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

모든 것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렸다.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바꾸는 것이 우리를 위해 세상을 바꾸는 일, 또는 그냥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왜냐하면 세상이란 결국 우리가 보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유려하고 아름다운 글을 쓰도록 하는 우리 내면의 정의, 죽은 감수성을 되살리는 진정한 개혁, 이런 것이야말로 진실이고, 우리의 진실이고, 유일한 진실이다. 나머지는 그저 풍경, 느낌을 담는 액자, 생각을 적어놓는 서류철일 뿐이다. 들판, , 포스터, 옷 들 같은 것으로 가득한 총천연색의 풍경이든, 때때로 오래된 단어와 몸짓이 되어 표면에 떠올랐다가 다시 인간 표현의 원초적 어리석음 안으로 가라앉는 지루한 영혼의 흑백 풍경이든 마찬가지다.

 

(215-216)

사람들이 영위하는 삶을 주의깊게 들여다볼수록 동물의 삶과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 사람과 동물은 둘 다 세상에 무심코 던져진 채 살아간다. 둘 다 이따금 만족스러운 순간들을 누린다. 둘 다 매일 똑 같은 생리 현상을 해결한다. 둘 다 자신의 생각 이상을 생각하지 못하고, 실제 삶 이상을 살지 못한다. 고양이는 햇볕 아래서 뒹굴다가 거기서 잠든다. 인간은 삶 안에서 자신의 복잡한 문제들을 안고 뒹굴다가 거기서 잠든다. 인간도 짐승도 숙명의 법칙을 벗어나지 못한다. 둘 다 존재의 무게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인간 중에서 위대한 자들은 영광을 탐하지만, 그건 개인의 불멸을 누리는 영광이 아니라 개인과 관련 없는 추상적인 불멸일 뿐이다.

 

(218)

내가 바라는 것은 도망치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 내 것, 내가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다. 갈 수 없는 인도나 남쪽 바다의 큰 섬이 아닌 아무 시골 마을이나 황야라도 좋으니 어느 곳으로라도 떠나고 싶다. 매일 보는 얼굴들, 일상, 하루하루를 그만 보고 싶다. 어디론가 멀리 떠나 내 고질적인 가식에서 벗어나고 싶다. 휴식이 아니라 삶처럼 다가오는 잠을 느끼고 싶다. 바닷가의 작은 오두막이나 심지어 바위투성이 산비탈의 동굴도 그런 순간을 선사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내 의지만으로는 그런 순간을 누릴 수 없다.

 

(246)

언젠가 사람들은 내가 다른 이들과는 달리 우리가 태어난 세기의 일부를 해석하는 타고난 사명을 완수했음을 이해할 것이다. 그 사실을 비로소 이해한 이들은, 동시대인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불행히도 내 작품을 홀대하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내가 그렇게 살았다니 유감스럽다고 글을 쓸 것이다. 그런 글을 쓰는 이들은 지금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듯이 동시대에 살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을 역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들의 증조부 세대에서만 쓸모 있는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로지 죽은 이들을 상대로나 바르게 사는 법을 가르칠 수 있다.

 

(254)

이런 생각을 하면서 현실이 나의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지 보려고 주위를 살피면 무표정한 집, 무표정한 얼굴, 무표정한 몸짓 들이 보인다. 돌멩이도 육체도 생각도 다 죽어 있다. 모든 동작이 멈춰 일체가 정지한다. 그 무엇도 내게는 의미가 없다.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낯설어서가 아니라 정말 뭔지를 모르겠다. 세상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이 순간의 유일한 현실인 내 영혼의 밑바닥에는, 보이지 않는 강렬한 고통이, 어두운 방에서 누군가 우는 소리 같은 슬픔이 존재한다.

 

(268)

오늘 나는 거리를 걷다가, 자기들끼리 서로 다투었던 두 친구를 따로 마주쳤다. 각자가 왜 상태에게 화났는지 내게 말해줬다. 둘 다 진실을 얘기하고 있었다. 둘 다 자신의 이유를 말하고 있었다. 둘 다 옳았다. 둘 다 틀림없이 옳았다. 한 명은 이것을 보고 나머지 한 명은 다른 면을 보는 게 아니었다. 두 사람은 발생한 일의 진상을 정확히 보고 있었고, 모든 같은 기준에 근거해 사태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둘은 뭔가 다른 것을 보았고, 결국 둘 다 옳았다.

 

(273)

글을 쓴다는 것은 꿈을 객관화하는 것이고, 우리의 창조적 본성이 베풀어준 일종의 특혜로서 외부 세계를 하나 만들어내는 것이다. 책을 낸다는 것은 이 세계를 다른 이들에게 줘버리는 것이다. 우리와 그들의 공통된 외부 세계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물질로 만들어진 현실적인 외부 세계뿐일 텐데 무엇 때문에 그리하겠는가? 다른 사람들이 내 안에 있는 우주와 무슨 상관이란 말이가?

 

(280)

내가 인생에서 찾아다녔던 모든 것들은, 찾아다니려고 나 자신이 직접 버렸던 것이다. 나는 마치 뭔가를 찾아다니던 꿈속에서, 뭘 찾는지 이미 잊어버렸건만 넋을 잃은 상태로 찾고 있는 사람 같다. 그래서 뭔가를 찾아 헤매느라 이것저것 뒤지고 들어올리고 옮겨놓은 손의 실제 움직임이, 길고 흰 다섯 손가락이 양손에 달린 모습이, 찾고 있는 대상보다 더 사실적이 돼버린다.

