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나 역시 전쟁이 끝없이 이어진다고 느꼈었어요. 아들 이언이 이집트 알라메인에서 죽었을 때(엘리의 아버지인 존과 함께 전사했지요.) 조문객들이 찾아와 나를 위로한답시고 하는 말이 삶은 계속되는 거예요였어요. 엉터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당연히 삶은 계속되지 않아요. 계속되는 건 죽음이죠. 이언은 이제 죽었고 내일도 내년에도 그 후로도 영원히 죽어 있을 테니까. 죽음에는 끝이 없어요. 하지만 어쩌면 슬픔에는 끝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엄청난 슬픔이 노아의 대홍수처럼 나의 세상을 휩쓸어버렸고, 여기서 벗어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죠. 그런데 벌써 물 위로 솟은 작은 섬들이 있네요. 희망? 행복? 뭐 그런 것들로 부를 수 있겠죠. 당신이 의자 위로 올라서서 부서진 건물 더미를 애써 외면한 채 반짝이는 햇빛을 받는 모습을 기분 좋게 상상해본답니다.


(173)

(…) 건지의 역사에 대해 말하자면, , 말은 적을수록 좋은 법, 섬은 한때 노르망디공국에 속했으나 노르망디 대공이던 윌리엄이 정복자 윌리엄으로 등극하면서 채널제도를 뒷주머니에 챙겨 와 잉글랜드에게 넘겨주었다. 여러 가지 특권도 함께. 훗날 존왕이 이런 특권들을 강화했고, 에드워드 3세가 또다시 확대했다. 도대체 왜? 그들이 이곳을 특별히 선호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없다, 하나도 없다! 그 후 유약한 헨리 6세가 프랑스 영토 대부분을 프랑스인들에게 돌려주었을 때, 채널제도는 잉글랜드 왕실 소유지로 남겨졌다. 굳이 돌려받을 이유도 없으니까.

채널제도는 기꺼이 영국 왕실에 충성과 애정을 바치지만 친애하는 독자들이여, 이 점을 유의하라. 왕실은 채널제도가 원치 않는 일은 그 어떤 것도 강요할 수 없다!


(305)

나는 잘못됐다고 사과하고는 오빠 말이 전적으로 옳다, <오만과 편견>이야말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훌륭한 러브 스토리다, 라고 말해줬어요. 긴장감이 엄청난 작품이기 때문에 끝까지 읽기도 전에 애간장이 녹아서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고도 얘기해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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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예전에 그 사람 앞에서 무릎을 끓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 머리 위에 발을 올리게 하는 거라네. 나는 미래의 모욕을 받지 않기 위해 지금의 존경을 물리치고 싶은 거지. 난 지금보다 한층 외로움 미래의 나를 견디는 대신에 외로운 지금의 나를 견디고 싶은 거야. 자유와 독립과 자기 자신으로 충만한 현대에 태어난 우리는 그 대가로 모두 이 외로움을 맛봐야 하는 거겠지.”


(82-83)

시골 사람들은 도회지 사람들보다 오히려 나쁘다고 해야 할 사람들이지. 그리고 지금 자네는 친척들 중에 이렇다 하게 나쁜 사람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지? 하지만 나쁜 사람이라는 부류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세상에 그렇게 틀에 박은 듯한 나쁜 사람이 있을 리 없지. 평소에는 다들 착한 사람들이네. 다들 적어도 평범한 사람들이지. 그런데 막상 어떤 일이 닥치면 갑자기 악인으로 변하니까 무서운 거네. 그래서 방심할 수 없는 거지.”


(123)

나는 아버지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아버지를 떠난다면 부모와 자식 사이의 정이라는 점에서 미련이 남을 뿐이었다. 나는 아직 선생님의 대부분을 모르고 있었다. 이야기해주겠다고 약속한 선생님의 과거도 아직 들을 기회가 없었다. 요컨대 선생님은 나에게 어스레했다. 나는 반드시 그곳을 지나 밝은 곳까지 가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았다. 선생님과의 관계가 끊기는 것은 큰 고통이었다. 어머니가 좋은 날을 잡아줘 떠날 날이 정해졌다.


