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춘추전국 이야기 1 - 최초의 경제학자 관중 춘추전국이야기 (역사의아침) 1
공원국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요즘에는 책관련 SNS인 북플을 통해 새로운 책들을 아는 경우가 많아. 이번에 읽은춘추전국이야기 1”도 그렇게 알게 된 책이란다. 아빠가 학창시절에는 역사에 관심도 없고, 시험공부용으로만 공부를 하다 보니, 어렵게 느껴져서 싫어하는 과목이었어. 그런데 나중에 커서 책을 읽다 보니 역사만큼 재미있는 것도 드물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래서 새로 알게 된 역사서이니 관심이 갈 만하겠지. 이 책은 제목만 봐도 중국 고대 역사 중 춘추 시대와 전국 시대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 많은 사상가와 전술가를 배출했던 난세의 시절, 춘추전국시대. 그렇다 보니 옛날부터 그 시대를 다룬 많은 역사서들이 있단다.

지은이는 우리나라 사람으로 공원국이라는 분이란다. 우리나라 사람이 다른 나라의 특정 시대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그것도 한두 권이 아니고 12권이나대단한 열정이 아니고서는 해낼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싶구나. 춘추전국 이야기 시리즈는 12권으로 기획하고 쓰기 시작했다고 하는구나. 인터넷 서점에서 확인해보니, 현재 10권까지 나왔고, 이번 달에 11권이 나올 예정이더구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를 벤치마킹을 했나 싶기도 하지만, 한 분야에 대해 이런 내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 같구나. 아빠도 앞으로 천천히 이 시리즈도 읽어볼까 한다.

중국 역사에 관련된 책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고우영 화백의 만화십팔사략이란다. 아빠 중국 역사를 다룬 교양서나 소설도 읽었지만,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것은 고우영 화백의십팔사략이었어. 아빠가 이번에 <춘추전국 이야기 1>을 읽고, 고우영 화백의십팔사략을 읽고 쓴 리뷰를 찾아 읽어봤어. 그리고 좌절을 느낀 것이 하나 있었단다. 이번에 읽은 <춘추전국 이야기 1>에서 처음 접한 내용인줄 알았는데, 이미 고우영 화백의십팔사략을 읽고 쓴 리뷰에 그 내용이 적혀있는 거야. , 아빠의 이 기억력…. 그러면서 그러니까 리뷰를 써두지.. 위안을 삼기도 했단다.

 

1.

춘추전국 이야기 1권의 부제목은최초의 경제학자 관중이란다. 관중이라고 하면, 아빠는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에서 나온 고사성어 관포지교(管鮑之交)만 알고 있었는데, 1권의 부제목으로 딸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싶었단다. 관중에 대한 이야기는 차차 하고, 춘추전국시대의 이야기를 한다고 하니  춘추전국시대가 언제부터 언제까지인가?를 알아보자꾸나. 기원전 770년 경 주나라가 융족에 밀려 동쪽 낙양으로 옮겨온 시대부터 진나라가 전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 약 550년의 기간을 춘추전국시대라고 해. 춘추 시대 초기에는 수백개의 국가가 있었고, 전국 시대 말기에는 일곱 개 국가가 있었다가 결국 진나라로 통일이 된 것이 이 시기에 있었던 일이란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전쟁과 사건, 사고들이 있었고, 난세에 영웅이 나타난다고 이 시설 많은 유명한 사람들이 출현하게 되었어..

 

2.

, 그러면 춘추 시대 이전에는 어떤 나라들이 있었을까? 아빠가 기억하기로, 중국의 역사는 하, , 주로 기억하고 있단다. 하나라는 우임금이라는 사람이 세웠고, 걸왕 시절이 온갖 포악한 짓을 해서 민심을 잃고, 상나라의 성왕이 하나라를 멸망시켰단다. ? 아빠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하나라 다음은 은나라인데이상하네하나라와 은나라 사이에 상나라가 있었나? 생각이 살짝 들었다가 읽어보니 이건 완전히 은나라 이야기더라구. 은나라를 상나라라고도 부르나? 싶어 확인해 보니 맞더구나. 나중에 상나라가(은허)’을 수도로 해서 은나라라고도 불렀고, 다른 나라에서도 상나라를 은나라라고 불렀다고 하는구나. 학계에서 부르는 정확한 명칭은 상나라가 맞다고 하는구나.

상나라는 최초의 국가체제를 갖춘 나라였대. 왕을 중심으로 다층적 통치체제를 가지게 되었고, 왕을 세습하기 시작했대. 왕은 이념적 구심점이 되어 제사권의 독점을 가지고 있었고, 상나라 때부터는 문자도 있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국가에서 주관하는 거대한 동원 체제도 있었고, 청동기 기반의 물질문명이 시작되어 무기와 제기를 다량 만들어졌대. 이 융성한 나라는 약 500년간 이어졌다고 하니, 상나라 때, 본격적인 고대 국가의 틀이 만들어졌다고 하는 말이 빈말은 아니란 것을 알겠구나.

그렇게 오랫동안 융성했던 나라가 왜 망했을까? ,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은 당연하겠지. 상나라는 주나라의 무왕에 의해 멸망했는데, 그 이유는 상나라 마지막 왕인 주왕이 폭군이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고, 달기라는 여인에 빠져 국정은 뒷전이고, 충신을 죽이고 가두는 악행을 계속했대. 상나라 충신이었던 서백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도 감옥에 갇히고 말았어. 그런데 서백이라는 사람됨을 알아 본 강태공은 자신의 돈으로 그를 석방시켰어. 그를 석방시키고 서백은 서쪽에서 세력을 키우고 강태공이 보좌했어. 강에서 빈 낚싯대를 들고 세월을 낚는다는 유명한 고사의 강태공 일화는 무척 유명한 일화로 너희들도 좀더 크면 알게 될 것 같구나.

아무튼 그렇게 세월만 낚던 강태공은 서백과 함께 세력을 키웠던 것인데, 서백(주 문왕)이라는 사람이 그만 일찍 죽고 말았단다. 그래서 그의 아들이 세력을 키워서 상나라를 공격하여 상을 멸망시켰단다. 그리고 그가 세운 나라가 바로 주나라고 그 사람이 주 무왕이란다. 주나라는 상나라와 다른 점은 무엇이냐? 가장 큰 특징은 그 전에는 신을 중심으로 한 나라였는데, 주나라는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대.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갖다 보니 진정한 정치가 시작되었다고 하는구나. 인간혁명과 정치혁명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지. 그 전에는 점괘, 신의 뜻으로 나라를 다스렸으나, 주나라에서는 운명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이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풍습도 많이 바뀌었지. 상나라에서는 사람을 제물로 제사를 지내고, 순장이 일반적인 풍습이었지만, 주나라에 와서는 사람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은 거의 없어지고, 순장은 크게 줄었다고 하는구나.. 제도, 법률, 관념이 이 때 만들어졌다는 하는데, 이런 것으로 정치혁명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는 거야.

상나라에서는 힘의 의한 약탈 경제, 호전적 기질로 나라를 다스렸고, 국제정치란 개념이 없었지만, 주나라에서는 국제정치도 만들어졌다고 하는구나. 주나라는 국토 운영 전략도 그 전과는 달랐어. 왕의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봉건제로 통치했어. 지방의 권력을 제후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말하는 거야. 다만, 공의 크고 작음에 따라 제후의 등급을 공, , , , 남 등으로 차등을 두었단다. 주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웠던 강태공도 제나라라는 제후국의 제후가 되었어. 주나라는 무왕이 세우긴 했는데, 공헌도로 봐서는 무왕의 희과 강태공의 강의 연합체라고 볼 수 있어. 처음에는 관계가 좋지만, 언제든 관계가 좋아지지 않으면 적대관계가 될 수 있다고 무왕은 생각했어. 그래서 위협이 될 수 있는 강성의 제후국은 동남쪽 멀리 주었단다. 그리고 친지로 이루어진 제후국을 주변에 두었단다. 그렇게 각 제후국의 위치를 힘의 균형에 맞게 배치를 하였고, 각 제후국은 서로 견제하도록 했어.

