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그러다 어느 날 우리는 어느 페이지의 낱말을 알아보고 큰소리로 읽는다. 그 순간 신()의 일부가 사라져가고 낙원에 첫 균열이 간다. 그렇게 또 다른 낱말이 이어진다. 온전했던 운주는 이제 이어지는 문장들에 불과하고 백지 속 유실된 땅들에 지나지 않게 된다. 아이는 학교에 가고, 학생의 신분이 된다. 그런데 이 유실에는 실제로 엄청난 행복이 존재한다. 글을 읽는 첫 경험. 책의 한 페이지를 해독하고 어렴풋한 형체들을 감지할 수 있게 된 첫 경험. 그것은 행복을 넘어서는, 정확히 말해 기쁨이라고 할 만한 무엇이다. 기쁨과 공포라 할 만한 무엇. 기쁨을 어김없이 공포를 수반하고 책들은 언제나 애도를 수반하기 마련이니까.


(14-15)

그런데 때론 어떤 사람들에게, 더 적은 수의, 훨씬 적은 수의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다름 아닌 독자들이다. 가던 길을 남들이 포기하는 여덟 살 혹은 아홉 살 무렵에 이 길로 들어서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독서의 길로 뛰어드는 그들은 언제까지나 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그 길이 끝이 없음을 알고 기뻐한다. 기쁨과 공포를 동시에 느낀다. 그들은 출발점에, 첫경험에 집착한다. 결코 넘어설 수 없는 경험이다. 그들은 언제나 그 지점에 머무르며 삶이 다해가는 순간까지 책을 읽는다. 고독을 발견했던, 그러니까 언어들의 고도고가 영혼들의 고독을 발견했던 첫 경험의 언저리에 머문다. 그들은 황홀감에 취해 세상에서 물러나 이 고독을 향해 간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고독의 골은 깊어진다. 더 많이 많을수록 아는 건 점점 더 적어진다. 이 사람들이 작가와 서점, 출판사, 인쇄소를 먹여 살린다.


(26-27)

그렇다. 눈이다. 당신의 눈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그 두 눈은 이제 우는 일 말고는 쓸모가 없다. 울지 않을 때는 책을 읽는다. 어느 날 당신은 릴케의 한 페이지를 읽는다. 다른 한 페이지, 또 한 페이지. 그러다 잉크의 새장을 여는 순간 영혼의 새들이 우르르 당신에게 돌아온다. 실패한 자살이 모두 그렇듯 당신의 자살도 성공을 거둔 것이다. 당신이 잃은 건 생명보다 더한 것이었다. , 투명한 말의 맛, 참된 말에 대한 사랑, 그 모두를 잃은 것이다. 말 앞에서 당신은 먹을 것을 앞에 둔 아픈 아이 같았었다. 그런데 릴케가 당신에게 먹을 것을 다시 준다. 한 편의 시, 이어지는 또 한 편의 시, 한 편의 이미지, 또 한 편의 이미지. 헐벗은 말과 함께 온전한 사실이 돌아온다. 진실과 함께 온전한 영혼이 돌아온다.


(35-36)

발작 상태는 세상의 본성이다. 전쟁이 잇따르고 발명도 이어진다. 총매상고가 집계되면 자살률도 집계되며, 기아의 저편에는 달콤한 환락이 자리한다. 세상은 그것들 모두의 잡탕이다. 그것들이 모두 함께한다. 사랑만 예외이다. 사랑은 그 무엇과도 함께하지 않는다. 사랑은 아무 데도 없다. 전시(戰時)에 부족한 식량처럼, 죽어가는 사람의 짧은 호흡처럼, 사랑도 모자란다. 놀이에 몰두해 있는 아이에게 시간이 모자라듯 사랑도 그렇게 부족하다. 사랑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정말로 많은 시간이 필요해서, 우리 안에 자리한 사랑의 욕구를 채워주기엔 시간은 늘 역부족이다. 우리 안에 자리한 목소리와 피의 요구, 창공 같은 그 목소리에 흐르는 우윳빛 피의 요구를 채워주기에는 말이다. 혜성 같은 사랑은 영원히 단 한 번 우리의 심장을 스친다. 밤낮없이 지켜야 그걸 목격할 수 있다. 오랫동안, 오랫동안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사랑의 본성이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이 사실 이야말로 사랑이 갖춘 위엄이자, 사랑의 놀라운 특성이다. 소음과 부산함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져, 온갖 발작으로부터도 훌쩍 떨어져, 차분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한다. 사랑은, 그리고 사랑의 가볍고 경쾌한 자각이자 더없이 겸허한 형상이며 각성한 얼굴인 시(), 심오한 기다림이고 달콤한 기다림이다. 부드럽고도 오묘하게 반짝이는 희망이다.


