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스스로 만든 지옥은 흥미로운 구조물이다. 누구나 평생에 적어도 한 번은 만들게 되어 있다. 어떤 이들의 삶은 그런 지옥일 뿐이다. 성격이 불행을 자초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롤런드는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자기 손으로 고문 기계를 만들고 그 안으로 기어들어간다. 특정한 작업 혹은 술이나 마약 중독 혹은 발각될 위험이 있는 범죄 등 각자에게 맞는 고통을 받는 것이다. 금욕적인 종교도 선택지에 들어갈 수 있다. 전체적인 정치체제가 고통을 자초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그때 한때 동베를린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결혼은 이인용 고문 기계로 킹사이즈의 가능성, 공유 정신병의 모든 변종을 아우른다.


(104-105)

유럽 전역에 자기기만의 구름이 드리웠다. 서독의 한 텔레비전 채널은 방사능의 독기가 복수라도 하듯 소비에트 제국만 오염시키고 서구는 안전할 거라고 확신했다. 동독의 한 정부 대변인은 인민의 발전소를 파괴하려는 미국의 음모에 대해 언급했다. 프랑스 정부는 방사능구름의 남서쪽 가장자리가 프랑스와 독일 사이 국경과 일치한다고, 그 구름은 국경을 넘을 권한이 없다고 믿는 듯했다. 영국 당국은 대중이 위험에 처할 가능성은 없다고 선언했지만, 사천 개의 농장을 폐쇄하고, 사백오십만 마리의 양을 판매 금지하고, 수천 톤의 치즈를 거둬들이고, 어마어마한 양의 우유를 배수로로 흘려보냈다. 모스크바에서는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아기들과 아이들이 방사능에 오염된 우유를 마시게 내버려뒀다. 하지만 곧 이기주의가 만연해졌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비상사태에 정면으로 맞서야 했고, 그런 일은 비밀리에 일어날 수 없었다.


(150)

천재가 인생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은 바이올린 연주도 하고, 요트도 타고, 명성도 좋아하고, 자신의 일반상대성 이론에서 순수한 기쁨도 느끼며 충분히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지저분하게 이혼하고, 양육권 싸움을 하고, 여자 문제로 골치를 앓으며, 다비트 힐베트르가 자신의 업적을 가로챌 거라는 피해망상에 시달리고, 양자역학을 비판하고, 그에게 모든 것을 빚진 뛰어난 시달리고, 양자역학을 비판하고, 그에게 모든 것을 빚진 뛰어난 젊은이들과 갈등을 빚었다. 차라리 멍청하거나 평범한 게 나을까? 그렇게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멍청이도 불행에 이르는 자기만의 길이 있다.


(227-228)

베를린과 저 유명한 앨리사 에버하르트는 어떻게 그의 인생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롤런드는 그의 일상에 정착한 과대망상적인 기분에 젖어, 자신의 존재를 형성하고 결정지은 크고 작은 개인적이고 세계적인 사건 사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곤 했다. 그는 특별한 사례가 아니었다-모든 인간의 운명이 그런 식으로 정해지니까. 전쟁만큼 개인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공적인 사건은 없었다. 만일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해 이등병 베인스가 소속된 스코틀랜드 사단이 이집트 주둔 계획을 철회하고 북프랑스로 가서 됭케르크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그가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전투 부적격 판정을 받아 올더숏에 배치되어 1945년에 로절란드를 만나는 일이 없었더라면, 롤런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젊은 제인 파머가 전후에 영국 식단을 개선하겠다는 시릴 코널리의 뜻에 따라 후딱 알프스를 넘어갔더라면, 앨리사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주 흔하면서도 경이로운 일이었다.


(344-345)

잠시 후 그녀가 말했다. “어쩌면 내가 틀렸는지도 몰라. 난 완전히, 그리고 빨리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어. 잔인한 짓이었고, 미안하게 생각해. 정말 미안해…… 그게 늘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야. 당신이 매일 섹스를 요구하는 거. 하지만 아기는…… 아기의 요구는, 아기는 나를 소멸시켰지. 아기와 당신…… 난 아무것도 아니었어. 나에겐 아무것도 없었어. 생각도, 인격도, 바라는 것도, 바라는 건 잠뿐이었지. 난 침몰하고 있었어. 벗어나야만 했어. 집을 떠난 날 아침……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데, 그게…… 그 이야긴 안 할래. 당신은 좋은 아빠고 래리는 어리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 당신도 괜찮아질 거라고, 조만간. 난 괜찮지 않았지만 이미 선택을 했으니 내가 해야 하는 걸 했어. 이거.”

그녀는 다시 토트백에 손을 넣어 그가 카페에서 본 책을 꺼냈다.