주나라를 세운 무왕이 죽고 어린 성왕이 즉위를 했어. 그러자, 무왕의 동생 주공이 권력을 행사를 하게 되었고, 이에 불만을 가진 무왕의 다른 동생들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 반란을 주공이 진압하였어., 이제 막 나라의 틀을 마련하였지만, 권력의 유혹은 목숨을 내놓을 만큼 달콤한 것인가 보구나. 주나라는 이후 번성하다가 무능한 왕들이 출현하면서, 제후국의 세력이 커지고, 제후국의 독립성을 점점 띠게 되었고, 유왕에 와서 극에 달했어. 포사라는 미인에 빠진 유왕은 나라 운영은 뒷전이었고, 융족의 침입에 속수무책으로 피신을 가야 했어. 이때 동쪽의 낙읍으로 천도를 했고, 역사가들은 이때 서쪽의 서주는 망하고 동쪽의 동주가 시작되었다고 했어.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때부터 본격적인 춘추시대가 시작된 것이란다.

 

3.

종주국이었던 주나라가 맥없이 무너지자, 주변이 있던 제후국들이이것 봐라, 내가 종주국이 되어볼까?’하는 마음들이 생긴 거지. 그러면서 여러 제후국들의 야욕의 발톱을 내세우기 시작했고, 초기 춘추 시대를 이끌게 되는 4개의 강대국이 출현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우연찮게 동서남북의 네 지방에서 세력을 키워 나갔대. 북쪽의 진()나라, 남쪽의 초나라, 서쪽의 진()나라, 동쪽의 제나라가 그들이었어. 남방의 초나라의 경우, 무왕이 스스로 왕이라고 칭하고 주변 약국을 침략하면서 세력을 확장해 나갔고, 서방의 진()은 처음에는 종주국인 주나라를 도와주다가 주나라가 동으로 쫓겨간 이후에는 융족과 전쟁을 벌이게 되었고, 융족과의 전쟁에서 이기면서 옛 서주의 옛땅을 대부분 차지하게 되었단다. 북방의 태행산맥의 진()은 무공때 이르러 그 세력을 키웠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이제 동방의 제나라를 살펴보자꾸나. 4개 나라 중에서도 특히 제나라가 초기 패권을 잡았던 나라였단다. 주나라의 힘이 약해져 종주국은 명분으로만 남고, 제나라가 초기 패권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제환공과 관중 때문이었던 것이야. 그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자꾸나.

 

4.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제나라의 시조는 강태공이었단다. 제나라는 태산과 제수, 그리고 발해만으로 둘러싸여 있는 요지에 위치하고 있어. 강태공의 고손자 애공이 모략으로 주나라 왕에게 죽음을 당한 이후 혼란의 시기가 한동안 이어지다가 장공과 희공에 의해 안정을 되찾게 되었어. 그런데 그것도 잠시 희공의 첫째 아들 양공이 패륜아에 무능아였어. 관중과 포숙은 이때 제나라 신하였는데, 국내에 머물고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서, 관중은 희공의 둘째 아들 규를 데리고 국외로 피신해 있었고, 포숙은 희공의 막내아들 소백을 데리고 국외로 피신해 있었어. 폭정을 일삼는 양공은 오래가지 못하고, 사촌 무지의 반란으로 죽고 말았어. 무지가 정권을 잡았지만, 그 또한 오래가지 못했단다. 이제 둘째 아들 규 또는 막내 아들 소백 중에서 먼저 제나라에 도착하는 이가 정권을 잡는 형세였어.

관중은 둘째 아들 규를으로 세우려고 소백에 오는 길목에서 그를 죽으려고 화살을 쏘기도 했어. 소백이 허리 가죽띠에 화살을 맞고 죽은 척을 했다가 소백이 먼저 제나라에 도착을 해서 권력을 잡게 되었어. 관중은 이에 두번째 소백을 암살하려고 시도했으나 또 실패를 했대. 소백은 관중을 죽이려고 했으나, 소백을 보좌하고 있었던 포숙이 말렸고, 오히려 관중을 중용해야 한다고 간청했어. 관중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던 것뿐이라면서포숙의 이야기를 들은 소백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어. 대단한 배포구나. 포숙이 숨어 있는 관중을 데리고 와서 소백의 신하가 되었단다. 소백이 바로 제나라의 전성기를 이끈 제환공이었어. 그는 관중의 이후 관중의 의견에 존중하고 잘 따랐단다. 그렇다고 제환공이 인성이 썩 좋은 사람은 아니었어. 제환공의 능력은 능력 있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잘 썼다는 거야.

=====================

(210)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군주와 신하의 재능을 나눈다. 신하는 군주의 재능을 가질 수가 없으며, 또 군주는 신하의 재능을 다 가질 필요가 없다. 군주는 신하를 알아보는 능력이 있으면 그만이다. 그 나머지 일들은 신하들이 한다. 군주는 신하들이 최선을 다해서 달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면 된다. 큰 인재와 작은 인재를 구분할 능력이 있으면 어떤 조직이든 다스릴 수 있다. 술을 좋아해도 술의 폐해를 알고 있으면 인재를 쓸 수 있다. 다혈질이라도 남이 제어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된다. 자신은 허명을 쫓더라도 실속 있는 사람을 옆에 구면 된다. 제나라 환공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

관중의 정책은 상당히 진보적이었어. 그는 자신이나 권력의 이익보다 효율을 중시하는 것처럼 보였단다. 사농공상이라는 신분제도에 대해서도 유지하면서도, 효율성을 위해 신분에 따라 사는 곳을 달리하자고 했어. 그렇게 하는 것이 각 신분의 노하우를 공유함으로써 효율적이고, 노동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했어. 그리고 국가의 부를 늘리기 위한 경제정책도 남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단다. 나라의 부를 늘리기 위해서는 백성의 부를 늘리면 된다고 했어. 백성들의 부가 늘어나면 굳이 나라의 부를 늘릴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고 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백성들의 노동력을 빼앗지 말라고 했어. 그의 이러한 사상은 후세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게 된단다.

====================

(238)

고대 전제정치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대대손손 부귀를 누리자는 것이다. 그러자면 성을 쌓아야 하고, 궁정을 크게 지어 권위를 높이고, 공실의 창고에 재물을 채워넣어야 한다. 그러나 관중은 말한다. 열심히 성을 쌓고 권위를 높이고 공실의 창고를 채우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으니, 바로 백성들이 열심히 생산하게 하는 것이다. 백성들이 생산한 부가 어디로 가겠는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면 그 나라로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고, 그러면 나라가 부유해진다. 나라의 사람들이 만족하면 공실은 안정된다. 굳이 농민들의 노동력을 과도하게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관중은 백성들의 시간을 뺏지 말라고 한다.

그래도 누군가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이 두렵다고? 그러면 스스로 오래된 사람들을 존경하면 된다. 모든 사람이 그런 기풍 속에서 산다면, 함부로 쿠데타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설 땅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 관중이 공실을 안정시키는 방법이었다. 관중의 방법은 향후 2천 년이 훨씬 넘는 동안 여러 가지 변주를 울리며 중국사에서 위세를 떨친다.

====================

정치의 경우에도 책임정치를 중요시했어. 신분을 불문하고 훌륭한 인재를 등용했어. 실력 위주를 사람을 뽑다 보니, 이웃 주변국에서도 인재들이 몰려들었단다. 상업은 어땠을까? 국가는 상업의 보호자이면서, 동시에 커다란 상인의 역할을 하고 있음으로 깨달았어. 국가는 식량을 비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복지 국가의 행보이기도 한 것이었어. 정치가로써 관중은 범에 의한 정치를 중요시하였고, 그로 인해 기본에 충실했고,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배신자는 용납하지 않았어. 관중은 제나라 전반적인 정책에 모두 관여를 하였고, 제환공은 관중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것이 잘 실천될 수 있도록 하였단다. 그렇게 제환공과 관중의 환상조합은 제나라를 초기 춘추 시대의 패권을 잡을 수 있게 한 것이었어.

