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301)

몇몇 생애는 한 단 한 단 올라가는 층계와 같다. 매 시기마다 이전에 이룬 것을 바탕으로 그 위에 한 단을 더 높이 쌓아 올리는 식이다.

다른 생애들은 붕 하고 포물선을 그리는 날쌘 창의 궤적과 같다. 오직 한 가지에만 모든 것을 바치는 삶이다. 그 시작으로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그 얼마나 장려하게 집중되어 있는 인생행로인가. 그 날아간 길이 너무도 참되고 확실하여 숙명론의 증거가 될 것만 같다.

그리고 또 다른 생애들은 도리어 호숫가의 돌덩이를 넘어 앞으로 가는 있는 어린애의 걸음과 닮았다. 지금은 오르다가, 지금은 내리다가, 목적지는 항상 가려서 안 보이고. 이제 발목이 삐끗하고, 이제 샌드위치를 흘리고, 이제 낚싯바늘이 얼굴에 와 부딪히고.

 

(303)

목적지를 결정하면 항상 날씨가 나아지는 법이다. 아니면 나아진 것 같은 기분이라도 든다. 비록 태양은 여전히 거칠고 바람은 약했지만, 그리고 높은 습도 탓에 젖은 코트를 입은 것처럼 몸이 무거웠지만 한동아리 아닌 한동아리 일행들은 탄력 있는 걸음걸이로 걸어나갔다.

 

(538)

이해가 안 되는데. 먼치킨랜드인들은 네사로즈를 독재자로 여기지 않았나? 물론, 네사로즈가 분리 독립을 주창한 사람인 건 맞아요! 그러니까 그녀가 먼치킨랜드 자유령의 어머니인 거죠. 하지만 먼치킨랜드인들은 네사로즈의 독단적인 경건 때문에 나중엔 진절머리를 냈잖아요. 아무튼, 네사로즈를 동쪽 나라의 사악한 마녀라고 부른 장본인이 바로 그 사람들 아니냔 말이에요. 이제 와서 갑자기 그이들이 네사로즈를 그리워하게 됐단 말인가요? 운이 나빠서 네사로즈를 치어 버린 범인을 재판에 회부할 만큼?”

 

(572)

거기에 진전이 있으면 있을수록 더욱더 많은 의미가 그 속에 깃들어 있는데, 어찌해 볼 수 있는 건 더 적어질 뿐이다. 인생을 살아가고 나이를 먹어 갈수록 더욱 구체적으로 손 안에 잡히는 것들이 많아지고 찰나 찰나가 아주 미세한 것들이 모두 소중해진다. 살아온 인생, 지내 온 시간들이 갈수록 모순에 차고 역설로 아로새겨지고 불가해한 것이 되어 가지만 그 때문에 의미가 없어지는가 하면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아마도, 해명되는 것이 적을수록 더욱 의미 깊은 것이다. (총합이 문제되는) 수학 방정식과 같지 않을수록, (결정적인 비밀에 좌우되는) 음악과 더욱 유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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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119)

포오셔 :

자비의 본질은 강압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하늘에서 대지 위로 내리는

고마운 비와 같습니다. 이것은 이중의 축복으로

베푸는 자와 받는 자를 동시에 축복해줍니다.

이것은 가장 위력 있는 것 중에서도 가장 위력이 있습니다.

이것은 왕좌에 오른 임금을 왕관보다 더욱

임금답게 해줍니다. 임금의 홀은

지상 권력의 상징이며 위풍과 존엄의 표지로

거기에는 임금의 위엄과 황공함이 깃들어 있지만

자비는 그 홀이 상징하는 위력을 초월하여

임금의 가슴속 옥좌에 자리 잡고 있으며,

하느님께서 친히 지니신 덕의 하나입니다.

따라서 자비심을 발휘하여 처벌을 완화시킬 때에

지상의 권세는 비로소 하느님의 권세에 가장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여, 비록 당신이 요구하는

심판이 정당한 것이기는 하나, 이 점을 고려해보시오.