(393)

현대 가정의 중심은 더 이상 거실이나 응접실, 가장의 서재가 아니다. 이제 주방이 중심이며, 주방의 중심은 식탁이다. 아이들이 대화와 관련된 무언의 규칙, 타인과 어울리는 법 같은 기본적인 예의를 배우는 곳이니까. 아이들은 평생 습관이 될 규칙적인 식사의 중요한 리듬과 의식을 습득하고, 식사 후 정리를 도와주는 간단한 첫 의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식탁은 우편물을 뜯어보고, 주인이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손님으로 온 친구들이 둘러앉아 술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곳이기도 하다.


(467)

요란한 논쟁, 떠들썩한 분석, 두려운 예언, 축하, 분노 어린 한탄, 그의 삶이 그에게서 흘러나가고 있었다. 삼 주 전 일이 벌써 희미해지거나 안개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그걸 조금이라도 붙잡아야 했다. 안 그러면 살아갈 가치가 거의 없을 테니까. 그가, 그리고 최근에 만난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끼고, 읽고, 보고, 이야기한 것. 사적이거나 공적인 삶. 자신의 실패와 불만과 꿈은 담지 않기로 했다. 마침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거나 하는 날씨 이야기도, 나이듦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쏜살 같은 시간이나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좋았던 기억과 나빴던 기억에 대해서도, 오직 그가 만난 사람들과 그들이 한 말만 담기로 했다. 적어도 하루에 반시간은 할애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정신. 해마다 새 노트를 쓰는 것이다. 다 채우든 못 채우든. 일 년에 노트 세 권을 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십 년, 지극히 운이 좋으면 삼십 년. 그럼 아흔 권이 된다! 아주 장대하고 단순한 프로젝트였다.


(472-473)

롤런드는 이십대 후반, 독학에 전념할 때 과학에는 미지근한 정도의 관심만 있었다. 공부는 계속하면서도 과학에는 인간미가 결여되어 있다고 믿었다. 화산, 떡갈나무 잎, 성운 같은 것의 숨겨진 작용-다 좋지만, 그를 매료시키지는 못했다. 과학은 인간이 혼자 또는 함께 번영하거나 실패하고, 사랑이나 미움을 느끼고 결정을 내리는 중요한 영역에 자리잡았을 때, 미약하거나 논쟁의 여지가 있는 제안만 내놓았다. 이미 알려진 것, 정신의 평행우주에서 오래전부터 이해되거나 뇌 안의 사건들에 대해 자명한 이치를 그럴듯하게 포장한 물리적 설명을 제공했다. 이를테면 개인적 갈등 같은 일에. 그건 오디세우스가 이십 년 동안 집을 떠났다가 절룩거리며 돌아왔을 때 그와 페넬로페 사이에 부부싸움이 벌어진 후로 문학에서 이천칠백 년 동안 알고 논쟁해온 문제였다. 이것도 이타카에 나오는 내용이다. 어쩌면 그들이 나중에 화해할 때 페넬로페의 동맥에 다른 많은 물질과 함께 옥시토신이 흐르고 있었음을 아는 건 흥미로울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우리에게 그들의 사랑에 대해 무엇을 더 말해주겠는가?


(600)

소중한 내 사랑, 언제든 당신이 원할 때 나를 강에 뿌려줘. 이십 년이 걸린다 해도 상관없어. 당신 혼자 힘으로 다리까지 와서, 우리가 서 있었던 곳에 서서 우리에 대해, 그때 우리가 얼마나 행복했는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기만 하면 돼. 난 십대 때 불가리아인과 사랑에 빠졌지. 그는 언젠가 유명한 시인이 되겠다고 했어. 그 꿈을 이뤘는지 궁금하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으니까. 나는 사십 년 넘게 지난 뒤 같은 장소로 돌아가서 당신과 사랑에 빠졌지. 아니, 오래전까지 당신을 사랑했음을 깨달았지. 차를 몰고 당신과 함께 산길을 달리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옆에 앉아서 지도도 봐주고, 펜션의 조율도 안 된 피아노로 내가 신청한 감상적인 곡을 연주해준 당신, 정말 고마워. 다 고마워. 이 여행이 당신에겐 고통이리라는 거 나도 알아. 당신에게 고마워해야 할 또하나의 이유지. 이 아름다운 강을 당신 혼자 찾아오게 해서 정말 미안해. 내 사랑,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잊지 마! 대프니.


(674)

롤런드에게 죽음의 한 가지 심각한 문제점은, 이야기에서 제외된다는 점이었다. 이야기를 이렇게 멀리까지 따라왔으니,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될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에게 필요한 책은 한 해에 한 장씩 백 개의 장으로 구성된 21세기 역사였다. 상황을 보아하니, 그는 그 책의 4분의 1도 읽지 못할 것 같았다. 그저 목차를 훑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재앙적인 지구온난화는 막을 수 있을까? 중국과 미국 간의 전쟁이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게 될까? 전 세계로 퍼진 인종차별적 민족주의가 더 관대하고 건설적인 무언가로 대체될 수 있을까? 우리는 현재 진행중인 대멸종을 되돌릴 수 있을까? 열린사회가 번영할 수 있는 새롭고 더 공정한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인공지능은 우리를 현명하게 만들어줄까, 아니면 미치거나 무의미한 존재로 만들까? 우리는 이 세기를 핵미사일 교환 없이 관리할 수 있을까? 그가 보기에는, 그저 무사히 21세기의 마지막날, 책의 마지막 장에 도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한 승리가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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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일
아다니아 쉬블리 지음, 전승희 옮김 / 강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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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책관련 SNS에서 자주 노출이 되어 알게 된 책이란다. 팔레스타인 작가 아다니아 쉬블리가 쓴 <사소한 일>이란 책이야. 책 제목은 사소한 일이라고 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내용으로 책 제목은 역설적인 표현으로 정한 것 같구나. 팔레스타인 문제는 강대국들의 의해 희생된 약소국의 아픔이라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단다. 우리나라도 강대국들의 다툼으로 인해 나라가 둘로 갈려졌으니 그들의 아픔에 더욱 공감이 가는구나.

