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

물리학자이면서 수학자이자 가톨릭 성직자이기도 한 르메트르는 강연장에서 당시의 물리학자들이 고민하기 시작한 우주의 진화라는 주제로 강연을 할 예정이었다. 흰색 깃이 달린 검은 사제복을 입은 그는 고해성사를 받으려는 듯이 연단에 올라 신학에 위험할 정도로 다가서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는 우주 전체가 아주 작은 원시 원자(primeval atom)”로부터 폭발하는 순간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27)

일반 언론은 그의 이론을 좋아했다. <모던 메커닉스>하나의 원자가 폭발하면서 우리 우주의 모든 태양과 행성이 등장했다고 경탄했다. 그러나 물리학자에게는 그런 아이디어가 그저 터무니없고, 가증스러운 것이었다. 캐나다의 존 플라스켓은 그런 주장을 어떤 근거도 없이 겆잡을 수 없게 되어버린 추론의 사례라고 비판했다. 르메트르의 옛 스승인 에딩턴도 그것을 혐오스럽다고 했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그에게도 르메트르의 주장은 지나친 것이었다. 그는 언제나 존재했던 우주를 믿고 싶어했다.

 

(44)

반물질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양전자가 생각보다 익숙한 입자라는 사실이 흥미로울 것이다. 우리 몸에는 신경 신호를 방출하는 등의 역할을 하는 분자에 비록 적은 양이기는 하지만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방사성 포타슘이 들어 있다. 그런 포타슘 원자 중에서 약 0.001퍼센트가 매일 붕괴하면서 양전자를 방출한다. 체중이 약 70킬로그램인 사람의 몸에서는 하루에 거의 4,000개의 양전자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양전자는 오래 존재하지 않는다. 양전자는 재빠르게 전자를 만나서 붕괴하고, 그 흔적으로 작은 방사선을 남긴다.

 

(58)

비금까지 과학의 역사에서 우리가 관찰을 통해서 알아낸 모든 사실에 따르면, 우리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물질은 빈 공간 이외에 전자, 쿼크, 글루온이라는 단 세 가지 기본적인 입자로만 이루어져 있다. 질량이 없는 힘 입자인 글루온은 쿼크들을 서로 달라붙게 해서 양성자와 중성자를 만들도록 한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30,000,000,000,000,000,000,000,000,000(30옥틸리언)개의 전자와 더 많은 수의 쿼크, 그리고 쿼크들을 서로 달라붙도록 해주는 수많은 글루온의 집합이다.

 

(67-68)

페인의 발견은 별이 어떻게 활동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별이 대체로 수소와 헬륨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연구자들은 별이 어떤 연료를 태우느냐는 또 하나의 오래된 수수께끼도 풀 수 있게 되었다. 연구자들은 압력이 높은 별의 내부에서는 양성자가 1개인 수소 원자가 융합해서 양성자가 2개인 헬륨이 되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태양이 열과 빛을 내는 방법이다. 페인 덕분에 과학자들은 새로운 이해를 근거를 결국 더 무거운 원소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신비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답은 별의 내부에 있었다.

 

(90-91)

대체로 철로 되어 있는 우리 행성 중심부는 바깥 부분이 녹아 있었기 때문에 자전하는 지구와 함께 회전한다. 그 속에서 흐르는 전류가 지구 주위에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거대한 자기장을 만든다. 대기권 바깥까지 확장되는 거대한 힘 장이 강한 에너지를 가진 우주선(cosmic ray)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 그런 힘 장이 없었다면 우리의 DNA는 작은 조작으로 부서졌을 것이다. 지구 자기장은 지구의 대기를 잘라내서 우주로 날려보낼 수 있는 또다른 위험 요소인 태양에서 오는 (주로 전자와 양성자로 구성된) 태양풍도 막아준다. 화성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 그러나 크기가 너무 작은 화성의 자기장은 태양풍 입자의 충돌을 막아줄 정도로 강하지 못하다. 그래서 화성의 대기는 우주 공간으로 날아갔다.“ 지구의 초기에 융용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지구는 자기 보호막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재앙이 역설적으로 우리에게는 행운이었다.

 

(107)

무엇보다도 물은 루이의 분자가 서로 만나고 뒤섞이는 우리 몸속의 바다에 해당하는 매질(媒質)이다. 역설적으로 그런 일은 물이 심한 약골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물 분자 사이의 결합은 아주 쉽게 끊어진다. 물 분자는 2개의 너그러운 수소 원자가 1개의 산소 원자에 불평등하게 결합해서 만들어진다. 더 무거운 산소는 가진 것을 너그럽게 나누지 않는다. 산소는 각각의 수소와 공유하는 전자를 자신에게 좀더 가까이 끌어당겨서 산소 쪽에는 약간의 음전하가 생기고, 수소 쪽에는 약간의 양전하가 생기게 만든다. 이웃한 음전하가 생기고, 수소 쪽에는 약간의 양전하가 생기게 만든다. 이웃한 분자의 산소와 수소 원자들이 가진 전하에서 내타나는 작은 차이가 수소결합이라고 부르는 약한 연합을 만들어서 액체의 물 분자가 서로 달라붙게 해준다.