, 심판하여 처벌하는 것만을 고집한다면

누구도 구원받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도 자비를 위하여 기도드리며, 이 기도는

또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을 많이 한 것은 당신이 집요하게 요구하는

처벌에 대한 주장을 완화시키는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계속해서 당신이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엄격한 베니스 법정은 필연적으로 저 상인에게는

불리한 판결을 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122-123)

앤토니오 :

별로요. 마음의 무장이, 그것도 단단히 되어 있습니다.

비싸니오, 자네의 손을 한번 만져보세. 잘 있게.

내가 자네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다고 슬퍼하지는 말게.

이번 일에서 행운의 여신이 관례를 벗어나 내게 친절을

베푸는 것 같으니 말일세. 그 여신의 변합없는 습관은

파산 후에도 그 비참한 사람의 목숨을 부지시켜서

움푹 들어간 눈과 주름살이 진 이마를 하고 빈곤한 노년을

체험토록 하는 것이지만 그와 같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참한 고행으로부터 나를 끊어냈네.

존경하는 자네의 아내에게 안부 전해주게.

그리고 엔토니오의 최후의 과정도 얘기해주게.

내가 자네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도 얘기하고 죽음에 임하여

내가 어떻게 했는가도 잘 말해주기 바라네.

이 이야기를 다 해준 후에 부인에게 판단을 부탁해보게.

바싸니오에게 한때 진정한 친구가 있었는지 여부를.

만약 자네가 친구를 잃게 된 것을 서러워해주기만 한다면

그대의 빚을 갚은 그 사람도 결코 후회가 없을 걸세.

이 유대인이 칼을 깊숙이 넣어서 살을 베기만 하면

나는 곧 내 심장 전부로 빚을 갚게 될 테니 말일세.

 

(141)

포오셔 :

경쟁자가 없을 때는 까마귀의 소리도

종달새 소리만큼 아름다운 법이며,

두견새라 할지라도 거위들이 제각기

꽥꽥거리는 대낮에 운다면 굴뚝새보다

훌륭한 음악가라고 생각되지 않을 거야.

세상만사는 적당한 때와 장소가 조화를 이룰 때 행해져야

비로서 정당한 칭찬을 받으며 완벽을 기할 수 있는 것이다.

조용히! 달님이 엔디미온과 함께 잠들어

깨려고도 하지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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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하지만 성스러운 음악이란…… 이것도 변칙이다. 내세가 온갖 좋은 것들이 영원히 다 함께 존재하는 곳이라면, 거기에 음악은 존재할 수가 없다. 음악이란 서로 인접한 소음들이 떠듬떠듬 연이어지는 것이다. 강세, 불협화음, 부조와, 협화음, 그리고 해소에 이른다. 이어진다는 건 시간차가 있다는 뜻이다. 음악을 이루는 소리들이 모두 함께 존재한다면, 즉 모든 음이 동시에 울린다면, 그리고 영영 그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냥 소리일 것이다. 탁하게 흐린 소음 덩어리이자 청각을 교란하는 윙윙거림의 바다이리라.

 

(457)

거기에는 언덕 아래 네 번째 아이가 있었어요. 날씨를 볼 줄 알아서 벼락이 칠 것 같다고 생각했죠. 그 여자애는 달음질쳐 올라가서 다른 아이들을 모두 언덕 꼭대기에서 내려가게 할 수 있고, 그러다 죽을지도 모르지만 죽음을 무릅써요. 만약 그 용감한 아이가 벼락을 맞아 죽음을 당하면 그것은 엄정한 운명이 작용한 거예요. 그러나 다른 아이들의 인생은 달라졌지요. 역사는 줄곧 소수의 놀이꾼들의 간섭에 휘둘려 왔어요. 그게 우리가 소망하는 바이고, 또 두려워하는 것이기도 하지 않은가요? 그렇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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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82)