그들은 여전히 잃어버린 땅을 되찾고자 하지만 가지고 있는 땅마저 계속 넘보며 싸움을 걸어오는 못되고 돈 많은 이웃이 있어 늘 전쟁의 불안을 안고 살아가고 있어. 멀쩡한 자신의 땅에 2000년 전에 산 적이 있다면서 빼앗으려고 오는 이들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맞을까. 당연히 자신의 땅을 지키려고 맞서 싸웠지. 하지만 그들의 뒤에는 막강한 후원자와 돈이 있었단다. 결국 팔레스타인은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나고 말았어. 아빠가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자세히 알지 못하니, 이 정도만 이야기하고 혹시 너희들이 관심이 있다면 유튜브 등을 통해서 찾아보렴.

소설 <사소한 일>은 팔레스타인의 문제의 시작점과 오늘날 희생된 두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알리려는 것 같았어. 책은 두껍지 않지만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묵직했단다.

 

1.

1부는 1949 8 9일 네게브 사막에서 시작한단다. 1949년이면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에게 땅을 빼앗긴 전쟁을 벌인지 일 년이 지난 즈음이란다. 네게브 사막에서 작전 수행하는 이스라엘 군대를 통솔하는 소대장의 시점으로 소설은 진행된단다. 사막에는 아무것도 없는 끝간 데 없는 사막을 정찰하고 있었어. 사막 어딘가에 숨어 있는 첩자를 색출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단다. 한 여름 사막의 작전 수행은 더위와 가뭄과 싸움으로 너무 힘들었단다. 거기에 이름 모를 물것들이 공격해와 더 피곤했어. 소대장은 막사에서 잠을 자다가 이름 모를 물것에 허벅지를 물리게 되는데 곧바로 자제 소독을 했지만, 상처는 덧나고 몸은 열이 나는 등 계속 고생을 했단다.

어느 날 그의 부대는 낡은 집에 개와 단둘이 있는 팔레스타인 소녀를 발견했어. 소대장은 그 소녀를 처음에는 식당에서 일하게 했단다. 병사들이 그녀에게 수작 부린다는 보고를 받고 소녀를 자신의 숙소에서 자라고 했어. 깔끔쟁이인 소대장은 소녀를 목욕시키고 그의 숙소 한쪽 켠에 자라고 했어. 그래서 그 이성적인 사람인줄 알았는데, 새벽에 일어나서 물것에 물린 상처에 괴로워하다가 갑자기 소녀를 겁탈했단다. 그 이후 소대장이 없는 사이, 병사들이 소녀를 겁탈했단다. 그리고는 소녀를 총살하고 구덩이 묻어버렸어. 이유도 없었어. 그들에게는 사소한 일인 양 정찰 임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을 거야.

….

그 일이 있고 수십 년이 지났어. 이번에는 라는 일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단다. ‘는 팔레스타인 출신으로 우연히 오래 전 사막에서 이스라엘 군에게 집단 강간을 당하고 죽음을 당한 소녀를 알게 되고 진실을 찾아 나서기로 한단다. 조사를 하다 보니 그 소녀가 살해된 날로부터 정확히 25년 뒤에 자신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공감을 갖게 되었어.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는 이스라엘에 위치한 역사박물관을 가려고 계획했어.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인 는 이스라엘에 가는데 제약이 있었어. 그래서 친구한테 신분증까지 빌려서 이스라엘에 들어간단다. 역사박물관과 기록보관소에 가보고 소녀가 살았던 니림 마을에서 살고 계신 나이 많은 할머니를 만났지만, 정확한 진실을 알지 못했어. 좀더 위험을 무릅쓰고 군사 지역까지 가다가 검문소에서 군인들에게 붙들린단다. 그리고 그 군인들의 총에 그만 죽고 말았어.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소설을 읽으면서 가 수십 년 전의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는 것으로 소설이 끝날 줄 알았는데, 충격적인 결말로 끝이 났단다. 이런 결말로 인해 팔레스타인의 비극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했던 것 같구나. 많은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의 아픔을 같이 공감해주고 관심을 가져주어야 이스라엘이 섣불리 그 심한 짓을 못 할 것 같구나. 팔레스타인에도 영원한 평화가 오길 바라면서, 오늘은 이만 마친다.