 

(294)

독서는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려 꿈을 꾸는 것이다. 부주의하고 산만하게 읽음으로써 우리를 이끄는 손에서 해방될 수 있다. 피상적으로만 지식을 취하는 것이 가장 좋은 독서이며 심오해지는 길이다.

 

(299)

우리가 했던 모든 일이 사랑이라면 죽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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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나와 인생 사이에는 아주 얇은 유리 한 장이 있다. 뚜렷하게 바라보며 인생을 이해한다 해도, 결코 만질 수는 없다.


(129)

, 내 안에 살아 있고 내 안이 아니면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는 죽은 과거여! 들판의 작은 집 정원의 꽃들은 오직 내 안에만 있구나! 뜰의 채소와 과일나무와 소나무들은 오직 내 꿈속에만 있구나! 내가 상상한 전원생활과 시골 산책은 한 번도 존재한 적 없어라! 길가의 나무와 오솔길과 돌 들, 지나가던 시골 사람들…… 모든 것은 단지 꿈이었을 뿐, 내 기억에 새겨진 채 나를 아프게 한다. 그것들을 꿈꾸며 수많은 시간을 보내던 나는 지금은 꿈꾸던 순간을 회상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것이 사실은 나의 진정한 그리움이자 나를 눈물짓게 하는 과거이고 죽어버린 진정한 삶이다. 나는 그 삶이 엄숙하게 관에 누운 모습을 바라본다.


(138)

모든 것에 지칠 때가 있다. 심지어 우리에게 휴식을 주는 것마저 피곤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것은 피곤하게 하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에게 휴식을 주는 것은 그것을 얻으려는 생각이 우리를 피곤하게 하기 때문에 그렇다. 모든 걱정과 아픔 아래에는 낙담한 영혼이 있다. 인간적인 걱정과 아픔을 교묘히 피하고 자신의 권태마저 비켜갈 수 있는 이들만이 그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갑옷을 입은 이들에게는, 어느 순간 의식 속에서 갑옷 전체가 갑자기 무거운 짐이 되고 인생은 전도된 걱정과 잃어버린 아픔이 되는 일이 별로 놀랍지 않다.


(156)

글을 쓴다는 것은 잊는 것이다. 문학은 인생을 무시하는 가장 유쾌한 방식이다. 음악은 마음을 달래고, 미술은 기운을 북돋고, 연극이나 무용 같은 행위 예술은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문학은 잠에 빠지듯 인생에서 멀어지게 한다. 다른 예술의 경우, 어떤 것은 눈에 보이는데다 살아 있는 형식을 사용하고 또 어떤 것은 인간의 삶 자체를 살아가기에 인생에서 멀어지지 않는다.


(160)

나는 국가와 인류에 종속되길 거부한다. 소극적으로라도 저항한다. 국가는 나에게 어떤 행동을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꼼짝 않는 이상 내게서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한다. 오늘날 사형제도도 폐지되었으니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봐야 나를 귀찮게 하는 정도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 영혼을 더욱 단단히 무장하고 내 꿈속 더 깊은 곳에서 살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난 적이 없다. 국가는 나를 귀찮게 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는 운명이 나를 봐준 것 같다.


(169)

분개하지 않는다. 분개는 힘 있는 자들이나 하는 것이니까. 체념하지 않는다. 체념은 고귀한 자들이나 하는 것이니까. 침묵하지 않는다. 침묵은 위대한 자들이나 하는 것이니까. 나는 힘 있는 자도, 고귀한 자도, 위대한 자도 아니다. 나는 고통스러워하고 꿈을 예술가라서 나의 불평으로 노래를 만들며 놀고, 내 꿈들을 더 아름다워 보이도록 배열하며 논다.


(182)

정말 오랫동안 나는 존재하지 않는 상태였다. 내 마음은 지극히 고요하다. 아무도 나의 진정한 모습과 다른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방금 무엇인가 아주 새로운 일을 했거나 뒤늦게 한 것처럼 숨을 쉬는 나를 느꼈다. 의식을 갖고 있음을 의식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내일은 다시 나로 깨어나 내 존재의 궤적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그래서 더 행복해질지 그 반대일지 나는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다. 길을 걷다 고개를 들고 성벽이 세워진 언덕 위로 차가운 불덩이로 만든 반사경 같은 노을이 십여 개의 창문을 불태우는 모습을 본다. 그 단단한 불의 눈 주위로, 언덕 위에는 하루가 저물 무렵의 포근함이 가득하다. 적어도 지금 나는 슬픔을 느낄 수 있다. 지금 막 나의 슬픔이, 저 지나가는 전차의 갑작스러운 소음과 젊은이들이 대화하는 소리와 살아 있는 도시의 잊혔던 속삭임과 마주치는 것을-나는 그것을 내 귀로 보았다-의식할 수 있다.

정말 오랫동안 나는 내가 아니었다.


(192)

어떤 이들은 삶에서 큰 꿈을 품지만 이루지 못한다. 또 어떤 이들은 아무런 꿈도 품지 않기에 마찬가지로 이루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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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

나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그들의 앞 세대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신을 믿었듯이,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시대에 태어났다. 인간의 영혼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에 근거해 판단하는 경향이 있어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의 대체물로 인류를 선택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주변부에 속한 인간이고, 내가 속한 집단뿐만 아니라 집단을 둘러싼 거대한 공간까지 보는 사람이다. 그래서 신을 완전히 내버리지도, 인류를 대체물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내 생각에 존재를 증명할 수 없지만 신은 존재할 수도 있고, 그럴 경우 경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반면에 생물학적 개념이라서, 인간이라는 동물종 이상이 될 수 없고, 다른 동물종과 마찬가지로 경배의 대상이 될 수도 없다. ‘자유평동의 의식(儀式)과 더불어 인류에 대한 숭배는, 동물이 신처럼 숭배되고 신이 동물의 머리를 지녔던 고대 숭배 신앙의 재현 같았다.


