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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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또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을 읽었단다. 이번에는 신간으로 나온 그의 에세이 모음집이야. 아빠가 슈테판 츠바이크 책을 이야기할 때마다 이야기를 해서 아빠가 슈테판 츠바이크를 좋아하는 건 이제 다 알겠지? 신간 코너의 그의 책이 나와서 예전에 나온 책이 재출간된 것인가 봤더니 그의 미공개 에세이를 모아서 출간한 것이라고 하는구나. 제목은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이고, 부제로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이라고 적혀 있단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유대인이었던 슈테판 츠바이크는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나치를 피해 브라질로 망명을 갔고, 우울증에 걸려 그 곳에서 아내와 동반자살을 했다고 했잖아. 이 책에 실린 에세이들은 망명 간 브라질에서 쓴 글들이라고 하는구나. 암울한 시절, 모국을 떠나 먼 타국에서의 망명 생활. 나치의 세력이 날이 갈수록 커지면서 모국으로 돌아갈 희망이 점점 꺾이는 어려운 시절에 쓴 글들이란다. 그의 글들을 모아 이 책을 출간한 이들이 제목을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로 뽑은 이유가 당시 그의 상황을 고려했던 것 같구나.

이 책에 실린 <이 어두운 시절에>라는 에세이가 있는데, 그 에세이의 내용에서 책 제목을 뽑은 것 같더구나. 대낮에 별을 보지 못하고, 평화로운 시절에는 잘 모르고 있던 것이 어두운 시절에 그것의 가치를 알 수 있다는 취지로 글을 썼는데,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했어. 평상시 민주주의라는 것이 그렇게 가치 있는 줄 몰랐는데, 계엄 사태, 내란 사태를 겪고 보니 민주주의란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 깨닫게 되는 기회가 되었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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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우리는 밝은 대낮에 별을 보지 못하듯, 삶의 신성한 가치가 살아 있을 때는 그것을 망각하고, 삶이 평온할 때는 삶의 가치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영원한 별들이 얼마나 찬란하게 하늘에 떠 있는지 알려면 먼저 어두워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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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많은 걱정을 하면 살곤 한단다. 걱정에 대한 격언들이 참 많은데 대부분이 걱정은 쓸데 없다는 내용으로 그 격언들을 공감하게 된단다. 하지만 그건 그것이고, 살다 보면 또다시 걱정은 마음 한 켠에 쌓여 간단다. 이 책에서 안톤이라는 사람 이야기를 하면서 걱정 없이 사는 기술을 이야기를 한단다. 핵심은 돈을 멀리하고 사람을 가까이하라는 것이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많으면 걱정이 줄어들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욕심은 커지면 커질수록 더 커지게 되는 법이지.. 그래도 우리 사회 시스템이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보니 돈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구나. 그 시절 브라질에서나 가능하겠지? 이런 핑계 같은 생각도 들었어. 하지만, 사랑을 위해 일한다는 점은 마음에 새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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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

사람들이 얼마나 특별히 그를 존경하는지 알아보려면 거리에서 안톤을 잠시만 지켜보면 된다. 모두가 그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모두가 그와 악수를 나눈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정말로 교과서적으로 신을 믿는 삶, 그 위대한 삶의 비밀을 핏속에 가진 자의 힘을 나는 안톤에게서 명확히 보았다. 확실히 가장 가난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하는, 낡은 코트 차림에 이 단순하고 걱정 없는 남자는 자기 땅을 순시하는 지주처럼 여유롭고 다정하게 동네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는 누구의 집에든 들어갈 수 있었고 어떤 자리에든 앉을 수 있었으며, 오직 최소한의 것만 원했기에 그에게는 모든 것이 허락되었다. 나는 안톤이 가진 힘의 비밀을 곧바로 이해했다. 돈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일했기에 모두가 그를 존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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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돈에 대한 이야기가 또 나오는데 슈테판 츠바이크 또한 돈을 멀리하지는 못한다면서 돈이 내 삶의 지배자가 되는 것도 원치는 않는다고 했어. 그래, 바로 이 자세돈을 너무 멀리하지도 않고 돈에 너무 집착하지도 않는 중용의 자세를 취하고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집중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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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그 후로 내가 돈을 무시했다고 말하면 거짓말일 터다. 돈이 줄 수 있는 즐거움과 자극을 나는 절대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모든 방문객에게 하듯이, 나는 돈에도 모든 문을 활짝 열어둔다. 하지만 돈은 방문객 그 이상은 아니다. 나는 돈의 주인이 아니고, 돈이 내 삶의 지배자가 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날의 경험을 통해 나는 지울 수 없는 교훈을 배웠다. 우리는 진정한 안전은 가진 재산에 잊지 않고 우리가 누구고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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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책에서는 당대 유명한 미술가인 로댕과 만남을 적은 글도 실려 있단다. 지인을 통해 슈테판 츠바이크는 로댕을 만났단다. 로댕에게 집중력이란손님으로 온 슈테판 츠바이크가 있는지는 모른 채 작업에 몰두하여 무아지경에 빠질 정도의 집중력. 타고난 재능도 있어야겠지만, 로댕을 훌륭한 조각가로 만든 것은 이런 열정과 집중력이 아닐까 싶구나. 주의 산만한 아빠로서는 정말 불가능한 집중력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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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5)

그렇게 시작된 작업은 30, 한 시간, 한 시간 반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다. 그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거기 있다는 사실조차 완전히 잊었고, 나는 그런 모습에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받았다. 그는 자기가 초대한 손님이 뒤에서 보고 있다는 것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고, 낮인지 밤인지조차 몰랐으며, 시간도 장소도 잊었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작품과 그 너머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그가 성취하고자 했던 더 높고 더 진실한 형태만 응시했다. 그의 육중한 몸이 가볍게 움직였고, 어떤 깨달음이 흡사 술에 취한 듯한 그의 존재를 감쌌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마치 천지창조 첫날의 신처럼 홀로 창조 작업에 전념했다. 시간과 공간과 세상을 그토록 완벽하게 잊을 수 있다니, 젊은 나로서는 처음 경험하는 큰 충격이었다. 그 한 시간에 나는 세상의 모든 예술과 성과의 궁극적 비밀을 확실히 이해했다. 그것은 바로 집중이었다. 크든 작든 어떤 작업이든, 수행하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너무 자주 수백 가지 사소한 일에 분산되고 쪼개지는 의지를 진정으로 원하는 한 한 가지에 집중하는 영혼의 결단이 있어야만, 오직 그런 결단력으로만 진정으로 일할 수 있다. 손님에 대한 무례일 수도 있지만, 그는 나를 완전히 잊었고, 그렇게 나는 없는 사람처럼 위대한 대가 뒤에 숨을 죽이고 주변의 대리석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 한 시간에, 나는 지금까지 내게 없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완벽을 향한 의지로 모든 것을 잊는 열정! 크든 작든 자기 일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사람만이 그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다. 다른 마법은 없다. 나는 그 한 시간에 이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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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테판 츠바이크를 망명하게 만들고, 우울증에 빠지게 만들고 결국 자살하게 만든 히틀러라는 작자. 그는 광기가 그 이전에 소설 속의 주인공과 아주 흡사하다고 하더구나. 슈테판 츠바이크는 그 소설을 읽으면서,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텐데, 그로부터 20여 년 후 실제에 그런 일어 벌어졌을 때 더 놀랐을 것 같구나. 그 소설을 쓴 소설가 블라스코 이바녜스는 그 소설을 통해서 독일 국민 속 마음을 대변하려고 했던 것일까? 광기의 소설은 광기의 현실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지옥이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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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131)