하지만 세월은 영원하지 않는 것. 관중이 죽으면서 제환공에게 습붕을 중용하라고 유언을 남겼어. 제환공은 관중의 말따라 습붕을 중용했지만, 습붕 역시 금방 죽고 말았단다. 이후 제나라는 아부꾼이 득세하고 반란이 이어지면서 제환공이 감금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단다. 관중이 자신의 사후를 걱정하면서, 습붕이라는 인재까지 지목을 했으나, 그가 그렇게 비명을 달리할 줄을 미처 몰랐으리라. 관중의 영향력이 사라진 제나라, 제환공마저 감금상태에 빠지는 혼란의 시기그러니 관중의 얼마나 대단했던 사람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것 같구나. 그 반란 속에서 제환공마저 죽고 말았고, 짧았던 제나라의 패권은 진()나라에 넘겨주어야 했단다.

 

5.

앞서 짧게 춘추시대 초기 4개의 강국에 대해서 이야기했었잖아. 좀더 이야기를 해볼게. 제나라가 흥망성쇠를 하는 시절에초나라는 서서히 북진을 계속해왔고, 이것을 제나라에서는 부담스러워했어. 제나라는 초나라의 북진을 대비하기 위해서, 경제력으로 만들어진 힘을 가지고 주변국을 불러놓고 회맹을 맺었어. 그러면서 제나라는 자신을 패자로 칭했고, 주변국을 보호해주겠다면서 소위 보안관 역할을 했어. 그러면서 나라 간의 행동 기준을 명확히 했단다. 그러면서 상황에 따라서 제나라가 개입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어놓았어. 이런 제나라 주도의 동맹은 효과를 보았어. 초나라와 제나라 사이에 정나라가 있었는데, 정나라의 입장에서는 제나라와 동맹을 맺기는 했지만, 초나라의 공격에 맞설 수만은 없었어. 제나라와 초나라가 정나라를 두고 전면 배치했다가 대화로 전투를 막기도 했어. 하지만 그 초나라가 다시 정나라를 치면서 정나라의 입장은 애매해졌고, 동요하게 되었단다.

북방의 진()나라도 야금야금 주변국을 치면서 세력을 확장했어. 제나라의 연맹국에 융적이 침입했을 때 개입해서 도와주기도 했어. 그러면서 더욱 국제적인 입지를 키워나갔단다. 서방의 진()나라에 목공은 인력 부족을 중원에서 충당한다는 이유로 중원에 진출을 했어. 목공에게는 백리해라는 전략가가 있었는데, 우나라의 천한 신분의 사람이었는데, ()나라로 팔려왔다가 진 목공에게 등용이 된 사람이야. 제나라에는 제환공과 관중이 있던 것처럼 진()나라에는 진목공과 백리해가 있어 부흥을 이끌면서 세력을 키워나갔다고 하는구나.

여기까지 대략적인 1권의 이야기야… 2권의 책소개를 잠시 봤는데, 부제가영웅의 탄생으로, 본격적인 춘추시대 여러 나라의 세력 다툼에서 출현하는, 소위 영웅으로 부르는 이들의 활약상이 그려지는 것 같더구나. 기회가 되면 2권도 읽고 이야기를 해줄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시리즈 4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전에 너희들이랑 알라딘 중고 서점에 갔다가 시현이가 세종 대왕 만화책을 구입했잖아. 그리고는 집에 와서 그 책을 열심히 읽고 있는 것을 보고, 아빠도 문득 전에 사두고 읽지 않은 세종대왕에 관한 책이 생각났어. 아빠도 이번 기회에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어. 읽는 동안 너희들이 어디까지 읽었냐고 계속 물어보기도 했잖아. 아빠가 이 책을 구입한 것은 한참 전이야.

사실 우리나라에서 세종대왕만큼 유명한 사람이 있을까 싶구나. 그런데도 아빠는 어른이 되어서도 세종대왕에 대해 읽은 책이라고는 어렸을 때 읽은 위인전이나, 일반 역사서에 나온 정도였어. 그래서, 세종 대왕에 대해서 자세히 쓴 책을 읽고 싶어서 찾아봤어. 그런데 그렇게 유명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이 읽을만한 세종 대왕을 자세히 적은 책이 많지는 않더구나. 그런 책들 중에 이 책이 있어서 고른 것이야. 이 책의 지은이 박영규라는 분은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을 시작으로한권으로 읽는시리즈로 대박을 터뜨린 사람이야. 아빠도 그의 책들을 재미있게 읽었고 말이야. 그래서 그 사람이 쓴 <한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을 골랐던 것이란다.

 

 1.

며칠 전에 너희들과 끝말잇기를 하는데, 갑자기 시현이가이도를 이야기했잖아. 엄마가이도가 뭐야?”하고 물었고, 시현이가세종대왕 이름이야라고 했잖아. 세종대왕이 유명하긴 하지만, 실제 이름을 알고 있는 이들은 많지 않은 것 같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왕들의 호칭 즉, 태조, 태종, 세종, 정조 등등은 묘호라는 것으로 죽은 다음에 붙여진 이름들이란다. 세종은 업적이 뛰어나서대왕이 붙어서 세종대왕이라고 흔히들 불러.

세종의 아버지는 태종인데, 사실 그는 형제들을 죽이고 아버지를 내쫓다시피 해서 왕이 된, 어찌 보면 흉악한 사람이란다. 그럼에도 그를 아주 나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아들 세종의 업적 때문인 아닌가 싶구나. 그것도 왕이 될 수 없는 세번째 아들을 왕으로 만들고, 세종으로 하여금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나라의 기반을 만들어졌다는 평가가 있단다. , 태종이 없었으면 세종도 없었다는 이야기로 그의 업적을 이야기할 때도 있어.

원래 태자는 첫째 아들 양녕대군이었어. 그런데 그는 여색을 밝히고, 행세가 좋지 않았단다. 태종이 몇 번을 용서하고 기회를 좋지만, 그는 결국 그 버릇을 끊지 못하고 결국 폐위되었단다. 그리고 둘째형 효령대군은 불교에 빠져 있었고, 셋째 충녕대군, 바로 이도가 세자가 되었단다. 그는 이미 세자가 되기 전부터 책을 좋아하고 심성이 착하기로 유명했단다. 세자가 될 때도 몇 번을 사양했지만, 결국 받아들였어. 그리고 세자가 된 지 두 달 밖에 안되었는데, 태종은 왕자리를 전위한다고 했어. 신하들은 안 된다고 했어. 전에 양녕대군이 세자로 있을 때도 전위 파동을 일으킨 적이 있었거든. 양녕대군의 외척이 권력을 휘두르고자 해서 그것을 견제하기 위한 가짜 전위 파동이었어. 결국 양녕대군의 외척이었던 민무구와 민무질을 유배 보내버렸지. 이번 전위 의도도 다른 뜻이 있을 거라고 신하들과 세종이 절대 반대했지만, 이번에는 진짜였단다. 태종의 뜻이 견고해서 이번에는 실제 전위를 하고 세종이 왕이 되었단다. 하지만, 태종이 병권은 자신이 갖고 있겠다고 했어. 실제 권력은 태종이 쥐고 있다고 봐야지. 이것은 세종이 즉위한 이후 4년간 이어졌단다. 태종은 이때 왕권 강화에 힘썼어. , 권력을 넘보는 세력들을 처단했단다. 세종의 부인이었던 소헌왕후 심씨 집안도 마찬가지였어. 소헌왕후의 작은 아버지가 태종에 밉보이자, 소헌왕후의 아버지이자 세종의 장인어른인 심온까지 죽였단다. 세종의 간절한 부탁으로 소헌왕후는 폐위를 당하지 않았지만, 그 집안은 노비집안으로 전락하고 말았단다.

