곳저곳 유명한 학원을 보내주었어. 설이는 당연히 학원 숙제를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무척 열심히 했지만, 감당하기엔 너무 많은 숙제들이었단다. 그리고 시현이네 집에서 생활을 하면 할수록 왜 시현이가 부모님에게 비뚤어져 있는지 알 수 있었어.

곽은태 선생님도 병원에서의 인자한 모습이 아닌, 엄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시현이를 대했어. 곽은태 선생님 입장에서는 부족한 것 없이 다 해주었는데, 성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에 이해를 할 수 없었던 것이지. (.. 아빠들은 아이들 교육에 무관심에 해야 되는데..^^) 그렇겠지. 시현이가 관심 있는 것은 공부가 아니고 춤인데 말이야. 그것도 자타가 공인해주어 학교 행사 때마다 시현의 춤을 보려고 아이들이 몰려다니는데 말이야. 분명 아이돌 그룹을 해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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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나는 시현이를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그 아이를 이해할 수는 없었어. 자꾸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이 시현이에게 겹쳐 보였거든. 내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였고 어머니는 허드렛일을 하며 나를 키웠지. 스무 살이 되기 전부터 내 학비를 내 손으로 벌면서 살았어. 사는 시현이를 사랑하면서도 한편으론 참을 수 없이 답답한 거야. 저 아이는 좋은 학교에 다니고 과외 선생님까지 있는데 이렇게 쉬운 수학 문제를 틀리다니. 제 방 가득히 책이 있는데 읽지 않다니. 외국에서 온 원어민 선생님에게 영어를 배우는 데 영어가 싫다니. 나는 그 모든 걸 혼자 힘으로 다 해냈는데, 이 아이는 이렇게 서투르다니!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단다. 그래서 나는 화가 났고, 그 아이가 점점 미워졌던 거야. 그래, 나는 그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렇게 미워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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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설이도 시현의 집의 답답한 공기를 참지 못하고 그 집에서 나와 버렸단다. 무작정 떠났어. 어디로 갈까? 설이 입양 가기 전까지 키우던 개 아코를 입양 보냈다고 하는 횡성을 가기로 했어. 하지만 그곳에 찾아온 곽은태 부부에게 들통이 나서 가지 못했어. 그리고 이모의 장문의 편지를 받았어. 야코가 차에 치어 죽었다고거짓말을 해서 미안하다고그리고 원장님도 요양원에 계시다가 자기와 심한 말다툼을 하고 얼마 뒤 돌아가셨다고 했어.

원장님한테도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이모. 그리고 그 동안 숨겼던 옛 이야기도 꺼냈어. 숨겨서 미안하다며. 쓰레기통에서 설이를 주웠다고 한 것은 방송용 연출이었고, 보육원장이 설이를 이용해서 후원금을 많이 받아 보육원을 발전시키려는 수작이었다고충격적인 내용의 편지였으나, 설이는 담담했어.

결국, 설이는 이모의 집으로 들어왔어. 바뀐 것이 있던가? 비록 허름한 집이고, 돈도 많지 않았지만, 자유가 있었고, 여유도 있었어. 그러면서, 시현이가 자신의 집에서 생활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해보았어. 시현이는 분명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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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시현이 이모네 집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나는 시현이네 집에서 살아보았지만 시현이는 이모네에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모른다. 허름함의 첫 충격을 극복하기만 하면 시현은 스마트폰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이곳을 좋아할 것이다. 하루 종일 유튜브를 들여다보며 춤동작을 연구할지도 모른다. 곽은태 선생님 부부가 꿈꾸는 시현의 미래와는 전혀 다른 길로 가게 될지도 모르고, 나는 그런 시현의 미래에 대해 아무 책임도 질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 달콤한 무심함을 시현에게 한 숟갈만 떠먹여주고 싶었다.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 최고의 가정에서 자란 시현이 단 하나 가지지 못한 바로 그것, 허술하고 허점투성이인 부모 밑에서 누리는 내 마음대로의 씩씩한 삶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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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설이의 생일 잔치 좁은 임대 아파트에 시현이의 식구들을 모두 초대했단다. 시현의 아버지도 설이와 함께 지내면서 많이 깨닫고, 제대로 아버지 노릇을 하기 위해 아버지학원에 다니고 바뀌려고 노력한다고 했어. 시현이도 설이와 화해를 했단다. 그렇게 소설은 나름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단다. 주인공 설이는 매력이 넘치는 아이였단다. 아빠도 설이의 매력에 푹 빠졌어. 스토리 전개가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갔지만, 그래도 좋았단다. 그렇게 해피 엔딩이 아니었다면 더욱 슬펐을 거야. 겉으로만 보기에는 설이의 눈에 곽은태 선생님은 완벽한 아버지의 모습이었지만, 결국 시현이는 곽은태 선생님의 어깨 위의 멀미를 이겨내지 못했어. 아빠도 너희들을 아빠의 어깨에 올려 놓고, 너희들에게 너무 많은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구나. 그래서 너희들이 소설 속 시현이처럼 멀미가 나서 참지 못하는 것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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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