(14)

인생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가는 마차를 기다리며 머물러야 하는 여인숙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이 여인숙에 머물며 기다려야만 하니 감옥으로 여길 수도 있겠고, 여기서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 사교장으로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참을성 없는 사람도 평범한 사람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 여인숙을 감옥으로 여기는 건 잠들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방안에 누워 있는 이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사교장으로 여기는 건 음악 소리와 말소리가 편안하게 들려오는 저쪽 거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이들에게 넘긴다. 나는 문가에 앉아 바깥 풍경의 색채와 소리로 눈과 귀를 적시며 마차를 기다리는 동안, 내가 만든 유랑의 노래를 천천히 부른다.


(28-29)

완성을 미루고만 있는 우리의 작품이 형편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아예 시작하지도 않은 작품은 그보다 더 형편없다. 무엇인가를 만든다면 적어도 남아는 있게 된다. 초라하지만 그래도 존재한다. 다리를 저는 내 이웃의 정원에 놓인 하나뿐인 화가에 핀 조그마한 식물처럼. 그 화분은 내 이웃에게 기쁨을 주며, 때로는 나에게도 즐거움을 준다. 내가 쓰는 글이 형편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의 글 덕분에 상처받은 슬픈 영혼이 잠시 시름을 잊을 수도 있으리라. 그것으로 충분하고, 혹시 충분하지 않다 해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 인생사 모든 것이 다 그러하듯.


(35)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언젠가 미래 끝자락에서 누군가 나에 대해 시 한 편을 쓸 테고, 그때 비로소 나는 나의 왕국을 다스리기 시작할 것이다.

신은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이고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39)

문학이란 예술과 사상의 결합이며 현실의 흠을 덜어낸 결과로, 인간적인 모든 노력을 기울여 이루어야 하는 목표다. 그것이 동물적인 본성의 여분이 아니라 진정으로 인간적인 것에서 비롯된 노력인 한에서 그러하다. 어떤 사물을 표현하는 것은 추한 부분은 빼버리고 미덕만을 보존하는 일이다. 들판의 푸름에 대한 묘사에서 들판은 실제보다 더욱 푸르다. 상상 속에서 묘사한 꽃의 색깔은 세포의 실제 생명력 이상의 영속성을 갖게 된다.


(40)

수많은 세월이 흐른 후 뒤에 오는 이들에게 우리라는 존재의 모든 것은, 우리가 강렬하게 상상할 것들, 즉 상상을 구체화하여 현실로 이루어낼 것들이다. 역사는 빛바랜 파노라마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해석들의 흐름과 믿을 수 없는 증인들의 혼란스러운 합의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는 모두 소설가이고 우리가 본 것을 말하는데, 보는 것은 다른 모든 일이 그렇듯 복잡한 일이다.


(44)

모두가 잠들어 적막한 집, 벽 뒤편에 걸린 괘종시계가 새벽 네시를 알리는 명징한 종소리가 들린다. 난 아직 잠들지 못했고 잠들기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잠들지 못하게 하는 걱정거리가 있어서도 아니고 편히 쉬지 못하게 하는 육체적인 고통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내 것인데도 낯선 육체는 죽은 듯한 침묵에 싸인 채 가로등의 희미한 달빛 때문에 낯선 육체는 죽은 듯한 침묵에 싸인 채 가로등의 희미한 달빛 때문에 더욱 쓸쓸한 그늘 속에 누워 있다. 너무 잠이 몰려와 생각을 할 수 없고, 잠을 이룰 수 없어서 느낄 수도 없다.


(56-57)

그렇다면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죽음의 불가사의함이야 어차피 내가 꿰뚫어볼 수 없으니 그만두고, 삶이 멈출 때 육신의 감각이 궁금하다. 인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어렴풋이 두려워할 뿐이다. 보통 사람들은 삶의 전투를 잘 이어간다. 그러다 늙거나 병들면 자신이 심연이라고 인정한 무()의 심연을 두려워하며 거의 쳐다보지 않는다. 이 모두가 상상력이 부족한 탓이다. 특히 죽음이 일종의 잠이라는 생각이야말로 재고의 가치가 없다. 죽음은 잠은 닮은 점이라곤 전혀 없는데 왜 그런 말을 할까? 잠의 핵심은 깨어나는 데 있으나 알다시피 죽음은 그렇지 않다. 만일 죽음이 잠과 비슷하다면 죽음에서 깨어난다는 개념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죽음을 깨어나지 않는 잠이라고 생각하는 이건 정말 아무 의미도 없는 얘기다. 강조하거니와 죽음은 잠과 닮은 점이 없다. 왜냐하면 잠잘 때 우리는 살아 있기 때문이다. 죽음은 우리가 아는 무엇과도 닮지 않았는데, 어느 누구도 죽음이나 죽음과 비교할 만한 것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63-64)