세종의 업적이 뛰어난 것이 한글을 만들고, 과학을 중시하는 눈에 드러나는 것만 있는 게 아니란다. 어떤 정책을 펼칠 때 백성들의 여론을 귀담아 들었대. 어떤 정책은 17만 명이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결정했다고 하니, 그렇게 칭송을 받을 수 밖에지난 9년 동안 대통령 자리에 있던 분들은 무소불위를 자랑하듯 국민들은 뒷전, 자신들 마음대로 결정하고 나라꼴을 개판으로 만들었으니, 원통하기 그지 않구나. 그래도 다행히 우리 국민들은 한 힘으로 그 불의를 끌어내려서 정말 다행이란다. 올해는 상식의 대한민국으로 되돌아왔으면 좋겠구나.

  

2.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이야기하고 있어. 세종의 업적과 생애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세종실록을 정리해서 이야기해주고, 마지막 부분은 세종 시대 유명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단다. 그의 업적과 생애는 많이 유명하고, 너희들도 만화를 통해 알게 되었으니, 아빠는 세종실록에 나와 있었던 일화들을 몇 개 소개해줄게

당시에도 코끼리가 있었대. 동물원 같은 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냥 동네에 돌아다니다 보니 사람들이 코끼리 발에 채여 죽는 경우도 있었대. 그래서 상왕(태종)은 물 좋고 풀 많은 곳에 놓아주라고 했고, 잘 살펴서 죽게 하지 말라고 했다는구나. 동물들의 권리도 지켜주는 것이 오늘날 진보 정당들의 모습도 엿볼 수 있구나. 조선시대에는 복지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황희가 예조판서로 있을 때 고양현에서 굶어 죽은 사람이 발생하자, 고양현 현감에 형장 80대를 친 일도 있다고 하는구나. 그렇듯 당시 백성들의 최소한의 의식주에 관심을 가진 기록들이 여럿 보였단다.

세종실록에는 무엇보다 신하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왕의 모습이 여러 군데 보인단다. 세종은 <태종실록>을 보려고 하였지만, 신하들이 만류했다고 하는구나. 왜냐하면 세종이 <태종실록>을 보다가 그에 대한 평가를 내리게 되면 실록을 만든 신하들이나 사초를 작성한 사관들의 마음이 편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어. 신하들의 이 말이 옳다고 생각한 세종은 읽지 않았다고 하더구나. 이런 예를 봐도 세종은 합리적인 신하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에 따른 것만 봐도 성군이 아니었나 싶구나. 지난 9년 우린 비상식적인 대통령만 봐와서 이런 상식적인 행동조차 성군처럼 생각되고 부러운 생각이 드는구나.

앞서 이야기했지만 세종 시대에 유명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고 했잖아. 아빠가 모르고 있던 사람들도 있고, 알고 있던 사람들도 나왔단다. 정치인으로는 황희, 맹사성, 류관을 소개해 주었고, 국방의 영역을 넓인 이들로 이종무, 최윤덕, 김종서를 소개했단다. 그리고 세종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변계량, 이수, 윤회, 정인지를 소개하였고, 세종이 키운 과학의 인재라고 할 수 있는 정초, 이순지, 장영실, 박연을 소개했단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 역사적인 일이 있었단다. 무능하고 부패한 대통령을 국민들의 상식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으로 끌어내렸단다. 이 책을 읽으면서, 파면한 대통령이 얼마나 무능한 대통령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단다. 그리고 세종이 너무 유명해서 오히려 그를 롤모델로 삼는 경우가 드문데, 세종을 롤모델을 삼는 대통령 후보가 나왔으면 좋겠구나. 그가 백성을 향해 행한 것을 그대로 한다면 국민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대통령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돌베개 - 장준하의 항일대장정
장준하 지음 / 돌베개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얼마 전에 아빠가 김삼웅의 <장준하 평전>을 읽었잖아. 그리고 장준하가 쓴 <돌베개>라는 책을 연이어서 읽고 싶었어. <돌베개>는 장준하의 항일투쟁기라고도 해. 김삼웅의 <장준하 평전>에도 <돌베개>의 글을 많이 인용했고 말이야.

이 책에는 장준하가 일본군에 들어간 1944년부터 해방 후 다시 귀국하여 김구 선생의 일을 보좌하던 1945년 말까지 약 2년에 걸친 이야기가 담겨있단다. 돌베개.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왜 제목을 돌베개라고 지었을까? 하는 굼긍증도 생겼지만, 그보다 돌베개 출판사가 더 먼저 떠올랐단다. 돌베개에서 출판한 책들은 진보성향의 책들과 사회문제를 다른 책 등 아빠가 좋아하는 책들을 많이 출간하는 출판사였거든. 그 돌베개 출판사가 바로 장준하의 책 <돌베개>에서 이름을 따왔나? 이렇게 생각했어. 그래서 확인해보니, 그것이 맞더구나. 출판사 돌베개는 장준하의 책 <돌베개>에서 출판사명을 따온 것이래. 그러면 장준하는 항일투쟁수기를 엮은 책의 이름을 왜 <돌베개>로 지었을까? 그것은 아내와 암호였다고 하는구나. 김삼웅의 <장준하 평전>에도 나와 있지만, 일본 유학 중이던 장준하는 예전의 제자였던 김희숙과 애틋한 정을 나누다가 결혼을 했고, 결혼한지 일주일 만에 학도병에 자원하여 입대하면서, 나눈 암호. 일군을 탈출할 경우 편지에 창세기에 나오는 구절을 편지로 적어 보내겠다는 암호. 그 구절 속에 한 단어 돌베개. 그리고 그가 황량한 중국 땅에서 들판에서, 산에서 잠을 청했을 때, 그가 벤 돌을 돌베개라고 생각했을 거야.

=================================

창세기 28 10~15절에 나오는 야곱의돌베개이야기는 내가 결혼 일주일 만에 남기고 떠난 내 아내에게 일군(日軍)탈출의 경우 그 암호로 약속하였던 말이다. 마침내 나는 그 암호를 사용하였다. “앞이 보이지 않는 대륙에 발을 옮기며 내가 벨돌베개를 찾는다고 하였다. “어느 지점에 내가 베어야 할 그돌베개가 나를 기다리겠는가?”라고 썼다. 그 후 나는돌베개를 베고 중원 6천 리를 걸으며 잠을 잤고 지새웠고 꿈을 꾸기도 하였다. 나의 중원 땅 2년은 바로 나의돌베개였다. 아니, 그것이 나의 축복받는돌베개여야 한다고 생각했다.(7)

=================================

 

1.

장준하가 일군에 들어갔다가 일군을 탈출하고, 중국군 부대에서 생활하다가 다시 6000리 길을 행군하여 충칭에 있는 임시정부에 다다른다는 내용은 이미 김삼웅의 <장준하 평전>을 통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단다. 이 책은 그런 그의 행보를 장준하의 글을 통해 직접 볼 수 있어 더욱 실감이 나고, 그때그때 순간마다 그의 생각이 어떠하였는지 알 수 있어 좋았단다. 어쩌면 장준하를 비롯한 그의 일행이 일군을 탈출한다는 것은 무모한 짓일 수도 있었어. 철조망 밖의 상황이 어떤 상황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탈출하는 것은 목숨을 내놓고 벌인 일이야.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목숨을 내놓고 행동하게 했는가? 그들이 일군을 탈출하고 밤을 이용하여 도망 중에 불로하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게 되었단다. 그리고 그들을 말할 수 없는 감격을 맞게 되고, 그 감격을 조국에 바치고자 했어. 그래서 그들은 조국을 향해 절을 했단다. 아빠는 그 장면을 상상해봤어. 일군에 쫓겨 밤새 도망가다가 불로하의 큰 강 물결에 떠오르는 태양이 비치고... 그 광경을 보는 젊은이 4명이 조국을 향해 큰절을 하는 그 장면... 그들의 뜨거운 가슴이 느껴지는 듯했단다. 그 뜨거운 가슴이 목숨을 내놓는 탈출을 감행한 것이 아닌가 싶구나.