(38-39)

피로에 절은 사람들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그들은 무언가를 쉴 새 없이 하는 사람들이다. 휴식과 침묵. 사랑이 내면으로 파고들 여지가 없는 사람들이다. 피로에 절은 사람들은 장사를 하고, 집을 짓고, 경력을 쌓는다. 피로를 피하기 위해 그런 일들을 하지만 그러면서 오히려 피로에 빠진다. 그들의 시간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일을 더 많이 할수록 점점 더 적게 하는 꼴이 된다. 그들의 삶에는 삶이 부족하다. 자신과 자신 사이에 유리벽이 존재한다. 그들은 멈추기 않고 유리벽을 따라 걷는다. 피로는 그들의 용모와 손과 말에서 드러나 보인다. 그들에게 피로는 일종의 향수이며 불가능한 욕망과도 같다. 그들은 페르스발처럼, 어머니를 떠난 이 젊은 남자처럼, 들판과 강을, 강과 숲을, 산과 들판을 오간다.


(47)

위대한 책은 그 책이 시작되기 훨씬 이전에 시작된다. 어떤 책이 위대하다는 건, 그 책에서 점차 드러나 보이는 절망의 위대함을 의미한다. 책 위에 무겁게 드리워져 책이 태어나지 못하도록 한참을 가로막는 그 모든 어둠을 의미한다. 책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 책이 있기 전, 글이 써지기도 전에 모든 것이 시작된다. 즉 아버지의 떠도는 그림자가 있고, 번잡한 날들 속에서 첫 시구가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라신과 그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담갈색 밤이 있다. 사방에서 꿈은 짓밟히고, 자신과 지나치게 밀착되어 글쓰기는 불가능해진다. 불만에 찬 왕, 폭력적인 아버지로 인해 갈가리 찢긴 유년기에 너무 밀착된 상태로는 글쓰기가 불가능하다.


(54-55)

당신은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이제 이 두 사람에 대해서도 라신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는 당신은 제3의 문제에 골몰한다. 부부란 대체 뭘까. 열정은 뭐고 사랑은 뭘까. 당신은 머릿속으로 게임을 벌이며 하나의 규정을 마련한다. 집에 다다르기 전, 그러니까 5분 안에 해답을 찾아낼 것. 결국 게임 종료 직전에 당신은 답을 발견한다. 부부란 김빠진 삶의 장이고, 열정은 분열된 삶의 장이다. 그런데 사랑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이제 당신은 당신의 집 문 앞에 선 채로 웃음을 터뜨린다. 이 참담한 발견에, 이 모든 한심한 정의에 경의를 표한다. 당신은 17세기와 20세기를 싸잡아 비웃고, 사랑과 세상을 함께 품을 수 없는 이 영원한 무능을 비웃는다. 망가지가 쉬운 천사들과 튼튼한 개들을 두고 너무 한탄하지 않으려고 웃는다.