 

PS,

책의 첫 문장: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아득히 총성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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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165)

너는 다른 남자들이 즐기는 것을 보면 늘 좋아했고, 너도 조금 즐겼다. 나 역시 지금 내가 아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재미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예전에 나는 앎에는 지나침이 없다고 생각했다. 대학 시절에는 아무리 배워도 성에 차지 않았다. 나는 침대 옆 장에 책을 잔뜩 쌓아놓고 밤늦도록 읽어치웠고, 책을 팔아서 다음 책을 사는 데 보탰다. 시간이 지나면 배움이 줄어들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지나치게 많이 안다. 나 자신에 대해 반박할 수 없는 이야기를 엿들은 사람이 된 기분이다. 그러므로 천천히 해야 한다.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혼자서만 알고 있어야 한다. 너무 가득 담긴 잔을 들고 있어서 쏟을까 봐 못 움직이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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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나니까 퇴근할게요
메리엠 엘 메흐다티 지음, 엄지영 옮김 / 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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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책은 책제목에 깊이 공감하여 읽게 된 책이란다. <짜증나니까 퇴근할게요> 퇴근은 기분이 좋아도 하고 싶고 행복해도 하고 싶은 것이 퇴근이고, 심지어 출근도 하지 않았는데 하고 싶은 것이 퇴근인데, 짜증나는 날은 두말할 나위 없지. 책제목만 보고 책소개와 먼저 읽은 이들의 리뷰를 읽어봤는데 재미 있을 것 같아서 읽게 되었단다.

주인공이 아빠와 세대가 좀 다른 MZ 세대이지만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면서 읽었단다. 다른 공간 다른 세대의 일인데 어쩜 이리 공감이 가는지... 사람 사는 것은 다 비슷한 모양이구나. 소설은 카나리아 제도 푸에르토리코를 배경으로 하는데 이곳이 어디인지 몰라서 지도 검색을 해보니 아프리카에서 대서양쪽 방향에 있는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섬나라더구나. 스페인 령으로 유럽문화권이라고 보면 돼. 사진으로 봤을 때는 무척 평화로운 곳이겠다 생각이 들었는데, 그곳에도 우리와 같은 스트레스를 받는 회사원이 있었구나.

지은이는 메리엠 엘 메흐다티라는 사람으로 모로코에서 태어나 카나리아 제도에서 자랐대. 무슬림 여성 MZ 세대로 축구도 무척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란다. 팬픽션으로 글쓰기를 시작하여 인기를 많이 끌었다고 하는데,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 지은이 이름과 같은 매리엠이란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 않았을까 싶구나.

 

1.

소설 속 주인공 메리엠은 25살로 전형적인 MZ 세대로 나온단다. 힘들게 공부를 했지만 취직은 쉽지 않았어. 학창 시절 왜 공부하는지도 모르고 힘들게 보냈는데 도대체 왜 한 거지? 하는 생각이 들만 하구나.

==================

(19-20)

초등학교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까지, 이제 힘든 일은 다 끝냈다고 제 몫을 다 해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까지도 우리는 한 가지 대답만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보내야 한다. ‘앞으로 살면서 무얼 해 먹고 살 것인지’, 그것을 알아내는 데 그 아까운 학창시절을 다 보낸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인생의 초반에는 부모님의 선택으로 내 모든 인생이 돌아간다. 공립유치원으로 보낼까, 영어유치원으로 보낼까? 학교는 발레를 보낼까? 아니면 중국어나 영어학원다 우리에게 좋은 미래를 보장하기 위한 선택들이다. 우리는 그냥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된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하나도 모른 채.

==================

이 또한 오늘날 우리나라 사정과 비슷한 것 같구나. 너희들도 이런 생각을 갖고 있을까?

메리엠은 다섯 번의 면접 끝에 슈퍼사우루스라는 회사에 인턴으로 일하게 되었단다. 사수는 욜란다라는 46살 여자였는데 메리엠 입장에서 보면 의도적으로 메리엠을 괴롭히려고 사람 같았어. 메리엠이 일하는 준법감시팀의 팀장은 페란 마티키라는 사람이고 팀원으로 40대 초반의 빅토르 마르케스와 페드로 오테로가 있었어. 그러니까 메리엠 또래의 직원은 없었어. 그 와중에 품질관리팀의 오마르라는 사람이 계속 메리엔에게 플러팅을 해왔어.

….

메리엠의 집은 푸레르토리코라는 곳이고, 회사는 라스팔마스란 곳에 있어서 거리가 꽤 되어 출퇴근도 일이었단다. 집에 와서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주저리주저리 식구들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단다. 인턴이라 아직 정식사원이 아니다 보니 제대로 대접해 주지도 않는 것 같고, 인턴이 정직원이 되는 것도 드문 일이었어. 그 어려운 것은 해내는 메리엠의 성장 드라마가 펼쳐진단다. 몇 달의 인턴 생활을 마치고 마티키의 비서로 계약직원이 되었어. 인턴보다는 한 단계 올라섰지만, 아직 정규직은 아니고 계약직이었어.