=================================

“너, 불로하, 말 없는 강, 안으로 안으로 모든 것을 가라앉혀 비록 그 바닥에서는 물결이 거세어도 수면은 언제나 잔잔히 흐르기만 하는 강, …… 너 마르지 않고 너 나타나지 않는 그 강심을 나는 여기서 배우리라.”

어느새 이국의 태양은 머리 위에 올랐고 강물 위엔 쏟아진 햇볕이 물결을 덮으며 웅장한 음악이 강 밑으로 흐르는 것이었다. 우리의 소망과 새로운 각오를 위해 강은 흘렀다.

우리는 목욕을 마치고 군복을 입었다. 서로서로를 돌아보며 새 결의를 다짐했다. 모두 새사람이 되었다. 진정 우리는 새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조국 광복, 이 깊고 긴 강처럼, 크고 깊은 긴 일을 마침내 나는 찾아낸 것이다. 이제 우리는 떳떳한 조국의 아들이 다시 되었다. 기쁨과 감격은 이 아침을 신비롭게 하였다.

우리는 동북쪽의 조국을 향하여 경건하게 머리를 숙였다. 이글대는 태양을 마주하고 가로로 한 줄을 만들어 서서 이 가슴의 감격을 조국에 고하고자 했다. 김준엽 동지, 윤경빈 동지, 김영록 동지, 홍석훈 동지 그리고 나, 이렇게 차례로 서서 조국을 향한 배례를 한 것이다.(77)

=================================

 

2.

장준하 일행은 중국 중앙군 유격대에서 생활을 하다가 충칭에 있는 임시정부를 찾아 나서기로 했단다. 그러다가 그들은 린촨(임천)에 있는 한국광복군 훈련반에서 합류하게 되는데, 그곳에는 이미 한국 젊은이들이 팔십여 명이 머무르고 있었어. 낯선 타지에서 같은 한국인들을 만나는 것은 또다른 감회였을 거야. 그런데 말이 한국광복군 훈련반이었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무기도 없으니, 그들이 하는 것은 제식훈련이 전부였어. 장준하는 취사병으로도 일을 했는데, 전우들을 위해 고구마를 몰래 훔쳐오던 일화도 이야기해주었단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대원들의 글을 받아서 잡지를 냈단다. 동료들은 그 잡지를 <등불>로 제목을 뽑았고, 속옷을 깨끗이 빨아서 표지를 만들기도 했어. 그곳에서 훈련을 하긴 하지만 제식훈련이 전부였고, 장준하는 최종 목적지는 충칭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어. 그는 김학규 중위의 만류를 뒤로하고 다시 길을 떠났단다. 그때 임촨에 남는 이들도 있었고, 장준하와 같이 떠난 이도 있었어. 민간인들 포함하여 53명이 임촨을 떠났는데, 그때가 1944 11 30일이었어. 11 30. 이제 한파가 몰아닥치는 겨울이 찾아올 거야. 거기에 먹거리도 거의 없고, 언제 어디서 마적단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길. 그들은 뜨거운 피 하나로 길을 떠났단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중칭으로 향한 길은 고난의 길이었어.

그리고 해가 바뀐 1945 1월말 장준하 일행은 중칭의 임시정부에 도착을 했단다. 김구 주석, 이청천 장군 등 고위직의 환대를 받았어. 장준하를 포함한 50여 명들도 감격을 받았지. 그리고 그는 앞으로 조국 독립을 위해 할 일에 대한 기대를 했어. 그러기 위해서 길고 긴, 그 힘든 여정을 떠났던 거니까. 그런데, 며칠 지내고 보니 장준하는 임시정부에 실망을 느끼게 되었단다. 김삼웅의 <장준하 평전>을 읽고 쓴 편지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장준하는 임시정부 요원들 앞에서 그들의 당파싸움에 신랄히 비판했어. 그리고 혼날 것을 각오하고 자신의 생각을 거듭 이야기했어. 그러면서, 임시정부 요원들이 변하여 자신의 당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대한 독립을 위해 하나로 뭉치길 바랬어.

=================================

길지 아니한 단 10여 일 동안, 그동안 우리의 눈에 비친 임정은 결코 우리가 사모하던 그 임정과 다른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잘못 본 것이라면 용서하십시오. 진정으로 여러 선배 선생님께서 이곳 이 땅에서 임정을 사랑하고 있다고 저희에게 생각되지 아니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랑한다는 것과 탐욕을 내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탈출해서 기나긴 행군으로 오면서 그리던 임정은 모두 일치단결되어 있는 완전한 애국투쟁의 근본이라고 여겼습니다. 이곳에 오기만 하면 그 단결된 힘으로 오직 잃은 나라 찾는 데만 목숨 바쳐 일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 그 기대는 지나친 하나의 환상이 아니었나 하는 회의를 품게 되었습니다. 이 회의는 누가 준 것입니까?

조국을 잃고 망명한 입장에서 임정을 세웠기에 임정이 하는 일에는 파쟁이 개재되어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 했습니다. 이것은 저희가 잘못 본 것입니까? 아니면 사실입니까? (263)

=================================

임시정부에 대해 실망을 한 장준하는 기대와 달리 그곳에서도 딱히 할 일이 없었어. 그러다가 이범석 장군과 만나게 되었고, 이범석 장군의 소개로 30여명의 동료들과 함께 임시정부를 떠나 미국첩보대인 OSS에 들어가게 되어 특수훈련을 받게 된단다. 그들은 조국에 잠입할 목적으로 훈련을 받고 있었는데,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면서, 그들의 국내 잠입이 의미 없게 되었단다. 일본의 포츠담 선언은 곧 전쟁의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었으나, 자신의 손으로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독립운동가들에게는 반가운 소식만은 아니었던 거야.

 

3.

1945 8 14, 장준하는 다른 일행들과 미국사령부 사절단 소속으로 비행기를 타고 국내로 향했단다. 그리고 여의도에 도착했는데,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일본군의 총부리였단다. 일측촉발의 상황. 아직 국내 사정이 안정되지 않은 상황이었어. 결국 그들은 다시 회항하기로 결정되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어. 그리고 다시 조국을 찾은 것은 그 해 11월 김구 주석과 함께였단다. 임시정부의 최고 수장이었던 김구 주석의 귀국이었는데, 공항에는 아무도 없었어. 조짐이 이상했던 것이지. 광복이 되고 난 3개월 동안 국내 정세는 대혼란의 시간을 겪고 있었어. 거기에 미군정은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개인 자격으로 입국을 제한했던 거야. 뒤늦게 경교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김구 주석의 비서 역할을 하고 있던 장준하는 가족에게 가 볼 틈도 없이 바쁜 생활을 하게 되었단다. 이제 그에게 조국 독립의 일이 아닌, 조국 재건에 대한 막중한 일이 떨어진 거야. 김구 주석을 보좌하면서, 열심히 일을 하지만, 강대국들이 양분해버린 조국을 하나로 만든다는 것은 험난한 길이라고 생각했어. 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났단다.