네가 그런 사람이니까, 네 외모는 사랑 넘치는 할아버지면서 동시에 대량 학살범이 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다. 네가 그 두 가지 역할을 너무나 잘 해냈기 때문에 난 네게서 눈을 뗄 수 없어. 변호사들은 다르게 생각하고 싶을지 몰라도, 네가 미국에서 감탄이 나올 만큼 하찮은 삶을 유지해왔다는 사실은 네가 최악의 변호다. 네가 오하이오에서 소박하고 지루한 삶을 그토록 훌륭하게 살아냈다는 것, 바로 그 점 때문에 너는 여기서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는 거야. 넌 양극단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두 삶을 차례로 살아냈을 뿐이다. 나치라면 이렇다 할 부담감 없이 동시에 즐길 수 있었던 그 두 삶은 서로 배타적인 관계지. 그러니 결국 그게 뭐 그리 대단하겠는가? 독일인들은 서로 크게 다른 성격, 그러니까 아주 착한 성격과 그리 착하지 못한 성격을 유지하는 것이 이제는 사이코패스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온 세상에 확고하게 증명해 보였다. 트레블랑카에서 최고의 시간을 보낸 네가 미국에서 상냥하고 근면하고 하찮은 사람이 되었다는 건 수수께끼가 아니야. 너의 명령으로 시체를 치웠던 사람들, 여기서 널 고발한 사람들이 너 같은 사람들한테 그런 일을 당한 뒤 평범한 삶과 조금이라도 닮은 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 수수께끼. 그 사람들이 어떻게든 평범하게 살 수 있었다는 사실, 그게 믿기 힘든 일이라고!

 

(114-115)

홀로코스트의 현실은 모두의 상상력을 뛰어넘었습니다. 만약 내가 사실을 충실하게 기록했다면, 아무도 내 말을 안 믿었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당시의 나보다 아주 조금 나이가 위인 여자아이를 선택하는 순간, 기억의 힘센 순아귀에서 내 인생 스토리를 빼내 창조적인 실험실에서 넘겼습니다. 거기서 기억은 유일한 주인이 아닙니다. 거기서는 인과관계에 입각한 설명, 사건들을 서로 묶어주는 가닥이 필요합니다. 예외적인 일은 전체 구조의 일부로서 그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때에만 허용될 수 있습니다. 나는 내 인생 스토리에서 믿을 수 없는 부분을 덜어내, 좀 더 믿을 수 있는 이야기를 사람들 앞에 내놓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175)

놈들이 성공한다고 가정해보세. 놈들이 싸움에서 이겨 나블루스의 모든 아랍인, 헤브론의 모든 아랍인, 갈릴리와 가자의 모든 아랍인, 세상의 모든 아랍인이 유대인의 핵폭탄 덕분에 사라진다고 생각해봐. 앞으로 오십 년 뒤 놈들에게 무엇이 남겠는가? 중요성이라고 전혀 없는 작고 시끄러운 나라뿐이겠지. 팔레스타인을 박해하고 파괴한 결과가 그렇게 될 거야. 유대인만으로 이루어진 벨기에 같은 나라가 만들어지는 거지. 하지만 그나마 자랑할 만한 브뤼셀 같은 도시도 없는 나라. 진짜유대인들이 문명에 기여한다면 그런 것뿐이야. 유대인을 위대하게 만들어준 모든 특징이 없는 나라! 자기들의 사악한 점령체제하에 살아가는 다른 아랍인들에게 자기들의 우월성에 대한 존경심과 두려움을 주입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난 자네의 민족과 함께 사람이야.