(108-109)

우리는 사랑을 하듯 책을 읽는다. 사랑에 빠지듯 책 속으로 들어간다. 희망을 품고, 조바심을 낸다. 단 하나의 몸 안에서 수면을 찾고, 단 하나의 문장 속에서 침묵에 가닿겠다는, 그런 욕구의 부추김을 받으며, 그런 욕구의 물리칠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른다. 조바심을 내며, 희망을 품는다. 그러다 때로 무슨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이 목소리처럼, 일체의 조바심을 몰아내고 일체의 희망에 딴죽을 거는 무언가다. 그것은 위로하며 하지 않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유혹하지 않고 황홀감을 준다. 자체 안에 자신의 종말과 죽음의 슬픔, 어둠을 품고 있는 무언가다. 스스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그것에 귀 기울이는 자는 이제 자신이 피신할 데도, 의지할 데도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는 자신에게서 해방되어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목소리가 어두워질수록 우린 더 분명히 보게 된다. 목소리가 격해질수록 숨쉬기가 한결 쉬어진다. 우린 일체의 문학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온전히 성스러움에 바싹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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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4)

완전한 진실에 접하게 되는 것은 인간에게 드문, 아주 드문 일이다. 뭔가 약간의 위장이나 약간의 오해가 개입되지 않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렇지만 이번처럼 행동에 대해서 오해했을지언정 감정에 대해서는 오해하지 않은 그런 경우라면, 오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나이틀리 씨가 아무리 에마가 가슴으로 후회하고 있다고 여긴들, 또 그의 마음을 기꺼이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다고 여긴들 에마의 실제 마음보다 더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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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우리는 산신령과 죽어버린 동무에게 술 대신 한잔씩의 물을 바쳐 죽은 짐승의 넋이 편히 쉬기를 빌고, 해질 무렵에 시체를 묻었다. 호박 크기만한 무덤이 다 만들어졌을 때, 나는 무척 슬픔을 느꼈다. 거북은 오랜 생명을 가지며 수천 년이나 산다고 한다. 그러나 희귀한 동물이 우리 집에서 죽었을 때에는 아마 좋은 것을 뜻하지는 않으리라.

 

(82)

그렇지, 원님께서 몸소 나와서 그렇게 무기도 없이 적에게 대했더라면 그야 옳았을 것이야말고. 아마 다른 원님 같았더라면 그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 원님은 무척 겁쟁이였거든. 유감스럽게도 그건 원님이 아니라 그 손자였더란 말이야. 바로 김삿갓이란 거야. 그렇고말고. 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지? 그렇지만 참으로 원님의 손자였다는 거야. ‘적군을 물리치자!’고 그는 조부에게 요구했으나 조부는 들은 체도 않고 적군에게 항복해버렸지 그만...... 그러므로 적군은 계속해서 딴 고을을 무찔렀고 김삿갓은 임금에게 충성하였으므로 조부와 적대하여 도모하지 않고 그만 걸인과 방랑의 시인이 되어버렸지.”

 

(89)

언제든 하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거든 조심스럽게 들어라. 그것은 아주 높은 학문이다.”

제가 그걸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의 영혼은 언제나 맑아야 한다.”

 

(178)

과거를 너무 생각지 마라.”

끝으로 어머니는 말하였다.

네가 자주 말한 것처럼 시대가 변하였다. 과거는 새 문화에 앞서 갔다. 새 문화는 자주 분수를 모른다. 그러나 네가 그것에서 무엇을 배우려고 하든지 그것이 생소하리라는 것을 미리 알아야 하며, 또 언제나 온화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195)

그런 고귀한 한방 의원은 병자의 신체를 거의 만지지조차 않았다. 그들은 등을 두드리지도 않았고, 내부 기관을 청진하지도 않았다. 다만 병자의 얼굴을 보았고 병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조심스레 듣고는 맥을 짚었다. 그러고는 처방을 썼고 처방에 따라 조수가 약을 곧 준비하였다. 조제실에는 모든 필요한 약초며 뿌리며 구근이 보관되어 있었고, 거기에서 환약이며 고약이며 즙을 의원의 감시 아래 만들 수 있게 해 두었다. 병자에게는 그 외 아무 일도 없었다. X-레이는 물론, 수술, 주사도 한방 의원은 몰랐다. 다만 특정한 병에만 여러 곳에 침을 놓았다. 이런 곳은 생명선 위에 있어야 했고 그 방해가 병이 된다고 했다.

 

(210-211)

어머지는 오랫동안 잠자코 걷다가 말하였다.