곽은태 선생님의 반석 같은 어깨 위에서 엉덩이춤을 추며 자랐을 시현을 한없이 부러워한 시간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도깨비방망이처럼 뚝딱 두드리기만 하면 무엇이든 이루어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부모의 어깨 위도 알고 보니 멀미 나게 흔들리는 곳이었다. 이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어깨는 없다. 그렇게 당연한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한때 시현이 악마처럼 사악한 아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그 아이도 나처럼 격렬한 어지러움에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더 이상 시현을 미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타인의 부러워하는 시선 속에서, 남들은 모르는 어깨 위의 흔들림을 견뎌야 했던 시현이 나보다 더 외로웠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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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도 좀더 각성을 해야겠구나. 아빠가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 너희들과 잘 어울려 주지도 못하고 있는데, 반성할게. 누군가 그러더구나. 얼마 남지 않았다고. 너희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이 말이야. 초등학교 고학년만 가도 부모와 어울리는 것을 멀리하려고 한다고 하더구나. 너희는 그렇지 말기를 기대를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또 다른 방식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 믿어본단다. 그럼, 오늘은 이만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소설의 끝까지 다 말해버렸구나.

 

PS:

책의 첫 문장: 동요가 흘러나온다.

책의 끝 문장: 나는 춤추고 있다.


사실이라는 건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 같아.
그게 그렇게 무서우니까 세상엔 그렇게 많은 거짓말들이 있는 거겠지.
나는 거짓말하는 사람들을 다 이해해. 너무너무 이해해.
나는 지금도 거짓말을 하고 싶어서 미치겠거든.- P194

‘만약 고양이를 키워도 된다면 나는 시현의 집에서 살 것이다’라는 문장은 잠시 다녔던 영어 학원에서 늘 들었던 지겨운 조건법 시험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If는 최고로 골칫덩어리라서 일단 그것이 달리면 문장의 시제는 4차원 시공간처럼 마구 뒤틀리고 아이들의 미간은 고통스럽게 찡그려진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만일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 시현은 강아지를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문장이 성립되고 강아지의 이름은 벡터가 되며 약속이 깨지는 순간 강아지는 쫓겨난다. 강아지는 수학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걸 아버지학교가 곽은태 선생님에게 단단히 가르쳐주었을까? 호랑이 같은 눈을 가질 내 고양이에게 나는 결코 그런 이름을 지어주지 않을 것이다.-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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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인간사회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문제가 아니었던 때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너무도 지나친 데다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심화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아니, 세계적 차원으로 눈을 돌리면, 부의 격차는 경악할 만한 수준까지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은 세계의 최상위 부자 1%가 세계 전체 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10%가 그만큼의 부를 차지하고 있다고 알려졌지만, 눈 깜박할 사이에 이 수준까지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언론 지면에서도 우리는 부유층이라는 말 대신에 초부유층(super-rich)이라는 말에 자주 접하게 되었다.


(6)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우리가 사는 지구에는 화석연료와 광물자원이 무한히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는 어마어마한 양의 석유와 석탄 등 화석연료를 매일같이 대량으로 소모하지 않고는 단 하루도 지탱하지 못하는 경제시스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러한 경제시스템을 그만둘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연장하고 확대하려고 온갖 시도를 다 하고 있다. 애초에 말도 안되게 불합리한 틀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진보니 발전이니 번영이니 하는 말로 떠받들어오다가 마침내 지금과 같은 파국 직전에 내몰렸음에도, 여전히 미망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1)

석유가 현대 경제의 핵심 요소라는 점을 고려할 때, 왜 세계경제가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논리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는지, 우리는 이 석유의 EROEI 하강 현상에 근거하여 추리해볼 수 있다. , 그 이전까지 꽤 잘나가던 세계자본주의 경제의 성장이 1980년대를 기점으로 둔화하기 시작한 것은 결국 석유의 EROEI 하강 현상 때문이라고 할 수 있고, 이 현상을 타개하기 위한 책략으로 도입된 것이 바로 신유주의 논리였다고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45)

미래에 일자리 없는 세계는 오는 것일까? 사실 일자리 없는 세계는 저 멀리서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그런 세계로 한 걸음씩 들어가려 하고 있을 뿐이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일자리 없는 세계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이런 세계를 만들려 하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가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누군가가 인공지능에 돈을 대고 있고 또 누군가가 이 미래를 정해진 미래처럼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인공지능이 일자리 없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기술로 이익을 얻으려는 이들이 그런 세계를 만들려 노력하며 이것이 필연적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데이터 없이도 경험과 상식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간을 여전히 필요로 하며, 로봇은 환경을 통제하는 인간의 노력이 있어야 비로소 능력을 발휘한다. 이런 현실을 두고서도 마치 기술적 대량 실업이 예정된 미래인 것처럼 말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저항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개발을 누가 주도하고 있는지, 인간의 쓸모없음이라는 내러티브를 누가 생산하고 있는지, 그것이 어떤 정치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예의주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인간 없는 세상에 인공지능도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가 원하지 않는다면 인간 없는 미래, 인간이 더는 필요 없어진 세계는 오지 않을 것이다.