.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일구어내려고 했던 조국의 독립. 아직도 우리나라는 홀로 서지 못하고, 둘로 나뉘어져 있단다. 비록 그렇더라도 반쪽인 나라에서라도 독립운동가들이 내세웠던 국가의 가치들.. 그런 것들이 잘 만들어져 살기 좋은 나라가 되어야 하지만, 요즘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정말 답답하구나. 뒤늦게 진실들이 밝혀지면서, 다시 제대로 된 나라로 갈 기틀을 마련했지만, 아직도 잘못을 저지른 이들은 자신의 죄를 사과는커녕 인정도 하지 않고 있단다. 과거 친일파들이 이러했을려나. 올해는 우리나라가 다시 정상궤도를 되찾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너무 멀리 와버린 기분이 드는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선택의 순간들 - 2002년 노무현 대선승리의 기록
구술자 12인 지음, 노무현재단 엮음 / 생각의길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노무현 재단은 노무현 대통령님의 삶, 정책, 철학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해서 책으로 엮는 일도 한단다. 그래서 많은 책들을 냈고, 아빠는 그렇게 만들어진 책들을 즐겨 읽는단다. 노무현 대통령님을 책을 통해서 만나는 거지. 아빠가 이번에 읽은 책도 노무현 재단이 펴낸 책이란다. 노무현 대통령의 최고의 순간을 담은 책.

2002. 민주당 경선을 거쳐 대통령 후보가 되고, 지지율이 곤두박질 치고 다시 일어나고, 정몽준과 극적인 단일화를 이루어내 결국 대통령 선거에서 이긴 그 드라마 같은 일 년노무현과 함께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란다. 그들은 노무현과 함께 하면서, 힘들지만 행복한 날들을 보냈을 거야. 그들이 이야기하는 그때의 순간들로 인해 아빠도 그 시절로 돌아갔단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당시의 영상들을 다시 찾아보곤 했단다. 경선 때마다 울려 퍼진 노무현의 명연설들지금 다시 들어도 감동이 다시 아빠의 몸을 휘감는구나. 이 책의 구술자들은 각자 노무현과 처음 만난 게 된 이야기와 2002년 노무현과 함께 한 이야기를 했단다. 아빠에게도 노무현을 처음 알게 된 때와(아빠는 만난 건 아니니까) 그리고 아빠의 2002년을 이야기해 보라면 어떻게 이야기할까? 생각해 보았어.

한번 짧게 줄여서 이야기해볼께. 아직도 모든 것들이 생생하구나. 아빠가 노무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1988년 청문회 때야. 아빠가 그때는 어려서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정도만 알았지, 그가 왜 뉴스에 오르내리고 그랬는지도 몰랐단다. 그 이후 아빠는 학창시절을 거치면서 정치에는 담을 쌓고 살았단다. 대학 시절에는 정치에 관심을 둘 만도 했는데, 아빠는 그때도 정치에 관심이 없었어. 무책임한 청년이었지. 그러다가 사회 초년생 때 우연히 책을 한 권 읽었단다. 강준만의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이 책을 읽고 나서 아빠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어. 노무현의 팬이 되어서 노사모에 가입을 했고, 노사모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는 죽돌이가 되었단다. 노무현이 팬이 되고 나서야 우리나라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단다. 노무현이 정치인이니까 말이야. 그러면서 우리나라에도 괜찮은 정치인들이 몇몇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민주당 경선이 시작되었단다. 정말 극적인 순간들이 아닐 수 없었단다. 제주부터 시작해서 주말마다 전국을 순회하명서 진행된 경선.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었어. 그래서 가급적 주말 약속을 잡지 않고, 집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경선 결과 방송을 보곤 했단다. 그리고 극적인 순간들을 함께 했지. 광주에서 승리는 정말 최고였어. 가끔 주말 약속이 있으면 결과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어. 당시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접속해서 간단한 뉴스를 문자를 제공받을 수 있었는데, 그 데이터 요금이 비쌌던 시절이었지. 그런데 아빠는 경선 결과 궁금해서 결과가 기사로 나올 때까지 몇 번을 접속했는지 모른단다. 결과를 보고 나서는 나도 모르게 환호했단다. 그렇게 민주당 경선에서 최종 승리를 한 노무현. 그 때부터 아빠는 지인들에게 노무현에 대한 홍보를 했어. 지금 생각해보면 지나칠 정도로 이야기했던 것 같구나. 보통 회사에서는 정치에 관한 이야기는 조심하는 편인데, 당시 아빠는 철모르던 젊은이였기 때문에 대놓고 지지를 호소했었단다. 그러다가 반대편 지지자들을 자리를 함께 하게 되면, 설전을 벌이기도 했어. 당시에는 상대방 진영을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고 틀리다고 생각했었거든. 그렇게 노무현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칠 때나 좋을 때나 한결같이 그를 응원했단다. 그리고 운명의 정몽준과 노무현의 단일화. 그 결정이 정해진 날, 아빠는 중국 출장에 가 있었어. 중국에서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아직도 그 장소가 머릿속에 선명하게 기억나는구나. , 이제 대통령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선거 하루 전 속 좁은 정몽준의 지지 철회. 누군가는 절망을 했을 지 모르지만, 이상하게 아빠는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깟 일로 하루 아침에 지지자를 쉽게 바꾸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승리를 장담했어. 그래서 그 승리의 순간을 축하하려고, 아빠는 친구, 후배들과 함께 술자리에 함께 했어. 한 잔 하면서 6시 출구 조사 결과를 지켜봤단다. 그리고 결과는 노무현 대통령이 승리하는 것으로 나왔어. 그때 다시 한번 다함께 환호성을 보냈지. 선거 결과도 출구 조사대로 노무현 대통령의 승리로 끝났단다. 정말 아직도 생생한 2002년 일 년이구나.

 

1.

요즘도 친노라면서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아빠는 왜 친노가 비판의 대상이 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단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노무현 대통령님한테 열등감을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아빠처럼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은, 친노가 되고 싶어 안달이거든. 그런데, 이 책의 구술자 중에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가 이야기했단다. 친노는 없다고그저 노무현의 시대정신을 실천하는 사람들만 있을 뿐. 그 말에 일리가 있었단다. 노무현 대통령의 열등감에 취해 비판하지 말고, 노무현이 어떤 시대정신을 가지고 정치를 했나 잘 생각해보고, 시대정신에 헌신하는 자라면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

노 대통령이 걸어갔던 길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결국은 어떤 시대정신을 가지고 가장 어려운 사람과 더불어서 가장 전면에, 일선에서 자기 모든 걸 던진 사람이에요. 그런 걸 가진 사람이 노무현의 후예가 되지 인간적으로 가깝다고 되는 거? 난 그런 거 없다고 봐요. 그래서 친노라고 마친 큰 세력이 있는 것처럼 해서 연일 싸우는 사람도 고스트(ghost)와 싸우는 거고, 또 하나는 친노 적자는 없다, 내가 볼 땐, 오히려 시대정신에 헌신하는 자가, 그 사람이 노 대통령의 후계자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기존의 질서를 뒤집어엎는 그런 사람이 반드시 또 탄생한다. ? 서민들이 봉하마을에 오는 걸 관찰해 보면, 삶이 힘들면 힘들수록 더 많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기성 정치에 염증을 내면 낼수록 찾아옵니다. 그 공통분모를 믿는 사람이 또 탄생한다고 봐요.

===========================================

사람들은 2002년 노무현의 당선을 기적이라고도 하고, 한 편의 드라마라고도 하고, 하늘이 선택한 것이라고 하기도 한단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란다. 그리고 노무현이 2002년이었기 때문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는 유시민의 말도 동의한단다. 오늘날이었다면 아마 대통령이 되지 어려웠을 거야. 유시민은 상당 기간 동안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캐릭터를 가진 분이 안 생길 거라고 했어. 그런데 아빠는 유시민도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정치인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그가 정치를 할 때는 언젠가는 대통령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그는 정치를 그만두고, 전직 작가가 되었단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빠도 유시민이 정치를 하지 않는 것은 국가적인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그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의 뜻도 존중한단다.