너는 자주 낙심하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충실히 너의 길을 걸어갔다. 나는 너를 무척 믿고 있단다. 용기를 내라! 너는 쉽사리 국경을 넘을 것이고, 또 결국에는 유럽에 갈 것이다. 이 에미 걱정은 말아라. 나는 네가 돌아오기를 조용히 기디라겠다. 세월은 그처럼 빨리 가니, 비록 우리가 다시 못 만나는 한이 있더라도 슬퍼 마라. 너는 나의 생활에 많고도 많은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 내 아들아, 이젠 너 혼자 가거라.”

 

(249)

너는 너무 말이 없고 너무 많이 생각한다.”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침묵은 오래된 동방에서는 아직도 미덕으로 인정되나, 서방에서는 그렇지가 않아. 여기선 그게 비사교성의 표시로, 심지어는 거만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언제나 이야기하는 데에 섞여 같이 대화를 나누어라. 무엇에 관한 이야기든 간에. 날씨나 기후나 또는 음식이나 옷에 이르기까지. 다른 사람과 사교하는 동안에는, 땅에서 살고 있는 이상엔 언제나 철학적인 일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는 없단다. 유럽 사람도 땅위에서 살고 있으며 즐겨 세상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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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옛날 옛날에

세상에 자비도 없고 희망도 없고 노래도 없던 때

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첫날 자신이 만든 밤이 너무 좋아서

그 밤을 덮고 자느라

세상에 인간은 있되

구원도 없고 기적도 없고 선의도 없다는 걸 잊었습니다.

첫날 자신이 만든 밤이 너무 좋아서.

자신이 만든 밤이 너무 편해서.

 

(185)

-그럼 엄마도 거기 가봤어?

어린 딸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미정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그러곤 뭔가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 진지하게 답했다.

-하지만 실제로 가본 사람들은 있지.

미정이 한 손으로 소리의 까맣고 반질거리는 정수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니 네가 어른이 된 미래에는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날 거야.

소리는 잠자코 있다 입을 열었다.

-엄마.

-?

-나 그거 가져도 돼?

-?

-미래라는 말.

 

(200)

지우가 이해하기로는 지우개는 뭔가를 없앨 뿐 아니라 있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대상에 빛을 드리우고 그림자를 입힐 때 꼭 필요했다. 그 대상이 사물이거나 인물, 심지어 신일 때조차 그랬다. 누구든 신의 얼굴을 그리기 위해서는 신의 얼굴을 조금 지워야 했다. ‘광원’. 즉 빛이 출발한 곳을 먼저 파악해 빛이 닿는 곳은 어둡게, 그렇지 않은 데는 밝게 표현하는 게 기본이었다.

 

(232)

하지만 삶은 이야기와 다를 테지. 언제고 성큼 다가와 우리의 뺨을 때릴 준비가 돼 있을 테지. 종이는 찢어지고 연필을 빼앗기는 일도 허다하겠지.’ 누군가 집을 떠나 변해서 돌아오는 이야기, 지우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알았다. 하지만 그 결말을 잘 믿지는 않았다. 누군가 빛나는 재능으로 고향을 떠나는 이야기, 재능이 구원이 되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에 몰입하고 주인공을 응원하면서도 그게 자신의 이야기라 여기지는 않았다.

 

(233)

우리 삶의 나침반 속 바늘이 미지의 자성을 향해 약하게 떨릴 때가 있는 것 같다고. 그런데 그런 것도 성장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리는데다 거의 표도 안 나는 그 정도의 변화도? 혹은 변화 없음도? 지우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지우는 그 과정에서 겪을 실망과 모욕을 포함해 이 모든 걸 어딘가 남겨둬야겠다 생각했다. 그런 뒤 저쪽 세계에서 혼자 외롭고 두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엄마와 용식에서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오래전 엄마가 자신에게 늘 그래줬듯이. 활짝 펼친 그림책 앞에서 한 손으로 자신의 눈썹을 꾹 누르며 빛이 나왔습니다. “낮이 생겼습니다.”라고 해주었듯이. 아무리 같은 줄거리가 되풀이돼도 항상 새롭게 놀라는 척해주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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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물리학자이면서 수학자이자 가톨릭 성직자이기도 한 르메트르는 강연장에서 당시의 물리학자들이 고민하기 시작한 우주의 진화라는 주제로 강연을 할 예정이었다. 흰색 깃이 달린 검은 사제복을 입은 그는 고해성사를 받으려는 듯이 연단에 올라 신학에 위험할 정도로 다가서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는 우주 전체가 아주 작은 원시 원자(primeval atom)”로부터 폭발하는 순간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27)

