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하디자는 아직도 안 돌아왔어. 내일, 아니면 아마 모레 도착할 거야. 빈손으로, 난 항상 이 테라스로 돌아와, 발작 후 숨을 고르기 위해, 테라스에선 내 튜브가 훨씬 깊은 숨을 들이쉬어, 수영 선수처럼 난 숨을 크게 들이켜, 이 높이에서 나는 다시 살아난 기분이 들어. , 내 눈을 통해, 건물들 귀에 있는 바다를. 네 영원의 정원에서 바다가 안 보일 테지. 바다는 우아함 그 자체야, 그치? 그 깊은 목소리는 과거에서 와. 또 다른 삶을 살고 싶게 하거나, 바다처럼 다 옷을 벗고 싶게 만들지. 안 그러니? 제발 나 대신 그 냄새를 맡아 줘. 오 신이여! 지금 당장 바다로 달려가 그 세 알의 약 이야기를 잊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내놓을 텐데! 언젠가 여기 숨어서 포도주 한 잔을 마시고 있는데 옆집의 이맘이 말하더라. ‘운영의 깃펜은 미치광이와 어린이, 그리고 잠자는 이의 행위는 기록하지 않는다고. 아마 내가 1999 12 31일 밤 저지른 일도 기록하지 않았겠지? 내가 자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난 어린아이였으니까, 그치? 내 행위를 따지고 들거나 날 심판할 사람은 아무도 djqtdji . 그런데 왜 이 짐이 내 가슴을 짓누르는 걸까? 왜냐하면 신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니까, 그의 깃펜으로도, 그의 희생 제물들도.


(149)

이 전쟁의 목적은 무엇이었나? 난 이렇게 대답했어. “이십 년이 지난 지금도 모른다.” 아마도 역사가 우리에게 주지 않은 천국에 살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아니면 굶주린 신에게 먹을 걸 바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우리 어머니들의 자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식민 통치자들이 떠난 이후 땅과 농장과 살림살이를 나누기 위해서였을까. 이십 년이 지나도록 아무도 우리에게 그것을 설명해 주지 않았어. “이 전쟁은 얼마나 지속되었는가?” 시험지가 물었어. 십 년, 아니면 거의 그만큼. 1990년부터 2000년까지. 불행은 날짜를 지워버리고, 절대로 못 박지 못하게 하지.


(158)

, 작은 붉은 별아. 기억이란 게 좀 그래. 들여다보고 자세히 살펴보면, 희미해지기 시작하지. 너의 것이 아닌 다른 것에서 이야기를 훔쳐 오기도 하고, 마치 세물리나를 먹은 듯 점점 더 부풀어 오르기도 해. 혹은 꺼져 가는데, 그 소멸을 막기 위해 무엇을 지어 내야 할지 넌 모르지. 흙길을 달리다 보면, 발자국들이 다 뒤섞여, 살해자, 구해 준 자, 네 부모, 네 친척들, 그리고 너의 첫 번째 어머니, 그리고 두 번째 어머니의 발자국들 모두, 야자수 가지로 뭘 해야 할지 난 도무지 모르겠어. 사람들은 내가 뭔가 하길 바래. 흐릿하게 지우고, 비켜 가고, 그 거대한 나뭇가지를 던지고 웃음을 지으면서, 한 손은 내 목구멍에 대고 피를 멈추게 하고 또 한 손은 언니 목에 대라고? 웃으면서 나뭇가지를 보여 주고, 전쟁 여걸이 된 걸 자랑스러워하고 기뻐하라고? 한데, 어떤 전쟁? 우리 반에서 그 늙은 영웅은 한두 번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좀 화가 난 것 같았어. 그자 코 바로 밑에다 내 괴물 같은 얼굴을 들이대니 말이야. 이어 그는 막 태어난 사람처럼 하얀 이를 과하게 드러내고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갔어.


(185)

겨울철 두 마을 사이 어딘가에 파묻힌 물처럼 난 얼어 붙었어. 만일 내가 눈을 뜨면 도살자는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그의 칼날이 아직 나를 완전히 관통하지 않은 걸 알게 될 거야. 나는 멀리서 벌어진 축제들을 떠올려. 그리고 멀리서, 엄만 또 노래를 해. 멈췄다가, 밤 속에 오래된 탄식을 다시 이어가고 있어. 호랑이 담요에선 오줌 냄새가 탄식을 다시 이어가고 있어. 호랑이 담요에선 오줌 냄새가 날 거고, 이 모든 것은 다 끝날 거야. 아랫마을에서는 한마디도 없어. 그 마을 주민들이 내 다리 위를 개미들처럼 기어 올라와. 목이 그어지면, 기다려야지. 슬슬 잠이 올 거야. 그래, 그럴 거야. 모든 감각이 다 기억나진 않지만, 이젠 손이 없다는 느낌이 들고 내 발은 있지도 않은 계단 위에서 움직여, 마을에서만 봤던 계단 위에 난 누워 있어, 비틀거리며. “삼십삼, 삼십사, 삼십오……” 만일 내가 눈을 뜬다면, 그는 날 향해 다시 올 거야. 만일 내가 눈을 감은 채 있다면? 언니가 그에게 자꾸 뭐라고 되풀이해 말해. 설명할 수 없는 물 속에 잠긴 목소리. 엄마가 노래하는 걸 멈춰.


(186-187)

1999 12 31일 밤, 이슬람 무장 단체의 카티바들은 우릴 처벌하기로 결정했어. ‘낯의 국가의 사람들도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그렇게 했지. 한 달 전, 우리 마을의 전기가 끊겼어. 테러리스트들이 폭탄을 만들고 부품을 용접하는데 쓸 전기를 그들에게 제공했다는 혐의 때문이었어. 우린 어둠과 차가운 태양 사이에 내버려졌어. 한겨울은 고통스러웠고, 우리는 돌처럼 굳어 각자의 침묵 속에 몸을 감싸고 있을 수밖에 없었어. 자매들, 아버지들, 어머니들, 불빛에 비쳐 붉은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칼, 이건 우리에게 겨누어진 무기가 뭐냐에 따라 이쪽저쪽을 오가는 놀이였어. 우린 긴 전쟁의 끝에 도달해 있었고, 나라 안에서는 시간도 감각도 뒤엉켜 널브러져 그들끼리 서로 죽였어. 어떤 이들은 신에, 신의 약속에 절망해서, 또 어떤 이들은 전우에 대한 배신과 의심으로 피폐해져서.


(231-232)

1990년의 전쟁에 대해 우리가 뭘 알고 있을까? 여기선 나 말고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해. 날짜 하나하나, 이름 하나하나, 나는 떠올려, , 전부는 아니지, 수만 명 전부는, 그래도 내 머릿속에는 불쌍한 실종자들이 정말 많이 들어 있어. 그게 진짜 이야기야. (그의 목소리가 판결처럼 진중해져.) 20만 명의 사망자가 있는데 그걸 다룬 책도, 영화도 없어. 목격자도 없대. 침묵뿐! 너도 아무 말 안 하는 거냐! 학교에서 내전에 대해 안 가르쳤지? 이걸 보는 사람들한테 넌 뭐라고 말해? (그는 내 튜브를 또 가리킨다.) , 그 전쟁이 시작됐을 때 스물다섯 살이었어. 그 전쟁은 바트나에 있는 우리 서점에서 시작됐어. 정말이야, 1992 3월에.