 

2.

사수였던 욜란다는 여전히 메리엠에게 부정적으로 대한단다. 아빠가 생각하기에 회사에서 가장 힘든 것은 인간관계란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고 해도 마음 맞는 사람들과 일을 하면 그 힘든 일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지만, 갈구는 상사와 힘든 일을 해 나갈 때는 두 배, 세 배 더 힘들어지거든.. 메리엠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구나. 그런 일이 쌓이자 메리엠은 그 동안 마음에 담았던 것을 메일로 잔뜩 썼으나 발신 버튼 누르기 전에 모두 지우고 잘 알겠습니다로 대신했단다.

….

계약직원이 되었으니 당분간 회사에 계속 다녀야 하니, 집도 회사 근처로 알아보았단다. 하지만 이것 또한 쉽지 않았어. 원하는 집은 비싸고 월급은 적고, 월급에 맞춰 집을 구하다 보니 마음에 안 들고결국 많은 부분 포기하고 작은 방 하나를 구했어.

욜란다와 갈등은 점점 많아져서 힘들고 적성에 맞지도 않은 일은 점점 많아지고, 그렇다고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고고민 끝에 메리엠은 퇴사를 결심하고, 팀장에게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때마침 자신의 능력을 인정한다면서 정직원 신분과 대폭 인상된 연봉을 제안 받았단다. 그렇게 금융치료로 또 어려운 고개를 하나 넘어서는구나. 아빠도 나름 회사 생활을 오래 했는데, 금융치료만큼 힘든 회사 생활을 지탱해주는 것은 없는 것 같더구나. 누군가는 월급을 마약으로 비유하기도 했어. 한 달에 한번씩 받는 마약 때문에 회사 생활을 그만 둘 수 없다고 말이야.

….

정직원인 된 메리엠은 회사에서도 인정을 받아서 맞지 않는 옷인 줄 알았던 회사가 아주 편안한 옷은 아니지만 그래도 입을만한 옷으로 변해갔단다. 그리고 나중에는 부사수로 인턴 사원을 받고 리더의 역할도 하게 된단다. 그렇게 커리어 우먼이 되어간단다.

소설 속에서 나 자신을 하나의 회사로 간주한 글이 있는데, 참 공감이 가더구나. ‘라는 회사만은 잘 경영해봐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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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310)

어느 날 스스로를 하나의 회사라고 간주해버린다. 당신의 인생 드라마에선 당신이 최고경영책임자이자 최고운영책임자이자 최고재무책임자다. 그러니 당신은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항상 느끼며 인생에서 단 1분이라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면 안 되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자연스레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지면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으니까. 돈을 아끼고, 당신의 재능을 더 잘 이용하고, 업무를 다양화하고, 모든 면에서 결과를 최적화해야 한다. 이 모든 게 의미하는지, 당신이 인생에서 정확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고 해도 상관없다. 당신이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당신을 내쫓겠다고 위협할 직원도 없으니까. 그저 당신은 샤워를 마치고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면서 그 나이에 마땅히 이루었어야 할 모든 것들, 친구들과 달리 아직 눈앞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 때문에 스스로를 조금씩 갉아먹게 될 뿐이다. 그러다 귀에서 시계가 재깍재깍 소리를 내는 게 느껴지겠지.

==================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었는지 물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책의 끝 문장: 그녀에게 따르지 않는다는 선택지가 있긴 할까?


나는 계속 나이를 먹어갈 것이다. 가족에게 짐이 된다는 이유로,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역사상 교육을 가장 많이 받았지만 역사상 가장 낮은 임금을 받고 역사상 가장 많은 카페인을 섭취할 뿐만 아니라 역사상 가장 불안정하고 우울하고 콤플렉스가 많은 세대라는 이유로, 살짝 정신이 나간 채로 새벽 3시 27분이 되면 이력서를 여기저기 보내기 시작했다. - P21

그렇기는 하지만, 누구든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스물여섯 살이 되어 있으면 자신이 젊음을 잃었다고 생각하겠지. 그런데 스물여섯 살부터는 ‘카나리아제도 주민 전용 승차권’을 살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은 카나리아 주민이 될 수 없다는 뜻인가? 젊음과 주민은 상호 배타적인 관계인가? 나는 아직 28유로로 시내버스와 시외버스를 타고 다니지만, 스물여섯 살이 되는 순간 35유로를 내야 한다. 하여간 왜 청년할인은 있는데 성인 할인은 없는지 이해가 안 된다 내 또래들 대부분이 갈 곳이 없어 부모님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이 빌어먹을 경제적 상황에 사회적인 젊음은 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끝난다니, 말이 되는가? 하긴 휘발유 가격이 올라도 자기는 항상 20유로어치만 넓으니 상관없다는 멍청이도 있으니까. - P223