오늘날 히틀러가 전 세계에 강요하려는 이 모든 계획은, 너무나 진짜 같은 허구의 인물, 하르트로트에 의해 고안되었다. 우리는 세계 지배의 꿈이 독일 국민의 무의식 속에 이미 늘 존재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에 빠진다. 히틀러는 그것을 발명하지 않았다. 블라스코 이바녜스가 25년 전에 하르트로트의 입을 빌려 예언했던 것이 그의 광기를 통해 실현되었을 뿐이다. 고립된 몇몇의 개인이 사악한 꿈에 불가했던 것이 이제는 수백만의 소망이 되었고 세계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요소가 되었다. 플라스코 이바녜스의 소설은, 작가가 정치학 교수보다 당대와 미래를 더 잘 이해한다는 것은 다시 한 번 더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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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50페이지도 안 되는 얇은 책으로 금방 읽을 수 있지만, 담겨 있는 글들은 커다란 메시지를 남겨 묵직함마저 들었단다. 책을 덮으면서 역시 슈테판 츠바이크라는 생각이 들었어. 바쁘지만 않다면 책을 필사해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단다. 하지만 읽어야 할 책들, 독서 편지로 써야 할 책들이 밀려 있어 필사할 시간은 없을 것 같구나. 나중에 너희들도 커서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들을 좋아했으면 좋겠구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도구인 돈을 주체적으로 피하는 기술, 그리고 단 한 명의 적도 만들고 않고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기술, 매우 어려운 이 두 가지 기술을 내게 보여준 사람이 있다.

책의 끝 문장: 오로지 폭력만이 세상을 지배한다면 자유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나는 종종 완톤을 생각한다. 그토록 큰 도움을 내게 준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항상 고마운 마음이 든다. 때때로 사소하고 어리석은 돈 걱정이 들 때면 나는 당장 단 하루에 필요한 것 이상을 원하지 않아 늘 여유롭고 태평하게 살 수 있는 이 남자를 떠올린다. 허름한 옷차람의 그를 여러 차례 보았다. 그는 늘 한결같이 쾌활하고 태평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이런 상호 신뢰의 비결를 배운다면 경찰도 법원도 교도소도 돈도 필요 없을 거라고. 필요한 만큼만 대가를 받고 능력이 닿는 한 힘껏 돕는 이 청년처럼 들어가 산다면, 부조리가 반복되어 ‘사회 문제’가 되는 우리의 복잡한 경제 시스템도 어쩌면 해결될지 모른다. - P22

그 중요한 순간에 그를 저버리고 만 것은 공감 부족이나 무관심, 못된 의도가 아니었다. 가장 필요할 때 올바른 말을 못하게 막는 것은 많은 경우 용기 부족인 것 같다.
패배나 굴욕의 수치심으로 영혼을 다친 사람에게 다가가는 일이 절대 쉽지 않음을 잘 알지만, 이때의 경험을 통해 나는 누군가를 돕고 싶은 작품 첫 번째 충동의 주저 없이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공감의 말과 행위는 도움이 가장 절실한 순간에만 참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 P32

자연의 의지는 연속성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어떤 중단도 용납하지 않는다. 자연은 사람들 일부가 무참히 파괴되더라도, 나머지 사람들은 끈기 있게 인내하며 일상생활을 이어나가길 요구한다. 우리가 때때로 시대에 무관심해 보인다면, 그것은 자기 피조물의 고통에 무관심한 자연의 잘못이다. 그리고 무너져가는 세계의 폐허를 재생 계속 노려보는 대신 더 나은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려고 노력할 때 뒤로서 우리는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명령에 순종하게 된다 - P60

우리의 심장은 너무 작아서 일정량 이상의 불행을 감당하지 못한다 - P61

그는 자살하기 직전이 1942년 초 브라질 페트로폴리스에서 자신을 방문한 동료 이민자 작가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장 무의미한 파괴가 벌어지고 있고,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끌려가는 것을 알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숨을 쉬고 자고 먹을 수 있겠습니까? 창작은 뭔가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가장 악의적인 파괴가 현재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어떻게 뭔가를 만들 수 있겠어요!"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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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부장들 - 개정 증보판 남산의 부장들
김충식 지음 / 폴리티쿠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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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2024 12 3. 40여 년만의 비상 계엄 선포. 그것은 단순히 불법 비상 계엄이 아니었고, 치밀하게 준비된 친위쿠데타이자 내란이었음이 밝혀지고 있단다. 비상 계엄의 핑계거리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북한을 자극했다는 사실도 밝혀지고 있는데, 북한이 그런 자극에 반응을 했다면 우리는 지금 전쟁 속에서 끔찍한 삶을 살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소름 끼치면서도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런데도 아직도 그를 옹호하고 있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 더욱 열 받고 화가 나는구나. 윤은 실패한 전두환이었어. 전두환을 따라 하려고 했으나 실패했어. 전두환이 쿠데타에 성공을 했지만, 결국 사형 선고를 받은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윤은 왜 전두환을 따라 하려고 했을까. 알코올중독자이자 정신병자라서 할 수 있는 판단이 아닐까 싶구나.

이런 시국에 문득 떠오른 책이 한 권 있단다. 김충식 님의 <남산의 부장들>이란 책이란다. 아빠가 몇 년 전에 <남산의 부장들>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그 영화가 김충식 님의 <남산의 부장들>이라는 책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 책을 구입했단다. 책이 생각보다 엄청 두꺼워서 읽기 망설이다가 이번 12.3 내란을 겪고 나서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10.26 사건의 전후를 다룬 영화였는데, <남산의 부장들> 1961년 군사 쿠데타부터 1980 5공이 세워질 때까지의 이야기를 박정희와 중앙정보부의 부장들의 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려나는 책이란다. 당시 중앙정보주가 남산에 위치하고 있어서 책의 제목이 <남산의 부장들>이라고 한 거야. 또한 이 책은 박통 시절의 우리나라 역사라고 할 수 있단다.