책을 읽고 꿈을 꾸고 글쓰기를 생각하면서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교양 있는 삶을 산다면. 삶이 어찌나 조용히 흐르는지 권태에 빠질 것 같지만 너무 생각이 많아 권태에 빠지지 않는 삶을 산다면. 감정과 생각에서 멀리 떨어져 이런 삶을 살되 감정에 대한 생각과 생각에 대한 감정. 그 속에서만 산다면. 꽃들에 둘러싸인 탁한 호수처럼 태양 아래 금빛으로 고여 있다면. 인생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고결한 영혼을 그림자 안에 지닌다면. 꽃잎에 앉은 먼저처럼 오후의 바람을 타고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저물녘의 무기력을 따라 내려앉아 더 큰 것들 사이에 묻힌다면. 즐거움도 슬픔도 없이 명료한 이해만 갖고 빛나는 태양과 머나먼 별들에 감사하면서 그렇게 된다면. 그 이상 원하지도 그 이상 갖지도 그 이상 되지도 않는다면…… 굶주린 자의 음악, 맹인의 노래, 이름 없는 길손의 유골, 짐도 목적지도 없이 사막을 떠도는 낙타 행렬……


(66)

고독은 나를 황폐하게 만들고, 동행은 나를 억압한다. 다른 사람이 곁에 있으면 생각이 방향을 잃는다. 모든 분석력을 동원해도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특이한 방심 상태에서 곁에 있는 존재에 대해 꿈꾸기 때문이다.


(78)

독서로 자유를 얻는다. 독서로 객관성을 획득한다. 나는 내가 되기를 멈추고, 산만하게 흩어져 있는 존재가 되기를 그만둔다. 내가 읽는 것은 때로 나를 짓누르는 보이지 않는 의복 같은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를 뚜렷하게 드러내는 명료함이고, 만물을 비추는 태양이고, 고요한 대지에 그림자를 드리운 달이고, 바다로 이어지는 거대한 공간이고 녹색 이파리를 흔드는 나무의 견고함이고, 농장 연못에 깃든 평화이고, 포도나무 덩굴이 우거진 해안이 비탈길이다.


(81-82)

환경은 사물의 영혼이다. 모든 사물은 나름대로 자신을 표현하고 이 표현은 외부 조건으로부터 주어진다. 세 가지 요소가 서로 교차하며 한 사물을 이루는데 이는 물질의 양, 우리가 해석하는 방식, 사물이 놓인 환경이다. 이를테면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책상은 나무로 만들었으며, 이름은 책상이고, 이 방에 속한 가구 중 하나다. 이 책상에 대한 생각을 글로 옮긴다면, 글은 이것이 나무로 만들어졌고, 책상이라고 불리며, 일정한 용도와 목적이 있다는 개념들로 구성될 것이다. 또한 책상 위에 놓인 사람의 배열 상태에 따라 영혼을 드러내는 물건들을 수용하고 반영하며 그 물건들에 의해 변형된다는 개념이 포함될 것이다. 책상의 색깔과, 색의 낡은 정도, 얼룩이나 흠 등은 외부 조건에 의해 생긴 것으로 사실 나무라는 본질보다 이런 것들이 책상에 영혼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책상으로서 존재하는 영혼의 내밀한 본질은 역시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고, 바로 그것의 개성을 이룬다.


(92)

지금은 비록 불완전한 내 글을 보며 나는 눈물을 흘리지만, 먼 훗날 사람들이 내 글을 읽는다면 내가 이룰 수도 있었을 완벽함이 아니라 이 눈물에 더 감동받을 것이다. 완벽한 글을 쓸 수 있었다면 울지 않았겠지만 더 이상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완벽은 결코 구현되지 않는다. 성인(聖人)들도 눈물을 흘리고, 그래서 인간이다. 신은 침묵한다. 그래서 우리는 성인은 사랑할 수 있지만 신은 사랑할 수 없다.


(100)

내가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못한다고 마음 깊이 절실히 느끼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낌을 가지고 생각하는 반면 나는 생각을 가지고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느끼는 것이 사는 것이고,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살지 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생각하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이고, 느끼는 것은 생각을 키우는 양식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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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이중섭은 날마다 두 가지에 집착했다. 하나는 그림, 또 하나는 가족. 화가들은 대부분 그림과 가족을 한자리에 두지 않았다. 그림을 그릴 땐 가족을 잊고, 가족과 머물 땐 그림을 잊었다. 이중섭은 그림 속에 가족을 두고, 가족 속에 그림을 두었다. 아내가 이남덕이기에 가능했다. 그녀 역시 문화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했기에, 그림을 향한 남편의 진심을 투명하게 받아들였다. 이중섭이 기쁠 땐 화가로 기쁜 것이고 슬픈 땐 화가로 슬픈 것이며 화날 땐 화가로 화난 것이다. 부부의 대화는 그림에서 시작하여 그림으로 끝났다. 태현과 태성은 부부가 나눈 화담(畫談)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두 아들이 훗날 아빠처럼 그림을 업으로 삼을지는 미지수지만, 그림을 평생 가까이 둘 것은 확실하다. 네 사람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일궜다. 한국의 예의와 상식도 아니고 일본의 예의도 상식도 아니었다. 사람으로서의 예의와 상식은 너무 거창한 이야기다. 그들은 그림이라는 나라에서 편안하고 자유로웠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35)

가족을 그렸다. 그림 속에서 가족은 굶주리지 않았고 울지 않았고 아프지 않았고 춥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평화로웠다. 부산과 서귀포의 참담한 현실과 정반대로 그린 까닭을, 아내와 두 아들은 따지지 않았다. 그림에 담긴 이야기들을 일용할 양식처럼 삼키며 하루를 나고 한 달을 나고 일 년을 났다.