(152)

자네가 현대의 사상 문제에 대해 나에게 자주 의견을 물었던 걸 기억할 거네. 그 문제에 대한 내 태도도 잘 알고 있겠지. 나는 자네의 의견을 경멸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결코 존중할 수가 없었어. 자네의 생각에는 아무런 배경도 없었고, 자네는 자신의 과거를 갖기에는 너무 젊었기 때문이지. 나는 때때로 웃었어. 자네는 이따금 어딘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보여주었지. 그러다가 결국 내 과거를 두루마리 그림처럼 자네 앞에 펼쳐 보이라고 졸라댔어. 나는 그제야 속으로 자네를 존중했네. 자네가 멋대로 내 마음속에서 살아 있는 뭔가를 붙잡으려는 결심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지. 내 심장을 가르고 따뜻하게 흐르는 피를 마시려고 했기 때문이네. 그때 나는 아직 살아 있었어. 죽는 것이 싫었지. 그래서 훗날을 기약하고 자네의 요구를 물리쳤어. 나는 지금 스스로 자신의 심장을 가르고 그 피를 자네의 요구를 물리쳤어. 나는 지금 스스로 자신의 심장을 가르고 그 피를 자네의 얼굴에 끼얹으려고 하네. 내 심장의 고동이 멈췄을 때 자네의 가슴에 새로운 생명이 깃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네.


(178-179)

그토록 여자를 업신여겼던 내가 아가씨는 도저히 업신여길 수 없었네. 내 이론은 아가씨 앞에서는 무용지물일 만큼 힘을 쓰지 못했지. 나는 아가씨에게 거의 신앙에 가까운 애정을 갖고 있었네. 내가 종교에만 쓰는 이 말을 젊은 여자에게 쓰는 것을 보고 자네는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지금도 굳게 믿고 있네. 진정한 사랑은 신앙심과 그다지 다르게 않다는 것을. 나는 아가씨의 얼굴을 볼 때마다 자신이 아름다워지는 기분이 들었네. 아가씨를 생각하면 고상한 기분이 금방이라도 자신에게 옮겨올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 만약 사랑이라는 불가사의한 것에 양쪽 끝이 있고 높은 쪽 끝에는 신성한 느낌이 작동하고 낮은 쪽 끝에는 성욕이 작동하고 있다면 나의 사랑은 분명히 제일 높은 쪽에 매달려 있었을 거야. 나는 물론 인간으로서 육체를 떠날 수 없는 몸이지. 하지만 아가씨를 보는 내 눈은, 아가씨를 생각하는 내 마음은 전혀 육체의 냄새를 띠지 않았어.


(200-201)

K는 나보다 의지가 굳었네. 공부도 나보다 배는 했을 거야. 게다가 타고난 머리도 나보다 훨씬 좋았지. 나중에는 전공이 달랐기 때문에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같은 반에 있을 때는 K가 늘 나보다 성적이 좋았어. 나는 평소 뭘 해도 K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자각했을 정도라네. 하지만 억지로 K를 내 하숙으로 데려왔을 때는 내가 더 사리 판단을 잘하고 있다고 믿었지. 내가 보기에 그는 자제와 인내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았거든. 이 말은 특히 자네를 위해 덧붙이는 거니 잘 들어주게. 육체든 정신이든 우리의 모든 능력은 외부의 자극으로 발달하기도 하고 파괴하기도 하는데, 어느 쪽이든 자극을 점점 세게 할 필요할 있다는 것은 당연하네. 그렇기 때문에 잘 생각하지 않으면 아주 험악한 방향으로 나아가는데도 자신은 물론이고 옆 사람도 깨닫지 못할 우려가 생기는 거지. 의사의 설명을 듣자니 사람의 위장만큼 태만한 건 없다고 하네. 죽만 먹다 보면 그보다 더 단단한 것을 소화할 힘이 어느새 없어진다는 거야. 그러니 의사는 뭐든지 먹는 연습을 해두라는 거지. 하지만 그건 단순히 익숙해진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하네. 만약 반대로 위의 힘이 조금씩 약해지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면 금방 말 수 있는 일이야. K는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지만 그걸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네. 그저 어려움에 익숙해지면 점차 그 어려움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고 혼자 정해놓고 있었던 것 같더군. 어려움을 되풀이하면 되풀이한 만큼의 공덕으로 그 어려움이 신경 쓰이지 않게 되는 시기가 온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모양이네.