(244-245)

넌 알아? 넌 십 년간의 전쟁 동안 우리에게 벌어진 모든 일을 증명하는 유일한 증거, 그 놀라운 표식을 지니고 있잖아. 2000년대에 화해법이 시행되자 마키에서 내려온 테러리스트들은 자신들이 요리사라고 주쟁했어. 언론 앞에서 그 말을 반복하라고 그들에게 지시한 건 바로 국가였지. 그래야만 실제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입증된 자들만을 처벌하는 사면법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거든.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에서 그들은 모두 자신을 요리사라고 밝혔어. 슬픈 눈으로, 흰 손을 내려다보면서. 냄새 나는 수염과 굶주린 낯빛으로 요리사라는 직업에 대해 얘기했지만, 눈빛은 차가웠어. , 우리 아버지만 아직 살아 계셨다면! 아마 껄껄 웃음을 터뜨리셨을 거야. 늘 라마단 초승달처럼 가늘고 슬픔 어린 미속로밖에 웃지 못하던 분이었는데. (그래, 나의 후리, 그 달엔 해가 뜨는 순간부터 지는 순간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아. 달이 점점 가늘어지고 수척해지는 건 그래서야.) 아버지는 그 도깨비들을 이겼을 거야. 그들을 조롱하고 손가락질했을 거야. 산속의 아지트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참칭해 큰 소리로 명령하면서 아버지에게 손가락질했던 것처럼. 아버진 자랑스러우셨을 거야. (놀라던 목소리가 이젠 기쁨으로 변해 있어. 그러더니 한참을 침묵하네. , 그래, 널 죽이는 것도, 널 살게 하는 것도 내겐 괴롭다. 결정은 우리 언니가 할 거야. 우린 언니의 나라로 갈 거야, 땅속으로, 뼈와 기도가 있는 그곳으로.)


(304)

이제 그 화해랑 사면 투표 이후로, 개들은 대낮에도 버젓이 돌아다니고, 기도도 하고, 심지어 사람들을 깔보듯 훑어본다니까. , 그들이 전쟁에서 이긴 거야. 물론 군인들도 이겼어. 오직 죽은 사람들만 진 거야. 아무런 이유 없이 죽은 20만 명만 진 거야.


(309)

사람은 생애 첫날을 기억할까? 그 피를? 그 비명을? 배가 힘을 주고 밀어내는 수축 감각을? 그래, 난 기억한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시간까지 기억하는 행운을 가졌지. 그래, 내 얼어붙은 가슴 속에 품은 내 신비로운 비취야. 나는 알라의 두 가지 비밀, 오직 그분만이 답하실 수 있는 두 가지 비밀에 손이 닿는다. 나는 죽은 것도 살아 있는 것도 아니야. 거꾸로 뒤집힌 존재, 신비한 물고기야. 2000 1 1, 딱 떨어지는 그날에 태어났어. 그리고 바로 전날인 12 31일에 죽었다. 딸아, 맹세하건대, 쿠란에 기록된 어떤 예언자도 이렇게 두 날짜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할 순 없을 거다.


(375-376)

그 이른바 학살들에 대해 당신이 주장하는 것에 증거가 있나요? 없어. 그저 근거 없이 떠도는 말과 이야기, 그리고 나라의 안정을 위협하는 허황된 이야기들뿐이지. 당신의 책에 있는 것처럼. 게다가, 우리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확인해야 하지 않겠어요? 당신이 뭘 출판하고 서점에서 뭘 파는지. 요리책과 예언자에 대한 책들을 판다고 하던데. 거기까진 좋아요. 하지만 그 이상은 안 돼. 당신은 다시 좋은 시민, 바트나에서 존경받는 사람이 될 수 있어요.” 그러더니, 이 조롱꾼은 마치 가지 보고서를 마무리하듯 말했어. “당신 다리는, 사람들이 말해 준 바에 따르면, 오토바이 사고라고 하던데. 치료는 받고 있나요? 보험 처리를 하면 큰 수표 몇 장 받게 될 거예요. 내가 알아봐 줄 수도 있어요. 자선 차원에서.” 그는 턱을 홱 돌려 전하기 한 대를 가리켰어. 나는 그가 알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 난 그의 금시계를 응시했고, 그의 큰 손이 나에게 당장 이 사무실을 나가라는 신호를 보냈어. 그날 밤 나는 다리가 너무 아팠어. 썩은 이처럼 쑤셔 댔지. 나는 머릿속으로 그 다리가 내미는 자기 쪽 이야기와 싸워야 했어. 새벽이 되자 다리도 결국 내 논거에 굴복했지.


(453)

내 이름은 함라예요. 가끔은 솔직히 내 이름이 정말 그런가 의심스럽기도 해요. 여러 번의 삶과 죽음을 겪은 사람에게 얼굴 하나는 부족해요. 동생, 내가 바라는 건 이거예요. 우리를 위한 권리를 얻어 주는 거. 폭행당한 여자들, 아버지 없는 아이를 가진 여자들, 고발당한 여자들, 테러리스트로 불리는 여자들, 납치당한 여자들, 실종된 처녀들의 권리를…… 이제 내게 남은 명예는 단 하나, 바로 내 딸뿐이에요. 난 딸아이가 결혼 준비하는 걸 돕고, 그 아이가 행복하기를, 자식도 많이 낳길 바래요. 그 아이 결혼 결혼식에 참석해 눈물을 쏟지 않고 춤추고 싶어요. 가서 내 이야기를 해요. 올리브 나무에게, 돌에게, 길에게도 물어봐요. 날 와서 다시 찍어 줘요. 내 딸이 결혼할 때까지는 살고 싶어요. 내가 그 애 혼수품을 만들어 온 게 몇 년째예요. 그 아인 긴 핼렬과 수많은 여가수들의 노래 속에서 행복할 거예요. 가끔은 잘생긴 청년들이 우리 창문 밑을 지나가기도 해요.


(461)

네가 굳이 와서 숨 쉬고, 살고, 하루하루 날을 헤아리고 싶어 하는 이 나라에서, 여자는 큰 소리로 기도할 권리조차 없다. 애도하며 흐느끼는 소리도, 발꿈치로 인도 밟는 소리도 들려선 안 된다. 여자는 노래를 하거나 모스크에서 설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목소리는, 나의 오래된 달님아, 쾌락의 억눌린 비명과 금세 바로 잊히는 출산의 신음으로만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우리 안에서, 또 우리 위에서 벌거벗은 그 두 순간, 우리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언제나 남자들의 수치심 속에서 울려 퍼질 것이다.


(502)

아무 손도 대지 않은 진실의 가장자리에서, 나는 마침내 몸을 던질 때가 되었음을 느꼈다. 이번에는 내 속으로 잠수하듯 뛰어들어, 내 상처를 다시 열고, 꿰맨 자국을 뜯어야 했다. 그리고 내 미소속으로 뛰어들어, 그것이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알아내야 했다. 그래, 네가 내게 목소리를 되돌려줄 거야. 난 속으로 속삭였다. 나는 한 권의 책이야, 행복한 결말을, 아니 적어도 진실한 결말을 찾고 있는. 안 그러니? 이번에 나는 천 개의 인격이 되어 내 균열 속으로 뛰어들어, 내 안 깊은 곳으로 내려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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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꾸 재산을 지키고 싶어집니다. 그래야 나도, 내 가족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불안이 들어서요. 그런데 얄궂게도 남의 욕망은 탐욕 같고 내 것만 욕구처럼 느껴집니다. 기본욕구, 생존 욕구할 때 그런 작은 것으로요. 그런데 그곳에 생존이란 말을 붙여도 될까. 그런 건 좀 염치없지 않나 자책하다가도, 자본주의사회에서 모두에게 떳떳한 선이란 과연 어디까지일까 반문합니다. 얼마 전 남편이 내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잘살게 되면 남을 돕고 살자.” 그런데 여보, 우리가 잘살게 되면 우리가 잘살고 싶어지지 않을까? 그때도 이웃이 생각날까? 그저 약간의 선의와 교양으로 가끔 어딘가 기부하고, 진보 성향의 잡지를 구독하는 정도로 우리가 좋은 이웃이라 착각하며 살게 되지는 않을까? 그러자 한동안 피하고 싶었던 무겁고 부담스러운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말 그대로 그것.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그게 나라면, 이 시장에서 이익을 본 게 나라면, 지금도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었을까? 대놓고 기뻐하거나 자랑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깊은 안도감 정도는 느끼지 않았을까? 하고요.