(46-47)

밥은 굶어도 담배를 건너뛸 순 없었다. 술 또한 거의 매일 입으로 들어갔다. 이중섭에게 술과 담배는 갈매기의 두 날개처럼 어울리면서도 목적지는 상반된 생필품이었다. 술을 마시고 취기가 오르면 희망은 더 희망적으로 절망은 더 절망적이었다. 과장은 허풍이 술자리의 중요한 안주인 이유였다. 이중섭은 대부분 더 절망적인 쪽이지만, 그 감정을 이야기로 풀진 않았다. 담배는 혼자서는 피우지만, 술은 어울려 마셨다. 벗들이 희망적인 상상에 파안대소하고 절망적인 예감에 호곡성을 터뜨릴 때, 이중섭은 위장병이 도진 듯 우울하고 쓰린 얼굴로 듣기만 했다. 정말 견디기 힘들면 울음을 삼키며 눈물만 떨어뜨렸다. 울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서둘러 마시곤 아무 곳에서나 웅크려잤다.


(64)

빈센트 반 고흐에게 해바라기가 있다면 이중섭에겐 단연코 소다. 대작을 그리겠노라고는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그릴지 밝힌 적은 없다. 화우(畫友)들도 따져 묻기보다는 꼭 그리라고, 이제 때가 되었다고 했다. 완성하고 나면 축하주를 마시자는 이도 있었다. 고흐는 해바라기를 오랫동안 많이 그렸다. 두 송이부터 시작해서 열다섯 송이까지, 파리에서도 그렸고, 아를에서도 그렸다. 이중섭 역시 소를 계속 그렸다. 맘을 다 쏟아 그림을 그릴 조건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올리고 그린 것이 소였다. 도쿄에서도 그렸고 원산에서도 그렸다. 서귀포에서는 그리지 않았고, 부산에서는 그리고 싶어 끼적이긴 했지만 흡족하지 않았다. 해바라기를 그린 사람이 고흐 이전에도 많았고 당대에도 많았으며 후대에도 많듯이, 소도 마찬가지다. 조선의 화인들이 그린 소가 몇 마리가 될까. 헤아리기 힘들다. 이중섭과 가까운 선배 중에도 1941년 조선신미술가협회를 함께 만든 진환이 소를 좋아했고 자주 그렸다. 누가 먼저 그렸는가 혹은 얼마나 많이 그렸는가 하는 물음은 어리석다. 문제는 수준이다. 대작이란 두 글자는 작품의 크기가 아니라 최고의 성취를 가리킨다. 이중섭은 통영에서 소를 완전히 새롭게 그려보리라 결심했다. 고흐가 아를에서 전혀 다른 해바라기를 선보였듯이.


(78)

통영은 붉다. 이렇게 밝히면 대부분 고개를 젓는다. ‘통영은 푸르다를 잘못 말한 것이 아닌지 묻는 이도 있다. 이중섭도 통영을 방문객으로 오갈 때는 푸르름에 압도되었다. 전혁림의 그림에서 넘쳐나는 파랑이 과장이 아니라며, 기분 좋게 술잔을 기울였다. 부산에서 그림을 싣고 강구안에 내린 다음 날 새벽, 통영이 붉은 항구란 사실을 목도했다. 늦게까지 마신 환영주에 목이 말라 깨지 않았다면, 숙취로 두통이 심해 바람이라도 쐬자 싶어 산책을 나서지 않았다면, 밤길이 서툴러 되돌아오지 못하고 헤매다가 남망산에 닿지 않았다면, 비가 그치지 않았다면, 중절모를 눌러쓰고 목도리까지 두른 사내가 오르막을 경쾌하게 앞서 걷지 않았다면 통영의 새뜻한 붉음을 영영 몰랐을 것이다.


(89)

시인을 견자(見者) 즉 보는 사람이라 하디. 무슨 것을 봔? 평범한 사람은 아니 보는 걸 본다 이거이야. 기렇게 본 걸, 글로 바꾸문 시인이구 그림으로 바꾸문 화가! 시인은 글 짓는 화가구, 화가는 그림 그리는 시인이다 이 말입네. 화가는 색깔에서 글자를 읽구, 시인은 글자에서 색깔을 본다! A는 흑색이구 E는 백색이며 I는 적색이구 U는 녹색이구 O는 청색이구, 불란서 시인 랭보래 말햇디. 시인이 모음들의 색깔을 맨들 듯, 화가는 색깔들의 모음으로 이야기를 발명해 왓어.”


(92)

통영에선 머리와 손이 따로 노는 이들을 최하로 친다. 말 대신 행동을 믿으며, 그 손으로 그 사람을 평한다. 재산도 학력도 품성도, 단련된 솜씨 앞에선 하찮다.