역사는 권력자의 중심으로 쓰여지다 보니,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잡고 있던 박정희와 그 측근들의 이야기는 곧 그 시절의 역사가 되니까 말이야. 아빠가 이 시절의 현대사를 다룬 책들을 여럿 읽은 적이 있고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굵직한 내용들은 익히 알고 있는 내용들이었단다. 그러나 상세한 내용들과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들은 아무래도 아빠가 직접 겪은 시절이 아니므로 새롭고 놀라운 것들도 있었단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새삼 깨달은 것은 민주화되지 않은 당시는 억압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답답하고 억울했겠다는 사실이야. 그런데 자칫 잘못 했으면 그런 시절로 다시 돌아갈 뻔했으니, 큰일 날 뻔했구나.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관련자들은 모두 중형으로 엄벌에 처해야 할 것이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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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

71 12 6일 대통령 박정희는 돌연 국가비상사태라는 것을 선포했다. 특별담화 형식으로 발표된 비상사태는 북의 위협을 빗대 체제 강화를 꾀한, 말하자면 제1차 유신이었다.

놀랍게도 이는 헌법적 근거가 박약한 것이었다. 청와대측은 궁색한 나머지 당시 대통령 취임선서의 나는 국가를 보위하고…’라는 구절에 비상사태 선포의 근거가 있다고 우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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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인데, 놀랍게도 2024 12 3일에 일어난 일과 너무 유사하구나.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빠는 깜짝 놀랬어. 역사는 반복된다고… 1971년이면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지 10년이 된 시점이란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 친위쿠데타를 벌인 거야.

…..

1961 5 16일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군사 쿠데타로 그가 정권을 잡는 과정도 이야기해주고, 그의 측근들이 한 짓들도 이야기를 해 주는데, 그의 측근들, 그러니까 그의 똘마니들은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알력 다툼하는 것처럼 보였단다. 김형욱, 김종필, 이후락, 김재규 등. 이 책에서는 이름의 영어 알파벳으로 쓰기도 하고 이름으로 쓰기도 했는데, 이름으로 통일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시절에 익숙하지 않는 독자들도 있으니까 말이야.

1대 중앙정보부장인 김종필은 정치를 한다면서 그만 두고, 이후 짧은 시간 동안 김용순, 김재춘이 맡았다가 김형욱이 중앙정보부장이 되면서, 60년대 박정희 공포 정치가 극성을 부리게 되었단다. 김형욱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이자 극우주의자였단다. 그는 법보다 주먹과 총칼이 앞섰던 사람으로, 박정희의 3선 개헌을 완성하는데 (박정희 입장에서 보면) 공을 세운 사람이었어. 하지만, 박정희는 애완견을 오랫동안 곁에 두지 않았어. 70년대 버림을 받고 중앙정보부장에서 물러나고, 김계원이라는 사람이 1년 정도를 하다가 이후락이란 사람이 바통을 이어받았단다. 이후락이라는 자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나쁜 놈이었단다.

1971년 대통령 선거 당시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불법을 저질렀으며, 공작을 부렸고, 상대 진영 후보를 협박하였다고 하는구나. 그들은 야당인 신민당의 대통령 후보로 이기기 손쉬운 유진산으로 만들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김대중이 후보가 되자 박통이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하는구나. 아빠가 예전에 <김대중 자서전>을 읽고 쓴 독서 편지가 있는데 그 편지를 참고해도 좋을 것 같구나. 암튼 이후락은 온갖 불법을 저지르고, 지금도 큰 돈인 600억원을 쓰고, 지역 감정을 유발하는 비겁한 행태를 부려서 결국은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었다는구나. 그런데 아주 근소한 차이로 이겼다는구나. 그런데 그것을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그 선거 이후 박정희가 종신 집권을 마음먹지 않았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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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락이 벌인 일 중에 의외에 일이 있는데 바로 평양에 잠입하여 김일성을 만나 7.4공동성명을 이끌어낸 것이란다. 반공을 일삼던 박정희 독재 정권이 갑자기 햇볕 정책을 하다니…. 아빠도 학창 시절 이 부분을 배울 때 좀 의아해했단다. 하지만 남북의 관계 개선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어. 1970년대는 이후락의 전성 시대라고 할 수 있었지. 그래서인지 이후락은 선을 넘는 행동을 하게 된단다. 1973년 김대중 납치극을 벌인 거야. 일본에 망명중인 김대중을 납치하여 일본 바다로 데리고 가서 죽이려고 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CIA에서 만류해서 살아난 사건이란다. 이 이야기도 아빠가 예전에 <김대중 자서전> 이야기할 때 했었단다. 오늘은 <김대중 자서전>에서 한 이야기랑 겹치는 부분이 많은데, 그 때 쓴 독서 편지를 다시 한번 읽어도 좋을 것 같구나. 김대중 납치 사건은 박정희의 지시가 있었는지 결국 확인되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누군가는 박정희가 시킨 일이라고 하지만, 이 책의 지은이 김충식 님은 정황상 박정희의 지시 없이 이후락이 단독으로 벌인 사건이라고 하였단다. 아무튼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과 관계가 악화되고, 남북관계도 깨지고, 일본과 관계도 악화되었단다. 무엇보다 이 일로 이후락은 버림받게 되고 몰래 출국했다는구나.

 

2.

박정희는 이후락 후임으로 1973 12월부터 신직수를 중앙정보부장에 선임했어. 이 때에는 박정희 독재에 항거하는 학생 운동이 점점 심해지던 시절이었단다. 그래서 긴급조치가 발령되었어. 1974 1  발령된 긴급조치 1호는 이후 9호까지 이어지는데 독재 정권을 강화하는데 쓰이는 악법 중에 악법이었단다. 그것을 신직수가 주도하였단다. 이렇게 시국은 점점 불안정해지는 가운데 재일동포 문세광은 박정희를 시해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육영수 여사가 피살당하였단다. 이 일로 박정희는 큰 충격에 빠진 듯 했고, 한국 정부는 일본에 강력하게 항의를 했지만, 이번 사건은 김대중 납치 사건의 연장 선상에 있는 것으로 한국인이 한국에서 저지른 범죄라면서 자신들과 무관하다고 했단다.