 

(185-186)

이스라엘의 군사적 팽창을 유대인의 희생에 대한 기억과 결부시켜 팽창주의를 역사적으로 정당화하고, 점령지를 꿀꺽 집어삼킨 뒤 팔레스타인인들을 살던 땅에서 또다시 몰아낸 일을 역사적인 정의, 정당한 보복, 그저 자기방어로 정당화하기 위한 캠페인. 이스라엘의 국경선을 넓힐 기회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움켜쥐는 모습을 무엇이 정당화해주는가? 아우슈비츠, 베이루트의 민간인들을 폭격한 일을 무엇이 정당화해주는가? 아우슈비츠,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뼈를 박살 내고 아랍인 시정들의 팔다리를 폭탄으로 날려버리는 행동을 무엇이 정당화해주는가? 아우슈비츠, 다하우, 부헨발트, 젤젠, 트레블링카, 소비보르, 벨제크. “그건 거짓이라니, 필립. 어찌나 잔인하고, 냉소적인 거짓인지! 영토를 지키는 것이 그들에게는 한 가지 의미를 지닌다. 딱 한 가지 의미만, 이런 정복을 가능하게 해준 물리적 능력을 과시하는 것! 영토를 다스리는 것은 지금껏 그들이 누리지 못했던 특권을 행사하는 일. 남을 억압하는 희생자로 만드는 경험, 이제는 타인들을 다스리는 경험. 권력에 미친 유대인, 이것이 그들의 모습이야.

 

(189)

전세계 유대인들의 눈에도 유지되는 나라라는 것, 점령지에서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봉기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마키아벨리 국가라는 것, 이 나라가 마키아벨리식 세계에 있는 것은 사실일세, 시카고 경찰국과 마찬가지로 성결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 그들은 이 나라가 유대인 문화, 민족, 유산 유지에 필수적이라고 지난 사십 년 동안 선전했지. 사실 이 나라의 존재는 품질과 가치 면에서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선택적인 것이었는데도 이스라엘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현실이라고 선전하는 데 온갖 술수를 동원했어.

 

(204-205)

사람은 이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합니다. 이건 아주, 아주 기본이죠. 사막에서 온 겁니다. 저 풀잎은 내 것이고, 내가 기르는 짐승은 그 풀을 먹지 못하면 죽는다. 우리 집 짐승이 먹을 것이야, 너희 집 짐승이 먹을 것이냐, 여기서부터 타키야(시아파 신도들의 박해의 위험이 있을 때 신앙을 감추는 행위)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영어로는 대개 위장이라고 하죠. 시아파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나지만, 사실은 이슬람 문화 전체에 퍼져 있습니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위장은 이슬람 문화의 일부입니다. 위장을 허락하는 분위기는 널리 퍼져 있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위험해지는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문화, 상대가 분명히 솔직하고 진실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문화죠.

 

(229)

당신은 그냥 정치투쟁이라는 저열한 어리석음보다 대학이라는 고상한 어리석음이 더 좋은 거겠지. 지금 이 일이 멍청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 심지어 쓸데없는 일이라는 말도 할지 몰라. 하지만 이런 게 원래 이 지상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이야

 

(392-393)

그 작품의 첫 번째 대사, 그러니까 1 3장을 여는 대사에서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거의 사백 년 전 샤일록이 세상의 무대에 나와 자신을 소개한 말 때문에요. 그래요. 사백 년 전부터 유대인들은 이 샤일록의 그림자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현대 세계에서 유대인은 항상 재판을 받는 신세였어요. 지금도 유대인은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인이라는 형태로, 유대인을 상대로 한 현대의 재판, 결코 끝나지 않는 이 재판의 시발점이 바로 샤일록 재판입니다. 전세계 관객들에게 샤일록은 유대인의 화신입니다.

 

(469)

관용구, 관심사, 정신적인 리듬 면에서 K의 일기나 A. F.의 일기 같은 글들은 훤히 눈에 띄는 애잔함을 확인해준다. 첫째, 유대인은 평범하다. 둘째, 그들은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없는 상황이다. 평범한, 단조롭고 눈부시며 축복받은 평범함, 모든 관찰, 모든 감상, 모든 생각에 이것이 있다. 유대인이 꾸는 꿈의 중심, 시온주의와 디아스포리즘 모두에 열기를 제공해주는 것은 유대인이 유대인임을 잊었을 때 사람이 되리라는 것. 평범함. 지루함. 이렇다 할 사건이 없는 단조로움. 진을 치지 않는 삶. 각자 자기만의 유람선에서 반복적으로 느끼는 안전.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유대인의 삶이라는 믿을 수 없는 드라마.