(118-119)

요쪽은 현실파고 조쪽은 아아파입니더. 유치환 선생님은 아아파의 원로고 윤이상 선배는 허리고 지는 막내축에 속하지예. 삼일 운동 나고 두 파가 생깄십니더. ‘현실파는 일본인들에게 협조해 돈도 벌고 기술도 익혀 실력을 기르자는 입장이고예, ‘아아파는 굶어 죽어도 타협은 못한다는 입장이지예. 윤이상 선배가 운을 딱딱 맞차가 아아파를 설명하신 적이 있심더. 민족의 설움을 제 설움으로 받아들인 아아아아파는 호수같이 맑은 바다 위에 뜬 달을 보고 아아 하구, 봄날 아지랑이 전원서도 아아 하구, 가을 낙엽을 밟으믄서도 아아 한다구 말입니더. ‘아아파들 중엔 옥살이한 사람도 많심더. 팔일오 해방 후에 현실파들은 빠져나간 일본인들 자리를 차지해가 토영 경제권을 잡겄다고 설쳤지예. ‘아아파는 민족혼을 표현하구 가르칠라고 예술가도 되고 교육가도 됐심더. 문호협회도 맨들고…… 펭안남도 평원이 아이라 겡상남도 토영서 태어나싰다믄 돈이나 기술보단 민족의 양심을 지키는 아아파셨을 깁니더.”


(131)

두 사람을 묶어 비교하는 역사는 오래되었다. 카인과 아벨이 그러하고, 유비와 조조가 그러하며,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그러하다. 음악가인 베토벤과 모차르트, 작가인 괴테와 실러도 이 범주에 든다. 화가들도 종종 언급되었는데, 대중은 고흐와 고갱을 제일 많이 입에 올렸다. 이중섭과 그의 친구들이 자주 논한 화가는 피카소와 마티스였다.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질투도 하고 경쟁도 한, 서로의 작품 세계를 인정한 라이벌이었다. 열에 일곱은 피카소를 우위에 뒀고 마티스를 선호하는 화가는 셋이 될까 말까였다. 이중섭은 소수파에 속했다.


(132)

피카소가 분방한 방외인이라면 마티스는 수도하는 교수다. 피카소는 무리와 어울리며 으뜸이 되기를 갈망했고 마티스는 홀로 숙고한 작품으로 무리에 충격을 주기를 바랐다. 피카소가 불이라면 마티스는 물이다. 물이긴 하되 그림 속에서 펄펄 끓는 물이다. 피카소는 그림 외에도 각종 기행(奇行)으로 유명했다. 때마다 바뀌는 뮤즈의 이름과 사진이 잡지와 신문에 실리고, 작업을 위해 사들인 저택과 사진이 잡지와 신문에 실리고, 작업을 위해 사들인 저택과 즐겨 참여한 파티도 세인들의 주목을 끌었다. 기행은 그림값을 떨어뜨리기는커녕 몇 배 혹은 몇십 배 뛰어오르게 했다. 작품은 작품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들러붙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은 화가가 피카소였다. 스스로 이야깃감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귀찮아하지도 않았다.


(168-169)

사람은 둘로 나뉘디. 전쟁을 겪은 사람과 겪디 않은 사람! 전쟁을 모르는 남해바닷가 사람들보다두 내래 니순신 장군님과 더 가깝다구 느께. 장군님두 나두 전쟁을 겪엇으니까니. 둥세전이냐 현대전이냐, 나라과 나라 사이 전쟁이냐 나라 안 전쟁이냐, 요딴 식으로 나누딘 말라마야…… 전쟁은 전쟁! 전사자보다 몇 배 많은 삶을 뒤흔들구 파괴해. 새로운 무서움이구 낯선 끔찍함이라 이거이야. 죽는 것두 두렵다만, 개진 걸 다 잃구 사는 것두 무시무시하긴 마찬가지디. 가솔두 친구두 돈두 직업두 없이 사는 자의 슬픔과 고통을 장군님께선 아셔. 하루라두 빨리 전쟁을 끝내구 싶으셨던 것이야. 길멘서두 서두르다 패하문 그 피핸 고스란히 백성들에게 가. 냉정하게 버티며 견딘 사내! 전쟁이 무슨것인가를 온몸 온 맘으로 깨달은 사내! 통영 앞바다는 장군님이 오가신 물길이디. 내래 세빙관이나 충렬사나 착량묘에 가문 전쟁부터 떠올려. 장군님과 함께 고민할 문제니까니. 이 망할 전쟁이 몸과 맘에 새긴 상처를 장군님께 보여드리려구 붓을 놀렛던 것이야. 알것어?”


(174)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도쿄로 갓 넘어갔을 때, 이중섭은 전투하듯 예술을 하겠노라 말하곤 했다. 그만큼 치열하게, 죽을 각오로 임하겠다는 뜻이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더 이상 예술을 전쟁에 비유하지 않게 되었다. 전쟁과 예술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예술은 평화다. 평화여야 한다.


(202-203)

속삭이는 소, 친구가 많은 소, 여물을 맛보고 찡그리는 소, 코뚜레를 흔들며 나무 그늘에서 조는 소, 우는 소, 되새김질하며 거품 흘리는 소, 기뻐 껑충껑충 뛰는 소, 노리는 소, 송아지를 불러들이는 소, 뒷발질에 열심인 소, 실수하는 소, 떨어진 꽃잎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소, 교접하는 소, 어미 소에게 도움을 청하는 소, 코를 박고 물을 마시는 소, 올려다보다가 별을 발견하고 놀라는 소, 밭 가는 소, 날아가는 멧비둘기와 참새를 따라 고개 돌리는 소, 외톨이를 자처하는 소, 내달리는 소, 빼앗는 소, 머리에 머리를 부딪치는 소, 고집부리는 소, 벽을 들이받는 소, 엎드려 기다리는 소, 가지 않겠다고 버티며 뒷걸음질하는 소, 앞발을 땅을 파헤치는 소, 꼬리를 흔들어 벌레를 쫓는 소, 먼저 알아보고 다가와서 인사하는 소, 오르막길 앞에서 한숨 쉬는 소, 늙었지만 병들지 않은 소, 멍한 눈으로 세월을 되씹는 소, 웃는 소, 새끼 낳는 소, 먼저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소, 어미 소를 싫어하는 소, 숨는 소, 산책을 즐기는 소, 잠든 소, 병들어 마른 소, 절뚝거리는 소, 용서하는 소, 냄새 맡는 소, 멈춰 기다리는 소, 죽은 소.