(152-153)

꼭 연애 상대가 아니더라도 희주는 일단 만나면 기분 좋아지는 사람이었다. 많은 얘기를 나누고 헤어진 뒤 찝찝한 후회나 반추를 안 하게 만드는 사람. 상대에게 자신이 판별당하거나 수집당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사람. 근본은 따뜻하되 태도는 직장에서 진심이니 우정이니 하는 걸 바라는 것 또한 천진한 태도임을 알았지만, 살면서 일단 만나면 기분 좋아지는 사람은 뜻밖에 드물고, 있더라도 그 수가 점점 줄기 마련임을 깨달은 기태는 희주와의 인연을 귀하게 여겼다. 아니 사실 그거면 족하다 싶었다. “살맛난다 할 때 그 살맛이 이 살맛이구나장난치며 서로의 목이나 손등을 남발하고, 그러면서도 어느 땐 육체의 쇠락을 과장하며 서로를 늙은 배우자인 양 놀리고, 그러면 마치 노년의 남루와 공포가 줄기라도 할 것처럼 농담과 연민을 미리 당겨쓰고, 세상 무심하고 친밀하게 등과 두피에 난 여드름을 짜주고, 상처와 비밀을 나누고, 말을 아끼고, 오래 안고, 우리가 식물과 달리 똥도 싸고, 아름답지도 않고, 울기도 하는 존재임을 가여워하고 수긍해주는 정도라면, 그거면 충분하다고.


(163)

지수는 죽어도 좋은 칼에 죽고 싶었는데, 것도 환상이고 허영임을 알았다고 토로했다. ‘권력 투쟁의 장에서 좋은 죽음이 어디 있느냐, “그냥 죽음만 있는 거지하고 비장한 얼굴로 와인을 들이켰다.


(175-176)

사실 정신을 단속하는 일이라면 조금 자신 있었다. 나이들어도 세상 소식에 귀를 열어두고,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으면 주변에 크게 폐 끼치는 존재는 되지 않으리라 과신했다. 실제로 기태의 젊은 시절 꿈은 훌륭한 어른은 못 돼도 산뜻한 중년은 되는 거였다. 청결한 옷을 입고, 타인과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젊은 세대를 지지하고, 주변에 해가 되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 긴 시간이 지나 기태가 진심으로 놀란 건 자신이 어쩌면 그렇게 자신할 수 있었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기태는 자신을 둘러싼 좌표는 그대로되, ‘라는 점만 이동하리라 착각했었다. 점과 더불어 좌표도 같이 움직이는데다 다른 그래프와 충돌하며 곡선과 직선이 찌그러지고 휠 거라 예상 못한 까닭이었다. 물론 나이들어 좋은 점도 있었다. 젊은 시절 여기저기 빵가루처럼 지저분하게 흘리고 다닌 말과 마음들, 담백하지 못한 처신들, 쉽게 흥분하거나 화는 낸 뒤 엄습한 부끄러움 같은 건 이제 많이 줄었으니까. 경험이 많다는 건 경험을 해석했던 경험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냄새는, 헛구역질이나 트림은 해석이나 의지로 잘 막아지지가 않았다. 문제는 이제 겨우 시작이라는 거였다. 기태는 자신이 늙음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안다 믿었던 것조차 실은 아는 게 아니었음을 새삼 실감했다. 그러니 앞으로 남은 삶은 또 얼마나 혹독할까?


(231)

나는 뭐라 더 말을 못하고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 마나 한 말을 최대한 진심어리게 하는 것도 어른의 화법일 텐데, 누군가의 부고와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가 가진 표현의 한계와 상투성에 어쩔 줄 몰라했다. 상투성이 뭐 어때서, 세상에 삶만큼 죽음만큼 상투적인 게 또 어디 있다고. 반복의 무게에 머리 숙이는 게 결국 예의 아닌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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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나는 괴물을 잘 알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친족 성폭력, 부모의 방임, 심각한 폭행과 추행, 강간까지 온갖 종류의 폭력으로 고통받았다. 10대가 되어 제프리 엡스타인과 길레인 맥스웰을 만나기 전부터 나는 다른 소아성애자들에게 성착취를 당했고, 두 사람은 내 고통을 배가시켰다. 그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 그들은 부유하고 권력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를 빌려주었다. 나는 반복적으로 이용당하고 모욕당했으며, 목이 졸리거나 구타를 당해 피투성이가 되기도 했다. 나는 그들의 성노예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열아홉 번째 생일을 막 넘긴 무렵,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사람을 만났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2002년에 탈출했다.


(123-124)

소원을 빈다고 다 이루어진다면, 거지도 말을 탈 수 있겠네?”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만으로는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고, 그를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나는 그 생각이 좋다.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밀고 나갈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애핑거에게 감금되어 있던 시절의 나는 아무런 힘도 없었다. 나를 구하려고 했다가는 붙잡혀 체벌을 당하거나 그보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는 믿게 되었다. 오칼라에서만큼은, 내 소원이 정말로 그 말들처럼 사는 것이었음을, 창밖에 있던 말들은 내가 갖지 못했던 자유, 내가 간절히 원하는 자유 그 자체를 상징했다. 느긋하게 풀을 씹으면서도 위험의 기척을 놓치지 않으려 귀를 세우고 있던 말들을 바라보는 시간 속에서, 언젠가는 내 삶이 나아질지도 모른다고 감히 상상할 수 있었다.


(138-139)

알레시는 지시대로 차를 세웠고 차에서 내린 맥스웰이 내 뒤를 따라왔다. 그때는 몰랐지만 또다시 포식자가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다만 이번 포식자는 이전에 만났던 누구와도 달랐다. 아버지와 포리스트, 론 에핑거, 혹은 에핑거가 떠넘긴 남자와도 달랐다. 맥스웰은 최상위 포식자였다. 겉으로는 아름답고 침착하며 자신감이 넘쳐 보였지만, 속은 그만큼 탐욕스럽고 욕심도 많았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맥스웰의 매혹스러운 외면을 꿰뚫어 보았다고 말하고 싶다. 말처럼 본능적으로, 내게 얼마나 큰 위협이 되는 존재인지 알아챘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맥스웰에 대한 첫인상은 마러라고에서 만났던 다른 부유한 손님들을 처음 맞이할 때와 다르지 않았다. 나도 나중에 그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57-158)

세간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며 갈기갈기 파헤쳐진 내 삶의 한 대목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지나온 세월을 되풀이해 말하는 일은 하나도 유쾌하지 않다. 내가 저지른 과오와 내게 가해진 폭력을 곱씹는 과정은 고통스럽기만 하다. 게다가 벌어진 일들을 순서대로 낱낱이 기록하다 보면, 끔찍한 세부 사항들에 매몰되어 자칫 본질을 놓칠까 봐 두렵기도 하다. 분명 나는 성적으로 학대당했다. 내 육체는 나를 철저히 망가뜨리는 방식으로 이용당했다. 하지만 엡스타인과 맥스웰이 내게 가한 가장 잔인한 폭력은 육체가 아닌 정신을 향했다. 처음부터 두 사람은 나를 교묘히 조종하여 나 자신을 갉아먹는 행위에 가담시켰고, 끝내 현실 감각을 마비시켜 최소한의 방어 기제조차 작동하지 못하게 가로막았다. 애초에 나는 자신을 파멸로 몰아넣는 일에 공범이 되도록 철저히 길들여졌다. 두 사람이 내게 남긴 수많은 상처 중에서도, 강요된 공모야말로 가장 파괴적인 흉터였다.