이 사건으로 인해 박정희를 14년간 경호했던 경호실장 박종규가 물러나게 된단다. 박종규 후임으로 온 경호실장이 그 유명한 차지철이란다. 국내 정세는 점점 불안정해지기만 하고,  남북 관계에도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벌어진단다. 1976 8 18일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 일어난단다. 북한군이 도끼로 미군을 살해한 사건인데, 박정희는 이 사건에 열불을 내고 강경 대응을 했단다. 전쟁까지 일으키려고 했는데, 미군이 강하게 자제시켰단다. 1976년 재미 동포 박동선이라는 사람이 미국 의회에 불법 로비를 한, 일명 코리아 게이트 사건이 발생하여 박정희 정부와 미국의 카터 정부는 관계가 악화되었어. 이 코리아 게이트로 인해 신직수가 물러나고 김재규가 중앙정보부장이 되었단다.

1977년에는 미국으로 망명을 간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이 박정희의 비리를 폭로하기 시작했어. 김형욱은 미국 의회 청문회에 참석하기도 하고, 회고록을 통해서 박정희의 비리를 폭로하려고 했어. 박정희는 사람을 보내서 협상을 했고, 돈을 받고 회고록 원본을 받아 오기도 했단다. 그런데 그 전에 유출된 사본이 있었던 거야. 그 유출된 사본으로 인해 김형욱의 회고록이 출간되었고, 김형욱은 파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단다. 어떻게 죽었는지 아무도 모른 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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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4대 중앙정보부장은 김형욱이었다. 79년 프랑스 파리에서 증발해 지금까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조차 확정되지 않은 인물. 누군가에 의해 영원히 제거됐을 것이라는 추측만 김형욱의 운명은 박정희 정권의 영욕을 상징하는 듯하다. 김형욱의 별명은 뚝심의 돈까스였다. 이 별명은 남재희 정치부 기자가 지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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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실장 차지철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갈등은 점점 심해지고, 박정희는 차지철의 의견에 많이 치우쳐 있었단다. 차지철의 권력이 정점을 이루고 있던 시절이었어. 심지어 차지철의 말 한마디에 민간 기업의 건물 높이까지 조정했다는구나. 1979년 여름부터 김재규는 박정희로부터 신임을 점점 잃게 되고, 이런 불만들과 차지철의 오만과 어지러운 국내 상황들이 어우러져 그가 결국 박정희를 제거하게 되었단다.

1976 10 26일 김재규가 일을 벌인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그로 인해 오랜 독재 정권이 끝나게 되었단다. 하지만 또 다른 괴물이 기다리고 있었을 줄이야. 박정희 아래서 때를 기다리며 성장하던 괴물 전두환에게 10.26 사건은 기회라고 생각했을 거야. 그보다 직책이 높은 이들도 있었지만,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은 10.26 사건의 조사를 주관하면서 세력을 넓혀 갔고, 12.12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서 또다시 군사 정권을 세워버리고 말았단다. 누가 봐도 사악하고 불의의 악마 같은 사람이란다. 그런데 2024 12.3 내란을 저지른 윤이 전두환을 흠모했었다고 하니, 머릿속을 열어 보고 싶구나. 보나마나 알코올에 찌든 녹아 내린 뇌가 있겠지….

오늘은 박정희 정권과 중앙정보부장들의 이야기가 담긴 <남산의 부장들>에서 인상적인 부분들과 이야기를 해서 전체적인 맥락이 이어지지 않은 점 이해해 주길 바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아빠가 예전에 읽은 <김대중 자서전>이 자꾸 떠올랐단다. 너희들이 나중에 이 책을 읽게 된다면 <김대중 자서전>과 함께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나저나 헌법재판소에서 얼른 윤석열 탄핵 최종 판결이 얼른 났으면 좋겠구나. 아직도 복귀를 꿈꾸고 있는 윤석열과 그를 지키려고 하는 수구 정당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한국 중앙정보부장 10명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책의 끝 문장: 5공의 팡파르가 울려 퍼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이낙선의 5.16혁명 데모는 대질이 이루어졌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강영훈 씨는 사실이 아니라고 증언한다.
"군이 정치에 개입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육사생도를 정치에 끌어들이는 그런 짓은 쿠데타의 경우에도 금기로 되어야 한다. 그 당시 육사 출신 대위 몇 사람과 내가 대질했다는 말이 있는 모양이나 전혀 사실이 아니다.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4년제 육사 출신 셋을 복도에서 만났는데 그중의 하나가 전두환이었다. 하지만 내가 육본에 갔던 그날, 같은 11기 출신이라 해도 김성진(80년대 체신부장관) 등과 같은 장교는 지지 데모에 반대했고, 관망하는 사람도 많았던 것이다.
- P47

정보부가 캔 미량의 석유는 유리병에 담겨 청와대에 올려졌다. 박 대통령은 너무 기쁜 나머지 국무회의 때 유리병에 담긴 원유를 탁자 위 재떨이에 붓고 불을 붙여보였다.
그러나 경제성이 없는 석유였다.
애당초 비서실장 김정렴과 오원철 등은 "탐사가 끝날 때까지 발표 않는 게 좋겠습니다"고 건의했다. 박 대통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유 노다지’를 기대하고 정치적 효과에 사로잡힌 듯 그것을 발표해 버렸다.
희망이 크게 부풀면 절망도 깊다.
보통 한두 구멍 뚫다 마는 석유 시추는 포항에서는 무려 12구멍이나 시추되었다. ‘석유 원년(元年)’이니 하는 성급한 기대는 무참히 깨져갔다. 그리고 탐사 과정에서부터 주민들의 방대한 토지를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어 놔 90년대까지도 민원의 대상이 되었다.
- P629

그 무렵 박 대통령은 추가적인 미군 철수에 맞서 핵무기 개발을 꿈꾸고 ‘작전지휘권’을 지렛대 삼아 대미흥정을 벌였다. 그의 비공개 어록.
"미국 사람들은 작전권 이양 문제에 신경과민이다. 주한미군이 적어도 현수준을 유지하면 미군이 지휘관이 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주한미군 수가 현수준 이하로 감축되면 다시 작전지휘권 문제를 협의하겠다. 여기에 대해 미국 측은 못마땅해 가고 있고 답변이 없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자기 나라 군대를 몇 명 없고 장군만 몇 있다든지 하는데 남의 나라 60만인데 4만밖에 안 되는 미군이 지휘관을 갖고 있는 것도 이상한 상태 아닌가.
그러나 전쟁이 나면 해공군과 병참지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6.25 때부터 이날 이때까지 작전지휘권을 미군한테 맡겨온 것이다. 이 문제는 휴정협정하고도 아무 관계가 없어."
- P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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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2-12 1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들’은 우리가 불타기(분노·증오)에 치닫기를 바란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불타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하고도 안 싸워요. 그러나 ‘그들’이 일삼는 갖은 막짓과 바보짓을 멀쩡히 지켜보면서 ‘그들’한테 마음을 안 빼앗기면서 ‘우리 보금자리 살림짓기를 사랑으로 할’ 적에, 그들은 오히려 힘을 잃습니다.