(269-270)

죽었다 생각하고 살아가려고 결심한 내 마음은 때때로 외계의 자극에 펄쩍 뛰어올랐지. 하지만 내가 어떤 방면으로 나아가려고 생각하자마자 어딘가에서 엄청난 힘이 나와서 내 마음을 꽉 쥐고 전혀 움직일 수 없게 하네. 그리고 그 힘이 나에게 너는 뭔가를 할 자격이 없는 놈이라며 억누르듯이 말하지. 그러면 나는 그 한마디에 곧 위축되고 마네. 얼마쯤 지나 다시 일어나려고 하면 다시 단단히 죄어오지. 나는 이를 악물고 왜 남을 방해하는 거냐고 호통을 친다네. 불가사의한 힘은 차가운 목소리로 웃지. 네가 잘 알 텐데, 하는 거야. 나는 다시 축 늘어지고 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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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천하 - 채만식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1
채만식 지음, 이주형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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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채만식의 <태평천하>라는 소설이란다. 얼마 전에 jiny가 학원 숙제로 채만식의 단편 소설 <치숙>을 읽었잖니. 아빠도 그 때 함께 <치숙>을 읽었는데, 단편이지만 재미있게 읽었단다. 채만식이라는 작가는 너무나 유명한 작가이니까 이름은 익히 알았지만,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은 것은 처음인 것 같았어. 어렸을 때 <레디메이드 인생>을 읽었던 것 같지만, 잘 기억도 나질 않는구나. <치숙>을 재미있게 읽어서 오래 전에 사두고 책장 속에서 발효되고 있던 채만식의 장편소설 <태평천하>를 찾아서 읽어 보았단다. 사회 비판적이면서도 재미를 놓치지 않은 수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구나. <태평천하>는 채만식이 잡지 ˝조광˝ 1938 1월부터 9월까지 연재한 장편소설이라고 하는구나. 그러면 바로 책 이야기부터 해보자.

 

1.

계동의 이름난 부자 윤두섭. 그는 향교의 맨 우두머리 가는 어른이라는 뜻의 직원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어서 사람들은 그를 윤직원 영감이라고 불렀어. 72살이지만 몸에 좋은 것을 많이 먹어서 인지 아직 젊은 혈기가 왕성하였다. 하지만 부자이긴 하지만 자린고비가 따로 없었단다. 인력거 품삯도 깍으려고 실랑이를 벌일 정도로 자린고비다. 윤직원의 아버지 윤용규 때부터 운대가 좋아서 부자가 되었어. 그런데 화적떼가 침입해서 우발적 사고로 아버지 윤용규가 죽고 윤두섭은 도망갔다가 돌아왔단다. 아버지가 남긴 재산을 악착같은 구두쇠 정신으로 재산을 불려 삼천석 재산으로 불어났고, 서울로 이사 오게 되었지. 아내는 죽고 아들 부부랑 함께 살고 있었는데 아들부부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단다. 며느리한테 매일 쌍욕을 퍼붓는 시아버지였어. 이 정도면 윤직원 영감의 캐릭터를 대충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구나.

윤직원은 아이들을 양반가문들과 결혼을 시켰고, 자신도 돈을 써서 향교에 들어가 직원이라는 직함을 얻은 것이다. 첫째 아들 윤창식은 결혼 후 일본 유학을 갔는데, 그 때부터 딴살림을 차리고 첩이 여러 명이고, 국내에 와서도 집에 붙어 있는 적이 별로 없었단다. 윤창식의 아내이자 윤직원의 맏며느리는 고씨였고 창식과 고씨 사이는 아들 종수와 종학이 있었어. 종수 또한 아버지 창식을 닮아서 난봉꾼이었어. 윤직원 영감이 모아서 불려놓은 재산을 아들 창식과 손자 종수가 축내고 다녔어. 종수는 박씨와 결혼을 해서 열다섯 살 경손이 있었어. 그렇다고 윤직원 영감도 행실이 바른 것은 아니야. 첩한테 낳은 아들 윤태식이 있는데 증손자 경손과 동갑인 열다섯 살이었어.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이었어.

.....

 

2.