(224)

마음속에는 또 다른 복잡한 감정들이 엉켜 있었다. 일곱 살 때와 마찬가지로, 열일곱 살이 된 나도 윗사람들한테 칭찬받고 싶어 했고 실제로 칭찬도 자주 들었다. 다른 남자들을 상대하러 나갔다가 돌아오면 돈만 건네받는 게 아니었다. 당시 내게 돈보다 간절했던 말도 함께 들었다. 엡스타인은 우리는 네가 자랑스럽다고 말했고, 수치심과 창피함이 한꺼번에 밀려오는데도 나는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만족이라고 여겼다. 이처럼 서로 어긋나는 감정이 한곳에 엉켜 새긴 매듭을 풀어내는 데는 수년이 걸렸다.


(254)

가혹 행위가 이어지던 와중에 엡스타인은 내게 브로드웨이 연극 <오페라의 유령> 관람권을 건넸다. 공연 관람은 생전 처음이었기에 화려한 무대 장치에 압도당하기도 했지만, 극중 유령의 모습에서 엡스타인이 겹쳐 보여 큰 충격을 받았다. 뛰어난 학자이나 마술사, 건축가, 발명가이면서 작곡가이기도 했던 유령은 일그러진 얼굴을 가지고 태어난 인물이었다. 유령이 납치한 소녀에게 억지로 웨딩드레스를 입히던 장면은 지금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소녀는 유령의 흉측한 겉모습이 아니라 유령의 내면에 도사린 본성이 두렵다고 털어놓았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노래 싱크 오브 미(Think of ms)’를 들을 때면, 나를 사실상 납치해 가둔 비틀린 괴물 엡스타인이 떠오른다


(384-385)

네덜란드는 당초 계획했던 목적지가 아니라고, <세서미 스트리트>의 작가 킹슬리는 다운증후군 아들을 낳은 뒤 집필한 에세이에서 아이를 낳는 것을 그렇게 비유한다.

“’나는 이탈리아에 가야 해요라고 당신은 항변합니다. 평생 이탈리아에 가기만을 꿈꿨으니까요. 하지만 계획은 바뀌었고, 이제 네덜란드는 당신이 머물러야 할 터전이 됩니다. 그렇게 당신은 수긍합니다. 중요한 점은 누군가 당신을 끔찍하거나 혐오스럽고 지저분한 곳으로 끌고 간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저 다른 장소일 뿐이에요. 네덜란드는 이탈리아보다 삶의 호흡이 느리고 화려함도 덜하지만, 풍차와 튤립, 그리고 렘브란트라는 대가가 존재합니다. 물론 주변 사람들은 이탈리아를 드나들 것이고, 그곳에서 얼마나 멋진 시간을 보냈는지 자랑을 늘어놓을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남은 평생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맞아요, 원래 거기로 가려고 했어요. 내가 계획했던 건 바로 그 여행이었죠.’ 그 고통은 절대로,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토록 간절하게 품어온 꿈을 잃었다는 건 아주, 아주 중대한 상실이기 때문이요.

하지만 만일 이탈리아에 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한탄하며 남은 인생을 보낸다면, 네덜란드가 가진 아주 특별하고도 사랑스러운 것들을 결코 마음껏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400)

평범한 여자 한 명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하지만 요세프버그 부녀와 이야기했던 것처럼, 남편과도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 앞에 나서는 일을 진지하게 상의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누군가의 딸들이 어떤 일을 견뎌야만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딸을 키우는 부모로서 우리가 그 비극 앞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 멘토였던 루스 메노어가 말 한 마리로 비영리 단체 빈세례모 센터를 일구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도 나 같은 이들을 위해 그런 터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이 잠든 뒤, 로비와 나는 잠들 때까지 서로의 두려움과 희망을 속삭이듯 주고받았다. 나를 짓밟은 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일에 이제는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확신이 뚜렷해졌다.


(403)

삶은 언제나처럼 흘러갔다. 이따금 뉴스나 텔레비전에서 낯익은 이름이나 얼굴을 마주칠 때가 있었다. 엡스타인과 맥스웰이 성적인 행위를 하라고 강요했던 수많은 유명 남성이 그곳에 불쑥 나타났다. 나를 직접 학대하지는 않았으나 분명히 만났던 저명인사의 사진을 신문에서 볼 때도 그에 못지않게 혼란스러웠다. 가령 빌 클린턴이 조지 W. 부시와 함께 지진 피해를 입은 아이티의 복구 작업을 지원하러 갔다는 뉴스가 나오면, 아득히 전생 같은 과거에 미국의 국군통수권자였던 이 남자를 만났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아 아찔해졌다.


(443-444)

그날 늦은 밤에 에드워즈와 나는 다시 포트로더데일로 날아갔고 나는 로비와 아이들 곁으로 돌아왔다. 성공적인 여정이었지만, 나는 뼈마디가 저릴 정도로 지쳐 있었다. 그 후 며칠 동안 로비는 내가 꼭 퇴행한 사람 같다고 말했다. 엡스타인과 맥스웰의 세계에 잠시 발을 들인 것만으로도, 마치 그들의 노예였을 때 가졌던 사고방식으로 되돌아간 듯 보였다는 것이다. 타이터스빌의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잠만 잤다. 로비의 말에 따르면 나는 자기나 아이들과 대화조차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고 한다. 나는 사과했지만, 사실 당시의 나는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조차 자각조차 못했다. 강해지고 투사가 되고 싶었지만, 내 안의 일부는 그 과정에 들어가는 엄청난 노력에 완전히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은 상태였으니까. 실제로 나는 이전의 매복 공격에서 체 회복되기도 전에 다시 전쟁터로 끌려나간 병사처럼, 심각한 정신적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454)

서른한 살이 된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싸우며 살아왔다. 분명 큰 진전이 있었지만, 가끔은 그동안의 치유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려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나는 휘몰아치는 허리케인 속의 집이 된 기분이었다. 폭풍해일이 너무 깊게 밀려들면,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외벽이 떨어져 나가 떠내려가는 그런 집 전체가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피해는 남는 법이고, 수리가 끝나기 전까지 집은 난장판일 수밖에 없다. 콜로라도로 향하는 길 위에서 한동안 내 상태가 딱 그랬다. 불행으로 점철된 난장판.


(469)

나는 정말 먼 길을 돌아 여기까지 왔다. 불과 13년 전만 해도, 나는 엡스타인과 맥스웰의 마수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도 모른 채 낯선 타국으로 끌려다니던 처지였다. 하지만 이제 나는 스스로 자유를 쟁취했을 뿐만 아니라 어느 때보다 단단한 의지를 다지게 되었다. 그저 세상에서 사라지기만을 바랐던 겁 많은 소녀는, 아제 가해자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신념의 상징으로 대중 앞에 선 강인한 여성이 되었다. 비방 세력이 부모의 자질을 운운하며 내 아이들까지 공격의 과녁으로 삼았을 때, 내 안의 분노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맹렬함으로 타올랐다.


(536)

그러던 중 트위터에서 누군가 미국 연방수사국이 초부유층과 권력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당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라는 추측성 글을 올렸고, 나는 이에 응답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만약 내가 갑작스럽게 죽는다면, 누구도 사고사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의사가 없음을 공개적으로 밝힙니다.”


(542-543)

실제로 엡스타인은 자해를 시도한 적이 있었음에도 자살 감시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한때는 수감실 동료가 있었지만, 사망 당일 밤에는 혼자 수감실을 쓰고 있었다. 엡스타인의 수감실에서 불과 15피트( 5미터) 떨어진 책상에 앉아 있던 간수 두 명은 밤 10 30분부터 아침 6 30분까지 30분 간격으로 순찰하며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간수들은 잠을 자거나 인터넷 서핑을 했고, 나중에 순찰을 마친 것처럼 기록지를 조작했다. 엡스타인의 자해 행위나, 음모론자들의 주장대로라면 엡스타인을 살해한 누군가의 움직임을 포착했을 보안 카메라는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다행히 작동 중이었던 다른 카메라들을 확인해보니 엡스타인이 사망한 밤에 해당 구역으로 들어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로써 자객이 몰래 침입했을 가능성은 배제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후 엡스타인의 동생이 고용한 법의학 전문의의 공식 부검 보고서로 상황은 반전됐다. 그는 엡스타인의 목 부위에서 발견된 골절과 연골 파손 흔적이 타살을 가리킨다는 결론을 내렸다.