 

(136)

우리 몸에 있는 지방과 탄수화물은 오로지 탄소, 수소, 산소로 만들어진 분자 사슬이다. 단백질은 탄소, 수소, 산소, 질소, 황으로 만들어지고 DNA는 탄소, 수소, 산소, 질소, 인으로 만들어진다. 6종의 원소는 우리 몸에 있는 모든 것의 거의 99퍼센트를 차지한다. 몸무게가 150파운드(68킬로그램)인 사람의 몸에는 산소 94파운드, 탄소 35파운드, 수소 15파운드, 질소 4파운드, 인 거의 2파운드, 그리고 황 0.5파운드가 있다.

그 종의 원소는 또한 우연히도 우주에서 가장 흔한 원소들이다.

 

(186)

대체로 증거가 너무 적어서 우리의 가장 오랜 세포 조상이 정확하게 어디에서 어떻게 등장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지구의 생명이 화성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우리 행성에서 왔는지, 특별한 행운이었는지, 생명이 우주 전체에 흔하게 존재할 정도로 그런 과정이 필연적인지에 대해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생명의 진화가 빨랐을까, 아니면 느렸을까? 우리는 생명 2.0일까? 초기 생명체 또는 생명 형태 중 하나(또는 여럿)가 우리가 조장이 지구를 식민지화하기 수백만 년 전의 무시무시한 충돌로 전멸했을까? 우리는 그 답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지구의 구석구석에서 발견되는 모든 생명이 하나의 혈통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확신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이 독특한 기본 생화학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DNARNA에 똑같은 뉴클레오타이드와 우리 단백질에 똑같은 20종의 아미노산, 에너지를 생성하기 위해서 ATP를 사용하는 똑같은 방법을 가지고 있다.

 

(256)

광합성은 20억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구를 오로지 단세포 유기체만 서식하는 대륙과 바다를 가진 세계에서 온갖 종류의 활기찬 생명체로 가득한 녹색의 행성으로 변환시켰다. 광합성이 가져다준 변화의 규모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남세균이 배출하는 독성 산소가 지구를 녹슬게 하고, 남세균의 경쟁자를 죽이거나 쫓아냈다. 남세균은 널리 퍼졌고, 엄청난 양의 로켓 연료인 산소를 대기 중에 배출했다. 갑자기 미토콘드리아로 가득 채워진 새로운 고성능의 세포가 등장했다. 그런 세포는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었고, 더 많은 유전자와 단백질을 만들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생명은 폭발적으로 복잡해졌다. 그런 세포 중 일부는 광합성 공장인 엽록체의 도움으로 산소의 농도를 더욱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후에는 바다에서 사나운 포식자와 눈부신 생태계가 등장했고, 광합성 식물이 대륙을 녹색으로 바꿔놓기 시작했다.

 

(286-287)

사실 우리가 광합성을 통해서 우리 스스로 식량을 만들지 않는 이유를 알고 잎다면, 큰 나무를 살펴보기만 하면 된다. 광합성을 하는 엽록체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생성한다면, 엽록체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생산한다면, 엽록체가 나무가 우러진 면적만큼이나 넓은 공간을 차지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엽록체로 피부로 모든 채운다고 하더라도 뛰거나, 먹이를 쫓아다니거나, 사냥감을 잡는 것은 물론이고 단순히 걸어 다니기에 필요한 동력도 얻지 못할 것이다. 식물이나 다른 동물을 먹으면 농출된 에너지를 쉽게 얻을 수 있다. 수렵과 채취를 하던 우리의 조상이 다음 끼니를 찾으러 수 킬로미터를 돌아다닐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우리가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식물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만약 우리가 사라지더라도 식물은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식물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몇 주일이나 몇 달 이내에 지구에서 사라질 것이다.

 

(366)

완전히 성장한 후에도 지친 몸은 쉴 수 없다. 우리의 DNA는 여전히 끊임없이 움직인다(그리고 DNA의 양은 대단히 많다. 수조 개의 세포에 들어 있는 모든 DNA 가닥을 한 줄로 늘어놓으면 태양계 지름의 두 배에 달한다). 그중 일부는 유전자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풀어진다. 지금도 우리 몸의 모든 세포에서는 수천 개의 유전자에 해당하는 RNA 복사본이 만들어지고 있다. 달리기를 하거나, 역기를 들거나, 음식을 먹거나, 병에 걸리거나,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마다 새로운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가 활성화된다.

 

(384-385)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에 상관없이, 미첼과 보이어의 메커니즘은 미토콘드리아가 어떻게 진화를 강력하게 촉진했는지 설명해준다. 린 마굴리스가 주장했듯이, 한 종류의 생물이 에너지를 특별히 효율적으로 생산하게 되기까지는 미생물이 지구를 지배했다. 그런 미생물 중 한 종이 다른 세포에 의해서 포획되었고, 그 후손은 가축화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미토콘드리아였고, 그 나머지는 역사가 되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역사이다. 평균적으로 우리 몸의 세포 1개에는 1,000개에서 1만 개의 미토콘드리아가 들어 있다. 심장 근육 세포의 경우에는 미토콘드리아가 세포 부피의 약 35퍼센트를 차지한다. 미토콘드리아는 우리 세포 하나가 박테리아보다 수만 배나 더 많은 에너지를 낼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초강력 카페인의 도움으로 DNA는 리보솜이 더 많은 단백질과 효소를 생산하도록 하고, 세포를 활발한 활동의 장으로 만들 수 있게 해준다. 우리 몸에서는 매 초마다 과거의 박테리아 수천조 개가 세포막을 가로질러 양성자를 펴내서 ATP를 만드는 회전형 모터에 필요한 전기를 생산한다. 우리는 1분에 약 3분의 2파인트의 산소를 흡입해서 그런 모터를 계속 돌아가게 하고, 그 덕분에 미토콘드리아는 100와트 전구만큼의 에너지를 생성한다.