윤직원의 사채업을 맡아 하는 석서방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석서방을 통해 사채업을 하지만 윤직원은 원하는 이율을 얻지 못하면 짤 없었지. 석서방과 나라 밖 소식도 듣곤 했는데 당시는 중국과 일본이 전쟁을 하고 있던 시기였어. 너희들도 역사 시간에 1930년대 일어난 중일전쟁을 배웠을 거야. 석서방이 이야기하기를 러시아가 중국에 사회주의를 전파하려고 중국을 도와준다고 했어. 설마 일본이 질까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윤직원이 생각하기에 일본은 부국강병에 있어서는 최강국이라고 생각했지. 당연히 일본에서 이길 거라고 생각했어.

...

윤직원 영감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전대복이란 사람이 있어. 전대복은 윤직원 영감의 진정한 심복으로 돈욕심도 없는 사람이었어. 윤직원 영감도 전대복은 철저히 신뢰하고 있었지. 돈도 알아서 챙기라고 했는데 전대복은 딱 필요한 것만 썼단다. 하지만 과부가 되어 윤직원 집에 기거하고 있는 윤직원의 딸 서울 아씨를 마음에 품고 있었어. 서울 아씨도 전대복에게 마음을 주고 있는 것 같지만,

전대복 자신도 윤직원 영감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어.

....

윤직원 영감은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태평천하라고 생각했어. 돈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으니 말이야. 그리고 그 돈을 보호해주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야.

================

(274-275)

화적패가 있너냐아? 부랑당 같은 수령(守令)들이 있더냐?...... 재산이 있대야 도적놈의 것이요. 목숨은 파리 목숨 같던 말세넌 다 지나고오…… 자 부아라,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헌 정사(政事),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남은 수십만 명 동병(動兵)을 하여서, 우리 조선놈 보호하여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제것 지니고 앉어서 편안허게 살 태평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허는 것이여, 태평천하!...... 그런디 이런 태평천하에 태어난 부잣놈의 자식이, 더군다나 왜지가 떵떵거리구 편안허게 살 것이지, 어찌서 지가 세상 망쳐놀 부랑당패에 참섭을 헌담 말이여, 으응?”

================

윤직원의 유일한 걱정은 죽음이었어. 어떻게 하면 영생불사 할 수 있을까. 윤직원 영감은 아이들의 오줌도 먹고, 각종 보약을 먹고, 체조도 하는 등 몸에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 했단다.

....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윤직원 영감은 칠십대 노인이지만 아직 혈기가 왕성하여 증손자 뻘 되는 기생들에게 수작부리다가 퇴짜를 여러 번 맞았단다. 최근에도 돈 주고 말상대를 해주고 있는 춘심이에게 수작을 부리려고 했어. 춘심이는 기존 아이들과 달리 사근사근 말도 잘 받아 주어서 조심스럽게 잠자리를 함께 하려고 수작부렸어. 춘심이도 바로 퇴짜를 놓았어. 그런데 마음이 돌아섰는지 반지를 사주면 원하는 것을 해주겠다고 했어.

그렇게 윤직원 영감은 춘심이와 반지를 사러 갔는데 거기서도 구두쇠 정신이 발휘되어 반지값을 계속 깎고 있었단다. 어차피 아들과 손자가 흥청망청 쓰고 있을 텐데... 아들 윤창식이 도박에 빠져 돈을 계속 잃고 손자 종수도 툭하면 윤직원 영감을 찾아와 돈을 달라고 했어. 윤창식은 도박에 빠져서 일본에서 둘째 아들로부터 온 급한 전보가 왔는데도 뒷전이었어. 그 전보 내용은 윤창식의 둘째 아들 종학이 사회주의에 빠졌다가 경시청에 붙잡혔다는 내용이었어. 사실 윤창식은 윤직원 영감의 마지막 희망이었어.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경찰서장이 되길 바라고 있었어. 그런데 윤직원 영감이 가장 극혐하는 사회주의에 빠져 경시청에 붙잡혔다니... 이 소식을 들은 윤직원 영감이 격분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끝이 났단다.

....

이 소설의 제목 <태평천하>는 반어적인 표현으로 지은 제목 중 손가락에 들지 않을까 싶구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암울한 시기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제목이 태평천하라니... 소설의 주인공 윤직원 영감의 입장에서 태평천하일 수도 있지만 콩가루 집안이 아무리 태평천하라고 해봐야 실제를 들여다 보면 짐승만 못한 세상 아니더냐. 유일한 희망이었던 둘째 손자가 윤직원이 가장 혐오하는 사회주의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얼마나 고소하던지...