(587)

얼마 지나지 않아 멜린다 프렌치 게이츠는 CBS 게일 킹과의 인터뷰에서, 27년간 함께한 남편 빌 게이츠와 이혼한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엡스타인과 남편의 관계였다고 밝혔다. 멜린다는 킹에게 빌이 제프리 엡스타인과 만나는 것이 싫었고, 그 점을 분명히 말했습니다라고 전하며, 본인 또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직접 보고 싶어서엡스타인을 딱 한 번만난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녀가 느낀 소감은 이러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부터 후회했습니다. 그는 혐오스러운 자였어요. 악의 화신 그 자체였죠. 피해 여성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621-622)

내가 사라지는 게 모두를 위하는 선택이야.’ 머릿속 목소리가 속삭였다. ‘로비와 아이들의 삶에 스트레스와 걱정거리만 안겨줄 뿐이잖아. 제프리와 길레인이 나에게 준 고통인데 왜 가족들까지 괴로워해야 해? 난 가족을 실망시켰어. 우리가족에겐 더 나은 엄마와 아내가 필요해. 내가 없어야 그들이 더 행복해질 거야.”


(635)

가슴 아픈 고백이지만, 그 많은 일을 겪고도 세상이 변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훨씬 더 많은 행동이 필요하다. 여전히 사람들은 엡스타인 사건을 그저 운 나쁘게 불거진 유례없는 일로 치부하려 든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그가 사냥한 피해자의 수가 워낙 막대해 독보적인 괴물처럼 보일 뿐, 그는 결코 유일한 존재가 아니다. 여성을 소모품처럼 여기고 함부로 다루는 그 오만한 시각은, 법망을 피할 수 있다고 믿는 권력자들 사이에서 너무나 흔하게 발견되는 현실이다. 그들 중 다수는 지금도 아무런 제약 없이 일상을 영위하며, 견고한 권력의 울타리 안에서 평온을 누리고 있다.


(641-642)

세상은 언제나 우리에게 착한 소녀가 되라고 강요한다. 내가 이 책을 쓰며 결코 하고 싶지 않았던 일은, 그 강요의 무게를 누군가에게, 특히 나와 같은 생존자들에게 덧씌우는 것이었다. 대가를 치르더라도 옳은 일을 택하는 이들을 경외하기에 그간 용기에 대해 수없이 이야기해왔지만, 이제는 분명히 말하고 싶다. 가해자를 지목하는 용기만큼이나 소중한 것은 바로 자신을 보호하는 일이다. 독자들은 내가 이 책에서 일부 가해자들의 실명을 언급하면서도, 나를 유린했던 남성들 모두를 밝히지는 않았다는 점을 눈치챘을 것이다. 여전히 이름을 모르는 이들도 있지만, 이름을 입 밖에 내는 것 자체가 두려운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엡스타인과 맥스웰 곁을 떠나기 직전 나를 무참히 짓밟았던 남자, 내가 진술서에서 전직 총리라 명명했던 그가 바로 그런 존재다. 나는 그의 이름을 알고, 그 또한 자신이 내게 저지른 만행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비록 세상 앞에서는 뻔뻔하게 모든 사실을 부인했을지라도 말이다. 나는 그가 두렵다. 이 책에 그의 이름을 올리는 순간, 그가 어떤 방식으로든 나를 해치려 들 거란 공포가 나를 짓누른다.


(645)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앤드루 왕자의 합의금이 지급됨에 따라, 나는 아직 걸음마 단계인 나의 재단 소어를 전문적인 조직으로 키워나가기 위한 길고 신중한 과정을 시작했다. ‘소어의 목표는 가해자 처벌, 피해자 보호, 그리고 범죄 예방에 집중하는 단체들을 지원함으로써 인신매매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나아가 대중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인신매매의 징후를 더 쉽게 포착할 수 있도록 돕고, 피해자들의 회복을 뒷받침하는 기금을 마련할 계획이다. 왕실에서 나온 그 돈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퍼뜨리는 데 쓰일 날을 간절히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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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강순희) 노무현 대통령 생각하면 유시민 작가 생각나고, 유시민 작가 생각하면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나요. 내가 구순 잔치에 노무현 대통령 초대하고 싶었어요. 돌아가셔서 못 하게 되었으니까, 문재인 대통령하고 유시민 작가 초대하려고 했어. 그랬는데 윤석열이 대통령 되는 바람에 구순 잔치를 안 했어요.


(88)

(강순희) 그 사람이 맨날 그랬어요. 사람은 살면서 선택을 잘해야 하는데 배우자를 잘 고르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나를 잘 만났다고 생각했는지, 내 의견을 무시하지 않았어요. 무시했으면 내가 가만있지도 않았겠지만, 남편 떠난 다음에 지인이 해준 이야기인데, 한번은 얘기를 하다 말고 일어서더래요. 무슨 약속 있냐고 하니까 아내를 만나기로 했다면서 휙 가버렸대요. 그때는 어이없었다 하더라고. 그 사람하고 이웃에 산 적이 있어요. 갈현동 살 때였는데 바로 길 건너편으로 이사온 거예요. 그 집에 놀러 갔을 때 남편이 과일을 포크로 찍어서 나한테 줬어요. 그걸 보고 다른 집 여자들이 남편한테 자가지 긁었나 봐. 남편들이 안 되겠다고, 우리더러 빨리 이사 가라고 우스개를 했지.


(109)

(강순희) 갔더니 남편이 그동안 어디 숨어 있었는지 말하라는 거예요. 난 남편이 어디 있었는지도 몰랐지만 집에 있었다고 했지. 그래야 숨겨준 사람한테 피해가 안 가니까. 그 사람들 지켜줘야 하잖아요. 집 어디에 있었냐고 묻기에 침대 밑하고 다락에 있었다고 했어. 자기들이 거기는 안 뒤진 걸 내가 알았거든. 그랬더니 왜 집에 없다고 했냐는 거야. 아니, 그럼 남편 여기 있다고 잡아가라고 하냐, 당신 같으면 그러겠냐고 했어. 그러니까 뭐라고 못 하지. 지난번에 꽥꽥 소리 질렀던 놈도 그땐 안 그러더라고. 그리고 내가 정보부 갈 때 선글라스만 낀 게 아니라 양장을 쫙 빼입고 갔어요. 내가 집에만 있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외출할 때 입을 만한 옷도 제법 있었고, 또 키가 커서 아무거나 입어도 옷이 태가 났어요. 구제품 사서 고쳐 입으면 외국에서 비행기 타고 막 온 것 같다고 사람들이 그랬어. 내가 나중에 옥바라지할 때도 옷 잘 입고 선글라스 끼고 다녔지. 이것들이 사람 무시하니까. 무슨, 못살아서 이북에서 왔다느니, 빨갱이라느니 어쩌니 하면서 얕잡아 보니까,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당당하게 하려고 그렇게 한 거예요.


(134-136)

(유시민) 그 호소문을 보면 좋겠다 싶어서 찾아봤어요.