 

(392)

세포가 지나치게 손상되어 더 이상 복구할 수 없게 되면 어떨까? 그런 경우에 대한 대책도 마련되어 있다. 세포 전체를 파괴해서, 재활용할 수 있는 조작으로 잘게 쪼개 폐기하고 완전히 새로운 세포를 만든다. 평균적으로 우리는 10년마다 세포를 교체한다. 하루에 3,300억 개의 세포를 갈아치우는 셈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작동하는 세포가 더 자주 교체된다. 강한 산()에 노출되는 내장의 세포는 손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커서 계획적인 자살을 통해 이틀에서 나흘마다 새로운 세포로 교체된다. 긁히거나 자외선에 노출되는 피부 세포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교체된다. 혈류를 따라 돌아다니는 적혈구는 120일마다 교체된다. 매초마다 거의 350만 개의 적혈구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뼈와 같은 곳에 있는 다른 세포는 10년에 한 번 정도로 그 빈도가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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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플라상은 약 만 명 정도가 사는 군청 소재지이다. 비요른강이 내려다보이는 고원에 세워지고, 북쪽으로는 알프스산맥의 최종 갈래에 속하는 가리그 언덕을 등지고 있는, 이 시는 마치 막다른 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모습이다. 1851년에 주변 지역과는 도로 두 개로만 연결되었다. 동쪽으로 내려가는 니스로와 서쪽으로 올라가는 리옹로()가 있고, 두 도로는 거의 평행적 위치에서 이어진다. 그 시절, 시의 남쪽을 지나가는 철도가, 예전 강둑의 가파른 경사인 언덕 아래 놓였다. 지금은, 작은 개울 오른쪽에 있는, 역에서 나와 고개를 들면, 정원이 테라스처럼 형성된, 플라상의 첫 번째 집들이 보인다. 그 집들에 도달하려면 족히 15분 정도 올라가야 한다.

 

(111)

그 당시, 루공 부부는 충족되지 않는 자만심과 욕망이라는 이상한 위기를 겪고 있었다. 그들의 얼마 안 되는 행복한 감정은 쓰다쓰게 변했다. 그들은 스스로 불운의 희생자들로 자처했으며, 절대 포기하지 않고, 만족하기 전에는 죽지 않겠다며 더욱 맹렬하고 더욱 단호한 마음이었다. 실상 그들은 고령에도, 자신들의 희망 가운데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펠리시테는 막연히 자신은 부자로 죽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는 강변했다. 그러나 비참한 나날은 그들에게는 참기 힘들었다.

 

(151)

성공해서, 자신의 가족 모두 큰 자산을 가진다는 생각은 펠리시테의 편집증이 되었다. 파스칼은 그녀를 슬프게 하지 않으려고, 노락 거실의 밤 모임에 몇 번 들렀다. 그는 거기에서 걱정했던 것보다 덜 무료했다. 처음에, 그는 건장한 남자들이 그렇게까지 어리석어질 수 있다는 데 아연실색했다. 은퇴한 기름과 아몬드 상인들, 후작과 사령관까지, 그에게는 그때까지 연구해 본 적이 없었던 기묘한 동물들 같았다. 그는 자연주의 과학자다운 성찰로, 그 사람들의 관심사와 욕망을 발견하게 되는, 찌푸린 얼굴 속에 고정된 그들의 가면을 관찰했다. 그는 야옹대는 고양이나 멍멍 짖고 있는 개의 말을 알아들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그들의 공허한 수다에 귀를 기울였다. 그 당시, 그는 비교 자연사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동물들의 행동에서 나타나는 유전 방식에 대해 그가 해 왔던 관찰들을 인간에게 적용하는 것이었다.

 

(290-291)

그처럼 즐겁게 지낸 사라의 긴 시간은 미에트를 말 없는 절망으로부터 구해 냈다. 그녀는 증오로 가득 찬 고독한 삶이 그녀 안에 짓눌러 놓았던 사랑이, 아이의 행복한 태평스러움이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고, 이 세상에서 더는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 덕분에, 그녀는 쥐스탱과 동네 악동들의 핍박을 참을 수 있었다. 지금 그녀의 마음속에는 야유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노래가 흘렀다. 그녀는 연민을 가지고 아버지를 생각했고, 이제는 무자비한 복수의 꿈에 그렇게 자주 빠져들지 않았다. 그녀 안에서 싹트는 사랑은 자신의 약한 열기를 가라앉히는 상쾌한 새벽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사랑에 빠진 소녀다운 앙큼함도 나타났다. 쥐스탱에게서 어떤 의심도 받지 않으려면, 여전히 말없이 반발하는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녀석이 그녀에게 상처를 입힐 때도, 그녀의 두 눈은 온화함이 가득했다. 그녀는 더는 과거처럼 험하게 노려볼 수 없었다. 그는 아침에, 점심때, 그녀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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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4)