===========================================

노무현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정치인이, 그 개인의 경력으로 보나 사회적 기반으로 보나 정치적 기반은 비주류의 비주류고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요소가 없어요. 근데 그 시기에 사람들로 하여금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를 가진 분이었어요. 사람들이 나름대로,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노무현이라는 이 캐릭터에서 어느 한 대목인가를 자기 마음에 들어 하고그래서 난 노무현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해 준 사람이에요. 많은 결점과 더불어서 많은 미덕을 가진 분이었잖아요. 이분이 지금 대선에 나온다면 안 된다고 봐요. 또는 그전에 나왔더라도 역시 안 됐으리라고 봐요. 이거는 그때 딱 일회적으로 벌어진 사건이었어요. 그리고 그런 캐릭터를 가진 분이 대통령이 되는 일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안 생길 거라고 봐요. 우리나라 같은 조건에서는 대통령이 될 수 없는 분이에요.

===========================================

아빠가 얼마 전에 <무현, 두 도시 이야기>란 영화를 봤단다. 영화를 보면서, 아빠는 몰래몰래 눈물을 흘렸는데, 옆 좌석 어떤 아저씨는 대놓고 펑펑 울고 있더구나. 최근 우리나라 최악의 대통령으로 온 백성들이 분노하는 시절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것 같더구나. 그 영화에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더구나.

그나저나 그 분은 왜 물러나지 않고, 온갖 욕을 다 드시고 계시는지 모르겠구나. 욕을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는 생각을 하고 있나? 그래도 오늘 간만에 기분 좋은 소식이 여의도로부터 들려왔더구나. 하지만 이럴수록 방심하지 말아야 한단다. 그 날까지 고고.

 

 

 

 

 

 

 

 

노 대통령이 걸어갔던 길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결국은 어떤 시대정신을 가지고 가장 어려운 사람과 더불어서 가장 전면에, 일선에서 자기 모든 걸 던진 사람이에요. 그런 걸 가진 사람이 노무현의 후예가 되지 인간적으로 가깝다고 되는 거? 난 그런 거 없다고 봐요. 그래서 친노라고 마친 큰 세력이 있는 것처럼 해서 연일 싸우는 사람도 고스트(ghost)와 싸우는 거고, 또 하나는 친노 적자는 없다, 내가 볼 땐, 오히려 시대정신에 헌신하는 자가, 그 사람이 노 대통령의 후계자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기존의 질서를 뒤집어엎는 그런 사람이 반드시 또 탄생한다. 왜? 서민들이 봉하마을에 오는 걸 관찰해 보면, 삶이 힘들면 힘들수록 더 많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기성 정치에 염증을 내면 낼수록 찾아옵니다. 그 공통분모를 믿는 사람이 또 탄생한다고 봐요.

노무현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정치인이, 그 개인의 경력으로 보나 사회적 기반으로 보나 정치적 기반은 비주류의 비주류고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요소가 없어요. 근데 그 시기에 사람들로 하여금 ‘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를 가진 분이었어요. 사람들이 나름대로,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노무현이라는 이 캐릭터에서 어느 한 대목인가를 자기 마음에 들어 하고 ‘그래서 난 노무현’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해 준 사람이에요. 많은 결점과 더불어서 많은 미덕을 가진 분이었잖아요. 이분이 지금 대선에 나온다면 안 된다고 봐요. 또는 그전에 나왔더라도 역시 안 됐으리라고 봐요. 이거는 그때 딱 일회적으로 벌어진 사건이었어요. 그리고 그런 캐릭터를 가진 분이 대통령이 되는 일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안 생길 거라고 봐요. 우리나라 같은 조건에서는 대통령이 될 수 없는 분이에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 대한민국이 선택한 역사 이야기
설민석 지음, 최준석 그림 / 세계사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요즘 방송가에서 가장 핫한 사람 중에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지은이란다. 그의 직업은 21년차 스타 강사. 아빠가 그가 강의하는 것을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통해 몇 번 봤단다. 정말 말을 조리있게 잘 하더구나.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닌데, 그의 강의를 듣다 보면 어느덧 시계바늘은 한참이 돌아가 있더구나. 물론 그 기억이 오래 가지 않지만, 듣는 그 순간은 몰입할 수 있게 하는 것 같았어. 그런 그가 조선왕조실록을 책으로 냈다고 하더구나. 

아빠도 역사서를 좋아해서 간추린 조선왕조실록을 읽어보기도 하고, 그리고 조선에 관한 여러 역사책들을 즐겨 읽은 편이라서, 조선의 역사에 대해 큰 흐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한번쯤 읽어보고 싶었단다. 괜찮았어. 조선왕조실록 500년을 모두 이야기하기에는, 내용이 부족했지만, 역사서를 이렇게 재미있고, 쉽게 쓰기도 드물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리고 스타 강사답게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는 것도 좋았고, 촌철살인 같은 네 글자로 27명의 모든 왕을 표현한 것도 인상적이었단다. 예를 들어, 태조는 개국군주, 세종은 애민군주, 세조는 독재군주 등으로 말이야. 그리고, 각각의 왕을 호랑이에 비유하기도 했는데, 예를 들어 태종은 진짜 호랑이, 연산군은 미친 호랑이, 광해군은 억울한 호랑이, 정조는 완벽한 호랑이 등으로… 그것들이 각각의 왕들이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주었단다. 그리고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도 정리해서 적어놓았단다. 아빠가 예전에 재미있게 본 영화나 드라마도 포함되어 있었고, 보고 싶은 영화나 드라마도 있었단다.

아빠가 예전에 박영규가 쓴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을 읽고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 어떤 생각이냐면, 일반 대중들이 읽을 수 있는, 한 권이 아닌 좀 더 자세히 1대 태조부터 27대 순종까지 순서대로 자세히 쓴 조선왕조실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말이야. 10권이나 그것보다 좀더 많은 분량으로 좀더 알차게 담은 책으로 말이야. 이번에 읽은 책도 그렇고, 예전에 읽은 책도 그렇고 500년을 이야기하기에는 뭔가 좀 아쉬움이 가득 남는 기분이었단다. 몇 년 전인가 박기백이라는 분이 만화로 그린 “조선왕조실록”이 20권으로 출간하긴 했는데,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만화다 보니 그것도 아빠가 생각하는 그 정도의 분량을 채우지는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도 이 만화책도 언젠가 꼭 읽어보고 싶단다. 아무튼, 결론을 이야기하면 재미있게 읽었지만, 아쉬움이 남는 그런 책읽기였단다.


1. 

너희들에게 조선왕조 오백 년 스물일곱 명의 왕에 대한 이야기를 옛날이야기하듯이 해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 정도로 조선의 역사를 꿰뚫고 있지도 못하고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능력도 못되고..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꼼꼼히 메모를 하면서 읽으려고 했어. 그리고 그 메모를 바탕으로 조선역사 500년을 아빠 나름대로 간략하게 정리해 보려고 했지. 그런데, 그러질 못했단다. 조선시대 초기 몇몇 왕에 대해서만 메모를 하고, 중반 이후부터는 메모를 하지 못했단다. 조선 초기의 왕들만 이야기하는 것이 안 하는 것만 못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메모 한 것이 아깝기도 하고, 조선 중기 이후의 이야기들은 아빠가 역사책을 좋아하니까, 다른 역사책을 읽고 이야기해줄 수 있는 기회가 앞으로 많을 거라 생각하고 아빠가 메모한 부분까지만 이야기해줄께.


2.