우리들은 살고 싶습니다. 평화롭게 살고 싶습니다. 저희들은 10년 전에도 없었고 현재도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조작된 인혁당에 묶여 사형선고를 받은 피고인들의 아내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인혁당을 조작하여 북괴에 이롭게 하는 것은 무슨 법, 무슨 조에 해당하는지 만천하에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 부디 저희들의 남편을 정치 제물로 이용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 주십시오. 이름 없고, 힘없고, 보잘것없는 단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정치 제물로 삼는다면 그 제물 위에 피는 꽃은 무슨 꽃이 피더라도 향기 없는 꽃이요, 빛깔 없는 꽃이요, 생명력이 없는 꽃일 것입니다. 죽이고 난 다음에는 살릴 수가 없습니다. 이 절실한 호소를 모른 체 묵인함으로 저희들의 남편을 제물로 바치려 하는 자들과 같은 편에 서는 결과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중정에서는 저희 남편들을 사형을 시켜 마땅한 죄를 지었다고 합니다. 저희들은 아니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저 무시무시한, 온 권력을 다 가진 정보원들과 아무 힘없는 저희들과 누구의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물론 둘 다 믿을 수 없다고 하시는 것이 당연하고 옳은 자세일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다 못 믿겠으니 가만히 있자!’하는 것은 공정한 입장에 선 것이 아니라 정보원들과 같은 편에 서서 저희들이 남편을 죽이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또한 저희들이 원하는 공명정대한 재판을 죽이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또한 저희들이 원하는 공명정대한 재판을 하라고 하신다면 이는 저희들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야말로 다 못 믿겠으니 온 국민이 납득이 가는 공정한 재판을 하자 하는 가장 공정한 입장이며 국민의 권리며 의무를 다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러분! 권리와 의무를 포기하시지 마십시오. 만약 포기하신다면 8인의 생명을 죽이는 데 도움을 준 결과가 될 것입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살인자들의 편에 서게 되는 결과가 되리라 믿습니다. 저희들의 남편은 주교도 아니요, 변호사도 아니요, 시인도 아니요, 교수도 아니요, 목사도 아닙니다. 따라서 인혁당원도 결코 아닙니다. 이름 없고, 힘없고, 짓눌린, 선량한 대한민국의 한 국민입니다. 더 이상 저희는 사형이라는 몸서리쳐지는 말을 들을 기력이 없습니다. 피를 토하는 아픔과 절망을 의식하며 여러분 앞에 호소드리는 바입니다. 1974 12 5. 가족 일동.”


(160)

민복기(1913~2007)는 이완용의 사돈이자 자신도 일제 귀족 작위를 받았던 민병석의 아들로 경성에서 태어나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고 경성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다음 경성지방법원 판사가 되었다. 미군정청 법률심의국장을 거쳐 이승만 박정희 정부의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지검장, 대통령 비서관, 법무부 차관, 검찰총장, 법무부장관으로 승승장구하다가 1968년부터 10년 넘게 대법원장 자리를 지켰다. 두 번째 임기에 인혁당재건위 사건 상고를 기각해 사형에서 징역 15년까지 모든 피고인의 형을 확정했던 그는 1978년 정년퇴임하면서 내 재임 시의 공과는 후세의 역사가 심판할 것이라고 했다. 전두환의 국정자문회의 위원 위촉을 받아들였고 국정자문회의 위원직도 수행했던 민복기의 인생에 대한 평가는 이미 내려졌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부친과 나란히 올랐던 민복기의 이름은 대한민국이 존속하는 한 영원히 박정희가 자행한 사법살인의 하수인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당시 대법관은 민복기, 홍순엽, 이영섭, 주재황, 김영세, 민문기, 양병호, 이병호, 김윤행, 임항준, 한환진, 안병수, 이일규 등 13명이었으며 반대 의견을 낸 사람은 이일규 한 사람뿐이었다는 사실을 덧붙여둔다.


(170)

나 이젠 어디가서 당신을 만나겠나.

어디 가서 당신을 만나겠나.

아침에 뒤돌아 보며 헤어져

해지면 만나던 당신을

그리워 보고싶어 기다리다 반기던 나.

, 이젠 어디 가서 당신을 만나겠나.

지난 봄 무연이 끌려간 당신을

1년을 사무치는 그리움을 달래며

그래도 반갑게 만날 그 벅찬 행복을 꿈꾸며 기다려왔건만

, 이제 무슨 꿈을 꾸며 살아갈 것이며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을 당신을

, 어찌 그리워 참을 수 있겠는가.

내가 숨쉬고 움직이고 살아가는

모든 원동력은 오직 당신의 사랑이었는데

이제 당신이 없는 나에게 무슨 힘이 남아 있겠나.

! 여보! 놓지 않던 당신의 차디찬 여윈 손을

꼭 쥔채로 그 옆에 웃음 지으면 편히 눕고 싶소.

1975.4.18


(171)

저 구름 넘어 아득한 곳에 당신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면

, 당신을 만나기 위해 남은 여생을

가시밭길을 걸어서 걸어서

단 한번 만이라도 만날 수만 있다면,

나 어떤 가시밭길이라도 멀다 하지 않고

외롭다 하지 않고 고달프다 하지 않고

힘껏 달리고 달려가련만

! 이처럼 간절한 바램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니

, 시작도 끝도 없이 밀려오는

이 서러움을 감당할 길이 없고나,

감당할 길이 없고나.


(199)

(강순희) 다시 볼 수 없다는 거, 딱 한 번이라도 보고 싶은데 어디 가도 볼 수가 없다는 거, 그게 참 기가 막히더라고. <전쟁과 평화> 영화에서도 남자 주인공이 죽자, 여자가 제일 먼저 한 말이, ‘당신 어디 있느냐는 거였어요. 나는 그 사람 만나려고 산소에 갔어요.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에 꼭 갔지. 택시 타고 다녔어. 누구 보기가 부끄럽더라고. 그래서 버스를 못 타는 거야. 밖에 나가지도 못하겠고, 누구를 만나지도 못하겠더라고요. 꼭 내가 잘못해서 남편이 죽은 것 같았어. 누가 그렇게 말해서가 아니라 나 혼자 그랬던 건데, 이거 이해하기 힘들 거예요.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다들 그랬대요.


(201)

(강순희) 택시 기사들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이웃 사람들도 다 좋았어요. 그때 우리집 골목은 양쪽으로 집이 쭉 있었으니까, 한 집에서 큰 소리가 나면 다 들렸는데도 내가 맨날 문 열어놓고 소리 질렀어. ‘박정희 살인마!’ ‘민복기 살인마!’ 하도 분해서 나도 잡아가라, 모르는 사람이 우리집 쪽을 쳐다보면 이웃집 아줌마들이 그냥 지나가라고 했지. 다들 우리 부부를 안타깝게 봤던 것 같아. 그 골목에서 우리 아들 친구네가 살았는데 그 엄마가 하는 말이, 우리 부부가 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일부러 내다보곤 했었대. 가뭄이 심해서 동네에 물차가 온 적이 있어요. 물통을 갖다 놓고 물을 받는데 제대로 안 되는 거야. 열불이 나서 한마디 했지. ‘, 이 개새끼야! , 박정희 새끼 잡아 먹고 싶은데 오늘 어느 놈이든지 박정희 대신 잡아먹어야 되겠다!’ 물차 운전사가 막 뭐라고 했어. 그러니까 동네 사람들이 날 건드리지 말라고 말리고 그랬어요.