그런데 지은이 채만식은 이 소설을 쓸 당시 윤직원 영감을 어떤 사람을 모델로 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친일을 하면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많았으니 말이야. 그들이 이 소설을 읽었을 때 찔릴 양심이 있었는지 모르겠구나. 안타까운 것은 채만식도 일제시대 말기 친일 행위를 했단다. 그래도 채만식은 양심이 있었던 것 같구나. 해방 후에 <민족의 죄인>이라는 소설을 통해 자신의 친일 행적을 깊이 반성하였단다. 반성도 없이 당당한 다른 친일파들과는 다른 행보가 그를 다른 친일파들과 구분 짓게 평가하는 것 같구나. 그렇게 반성을 하고 나서 작품활동을 좀더 하다가 병에 걸려 1950 6 11일 향년 47세로 세상을 등졌다고 하는구나. 47세의 적은 나이임에도 그는 20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고 하는데, 시대를 제대로 타고 났다면 더 훌륭한 작품들을 남기기 않았을까 싶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추석을 지나 이윽고, 짙어가는 가을 해가 저물기 쉬운 어느 날 석양..

책의 끝 문장: 마치 장수의 죽음을 만난 군졸들처럼


만일 오늘이 우리한테 새것을 가져다주지 않고 어제와 꼬옥 같은 것만 되풀이를 한다면 참으로 우리는 숨이 막히고 모두 불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어제와 같으면서도 (어제 치면서도 더 자라난) 한 다른 오늘 치를 우리한테 가져다주고, 그러하기 때문에 그리하는 동안 인간은 늙어 백발로, 백발은 마침내 무덤으로…… 이렇게 하염없어도 인류는 하루하루 더 재미있어간답니다.
- P241

사람은 누구 없이 뱀을 섬뻑 만나면 대개는 깜짝 놀라 몸이 오싹해지고, 반사적으로 적의와 경계의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오래오랜 조상, 즉 사전(史前)인류(人類)가 파충류의 전성기대에 그들의 위협 밑에서 수백만 년을, 항상 공포와 투쟁과 경계를 하고 살아오는 동안, 그것이 어언간 한 개의 본능이 되어졌고, 그러한 조상의 피가 시방도 우리 인류의 몸에 흐르고 있는 때문이라고 말하는 학자가 있습니다.
- P260

지주가 소작인에게 토지를 소작으로 주는 것은 큰 선심이요, 따라서 그들을 구제하는 적선이라는 것이 윤직원 영감의 지론이던 것입니다. 윤직원 영감의 신경으로는 결코 무리가 아닙니다. 논이 나의 소유라는 결정적 주장도 크지만, 소작 경쟁이 언제고 심하여, 논 한 자리를 두고서 김서방 최서방 이서방 채서방 이렇게 여럿이, 제각기 서로 얻어 부치려고 청을 대다가는 필경 그중의 한 사람에게로 권리가 떨어지고 마는데, 김서방이나 혹은 이서방이나 또는 채서방이나에게로 줄 수 있는 논을 최서방 너를 준 것은 지주 된 내 뜻이니까. 더욱이나 내가 네게 적선을 한 것이 아니냐?...... 이것이 윤직원 영감이 소작권에 의한 자선사업의 방법론입니다.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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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6)

도란 백성들로 하여금 윗사람과 한마음 한뜻이 되어 공생공사하고 두려워하거나 의심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천은 천시(天時), 즉 기후 조건으로 밤과 낮, 맑고 흐린 날, 사계절의 변화 등을 말한다. 지는 지리(地利) 조건으로 도로의 멀고 가까움, 지세의 험준함과 평탄함, 지역의 넓고 좁음 그리고 사지(死地)와 생지(生地) 등을 말한다. 장은 장수(將帥)의 덕목으로 지모(智謀)가 뛰어난가, 충신(忠信)을 지녔는가, 부하를 인애(仁愛)하는가, 용맹하고 과단성이 있는가? 군령을 엄격히 다스리는가를 살펴야 한다. 마지막으로 법은 군대의 조직 편제, 직책과 관리 제도 그리고 군수물자 제도를 가리킨다. 장수는 이 다섯 가지 요소를 모두 깊이 파악해야 한다. 오직 이를 파악한 자만이 전쟁에서 승리를 획득할 수 있다.