‘그들’은 늘 우리가 ‘그들 쳐다보기’를 하면서 ‘그들 민낯에 불타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우리가 언제쯤 싸움을 걸려는지 기다리지요. 그들은 ‘몸돌봄(정당방위)’를 외치려고 노려봅니다. 그들은 아직 그물(법)에 걸리지 않는 테두리에서 ‘우리’를 놀리거나 괴롭히면서 ‘우리가 먼저 주먹질·불타기’를 하기를 바라요. 그래야 막장으로 치달으면서 ‘불기운(분노 에너지)’으로 그들 벼슬자리를 더 단단히 지키거든요.

바로 이런 불기운이 그동안 일본굴레(일제강점기)와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에 이르는 수렁에서 ‘그들’이 일삼은 짓입니다. 그들은 들너울(민주화)을 아예 짓밟거나 싹을 꺾지 않습니다. 그들한테 맞서려는 불길이 있어야 오히려 그들이 거머쥔 벼슬자리를 더 단단히 틀어쥐기 때문입니다.

저는 1970∼80년대에 어린날을 보내며 온갖 주먹놈을 겪고 지켜보았습니다. 국민학교나 마을에서 아이들은 돈있는 집이나, 힘센 주먹이거나 하면, 시험성적이 높거나 하면, 다들 이런 것을 휘두르면서 또래와 동생을 때리고 돈을 빼앗기 일쑤였습니다. 국민학교 여섯 해 내내 얻어맞고 돈을 빼앗기는 나날이었는데, 나라에 큰놈(대악마)이 있으면, 배움터와 마을에 작은놈(소악마)이 어우러지는 길을 바로 ‘그들’이 단단하게 세운 셈입니다. 1970∼80년대뿐 아니라 1950∼60년대와 1900∼40년대에도 이런 큰놈·작은놈 얼거리는 똑같았습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주머니에 1원 한 푼조차 없으면 더 얻어맞더라도 뭘 빼앗기는 일은 없더군요. 그들이 주먹이 지쳐서 때림질을 그칠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면 오히려 때림질이 지겹다면서 침을 뱉고서 떠나요. 어려운 말로 ‘비폭력·무저항’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가 늘 불타올라서 그들하고 어지럽게 뒹굴며 싸우기를 바라더군요. 그래서 그들하고 안 어울리고, 안 불타오르면 오히려 그들은 ‘그들 스스로 벌이는 바보짓’을 느끼고 돌아보고 되새길 틈이 생기기도 합니다.

어느덧 모지리 윤씨가 바보짓을 일삼은 지 석 달이 흐르는데, 우리나라는 지난 석 달 동안 ‘대통령 없이 멀쩡히 잘 굴러가는 나라’를 보여줍니다. 아니, 우두머리라는 자리는 오히려 없어도 되고, 그런 자리를 맡는 나라지기가 없어도 걱정할 일이 없는 줄, 나라는 ‘그들’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보금자리를 사랑으로 알뜰살뜰 살림을 꾸릴 적에 든든히 지키는 줄 알아보는 나날로 삼아야지 싶습니다.

그들이 왜 우리가 불타오르기를 바라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불타오르면서 그들한테 손가락질을 하고 싸움박질로 얼크러지면,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돌아볼 짬이 사라지고, 우리 집을 멀리하고 말아요. 그들을 모두 몰아낸 자리에는 무엇을 세워야 할까요? 또다른 모지리가 우두머리나 나라지기를 차지하면 똑같은 굴레가 찾아올 뿐입니다. 우리는 이즈음에 ‘아이들이 물려받을 아름길’을 어떤 손으로 어떻게 살림하면서 사랑누리로 가꾸어야 슬기롭고 어진 어른으로 설 만한지 생각할 일이라고 봅니다. 《아나스타시아 1∼10》(블라지미르 메그레) 같은 책이야말로 오늘날 찬찬히 읽고 새기고 나눌 노릇이지 싶습니다.

bookholic 2025-02-13 09:29   좋아요 0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추천해주신 아나스타시아는 꼭 읽어보겠습니다.^^
 
지슬 - 제주4·3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김금숙, 오멸 원작 / 서해문집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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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제주 4.3 사건에 대해 다룬 책들을 몇 권 읽었단다. 소설이나 교양서적이었어. 제주 4.3 사건을 다른 책들 중에 <지슬>이라는 만화책이 있다는 것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단다. 아빠도 예전에 사 두고 있었어. 만화책이다 보니 너희들도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얼마 전에 아빠가 4.3 사건을 다룬 한강 님의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책을 읽고, <지슬>도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고 읽었단다.

<지슬>이라는 영화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래서 아빠는 만화 원작을 영화로 만든 것인 줄 알았는데, 반대더구나. 영화 <지슬>을 만화로 옮긴 것이라고 하더구나. 영화 <지슬>은 오멸이라는 사람이 감독을 했는데, 부산국제영화제 등 많은 상을 탔다고 하더구나. 그리고 만화책은 김금숙 님이라는 분께서 그리셨는데, 영화 내용을 충실히 따르셨다고 했어. 우리가 보통 만화와는 색감이 좀 달랐단다. 굵은 붓으로 터치한 것 같았어. 그래서 인물 묘사가 사실적이지 않아서 너희들이 안 좋아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어. 그런데 아빠가 생각하기에 제주4.3사건의 비극적인 사건을 다룬 만화는 이런 거친 붓질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리고 주인공들이 당시 제주도에 살던 평범한 서민들인데 그런 거친 붓 터치가 그들의 거친 삶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했어. 또 한편으로는 수묵화 느낌이 나기도 했단다.

 

1.

책 제목 지슬은 제주도 사투리로 감자를 뜻한다고 하는구나. 요즘에야 가공식품으로 맛있는 과자나 술안주로 많이들 먹지만, 예전에는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의 비상식량으로도 생각되는 감자였잖니. 빈센트 반 고흐도 <감자 먹는 사람들>이라는 작품 속 사람들은 지치고 가난한 사람들이었던 기억이 있구나. 지슬은 바로 그 감자의 제주도 사투리. 이 책에서도 숨어지내고 도망다니는 이들에게 서로 지슬을 주고 받았단다. 지슬은 단순히 먹거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었고 사랑이었던 거야. 제주 4.3사건은 아빠가 여러 번 이야기를 해서 또 하지는 않겠지만, 제주 4.3 사건은 피해를 입은 국민들만 상처를 입은 것이 아니고, 국가의 부당한 명령에 어쩔 수 없이 총을 들었던 군인들에도 큰 상처를 주었던 것이란다. 이 책에서도 국가의, 상사의 부당한 명령에 갈등하는 군인들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어.