전주 이씨 이성계가 함경도에서 태어난 이유는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 때문이라고 하는구나. 이성계의 고조 할아버지가 금지된 사랑, 관기와 사랑을 하고 나서 도망을 가게 된 곳에 함경도. 그곳에서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과 이성계가 태어났고, 둘은 모두 무관으로 두각을 나타냈대. 때는 고려 말. 공민왕의 개혁은 성공하는 듯 했으나, 노국공주가 죽고 난 이후 공민왕은 나라는 뒷전, 폐인이 되어버렸고, 고려라는 나라도 엉망이 되었단다. 공민왕이 죽은 이후, 혼란스러운 정국이 이어졌고, 이성계는 명을 받아 명나라를 공격하려고 길을 나섰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해가 되지 않은 전쟁이었던 거지. 그래서 위화도에서 장마를 핑계로 머물고 있다가 다시 말머리를 돌려 개성으로 돌아와 최영이 이끌던 군대를 무찌르고 정권을 잡았단다. 얼마 전에 읽은 김탁환의 <혁명>에서 보았던 것처럼 개혁에 대해 정몽주와 정도전이 견해 차가 심했고, 이성계의 아들 셋째 아들 이방원이 독단으로 정몽주를 죽이면서 정몽주의 견해마저 같이 없애버렸단다. 그래서 결국 이성계는 조선을 세웠으나, 이미 그의 나이는 57세였어. 당시 57세면 이미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나이였어. 그래서 왕세자를 세워야 하는데, 조선건국에 공이 크고 욕심도 많은 이방원을 세웠어야 분란이 없었을 텐데, 이성계는 자신이 사랑하는 둘째 부인의 아들이자, 이방원의 배다른 동생인 방석을 왕세자로 세웠단다. 이방원이 잔뜩 화가 나서 칼부림을 부렸고, 그의 동생들을 저 세상으로 보냈단다. 이성계는 그런 아들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이방원에 뜻에 따라 이방원의 형 이방과를 왕세자로 정했고, 이내 왕 자리를 이방과(정종)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왕의 자리에서 물러났단다. 2대 왕이 된 이방과도 이방원을 잘 알고 있어서, 방원 눈치만 2년 동안 보다가 이방원에게 왕을 물려주었단다. 그가 태종이야. 이방과는 왕을 이방원에게 물려주고 나서 19년이나 유유자적하며 살았다고 하니, 스트레스 받는 권력의 자리보다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이방원에 대해 한가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단다. 조선의 왕은 세습이 되는 것이라서 따로 과거 시험 같은 것을 볼 일이 없는데, 이방원은 조선이 되기 전 고려일 때 과거시험을 봐서 급제까지 했다고 하는구나. 조선시대 왕 중에 유일한 과거급제를 한 왕.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긴 했지만, 그리 정당한 왕자리라고는 볼 수 없었지. 조사의라는 사람이 난을 일으켰다가 실패했는데, 사실 이 조사의의 난은 왕에서 물러나 있던 이성계가 조정한 반란이었다고 하는구나. 아무튼, 자신의 소원이었던 왕이 된 이방원은 18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6조 직계제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였고, 자신이 왕위에 오르게 된 결정적 도구였던 사병을 없애서 반란을 사전에 방지했어. 그리고 외척을 탄압했는데, 아들인 세종의 장인어른 심온까지 죽였단다. 이런 일련의 정책들이 모두 왕권강화를 위한 길이었는데, 그렇게 강화된 왕권 하에서 다음 왕인 세종이 자신의 역량을 모두 발휘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많단다.

이방원은 셋째 아들 이도가 왕이 되었으니, 세종이란다. 그는 완전 일벌레였고, 책과 고기만 엄청 좋아했다는구나. 그에 대한 업적은 따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것 같구나. 세종의 다음 왕인 문종은 세자 시절부터 이미 많은 업적을 냈다고 하는구나. 세종 때 신무기인 신기전도 사실 문종이 세자 시절에 만든 것이라고 해. 그는 준비된 왕으로 세종을 이을 성군의 재목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왕위에 오른 지, 2년 만에 세상을 뜨고 말았단다. 그래서 그를 이어 12살 어린 나이에 왕에 오른 단종이었어. 그리고 그의 주변에는 왕이 되고 싶어 병이 난 단종의 친삼촌 수양대군(세조)이 있었어. 황보인, 김종서 등 충신들이 단종 곁을 지키고 있었는데, 수양대군의 잔인함이 그렇게 클 것을 예상못했는지, 수양대군의 반란에 아무런 대비책없이 있다가 죽고 말았단다.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을 일으켜서 김종서, 황보인 등을 죽이고 권력을 빼앗았어. 그 이후 사육신과 생육신으로 부르는 충신들에 의해 단종복위운동이 이루어졌으나 모두 실패하고, 단종은 강원도 영월에 유배를 보내고, 결국 자살을 강요 받아 어린 나이에 죽었다고 하는구나. 궁궐 밖에서 태어났다고 하면 평범하고 행복한 삶으로 천수를 누렸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조카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세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예종은 몸이 좋지 않아 금방 죽고 말았단다. 예종 이후 13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늘 이가 성종이란다. 나이가 어린 왕을 대신해서 왕의 할머니인 정희왕후, 어머니 인수대비, 작은 어머니 안순왕후 등이 수렴정치를 했어. 궁내에 대비가 많게 되자, 그들을 위해서 따로 궁을 세웠다고 하는데 너희들도 가 본 적이 있는 창경궁이라고 하는구나. 성종이란 왕은 여자 문제가 복잡했어. 그래서 드라마 소재로도 많이 나오는 왕이야. 성종은 첫번째 부인이 일찍 죽게 되자, 윤씨를 중전으로 세웠어. 신분이 낮았던 윤씨가 중전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인수대비가 좋게 보았기 때문이래. 윤씨도 인수대비에게 잘 대했나봐. 그런데 중전에 된 윤씨는 본색을 드러내며, 질투의 화신으로 변했어. 성종의 얼굴을 할퀴었다고 하는 소문도 있었고, 그녀의 침실에서 비상과 독도 발견이 되었대. 결국 3년 만에 중전 자리에서 쫓겨나 폐비가 되었고, 사약까지 받아 죽게 되었단다. 당시 그의 아들 연산군은 어린 여섯살이었어. 이렇게 여자 문제가 복잡했지만, 성종은 오랜 기간 왕위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 업적도 냈다고 하는구나. 세조 때부터 시작한 경국대전을 완성하였대.

그리고 처음으로 사림파를 등용했대. 그들이 누구냐 하면… 고려말 급진사대부에 밀려난 온건사대부들이 있었는데, 급진사대부들이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조 건국시킬 때 그들은 지방으로 은신하여 제자를 키우고 지냈어. 그들이 사림파가 된 거야. 급진사대부들은 조선을 건국하는데 훈장을 만들 만한 공을 세웠다고 해서 훈구파로 불렀어. 훈구파들이 권력을 장악한 것이 조선초 정세였는데, 그런 훈구파들을 견제하기 위해 성종은 사림파를 등용하게 된 것이란다. 성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이는 연산군인데, 그는 2번의 사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나중에 엄마 폐비 윤씨의 진실을 알게 되고, 피의 복수를 하기도 했단다. 우리나라 왕 중에 최고의 폭군으로 알려져 있던 그는 결국 쿠데타를 통해 쫓겨나고 말았어. 

중종이 연산군이 물러난 왕위에 오르게 되었지. 중종을 반정을 통해 왕위에 올린 신하들이 일찍 세상을 떠나서, 중종은 국정 운영에 자문을 구할 사람이 필요했어. 그때 나타난 이가 급진적인 개혁가였던 사림파 조광조였단다. 조광조는 중종을 성군을 만들기 위해 혼신을 다했지만, 그것이 너무 급진적이고, 중종을 너무 지치게 했다고 하는구나. 성군이 되기에는 중종의 역량이 부족했다고 할까? 반대파가 슬슬 꼬드겨서 조광조를 내쫓게 만들었어, 그리고 서둘러 조광조에게 사약을 내리게 했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중종 자신도 그저 그런 왕으로 남게 되었지.

….

아빠가 메모를 한 부분은 여기까지란다. 이후 임진왜란도 있었고, 조선 후기 아빠가 조선 왕들 중에 가장 좋아하는 정조 이야기도 있고, 조선말 조선이 멸망해가는 그 순간들의 이야기도 이 책에 있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다른 책들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하자꾸나.

그리고 너희들도 나중에 좀 더 크면 역사에 대해 흥미를 느꼈으면 좋겠구나. 그래서 아빠랑 역사에 관한 이야기도 서로 나누었으면 좋겠어. 뭐, 그렇지 않아도 되고~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