(35)

맹자는 왕도(王道)와 패도(覇道)를 구별한다. 패도는 인의를 저버리고 힘으로 다스리는 방식이며, 왕도는 덕으로 다스리는 방식이다. 패도를 유지하려면 강력한 무력과 그 바탕이 되는 넓은 영토가 필요하지만, 왕도는 소국에서도 충분히 펼칠 수 있다. 성탕의 영토는 70리 남짓에 불과했으나 능히 왕도를 구현해냈다. 이처럼 왕도는 왕자라는 지위에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왕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애써 갖춰야 할 자격이었다.


(37)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치밀한 묘산(廟算)으로 유리한 조건과 불리한 조건을 충분히 평가하면 전쟁에서 승리하고, 반대로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묘산을 충분히 진행하지 않으면 실패한다. 계획(계산)이 치밀하면 승리할 수 있고, 계획이 치밀하지 못하면 실패할 것이다. 그럴진대 계획이 전혀 없다면 어떠하겠는가? 이러한 관찰에 근거하여 누가 승리하고 누가 패할 것인가를 명백히 할 수 있다.


(56-57)

이처럼 대군을 동원하는 전쟁은 반드시 단기간에 속승(速勝)을 거두어야 한다. 전쟁을 오래 끌면 병사는 피로해지고, 날카로운 기세는 꺾이기 마련이다. 성을 공격하는 공성에는 군사력의 손실이 따르며, 장기간의 출정은 국가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준다. 만약 병사들이 오랜 전쟁으로 피로해지고 예기가 꺾이며, 군사력이 소모되고 재정까지 고갈되면 주변 국가들이 기회를 노려 군사를 일으킨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지모가 출중한 자라도 이 위난을 해결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용병 전쟁은 마땅히 신속한 승리를 추구해야 하며, 계책이 교묘한가 졸렬한가를 따지지 않는다. 오래 지속되는 전쟁이 국가에 이로웠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러므로 용병의 폐해를 모두 알지 못하는 자는 그 이로움 또한 온전히 알 수 없다.


(82)

따라서 용병의 최고 책략은 전쟁을 하지 않고 모략으로써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그다음은 적의 외교 동맹을 와해시켜 고립시키는 것이고, 다음은 무력으로써 승리를 거머쥐는 것이다. 적의 성을 격파하는 공성은 최악의 책략으로, 다른 선택이 없을 때 부득이하게 취하는 방식이다.


(111)

적이 승리할 수 없게 만드는 관건은 정확한 방비에 있고, 내가 승리할 수 있게 만드는 관건은 적절한 공격에 있다. 방비하는 까닭은 아직 힘이 부족해 승리할 조건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고, 공격하는 까닭은 힘에 여유가 있어 승리할 조건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방비에 능한 자는 아홉 겹 땅속에 숨어 있는 듯하여 적이 찾아낼 수 없고, 공격에 능한 자는 아홉 겹 하늘(구천, 九天)에 떠 있는 듯하여 적이 막을 수 없다. 이처럼 방비와 공격에 모두 능한 군대는 능히 스스로를 보전하며 적에게 완전히 승리할 수 있다.


(128)

를 비교해보면 개념이 한층 선명해진다. 철학적 관점으로 보면 은 사물의 외적 현상이자 구체적 상황으로 실재하는 반면, ‘는 사물의 성향으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요소다. 군사적으로는 이 작전 형량의 본체(本體), ‘는 그 작용에 해당한다. ‘은 군대의 병력과 장비 같은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역량으로, 비교적 고정되어 단기간에 변하지 않으며 수치로 측정할 수 있다. 반면 을 토대로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발휘되며, 지형, 기후, 보급 상황, 군의 사기, 작전 방식 등에 따라 달라지는 가변적이고 비가시적인 역량이다. 따라서 수시로 변하며 수치화하기 어렵다.