 

 

그 부분을 읽으면서 작년 12.3 내란 사태 때 출동했던 군인들도 생각이 났단다. 어디로 출동하는지도 몰랐던 그들이 내린 곳은 국회이고, 그들이 상대하는 것이 적군이 아니고 시민들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은 소극적으로 대응을 하면서 갈등을 하는 모습이 카메라 속에도 보였거든.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마음은 당연한 것 같구나. 당시 몰상식한 지도자로 인해 많은 제주도민들이 희생되었지. 그리고 그런 몰상식한 지도자의 흉악한 결정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2024년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또 한번 큰 충격이었지. 많은 상식 있는 국민들이 나서서 행동하여 과거와 같은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긴 하구나.

….

만화 <지슬>을 읽고, 영화 <지슬>도 보고 싶더구나. 그런데 어디서 볼 수 있나? 찾아봤는데, 고맙게도 유튜브에서 무료로 공개되어 있더구나. 오랜만에 영화도 한 편 봐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춘섭아, 조심해.

책의 끝 문장: 민간인 학살의 배후에는 미군정과 미군 고문관이 있었지만 그들은 오랜 세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 학살에 관해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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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진 2025-02-08 1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연극으로 4.3을 처음 만났죠. 가슴 먹먹했던 순간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책을 보기 두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죠.

bookholic 2025-02-08 22:0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연극은 더욱 실감이 나겠네요...
그래서 나중에라도 4.3 사건을 다룬 연극을 못볼 것 같습니다.
너무 가슴 아플 것 같아서요...
 
세상 모든 것의 기원 - 어디에도 없는 고고학 이야기
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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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몇 달 전에 강인욱 님의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이란 책을 읽고 예상했지만 고고학이라는 분야도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숨겨져 있던 옛 이야기를 읽는 것은 어렸을 때 들었던 옛날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들기도 했어. 그래서 강인욱 님의 책 두어 권을 더 구입했는데, 그 중에 한 권을 이번에 읽었단다. <세상 모든 것의 기원> 어떤 것에 대한 기원을 찾는 것. 그것이 고고학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어떤 것에는 유형적인 것도 있고, 무형적인 것도 있고지은이 강인욱 님이 그 동안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알게 된 어떤 것들의 기원과 유래를 정리해서 이 책을 냈다고 하는구나. 세상 모든 것이라고 것이 한편으로 산만하고 주제가 일관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이 책에서 다룬 것은 모두 우리 인간들이 즐기고 사용하고 먹던 것들이니 인류라는 공통점이 있구나.

 

1.

이 책에서는 잔치, 놀이, 명품, 영원 네 가지 키워드로 나누어 이야기해주었단다. ‘잔치에서는 먹거리에 대한 기원을 이야기해주었어. 주로 우리나라에서 즐겨 먹는 음식과 술을 소개해 주었단다. 막걸리, 소주, 김치, 삼겹살, 소고기, , 상어고기, 해장국을 이야기 주었단다. K-Food라는 말로 한식이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요즘이라 더 알맞은 주제인 것 같구나. 그런 김치를 맛있게 즐기면 되는 거지이웃나라 중국은 자신이 원조라고 우기기도 하는데, 그러면 달라지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다른 나라들로부터 미움이나 받지. 김치는 남한과 북한이 각각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하더구나. 그것은 원조가 어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김치를 저장음식으로 만들어 겨울을 나는 지혜를 높이 평가했다는구나. 인류문화유산은 누가 원조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지혜를 따지는 현명한 판단을 하는 것이었단다.

===================

(46-47)

한국김치는 2013년과 2015년 각각 남한과 북한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선정 심사를 위해 유네스코에 제출한 보고서는 김치라는 무형유산의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살려서 만들어졌다고 평가받는다. 이 보고서에는 김치의 역사가 1,000년 정도라고 적혀 있었지만 기간은 인류무형 문화유산으로 선정되는 데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원조 유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해당 문화의 현대적 의미와 보편적 가치다. 이는 유네스코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하며 붙인 타이틀, ‘김장 : 김치를 만들고 서로 나누기에서 확연히 알 수 있다. 따지지 않았다. 선정위원회 측은 김치의 원조를 나누지 않았다. 그보다는 인류가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지혜롭게 저장 음식을 만들고 함께 나누었던 지혜를 김치에서 발견하고 이를 높이 평가했다. 승자는 불명한 원조를 큰 소리로 주장하는 자가 아니었다. 세계 사람들이 절로 고개를 끄덕이는 가치를 재발견해는 자가 승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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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먹거리에 진심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곤 한단다.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음식들이 있는데, 해장국도 그렇지 않을까 싶구나. 아빠가 다른 나라의 해장국이 어떤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는 해장국도 참 다양하고, 해장국을 먹으면 뜨거운 것을 먹으면서도 속이 시원하고 편안함이 느껴지거든요즘 아빠가 술을 거의 먹지 않아서, 숙취를 깨우는 해장국을 먹은 지 오래되었지만, 요즘 같은 추운 겨울날 식사로 먹어도 아주 좋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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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각 나라마다 저마다의 해장 문화가 있지만, 우리나라만큼해장이란 단어가 널리 쓰이는 나라는 없는 것 같다. 한국에는 아예해장국이라는 음식이 따로 존재할 정도다. 한국에서 해장국을 마시는 행위는 일종의 사회생활의 한 부분으로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 요즘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예전에는 회식을 한 다음날이면 으레 함께 술자리를 한 이들 중 한 명이오늘은 해장국이나 할까?” 하며 전날 멤버들을 다시 불러내어 합동으로 숙취 해소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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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놀이에서는 놀이, 고인돌, 씨름, 축구, 여행, 낙서, , 고양이를 이야기해주었단다. 축구의 기원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최근에 중국의 3200년 전 유적에서 공이 발견되었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중국이 축구의 기원이라는 것이 통설이라고 하는데, 왜 오늘날 중국은 그리도 축구를 못하는지…^^

반려 동물의 대표격인 개와 고양이에 대한 기원도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야생 늑대가 개로 진화하는 것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지만, 1950년대 러시아 유전학자 드미트리 벨랴예프라는 사람은 온순한 여우들을 교배하여 20년만에 꼬리를 흔들며 애교를 부리는 여우들이 나타났다고 하더구나. 그러니까 늑대들도 그런 식으로 짧은 시간에 온순한 개로 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 거지. 그리고 고양이는 자신이 집주인양 행동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고대에도 고양이를 숭배하곤 했다는구나. 고양이들의 도도한 행동이 그 때부터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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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고대 이집트에서 고양이는 인간의 숭배 대상이었다. 이집트 선왕조인 기원전 3700년경의 무덤에서는 고양이 뼈가 발견되었는데, 무덤에 묻히기 4~6주 전에 부러진 뼈를 치료받은 흔적이 있었다. 살아생전에 인간의 보살핌을 받았다는 뜻이다. 수많은 이집트인들의 무덤에서는 무덤 주인의 미라와 더불어 수많은 고양이 미라가 함께 발견되었다. 심지어 쥐 미라도 발견되었는데 이는 고양이의 먹잇감인 쥐를 함께 묻은 것으로 그만큼 고양이를 극진히 대우했다는 뜻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다산과 풍요의 여신인 바스테트가 고양이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 역시 이집트인들이 고양이를 숭배했음을 보여준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고양이를 죽이면 사랑에 처한다는 법이 있을 정도였다.