일반 언론은 그의 이론을 좋아했다. <모던 메커닉스>하나의 원자가 폭발하면서 우리 우주의 모든 태양과 행성이 등장했다고 경탄했다. 그러나 물리학자에게는 그런 아이디어가 그저 터무니없고, 가증스러운 것이었다. 캐나다의 존 플라스켓은 그런 주장을 어떤 근거도 없이 겆잡을 수 없게 되어버린 추론의 사례라고 비판했다. 르메트르의 옛 스승인 에딩턴도 그것을 혐오스럽다고 했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그에게도 르메트르의 주장은 지나친 것이었다. 그는 언제나 존재했던 우주를 믿고 싶어했다.

 

(44)

반물질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양전자가 생각보다 익숙한 입자라는 사실이 흥미로울 것이다. 우리 몸에는 신경 신호를 방출하는 등의 역할을 하는 분자에 비록 적은 양이기는 하지만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방사성 포타슘이 들어 있다. 그런 포타슘 원자 중에서 약 0.001퍼센트가 매일 붕괴하면서 양전자를 방출한다. 체중이 약 70킬로그램인 사람의 몸에서는 하루에 거의 4,000개의 양전자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양전자는 오래 존재하지 않는다. 양전자는 재빠르게 전자를 만나서 붕괴하고, 그 흔적으로 작은 방사선을 남긴다.

 

(58)

비금까지 과학의 역사에서 우리가 관찰을 통해서 알아낸 모든 사실에 따르면, 우리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물질은 빈 공간 이외에 전자, 쿼크, 글루온이라는 단 세 가지 기본적인 입자로만 이루어져 있다. 질량이 없는 힘 입자인 글루온은 쿼크들을 서로 달라붙게 해서 양성자와 중성자를 만들도록 한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30,000,000,000,000,000,000,000,000,000(30옥틸리언)개의 전자와 더 많은 수의 쿼크, 그리고 쿼크들을 서로 달라붙도록 해주는 수많은 글루온의 집합이다.

 

(67-68)

페인의 발견은 별이 어떻게 활동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별이 대체로 수소와 헬륨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연구자들은 별이 어떤 연료를 태우느냐는 또 하나의 오래된 수수께끼도 풀 수 있게 되었다. 연구자들은 압력이 높은 별의 내부에서는 양성자가 1개인 수소 원자가 융합해서 양성자가 2개인 헬륨이 되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태양이 열과 빛을 내는 방법이다. 페인 덕분에 과학자들은 새로운 이해를 근거를 결국 더 무거운 원소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신비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답은 별의 내부에 있었다.

 

(90-91)

대체로 철로 되어 있는 우리 행성 중심부는 바깥 부분이 녹아 있었기 때문에 자전하는 지구와 함께 회전한다. 그 속에서 흐르는 전류가 지구 주위에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거대한 자기장을 만든다. 대기권 바깥까지 확장되는 거대한 힘 장이 강한 에너지를 가진 우주선(cosmic ray)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 그런 힘 장이 없었다면 우리의 DNA는 작은 조작으로 부서졌을 것이다. 지구 자기장은 지구의 대기를 잘라내서 우주로 날려보낼 수 있는 또다른 위험 요소인 태양에서 오는 (주로 전자와 양성자로 구성된) 태양풍도 막아준다. 화성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 그러나 크기가 너무 작은 화성의 자기장은 태양풍 입자의 충돌을 막아줄 정도로 강하지 못하다. 그래서 화성의 대기는 우주 공간으로 날아갔다.“ 지구의 초기에 융용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지구는 자기 보호막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재앙이 역설적으로 우리에게는 행운이었다.