(159)

, 두 사람 모두 적을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만들고, 자신은 적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내용이 병법의 핵심이라 본 것이다. 전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상황은 적의 의도에 말려들어 피동적으로 끌려다니는 것이다. 주도권을 쥐고 상대를 의도한 대로 움직여 내가 미리 구상한 시간, 장소, 조건에서 적을 상대하면 능히 승리할 수 있다.


(167)

그러므로 분석을 통해 적의 계획이 가진 득실과 강약을 가늠하고, 자극을 주어 행동 방식을 살필 수 있다. 또 아군의 거짓된 모습을 일부러 드러내어 적의 강점과 약점을 드러나게 하고, 시험적인 공격으로 병력 배치까지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기만책을 극도로 능숙하게 구사하면 아군의 실체는 흔적조차 감출 수 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아무리 깊숙이 숨어든 간자(間者)일지라도 나의 허실을 알아낼 수 없고, 아무리 지모가 출중한 적장일지라도 나의 계책에 대응할 수 없다.


(207)

<손자병법>은 말한다. “때로는 군주의 불합리한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을 줄도 알아야 한다. 이는 지휘관의 뜻을 무조건 꺾으라는 것이 아니다. 전쟁터에서 지휘관에게 항명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반드시 형세에 대한 통찰과 대의를 위한 희생정신이 전제되어야 한다.


(317)

군주는 일시적 분노로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되고, 장수는 일시적 원한으로 전쟁에 나가서는 안 된다. 국가의 장기적 이익에 부합하면 비로소 군대를 움직이고, 국가의 장기적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군대를 움직이고, 국가의 장기적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군대를 움직여서는 안 된다. 분노는 희열로 전화할 수 있고, 원한도 기쁨으로 전화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는 멸망하면 되돌릴 수 없고, 사람의 목숨은 더더욱 되살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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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8)

첫 여섯 달은 깊은 혼란에 빠진 상태에서 살았기 때문에 아침에 잠이 깼을 때 애나가 죽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기도 했다. 그녀는 늘 그보다 일찍 일어나, 그가 간신히 눈을 뜨기 적어도 40분이나 한 시간 전부터 돌아다녔고, 그래서 그는 빈 침대에서 기어 나와 잠이 덜 깬 상태로 빈 부엌에 들어가 자신이 마실 커피를 준비하는 데 익숙했다. 그럴 때마다 1층 반대편 끝 작은 방에서 그녀가 타자를 치는 딸깍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거나, 위층 어떤 방에서 그녀가 움직이는 발소리가 들리곤 했다. 때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이것은 그저 그녀가 책을 읽거나 창밖을 내다보거나 아니면 집 안 다른 곳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다는 뜻일 뿐이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의식이 완전히 깨어나기 전, 애나와 공유했던 평생의 삶 동안 형성된 오랜 습관의 영향하에서 몽롱한 채로 어떤 일을 할 때 그 모든 괴상한 기억의 실수가 벌어졌을 것이다. 장례가 끝나고 겨우 열흘이 지나고 난 아침에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를 들고 부엌 의자에 앉아 있다가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쌓인 펼쳐진 잡지들 쪽으로 우연히 눈길이 내려갔을 때 그랬다.

(68-69)

두 달 뒤 그는 환지통 에세이를 쓰는 일에 파묻혀 있다. 은유적 적합성이 점점 분명해졌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환지통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게 어디로 튈지 지금 시점에서는 알 수 없고 이걸 끝낼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럽지만 당장은 이것이 어떤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있으며, 이것만으로도 그에게는 뇌 지도, 감각 수용체, 신경 회로 연구를 계속해 나갈 동기가 된다. 이것은 정신적, 영적 통증을 몸의 언어로 번역하려는 노력의 한 부분이다. 그는 죽은 자식을 애도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죽은 부모를 애도하는 자식, 죽은 남편을 애도하는 여자, 죽은 아내를 애도하는 남자를 떠올리며, 이들의 고통이 신체 절단의 후유증과 얼마나 닮았는지 생각해 본다. 사라진 다리나 팔은 한때 살아 있는 사람에게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절단된 일부, 자신의 환상에 속하는 부분이 여전히 깊고 지독한 통증의 원천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치료가 가끔 이 증상을 완화해 줄 수는 있지만 궁극적 치료법은 없다.