, 나보코프는 잡힐 듯 말 듯한 흰 고래를 분석하고, 주석을 달고, 해설해서, 결국 잡았나? 탑이 높아질수록, 가능한 한 많은 의미를 더할수록, 흰 고래는 점점 시커메지고, 번역이 실패했다는 증거는 쌓여간다. 주석의 탑은 번역 불가능성의 웅대한 증거다. 번역은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 번역은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만다는 조바심이 탑을 이룬다. 이 탑은 무한의 영역으로 뻗는다. 번역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번역은 무한하다.

 

(43)

전 세계에 단테의 <신곡> 번역본이 수천 종 있을 것이다. 저마다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이라고 주장하지만 한 권 한 권 다른 책이다. 쓰인 언어가 다르거나, 번역된 시대가 다르거나, 번역한 사람이 다르거나, 기타 등등의 이유로 다 다르다.

 

(45)

번역가들은 왜 배신자일까? 신이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살지 못하게 언어를 흩어놓았는데도 갈라진 언어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 해서, 니므롯처럼 신의 뜻에 반한 배신자가 되었나? 서로 다른 언어 사이를 오갈 때는 손실이 불가피하므로 원저자든 독자든 누군가를 배신하게 없었느냐는 것이다.

 

(49)

특히 다른 언어를 쓰는 국가 사이에 충돌이 있을 때는 번역/통역가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극에 달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번역/통역가들은 스파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취급받는다. 번역/통역가는 적대적인 세력 사이에서 협상을 거들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도록 도울 뿐인데,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는 박쥐처럼 여겨지고 모국에서는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일제강점기 때도 역관들은 친일파이자 배신자 취급을 받았다.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도 통역사들이 숱하게 죽었다. 번역가 수잔 바스넷도 이 죽음을 언급한다. “얼마 전에 한 신문의 짧은 기사가 내 눈을 사로압았다. 시체 몇 구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발견되었는데 모두 탈레반의 희생자였다. 그들은 잔인하게 살해되었고 혀가 잘려 있었다. [...] 희생자들은 모두 통역사로 일했던 사람들이다. [...] 여기에 한 가지 역설이 있다. 번역가들은 한편으로 세상에서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사소한(invisible) 존재처럼 보이지만, 또한 어떤 사람들에게는 생명이 위태로울 만큼 중요한 존재로 보인다는 것이다.”

 

(53)

이에 반발하여 속어 번역을 시도한 사람들이 있었다. 성경 번역은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이므로 그 자체로 엄청나게 위험했다. 중세 말기에 존 위클리프(c.1328~1384)는 라틴어 불가타를 영어로 번역해 일반인들도 성경을 읽을 수 있게 했다. 위클리프의 사상과 번역은 두 세기 뒤에 일어난 16세기 종교개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번역은 근세를 추동하는 동인이 되었다. 성경 번역이 종교개혁을, 그리스 로마 고전 번역이 르네상스를 일으킨 요인 중 하나였다고 해도 지나치제 않을 것이다. 성격 번역은 종교개혁 시기에 매우 중대한 사건이었고 권력 투쟁의 핵이었다. 성경이 번역되자 성직자를 거치지 않고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번역 성경은 민족 언어와 문화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65-66)

나도 번역이라는 일이 탐정이 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탐정소설 속 탐정의 목표는 범죄가 왜, 누구에 의해, 어떻게 저질러졌는지를 설명하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일이다. 탐정이 모든 정황과 맥락을 고려해 가장 그럴듯한 한 가지 서사를 완성하듯이, 번역가도 단어들의 단서를 모아 매끈한 하나의 문장, 빈틈없는 하나의 줄거리를 만든다. 번역가는 흩어진 의미의 조각들을 이렇게 맞추어보고 저렇게 맞추어 보며 도무지 옮겨지지 않는 것을 옮기려고 애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스르륵 퍼즐이 풀린다. 비어 있는 한 자리에 딱 맞는 단서/단어를 끼워 맞추자 이야기가 완결된다. 이렇게 문장을 완성할 때의 희열. 결국 번역을 하는 이유는 번역이 이런 일이기 때문이다. 드물게 찾아오는 완성의 감각.

 

(71)

10여 년 전에는 직역이냐 의역이냐를 놓고 두 번역가가 번역 배틀이라는 형식으로 맞붙은 신나는 일이 있었다(번역이라는 단어 다음에 이렇게 흥미진진한 단어가 붙은 적이 유사 이래 또 있었던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자기 마음대로 원문에 담긴 정보를 삭제하고 번역해서는 안 된다”(이덕하)는 주장과 쉽게 읽히는 노씨의 번역에 대해서는 주요 정보가 완곡한 표현으로 번역되어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다’, ‘술술 읽히는 것이 다가 아니다등의 비판이, 우리말로 부드럽게 옮겨지지 않은 이씨의 번역에는 정보만 있을 뿐 정서가 없다’, ‘읽기 불편하다등의 비판이 나왔다.” 직역이냐 의역이냐의 해묵은 논쟁을 종식할 줄 알았는데, 싱겁게도 무승부로 얼버무려버렸다.