===================

..

세 번째 명품에서는 석기, 실크, 황금, 신라 금관, 인삼, 기후와 유물, 도굴, 모방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어.. 지구의 기후 변화가 고고학에서 악영향을 주는지 처음 알게 되었단다. 하기야 어디에 좋은 영향을 주겠니.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정말 걱정이구나.

===================

(231)

하지만 사정이 급변 중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영구동결대 얼음이 녹아버리면서 알타이 지역 문화유산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상황처럼 현재 지구 곳곳에서 이상 기후나 환경오염으로 해서 후세에 전해지지 못하고 묻혀버리는 역사가 적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보호해야 하는 문화유산은 비단 발굴이 완료된 것들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깊은 땅속에 매장되어 있어 언젠가 후세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유물들도 우리가 보호해야 할 문화유산이다. 말없이 사라지는 유물들이 많아질수록 인류 역사의 한 페이지를 밝혀줄 증거들도 줄어든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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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네 번째 영원에서는 벽화, 추모, 미라, 발굴 괴담, 마스크, 문신, 점복, 메신저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이번 <세상 모든 것의 기원>은 좀더 가볍게 읽을 수 있었고, 고고학에 대해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그런 책인 것 같았어. 기억력만 좋다면 사람들에게 해줄 이야기보따리를 갖게 되는 것이지만, 아빠의 기억력으로는 이미....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2019년 유학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러시아 동료 고고학자가 한국에 온 적이 있다.

책의 끝 문장: 앞으로도 흥미진진한 고고학자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야생 늑대는 어떻게 개로 진화할 수 있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해 답을 주는 굉장히 흥미로운 실험이 하나 있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50년대 러시아의 유전학자 드미트리 벨랴예프는 시베리아에서 사나운 은여우를 길들이는 실험에 착수한다. 그는 일군의 은여우 중에서 비교적 온순한 여우들을 골라 교배를 했다. 그 결과, 놀라울 정도로 짧은 시간인 20년 만에(6세대를 거친 후) 꼬리를 흔들며 애교를 부리는 행동을 하고, 형태적으로도 꼬리가 위로 말리는 오늘날의 개와 비슷한 모습을 한 여우를 키워냈다. 20년 정도의 짧은 기간 안에 유전자 수준의 변화가 이루어 질 수는 없다. 다만 길들여진 은여우의 호르몬은 야생의 은여우와 차이를 보였다. 벨랴예프의 연구로 늑대의 유전자에는 이미 인간의 반려동물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요소가 내재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인간을 만나면서 발현되었음이 밝혀졌다. - P163

미라를 만드는 핵심 기술은 부패하기 쉬운 내장을 빼내고 피부는 탈수를 시켜서 보존 처리를 하는 것이다. 먼저 콧구멍으로 갈고리를 집어넣어 뇌 속을 긁어 뇌수를 빼낸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얼굴에 상처가 나면 안 된다. 다음으로는 갈비뼈 밑에 구멍을 내서 장기를 빼내어 카노피라고 하는 별도의 단지에 넣는다. 단 저승에서 심판을 받을 때 필요한 심장은 부적과 함께 제자리에 다시 넣어둔다. 그 다음에는 몸에서 수분과 지방 성분을 빼내는 탈수 작업을 거친다. 단순한 탈수가 아니라 몸의 외형을 그대로 보존하는 길고도 세심한 작업이다. 얼마 전 3,45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미라를 만드는 방법이 적혀 있는 파피루스가 발견되었는데 35일간 건조를 하고 35일 간 군대를 감는 등 총 70일 뒤 소요된다고 했다. <창세기> 1장에도 이집트 정리가 된 요셉이 아버지 야곱의 죽자 40일간 미라를 만들고 70일동안 애도를 했다고 적혀 있는데 이는 파피루스 속 기록과도 대략 비슷하다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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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돈키호테 (꿈의 책장 에디션)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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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너희들에게 이야기할 책은 <나의 돈키호테>라는 책이란다. 몇 년 전에 Jiny도 재미있게 읽은 <불편한 편의점>의 김호연 작가님의 최신작이란다. 책 표지가 화사하고 밝은 표정의 청소년들의 모습이 책의 성격을 그대로 이야기해주는 듯하구나. 책의 제목이 <나의 돈키호테>인데, 돈키호테는 너희들도 어렸을 때 동화로 각색한 것을 읽었을 거야. 아빠는 10년 전쯤 열린책들에서 출간한 완역본을 읽었단다. 엄청나게 두꺼운 책 두 권짜리였는데, 읽고 나서 뿌듯함이 아직 기억에 있구나. 돈키호테는 완역본으로 한번 읽어볼 만하니 너희들도 나중에 커서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이 책의 제목을 왜 <나의 돈키호테>라고 지었을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책을 펼쳤단다.

 

1.

주인공 진솔. 나이 서른. 방송국 PD를 그만두고 엄마가 살고 있는 고향 대전에 내려왔단다. 그냥 대전이 아니라 노잼대전이라고 자학하듯 이야기했단다. 대전이라는 도시는 특별히 재미있는 것이 없다고 하여 노잼 도시라는 재미있는 별명을 가지고 있단다. 오죽하면 빵가게가 가장 유명하겠냐는 말도 본 적이 있는 것 같구나. 성심당이라는 빵가게인데, 이 책에서도 성심당이 소개되었어. 아빠도 두어 달 전 대전에 결혼식에 갔다가 성심당에 한번 가보았단다. 너희들과 함께 먹을 빵을 사기 위해여전히 엄청난 대기줄에 한참을 기다렸다가 기차 시간 전에 간신히 사 올 수 있었지. 아무튼 주인공 진솔이 대전에 오면서 소설이 시작한단다. 대전에 머물면서 유튜브를 하려고 하는데, 방송국 PD의 경험이 있지만 유튜브도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어.