"우리는 정말 거지 같은 세상에 살고 있어." 나는 청중 두 명을 향해 말을 쏟아냈다. "누가 깔리든 말든 바퀴는 절대 멈추지 않아. 나는 점점 나이를 먹고 있어. 내가 바퀴에 깔리면 누군가 나를 대체하겠지. 우리가 미쳐버릴 때까지, 심지어 ‘자본주의가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고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지 않은 게 잘못’이라고 우리를 세뇌할 때까지 자본주의는 우리를 피폐하고 만들고 우리의 생명까지 빨아먹는 아주 병든 시스템이라고." - P229

할머니집의 벽은 내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 초반의 많은 이야기를 간직했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몇몇 기억들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흑역사,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에피소드, 사춘기 때의 경멸과 오만함을 떨쳐버리는 잊는 방법을 익혔다. 손님이 올 때마다 축 처지던 내 어깨도 지워버렸다. 문제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어땠는지, 할머니가 머리를 어떻게 빗었는지, 할머니 몸에서 어떤 향이 났는지, 옷차림은 어땠는지까지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 뚜렷하게 기억하지 못하냐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할머니’ 하면 얼굴 생김새, 우리가 집으로 돌아갈 때 많이 우시던 모습, 손, 커피를 무척 좋아하시던 모습만 생각난다. - P246

어김없이 돌아온 쓰레기 같은 월요일, 이메일로 충분히 대신할 수 있는 거지 같은 아침 미팅. 회사생활은 이 두 가지의 반복이었다. 그 와중에 복숭아색 정장을 입은 마카레나는 내 머리를 드럼세탁기처럼 핑핑 돌게 했고, 내가 거짓말할 걸 알면서도 멍청한 질문만 던졌다. 모두가 진실을 요구하면서, 막상 그들에게 진실을 말하면 그 진실을 넘기지 못해 캑캑대는 꼴이 우스꽝스러웠다. "이건 너무 쓰고, 너무 짜잖아. 설탕을 한번 넣어봐" 하며 진실을 가장한 거짓을 원했다. 여기서 계속 일하려면 내가 얼마나 더 당신에게 비굴하게 굴어야 하느냐고 마카레나에게 묻고 싶었다. 이제 눈에 뵈는 것도 없으니까. - P361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가족, 예를 들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삼촌이나 할머니가 돌아가시더라도, 내가 심한 우울증에 걸리더라도, 몸이 아프더라도, 계속 일해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우리의 삶은 무슨 일이 있어도 노동만은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듯이 흘러간다. 사람보다, 다른 것들보다 일이 더 중요한 셈이다. 가장 두려운 점은 내가 다른 것들을 우선시하며 노동을 그만둘 경우, 나를 대체할 사람은 차고 넘친다는 것이며, 나 또한 그걸 알고 주저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게 틀림없다. - P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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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령
알베르 카뮈 지음, 안건우 옮김 / 녹색광선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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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2024 12 3. 대한민국 사람들 모두를 놀라게 한 사건이 일어났단다. 귀를 여러 번 씻고 들어도 맞나? 싶을 정도로 황당한 사건. 계엄령. 계엄령이 오늘날 같은 시대에 일어날 수 있다고? 너희들도 깜짝 놀랬었잖니. 그래도 다행히 그 사건은 용기 있고 슬기로운 국민들로 인해 실패하여 1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그 계엄령이 일어났던 것이 다행이라고들 생각하고 있단다. 무식한 정권이 물러나고 제대로 된 정권이 들어서게 되어 우리나라도 제대로 된 모습을 빠르게 되찾았으니 말이야. 하지만 당시 계엄령이 성공했다면 얼마나 아찔했을까 하는 생각은 오랫동안 우리나라 국민들의 트라우마가 될 것 같구나. 그리고 그 불법 계엄령의 측근들이 아직도 여러 영역에서 자리 잡고 있고 계엄령을 일으킨 세력의 심판들이 아직도 지지부진 진행하는 것은 열 받고 화 나는구나.

그 일이 있은 후 출판업계에도 관련된 책들이 많이 출간되었단다. 그 중에 아빠의 눈에 확 띤 책은 알베르 카뮈의 <계엄령>이란 책이란다. 알베르 카뮈라고 하면 <페스트>, <이방인>으로 유명한 작가인데, 아빠도 이 두 책을 읽었어. 알베르 카뮈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위 두 책을 제외한 나머지 책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대표작 두 권을 읽었으니 다른 책들은 읽어볼 생각도 안 했단다. 그런 와중에 <계엄령>이라는 책을 알게 되어 살펴보았어.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희곡이란다. 책에 보면 실제로 연극의 장면이나 관련된 사람들의 실사 사진도 실려 있단다. 이 연극의 여주인공인 마리아 카자레스와 알베르 카뮈가 연인 사이이기도 했대. 이 책은 <페스트>, <이방인>보다는 유명하지 않지만, 계엄령이라는 소재 때문에 여전히 이슈가 있을 때마다 언급이 되고 있다고 하는구나. 그럼 바로 어떤 내용인지 살펴보자.