 

(107)

무엇보다도 물은 루이의 분자가 서로 만나고 뒤섞이는 우리 몸속의 바다에 해당하는 매질(媒質)이다. 역설적으로 그런 일은 물이 심한 약골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물 분자 사이의 결합은 아주 쉽게 끊어진다. 물 분자는 2개의 너그러운 수소 원자가 1개의 산소 원자에 불평등하게 결합해서 만들어진다. 더 무거운 산소는 가진 것을 너그럽게 나누지 않는다. 산소는 각각의 수소와 공유하는 전자를 자신에게 좀더 가까이 끌어당겨서 산소 쪽에는 약간의 음전하가 생기고, 수소 쪽에는 약간의 양전하가 생기게 만든다. 이웃한 음전하가 생기고, 수소 쪽에는 약간의 양전하가 생기게 만든다. 이웃한 분자의 산소와 수소 원자들이 가진 전하에서 내타나는 작은 차이가 수소결합이라고 부르는 약한 연합을 만들어서 액체의 물 분자가 서로 달라붙게 해준다.

 

(136)

우리 몸에 있는 지방과 탄수화물은 오로지 탄소, 수소, 산소로 만들어진 분자 사슬이다. 단백질은 탄소, 수소, 산소, 질소, 황으로 만들어지고 DNA는 탄소, 수소, 산소, 질소, 인으로 만들어진다. 6종의 원소는 우리 몸에 있는 모든 것의 거의 99퍼센트를 차지한다. 몸무게가 150파운드(68킬로그램)인 사람의 몸에는 산소 94파운드, 탄소 35파운드, 수소 15파운드, 질소 4파운드, 인 거의 2파운드, 그리고 황 0.5파운드가 있다.

그 종의 원소는 또한 우연히도 우주에서 가장 흔한 원소들이다.

 

(186)

대체로 증거가 너무 적어서 우리의 가장 오랜 세포 조상이 정확하게 어디에서 어떻게 등장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지구의 생명이 화성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우리 행성에서 왔는지, 특별한 행운이었는지, 생명이 우주 전체에 흔하게 존재할 정도로 그런 과정이 필연적인지에 대해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생명의 진화가 빨랐을까, 아니면 느렸을까? 우리는 생명 2.0일까? 초기 생명체 또는 생명 형태 중 하나(또는 여럿)가 우리가 조장이 지구를 식민지화하기 수백만 년 전의 무시무시한 충돌로 전멸했을까? 우리는 그 답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지구의 구석구석에서 발견되는 모든 생명이 하나의 혈통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확신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이 독특한 기본 생화학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DNARNA에 똑같은 뉴클레오타이드와 우리 단백질에 똑같은 20종의 아미노산, 에너지를 생성하기 위해서 ATP를 사용하는 똑같은 방법을 가지고 있다.

 

(256)

광합성은 20억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구를 오로지 단세포 유기체만 서식하는 대륙과 바다를 가진 세계에서 온갖 종류의 활기찬 생명체로 가득한 녹색의 행성으로 변환시켰다. 광합성이 가져다준 변화의 규모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남세균이 배출하는 독성 산소가 지구를 녹슬게 하고, 남세균의 경쟁자를 죽이거나 쫓아냈다. 남세균은 널리 퍼졌고, 엄청난 양의 로켓 연료인 산소를 대기 중에 배출했다. 갑자기 미토콘드리아로 가득 채워진 새로운 고성능의 세포가 등장했다. 그런 세포는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었고, 더 많은 유전자와 단백질을 만들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생명은 폭발적으로 복잡해졌다. 그런 세포 중 일부는 광합성 공장인 엽록체의 도움으로 산소의 농도를 더욱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후에는 바다에서 사나운 포식자와 눈부신 생태계가 등장했고, 광합성 식물이 대륙을 녹색으로 바꿔놓기 시작했다.