 

(499-500)

그들은 유대인으로서 권리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이라서 벗어날 수 없는 도덕적 의무도 갖고 있소. 어떤 형태로든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보상을 해줘야 할 의무. 우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나쁜 짓을 저질렀소. 그들을 쫓아내고 억압했으니까. 그들을 추방하고, 때리고, 고문하고, 살해했으니까. 유대인 국가는 처음 생겨난 순간부터 역사적으로 팔레스타인의 땅이었던 곳에서 팔레스타인들의 존재감을 지우고 그 땅을 빼앗는 데 전력을 다했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유대인들 손에 쫓겨나 이리저리 흩어지고 정복당했지. 유대인 국가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우리 역사를 배반했소. 그리스도교인들이 우리에게 한 짓을 우리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했다는 뜻이오. 그들을 경멸과 예속의 대상인 타자(他者)’로 만들어, 인간의 지위를 빼앗았소. 테러나 테러리스트나 야세르 아라파트의 어리석은 정치행보와는 상관없이, 사실은 이것이오. 팔레스타인 민족은 전적으로 무고하며, 유대 민족은 전적으로 유죄다. 내게 있어 경악스러운 일은 소수의 부자 유대인이 PLO에 거액을 기부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유대인이 자기도 기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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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00)

그렇다. 이따금 정말이지 이상한 생각이, 얼른 보기에는 전혀 가능하지 않은 생각이 머릿속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결국에는 그런 생각이 실현될 수도 있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뿐만 아니라 만일 그런 생각이 강렬하고 열정적인 소망과 합쳐지게 되면 때로는 그것을 숙명적이고 피할 수 없는 어떤 것, 예정된 어떤 것으로, 또 반드시 있어야 하고, 일어나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거기에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예감의 결합이라든지, 예사롭지 않은 의지의 강화, 그리고 자신의 상상에 의한 중독이나 아니면 또 다른 어떤 것이, 모르겠다. 어쨌든 오늘 밤(나는 평생토록 이 밤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내게는 기적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비록 그 사건이 산술에 의해 완전히 증명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내게는 아직까지도 기적적인 사건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해서 그런 믿음이 내게 그토록 단단하고 뿌리 깊이 박혀 있었던 것일까? 그것도 아주 오래전부터? 여러분에게 되풀이해서 말하는 것이지만, 아마도 나는 그것을 수많은 것들 중에서 일어날 수 있는(그러니까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경우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도저히 일어나지 않고서는 안 되는 어떤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206-207)

그런데 나는 빨간색이 연이어 일곱 번씩이나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상한 오기가 생겨서 일부러 빨간색을 물고 늘어졌다. 내가 그렇게 한 데에는 자존심도 절반쯤 작용했다고 보는데, 정말이지 나는 앞뒤 가리지 않는 모험으로 구경꾼들을 놀라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상야릇한 느낌이다- 내가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전혀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았는데도 별안간 모험에 대한 강한 열망이 나를 사로잡아 버렸다는 것이다. 어쩌면 내 영혼은 수많은 느낌들을 거쳐 왔으면서도 그것들에 의해 충만되는 것이 아니라 자극만을 받은 채 완전히 진이 빠질 때까지 더 많은 느낌들, 더욱더 강렬한 느낌들을 요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건 거짓이 아니라 정말인데, 만일 게임의 규칙상 한꺼번에 5만 플로렌까지 거는 것이 허용되기만 한다면 나는 분명히 5만 플로렌을 걸었을 것이다. 주위에서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난리들이었다. 빨간색이 벌써 열네 번이나 나왔다고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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