1.

이 책의 무대는 에스파냐 카디스라는 곳이다. 어느날 혜성이 휙 지나가고 나서 그 혜성에 대한 여러 소문들이 퍼지기 시작했어. 그러자 정부는 새로운 방침을 내렸단다. 시민들에게 혜성이 없었던 것으로 생각하고 혜성에 대해 말도 하지 말라고 공포했어.

....

그런데 어느날 카디스에 페스트 환자가 나타났단다. 얼마 안 가서 카디스는 대혼란을 겪고, 심지어 종말론까지 퍼졌어.. 페스트는 빠른 속도로 퍼져서 사람들을 더욱 공포로 몰아넣었어. 이 희곡의 주인공 디에고는 의사였는데, 그는 환자들을 성심 성의껏 돌보았단다.

얼마 후에 자신이 페스트라고 하는 사람이 카디스 총독을 찾아왔어. 자신에게 총독자리를 달라고 했어.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었는데, 페스트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어. 페스트는 비서 한 명을 데리고 왔는데 그 비서가 가지고 있는 수첩에 있는 명단에 선을 그으면 곧바로 죽었어. 일종의 데스노트였어. 페스트는 그것을 총독 앞에서 시전을 하자, 겁 먹은 총독은 권력을 페스트라고 부르는 남자에게 이양하고 자신은 도망을 갔단다. 그리고 페스트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모든 것을 통제하게 된단다. 심지어 죽음까지 통제를 하고 있었어. 데스노트에 있는 명단을 질서 있게 선을 그은 거지...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존재증명서라는 발급했어. 당연히 시민들의 반발이 있었지..

디에고도 그런 페스트에게 저항하다가 도망자 신세가 되었어. 여자친구인 빅토리아와 함께 빅토리아의 집으로 피신했어. 빅토리아의 아버지인 판사였는데, 그는 불법도 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새로 들어선 페스트 권력을 옹호하는 사람이었으니, 그로부터 도망 중인 디에고를 곱게 볼 일이 없지.

=====================

(105)

판사 : 내가 법을 지키는 것은 법의 내용 때문만은 아니네. 그것이 법이니까 지키는 거지.

디에고 : 그 법이 범죄를 가리킨다면요?

판사 : 범죄가 법이 된다면 그건 더 이상 범죄가 아닌 것이지.

디에고 : 그렇다면 미덕을 단죄해야 할 판이군요!

판사 : 분명, 그렇게 해야겠지, 만일 미덕이 건방지게 법을 검토하려 든다면.

빅토리아 : 아버지, 아버지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법이 아니라 두려움인 거예요.

=====================

판사는 디에고를 내쫓으려고 하자 디에고와 빅토리아는 반발했고, 그러자 판사는 디에고를 신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어. 판사의 부인도 디에고를 지지했지만, 판사는 자신의 주장을 일관했어. 우리나라의 일부 판사들을 보는 것 같구나. 계엄세력에 빌붙는 판사들이 많았잖니... 그들 때문에 마음 조리던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열 받는구나.

결국 디에고와 빅토리아는 다시 도망길에 올랐어. 디에고는 군중들과 함께 페스트에 맞서게 되는데, 페스트의 데스노트가 너무 막강했어. 몇몇 이름에 선을 긋자, 그들은 쓰러지고 말았어. 페스트가 디에고의 이름에 선을 그으라고 하자, 비서가 말하길 디에고는 선천적 능력을 자기고 있어, 불가능하다고 했어. 군중들은 계속 밀어붙였고 결국 비서가 가지고 있던 수첩을 빼앗았어. 하지만 수첩은 이후 오해로 인해 서로 뺏고 뺏기게 되고, 민중들은 빅토리아의 이름에 선을 긋게 된단다. 뿐만 아니라 마음에 안 들었던 사람의 이름을 찾아 선을 긋는 일을 했어. 지은이 카뮈가 민중들을 왜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들로 설정했는지 궁금하구나. 누구나 또한 권력을 잡으면 똑 같은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나?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은 소설 속 민중들과 달리 고귀한 영혼을 가진 이들이 훨씬 많아서 다행이다.

디에고는 빅토리아가 쓰러져 죽는 것을 보고 페스트와 설전을 벌이게 되는데, 페스트의 비서가 배신을 하고 디에고 편으로 돌아서게 된단다. 페스트와 디에고의 다툼은 지난 겨울 계엄세력과 우리 국민들의 저항의 대결을 보는 듯했어. 우리 국민들이 승리했듯이 디에고가 페스트를 몰아내게 되지만, 죽음의 표식이 생긴 디에고도 죽고 말았단다. 혁명의 성공에는 희생이 뒤따른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구나.

디에고는 죽고 빅토리아는 깨어나게 되고... 하지만 페스트는 죽은 것이 아니라 그 도시를 떠난 것이 찜찜함을 남기는구나. 그러니 언제고 다시 돌아와서, 또 계엄령을 내릴 여지는 남아 있었단다. 그러지 않게 다시는 계엄령이 안 일어나게 하려면 뿌리까지 다 제거해야 하는 것이야.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계엄 세력에 대한 심판이 이 소설의 교훈을 잘 새겨들었으면 좋겠구나.