 

(90)

단테가 <신곡>을 씀으로써 이탈리아어를 발명했다는 말이 있다. 중세에는 문어와 구어가 분리되어 있어서, 고등교육, 과학, 철학, 신학 등의 학문과 공공 기록 등에는 실제로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라 라틴어가 쓰였다. 당시에 진지한 주제로 책을 쓸 때는 라틴어로 쓰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나, 단테는 라틴어가 아닌 속어로 <신곡>을 씀으로써 이탈리아 문화와 언어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작품으로부터 이탈리아어의 표준이 생겼고 이탈리아어 문학이 시작되었으며 이탈리아 민족문화와 국가 정체성이 형성될 수 있었다.

 

(116)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이가 전() 언어 단계에서 언어의 첫 단계로 넘어가 말을 익히면 이 놀라운 조음 능력은 거의 전부 사라지고 만다. 아기가 언어를 습득하면서 사고와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얻는 대신 몸과 감각의 일체성을 잃는다. 아르토의 음절 덩어리와 발음할 수 없는 단어들은 상징계에 들어가기 전 아기의 옹알이 같은 소리로 회귀하려는 언어다. 사고를 추방한 비이성의 미로에 순수한 소리와 감각--살만을 남긴다.

 

(134)

나는 잘 읽히는 번역문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어 독자가 자연스러운 논리로 글을 읽게 하려고 이쩌면 나에게 허럭된 것보다 더 많이 개입할 때가 있다. 마치 편집자가 된 것처럼 원문에 가위를 댈 때도 있다(있는 것을 잘라내거나 없는 것을 집어넣는다는 말은 아니다. 문장을 합하거나 나누거나 문장구조를 뒤틀거나 긍정과 부정을 뒤집을 때가 있다). 그런데 번역 원고를 다듬고 고치다가 피츠제럴드처럼 진부함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철렁해진다.

 

(145)

2016년 데버라 스미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The Vegetarian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뒤에 번역 논쟁이 뜨겁게 벌어졌다. 최근에 구체적인 사례를 두고 이만큼 열띤 논쟁이 벌어진 일은 없었을 듯하다. 처음 수상 소식이 들려왔을 때 (한 시인의 노벨문학상 수상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던) 한국인들은 한국문학의 위상을 높이는 쾌거라며 들떠서 축하하고 칭찬했다. 그러나, 얼마 후 인터넷에 The Vegetarian의 오역 의심 사례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번역 작품을 원본과 비교해본 국내 번역가들은 다들 나처럼 아연했을 듯싶다. 데버라 스미스가 우리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유로운 번역을 했던 것이다. 만약 국내 번역가가 외국의 유명한 작품을 그렇게 번혁했다면 곧 오역 논쟁에 휩싸였을 것이고 영원히 출판계에 발을 붙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147-148)

서양의 번역 관행과 우리나라의 번역 관행이 크게 다르고 기준점도 다르니 충실성의 개념도 다를 수밖에 없다. 서양에서 한국어로 쓰인 책을 번역 출간할 때는 출판사 편집부에 한국어를 아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 한국처럼 편집자가 원본과 번역본을 한 문장 한 문장 대조하고 비교하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런 반면 우리나라의 번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원문 충실성을 훨씬 중시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번혁 논쟁은 거의 언제나 원문을 기준으로 놓고 벌어지는 오역 논쟁이었고, 원문의 의미를 잘못 이해했거나 곡해한 번역이 어떤 이유로든 옹호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지만 서양 번역 전통은 (여성 혐오적 표현이지만 한 번만 더 쓰자면) 충실성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미녀(Les Bells infideles)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했고 스미스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여전히 그 기조가 이어진다. 스미스의 번역이 부정한(infidele) 것은 분명하지만 본인이 충실할 생각이 없다는 번역관을 밝혔는데 윤리적 의무를 저버렸다느니 배신을 했다느니 비난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스미스의 번역에 대해서는 미녀(belle)인지 아닌지만 따지면 된다. 그런데 그걸 제대로 수행하는 번역 비평은 좀처럼 눈에 뜨이지 않는다.

 

(158-159)

또 영어와 한국어는 너무나 다른 언어라서 좀 더 많이 개입할 필요가 있다(이 점에 있어서는 영어와 한국어는 너무 거리가 멀다고 한 데버라 스미스와 내 생각이 일치한다. 그런데 어느 정도를 많이개입한 것으로 보느냐의 기준은 크게 달라서 같은 말을 해도 무척 다른 이야기이긴 하다.) 영어에서 한국어로 올 때는 문장을 완전히 뒤집거나 구문을 재배치해야 할 때가 많다. 그러지 않고 영어의 특유 표현(수동태, 물주(物主) 구문, 완료, 진행, 사역 등)을 그대로 옮기면 어색한 번역 투가 되고 무슨 뜻인지 이해가 잘 안 가기 십상이다. 영어와 한국어는 언어의 사고방식 자체가 달라서 좀 더 적극적으로 번역해야 한다.