 

(286-287)

사실 우리가 광합성을 통해서 우리 스스로 식량을 만들지 않는 이유를 알고 잎다면, 큰 나무를 살펴보기만 하면 된다. 광합성을 하는 엽록체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생성한다면, 엽록체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생산한다면, 엽록체가 나무가 우러진 면적만큼이나 넓은 공간을 차지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엽록체로 피부로 모든 채운다고 하더라도 뛰거나, 먹이를 쫓아다니거나, 사냥감을 잡는 것은 물론이고 단순히 걸어 다니기에 필요한 동력도 얻지 못할 것이다. 식물이나 다른 동물을 먹으면 농출된 에너지를 쉽게 얻을 수 있다. 수렵과 채취를 하던 우리의 조상이 다음 끼니를 찾으러 수 킬로미터를 돌아다닐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우리가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식물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만약 우리가 사라지더라도 식물은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식물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몇 주일이나 몇 달 이내에 지구에서 사라질 것이다.

 

(366)

완전히 성장한 후에도 지친 몸은 쉴 수 없다. 우리의 DNA는 여전히 끊임없이 움직인다(그리고 DNA의 양은 대단히 많다. 수조 개의 세포에 들어 있는 모든 DNA 가닥을 한 줄로 늘어놓으면 태양계 지름의 두 배에 달한다). 그중 일부는 유전자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풀어진다. 지금도 우리 몸의 모든 세포에서는 수천 개의 유전자에 해당하는 RNA 복사본이 만들어지고 있다. 달리기를 하거나, 역기를 들거나, 음식을 먹거나, 병에 걸리거나,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마다 새로운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가 활성화된다.

 

(384-385)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에 상관없이, 미첼과 보이어의 메커니즘은 미토콘드리아가 어떻게 진화를 강력하게 촉진했는지 설명해준다. 린 마굴리스가 주장했듯이, 한 종류의 생물이 에너지를 특별히 효율적으로 생산하게 되기까지는 미생물이 지구를 지배했다. 그런 미생물 중 한 종이 다른 세포에 의해서 포획되었고, 그 후손은 가축화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미토콘드리아였고, 그 나머지는 역사가 되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역사이다. 평균적으로 우리 몸의 세포 1개에는 1,000개에서 1만 개의 미토콘드리아가 들어 있다. 심장 근육 세포의 경우에는 미토콘드리아가 세포 부피의 약 35퍼센트를 차지한다. 미토콘드리아는 우리 세포 하나가 박테리아보다 수만 배나 더 많은 에너지를 낼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초강력 카페인의 도움으로 DNA는 리보솜이 더 많은 단백질과 효소를 생산하도록 하고, 세포를 활발한 활동의 장으로 만들 수 있게 해준다. 우리 몸에서는 매 초마다 과거의 박테리아 수천조 개가 세포막을 가로질러 양성자를 펴내서 ATP를 만드는 회전형 모터에 필요한 전기를 생산한다. 우리는 1분에 약 3분의 2파인트의 산소를 흡입해서 그런 모터를 계속 돌아가게 하고, 그 덕분에 미토콘드리아는 100와트 전구만큼의 에너지를 생성한다.

 

(392)

세포가 지나치게 손상되어 더 이상 복구할 수 없게 되면 어떨까? 그런 경우에 대한 대책도 마련되어 있다. 세포 전체를 파괴해서, 재활용할 수 있는 조작으로 잘게 쪼개 폐기하고 완전히 새로운 세포를 만든다. 평균적으로 우리는 10년마다 세포를 교체한다. 하루에 3,300억 개의 세포를 갈아치우는 셈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작동하는 세포가 더 자주 교체된다. 강한 산()에 노출되는 내장의 세포는 손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커서 계획적인 자살을 통해 이틀에서 나흘마다 새로운 세포로 교체된다. 긁히거나 자외선에 노출되는 피부 세포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교체된다. 혈류를 따라 돌아다니는 적혈구는 120일마다 교체된다. 매초마다 거의 350만 개의 적혈구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뼈와 같은 곳에 있는 다른 세포는 10년에 한 번 정도로 그 빈도가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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