....

페스트가 물러나고 민중이 권력을 잡으면서 희곡은 끝나는가 싶었는데, 따른 결말도 제시를 했단다. 도망갔던 총독이 다시 돌아오는 거야. 하지만 민중들은 예전의 민중들이 아니야. 디에고의 말을 깨닫고 그들에게 권력을 다시 주지 않았어. 총독들, 각료들, 그리고 페스트의 빌붙었던 나다 등을 뱃전 아래로 던져 버렸단다. 이런 우발적인 시민들의 행동은 과연 옳은가? 속은 시원할지 모르지만 그들의 행동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단다. 그 사회도 법이 있고 규율이 있었을 텐데, 그 법의 테두리 안에서 심판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카디스의 민중은 데스노트를 탈취할 때도 그랬고, 마지막 총독과 각료들을 처단하는 것도 그렇고 불완전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구나. 좀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해 보이는구나.

...

책은 그렇게 끝이 났단다. 책인 아빠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다시 한번 민주주의의 힘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이고, 계엄령의 부당함을 깨닫게 해 주었단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아찔했던 2024년 겨울 같은 일이 우리나라에서는 다시는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법 계엄을 주도했던 사람들, 협조했던 사람들 모두 중벌을 받아야 다시는 그런 일을 꿈꾸지 못할 것 같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경보 사이렌을 연상케 하는 요란한 주제의 서곡.

책의 끝 문장: 거대한 파도가 선박의 갑판을 쓸어 버린다.


그러니 명심해라, 내가 도착하는 순간 감동적인 것은 더 이상 없다. 그 따위 감동은 금지된다. 그 밖의 몇 가지 쓸데없는 것들, 예컨대 행복을 원하는 우습기만 한 초조함, 사랑에 빠진 이들의 얼굴, 풍광에 취하는 이기적인 작태, 불경한 풍자 행위 등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들의 빈자리에 나는 조직을 이식한다. 처음에는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끝에 가서는 탁월한 조직이 너절한 감동 따위보다 훌륭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렇듯 탁월한 생각을 실행하기 위해, 남자와 여자를 분리하는 조치를 시행할 것이다. 나의 명령은 법률이 규정하는 것과 동등한 효력을 가진다. - P75

판사 : 내가 법을 지키는 것은 법의 내용 때문만은 아니네. 그것이 법이니까 지키는 거지.
디에고 : 그 법이 범죄를 가리킨다면요?
판사 : 범죄가 법이 된다면 그건 더 이상 범죄가 아닌 것이지.
디에고 : 그렇다면 미덕을 단죄해야 할 판이군요!
판사 : 분명, 그렇게 해야겠지, 만일 미덕이 건방지게 법을 검토하려 든다면.
빅토리아 : 아버지, 아버지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법이 아니라 두려움인 거예요.
- P105

아니, 빅토리아, 엄마는 닥치지 못하겠다. 내 평생 입 닫고 살아왔다. 내 명예를 위해서 그랬고, 신의 자비를 위해 그랬다. 그런데 명예란 게 이제 하나도 남지 않았어. 내 아들의 머리카락 한 올이 하늘에 계신 신보다도 귀중하단 말이다. 그러니 이제는 입 닫고 살지 않으련다. 이 사람에게 적어도 이 말만은 해야겠다. 당신 같은 사람 편에는 권리가 함께하지 않는다고. 당신도 잘 알겠지만, 권리란 고통받고 신음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편에 있으니까요. 권리는, 약삭빠른 자나 돈에 눈이 먼 자와는, 함께하지 않아요. - P109

내가 경멸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려 드는 자들뿐이야. 네가 무슨 짓을 저지르든, 저 사람들은 너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어. 만일 저들이 어쩌다 딱 한 번 사람을 죽였다 해도, 그것은 잠시 광기에 사로잡혀 그랬던 걸 거야. 그런데 너는, 그 잘난 법이니 논리니 들먹이며 대학살을 자행하고 있지. 고개를 들지 못하는 저들을 비웃지 마. 그건 이미 수백 전부터 공포를 불러오는 혜성들이 저들의 무리를 수도 없이 지나갔기 때문이니까. 저들의 겁먹은 모습을 보고 비웃지 마. 수백 년 전부터 저들은 죽어갔고 저들의 사랑은 너덜너덜하게 찢겨 왔어. 설령 저들이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원인이 존재하는 거야. 그러나 저들을 상대로 너희들이 저질러온 죄악에는, 네가 고안해 낸 그 따위 역겨운 질서에 맞춰 이 세상을 체계화하는 일을 완수하기 위해 저질러 온 죄악에는, 나는 그 어떤 근거도 찾을 수 없어. (페스트가 데이고 쪽으로 걸어온다) 네가 다가온다고 눈 하나 깜짝할 것 같아?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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