(246)

이중섭이 가장 오래 가까이 두고 들여다본 화가는 루오였다. 루오를 접한 후부터는 마음의 시소에 얹는 화가들의 위치가 바뀌었다. 루오가 홀로 한쪽을 차지했고 고흐와 고갱과 마티스를 반대쪽에 묶어 얹었다. 고흐와 고갱과 마티스가 제 뜻을 발산하는 방식이라면, 루오는 그것을 색으로도 누르고 형상으로도 눌렀다. 곡진했다. 타인에게 내뿜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난타해 무너뜨렸다. 이중섭은 고흐처럼도 그려 보고 고갱처럼도 그려 보고 마티스처럼도 그려 보았다. 눌변과 머뭇거림과 내면을 파고드는 자신의 성향과 어울리는 화가는 루오였다.


(254)

아우슈비츠 이후, 역사에 대한 낙관을 아예 접은 예술가들도 나왔다. 한국전쟁과 맞닥뜨린 이중섭은 도쿄에서 연애할 때처럼 사랑이 충만한 세상을 줄기차게 그릴 수는 없었다. 피란민의 눈에 비친 세상은 만물이 화평하기는커녕 살아남기 위해 매일매일 죽고 죽이는 전쟁터였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러하기에, 아주 가끔은 아비규환을 잊을 만큼 강력한 유토피아를 그려보고 싶기도 했다. 사람은 희망 없인 살 수 없는 족속이다. 도쿄의 엽서화에서 둘만의 꿈을 속삭였다면, 월남 후 그린 유토피아는 끔찍한 체험에 바탕을 두되, 더 많은 이들이 따스함을 느끼고 미소 짓기를 바랐다. 현실엔 없는 행복이란 비판을 받았지만, 부산과 서귀포와 통영을 떠돈 이중섭만이 발견한 신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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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그리스 조각상들이 양쪽으로 전시된 갤러리에서 걸음을 멈춘다. 조각상 사이에 놓인 초록 벤치에 앉아서 하늘을 바라본다. 코발트빛 하늘이 점점 보랏빛과 장밋빛으로 물들어 간다. 황혼은 일출까지 지속될 것이다. 이렇게 시간이 느려지는 것을 느낀 곳은 여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밖에 없다. 과거, 현재, 미래가 객차처럼 순서대로 흐르지 않고 서로서로 반투명하게 겹쳐져 있다. 몇 년 전의 일은 어제처럼 생생하고 가깝게 느껴지고, 내일은 몇 년 뒤처럼 아득히 멀게 느껴진다.


(63-64)

샤워를 마친 후, 몸에 수건을 두른 채로 절름거리며 나와 침대에 쓰러진다. 내 몸의 모든 관절에 묵직한 추가 묶여 있는 느낌이다. 내가 누운 자리 아래 모든 층을 지나 로비까지, 그리고 지구의 중심까지 몸이 꺼져버릴 것이다. 자낙스 한 알을 혓바닥에 올리자 그제야 몸이 다시 위로 떠오른다. 선선한 바람, 희미하게 들리는 자동차 소리에 눈이 스르륵 감긴다. 밀려오는 파도처럼 잠이 쏟아지면서 검은 새가 나오는 꿈이 시작된다. 윤기 흐르는 흑단 같은 깃털, 굽은 노란색 부리, 기름방울처럼 반지르르하고 큼직한 눈. 전에도 이 새를 본 적이 있다. 검은 새가 앞장서서 날고, 나는 그 뒤를 따라간다. 그러자 다른 새들이 하나둘 모여들더니 이해 하늘을 검게 물들인다. 까악까악 울음소리의 장막이 나를 감싸고 내 몸을 상공으로 들어 올린다. 나를 둘러싼 검은 새들이 빙글빙글 구름 위로 솟아오르며 깃털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낸다. 그러다 갑자기 나를 붙잡고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곤두박칠힌다.


(77-78)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냥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계속 생각나는 사람 아닌가.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났다. 멋진 남자, 멋진 여자들과 친밀함을 나누고, 웃고, 서로 호의를 보였으며, 좋은 시간을 함께 했다. 그러나 다음 극장에서 새로운 일정을 시작하고 나면 더는 그들을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몇 달 동안 내 상상을 완전히 사로잡은 이들도 있었지만, 헤어지고 나면 더는 그들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은 내 안에 어떤 공간도 차지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내 머리와 가습에 큰 공간을 차지한 채 몇 년을, 어쩌면 평생을 떠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내 영혼 깊숙이 파고들어 자리를 잡기 때문에 나 자체가 사라지지 않고서는 그들을 떠나보낼 수 없다. 나는 어린 시절 친구들을 자주 떠올리는데, 그렇다고 그때의 관계를 되찾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아니다. 친구들을 그리워하던 나조차 이제는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다.


(148)

모든 것은 입 밖에 내지 않을 때 더욱 강해진다. 두려움도, 슬픔도, 욕망도, 꿈도.