 

(173)

이런 부침을 겪은 그녀는 여전히 쓰이기는 하되, 굉장히 불균형하게 쓰인다. 언어학자 안소진은 신문, 잡지, 문학, 비문학, 구어 등으로 분류된 말뭉치에서 그녀의 출현 빈도를 조사해서, 텍스트의 종류에 따라 그녀가 나타나는 빈도가 크게 달라짐을 보였다. 문학 말뭉치와 순()구어 전사 자료에서 무려 298배의 차이가 나타난 것이다. 전체 그녀출현 건수 중에서 83퍼센트가 문학 말뭉치에서 나타났다. 반면 순구어에서는 사실상 그녀를 안 쓴다.

 

(174-175)

우리는 /그녀를 유럽어에서 받아들여 쓰게 되었는데, 이제는 서양에서도 남녀를 구분하는 대명사를 불편하게 여긴다. 자신이 이분법적 성별 체계에 속하지 않는 논바이너리(non-binary)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명서 ‘he/she’ 대신 ‘they’를 삼인칭 복수 겸 단수 대명사로 쓰는 경향이 눈에 뜨인다. 경칭으로도 ‘Ms’‘Mr’ 대신 ‘Mx’를 붙이기도 한다. 미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친구에게 들었는데, 이렇게 논바이너리로 정체화한 학생을 임의로 ‘he/she’로 지칭하면 차별이 될 수 있어서 늘 신경 쓰고 조심한다고 한다.

 

(177)

번역이 아무리 자연스럽고 편안한 한국어를 추구한다고 할지라도 번역문의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다. 때로는 그 흔적이 번역문의 미덕이 된다. 타자의 언어와 나의 언어가 포개어지고 간섭이 일어날 때 아롱거리는 무늬가 언어에 아름다운 흔적으로 남는다. 나는 한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을 흉내내려 하는데 번역가를 흉내 내어 글을 쓰는 사람도 있고, 이런 교환과 충돌을 통해 언어의 가능성이 최대로 이끌어내어지기도 한다. 내가 쓰는 언어에도 지금까지 내가 읽고 번역한 무수한 글들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타자의 택스트를 씹고 삼키고 흔적도 남지 않게 흡수해버리는 번역도 있다. 다음 장에서는 길들이다 못해 잡아먹어버리는 식인주의 번역(Canninalist Translation)을 다룬다.

 

(191)

내가 번역하는 텍스트도 권위로 나를 위합하지 않는다. 절대적으로 숭앙해야 하는 원문의 권위라는 것은 없다. 번역이 원문을 배신하고 손상할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문이 번역문보다 절대적으로 우월하다는 뜻은 아니다. 얼마 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미국 백인 작가가 1990년대에 쓴 글을 번역하다가 구제 불능의 인종주의적 표현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이런 문구를 그대로 세상에 내놓을 수는 없기 때문에 나는 그 부분을 둥글려서 감췄다(작가도 오늘날까지 살아 있었다면 부끄럽게 여겼을 거라고 믿는다). 번역에서 손실이 일어났지만, 인종주의를 잃었다고 아까워할 필요는 없다. 어떤 텍스트도 그 자체로 온전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제3의 공간을 만들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고, 더 나은 글을 생산하기 위해서 번역하고 또 번역한다.

 

(221)

번역가가 하는 일은 원본을 훼손하거나 손상하는 일이 아니라 계속해서 살아 있도록 생명을 주고 되살리는 일이다. 번역가는 상상력과 독창성과 자유로움을 요하는 연금술 같은 정교한 공정을 통해 텍스트의 의미를 복원한다. 에코는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나르키소스가 하는 말을 따라 할 뿐이지만, 자기 자신밖에 보지 못하는 나르키소스가 하는 말을 따라 할 뿐이지만, 자기 자신밖에 보지 못하는 나르키소스가 점점 말라가다 소멸한 뒤에도 계속 나르키소스의 목소리를 따라 하고 다양하게 반향하며 울려 퍼지게 한다. 나르키소스는 침묵할지라도, 그 침묵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는 에코의 목소리를-빈 산에 울리는 메아리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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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총을 들고 싸운 사람들은 저잣거리 시민들이 아니었던가? 과거 민주화운동으로 얻은 어쭙잖은 명망을 업고 학생들을 모아 지도부를 결성한다고 하자, 그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한 번 간여한 우리는 싫든 좋든 학생 지도부와 함께 가야 할 것이고, 죽음을 무릅쓰고 싸운 저잣거리 시민들은 뒷전으로 밀려날 것이 아닌가?’