(89)

그때 인간의 활동이란 정치다라는 따위의 사고는 지식인 특유의 도착된 사고라는 게 명확해질 것이다. 정치라는 것은 국제적 차원에서도, 국가적 차원에서도, 혹은 지역의 차원에서도, 그리고 최소의 경우 촌락공동체나 마을회의에서도, 다양한 인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일정한 질서를 가져오는 장치이며 기술이다. 그것은 필수적인 것이지만, 사람에게 생의 충일감과 보람을 주는 것도, 극히 소소하나마 개인에게 허용되는 안심감을 주는 것도 아니다. 사람으로서 태어나 실재(자연)과 교감하고, 함께 살아갈 동료를 찾아내는 것은 정치와는 전혀 별개의 일이다. 사람 사이의 진정한 사귐에 정치가 깊숙이 들어오는 것이야말로 악이다. 정치란 일상의 인간관계 속으로는 들어오지 말아야 할 필요악이다. 정치에는 계산이 붙어 있지만, 사귐에는 계산은 필요 없다. 필요하지 않다기보다 계산이 들어오면 사귐은 죽어버린다.


(145)

중국의 지금과 같은 발흥은 유례가 없는 것이다. 1990년에서 2017년 사이에, GDP 903%나 성장했다. 세계의 최대 은행 4개는 이미 중국의 것이 되었다. 경제분석가 매케스가 말하듯이, “갑자기, 모든 글로벌한 사태는 중국과 관련된 이야기가 돼버렸다. 발칸반도의 커져가는 불안정한 상황이건, 짐바브웨의 쿠데타이건, 혹은 오스트레일리아의 국내정치이건, 모든 게 중국과 관련되고 있다.” 이는 획기적인 변화이다. 그리고 이 현상은 저 세계의 작은 고립된 부분의 사람들로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174)

측정 결과는 예정된 성화 릴레이 경로에서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 극히 높은 수준의 세슘-137이 검출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부터 거리가 멀수록 방사능 수준이 낮아지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으로부터 가장 먼 도쿄도 내의 세슘-137 방사능은 다른, 후쿠시마 원전에 보다 가까운 지역들과 비교해서 가장 낮았다. 따라서 도쿄 샘플의 세슘-137 방사능이 인체의 방사선 피폭량을 정량적으로 추계할 때의 기준으로 사용되었다.


(178)

축구 훈련 시설은 물론, 남자 야구와 여자 소프트볼, 성화 릴레이 등, 올림픽 행사의 상당 부분은 일본정부가 원자력 비상사태를 선언한 지역에서 행해진다. 이것은, 선수들과 일반인들에 대해서, 일본 이외의 세계의 모든 다른 경기시설에 존재하는 피폭 기준보다 20배나 높은 수준의 방사선 피폭이 합법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미국과학아카데미가 밝힌 대로 방사선에 있어서는 역치(유해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기준치)가 따로 없다는 사실에 입각하여 위험성을 평가한다면, 올림픽에 참가는 선수들이 방사선 관련 질환에 걸릴 위험도 20배나 더 증가할 것이라는 뜻이 된다.


(183)

결론은 이렇다. 일본정부는 올림픽에 막대한 자금을 사용하면서도 제염 비용을 감축하기 위해서 16만 명의 후쿠시마 피난민들을 마치 실험동물처럼 취급하고 있다. 피난민을 재차 오염된 지역에 귀환하도록 강제하고, “아무 문제도 없다고 세계인들더러 믿으라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진지한 과학자들이 이 피난민들에 대한 방사선 영향을 정확히 조사하는 일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올림픽에 투입되고 있는 수십억 달러라는 막대한 자금은 후쿠시마 제1원전 재해 때문에 주거지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지원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이들이 지금 귀환을 강제당하고 있는 오염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집과 일자리와 새로운 공동체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189)

이 올림픽은 역사상 최대, 최후의 눈가리개이다. 이런 눈가리개는 과감히 벗어던져야 한다. 우리는 주어진 자신의 본래의 신체로, 스스로의 인생을 살고 싶다. 아이들이 원기 있게 웃는 얼굴로 뛰어노는 내일을 되찾기 위해서 우리 어른들은 온갖 장애물을 넘어서 서로 손을 잡고 힘을 합쳐야 한다. 난 이 올림픽을 용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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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6 16: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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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7 00: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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