(203-204)

(강순희) 순전히 생떼였지, 생떼. 내가 그 사람들한테 다 이야기했어. 경찰들은 몰랐죠. 1차 때 어떻게 됐는지, 2차 때 재판을 어떻게 했는지, 어떻게 조작했는지, 어떻게 죽였는지, 재판정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조리 있게 좍 말하고, 이게 무슨 사람 사는 세상이냐고 하니까 다들 한마디도 말을 안 하는 거야. 반박할 수가 없으니까 못 하는 거지. 자기들도 사람이니까 억울하겠구나했겠지. 그리고 박정희 사진이 걸려 있기에 욕을 막 했어요. ‘저 새끼! 쥐새끼 같은 놈! 조막만한 놈의 새끼! 네까짓 게 뭔데 사람을 죽여!’ 그러면서 소리 질렀지. ‘내 목에도 새끼줄 걸어! 너네 각하 모독죄로 걸어!’ 그랬더니 다들 슬슬 피하더라고, ‘아주머니, 가서 주무십시다하면서 끌어내기에 박정희 살인마!’ ‘인혁당 조작이다!’ 외치면서 나왔어요. 그랬더니 사람들 다 자는 시간이니까 그러지 말래. 지금 자는 게 문제냐고, 죄 없는 사람을 여덟 명이나 죽였는데 잠 좀 못 자면 어떠냐고 계속 박정희 욕을 하니까 집에 데려다주더라고요. 난 박정희가 살아있을 때도 그러고 다녔어요. 겁나는 게 없었어. 겁이 안 났어. 떳떳하니까! 누굴 만나도 다 그렇게 진실을 말하고 다녔지.


(232-234)

(강순희) 도대체 어떤 놈이 내 남편 명예를 회복시켜 줄 수 있느냐, 네깟 것들이 무슨 명예회복을 해주느냐, 이게 나라냐, 나도 힘 있으면 이놈의 세상 확 뒤집어엎고 싶다, 힘이 없어서 못 하는 거다, 이 세상 뒤집어엎으려고 한 게 내 남편의 명예인데, 이 명예가 어때서? 명예 회복 같은 거 신청 안 한다, 돈 몇 푼 보상받는 거 안 한다. 내 생각은 그런 거였어. 명예회복 신청해서 보상받으면 더 분하고 더 억울할 것 같았어. 사람이 죽고 없는데 뭐가 필요하단 말이야? 이 세상이 사람 사는 세상 같지가 않은 거야. 그래서 신청을 안 했어요. 재심 무죄 판결 나고 나서 한명숙 총리가 우리를 공관에 초대했어요. 2007 2월쯤이었지, 아마? 한 총리가 왜 여태 명예회복이 안 되었냐고 걱정하기에, 내가 안 한 거라고 이유를 싹 설명하고 재판으로 해결했으니까 이제는 할 거라고 했어요. 그 후에 신청해서 했고.


(239)

(강순희) 그렇죠, 죄 없이 산 사람을 그렇게 죽였구나, 죽으러 갈 때 마음이 어땠을까, 그 사형 자리에 갈 때 어땠을까그런 생각을 했어요. 무죄 판결 나기까지 찾아오고 편들어준 정치인 많았는데, 다 잊어버렸어요. 민사재판도 이겼어요, 어떤 기자가 오글 목사랑 마태진 목사를 아냐고, 연락이 되냐고 묻더라고요. 그때 보상금이 나오니까 오글 목사한테 얼마라도 보내야겠다 싶었어요. 우리 정말 힘들 때 도와준 사람들, 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때 내가 파주 살았는데, 동우엄마 민환엄마랑 우리집에서 오글 목사한테 전화했어요. 그 돈은 한국에 있는 분들이 써야 된다면서, 자기들은 사는 거 괜찮다고 딱 잘라 거절했어요. 내가 준 쌍가락지 하나, 그 반지 갖고 있다고, 절대로 안 팔 거라고 했고, 선물이라도 보내고 싶더라고요. 셋이 의논해서 오글 목사랑 마태진 목사한테 이불을 좋은 걸로 사 보냈어요. 나중에 이불 너무 좋다고 고맙다고 전화 왔지. 하나 더 말하고 싶은 게, 피해자들 보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해자 혼쭐내는 것도 꼭 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용택은 국회의원까지 해먹었잖아요. 신직수도 변호사 했고요. 아우, 박정희 똘마니 노릇하던 것들이 말이야. 아니, 왜 피해자는 계속 당하고 가해자는 처벌 안 받아요? 우리 사회는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아! 어휴, 그놈의 자식들


(259)

(강순희) 중학교 다닐 때였는데 공책에 인생이란?’하고 써놓은 적이 있어요. 담임 선생님이 그거 보고 놀렸어. ‘, 순희, 벌써 인생을 생각하냐?’ 인생이 뭘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자기한테 주어진, 자기 앞에 펼쳐진 운명을 열심히 살아가는 거, 그게 인생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과 현실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서 극복하며 사는 거, 그게 인생이다. 어려운 문제가 생겨도, 장애물이 닥쳐도, 원망 같은 거 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거다. 그런 게 쌓여 인생이 된다. 애들한테 늘 그렇게 얘기했어요. 나도 그렇게 살았고.


(262)

(강순희) 아무 여한이 없어요. 오늘 밤에 죽는다 해도 괜찮아. 남편 일로 좀 힘들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거 다 했으니까. 신랑도 잘 만났고, 사랑도 잘 했고, 남편 일로 싸울 때도 잘 싸웠어요. 자기한테 주어진 것을 극복하면서 사는 게 인생이잖아요. 나한테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서 내 힘껏 노력하고 살았어요. 최선을 다했어요. 남편 죽었을 때는 막 같이 죽고 싶었지. 그런 생각이 든 순간이 여러 번 있었어. 그렇지만 아이들 위해 살아야겠다 싶어서 고비를 넘겼어요.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


(263)

(강순희) 사는 동안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해요. 불행하지 않았어요. 행복하게 만났고, 행복하게 살았고, 행복하게 애들 키웠고, 일도 닥치는 대로 행복하게 했고, 남편 때문에 싸울 때도 있는 힘을 다했어요. 행복이란 게 사람마다 달라요. 남들 눈에는 행복해 보여도 그 사람 자신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래서 행복했다’ ‘불행했다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은 거예요. 주어진 운명을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며 살았다는 걸로 나는 만족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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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이들이 통합이 아닌 네트워크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구조를 통째로 바꾸는 통합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과 갈등을 유발하고, 한번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되돌리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뼈아픈 경험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그들은 통합이 가져다줄 단기적 편의와 편익보다 지역 고유의 정체성과 자기결정권을 지키는 것이 외부 충격에 대응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의 근간임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 선진국들은 큰 정보 하나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기존의 정부는 유지하되 여러 정부가 협력해서 공동으로 대응하는 방식을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25-26)

서울시장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민주주의를 더 발전시키는 일이다. 현재 우리가 오세훈 시장에게서 발견하는 수많은 문제점의 원인은 민주주의의 부족이거나 반민주주의다. 예를 들어 한강버스나 노들 예술섬, 세운4구역 재개발, 광화문 6.25 참전국 기념물 조성에 시민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그 사업 과정에 민주주의가 없기 때문이다. 적절한 민주주의 절차를 밟아 추진했다면 오 시작이 다른 결정을 했거나, 시민들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사회에서 최선의 결정이다.


(30)

종묘 일대의 개발을 둘러싼 논란은 한국사회의 가장 큰 구조적 모순이자 부정의라고 할 수 있는 서울중심주의의 일면이다. 1395년에 세워진 이 문화유산의 가치를 망칠 초고층 건물을 짓겠다는 지방자치단체가 서울 말고는 있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서울 정도 규모의 경제가 아니라면 그런 필요성 자체가 제기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구상에서 전 국민의 절반이 (서울과) 수도권에서 살아가는 나라는 없다. 면적이 서울보다 넓은 군() 단위에 인구 3~4만 명이 사는 지방자치단체가 수두룩하지만, 서울 내의 25개 자치구 중에서 인구가 50만 명이 넘는 곳도 많다.


(65)

새해를 맞아 강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요즘이다. 산은 헐벗고, 나뭇가지의 잎새는 떨어져 앙상한 자태만 남은 지 오래다. 그래도 우리는 산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봄을 지나 여름이 오면 산은 온통 푸르름으로 가득 찰 것임을 알기에, 겨울 산의 황량함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유독 강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산과 다르게 혹독하기만 하다. 당장 눈으로 보기에 강에 물이 말라 없다면 그건 망가진 강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 강은 우리의 산처럼 계절에 따라 그 모양새를 달리한다. 여름철 장마 때 많은 비는 강물을 넘쳐나게 하지만, 겨울철에는 비가 없어 강물을 마르게 한다.