 

(185)

이종기 변호사의 제안에 장세균 목사와 남재희 신부가 조비오 신부를 돕겠다고 나섰다. 김성용 신부는 시민수습위원들의 주고받는 말에 흥미를 잃었다. 광주시민을 살상한 계엄사의 사과 없이 무기만 갖다바치면 수습이 될 것이라는 말에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김성용 신부는 광주시민의 희생을 줄이겠다고 무기를 회수하러 나선 조비오 신부와는 생각이 달랐다. 일부 수습위원이 가해자인 계엄사 측에 끌려다니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어떤 조건을 요구하는 것은 협상이 아니었다. 무기를 회수해 오면 연행자를 석방하겠다, 보복을 금지하겠다, 광주에 재진입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본말이 바뀐 협상이었다. 김성용 신부는 수습위원의 태도를 비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187-188)

저는 전남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극단 광대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는 동리소극장 대표인 박효선입니다. 비도 오고 있으니 저는 군더더기의 말을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겄습니다. 계엄사 측은 무기를 회수해어 갖다 주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처럼 시민수습위원들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계엄사 측이 순진하고 순수헌 시민수습위원들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무기를 갖다 주는 것은 신군부 야욕을 도와주는 꼴입니다. 계엄사 측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시민들이 무기로 철저하게 무장허고 있어야만 계엄군의 진입을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며칠만 기다리십시오. 광주항쟁의 불길이 서울, 부산, 대전 등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갈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항쟁은 세계 각국의 지지를 받을 것이고 신군부는 국제적인 비난에 직면하여 스스로 권력 찬탈의 야욕을 포기하고 말 것입니다.”

 

(314)

고등학생들은 나가라. 우리가 싸와서 도청을 사수헐 테니 니들은 집으로 돌아가거라. 니들은 역사의 증인이 되거라. 우리는 오늘 계엄군에게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니들이 우리를 잊지 않는다믄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기록헐 것이다. 도청을 나가는 니들은 비겁자가 아니다. 역사의 증인이 되기 위해 나가는 것이다.”

 

(350)

526, 우리의 피를 원한다면 하느님, 이 조그만 한 몸의 희생으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면 희생하겠습니다. 하느님, 나는 무엇이오니까? 너무 가냘픈 존재이올시다. 너무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자올시다. 주님,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위해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더 큰 고통과 번뇌와 시련을 듬뿍 주셔서 세상을 이겨나갈 힘과 지혜를 주십시오. 고아라면 모두 이를 갈겠지요. 내 형제들, 어린 동생들, 이렇게 죽는 나로 말미암아 두세 겹의 고통과 멍에를 짊어지고 쓰레기처럼 살 수밖에 별 도리가 없겠지요. 하느님, 어찌해야 좋겠습니까. 양심이 그 무엇입니까. 왜 이토록 무거운 멍에를 매게 하십니까. 이렇게 주께 갈급하게 구해야만 세상일을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하렵니다. 하느님, 도와주소서. 모든 것을 용서하시고 세상에는 관용과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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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두 번째는 지금까지 조명되지 않은 광주시민들을 중심에 두고 써보자는 관점이었다. 평전이 발간됐거나 신문과 방송 혹은 잡지에 집중인터뷰를 했던 분들은 널리 알려졌으므로 동어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인간의 보편적인 입장에서 참여한 신부님과 스님은 종교적 양심에 따라 행동한 분들이므로 뺄 이유는 없었다. 한편, 나중에 정치를 한 분은 순수성 측면에서 여러 해석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그분들의 역할은 가능한 한 줄였다. 따라서 <광주 아리랑>에 등장하는 인물은 식당주방장, 요리사, 시장 상인, 운전수, 페인트공, 용접공, 가구공, 선반공, 방직공장 여공, 예비군, 예비군 소대장, 대학교 교직원과 수위, 비운동권 학생, 영업사원, 재수생, 구두닦이, 농사꾼 등등이다. 이들도 805월에 계엄군과 맞서 싸웠던 엄연한 실존이자 최대 피해자였던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나는 이분들을 한 분 한 분 광주 5.18 역사로서의 소설에 주인공이자 증인으로 영원히 기리고 싶었다. 화강암 같은 개결한 역사의 비석에 이름을 깊이깊이 새기듯.

 

(65-66)

김성섭이 여러 유인물 중에서 내민 것은 58일자로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와 조선대학교 민주투쟁 위원회 이름으로 뿌려진 1시국 선언문이었다. 선언문 종류는 그것뿐이었으몰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민족적 양심과 민주적 지성의 부름으로 우리가 그간 역사앞에 외쳐왔던 목소리는, 타율과 강압에 의해 수그려들기도 여러차례 있어왔으나, 끝내 불붙은 민주에의 열정은 오늘의 역사적 전환기를 앞당겨 그 피의 도정을 계속 밟아왔고, 모골이 송연한 유산공포정치 아래서도 끝까지 투쟁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이 중대한 역사적 시점에서 우리 대학인이 걸어야 할 길은, 무엇보다 구조적 수탈의 배후에 숨어있는 탐욕의 세력을 정확히 파헤치고, 이들이 어떻게 외세 매판자본과 결탁 반민족 작태를 멈추지 않고 있는가를 직시하여 조국의 민족정기를 진작시키는데 앞장서는 그 길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조국의 현실은, 독재자 한 사람의 영면이 마치 구약과 적폐의 일소인 양 오도시키려는 무리들 때문에, 민주민족 세력이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어쩌면 우리 세대의 미지막일지도 모르는 이 기회를 잃지나 않을까 하는 심한 우려를 낳고 있다....... “

 

(89)

14일 전남대생들의 시위는 처음 가두로 진출할 때는 최루탄을 쏘는 경찰과 격렬하게 맞선 양상이었는데, 오후 3시쯤에 시작한 민주성회와 이후 가두 행진 때는 뜻밖에 평화로웠다. 경찰이 수수방관하는 태도로 나왔던 것이다. 한복에 고무신을 신은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이 시민들에게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오후 6시까지 집회를 마치고 귀교하겠습니다라고 약속을 해서였다. 경찰은 전남대생들이 귀교할 때는 시위 행렬을 따라가며 교통정리까지 해주었다.