학창 시절을 대전에서 보낸 진솔은 15년전 중학교 때 기억이 떠올랐단다. 동네 비디오 가게의 주인 아저씨 돈 아저씨와 일당들이 만든 라만차 클럽. 라만차는 돈키호테가 살던 스페인의 동네 이름이란다. 돈 아저씨가 운영하던 비디오 가게 이름은 돈키호테 비디오. 지금은 카페로 변하고 없어졌지만, 그곳은 진솔의 아름다운 추억이 깃든 곳이었어. 중학생이던 솔은 돈키호테 비디오에서 일도 도와주었고, 친구 선후배들의 아지트이기도 했던 곳이야. 돈 아저씨는 돈키호테 같은 사람이 되길 꿈꾸었고 그 두꺼운 돈키호테 소설을 모두 필사하기도 했단다. 진솔은 그런 돈 아저씨를 잘 따라서 산초라는 별명을 갖기도 했어.

….

대전에 내려온 소리 우연히 라만차 클럽의 멤버이자 친구이자 돈아저씨의 아들인 한빈을 만났어. 한빈은 자신도 아버지가 어디를 가셨는지 모른다고 했어. 돈키호테 같은 돈 아저씨. 돈 아저씨가 돈키호테 비디오를 운영할 때도 이미 이혼한 상태라서 아들 한빈과 한 달에 한번씩 만나는 사이였어. 한빈은 부동산 문제로 아버지를 찾고 있다면서 솔에게 도와달라고 했단다. 문득 솔은 이제 막 시작한 유튜브에서 돈 아저씨를 찾는 것을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돈 아저씨 공개 수배. 채널명도 돈키호테 비디오로 정했어.

 

2.

우선은 비디오로 영화 보던 시절의 옛 영화들을 소개해주는 것으로 시작했단다. 한빈이 홍보를 좀 도와주었는데, 옛 라만차 클럽의 멤버들도 하나씩 연락이 되었단다. 돈 아저씨의 정체는 무엇인가. 돈 아저씨의 본명은 장영수. 서강대 법대 출신. 학생 때 학생운동 하다가 옥고도 치름. 이후 1990년대 초반 대치동에서 영어 강사를 시작했는데 실력을 인정 받아 인기 있는, 잘 나가는 영어 강사가 되었지만, 학원장과 갈등을 겪고 학원계를 떠났단다. 학원장이 가난한 학생의 부모를 꼬득여서 안 들어도 되는 강의를 듣게 하는 것을 보고 대판 싸우고 나서 사교육에 환멸을 느끼고 학원계를 떠난 거야. 일타 강사의 길을 스스로 차버린 것인데, 평범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그러기 쉽지 않았을 거야.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돈키호테의 정신을 가졌기 때문이지.

학원계를 떠난 장영수는 벽해출판사라는 출판사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이곳에도 어느 정도 실력을 인정받았으나, 대리 번역을 시킨 어떤 교수의 뻔뻔함 때문에 대판 싸우고 또 출판계를 떠났단다. 이렇게 사고(?)를 쳐서 그런지 이혼도 당하게 되었어. 이후 돈키호테 비디오 가게를 차리게 되었단다. 진솔은 돈 아저씨가 지냈던 학원가, 출판계 사람들은 인터뷰하면서 돈 아저씨의 행적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큐식으로 하여 유튜브에 업로드 하였단다. 시간이 지나면서 구독자 수도 늘어나고, 응원의 댓글도 늘어났어.

….

돈 아저씨 장영수는 돈키호테 비디오 가게를 하면서, 영화 시나리오도 썼단다. 어떤 독립영화사의 대표 석명환이라는 사람과 함께 했는데, 그 영화사가 운좋게 대박 작품이 하나 나오면서, 장영수와 관계는 흐지부지 되었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표와 사이가 틀어져서 민주영 PD라는 사람과 함께 영화사를 나와 독립을 했대. 그러나 자금부족으로 끝내 영화를 만들지는 못했다는구나. 진솔은 수소문하여 민주영 PD를 만나 장영수의 행적을 물어보았지만, 흔적 없이 사라졌다고 했어.

 

3.

동네에 오랫동안 살았던 할머니를 인터뷰하면서 장영수가 제주도에 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제주도 중산간에 바리타리아라는 곳을 만들어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래서 진솔은 한빈, 민주영 PD와 함께 제주도로 향했고, 그곳에서 돈 아저씨를 십 수 년 만에 재회하게 된단다. 빼빼 마른 돈키호테의 체형이었던 돈 아저씨는 뚱뚱한 산초의 체형으로 변해 있었어. 체형뿐만 아니라 자신 스스로도 이제 산초가 되었다고 했어. 소설 돈키호테를 완역본을 일고 보면, 산초가 참 매력적이고 이성적인 인물로 나온단다. 돈키호테 옆의 감초 같은 조연으로 끝나기에는 아까운 인물이지. 그렇게 다시 만나면서 소설이 끝나는 것이냐고? 아니야

이제 또 다른 출발이 있단다. 산초가 된 돈 아저씨는 또 다른 꿈이 있단다. 한빈이 제주도에 내려가 바리타리아를 카페로 개조를 하고 인기를 끌게 되었어. 그러던 어느날 돈 아저씨는 또 사라지고 말았단다. 그리고 얼마 후 비행기 티켓이 배송되었어. 스페인 행돈 아저씨는 세르반테스의 고향 스페인에 가 계신 거지진솔을 비롯한 라만차 클럽을 위한 비행기 티켓을 보내준 것이란다. 라만치 클럽의 마지막 행선지는 과연 스페인일까? 돈 아저씨의 꿈은 이루어질까? 아빠가 독서편지를 쓰면 기억력 보조를 위해 보통 결말까지 다 적지만 이 소설은 안 그대로 될 것 같구나. 어느 정도 예상되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니까 말이야.

김호연 작가님의 이번 <나의 돈키호테>는 밝고 희망적이고 유쾌함을 주는 그런 소설인 듯 싶었어. 아주 조금 식상하면서 예상되는 줄거리 라인이 흠이라 흠주인공의 중학생 시절의 회상 장면이 많이 나와서 너희들이 읽어도 좋을 소설이라고 생각이 들었어. 꿈을 향해 무모하게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모습을 백 퍼센트 닮으면 안되겠지만, 늘 자신의 꿈을 가슴 속에 품었으면 좋겠구나 하는 교훈적인 내용도 얻게 되었어. 너희들뿐만 아니라 아빠도 말이야. 아빤 지금 어떤 꿈이 있을까? 막 떠오른 것은 얼른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확정을 했으면 좋겠구나. 다시는 우리 국민들이 이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지 않기를

 

PS,

책의 첫 문장: “돈 아저씨, 왜 서울이 세비야예요?”

책의 끝 문장: 무차쓰 그라씨아쓰, 나의 돈키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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