(87)

보통 네메시스를 복수의 신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이 단어의 원래 의미는 분배하다이다. 그리스 비극에서 네메시스란 과한 것을 덜어내어 다시 균형을 회복하려는 원리로, 각자에게 마땅한 자기 몫을 재분배하는 우주적 작용을 말한다. 무엇이든 과잉은 항상 네메시스의 처벌 대상이 된다. 이런 응징을 통해 지켜야 할 선이 사라져 무질서해진 시공간에 다시 질서와 균형이 회복된다. 고대 그리스는 이것을 정의라고 보았다. 정의가 살아있는 한, 과도한 행위는 응징되고, 정당한 자기 몫은 다시 올바르게 분배되어 질서와 균형이 맞춰진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비극의 효과인 카타르시스도 주인공이 고통을 겪거나 죽을 때가 아니라 선을 넘는 행위가 마침내 처벌받고, 과잉 몫의 재분배가 이루어져 균형이 회복될 때 일어난다. 관객들은 연민과 공포 속에서 과잉이 초래한 무질서가 회복되는 것을 보고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고 감정이 정화되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92)

옛사람들은 인생의 고난의 바다라고 했다. 키츠가 자기 이름을 썼던 물, 오이디푸스왕이 휩쓸려 가라앉아버린 그 물이다. 나는 인생을 산다는 것은 각자 자기 몫의 바다를 항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운명의 몫은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각자의 운명에 따라 실의 시작과 끝, 길이와 두께가 저마다 다른 것이 모이라이기 때문이다. 누구는 시작부터 자기 힘으로 배를 만들어야 하고, 누구는 부모가 알아서 좋은 배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누구든 배를 모는 기술을 배워서  출발하기도 하고, 누구는 아무 기술 없이 항해하다가 그때그때 깨닫기도 한다. 이불 밖은 위험하니 안전하게 평생 항구에 정박해 있으려는 배도 있고, 맨땅에 머리 박는 심정으로 미지의 바다로 떠나는 배도 있다.


(97)

성장의 사회적 생태적 한계를 직시하면, 지속적인 성장과 기술의 관계 연구보다 절박한 물음이 있다. “유한한 세계에서 언제까지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까?” “성장 자체는 좋은 것이어서 한계를 무릅쓰고라도 성장해야 하나?” 성장의 한계는 아니라고는 답하지만, 성정을 지상명령으로 삼는 자본주의는 성장에 목을 맨다.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많을수록 좋은가?” 자본주의는 이런 물음을 외면한다. 필요 충복이 아닌 욕망 충족에 충분함이란 없다.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 자본주의는 성장의 이름으로 우리 욕망을 제어하던 사회규범이나 관습을 해체했다. 우리 욕망은 기술이라는 신기루를 좇아 기술이라는 신기루를 좇아 확장일로에 있다.


(107)

미국은 페트로달러에 의해 고착된 국제 화폐시스템 덕분에 제국주의적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군산복합체를 확장해나갈 수 있었다. 다른 나라들은 달러를 보유하는 방법으로 미국 채권을 계속 사들일 수밖에 없으므로, 미국은 적자재정이 지속되어도 파산하지 않고 군사민생에 모두 자금을 댈 수 있다. 특히 중동지역에서 페트로달러는 재활용되어 미국의 무기 수출과 군사원조의 자금원이 되고 있는데, 예를 들어서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수년간 미국의 무기 구입에 수천억 달러를 쓰면서, 석유 판매로 얻은 수익을 다시 미국(방위산업)으로 돌려보내고 있다. 이런 식으로 친미 산유국들은 달러시스템에 충성을 바치고, 그 대가로 미국은 그들의 안보를 보장하는 공생관계가 확립돼 있다.


(115-116)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석유에 대한 자신의 갈증을 감추지 않았다. 2026 1 3,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를 폭격하고 이 나라 대통령과 영부인을 납치하는 일을 벌이기에 앞서서 이미 트럼프는 2025 12 16, 베네수엘라 자원에 대한 미국의 소유권을 주장했다. “아메리카는 (미국에) 적대적인 정권이 우리의 석유, , 그밖의 어떠한 자산도 가져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모두 즉시미국에 반환되어야 한다.” 그는 1기 집권 당시에도 자원에 대한 탐욕으로부터 (베네수엘라의) 정권교체에 대한 집착을 드러냈다. 2023 6월에 트럼프는 이렇게 힐난했다. “내가 대통령 집무실에 떠날 때 베네수엘라는 붕괴하기 직전이었다. (내가 재집권했다면) 우리는 (베네수엘라 정권을) 손에 넣었을 것이다. 우리는 (베네수엘라의) 모든 석유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베네수엘라는 지금껏 확인된 바로는 세계 최대의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고, 아메리카대륙에서 금이 가장 많이 매장된 곳이다. 보크사이트(알루미늄), 다이아몬드, 철광석, 니켈, 석탄 등도 풍부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베네수엘라는 전 세계 보통사람들의) 희망의 근거지이다.


(148)

AI기업 팔란티어가 이를 상징하는 대표적 기업인데, 팔란티어의 핵심인 피터 틸은, AI기술을 기반으로 지난 세기 냉전 이후 잃어버린 미국의 패권을 회복하고 강력한 미국중심주의를 재건하겠다는 야욕을 공공연하게 드러낸 인물이다. 피터 틸은 극우적 성향으로 트럼프 정권이 탄생하는 데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일론 머스크와는 페이팔 마피아로 통하며(핀테크기업 페이팔의 공동창업자로 오랫동안 유대관계를 형성했다), JD 밴스 부통령, 데이비스 삭스 AI 담당관을 트럼프 정부에 파견하여 팔란디어와 정부의 강고한 카르텔을 형성하였다.


(237)

전 세계의 행복지수를 조사할 때 부탄은 늘 1위를 차지하곤 했는데, 지금은 어떤가. 조사 대상 국가 중 꼴찌에 가까운 95위가 되었다. 어쩌다가 부탄이 이렇게 변했을까. 부탄이 갑자기 불행 국가가 된 이유는 전쟁도 천재지변/정치적 파탄도 아니라//스마트폰 때문이었다고 한다. 백무산은 바로 이 스마트폰이 국왕도 평범한 민가에서 평민과 결혼하여 살고 있는 나라/평등과 소박함이 행복의 비결이라던 나랄부탄을 미지의 욕망에 눈뜨게 만듦으로써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뜨려버렸기 때문이다. 다양한 근대문명의 공격으로부터 버텨오던 부탄도 스마트폰이라는 새로 출시된 선약과는 당해내지 못했다.


(244)

지구 역사 46억년 동안 우주와 지구의 역동에 따라 여러 생물체가 태어나고 사라졌으나 인류의 종말은 이와 다를 것이다. 지구에서 살다가는 모든 생명체 중 가장 오만한 종족이 인간 아닐까. 인간을 스스로의 탐욕으로 지구에서 멸종하는 최초의 생물체가 될 것이다. 인간은 신이라는 개념을 창조하더니 인공지능(AI)을 만들어냄으로써 그 신의 자리에까지 올라서려고 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앞에서 말한 새로 출시된 선악과스마트폰하고는 그 차원이 다르다. 마침내 인류세를 끝내고 기계세 AI류의 시대를 이끌어낼지도 모른다. 인간이 만들어낸 신이 인간을 멸절하는 쪽으로 자신의 권능을 발취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 우리가 본격적으로 영성을 말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왜 여기에 와 있는가. 우주에서 봤을 때 여기 이 땅, 이 먼지 같은 지구의 삶은 무엇인가. 우주라는 영성과의 교감을 말하지 않고서는 해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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