 

(98)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것이 군인이듯,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경찰의 본분이라고 안병하 경찰국장은 생각했다.

(중략)

시위진압 시 안전수칙 잘 지키기를 바란다. 시위 학생에게 돌멩이를 던지지 말라. 도망가는 학생은 쫓지 말라. 시민이 다치는 일 없도록 하라. 알겠는가?“

(중략)

부대 지휘관은 과격한 행동을 금하고 시위대를 추격하지 말라. 사과탄은 안면에 던지지 말고 공중에 투척하라. 최루탄도 각도를 유지해서 발사하라. 알겠는가?“

(중략)

시위 시민에게 절대로 자극적인 언행을 삼가라. 시민들의 야유와 비난이 있어도 절대 대응하지 말라. 시민과 우리 경찰의 안전을 최우선하라.“

 

(199-200)

문장우는 체격이 날렵하고 단단했지만 그의 친구는 둔하고 허약해 보였다. 허약한 친구가 문장우를 잡았지만 오히려 그가 끌려갔다. 창 너머는 바로 충장파출소였다. 학생 예닐곱 명이 진압봉을 든 공수부대원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그러나 충장로 지리에 밝은 학생들은 잽싸게 골목으로 달아나버렸다. 그러자 공수부대원들이 지나가는 행인을 아무나 붙들고 진압봉을 휘둘렀다. 청바지에 긴팔 티를 입은 여학생을 잡아당기더니 길바닥에 내팽개쳤다. 여학생의 티가 벗겨져 가슴이 보일 만큼 난폭하게 질질 끌고 갔다. 그뿐만 아니라 자전거를 타고 가던 사오십으로 보이는 남자를 붙잡은 뒤 진압봉으로 두들겨 팼다. 시민들 보란 듯이 자전거는 길바닥에 사정없이 던져 망가뜨렸다. 지켜보는 시민들은 두려움 때문에 아무도 항변을 못했다. 문장우 역시도 처음에는 말을 못하다가 꾸역꾸역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 개새끼들아. 니들이 대한민국 군인이냐? 죄읎는 사람들까지 왜 때려!“

 

(215)

선생님, 공부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나도 답답하고 암울하기는 여러분 같아요.“

지금 우리가 공부를 해야 합니까?“

여러분 마음을 나도 알아요.“

금남로에서 우리 형제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학생이 역시 더 이상 말을 못하고 울먹였다. 박행삼도 학생들과 같은 심정이었으므로 교사 신분을 잊어버리고 분필을 집어던지면서 눈물을 흘렸다. 박행삼이 비통하게 말했다.

여러분, 우리는 어째서 비극의 역사를 반복하는지 참담할 뿐입니다.“

 

(222)

국민들이 낸 방위세로 무장한 군인이 아닌가! 외적을 막으라고 지급한 총을 시민들에게 돌리고 있다니. 이런 군대는 필요 없다. 주인을 모르고 미쳐 날뛰는 군대는 없어져야 한다. 누가 이 군인들을 미치게 했는가? 시민을 살상하라고 명령한 원흉은 누구인가?’

 

(304-305)

전옥주의 가두방송 멘트는 전날보다 더 거칠었다.

형제 동생들이 죽어가는데 다리를 쭉 뻗고 잠이 옵니까. 공수들이 광주 시민을 다 죽이려고 하는데 도대체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갑니까. 일제 때 학생운동이 가장 먼저 일어난 광주입니다. 광주정신을 외면하는 사람들을 광주시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팔십만 광주시민 모두가 나서 대한민국 군인이기를 포기한 공수 놈들과 싸워야 합니다.

 

(341)

그때였다. 바퀴 달린 시위 장갑차 한 대가 도청 분수대 쪽으로 달렸다. 장갑차 뚜껑을 열고 한 청년이 용감하게 상체를 드러냈다. 머리에 흰 띠를 두른 청년은 윗옷을 벗고 태극기를 흔들었다. 도청 광장을 지키고 있던 공수부대원들이 그 청년을 향해 가차 없이 집중사격을 했다. 목에 총을 맞은 듯 청년의 머리가 푹 꺾였다. 공수부대원의 집중사격으로 충장로 입구 빌딩에 있는 노인과 동구청 앞의 학생과 처녀, 시민 등 여덟 명이 쓰러졌다. 도청 광장으로 돌진했던 시위 장갑차는 분수대를 돌아 노동청 쪽으로 빠져나갔다. 그제야 시민들이 쓰러진 사람들 중에 경상자는 동구청 뒤 홍안과로, 중상자는 전대병원과 적십자병원, 기독병원으로 시위 차량에 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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