(159)

그러나 진짜 내 모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때로는 나조차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곳, 우주의 중심에 있으니 그제야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내 기억이 존재할 때부터 항상 억눌러 왔던, 암석도 녹이는 뜨거움이 피부 아래서 온몸을 약동하고 있었다. 이제 댐의 수문을 열어 모두에게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227-228)

나는 수명과 기상 사이의 회색 지대를 좋아한다. 모서리 없이 부드러워서다.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든 나는 딱딱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아틸라가 아니다. 흔히들 내가 매일 아침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서 곧바로 자기 훈련의 루틴을 시작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나는 이렇게 안개 자욱한 호수에서 뗏목을 타고 최대한 오랫동안 떠 있는 걸 무엇보다 좋아한다. 노를 저어서 꿈과 생각의 조각들을 건져 올리고, 그것들을 추억과 환상으로,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으로 분류한다. 산더미처럼 쌓인 포인트 슈즈에 바느질을 하는 일(사소한 것, 기억). 나를 조수석에 태우고 어딘가로 운전해 가는 엄마(중요한 것, 환상:엄마는 평생 운전을 배우지 않았고, 우리 모녀는 어느 곳도 함께 가본 적이 없다). 전혀 일어난 적 없고,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완벽한 상상이 우리의 삶과 정체성에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참 놀랍다. 그러나 머릿속의 모든 건 실재하며, 그 자체의 질량과 중력을 가지고 있다. 물질보다 더 많은 암흑물질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하는 우주처럼.


(312-313)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우아함이, 모스크바에는 감동이 있다. 그러나 유혹을 하는 도시는 오로지 파리뿐이다. 파리에 살다 보면 도시의 구석구석이 언젠가 내 눈에 발견될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믿게 된다. 이를테면 구불구불해진 벽으로 몇 세기나 더 늦게 지어진 이웃 건물에 기대어 세월의 무게를 버티고 있는 중세 건물, 부르주아지들이 모인 몽마르트 한가운데 숨겨진 비밀 돌길 옆으로 나란히 들어선 작은 집들.


(387)

무용수들은 공과 사, 이성과 감정을 분리하는 방법을 일찌감치 배운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선생님이 심하게 야단치며 평소처럼 틀리지 말고 완벽하게 하라는 지시를 내릴 때, 끔찍하게 싫은 파트너와 춤춰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신경이 약한 사람, 춤보다 감정을 우선시하는 사람은 이 세계에서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나는 언제나 내 감정보다 춤을 우선시했다. 춤이 없으면 내 인생의 어느 감정도 의미 없을 테니까. 적어도 나는 여태 그렇게 믿었다.


(464)

언덕을 도로 걸어 내려온 뒤 벨리브 자전거에 올라탔다. 미끄러지듯 내리막길을 달리자, 부드러운 밤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뒤로 흩날렸다. 날이 추워져서 재킷을 입고도 몸이 떨렸지만, 발로 페달을 아주 살짝만 밟아도 바퀴가 스스로 가속할 때마다 기묘하고 짜릿한 예감이 들었다. 살면서 황홀한 깨달음의 순간을 이미 몇 차례 경험한 적 있었다. 바르나에서 감자티베리에이션으로 무대에 올랐던 밤에, 내가 사샤를 원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던 그때처럼. 내리막길 거리를 활주하면서 나는 이런 직감이 중력을 거스르는 무중력상태에서 비롯된다는 걸 알아챘다. 내가 점프를 사랑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자유롭다는 걸 깨달았다. 사샤로부터, 레옹으로부터, 내게 고통과 분노를 주었던 모든 것들로부터. 나는 마침내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고,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준 모든 것에 대해 애정과 연민이 느껴졌다.


(469)

내가 말했듯이, 아무리 멀리 날아가는 새도 결국엔 고향으로 돌아온다. 최대 수년간 땅에 발 한 번 딛지 않고 공중에서 잠자며, 같은 종을 한 번도 보지 않으면서 홀로 바다 위를 나는 앨버트로스도 결국은 영겁의 서식지, 이들 모두가 태어난 바로 그곳으로 돌아온다.


(510-511)

나는 깊은숨을 내쉰다. 이미 조금도 쉴 틈 없이 꽉꽉 들어찬 2030년도 일정이 머릿속에 펼쳐진다. 내년 봄, 우크라이나 국립발레단과 마린스키 발레단이 아시아에서 합동 순회 공연을 할 예정이다. 우리 극장에서의 프로그램 외에도 내 모든 에너지를 다 소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투어이다. 물론 이는 드미트리도 잘 아는 사실이다. 수십 년간 각국의 발레계 최고위층 인사들과 쌓아놓은 인맥을 총동원해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나도 열심히 나섰다. 우리의 인류애를 드러내고 아픔을 치유하고 양심을 회복하는 예술의 신성한 의무를 역설하느라 여러 차례 무대에 섰고, 그보다 열 배도 넘는 횟수의 화상회의를 진행했다. 때로는 이런 언어의 사치성에 머리가 빙빙 돈다. 우리가 같이 올라 춤춘다고 해서(꼭 발레가 아니라 그 어떤 숭고한 예술이라도) 무너진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예술이 배고픈 자를 먹이거나 무고한 자를 보호하거나 죽은 자를 되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집에 가는 길에, 스튜디오에서, 또는 무대에서 나를 감동시키는 무언가를 볼 때면, 진실과 아름다움이 만나는 지점이 어딘가 있다는 걸 믿을 수밖에 없다. 그 지점에 영영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고, 또는 오랫동안 머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녁 공기 속에서 그곳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느끼고, 그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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