(77)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먼저 죽으면 산 자가 죽은 자를 삶과 삶이 아닌 것 사이의 일시적 림보 같은 곳으로 계속 들어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 자마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죽은 자의 의식은 영원히 소멸한다. 애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들이쉬었다가 다시 내쉬더니 그가 전화기를 든 이후 처음으로 질문을 한다. 지금 내가 한 말들 알아듣겠어? 바움가트너가 뭐라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애나의 숨이 멈추고, 말이 멈추고, 전화선이 죽어 버린다.

(123)

외로움은 사람을 죽여요, 주디스. 그건 사람의 모든 부분을 한 덩어리씩 먹어 치우다 마침내 온몸을 삼켜 버려요.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삶이 없는 것과 같죠. 운이 좋아 다른 사람과 깊이 연결되면, 그 다른 사람이 자신만큼 중요해질 정도로 가까워지면, 삶은 단지 가능해질 뿐 아니라 좋은 것이 돼요. 우리가 가진 것은 좋은 거지만 이제는 이 정도 좋은 걸로는 충분하지가 않아요. 어쨌든 나에게는 충분하지 않아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어째서 나와 결혼한다는 생각이 당신에게 두려움을 주느냐는 거예요.

(130)

50여 년이 며칠처럼 빠르게 지나가고 나니 내 인생이 흐릿하게 한 덩어리로 쏜살같이 흘러가 버린 듯한 느낌이다. 나는 늙었지만, 날들이 아주 빠르게 지나가는 바람에 나의 많은 부분이 아직 젊게 느껴진다. 따라서 손에 연필을 쥘 수 있고 눈앞의 문장을 볼 수만 있으면 여기 도착한 아침 이후 해온 일과를 똑같이 할 생각이다. 마침내 더 할 수 없는 순간이 오면 일어나 떠나면 그뿐이다. 그때 너무 늙어 걸을 수 없다면 교도관에게 도와달라고 할 것이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나를 배웅해 줄 게 분명하다.

(133)

얼마 전, 40대와 50대 초반 시절 자기보다 나이 많은 친구나 동료가 화장실을 다녀온 뒤 지퍼를 올리는 걸 잊고 나오는 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 허리띠 바로 아래 헛간 문이 입을 떡 벌리고 있는 것도 모르고 레스토랑의 자기 자리로 느릿느릿 돌아오곤 하던 70대 중반과 80대 초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친구들. 처음에 바움가트너는 이 해로울 것 없는 실수가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재미는 없어졌다. 그때쯤에는 볼 만큼 봐서 열린 바지 앞자락이 종말의 시작임을, 세상의 바닥으로 내려가는 긴 비탈로 가는 첫걸음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 일이 자신에게도 벌어지기 시작하자-지난 두 주 동안 네 번-그 클럽의 정회원이 되는 데 몇 달 또는 몇 년이 걸릴지 궁금해진다.

(151)

마흔두 살 된 남자가 막 처음으로 아버지가 되었다. 젊은 아내가 갓난아기를 병원에 두고 라이언스 애비뉴 양장점 위의 텅 빈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는 부엌 카운터에 있는 호밀빵 덩어리에서 한 조각을 잘라 내고 청어를 조금 준비하고, 작은 유리잔과 슬리보비츠 한 병이 이미 기다리고 있는 식탁에 앉는다. 그는 먹고 마시고, 먹을 게 사라진 뒤에도 두세 잔 더 마신다. 그에게는 엄숙하지만 의기양양한 순간, 평생 다른 어떤 때와도 다른 시간이다. 감정의 큰 파도가 일어 정신이 강인하고 때로는 마음마저 차갑고 단단한 이 남자를 삼킨다. 그의 내장에서 대양이 일렁이다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며 그 자신으로부터 그를 끌어내고,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얼마나 작은지 깨닫는다. 우주를 구성하는 다른 수많은 작은 것들과 연결된 작은 것, 잠시 자기 자신을 떠나 삶이라는 둥둥 떠다니는 거대한 수수께끼의 일부가 된 느낌이 얼마나 좋은지. 마흔두 살에 마침내 아버지라, 그는 생각한다.

(184)

어떤 사건이 진실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실제로 진실이어야 할까, 아니면 설사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어떤 사건의 진실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은 진실로 만드는 것일까? 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느냐 아니냐를 알아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확실성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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